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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특집 ③]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_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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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특집 ③]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_ 이상희

익명 (미확인) | 목, 2017/06/29- 00:35

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제3화는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범위를 제한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의 칼럼을 통해 알아봅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광장에 나온 판결]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이상희 변호사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

 

1.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의 의미

 

2000년대 한국사회의 화두는 과거청산이었다. 국가폭력의 진상을 드러내고 피해자를 구제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민주화 과정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특히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이는 사법부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위법, 부당한 공권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권력의 조작, 은폐에 대한 진실규명을 방해하거나 가담했기 때문이다.

 

과거사 사건은 '①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 의혹 사건, ② 공권력의 조작 또는 은폐와 진실규명 방해'라는 2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심요건이나 소멸시효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힐 경우에 개별 판결을 통한 과거청산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참고로, 국가를 상대로 책임(손해배상)을 묻기 위해서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5년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유엔총회가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인권침해와 국제인도주의법의 중대한 위반행위 피해자를 위한 구제 및 배상을 위한 기본 원칙과 지침'에서도 ①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민사적 손해배상청구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② 정부가 중대한 인권침해의 진실을 은폐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거나 정부가 그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한 때로부터 시효가 진행된다는 중요한 원칙을 천명하였다.

 

2.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사법부 

 

1) 하급심의 태도 

 

법원은 2003년 수지 김 사건 판결에서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1987년 한국 여성 수지 김이 살해되자 국가안전기획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오히려 수지 김을 북한의 공작원으로 조작하였다. 

 

뒤늦게 진실이 규명되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법원은 국가가 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하다가 이제 와서 진실을 알지 못했던 유족들에게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 후 법원은 최종길 교수 사건 등에서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 법원은 형사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2) 대법원의 과거청산 

 

대법원은 2010년 12월 16일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하여 위헌, 무효를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1월 20일 조봉암 형사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2011년 6월 30일에는 울산보도연맹 사건에서 사법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울산보도연맹 사건에서, 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여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② 지금까지 국가가 진실을 은폐하여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는데, 뒤늦게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유족들에게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3.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에 제동을 건 대법원 판결 

 

1) 대법원이 2011년 1월 13일 처음으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결정이 내려진 재심 무죄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판결했는데, 이 판결은 그 당시 잇따른 과거사 사건의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대법원은 '과잉배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자 기산점을 기존의 법리와 다르게 사실심 변론종결일로 변경하는 판결을 하였다. 이 판결은 과거사 사건에 대해 '장기간의 세월', '통화가치의 상당한 변동'이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동원하여 굳이 기존 법리까지 무시해가면서 손해의 범위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 그런데 더 나아가 대법원은 2013년 5월 16일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에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상당히 제한하는 소멸시효 법리를 만들어 적용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을 통한 민주화에 역행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에서 대법원은 국가가 사건을 조작 또는 자료를 은폐했거나, 전쟁과 같은 국가위난의 시기에 국가권력이 폭력을 비호하거나 묵인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이 소멸시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즉,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당시에 무조건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가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립하여 진실규명을 한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니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시효를 문제삼지 않고 국가책임을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사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해자도 무죄판결 확정일 또는 형사보상결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지만 국가책임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하급심은 무죄판결을 받고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는데, 대법원이 자의적으로 그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급심 판결만 믿고 소송 준비로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낸 피해자들은 자의적인 대법원 판결 때문에 국가의 책임도 묻지 못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 6개월이 왜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른 채 말이다.

 

4. 결론

 

대법원은 2012년 이후 유독 과거사 사건에서만 자의적으로 권리구제의 기준을 변경하거나,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기존의 대법원 판결과 상반된 법리로 국가의 책임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겸허하게 과거를 반성하고 진지하게 피해자의 인권에 귀를 기울이며 공권력의 위법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묻는 사법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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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2017 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 방안’은 미봉책

적극적 채무조정 없이 금융권 손실부담 회피하려는 ‘대출 돌려막기’
취약계층 채무조정의 핵심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공평한 책임분담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어제(1/16) 2017년 업무계획의 주요과제 중 하나인 <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서민과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주는 든든한 안전망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실효성 있는 채무조정 방안은 확인하기 어렵고 채권자인 금융권의 이해관계를 우선한 대책을 또다시 대놓았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대행 : 김성진 변호사)는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조정의 핵심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공평한 책임분담이 대원칙임을 다시 강조하며, 부실 대출을 다른 대출로 돌려막으라는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금융위의 이번 발표는 미봉책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는 금융기관도 변제 능력을 무시하고 대출을 집행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그에 따른 손실에 대해 금융기관도 책임을 분담하여 적극적으로 채무를 탕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금융위는 이러한 적극적인 채무조정 정책을 회피하면서, 실질적인 채무조정의 효과가 제한적인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채무조정 졸업자에게 다시 채무를 제공(사잇돌 대출)하고, 생계자금 지원한도를 확대(새희망홀씨, 햇살론)하는 등 정부는 ‘대출 돌려막기식 대책’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소액채권, 취약계층 대상 채권 등 회수실익이 없는 채권에 대해서는 무분별한 소멸시효 연장을 자제하는 등 관행 개선”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무분별한 소멸시효 연장”은 무엇이고 “자제”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금융의 공공성을 앞세운 금융공공기관의 경우라면 회수실익이 없는 채권은 소멸시효 연장을 금지하고 모두 소각하는 것이 마땅한 정책적 선택이 아닌가? 정부는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에 대해서조차 적극적으로 채무를 조정하거나 탕감하려는 정책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표에는 개인신용평가 체계 개선, 금융소비자보호 기본법 제정 등일부 진일보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나라 개인대출 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금융소비자를 진정으로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올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부분은 향후 금융정책의 주요한 과제가 될 내용이므로 참여연대는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과 금융소비자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면밀하게 지켜볼 것이다. 

화, 2017/01/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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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BMiP6oD-7Y

오늘은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고발한 다큐영화 ‘레드 툼(Red Tomb. 부제 빨갱이 무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레드 툼’은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에 집단학살당한 국민보도연맹사건을 다룬 영화인데요.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희생자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항일독립운동가 또한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영문도 모른 채 가입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투와는 상관없는 지역에서 학살되었습니다.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부모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되레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 자식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숨죽여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레드 툼을 연출한 구자환 감독은 학살 당시 경남지역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산과 바다에서 학살당한 희생자들. 당시 내륙에 살던 이들은 산으로 끌려가 ‘골로 가야’했고, 바닷가에 살던 이들은 바다에 수장돼 ‘물을 먹어야’했습니다.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보며 만들어진 표현이 바로 지금의 우리가 흔히 쓰는 ‘골로 간다’와 ‘물 먹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공교육에서도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고,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은폐된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입니다.

 과거 민간인학살의 한 축이었던 서북청년단이 재건위라는 명칭을 달고 다시 등장하는 현 시대의 부끄러운 모습은 우리를 반성하게 합니다. 구 감독은 "대한민국이 탄생한지 고작 70년인데, 우리는 불과 60년 전의 역사도 모르면서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를 배우고 있고, 다른 나라의 민간인 학살 사건인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이야기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 2015/12/1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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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빈딘성에 있는 떠이빈 사의 옛 이름은 ‘빈안 사’였다. ‘빈안’은 우리말로 ‘평안(平安)’을 뜻한다. 그런데 1966년 이후 ‘서쪽의 영광’이라는 뜻의 ‘떠이빈(Tay Vinh·西榮)’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평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빈딘성 15개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이른바 ‘빈안학살’ 희생자는 1004명. 대부분이 노인, 부녀자, 아이들이었다. ‘빈안학살’을 자행한 것은 한국군 맹호부대 3개 중대로 파악됐다. 종전 이후 베트남 정부가 조사한 결과다.

베트남 사람들은 ‘빈안학살’이 있었던 시기에 맞춰 ‘따이한 제사’를 지낸다. ‘따이한’은 베트남어로 ‘대한’을 의미한다. ‘따이한 제사’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몰살 당했기 때문에 마을 단위의 합동 제사로 진행된다.

▲ 2016년 2월 25일, 베트남 고자이 마을에서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합동제사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대한’이라는 의미의 따이한 제사라고 불린다.

▲ 2016년 2월 25일, 베트남 고자이 마을에서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합동제사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대한’이라는 의미의 따이한 제사라고 불린다.

지난 2월 25일, ‘빈안학살’ 지역인 고자이 마을에서 50주기 따이한 제사가 열렸다. 이 날은 한국 평화기행단 일행도 제사에 참석했다. 한국인이 따이한 제사에 참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학살 피해 유가족들은 한국인을 경계해 왔다.

제사상 옆에는 위령비와 벽화가 있다. 벽화는 ‘빈안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벽화 속 수류탄을 손에 든 한국군, 그의 군복 팔뚝 위에는 호랑이 마크가 표시돼 있다. 맹호부대 마크였다.

▲ 따이한 제사가 열리는 고자이 마을에는 당시 학살 현장의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 따이한 제사가 열리는 고자이 마을에는 당시 학살 현장의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 베트남 빈안(현 빈딘) 지역에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군복에는 맹호부대 마크가 그려져있다.

▲ 베트남 빈안(현 빈딘) 지역에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군복에는 맹호부대 마크가 그려져있다.

취재진은 ‘빈안학살’ 생존자인 응우옌 떤 런 씨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빈안학살’에서 희생됐다. 한국군들은 마을 주민들을 모두 마을 앞 들판으로 모이게 했다. 런 씨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끌려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총기들이 마을 주민들을 향해 발포되기 시작했다, 포연이 가득했고 수류탄도 곳곳에서 터졌다. 런 씨는 어머니가 자신을 품는 탓에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그의 나이가 15세였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65세)씨가 학살 현장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65세)씨가 학살 현장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포연이 가득했어요. 그 속에서 저는 직접 제 눈으로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터졌고 어떤 사람은 팔이 잘려나갔고 어떤 사람은 다리가 잘려나갔고 어떤 사람은 창자가 배 밖으로 다 나와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아픈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수류탄을 맞은) 어머니 다리는 완전히 사라졌고요. 하반신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위쪽으로도 굉장히 심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동생은 머리가 터졌는데 온 사지를 비비면서 광란적으로 그렇게 비명과 신음을 질러대다가 오후 9시에 죽었어요. 제가 다시 의식을 찾고 눈을 떴을 때 일어나보니까 세상에 저 혼자인 거예요. 그때는 제가 “엄마… 하나님…”이란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응우옌 떤 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그렇다면 참전군인들은 기억은 어떨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국내 베트남전 참전 단체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고엽제전우회와 베트남참전자회다. 이들 단체는 한국군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당시 작전을 하기 한 두 달 전부터 주민들에게 마을을 빠져나가라고 하는 선무활동을 진행했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았다”며 ‘빈안학살'을 부인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았다”며 ‘빈안학살’을 부인했다.

내가 몇 번 누누이 얘기하지만 우리 한국국민이 그렇게 독하고 잔인하지를 못해요.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인정이 많고 가슴이 넓고 감성이 풍부한데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그건 아니다 이런 얘기예요.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내가 가서 무릎 꿇고 석고대죄할게요
김성욱 /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사무총장

또 다른 베트남 전쟁 관련 단체 역시 ‘빈안학살’을 부인했다. 우용락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회장 등 관계자들은 “한국군은 대민활동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민간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다만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힘들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베트콩들이 민간인이었던 것처럼 꾸미고 뻥튀기를 하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서 취재진에 보여준 사진, 이 단체는 전쟁 중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별이 힘들다는 점을 강조했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서 취재진에 보여준 사진, 이 단체는 전쟁 중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별이 힘들다는 점을 강조했다.

쏘다 보면, 전쟁하다 보면 어린 애도 맞을 수 있는 거고 안 나오는 사람들 99%는 전부 다 사상이 안 좋은 사람들이다, 베트콩들이다. 그런데 지금 북베트남이 이겨버리고 나니까 자기들이 전부 다 민간인이었던 것처럼 해서 피해를 봤다, 이렇게 뻥튀기를 해서 얘기하는 그런 게 있어요.
우용락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회장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기억은 어떨까? 수소문 끝에 학살 현장에 있었다는 군인을 찾았지만 대부분 만남을 피하거나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재진은 참전군인 김영만 씨를 만났다. 김 씨는 현재 마산,창원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1966년 10월부터 부상으로 제대하기 전까지 5개월 동안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해병 청룡부대 소속이었다.

김 씨는 전쟁 중 사람을 죽이는 데 점점 무감각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가 있던 부대 안에서는 베트콩으로 의심돼 포로들을 총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처형되는 포로들이 베트콩인지 민간인인지 확인하는 절차조차 없었다고 했다. 복무 기간은 짧았지만 그는 전쟁의 광기를 경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동물 중에서도 가장 빨리 미쳐버리는 동물이 인간이지 싶어요. 거의 복수심이지. 전우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한 것에 대해서 복수를 해야 할 때,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는 복수의 대상이 베트콩이죠. 베트콩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마을 전체에 확장을 해버리니까 노인이고 애들이고 할 것 없이 막 그냥 무차별적으로… 그래서 그런 민간인 학살이 생긴 거죠
김영만(70세) / 베트남전 참전군인

▲1966년 10월, 해병 청룡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김영만 씨. 베트남 포로를 처형한 경험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1966년 10월, 해병 청룡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김영만 씨. 베트남 포로를 처형한 경험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흐른 지금, 전쟁의 기억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전쟁 속에 있었던 이들은 종종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한다. 기억은 진실과 다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이번 주에 이어 다음 주에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연속 방송한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김한구

금, 2016/05/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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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뉴스타파 목격자자들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방송(전쟁1부, 두개의 기억)이 나간 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서는 지난해 11월 국방부로부터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참전 단체들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은 조작됐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은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65년 10월 2차 파병 때부터 지상전 전투부대를 베트남에 보낸다. 8년 동안 32만 명의 청년이 참전했다. 대부분의 한국 참전 군인들에게 베트남전은 우방인 미국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베트콩과 싸운 ‘정의로운 전쟁’으로 생각한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사무실에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참전용사에게 격에 맞는 대우를 실시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사무실에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참전용사에게 격에 맞는 대우를 실시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무고하게 희생당해야 했던 베트남 민간인들이 있다.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증오비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12월 3일부터 6일까지. 인근에 주둔하던 한국군 청룡부대 1개 중대가 저지른 것으로 조사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현장에서 학살당한 이가 430명, 이 가운데 어린 아이가 180명에 이른다.

▲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존재하는 베트남전. 한국군 증오비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책임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 우리 사회가 스스로 되돌아볼 시점이다.

▲ 지난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에서 ‘베트남 평화기행단’으로 참여한 한국인들이 참배를 올리고 있다.

▲ 지난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에서 ‘베트남 평화기행단’으로 참여한 한국인들이 참배를 올리고 있다.

금, 2016/05/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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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 한국 정부는 책임 있게 응답해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 한국 정부는 책임 있게 응답해야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인정하고 피해를 배상하라는 판결 환영

2023년 2월 7일, 법원은 베트남전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민간인 학살 인정 및 피해 배상에 대한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1968년 퐁니·퐁넛 마을 학살이 발생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군의 명백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대한민국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참여연대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에 큰 진전을 가져온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 

1999년 언론을 통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공론화된 이후 진상 규명과 책임 인정, 사과와 피해 배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20년 넘게 한국 정부는 나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증언한 피해 생존자들,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가해국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연대해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승소가 가능했다. 진실과 평화를 위해 애써온 모든 이들의 소중한 성과다.  

정부는 이 결과에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진상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퐁니·퐁넛 마을 학살뿐만 아니라 하미 마을 학살 등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하미 마을 학살의 경우 지난해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피해자들의 진실규명 신청이 접수되었음에도 위원회는 조사개시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신속한 조사개시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공식적인 진상조사를 토대로 한국정부는 공식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 나아가야 한다.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파병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한국 사회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가해국으로서 진실과 책임을 제대로 마주할 때, 앞으로 한국이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이 한국 사회가 군대의 파병, 전쟁에 대한 군사적 개입, 무기 수출과 같은 문제에 대해 무겁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불편한 진실에 책임 있게 응답해야만 평화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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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2/1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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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노출되어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태아의 선천성 질환을 산재로 인정해달라는 이 여성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업무환경과 태아의 선천성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부인된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현행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에 대해 적용되는데, 이미 출생한 자녀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업무상 환경에 의해 장애를 입고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요? 조영관 변호사의 비평칼럼을 통해 이번 고등판결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태아의 선천적 장애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서울고등법원 판결

 

참을 수 없는 판결의 가벼움 : 신생아에게 직접 산재보험을 청구하라는 법원

서울고등법원 2015누31307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조영관 변호사

조영관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법은 최소한이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마땅히 지켜야 하는 원칙 중 최소한을 “법” 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한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일을 빠짐없이 ‘법“으로 정해둘 수 없기 때문이고, 뒤집어 생각해보면 “법”이 미처 정하지 못한 공백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원칙에 따라 메워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법의 흠결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자신의 “양심” 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03조). 가장 정제된 법 규범에 의하여, 가장 논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에게 “양심” 이라는 뜨거운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정한 이유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것은 법관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법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 해석에 매우 소극적이다.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판결에서는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정의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신의성실, 사회통념상 합리성, 관습헌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형식적인 법논리에 매여 정작 중요한 원칙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유행어에 빗대면, “뭣이 중헌지” 전혀 모르는 모양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판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만약, 임신 중인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하여 태아가 유산되었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어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런데 만약 태아가 포태 중 사망하지 않고,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라면 어떨까? 태아에게 발생한 질환이 출생 이후의 요인에 의한 후천적 질병이 아닌 선천성 질환이 분명하고, 그 발병요인도 포태 중 업무상 유해요인에 의한 것임이 의학적으로 분명하다면 태아의 선천적 질환 역시 “업무상 재해”에 준하여 치료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사안은 이렇다. 2009년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들 중 15명이 임신을 하였는데, 그 중 5명은 유산을 하였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결국 간호사의 근로여건과 작업환경이 노사간 쟁점이 되었고, 제주의료원은 2011년에 노사합의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역학조사 결과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주의료원에서 임신 중에 근무하면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주야간 교대근무,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ㆍ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으므로, 이러한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 고 하여 업무상 인과관계가 인정되었고, 이에 선천성 심장질환을 출산한 근로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였다. 1심 법원은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산재보험의 대상이 되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 된다고 판단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을 적용대상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근로자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병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항소심 법원은 판결문에서 “출산 이후에는 어머니가 아닌 출산아가 지닌 선천성 질병으로 바뀌므로 그 업무상 재해는 원고(어머니)들과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원고들의 자녀에 대한 질병” 이라고 하면서,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되는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 이므로, “산재보험법이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그 근로자가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 이상 원고들이 아닌 자녀(신생아)에게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 되므로 원고들에게는 수급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로 있을 때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던 질병이, 살아서 태어난 이후에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신생아의 선천성 질병으로 바뀐다는 해석도 기괴하고 소름이 돋지만, 산재보험의 수급권이 신생아에게 있을 뿐 근로자인 산모에게 없으니 청구를 기각한다는 대목에서는 그 논리의 가벼움에 부끄러워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태아가 산재보험을 청구하면 근로자가 아니라서 인정할 수 없다고 할 텐데. 앞으로 임신한 여성노동자는 출산을 앞두고 태아의 이름으로 산재보험에 가입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선천성 질환이라는 상처를 온몸으로 껴안고 태어난 것이 무슨 잘못이기에 공적인 보호를 배제하겠다는 것인가? 산재보험 제도가 정말 그런 것인가?

 

산재보험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적보험이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6조 제2항). 우리 헌법이 모성권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재생산 과정 없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으므로 임신, 출산, 양육에 필요한 보호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아니하고 공공영역에서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헌법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선언(헌법 제32조 제4항)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여성과 태아가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모성보호와 여성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천명하고 있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임신 중인 여성근로자에 대한 내용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현대 산업보건학계에서 유산이나 불임, 2세의 선천성 질환과 같은 생식보건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분야의 산업현장에 만연한 교대근무제가 노동자의 생식기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도 많다. 즉 생식보건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함에도,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그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2세의 선천성 질환’ 문제에 대하여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매우 중대한 제도적 불비이고 입법의 흠결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우리 법원처럼 형식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았다. 

 

독일의 경우가 좋은 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여성 노동자가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선천성 장애아가 출생한 사건에서 “산재보험에서 보험사고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발생한 재해[…]” 라고만 규정하고 있었던 당시의 독일제국보험법(RVO) 제539조 제1항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그 장애아를 산재보험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독일기본법 제20조 제1항의 사회국가원리를 구현함에 있어서 ‘본성상 단일체’(natürliche Einheit)인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독일기본법 제3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위헌결정을 하였다. 1977년에 있었던 판결이다. 

 

이후, 입법부는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취지를 반영하여, 독일사회법제 제7권 제12조에서  “임신 중 모(母)의 보험사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보험사고에 해당하며, 그러한 한도 내에서 태아는 피보험자와 동일하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모에게 업무상 질병을 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유해요소로 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비록 모에게는 업무상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보험사고로 본다.” 라고 규정하였다. 동일하게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업무에 따른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40년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두 나라 법원이 보여준 상반된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토록 하는 것”(서울행정법원 2014. 11. 7. 선고 2011구단8751 판결 등)이다. 이 사건 원고들의 자녀가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은 제주의료원에서 발생한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하고, 그러한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지 않고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분담토록 하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목적에 충실한 해석이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월, 2016/06/2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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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은 2016. 5. 27.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소속 배재흠 교수와 이상훈 교수가 수원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고운학원을 상대로 제기한 파면처분무효확인등 청구소송에서, 학교법인의 위 교수들에 대한 파면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하고, 그 파면처분은 우리의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학교법인은 위 교수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이 사건 1심은 파면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하면서도 학교법인의 손해배상책임은 부정했습니다. 이와 달리 항소심은 파면처분이 교수들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선언하고 학교법인의 손해배상책임까지 인정하여 미지급 임금 외에도 1인당 2천만 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한 것입니다. 수원대학교의 파면처분이 교수들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한다고 인정하게 된 근거와 그 의미에 대해 이명헌 변호사의 칼럼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대학자치 참여는 교수의 인격권 실현이다

[광장에 나온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5나2062577 파면처분무효확인 등(재판장 김상환, 판사 이영창, 조찬영)


이명헌 (변호사,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사립학교 교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징계처분을 받은 경우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하거나 법원에 제소하여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파면처분을 당한 경우 구제를 구하는 일반적 형태는 해당 파면처분의 취소 또는 무효의 확인을 구하고 파면처분시부터 복직할 때까지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사립학교 교원이 부당한 파면처분으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학교법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것인가, 인정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먼저 이 사건 파면처분의 경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학교법인 고운학원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다음카페에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라는 카페를 개설한 후 수원대학교를 폄하하고 총장 등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들을 게시하고 수원대학교에서 불법과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으며 총장이 교비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와 공동성명서 발표를 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2014. 1. 9. 교수들에게 1차 파면처분을 하였다. 교수들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1차 파면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청심사를 청구하였고 심사위원회는 2014. 4. 30. 1차 파면처분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학교법인은 1차 파면처분에서 든 징계사유와 사실상 동일한 사유로 2014. 8. 26. 2차 파면처분을 하였다. 이에 교수들이 이 사건 파면처분무효확인등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은 1993. 10. 12. 선고 92다43586 판결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근로계약에 따라 계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격체이고 근로자의 근로제공은 단순히 임금획득을 위하여 근로계약을 이행하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로를 통하여 이러한 인격을 실현한다는 측면도 아울러 갖고 있다(대법원 1993. 12. 21. 선고 93다11463 판결). 그러하기에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와 사이에 근로계약의 체결을 통하여 자신의 업무지휘권, 업무명령권의 행사와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근로자가 근로제공을 통하여 참다운 인격의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할 신의칙상의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없이 근로자의 근로제공을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이와 같은 근로자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사용자는 이로 인하여 근로자가 입게된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인정된다(대법원 1996. 4. 23. 선고 95다6823 판결).

 

학교법인 또한 사용자로서 사립학교 교원을 부당하게 파면하고 근로수령을 거부하는 것은 근로자에 대한 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로 인해 사립학교 교원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02. 9. 24. 선고 2001다44901 판결 참조). 

 

그런데 사립대학에 있어서 대학교수는 사용자인 학교법인의 배려의무의 상대방인 근로자의 지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교수는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의 주체이다. 헌법 제2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문의 자유는 연구의 자유와 강학의 자유를 내용으로 한다. 그러므로 사립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 대학교수를 부당하게 파면한 경우 사용자로서 근로자인 대학교수에 대한 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의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은 2008년에 “대학교수는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 강의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학문연구를 보다 발전시키는 것이 그 인격권 실현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하므로, 대학교수의 사용자인 학교법인이 그 업무지휘권 등의 행사에 지장을 초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오로지 소속 대학교수를 본연의 업무에서 배제하려는 의도하에 그 의사에 반하여 전공분야와 관련 없는 과목의 강의를 배정함으로써 결국 강의할 수 없게 하는 행위는 교원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 되고, 학교법인은 그로 인하여 대학교수가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배상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2008. 6. 26. 선고 2006다30730 판결). 

 

수원대학교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일응 위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즉, 이 사건 파면처분은 대학교수로서 대학의 자율적 운영에 참여하고 적절한 의견을 제시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교수들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학문의 자유의 실질적인 구현은 대학의 자치로 이루어진다. 대학의 자율성 내지 대학의 자치는 대학의 인사, 학사, 질서, 재정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지만 그 중에서도 교수회에 의한 학교의 자율적 운영이 교수회의 자주적인 판단에 의하여 행해지는데 그 의미가 있다.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학교법인이 등록금을 학생들 교육에 제대로 쓰지 않고 적립금으로 쌓아두어 학생들은 노후된 실험실습장비와 협소한 공간 등 열악한 환경에서 심각한 학습권 침해를 당하고 있고 교수들은 가혹한 연구업적과 저임금으로 혹사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장이 교비를 부적정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교수들의 요구는 대학의 자치라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행사라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학교법인은 파면처분으로 대응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이 대학의 자치의 주체로서 대학교수가 대학의 자율적 운영에 참여하고 적절한 의견을 제시할 권한과 책임이 있음을 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학교법인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다(2016다230690호 사건). 부디 대법원이 대학의 자치의 주체로서 대학교수의 권한과 책임에 관한 의미 있는 판결을 하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월, 2016/07/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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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전국적으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부는 집회를 주최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광우병대책회의와 소속단체 및 활동가들에게 집회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6년 8월 19일에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결과는 1심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패소. 아직 정부는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5억 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할 위험에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인 김선휴 변호사가 이번 2심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짚어봅니다.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

[광장에 나온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손해배상(기)  (재판장 김상환 판사 이영창 판사 조찬영 )

 

김선휴

김선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변호사)

 

2008년 촛불집회를 기억하십니까

 

"2008. 5. 2.부터 2008. 8. 15.까지(10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2398회 이상 개최되었고, 참가 연인원도 93만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지난 8월 16일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판결문에 등장하는 사실관계다. 짧은 두 줄에서도 2008년의 촛불집회가 광범위하고 폭발적이었던 역사의 한 장이었음이 느껴진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당시 촛불집회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지니고 있을 듯하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도 몇 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했었다. 뉴스 댓글마다 여러 집회 일정들이 넘쳐났고, 누가 선동하거나 조직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곳곳에서 모여 촛불을 들었다. 집회의 주최자가 누구인지, 누가 집회신고를 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화문 등 규모가 큰 집회 현장에는 무대 차량이나 진행자가 있었지만, 시민들은 주최 측의 진행과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며 즉석 공연을 하였고, 스스로 만든 손팻말과 유인물을 나눠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행동했던 많은 시민들을 주최자에게 구속되어 그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움직이는 '객체'로 전락시키려 했다. 일부 참여자의 폭력행위로 발생한 손해 책임을 집회 주최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최자가 참여자들의 행동을 지시하고 통제한다고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시민들의 모임, 그것이 집회의 본질

 

이번 판결은 정부 측의 그와 같은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시간·장소 등을 제안하고 일부 장비를 준비하며 사회를 보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발생부터 진행, 소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지배하였다거나, 참가자가 피고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이 사건 집회·시위에 참가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특정 단체가 소속 구성원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개최하는 집회들도 존재한다. 그런 집회라 하더라도 일부 구성원의 일탈 행위에 대해 주최자나 단체 대표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자기책임원칙에 비추어 매우 엄격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물며 2008년의 촛불집회는 말할 것도 없다. 조직되고 통일적인 단일체가 아니라 다원적이고 자발적이며 큰 틀에서 동의를 이룬 개개인들의 모임으로서의 집회였기 때문이다. 판결은 그것이 바로 이 사건 집회의 특징이자 집회의 본질임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다.

 

"집회·시위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공통의 의견이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다양한 사람이 특정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이 집회·시위의 본질이자 현실적인 모습이다."

 

평화 집회를 원하는 다수를 보호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처럼 2008년 촛불집회의 특징에 비추어볼 때,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개별 참가자들의 폭력행위를 지휘하거나 선동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주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2심 소송에서 '과실에 의한 방조' 책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즉 주최자가 집회참가자의 폭력행위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질서유지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폭력행위가 이루어지도록 돕거나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구체적 증거들을 통해 광우병대책회의가 평화적 집회를 계획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점들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집회주최자에게 인정되는 '질서유지의무'의 내용을 설명하며 주최자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집회·시위 주최자가 마치 공권력이나 경찰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집회·시위 참자가의 폭력행위를 미리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거나, 폭력시위자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억압하여 완전무결한 집회·시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정도의 질서유지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때 집회에서 발생하는 일부 위법적인 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국민은 집회 외부의 국민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다수 집회참가자들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수의 일탈행위를 방지하여 평화적 집회를 보장할 책임은 당연히 경찰행정상 집회관리의무에 속한다.

 

그 점을 이번 판결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부 소수 참가자가 폭력·불법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사실상 예견할 수 있더라도, 집회·시위 자체가 집단적인 폭력·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는 보호되어야 한다. 소수의 폭력·불법행위가 사실상 예견된다는 사정만으로 평화적 집회·시위의 기회가 처음부터 박탈된다면, 폭력적인 소수가 자신들뿐만 아니라 평화적 참가자의 기본권행사 여부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 집회를 계획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 주최자에게 질서유지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부에게, 과연 공권력은 본래 자신의 책임인 평화집회 보장의 의무와 책임은 다하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과도한 통행제한, 인권침해적인 과잉진압이 국가인권위에 의해 인정된 바 있다.

 

여전히 정부는 평화적으로 진행하려는 집회를 과잉통제하고 일부의 일탈행위를 이유로 전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엄단을 선포하면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번 판결의 내용이 경찰에 의해 존중되기를 바란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

 

이 사건의 1심 판결에서 반복하여 등장한 표현이 있다. '증거는 수집되지 아니하거나 그 증거가 극히 미미하다',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다', '증거가 부족하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2심인 이 사건 판결에서도 역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 인정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하나 (...) 증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이러한 판결의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집회 주최자에게 제3자의 행위로 인한 피해의 책임을 물으면서, 일단 구체적인 피해의 주장이나 증명부터가 너무 부족하고, 이를 주최자에게 책임 지우기 위한 여러 인과관계들에 대한 증명의 노력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청구한 피해 중에는 출동하려고 방패를 꺼내다 너무 세게 잡아당겨 자신의 방패에 부딪힌 경찰의 타박상,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사한 물대포를 전투경찰이 맞아서 입은 피해, 장소와 경위가 전혀 특정되지 않은 채 분실하거나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방패, 군화, 이불, 카트, 아이스박스, 우산, 보온물통 등까지 포함되어 있다.

 

과연 정부의 소송이 모든 피해와 주최자의 과실을 입증하고 시민단체나 활동가들로부터 5억 원의 배상을 받아내 정부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함이었는지 그 목적이 의심스러워짐은 당연하다. 손해를 배상받겠다는 표면적인 목적 뒤에 숨은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이 사건 판결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폭력시위자뿐만 아니라 집회·시위 주최자에 대해서까지 손해배상책임을 확대한다면, 집회·시위 주최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안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정치현상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소수집단은 집회·시위를 주최하는 데 큰 부담을 갖게 되고, 종국적으로 소수집단의 구성원은 집단적 의견표명을 통해 공론의 장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정부의 이 소송이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행위"(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흔히 말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전형에 해당함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소송으로 인한 비용, 시간, 정신적 부담을 부과함으로써 공공 영역에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을 위축시키기 위한 소송인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정원,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언론인, 시민단체, 정치인, 인터넷에 글을 올린 누리꾼들에 대해서까지도 빈번하게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상당수가 무혐의나 고소취소, 손해배상책임 없음의 결과로 이어져 전략적 봉쇄소송의 남용을 보여주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박근혜정부의 국민입막음 사례 22선 http://goo.gl/uYQWKF 참조). 이와 같은 소송은 당사자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발언과 표현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미국 여러 주에서는 이처럼 법적, 사실적 근거 없이 제기된 전략적 봉쇄소송을 각하나 약식판결을 통해 소송절차를 조기에 종료시켜 피고들을 소송으로 인한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1심과 2심에 걸쳐 무려 8년 동안 소송절차가 진행된 것은, 피고들이 불합리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법원이 현 제도 아래에서 가능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것이어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장과 증명이 법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매우 부족하고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로 제기되었음이 충분히 드러남에도 말이다. 이미 광우병대책회의 소속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억 원의 배상책임의 불안함 속에서 8년 넘게 고통받았다. 정부의 목적은 패소결과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달성된 것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피고는 소송에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대법원이 최근 전략적 봉쇄소송의 요건과 규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집회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져오는 침해의 심각성을 대법원도 인지한 것일까. 너무 늦게 내려진 이번 판결과 달리 앞으로는 부디 전략적 봉쇄소송이 더 빨리 봉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 2016/09/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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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하고 정신과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 즉 정신보건법상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신질환자라면 사회 안전을 위해 격리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 제도가 현실에서 어떤 폐해를 양산해왔으며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김예원 변호사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헌법 위반!
- 정신보건법 제24조 헌법불합치 결정을 환영하며

[광장에 나온 판결] 헌재 2016. 9. 29. 2014헌가9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등 위헌제청(재판관 박한철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김예원 (변호사, 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

-이 기고는 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의 공식의견이 아닌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 대명천지에 강제입원이라뇨?
 
2013년 ‘그것이 알고싶다’는 거액의 이혼소송 중 전 남편 측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방영했습니다. 올 봄 개봉된 ‘날, 보러와요’라는 영화도 누군가에 의하여 대낮에 도심한복판에서 납치되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뒤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는 일이 불법 아니냐고요? 1995년에 정신보건법에 도입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2016년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이라고 판단되기 전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합법적으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합법이라고 해도, 이렇게 끔찍한 일은 실제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아닙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정신보건시설의 인권침해 진정사건은 약 만 여 건(해당 기간 전체 진정사건 중 18.5%)이었고, 2013년 정신보건통계현황에 따르면 국내 정신보건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총 80,462명 중 무려 73.1%가 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때문이었습니다. 

 

보호의무자가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많은 강제 입원이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정신보건법상 보호의무자는 ‘민법상의 부양의무자’ 또는 ‘후견인’입니다. 부양의무자는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기타 친족(배우자, 혈족, 인척)을 뜻합니다. 부모님이나 자식, 남편과 아내는 떨어져 살더라도 부양의무자입니다. 삼촌, 외숙모, 시누이, 처형도 같이 살고 있다면 모두 부양의무자에 해당됩니다. 부양의무자나 후견인이 없을 경우에는 정신질환자가 살고 있는 곳의 시장·군수·구청장이 보호의무자가 됩니다. 

 

■ 강제 입원, 침해되는 기본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병원 밖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물론, 약물을 투여받고, 격리방(감금방)이라는 곳에서 제압복(체포복)이나 테이프에 몇 시간 꽁꽁 묶일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입원은 치료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자의(自意)가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신보건법에는 ⓵ 보호의무자 2인(또는 1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의 입원필요 소견이 있을 때 행하는 입원제도(제24조), ⓶ 시장·군수·구청장이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의 보호신청을 받고 전문의의 진단을 거쳐 행하는 입원제도(제25조), ③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자로서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큰 자를 발견한 사람이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얻어 행하는 입원제도(제26조), 이렇게 총 3개의 자의 불문 입원제도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정신의료기관은 환자 수용시 국가로부터 의료보장(의료급여 또는 건강보험) 급여를 받기에,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는 정신의료기관의 수익과 직결됩니다. 2014년 정신장애인지역사회통합 지원방안 연구에 의하면 정신요양시설 입소자의 대부분이 의료급여 대상자였습니다. 정신의료기관 또는 정신요양시설의 입원 환자 수가 줄어들면 해당 기관이나 시설의 수익이 줄어드는 구조 안에서, 피고용자인 전문의가 입원을 원하지 않는 환자의 마음을 볼 수 있을까요?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위 ⓵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번 위헌 결정은 9인의 헌법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었음에도, 즉시 결정의 효력이 발생되는 ‘단순 위헌’ 결정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내려졌습니다. 갑자기 위 조항이 위헌이 될 경우, 지금 이 제도를 근거로 병원에 입원되어 있는 정신질환자들의 입원근거가 없어지는 법적 공백 상태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지요. 


■ 결정의 의미, 그리고 남은 과제들

 

헌법 제12조에서 말하는 신체의 자유는 ‘신체의 안전성이 외부로부터의 물리적인 힘이나 정신적인 위험으로부터 침해당하지 아니할 자유와 신체활동을 임의적이고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보호의무자에 의하여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되면, 일단 6개월 입원될 수 있고, 이후 법이 정한 갱신절차에 따라 6개월을 초과하는 계속적인 입원이 이루어 질 수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가 정신질환자의 신속한 치료 및 사회 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도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4가지 정도의 이유로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잃은 위헌적인 제도라고 판단했습니다. ㉠ 입원 형태가 실제로는 인신구속에 버금가는 수준임에도 전문의 1인의 판단만으로 정신질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입원을 할 수 있게 하는 점, ㉡ 현실에서 재산 탈취나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큼에도 보호의무자와 정신질환자 간의 이해충돌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전혀 없는 점, ㉢ 다른 입원제도에 비하여 입원 기간이 너무 길어 격리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은 점, ㉣ 아무런 사전 보호절차 없이 일단 인신 구속을 하고, 입원 후에야 사후통지를 하는 등 절차적 합법성이 매우 부족한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이번 결정에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권,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서 비롯되는 인격권, 정신질환자의 법적 능력 관련 평등권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결정’은 사적인 사안에 대하여 공권력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입원은 많은 침습행위가 예정된 의료행위이죠. 그런데 이 제도는 입원하는 사람에게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동의를 배제함으로서 자기결정권 실현을 가로 막았습니다. 또한,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는 장애인의 법적 능력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비장애인인 보호의무자 및 의학전문가가 정신질환자의 법적 능력을 배제하고 강제입원 시키는 방식으로 평등권을 침해했습니다. 이런 세세한 언급도 이 결정문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은 ‘정신질환자’라는 명확하지 않은 법적 개념과 ‘전문의의 재량’이라는 모호함이 맞물려 벌어지던 비극적인 강제 입원을 막는 큰 걸음입니다. 따라서 그 의미만으로 크게 환영받아 마땅합니다. 혹자들은 이 결정이 강제적인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의 적절한 치료를 막았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자의를 불문하는 나머지 2개(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원, 응급입원) 입원제도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 나머지 제도들도 지난 5월 전부개정 된 정신보건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취지에 따라 차차 정비되어야 하겠지요.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하여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 사회의 막연한 혐오가 없어지고, 정신보건을 사회방위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낡은 시각이 개선되길 기대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화, 2016/10/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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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2017년 판결비평

 

01.10  지음(知音)관계거나 내연관계거나 / 하태훈

 

 

 

2016년 판결비평

12.27  어딜 감히 노동자가 파업을 하느냐는 꾸짖음 / 김수영

 

12.02  그들을 다시 정당한 민주시민의 자리로: 다시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을 바라... / 장철준

 

11.18  국민의 역사적인 촛불행진에 길을 터준 법원의 결정 / 이장희

 

10.11  이젠 날 꺼내줘요- 보호의무자에 의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헌법불합치결정 / 김예원

 

09.22  갑자기 '사장님'이 된 1만 3천명 - 야쿠르트 위탁판매원 판결 / 최종연

 

09.04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 / 김선휴

 

07.18  헌법상 집회의 자유와 자기책임 / 남경국

 

07.04  대학자치 참여는 교수의 인격권 실현이다 / 이명현

 

06.20  참을 수 없는 판결의 가벼움: 신생아에게 직접 산재보험을 청구하라는 법원 / 조영관

 

06.03  난민신청자의 '무기한' 구금, 정당한가 / 고지운

 

05.03  한가지 의문! 10건은 왜? 검찰이 10건을 기소한 까닭은? / 이광철

 

04.26  위법한 공무집행에 따른 손해, 국민이 감수해야 하는가 / 이장희

 

03.14  헌재여, 아직 사실만으로 부족한가? / 양홍석

 

01.22  판사 눈에만 보이는 1mm의 상식 / 강신하

 

 

 

2015년 판결비평

12.29  핵심사업 예비타당성 조사가 없었는데도 눈 가린 대법원 / 이정일

 

12.17  판결을 통해 확인된 '경제민주화의 정당성' / 김남근 

 

12.01  반복되는 대형참사에서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벌 / 박주민

 

11.18  집회일까? 기자회견일까? 여전히 궁금증 남긴 판결 / 방서은

 

10.07  수정명령,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드는 마법 / 김선휴

 

09.04  업무방해로 박제된 노동3권의 현주소 / 최용근

 

08.11  결국 지록위마가 옳다는 것인지! / 서보학

 

07.10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 조영관

 

06.25  적립금만 쌓고 교육환경 등한시한 대학, 등록금 환불하라 / 임재홍

 

05.21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해도 손배 책임 없다? / 이희창

 

04.16  긴급조치 발령 합법 판결 ② 헌법적 불법을 응징해야 법치 / 오동석

 

04.10  긴급조치 발령 합법 판결① 역사를 유신독재 시절로 되돌린 대법원의 판단 / 한상희 

 

03.24  형식적이고 자의적인 KTX 승무원 대법원 판결 / 이용우

 

03.16  다시 한 번 대법원이 확인해준 현대자동차의 불법 파견 / 최재혁

 

02.13  공직후보자에 대한 비판과 평가는 유권자의 기본 권리 / 이선미

 

01.23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 양홍석

 

01.22  회의자료 정보공개소송② 정부, 신뢰를 얻으려면? / 정진임

 

01.22  회의자료 정보공개소송① 위원회의 토의내용 공개를 바라보는 법원의 불안한 눈 / 경건 

목, 2017/01/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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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누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런데 관심과 열기만으로 정말 좋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요? 정작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선거운동의 방식으로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면, 유권자로서 후보자를 자유롭게 검증할 수 없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유권자의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선거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선거법을 어떻게 해석, 판단해왔는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과연 국민들의 선거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결정을 내려왔을까요?

 

6회에 걸쳐 <선거와 정치적 자유>를 주제로 한 판결비평칼럼을 통해 확인해봅니다. 법원의 판결이 사회 변화 및 국민의 법감정과 지나치게 괴리되지 않는지, 헌법과 인권의 가치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진행해온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의 선거법 특집입니다. 

 

<선거법 특집 ①> 18세 선거권
<선거법 특집 ②> 정책 지지반대운동과 선거운동 
<선거법 특집 ③> 언론인의 선거운동의 자유
<선거법 특집 ④> 낙천 촉구 피켓과 표현의 자유
<선거법 특집 ⑤> 선거시기 온라인표현행위
<선거법 특집 ⑥>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

 

 

후보와 정당을 말하지 않고 '정책'선거가 가능할까

 

[광장에 나온 판결] 대법원 2011.6. 24. 선고 2011도3447 판결 공직선거법위반{대법관 이상훈(재판장) 김지형 전수안(주심) 양창수}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도9243 판결 공직선거법위반 {대법관 전수안(재판장) 김지형 양창수 이상훈(주심)}  

황영민 (변호사, 법무법인 이공)

 

누구나 선거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연, 지연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인물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특정 정당은 무턱대고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정당이면 후보가 누구든 찍을 수도 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지만 '신혼부부 1억 원 지급' 같은 공약을 보고 기꺼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도 있다. 

 

그러나 각자의 이유가 어떠하든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언론과 선관위에서 '정책선거를 만듭시다' 같은 기사나 공익광고가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정책'선거는 선거라는 제도에서 일종의 지향점이다.

 

4대강 사업 반대, 무상급식 추진을 외치던 활동가, 법정에 서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자 사이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4대강 사업'의 추진에 대해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이른바 '정책선거'라면, 이런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선거일을 한 달 조금 남겨 놓은 시점에 중앙선관위가 황당한 자료를 발표했다. 선관위는 '단체 등의 선거쟁점관련 활동방법 안내'라는 자료에서 "4대강 사업의 계속 여부나 무상급식의 실시 여부 등은 현재 각 정당 및 입후보예정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공약으로 채택하고 있고 이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선거쟁점'에 해당된다"고 한 후, 선거쟁점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이와 관련한 활동은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다양한(?) 활동 '방법'에 대한 규제를 당연히 받게 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4대강과 무상급식에 대해 찬성·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공직선거법 제90조), 인쇄물 배부(제93조), 서명운동(제107조)이나 집회개최(제103조) 등은 선관위의 단속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대표적으로 4대강 사업 반대 캠페인을 벌인 환경단체 활동가들과 친환경 무상급식 캠페인을 벌인 단체의 대표자가 기소되어 법정에 섰다.

 

선거운동 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의 탈법행위? 너무나 모호한,  
그러나 지극히 단순한 기준, '정당과 후보자를 거론하지 말 것!'

 

대법원은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 관련 캠페인을 벌인 활동가들에 대한 판결에서 우선 4대강사업·무상급식 등 이른바 '선거쟁점'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정책에 대한 단체의 지지·반대활동이 전부 공직선거법에 의한 규제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선관위의 판단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정책에 대한 단체의 찬반 활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목적의 탈법행위' 또는 '선거운동'에 해당하여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그 정책이 '선거쟁점'이 되었는지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될 수 없고, '일정한 판단 기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는 '행위가 행하여지는 시기·장소·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은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 피고인과 후보자·경쟁 후보자 또는 정당과의 관계, 행위의 동기 및 경위와 수단 및 방법, 행위의 내용과 태양, 행위 당시의 사회상황 등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고 복잡한 기준을 제시했다.

 

그런데 위 두 판결은 기소된 활동가들의 유무죄 판단에서 다른 결과를 보였다.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을 한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친환경무상급식연대 대표자의 경우에는 (비록 일부 활동에 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다수의 캠페인 활동에서 선거법 위반 행위가 있었다고 하여 최종 벌금 200만원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와 같이 다른 결론을 낳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캠페인에 대한 검사의 공소사실은 유사했다. 결국 문제는 대법원이 말하는 선거법 위반 여부를 좌우하는 복잡한 '기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가이다.

 

먼저 무죄를 선고받은 4대강 반대 활동가들의 경우, 2심 법원은 ①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에 관해 주요 정당이 모두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었고, 피고인들이 선거구인 서울이 4대강 사업과 직접 관련 있는 지역도 아니라는 점 등을 종합해 피고인들의 '4대강 사업 반대활동' 자체를 선거운동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또한 ② 피고인들이 소속된 환경단체가 지방선거 이전인 '4대강 사업' 초기부터 집회 및 토론회, 거리캠페인 및 서명운동, 현장조사 등 반대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왔고, 이 사건 후에도 관련 사진전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유지하였으며, 지방선거 무렵 피고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도 '4대강 사업'의 본격적 진행에 따라 반대운동도 강화된 데 기인한 측면이 강해 반드시 지방선거를 겨낭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나아가 ③ 피고인들이 게시 또는 배부한 사진, 인쇄물, 현수막 등에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언급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와 같은 2심 법원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한편, 친환경무상급식연대 대표자의 경우, 보다 다양한 일시, 장소에서의 활동에 관해 개별적으로 유무죄 판단이 이루어졌는데, '종전부터 주장하여 왔던 무상급식 정책을 지지하는 내용의 행사일 뿐 선거나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자와의 관련성을 나타내면서 무상급식 정책을 지지한 것으로 볼 수 없는 행위'는 선거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죄로 보았다. 

반면 대법원은 무상급식 정책에 찬성·반대하는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자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이를 지지·비판한 행위에 대하여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나 반대 또는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도모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목적의지가 인정된다고 보아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두 판결의 결론을 단순화하면 대법원이 말하는 복잡한 '기준'은 결국 활동가들이 정책에 대한 찬반과 함께 정책에 대한 '특정 정당 및 출마 예상 후보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비판했는지 여부였다고 할 수 있다. 

 

후보나 정당을 말하지 않고, '정책'선거가 가능한가

 

선거에서 시민들이 선거법에 위반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은 간략히 이렇게 정리된다. 

'정책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찬반 의견을 말해도 좋다. 그러나 정책과 관련해 후보자나 정당을 거론하지 말라!'

선거에서 정책 논쟁이 활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정책에 대한 찬반으로 후보자와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정책은 말하되, 관련된 후보나 정당은 말하지 말라니. 이런 방식이라면 이른바 '정책'선거는 불가능하거나 공허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물론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책과 선거의 연계를 차단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이 여타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사 형태를 찾기 힘든 현행 규제중심적 선거법에 있음은 분명하다. 

 

무고한 시민들을 선거 범죄자로 만드는 선거법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 전이라도 법원이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한 단계 더 보호할 수 있는 전향적인 해석을 내놓는 건 어떠했을까.

 

아마도 두 달이 지나면 우리는 또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국정농단, 사드, 위안부, 남북관계, 기본소득 등등. 수많은 선거쟁점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런데 정작 선거에서 우리는 정당과 후보자에게 이런 정책을 원하고, 그 정책을 추진하는 자를 지지하겠다고 자유롭게 소리칠 수 있을까?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릴 수 있는 진정한 '정책 선거'가 가능해 질 때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목, 2017/03/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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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통령 선거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촛불이 만들어낸 대선이었는데, 과연 촛불을 든 시민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이번 선거기간 충분히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 이후에도 유권자의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선거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개정요구의 목소리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보통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형사재판과 헌법소원이 뒤이어 제기됩니다. 선거법의 해석, 적용과 위헌성 판단은 선거법 그 자체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과연 이전에 국민들의 선거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결정을 내려왔을까요? <선거와 정치적 자유>를 주제로 한 판결비평칼럼을 통해 확인해봅니다. 
 
<선거법 특집 ①> 군대 가고 공무원도 하는 18세, 투표는 왜 안 되지?
<선거법 특집 ②> 후보와 정당을 말하지 않고 '정책'선거가 가능할까 
<선거법 특집 ③> 언론인과 사회복무요원은 국민이 아닌가
<선거법 특집 ④> 온라인 선거운동 규제의 전환점, 한정위헌결정
<선거법 특집 ⑤> 후보자 검증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후보자 검증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광장에 나온 판결] 전주지방법원법 2013고합96판결[판사 은택(재판장), 강동훈, 윤양지], 광주고등법원(전주) 2013노237 판결[판사 임상기(재판장), 김세용, 이수환]

류제성 변호사(법무법인 진심)

 

1. 들어가며

 

선거에서 후보자의 공직적격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후보자의 자질, 도덕성 등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런데 후보자에 대한 의혹제기는 공직선거법상 낙선을 목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허위사실공표죄나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를 “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후보자비방죄로 처벌될 수 있다(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 제251조). 

이 두 규정, 즉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에 대한 중요한 판결로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안도현에 대한 판결을 살펴보자. 

 

2.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가 무죄를 받기까지

 

안 시인은 2011. 10. 30.경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에서 ‘문화재청 관리기록상 청와대가 소유자로 되어 있는 안중근의사의 유묵이 현재 청와대에 있지 않고 소재를 알 수 없다’는 내용의 방송을 보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 박근혜 18대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청와대를 나오면서 당시 청와대에 있던 유묵을 가지고 나와 소장하여 왔던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 시인은 ‘박 후보가 직접 유묵의 행방에 관하여 책임 있게 해명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박 후보가 도둑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여러 차례 게시하였다. 

 

검사는 안 시인이 ‘박 후보가 안중근 이사의 유묵을 훔쳐서 소장하고 있거나 유묵 도난에 관여하였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함과 동시에 후보자를 비방하였다는 이유로 안 시인을 기소하였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제1심에서 배심원은 전원일치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 모두 무죄로 평결했지만, 법원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무죄, 후보자비방죄는 유죄라고 판단하면서 형의 선고를 유예하였다. 후보자비방죄에 대해서는 배심원 평결과 달리 유죄라고 판단하면서도 선고를 유예한 이유로 ⅰ) 대선 후보 자격 검증이라는 공익목적은 명목상 동기에 불과하고 낙선시킬 목적으로 박 후보를 비방한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하여 위법하다. ⅱ) 이 사건은 법리적 쟁점이 많아 법률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이 판단하기 어렵고, 사안의 성격상 정치적 입장,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따라 좌우될 수 있어 배심원 평결이 법관의 법적 평가를 기속할 수 없다, ⅲ) 따라서 배심원 평결은 양형에 한해서만 사실상 기속력을 가지므로 절충적으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항소심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1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무죄라고 판단하였고, 후보자비방죄에 대해서는 해당 표현이 ‘비방’에는 해당하나 피고인으로서는 진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과 피고인의 의혹제기가 박 후보의 공무담임 적격성을 검증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 있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다시 검사가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해당 사건에서의 쟁점은 여러 가지이나 글의 성격과 지면의 제약상 아래에서는 허위사실공표죄 및 후보자비방죄에 위헌성은 없는지, 합헌이라고 하더라도 해석·적용상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및 그러한 기준에 의할 때 1심 및 항소심 판결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관해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3. 허위사실공표죄의 위헌성 및 적용상 한계 

 

허위사실공표죄는 선거와 관련하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의 목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를 규제하므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유권자의 알 권리를 직접적으로 제약한다. 그런데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헌법적 보호의 필요성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허위사실과 진실인 사실은 서로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그 구별이 언제나 간단한 것은 아니며 역사상 허위라고 여겨진 사실이 사후에 진실로 밝혀지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제기된 의혹이 진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된 일반 유권자에게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차단하는 위축효과를 초래한다. 우리 헌재도 허위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허위사실공표를 형사처벌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공인에 대하여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 즉 그것이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knowingly), 또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비상식적인 무시(reckless disregard of material facts) 속에서 허위의 진술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다는 판례가 확립되어 있다. 더 나아가 선거에서 설령 허위진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법원이 나서서 이를 규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으며 선거와 정치적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할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규제는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정립해 가고 있다. 

 

반면 우리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단순히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는바 법조문의 표현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위헌의 소지가 매우 크다. 따라서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대법원은 후보자에게 위법이나 부도덕함을 위심케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 그에 관한 공적 판단이 있기 전이라도 의혹제기가 쉽게 봉쇄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의혹사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가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소명자료에 의하여 제기한 의혹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비록 사후에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처벌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유죄의 입증책임을 검사가 진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무너져 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허위성에 대한 피고인의 소명부담은 검사의 입증책임보다 그 양과 질에 있어서 반드시 가벼워야 한다. 피고인이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제출한 자료가 구체성이 없는 막연한 내용에 불과한 경우에만 소명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허위사실임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유권자를 기망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을 공표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1심은 ‘박근혜후보가 안중근의사의 유묵 도난에 관여하였다거나 도난된 유묵을 소장하였다’는 사실은 진위불명의 사실로서 의혹을 제기하는 피고인이 해당 사실이 진실하다는 점을 소명하여야 하는데 피고인이 이를 소명하지 못하였으므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어 결과적으로는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의혹을 제기하는 자의 의혹사실의 존재에 대한 소명의 부담을 검사의 유죄입증책임과 동일한 수준으로 본 것이다. 반면 항소심은 의혹을 제기하는 자가 그 의혹사실의 존재에 대한 소명책임을 진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르면서도 피고인이 의혹을 제기하게 된 경위와 동기, 피고인의 소명 및 검사의 수사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허위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라고 하였다. 무죄라는 결론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지만 1심은 검사의 입증책임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피고인에게 과도한 소명부담을 지운 반면 항소심은 그 오류를 시정한 것이다.  

 

4. 후보자비방죄의 위헌성 및 적용상 한계

 

후보자비방죄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 등을 비방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외국의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법원은 ‘비방’에 대하여 정당한 이유없이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헐뜯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더라도 ‘비방’의 의미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비판행위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후보자의 정책에 대한 평가나 의혹제기, 진실로 밝혀진 것들에 대한 공표조차 봉쇄당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후보자비방죄에 대해서도 엄격하고도 제한적인 해석과 적용이 요구된다. 

 

특히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단서를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ⅰ) 적시된 사실이 전체적으로 보아 진실에 부합하고, ⅱ)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고, ⅲ)행위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다는 동기에서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진실인 것으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비록 사후에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1심은 배심원의 전원일치 무죄평결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면서 피고인이 제기한 의혹이 진실인지, 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고, 별다른 논증 없이 피고인이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 자격 검증이라는 공익목적은 명목상 동기에 불과하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면서 배심원이 법리적 사안에 대한 판단을 잘 하지 못할 것이라거나 편향된 판단을 할 것이라는 법관의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의 건전한 상식과 토론에 기초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자는 국민참여재판의 입법취지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5. 결론

 

후보자에 대한 의혹제기와 비판을 봉쇄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하고, 후보자의 공직적격에 대한 검증을 방해하여 자격없는 대표자가 선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는 폐지 내지 개정하여야 하고 존속할 경우 항소심처럼 엄격하고도 제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김경호, ‘후보자 검증을 위한 의혹제기와 후보자비방죄의 위법성조각 판단 기준에 관한 연구 : 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언론과학연구 제13권3호, 2013.
백태웅,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미필적 고의의 법리’, 법과사회 49호, 2015.
조국, ‘일부 허위가 포함된 공적 인물 비판의 법적 책임 –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판례 비판을 중심으로 -, 서울대학교법학 제53권 제3호, 2012.
홍승희, ‘국민참여재판법 개정안의 개선방안 -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중심으로 -’, 형사정책연구 제25권 제3호, 2014. 


 

월, 2017/05/0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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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아픔, 이제는 ‘손잡고’ 가자 – [국가손배대응모임]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합리적 판결을 기대하며   김제완(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해고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
월, 2017/07/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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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아픔, 이제는 ‘손잡고’ 가자

-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합리적 판결을 기대하며

김제완 교수

 

김제완(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해고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해고는 살인이다’는 비유가 종종 사용된다. 그런데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을 보면, 이 표현이 비유가 아님을 알게 된다. 2009년 시작되어 무려 2646명(당시 생산직 전체 인원의 약 45.5%)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잃게 한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하여, 지금까지 28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그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임을 증명한 사건이다. 


  어느 사회 어느 기업이든 적절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적절한 구조조정을 통하여 기업은 효율성을 높여 활력을 찾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도산을 막아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유지시켜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주주와 경영자들이 부당한 이익 추구를 위해 대규모 정리해고를 악용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긴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하거나, 과도하게 정리해고를 하는 것을 우리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쌍용차 정리해고의 경우, 과연 대규모 정리해고가 필요한 상황이었는지,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일시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해고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쌍용차는 IMF이후 어려움을 겪은 대표적인 기업인데, 2004년 중국의 자동차업체인 상하이기차에게 인수되었고, 5년간의 워크아웃 과정을 마치고 회생되었다. 그러나 그 후 중국 본사에로의 기술유출과 3천억원 투자약속 불이행 등 상하이기차 측의 이른바 ‘먹튀 의혹’이 문제되다가, 결국 상하이기차는 2009년에 한국 철수를 선언하며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고, 그간 제기되던 ‘먹튀 의혹’이 현실화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법적인 요건을 갖추었느냐가 문제되었다. 그 과정에 상하이기차 측이 제출한 회계자료에 의문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유형자산의 손상차손(구축물, 건물 등)을 과다 계상하여 자산가치를 반토막 내는 방법으로, 부채비율을 두 배 이상으로 인위적으로 증가시켰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결국 이와 같은 ‘먹튀 의혹’ 대규모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노조는 이른바 ‘옥쇄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 파업에 대해 당시 이명박 정부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여, 경찰은 헬기와 기중기까지 동원한 강제집압을 하였고(경찰청장 조현오), 경찰과 노동자가 다치는 등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파업은 진압되었다.   


  쌍용차 사건과 관련하여 제기된 민사소송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점을 다툰 해고무효확인 소송이다. 2014년 2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아 무효라고 선고하였다. 그러나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었고,1) 결국 해고노동자들 패소판결이 2016년 9월 28일 확정되었다.


  필자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른 한 민사사건은 아직 계속 중으로, 국가가 해고조합원들과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이다. 파업을 강경진압한 후 국가와 회사, 보험회사 등은 파업 참가자 184명과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총액 약 114억원), 주택과 월급 등을 가압류하였다.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손배ㆍ가압류는 실제로 돈을 받아내겠다는 목적보다는 노조활동을 억압하겠다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이와 같이 권력이나 자본이 시민, 노동자, 소비자들의 사회참여와 비판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미국에서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고 하여, 소권의 남용이라고 평가한다.2) 해고를 당한데다가 거액의 가압류까지 당하여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게 된 해고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천막농성과 복직투쟁을 하게 되었고, 극한의 절망에 빠진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사망과 자살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사례는 쌍용자동차에 그치지 않았는데, 철도노조, 한진중공업, 현대차비정규직 노조 등에  수십억,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이어져,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족들이 고통 받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에 우리 시민사회에서는 ‘손배 가압류 문제를 잡자!’는 구호 아래 조국 교수, 은수미 의원 등이 참여하여 ‘손잡고’라는 단체가 결성되었고,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을 돕기 위한 ‘노란봉투 운동’(가수 이효리씨가 참여하여 널리 알려진 바 있다.)과 관련 노동법ㆍ제도 개선운동을 펼치고 있다.3) 
  
  쌍용차 손해배상 사건에서 국가가 쌍용차 노조 및 파업에 참가한 해고노동자들에 대해 청구한 내용은, 진압 당시 노조원들의 폭력행사로 인하여 손괴된 장비와 다친 경찰관들에 대한 치료비와 위자료 등 약 14억원(지연손해금을 포함하면 총액 약 30억원)이다. 그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진압에 동원되었던 헬기와 독일제 기중기 등 고액의 장비가 일부 손상된 부분에 대한 수리비이고(당연히 고가일 수밖에 없다), 그밖에 부상당한 경찰의 치료비 및 위자료가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국가의 청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졌고, 대법원에 상고중인데 머지않아 선고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되고 있다. 해고노동자 측에서는 많은 상고이유를 제기하고 있지만, 필자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국가는 국민들 간의 갈등을 완화하여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다. ‘먹튀 의혹’이 있는 회사가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신청할 때, 국가는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갈등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였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도리어 국가까지 나서서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회사나 보험회사가 제기하는 손해배상 청구는 차치하더라도, 국가의 손해배상청구는 전형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소송의 성격은 이 사건을 심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둘째, 진압과정상 장비가 일부 손상을 입는다거나 경찰공무원이 크고 작은 부상당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손해는 상대방 국민에게 매번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받아낼 것이 아니고, 국가가 예산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상이다. 미국에서는 경찰공무원과 소방공무원의 부상 등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으로 처리하지 않고 예산으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원칙을 ‘fireman’s rule’이라고 한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매번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면, 사회통합에 저해가 되기 때문이다.4)
    
  셋째, 과도한 강경진압이었다는 사정이 손해배상액 산정시 참작되어야 한다. 파업은 노사 양측에 서로간의 인내와 양보를 요구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는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닌 노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특별히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없었음에도 경찰은 진압을 결정하였을 뿐 아니라, 4만볼트 테이저건, 고무탄 총 등 살상무기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강경진압을 하였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해고노동자들이 극력 저항할 것이고, 양쪽 모두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을 것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과도한 강경진압은 설사 경찰측 손해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 ‘기여’한 바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파업을 진압하는데 경찰 헬기와 고가의 독일제 기중기까지 특별히 임차하면서까지 동원하였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고등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사정을 참작해 달라는 피고 측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는 대법원에서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쌍용차는 지난 2015년 해고자 중에서 187여명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는 데 노력하기로 합의했지만, 2016년 2월 18명이 1차로 복직하고5)  2017년 4월 19명이 추가 복직된 이후 현재까지 추가 복직자는 없다고 한다.6)  ‘먹튀 의혹’이 있는 정리해고로 인한 파업에서 폭력적 강제진압을 당한 후, 그로 인해 형사처벌도 받고,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도 패소한 해고노동자들에게, 이제는 헬기와 경찰이 빌려 쓴 독일제 기중기의 수리비까지 전액 물어내라고 하는 것이 온당한가? 우리 사회의 평화와 통합을 위하여 대법원의 합리적인 판결을 기대한다.

 

1)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으로는, 김태욱,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 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 참조. 

2)  예컨대, 언론의 비판활동을 억제하기 위하여 국가나 고위공직자가 언론사나 기자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한다. 한국기자협회, “[우리의 주장] 언론자유 침해하는 ‘전략적 봉쇄소송’”(한국기자협회 편집위원회, 2016. 3. 23.) 참조.

3) ‘손잡고’의 취지와 주요 활동에 관하여는, 홈페이지 참조

4)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김제완, “집회 및 시위로 인한 경찰의 손실에 대한 불법행위법 적용의 문제점 : 영미법상 municipal cost recovery rule 및 fireman’s rule의 시사점” 민주법학 제62호 (2016. 11.) 참조.
5) 매일노동뉴스, “8년간 복직 기다린 쌍용차 해고자들 다시 거리로 - 복직 합의했지만 손배가압류에 고통 … 국회에 제도개선 청원 예정” (2017. 1. 11.) 참조. 
 6) 연합뉴스,“언제쯤 일터로…'희망고문' 된 쌍용차 해고자 복직”(2017.7.4.)참조. 


   

월, 2017/07/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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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으로 날아오른 제주공항 비정규직

- 제주공항공사 불법파견 승소판결

[광장에 나온 판결] 제주지방법원 2017. 10. 26. 선고 2016가합12607 판결(재판장 서현석 판사 김봉준 서영우)

 

최종연 / 변호사(노동법률사무소 새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들어가며 – 공항 비정규직이라는 적폐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하여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었다. 탑승객이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비행기를 탑승할 때까지 마주치는 공항 직원 – 청소, 시설관리, 특수경비원, 보안검색직, 수화물시설 운영, 탑승교 직원 등 – 의 사실상 전부가 비정규직 근로자이고,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비중이 2016년 10월 기준으로 84.2%에 달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약속은 상당한 사회적 기대를 받고 있다.

 

약 6개월여가 지난 현재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범위 및 방법론상의 문제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번에는 제주에서 전혀 뜻밖의 불법파견소송 승소 소식이 들려왔다. 협력업체 소속으로서 제주국제공항에 근무하였던 폭발물 처리요원(소위 'EOD'요원)이 한국공항공사와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국공항공사에게 고용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위 '파견법'과 '파견소송'의 배경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견법의 도입 배경

 

'파견', 즉 '근로자파견'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지 아니하고 필요할 때 공급받아 사용하는 한 형태이다. 근로자파견이 자유로이 허용되면 누군가는 근로자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인력 관리만 하면서 영리를 취할 우려가 있으므로 종래부터 근로기준법 및 직업안정법은 노동조합을 제외하고 근로자파견사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1998. 2. 9. 노사정합의의 한 내용으로 근로자파견제도의 도입이 합의되면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 도입된다. 파견법은 파견의 사유, 파견의 기간, 파견사업의 허가에 관한 사항을 정하면서, 원칙적으로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한 전문지식ㆍ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로 제한하고, 파견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그 다음날부터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이른바 '고용의제'조항을 규정하였다(제6조 제3항).

 

파견소송의 간략한 역사

 

만약 불법한 근로자파견관계에서 근로기간이 2년이 넘었다면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그 유명한 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2320 판결에서 대법원은 고용간주조항이 적법한 근로자파견에만 적용된다고 축소해석된다고 볼 근거가 없으므로, 불법파견 근로자도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되어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이후 파견법 해당 조항이 '고용의무'조항으로 개정되었어도 '고용의제'가 '고용의무'로 바뀌었을 뿐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으로 판단된 근로자를 고용하여야 한다는 법원의 태도는 유지되었고, 결국 2012년 파견법 개정으로 근로기간 2년이 지나지 않아도 불법파견 근로자를 즉시 고용할 의무가 입법되었다.

 

결국 파견법에 따라 근로자 입장에서는 파견대상업무가 아닌 업종에서 내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는 점, 또는 파견대상업무에 해당하나 2년을 초과했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는 기준은 어느 것이 있을까? 기념비적이면서도 안타까운 2015년 2월 26일, 대법원은 세 건의 파견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면서 그 기준을 제시한다. 대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를 ① 제3자의 상당한 지휘ㆍ명령, ② 제3자의 사업 편입, ③ 원고용주의 독자적 권한 여부, ④ 계약의 한정성ㆍ업무의 구별성ㆍ전문성ㆍ기술성, ⑤ 원고용주의 독립 등 요소에 따라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 기준을 적용했을 때 KTX 여승무원들은 파견관계가 아니지만 현대자동차 아산공장과 남해화학 비정규직들은 각각의 회사와 파견관계에 있다고 인정했다. 위 대법원의 근로자파견 판단 기준은 이후 수많은 파견소송의 기준으로서 기능하여 오고 있다.

 

이번 판결의 요지

 

이번 제주공항 판결에서 법원은 원고가 비록 형식적으로는 한국공항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와 배경으로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음을 인정하였다. 우선 제주공항의 폭발물 처리요원은 정규직 2명 비정규직 3명으로서, 정규직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부터 업무 보고ㆍ결재를 받는 한편 공동의 공간에 근무하면서 공항공사가 제공한 장비를 사용하고 교육ㆍ훈련을 받았다. 또한 폭발물 처리 업무가 사용사업주인 공항공사의 사업에 계속적으로 꼭 필요한 업무라는 점도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 요소로 보았다.

 

한편 과거 대법원은 인천공항공사 소속 특수경비원들이 제기한 파견소송에서 공항공사의 지휘ㆍ명령은 경비업법상 특수경비원들에 대한 당연한 지휘ㆍ감독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2012다79439 판결). 이 때문에 이번 제주공항 판결에서도 폭발물 처리요원이 특수경비원이라는 공항공사의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폭발물 처리업무가 특수경비원이 수행하는 항공보안검색업무와는 근거규정을 달리하고, 자격요건이 특수경비원 또는 보안검색요원과도 다르므로 특수경비원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의미와 여전히 아쉬운 점

 

이번 제주공항 판결은 양대 공항공사에 근무하는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물론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정규직 전환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줌은 물론, 파견법의 취지를 살펴 사용사업주의 필수 업무 수행 여부를 근로자파견의 한 지표로 해석하였고, 생산관련업무가 아닌 안전서비스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 또한 불법 근로자파견관계의 대상이 된다는 선례로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경비원에 관한 대법원 판결 때문에 보안검색직군 근로자가 파견근로자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사실 공항 비정규직 대다수를 차지하는 직군은 보안검색직이다. 이번 판결은 보안검색직 근로자가 파견소송을 제기할 경우 여전히 특수경비원인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자기 힘으로 불법파견 여부를 입증할 증거를 모으고 장기간 버티는 것도 전형적인 파견소송의 어려움인데, 이번 제주공항 판결에도 그러한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원고는 2015. 12. 29.에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판결은 약 22개월 후인 2017년 10월에 선고되었다. 과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2천 명이 집단으로 제기한 파견소송은 약 4년 만에 1심 판결이 선고되기도 하였다. 파견소송은 근로자가 파견관계를 입증할 각 지표별 다량의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보통인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해고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장기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또한 파견소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통상 근로자가 관련 판례를 어느 정도 이해하였음을 토대로 각종 증거를 수집하여야 하는데, 문서ㆍ사진의 유출은 내부 보안규정에 대부분 위배될 수밖에 없으므로 원고인 근로자가 징계 등의 불이익을 우려할 수 있다.

 

맺으며

 

이번 제주공항 판결의 원고는 2017년 1월 20일, 설 연휴를 앞두고 신규 도급업체로부터 고용승계를 거부한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 이유는 '법적 소송을 진행중인 것으로 파악'돼서 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 2008년부터 성실히 일해온 일터에서 내쳐질 때 원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얻어낸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은 판결은 더욱 귀중할 수밖에 없다.

 

파견대상업종 위반, 파견기간 위반 등 파견법 위반은 엄연한 형사처벌 대상이고, 정부는 불법파견된 근로자가 있는지 확인하여 시정명령 및 기소를 함으로써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파견근로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정부가 파견법상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여부는 우선 공공기관 및 국가기관에서 비정규직 전환에 대해 얼마나 적극성을 보이는지, 나아가서는 이번 제주공항 소송에서 어떤 내용으로 항소를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목, 2017/11/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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