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협조요청] 시민 무작위 도청한 기무사세월호TF, 검찰, 전파관리소 고발장 제출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 파일을 뉴스타파가 단독 입수했다. 이 블랙박스 영상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선조위)가 민간 포렌식 업체에 의뢰해 복구한 것이다. 세월호 선조위가 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민간업체는 지난 8월 말까지 세월호 선체에서 수습된 디지털 기기 265점을 인계받았고, 이 가운데 휴대전화 26개, 차량 블랙박스 8개, 노트북 2개 등에서 모두 43개의 메모리를 복구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는 이 가운데 ‘주차중 녹화’ 기능이 작동돼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지는 순간의 상황이 녹화된 블랙박스 4개의 영상 파일을 입수해 분석했다.
급격히 왼쪽으로 쏠린 차량들… 바닷물 차 들어오는 모습도
입수된 블랙박스 영상들은 모두 화물칸 C데크와 C데크 2층 트윈데크에 있던 차량 4대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 차량들의 선적 위치와 블랙박스 화각은 아래와 같다.
이 가운데 트윈데크에 주차됐던 차량의 블랙박스에는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면서 차체가 앞으로 튕겨져 나와 왼쪽으로 쏠려 내려가는 모습이 담겼다.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 상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무렵의 상황으로 추정되지만 블랙박스 화면 상의 시각은 4월 12일 오전 9시 무렵으로 표시돼 있다. 장비에 입력된 시각이 실제와는 큰 오차가 있는 것이다.
C데크 엔진 케이싱 벽면에 붙어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는 선체 뒤편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다. 미동도 느껴지지 않던 화물칸에서 갑자기 바로 앞 트럭에 실린 화물이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밀리는가 싶더니 이내 주변 차량들과 멀리 보이는 트윈데크 위 차량들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선체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하면 모두 왼쪽으로 쏠려 내려간 것이다. 이 무렵 시각이 해당 블랙박스 화면엔 오전 7시 28분쯤으로 돼 있어, 역시 실제와는 적지 않은 오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블랙박스 속 또 다른 영상에는 바로 옆쪽 화물차량에 실렸던 박스가 툭 떨어지고, 이어 앞쪽에 있던 승용차 한 대가 튕겨져 나와 천장에 부딪히는 모습도 남아 있다. 이미 선체가 90도 이상 넘어간 시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곧이어 1분 뒤에는 멀리 트윈데크 쪽에서부터 바닷물이 빠른 속도로 차 들어오는 장면도 남아 있다.
C데크 정중앙 앞쪽에 주차됐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도 화물들이 충돌하는 소음이 들린 직후 주변 화물차들이 일제히 왼쪽으로 넘어지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블랙박스 화면에는 시간 표시가 없고, 파일명에만 오전 8시 48분 58초라는 시간 정보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4번째 블랙박스 영상은 C데크 좌현 벽 쪽에 실린 차량의 것이었다. 이번에도 화물 충돌음이 들려오더니 멀리서부터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밀려 넘어지고, 곧이어 이 차량도 좌측 벽에 강하게 부딪힌다. 곧이어 벽면 쪽에서 상당한 양의 물이 분출돼 차량을 덮친다. 이때 화면에 표시된 시각은 오전 8시 49분 무렵이었다.
민주당 세월호특위 소속인 김현권 의원은 이번에 복원된 블랙박스 영상에 대해, “세월호 침몰 순간 화물칸에서 발생한 일을 포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1차 자료로서, 이를 복구해 낸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한 쾌거”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자료를 바탕으로 세월호 선조위와 전문기관들이 협력해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과정과 원인에 대해 어떤 의혹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세밀한 조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작가 김탁환은 이들의 수중 수색을 이렇게 표현했다.
-
선내에서 발견한 실종자를 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맹골수도가 아니라면 평생하지 않아도 될 포옹이지
안은 채 헤엄쳐 좁은 선내를 빠져나와야 한다. - 김탁환 소설 <거짓말이다> 33쪽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민간잠수사, 심해에 가라앉은 침몰선에서 희생자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이렇게 두 팔 벌려 ‘포옹’하는 방법뿐이었다. ‘이승을 떠난 실종자가 잠수사를 붙잡거나 안을 순 없으니’
처음에 들어왔을 때 수색 중에
故 김관홍 / 세월호 구조 민간인 잠수사 생전 인터뷰 중
베개나 이불을 만졌을 때
상당히 놀랐는데 되레 사고자를 찾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담담해지더라고요
그리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손으로 더듬어 찾아낸 실종자의 주검을 끌어안았던 ‘기막힌 포옹’의 기억은 마치 화상자국처럼 민간잠수사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한 명이라도 빨리 가족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하루 4~5번씩 잠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중수색 도중 사고로 숨지기도 했고, 스스로 삶을 놓기도 했다. 또 많은 이들은 정신적 트라우마와 함께 근육통증, 목 디스크, 골괴사 등 잠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희생자이기도 한 민간잠수사의 현실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오승아
글 구성 김근라
취재 연출 박정대
작가 김탁환은 이들의 수중 수색을 이렇게 표현했다.
-
선내에서 발견한 실종자를 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맹골수도가 아니라면 평생하지 않아도 될 포옹이지
안은 채 헤엄쳐 좁은 선내를 빠져나와야 한다. - 김탁환 소설 <거짓말이다> 33쪽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민간잠수사, 심해에 가라앉은 침몰선에서 희생자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이렇게 두 팔 벌려 ‘포옹’하는 방법뿐이었다. ‘이승을 떠난 실종자가 잠수사를 붙잡거나 안을 순 없으니’
처음에 들어왔을 때 수색 중에
故 김관홍 / 세월호 구조 민간인 잠수사 생전 인터뷰 중
베개나 이불을 만졌을 때
상당히 놀랐는데 되레 사고자를 찾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담담해지더라고요
그리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손으로 더듬어 찾아낸 실종자의 주검을 끌어안았던 ‘기막힌 포옹’의 기억은 마치 화상자국처럼 민간잠수사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한 명이라도 빨리 가족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하루 4~5번씩 잠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중수색 도중 사고로 숨지기도 했고, 스스로 삶을 놓기도 했다. 또 많은 이들은 정신적 트라우마와 함께 근육통증, 목 디스크, 골괴사 등 잠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희생자이기도 한 민간잠수사의 현실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오승아
글 구성 김근라
취재 연출 박정대
지난 4월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에서는 두 달 넘도록 미수습자 유해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유류품도 대거 수습되고 있는데, 진상규명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휴대전화와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 각종 디지털 기기들이다. 희생자들이 참사 전후의 상황들을 사진과 동영상 등 여러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뒀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기기들을 복원시킨다면 참사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속 디지털 기기의 복구 의미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특히 휴대전화 속에는 희생자들의 참사 전후 모습은 물론 생전의 일상을 담은 여러 기록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 유가족들에게는 단순한 전자장비가 아니라 평생 간직해야 할 망자의 기록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최근 선체조사위원회가 복구에 성공했다고 밝힌 참사 희생자의 휴대전화 2점 가운데 단원고 2학년 2반 김민지 학생의 휴대전화 데이터를 유가족에게 제공받아 그 내용을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100점 이상 수습된 세월호 속 휴대전화에 대한 복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봤다.

전수영 교사와 김민지 학생 휴대전화 복원 성공
지난달 26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제1소위원회를 열어 당시까지 세월호 선체에서 85대의 휴대전화를 수습해 15대에 대해 복구를 시도한 끝에 2대가 복구됐다고 밝혔다. 선조위는 당시 이 휴대전화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으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단원고 2학년 2반 전수영 선생님과 같은 반 김민지 학생의 것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 전수영 선생님의 휴대전화는 참사 당일 10시 1분까지, 고 김민지 학생의 휴대전화는 9시 47분까지 작동된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통화내역과 문자 및 카톡 기록, 사진과 동영상 등 일체의 기록이 복원되긴 했지만 참사 원인이나 구조 실패의 이유를 유추할 만한 결정적인 기록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이상 침수돼 있던 휴대전화의 메모리를 온전하게 복원시킨 첫 사례였다는 점에서 이후 복원작업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지 아빠, “언제쯤 눈물 없이 민지 사진을 볼 수 있을지…”
선조위는 복구된 2대의 휴대전화 데이터를 유가족에게 직접 전달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가운데 지난 1일 선조위 전문위원이 김민지 학생의 아버지 김창호 씨에게 복구 데이터를 전달하는 과정에 동행했다. 아빠는 딸의 휴대전화 데이터가 담긴 USB 메모리칩을 전해받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민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은 지금도 똑같다. 이렇게 복구된 데이터를 받았지만 이 속에 들어있을 민지의 생전 모습을 지금은 차마 마주할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1주일 뒤 다시 민지 아빠를 만났다. 그 사이 민지 아빠는 목포신항에 내려가 세월호 선체에서 발견된 민지의 여행가방을 받아 왔다고 했다. 아빠는 집안의 방 한 칸을 비우고 민지 가방 속에서 나온 유류품들을 모두 꺼내두었다. 당분간 이렇게 두고 보면서 민지를 생각하면서 지내겠다고 말했다.

민지 아빠는 이번엔 용기를 내 복구된 휴대전화 데이터들을 열어봤다. 통화기록이 담긴 엑셀 파일에는 참사 당일 오전 9시 37분부터 47분까지 엄마와 아빠가 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록이 ‘부재중전화’로 기록돼 남아 있었다.
아내가 ‘단원고 아이들 탄 배가 사고 났단다’라며 저한테 전화를 걸어왔어요. 민지한테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고요. 그래서 저도 바로 전화를 했는데 또 안 받더라고요. 그래도 그땐 그 큰 배가 어떻게 되기야 하겠나, 당연히 다 구조될 거다,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이번엔 사진 폴더를 열어봤다. 민지가 자신의 다친 손가락을 찍어놓은 사진들이 여러 장 남아 있었다. 민지는 수학여행 2주 전 피구를 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져 수술을 하고 입원까지 했다. 그래서 민지 아빠는 내심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 가고 싶어 하는 민지를 말릴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때 적극적으로 못 가게 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부질 없는 일이죠. 저 다친 손가락을 보면 가슴이 더 아파요. 배가 기울어지고 몸이 미끄러질 때 뭐라도 붙잡으려고 했을 텐데, 저 손을 갖고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을까…
그토록 가고 싶었던 수학여행 가는 길에서 민지는 쉴틈 없이 사진을 찍었다. 출발 전 여행가방을 세워뒀던 교실에서, 인천항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출항이 지연돼 대기하고 있던 대합실에서, 그리고 드디어 배가 뜬 직후인 밤 9시 22분쯤 객실에서 단짝 친구였던 애진이(생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지금으로선 선내 CCTV 속 흐릿한 모습을 제외하고는 이 사진이 민지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다.

그 밖에도 사진 폴더 속에는 생전의 민지가 행복했던 순간들이 담겨진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남아 있었다. 아빠는 “이걸 선물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건지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민지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남아 있는 거니까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은 상처가 덜 아물어서 언제쯤이나 되어야 ‘우리 딸 이렇게 예뻤었지’하는 마음으로 민지 사진들을 찬찬히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민지가 찍은 은화와 다윤이… “한 대라도 더 복구해야 아이들 모습 간직할 수 있어”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에서 미수습자 유해를 수색하는 작업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9명의 미수습자 가운데 현재까지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과 조은화, 허다윤 학생, 그리고 일반인 이영숙 씨 등 4명의 유해가 수습된 상태다. 은화 엄마 이금희 씨와 다윤 엄마 박은미 씨는 이미 딸의 유해를 수습했지만 여전히 목포신항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남은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이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 한 명의 유해가 찾아질 때까지 그들 곁에서 힘이 되어주겠다는 것이다.

은화 엄마는 은화가 세월호 안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한 장을 갖고 있었다. 희생자인 김소정 학생의 복구된 휴대전화 속에서 나온 사진을 전해 받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윤 엄마는 딸의 마지막 수행여행길 사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참사 초기 다윤이의 휴대전화가 수습됐지만 복구에 실패했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다른 아이들의 휴대전화 속에서 나온 다윤이 사진을 전해받은 것도 없다고 했다.
취재진은 민지의 휴대전화 속에서 나온 사진들을 두 엄마들과 함께 찬찬히 살펴봤다. 혹시 민지가 찍은 은화와 다윤이의 모습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갑자기 두 엄마의 시선이 사진 한 장 위에 멈춰섰다. 참사 전날인 4월 15일 저녁 7시쯤 인천항 대합실에 대기 중이던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왼쪽 귀퉁이에 친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는 은화의 모습이 있었다. 은화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다윤 엄마가 “어! 여기!” 다윤이 같은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앉아 있는 은화의 뒷쪽 멀리 교복 차림의 여학생 모습이 보였지만 워낙 작고 흐릿해서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다윤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찾아냈다. “이 가방, 이 색깔 맞아요. 이거 다윤이 맞아요.” 딱히 어디에 초점을 둔 것인지 모를 만큼 무심하게 셔터를 누른 듯한 민지의 사진 한 장 속에 은화와 다윤이의 모습이 함께 들어 있었다.

“희생자 휴대전화 복구는 유가족 상처 치유를 위한 국가의 의무”
세월호 희생자들의 휴대전화를 복구하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사고 전후의 상황과 구조 실패의 원인을 확인할 단초들을 찾아내 참사의 진상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휴대전화들 안에는 소유자의 생전 모습들은 물론, 특히 단원고 학생들의 경우 함께 희생된 다른 친구들의 모습까지 담겨 있어서, 유가족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유산일 수밖에 없다.
현재 세월호 현재 선체조사위원회는 수습된 휴대전화와 디지털 장비들의 복구를 민간 전문업체에 맡겨둔 상태다. 국과수와 검찰, 경찰 등 정부기관이 복구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유가족들이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준형이 아빠)은 “지난 2014년 참사 초기에 해경이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수습해서 며칠 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꺼내서 전달해 주는 모습을 접했다. 여기서 진상 규명의 단초가 나올 수도 있고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국기기관의 그런 시스템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기에다 아이들 휴대전화를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가족들의 의견을 수용해 올해 사업비 74억 원 가운데 디지털 포렌식을 민간에 위탁하는 사업에만 24억 원을 배정하고 현재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체 사업비의 3분의 1규모다. 선체조사위 관계자는 “휴대전화 복구는 진상규명의 열쇠를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국가가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해야할 마지막 의무라고 볼 수 있기에, 최대한 많이 복구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이선영
CG : 정동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가비>, <조선마술사>까지…
모두 김탁환이 쓴 소설이 원작이다. 소위 잘 나가던 역사 소설가였던 김탁환은 2014년 초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본격 연애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고 난 뒤 그 소설을 포기했다. 그저 뉴스를 보고, 술을 마시고, 울고, 다시 술을 마셨다. 몇 달이 지났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탁환은 그 뒤 3년 동안 세월호를 다룬 소설 <목격자들>, <거짓말이다>, 그리고 신간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까지 연달아 발표했다. 무력감에 빠졌던 소설가 김탁환을 원고지 위로 다시 소환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세월호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탁환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면 다르다. 잠수사들이 바닷속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수습하는 처참한 현장, 침몰 과정에서 마주친 희생자의 눈동자를 잊지 못하는 생존자, 살아남은 아이들의 상처와 고통… 우리는 아마도 세월호를 전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기록수’ 김탁환과 함께 지금, 여기, 우리의 세월호 사건을 다시 이야기해보자.
⬤ 잘 나가던 베스트 작가, 세월호를 만나다
⬤ 김관홍 잠수사, ‘바다 거북이’가 ‘바다 호랑이’가 된 사연
⬤ <거짓말이다>의 밝은 결말…그리고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
⬤ 슬픔과 분노를 넘어 ‘사람’을 찾는 소설가
⬤ 죽은 자들은 아직 할 말이 많다…세월호 문학의 탄생

참여연대, 광화문광장 차벽통제 경찰에 손배소 제기
4.18 광화문광장 차벽으로 봉쇄한 경찰에 책임 물어
불법해산명령 종로서경비과장도 손배책임 져야
지난 4월 18일 세월호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의 참가자들이 오늘(6/2)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이 차벽 등으로 추모집회 참가자들의 통행을 제지하고 불법해산명령을 내린 것이 헌재와 대법원의 판례를 위배하는 등 참가자들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이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다.
소송 원고들은 4월 18일 당시 서울광장에서 개최되는 세월호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참여연대 회원들이다. 이날 원고들은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에 참가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하려다 경찰이 설치한 차벽에 막혀 광장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경찰은 1만 3,700여 명의 경찰과 트럭 18대를 비롯한 차량 470여대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차벽'을 설치해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의 이동을 차단했다. 이 같은 경찰의 행위는 위헌적인 통행제지에 해당한다.
지난 2011년 헌재는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막고 집회참가자들을 주위와 고립시키는 경찰의 차벽설치가 위헌임을 선언했다. 헌재는“불법·폭력집회나 시위가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개별적·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경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차벽은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거의 마지막 수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015. 4. 18(토) 경찰차 470여대가 광화문 일대 도로를 차벽으로 막고 있다
경찰은 당시 집회참가자들의 행진으로“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에 관하여 급박한 위험”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차벽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경찰의 주장과는 달리 경찰차벽은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가 진행 중이던 오후 3시 30분경부터 이미 설치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경찰이 차벽을 설치해 유가족을 고립시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집회를 중단하고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경찰이 설치한 6겹의 차벽에 가로 막혀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할 수 없이 평소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도보로 20분도 채 안되는 거리를 청계광장→종각→ 종로2, 3가→ 인사동→ 안국역(전철탑승)→ 종로3가(환승)→ 5호선광화문역(하차)→ 광화문광장까지 3시간 이상 우회하여 갈 수밖에 없었다. 추모의 마음으로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원고들의 통행을 제지할 만큼“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은 없었다.
한편, 참여연대 회원들은 이날 세월호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 앞서 오후 2시부터 참여연대 건물이 있는 통인동에서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까지 거리행진을 하였다. 하지만 정부종합청사 근처 인도에서 100여명의 경찰에 의해 불법해산 명령을 받고 통행을 제지당했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이 행진참가자들이 애초 신고한 행진 경로를 이탈하여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해산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참여연대 회원들은 당시 광화문광장 북쪽들머리에서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이 경찰차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행진을 잠시 멈추고 격려구호를 외치며, 유족들이 있는 곳으로 위로방문을 하려고 했을 따름이다.
신고한 행진경로를 이탈하였다고는 하나 이들은 인도에서“세월호 유가족들 힘내세요”등의 구호를 외쳤을 뿐 경찰이 해산명령을 내리고 통행제지를 할 만한 교통방해 등 그 밖의 공공질서를 해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헌법은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리고 집시법은 이를 임의로 제한하거나 축소할 수 없다. 또한 대법원은 2001년 10월(사건번호 98다20929) 불법집회라 하더라도 평화롭게 진행된다면 이를 금지하거나 해산명령을 내리면 안된다고 선언하였다.“옥외 집회 또는 시위가…… 신고의 범위를 일탈하였다고 하더라도……신고의 범위를 일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시위자체를 해산하거나 저지하여서는 안 된다고 천명했다. “타인의 법익 기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된 경우에 비로소 그 위험 방지, 제거에 적합한 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되, 그것도 법령에 의하여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 같은 확고한 대법원의 판례가 있음에도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고립된 세월호 유가족을 격려 방문하려는 원고들의 통행을 제지하고 해산명령을 하며“영장없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는 등 위협하기까지 했다. 대법원의 판례를 위배한 불법적인 공무 집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손해배상 소송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양규응 변호사(법무법인 봄)가 대리한다.
‘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블랙리스트 수사는 큰 고비를 넘게 됐다. 이제 특검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 관여 여부에 집중될 예정이다.
성창호(사법연수원 25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새벽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국회에서의 거짓 증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는 ‘대통령 뇌물죄’과 함께 박영수 특검 수사의 한 날개다. 특검은 대통령의 비선 실세 지원을 뇌물죄로, 블랙리스트 작성과 지시는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헌법위반 문제로 보고 있다. 특검의 이규철 특검보는 “고위공무원들의 문화계 지원 배제 시행 행위가 국민의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명단 작성 및 시행 관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검은 이 리스트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김 전 실장의 지시로 당시 조윤선 정무수석이 주도해 작성됐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 산하 기관으로 이어져 실행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동안 특검은 이 리스트 서류와 문체부 직원의 진술 등 여러 증거를 확보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한 바 있다.
두 사람의 구속 영장 발부로 특검의 ‘반헌법적 법치 농단’ 수사는 힘을 받게 됐다. 이미 특검은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확보해, 보수단체들이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을 그린 홍성담 화백을 고발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을 확보했다. 이번 수사는 청와대의 세월호 침몰사고 수사 개입,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동원한 관제 집회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박근혜 떠받쳐 온 중심축 붕괴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국정 운영의 중심축이었다. 그는 검찰 등 사정 라인을 손아귀에 넣고 ‘종북 좌파 척결’이란 명분을 앞세워 국정을 쥐락펴락했다. ‘문화계 지원 배제 목록’은 그가 국정을 농단한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일지 첫페이지에는 김 전 실장이 주문한 것으로 보이는 지시사항이 들어 있다. 김 전 실장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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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대결 속에서 生活(생활)-갈등 속에서 전사적 자세 지니도록. 헌법가치 수호, 선진국가 건설, 가치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 시장 vs. 사회 (중략)-회색지대 無(무). 강철 같은 의지로 대통령, 대한민국 보위
-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 2014년 6월 14일

김 전 실장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실장은 고등고시에 합격한 뒤인 1963년,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꾼 ‘5·16장학회’ 장학금을 받았다. ‘박정희, 육영수’의 이름을 딴 재단의 돈이었다. 검사가 된 이후엔 유신헌법 기초작업에 참여했으며,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의 범인인 문세광에 대한 수사를 맡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준 사람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을 “드물게 보는, 사심 없는 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것이 1975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재직시 발표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다. 이 사건은 유신시대를 대표하는 공안 사건으로 지난 2015년 진행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25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가 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도 김 전 실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만들어졌다.
간첩조작, 초원복국집, 블랙리스트…그리고 구속
법무부 장관 퇴임 후 두 달 뒤엔 일명 ‘초원복국집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김 전 실장은 부산시장, 부산경찰청장 등 기관장들을 부른 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쳐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이 사건으로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이 발언이 새어나간 경로를 추적해 사건을 도청 문제로 전환시켰고, 위헌소송을 이끌어내 결국 자신의 기소를 취하하게 만들었다. 법을 피해 다니는 ‘법꾸라지’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후 내리 세 번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5월부터 2015년 2월까지 1년 6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기춘대원군’, ‘왕실장’ 등의 별명을 얻으며 권력 실세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과거의 일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고, 이번 국정 농단 사건에서도 자신의 개입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최순실 씨를 중심으로 한 수사만으로는 박근혜 정부 ‘적폐’의 한쪽 면밖에 볼 수 없다. 특검이 수사 초기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에 집중한 이유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회 탄핵 소추위원단도 탄핵 사유에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를 추가하는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 새로운 탄핵사유를 추가하려면 국회 본회의 의결이 필요해 일단은 탄핵소추안 참고사항으로 기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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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 첫방송 그리고 2008년 이후 그가 있었던 곳. -노무현 대통령 노제 |

뉴스포차 4번 째 손님은 ‘광장으로 나온 광대’ 김제동 씨다. 제동 씨가 현장에서 몸으로 겪은 세월호와 탄핵, 그리고 촛불 혁명. 헌법 37조를 가장 애절한 연애편지의 한 구절이라고 느낀 이유,그리고 살 떨리게 아름다운 그의 ‘광화문 판타지’…
그가 세상의 동료 아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방송인들을 위한 진행 비법이 전격 공개된다. 제동 씨의 ‘연애 부재’가 탄핵 정국에 미친 ‘나비 효과’에 대한 합리적 추론, 그와 박성제 기자가 듀엣으로 부르는 ‘거리에서’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김제동이 대선 후보들을 모두 한 방에 보낸 절묘한 촌철 살인은 무엇이었을까…
방송을 보기 전에 관계있는 것을 연결해보자.

*오디오 버전은 팟빵이나 애플 팟캐스트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0일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9명의 미수습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인양한다던 세월호는 바다속에서 점점 훼손되고 있습니다. 7시간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습니다.

▲ 경기도 안산교육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의 故 한고운 양 책상, 고운 양이 사용하던 노트와 교과서가 놓여 있다.

▲ 故 박수현 군 아버지 박종대 씨는 지난해 이사했지만, 예전처럼 아들방을 그대로 꾸며놓았다. 박 씨는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스무 살이 되었을 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지금도 사들고 온다고 한다.
무엇보다 1,000일 동안 유가족들의 시간을 멈추게 한 데는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 큽니다.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정부와 여당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방해해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지난 1월 7일, 새해 첫 주말집회에는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함께 했다. 이날 집회의 주제는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진상 규명 요구였다.
지난 2015년 1월 1일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특조위 활동은 7개월이 지나서야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수사권과 기소권도 없었습니다. 정부의 비협조로 자료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의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조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특조위는 지난해 6월 30일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강제로 끝내야 했습니다. 특조위는 세월호 조사를 30%도 진행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 현재 한국 YMCA전국연맹 사무실에는 특조위 민간 조사관들이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며 상근하고 있다. 개인 책상도 월급도 없다.
지난 7일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세월호 특조위 2기가 꾸려질 때까지 국민의 힘으로 세월호 진상규명을 이어가자는 취지입니다. 새로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안이 현재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여러 누리꾼들도 세월호 진실 추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진실규명 작업은 2017년에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취재작가 김진주
글 구성 김근라
취재연출 김한구
박근혜 탄핵심판 3차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박근혜 대통령 측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해 신빙성이 의심되는 허점투성이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재판부 석명 사항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세월호 침몰 당일 행적에 대한 내용 대부분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을 재정리한 수준에 불과했고 신빙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그동안 홈페이지에 공개해온 대통령 행적에 대한 해명을 고수했다.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8차례, 국가안보실에서 3차례에 걸쳐 서면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6차례에 걸쳐 전화로 보고받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대통령 측은 국가안보실에서 보고한 세 건의 보고서만 첨부자료로 제시했다. 정무수석실에서 받았다는 8건의 보고서는 단 하나도 제출되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이었던 권영빈 변호사는 “국가안보실 보고서는 제출했는데, (사회안전비서관 보고서는) 왜 제출을 안 했냐”며 “행적 정리가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작성된 보고서를 대통령이 직접 전달받아 검토했는지도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서면 보고가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른바 ‘관저 집무실’에 있을 때 수행비서 역할을 한 윤전추 행정관에 따르면 오전에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는 한 건이다. 윤 행정관은 앞선 2차 공개변론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에는 서류가 한 번만 왔다고 말했다. 또 이날 오전 관저 집무실에 들어간 사람은 안봉근 전 비서관 한 명이었다고 증언했다. 즉, 이날 오전 보고된 것으로 제시된 9건 중 8건의 보고서는 이메일이나 팩스로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떤 과정으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지 구체적인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다. 권 변호사는 “메일로 전달됐다면 메일을 열람한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며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대통령에게 언제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시간 | 서면 보고 내용 |
| 9:53 | – 외교안보수석 서면보고 수령하여 검토 – 국방 관련 사항(세월호와 무관한 내용) |
| 10:00 | –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고 상황 및 조치 현황 보고서(1보)받아서 검토 – 사고 상황 개요 정리 – 해경 조치 현황 : 상선 3척, 해경함 1척, 항공기 2대가 현장 도착해 구조 중, 해군함 5척, 해경함 4척, 항공기 5대 현장 이동 |
| 10:36 |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사고 상황 보고서(1보)받아 검토 – 471명 탑승, 09:50현재70명 구조 완료 |
| 10:40 | – 국가안보실 보고서(2보)받아 검토 – 10:40현재106명 구조,왼쪽으로60도 기운 상태,해군3척,해경2척,항공기7대 및 민간선박11척 현장 도착 구조 중 -합참 탐색구조본부(09:39),중대본(09:45)가동 |
| 10:57 |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2보)받아 검토 – 총476명 탑승, 10:40현재133명 구조 완료 |
| 11:20 | – 국가안보실 구조 상황 보고서(3보)받아 검토 – 11:00현재161명 구조, 10:49선체 전복(침몰 선체 사진 첨부) |
| 11:28 |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3보)받아 검토 – 탑승자 현황 및 구조 상황 |
| 11:34 | – 외교안보수석실 보고서 받아 검토 – 000대통령 방한 시기 재조정 검토 |
| 11:43 | – 교육문화수석실 보고서 받아 검토 – 자율형 사립고 관련 문제점 |
▲ 답변서에 정리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서면 보고 내역
대통령 측은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전화 지시 중 단 1건에 대해서만 통화내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세월호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내역 등은 제시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과의 통화내역 등 대통령의 다른 통화기록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3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 예정이었던 최순실, 정호성, 안종범은 입을 맞춘듯 나란히 출석 연기를 요청했다. 그 결과 1월 셋째 주에만 16일, 17일, 그리고 19일까지 세 차례의 공개변론이 열리게 됐다. 권성동 국회 소추위원장은 “피청구인들이 소송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증인들의 출석을 조종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 일정이 잇따라 연기되면서 박한철 소장이 퇴임하는 1월 말까지 탄핵 여부가 결정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초까지도 결론이 나오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취재: 김강민 최문호 최윤원 이보람 연다혜 임보영
촬영: 김남범 신영철
편집: 윤석민
2017년 새해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1월 7일 전국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서울 광화문 일대에만 60만 명이 모이는 등 전국에서 64만 3천여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새해가 되면 촛불 시위의 동력이 약해지지 않겠냐는 예상을 깬 숫자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두고 열린 11차 촛불 집회의 주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와 진상 규명 요구였다. 이날 집회에는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발언했다. 참사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이들은 어느새 20살 성인이 되었다.

▲ 무대에 오른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한 당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
무대에 오른 9명의 학생들은 “저희들은 참사 당시 구조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던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조사는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 “나중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다 찾아서 책임을 묻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천 일 동안 함께해 준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세월호가 인양되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촛불을 끄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김건우 군의 어머니는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았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지도 않았는데 촛불이 꺼질까봐 두렵다”며 “세월호가 인양돼 미수습자들이 가족에게 돌아갈 때까지 촛불을 꺼뜨리지 말아달라, 잊지 말아달라”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행사가 끝난 뒤 세월호 진상규명과 함께 특검의 철저한 수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요구하며 청운동사무소와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하기도 했다.
한편 박사모 등 친정부 단체 회원 3만여 명(경찰 추산) 이날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특검 수사 종료와 탄핵 기각을 요구했다.
취재 : 심인보
촬영 : 김수영
편집 : 박서영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대리인단에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라는 취지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부

▲ 국회 탄핵소추위원장 권성동 법사위원장(왼쪽)과 피청구인측 법률대리인 이중환 변호사, 전병관 변호사(오른쪽)
오늘(22일) 오후 2시부터 40분 동안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 1회 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가 2년이 지났지만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날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 도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본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문제의 7시간 동안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보았는지,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들을 시각 별로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또 “언론기사나 청문회 등을 보면 여러가지 보고를 받은 것으로 돼 있는데 어떤 보고 받았고, 받은 시각, 대응지시 등에 대해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서 남김없이 밝히고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통령 대리인단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세월호 7시간의 행적에 대해 물어본 후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탄핵심판을 신속하게 진행할 뜻도 재차 분명히 했다. 우선 탄핵심판과 관련된 수사기록 요구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검찰에 대해 “수사기록은 탄핵심판에서 유력한 증거로 사용될 것”이라며 “엄중하고도 강력하게 수사기록을 보내줄 것을 촉구”했다.
다만 검찰이 끝가지 기록 제출을 거부할 경우 재판부가 직접 서울중앙지검으로 가서 증거조사를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준비해 두고 있다.
헌재가 직권으로 검찰과 특검에 수사기록 송부촉탁을 한 것에 대해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법 32조(재판, 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하여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를 위반했다며 낸 이의신청도 기각됐다.
탄핵심판은 기본적으로 형사소송법을 준용하고 있어 당사자주의와 변론주의에 기반하지만 국정공백 우려 등이 있는 만큼 상당 부분 직권주의를 강화해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준비기일에서는 향후 재판진행과 관련한 큰 그림이 그려졌다. 헌재는 지난 2004년 노무현 탄핵재판 당시의 선례를 준용해 소추의결서에 적시된 세부적인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를 5가지의 큰 쟁점으로 재분류했다. 앞으로 이 쟁점을 두고 국회와 박근혜 대통령 측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게 된다.
탄핵심판 5가지 쟁점과 헌법, 법률 위반 여부
| 탄핵 심판 5가지 쟁점 | 구체적 헌법, 법률 위반 여부 |
| 비선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 –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각종 문건 누설, 공직 인사 관여, 국무회의 심의에 영향력 행사 등) – 최순실 등에 대한 특혜 제공(KD코퍼레이션, 플레이그라운드, 포스코, KT, 그랜드레져코리아 관련) |
|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남용 | – 대기업들에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 갹출 요구 –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경질 및 명예퇴직 압력 |
| 언론의 자유 침해 | – ‘정윤회 문건’ 보도한 세계일보 사장 해임요구 편집국장에게 압력 행사 |
|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 – 세월호 참사 7시간 동안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직무유기 |
|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 –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죄(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형법 129조 제1항 또는 제130조) –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 – 강요죄(형법 제324조) – 공무상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 |
이를 위해 우선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세 명에 대해 증인채택이 확정됐다.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은 국회와 대통령측 모두 증인으로 신청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헌재에 출석하라는 소추위원단의 요구에 대해서는 대통령측은 일단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추위원단의 요구를 받아들여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출석 요구를 하더라도 출석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방법은 없는 상태다. 다음 준비기일은 오는 27일 오후 2시로 예정됐다.
취재: 최문호, 김강민, 연다혜
촬영: 김기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2월 14일 열린 제 3차 청문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히는 자리였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이 헌법 8조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의무를 위해했다’고 명시돼 있다. 탄핵 사유에 세월호 참사에 대응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포함된 만큼 대통령의 7시간을 규명하는 것은 진실규명 차원에서도, 또 헌재의 심판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시각 세월호 안산합동분향소에서는 단원고 유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청문회를 지켜봤다. 유가족들은 계속되는 증인들의 ‘모르쇠’나 ‘떠넘기기’ 에 헛웃음 짓거나 한숨을 내뱉었다. 특히,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참사 당시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는 증언이 나오자 일부 유가족은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은 취재진의 이같은 발언의 의도를 묻는 질문에 ‘죄송하다’면서도 대통령과 10시 30분 통화한 것이 사실이냐는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성형외과 김영재 원장…의문투성이 4.16 알리바이
이날 청문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미용시술을 받은 것이 아닌가에 대한 국조위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특히, 이날 관심을 끈 증인은 김영재 성형외과 의원 원장이었다. 김 원장은 청와대 관저에 신분확인 절차 없이 들어가 박근혜 대톨령을 만날 수 있는 이른바 ‘보안손님’이었다. 그는 이날 자신이 5회 이상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을 만나서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그는 ‘아내와 함께 가서 가져간 색조 화장품 등에 대해 설명하고 피부에 트러블 상담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참사 당일 청와대 관저에서 대통령을 시술했는지 묻는 질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며 ‘그날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고 주장하며 증거를 제출했다. 그런데 그날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이 위조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제출한 영수증의 요금이 다르다. 톨게이트는 단일 요금제인데 갈 때는 7600원, 올 때는 6600원이다’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통행료 영수증의 발행일이 2014년과 2015년 두종류’라며 ‘세월호 참사는 2014년에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영재 원장은 ‘위증한 것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사코 ‘그런 일 없다. 청문회장에서 증언한 것이 전부’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서서히 밝혀지는 대통령의 7시간
대통령의 7시간 행적도 윤곽을 드러냈다. 김장수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사고 당일 대통령 서면보고를 할 때 집무실인지 관저인지 대통령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두군데 모두 보고서를 보냈다’면서 ‘당시 문서를 전달한 직원의 말로는 집무실에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즉, 대통령이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당시 의무동에 근무했던 전 간호장교 신보라 씨도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점심 시간 전에 의료용 가글을 관저에 가서 직원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오전 내내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월호가 8시 52분 맹골수도에서 기울었다는 최초 신고가 접수되고 30분 후 청와대에 긴급상황 문자가 전파됐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 긴급문자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진 것은 오전 10시 김장수 전 안보실장의 서면보고였다. 하지만 김 실장은 ‘대통령이 이를 확인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10시 30분 대통령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러 ‘모든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하여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고 하지만, 이 시각 세월호는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바닷속에 잠긴 뒤였다. 그동안 제대로 된 청와대의 지시가 없었던 셈이다.
청와대의 이후 행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세월호가 뱃머리만 남고 물에 잠긴 오전 11시 4분, 청와대 안보상황실은 해경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한다. 당시 해경은 ‘승객들이 남아있는 상태로 세월호가 바닷물에 잠겼다. 승객들은 바다에 있지 않고 배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청와대 직원에게 전했다. 오전 11시 23분, 김장수 전 안보실장은 대통령에게 이 내용을 보고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두시간 후인 오후 1시 13분, 김장수 전 안보실장은 대통령에게 ‘추가로 190명이 구조됐다’고 서면보고 한다. 잘못된 정보를 보고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지금보면 이해가 안되겠지만, 당시는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상황실이 직접 해경과 통화해 세월호 안에 승객이 갇힌 채 바다에 잠겼단 사실을 확인한 것을 번복한 것이 청와대의 대응을 무력화시킨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잘못 보고한 사람은 감사원이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만 얘기하자’는 말로 더이상의 답변은 거부했다.

청문회를 지켜보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김장수 전 안보실장과 김석균 전 해경청장의 ‘최선을 다했다’는 답변에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청문회 종료 후 두 증인은 유가족들이 있는 자리를 찾아 고개숙여 사과했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참사 책임자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상 대통령 의무 위반했으면 탄핵 사유”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될 책임을 지고 있는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을 하느라 세월호 7시간을 소홀히 했다면 헌법상 의무위반이고 탄핵사유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금씩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무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는 16일 금요일로 예정된 국정조사 특위의 대통령실 현장조사를 국가기밀 보안상의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국조특위는 현장조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취재 : 송원근, 박중석, 김성수, 이유정
촬영 : 김기철, 김수영, 최형석
편집 : 윤석민
청와대가 KBS 사장 선임과정에 개입하고 보도·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등을 논의한 사실이 ‘김영한 비망록’을 통해 확인됐다.김영한 비망록은 지난 8월 숨진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근무 일지 등이 적혀 있는 노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17일 공개한 비망록 자료에는 2014년 6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넉 달 동안 18차례에 걸쳐 청와대가 KBS의 인사와 보도에 개입한 정황이 기록돼 있다. 해당 자료는 언론노조 KBS본부가 김영한 비망록을 단독 보도한 TV조선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이른바 ‘기레기 보도’ 사태 후에도 KBS 장악은 계속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KBS를 비롯한 지상파 언론들은 ‘전원구조 오보’와 유족들에 대한 무분별한 인터뷰 시도,그리고 정부 책임에 대한 면피성 보도등을 통해 ‘기레기’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특히 KBS의 경우 참사 닷새째인 4월 21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도 내용에 대해 일일이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5월 5일에는 김시곤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유한 발언으로 논란이 촉발되고 이에 격분한 유족과 시민들이 5월 8일 밤 KBS와 청와대 앞에서 철야로 항의시위를 벌인다. 그러자 5월 9일 KBS 길환영 사장이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김시곤 보도국장을 직위 해제한다. 그러나 김 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자신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면서 “청와대의 압력으로 보도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온 길 사장은 자진 사퇴하라”는 폭로성 주장을 편다. KBS 기자협회 등 내부 구성원들은 대대적인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에 나섰고 결국 KBS 이사회는 6월 5일 길 사장 해임을 결의한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4년 6월 14일 임명돼 다음날부터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으며, 그의 비망록 속에 등장하는 KBS 관련 내용은 이상과 같은 상황적 배경 아래서 해석이 가능하다.
KBS 새 사장 선임에 청와대 지속적 개입 정황
김영한 전 수석은 출근 첫날인 2014년 6월 15일자 메모에서부터 KBS문제를 적시해 뒀다.새 사장 선임을 7월 10일까지 마친다는 것이다.

▲ 2014년 6월 15일 메모
다음날인 16일자 메모에는 “홍보/미래 KBS 상황,파악,plan 작성”이라는 글귀가 있다. KBS 사장 선임 관련 플랜을 홍보수석,미래전략수석과 논의한 흔적으로 파악된다.

▲ 2014년 6월 16일 메모
이후 KBS 새 사장 선임 관련 메모는 평균 사흘에 한 번 꼴로 등장한다. 특히 7월 4일 메모에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직접 지시한 “KBS 이사 우파 이사 – 성향 확인 요”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KBS 이사진의 분위기는 사장 후보 6명 가운데 청와대가 선호한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아닌 조대현 KBS미디어 대표이사 쪽으로 기울었었다.청와대가 여당 추천 이사 7명에 대해 성향 파악과 함께 표 단속에 나선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 2014년 7월 4일 메모
그러나 7월 9일 KBS 이사회에서는 7명의 여당 추천 이사들 중 2명의 ‘반란표’가 나오면서 조대현 씨가 새 사장으로 선임되고 만다.그러자 이틀 뒤 의미심장한 메모가 등장한다.각 부처가 공공기관 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특별히 KBS 이사들을 언급했는데, 이들이 ‘면종복배’, 즉 겉으론 복종하고 속으로는 배신했다고 평가해 놓은 것이다.

▲ 2014년 7월 11일 메모
이에 대해 성재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비난으로 수세에 몰란 상황에서 청와대가 계획한 대로 KBS 새 사장이 선임되지 않자 KBS 이사를 교체해 KBS를 지속적으로 청와대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도·시사 프로그램 관련 소송에도 지속적으로 개입한 듯
김영한 비망록은 청와대가 KBS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주시하고 일일이 대응해 왔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길환영 사장 해임 직후인 6월 11일 KBS는 문창극 당시 총리후보자가 한 교회 강연에서 “일본 식민지배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던 사실을 발굴해 단독 보도했고, 이로부터 2주 뒤 문 후보자는 자진사퇴하게 된다.

그런데 두 달 뒤 방송통신심의원회는 이 보도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배했다며 중징계 방침을 밝혔고,이 무렵 김영한 수석의 메모에는 이와 관련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직접 발언이 담겨 있다. “국가정체성, 헌법 가치 수호 노력 → 정책집행·인사관리를 통해서”, “일선 행태 – 반체제 집요 투쟁 – 미온·소극적”, “강한 의지·열정 대처 – 체제 수호 難 → 유념”, “전사들이 싸우듯이. ex 방심위 KBS 제재 심의 관련”이라는 내용이다.
문창극 보도에 대한 방심위의 제재를 두고,반체제 투쟁에 대해 강한 의지와 열정으로 대처하는 좋은 사례라고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청와대가 언론의 박근혜 정부 비판을 헌법 파괴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만한 대목이다.

▲ 2014년 9월 5일 메모
실제로 문창극 보도 직후 검증TF 소속이던 한 KBS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검사장급 검찰 관계자로부터 “청와대의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당신을 노리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는 KBS 보도 관련 송사에도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0년 KBS <추적60분>의 ‘천안함 의혹’ 보도 이후 방송통신위원회가 경고 조치를 하자 제작진이 제재 취소 소송을 낸 바 있는데,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2014년 6월 13일 제작진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는 19일 뒤인 7월 2일 항소장을 제출하는데, 김영한 수석의 6월 26일자 메모에는 “KBS 추척60분 천안함 관련 판결 – 항소”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 내용이 적혀 있다.김 실장에 지시에 따라 방통위가 항소 조치를 취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 2014년 6월 26일 메모
계속된 청와대의 KBS 장악 시도…현업자들은 시민들 조롱 감내
이처럼 김영한 비망록에 나타난 2014년의 공영방송 KBS는 ‘국민의 방송’이 아닌 ‘청와대 방송’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고대영 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인호 KBS 이사장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강동순 전 KBS 감사의 증언이 있었다.

고대영 사장 취임 이후 보도와 제작 자율성이 거의 말살되다시피한 KBS는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지며 촛불집회 군중들로부터 현장에서 쫓겨나고,KBS 중계차에는 ‘니들도 공범’이라는 시민들의 비난과 스티커가 뒤덮이기도 했다.

▲ 11월 12일 촛불집회 현장의 KBS 중계차에 시민들이 잔뜩 붙여놓은 스티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청와대의 방송장악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정치세력, 특히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구조를 바꾸는 언론장악방지법등을 국회가 즉각 논의하고 통과시켜야”한다고 말하며,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동 책임이 있는 새누리당은 관련 법안 논의에 대한 방해 행위를 중단하고 법 개정에 즉각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정형민
영상편집 : 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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