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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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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익명 (미확인) | 화, 2016/08/16- 15:31

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이 글은 총 두 편입니다. 1편은 지도 반출 문제, 2편은 지도의 보안 처리 문제를 다룹니다. (필자)

  1. → 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2. 보안 처리: 구시대적 지도 검열

 

지난 6월 초 구글이 한국 지도 반출을 재신청하면서 비롯된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정부나 구글, 국내 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내놓는 주장이 뒤섞이며 사실관계조차 헷갈리고, 정보통신 서비스 영역을 넘어 안보나 국가 자존심까지 입길에 오르고 있다.

7월에 세계를 급속히 달군 포켓몬 고 열풍도 이러한 논란에 부채질했다. 한국이 게임 서비스 지역에서 제외된 것이 구글 지도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문제에는 몇 가지 이슈가 꼬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꼬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여하튼 이런 가닥을 차근차근 분리하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원칙들을 적용한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다음에 실릴 글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지도 정보의 국외 반출 문제,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차례로 짚어 본다.

 

한국에서 지도 쓰기를 포기하는 외국인들

Danielle Conway지난 5월 19일, 오픈넷이 주최한 포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혁신 조약’에서 발제를 할 사람은 미국 메인 대학교 법학교수인 다니엘 콘웨이(Danielle Conway, 사진) 박사였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한국을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서울 지리에 깜깜하다.

숙소인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포럼이 열리는 선릉역 부근 행사장까지 오는 길을 알려주어야 했다.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 올지 몰라서, 일단 지도부터 보냈다. 한국인이 흔히 쓰는 네이버나 다음 지도는 그녀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영어로 표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글 지도로 이미지를 떠서 이메일로 보냈다.

콘웨이 박사는 택시를 타고 왔다. 목적지를 못 찾아서 선릉역 부근을 뱅뱅 돌던 기사가 결국 내게 전화를 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발제자가 40분도 더 늦는 바람에 토론자가 먼저 마이크를 잡는 일이 벌어졌다. 택시요금은 정상보다 세 배 가량 더 나왔다. 콘웨이 박사는 이렇게 요금이 비정상적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구글 지도에는 택시를 이용한 경로 서비스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 서비스에 관한 한, 외국인에게 한국은 남미 원시림이나 다름없다. 8월부터 오픈넷에서 인턴쉽을 하는 미국 대학생 댄 베이티코는 서울에서 지도 쓰기를 아예 포기했다. 그가 한국을 오기 전에 거쳐왔던 대만, 네팔, 베트남에서는 겪지 않았던 일이었다.

물론 이것은 두 가지 이유로 그렇다. 국내 업체의 지도는 영어 서비스를 하지 않고, 다양한 언어 지원을 해서 국제 표준이 되다시피 한 구글 지도는 국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일부 외국인이 한국에서 길을 찾는 문제라면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야 헤매든 말든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 지도 서비스를 근간으로 한 각종 부가 서비스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같은 태반에서 태어날 다양한 미래의 서비스들도 근본적으로 잉태될 수 없다는 점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에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안보 위협하는 지도 반출 안 된다?

구글이 지도 반출을 신청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자사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그리고 구글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기반으로 하여 개별 기업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꽃피우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지도 정보를 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단순하면서도 다분히 의도된 오해 때문이다. 즉 구글의 지도 반출에 반대하는 측이 이 문제를 국가 안보 이슈로 틀 지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구글이 한국의 안보 특수성을 무시하고 보안시설이 다 드러난 지도를 국외로 가져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 구글은 현재 한국 지도를 극히 제한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2. 이 지도는 SK플래닛(모회사는 SK텔레콤)이 소유한 것이며, 구글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 지도를 사용하고 있다.
  3. 즉, 구글은 자체로 한국 지도를 돌리는 게 아니라 SK플래닛에서 돌아가는 지도를 보여주기만 한다.
  4. SK플래닛 지도는 다음 지도나 네이버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부 규정에 따라 보안 처리된 지도다.
  5. 구글이 지도를 반출하겠다는 의미는, 이 SK플래닛 지도 데이터를 해외의 서버에서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다.

따라서, 구글이 보안 처리되지 않고 속속들이 다 보이는 지도 데이터를 외국으로 가져가려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가져가려는 지도는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보안 처리된 데이터다. 보안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당장에라도 반출을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법을 위반하는 일도 아니다. 한국 법은 지도 정보 반출을 금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할 길을 열어두고 있다. 그 결정을 위해 정부 부처 간 협의체(‘공간정보 국외반출 협의체’)까지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협의체가 반출 허용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필요성이 없다면 불허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도 반출로 얻거나 잃을 이익을 따져 내릴 정책적 판단이다.

안보를 걸고넘어지는 주장은 모두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다고 보면 된다. 안보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동력을 얻는다.

“정부는 지도데이터에서 중요 안보시설을 삭제할 것을 반출조건으로 내걸고 있고 구글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국토부 “지도반출 불허해 포켓몬 고 불가능한 것 아니다” (2016. 7. 14) 중에서

이런 서술은, 구글이 안보시설이 속속들이 표시된 지도를 가져가려고 한다는 오해를 조장한다.

 

위성사진에서 뺨 맞고 지도에 화풀이

오해든 착각이든, 안보 문제가 있으므로 지도 반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반출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정부가 그런 여론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출 대상이 되는 지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위성사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알듯 구글의 위성사진은 한국 정부가 가리고 싶어 하는 시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정부에서 볼 때, 외국 기업이라 손을 쓸 수 없어 하릴없이 두고 보기는 하지만 눈엣가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출 대상 지도 데이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구글의 위성사진과 관련한 사실관계도 정리해 보자.

  1. 구글 지도에 나오는 한국의 위성사진은 .co.kr 버전과 .com 버전이 있다.
  2. 한국 주소인 .co.kr로 보이는 위성 이미지는 해상도가 낮아 희미하게 보인다.
  3. 이것은 구글이 한국 법규를 따르려고 일부러 해상도를 떨어뜨린 결과다.
  4. 한편 한국법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 주소인 .com으로는 선명한 이미지가 보인다.

한국 웹주소와 해외 웹주소를 다르게 하여, 해외 주소로 접속하면 다 볼 수 있게 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 보자면, 한국에서는 법이 그렇게 강제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차이다.

어쨌든 구글 국내 위성사진에는 흐릿하게 나오는 주요 시설물들이 .com 사진에는 선명하게 다 보인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정부의 숙원 사업이다. (이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은 밑에서 다시 자세히 쓴다.) 따라서 구글이 지도 반출을 신청하고 이에 대해 여론이 안보를 이유로 부정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정부에게 반가운 상황이다. (반출 대상 지도가 아닌) 위성사진을 손보도록 요구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말까지 응답을 내놔야 하는 정부가 가장 선호할 만한 해결 방식은, 구글에 기왕의 SK플래닛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는 대신, 그 조건으로 구글 위성사진(.com)을 국내 업체의 사진처럼 보안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미 쓰고 있는 지도 반출을 허용해 주면서 숙원 사업이던 위성사진 물칠을 성사시킬 수 있는 빅딜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구글에게 이례적으로 서버를 자국 안에 들여오도록 강제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권위주의 국가의 인상을 또 하나 더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되는 방안이기도 하다.

문제는 구글이 이런 제안을 받을 것이냐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구글코리아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한국의 지형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외국 위성사진이 널린 마당에 구글만 지우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요구다. 둘째,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외국 기업의 서비스에 검열을 가하는 것이다. 셋째, 구글은 위성사진에 스스로 보안 처리한 적이 없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는 세계 위성사진에서 희미하게 처리된 지역을 표시한 목록이 있다. 여기에는 구글이나 빙(MS의 검색엔진) 위성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을 클릭해 실제로 가 보면 정상적으로 보이는 곳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구글은 지도 상태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지 않은 경우일 뿐이며, 해당 지역을 보여주는 더 좋은 지도가 입수되면 계속 업데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첫 번째 이유가 시사적이다. 정부는 구글의 위성사진을 보안 처리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을 다 보여주는 위성사진은 구글 말고도 널려 있다. 어찌어찌 하여 구글 사진을 물칠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악의 없는 이용자의 시각만 가로막을 뿐, 실제로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아래 사진들은 네이버, 다음 같은 한국 지도 서비스들과, 접속하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외국 지도 서비스들의 위성사진을 통해 본 경복궁과 청와대 모습이다.

 

이뿐만 아니다. 온라인으로 무료 서비스되는 이들 위성사진 말고도, 사진을 상업적으로 파는 많은 위성사진 업체가 있다. Esri.com, digitalglobe.com 등이 그중 일부다. 이 업체들은 누구든 돈만 내면 무료 위성사진보다 훨씬 더 높은 해상도의 사진을 제공한다.

국제적으로 이용되는 이들 지도 서비스를 열면, 한국인만 못 보고 있는 장면들이 크고 아름답게 나타난다. 구글의 위성사진을 지우려 하는 정부 노력은, 이 모든 지도들도 막아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결국, 정부는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하여 안보의 깃발을 높이 들고 애국적 싸움에 나선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보 실익이 전혀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지도 반출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은 덤이다.

 

한국에 서버를 설치하라?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지도 반출 논란에 대한 한 가지 처방은 구글이 서버를 한국에 설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핏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구글이 SK플래닛 지도 데이터를 한국에 있는 서버에서만 돌린다면 반출 논란은 당연히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구글은 전 세계 지도 데이터를 현재 15개 국가에 산재하는 데이터 센터에 분산 배치하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떤 한 나라의 데이터를 돌리기 위해 그 나라에 서버를 설치한 일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지역에 데이터를 묶어버리면 안정성 유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국내의 시각만 가진 정부나 업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취월장하여 언젠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진출해야 할 국내 기업이 겪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게다가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라는 것은 정보의 국경 없는 자유로운 흐름이라는 인터넷의 대원칙에도 어긋난다. 데이터를 수집된 국가 안에 묶어두려는 이른바 데이터 국지화의 경제적 문제점을 새삼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글이 한국에 서버를 두기를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2011~12년에 구글은 아시아 지역 세 곳에 대형 서버를 구축하기로 하고 지역을 물색했다.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의 거대한 서버 시설을 유치하는 데서 올 경제 효과를 염두에 두고 한국도 열심히 유치 운동을 했다. 그러나 구글 서버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으로 갔다.

한국이 제외된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2011년 5월 한국 경찰은 모바일 광고의 위치정보 수집 사건을 수사하면서 구글코리아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압수수색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 당국이 영장 없이도 이동통신사를 찔러서 이용자 정보를 마음껏 캐내 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구글 서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뒤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 서버를 두고 싶어 하는 인터넷 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금 받고 싶으면 법규부터 고쳐라

여기서 지도 반출 이슈와 상관없는 또 하나의 애국 프레임이 등장한다. 구글이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고 부도덕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그 어조는 사악하고 패륜적인 반국가단체를 나무라는 양상이다.

이런 주장은 구글이 한국에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구글코리아는 물론 세금을 낸다. 구글이 한국에서 창출한 수익 전체에 대해 적절한 세금을 내고 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구글은 현재 한국법과 국제 규정이 정하고 허용한 바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구글이 아니라 법규다. 구글이 창출하는 이윤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물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법을 제·개정하고 규정을 정비하면 된다. 세법을 개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고, 이미 그렇게 하는 나라들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그런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일은 하지 않으면서 기업을 나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해결책도 될 수 없다.

구글이 세계적 강자이기는 하지만, 구글 지도 서비스가 한국에 개시된다고 해서 한국인이 바로 구글 대마왕에 종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구글이 한국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지 15년 이상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네이버가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구글을 쓰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이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구글의 서비스에 만족하는 사람이 는다는 뜻일 뿐이다. 다른 기업 역시 그런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일 것이다.

정부는 곧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에 대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 지도 반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안보나 준탈세 프레임에 휩쓸리기보다, 지도 데이터 개방이 이용자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실제로 어떤 효용이나 불이익을 가져올까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좀 더 생산적인 접근일 것이다.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기업들의 규모가 막대하게 커지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업 모델을 구축하여 실물 경제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가 기업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새로이 검토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안보 필요에서부터 납세의 의무까지, 명분과 구호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많지 않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기반으로 형성된 온라인 세상을 살기 위한 21세기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였습니다.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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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풍선’ 때려잡자? 인터넷 규제론의 다섯 가지 문제점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음란성, 비도덕성 등으로 ‘도 넘은’ 인터넷 개인방송에 대해 업계 자율규제 위주의 정부 대책이 나왔지만,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논란이 일고 있다. 수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인터넷 개인방송 서비스 업계가 스스로 자정하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이다. 음란 개인방송 등 불건전 1인 방송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좀 더 효율적인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타임스,  “별풍선 주세요”욕설·선정성 도 넘은 인터넷 개인방송 (2016년 4월 27일) 중에서

디지털타임스 - “별풍선 주세요”욕설·선정성 도 넘은 인터넷 개인방송 (2016년 4월 27일)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6042702101231033001

디지털타임스 – “별풍선 주세요”욕설·선정성 도 넘은 인터넷 개인방송 (2016년 4월 27일)

포털 첫 화면에서 접한 기사다. 그야말로 문제투성이다. 과연 기사 부제목처럼 “”자율규제 우선” 정부 대책에 더 강력한 압박수단 필요”할까? 이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방송과 함께 통신(‘인터넷’)도 심의하고 있는 판국에? 방심위의 아프리카 TV 규제에 관한 문제점은 내가 몸담은 오픈넷에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아프리카TV를 사례로 삼아 ‘인터넷 규제론’의 문제점을 다섯 가지로 추려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1. ‘자율규제’로는 역부족? 전 세계 유일 인터넷 심의국가 

아프리카TV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인터넷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이하 ‘방심위’) 심의를 받고 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자율규제’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인가? 무엇이 “역부족”이라는 것인가?

하는 일은 귀여운 마스코트의 모습과는 좀 딴판이다.

하는 일은 귀여운 마스코트의 모습과는 좀 딴판이다.

2. 불법 인터넷 게시물? 형사처벌하면 된다 

방심위를 빼놓고 얘기해도, 인터넷 방송이 “자율규제로는 역부족”이라고 투덜(?)대는 건 길거리 산책이 ‘자율규제’에 방치되어 있다고 투덜대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길거리 산책하다 다른 사람 폭행하거나 명예훼손하면 형사처벌한다. 인터넷에서도 아프리카TV이든 뭐든 명예훼손, 음란물, 아동 포르노를 게시하면 형사처벌하면 되고 형사처벌되고 있다.

불법 게시물? 불법 동영상? 그럼 형사처벌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다.

불법 게시물? 불법 동영상? 그럼 형사처벌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다.

3. 자율규제는커녕 사전규제 당하는 형편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아프리카TV를 포함한 우리나라 인터넷 업체들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그 등록이 취소될 수도있는 소위 ‘부가통신사업자 신고번호’까지 가지고 있다.[1]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이 그런 번호 가지고 있나?[2] 우리나라 인터넷은 ‘자율규제’는커녕 사전규제를 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등록제는 통제수단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슈퍼히어로 등록제 때문에 싸움이 나는 거 봐라.

표현의 자유 검열

4. 방송 vs. 인터넷에 대한 무지

불법 아니더라도 ‘불건전’(?)하면 국가 공권력이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직 있나? 인터넷 ‘방송’에서 ‘방송’은 은유다. 실제 법률상 규제하는 방송이 아닌지를 기자는 정말 모르는 걸까?

앞서 언급한 해당 기사 댓글에도 있지만, 법적으로 일간베스트나 아프리카TV나 다를 것이 없다. 일간베스트는 왜 불건전 심의 안 하나? 아프리카TV도 방송처럼 불건전성심의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라면 일베에도 불건전성 심의를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그래선 안 된다. 아프리카TV든 일베든 그 불법성 여부만 심의하는 게 맞다.

불법이 아니라도 "불건전"(?)하면 일단 때려잡아라? (출처: Daniel Lobo, CC BY https://flic.kr/p/5925ri)

불법이 아니라도 “불건전”(?)하면 일단 때려잡아라? (출처: Daniel Lobo, CC BY)

(인터넷 방송이 아닌 지상파) 방송에 대해서 불법인지 아닌지를 심의하는 것을 넘어 건전한지 아닌지까지 심의(불건전성 심의)하는 것은 방송이라는 매체의 물리적 희소성 때문이다. 전파의 간섭현상 때문에 채널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서 시작된 것이다.

인터넷은 이런 기존 매체의 희소성을 해결하여 각자가 불법만 아니라면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라고 만들어진 매체이다. 아프리카TV가 딱 바로 그런 거다. 난 아프리카TV에서 법률 강의할 때 말고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고, 원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무슨 불건전을 떨든 상관하지 않는다. 불법만 아니라면 말이다.

5. 디지털 경제 하지 말자는 건가? 

외국에서는 유튜브가 실시간 방송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됐고, 페이스북 라이브, 페리스코프, 미어캣, 캐미오 등등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포털 사업자가 실시간 방송을 시작할 엄두라도 낼 수 있을까?

우리는 다 같이 디지털 경제 하지 말자는 건가.

소셜 디지털 미디어

 

[1] 자본금 1억 원이 넘는 업체들은 모두 부가통신사업자로서 신고해야 한다.

[2] 물론 구글, 페이스북 등의 한국 법인은 ‘부가통신사업자 신고번호’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 ‘부가통신사업자 신고번호’가 없으면, 한국 사무소들이 없어지는 것이지 한국 사람들이 구글, 페북, 트위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2016.04.28.)

 

금, 2016/04/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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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공조조약(MLAT) 우회 법개정을 반대하는 이유 | 한국 수사기관이 지메일까지 압수수색 할 수 있게 되나?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통신 감시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 형사사법공조조약(MLAT, Mutual Legal Assistance Treaty) 절차를 우회하는 내용의 법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형사사법공조조약이란 형사 사건의 수사, 기소, 재판, 또는 형의 집행과 관련하여 증거 자료 수집 등에 있어 국가 간의 사법공조를 규정한 조약이다. MLAT 우회 개정 제안자들은 이러한 공조절차를 거칠 것 없이, 외국 정부가 일정 수준의 인권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면 미국의 정보매개자들이 그 국가의 수사기관에게 통신 내용을 직접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 기업이 외국 정부에 직접 넘길 수 있는 정보는 메타데이터나 이용자 신원정보뿐이며, 외국 수사기관이 미국 기업이 가지고 있는 통신 내용의 압수수색을 위해서는 MLAT에 따라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DOJ)에 정보제공 공조요청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절차 자체도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미국 기업들에 대한 요청이 전 세계에서 쏟아지고 있어 적체된 요청 건수가 어마어마한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외국 수사기관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이들 나라들 중 몇은 미국 기업들에게 서버를 자국 내에 둘 것을 강요하는 등 압력(소위 “데이터 국지화”)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국 기업들 서버에 직접 압수수색이나 검열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MLAT을 우회할 수 있도록 미국형사소송법 및 관련 국제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MLAT 우회” 법개정의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MLAT 공조요청의 처리가 얼마나 시급한가?

현재 적체된 공조요청 중 인권 기준을 준수한 요청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해당 국가의 형사법에 미국의 ‘범죄 발생의 개연성(probable cause)’과 비슷한 기준이 있고 이에 따라 공조요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요청 자체가 본질적으로 부당할 수 있다. 만약 공조요청이 국제 인권기준에 반하는 허위사실유포죄, 모욕죄, 신성모독죄, 집회시위법위반죄, 국가보안법위반죄와 같은 범죄와 관련된 것이라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 전에, 적체된 공조요청의 일부를 무작위로 조사해 적체량을 정말로 줄여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요청을 적체시키기보다는 아예 거부하더라도 판단을 내려주는 편이 바람직하지만, 어찌되었든 정보제공 요청의 유형 및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적체량을 줄이는 게 얼마나 시급한지를 판단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중대한 범죄 수사를 위해 매우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적법한 요청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MLAT을 개정하기보다는 DOJ가 요청을 우선적으로 심사해서 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2. 어떤 감시 체제에서 통신을 할지에 대한 이용자 선택권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한가?

극도로 분산된 국경초월적 통신네트워크인 인터넷은 독재정권 하의 시민들이 정부의 감시와 검열을 피해 자유롭게 통신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왔다. 사실 독재정권뿐만 아니라 각 나라마다 고유한 감시 및 검열 체제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사람들은 서버의 위치 등을 고려해 어떤 체제 하에서 통신을 할지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메일 압수수색을 덜 받고 싶은 사람은 지메일을 사용하는 식이다. 특히 미국은 통신 감시에 있어 매우 엄격한 ‘개연성’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서버가 선호되어 왔다. 그런데 만약 MLAT 절차가 없어져 외국 수사기관이 미국에 있는 서버의 정보를 쉽게 압수할 수 있다면, 미국 서버를 통신 매개체로 적극 이용하고 있는 취약한 개개인의 가장 중요한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윤리적 거버넌스 환경 안에서 소통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 스펙트럼의 한 끝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지메일 등이 유일하게 안전한 통신수단이기 때문에 이용하고 있는 독재국가나 분쟁지역의 시민들이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참고로 MLAT 체제 개정이 현실화되면 상호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즉 미국정보매개자들이 외국 수사기관의 요청에 직접 응하게 될 뿐 아니라 네이버나 카카오도 미국 수사기관의 요청에 응하게 될 것이다.

 

3. 통신 감시에 관한 헌법적 대원칙에 비추어 적법한가?

경험칙상 국민의 프라이버시나 통신에 대한 국가적 침해는 해당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권한 당국에 의해 심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법관들은 직간접적으로 감시 대상자와 일종의 상호책임성의 관계에 있을 때만 대상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허용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압수수색에 대해 유효한 영장을 발부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들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 관심과 배려를 가진 한국의 판사여야 하는 것이지 한국 사람들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외국 판사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에 대한 감시·검열 요청은 한국 법원에서 심사해야 하며, 미국인에 대한 요청은 당연히 미국 법원에서 심사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 서버에 저장된 한국인 이용자의 정보에 대한 감시·검열은 이용자와 서버운영자의 프라이버시를 모두 침해하므로 양쪽 다 영장을 받는 것이 옳고 MLAT은 이러한 정보의 제공요청이 한국과 미국의 사법체계를 모두 거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상적이다. 그런데 MLAT을 우회할 수 있게 되면, 한국 법원이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한국인 이용자의 정보를 한국 수사기관에게 제공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여기에는 다국적 정보매개자가 이용자를 국적에 의해 차별해도 되는지에 관련된 까다로운 의문점들이 산적해있다!). 이를 확대하면, 한국 법원이 애플에게 한국인 피의자가 미국 여행 중 분실한 아이폰의 잠금해제를 직접 명령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반대로는 미국 법원이 네이버가 보관하고 있는 미국인의 정보를 FBI에 넘기라고 직접 명령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자국 기업이 외국의 통신감시법을 직접 적용받도록 하는 게 적법하다고 볼 수 있을까?

 

4. 데이터 국지화 압력을 막을 수 있는가?

MLAT 개정의 가장 중요한 필요성은 외국 정부들의 미국 기업에 대한 데이터 국지화(data localization) 압력을 막는 데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데이터 국지화를 요구하는 국가들은 MLAT 공조요청의 적체현상에 대한 고려를 초월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공조요청이 신속하게 처리된다고 해서 데이터 국지화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지난 2월만 해도 중국은 모든 디지털 콘텐츠의 온라인 출판에 적용되는 네트워크출판서비스관리규정(网络出版服务管理规定)을 공포했다. 출판서비스의 서버 등을 반드시 중국 국내에 설치·운영할 것을 규정한 이 법안의 도입 취지는 명백하게 중국인들이 접하는 콘텐츠에 대한 검열과 감시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공조요청을 빨리 처리해줬다면 중국이 이런 법을 제정하지 않았을 것인가?

이런 맥락에서, 데이터 국지화의 흐름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MLAT 개정이 얼마나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인권을 유린하는 정부라면 말 그대로 인권 기준 준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적법절차에 따라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의식도 없을 것이다. 재판 받을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미국 기업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적법하고 신속하게 제공받기 위해 형사법체계를 개선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MLAT 개정을 지지한다면 너무 순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5. MLAT 우회 개정에는 프라이버시 옹호자들을 위한 당근이 하나 있긴 하지만…

이 당근은 정보매개자들이 메타데이터를 외국 정부에 자유롭게 넘기지 못하도록 미국법 SCA 2702조를 개정하는 안이다(현재는 메타데이터를 자유롭게 넘기도록 되어 있지만 ‘MLAT 우회’개정이 이루어지면 정보매개자들은 해당 정부가 일정 수준의 국제 인권 기준을 준수하거나 일정한 절차를 거친 요청의 경우에만 메타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미국의 메타데이터 관련 규제는 미국 정부에만 적용되고 외국 정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외국 정부와의 합의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국내에서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참고로 한국의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하면 한국의 정보매개자는 통신의 내용이든 메타데이터(통신사실확인자료)든, 한국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 제시가 없으면 외국 정부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현재의 MLAT 제도가 가지고 있는 인권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독재정권 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같은 이용자들에게 감시·검열 환경의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점, 또 인권 기준에 맞지 않는 요청 또는 범죄가 아닌 사안에 대한 요청을 사실상 저지하는 효과가 있는 점 등이다. 그리고 현재 MLAT이 가진 가치를 MLAT 우회 개정의 덕을 보기 위해 외국 정부가 자국의 실체적 또는 절차적 형사법을 개선할 가능성과 비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따져본다면 MLAT 우회 개정은 잃을 것이 더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위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6.05.12.)

 

목, 2016/05/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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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번만 반복하면 된다

글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옥시 사태 등등 때문에 ‘내가 이런 저런 피해를 당하면 어느 정도 배상을 받는 것이 정당한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판결문 검색을 대법원 사이트에서 해보면 되긴 하는데… (참고로 일반인들이 자주 쓰는 http://www.law.go.kr/main.html에 나오는 판결문들은 전체 판결의 0.29%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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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 이전 판결은 사건번호를 모르면 안된다. 즉 키워드 검색이 없다.

https://www.scourt.go.kr/portal/decide/DecideLis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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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를 넣어야 검색할 수 있다는 게 진정한 의미의 ‘검색(search)’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불러오기(retrieve)’아닌가? 이렇게 되면 특정한 사건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찾으려는 사람에게만 유의미할 뿐, 어떤 사건이 존재하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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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 이후에 나온 민사판결은 키워드 검색이 가능하긴 한데…

http://www.scourt.go.kr/portal/information/finalruling/peruse/peruse_status.jsp

각급 법원별로만 검색이 가능하다. 전국에 18개의 지방법원, 5개 가정법원, 1개 행정법원, 지원 54개, 고등법원들, 대법원까지 합쳐 85개 법원이 있으니, 예를 들어 가습기살균제 관련 판결문들을 찾고 싶으면 “가습기살균제”라는 검색어 입력을 85회 반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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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검색결과가 나오면 판결문들의 내용을 보기 위해서는 1건당 1천원씩 내야 한다. 물론 1천원 결제를 위해서 대한민국 온라인 결제에서 필요한 모든 플러그인이 다 필요하다(공인인증서 등등).

여기서 더 큰 함정은 1천원을 쓸 가치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미리보기’ 같은 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100개 정도 검색결과가 나왔을 때 그걸 울며 겨자 먹기로 10만원 내고 다 봐야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중에서 건질 것은 2건 정도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실질가격은 1건당 1천원이 아니라 5만원이 된다!

판결문 익명화하는 데 드는 비용? 나는 헌법적으로 공개재판의 원칙에 따라 판결문 익명화는 불필요하고 국민이 판결문에 접근할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익명화를 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판결문 생산 과정에서 공개용 익명본을 만드는 방식으로 하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해결된다. 또 익명화가 판결문에 거론된 사람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라면 누구의 프라이버시가 얼만큼 보호되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도 해당 사건의 판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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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민사고 형사는 더욱 답답하다. 최근 사건들도 어떤 사건을 달라고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해당 법원(위의 85개 중 하나, 제주지원 사건이면 제주지원)의 웹사이트에 찾아가 사건번호와 당사자 이름까지 정확히 입력하면 비로소 그 사건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검색”이 아니라 “불러오기”이니 판결문으로 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젬병이다.

게다가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해서 검색하는 사람의 실명이 확인되어야만 열람을 시작할 수 있다. 일종의 “판결문열람 실명제”를 하는 건데 이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익명으로 판결문으로 볼 자유를 제한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어떤 공익을 지키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파악하기 어렵다. 판결문에 영업비밀이 있어서? 그럼 그런 사건은 아예 처음부터 비공개재판을 하고 그 판결문만 비공개로 처리하면 된다. 극소수의 판결문 때문에 어떤 판결문이든 국민이 명찰 달고서만 볼 수 있다는 건 2012년 위헌 결정을 받았던 게시판실명제의 논리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정명령·과징금·고발 등 모든 행정조치와 관련한 의결서를 공개하고 있다. 공개 내용에는 피심인, 사실관계, 조치근거, 조치내용 등이 포함된다. 공정위 전원회의 의결은 법원의 1심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공정거래위원회 의결서 공개 페이지 바로가기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6.05.10.)

화, 2016/05/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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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넷 포럼 요약문]

마라케시의 기적: 독서장애인을 위한 정의 구현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변화 (2016. 05. 19. 개최)

 

* 참조(자료집): http://opennet.or.kr/11756

1. 마라케시 조약의 의의

마라케시 조약은 저작권의 제한과 예외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최초의 국제규범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참가자는 모두 동의했다. Danielle Conway(미국 메인 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교수는 ‘마라케시의 기적’이라는 이번 포럼의 제목이 조약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마라케시 조약은 이용자의 권리와 이익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기에 기적이라는 것이다.

마라케시 조약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정보접근의 권리를 주는 것인데, 왜 저작권자들과 출판업자들은 이러한 지식,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려는 걸까? 이는 조약의 수혜자인 시각장애인들이 지적재산권 보호에 위협의 상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출판사, 지적재산권 소유자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허용한 예외가 다른 수혜자 그룹에게도 확대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따라서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이들의 반대가 매우 격렬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오히려 시각장애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사용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움직임에 동참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래서 마라케시 조약에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다양한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국제적 연맹을 형성했다. 아프리카 그룹은 정보 부족의 이슈가 이들 국가와 직접적으로 해당됐기에 적극적으로 조약 체결 과정에 참석해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교육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 빈곤층, 책이나 디지털 정보에 접근이 제한된 사람들 등을 생각하고 이 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세계 각지의 도서관과 아카이브들은 시각장애인 등 수혜자 그룹에게 더 많은 저서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싸웠다. 결국 저작권자들에 대항하여 모든 사용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그 결실을 맺었다.

마라케시 조약은 저작권 보호를 받는 저작물을 모든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형태(accessible format)로 변환하고, 재생산하고, 배포할 수 있는 권리를 다룬다. Conway 교수는 마라케시 조약이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들의 수출을 허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전통적인 텍스트를 접근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차원을 넘어, 접근 가능한 형태의 저작물을 수출하는 문제에 중점을 둘 필요성을 말했다. 이 경우, 220만 개의 저작물이 변형된 형태로 국경을 넘어 로열티 없이 수출되고, 베른 협약의 관할권 내에서도 저자나 출판사가 저작권을 통제할 수 없어 베른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 다른 곳으로 저작물이 수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된다.

법적으로 사용자의 권리가 저작권자의 권리보다 더 우선하여 보호된다면, 이용자는 국가를 상대로 자신은 조약에 기초해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는 수혜자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저작권을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완전한 전환으로, 저작권자는 더 이상 기술적 보호 장치로 이용자가 저작물을 디지털 형태로 사용하는 일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마라케시 조약은 저작권 보호 일변도의 흐름 속에서 명시적으로 이용자를 인정했기 때문에 혁명적이고, 미국 저작권법의 ‘fair use(공정 이용)’보다 더 나아가는 수준이라고 Conway 교수는 말했다.

남형두(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인권사의 연장선상에서 마라케시 조약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며, 이를 계기로 정보화 시대에 걸 맞는 장애인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화가 되고,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의 보급이 늘어날수록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정보격차는 줄어들지만,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구텐베르크 이후 출판물을 중심으로 매체가 발전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도서기근(Book Famine)이 시작되었는데, 19세기 중엽에 촉각을 이용한 점자, 20세기 중엽에 청각을 이용한 녹음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활자 정보에 대한 소외가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방법 모두 나름의 한계를 지녀, 시각장애인들에게 주는 도움도 제한적이었다. 점자의 경우 변환 과정에서 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문제와 후천적으로 실명한 사람의 경우 생활 점자 외에 촉각으로 점자를 배워서 읽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문제가 있고, 녹음도서의 경우 누군가가 카세트 테이프에 활자를 읽어 더빙을 해야한다는 점과 테이프를 찾는 것부터 중간에 재생을 멈춘 경우 표시할 수 없는 문제 등이 있기 때문이다.

IT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디지털화 흐름 속에 2000년 초반에 이르러서야 시각 장애인들은 드디어 디지털 파일만 있게 되면 우리가 읽는 것과 똑같이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저작권의 장벽 앞에 시각장애인은 점자와 녹음에만 만족하라는 상황이었고,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습득은 비시각장애인들에 비해 제한되어 정보격차가 오히려 커지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라케시 조약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한, 남형두 교수는 인권의 저작권에 대한 우위확인을 말했다. 저작권법은 헌법에 위임받아 만들어진 법률인데, 장애인들의 인권, 인간의 존엄, 교육받을 권리 등은 시각장애인들의 기본적인 인권이고 헌법에서 보장된 것이다. 헌법의 기본권과 저작권이 충돌하는 경우 기본적 인권이 우위에 서야한다고 보는 입장에서 본다면, 마라케시 조약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저작권계에서 마라케시 조약이 지적재산권의 기초를 허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수 부풀려진 것이거나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을 너무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고 앞으로의 인식에 따라 바꿔질 수 있다고 말했다.

 

2. 마라케시 조약의 체결경위

마라케시 조약은 2013년 6월 27일 체결되었다.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과 저작권이 충돌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세계지적재산권기구)와 UNESCO가 워킹그룹(working group)을 만든 30년 전이다. 2004년 11월에는 WIPO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상설위원회(Standing Committee on Copyright and Related Rights, SCCR)에서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 향상을 위한 저작권 면제 조약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라케시 조약의 안은 SCCR 18차에서 브라질, 에콰도르, 파라과이 3개국이 WBU(The World Blind Union,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의 안을 받아서 제출해 마련됐다.

18차, 19차 SCCR에 당시 판사로서 한국 대표로 참석해 마라케시 조약의 상정 및 논의 과정을 지켜봤던 입장에서 윤종수(CCKOREA 프로젝트 리드,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교육, 도서관, 아카이빙 등 이전에도 저작권의 제한과 예외에 대한 많은 주장이 있었지만 대부분 무시되었지만, 시각장애인과 관련된 마라케시 조약안에 대해서는 반응이 달랐다고 한다. 그는 마라케시 조약의 체결이 가능했던 이유로 우선, 수혜자 그룹이 시각장애인으로 명확했고,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보장이라는 정당성이 함부로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주제였다고 말한다. 또, WBU 등 비중이 큰 이익단체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단체 연합의 영향력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대표단에는 전문성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비중 있는 사람이 많았고, 자연히 단체의 발언권에도 상당한 힘이 실렸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2006년 기준 WIPO 가입국 184개국 중에 57개국이 이미 시각장애인을 위한 법안을 가지고 있었다. 관련 규정을 지닌 미국, 일본, EU 등의 선진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회원 국가들이 시각장애인 등의 저작물 접근확대를 위한 국제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동의를 표했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 조약과 같이 구속력을 갖는 방안(binding instrument)에 중점을 두느냐, 아니면 회원국들의 입법에 대한 권고나 다른 사실적인 수단의 확충 등 구속력을 갖지 않는 방안(non-binding instrument)에 중점을 두느냐가 쟁점이었다. 결국, 마라케시 조약의 경우 다른 저작권 제한에 대한 논의와 출발선상에서부터 달랐던 것이다.

 

3. 국내 상황 및 한국과의 관계

한국 정부는 2014년 6월 22일, 마라케시 조약에 서명을 했다. 서명을 한 이후 비준을 1년 이상 미루다가 2015년 10월 초순경, 국회의 비준 없이 행정 협정과 같은 형태로 문화콘텐츠실장이 제네바 WIPO에 가서 비준서에 기탁하였다. 이로써 마라케시 조약이 국내에서 효력을 갖게 되었다. 다만, 국내에서는 시각장애인과 관련한 저작권법의 관련 규정이 이미 있었다.

남형두 교수는 이와 관련한 법개정의 역사를 개괄 설명했다. 1987년도 베른 협약 가입을 앞두고, 우리 저작권법이 전면개정이 되면서 시각장애인 조항 33조가 생겼다. 원래 묵자로 된 출판물을 점자로 제작하는 것도 일종의 복제 침해가 됐는데, 33조에서 저작재산권에 대한 예외조항으로 점자 복제를 허용해주고, 그 후 90년대 들어 녹음에 대해서도 허용을 해주게 된 것이다. 2009년 3월에는, 시각장애인 등 전용기록 방식으로 이른바 디지털 파일을 주는 것에 대해 예외로 허용하도록 33조가 개정되었다. 이는 굉장히 놀라운 것으로, 사실 마라케시 조약의 내용이 2009년에 이미 우리 법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도서관법도 같이 개정되어 출판사들은 합리적인 별도의 이유가 없을 경우 국립중앙도서관 산하 국립장애인도서관에 출판물의 디지털 파일을 납본하게 됐다. 이로 인해 시각장애인은 자신이 듣는 수업의 교과서를 파일로 받고 싶다고 요청하면, 이용할 가능성이 열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출판사에서 협조를 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제출하는 파일의 형태도 텍스트 파일로 주면 바로 변환이 가능한데, 대부분 쿽이나 인디자인 같은 출판사 특유의 그림 파일로 제출했다. Pdf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듯, 출판사에서 보낸 파일을 디지털로 바꾸고 다시 대조하는 과정에서 평균 100일의 시간이 지체된다. 또한, 도서관법에서 디지털 파일의 제출과 관련하여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으로 규정하여 의무가 아닌 권고 조항이기 때문에 현재 많은 출판사가 이를 피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제도는 좋게 들여왔지만 현실에의 적용은 여전히 답보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관련 규정이 이미 있는 상황 속에서 윤종수 변호사는 마라케시 조약의 체결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봤다. 실제로 우리나라 당국은 조약 비준 후에도 법을 바꿀 게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 한다. 오히려 이 조약으로 가장 혜택 받는 곳은 선진국으로부터 변환 가능한 포맷을 받을 수 있는 개발도상국들로 봤다. 특히, 자체적으로 포맷을 만들지 못하고 선진국에서 포맷을 받을 수 있는 아프리카 등 개도국의 혜택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 언어 포맷을 받을 만한 수요가 거의 없고, 이를 그대로 받아 번역하는 것은 조약에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혜택 받는 것이 사실상 많지 않다고 봤다.

 

4. 마라케시 조약의 한계

마라케시 조약은 기적이라 부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조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Conway 교수에 따르면, 마라케시 조약의 진일보한 내용 때문에 이용자 권리에 관한 부분을 반대 측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조약 내용의 이행은 각 국가의 재량에 맡긴다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조약 내용을 전혀 변경 없이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국가가 있을 수 있지만, 수혜자를 명시적으로 나열한 후 비준하겠다거나, 국내법에 이미 마라케시 조약의 내용이 입법화됐다고 주장할 수도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협상은 마라케시 조약의 구성원들에게 베른 갭의 3단계 테스트 조건을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윤종수 변호사는 3단계 테스트의 문제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 테스트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의 제한과 예외는 ①어떤 특별한 경우(certain special case), ②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과 충돌하지 아니할 것(not conflict with normal exploitation of the work), ③ 저작자의 합법적인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할 것(not unreasonably prejudice legitimate interest of the author) 이 3단계를 차례대로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 규정은 불명확한 용어를 쓰고 있다. ‘통상적인 이용’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 ‘합법적 이익’의 경우 이익형량 해야 한다는 것 등의 문제가 있다.

베른 협약의 개정으로 복제권의 제한 및 예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해져 도입된 3단계 테스트는 TRIPs가 13조에서 이를 그대로 차용하고, WPPT, WCT도 이를 도입하면서 일반적 국제규범으로 저작권 판단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확실한 저작권 예외 규정 있을 때도 3단계 테스트로 판단해서 여기에 어긋나면 저작권 예외사유를 위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각장애인 조약의 취지는 본디 이익형량이 아닌 특정 계층 보호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공정 이용은 이용자의 권리와 공공 이익을 비교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익형량의 문제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이익형량에서 뒤지더라도 보호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예외사유를 두어야 한다. 기존에 존재하던 한계와 예외규정에 이익형량을 따지는 3단계 테스트가 조약에 들어가 오히려 기존규정의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익형량으로 따질 게 아닌 예외사유를 이익형량으로 심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남희섭 오픈넷 이사장은 조약 자체의 효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가 마라케시 조약에 비준을 한 것이 아니라 기탁서를 내는 방식을 취했다. 저작권에 관한 베른 협약, 특허에 관한 파리 협약과 같은 기본 조약이 국회의 동의를 받은 바가 없다. 비준 동의를 받지 않으면 국내법상 효력을 갖는 조약이냐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중요하다. 또한, 당국은 국내 저작권법에 조약 내용을 반영하여 고쳤기 때문에 입법사항도 아니라는 입장인데, 현실은 다르다. 마라케시 조약에 있는 내용이 국내에 모두 반영이 되어 있지 않거나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되면, 법률의 지위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하위인 시행령에 들어가거나, 기술적 보호조치의 경우 장관 고시에 들어가 있고, 그 내용도 조약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라케시 조약 수혜자가 조약에 기해서 권리 주장을 한다든지, 국회가 입법 의무 이행을 하지 않았다고 손해배상을 한다든지 등의 법률적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의 경우에도 조약 그 자체를 비준한 게 아니라 이행법을 만들어 이를 의회에서 통과시켜달라는 상황이어서 마라케시 조약은 미국 땅에 들어가도 아무 효력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개별 국가들이 조약을 반영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WIPO가 관장하는 조약은 WTO와 달리 지키지 않을 경우 특별한 제재가 없어 국제법상으로는 강제력이 있다고 얘기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지적재산권에 관한 조약 대부분이 FTA에 가면, 체결국끼리 준수해야 할, 혹은 비준해야 되는 국제적 기준의 의무사항으로 열거된다. 그런데, 2013년 마라케시 조약 체결 이후 가장 비중 있는 FTA인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를 살펴보면, TPP 가입국이 반드시 비준해야하는 조약의 목록(18.7조)에 마라케시 조약은 빠져있다. 한국이 현재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RCEP에서도 마라케시 조약은 나중에서야 ibis 항목에 겨우 들어왔다. 문구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은 조약 비준을 의무화하는 게 아니라 ‘비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로 되어 있다. 결국, 지적재산권 규범이 현실적으로 구축되는 메커니즘 하에서 마라케시 조약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5. 향후 전망과 앞으로의 과제

마라케시 조약의 향후 전망과 관련하여 남형두 교수는 미국에서 조약 비준 여부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마라케시 조약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제적 유통이기 때문에, 영어권의 상당히 방대한 자료가 나오는 미국이 비준을 해야 조약이 실질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Conway 교수는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장애를 가진 많은 변호사들이 본인이 정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웠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 여러 당사자들 및 이익단체와 인권 단체들이 참여하면서 기존에 장애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인식이 없던 당사자들도 접근 가능한 형식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빠른 속도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뀐 분위기 속에서 미국 정부가 기존의 입장을 상당히 많이 바꿨고, 앞으로도 그 흐름을 이어나갈 것이라 말했다. Conway 교수는 공정 이용의 원칙과 3단계 테스트를 미국에서 어떻게 잘 조화시켰는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미국의 공정 이용 원칙에도 한계는 있지만, 3단계 테스트보다는 명확하다. 그리고 이 원칙은 한 명의 재판관이 저작권에 대한 예외를 결정할 때 보다 나은 법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됐다. 마찬가지로, 미국 사법부의 독립성과 개인의 의식에 비추어 볼 때 사법부가 마라케시 조약의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을 거란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윤종수 변호사는 마라케시 조약이 국제 저작권 체계에서 지니는 중요한 의미와 별개로 추가적인 논의의 진전 여부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저작권을 가진 자들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선진국 측에서는 이 조약의 체결로 인해 다음 예외조항까지 넘어가는 것을 처음부터 매우 경계했고, 조약의 체결 자체도 오랜 논의 과정 끝에 미국의 입장 변화로 급격히 가능해진 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약으로 이용자의 권리나 저작권 예외·제한에 대한 국제저작권체계 및 선진국의 입장이 전체적으로 달라질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와 관련하여 윤종수 변호사는 수혜자 확대의 필요성을 말했다. 시각, 청각 장애인을 위한 지적재산권 제한 규정은 한국 법에 이미 들어와 있지만, 다른 장애인들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폐 등 발달장애인의 경우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발달장애의 경우 정보전달 위한 교재부터 대체적 언어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처럼 의사전달이 글로 안 되고, 이미지로만 가능한 경우 관련 교재를 만들기 위해 이미지를 쓰는 것이 저작권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정보를 이해가능한 형태로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체의사소통수단이 마련될 필요가 있는데,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법적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개선해야한다는 것이다.

남희섭 이사장은 대표단 구성의 변화 필요성과 국제적 담론과 연구를 지역 단위로 전파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선,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표하여 조약을 체결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SCCR 18차 회의에서는 문화부 저작권 담당 전문관, 문화부 국제협상 담당자, 저작권위원회의 법제담당자, 제네바 주재원(특허청 파견 1등 서기관) 등이었다. 이런 대표자들은 주로 외교부 훈령에 따라 움직이는데, 18차 당시에도 미국, EU,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마라케시 조약 관련하여 강제력이 있지 않은 soft recommendation으로 가자는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표명 이전에 국내 이해당사자인 시각장애인 시설이나 도서관 등과 논의를 한 적이 없었다. 이에 당시 장애인 단체에 있던 남희섭 이사장이 문화부에 항의 방문을 했고, 19차 회의 때는 보건복지부 담당자가 들어가게 됐다. 당시 회의 참석한 사람들에 따르면, 한국이 이전과 달리 상당히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한다. 한국 이외에도 저작권 담당자들만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등에서 참여를 했더라면, 마라케시 조약이 보다 빨리 체결되고, 내용도 훨씬 달라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대표단의 구성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적재산권이 세계화된만큼 이에 대한 저항의 흐름도 꾸준히 있어왔다. 대항담론으로서 인권에 관한 학문적·개념적 연구가 진척되고 있고, 유엔인권기구 등에서 구체적 정책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지역 및 개별 국가 단위까지는 들어와 있지 않은 상태이다. 각국의 정책을 실제로 담당하는 이들, 예를 들어 특허청의 공무원이나 문화부의 저작권 담당자나 국회의 교문위 의원 혹은 보좌관, 전문위원 등 실무가들에게 인권과 지적재산권은 먼 얘기이다. 따라서 마라케시 조약을 추진했던 사람들이나 지적재산권의 인권 측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접촉면을 넓히면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이해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 2016/05/3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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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국민 1/5의 신원을 영장 없이 ‘터는’ 나라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목욕탕에 불이 났다.

목욕탕에서 뛰어나오는 사람들은 온몸이 다 드러나더라도 얼굴을 가리고 나온다. 왜 그럴까. 알몸이 드러나더라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자 얼굴 소녀 금지 반대 그만

 

경찰, 영장 없이 매년 국민 1/5 신원 확인 

‘그냥 얼굴일 뿐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목욕탕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얼굴만 가린 사람의 손을 경찰이 강제로 치운다면? 이런 일을 어떤 절차도 요건도 갖추지 않고 벌어진다면? 하지만 이렇게 상식에 반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천만 번 이상 일어난다.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누구와 통화했는지 알아야 할 때가 있다. 피의자의 통신내역에 떠 있는 전화번호 소유주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은 수사상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때 통신자 신원확인(통신자료제공)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신자 신원확인이 절차도 없고 요건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년 전체 국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의 신원을 경찰은 아무렇지 않게 확인하고 있다.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패러디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패러디

 

이제 ‘전화번호’은 중요한 프라이버시 대상   

통신자 신원확인 제도는 1983년에 만들어졌다. 이때엔 우리 동네에 전화가 몇 대 없었다. 우리가 서울에 전화하고 싶으면 이웃집에 뛰어가서 전화했고, 누군가 나에게 전화하겠다고 하면 이웃집 전화번호를 그 사람에게 알려줬어야 했다. 이웃집 전화번호는 우리 동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 이웃집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집의 전화번호는 이미 전화번호부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된 정보였다. 그래서 당연히 아무런 절차나 요건없이 통신자 신원확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전화번호 특히 휴대폰 전화번호는 매우 중요한 프라이버시 보호 대상이다. 휴대폰은 자신의 일부분처럼 소유자를 따라다닌다. 휴대폰 번호는 소유자와의 즉각적인 통화를 가능케 하는 키 데이터(key data)가 되었다. 물론 전화가 오면 안 받을 수도 있지만, 수화음을 듣고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는 등 주의를 기울인다.

2014년 7월 기준 이동전화 가입자 수

2014년 7월 기준 이동전화 가입자 수

오늘날, 휴대폰 번호는 주민등록번호만큼 아무에게나 가르쳐주지 않는 민감한 정보가 됐다. 오죽하면 지누션이 ‘전화번호’라는 노래를 히트시켰겠는가.

“그대의 이름도 성도 난 필요 없소. 하지만 정말 나 원하는 게 하나 있소. 네 전화번호 (내가 원하는 건) 네 전화번호.”

 

통신자 신원조회, 이제 바꿔야 할 때 

이제는 정말 새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한번 논리적으로 따져보자.

 

(1) 통신내역 확인(통신사실 확인자료) = 법원 영장 필요 

수사기관이 특정인을 수사대상으로 정한 후에 그 사람의 통신 내역(통신사실 확인자료)을 얻으려면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한다(통신비밀보호법). 그만큼 통신 내역은 프라이버시로 보호가 된다.

영장 없는 통신 검열

(2) 통신자 신원확인(통신자료 제공)  = 경찰 맘대로? 

그런데 거꾸로, 수사기관이 익명의 통신 내역은 아는데 그 통신을 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고 싶은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 어떤 절차도 요건도 필요하지 않다. 그냥 통신사에 신청해서 알아내면 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정인의 통신 내역을 알아내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데, (거꾸로) 어떤 통신 내역의 당사자를 알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 없다. 그게 현재의 제도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A와 B가 언제 통화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쪽 모두 절차적 통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절차, 요건도 없이 경찰 맘대로?

어떤 절차, 요건도 없이 경찰 맘대로? (이미지 제공: 진보넷)

 

통신자 신원조회 = 통신 ‘불심검문’ 

익명 인물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 중 하나가 불심검문이다. 불심검문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불심검문 대상자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다(경찰관직무집행법).

불심검문이 오프라인상의 신원확인이라면 통신자료 제공은 온라인상의 신원확인이다. 그런데 현재의 통신자료 제공(통신자 신원확인)은 어떤가. 아무런 요건이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온라인 통신 당사자에 대해 불심검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의 비밀이 통신 내용에 대한 프라이버시라면 익명권은 신원에 대한 프라이버시이며, 두 가지 프라이버시 침해 모두 비슷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무..무섭잖아!

무…무섭잖아!

 

피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 위해? 

수사기관은 영장 등 절차를 거쳐 신원확인을 하면 신원이 확인된 사람에게 왜 신원을 확인했는지 알려줘야 하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 신원과 피의사실을 알려줄 수밖에 없어 결국, 피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영장 없는 통신자 신원확인을 거부하여 이들 서비스 이용자들의 신원확인은 영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어차피 이용자에게 통지되고 있지 않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사업자에게만 영장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의 주장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우선 신원확인을 받는 사람에게라도 우선 통지해주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수사과정에서 제3자나 증인에게 피의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일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당장 이메일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피의사실과 피의자 아이디가 기재된 영장이 이메일 서비스 제공자에게 제시된다. 이메일 서비스제공자는 자신의 고객 중에 누가 무슨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지 알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은 이렇게 묻는다.

‘박경신 교수가 피의자라면, 박 교수가 특정한 범죄로 수사받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냐?’

나는 수사기관에 반문하고 싶다. 도대체 나와 통화한 사람 모두의 신원을 어떤 절차와 요건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니냐고 말이다.

전화 스마트폰

 

한국의 무차별 신원확인, 미국의 50배

한국의 통신자료 제공 건수(=통신자 신원확인)는 2013년 957만4천 계정에 달한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발표 자료). 같은 해 미국의 통신자 신원확인은 최대로 추정해 보아도 1백만 계정이 되지 않는다. 인구대비 미국의 약 50배이다.

내가 만약 피싱범이고, 수사에 꼭 필요한 사람만 신원확인을 했다면, 그 과정에서 내 수사사실이 그들에게 알려진다고 해도 나는 전혀 피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내가 피싱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의 통화상대방들에 신원확인이 한정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내가 단순히 누군가와 통화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상대방에게 내 수사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수사기관이 진정으로 ‘피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싶다면, 피의자와 통화한 통신자 신원확인을 어떻게 줄일 지 고민해야 한다.

익명으로 통신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통신은 위험한 일이 아니다. 통신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영장 없이 손쉽게 신원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접근방식은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할 국기기관이 이를 오히려 침해할 가능성을 높인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매년 대한민국 국민의 1/5을 ‘터는’ 통신자 신원확인, 20대 국회에서는 꼭 바꿔보자!

체인지 변화 미래

영장 없는 무차별 통신자 신원확인, 이제는 바꿀 때다.

 

[미국 통신자 신원확인 규모 산출 방법]

(1) 미국 이통사 버라이즌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 

행정명령(subpoena)에 의한 신원확인 164,184건. 투명성보고서 설명에 따르면 행정명령 1건은 보통 1 계정의 소유자 신원정보임. 버라이즌의 이동통신사 시장점유율이 대략 30%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이통사들의 통신자 신원확인은 약 50만 건으로 추산됨.

버라이즌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는 유선전화에 대한 신원정보확인건도 모두 포함하고 있음. 버라이즌의 유선전화시장 점유율 역시 30%인 것음 감안하면 유선전화에 대해서는 별도 추계를 하지 않기로 함.(25쪽)

(2) 인터넷 플랫폼 업체들

그 형태가 다양하나 이용자 신원확인이 가장 필요한 곳은 각각 이메일과 SNS일 것으로 보임.

구글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27,000건의 행정명령이 있었음. 구글이 이메일 시장에서 약 20%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전체 이메일서비스업자들의 이용자 신원확인은 연간 약 10만 건으로 추산됨. (구글의 시장점유율은 Remy Bergsma, 「2013 Email client market share infographic posted by Litmus」참조)

페이스북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최대 24,000건의 이용자 정보 요청이 있었음. 여기에는 여러 다른 정보도 있겠지만, 모두 이용자 신원확인으로 간주하면 24,000건. 페이스북이 SNS시장에서 가진 점유율에 비추어보면 전체 SNS 시장에서의 이용자 신원확인은 최대 약 5만 건으로 추산됨.

(3) 브로드밴드업자들케이블인터넷업자들

이들도 이용자 신원확인을 하고 있음. 유선인터넷 업계 전체에서 50%를 점유하고 있는 컴캐스트의 투명성 보고서를 보면 2013년에 1년에 2만 건 정도의 행정명령이 있었음. 이 행정명령 전체를 이용자 신원정보로 간주할 때 그 최대치를 5만 건으로 잡을 수 있음(컴캐스트의 시장점유율은 링크 1. 링크 2. 를 참조).

(4) 결론

2013년 미국 전체에 대한 이용자 신원확인 계정 수는 60만 건. 여기에 분야별 하위업체들에 대한 이용자 신원확인 건수가 예상보다 많을 가능성을 대비하여 최대 1백만 건으로 추산. 이는 미국 내에서 투명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회사들의 정보제공 요청 건수를 모두 합하여 보여주는 ‘transparency reports’가 제시하는 전체 숫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2013년 약 70만 건).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였습니다. (2016.06.14.)

수, 2016/06/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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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기록’ 있으면 정말 취업할 수 없을까?

글 | 오픈넷

 

모욕죄나 저작권법 위반을 빌미로 하여 다수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소를 제기하고 합의금을 뜯어가는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신을 상대로 하여 고소가 제기되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고 수사가 진행되면 큰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일 자체가 낯설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미래의 삶에 지장이 생길까도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가 되지 않거나 경미하여 불기소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높더라도 적극적으로 싸우기를 꺼리게 됩니다.

저작권 폭탄

 

저작권 합의금 장사꾼이 노리는 것 

법의 판단을 구하려다 만에 하나 기소가 되어 재판으로 넘어가고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 그런 기록이 남아서 취업 등 앞으로의 생활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심정입니다.

설령 벌금형에 처해지더라도 소를 제기한 측과 합의하는 데 필요한 돈보다 많은 경우는 드물어서, 청년 계층이 적극적으로 법의 판단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인 동기는 금전적 부담보다 미래에 받을 수도 있는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 절망 사람 남자

이것은 모욕죄나 저작권법 위반을 악용하여 합의금을 받아내려고 하는 ‘합의금 장사꾼’들이 노리는 바이기도 합니다. 피고소인의 약한 부분을 이용하여 합의를 유도하고 합의금을 챙기려는 것이죠.

그러나 기소유예 등으로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경우는 물론이고 재판에 넘어가서 벌금형과 같은 법원의 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이 취업 등 미래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죄가 있어서 법원으로부터 받게 되는 형벌의 종류부터 따져봅니다. 형법에 따르면 형벌의 종류는 다음 9가지이고, 그 무겁고 가벼움도 이 순서대로입니다. (제41조, 제50조)

  1. 사형
  2. 징역
  3. 금고
  4. 자격상실
  5. 자격정지
  6. 벌금
  7. 구류
  8. 과료
  9. 몰수

 

범죄 기록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행위를 적어두는 기록은 세 가지입니다. (이하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내용)

  • 수형인명부: 검찰청 및 군검찰부 관리
  • 수형인명표: 처벌받은 사람의 등록기준지(본적지) 시, 구, 읍, 면사무소에서 관리
  • 수사자료표: 경찰청 관리

자격정지 이상의 처벌을 받으면 1) 수형인명부와 2) 수형인명표에 기록됩니다. 경찰이 관리하는 3) 수사자료표는 수사기관이 범죄수사를 하며 채취한 지문과 인적사항, 죄명 등을 기록한 표로, 전산화되어 있습니다. 이 수사자료표는 ① 범죄경력자료와 ② 수사경력자료로 구성되는데, 범죄경력자료는 벌금형 이상을 받은 사항에 대한 기록이고 수사경력자료는 벌금형 미만 등 범죄경력자료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의 기록입니다.

흔히 말하는 ‘전과 기록’은 수형인명부, 수형인명표, 범죄경력자료(수사자료표의 일부)를 의미합니다.

범죄기록 수형인명부 수형인명표 범죄경력자료

이러한 전과 기록을 아무나 함부로 열람하지는 못합니다. 개인의 신상과 관련한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그 열람이나 조회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원조회는 공공기관이 필요에 따라, 수형인명표를 보관하는 시, 구, 읍, 면사무소에 범죄 기록을 요청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업 같이 공공기관이 아닌 측이 특정인의 신원을 조회할 수 없습니다. (외국 정부의 비자 발급을 위한 신원조회만 예외.)

공공기관이 신원조회를 하는 경우는, 특정 사항에 대해 인가나 허가를 내줄 때, 그리고 공무원 임용을 할 때 신청자/지원자가 혹시 결격사유가 있나를 확인해보기 위해 필요한 경우입니다. 그렇게 신원조회를 하는 경우는 인허가나 임용 때의 결격사유가 법령(법률과 대통령령)으로 명시된 것에 한합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위해 행정기관에 인가를 신청하였을 때, 신청을 받은 행정기관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신청자의 신원조회를 의뢰하게 됩니다. 이 법에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결격사유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썼듯 수형인명표에 기록되는 형벌 사항은 자격정지 이상이므로, 벌금을 받은 사실은 이렇게 인허가를 신청할 때나 공무원직에 지원할 때 신원조회를 하더라도 기록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신원조회 의뢰서. ‘관련근거법령’과 ‘조회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신원조회 의뢰서. ‘관련근거법령’과 ‘조회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신원조회 회보서. 명시되는 내용은 선고일자, 죄명, 법조문, 선고내용 등이다.

신원조회 회보서. 명시되는 내용은 선고일자, 죄명, 법조문, 선고내용 등이다.

 

수사자료표의 조회

경찰이 보관하는 수사자료표(범죄경력자료와 수사경력자료)는 범죄 수사와 관련한 자료가 다 보관되기 때문에 신원조회 대상인 수형인명표보다 보관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나 즉결심판을 받은 사람이나 불기소처분 사유에 해당하는 사건의 피의자는 수사자료표에도 기재되지 않습니다.

이 기록을 조회하고 회보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범죄 수사 또는 재판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2. 형의 집행 또는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의 집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3.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 또는 보안관찰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4. 수사자료표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본인이 신청하는 경우
  5. 「국가정보원법」 제3조제2항에 따른 보안업무에 관한 대통령령에 근거하여 신원조사를 하는 경우
  6. 외국인의 체류허가에 필요한 경우
  7. 각군 사관생도의 입학 및 장교의 임용에 필요한 경우
  8. 병역의무 부과와 관련하여 현역병 및 공익근무요원의 입영(入營)에 필요한 경우
  9. 다른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 임용, 인가ㆍ허가, 서훈(敍勳),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등의 결격사유 또는 공무원연금 지급 제한 사유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10. 그 밖에 다른 법률에서 범죄경력조회 및 수사경력조회와 그에 대한 회보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경우

여기에 따르면, 공무원 임용을 하기 위해서 수사자료표 조회를 의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위 제9호). 그러나 법은 이렇게 필요에 따라 수사자료표 내용 조회를 신청하고 회신할 경우에도 “조회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국가공무원법이나 지방공무원법에서 공무원 임용의 결격사유는 대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로 되어 있으므로, 벌금형을 받은 기록은 수사자료표 내용에 있더라도 공무원 임용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신청 및 회신 내용에 포함할 수 없게 됩니다.

법

다만 특별한 직군에 지원하는 경우 벌금형이라도 신원조회 내용(범죄경력자료)에 포함되고 임용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예컨대 교육공무원으로 임용하기 위해 신원조회를 할 때, 성폭력처벌법이나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서 규정한 죄와 관련된 전과가 있으면 벌금형이라도 결격사유가 됩니다.[1] 또 공직선거 후보자로 나선 사람의 경우, 결격사유는 아니지만 벌금 100만 원 이상으로 처벌받은 내용이 모두 대중에게 공개되는데, 이는 공직선거법에서 그렇게 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닌 일반 사기업은 어떤 경우에도 신원조회를 의뢰하거나 경찰청의 수사자료표(범죄경력자료)를 조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사자료표의 경우 개인이 신청하여 열람할 수 있으므로(위 제4호), 어떤 기업들은 직원 채용 때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제출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들의 이런 행위는 위법한 것으로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취직 때 지원자가 회사의 이러한 불법적 요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본인이 조회를 신청할 때 ‘채용을 위한 회사 제출용’이라는 사실을 말로, 혹은 문서(신청서의 조회 목적에 표시)로 명시해서, 담당 경찰관이 발급을 해주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범죄기록의 소멸

모든 전과 기록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부는 시간이 지나거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삭제됩니다.

우선 시간이 지나 형이 실효되면 수형인명부 및 수형인명표의 전과 기록을 삭제해야 합니다. 형이 실효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해당 형벌을 받고 나서 △3년 초과 징역, 금고 = 10년 △3년 이하 징역, 금고 = 5년 △벌금 = 2년 등입니다. 그런데 벌금 이하의 처벌은 여기 기록되지 않으니까 관련은 없습니다.

경찰청이 관리하는 수사자료표 중에서 수사경력자료는 △검찰에서 무혐의, 기소유예 등으로 기소하지 않는 처분이 내려지거나 △법원에서 무죄, 면소, 공소기각 등의 판결이 내려지면 일정한 보존 기간이 지난 뒤 삭제해야 합니다. 특히 법으로 정해진 형량이 2년 미만의 징역이나 벌금, 구류, 과료 등인 사건인 경우 보존 기간 없이 즉시 삭제해야 합니다.

소멸시효 소멸 불 종이 종말 끝

문제는 수사자료표의 기록(범죄경력자료 전부와 수사경력자료 중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삭제되지 않고 평생 보존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고, 범죄경력자료의 전과도 시간이 지나면 삭제해야 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된 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범죄경력자료의 보존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긴 했습니다만, 결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상징문양

“형실효법은 범죄경력자료의 불법조회나 누설에 대한 금지 및 벌칙 규정을 두고 있고 범죄경력자료를 조회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개인의 범죄경력에 관한 정보가 수사나 재판 등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외부의 일반인들에게까지 공개될 가능성은 극히 적고, 범죄경력자료의 보존 그 자체만으로 전과자들의 사회복귀가 저해되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범죄 기록이 보존되다고 하더라도 법에 정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타인에게 공개될 가능성이 ‘극히 적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죠. 거꾸로 말하자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법률에 따라 제한적으로 열람 되어야만 범죄경력자료 보존의 정당성이 생긴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범죄 기록이 취업에 지장을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고서 △공무원 등에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전과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교사 등 지원하는 직종에 따라 특수한 범죄(성범죄 등) 전력은 경미한 것이라도 결격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공무원 지원자라도 벌금 이하의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일반 사기업은 처벌의 내용에 상관없이 신원조회를 못 하도록 되어 있고 △징역, 금고의 처벌을 받았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전과가 삭제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모욕죄나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것 때문에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Susanne Nilsson, CC BY SA https://flic.kr/p/oTqd8Q

Susanne Nilsson, CC BY SA

[1] 이 경우에도 “조회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규정에 따라, 조회를 의뢰하는 기관은 모든 전과가 아니라 성범죄 전과만을 특정하여 조회하고, 회신 기관 역시 성범죄 전과 여부만을 OX 등으로 표시하여 회신합니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였습니다. (2016.06.13.)

월, 2016/06/1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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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박지를 땐 대통령이지만 욕먹을 땐 개인이란다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만일 내가 어떤 사람을 비판 혹은 비난하기 위해 인터넷에다 “개OO 같은 아무개 개XX의 만행”, “진짜 개OO 걸X 같은 년”이라는 글을 썼다고 치자.

한국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모욕죄란 이름으로 처벌될 수 있다. 이 글의 대상이 된 아무개 씨는 나를 모욕 혐의로 고소할 수 있고, 나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심평원을 욕한 의사

그런데 비슷한 내용을 쓴 한 의사는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슨 비결이 있었던 것일까? 의사라서 봐줬나?

개업의인 ㄱ씨는 2013년 1월의 어느 날, 자신의 블로그에다 위와 같이 누군가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썼다. 그 ‘누군가’란 공공 업무를 수행하는 수많은 국가기관 중 하나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었다.

심평원

이에 앞서 ㄱ씨는 급성기관지염으로 병원을 찾아온 환자에게 항생제 치료를 하였다. 이 치료비를 의료보험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평원은 금액을 삭감했다. 정당하게 치료한 치료비가 삭감되었다고 생각한 ㄱ씨는 심평원에 항의했다. 심평원으로부터는 조정평가위원회 결정에 따른 조처라는 무성의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미 치료가 끝난 사안에 대해 보험 처리가 되지 않으면, 의사가 그 비용을 그대로 뒤집어써야 한다. 화가 난 ㄱ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위와 같은 단어를 써서 심평원을 비난했다.

 

욕설 의사가 무죄인 이유  

심평원은 ㄱ씨를 모욕죄로 고소했고, 이에 대해 2013년 11월 열린 1심 재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2014년 5월의 2심 재판에서도 ㄱ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 판결 재판 판사 법원

 

그런데 1심과 2심은 똑같이 ㄱ씨의 행위를 무죄로 보았지만, 그 이유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났다. 1심의 경우는 글이 쓰인 맥락을 고려하며 게재 동기나 전체적인 배경에서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피고인이 글을 게시하게 된 동기나 경위 및 배경 등에 비추어 보면 … 자신의 판단 및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고 그 비중이 크지 아니하며, 이러한 표현은 위 게시물의 게재 동기나 게시물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것으로 보아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의 범위 내에 속한다고 보이므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2심은 1심과는 달리, 문제의 표현이 매우 저속하여 부적절하므로, 이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똑같이 무죄라는 결론에 이른 것은 또 다른 점 때문이었다. 즉, 모욕적 표현의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라는 것이었다.

“피고인이 게시한 글은 국가기관의 업무 수행에 관한 비판이 주목적인 것으로 보이고 특정 개인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은데, 이와 같은 국가기관의 업무 수행은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어서 국가기관 그 자체는 형법상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

검찰은 다시 상고하였으나, 2016년 3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인정하고 상고를 기각하였고ㄱ씨는 무죄가 확정되었다.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대법원의 심평원 판결은 공공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이 그 업무와 관련하여 모욕죄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사실 모욕죄와 비슷하면서 그보다 형량이 더 큰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도 비슷한 대법원 판결이 이미 내려져 있어, 이것은 똑같은 민주적 원칙을 다시금 천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11년 9월, 대법원은 광우병 논란을 다룬 PD수첩에 대해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외교통상부 정책관이 낸 명예훼손 소송 판결에서, 국가기관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2008년 4월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방송을 진행했던 송일준 PD ⓒ MBC

2008년 4월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방송을 진행했던 송일준 PD ⓒ MBC

“특히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며,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 또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더라도, 그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

국가기관은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조직 목적이다. 또 그들이 하는 일은 국민 전체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국가기관과 공직자를 국민이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국민 이외에는 ‘절대 존엄’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 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 감시와 비판 과정에서 표현이 좀 과하거나 공직자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좀 떨어지게 되더라도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고, 그런 걸 빌미로 해서 언론, 더 나아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자 대법원의 판단이다.

심평원 판결과 PD수첩 판결을 대법원의 말을 빌어 간추린다면, “국가기관 그 자체는 형법상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며, 또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국민 상대로 질 싸움을 거는 정부와 공직자

국가기관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대상이 되든 말든,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은 국민을 상대로 하여 꾸준히 명예훼손과 모욕 소송을 걸어왔다. 죄가 없는 것으로 판정될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때로는 이들의 명예를 끔찍하게 염려해주는 어용 단체가 대역을 맡기도 했고, 때로는 역시 이들의 명예를 끔찍하게 염려해주는 수사기관이 달려들기도 했다.

악역을 누가 맡든, 결과는 비슷했다. 참여연대가 201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정부나 공직자가 제기한 명예훼손죄 및 모욕죄 소송은 모두 30건이나 됐다. 청와대 홍보수석, 서울시장, 문화부장관, 경찰, 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우리나라에서 힘깨나 쓴다고 하는 기관과 공직자들이 줄줄이 원고로 나섰다. 국정원은 민·형사를 통틀어 6번이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런데도 이들로부터 고소되고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국민 절대다수는 무혐의 처리되거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실제로 죄가 있는 것으로 판정된 것은 한두 건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을 상대로 '너 고소' 남발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공직자

국민을 상대로 ‘너 고소’ 남발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공직자

질 것을 알면서도 싸우는 것은 바보다. 혹은 황산벌의 백제군처럼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질 때 지더라도 얻을 게 있다고 간교하게 계산하는 자들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상대로 하여 질 싸움을 거는 한국 정부와 공직자들이 이 셋 중 어디에 속하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러한 행위를 놓고 ‘국가권력의 명예훼손죄 기소 남용 방지와 제도 개선 방안’ 같은 토론회를 여는 사람들의 견해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 토론회에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기소 및 소송 제기는) 국민의 공적 발언 자제나 여론 형성의 위축만을 초래할 뿐 아무런 법적 이익이 없다는 점에서 ‘국민 입막음 소송’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이 바보거나 장렬한 최후를 맞을 준비가 된 자들이 아니라면, 국민에게 겁을 주고 송사로 괴롭혀서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정부와 공직자에 대한 비판을 막으려는 간교한 술수를 벌이는 자들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소송 쇼쇼쇼

괘씸한 국민에게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덧씌우는 소송 쇼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도 계속된다. 2015년 7월 참여연대가 정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시작 이래 그때까지 국민이 정부나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했다는 이유로 민·형사 소송을 당한 경우는 22건에 달했다. 형사 소송이 18건, 민사 소송이 4건이었다. 형사 사건 중 4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였다. 실컷 조롱 대상이 됐던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에도 대통령 명예훼손 소송은 한 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공직자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공직자이다. 이들은 권력구조의 핵심을 구성하는 이들로서, 각 개인이 사실상 국가기관이나 마찬가지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국가기관이나 공직자의 업무 수행과 관련한 비판은 비록 좀 과도하더라도 민주 사회에서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예훼손이나 모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대법원 판례다. 그런데도 죽어라 명예를 지키겠다고 국민을 상대로 소송한다.

2014년 9월 16일 제40회 국무회의 모습 (출처: 청와대) http://www1.president.go.kr/news/media/photo.php?srh%5Bpage%5D=74&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7260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발언한
2014년 9월 16일 제40회 국무회의 모습 (출처: 청와대)

어떤 대통령도 모든 국민을 100%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불만족한 국민은 비판도 하고 비난도 하고 욕도 하게 마련이다. 국민의 욕을 먹는 게 불명예라서 참기 어려운 생각이 든다면,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 체제와 자신의 정체성이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욕먹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면 소송으로 국민을 괴롭힐 게 아니라, 대통령을 안 하면 된다. 욕먹을 것 먹고 비판받을 것 받아가면서 당당하게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 쌔고 쌨을 것이다.

민주 국가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대통령의 명예훼손 소송 폭주는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무혐의 처분이나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소송을 제기한 쪽의 재갈 물리기는 톡톡히 효과를 거두는 셈인데, 심지어 어이없게도 일부 판사는 이전 판례를 무시하고 그런 폭주에 부채질을 해주고 있다.

 

법원의 창조적 발상: 공인 박근혜 vs. 사인 박근혜

1. 환경운동가 박성수 씨 사건

환경운동가 박성수 씨는 2015년 봄에, 세월호 사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페이스북에 그런 내용을 올렸다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해 12월 열린 1심 결심 재판에서 대구지방법원 재판부는 1) 대통령은 그 자체로 헌법기관이고 따라서 그 직무 수행에 대한 비판이 명예훼손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2) 대통령의 정체성을 헌법기관의 그것과 개인의 그것으로 구분하여, 박씨의 비판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공격이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기발한 판단을 하였다.

마치 박씨가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어서 다른 박씨의 (공공 이슈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적 일을 물고 늘어져 명예훼손을 범한 것처럼 말이다. 박 씨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 중이다.

2. 부산 ㄴ씨 전단지 사건 

얼마 전인 6월 23일, 부산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배포하여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ㄴ씨에 대해 부산지방법원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유는 ㄴ씨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를 빙자하여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공직자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의 각종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 같지만, 문제가 된 것은 전단지 내용에 포함된 “청와대 비선 실세 + 염문설의 주인공 정 모 씨에 대한 의혹 감추기” 단 한 줄이었다. 이것이 대통령이 아니라 사인(私人) 박근혜의 명예를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3. 정신 장애인 ㄷ씨 사건 

또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상습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비방 글을 인터넷에 올린’ ㄷ씨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ㄷ씨가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판결문에서 “정신감정 결과 최씨는 피해망상, 충동조절능력 저하 등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심신미약 상태였다 할지라도 글을 올려 사회적 오해와 혼란을 빚은 점을 비춰볼 때 실형이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했다. 심신미약 상태면 강도, 강간, 살인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감형하는 게 법원의 태도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방하면 심신미약이든 아니든 정신 장애인조차 가차 없이 처벌하겠다는 셈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본 한국, “성질 잘 내는 대통령” 

국민이 비판하는 공직자의 모습에서 순수한 사인을 추출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함에도(국민이 왜 비판을 하고 비난을 하고 비방을 하겠는가), 그런 억지를 들이밀어 국민을 기소하고 처벌하는 나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것은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주권자로 살아가는 5천만 국민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우리는 대통령 개인의 명예가 5천만 국민이 누려야 할 민주적 기본권보다 중요한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의 한 실마리는, 노무현 재임 때 31위까지 올라갔던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가 이명박 때 40위권으로 떨어지고 박근혜 시기에 들어와서 50  57 → 60 → 70위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는 양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펴낸 2016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리포트에서 한국 항목의 제목은“irascible presidency(성질 잘 내는 대통령)”이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 박근혜

‘국경 없는 기자회’ 한국 항목 제목은 “성질 잘 내는 대통령”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2016.06.30.)

목, 2016/06/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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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렌트와 저작권: ‘98% 다운로드’ 사건 –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인터뷰

글 | 민노씨(슬로우뉴스 편집장)

 

“(…)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구지방법원 2016. 7. 6. 선고 2015고정858판결 중에서

화두는 ‘토렌트’다. 저작권자 대다수에게 토렌트는 ‘불법의 온상’이고, 향유자 대다수에게 토렌트는 디지털 ‘문명의 이기’다. 이제 토렌트는 인터넷이 삶의 공간으로 자리한 네티즌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만큼 저작권자의 불안은 커진다. 생산과 소비, 창조와 향유, 이 좌우의 날개가 조화를 이룰 때 문화는 융성하고, 창작자와 향유자는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할 수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최근 토렌트 이용자를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형사 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2016년 7월 6일 대구지방법원).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고, 따라서 이 사건은 확정됐다.

 

사건 개요: 

다수의 소설 저작물을 압축한 압축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게 하는 토렌트 파일을 이용하여 해당 파일을 98%까지 다운로드 받은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복제권 및 전송권을 침해했는지 여부. 법원은 피고인의 무죄를 선고. 검찰은 항소 포기. 사건은 확정. (→ 판결문 전문)

이 사건을 담당한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에게 이번 사건과 판결의 의미를 물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시대의 화두, ‘토렌트와 저작권’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토렌트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일문일답>

 

-쟁점을 간단히 설명하면. 

쟁점은 두 가지다.

쟁점 1. 압축 파일이 98% 다운로드 완료되었다는 캡처 화면으로 다수의 소설 저작물 중에 저작권자의 소설 저작물의 복제가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그렇게 볼 수 없다.) 

쟁점 2. 토렌트 송수신의 특징상 다운로드와 동시에 일부 패킷이 송신되는데, 98% 다운로드 되었고, 고소인이 그 중 일부 패킷을 수신할 수 있었다면, 이를 해당 소설 저작물에 대한 전송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 그렇게 볼 수 없다.) 

 

-법원이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풀어 달라. 

이 사건에서 토렌트 이용 자체가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법리적으로 결론 난 것은 아니다. 다만 법리적으로 다툼이 큰 쟁점임에도 유죄 인정에 필요한 충분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래 판결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유죄 인정은 증거에 의해 엄격하게 확인돼야 하므로 법리적으로는 당연한 결론이다.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토렌트 이용시 업로드 제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고소인이 피고인으로부터 수신한 패킷이 매우 미미했다. 고소인은 본인의 소설 저작물만 특정하여 다운로드를 요청했지만, 본인(저작권자)의 소설 저작물의 용량을 넘어서는 분량의 패킷을 수신하였다는 점이 무죄 판단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안이 좀 복잡해 보인다. 사실 관계를 좀 더 풀어달라. 

고소인(저작권자)의 핵심 주장은 자신의 저작물을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이  토렌트 상에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올렸다는 것이다. 그 파일은 여러 저작물이 포함된 압축파일 형태였다. 그런데 토렌트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때는 여러 파일의 압축 파일이라고 하더라도 개별 파일을 선택할 수 있다. 고소인(저작권자)는 해당 압축파일 중 자신의 저작물만 선택해서 다운로드했다. 그래서 패킷을 나에게 준 사람(피고인)이라면, 본인의 저작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저작권

이 사건에서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은 업로드 제한 설정을 한 상태였는데, 그래서 최종적으로 피고인을 통해 고소인(저작권자)에게는 전달된 파일 용량은 약 8mb에 불과하다. 해당 저작물의 전체 용량은 약 485mb다. 저작권자는 다섯 번에 걸쳐 다운로드를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피고인에게 받은 8mb를 포함해서) 다운로드한 용량은 500mb였다. 즉, 자신의 저작물 용량인 485mb를 초과해서 받았다.

그래서 초과된 저작물의 패킷(500-485=15)만큼은 다른 저작물일 확률이 있고, 게다가 피고인에게 받은 패킷은 극히 저용량이며, 사실이 이렇다면, 저작권자가 받은 피고인의 파일에 저작권자인 자신의 저작물만 있다고 확정할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한마디로 말해, 저작권의 저작물 용량인 485mb를 초과해서 받은 15mb 중에 피고인에게 받은 8mb가 전부 포함될 수도 있다. 즉, 저작권자의 저작물 정보가 아닌 패킷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저작물을 가지고 있다고 확증할 수 없다는 점을 변론했고, 법원은 이런 사실관계를 살핀 뒤에 무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이 ‘리딩 케이스’ 역할을 할까. 판례 변경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우선 같은 취지의 선행 판결이 이미 창원지방법원에서 있었고, 이번 판례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일종의 리딩 케이스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단순히 IP주소 등 캡처 화면만을 증거로 제출하는 고소 사건 대부분은 기소조차 어려울 것으로 본다.

다만, 이 사건은 특이하게 다수의 저작물을 압축한 파일을 패킷으로 송수신한 것이어서 추후에 하나의 저작물에 대한 사건이라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즉, 하나의 저작물이 문제된 경우에는 이 사건과 달리 본격적으로 토렌트 이용에 대한 법리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법적 쟁점 외에 이번 사건을 ‘저작권 삥뜯기’(합의금 장사)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나. 

이 사건에서 고소인(저작권자)는 피고인에게 형사 고소와 관련하여 별도로 합의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른바 ‘저작권 삥뜯기’ 사례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저작권자 스스로 토렌트를 이용한 패킷 송수신에 참여했기 때문에 일종의 ‘기획 소송’에 해당한다고 본다.

저작권 폭탄

-기획 소송? 

기획 소송은,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면, ‘함정 수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토렌트 파일 유통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토렌트 시스템 자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저작권자 스스로 다운받아 토렌트 하면서 접속한 사람들의 IP로 고소했다. 저작권자가 전송에 참여하지 않고, 제3자를 통해 증거를 수집해 소송에 참여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직접 참여해서 토렌트 이용했다는 점에서 기획 소송에 해당한다고 본다.

 

-끝으로 독자에게. 

최근 몇 년 사이에 토렌트 파일을 대규모로 유통하는 해외 홈페이지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운영이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토렌트를 이용한 저작권 침해는 이를 대규모로 유통하는 홈페이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이용자에 대한 기획 고소의 부당함과는 별개로, 이 판결로 인해 토렌트 이용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니므로 이용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2016.08.23.)
화, 2016/08/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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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Fy 2016 참가 후기

 

글 | 김가연(오픈넷 변호사)

일시: 2016년 9월 28일 – 9월 30일
장소: 뉴델리, 인도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 박경신 이사는 “디지털 아시아: 새로운 거버넌스 질서 세우기(Digital Asia: Scripting the New Governance Order)” 란 주제로 열린 CyFy 2016에 토론자로 초대 받아 참가했습니다. “사이버보안과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한 인도 컨퍼런스(The India Conference on Cyber Security and Internet Governance)”의 줄임말인 CyFy 2016은 올해 4번째 열린 것으로, 인도 및 아·태지역 국가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유럽 등 45 개국에서 130여 명의 전문가 패널과 600여 명의 대표단이 참여한 아시아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터넷 거버넌스 컨퍼런스였습니다.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 ‘사이버 보안(cyber Security)’, ‘국제 협력(International Engagement)’, ‘접근권과 포섭(Access & Inclusion)’, ‘역량배양(Capacity Building)’ 총 5개 분야에서 다양한 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박경신 이사는 ‘접근, 프라이버시, 보안의 트릴레마(the Trilemma of Access, Privacy and Security)’, 김가연 변호사는 ‘인터넷의 분열(Internet Fragmentation Session)’ 세션에서 발표 및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 9월 30일 금요일

참여세션 1: 접근, 프라이버시, 보안의 트릴레마(the Trilemma of Access, Privacy and Sec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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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널 소개:

적법한 정보 접근권과 프라이버시 보호가 대립하는 암호화 논쟁 등 최근 전개되는 논의를 조망하고, 이러한 간극을 조정하기 위해 새로이 도출해야 할 규범이 무엇인지 토론한다.

This panel will take stock of some of the recent developments like the encryption debate that purportedly pits privacy against legitimate access to electronic data. It will identify norms that must be developed anew to reconcile these differences.

- 패널 토론자:

1. Isabel Skierka, Researcher, Digital Society Institute, European School for Management and Technology
2. Seda Gürses, Post-Doctoral Researcher, Center for Information Technology Policy, Princeton University
3. Solange Ghernaouti, Professor, University of Lausanne
4. KS Park, Director, OpenNet Korea
5. Alexander Klimburg, Director, Cyber Policy And Resilience Program, Hague Centre for Security Studies
6. Paula Kift, Ph.D Candidate, New York University (Chair)

- 박경신 이사 발표문

 

참여세션 2: 인터넷의 분열(Internet Fragmentation Session)


 

- 패널 소개:

다양한 통상협정 체제의 인터넷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함의를 검토한다. 특히 TPP(the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아시아 지역 인터넷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에 대해 토론한다.

The internet fragmentation panel will examine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implications of differential trading regimes. With universal, affordable connectivity yet to be achieved, are we already witnessing parallel internet regimes that cater to emerging economies?

- 패널 토론자:

1. Kelly Kim, General Counsel, Open Net Korea
2. Hoang Tran, Partner, EZLAW
3. Anahita Mathai, Junior Fellow, Observer Research Foundation
4. Hugo Zylberberg, Fellow for Technology & Policy, Columbia University School of International & Public Affairs
5. Burcu Kilic, Policy Director, Public Citizen (Chair)

- 김가연 변호사 발표 요지(업데이트 중)

 

수, 2016/10/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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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게임: 빅데이터와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글 | 민노씨(슬로우뉴스 편집장)

 

개인정보 플랫폼 기업이 개인정보를 판매 촉진 목적으로 활용하려고 할 때,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지, 동의를 받지 않고도 분석, 가공, 판매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개인정보 플랫폼 기업에는 막대한 이윤 발생 여부가 결정된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사안이다. (이은우 변호사, 정보인권연구소)

강원도에 사는 스무살 대학생 철수가 페이스북에 재잘거리는 한담이, 제주도에 사는 서른살 직장인 영희가 트위터에 올리는 짧은 한탄이 경제적인 가치를 지니는 ‘고급 정보’가 될 가능성은 그 자체로는 제로다. 하지만 10만 명의 철수가 100만 명의 영희가 모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빅데이터,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날 컴퓨팅 기술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생산되는 무수히 다양한 개인의 디지털 정보를 드디어 ‘정복’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걸 상징하는 용어는 ‘빅데이터’다. 이제 쓰고, 말하며, 대화하고, 소비하는 물리적인 컴퓨터 서버의 어딘가에 저장된다. 이제 디지털 저장기술은 인간의 기억을 대신한다. 우리는 그저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흘려보내면 그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디지털 전자신호로 서버 속 공간 아닌 공간을 흘러갔던 정보는, 철수와 영희는 영영 모르는 채로, 이제 산업적인 가치를 가지는 정보로 재가공된다.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정보의 총체적 재구성이다. 모든 흩어진 의미가 ‘찬란한 귀향의 축제’를 맞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서비스를 더욱더 진화시키고, 이윤을 극대화할 기회이자 재료다.

luckey_sun, "big data", CC BY SA https://flic.kr/p/bx1jvU

luckey_sun, “big data”, CC BY SA

하지만 개인정보 주체들에게는 디스토피아의 서막일 수도 있다. 근대 이후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권리(홀로 있을 권리)를 ‘획득’했다. 그리고 오늘날 문명화한 국가는 국가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개인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명문의 법률로 규정했다. 자기 정보 통제권(혹은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은 그렇게 탄생했고, 그 권리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에 관한 권리에 눈뜬 근대적 자아가 획득한 전리품이다. (→ 참고: 거짓말할 수 있는 권리)

단, 이 자기 정보 통제권이 각자 자신에 대한 정보를 공개된 정보와 비공개된 정보 가릴 것 없이 자신이 소유한 자동차를 소유하듯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로 해석하면 그것은 곤란하다. 이는 타인들 간에 진실한 정보를 공유하는 생활에 검열권을 가지게 하는 셈이라서 자기 정보 통제권은 균형을 고려한 해석이 불가피하다.

 

위험한 게임,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기업에 빅데이터가 잠재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라면, 자기 정보 통제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길 수 있는 개인에게는 잠재적 공포다. 그 ‘위험한 게임’이 지금 막 시작됐다. 이름은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 국무조정실
  • 행정자치부
  • 방송통신위원회
  • 금융위원회
  • 미래창조과학부
  • 보건복지부

참여 부처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야말로 통합 가이드라인이다. 그 골자는 이렇다.

‘개인정보라고 하더라도 비식별 조치(익명화)를 거치면 정보주체의 사전 동의 없이 기업이 이를 활용하도록 할 수 있다.’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가이드라인의 쟁점 

이 글은 가이드라인의 개요와 쟁점을 단계적 ‘Q&A’ 형식으로 독자에게 최대한 쉽게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 이하 ‘가이드라인’으로 표기.
  • 개인정보보호법 → 이하 ‘개보법’으로 표기.
  • 행정자치부 개인정보보호정책과 장한 과장 → 이하 ‘행자부’로 표기.
  •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 이하 ‘오픈넷’으로 표기.
  • 정보인권연구소 이은우 변호사 → 이하 ‘연구소’로 표기.[1]

 

1. ‘빅데이터’란 무엇인가

가이드라인의 중심에 있는 화두는 ‘빅데이터’다. 빅데이터 산업 육성이라는 가치와 개인보호라는 가치를 조화롭게 공존하게 하는 게 가이드라인의 취지라면, 이에 시민단체(오픈넷)와 정부(행자부)의 평가와 시각 차이는 명확하다.

오픈넷은“법률적으로 빅데이터에 대하여 정의된 바는 없다”고 전제한 뒤, “최근 빅데이터라는 단어 자체에 천착하여 빅데이터 산업의 진흥만이 주로 논의될 뿐, 빅데이터 환경이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고, 가이드라인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한다.[2]

정보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Intersection Consulting, CC BY NC

이에 대해 행자부는 빅데이터 산업 진흥과 개인정보의 관계는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라면서, 이번 가이드라인이 데이터 이용함에 있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자평한다.[3]

 

2. ‘비식별 조치’란 무엇인가

가이드라인의 골자는 ‘비식별 조치’(익명화)다. 가이드라인은 비식별 조치 방법과 그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런데 ‘비식별 조치’라는 용어, 익숙한가? 용어 정의부터 잘못됐다는 비판과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살펴보자.

연구소는 ‘비식별 조치’라는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다면서 “용어 자체가 부적절한 법률용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비식별 조치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개인정보 보호법제와 유사한 유럽연합과 일본의 용어 정의를 참고해보자.

  • 유럽연합“익명화된 데이터”(data rendered anonymous)[4]
  • 일본: 개인정보보호법의 개정시 “익명가공정보” 규정한다. 익명가공정보는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개인정보를 가공하여 얻어지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해당 개인정보를 복원할 수 없도록 한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5]

더불어 ‘비식별 조치’ 혹은 ‘비식별화’라는 표현이 너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가이드라인의 ‘비식별 조치가’가 ‘익명화’나 ‘익명정보’ 혹은 ‘익명가공정보’와 같은 의미라면 그냥 ‘익명화’나 ‘익명정보’로 쓰면 될 것을 “문법에도 맞지 않는 신조어”를 사용해 국민에게 혼동을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비식별 조치'는 쉽게 말해 '익명화'라고 할 수 있다.

‘비식별 조치’는 쉽게 말해 ‘익명화’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행자부는 익명화든 비식별 조치든 “이는 용어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내용이 중요하지 용어 선택은 부차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즘은 국제적으로 ‘비식별화’를 쓰는 추세”라고 부연한다.[6]

한편, 오픈넷은 연구소 입장에 동의하면서, ‘익명화’라고 표현해야 정확하다는 입장이다.[7]

 

3. 가이드라인의 ‘비식별 조치’ 평가 기준은 타당한가

여러 문제와 논란은 별론으로, 우선 가이드라인의 내용에 집중해 보자. 가이드라인은 ‘비식별 조치’와 이에 대한 적정성의 평가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다. 그럼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비식별 조치’의 기준은 과연 합리적일까.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연구소는 가이드라인의 위 해당 문답을 해석하면 “이는 재식별 가능성이 현저하지 않은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면서 “유럽연합에서 익명정보가 ‘더 이상 재식별 가능성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에서도 ‘익명가공정보’란 복구 불가능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잘못”이며, “재식별 위험이 현저하지만 않다면 개인정보 주체는 그 위험을 감수하라”는 가이드라인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해당 문답의 표현 중 “현저히”는 ‘강조 수사’에 불과”하다며, “해당 문구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가이드라인의 “전체 체계”가 중요하고, 해당 문구는 “강조 수식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행자부는 인터뷰에서 가이드라인의 법적 성질을 묻는 질문에 “유권해석집”이라고 답했다

한편, 오픈넷 “표현의 모호성 때문에 ‘가이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이드라인이 ‘유권해석집’이라면, “구체적인 법 규정에 대한 해석이어야” 할 텐데, “비식별 조치라는 것은 기존 법에도 없는 새롭게 창조한 개념”이고, 이를 해석한다고 하니 “내용뿐만 아니라 법적인 근거나 성질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4. 비식별 조치에 대한 적정성 평가 

가이드라인은 비식별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정한다. 이 적정성 평가 기준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연구소는 ‘형식적이기 짝이 없다’고 비판하고, 행자부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연구소는 가이드라인의 “적정성 평가 기준은 형식적이기 짝이 없다”면서 “K(익명성), L(다양성), T(근접성)의 세 가지 방법의 익명화 기술을 적용하라는 것”은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기 그지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방법과 기준은 “재식별 가능성이 농후한 방법으로 지목받아 왔던 기술”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연구소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반박한다. “현재로썬 KLT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고, “(오히려) 유럽에서는 K를 의무화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K를 의무화했다”면서 그만큼 개인정보 보호에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픈넷은 해당 기술의 재식별 가능성도 중요한 이슈지만, “개인정보처리자 입장에서 특정 기술을 이용한 비식별 조치만을 취하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것인 양 오독할 여지가 큰 가이드라인 규정의 모호성이 가장 큰 문제”[8]라고 지적한다.

 

5. 적정성 평가단: 고양이에 생선가게 맡기기? 

가이드라인은 분야별 전문기관을 두고, 이 전문기관이 비식별 조치의 적정성을 평가하게 한다. 그런데 이 적정성 평가 기관에 ‘한국신용정보원’과 같은 빅데이터 산업과 이해가 직결한 이익단체가 속해 있어 문제다.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기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연구소는 이들 기관이 “공정성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면서 특히 분야별 전문기관 중에는 “특히 사업자들 모임인 한국신용정보원이 포함”돼 있고, 금융보안원, 사회보장정보원, 한국정보화진흥원 등은 “성과 위주의 조직”임을 지적한다.

특히, 한국신용정보원은 금융업계 모든 고객의 신용정보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기관(세계 최초)으로 여기엔 이들은 빅데이터 활용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다음 ‘이익단체’들이 참여한다. 더불어 이들 협회 소속 기업에서 그동안 각종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연례행사처럼 이어져 왔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 은행연합회
  • 금융투자협회
  • 여신금융협회
  • 생명보험협회
  • 손해보험협회 등

빅데이터 산업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이익단체'가 적정성 평가를 한다?

빅데이터 산업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이익단체’가 적정성 평가를 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연구소 측에서 특히 문제 삼은 ‘한국신용정보원’은 “우리가 지정한 게 아니라 금융위원회가 지정한 것”이라면서, “분야별로 소관 부처에서 관련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을 지정한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이 문제 관해 오픈넷은 “전문기관 자체가 법률에 근거가 없”고, “정보주체들로부터 개인정보의 처리 권한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사업자 모임 여부와 상관없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6. 입증책임 문제 

가령, A라는 기업이 철수와 영희의 신용카드 구매 정보를 ‘비식별 처리’해서 B라는 기업에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비식별 처리가 제대로 이뤄졌다는 ‘입증’ 책임은 누가 질까? 철수와 영희일까? 아니면 A와 B라는 기업일까?

연구소는 가이드라인이 “비식별 조치가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해당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규정하므로, 해당 정보를 어떤 개인이 “개인정보라고 주장하려면 개인정보 주체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연구소 측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면서, “가이드라인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며, “당연히 비식별 조치를 한 측에서 (비식별 조치의 정당성과 적정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입증책임 논란에 대해 오픈넷은 법원에 까지 가는 사안이 생기면, 법률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이드라인이 ‘추정한다’고 하니 반증이 없는 한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소 측에선 해석한 것이고, 행자부 쪽에선 원칙적으로 법원이 가이드라인에 구속되지 않으니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가이드라인에 법적 근거가 없는 이상 개인정보처리자인 기업들 역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비식별조치된 정보를 섣불리 수집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3자 제공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현 시점에서 가이드라인의 위치라고 답했다.

대법원

‘비식별 처리’ 문제로 ‘분쟁’이 생겨 법원에 가는 일이 생기면, 기업과 일반 시민 중에서 누가 입증책임을 질까?

연구소 측에 행자부 답변 내용을 전하자, 연구소 측에선 “가이드라인이 입증책임과 관련 없다면, 가이드라인(의 해당 문구)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서, “가이드라인의 논리 체계에 반하는 해석을 주무 공무원이 공식적으로 답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하다”고 논평했다. 더불어 가이드라인에 참여한 행정부처들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떤 개인이 ‘재식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신고했을 때, 경찰이 어떤 기준을 따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경찰 수사에 있어서 가이드라인은 실질적인 수사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각건대, 행자부의 답변은 궤변이다. 연구소나 오픈넷의 지적처럼, 가이드라인를 준수한 기업조차 다시 재판에서 ‘입증책임’의 부담을 져야 한다면 가이드라인의 존재 근거가 없고, 기업은 가이드라인을 따를 이유도 없다. 반면에 그렇다고 입증책임을 개인에게 지운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가이드라인의 딜레마인 셈이다.

 

7. ‘결합지원’ 문제 

가이드라인은 각각 비식별 조치를 한 개인에 관한 별개 정보집합물을 전문기관에서 개인별로 결합시켜 주겠다고 한다. 예를 들면, 비식별 조치를 한 통신사 고객정보와 비식별 조치를 한 신용카드사 고객의 신용카드 사용정보를 전문기관에 보내주면 각 개별로 결합시켜 결합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이드라인은 00홈쇼핑의 고객정보와 xx카드사의 구매금액 상위 10% 고객의 구매 내역 정보를 결합하여 xx카드사의 구매금액 상위 10% 고객 중 00홈쇼핑 고객을 골라 내서 구매내역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홈쇼핑과 카드사가 고객의 동의도 받지 않고, 카드 구매내역을 분석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결합은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 초등학생이나 유아 등 민감한 정보에도 무방비다. 이런 식이면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은 환자나 산모의 동의도 받지 않고 임신, 출산한 고객 중 월 500만 원 이상 신용카드를 이용한 고객의 구매내역을 분석할 수도 있고, 초등학생 대상 학원에서는 초등학생이나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통신사로부터 초등학생의 이동경로를 분석할 수도 있게 된다. 당사자는 이런 정보 결합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반대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연구소 발제문 참조)

연구소는 비식별 조치를 했지만, 개인을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비식별 조치를 한 정보가 익명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면서 “만약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익명정보로 만들었다면 익명정보가 누구의 정보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정보와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하다고 지적한다.

결합지원 이슈에 대해 행자부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나름으로 안을 짰는데, 결과적으로 유럽과 유사”하게 됐다면서 “신뢰할 수 있는 제3기관을 통해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오픈넷 “법률적 근거가 없는 전문기관에 의한 결합지원 역시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돌 그룹 대부분이 앨범 3~4만 장을 파는 현실에서 TIF는

비식별 조치된 정보의 ‘결합지원’ 문제 역시 가이드라인이 다루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왜 가이드라인가, 누구를 위한 가이드라인가 

행자부는 가이드라인의 법정 성질을 (개인정보보호법에 관한) “유권해석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법을 개정하지 않고,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었을까? 행자부는 “법 개정은 오히려 업계에서 하는 주장”이라면서, “일본법은 개정안이 통과돼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며 “(일본은) 법에서 규정한 안전조치(비식별 조치)를 준수하면, 기업의 책임이 면제”되므로, 우리나라 “업계에서도 법 개정을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구소 측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을 가이드라인으로 만드는 것은 입법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면서 가이드라인은 “상당한 재식별 가능성이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으므로,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이드라인,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기업의 선의를 믿는다면, 기업은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비식별화한 정보를 활용할 것이고, 이는 서비스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이용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재식별화하려는 욕망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부정적인 선입견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에 있었던 행위를 회고하고, 성찰함으로써 미래를 전망한다.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뿐만 아니라 기업의 개인정보 ‘매매 사건’(홈플러스 사건), 거기에 더해 이런 개인정보 관련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국가권력(검찰)과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법원의 개인정보에 관한 인권 감수성(홈플러스 무죄 선고)을 떠올리면 개인정보의 주체, 그러니 평범한 시민이 기업의 선의, 관리자이자 감시자로서의 국가, 공정한 심판관으로서의 법원을 손쉽게 믿어주기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다.

홈플러스가 법을 위반해 번 돈은 4년간 약 232억 원인데, 2015년 4월 27일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4억3,500만 원이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초 매물로 나왔다. 지분 100%의 평가액은 7조 원을 호가한다.

홈플러스가 법을 위반해 번 돈은 4년간 약 232억 원. 2015년 4월 27일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4억3,500만 원. 그리고 법원에서는 무죄. 홈플러스 사건은 기업이 개인정보를 다루는 관점과 방식, 국가기관의 관리감독 능력, 그리고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법원의 판단, 이 모두가 여전히 신뢰를 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여기서 하나 더 질문해보자. 가이드라인이 아니면 정말 기업이 빅데이터 산업 분야에 제대로 뛰어들 수 없는 걸까. 우리나라 개인정보 보호법제는 빅데이터 산업 육성에 방해 요소일까. 이미 개인정보보호법[9]은 “통계작성 및 학술연구 등의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동의 없이 새로운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빅데이터는 바로 통계를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않나.

연구소는 “현재의 개인정보 보호법제는 빅데이터 활용에 장애 요소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 공공 부문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분석해 보더라도 공공 부문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해서는 “개인정보를 익명화하여 처리하거나 동의받는 것을 기초로 하더라도 충분하며, 비식별정보 동의 면제가 있어야만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한다.[10]

Julien Belli, CC BY https://flic.kr/p/o3eDX5

빅데이터와 개인정보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보 처리 주체와 관리감독 기관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출처: Julien Belli, CC BY)

 

그렇다면 가이드라인을 둘러싼 이 온갖 논란에 관한 해법은 무엇일까. 명확한 현실 인식은 그 해법을 마련하는 초석이다. 오픈넷의 답변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가이드라인 제정이 지나치게 급한 호흡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가이드라인은 빅데이터 산업 진흥이라는 버즈워드(buzz word)에 천착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가이드라인 상 비식별 조치에 의한 “동의” 면제 시도는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무력화할 우려가 크다.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는 “동의” 제도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으로 현재 개인정보 보호 법제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비식별조치에 의한 동의 면제”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핵심을 이루는 “동의”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이는 법률 개정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특히 가이드라인에 따른 비식별 조치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개인정보 재식별 위험성은 주민등록번호 제도 및 인터넷 상 본인확인을 강요하는 수많은 법률에 의해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특히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된 이동통신사는 식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오히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시대에 동의에 기반한 개인정보보호가 불충분하다. 어떻게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법적 근거 없는 전문기관의 운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개인정보보호 콘트롤 타워로서의 기능 확립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제도는 특히 재식별화의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왜냐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모든 자물쇠를 여는 '만능 열쇠'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제도는 특히 재식별화의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왜냐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모든 자물쇠를 여는 ‘만능열쇠’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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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은우, 마케팅 활용 목적 빅데이터 활용과 판매: 개인정보 플랫폼 기업의 탐욕과 비식별화 조치 가이드라인 (빅데이터 시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정책토론회, 2016. 9. 7. 국회의원회관 제9간단회의실) 별도 인터뷰 인용이 아닌 문단에는 문단이 끝나는 위치에 괄호( )로 해당 발제문의 페이지 수를 표시했음.

[2] 다만, 빅데이터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데이터 수집, 관리 및 처리 소프트웨어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는 크기의 정보라고 정의되며, 데이터의 양(volume), 데이터 입출력 속도(velocity), 데이터 종류의 다양성(variety)데이터의 양(volume), 입출력 속도(velocity), 종류의 다양성(variety)이라는 세 개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가트너 보고서). 이를 빅데이터의 3V라고 하는데, 3V가 커질수록 그 데이터의 산업적 가치는 높아지지만, 이에 비례하여 개인정보의 유출 위험성이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가능성도 커진다.

[3] 현 가이드라인이 기존에 행자부, 미래부, 방통위에 존재했던 개별안들이 ‘비식별’ 기술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수준이었다면, 검증절차와 보호조치에 관한 내용을 보완하면서 기존 개별안들을 통합한 것이다.

[4] 개인이 더는 식별될 가능성이 없다면(“no longer possible”) 개인정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5] 그러면서 미국은 ‘개인정보’라는 개념 대신 ‘개인식별가능정보’(personally identifiable information)라는 개념이 법령에 정의되어 제한적인 보호 대상이 되고 있다고 더불어 언급하는데, 미국은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제와 다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개인정보호보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범위를 규정한 비식별화(‘de-identification’) 규정이나, 그에 따른 비식별화(‘de-identification’) 가이드라인을 법제가 다른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규정이라고 설명한다.

[6] 참고로, 현행 개보법에는 ‘비식별 조치’라는 용어나 표현은 없다. 다만 법(제18조 제2항 제4호)에서는 개인정보처리자 동의 없이 수집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3자 제공이 가능한 예외로 “통계작성이나 학술연구 등의 목적으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고 규정하는데, 이 규정에서 개인정보를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변환하면 제한적 목적(통계작성이나 학술연구 등)이긴 하나 동의 없는 이용이나 제공이 가능하므로 이를 ‘비식별 조치’ 혹은 ‘익명화’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7] 가이드라인이 창설한 비식별화(비식별 조치) 개념은 재식별화하여 개인정보로 인정될 위험성이 상존해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만약 비식별화를 거쳐 동의 없이 이용, 제공한 경우 식별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따라 특정 시점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우려가 있는 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한다.(오픈넷)

[8] 물론 가이드라인에서는 특정 기술조치 여부뿐 아니라 종합적 관점에서 판단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다.

[9] 제18조 제2항 제4호

[10] 유럽연합은 우리 법제보다 빅데이트 활용과 관련하여 프로파일링에 대한 규율을 신설, 보완하고, 동의에 대한 규정, 투명성에 대한 규정 등과 관련하여 개인정보주체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 개인정보보호법제 때문에 빅데이터 활용에 제약이 있다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 기업이 재식별화할 의사가 없더라도 재식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고, 비식별화한 정보가 다른 업체에 매매됐을 때 다른 정보와 결합해서 손쉽게 재식별화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MIT 미디어랩의 연구를 통해서도 실증됐다. 가령 카드사의 구매 정보를 비식별화해서 이 정보를 이통사(이동정보)에 넘겼다면, 두 가지 정보가 결합되면 누가 어디서 어떤 물건을 구매했는지 알게 된다. 재식별화 의지가 없다라도 자동적으로 재식별화된다. 재식별화하면 훨씬 더 가치 있는 정보가 되는데 기업에서 안 할 이유가 있겠나. 더불어 재식별화 의지가 없더라도 해당 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될 가능성이 상존하니 그것도 문제다. (연구소)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2016.10.06.)

목, 2016/10/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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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주는 정말 저작권법을 위반했을까?

글 | 남희섭(오픈넷 이사)

 

배우 공현주 씨가 지난 금요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 ‘브릿지 존슨의 베이비’ 엔딩 장면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저작권법 위반이란 호된 비난을 받았다. 배우라는 사람의 저작권 인식이 형편없다는 질타가 이어지자, 소속사는 즉각 게시물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까지했다. 필자가 보기에 공현주 씨를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나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 모두 코미디다. 영화배급사가 나서서 이미 삭제하였으니 더 문제삼지 않겠다고 아량을 베풀고 이번 일을 계기로 관객의 저작권 인식이 바뀌고 극장 문화가 자정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는데, 이런 코미디가 또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공현주 씨는 저작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영화 배급사는 문제삼을 수도 없다. 아량을 베풀고 말고 할 일도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작권법이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잘못된 저작권 상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얘기를 하면서 영화 한 장면을 사용했다고 형사처벌한다면 처벌하는 법률 자체가 이상한 거다. 영화 장면을 영화관에서 찍었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사용했건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다.

공현주 씨가 위반했다고 얘기되는 저작권법 조항(제136조의 6)은 미국 저작권법 제2319B조를 그대로 가져다 온 것이다(미국은 2005년 저작권법 개정(U.S. Family Entertainment and Copyright Act of 2005)으로 이런 조항을 만들었다). 미국법이 우리 저작권법에 그대로 이식된 계기는 한미 FTA다(제18.10조 제29항). 이 조항은 영화를 통째로 “녹화”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전체는 아니라도 거의 대부분을 녹화한 것은 포함된다). 당시 미국영화협회(MPAA)는 불법 DVD와 같은 유형물에 의한 저작권 침해로 연간 약 40조 원(35억 달러)의 피해를 입는데, 이른바 캠 버전이 피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규모가 객관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 영화 시사회나 개봉 첫 주에 캠 버전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P2P를 통해 공유되어 막대한 피해가 생긴다며 법 개정을 호소했고 미국 의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입법경위를 비추어보면, 저작권법에서 처벌하려는 도촬은 원래 영화를 대체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 공현주 씨가 찍었다는 사진은 영화를 대체할 정도가 아니다. 이 사진을 보았다고 영화를 보려던 사람이 영화관 가기를 포기할까? 오히려 홍보 효과를 높여 영화사에게는 호재라는 평가도 있다. 영화를 대체할 수준이 아닌 도촬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미국 의회 기록을 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 저작권법 개정 당시 미하원 보고서는 카메라나 피처폰, 기타 사진촬영 장비를 이용하여 상영중인 영화의 스틸 사진을 찍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영어 원문은 “The Act would not, and is not intended to, reach the conduct of a person who uses a camera, picture phone, or other photographic device to capture a still photo from an exhibition of a motion picture.”)

공현주 씨의 일로 알려진 저작권법 조항의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첫째, 다른 위반행위와 달리 도찰행위에 대해서는 미수에 그쳐도 처벌한다. 미수에 그쳤다는 말은 저작권자에게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둘째, 공정이용과 같은 저작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원래 영화 전체를 허락없이 녹화해서 인터넷으로 공유하면 복제권 침해와 전송권 침해다. 별도의 규정이 없어도 저작권자는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복제권 침해나 전송권 침해는 형량도 5년 이하로 도촬행위 형량 1년 이하보다 더 세다. 그럼 왜 도촬행위에 대한 별도의 벌칙 조항이 생겼을까? 바로 복제권이나 전송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적용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은 처벌 규정을 만들려면 문제의 행위가 매우 중대한 사회적 법익 침해가 있어야 하는데, 캠 버전이 그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당사자인 영화산업계가 캠 버전으로 인한 피해를 과장해서 미국 정치권을 로비해 이상한 법이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이게 한미 FTA를 통해 한국 사회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코디미 같은 일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벌어지고 있다. AT&T 연구원들이 쓴 2003년 논문을 보면, 미국영화협회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영화 불법복제물 77%가 영화산업계 내부자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 문제를 지적한 캐나다의 가이스트 교수는 BBC에 기고한 글에서 MPAA가 미국의회를 로비한 것을 쇼로 치부하며, 만약 정치인들이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면, 이 쇼는 끔찍한 종말로 치달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화, 2016/10/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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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호랑이 정보공개법에 처벌 조항을 도입하라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정보공개법을 제정한 지 20년이 지났다. 공공기관이 보유하는 정보는 국민의 세금으로 생산되고 축적된다. 이들 정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 실행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각종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3조, 이하 “정보공개법”)은 열린 정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비교적 이르게 도입된 한국의 정보공개법 제1조는 법의 목적으로 △국민의 알권리 보장 △국민의 국정 참여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법과 제도가 좋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그 규정을 무시할 여지가 있다면, 좋은 취지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는 일껏 제정된 정보공개법이 그 근본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에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 왔다. 국민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신청한 정보가 공공기관에 의해 정당한 이유 없이 공개 거부되는 사례가 흔하고,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시간만 끌면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국민이 소송을 통해 이에 대응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나 공직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공개법을 회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정보가 왜 정부에 의해 닫혀 있는 것일까?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정보가 왜 정부에 의해 닫혀 있는 것일까?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한 이유는 정보공개법에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법의 취지와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강제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법의 구속력은 이를 강제하는 데서 나온다. 법은 도덕률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실효성을 보장할 수도 없다. 그런데 현행 정보공개법은 그런 꼴을 하고 있다. 정보공개 제도가 그 선진적인 의미를 구현하고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가 행정편의주의, 비밀주의, 보신주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하고 공직자의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처벌 조항조차 없는 정보공개법은 종이호랑이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사례: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문서 공개 신청

세월호 사건 당시 정부의 늦장 대응과 대통령의 행적은 큰 논란 거리가 되어 왔다. 당시의 상황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는 3백 명 이상이 숨진 참사의 한 원인을 밝힌다는 의미와, 국가의 긴급 상황 대응 시스템을 따지고 점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며 국민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일과 관련한 내용을 극구 공개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성공했다. 녹색당이 세월호 당일 청와대 비서실 등에서 어떤 보고와 지시가 이루어졌는지를 밝혀달라고 신청한 정보공개 청구는 정부에 의해 거부되었다. 구제 절차로 법에 보장된 데 따라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청와대는 다양한 꼼수를 동원하며 시간 끌기에 나섰으며, 법원은 이를 용인하거나 방치했다.

세월호

정보공개 신청이 이루어진 것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넉 달 만인 2014년 8월 18일이다. 공개거부 결정에 따라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은 10월 10일이다. 정부의 시간 끌기로 지지부진하던 재판은 1년 5개월이 지난 2016년 3월에야 선고가 내려졌다.

정보공개법은 제기된 정보공개 신청을 처리하는 각 단계에서 시한을 규정해 두고 있지만, 이 시한을 어기더라도 불이익이나 처벌은 없다. 미국식 재판 진행 방식인 ‘인 카메라(in camera) 심리’를 위해 법원은 공개대상 문서를 재판부에 비공개 심사케 할 것을 명령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묵살했다. 역시 강제력은 가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문서 보유측이 정보공개법이 규정한 과정과 절차에 비협조적인데도, 재판 결과는 세월호 관련 보고서 등 주요 문서 공개신청에 대해 원고 패소였다(원고 일부 승소). 정보를 공개할 경우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초래된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정보공개법에서 규정한 ‘비공개 대상 정보’에 이런 항목은 없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지 2년도 넘었으나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녹색당의 세월호 참사 관련 정보공개 신청 일지

  • 2014년 8월: 청와대 상대 정보공개 청구
  • 청와대, 비공개 결정
  • 정보 목록과 예산 공개 청구
  • 청와대, 비공개 결정
  • 2014년 10월: 행정소송 제기
  • 2015년 2월: 청와대 답변서 제출
  • 청와대, 대통령의 지시 내용 없다고 부정
  • 재판부, 비공개 정보 열람 심사 결정, 명령
  • 청와대, 거부/불응
  • 2016년 3월: 1심 판결: 원고 일부 승소 (세월호 관련 보고 내용은 비공개)
  • 녹색당, 항소
  • 2016년 8월: 첫 변론 기일 직전에 청와대, 사실조회신청서 제출
  • 차기 변론 기일 미지정 상태에서 2심 소송 계속 중

비슷한 내용에 대해 참여연대와 한겨레가 제기한 정보공개 신청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공개대상 정보 중에 국가안보 등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어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으며, 대통령 개인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어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한마디로 정보공개법이 있더라도 담당 공직자나 부처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공개를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으며, 법원이 정보공개법의 정신인 국정 운영의 투명성이나 국민의 알권리를 적극 옹호하러 나서지 않는 한, 이러한 부당한 거부는 별다른 규제나 처벌 없이 그대로 통용되는 것이다.

 

처벌 조항 삽입 시도가 있긴 있었다

우리나라 정보공개법에 처벌 조항을 넣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참여정부 당시 언론 관련 정책을 조정하여 기자실 폐쇄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로 인해 생긴 정보 수집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보공개법 개정을 도모한 바 있다. 행정자치부 및 법제처,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정보공개강화 태스크포스’는 오랜 논의를 거친 끝에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만들어 냈다.

이 개정안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전향적인 방안을 담고 있었다. 정보공개심의회에 외부 전문가를 절반 이상 위촉하도록 했고, 여기서 행정심판 기능을 담당하여 공개 신청 처리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행하도록 했다.

법원 재판 판사 변호사 저울

가장 획기적인 것은 처벌 조항을 도입한 것이다. 법 제29조를 신설해, 공직자가 정보를 위변조하거나 허위 내용을 공개할 경우, 또 정보를 은닉할 목적으로 비공개할 경우 금고 또는 벌금 1천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도록 했다. 이 처벌 조항은 개정안 입안 과정에서 정부와 시민단체, 언론이 가장 크게 대립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 각 분야가 총의를 모아 마련한 개정안에 대해 정부 각 부처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반발하였으며,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보공개 관련 내부 징계 방안

2007년 개정안 중 처벌 조항에 대해 정부 각 부처는 다양한 반대 의견을 내놨다. 국정원이나 국방부는 ‘실무자의 업무 수행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했고, 서울시 등 지자체는 ‘악의적 논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공개 거부에 대해 징계 요구나 감사로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보공개와 관련하여 내부 규정에 징계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운영하는 공공기관들이 존재한다. 두 군데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석탄공사 한국시설안전공단 정보공개법

대한석탄공사 정보공개지침(링크):

제20조(징계 회부): ① 청구인이 청구한 정보에 대하여 해당 업무담당자가 거짓된 정보를 공개하거나 제11조 제1항 및 제2항에 의거한 정당한 비공개 사유없이 공개를 거부한 경우에는 공사 ‘인사규정시행세칙’ 제42조(징계양정기준) 제1항에 의거, 징계 회부할 수 있다.

③ 청구인으로부터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이 제기되어 공사에서 이아 관련한 정보공개 의무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무 담당자가 이를 불이행한 경우에는 공사 ‘인사규정시행세칙’ 제42조(징계양정기준) 제1항에 의거, 징계 회부할 수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인사규정(hwp 파일):

제72조(징계의 사유) 직원의 징계 사유는 다음 각 호와 같다.

7. 임의로 정보를 수집, 가공하여 원본과 다른 정보를 공개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고의적으로 미보유 처리하여 정보를 숨기고 공개를 회피하는 경우
8. 불복절차(행정심판, 행정소송)를 통해 정보공개 관련 의무가 발생하였음에도 이를 불이행한 경우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있다는 것과 이에 따라 징계가 내려진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게다가 이러한 징계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꾸로 보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정보공개 판결이 내려젔음에도 일선 공공기관에서는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법의 불이행을 각 기관이 내부 징계로 강제하는 것의 유효성도 따져볼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정보공개법 관련 처벌

우리보다 앞서거나 뒤처져서 정보공개법을 제정한 선진국들의 법안에는 처벌 조항이 없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왔다. 이들 국가들은 대개 소송을 통해 정보공개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려 하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즉, [시민의 정보공개 청구 → 공공기관의 거부 → 행정 소송] 의 방식으로 불복과 재신청 과정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드물긴 하지만 공공정보나 공공회의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공직자를 형사 처벌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정보공개법은 연방법과 주법으로 나뉜다. FOIA(Freedom of Information Act)로 불리는 미국 정보공개법은 흔히 특정한 연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각 주 역시 나름의 정보공개 법안을 갖고 있다. 미국의 정보공개법은 넓은 범위에서 볼 때 이렇게 연방법과 주법을 모두 통칭한다. 연방법은 연방기관과 그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주법들은 주정부 등 지방단위 기관과 그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똑같이 중요하다.

미국 정보자유법

정보공개 청구가 거부되었을 때, 연방 차원에서 가장 흔한 대응은 정부기관과 공직자를 상대로 하여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막대한 소송 비용이 소요되며, 원고(정보공개 청구자)가 가 승소하였을 때는 피고(공직자)는 해당 정보를 공개함은 물론 소송 비용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막대한 소송 비용을 뒤집어 쓰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상당한 부담이 되며, 이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일은 큰 재정적 위험 부담이 된다. 물론 정보공개 책임자인 개별 공무원에 대해 징계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상 형사처벌의 수준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법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 많은 주는 연방 FOIA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사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정부의 비공개 결정에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역시 소송 비용이 정보공개 압력이 되는 셈이다. 한편, 소송 비용이 높다는 것은 원고(정보공개 신청자)에게도 부담이 된다. 따라서 플로리다를 비롯한 몇몇 주는 정보공개 관련 민사소송이 개시되면 소송 비용을 피소된 정부 기관이 자동으로 부담하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소송 비용이 정보를 공개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도록 한 셈이다.

Dan4th Nicholas, "Justice sends mixed messages", CC BY https://flic.kr/p/8PEYEW

Dan4th Nicholas, “Justice sends mixed messages”, CC BY

이에 더하여 정보공개법을 어긴 공직자에 대해 형사 처벌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25개 이상의 주에서 민형사상 벌금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벌금액은 100~1,000 달러 수준으로 다양하다. 또 7개 주에서는 정보공개법을 어긴 공직자에 대해 구류나 징역 등 신체형도 부과할 수 있다. 그 기간은 30일(아칸소)에서 1년(오클라호마, 플로리다)까지 역시 다양하다. 정보공개법 관련 교육 이수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정보공개법의 한 분야라 할 수 있는 공공회의 공개 의무(open meeting laws)와 관련해서 42개 주는 정부가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회의 결정 사항을 무효화하는 법안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형사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주 검찰이 기소를 하러 나서는 경우는 드물고, 연방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사소송 제기가 흔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구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보공개를 거부한 공직자가 형사처벌된 사례

1) 1986년 오클라호마 시의원 멜빈 믹스는 공공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고 그 의사록을 공개하지 않은 혐의로 1일 구류에 처해졌다. 이는 미국에서도 정보공개법과 관련해 형사 처벌을 한 최초의 사례다. 구금 일자가 짧은 것은, 당사자가 처벌을 받게 되자 의사록을 뒤늦게 서둘러 공개했기 때문이며, 이 같은 사정은 아래에서도 비슷하다.

2) 1988년 디트로이트 시 법무담당관 도널드 페일린은 공공문서에 대한 공개 신청을 거부한 혐의로 4일 구류를 살았다. 그는 이후 문서를 공개하고 석방되었다.

3) 1999년 플로리다 시교육위원 베닛 웹은 공공 정보를 의도적으로 비공개 혐의로 30일 징역 선고받고, 그 중 일주일을 복역했다.

4) 2003년 전 플로리다 주 상원의원이자 당시 군 행정위원회 의장이던 W. D. 칠더스는 지역 재개발과 관련한 회의를 비공개로 연 혐의로 60일 징역에 처해졌고 500달러 벌금이 병과되었다. 게디가 3,600달러에 달하는 소송 비용도 물어냈다.

대법원

대법원

강제 없는 의무는 무의미하다. 중요한 국정 사안에 대해 정부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국민의 권리인 정당한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이를 엄히 따져야 할 법원이 오히려 방치하는 상황에서, 이미 논의되어 개정안으로 입안된 바 있고 외국에서도 도입하고 있는 처벌 조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법원이 재판을 통해 공직자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러한 조항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정당한 정보공개에 응해야 하는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지난 10월 7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주최로 열린 토론회 ‘정보공개의 현재와 미래를 말한다’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필자)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 (2016.10.27.)

화, 2016/11/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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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중심에서 인터넷을 재학습하다

글| 허광준 (오픈넷 정책실장)

 

이 글은 2016년 9월 태국에서 열린 2016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스쿨(APSIG)에 참가한 뒤 그 경험을 쓴 글입니다. (필자)

“그래, 누군가 그런 일을 해야 하긴 하겠지!”

내가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교육 행사에 갈 예정이라고 말을 했을 때, 지인 중에서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행사의 내용에 주목하지 않았다. 출장을 가는 시기나 장소만이 잠깐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들 탓만은 아니다. ‘거버넌스’라는 낯선 말이 붙는 경우는 대개 다 그렇듯, 인터넷 거버넌스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인터넷 거버넌스? 

‘인터넷 거버넌스’는 쉽게 말하면 단일한 관리자가 없는 세계적 통신망인 인터넷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여러 영역의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집단적’ 노력과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규칙’이 필요하다. 우선 IP 주소와 도메인 네임, 그리고 기술적 프로토콜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인터넷이 작동하기 위한 기술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인터넷이 우리 삶과 사회의 일부가 되면서, 스팸, 보안, 저작권 등 인터넷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의 안정적인 운영, 이용과 관련된 공공정책의 결정,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원칙들과 정책결정 과정 등을 ‘인터넷 거버넌스(Internet Governance)’라고 한다.” (진보넷, [정보인권의 이해] 중에서)

※ 참고 동영상(한국어 자막): Who runs the Internet’s address book?

9월 11~15일 태국 방콕의 AIT(As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열린 ‘2016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스쿨(APSIG)’은 그런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인터넷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 모여 거버넌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집단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주관하는 측은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APrIGF)’이다. ‘스쿨’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하루종일 강의 형태의 수업을 듣고 마지막에 조별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일정이 진행되었다.

 

아시아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 

행사 첫 순서인 11일 저녁 식사 자리는 이채로웠다. 참석자들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국가와 소속 기관이 다양함은 물론이고 그 연령대가 20대 초반에서 70대까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행사에서 강의를 맡은 강사들이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긴 했지만, 평균 연령을 확 끌어올린 것은 아시아 지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첫 APSIG가 성사된 것은 오로지 전 박사님과 그가 이끄는 스태프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 박사님은 행사 기획 및 준비는 물론이고 행사 기간 내내 일정을 주도하며 성공적인 교육이 되도록 보살폈다. 직접 강의를 맡기도 했다. 인터넷의 기술적 측면을 조망하는 강의였다. 아시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전 박사님에게 보이는 존경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이번 행사는 나로서는 말로만 듣던 전 박사님의 지도력을 실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APSIG에서 강의하는 전길남 박사

APSIG에서 강의하는 전길남 박사

행사가 열린 AIT는 방콕 외곽에 있는 대학과정 교육 기관이다. 기술, 공학, 경영학 중심 특성화 대학인데, 그곳의 컨퍼런스 센터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나흘 일정이 강도 높게 이어진 데다, AIT는 공항을 중심으로 방콕 시내와 반대 방향에 있어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방콕 등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행사장인 AIT는 1959년에 설립되었다. 컨퍼런스에 딸린 숙박 시설도 연륜의 흔적을 보였으나, 학술 행사를 진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숙소에는 간소한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수도원 같은 분위기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서구 숙박시설의 경우 이곳에 성경 한 권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요즘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성경을 치우는 곳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AIT의 객실 서랍 속에는 자그마치 네 권이나 들어 있었다. 성경 두 권, 꾸란 한 권, 그리고 “The Great Teaching of Buddha”라는 영문판 불경 한 권이었다. 낯선 숙박시설에서 잠을 설치는 편이지만, 무려 세 종파의 성인이 보호하는 곳에서라면 아주 편안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자간 모델, 망중립성

강의는 월요일 아침,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의 제레미 말콤(사진) 하는 다자간(multi-stakeholder) 모델 수업으로 시작되었다. (인터넷 거버넌스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마구 쏟아져 나오는 각종 영어 약자와 친해져야 한다. 관련 단체나 개념이 모두 영어 약자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전길남 박사가 편찬한 영문서 [아시아 인터넷사(An Asian Internet History)]의 앞부분에는 ‘두문자어(Acronyms)’라는 표제 아래, 책에서 쓰인 인터넷 관련 영어 약자가 무려 8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정리돼 있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관련 두문자어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관련 두문자어들

다자간 모델은 인터넷을 관리하는 이상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특정한 한 측이 인터넷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정부)·시민사회·기업·학계 등 관심이 있는 모든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로 참여하여 협의하며 관리해 나가는 방식이다.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면, 사실 다른 접근이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국가가 주도하여 성장한 기존 통신 인프라와는 달리, 인터넷은 자율적인 민간 기구가 주도하는 형태로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말콤은 △인터넷망에 개별 국가의 법령을 적용하기 어렵고 △국제 단위에서는 대표자를 뽑아 결정을 맡기는 민주 대의제를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그 대안으로 다자간 참여-협상 모델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였다.

다자간 참여-협상 모델(멀티 스테이크홀더리즘) 

“인터넷 거버넌스는 민주적인 다자간 협의·결정 과정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 사기업, 시민사회, 기술공동체, 학문공동체, 이용자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가 의미 있게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당사자 각각의 역할과 책임은 논의되는 이슈의 맥락 안에서 융통성 있게 해석되어야 한다.” (NETmundial Initiative, 2014)

두 번째 시간은 인도 ComFirst의 디렉터 마에시 우팔이 망중립성에 대해 강의했다. 이번 행사에는 인도에서 여러 사람이 강사와 학생으로 참석했다. 엄청난 인구와 급신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인터넷 사업에 매진하는 분위기가 잘 전달됐다.

첫날 오후에는 APNIC(Asia Pacific Network Information Center)의 파블로 히노호사(사진)가 특이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인터넷망을 통해 전달되는 패킷과 그 전달 규약을 설명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카드를 선보인 것이다. 그는 이 카드를 참석자에게 나눠주고, 그 속에 담긴 암호에 규정된 대로 패킷이 전달되는 양상을 시연하면서 인터넷의 구조를 이해시켰다. 게임을 하듯 진행하다 보니 정보 전달 흐름과 그 규약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인터넷 거버넌스

 

“새로 10억 명 연결하기” 

매일의 마지막 시간은 분반 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각 스테이크홀더 영역별, 즉 정부·시민사회·사기업·기술-학계의 네 팀으로 나누어,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주제를 토론했다. 공동 주제는 “새로 10억 명을 연결하기”였다.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는 35억 명,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다. 그중 60%가 아시아인이다. 인구가 많으므로 이용자 숫자도 크지만, 인터넷 보급률로 따지면 세계 평균에 뒤처진다. 아시아 지역은 앞으로 급격한 양상으로 이용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새로 늘어날 이용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개인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인가가 새로운 숙제가 된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문제를 조망하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 내용은 마지막 날에 취합하여 발표되었다. 소속 위치에 따라 문제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다양한 측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거버넌스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둘째 날은 인터넷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환경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의 애덤 피크가 인터넷 거버넌스의 원칙들에 대해 강의하였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짐 포스터가 인터넷을 둘러싼 정치 사상적 측면을, 그리고 고려대 교수이자 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교수가 법률적인 측면을 강의하였다. 나중에 공개된 교육생 강의 평가에 따르면, 모두 흥미롭고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인터넷의 법률적 측면에 대해 강의하는 박경신 교수

인터넷의 법률적 측면에 대해 강의하는 박경신 교수

인터넷의 다양한 특성과 그에서 촉발되는 법률적 이슈들

  • 소통 수단 → 표현 규제와 감시 규정들, 프라이버시
  • 대량 소통 → 저작권
  • 통제의 분산 → 단대단(end-to-end) 원칙 → 망중립성
  • 익명성 → 프라이버시
  • 사기업의 개입 → 정보매개자 책임
  • 사기업의 개입 → 반독점 법안
  • ICANN의 주소 할당 → 도메인 이름 논쟁
  • 세계 차원의 소통망 → 국가단위 규제 곤란 → 형사사법공조조약, 관할권 논란 (박경신 교수 발표자료 중에서)

셋째 날에는 전길남 박사가 기술적 측면에 대하여 직접 수업을 진행했고, 박경신 교수가 인권 관련 주제를 놓고 다시 한 강의를 맡았다. 마지막 수업은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평가와 토론이었는데, 개별적 강의에서부터 아시아 인터넷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를 놓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화기애애하고도 에너지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분반 토론에서는 각 국가사회의 상황에 따라 구성원의 기대와 요구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한국처럼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많은 사람이 이미 연결된 곳에서는 어떻게 인터넷을 자유로운 소통망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가 주요한 화두였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네팔 같은 곳에서는 우선 인터넷과 통신 인프라를 최대한 많이 구축하고 보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제로 레이팅 같은 주제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슈였다. 어떤 곳에서 제로 레이팅은 인터넷 사업자 간 불공정 경쟁 관계를 초래하는 부정적 요소로 인식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이용자가 값싸게, 혹은 무료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선물로 간주되었다. 지역적, 세계적 차원의 인터넷 관리 정책에 접근할 때 국가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제로 레이팅이란?

“통신사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이용을 위한 데이터를 무료로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들에게 11번가 쇼핑몰을 이용할 때 드는 데이터를 가입자의 데이터 한도액에서 차감하지 않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망중립성 옹호론자들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에 기반하여 통신사가 이용자의 접근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중립성 위반으로 보고 있다. … 그러나 제로 레이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는 기업의 가격 차별화의 한 형태일 뿐이며, 한정된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장의 작동이라고 주장한다.” (진보넷, [정보인권의 이해] 중에서)

 

다양한 참가자와 만든 추억들  

참가자 단체 사진. 구성원의 다양함이 세계 네티즌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참가자 단체 사진. 구성원의 다양함이 세계 네티즌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참가자 몇 사람과 특히 친해졌다. 그중 하나는 캄보디아에서 온 시티쿤 리였다. 그와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그 때마다 내 휴대폰에서는 찰칵, 찰칵 소리가 났다. 리는 한국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인위적인 셔터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의 중고 휴대폰이 캄보디아로 많이 흘러들어와서, 그 전화기를 쓰는 캄보디아 사람들 역시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멀리 외국에서 타국인과 더불어 고국의 가부장적 정책을 비웃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행복한 경험은 아니었다.

행사가 열린 태국에서 참가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자신이 관여하는 운동이 ‘공주’가 조직하여 이끄는 것이라고 하여 나의 봉건적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의 딸이 주도하는 사회 운동인 모양이었다. 권력 분산을 지향하는 인터넷과 정보사회 운동을 봉건적 권위체가 추진한다는 것은 특이한 모습이었지만, 국가가 주도하던 새마을 운동, ‘영애’가 주도하던 새마음 운동을 여전히 이상화하는 나라 출신으로서 딱히 낯설게 볼 이유는 없었다.

교육 마지막 날 저녁은 참가자 전원이 차 세 대에 나눠타고 강변의 식당으로 나와 함께 식사했다. 낯선 밤거리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는데,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태국 남부의 젖줄 짜오프라야 강 중류에 있는 분위기 좋은 식당이었다. 해산물(강산물?)을 중심으로 한 음식도 괜찮았고, 밤의 강변 풍경도 좋았으며, 라이브 가수들이 튀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흘러간 팝이 독특한 정취를 불러일으켰다.

지카 바이러스를 머금었을지 모르는 모기들이 달려드는 것이 옥에 티라면 티였다. 태국 여행자에게는 지카 바이러스 주의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나는 급히 화장실로 가서 두꺼운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식사 뒤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느라 짐을 다 싸 들고 온 게 다행이었다.

시원한 강바람과 동남아풍 올드팝이 잘 어우러졌던 강변 식당 Baan Nhuer Nham

시원한 강바람과 동남아풍 올드팝이 잘 어우러졌던 강변 식당 Baan Nhuer Nham

 

아직 아시아 인터넷 보급률은 45%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별 인터넷 보급률은 84.4%다. 10년 전에 이미 75% 선에 이르렀으니, 10년 동안 불과 10% 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91%다. 국민 대부분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보급될 만큼 다 보급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아시아 전체로는 상황이 다르다. 아시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올해 기준으로 45.6%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APSIG 행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행사 전체에서 장년이나 노년의 원숙한 기운이 아니라 역동적인 청년의 활기 같은 것이 넘실거렸다.

새로운 상황은 기회이자 도전이다. 엄청난 수의 이용자를 새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기존 인터넷 시스템에 존재하던 여러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여기에는 통신망 인프라의 구축에서부터 법령 정비, 인터넷 비즈니스 육성, 이용자들의 권익 보호, 더 나아가 인터넷을 자유롭고 열린 정보 유통망으로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일이 포함될 것이다.

협력 협동 사람 인간 장애 비장애인

 

인터넷 거버넌스의 주체는 바로 우리 

이러한 일은 국가사회의 한 측이 전담하여 수행할 수 없다. 인터넷과 관련한 모든 측이 서로 밀고 당기고 협력하며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국제회의에서는, 참석자 중 원하는 사람이 모두 발언 기회를 얻고 그런 방식을 통해 일정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근본에서부터 민주적이고 분권적인 인터넷 거버넌스의 방식이다.

아시아에서 조만간 새로 합류하게 될 수많은 네티즌 역시 그런 거버넌스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것이다. 인터넷 거버넌스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누군가란 다름 아닌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이해당사자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APSIG은 참석자들에게, 아시아태평양 지역 앞에 무한한 기회와 쉽지 않은 과제가 동시에 펼쳐져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APSIG는 앞으로도 매년 같은 장소에서 계속 열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이용자가 아시아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면 싶다.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앞서 인터넷의 축복을 맛보았고 통신 인프라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의 경험이 다른 나라에 중요할 수 있고, 거꾸로 한국 역시 이들로부터 배우는 바 많기 때문이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 (2016.11.03.)

금, 2016/11/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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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박근혜 ‘생얼’ 폭로, 왜 가로막혔나?

후보자 검증 막는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폐지해야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유종성(호주국립대 교수)

 

대통령을 잘못 뽑은 대가는 컸다.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의 허상을 보고 투표했다. 왜 야당과 언론은 박근혜 후보의 실체를 파헤치지 못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2012년 대선 두 차례 씩이나 후보자 검증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는가?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 그리고 형법 등의 명예훼손 법제가 공직 후보자의 비리 의혹이나 자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박근혜-최순실의 권력 사유화와 국정 농단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시 이명박 후보 측에서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를 이슈화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보고서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수사 자료, 1990년대 박근령, 박지만 등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우리 언니를 최태민으로부터 구해주세요”라며 보낸 편지 등을 언론에 제공했는데 언론들은 거의 싣지 않았다.

2007년 6월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 목사가 “박근혜는 최태민과 최순실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자신의 재단조차도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 철저한 검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하기는커녕 김 목사에 대해 “천벌을 받을 사람”이라는 저주를 퍼붓고 지나갈 수 있었다. 최태민의 의붓아들(최순실의 의붓오빠)인 조순제 씨가 경선 막바지에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도 언론에선 단신으로도 처리하지 않았다. 조순제 녹취록이 최근에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박근혜 검증을 지휘했던 정두언 전 의원은 경선을 앞둔 2007년 8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낱낱이 드러내면, 박근혜 대표를 좋아했던 많은 분들이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은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회피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이 박근혜 후보의 허상을 보고 투표하게끔 하는 데 일조했다.

왜 언론들은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최순실 관련 의혹 제기를 외면했을까? 왜 정두언 전 의원은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을까? 왜 문재인, 안철수 캠프는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에 대한 검증을 회피했을까?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 형법상의 명예훼손죄 등이 이러한 의혹 제기와 언론의 보도까지도 가로막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해호 목사와 김 목사의 기자회견문 작성을 도와준 임현규 당시 이명박 캠프 정책특보는 최순실의 고소에 따라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의 실형을,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육영재단 부정축재 등 제기한 의혹의 사실 여부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는데, 박근혜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목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고 판단했다.

2008년 대선 직후 숨진 조순제 씨의 경우는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태민-최순실 비리에 대해 운만 띄우고 구체적인 의혹 제기를 회피한 정두언 전 의원과 달리 2007년 대선 본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던 정봉주 전 의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함은 물론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의 PD들이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정윤회 문건 등을 보도한 국내언론과 야당 정치인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소문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 신문> 특파원까지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니, 감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고는 아무도 의혹 제기를 함부로 할 수 없고, 언론도 의혹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거나 지극히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명예훼손 법제는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뿐만 아니라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까지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후보자 모욕죄)와 허위사실공표죄(후보자명예훼손죄)는 자유로운 후보자 검증을 가로막고 있다. 후보자 비방죄는 OECD 국가중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는 법이며,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형사소송의 대상이 아니며 아주 중대한 경우에만 선거소송이나 민사소송으로 다루어진다.

한국은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를 권고하는 UN 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의 추세를 정면으로 역행, 명예훼손과 모욕죄 기소 인원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검찰은 선거사범 단속에 있어 민주화 초기 성행했던 금품 향응제공 등 매표 행위가 줄어들자 소위 ‘흑색선전’을 뿌리뽑는다는 명분 하에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관련 단속에 집중해 왔다.

‘표1′을 보면, 제15대 (1996)부터 제17대 (2004) 국회의원 총선거까지는 소위 흑색선전 사범이 전체 선거사범 중 15% 미만을 차지했으나, 제18대(2008)에는 20.1%, 제19대(2012)에는 25.3%, 제20대(2016)에는 35.5%에 이르러 금품향응(20.7%)보다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표2′를 보면, 2002년 이전에는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을 받은 인원수가 많지 않았으나 2004년 이후에 증가하기 시작하여 특히 2007년 대선 때부터 급증했음을 보여준다.

원래 ‘흑색선전’이란 군사작전 등에서 상대를 심리적으로 교란하기 위해 비밀리에 행하는 허위정보 선전을 일컫는데, 한국의 검찰은 공개적인 검증을 위한 의혹제기를 모두 흑색선전으로 치부하고 있다. 한국 검찰의 선거법 집행은 서구 선진민주국가들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 대만 등과 비교해 보아도 큰 차이를 보인다 (‘표3′ 참조).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선거시 매표 행위 단속에 집중하며,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죄 기소인원수는 일본은 0.1%, 대만은 3.4%에 불과하다. 물론 이 나라들에는 후보자 비방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1. 국회의원 총선거별 선거사범 종류별 추이, (1996~2016년)
출처: 대검찰청 보도자료 (각년도)

 

표2.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법원 판결수, (1995~2015년)
각 년도는 판결시가 아닌 해당 선거가 실시된 해를 가리킴.

 

표3. 한국, 일본, 대만의 선거사범 인원수 종류별 비교
일본: 중의원 선거 (1996~2012년) 선거사범 대만: 2003~2012년 각급 선거의 선거법 위반 1심 피고인수 한국: 국회의원 선거 (1996~2016년) 선거사범; 허위사실공표에 후보자 비방 포함.

 

명예훼손과 후보자 비방/허위사실공표죄 관련 기소 인원수의 증가는 그 자체로 공직자나 힘있는 사람들의 비리의혹 제기와 공직후 보자의 검증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정치검찰”의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의 검찰이 이러한 법 집행에 있어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가 정치적으로 악용된 사례들에 대해 국내에서는 물론 UN 표현의 자유특별보고관, UN 인권위원회, 국경없는 기자들 등 국제사회의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정봉주 전 의원, <PD 수첩>, <산케이 신문> 기자 등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으며, 프리덤하우스가 언론 자유 평가에서 한국을 ‘자유’ 국가에서 ‘부분 자유’ 국가로 강등시키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검찰이 조직적으로 정치적 편향성을 취해왔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은 없었다. 이에 필자들은 사단법인 오픈넷의 협조를 받아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이들의 판결문을 수집하여 전수 조사를 하였다. 분석 결과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야간 정치적 편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교육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심한 편향성이 드러났다(표4 참조).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고 16건 모두 보수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된 경우였다.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허위사실공표죄의 경우 90.3%가, 후보자 비방죄의 경우 80.3%가 새누리당 후보를 공격하다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경우였다.

‘표4′. 선거별, 피해 후보자 정당별 비방 및 허위사실 판결수 (1995~2005년)

 

‘표5′는 2002년에는 여당의 노무현 후보를 공격한 사람들(13명)이 야당의 이회창 후보를 공격한 사람들(4명)보다 더 많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야당의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경선 후보를 공격한 이들(230명)이 여당의 정동영 후보와 경선후보들을 공격한 이들(39명)보다 훨씬 더 많이 기소되었음을 보여준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된 인원수(154명)가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된 인원수(23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검찰은 항상 대통령 당선자를 공격한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기소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다만, 노무현 후보를 공격해서 기소된 사람들의 경우 13명중 7명만이 유죄 판결을 받아 이회창 후보 공격으로 기소된 이들의 유죄율(100%)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유죄율(54.9%)을 보였는데, 이는 검찰의 무분별 기소에 대해 법원이 약간의 견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7년과 2012년 대선의 경우에는 여당 후보나 야당 후보를 공격한 사례들간에 유죄율에 차이가 없어 검찰의 기소편향이 법원에 의해 전혀 교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하에서 후보자 비방과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한 인원수가 급증했는데, 그 대부분이 대통령 당선자를 비판한 경우였고, 검찰의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소가 사법부에 의해 교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표5. 2002, 2007, 2012년 대통령 선거시 여당 후보 및 야당 후보 공격으로 재판받은 수와 유죄판결 수
2002년과 2012년에는 여당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2007년에는 야당 후보가 당선됨.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검찰의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기소가 급증해왔을 뿐만 아니라 검찰의 법집행이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되어 온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 김해호 목사나 정봉주 전 의원처럼 상당한 근거가 있는 의혹을 제기하고서도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받는 현실, <PD수첩> 경우처럼 결국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검찰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당사자들이 받는 고통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억압일 뿐 아니라, 나아가 이러한 사례들이 언론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고 입을 닫도록 하는 것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나라일수록 부패 수준이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후보자 비방죄는 물론 허위사실공표죄도 폐지하거나, 그 적용 대상을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공표한 경우에 한하도록 하며 자유형을 없애고 벌금형만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허위사실공표죄를 폐지하면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이에 따라 선거결과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허위사실로 공격을 당한 후보자는 즉각적으로 반론을 펼 수 있고 유권자들은 후보자간의 공방에서 제시되는 증거들을 보고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후보자 검증이 이루어지며 정치검찰이 개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작용 없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공개적인 의혹 제기가 아닌 타인 명의 도용 또는 비밀리에 하는 흑색선전은 후보자 비방이나 허위사실공표죄 없이도 처벌할 수 있고, 허위사실 선전이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 경우에는 선거소송을 통해 구제할 수도 있다. 한국을 제외한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체로 이렇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단시일 내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헌재가 탄핵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각 정당이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일정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헌재 결정 이후 60일 이내에 각 당의 경선과 본선이 이루어지게 되면 후보자 검증을 위한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 이번에도 후보자 검증을 제대로 못해 믿고 뽑았던 대통령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 나중에야 드러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된다. 국회는 후보자 검증을 가로막는 현행 선거법과 명예훼손 법제를 시급히 뜯어고쳐야 한다.

 

* 위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했습니다. (2016.12.19.)

월, 2016/12/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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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디지털뉴스 이용규칙’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새해 벽두부터 흥미로운 문서를 하나 내놨다.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이다. 뉴스 유통과 소비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뉴스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해야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지를 밝힌 문서다.

언론진흥재단 저작권 이용규칙

온라인 환경에서는 뉴스 기사가 쉽게 공유되고 유통된다. 기사를 생산한 뉴스 매체의 저작권이 쉽게 침해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뉴스 저작권자의 권익을 지키려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다. (‘이용규칙’을 내놓은 언론진흥재단은 주류 언론사들의 연합체인 한국디지털뉴스협회로부터 저작권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저작권이 관련법에 따라 존중되어야 하고 이용자가 저작권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규칙’의 내용은 이와 같은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규칙은 △ 디지털 뉴스가 유통되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 현행 저작권법의 취지나 구체적 조항과 모순되는 내용을 포함하며 △ 디지털 환경으로부터 편익을 얻으면서도 이익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심지어 △ 규제에 치우치다 보니 뉴스 콘텐츠의 활용이나 그로 인한 수익을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까지 초래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용규칙’은 과도함, 모순, 그리고 자승자박의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평가는 이용규칙이 저작권법의 두 축인 ‘저작자의 권리 보호’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도모’를 고르게 반영하지 못하고 오로지 전자에만 치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규칙을 만든 주체가 뉴스저작권의 이해 당사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용규칙’은 뉴스 콘텐츠 생산자의 입장만을 반영한 것이며, 그럼에도 누구나 지켜야 할 객관적인 원칙이나 조문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자.

언론진흥재단 저작권 폭탄

 

분량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자는 언론사가 자사의 웹사이트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하여 제공하는 디지털 뉴스콘텐츠를 해당 언론사의 허락 없이 복제/배포/공중송신 등의 방법으로 이용할 수 없다.

 

‘이용규칙’은 그 전편에 걸쳐 뉴스 콘텐츠를 적법하게 이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콘텐츠를 이용하는 양상, 특히 얼마나 이용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경우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이른바 ‘공정 이용’). 그 부당성을 따질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즉 뉴스 콘텐츠의 일부만을 인용해 이용할 때는 공정 이용에 해당되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규칙’은 그러한 점을 명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언론사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부분 인용조차 안 되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한다.

 

블로그나 SNS는 차별받아도 된다?

방송, 신문 그 밖의 방법에 의하여 시사보도를 하는 경우(에는 금지의 예외로 한다.)

 

저작권은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권리가 아니다. 저작권법의 제2관은 저작재산권 행사를 제한하여, 이용자가 복제하여 쓸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이용규칙’도 이 같은 점을 반영하고 있기는 하다. 예컨대 ‘이용규칙’이 시사보도를 하는 경우 저작권자 언론사의 허락을 얻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은, 저작권법에서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라고 한 데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용규칙’은 블로그나 SNS 등이 뉴스를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한다.

블로그 소셜미디어 SNS

블로그나 SNS 등 개인용, 비상업용, 커뮤니티형 웹사이트에 디지털 뉴스콘텐츠를 복제, 전송, 공중송신한 경우에도 저작권 위반이 될 수 있다.
공익/비영리 목적의 사용이라 하더라도 뉴스기사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함.

 

그럼 블로그나 SNS에서 뉴스기사를 보도나 비평 목적으로 사용하였을 때는 어쩔 것인가? 블로그나 동영상을 활용한 1인 미디어에서 보도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SNS에서도 뉴스에 대한 비평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모두 언론사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람직하거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보도나 비평 등의 목적이라면 저작물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음에도 ‘이용규칙’은 그것이 블로그나 SNS 같은 방식으로 전개될 경우 금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링크만 해도 손해배상 물린다?

현재까지는 직접링크도 저작권법상의 복제/전송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지만, 직접링크를 업무적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했을 경우에는 민법상 부당이득,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직접링크의 업무적/상업적 이용 사례] (2) 직접링크 방식으로 해당 기관(회사)의 관련기사를 모아 사내게시판 또는 홈페이지에 게시한 경우

링크
‘이용규칙’은 링크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단순 링크’는 언론사의 메인 페이지로 가는 링크다. 온갖 기사와 광고로 화면을 꽉 채운 바로 그 페이지다. 둘째, ‘직접 링크’는 특정한 웹페이지로 가는 링크다. 단일 기사를 담고 있는 개개의 페이지를 말한다. 셋째, ‘프레임 링크’는 자신의 웹페이지 안에서 언론사의 페이지가 표현되도록 하는 링크다.

타인의 콘텐츠를 자신의 것처럼 그대로 표현되는 ‘프레임 링크’를 금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러나 ‘직접 링크’에 대해서까지 규제하고 있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이용규칙’에 담긴 가장 어이없는 내용일 것이다.

왜 그런가? 첫째, 법이 허용하고 있음에도, 시도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위협을 담고 있다. 둘째, 링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고 오로지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링크의 역할은 글자 그대로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접 링크’는 해당 언론사의 웹페이지(와 거기 실린 광고)를 노출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으로 인해 언론사에 어떤 손해가 발생하므로 손해배상을 물리겠다는 것인가? 방문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 손해란 말인가?

디지털 환경에서 뉴스 유통 구조에 조금이라도 이해가 있다면 ‘직접 링크’를 금하는 방침을 포함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자사 뉴스의 확산을 막고 자신의 이익을 줄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용규칙’을 그대로 따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예컨대 어떤 웹사이트 운영자가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검의 활동을 시기별로 정리하려고 한다. 그러한 활동을 보여주고 입증할 언론사 기사를 링크해야 하는데, ‘이용규칙’에 따르면 각각의 기사로 직접 가는 링크를 쓸 수 없다. ‘이용규칙’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언론사의 대표 홈페이지 링크뿐이다. 그러니 개개의 사안에 대해 모두 하나의 홈페이지, 이를테면 www.khan.co.kr이나 www.chosun.com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용자는 언론사 홈페이지에 실린 수많은 기사 중에서 (게다가 지나간 기사는 나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해당 기사를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기사 링크를 하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거꾸로 말해 우리 매체의 기사를 보지 말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뉴스콘텐츠는 유통되어야 의미가 있다. 링크를 통한 디지털뉴스 이용은 이런 유통에 기여하게 된다. 유통을 막으려는 것은 저 스스로 뉴스의 도달 범위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자승자박이랄 수밖에 없다.

자승자박

 

서비스 사업자도 책임져라?

블로그나 SNS 등을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블로그나 홈페이지 운영자가 디지털 뉴스콘텐츠를 무단으로 전재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홍보하여야 하며 방지책을 마련하여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이용규칙’은 뉴스콘텐츠의 적법한 사용 책임을 서비스 사업자에게까지 부과하고 있다. 비록 강제 조항이 아니고 ‘사회적 책무’라고 표현하였지만, 이용자의 콘텐츠를 관리할 책임을 사업자에게 지우고 있음은 분명하다.

2015년 3월 오픈넷이 국제 정보인권 단체들과 연대하여 정립한 ‘마닐라 원칙’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를 비롯한 정보매개자의 책임에 대한 국제 원칙이다. 여섯 개의 원칙 중 첫 번째는 “정보매개자들은 제3자(이용자)의 정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이용자의 콘텐츠를 검열하고 삭제할 책임이 사업자에게 부여되면 결과적으로 정부 등을 대신하는 검열 기관으로 작용하게 되고 결국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는 우려에서 나왔다.

‘이용규칙’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부과하는 책임은 마닐라 원칙과 정반대이다. 교육과 홍보는 이해 당사자인 저작권자나 그 이해관계 단체가 하면 된다. 서비스 제공자가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책무 같은 모호한 이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명백하고 분명하고 적법 절차에 따른’(마닐라 원칙 제3조)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사는 면책?

‘이용규칙’은 디지털 뉴스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주장이다. ‘뉴스’가 들어간 것은 저작권자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뉴스’만 빼 보자. ‘디지털 콘텐츠’다. 언론사가 아닌 다른 주체, 예컨대 네티즌들이 생산하는 이용자 생산 콘텐츠(UCC)가 여기 해당한다.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가 무단 사용될 것을 끔찍이 염려하는 언론사.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다른 사람이 생산한 디지털 콘텐츠를 마음껏 갖다 쓴다. 방송은 남이 만든 유튜브 동영상을 그대로 틀어주고, 신문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진을 그대로 갖다 싣고, 네티즌의 페이스북 내용이나 트윗은 그대로 무단 전재된다. 네티즌들이 붙이는 그 흔한 링크 하나 달지 않는다. 뉴스콘텐츠를 이용하는 대다수 네티즌과는 달리, 이 언론사들은 모두 상업적 목적을 위해 그렇게 한다. 심지어 언론사끼리 뉴스를 그대로 베껴 내는 것이 일상이다. 출처는 기분 내키면 밝힌다.

이러고도 자신의 콘텐츠만은 지키겠다는 것인가? 법과 디지털 환경을 충분히 참작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뿐 아니라 이용자의 권익도 함께 고려한 좀 더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새 ‘이용규칙’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xdfas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어울리고, 이용자와 상생하는 새로운 ‘이용규칙’이 필요하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17.01.18.)

목, 2017/01/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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