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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정보와 알 권리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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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정보와 알 권리의 ‘가격’

익명 (미확인) | 금, 2017/06/09- 14:52

공공정보와 알 권리의 ‘가격’

글 | 민노씨(슬로우뉴스 편집장)

 

정보는 돈이다. 그리고 정보는 권력이다. 그리고 정보는 돈과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터다. 이 전쟁터에는 정부와 기업, 국민과 공무원, 이익집단과 언론 등 무수히 다양한 주체가 뒤섞여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대립하면서 매일매일 전투를 벌인다.

 

주체냐 객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예를 하나 들자.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그 시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공공정보’다. 국민의 생명 수호가 제1의 의무인 대통령이 국민이 죽어가는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때 국민은 주권으로 불리는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통치의 객체로 전락한다.

박근혜의 절망을 통과해 촛불 명예혁명의 희망을 꿈꾸지만, 우리는 아직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을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통치의 객체다.

박근혜가 세월호 7시간만에 나타나 했던 소리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참담한 것이었다. (출처: YTN 당시 보도 화면) 박근혜가 세월호 7시간 만에 나타나 했던 일성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참담한 것이었다. (출처: YTN 당시 보도 화면)

또 하나 예를 들자. 2012년 말, 나도 일원으로 참여했던, 망중립성 이용자포럼은 미래부가 공개하지 않은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한다. 미래부는 그 요청을 거부했고, 결국 정보공개청구 소송까지 진행됐다. 소송 진행 중에 미래부는 정보공개를 결정했고, 더는 소송을 진행할 이유(소송의 ‘실익’)가 사라졌다.

망중립성

사필귀정이라고? 현실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2014년이 되자 미래부가 ‘이용자 포럼’의 일원으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진행한 진보넷에 소송비용 150여만 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이 “적반하장”을 한겨레는 생생히 기록한 바 있다(결국, 소송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최종 결론나긴 했지만).

 

알 권리의 ‘가격’ 

정부가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공공정보 공개)을 하면서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와 개인을 ‘돈'(소송비용)으로 겁박하는 일은 그동안 꾸준히 발생했고, 또 앞으로도 발행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질문한다. 누구나 마땅히 알아야 할 정부의 공공정보를 공개하라는 요청이 소송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때 그 (행정)소송에서 정보를 공개하라는 자가 패소했다면, 그때에도 그 소송비용을 내야할까? 현실에서 이 논의는 정보공개법 개정 문제와 연결되고, 정보공개법의 개정 방향은 다음 세 가지 요구 사항을 얼마나 포함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1. 부당하게 정보공개 거부한 경우,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을 것.
  2.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패소할 때에도 그 소송비용을 국가가 지원할 것.
  3. 정보공개청구 과정의 비용도 국가가 지원할 것.

현재 위 3항(청구 과정의 비용 국가지원)을 포함한 법안 개정안은 발의되어 있지만, 1항(처벌조항)과 2항(소송비용 지원)을 포함한 개정안이 입안된 적은 없다. 이 글은 우선은 ‘소송비용 지원’ 문제에 집중하고, 그 해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선 현장 공무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제 공공정보에 관한 알 권리에도 '돈'의 논리가 개입해도 좋은 걸까? 이제 공공정보에 관한 알 권리에도 ‘돈’의 논리가 개입해도 좋은 걸까?

 

행자부, “영업, 사익 목적… 심지어 심심풀이도 많다”

정보공개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공익을 위한 정보공개청구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행정자치부 공공정보정책과 고준석 사무관은 흔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언론과 시민단체가 주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행정자치부

“정부 감시, 투명성 확보 목적의 정보 공개 청구도 있지만, 업자들이 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보험회사가 진료 정보 등을 청구한다든지, 제약회사가 보건소의 약품 구매명세를 청구하는 등이 그런 경우다.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개인 민원 차원의 청구가 훨씬 많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공익적인 성격보다는.”

그러면서 고 사무관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소송비용 지원을 제안한 바 있지만, 사업상 영업활동의 일환이나 개인의 사익 목적의 정보공개청구까지 법으로 소송비용을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보공개청구의 목적을 구별하고, 공익 목적 청구만 법을 통해 지원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를 위한 사익 목적 청구와 공익 목적 청구을 분류하는 일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익 목적 청구와 공익 목적 청구를 분류한 통계는 없고, 체험적으로 볼 때 재소자의 취미 생활이나 사익 집단의 영업활동 일부로 활용되는 예가 많다.”

재소자의 취미 생활? 이건 무슨 소릴까? 고 사무관은 “교도소 재소자가 시간 때우기용 심심풀이로 정보공개청구를 많이 한다”면서, “(정작) 정보가 오면 받아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버린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정보공개 제도를 입안할 때 공익성이 담기지 않은 청구의 남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경실련,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박경준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그럼에도 정보공개청구 소송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방안은 여전히 필요하고 또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경실련 박경준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사진)은 “공공 이익을 위해 필요한 정보라면 소송까지 가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지만, 소송 비용을 낸 뒤로는 ‘이거 소송까지 가면 이길 수 있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최근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패소했고, 결국 300여만 원을 소송비용으로 냈다. 박 위원장은 현 제도가 ‘정보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소송비용이 정당한 공익적 소송행위를 위축시키고, 정보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현재의 제도는 소송비용이 정보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소송비용 청구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 크게 늘었다고 지적한다.

“승소한 국가가 공공기관이 패소한 시민단체나 개인에게 소송비용을 물리는 경우는 박근혜 정부 이전에는 드물었다. 국가가 법무공단을 만들고, 변호사는 공무원처럼 채용해 운용했는데, 법무공단에서 공익 소송의 패소자에게 소송 비용을 부담하게 한 것이 박근혜 정부 들어서 일상화한 것이다.”

"희망의 새시대를 만들겠다"던 박근혜는 '순실이의 봉건시대'로 회귀했다. 오늘(10월 4일) 대국민담화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68802.html 를 발표하면서,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했지만, 지금 대통령의 진정한 사죄는 '하야'밖에는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시민단체에도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경실련 박경준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은 지적한다.

오히려 사익 목적의 정보공개청구가 많다는 일선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사익과 공익의 경계가 모호한 면이 있지만, 언론사나 시민단체가 공공정보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경우에는 사익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에게 끝으로 입법론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아주 간단하다. 정보공개법을 개정하는 것이 어려우면, 변호사 보수에 관한 대법원 규칙에 언론사나 시민단체 등이 행하는 공익을 위한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그 소송비용을 면제한다고 예외 규정을 넣으면 된다.”

그렇다면 실현 가능성은? 박 위원장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공공정보와 알 권리, 그 해법은?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허광준 오픈넷 정책실장 오픈넷 허광준 정책실장(사진)은 원칙으로선 국가가 소송비용을 지원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보공개를 활성화하고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청구 비용이나 소송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제도를 남용하여 과도한 청구를 제기하는 등 법 취지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지원 대상과 지원 횟수에 제한을 두는 방식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청구 ‘소송’은 공공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특히 정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관계부처의 이해관계가 관련되고, 그러다보니 책임 소재 문제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거기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정부 부처의 관성까지 더해지니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진보넷 오병일 활동가(사진)는 지적한다.

오병일 그리고 이를 해소하려면 판단 기구를 독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보공개청구소송뿐만 아니라 공익소송에서 소송비용이 문제라면,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해소하면 된다. 정보 공개 여부를 해당 정보와 이해관계 있는 행자부가 판단하니 문제가 생긴다. 정보 공개 여부를  독립적인 기구에서 판단하면 상당한 문제가 해결될 거다.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 정부 책임도 분명히 있다.”

그러면서 ”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적인 노력, 법률상 비공개 사유에 대한 검토, 또 판단기구의 독립성 등, 결국 이 문제는 공공정보를 둘러싼 주체들의 ‘협치 모델'(거버넌스)를 통해서 논의되어야” 한다면서, “정부 기록이 되어야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텐데, 공식 기록이 없으면 아예 공개할 정보가 없어지는 셈이므로 어느 단계까지 공공정보로서 기록하고, 보관할지도 종합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참고: 정보공개법 제17조와 이재정 의원안(개정안) 

정보공개법 제17조(비용 부담)

① 정보의 공개 및 우송 등에 드는 비용은 실비(實費)의 범위에서 청구인이 부담한다.
② 공개를 청구하는 정보의 사용 목적이 공공복리의 유지·증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비용을 감면할 수 있다.
③ 제1항에 따른 비용 및 그 징수 등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규칙·대법원규칙·헌법재판소규칙·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및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참고로 현재 소송비용과 관련한 규정은 정보공개법 17조에 규정하는데, “정보의 사용 목적이 공공복리의 유지, 증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비용을 감면할 수 있다”고 한다. 1) 공공 목적으로 (아마도 국가기관이) “인정”해야 하고, 2) 이렇게 공공 목적이 인정될 때에도 “비용을 감면한다”거나 “비용을 감면해야 한다”가 아니라 “비용을 감면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바, 결국 국가기관 맘대로인 셈이다.

참고로 3월에 발의한 이재정 의원안은 제17조 2항에서 공공 사항은 비용 감면할 수 있다고 하긴 했는데 그걸 따지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 아예 전체를 비용을 감면하자는 취지다.

“현행법은 정보공개 및 우송 등에 따른 비용을 실비의 범위에서 청구인이 직접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다만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비용을 감면하도록 하고 있음. 이에 2015년 한 해 동안 약 45만 8천 건의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발생한 수수료 총액은 약 3억 8천만 원으로, 개별 공공기관별로 살펴보면 수수료 징수액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며, 오히려 해당 정보공개청구가 수수료 감면 대상인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행정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음. 따라서 정보공개청구 비용은 개인이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와 국정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정보공개청구제도를 더욱 활성화하려는 것임(안 제17조).”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게재하고 있습니다. (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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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이 글은 총 두 편입니다. 1편은 지도 반출 문제, 2편은 지도의 보안 처리 문제를 다룹니다. (필자)

  1. → 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2. 보안 처리: 구시대적 지도 검열

 

지난 6월 초 구글이 한국 지도 반출을 재신청하면서 비롯된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정부나 구글, 국내 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내놓는 주장이 뒤섞이며 사실관계조차 헷갈리고, 정보통신 서비스 영역을 넘어 안보나 국가 자존심까지 입길에 오르고 있다.

7월에 세계를 급속히 달군 포켓몬 고 열풍도 이러한 논란에 부채질했다. 한국이 게임 서비스 지역에서 제외된 것이 구글 지도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문제에는 몇 가지 이슈가 꼬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꼬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여하튼 이런 가닥을 차근차근 분리하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원칙들을 적용한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다음에 실릴 글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지도 정보의 국외 반출 문제,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차례로 짚어 본다.

 

한국에서 지도 쓰기를 포기하는 외국인들

Danielle Conway지난 5월 19일, 오픈넷이 주최한 포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혁신 조약’에서 발제를 할 사람은 미국 메인 대학교 법학교수인 다니엘 콘웨이(Danielle Conway, 사진) 박사였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한국을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서울 지리에 깜깜하다.

숙소인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포럼이 열리는 선릉역 부근 행사장까지 오는 길을 알려주어야 했다.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 올지 몰라서, 일단 지도부터 보냈다. 한국인이 흔히 쓰는 네이버나 다음 지도는 그녀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영어로 표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글 지도로 이미지를 떠서 이메일로 보냈다.

콘웨이 박사는 택시를 타고 왔다. 목적지를 못 찾아서 선릉역 부근을 뱅뱅 돌던 기사가 결국 내게 전화를 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발제자가 40분도 더 늦는 바람에 토론자가 먼저 마이크를 잡는 일이 벌어졌다. 택시요금은 정상보다 세 배 가량 더 나왔다. 콘웨이 박사는 이렇게 요금이 비정상적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구글 지도에는 택시를 이용한 경로 서비스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 서비스에 관한 한, 외국인에게 한국은 남미 원시림이나 다름없다. 8월부터 오픈넷에서 인턴쉽을 하는 미국 대학생 댄 베이티코는 서울에서 지도 쓰기를 아예 포기했다. 그가 한국을 오기 전에 거쳐왔던 대만, 네팔, 베트남에서는 겪지 않았던 일이었다.

물론 이것은 두 가지 이유로 그렇다. 국내 업체의 지도는 영어 서비스를 하지 않고, 다양한 언어 지원을 해서 국제 표준이 되다시피 한 구글 지도는 국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일부 외국인이 한국에서 길을 찾는 문제라면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야 헤매든 말든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 지도 서비스를 근간으로 한 각종 부가 서비스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같은 태반에서 태어날 다양한 미래의 서비스들도 근본적으로 잉태될 수 없다는 점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에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안보 위협하는 지도 반출 안 된다?

구글이 지도 반출을 신청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자사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그리고 구글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기반으로 하여 개별 기업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꽃피우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지도 정보를 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단순하면서도 다분히 의도된 오해 때문이다. 즉 구글의 지도 반출에 반대하는 측이 이 문제를 국가 안보 이슈로 틀 지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구글이 한국의 안보 특수성을 무시하고 보안시설이 다 드러난 지도를 국외로 가져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 구글은 현재 한국 지도를 극히 제한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2. 이 지도는 SK플래닛(모회사는 SK텔레콤)이 소유한 것이며, 구글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 지도를 사용하고 있다.
  3. 즉, 구글은 자체로 한국 지도를 돌리는 게 아니라 SK플래닛에서 돌아가는 지도를 보여주기만 한다.
  4. SK플래닛 지도는 다음 지도나 네이버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부 규정에 따라 보안 처리된 지도다.
  5. 구글이 지도를 반출하겠다는 의미는, 이 SK플래닛 지도 데이터를 해외의 서버에서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다.

따라서, 구글이 보안 처리되지 않고 속속들이 다 보이는 지도 데이터를 외국으로 가져가려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가져가려는 지도는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보안 처리된 데이터다. 보안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당장에라도 반출을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법을 위반하는 일도 아니다. 한국 법은 지도 정보 반출을 금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할 길을 열어두고 있다. 그 결정을 위해 정부 부처 간 협의체(‘공간정보 국외반출 협의체’)까지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협의체가 반출 허용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필요성이 없다면 불허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도 반출로 얻거나 잃을 이익을 따져 내릴 정책적 판단이다.

안보를 걸고넘어지는 주장은 모두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다고 보면 된다. 안보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동력을 얻는다.

“정부는 지도데이터에서 중요 안보시설을 삭제할 것을 반출조건으로 내걸고 있고 구글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국토부 “지도반출 불허해 포켓몬 고 불가능한 것 아니다” (2016. 7. 14) 중에서

이런 서술은, 구글이 안보시설이 속속들이 표시된 지도를 가져가려고 한다는 오해를 조장한다.

 

위성사진에서 뺨 맞고 지도에 화풀이

오해든 착각이든, 안보 문제가 있으므로 지도 반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반출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정부가 그런 여론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출 대상이 되는 지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위성사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알듯 구글의 위성사진은 한국 정부가 가리고 싶어 하는 시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정부에서 볼 때, 외국 기업이라 손을 쓸 수 없어 하릴없이 두고 보기는 하지만 눈엣가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출 대상 지도 데이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구글의 위성사진과 관련한 사실관계도 정리해 보자.

  1. 구글 지도에 나오는 한국의 위성사진은 .co.kr 버전과 .com 버전이 있다.
  2. 한국 주소인 .co.kr로 보이는 위성 이미지는 해상도가 낮아 희미하게 보인다.
  3. 이것은 구글이 한국 법규를 따르려고 일부러 해상도를 떨어뜨린 결과다.
  4. 한편 한국법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 주소인 .com으로는 선명한 이미지가 보인다.

한국 웹주소와 해외 웹주소를 다르게 하여, 해외 주소로 접속하면 다 볼 수 있게 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 보자면, 한국에서는 법이 그렇게 강제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차이다.

어쨌든 구글 국내 위성사진에는 흐릿하게 나오는 주요 시설물들이 .com 사진에는 선명하게 다 보인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정부의 숙원 사업이다. (이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은 밑에서 다시 자세히 쓴다.) 따라서 구글이 지도 반출을 신청하고 이에 대해 여론이 안보를 이유로 부정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정부에게 반가운 상황이다. (반출 대상 지도가 아닌) 위성사진을 손보도록 요구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말까지 응답을 내놔야 하는 정부가 가장 선호할 만한 해결 방식은, 구글에 기왕의 SK플래닛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는 대신, 그 조건으로 구글 위성사진(.com)을 국내 업체의 사진처럼 보안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미 쓰고 있는 지도 반출을 허용해 주면서 숙원 사업이던 위성사진 물칠을 성사시킬 수 있는 빅딜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구글에게 이례적으로 서버를 자국 안에 들여오도록 강제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권위주의 국가의 인상을 또 하나 더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되는 방안이기도 하다.

문제는 구글이 이런 제안을 받을 것이냐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구글코리아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한국의 지형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외국 위성사진이 널린 마당에 구글만 지우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요구다. 둘째,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외국 기업의 서비스에 검열을 가하는 것이다. 셋째, 구글은 위성사진에 스스로 보안 처리한 적이 없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는 세계 위성사진에서 희미하게 처리된 지역을 표시한 목록이 있다. 여기에는 구글이나 빙(MS의 검색엔진) 위성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을 클릭해 실제로 가 보면 정상적으로 보이는 곳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구글은 지도 상태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지 않은 경우일 뿐이며, 해당 지역을 보여주는 더 좋은 지도가 입수되면 계속 업데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첫 번째 이유가 시사적이다. 정부는 구글의 위성사진을 보안 처리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을 다 보여주는 위성사진은 구글 말고도 널려 있다. 어찌어찌 하여 구글 사진을 물칠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악의 없는 이용자의 시각만 가로막을 뿐, 실제로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아래 사진들은 네이버, 다음 같은 한국 지도 서비스들과, 접속하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외국 지도 서비스들의 위성사진을 통해 본 경복궁과 청와대 모습이다.

 

이뿐만 아니다. 온라인으로 무료 서비스되는 이들 위성사진 말고도, 사진을 상업적으로 파는 많은 위성사진 업체가 있다. Esri.com, digitalglobe.com 등이 그중 일부다. 이 업체들은 누구든 돈만 내면 무료 위성사진보다 훨씬 더 높은 해상도의 사진을 제공한다.

국제적으로 이용되는 이들 지도 서비스를 열면, 한국인만 못 보고 있는 장면들이 크고 아름답게 나타난다. 구글의 위성사진을 지우려 하는 정부 노력은, 이 모든 지도들도 막아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결국, 정부는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하여 안보의 깃발을 높이 들고 애국적 싸움에 나선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보 실익이 전혀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지도 반출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은 덤이다.

 

한국에 서버를 설치하라?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지도 반출 논란에 대한 한 가지 처방은 구글이 서버를 한국에 설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핏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구글이 SK플래닛 지도 데이터를 한국에 있는 서버에서만 돌린다면 반출 논란은 당연히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구글은 전 세계 지도 데이터를 현재 15개 국가에 산재하는 데이터 센터에 분산 배치하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떤 한 나라의 데이터를 돌리기 위해 그 나라에 서버를 설치한 일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지역에 데이터를 묶어버리면 안정성 유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국내의 시각만 가진 정부나 업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취월장하여 언젠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진출해야 할 국내 기업이 겪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게다가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라는 것은 정보의 국경 없는 자유로운 흐름이라는 인터넷의 대원칙에도 어긋난다. 데이터를 수집된 국가 안에 묶어두려는 이른바 데이터 국지화의 경제적 문제점을 새삼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글이 한국에 서버를 두기를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2011~12년에 구글은 아시아 지역 세 곳에 대형 서버를 구축하기로 하고 지역을 물색했다.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의 거대한 서버 시설을 유치하는 데서 올 경제 효과를 염두에 두고 한국도 열심히 유치 운동을 했다. 그러나 구글 서버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으로 갔다.

한국이 제외된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2011년 5월 한국 경찰은 모바일 광고의 위치정보 수집 사건을 수사하면서 구글코리아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압수수색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 당국이 영장 없이도 이동통신사를 찔러서 이용자 정보를 마음껏 캐내 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구글 서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뒤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 서버를 두고 싶어 하는 인터넷 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금 받고 싶으면 법규부터 고쳐라

여기서 지도 반출 이슈와 상관없는 또 하나의 애국 프레임이 등장한다. 구글이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고 부도덕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그 어조는 사악하고 패륜적인 반국가단체를 나무라는 양상이다.

이런 주장은 구글이 한국에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구글코리아는 물론 세금을 낸다. 구글이 한국에서 창출한 수익 전체에 대해 적절한 세금을 내고 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구글은 현재 한국법과 국제 규정이 정하고 허용한 바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구글이 아니라 법규다. 구글이 창출하는 이윤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물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법을 제·개정하고 규정을 정비하면 된다. 세법을 개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고, 이미 그렇게 하는 나라들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그런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일은 하지 않으면서 기업을 나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해결책도 될 수 없다.

구글이 세계적 강자이기는 하지만, 구글 지도 서비스가 한국에 개시된다고 해서 한국인이 바로 구글 대마왕에 종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구글이 한국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지 15년 이상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네이버가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구글을 쓰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이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구글의 서비스에 만족하는 사람이 는다는 뜻일 뿐이다. 다른 기업 역시 그런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일 것이다.

정부는 곧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에 대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 지도 반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안보나 준탈세 프레임에 휩쓸리기보다, 지도 데이터 개방이 이용자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실제로 어떤 효용이나 불이익을 가져올까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좀 더 생산적인 접근일 것이다.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기업들의 규모가 막대하게 커지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업 모델을 구축하여 실물 경제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가 기업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새로이 검토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안보 필요에서부터 납세의 의무까지, 명분과 구호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많지 않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기반으로 형성된 온라인 세상을 살기 위한 21세기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였습니다. (2016.08.16.)

 

화, 2016/08/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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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처리: 구시대적 지도 검열

글|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이 글은 총 두 편입니다. 1편은 지도 반출 문제, 2편은 지도의 보안 처리 문제를 다룹니다. (필자)

  1. 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2. → 보안 처리: 구시대적 지도 검열

 

이미 알려진 대로 한국 지도 데이터를 국외 서버에 저장하겠다는 구글의 신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하여 허락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는 일정한 시설물을 지도나 위성사진에 공개하지 않는 방침을 갖고 이에 따라 지도를 제작 및 공개하고 있으나, 미국 기업인 구글이 이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지도에서 은폐되는 시설물과 보안 처리에 대해 살펴보자.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온라인 지도는 규정에 따라 일정한 시설물을 표시하지 않거나 위장, ‘물칠’(블러링) 등의 형태로 가려야 한다. 이것은 공간정보법 제35조와 그에 따른 보안관리규정이 일정한 지도 정보를 비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규들에 따르면 공간정보를 관리하는 기관(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은 국가정보원과 협의하여, 공개가 제한되는 정보의 접근이나 유출을 막는 조치(보안 처리)를 시행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물이 보안 처리가 되는지는 3급 기밀 사항이다. 그러나 보안관리규정의 공간정보 분류기준표와 실제 지도를 참고하면 대략적인 기준을 알 수 있다. 청와대나 국가정보원 같은 특수 정부 기관, 군부대 등 군사 시설, 휴전선 일대, 교도소, 발전소, 변전소, 댐, 송유관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송전탑이나 각종 맨홀(전기, 통신, 전화 맨홀들)도 그 대상이다.

이들 시설물은 안보 위험도에 따라 ‘비공개’와 ‘공개 제한’으로 나눈다. 비공개는 그 존재를 아예 표시하지 않는 것이며, 공개 제한은 무언가가 있지만 삭제했다는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다.

이러한 조치가 국가 중요 시설물을 보호할 목적으로 취해진 것은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정보 통신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 같은 정책의 필요성이나 실효성에 변화가 생기고 있고, 점증하는 국민의 공간정보 서비스 수요와도 잘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갑자기 사라지는 교도소

법무부가 운영하는 교도행정 종합 웹사이트인 ‘교정본부’에는 전국 교도소의 위치를 안내하는 지도가 게시되어 있다. 각 교도소에는 주소가 명기되어 있고, ‘오시는 길’이라는 버튼도 달려 있다. 버튼을 누르면 다시 해당 교도소를 안내하는 약도가 뜨고 버스 편 같은 정보가 나온다.

이렇게 오시는 길은 알려주고 있지만, 실제로 방문자가 가시는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상에서 길찾기나 위치 확인의 표준이 되다시피 한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에서는 이 교도소들을 도무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지도에서는 ‘OO교도소’를 넣어도 검색되지 않고, 교정본부 웹사이트에 나온 교도소 주소를 넣으면 없는 지역이라는 응답이 뜬다.

어찌어찌 하여 주변 지역을 찾아갔더라도, 거대한 시설물 중에서 어느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진입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리뷰로 경로를 쫓다 보면 건물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대신 뿌연 물칠이 앞을 가로막는다. 정부 사이트에 ‘오시는 길’을 약도와 더불어 친절히 안내한 시설물이 지도에서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보안관리규정에 따르면 대형 댐은 공개제한 대상이다. 발전소를 겸한 대표적인 대형 댐인 소양댐은 네이버와 다음의 지도에서 이러한 규정에 따라 보안 처리되어 있다. 거리 지도에는 아예 나오지 않았고, 위성사진에는 덧칠했다.

그러나 소양강댐 주변의 거리뷰를 따라가면 댐 시설물이 배경에 그대로 보이고, 댐 자체도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어 관광버스들이 늘어선 모습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해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고 심지어 관광지가 되어 누구나 접근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옛날식 규정에 따라 지도에서만 가려져 있는 것이다.

 

미국도 공개하는 미군 부대, 한국이 지켜준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경계지역에는 소규모 미군 부대가 주둔해 있다. 역시 한국 인터넷 지도에는 보안 처리되어서, 위성사진에도 나오지 않고 거리뷰는 뿌연 물칠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미군 부대 코앞으로 1호선 전철(도봉산~망월사 구간)이 지나간다. 전철은 지상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되어 있어서, 차 안에서 미군 부대 영내가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매일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감상하며 지나는 곳이 지도에서만 가려져 있다.

한국을 포함한 해외의 미군기지는 미국 영토의 일부 간주되며, 이 미군기지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정작 미국 기업은 자기네 군대가 주둔한 자기네 영토의 모습을 아무런 규제없이 보여주는데(미국 본토의 군사기지도 마찬가지다), 제3자인 한국은 남의 나라 부대의 안전을 염려하여 삭제해주고 있는 셈이다.

 

18개의 비밀 골프장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신청을 놓고 정부가 하는 주장은, 이 지도 데이터를 (구글닷컴의 위성사진처럼) 보안 처리하지 않은 위성사진과 결합하면 주요 안보 시설에 대한 위협이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 데이터를 가져가려면 위성사진을 보안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구글은, 데이터와 위성사진을 합칠 필요도 없이 모니터 두 개를 놓고 지도를 비교해 보기만 해도 누구나 알아낼 수 있는 일을 놓고 위협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지도의 보안 처리 덕분에 새로운 취미를 발견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지도에서 사라진 주요 시설물들을 찾아보는 일을 게임에서 수행해야 할 퀘스트(임무)처럼 생각한다.

이런 일을 본격적으로 해본 사람도 있다. 독일인으로 한국에 와서 가르치는 막스 노이페르트 교수는 어느 날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사용하는 외국 지도와 한국의 웹 지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시각예술가이기도 한 그는 정말로 ‘모니터 두 개를 놓고’ 대한민국의 전국 지도를 이 잡듯이 뒤져 보았다. 그 결과 한국 지도에서 삭제되어 있는 많은 시설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수십 개의 골프장이 한국 지도에는 모두 삭제된 점이었다. 바로 군부대 안에 있어 ‘군사시설’로 간주되는 골프장들이었다. 노이페르트 교수는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열여덟개의 은밀한 골프장]이라는 소책자를 펴내고 전시회도 열었다.

 

그가 이 문제에 흥미를 느낀 것은, 이것이 분명한 검열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검열치고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아예 검게 처리한 것도 아니고, 주변 지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태로 위장했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른 위성사진이 흔해빠진 세상에서 극구 이를 지우려 하는 모습도 우스꽝스러웠다. 노이페르트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검열되지 않은 이미지를 공짜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을 검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내 지도에서 이런 지역을 가리려는 노력은 아무런 실익이 없는 시지푸스의 행위 같은 것이다.”

이렇게 대중의 눈을 피한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따금 보도에 흘러나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군 골프장의 정식 명칭은 ‘체력 단련장’이다. 군사시설이고 그래서 지도에서도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곳에서 체력을 단련하는 사람은 대부분 군인이 아니다. 현역은 20%가 채 되지 않고, 그것도 대개 고위급이다. 나머지 80% 이상은 예비역이나 민간인들이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특권층들이 쉽게 부킹하여 값싸게 골프를 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안보를 명분으로 하여 대중의 시야로부터 철저히 차단한다.

 

민간에 떠넘긴 보안 작업

국내 지도나 위성사진에 이런 보안 처리를 하는 실무 주체는 정부 기관이 아니다. 다음, 네이버 같은 민간 업체가 규정을 참고하여 알아서 처리한 뒤 기관의 검사를 받는다. 정부가 해야 할 보안 업무를 민간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들 업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보안 처리를 수행하는데, 대개 ‘알바’ 형태의 인력을 고용하여 진행한다. 보안 처리 대상 시설은 1천 개 이상이고, 위성사진뿐 아니라 거리뷰 모습까지 하나하나 작업해야 한다. 엄청난 작업량을 비전문가들이 담당하다 보니 실수가 쉽게 벌어진다. 국내 지도들의 거리뷰 등을 보면, 규정에 따르면 명백히 가려야 할 곳이 가려지지 않은 곳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반대도 있다. 가릴 필요가 없는데도 그냥 보안 처리를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편이 훨씬 안전하다. 가릴 곳을 못 가리면 문제가 되지만, 안 그래도 될 곳을 가렸다고 해서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노이페르트 교수가 처음에 찾아낸 비밀 골프장은 60개 이상이었다. 전국에 존재하는 실제 군 골프장은 29개다. 착오가 생긴 것은, 지도 서비스 업체의 보안 처리 담당자들이 군부대와 인접해 있는 사설 골프장까지 모두 보안 처리했기 때문이다. 실효도 없는 보안 처리 규정 때문에 이용자의 정보 접근권이 얼마나 보호되지 못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적성 국가와 맞붙어 있는 준전시 상태 국가에서 중요 시설들이 지도에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시대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데다, 변화하는 정보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효성도 없이 규제의 짐만 되는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공간정보에 대한 개인과 기업의 요구가 커지고 이동성이 대폭 확장된 오늘날, 대중 노출을 차단하고 보호하여야 시설은 최소한으로 국한되어야 한다. 꼭 필요한 시설물을 보호할 때, 보호 조치는 의미가 있다. 정부는 케케묵은 목록을 민간 업체에 던져주고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변화한 상황을 반영하여 보호 대상 시설물을 재정의하고 실질적인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민간 업체들도 상황 개선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문해 봐야 할 일이다. 과도한 정부 지침을 그대로 이행하기만 하는 데 바쁘지 않았는지,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본 적은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불합리하거나 무리한 규제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수용하면서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릴 때,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경쟁자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도 고민해볼 일이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2016.08.16.)

 

화, 2016/08/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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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렌트와 저작권: ‘98% 다운로드’ 사건 –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인터뷰

글 | 민노씨(슬로우뉴스 편집장)

 

“(…)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구지방법원 2016. 7. 6. 선고 2015고정858판결 중에서

화두는 ‘토렌트’다. 저작권자 대다수에게 토렌트는 ‘불법의 온상’이고, 향유자 대다수에게 토렌트는 디지털 ‘문명의 이기’다. 이제 토렌트는 인터넷이 삶의 공간으로 자리한 네티즌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만큼 저작권자의 불안은 커진다. 생산과 소비, 창조와 향유, 이 좌우의 날개가 조화를 이룰 때 문화는 융성하고, 창작자와 향유자는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할 수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최근 토렌트 이용자를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형사 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2016년 7월 6일 대구지방법원).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고, 따라서 이 사건은 확정됐다.

 

사건 개요: 

다수의 소설 저작물을 압축한 압축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게 하는 토렌트 파일을 이용하여 해당 파일을 98%까지 다운로드 받은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복제권 및 전송권을 침해했는지 여부. 법원은 피고인의 무죄를 선고. 검찰은 항소 포기. 사건은 확정. (→ 판결문 전문)

이 사건을 담당한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에게 이번 사건과 판결의 의미를 물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시대의 화두, ‘토렌트와 저작권’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토렌트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일문일답>

 

-쟁점을 간단히 설명하면. 

쟁점은 두 가지다.

쟁점 1. 압축 파일이 98% 다운로드 완료되었다는 캡처 화면으로 다수의 소설 저작물 중에 저작권자의 소설 저작물의 복제가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그렇게 볼 수 없다.) 

쟁점 2. 토렌트 송수신의 특징상 다운로드와 동시에 일부 패킷이 송신되는데, 98% 다운로드 되었고, 고소인이 그 중 일부 패킷을 수신할 수 있었다면, 이를 해당 소설 저작물에 대한 전송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 그렇게 볼 수 없다.) 

 

-법원이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풀어 달라. 

이 사건에서 토렌트 이용 자체가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법리적으로 결론 난 것은 아니다. 다만 법리적으로 다툼이 큰 쟁점임에도 유죄 인정에 필요한 충분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래 판결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유죄 인정은 증거에 의해 엄격하게 확인돼야 하므로 법리적으로는 당연한 결론이다.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토렌트 이용시 업로드 제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고소인이 피고인으로부터 수신한 패킷이 매우 미미했다. 고소인은 본인의 소설 저작물만 특정하여 다운로드를 요청했지만, 본인(저작권자)의 소설 저작물의 용량을 넘어서는 분량의 패킷을 수신하였다는 점이 무죄 판단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안이 좀 복잡해 보인다. 사실 관계를 좀 더 풀어달라. 

고소인(저작권자)의 핵심 주장은 자신의 저작물을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이  토렌트 상에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올렸다는 것이다. 그 파일은 여러 저작물이 포함된 압축파일 형태였다. 그런데 토렌트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때는 여러 파일의 압축 파일이라고 하더라도 개별 파일을 선택할 수 있다. 고소인(저작권자)는 해당 압축파일 중 자신의 저작물만 선택해서 다운로드했다. 그래서 패킷을 나에게 준 사람(피고인)이라면, 본인의 저작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저작권

이 사건에서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은 업로드 제한 설정을 한 상태였는데, 그래서 최종적으로 피고인을 통해 고소인(저작권자)에게는 전달된 파일 용량은 약 8mb에 불과하다. 해당 저작물의 전체 용량은 약 485mb다. 저작권자는 다섯 번에 걸쳐 다운로드를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피고인에게 받은 8mb를 포함해서) 다운로드한 용량은 500mb였다. 즉, 자신의 저작물 용량인 485mb를 초과해서 받았다.

그래서 초과된 저작물의 패킷(500-485=15)만큼은 다른 저작물일 확률이 있고, 게다가 피고인에게 받은 패킷은 극히 저용량이며, 사실이 이렇다면, 저작권자가 받은 피고인의 파일에 저작권자인 자신의 저작물만 있다고 확정할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한마디로 말해, 저작권의 저작물 용량인 485mb를 초과해서 받은 15mb 중에 피고인에게 받은 8mb가 전부 포함될 수도 있다. 즉, 저작권자의 저작물 정보가 아닌 패킷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저작물을 가지고 있다고 확증할 수 없다는 점을 변론했고, 법원은 이런 사실관계를 살핀 뒤에 무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이 ‘리딩 케이스’ 역할을 할까. 판례 변경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우선 같은 취지의 선행 판결이 이미 창원지방법원에서 있었고, 이번 판례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일종의 리딩 케이스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단순히 IP주소 등 캡처 화면만을 증거로 제출하는 고소 사건 대부분은 기소조차 어려울 것으로 본다.

다만, 이 사건은 특이하게 다수의 저작물을 압축한 파일을 패킷으로 송수신한 것이어서 추후에 하나의 저작물에 대한 사건이라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즉, 하나의 저작물이 문제된 경우에는 이 사건과 달리 본격적으로 토렌트 이용에 대한 법리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법적 쟁점 외에 이번 사건을 ‘저작권 삥뜯기’(합의금 장사)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나. 

이 사건에서 고소인(저작권자)는 피고인에게 형사 고소와 관련하여 별도로 합의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른바 ‘저작권 삥뜯기’ 사례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저작권자 스스로 토렌트를 이용한 패킷 송수신에 참여했기 때문에 일종의 ‘기획 소송’에 해당한다고 본다.

저작권 폭탄

-기획 소송? 

기획 소송은,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면, ‘함정 수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토렌트 파일 유통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토렌트 시스템 자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저작권자 스스로 다운받아 토렌트 하면서 접속한 사람들의 IP로 고소했다. 저작권자가 전송에 참여하지 않고, 제3자를 통해 증거를 수집해 소송에 참여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직접 참여해서 토렌트 이용했다는 점에서 기획 소송에 해당한다고 본다.

 

-끝으로 독자에게. 

최근 몇 년 사이에 토렌트 파일을 대규모로 유통하는 해외 홈페이지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운영이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토렌트를 이용한 저작권 침해는 이를 대규모로 유통하는 홈페이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이용자에 대한 기획 고소의 부당함과는 별개로, 이 판결로 인해 토렌트 이용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니므로 이용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2016.08.23.)
화, 2016/08/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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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Fy 2016 참가 후기

 

글 | 김가연(오픈넷 변호사)

일시: 2016년 9월 28일 – 9월 30일
장소: 뉴델리, 인도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 박경신 이사는 “디지털 아시아: 새로운 거버넌스 질서 세우기(Digital Asia: Scripting the New Governance Order)” 란 주제로 열린 CyFy 2016에 토론자로 초대 받아 참가했습니다. “사이버보안과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한 인도 컨퍼런스(The India Conference on Cyber Security and Internet Governance)”의 줄임말인 CyFy 2016은 올해 4번째 열린 것으로, 인도 및 아·태지역 국가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유럽 등 45 개국에서 130여 명의 전문가 패널과 600여 명의 대표단이 참여한 아시아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터넷 거버넌스 컨퍼런스였습니다.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 ‘사이버 보안(cyber Security)’, ‘국제 협력(International Engagement)’, ‘접근권과 포섭(Access & Inclusion)’, ‘역량배양(Capacity Building)’ 총 5개 분야에서 다양한 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박경신 이사는 ‘접근, 프라이버시, 보안의 트릴레마(the Trilemma of Access, Privacy and Security)’, 김가연 변호사는 ‘인터넷의 분열(Internet Fragmentation Session)’ 세션에서 발표 및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 9월 30일 금요일

참여세션 1: 접근, 프라이버시, 보안의 트릴레마(the Trilemma of Access, Privacy and Sec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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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널 소개:

적법한 정보 접근권과 프라이버시 보호가 대립하는 암호화 논쟁 등 최근 전개되는 논의를 조망하고, 이러한 간극을 조정하기 위해 새로이 도출해야 할 규범이 무엇인지 토론한다.

This panel will take stock of some of the recent developments like the encryption debate that purportedly pits privacy against legitimate access to electronic data. It will identify norms that must be developed anew to reconcile these differences.

- 패널 토론자:

1. Isabel Skierka, Researcher, Digital Society Institute, European School for Management and Technology
2. Seda Gürses, Post-Doctoral Researcher, Center for Information Technology Policy, Princeton University
3. Solange Ghernaouti, Professor, University of Lausanne
4. KS Park, Director, OpenNet Korea
5. Alexander Klimburg, Director, Cyber Policy And Resilience Program, Hague Centre for Security Studies
6. Paula Kift, Ph.D Candidate, New York University (Chair)

- 박경신 이사 발표문

 

참여세션 2: 인터넷의 분열(Internet Fragmentation Session)


 

- 패널 소개:

다양한 통상협정 체제의 인터넷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함의를 검토한다. 특히 TPP(the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아시아 지역 인터넷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에 대해 토론한다.

The internet fragmentation panel will examine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implications of differential trading regimes. With universal, affordable connectivity yet to be achieved, are we already witnessing parallel internet regimes that cater to emerging economies?

- 패널 토론자:

1. Kelly Kim, General Counsel, Open Net Korea
2. Hoang Tran, Partner, EZLAW
3. Anahita Mathai, Junior Fellow, Observer Research Foundation
4. Hugo Zylberberg, Fellow for Technology & Policy, Columbia University School of International & Public Affairs
5. Burcu Kilic, Policy Director, Public Citizen (Chair)

- 김가연 변호사 발표 요지(업데이트 중)

 

수, 2016/10/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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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게임: 빅데이터와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글 | 민노씨(슬로우뉴스 편집장)

 

개인정보 플랫폼 기업이 개인정보를 판매 촉진 목적으로 활용하려고 할 때,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지, 동의를 받지 않고도 분석, 가공, 판매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개인정보 플랫폼 기업에는 막대한 이윤 발생 여부가 결정된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사안이다. (이은우 변호사, 정보인권연구소)

강원도에 사는 스무살 대학생 철수가 페이스북에 재잘거리는 한담이, 제주도에 사는 서른살 직장인 영희가 트위터에 올리는 짧은 한탄이 경제적인 가치를 지니는 ‘고급 정보’가 될 가능성은 그 자체로는 제로다. 하지만 10만 명의 철수가 100만 명의 영희가 모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빅데이터,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날 컴퓨팅 기술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생산되는 무수히 다양한 개인의 디지털 정보를 드디어 ‘정복’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걸 상징하는 용어는 ‘빅데이터’다. 이제 쓰고, 말하며, 대화하고, 소비하는 물리적인 컴퓨터 서버의 어딘가에 저장된다. 이제 디지털 저장기술은 인간의 기억을 대신한다. 우리는 그저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흘려보내면 그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디지털 전자신호로 서버 속 공간 아닌 공간을 흘러갔던 정보는, 철수와 영희는 영영 모르는 채로, 이제 산업적인 가치를 가지는 정보로 재가공된다.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정보의 총체적 재구성이다. 모든 흩어진 의미가 ‘찬란한 귀향의 축제’를 맞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서비스를 더욱더 진화시키고, 이윤을 극대화할 기회이자 재료다.

luckey_sun, "big data", CC BY SA https://flic.kr/p/bx1jvU

luckey_sun, “big data”, CC BY SA

하지만 개인정보 주체들에게는 디스토피아의 서막일 수도 있다. 근대 이후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권리(홀로 있을 권리)를 ‘획득’했다. 그리고 오늘날 문명화한 국가는 국가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개인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명문의 법률로 규정했다. 자기 정보 통제권(혹은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은 그렇게 탄생했고, 그 권리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에 관한 권리에 눈뜬 근대적 자아가 획득한 전리품이다. (→ 참고: 거짓말할 수 있는 권리)

단, 이 자기 정보 통제권이 각자 자신에 대한 정보를 공개된 정보와 비공개된 정보 가릴 것 없이 자신이 소유한 자동차를 소유하듯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로 해석하면 그것은 곤란하다. 이는 타인들 간에 진실한 정보를 공유하는 생활에 검열권을 가지게 하는 셈이라서 자기 정보 통제권은 균형을 고려한 해석이 불가피하다.

 

위험한 게임,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기업에 빅데이터가 잠재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라면, 자기 정보 통제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길 수 있는 개인에게는 잠재적 공포다. 그 ‘위험한 게임’이 지금 막 시작됐다. 이름은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 국무조정실
  • 행정자치부
  • 방송통신위원회
  • 금융위원회
  • 미래창조과학부
  • 보건복지부

참여 부처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야말로 통합 가이드라인이다. 그 골자는 이렇다.

‘개인정보라고 하더라도 비식별 조치(익명화)를 거치면 정보주체의 사전 동의 없이 기업이 이를 활용하도록 할 수 있다.’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가이드라인의 쟁점 

이 글은 가이드라인의 개요와 쟁점을 단계적 ‘Q&A’ 형식으로 독자에게 최대한 쉽게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 이하 ‘가이드라인’으로 표기.
  • 개인정보보호법 → 이하 ‘개보법’으로 표기.
  • 행정자치부 개인정보보호정책과 장한 과장 → 이하 ‘행자부’로 표기.
  •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 이하 ‘오픈넷’으로 표기.
  • 정보인권연구소 이은우 변호사 → 이하 ‘연구소’로 표기.[1]

 

1. ‘빅데이터’란 무엇인가

가이드라인의 중심에 있는 화두는 ‘빅데이터’다. 빅데이터 산업 육성이라는 가치와 개인보호라는 가치를 조화롭게 공존하게 하는 게 가이드라인의 취지라면, 이에 시민단체(오픈넷)와 정부(행자부)의 평가와 시각 차이는 명확하다.

오픈넷은“법률적으로 빅데이터에 대하여 정의된 바는 없다”고 전제한 뒤, “최근 빅데이터라는 단어 자체에 천착하여 빅데이터 산업의 진흥만이 주로 논의될 뿐, 빅데이터 환경이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고, 가이드라인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한다.[2]

정보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Intersection Consulting, CC BY NC

이에 대해 행자부는 빅데이터 산업 진흥과 개인정보의 관계는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라면서, 이번 가이드라인이 데이터 이용함에 있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자평한다.[3]

 

2. ‘비식별 조치’란 무엇인가

가이드라인의 골자는 ‘비식별 조치’(익명화)다. 가이드라인은 비식별 조치 방법과 그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런데 ‘비식별 조치’라는 용어, 익숙한가? 용어 정의부터 잘못됐다는 비판과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살펴보자.

연구소는 ‘비식별 조치’라는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다면서 “용어 자체가 부적절한 법률용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비식별 조치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개인정보 보호법제와 유사한 유럽연합과 일본의 용어 정의를 참고해보자.

  • 유럽연합“익명화된 데이터”(data rendered anonymous)[4]
  • 일본: 개인정보보호법의 개정시 “익명가공정보” 규정한다. 익명가공정보는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개인정보를 가공하여 얻어지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해당 개인정보를 복원할 수 없도록 한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5]

더불어 ‘비식별 조치’ 혹은 ‘비식별화’라는 표현이 너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가이드라인의 ‘비식별 조치가’가 ‘익명화’나 ‘익명정보’ 혹은 ‘익명가공정보’와 같은 의미라면 그냥 ‘익명화’나 ‘익명정보’로 쓰면 될 것을 “문법에도 맞지 않는 신조어”를 사용해 국민에게 혼동을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비식별 조치'는 쉽게 말해 '익명화'라고 할 수 있다.

‘비식별 조치’는 쉽게 말해 ‘익명화’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행자부는 익명화든 비식별 조치든 “이는 용어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내용이 중요하지 용어 선택은 부차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즘은 국제적으로 ‘비식별화’를 쓰는 추세”라고 부연한다.[6]

한편, 오픈넷은 연구소 입장에 동의하면서, ‘익명화’라고 표현해야 정확하다는 입장이다.[7]

 

3. 가이드라인의 ‘비식별 조치’ 평가 기준은 타당한가

여러 문제와 논란은 별론으로, 우선 가이드라인의 내용에 집중해 보자. 가이드라인은 ‘비식별 조치’와 이에 대한 적정성의 평가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다. 그럼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비식별 조치’의 기준은 과연 합리적일까.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연구소는 가이드라인의 위 해당 문답을 해석하면 “이는 재식별 가능성이 현저하지 않은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면서 “유럽연합에서 익명정보가 ‘더 이상 재식별 가능성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에서도 ‘익명가공정보’란 복구 불가능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잘못”이며, “재식별 위험이 현저하지만 않다면 개인정보 주체는 그 위험을 감수하라”는 가이드라인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해당 문답의 표현 중 “현저히”는 ‘강조 수사’에 불과”하다며, “해당 문구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가이드라인의 “전체 체계”가 중요하고, 해당 문구는 “강조 수식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행자부는 인터뷰에서 가이드라인의 법적 성질을 묻는 질문에 “유권해석집”이라고 답했다

한편, 오픈넷 “표현의 모호성 때문에 ‘가이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이드라인이 ‘유권해석집’이라면, “구체적인 법 규정에 대한 해석이어야” 할 텐데, “비식별 조치라는 것은 기존 법에도 없는 새롭게 창조한 개념”이고, 이를 해석한다고 하니 “내용뿐만 아니라 법적인 근거나 성질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4. 비식별 조치에 대한 적정성 평가 

가이드라인은 비식별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정한다. 이 적정성 평가 기준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연구소는 ‘형식적이기 짝이 없다’고 비판하고, 행자부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연구소는 가이드라인의 “적정성 평가 기준은 형식적이기 짝이 없다”면서 “K(익명성), L(다양성), T(근접성)의 세 가지 방법의 익명화 기술을 적용하라는 것”은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기 그지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방법과 기준은 “재식별 가능성이 농후한 방법으로 지목받아 왔던 기술”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연구소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반박한다. “현재로썬 KLT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고, “(오히려) 유럽에서는 K를 의무화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K를 의무화했다”면서 그만큼 개인정보 보호에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픈넷은 해당 기술의 재식별 가능성도 중요한 이슈지만, “개인정보처리자 입장에서 특정 기술을 이용한 비식별 조치만을 취하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것인 양 오독할 여지가 큰 가이드라인 규정의 모호성이 가장 큰 문제”[8]라고 지적한다.

 

5. 적정성 평가단: 고양이에 생선가게 맡기기? 

가이드라인은 분야별 전문기관을 두고, 이 전문기관이 비식별 조치의 적정성을 평가하게 한다. 그런데 이 적정성 평가 기관에 ‘한국신용정보원’과 같은 빅데이터 산업과 이해가 직결한 이익단체가 속해 있어 문제다.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기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연구소는 이들 기관이 “공정성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면서 특히 분야별 전문기관 중에는 “특히 사업자들 모임인 한국신용정보원이 포함”돼 있고, 금융보안원, 사회보장정보원, 한국정보화진흥원 등은 “성과 위주의 조직”임을 지적한다.

특히, 한국신용정보원은 금융업계 모든 고객의 신용정보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기관(세계 최초)으로 여기엔 이들은 빅데이터 활용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다음 ‘이익단체’들이 참여한다. 더불어 이들 협회 소속 기업에서 그동안 각종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연례행사처럼 이어져 왔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 은행연합회
  • 금융투자협회
  • 여신금융협회
  • 생명보험협회
  • 손해보험협회 등

빅데이터 산업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이익단체'가 적정성 평가를 한다?

빅데이터 산업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이익단체’가 적정성 평가를 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연구소 측에서 특히 문제 삼은 ‘한국신용정보원’은 “우리가 지정한 게 아니라 금융위원회가 지정한 것”이라면서, “분야별로 소관 부처에서 관련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을 지정한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이 문제 관해 오픈넷은 “전문기관 자체가 법률에 근거가 없”고, “정보주체들로부터 개인정보의 처리 권한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사업자 모임 여부와 상관없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6. 입증책임 문제 

가령, A라는 기업이 철수와 영희의 신용카드 구매 정보를 ‘비식별 처리’해서 B라는 기업에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비식별 처리가 제대로 이뤄졌다는 ‘입증’ 책임은 누가 질까? 철수와 영희일까? 아니면 A와 B라는 기업일까?

연구소는 가이드라인이 “비식별 조치가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해당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규정하므로, 해당 정보를 어떤 개인이 “개인정보라고 주장하려면 개인정보 주체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연구소 측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면서, “가이드라인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며, “당연히 비식별 조치를 한 측에서 (비식별 조치의 정당성과 적정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2016. 6) 중에서

입증책임 논란에 대해 오픈넷은 법원에 까지 가는 사안이 생기면, 법률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이드라인이 ‘추정한다’고 하니 반증이 없는 한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소 측에선 해석한 것이고, 행자부 쪽에선 원칙적으로 법원이 가이드라인에 구속되지 않으니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가이드라인에 법적 근거가 없는 이상 개인정보처리자인 기업들 역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비식별조치된 정보를 섣불리 수집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3자 제공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현 시점에서 가이드라인의 위치라고 답했다.

대법원

‘비식별 처리’ 문제로 ‘분쟁’이 생겨 법원에 가는 일이 생기면, 기업과 일반 시민 중에서 누가 입증책임을 질까?

연구소 측에 행자부 답변 내용을 전하자, 연구소 측에선 “가이드라인이 입증책임과 관련 없다면, 가이드라인(의 해당 문구)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서, “가이드라인의 논리 체계에 반하는 해석을 주무 공무원이 공식적으로 답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하다”고 논평했다. 더불어 가이드라인에 참여한 행정부처들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떤 개인이 ‘재식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신고했을 때, 경찰이 어떤 기준을 따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경찰 수사에 있어서 가이드라인은 실질적인 수사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각건대, 행자부의 답변은 궤변이다. 연구소나 오픈넷의 지적처럼, 가이드라인를 준수한 기업조차 다시 재판에서 ‘입증책임’의 부담을 져야 한다면 가이드라인의 존재 근거가 없고, 기업은 가이드라인을 따를 이유도 없다. 반면에 그렇다고 입증책임을 개인에게 지운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가이드라인의 딜레마인 셈이다.

 

7. ‘결합지원’ 문제 

가이드라인은 각각 비식별 조치를 한 개인에 관한 별개 정보집합물을 전문기관에서 개인별로 결합시켜 주겠다고 한다. 예를 들면, 비식별 조치를 한 통신사 고객정보와 비식별 조치를 한 신용카드사 고객의 신용카드 사용정보를 전문기관에 보내주면 각 개별로 결합시켜 결합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이드라인은 00홈쇼핑의 고객정보와 xx카드사의 구매금액 상위 10% 고객의 구매 내역 정보를 결합하여 xx카드사의 구매금액 상위 10% 고객 중 00홈쇼핑 고객을 골라 내서 구매내역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홈쇼핑과 카드사가 고객의 동의도 받지 않고, 카드 구매내역을 분석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결합은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 초등학생이나 유아 등 민감한 정보에도 무방비다. 이런 식이면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은 환자나 산모의 동의도 받지 않고 임신, 출산한 고객 중 월 500만 원 이상 신용카드를 이용한 고객의 구매내역을 분석할 수도 있고, 초등학생 대상 학원에서는 초등학생이나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통신사로부터 초등학생의 이동경로를 분석할 수도 있게 된다. 당사자는 이런 정보 결합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반대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연구소 발제문 참조)

연구소는 비식별 조치를 했지만, 개인을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비식별 조치를 한 정보가 익명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면서 “만약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익명정보로 만들었다면 익명정보가 누구의 정보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정보와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하다고 지적한다.

결합지원 이슈에 대해 행자부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나름으로 안을 짰는데, 결과적으로 유럽과 유사”하게 됐다면서 “신뢰할 수 있는 제3기관을 통해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오픈넷 “법률적 근거가 없는 전문기관에 의한 결합지원 역시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돌 그룹 대부분이 앨범 3~4만 장을 파는 현실에서 TIF는

비식별 조치된 정보의 ‘결합지원’ 문제 역시 가이드라인이 다루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왜 가이드라인가, 누구를 위한 가이드라인가 

행자부는 가이드라인의 법정 성질을 (개인정보보호법에 관한) “유권해석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법을 개정하지 않고,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었을까? 행자부는 “법 개정은 오히려 업계에서 하는 주장”이라면서, “일본법은 개정안이 통과돼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며 “(일본은) 법에서 규정한 안전조치(비식별 조치)를 준수하면, 기업의 책임이 면제”되므로, 우리나라 “업계에서도 법 개정을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구소 측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을 가이드라인으로 만드는 것은 입법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면서 가이드라인은 “상당한 재식별 가능성이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으므로,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이드라인,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기업의 선의를 믿는다면, 기업은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비식별화한 정보를 활용할 것이고, 이는 서비스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이용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재식별화하려는 욕망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부정적인 선입견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에 있었던 행위를 회고하고, 성찰함으로써 미래를 전망한다.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뿐만 아니라 기업의 개인정보 ‘매매 사건’(홈플러스 사건), 거기에 더해 이런 개인정보 관련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국가권력(검찰)과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법원의 개인정보에 관한 인권 감수성(홈플러스 무죄 선고)을 떠올리면 개인정보의 주체, 그러니 평범한 시민이 기업의 선의, 관리자이자 감시자로서의 국가, 공정한 심판관으로서의 법원을 손쉽게 믿어주기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다.

홈플러스가 법을 위반해 번 돈은 4년간 약 232억 원인데, 2015년 4월 27일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4억3,500만 원이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초 매물로 나왔다. 지분 100%의 평가액은 7조 원을 호가한다.

홈플러스가 법을 위반해 번 돈은 4년간 약 232억 원. 2015년 4월 27일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4억3,500만 원. 그리고 법원에서는 무죄. 홈플러스 사건은 기업이 개인정보를 다루는 관점과 방식, 국가기관의 관리감독 능력, 그리고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법원의 판단, 이 모두가 여전히 신뢰를 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여기서 하나 더 질문해보자. 가이드라인이 아니면 정말 기업이 빅데이터 산업 분야에 제대로 뛰어들 수 없는 걸까. 우리나라 개인정보 보호법제는 빅데이터 산업 육성에 방해 요소일까. 이미 개인정보보호법[9]은 “통계작성 및 학술연구 등의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동의 없이 새로운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빅데이터는 바로 통계를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않나.

연구소는 “현재의 개인정보 보호법제는 빅데이터 활용에 장애 요소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 공공 부문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분석해 보더라도 공공 부문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해서는 “개인정보를 익명화하여 처리하거나 동의받는 것을 기초로 하더라도 충분하며, 비식별정보 동의 면제가 있어야만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한다.[10]

Julien Belli, CC BY https://flic.kr/p/o3eDX5

빅데이터와 개인정보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보 처리 주체와 관리감독 기관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출처: Julien Belli, CC BY)

 

그렇다면 가이드라인을 둘러싼 이 온갖 논란에 관한 해법은 무엇일까. 명확한 현실 인식은 그 해법을 마련하는 초석이다. 오픈넷의 답변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가이드라인 제정이 지나치게 급한 호흡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가이드라인은 빅데이터 산업 진흥이라는 버즈워드(buzz word)에 천착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가이드라인 상 비식별 조치에 의한 “동의” 면제 시도는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무력화할 우려가 크다.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는 “동의” 제도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으로 현재 개인정보 보호 법제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비식별조치에 의한 동의 면제”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핵심을 이루는 “동의”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이는 법률 개정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특히 가이드라인에 따른 비식별 조치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개인정보 재식별 위험성은 주민등록번호 제도 및 인터넷 상 본인확인을 강요하는 수많은 법률에 의해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특히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된 이동통신사는 식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오히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시대에 동의에 기반한 개인정보보호가 불충분하다. 어떻게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법적 근거 없는 전문기관의 운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개인정보보호 콘트롤 타워로서의 기능 확립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제도는 특히 재식별화의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왜냐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모든 자물쇠를 여는 '만능 열쇠'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제도는 특히 재식별화의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왜냐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모든 자물쇠를 여는 ‘만능열쇠’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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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은우, 마케팅 활용 목적 빅데이터 활용과 판매: 개인정보 플랫폼 기업의 탐욕과 비식별화 조치 가이드라인 (빅데이터 시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정책토론회, 2016. 9. 7. 국회의원회관 제9간단회의실) 별도 인터뷰 인용이 아닌 문단에는 문단이 끝나는 위치에 괄호( )로 해당 발제문의 페이지 수를 표시했음.

[2] 다만, 빅데이터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데이터 수집, 관리 및 처리 소프트웨어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는 크기의 정보라고 정의되며, 데이터의 양(volume), 데이터 입출력 속도(velocity), 데이터 종류의 다양성(variety)데이터의 양(volume), 입출력 속도(velocity), 종류의 다양성(variety)이라는 세 개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가트너 보고서). 이를 빅데이터의 3V라고 하는데, 3V가 커질수록 그 데이터의 산업적 가치는 높아지지만, 이에 비례하여 개인정보의 유출 위험성이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가능성도 커진다.

[3] 현 가이드라인이 기존에 행자부, 미래부, 방통위에 존재했던 개별안들이 ‘비식별’ 기술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수준이었다면, 검증절차와 보호조치에 관한 내용을 보완하면서 기존 개별안들을 통합한 것이다.

[4] 개인이 더는 식별될 가능성이 없다면(“no longer possible”) 개인정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5] 그러면서 미국은 ‘개인정보’라는 개념 대신 ‘개인식별가능정보’(personally identifiable information)라는 개념이 법령에 정의되어 제한적인 보호 대상이 되고 있다고 더불어 언급하는데, 미국은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제와 다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개인정보호보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범위를 규정한 비식별화(‘de-identification’) 규정이나, 그에 따른 비식별화(‘de-identification’) 가이드라인을 법제가 다른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규정이라고 설명한다.

[6] 참고로, 현행 개보법에는 ‘비식별 조치’라는 용어나 표현은 없다. 다만 법(제18조 제2항 제4호)에서는 개인정보처리자 동의 없이 수집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3자 제공이 가능한 예외로 “통계작성이나 학술연구 등의 목적으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고 규정하는데, 이 규정에서 개인정보를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변환하면 제한적 목적(통계작성이나 학술연구 등)이긴 하나 동의 없는 이용이나 제공이 가능하므로 이를 ‘비식별 조치’ 혹은 ‘익명화’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7] 가이드라인이 창설한 비식별화(비식별 조치) 개념은 재식별화하여 개인정보로 인정될 위험성이 상존해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만약 비식별화를 거쳐 동의 없이 이용, 제공한 경우 식별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따라 특정 시점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우려가 있는 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한다.(오픈넷)

[8] 물론 가이드라인에서는 특정 기술조치 여부뿐 아니라 종합적 관점에서 판단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다.

[9] 제18조 제2항 제4호

[10] 유럽연합은 우리 법제보다 빅데이트 활용과 관련하여 프로파일링에 대한 규율을 신설, 보완하고, 동의에 대한 규정, 투명성에 대한 규정 등과 관련하여 개인정보주체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 개인정보보호법제 때문에 빅데이터 활용에 제약이 있다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 기업이 재식별화할 의사가 없더라도 재식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고, 비식별화한 정보가 다른 업체에 매매됐을 때 다른 정보와 결합해서 손쉽게 재식별화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MIT 미디어랩의 연구를 통해서도 실증됐다. 가령 카드사의 구매 정보를 비식별화해서 이 정보를 이통사(이동정보)에 넘겼다면, 두 가지 정보가 결합되면 누가 어디서 어떤 물건을 구매했는지 알게 된다. 재식별화 의지가 없다라도 자동적으로 재식별화된다. 재식별화하면 훨씬 더 가치 있는 정보가 되는데 기업에서 안 할 이유가 있겠나. 더불어 재식별화 의지가 없더라도 해당 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될 가능성이 상존하니 그것도 문제다. (연구소)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2016.10.06.)

목, 2016/10/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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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주는 정말 저작권법을 위반했을까?

글 | 남희섭(오픈넷 이사)

 

배우 공현주 씨가 지난 금요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 ‘브릿지 존슨의 베이비’ 엔딩 장면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저작권법 위반이란 호된 비난을 받았다. 배우라는 사람의 저작권 인식이 형편없다는 질타가 이어지자, 소속사는 즉각 게시물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까지했다. 필자가 보기에 공현주 씨를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나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 모두 코미디다. 영화배급사가 나서서 이미 삭제하였으니 더 문제삼지 않겠다고 아량을 베풀고 이번 일을 계기로 관객의 저작권 인식이 바뀌고 극장 문화가 자정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는데, 이런 코미디가 또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공현주 씨는 저작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영화 배급사는 문제삼을 수도 없다. 아량을 베풀고 말고 할 일도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작권법이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잘못된 저작권 상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얘기를 하면서 영화 한 장면을 사용했다고 형사처벌한다면 처벌하는 법률 자체가 이상한 거다. 영화 장면을 영화관에서 찍었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사용했건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다.

공현주 씨가 위반했다고 얘기되는 저작권법 조항(제136조의 6)은 미국 저작권법 제2319B조를 그대로 가져다 온 것이다(미국은 2005년 저작권법 개정(U.S. Family Entertainment and Copyright Act of 2005)으로 이런 조항을 만들었다). 미국법이 우리 저작권법에 그대로 이식된 계기는 한미 FTA다(제18.10조 제29항). 이 조항은 영화를 통째로 “녹화”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전체는 아니라도 거의 대부분을 녹화한 것은 포함된다). 당시 미국영화협회(MPAA)는 불법 DVD와 같은 유형물에 의한 저작권 침해로 연간 약 40조 원(35억 달러)의 피해를 입는데, 이른바 캠 버전이 피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규모가 객관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 영화 시사회나 개봉 첫 주에 캠 버전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P2P를 통해 공유되어 막대한 피해가 생긴다며 법 개정을 호소했고 미국 의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입법경위를 비추어보면, 저작권법에서 처벌하려는 도촬은 원래 영화를 대체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 공현주 씨가 찍었다는 사진은 영화를 대체할 정도가 아니다. 이 사진을 보았다고 영화를 보려던 사람이 영화관 가기를 포기할까? 오히려 홍보 효과를 높여 영화사에게는 호재라는 평가도 있다. 영화를 대체할 수준이 아닌 도촬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미국 의회 기록을 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 저작권법 개정 당시 미하원 보고서는 카메라나 피처폰, 기타 사진촬영 장비를 이용하여 상영중인 영화의 스틸 사진을 찍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영어 원문은 “The Act would not, and is not intended to, reach the conduct of a person who uses a camera, picture phone, or other photographic device to capture a still photo from an exhibition of a motion picture.”)

공현주 씨의 일로 알려진 저작권법 조항의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첫째, 다른 위반행위와 달리 도찰행위에 대해서는 미수에 그쳐도 처벌한다. 미수에 그쳤다는 말은 저작권자에게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둘째, 공정이용과 같은 저작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원래 영화 전체를 허락없이 녹화해서 인터넷으로 공유하면 복제권 침해와 전송권 침해다. 별도의 규정이 없어도 저작권자는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복제권 침해나 전송권 침해는 형량도 5년 이하로 도촬행위 형량 1년 이하보다 더 세다. 그럼 왜 도촬행위에 대한 별도의 벌칙 조항이 생겼을까? 바로 복제권이나 전송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적용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은 처벌 규정을 만들려면 문제의 행위가 매우 중대한 사회적 법익 침해가 있어야 하는데, 캠 버전이 그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당사자인 영화산업계가 캠 버전으로 인한 피해를 과장해서 미국 정치권을 로비해 이상한 법이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이게 한미 FTA를 통해 한국 사회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코디미 같은 일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벌어지고 있다. AT&T 연구원들이 쓴 2003년 논문을 보면, 미국영화협회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영화 불법복제물 77%가 영화산업계 내부자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 문제를 지적한 캐나다의 가이스트 교수는 BBC에 기고한 글에서 MPAA가 미국의회를 로비한 것을 쇼로 치부하며, 만약 정치인들이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면, 이 쇼는 끔찍한 종말로 치달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화, 2016/10/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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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중심에서 인터넷을 재학습하다

글| 허광준 (오픈넷 정책실장)

 

이 글은 2016년 9월 태국에서 열린 2016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스쿨(APSIG)에 참가한 뒤 그 경험을 쓴 글입니다. (필자)

“그래, 누군가 그런 일을 해야 하긴 하겠지!”

내가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교육 행사에 갈 예정이라고 말을 했을 때, 지인 중에서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행사의 내용에 주목하지 않았다. 출장을 가는 시기나 장소만이 잠깐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들 탓만은 아니다. ‘거버넌스’라는 낯선 말이 붙는 경우는 대개 다 그렇듯, 인터넷 거버넌스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인터넷 거버넌스? 

‘인터넷 거버넌스’는 쉽게 말하면 단일한 관리자가 없는 세계적 통신망인 인터넷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여러 영역의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집단적’ 노력과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규칙’이 필요하다. 우선 IP 주소와 도메인 네임, 그리고 기술적 프로토콜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인터넷이 작동하기 위한 기술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인터넷이 우리 삶과 사회의 일부가 되면서, 스팸, 보안, 저작권 등 인터넷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의 안정적인 운영, 이용과 관련된 공공정책의 결정,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원칙들과 정책결정 과정 등을 ‘인터넷 거버넌스(Internet Governance)’라고 한다.” (진보넷, [정보인권의 이해] 중에서)

※ 참고 동영상(한국어 자막): Who runs the Internet’s address book?

9월 11~15일 태국 방콕의 AIT(As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열린 ‘2016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스쿨(APSIG)’은 그런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인터넷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 모여 거버넌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집단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주관하는 측은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APrIGF)’이다. ‘스쿨’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하루종일 강의 형태의 수업을 듣고 마지막에 조별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일정이 진행되었다.

 

아시아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 

행사 첫 순서인 11일 저녁 식사 자리는 이채로웠다. 참석자들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국가와 소속 기관이 다양함은 물론이고 그 연령대가 20대 초반에서 70대까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행사에서 강의를 맡은 강사들이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긴 했지만, 평균 연령을 확 끌어올린 것은 아시아 지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첫 APSIG가 성사된 것은 오로지 전 박사님과 그가 이끄는 스태프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 박사님은 행사 기획 및 준비는 물론이고 행사 기간 내내 일정을 주도하며 성공적인 교육이 되도록 보살폈다. 직접 강의를 맡기도 했다. 인터넷의 기술적 측면을 조망하는 강의였다. 아시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전 박사님에게 보이는 존경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이번 행사는 나로서는 말로만 듣던 전 박사님의 지도력을 실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APSIG에서 강의하는 전길남 박사

APSIG에서 강의하는 전길남 박사

행사가 열린 AIT는 방콕 외곽에 있는 대학과정 교육 기관이다. 기술, 공학, 경영학 중심 특성화 대학인데, 그곳의 컨퍼런스 센터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나흘 일정이 강도 높게 이어진 데다, AIT는 공항을 중심으로 방콕 시내와 반대 방향에 있어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방콕 등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행사장인 AIT는 1959년에 설립되었다. 컨퍼런스에 딸린 숙박 시설도 연륜의 흔적을 보였으나, 학술 행사를 진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숙소에는 간소한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수도원 같은 분위기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서구 숙박시설의 경우 이곳에 성경 한 권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요즘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성경을 치우는 곳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AIT의 객실 서랍 속에는 자그마치 네 권이나 들어 있었다. 성경 두 권, 꾸란 한 권, 그리고 “The Great Teaching of Buddha”라는 영문판 불경 한 권이었다. 낯선 숙박시설에서 잠을 설치는 편이지만, 무려 세 종파의 성인이 보호하는 곳에서라면 아주 편안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자간 모델, 망중립성

강의는 월요일 아침,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의 제레미 말콤(사진) 하는 다자간(multi-stakeholder) 모델 수업으로 시작되었다. (인터넷 거버넌스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마구 쏟아져 나오는 각종 영어 약자와 친해져야 한다. 관련 단체나 개념이 모두 영어 약자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전길남 박사가 편찬한 영문서 [아시아 인터넷사(An Asian Internet History)]의 앞부분에는 ‘두문자어(Acronyms)’라는 표제 아래, 책에서 쓰인 인터넷 관련 영어 약자가 무려 8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정리돼 있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관련 두문자어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관련 두문자어들

다자간 모델은 인터넷을 관리하는 이상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특정한 한 측이 인터넷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정부)·시민사회·기업·학계 등 관심이 있는 모든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로 참여하여 협의하며 관리해 나가는 방식이다.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면, 사실 다른 접근이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국가가 주도하여 성장한 기존 통신 인프라와는 달리, 인터넷은 자율적인 민간 기구가 주도하는 형태로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말콤은 △인터넷망에 개별 국가의 법령을 적용하기 어렵고 △국제 단위에서는 대표자를 뽑아 결정을 맡기는 민주 대의제를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그 대안으로 다자간 참여-협상 모델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였다.

다자간 참여-협상 모델(멀티 스테이크홀더리즘) 

“인터넷 거버넌스는 민주적인 다자간 협의·결정 과정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 사기업, 시민사회, 기술공동체, 학문공동체, 이용자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가 의미 있게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당사자 각각의 역할과 책임은 논의되는 이슈의 맥락 안에서 융통성 있게 해석되어야 한다.” (NETmundial Initiative, 2014)

두 번째 시간은 인도 ComFirst의 디렉터 마에시 우팔이 망중립성에 대해 강의했다. 이번 행사에는 인도에서 여러 사람이 강사와 학생으로 참석했다. 엄청난 인구와 급신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인터넷 사업에 매진하는 분위기가 잘 전달됐다.

첫날 오후에는 APNIC(Asia Pacific Network Information Center)의 파블로 히노호사(사진)가 특이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인터넷망을 통해 전달되는 패킷과 그 전달 규약을 설명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카드를 선보인 것이다. 그는 이 카드를 참석자에게 나눠주고, 그 속에 담긴 암호에 규정된 대로 패킷이 전달되는 양상을 시연하면서 인터넷의 구조를 이해시켰다. 게임을 하듯 진행하다 보니 정보 전달 흐름과 그 규약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인터넷 거버넌스

 

“새로 10억 명 연결하기” 

매일의 마지막 시간은 분반 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각 스테이크홀더 영역별, 즉 정부·시민사회·사기업·기술-학계의 네 팀으로 나누어,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주제를 토론했다. 공동 주제는 “새로 10억 명을 연결하기”였다.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는 35억 명,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다. 그중 60%가 아시아인이다. 인구가 많으므로 이용자 숫자도 크지만, 인터넷 보급률로 따지면 세계 평균에 뒤처진다. 아시아 지역은 앞으로 급격한 양상으로 이용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새로 늘어날 이용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개인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인가가 새로운 숙제가 된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문제를 조망하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 내용은 마지막 날에 취합하여 발표되었다. 소속 위치에 따라 문제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다양한 측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거버넌스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둘째 날은 인터넷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환경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의 애덤 피크가 인터넷 거버넌스의 원칙들에 대해 강의하였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짐 포스터가 인터넷을 둘러싼 정치 사상적 측면을, 그리고 고려대 교수이자 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교수가 법률적인 측면을 강의하였다. 나중에 공개된 교육생 강의 평가에 따르면, 모두 흥미롭고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인터넷의 법률적 측면에 대해 강의하는 박경신 교수

인터넷의 법률적 측면에 대해 강의하는 박경신 교수

인터넷의 다양한 특성과 그에서 촉발되는 법률적 이슈들

  • 소통 수단 → 표현 규제와 감시 규정들, 프라이버시
  • 대량 소통 → 저작권
  • 통제의 분산 → 단대단(end-to-end) 원칙 → 망중립성
  • 익명성 → 프라이버시
  • 사기업의 개입 → 정보매개자 책임
  • 사기업의 개입 → 반독점 법안
  • ICANN의 주소 할당 → 도메인 이름 논쟁
  • 세계 차원의 소통망 → 국가단위 규제 곤란 → 형사사법공조조약, 관할권 논란 (박경신 교수 발표자료 중에서)

셋째 날에는 전길남 박사가 기술적 측면에 대하여 직접 수업을 진행했고, 박경신 교수가 인권 관련 주제를 놓고 다시 한 강의를 맡았다. 마지막 수업은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평가와 토론이었는데, 개별적 강의에서부터 아시아 인터넷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를 놓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화기애애하고도 에너지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분반 토론에서는 각 국가사회의 상황에 따라 구성원의 기대와 요구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한국처럼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많은 사람이 이미 연결된 곳에서는 어떻게 인터넷을 자유로운 소통망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가 주요한 화두였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네팔 같은 곳에서는 우선 인터넷과 통신 인프라를 최대한 많이 구축하고 보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제로 레이팅 같은 주제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슈였다. 어떤 곳에서 제로 레이팅은 인터넷 사업자 간 불공정 경쟁 관계를 초래하는 부정적 요소로 인식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이용자가 값싸게, 혹은 무료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선물로 간주되었다. 지역적, 세계적 차원의 인터넷 관리 정책에 접근할 때 국가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제로 레이팅이란?

“통신사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이용을 위한 데이터를 무료로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들에게 11번가 쇼핑몰을 이용할 때 드는 데이터를 가입자의 데이터 한도액에서 차감하지 않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망중립성 옹호론자들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에 기반하여 통신사가 이용자의 접근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중립성 위반으로 보고 있다. … 그러나 제로 레이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는 기업의 가격 차별화의 한 형태일 뿐이며, 한정된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장의 작동이라고 주장한다.” (진보넷, [정보인권의 이해] 중에서)

 

다양한 참가자와 만든 추억들  

참가자 단체 사진. 구성원의 다양함이 세계 네티즌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참가자 단체 사진. 구성원의 다양함이 세계 네티즌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참가자 몇 사람과 특히 친해졌다. 그중 하나는 캄보디아에서 온 시티쿤 리였다. 그와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그 때마다 내 휴대폰에서는 찰칵, 찰칵 소리가 났다. 리는 한국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인위적인 셔터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의 중고 휴대폰이 캄보디아로 많이 흘러들어와서, 그 전화기를 쓰는 캄보디아 사람들 역시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멀리 외국에서 타국인과 더불어 고국의 가부장적 정책을 비웃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행복한 경험은 아니었다.

행사가 열린 태국에서 참가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자신이 관여하는 운동이 ‘공주’가 조직하여 이끄는 것이라고 하여 나의 봉건적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의 딸이 주도하는 사회 운동인 모양이었다. 권력 분산을 지향하는 인터넷과 정보사회 운동을 봉건적 권위체가 추진한다는 것은 특이한 모습이었지만, 국가가 주도하던 새마을 운동, ‘영애’가 주도하던 새마음 운동을 여전히 이상화하는 나라 출신으로서 딱히 낯설게 볼 이유는 없었다.

교육 마지막 날 저녁은 참가자 전원이 차 세 대에 나눠타고 강변의 식당으로 나와 함께 식사했다. 낯선 밤거리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는데,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태국 남부의 젖줄 짜오프라야 강 중류에 있는 분위기 좋은 식당이었다. 해산물(강산물?)을 중심으로 한 음식도 괜찮았고, 밤의 강변 풍경도 좋았으며, 라이브 가수들이 튀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흘러간 팝이 독특한 정취를 불러일으켰다.

지카 바이러스를 머금었을지 모르는 모기들이 달려드는 것이 옥에 티라면 티였다. 태국 여행자에게는 지카 바이러스 주의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나는 급히 화장실로 가서 두꺼운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식사 뒤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느라 짐을 다 싸 들고 온 게 다행이었다.

시원한 강바람과 동남아풍 올드팝이 잘 어우러졌던 강변 식당 Baan Nhuer Nham

시원한 강바람과 동남아풍 올드팝이 잘 어우러졌던 강변 식당 Baan Nhuer Nham

 

아직 아시아 인터넷 보급률은 45%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별 인터넷 보급률은 84.4%다. 10년 전에 이미 75% 선에 이르렀으니, 10년 동안 불과 10% 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91%다. 국민 대부분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보급될 만큼 다 보급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아시아 전체로는 상황이 다르다. 아시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올해 기준으로 45.6%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APSIG 행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행사 전체에서 장년이나 노년의 원숙한 기운이 아니라 역동적인 청년의 활기 같은 것이 넘실거렸다.

새로운 상황은 기회이자 도전이다. 엄청난 수의 이용자를 새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기존 인터넷 시스템에 존재하던 여러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여기에는 통신망 인프라의 구축에서부터 법령 정비, 인터넷 비즈니스 육성, 이용자들의 권익 보호, 더 나아가 인터넷을 자유롭고 열린 정보 유통망으로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일이 포함될 것이다.

협력 협동 사람 인간 장애 비장애인

 

인터넷 거버넌스의 주체는 바로 우리 

이러한 일은 국가사회의 한 측이 전담하여 수행할 수 없다. 인터넷과 관련한 모든 측이 서로 밀고 당기고 협력하며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국제회의에서는, 참석자 중 원하는 사람이 모두 발언 기회를 얻고 그런 방식을 통해 일정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근본에서부터 민주적이고 분권적인 인터넷 거버넌스의 방식이다.

아시아에서 조만간 새로 합류하게 될 수많은 네티즌 역시 그런 거버넌스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것이다. 인터넷 거버넌스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누군가란 다름 아닌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이해당사자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APSIG은 참석자들에게, 아시아태평양 지역 앞에 무한한 기회와 쉽지 않은 과제가 동시에 펼쳐져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APSIG는 앞으로도 매년 같은 장소에서 계속 열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이용자가 아시아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면 싶다.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앞서 인터넷의 축복을 맛보았고 통신 인프라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의 경험이 다른 나라에 중요할 수 있고, 거꾸로 한국 역시 이들로부터 배우는 바 많기 때문이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 (2016.11.03.)

금, 2016/11/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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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박근혜 ‘생얼’ 폭로, 왜 가로막혔나?

후보자 검증 막는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폐지해야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유종성(호주국립대 교수)

 

대통령을 잘못 뽑은 대가는 컸다.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의 허상을 보고 투표했다. 왜 야당과 언론은 박근혜 후보의 실체를 파헤치지 못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2012년 대선 두 차례 씩이나 후보자 검증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는가?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 그리고 형법 등의 명예훼손 법제가 공직 후보자의 비리 의혹이나 자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박근혜-최순실의 권력 사유화와 국정 농단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시 이명박 후보 측에서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를 이슈화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보고서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수사 자료, 1990년대 박근령, 박지만 등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우리 언니를 최태민으로부터 구해주세요”라며 보낸 편지 등을 언론에 제공했는데 언론들은 거의 싣지 않았다.

2007년 6월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 목사가 “박근혜는 최태민과 최순실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자신의 재단조차도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 철저한 검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하기는커녕 김 목사에 대해 “천벌을 받을 사람”이라는 저주를 퍼붓고 지나갈 수 있었다. 최태민의 의붓아들(최순실의 의붓오빠)인 조순제 씨가 경선 막바지에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도 언론에선 단신으로도 처리하지 않았다. 조순제 녹취록이 최근에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박근혜 검증을 지휘했던 정두언 전 의원은 경선을 앞둔 2007년 8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낱낱이 드러내면, 박근혜 대표를 좋아했던 많은 분들이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은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회피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이 박근혜 후보의 허상을 보고 투표하게끔 하는 데 일조했다.

왜 언론들은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최순실 관련 의혹 제기를 외면했을까? 왜 정두언 전 의원은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을까? 왜 문재인, 안철수 캠프는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에 대한 검증을 회피했을까?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 형법상의 명예훼손죄 등이 이러한 의혹 제기와 언론의 보도까지도 가로막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해호 목사와 김 목사의 기자회견문 작성을 도와준 임현규 당시 이명박 캠프 정책특보는 최순실의 고소에 따라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의 실형을,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육영재단 부정축재 등 제기한 의혹의 사실 여부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는데, 박근혜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목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고 판단했다.

2008년 대선 직후 숨진 조순제 씨의 경우는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태민-최순실 비리에 대해 운만 띄우고 구체적인 의혹 제기를 회피한 정두언 전 의원과 달리 2007년 대선 본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던 정봉주 전 의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함은 물론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의 PD들이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정윤회 문건 등을 보도한 국내언론과 야당 정치인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소문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 신문> 특파원까지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니, 감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고는 아무도 의혹 제기를 함부로 할 수 없고, 언론도 의혹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거나 지극히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명예훼손 법제는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뿐만 아니라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까지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후보자 모욕죄)와 허위사실공표죄(후보자명예훼손죄)는 자유로운 후보자 검증을 가로막고 있다. 후보자 비방죄는 OECD 국가중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는 법이며,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형사소송의 대상이 아니며 아주 중대한 경우에만 선거소송이나 민사소송으로 다루어진다.

한국은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를 권고하는 UN 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의 추세를 정면으로 역행, 명예훼손과 모욕죄 기소 인원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검찰은 선거사범 단속에 있어 민주화 초기 성행했던 금품 향응제공 등 매표 행위가 줄어들자 소위 ‘흑색선전’을 뿌리뽑는다는 명분 하에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관련 단속에 집중해 왔다.

‘표1′을 보면, 제15대 (1996)부터 제17대 (2004) 국회의원 총선거까지는 소위 흑색선전 사범이 전체 선거사범 중 15% 미만을 차지했으나, 제18대(2008)에는 20.1%, 제19대(2012)에는 25.3%, 제20대(2016)에는 35.5%에 이르러 금품향응(20.7%)보다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표2′를 보면, 2002년 이전에는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을 받은 인원수가 많지 않았으나 2004년 이후에 증가하기 시작하여 특히 2007년 대선 때부터 급증했음을 보여준다.

원래 ‘흑색선전’이란 군사작전 등에서 상대를 심리적으로 교란하기 위해 비밀리에 행하는 허위정보 선전을 일컫는데, 한국의 검찰은 공개적인 검증을 위한 의혹제기를 모두 흑색선전으로 치부하고 있다. 한국 검찰의 선거법 집행은 서구 선진민주국가들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 대만 등과 비교해 보아도 큰 차이를 보인다 (‘표3′ 참조).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선거시 매표 행위 단속에 집중하며,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죄 기소인원수는 일본은 0.1%, 대만은 3.4%에 불과하다. 물론 이 나라들에는 후보자 비방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1. 국회의원 총선거별 선거사범 종류별 추이, (1996~2016년)
출처: 대검찰청 보도자료 (각년도)

 

표2.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법원 판결수, (1995~2015년)
각 년도는 판결시가 아닌 해당 선거가 실시된 해를 가리킴.

 

표3. 한국, 일본, 대만의 선거사범 인원수 종류별 비교
일본: 중의원 선거 (1996~2012년) 선거사범 대만: 2003~2012년 각급 선거의 선거법 위반 1심 피고인수 한국: 국회의원 선거 (1996~2016년) 선거사범; 허위사실공표에 후보자 비방 포함.

 

명예훼손과 후보자 비방/허위사실공표죄 관련 기소 인원수의 증가는 그 자체로 공직자나 힘있는 사람들의 비리의혹 제기와 공직후 보자의 검증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정치검찰”의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의 검찰이 이러한 법 집행에 있어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가 정치적으로 악용된 사례들에 대해 국내에서는 물론 UN 표현의 자유특별보고관, UN 인권위원회, 국경없는 기자들 등 국제사회의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정봉주 전 의원, <PD 수첩>, <산케이 신문> 기자 등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으며, 프리덤하우스가 언론 자유 평가에서 한국을 ‘자유’ 국가에서 ‘부분 자유’ 국가로 강등시키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검찰이 조직적으로 정치적 편향성을 취해왔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은 없었다. 이에 필자들은 사단법인 오픈넷의 협조를 받아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이들의 판결문을 수집하여 전수 조사를 하였다. 분석 결과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야간 정치적 편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교육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심한 편향성이 드러났다(표4 참조).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고 16건 모두 보수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된 경우였다.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허위사실공표죄의 경우 90.3%가, 후보자 비방죄의 경우 80.3%가 새누리당 후보를 공격하다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경우였다.

‘표4′. 선거별, 피해 후보자 정당별 비방 및 허위사실 판결수 (1995~2005년)

 

‘표5′는 2002년에는 여당의 노무현 후보를 공격한 사람들(13명)이 야당의 이회창 후보를 공격한 사람들(4명)보다 더 많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야당의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경선 후보를 공격한 이들(230명)이 여당의 정동영 후보와 경선후보들을 공격한 이들(39명)보다 훨씬 더 많이 기소되었음을 보여준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된 인원수(154명)가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공격하다 기소된 인원수(23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검찰은 항상 대통령 당선자를 공격한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기소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다만, 노무현 후보를 공격해서 기소된 사람들의 경우 13명중 7명만이 유죄 판결을 받아 이회창 후보 공격으로 기소된 이들의 유죄율(100%)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유죄율(54.9%)을 보였는데, 이는 검찰의 무분별 기소에 대해 법원이 약간의 견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7년과 2012년 대선의 경우에는 여당 후보나 야당 후보를 공격한 사례들간에 유죄율에 차이가 없어 검찰의 기소편향이 법원에 의해 전혀 교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하에서 후보자 비방과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한 인원수가 급증했는데, 그 대부분이 대통령 당선자를 비판한 경우였고, 검찰의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소가 사법부에 의해 교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표5. 2002, 2007, 2012년 대통령 선거시 여당 후보 및 야당 후보 공격으로 재판받은 수와 유죄판결 수
2002년과 2012년에는 여당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2007년에는 야당 후보가 당선됨.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검찰의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공표죄 기소가 급증해왔을 뿐만 아니라 검찰의 법집행이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되어 온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 김해호 목사나 정봉주 전 의원처럼 상당한 근거가 있는 의혹을 제기하고서도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받는 현실, <PD수첩> 경우처럼 결국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검찰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당사자들이 받는 고통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억압일 뿐 아니라, 나아가 이러한 사례들이 언론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고 입을 닫도록 하는 것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나라일수록 부패 수준이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후보자 비방죄는 물론 허위사실공표죄도 폐지하거나, 그 적용 대상을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공표한 경우에 한하도록 하며 자유형을 없애고 벌금형만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허위사실공표죄를 폐지하면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이에 따라 선거결과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허위사실로 공격을 당한 후보자는 즉각적으로 반론을 펼 수 있고 유권자들은 후보자간의 공방에서 제시되는 증거들을 보고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후보자 검증이 이루어지며 정치검찰이 개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작용 없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공개적인 의혹 제기가 아닌 타인 명의 도용 또는 비밀리에 하는 흑색선전은 후보자 비방이나 허위사실공표죄 없이도 처벌할 수 있고, 허위사실 선전이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 경우에는 선거소송을 통해 구제할 수도 있다. 한국을 제외한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체로 이렇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단시일 내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헌재가 탄핵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각 정당이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일정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헌재 결정 이후 60일 이내에 각 당의 경선과 본선이 이루어지게 되면 후보자 검증을 위한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 이번에도 후보자 검증을 제대로 못해 믿고 뽑았던 대통령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 나중에야 드러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된다. 국회는 후보자 검증을 가로막는 현행 선거법과 명예훼손 법제를 시급히 뜯어고쳐야 한다.

 

* 위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했습니다. (2016.12.19.)

월, 2016/12/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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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인터넷: 위로부터의 억압, 아래로부터의 분출

글 | 오픈넷

 

지난 11월 프리덤하우스가 조사해 발표한 2016 세계 인터넷 자유 지수(Freedom on the Net)에서 한국은 또다시 ‘부분적 자유’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유 지수가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된 2013년에서 2016년에 이르는 동안 자유 지수는 매년 1~2점씩 꾸준히 추락했다. 국민에게는 자유를 향한 의지와 수단이 존재했으나, 정부가 이를 옭아매고 죄어왔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인터넷 게시물을 삭제하고 공직자 비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아 왔으니,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정보 흐름의 자유, 열린 정부와 혁신을 주창해 온 오픈넷은 지난 2016년 인터넷을 달구었던 주요 이슈들을 되돌아보았다. 2016년의 한국 인터넷을 짧게 간추린다면 ‘위로부터의 억압, 아래로부터의 분출’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넷에 개입하여 국민의 표현을 가로막고 기업의 혁신을 방해했다. 그 와중에도 국민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는 동안 다양한 이슈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중 굵직한 이슈를 정리해 본다. ICT 전반이나 기기 관련 이슈는 제외하고 인터넷에만 한정하여 살펴보았다.

 

0001

7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도입을 강행하던 정부는 국민은 물론 지역 주민과의 협의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설치 지역을 발표하고 밀어붙였다. 사드는 지역 주민의 안전, 더 나아가 한반도 전체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을 납득시키거나 설득하는 일이 생략되었다. 사드의 안전성과 그 배치 따른 영향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에서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드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터넷 게시글들을 ‘사회 혼란 야기’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삭제했다. 공적 사안에 대하여 정부 발표와 다른 의견을 제기하면 황당한 딱지를 붙여 억압하는 행태가 재현된 것이다.

이에 앞서 3월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북한의 기술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외국 웹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northkoreatech.org)’를 접속 차단했다. 북한 관련 웹사이트를 차단하는 일은 늘 있는 것이지만, 이 웹사이트는 영국 언론인이 운영하는 객관적인 사이트라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에 비판적인 정보도 실리고 한국의 보수 언론도 자주 인용하는 사이트였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 관련 정보는 어떤 것이라도 정부만이 독점하고 정부가 공개하는 것만 듣고 보아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스코리아테크 운영자 마틴 윌리엄스는 “북한이 외국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는 폐쇄 국가여서 흥미를 느껴 웹사이트를 시작했는데, 그런 웹사이트가 명색 민주 국가라는 한국에 의해 차단당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인터넷 방송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주요 목표로 떠올랐다. 2월에는 아프리카TV의 BJ 6명에게 이용정지 처분을 내렸으며, 6월에는 인터넷 방송 웹사이트인 ‘썸TV’를 폐쇄했다. 음란물의 유통은 규제돼야겠지만, 일부 UCC 콘텐츠가 음란하다고 하여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정부는 이후에도 인터넷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이용자의 콘텐츠를 제대로 검열하고 감시하지 못할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규제 강화를 모색했다. 이 같은 규제 일변도 정책은 인터넷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모호한 기준을 들이대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터넷 산업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12월에 네티즌 ‘자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의혹을 오랫동안 조사하고 그 결과를 다큐멘터리 [세월X]로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다. 세월호의 침몰 경위와 관련하여 정부 발표와 다른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동영상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의 명예훼손을 묵과할 수 없으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 등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글이 발표되는 현재까지 별다른 법적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0002

6월, 남학생들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톡방의 언어 성폭력 발언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고려대 교정에 나붙었다. 이를 계기로, 비슷한 일이 다양한 대학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아울러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의 대화방은 공개된 장소인지, 거기서 나온 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지, 어떤 경우에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과는 별론으로, 이와 같은 언어 성폭력이 경계되어야 한다는 점에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논란의 중요한 성과라 할 만하다.

비슷한 시기에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공유한 웹사이트 링크가 검색에 잡히는 일이 벌어져 쟁점이 되었다. 대화방에서 공유한 정보는 대중 공개되지 않으리라고 믿어온 이용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메신저 망명’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기업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데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0003

7월, 게임회사 나이언틱은 증강현실을 이용한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를 출시하여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으나, 선풍의 내용이 좀 달랐다. 외국에서는 게임을 하는 게 화제였지만, 한국은 게임을 못 하는 게 화제였다. 이것은 게임 가능 지역에서 한국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지도 정보가 부족하여 게임 서비스를 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게임사가 한국 출시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로 정리되었다. 속초 등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플레이가 가능해, 때아닌 속초행 열풍이 일기도 했다.

6월에는 구글이 정부에 지도 반출을 신청하여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상세 지도를 국외 서버에 저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가 안보를 내세워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사실 정부의 안보 명분은 지도 반출 불허의 근거가 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구글이 국민 세금으로 만든 지도를 공짜로 반출하면 적에게 국가 기밀을 누설하게 된다’는 주장이 나돌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게다가 구글의 서버 존치 문제, 세금 납부 문제까지 한꺼번에 떠올랐다. 찬반 여론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정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 차례 연기한 끝에 11월에 반출을 허가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0004

5월, 서울 지하철 강남역 부근에서 한 여성이 이유도 없이 살해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던 여성 혐오와 차별 문제를 일거에 드러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SNS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공간은 성 차별과 성폭행을 고발하는 광장이 되었다. 그동안 학계, 예술계, 문학계, 출판계 등에서 벌어져 온 성폭행이 ‘#OO_내_성폭행’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줄줄이 공개되고 공유되었다. 유명인들의 이름이 연달아 나왔다. 성 범죄가 일상화되어 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성 권력 관계 때문에 당하고도 침묵해야 했던 일이 인터넷을 통해 고발되고 사회적 각성이 촉구되었다는 점도 뜻깊은 일이었다.

SNS 서비스가 이러한 문제 제기를 잘 포용하는지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이 페이스북에 의해 삭제되었다. 페이스북의 게시물 규정을 어긴 점이 없는데도, 신고를 받고 그 내용을 검토하거나 작성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페이스북은 신고에 따른 게시물 삭제와 관련하여 공정함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페이스북의 게시물 삭제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그 밖에도 나라 안팎에서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0005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하나 내놨다.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등으로 수집한 고객의 개인정보 2,400만여 건을 보험사에 팔고 거액을 챙긴 데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깨알같이 적어 넣은 단서 조항을 들어 면죄부를 주었다. 8월에 나온 2심 판결도 같았다. 기업이 개인정보를 취득하여 활용하려면 그 목적 등을 명확한 방법으로 알리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고객과 시민단체들은 홈플러스의 경품 응모지가 이러한 조건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고객을 속였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안은 주로 오프라인 경품 행사가 문제가 된 것이지만, 인터넷 활동이나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이용자 데이터를 얻어내기가 점점 쉬워지는 상황에서 경계심을 불러일으킨 판결이었다. 정부가 정한 ‘빅데이터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등에서 비식별화를 빌미로 하여 데이터 수집에서 개인 동의를 생략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0006

국정원, 경찰청, 검찰청 등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를 통해서 국민의 개인정보인 휴대전화 통신자료를 영장도 없이 마구 퍼가고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 수치가 전화번호 기준으로 한 해 1천만 건을 넘는다. 개인을 특정하는 중요한 정보는 이제 공공재가 되어버린 꼴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3월에는 이러한 통신자료 캐가기가 수사와 직접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까지 마구 적용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기자, 정당인, 활동가들처럼 타인과의 통신 내용이 매우 중요한 비밀이 될 수 있는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수사 편의만을 내세운 마구잡이식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꾸준하고도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지만, 정부는 막무가내요 요지부동이다.

 

0007

한편 긍정적인 판결도 나왔다. 인터넷 매체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려 한 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건 것이다. 11월에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신문의 직원을 5명 이상으로 한정하고 이들의 고용 증명을 제출해야만 등록이 가능하도록 한 신문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러한 조건을 부과할 경우 소규모 인터넷신문이 언론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터넷 매체들은 등록 요건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사이비 언론 추방보다는 인터넷 언론 규제에 있음을 의심해 왔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인터넷 매체 수천여 개가 문을 닫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인터넷 자유 지수를 집계한 프리덤하우스는 홈페이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인터넷은 대중이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민주주의 지지자나 인권 활동가들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개혁을 조직하고 추진하는 수단으로서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촉발하는 힘을 두려워하는 권위적인 정부들은, 명백하거나 숨겨진 방법을 동원하여 인터넷을 검열하고 감시하고 방해하며 인터넷의 개방성을 변질시킨다. 심지어 적지 않은 민주 국가들도 뉴 미디어로 인해 야기된 법적, 경제적, 보안적인 잠재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제약을 가하거나 그런 일을 고려하고 있다.”

자유롭고 혁신적인 세상을 지향하는 인터넷과 이를 규제하려는 정부 간의 길항 작용은 2017년에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빅데이터나 제로레이팅 같은 까다로운 이슈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인터넷이 나아갈 길은 새해에도 쉽지 않다. 다만 인터넷과 기술 혁신, 그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는 정부가 존재한다면 상황은 조금 더 편안해질 것이다.

인터넷에서 다양한 사회적 논쟁거리가 만들어지고 논의되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당장은 그 모양이 투박하거나 낯설더라도, 그러한 논란은 없는 편보다 있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런 논란 속에서 우리는 공동 학습할 기회를 얻고, 이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11월 8일 ‘혐오표현과 인터넷 공론장’을 주제로 하여 열린 ‘오픈넷 토크’에서 “인터넷은 여전히 청소년기에 있다”라고 평가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진단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만 덧붙인다면, 인터넷과 이용자들이 그렇게 학습하고 성장하도록 그냥 좀 내버려 뒀으면 하는 것이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했습니다. (2016.01.04.)

수, 2017/01/0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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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디지털뉴스 이용규칙’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새해 벽두부터 흥미로운 문서를 하나 내놨다.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이다. 뉴스 유통과 소비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뉴스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해야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지를 밝힌 문서다.

언론진흥재단 저작권 이용규칙

온라인 환경에서는 뉴스 기사가 쉽게 공유되고 유통된다. 기사를 생산한 뉴스 매체의 저작권이 쉽게 침해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뉴스 저작권자의 권익을 지키려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다. (‘이용규칙’을 내놓은 언론진흥재단은 주류 언론사들의 연합체인 한국디지털뉴스협회로부터 저작권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저작권이 관련법에 따라 존중되어야 하고 이용자가 저작권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규칙’의 내용은 이와 같은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규칙은 △ 디지털 뉴스가 유통되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 현행 저작권법의 취지나 구체적 조항과 모순되는 내용을 포함하며 △ 디지털 환경으로부터 편익을 얻으면서도 이익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심지어 △ 규제에 치우치다 보니 뉴스 콘텐츠의 활용이나 그로 인한 수익을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까지 초래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용규칙’은 과도함, 모순, 그리고 자승자박의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평가는 이용규칙이 저작권법의 두 축인 ‘저작자의 권리 보호’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도모’를 고르게 반영하지 못하고 오로지 전자에만 치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규칙을 만든 주체가 뉴스저작권의 이해 당사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용규칙’은 뉴스 콘텐츠 생산자의 입장만을 반영한 것이며, 그럼에도 누구나 지켜야 할 객관적인 원칙이나 조문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자.

언론진흥재단 저작권 폭탄

 

분량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자는 언론사가 자사의 웹사이트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하여 제공하는 디지털 뉴스콘텐츠를 해당 언론사의 허락 없이 복제/배포/공중송신 등의 방법으로 이용할 수 없다.

 

‘이용규칙’은 그 전편에 걸쳐 뉴스 콘텐츠를 적법하게 이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콘텐츠를 이용하는 양상, 특히 얼마나 이용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경우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이른바 ‘공정 이용’). 그 부당성을 따질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즉 뉴스 콘텐츠의 일부만을 인용해 이용할 때는 공정 이용에 해당되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규칙’은 그러한 점을 명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언론사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부분 인용조차 안 되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한다.

 

블로그나 SNS는 차별받아도 된다?

방송, 신문 그 밖의 방법에 의하여 시사보도를 하는 경우(에는 금지의 예외로 한다.)

 

저작권은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권리가 아니다. 저작권법의 제2관은 저작재산권 행사를 제한하여, 이용자가 복제하여 쓸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이용규칙’도 이 같은 점을 반영하고 있기는 하다. 예컨대 ‘이용규칙’이 시사보도를 하는 경우 저작권자 언론사의 허락을 얻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은, 저작권법에서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라고 한 데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용규칙’은 블로그나 SNS 등이 뉴스를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한다.

블로그 소셜미디어 SNS

블로그나 SNS 등 개인용, 비상업용, 커뮤니티형 웹사이트에 디지털 뉴스콘텐츠를 복제, 전송, 공중송신한 경우에도 저작권 위반이 될 수 있다.
공익/비영리 목적의 사용이라 하더라도 뉴스기사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함.

 

그럼 블로그나 SNS에서 뉴스기사를 보도나 비평 목적으로 사용하였을 때는 어쩔 것인가? 블로그나 동영상을 활용한 1인 미디어에서 보도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SNS에서도 뉴스에 대한 비평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모두 언론사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람직하거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보도나 비평 등의 목적이라면 저작물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음에도 ‘이용규칙’은 그것이 블로그나 SNS 같은 방식으로 전개될 경우 금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링크만 해도 손해배상 물린다?

현재까지는 직접링크도 저작권법상의 복제/전송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지만, 직접링크를 업무적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했을 경우에는 민법상 부당이득,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직접링크의 업무적/상업적 이용 사례] (2) 직접링크 방식으로 해당 기관(회사)의 관련기사를 모아 사내게시판 또는 홈페이지에 게시한 경우

링크
‘이용규칙’은 링크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단순 링크’는 언론사의 메인 페이지로 가는 링크다. 온갖 기사와 광고로 화면을 꽉 채운 바로 그 페이지다. 둘째, ‘직접 링크’는 특정한 웹페이지로 가는 링크다. 단일 기사를 담고 있는 개개의 페이지를 말한다. 셋째, ‘프레임 링크’는 자신의 웹페이지 안에서 언론사의 페이지가 표현되도록 하는 링크다.

타인의 콘텐츠를 자신의 것처럼 그대로 표현되는 ‘프레임 링크’를 금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러나 ‘직접 링크’에 대해서까지 규제하고 있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이용규칙’에 담긴 가장 어이없는 내용일 것이다.

왜 그런가? 첫째, 법이 허용하고 있음에도, 시도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위협을 담고 있다. 둘째, 링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고 오로지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링크의 역할은 글자 그대로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접 링크’는 해당 언론사의 웹페이지(와 거기 실린 광고)를 노출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으로 인해 언론사에 어떤 손해가 발생하므로 손해배상을 물리겠다는 것인가? 방문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 손해란 말인가?

디지털 환경에서 뉴스 유통 구조에 조금이라도 이해가 있다면 ‘직접 링크’를 금하는 방침을 포함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자사 뉴스의 확산을 막고 자신의 이익을 줄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용규칙’을 그대로 따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예컨대 어떤 웹사이트 운영자가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검의 활동을 시기별로 정리하려고 한다. 그러한 활동을 보여주고 입증할 언론사 기사를 링크해야 하는데, ‘이용규칙’에 따르면 각각의 기사로 직접 가는 링크를 쓸 수 없다. ‘이용규칙’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언론사의 대표 홈페이지 링크뿐이다. 그러니 개개의 사안에 대해 모두 하나의 홈페이지, 이를테면 www.khan.co.kr이나 www.chosun.com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용자는 언론사 홈페이지에 실린 수많은 기사 중에서 (게다가 지나간 기사는 나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해당 기사를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기사 링크를 하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거꾸로 말해 우리 매체의 기사를 보지 말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뉴스콘텐츠는 유통되어야 의미가 있다. 링크를 통한 디지털뉴스 이용은 이런 유통에 기여하게 된다. 유통을 막으려는 것은 저 스스로 뉴스의 도달 범위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자승자박이랄 수밖에 없다.

자승자박

 

서비스 사업자도 책임져라?

블로그나 SNS 등을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블로그나 홈페이지 운영자가 디지털 뉴스콘텐츠를 무단으로 전재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홍보하여야 하며 방지책을 마련하여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이용규칙’은 뉴스콘텐츠의 적법한 사용 책임을 서비스 사업자에게까지 부과하고 있다. 비록 강제 조항이 아니고 ‘사회적 책무’라고 표현하였지만, 이용자의 콘텐츠를 관리할 책임을 사업자에게 지우고 있음은 분명하다.

2015년 3월 오픈넷이 국제 정보인권 단체들과 연대하여 정립한 ‘마닐라 원칙’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를 비롯한 정보매개자의 책임에 대한 국제 원칙이다. 여섯 개의 원칙 중 첫 번째는 “정보매개자들은 제3자(이용자)의 정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이용자의 콘텐츠를 검열하고 삭제할 책임이 사업자에게 부여되면 결과적으로 정부 등을 대신하는 검열 기관으로 작용하게 되고 결국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는 우려에서 나왔다.

‘이용규칙’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부과하는 책임은 마닐라 원칙과 정반대이다. 교육과 홍보는 이해 당사자인 저작권자나 그 이해관계 단체가 하면 된다. 서비스 제공자가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책무 같은 모호한 이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명백하고 분명하고 적법 절차에 따른’(마닐라 원칙 제3조)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사는 면책?

‘이용규칙’은 디지털 뉴스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주장이다. ‘뉴스’가 들어간 것은 저작권자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뉴스’만 빼 보자. ‘디지털 콘텐츠’다. 언론사가 아닌 다른 주체, 예컨대 네티즌들이 생산하는 이용자 생산 콘텐츠(UCC)가 여기 해당한다.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가 무단 사용될 것을 끔찍이 염려하는 언론사.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다른 사람이 생산한 디지털 콘텐츠를 마음껏 갖다 쓴다. 방송은 남이 만든 유튜브 동영상을 그대로 틀어주고, 신문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진을 그대로 갖다 싣고, 네티즌의 페이스북 내용이나 트윗은 그대로 무단 전재된다. 네티즌들이 붙이는 그 흔한 링크 하나 달지 않는다. 뉴스콘텐츠를 이용하는 대다수 네티즌과는 달리, 이 언론사들은 모두 상업적 목적을 위해 그렇게 한다. 심지어 언론사끼리 뉴스를 그대로 베껴 내는 것이 일상이다. 출처는 기분 내키면 밝힌다.

이러고도 자신의 콘텐츠만은 지키겠다는 것인가? 법과 디지털 환경을 충분히 참작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뿐 아니라 이용자의 권익도 함께 고려한 좀 더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새 ‘이용규칙’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xdfas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어울리고, 이용자와 상생하는 새로운 ‘이용규칙’이 필요하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17.01.18.)

목, 2017/01/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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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놀랄 만큼 기쁘고, 믿을 수 없이 반가운

글| 민노씨 (슬로우뉴스 편집장)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은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 반기문, 대통령선거 불출마 선언 중에서 (2017. 2. 1.)

반기문이 대선 불출마 이유로 ‘가짜 뉴스’를 언급한 것은 가짜 뉴스의 높아진 위상(?)을 방증한다. 이를 불출마의 핑계로 해석하든, 정당한 사유로 해석하든, 가짜 뉴스는 한 나라의 유력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어떤 자가 입후보하기도 전에 선거를 포기하게 하는, 혹은 포기하겠다는 이유로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출처: 반기문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kmkorea201 정치교체를 내세운 반기문은 결국 출마를 포기했고, 그 이유들 중 하나로 ‘가짜 뉴스’를 언급했다. (출처: 반기문 페이스북)

가짜 뉴스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지난 미국 대선에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인자 중 하나로 평가된다. 버즈피드 분석에 의하면, 지난 미국 대선 마지막 3개월(8월~선거일까지) 동안 소셜미디어에 가장 많이 유통된 진짜 뉴스 20개와 가짜 뉴스 20개의 페이스북 참여도(공유+좋아요+댓글)를 비교하니 오히려 가짜 뉴스 참여도(870만)가 주류 언론의 진짜 뉴스 참여도(730만)보다 높았다. 더불어 가장 널리 읽힌 가짜 뉴스 20개 중 클린턴보다 트럼프에게 유리한 것은 17개로 분류되었다.

 

반기문과 가짜 뉴스 

반기문이 귀국하자마자 보여준 일련의 해프닝, 가령 턱받이 해프닝과 지하철 티켓 해프닝, 퇴주잔 해프닝 등의 일화적 사건들이 반기문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언론과 소셜 미디어가 서로 상승 작용하며 그 해프닝의 의미를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은 고질적인 ‘이미지 정치’의 폐해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스스로 대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로서 반기문에 관한 국민의 관심은 무엇보다 반기문 자신이 바란 일이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반기문의 대통령 자질을 검증하려는 국민과 언론의 관심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까지 하다. 가령, ‘온돌방’ 발언은 반기문이 지금까지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아왔고, 그가 느끼는 고통의 정체, 반기문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 수준을 어떤 분석 기사보다 명징하게 드러낸다.

화장실 하나 있는 온돌방 생활을 "고통"이라고 표현해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받은 반기문.  화장실 하나 있는 온돌방의 한옥 생활을 “고통”이라고 표현해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받은 반기문.

후보자(가 되려는 자)에 대한 검증은 유권자의 정당한 권리이자 언론의 의무다. 하지만 반기문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심도 있는 토론이, 연속된 해프닝에만 과도하게 관심이 집중된 나머지, 축소됐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서로 진영을 달리한 선입견만 강화됐고, 원인 제공자가 반기문 자신이긴 하지만, 소위 ‘가짜 뉴스’ 현상이 반기문의 이미지를 사실보다 왜곡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로 보인다.

 

사실상 확정된 ‘조기 대선’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도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이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반기문 불출마 선언을 통해 더욱, 가짜 뉴스는 정치권과 언론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선관위(사이버범죄 대응센터)는 지난 1월 19일 가짜 뉴스에 대한 단속과 예방 업무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아직 조기 대선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17개 시도에 182명 규모의 단속팀을 특별히 편성해 지난 2월 2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선관위

선관위만 바빠진 건 아니다. 정당도 가짜 뉴스와 관련해 분주해지긴 마찬가지다. 지난 2월 6일 새누리당은 페이스북에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개설하면서 “허위 왜곡 보도와 유언비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놨고,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그 첫 사례(“바로잡기”)로 문화일보의 ‘태극기 집회 참석’ 관련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보다 훨씬 앞선 2016년 11월 ‘유언비어 신고센터’를 발족한 바 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의 ‘센터’는 지난해 11월에서 올해 1월 말까지 총 4,400여 건의 신고를 접수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네거티브 대응팀’을 구성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노컷뉴스가 2월 9일 자로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KBS 보도에 따르면, 바른정당은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을 막는 가칭 ‘반기문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가짜 뉴스를 규제하는 '반기문법'을 준비 중인 바른정당 가짜 뉴스 규제하는 ‘반기문법’을 준비 중이라는 바른정당

 

개념을 찾아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제 가짜 뉴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조기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화두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상하다. 점점 더 많아지는 가짜 뉴스에 관한 언론 보도, 선관위의 활발한 움직임, 정당의 적극적인 대응 천명에도 불구하고, 가짜 뉴스가 무엇인지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곳은 없다.

가짜 뉴스에 관한 ‘정의’, 그 개념에 관해서는 모두들 아주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거나 아예 그런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가짜 뉴스의 개념은, 그냥 빤한 것이라서, 어떤 정의도, 개념 규정도 필요 없는 그런 것일까?

특히 선거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선관위는 언론사에 보내는 공문에서조차 ‘가짜 뉴스’라는 표현을 강조함에도, 직접 ‘가짜 뉴스’의 개념을 묻자 아직 그 개념을 정립한 바 없다고 답한다.1 그러면서 결국, 공직선거법 250조(허위사실 공표)와 251조(후보자 비방)가 모든 규제의 규율 근거임을 확인했다.

하다못해 돌멩이로 탑을 쌓아도 바닥돌(개념, 정의)이 부실하면 그 돌탑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돌멩이로 탑을 쌓아도 바닥돌(개념, 정의)이 부실하면 그 탑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당연한 답변이다. 왜냐하면, 선관위가 법에 규정되지 않은 근거(가령, ‘가짜 뉴스’)로 어떤 행위를 규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의문은 남는다. 왜 선관위는 굳이 보도자료에 그리고 언론사 협조를 구하는 공문에 ‘가짜 뉴스’를 강조한 것일까? 그게 요즘 뜨는 유행어라서?

여기서 중요한 건 선관위가 헌법기관이고, 공직선거법을 통해 선거와 관련한 행위를 규제할 권한을 가진 조직이라는 점이다. 선관위는 규제기관이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그 규제는 아직 정의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유행어’에 근거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법 규정(공직선거법)에 근거해야 한다.

미리 결론을 말하면, ‘가짜 뉴스’라는 개념 자체는 아직 정립된 바도 없고, 그 개념이 정립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공적 규제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즉, 선거와 관련한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공직선거법상의 명문 규정이고, 특히 가짜 뉴스 현상과 관련한 근거 규정은 공직선거법 250조와 251조다.

 

가짜 뉴스,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그럼에도 가짜 뉴스의 개념을 엄격하게 정립해야 하는 이유는 법적 규제와 가짜 뉴스의 경계를 명백히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근거로 표현의 자유 탄압과 규제가 당연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즉, 더 많은 표현의 자유, 더 엄격한 법률 규정의 적용을 위해서라도 가짜 뉴스의 개념을 엄격하게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표현의 자유 가짜 뉴스의 개념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진: Looking Glass, CC BY SA)

지금까지의 논의와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가짜 뉴스의 개념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독자를 오도하거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꾸며 언론보도 형식으로 유포한 허위정보.”

위에 기술한 정의를 분리해 하나씩 요건화하면 아래와 같다.

1. 누가(주체)

  • 누구든 

가짜 뉴스의 생산 주체는 누구든 상관없다고 봐야 한다. 즉, 언론사 기자이든 개인(블로거, 네티즌)이든 무방하다. 가짜 뉴스는 뉴스 수용자인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해 수용자의 인식을 강화·왜곡하거나 트래픽을 유발해 상업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허위 사실을 생산하는 주체는 개인이든 언론사이든 상관없다.

2. 무엇을 어떻게(객관적 요건) 

  • 허위 사실을

가짜 뉴스는 ‘허위사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 단순한 의견이나 주장은, 그것이 허황되고 과장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가짜 뉴스로 규정되어선 안 된다. 더불어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경우라면, 의견과 주장은 최대한 두텁게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미학적인 방법론으로서 ‘풍자’를 가짜 뉴스로 규정해 규제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 풍자와 가짜 뉴스의 구별은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준을 통해 신중하게 파악되어야 하고, 이를 일률적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예컨대 미국에서 인기 있는 풍자 신문 [디 어니언]에 실리는 정치, 사회 기사는 모두 가짜다. 이 기사들은 독자를 오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현실을 비틀고 꼬집어 부조리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신랄한 풍자를 위해 작성되는 기사들은 지금 논의되는 가짜 뉴스의 범주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꾸며 언론보도 형식으로 유포

가짜 뉴스는 그 형태에서 (사실을 다루는) 언론보도 형식을 띠고 있어야 한다. 이는 아래에서 살펴본 독자를 ‘기만하려는 목적’이 객관적으로 표출된 형태다. 즉, 가짜 뉴스가 네티즌에 의해 만들어질 때, 굳이 기성 언론의 기사 형식을 차용하는 이유는 독자를 속이려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고, 그것이 가짜 뉴스의 비난 가능성을 높인다고 하겠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독자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유포’되어야 한다.

3. 왜(주관적 요건) 

  •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 독자를 오도하거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가짜 뉴스는 독자를 ‘오도’하거나 독자의 반응을 끌어내 이를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는 목적(주관적 요건)을 가진다. 가짜 뉴스의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행위자의 정파적 이익 또는 경제적 이익. 특히 지난 미국 대선에서 가짜 뉴스가 대량으로 생산된 ‘원동력’을 제공한 것이 가난한 제3세계 청년의 돈벌이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2

고전적으로도 뉴스 수용자의 편견을 강화하거나 오도하기 위한 허위사실의 전파는 특정 정파를 가진 행위자의 정치적 욕망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금전적인 이익과 흔히 결부되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극적일수록 잘 팔리는 ‘묻지 마’ 뉴스 소비의 시대에는 단순히 독자의 편견을 강화하고 오도하기 위한 허위 사실의 전파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가짜 뉴스는 더 많이 만들어지고, 또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

'안티 에이징'이라는 본능적인 욕구는 돈과 권력이라는 연결고리로 '줄기세포시술'이라는 무지로 표출됐다.

여기에서 하나 더 생각할 점이 있다. 허위사실을 통해 독자를 오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포한다는 것은, 이런 허위사실을 진실로 믿고 전달하는 경우까지는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가짜 뉴스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그 무지나 경솔을 탓하고,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그 사실만으로 단죄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선거다 

가짜 뉴스는 특히 선거와 불가분의 관계다. 선거는 말과 글, 의견과 주장이 오가는 가장 치열한 전장이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전장은 방송과 언론 그리고 무엇보다 소셜미디어이며, 그 가장 대표적인 무기는 ‘뉴스’이기 때문이다. 뉴스의 형식을 흉내 낸 가짜 뉴스가 선거철에 더욱 활개 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까지 살펴본 가짜 뉴스가 도덕적 기준이었다면, ‘선거에서 가짜 뉴스’는 공직선거법 250조와 251조에서 규정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를 특히 지칭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엄격하게 한정해야 한다. 즉, 선거와 관련해 ‘가짜 뉴스’를 언급하려고 할 때는 앞서 좁게 규정한 개념에 다음과 같은 요건을 더해 더 좁게 해석해야 한다.

선거 투표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가짜 뉴스는 특정한 법에 근거해 ‘처벌’하거나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짜 뉴스의 개념에 근거해 어떤 행위를 도덕적, 사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 살펴보려는 ‘선거에서의 가짜 뉴스’는 그 행위를 국가 공권력에 의해 처벌할 수도 있는 엄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 후보자나 후보자가 되려고 하는 자를
  • 당선 혹은 낙선케 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맥락에서 다소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가짜 뉴스’를 선관위에서 앞장서서 공보에 사용하고, 공식적인 공문의 표현으로 활용하는 점은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특히 비언론의 행위를 주로 규율하는 선관위 사이버범죄 대응센터는 물론이고, 인터넷 언론의 행위를 심의하는 선관위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모두 ‘가짜 뉴스’의 개념을 묻는 슬로우뉴스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물음표 퀘스천 ‘가짜 뉴스’를 개념을 선관위에 물었지만, 선관위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출처: Marco Bellucci, CC BY)

선관위가 “아직 학계에서도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기 때문에”라거나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라는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한 이유는 실제로 학계에서 아직 정립하지 못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이라는 구체적인 근거 규정을 통해 그 법의 한계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선관위로서는 ‘가짜 뉴스’라는 용어를 함부로 쓰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아직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용어’를 함부로 ‘규제’의 취지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 기준도 모르는 채 단죄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관위 대응센터도 심의위원회도 구체적인 규제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공히 공직선거법 250조와 251조라는 점을 확인했고, 그 외에 어떤 것도 규제의 근거, 단죄의 근거는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지만, 그렇다면, 굳이 가짜 뉴스라는 표현에 편승해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죄(250조)와 후보자비방죄(251조)

제250조 (허위사실공표죄)

①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게 유리하도록 후보자, 후보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의 출생지·가족관계·신분·직업·경력등·재산·행위·소속단체, 특정인 또는 특정단체로부터의 지지여부 등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와 허위의 사실을 게재한 선전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ㆍ방송ㆍ신문ㆍ통신ㆍ잡지ㆍ벽보ㆍ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ㆍ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와 허위의 사실을 게재한 선전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당내경선과 관련하여 제1항(제64조제1항의 규정에 따른 방법으로 학력을 게재하지 아니한 경우를 제외한다)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제2항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경우 “후보자”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는 “경선후보자”로 본다.

제251조 (후보자비방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를 비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참고로 최근 판례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를 살펴보자. 아래 사례는 2013년 11월에 선고된 고등법원 사례다.3

대법원

¶ 피고인이,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甲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여야 합의처리 등을 위해 단식하였을 뿐인데도, ‘굿~!한미 FTA를 빨리 날치기하라고 단식했던 甲OUT!’이라는 문구를 리트윗하는 방법으로 공표하였다고 하여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으로 기소된 사안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위 문구는 반어적 방법으로 비판적 ‘의견’을 표현한 것에 해당하고,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즉, 무죄) 

¶ 피고인이,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甲과 乙이 서로 연대한 사실이 없는데도, ‘甲 후보 완전 맛이 갔다.야권단일화 경선에서 丙 후보를 이기려고 날치기했던 乙 후보와 연대하는 모임에 참여했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게재하는 등으로 甲과 乙을 비방하였다고 하여 공직선거법 위반(후보자비방)으로 기소된 사안

→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위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한 사례. (즉, 무죄)

위 사례만으로 판례의 경향을 전반적으로 확인하기는 부족하겠지만, 적어도 최신 판례라는 점에서 또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두텁게 보장하고, 공직선거법의 적용을 엄격히 제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에드워드 스노든 가짜 뉴스의 천적은 억압이나 검열이 아니라 진실, 그리고 그 진실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는 팩트 체크다. 미국 국가안보국의 국민 감시를 폭로한 뒤 망명 생활 중인 스노든(사진)은 “가짜 뉴스를 대함에 있어, 검열이 아니라 참으로 싸우라”라고 말한다.

“가짜 뉴스 문제는 (정부기관이나 서비스 제공 기업 같은) 심판자가 아니라 이용자, 참여자, 시민이 서로를 돕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나쁜 메시지에 대한 해결책은 검열이 아니다. 나쁜 메시지에 대한 해결책은 더 많은 (옳은) 메시지이다. 거짓말이 쉽게 퍼지는 지금이야말로 비판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서로 인식하고 또 확산시켜야 한다.”

– 에드워드 스노든

개개인이 합리적 의심을 생활화해야 해야 하고, 또 입맛에 맞는 거짓을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당파성에 우선해 정확성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정보 소비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가짜 뉴스에 대해 적극적 의사 표현, 당당한 비판도 생활화해야 할 덕목이다. 누가 대신 바로잡아 줄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

물론 개인이 모든 정보의 사실성을 확인할 수 없다. 좀 더 공적이고, 조직적인 검증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언론이 그 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가급적 국가권력과 조직의 힘을 빌리기보다는 시민사회 안에서 그 역량을 키우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시민사회의 운영원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혹은 ‘자율성’)는 본질에서 국가 공권력과는 상극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오픈넷디지털 시대의 표현의 자유 문제를 주요 테마로 활동해 온 오픈넷은 가짜 뉴스를 규제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가짜 뉴스도 근본적으로 일종의 표현물이라는 점에서, 법적 규제의 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당위가 여전히 적용되어야 한다. 가짜 뉴스의 원조 격이랄 수 있는 미국에서 가짜 뉴스가 처벌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 규제는 가장 쉽지만,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최후의 방법이며, 흔히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다.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엄밀한 기준을 정해 이를 충족하는 표현물만을 최소한으로 규제하고 나머지는 시민사회의 양식에 맡겨두는 것이 옳다.”

– 사단법인 오픈넷 허광준 정책실장

 

놀랄 만큼 기쁘고, 믿을 수 없이 반가운

가짜 뉴스는 대개 ‘놀랄 만큼 기쁘고, 믿을 수 없이 반가운’ 뉴스다.4 그 외양이 때로 천박하고, 어설플지라도, 대개 가짜 뉴스는 당신이 한참을 기다린 바로 그 소식, 당신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아, 사이다!’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우리는 보고 싶은 소식만 보고, 듣고 싶은 뉴스만 듣는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생각과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을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이라고 하고, 이런 경향은 거대한 폐쇄회로인 소셜미디어, 특히 페이스북과 카톡의 ‘끼리끼리’ 집단을 통해 더욱 강화한다. 열린 광장으로서의 공론장은 사라지고, 공론장은 환상과 관념만으로 남는다. 불편부당을 외치는 거대 주류 언론은 자신의 당파를 부끄러운 듯 숨기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이 자신의 당파를 버린 적은 없다.

모바일 스마트폰 뉴스

가짜 뉴스는 당파적 뉴스 소비, 자신과 다른 의견은 들으려 하지 않는 편향된 정보 향유라는 음습한 습지에서 자라는 독버섯이다. 디지털과 모바일이라는 기술의 진화는 열린 대화와 토론의 광장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인 투명한 감옥에 우리를 가뒀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감옥에 갇혀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대화와 토론 대신에 ‘묻지 마’ 공유와 좋아요 단추로 끼리끼리의 견고한 알리바이를 완성한다.

사실이요? 그게 뭔가요? 그거 확인하면 돈이 나오나요? 밥이 나오나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은 저 찬란한 촛불의 바다, 그 한 점 한 점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라는 괴물을 뽑은 게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박근혜 안 뽑았는데? 이런 소리는 제발 하지 않기를…) 사실이 홀대받고, 진실을 탐구하는 길고 어려운 과정 대신에 즉각적인 ‘아, 사이다!’만 찬양받는 시대에 가짜 뉴스는 언제든 창궐할 수밖에 없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놀랄 만큼 기쁘고, 믿을 수 없이 반가운 뉴스만 바라고, 거기에 열광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다시금 놀랄 만큼 참담하고, 믿을 수 없이 슬픈 시간을 마련해 놓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1. 슬로우뉴스는 선관위가 ‘가짜 뉴스’의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사이버범죄대응센터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에 각각 문의했다.
  2. BBC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에 관한 가짜 뉴스가 가장 많이 생산된 곳이 마케도니아의 소도시 벨레스였다고 보도하면서, 고란이라는 19세 청년을 인터뷰했다. 청년은 미국 우익 사이트에서 마구잡이로 ‘복붙'(복사+붙이기)한 가짜 뉴스로 월평균 급여가 350유로인 마케도니아에서 월 1,800유로를 벌었다고 자랑했다. BBC는 이런 모습을 ‘디지털 골드러시’라고 명명했다. 출처: BBC 뉴스, The city getting rich from fake news (2016. 12. 5), 참고 기사: 한국일보, 가짜 뉴스 돈 잔치로 전락한 미 대선… 한국 대선은? (2017. 1. 25.)
  3. 서울고등법원 2013. 11. 21. 선고 2013노1814 판결
  4. CNN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가짜 뉴스 구별법’ 중 하나로 “지나치게 반갑고 믿을 수 없이 기쁜 기사는 한번 의심하라”고 권한다. 재인용 출처: 한국일보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게재하고 있습니다. (2017.02.14.)
화, 2017/02/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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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참을 이길 수 없다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지난 3월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디캠프에서는 미디어의 정보 신뢰도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미국 시민단체인 퍼스트 드래프트구글 뉴스랩이 함께 주관하는 특별 강좌가 열렸다.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이날 강좌는 가짜 뉴스로 대표되는 불량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환경에서 언론인들이 어떻게 정보를 확인하고 검증할 것인가를 주제로 하여 진행되었다.

가짜 뉴스 특별 강좌
이날 발표자는 퍼스트 드래프트의 활동가인 에이미 라인하트였다. 그녀는 가짜 뉴스에 대한 최근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가짜 뉴스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첫 슬라이드는 구글 트렌드에서 ‘가짜 뉴스(fake news)’에 대한 검색수를 시간 흐름으로 보여준 도표였다.

 

지난 5년간 “fake news”의 구글 검색 추이

지난 5년간 “fake news”의 구글 검색 추이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발표자와 깊은 연대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틀 전인 3월 28일, 나는 사단법인 오픈넷이 사회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오픈넷 아카데미’ 제5기 수업 중 두 번째를 맡아 가짜 뉴스에 대해 발표했다. 여기서 나도 똑같은 도표로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라인하트와 나는 당연한 듯 그 다음 순서로 가짜 뉴스의 정의에 대해 말했고, 풍자를 목적으로 한 무해한 가짜 뉴스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풍자 신문 [디 어니언]을 사례로 든 것도 똑같았다.

이 지경이니 난생 처음 보는 외국 미디어 활동가와 연대의식을 갖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발표 여정은 그다음부터는 달라졌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가짜 뉴스

두 발표가 함께 나가다 분기점에서 갈라진 것은 발표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는 언론인을 교육하려는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인식하고 정책 방향을 짚어보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러한 분기가, 가짜 뉴스라는 골칫덩이를 놓고 사회가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정보를 더욱 확인하고 올바른 정보 유통을 고무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접근방식과 규제하고 단속하고 처벌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접근방식의 차이.

라인하트는 언론 자유 지수가 계속 추락하고 있는 한국에서 또 다른 규제와 처벌이 모색된다고 해도 그리 놀라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서 칼을 대려는 모습을 낯설고 희한하게 생각하리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였다.

 

가짜 뉴스에 발목 잡힌 반기문?

 네이버 “가짜 뉴스” 검색 추이

네이버 “가짜 뉴스” 검색 추이

한국의 ‘가짜 뉴스’ 검색 그래프는 2월 초에 정점을 찍는 형태로 나타난다(위 네이버 “가짜 뉴스” 검색 추이). 2월 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다. 그는 2월 1일 대선의 꿈을 접는다는 발표를 하면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가짜 뉴스를 들었다.

“그러나 이런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은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표를 하기 며칠 전에는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가짜 뉴스 단속법을 만들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2월 초의 피크 현상은, 강력한 대선 후보로 손꼽혔던 사람이 가짜 뉴스 때문에 낙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갑자기 가짜 뉴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잊소리 반기문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는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주최로 가짜 뉴스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하 의원은 선거 정국에서 가짜 뉴스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사실을 강조하며, 왜곡 편집된 유튜브 영상을 즉석에서 틀어 보였다.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는 대개 입법 활동의 방향성을 잡기 위한 것이다. 해당 토론회도 가짜 뉴스를 법률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진행되었어야 옳은지 모른다. 그러나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대체로 법적 규제가 능사가 아니며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짜 뉴스와 관련한 법적 규제안이 실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3월 3일에 바른정당 장제원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 법안은 가짜 뉴스 제조와 유포 자체에 대한 처벌은 아니지만, 가짜 뉴스와 관련이 있는 디지털 증거물을 선거관리위원회가 무리하게 수집하는 길을 허용하고 있다.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는 공감할 만하지만, 그 해법으로서는 요령부득에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음은 해당 발의안에 대해 오픈넷이 낸 논평에 잘 나타나 있다.

 

“트럼프 당선에 미친 실제 영향은 알 수 없다” 

가짜 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 추이에서 입증되듯, 가짜 뉴스는 미제(美製), made in USA다. 지난해 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확 불이 붙은 개념이다. 가짜 뉴스를 알게 된 많은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가짜 뉴스가 일정한 역할을 했으리라고 믿거나 그렇게 의심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과문이어선지 모르겠지만 2016년 미국 대선에 가짜 뉴스가 미친 영향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지 그러리라는 추정과 의심이 있을 뿐이다. 대선 이후 나온 많은 분석이 말하듯, 트럼프 현상에는 일정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있다. 트럼프 당선을 단지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의 결과라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 열린 특별 강좌에서, 퍼스트 드래프트의 발표자 라인하트에게 한 청중이 “미국에서 가짜 뉴스가 실제로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가짜 뉴스 현상을 긴밀하게 추적해 왔고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가짜 뉴스에 속지 않는 법’을 강의하는 라인하트, [뉴욕 타임스] 온라인판의 창립 멤버였고 컬럼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에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한 바 있는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질문 물음표

나는 그 말이 옳다고 본다. 나아가, 잘 모르는 것(검증되지 않은 것)을 잘 모른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믿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가짜 뉴스를 놓고 겁에 질린 나머지 국가가 나서서 단죄하는 위험한 방법까지 모색하는 한국의 풍조는, 가짜 뉴스의 효과를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것으로 예단하는 데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짜 뉴스라는 게 허위 사실, 혹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어떤 의도에 따라 유포하는 것임을 상기하면, 이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짜 뉴스 부추기는 한국적 특수성

가짜 뉴스는 사실 낯선 현상이 아니다. 그와 유사한 현상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그것은 ‘가짜 뉴스’가 아니라 ‘유언비어’나 ‘흑색선전’ 같은 이름으로 불렸을 뿐이다.

차이도 있다. 가짜 뉴스가 유언비어나 흑색선전과 다른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차이는 △언론 기사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과 △인터넷, 특히 SNS나 메신저를 통해 확산된다는 점이다. 기사, 그리고 인터넷. 이 두 가지 특성을 고려해 볼 때, 한국 사회와 한국인이 유달리 가짜 뉴스에 취약할 수 있는 배경이 있긴 하다.

1. 낮은 언론 신뢰도 

첫째,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는 바닥 수준이다. 언론이 자초한 일이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는 정보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행태다. 지금 당장 아무 매체나 골라 들여다 보라. 서술된 정보가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취재원은 누구인지 정정당당하게 밝히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며, 사실 대신 추정과 예단의 문장으로 가득 채운 기사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번듯한 매체에 실리는 기사 대부분이 이미 가짜 뉴스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사람들이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품이 짝퉁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을 때, 소비자가 짝퉁에 속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2. 뉴스 소비자의 강한 정파성 

둘째, 뉴스 소비자들이 강한 정파성을 갖고 있다. 극단적 대립의 양상을 띠는 정치 지형, 그리고 그런 지형을 그대로 정체성으로 반영하는 정파적 언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정파성에 지배받는 뉴스 수용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공격, 그리고 아군에 대한 변호와 옹호다. 사실이나 언론의 윤리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명박을 까기 위해서라면 부정확한 정보도 대환영이고, 박근혜를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새빨간 거짓말도 퍼다 나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은 매체 수용자의 전통적 미덕(?)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디지털 뉴스 소비의 특성으로 점점 더 강화된다. 죽(竹)의 장막, 인(人)의 장막 다 위험하지만, 요즘 가장 위험한 것은 필터 장막이다.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 증거는 모조리 폄하, 제거하고,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증거와 근거만을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소셜미디어에서는 더욱 구조적으로 강화된다. 이런 확증편향 현상은 필연적으로 '눈먼 증오'를 강화한다.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증거와 근거만을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소셜미디어에서는 구조적으로 더욱 강화된다.

3. 디지털 리터러시 부족 

셋째, 디지털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한 세대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이른바 디지털 해득력(디지털 리터러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온라인에서 나도는 가짜 뉴스의 단골 희생양이 된다.

대표적인 집단은 아동, 청소년이다. 이들은 상업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제조된 메시지에 취약한 계층으로 알려져 있고, 따라서 디지털 교육은 주로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바로 노년층이다. 디지털 생태계의 음지와 양지를 차근차근 밟아오지 못한 채, 바로 스마트폰 시대를 맞닥뜨린 사람들이다. 주민센터 강습에서 인터넷을 배우고 손자 손녀에게 이메일을 배우며 디지털 걸음마를 하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스마트폰과 채팅앱이라는 날개가 주어졌다. 밀랍으로 붙인 날개가 위태하듯, 인터넷의 뻘소리, 헛소리에 단련되지 않은 날갯짓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어용 시위에 나서서 극단적인 주장을 쏟아내는 노년층 상당수는 인터넷에 떠도는 허황된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있다. 나는 이들에 대한 디지털 교육이 아동, 청소년에 대한 그것보다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지만, 노년층은 실제로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구글, 페이스북, 가짜 뉴스

4. 정부와 국가기관이 유언비어 유포하는 사회 

넷째, 가짜 뉴스와 관련하여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국적 특수성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은 정부, 국가기관이 나서서 가짜 뉴스급 유언비어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원세훈 산하의 국가정보원이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댓글 공작을 펼치며 선거에 개입하였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국정 농단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이 언론과 어용 단체를 움직여 공작을 펼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한민국 쉬운 직업 - 국정원

과거의 일일 뿐인가? 아니다. 바로 지금도 계속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강남구청장 신연희가 퍼나른 악성 유언비어는 30년 동안 국정원에서 근무한 자가 만들어 퍼뜨린 것임이 드러났다. 현직 직원이 아니니 국가기관이 그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진 기형적 소신이 국정원을 비롯한 반민주적 권위주의 기구들과 공유되어 왔음을 고려하면, 정부의 한구석에서 허위사실 유포 공작을 모의하고 전개하는 일이 언제든 다시 시도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네 가지 조건은 가짜 뉴스를 잉태하고 키워내는 환경이 된다. 지금 가짜 뉴스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차고 넘치지만, 나는 가짜 뉴스를 걱정하기보다 이렇게 가짜 뉴스를 활개치게 만드는 환경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본다. 물을 주지 않으면 잡초는 저절로 말라 시든다. 시원한 물과 기름진 비료를 열심히 주면서 잡초가 자라난다고 걱정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자기 편한대로 갖다 쓰는 말? 

미국발 가짜 뉴스는 우리에겐 낯선 개념이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가짜 뉴스에 대한 관심은 ‘가짜 뉴스란 게 뭐야?’, 즉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거의 비슷한 내용의 정의를 만들어 왔다.

정의에 집착하는 것은 ‘사전에 등재하기 위해서’와 같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에서가 아니다. 정확한 규정이 있어야 그 특성을 이해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정의 내리기’는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가짜 뉴스에 대한 정의가 이미 엄밀하고도 적절하게 잘 형성되었음에도, 실제로는 이러한 정의가 거의 쓸모가 없다. 다들 편한 대로 갖다 쓰는 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너의 의도나 속마음이 네가 한 말에 '각주'를 따로 달아주는 건 아니다.

‘가짜 뉴스’는 다들 편한 대로 갖다 쓰는 말이 되어버렸다.

앞에서 가짜 뉴스 이전에 유언비어, 흑색선전 같은 개념이 있다고 했다. 가짜 뉴스는 이들과 달라야 하기 때문에 정의가 새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일반인은 물론이고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뉴스는 이런 정의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그냥 늘 있던 유언비어, 흑색선전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흑색선전, 허위사실, 유언비어를 모두 가짜 뉴스라고 퉁친다.

이런 행위의 의도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가짜 뉴스의 심각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좋은 의도라면, 이미 있던 일탈을 새로운 말로 포장하여 시류에 편승하고 (정치인의 경우) 피해를 강조하려는 것은 나쁜 의도라 할 것이다. 반기문의 피해의식이 대표적인 예다. 가령 ‘퇴주잔 사건’은 가짜 뉴스가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흑색선전, 허위사실, 유언비어, 비방 등의 어느 항목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가짜 뉴스라는 말이 마구잡이로 쓰이다 보니, 이제는 ‘우리 편을 까는 뉴스는 다 가짜 뉴스’라는 인식까지 퍼졌다. 욕망이 언어에 간섭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가짜 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3월 13일,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수 있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관련 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경찰, 검찰, 포털사, 기자협회, 방통위, 방심위 등 13개 기관, 단체가 모인 자리였다. 이 회의의 이름은 ‘가짜 뉴스 등 비방/흑색선전 대응 유관기관 대책회의’였다.

‘가짜 뉴스 등’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관위가 회의 자료로 만든 문건에서 본문 10쪽 중 가짜 뉴스에 대한 것은 그림 한 페이지를 포함하여 2쪽 반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비방과 흑색선전이다. 말만 화려한 가짜 뉴스보다 전통적인 골칫거리가 더 심각한 것이다.

 

규제 법안 마련? 이미 규제는 차고 넘친다  

가짜 뉴스의 내용을 엄밀하게 따지고 이현령비현령식 적용을 경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짜 뉴스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누군가 나서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진 좋다. 그런데 그 누군가에 국가를 설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가 나서서 가짜 뉴스를 규제하고 처벌하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으로 처벌하려면 그 이유와 대상이 매우 명확해야 한다.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되는 딱지로는 규제도 처벌도 정당하게 할 수 없다. 가짜 뉴스가 심각하다고 여기면 여길수록, 규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가짜 뉴스인 것과 아닌 것(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유언비어나 흑색선전과 다른 것)을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법 현실을 생각하면 가짜 뉴스를 규제하고 처벌할 새로운 법이나 조항이 필요한지 강력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허위 사실 표현을 처벌하는 법을 이미 차고 넘치게 갖고 있다. 선진국치고는 그 정도가 심해서, 한국을 표현의 자유 후진국으로 만들고 있는 법들이라는 평을 듣는 것들이다.

예컨대 형법에는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있다. 욕만 해도 처벌 받을 수 있으며, 사실을 서술해도 어이없게 명예훼손죄를 덮어쓸 수 있다. 평범한 사람끼리 이런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주로 정치인 같은 공인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공공 영역에 대한 대중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로 악용되는 것이다. 심지어 국정원, 해경, 청와대 같이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국가기관이 피해자랍시고 나서는 경우도 흔하다.

국민을 상대로 '너 고소' 남발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공직자

국민을 상대로 ‘너 고소’ 남발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공직자

또 선거 때에는 공직선거법에 있는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가 오랏줄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공직 선거에 나선 후보자는 다른 어떤 종류의 사람보다 더 많이, 더 넓게 검증의 도마에 올라야 할 것인데도, 한국 선거법은 거꾸로 검증의 폭을 극단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 조항이 족쇄를 채운다. 악법 중의 악법인 이 조항은 명예훼손 등 권리 침해가 실제로 벌어졌는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요구하면 무조건 지워준다. 누구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글이나 콘텐츠를 손쉽게 삭제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은 허위 사실(심지어 진실 사실)에 대해서도 법적 처벌과 행정적 규제를 모두 할 수 있는 촘촘한 족쇄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가짜 뉴스는 이미 존재하는 이런 처벌, 규제에도 모두 걸린다. 가짜 뉴스를 규제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시류에 영합한 것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후진적인 표현의 자유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

Looking Glass, CC BY SA

 

손쉬운 규제 vs. 쉬운 길 대신 옳은 길 선택할 용기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점을 말하기에 앞서, 나는 앞에서 이미 말한 몇 가지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1. 첫째, 가짜 뉴스가 선거에 미치는 실제 영향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다. 다들 그러리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대중의 짐작이나 믿음과 실제 사실이 다른 사례는 차고 넘친다.)
  2. 둘째, 가짜 뉴스는 새로운 현상도, 놀라운 발명도 아니다. 다른 형태와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 늘 있어왔던 것이다.
  3. 셋째, 가짜 뉴스를 잉태하고 살찌우는 (특히 한국적인) 환경이 있다.
  4. 넷째, 가짜 뉴스 등 허위 사실 유포를 단죄하는 법은 이미 지나치게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가짜 뉴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그 윤곽이 그려진다고 생각한다. 가짜 뉴스는 새로 칼을 빼 들어 혀를 베고 목을 치는 방식으로 근절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메시지가 나오는 현상을 살펴 그 토양을 말려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또 미디어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의 디지털 해득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나쁜 정보, 그른 정보에 대응하여 옳은 정보를 확산하는 여러 장치, 이를테면 팩트 체크의 제도적 일상화 같은 작업도 중요하다.

나는 가짜 뉴스에 대해 발표하는 마지막에, 지난 겨울 우리가 찬 바람을 맞아내며 몸으로 깨달았던 진리를 그 대책의 핵심으로 말씀드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Susanne Nilsson, CC BY SA https://flic.kr/p/oTqd8Q

Susanne Nilsson, CC BY SA

청중 중에서 두어 분이, 이러한 접근은 너무 순진하고 소극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셨다. 그런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실은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간편하게 칼을 들어 말문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비겁하고도 순진한 생각이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고민도 필요 없고 노력도 필요 없다는 점에서 비겁하며, 그렇게 해서는 근절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진하다. 반면, 참이 거짓을 덮으리라는 신념을 갖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쉬운 길을 마다하고 옳은 길을 선택하는 의연한 용기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진실은 억압과 족쇄에 의해서가 아니라 넓게 열린 마당에서 벌어지는 싸움 속에서 모색되고 확정된다. 표현의 자유를 주창한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표현의 자유가 꼭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잘못된 의견의 가치는 옳은 의견이 옳다는 증거를 부지런히 제출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점을 든 것을 상기해 보면 좋겠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게재하고 있습니다. (2017.04.07.)

월, 2017/04/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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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의 인터넷 개인정보 규제 폐지에 부쳐

글 | 써머즈

 

2017년 3월 미국 의회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만든 개인정보 보호 규정 시행을 막는 결의안을 표결에서 통과시켰습니다. 3월 23일에는 상원에서, 3월 28일은 하원에서 각각 통과됐습니다. 공화당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4월 3일 인터넷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폐지하는 법안에 최종 서명했습니다.

 

동의 없이 고객 개인정보를 이용해도 된다는 트럼프 정부

미국의 인터넷 개인정보 보호 규정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2016년 10월 27일에 만들었는데, 미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가 고객(이용자)의 동의 없이 이용자의 인터넷 사용 정보와 앱 활동 등을 추적하거나 공유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FCC의 2016년 10월 프라이버시 규칙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ISP는 고객(이용자)의 정보를 이용하거나 공유하려면 고객들에게 ‘옵트인’ 방식, 즉 명확한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정확한 모바일 위치정보
  • 금융 정보
  • 건강 정보
  • 아동 정보
  • 사회보장번호
  • 웹브라우저 이용 기록
  • 앱 이용 기록
  • 인터넷 통신 내용

반면 ISP가 기본적으로 고객의 사전 동의가 없어도 고객 정보를 수집하다가 고객이 사후 거부 의사를 밝힐 때부터 수집을 중단하는 “옵트아웃” 방식으로 수집할 수 있는 정보도 있습니다.

  • 이메일 주소
  • 이용하거나 공유해도 별로 민감하지 않은, 서비스 단에서 만들어지는 정보

또한 ISP는 자신들이 수집하는 개인정보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용될지, 누구와 공유할지를 고객들에게 분명하고 알아보기 쉽게, 지속적으로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고객들이 개인정보 설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도 명시하고요.

그리고 보안에 대한 적절한 감독, 데이터의 적절한 폐기, 합리적인 데이터 보안 관행과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 이 규칙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웹사이트나 정부 시설 등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규정은 2017년 말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트럼프의 서명으로 이제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자 허락 없이 개인정보를 가져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FCC의 개인정보 보호 규정)은 불필요하고, 헷갈리고 혁신을 숨 막히게 하는 규제다.”

“It is unnecessary, confusing and adds another innovation-stifling regulation.”

아리조나 주의 상원의원 제프 플레이크는 FCC의 규제안에 대해 이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FCC가 인터넷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유사한 규정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결의안까지 발의했습니다.

 

불법으로 팔아도 솜방망이 처벌뿐이던 한국…

트럼프 정부의 개인정보 보호 규정 폐지를 보니 생각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 수집한 2,400만 건의 고객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에 팔아서 232억 원의 이익을 봤습니다. 홈플러스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홈플러스

한국 정부(공정위)는 약 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법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의 항소를 아예 기각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위한 홈플러스를 조치해달라고 방통위에 신고서도 냈지만 별 조치는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국가는 도둑을 장려하고, 기업은 법과 고객을 비웃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홈플러스

다행히도 대법원이 홈플러스 전·현직 임직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지방법원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습니다. (2017년 4월 7일 2016도13263 대법원 3부, 주심 권순일 대법관)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 광고 및 경품행사의 주된 목적을 숨긴 채 사은행사를 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오인하게 한 다음 경품행사와는 무관한 고객들의 개인정보까지 수집해 이를 제삼자에게 제공했다”면서 “이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롯데홈쇼핑1 같은 경우는 2009년부터 2014년 사이에 고객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에 팔아서 37억 원가량의 이익을 봤습니다. 324만여 명의 고객 개인정보를 팔았는데 이 중 2만9천여 명에게는 “제3자 제공” 동의를 아예 구하지 않았습니다.

방통위는 롯데홈쇼핑에 2016년 8월 11일 과징금 1억8천만 원 부과를 결정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검찰에 형사고발 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고객의 쇼핑내역 등 다른 정보까지 함께 판 것이 아닌지도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죠.

이 외에도 개인정보 유출까지 이야기한다면 끝이 없을 겁니다. 공인인증서에 액티브엑스에 각종 설치파일에… 각종 불편함과 위험을 일반 인터넷 이용자인 고객에게 떠넘기면서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나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업체들은 한 차례도 제대로 처벌받거나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 준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유출됐고 어떤 보완책을 세웠는지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정부도 들여다보거나 국민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 신중해야 한다,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느냐며 국민을 힐난하고, 기업은 소비자 대신 정부 눈치만 봅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금융 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

 

한국에 미칠 영향은…

멀리 미국의 트럼프 정부의 인터넷 개인정보 규제 원점 논란은 미국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들과 관련 당국이 미국이나 영국 등을 참조하며 기대도 하고 규제의 틀도 만들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인터넷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지만, 점점 인터넷 기술이 고도화하고 상업화하면서 기업들이 그 자리를 모두 차지해버렸습니다. 여전히 인터넷 서비스 대다수는 무료이지만 기업은 이용자의 여러 정보를 빼내 재가공하고 퍼즐을 맞춰가며 개인들의 취향부터 약점까지 고루 공략하며 더 큰 돈과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체로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고 기업들에 더 큰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홈플러스에 무죄를 내린 법원이나 방통위 등도 당시에는 한국 법이 좀 애매했지만 결국 큰 틀에서 보면 기업의 더 넓은 자유 보장이 세계적 트렌드 아니겠냐며 미래의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사이 개인은 그저 돈을 지불하고 약관에 동의하고 정보 제공에 동의해야만 인터넷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정보 제공 숙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와 일문일답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

– 트럼프 정부의 개인정보보호 규정 철폐에 관해 논평하면.

지금까지 개인정보 보호에 있어서 미국은 규제가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2016년 FCC(미 연방통신위원회)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해 ‘최소한의 규정’을 만들었다고 본다.

즉, 그동안 미국은 기본적인 원칙도 없던 상태였는데, 그나마 그 최소한의 원칙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마저도 기업 친화적인 트럼프 정부가 대형 이통사나 ISP의 로비에 넘어가 폐기한 것으로 평가한다. 소비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프라이버시 보호 대신 기업 편을 들어줬다고 본다.

– 한국에 영향은 없을까.

한국은 미국과 다르게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법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기업들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해도 규제 당국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왔다.

미국이 FCC의 규정을 폐기했다고 해서 우리나라 관련 개인정보 보호 법제가 약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오히려 우리 법의 체계는 더 강화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 집행에서 솜방망이 식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이다.

– 그런 점에서 이번 홈플러스 대법원 판결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대법원이 이번에 정말 올바른 판단을 했다. 개인적으로 1심과 2심의 판단에 아주 분노했었는데, 다행히 대법원이 올바른 판단을 했다. 법원이 이용자의 개인정보,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기업에 보낸 판결이라고 본다.

– 홈플러스의 230억 원은 어떻게 되나.

해당 수익은 유죄로 확정된다면 범죄수익으로 판단해 몰수하거나 추징할 가능성이 생긴다.

– 실제로 기업의 범죄 이익이 몰수되거나 추징된 사례가 있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례에서 기업의 범죄 수익이 몰수되거나 추징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지난번 홈플러스에 부과된 과징금은 공정위의 행정벌에 해당할 뿐, 범죄에 대한 벌금이나 몰수, 추징금은 아니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홈플러스의 행위는 유죄이고, 그 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범죄 수익이 되므로 원칙적으로 몰수나 추징할 수 있다고 본다.

– 이번 대법원 판결이 민사소송에 미치는 영향은.

홈플러스를 상대로 한 소비자들의 민사 소송에 당연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 법인명은 (주)우리홈쇼핑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게재하고 있습니다. (2017.04.10.)

목, 2017/04/1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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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적폐 ‘임시조치’에 드디어 철퇴 내릴까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블로그를 시작한 지 14년 가까이 됐다. 온라인도 자아가 움직이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 그동안 희로애락이 없지 않았다. 그중 가장 열 받았던 때를 들라면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임시조치’를 당하여 블라인드 처리되었을 때다. 그 순간에 비하면, 팬덤이나 ‘국뽕’으로 무장한 군중이 게거품을 물고 몰려드는 일 따위는 차라리 행복했다. 적어도 말은 계속할 수 있었으니까.

임시조치는 인터넷에 쓴 글에 대해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노출을 막아버리는 제도다. 삭제와 다른 점은 30일 한정으로 그런 규제를 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시’다.

하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신속한 공론화와 토론이 생명인 인터넷에서 30일을 가려버리는 것은 영구 삭제나 다름없다. 임시로 채워진 족쇄를 푸는 일도 만만치 않다. 자기 글이 문제가 없다고 구질구질하게 소명해야 한다. 양식을 갖춰 소명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랬다 하더라도 30일이 지나야 족쇄가 풀릴 수 있다. 글이 풀릴 때쯤이면 ‘떡밥’은 이미 다 상하기 일쑤다.

하늘에서와같이땅에서도5

지금까지 내 글은 네 번 임시조치나 삭제 처리되었다. 그중 세 번은 ‘권리 침해를 당했다’고 신고한 측이 똑같았다.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다. 인터넷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기독교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찾아내어 무차별적으로 권리 침해 신고를 하여 삭제시키는 악명높은 단체다. 나머지 하나는 ‘대구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였다. (이것은 적용 법규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기회에 살펴봐용.)

첫 번째 임시조치는 2012년 9월에 가해졌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글이 대상이었다. 이 글은 한 신부가 내놓은 발언을 계기로 하여, 인간이 상상하여 그리는 천국과 지옥의 양상을 잠깐 살펴본 것이다. 글의 끝부분에 김홍도 목사의 주장을 사례로 인용했다. 이게 빌미가 됐다. ‘권리 침해를 당했다’며 임시조치를 한 신고자는 인터넷선교네트워크, 위임자는 김홍도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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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의지와 상식을 반영하여 쓴 글을 놓고 새삼스레 문제가 없다고 남에게 소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억지로 신고질을 하는 목적은 1) 담론을 제거하고 2) 필자들을 귀찮게 만들어 비슷한 논의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함에 있음이 뻔했다.

이런 악의적인 의도를 고려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대응이 있었다. 같은 글을 다시 올리는 것이다. 두 번, 세 번 더 올리는 것이다. 두 곳, 세 곳에 더 올리는 것이다. 억지 신고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더 늘어난 게시물로 미어터지리라!

임시조치 통보를 받은 즉시 나는 같은 글을 재게시했다. 이 게시 글은 넉 달 뒤 같은 신고자, 위임자에 의해 다시 임시조치됐다. 나는 같은 글을 즉시 재재게시했다.

귀찮아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데 먹잇감이 더 많아서였는지, 세 번째 올린 이 글은 신고를 받지 않았고 여전히 남아 있다.

또 다른 임시조치 대상 글은 2010년 7월에 쓴 ‘고 심성민 씨의 가족은 피해자다’라는 글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하러 갔다가 납치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의 가족이 낸 피해보상 소송을 계기로 하여 해당 사건의 교훈을 살펴본 글이다.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는 이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4년이나 지난 2014년 6월에 용케 찾아내어 얼토당토않은 권리 침해 신고를 하여 임시조치시켰다. 위임자는 샘물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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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홍도 때와는 달리 이번엔 신고 사유가 자못 거창하다. 김홍도 때는 무성의하게 ‘명예훼손’ 딱 넉 자를 사유로 들었다. 이번엔 무려 128자나 된다. 모욕, 명예훼손, 왜곡, 욕설 따위를 열거해 놓았다.

그런데 내 글은 여기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신고 사유에 ‘해당 게시물들은’ ‘일부 게시물은’이라고 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이것은 게시물 하나를 신고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 신고 사유는 내 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삭제하고 싶은 인터넷 게시물 모두에 관해 쓰는 ‘디폴트’ 신고 사유, 혹은 ‘복붙’ 신고 사유인 것이다.

전과 같이 웬 개가 짖나 하며 다시 긁어 올려도 되지만, 모욕~욕설 따위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아마 시간도 넉넉히 있었을 게다. 나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의 신청을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서를 이글루스(내 블로그를 제공하는 서비스)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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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신청은 6월 25일에 보냈다. 보내자마자 접수받았다는 이메일이 왔다. 그런데 내가 이의 신청을 하더라도, 이를 전달받은 신고자가 어떻게 할지를 30일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슨 수를 써도 30일간 삭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개명 천지 민주 국가에 이런 호박엿 같은 일이 다 있다니.

이글루스로부터는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날짜를 꼽고 있던 나는 무려 2~3일이나 여유를 준 뒤, 7월 27일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날렸다.

권리침해를 빙자하여 신고되어 임시조처된 게시물(http://deulpul.egloos.com/3382699)과 관련하여, 신고, 소명, 소명의사 전달이 각각 이루어지고 30일이 지났으니, 신고자가 명예훼손 입증 등 다른 명백하고 법적인 사후조처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게시물 임시조처를 해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 문의&답변 내용을 첨부합니다.

다음날, 이글루스는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회원님의 소명 의사를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 측에 전달해 드렸고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 측에서 한국방송통신위원회에 심의 신청을 하지 않으시어 해당 게시글에 대한 임시조치를 철회해드렸습니다.

신고자는 나의 이의 신청에 대해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30일을 보냈다. 무슨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명예훼손 따위를 입증할 길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삿된 목표는 거의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터넷을 짓누르고 있는 많은 규제와 유사 검열 중에서 최악은 바로 이 임시조치일 것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명시된 이 규정은 나쁜 짓을 하고도 남에게 비판을 받기 싫은 놈들이 마음껏 악용할 수 있는 극강의 독소조항이다. 얼마나 위험하고 위헌적인 규제인지, 2012년에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로서 서로 펀치를 주고받던 박근혜와 문재인이 목소리를 합쳐 개선을 약속했을 정도다.

하늘에서와같이땅에서도9박근혜 공약 (18대 대선)

하늘에서와같이땅에서도8문재인 공약 (18대 대선)

안철수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겠다는 포괄적인 공약을 던졌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 음습한 악법 임시조치 규정에 드디어 햇볕이 들게 될 듯하다. 새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임시조치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같은 관행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고 글쓴이가 임시조치에 이의 의사만 밝히면 심의 등 절차 없이 글의 블라인드 처리가 풀리도록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비판 당사자가 피해 호소만 하면 사실상 바로 콘텐츠 차단이 되는 만큼, 글쓴이도 같은 수준의 ‘방어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의 관계자는 “종전에는 정치인이나 유명인 등이 명예 훼손 등 피해만 주장하면 포털 등 사업자가 기계적으로 임시조치를 해 정당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문제가 컸다”며 “임시 조치의 남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인터넷 검열 논란’ 포털 블라인드처리 손본다,  2017. 5. 11 중에서 

나로서는 이 같은 방안이 성에 차지 않는다. 이미 한국에는 사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족쇄, 명예훼손죄가 있다. 인터넷 게시물로 인해 진정 명예가 훼손되었다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법정에서 다투면 된다. 그런 노력조차 들이지 않고, 명예훼손이 아닌 비판 게시물까지 싸잡아 광범위하고도 손쉽게 재갈을 물릴 수 있는 게 임시조치다. 궁극적으로는 폐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개정조차 오랜 숙원이었고, 규정의 허점을 악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시퍼렇게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마당에, 게시자의 반론권/재게시권을 보장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를 향한 진일보한 조치라 여겨진다. 현실이 워낙 바닥이라, 아무것이나 해도 진전이다. 국회에서는 이미 유승희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이번에야말로 이 독소조항이 반드시 개정되어, 욕먹을 놈들은 욕먹고 비판받을 놈들은 비판받는 사회, 그래서 욕먹을 짓, 비판받을 짓은 미리 삼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게재하고 있습니다. (2017.05.11.)

금, 2017/05/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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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임시조치’가 악법인 이유

글 | 손지원(고려대 한국인터넷투명성보고팀, 변호사)

 

기업이 듣기 싫어하면 소비자 불만글도 내려라??

유제품 회사인 남양유업은 2010년대 초에 자사 제품의 과장광고 및 대리점 운영상 갑질 행태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이 같은 의혹에 대한 기사를 링크, 인용하며 비판하는 글들을 올렸다. 남양유업은 이 글들에 대해 명예훼손 신고를 하였고, 글들은 모두 임시조치(게시중단)되었다. 해당 네티즌은 즉각 이의신청을 하였지만 돌아온 것은 30일이 지난 후에야 복원하겠다는 답변이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글, 더군다나 소비자의 알 권리나 대기업의 횡포와 관련하여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기 위하여 애써 올린 공익적·합법적 포스팅이 왜 누군가로부터 신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30일간 차단되어야 할까?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이 이용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해당 블로그를 방문한 손님은 “(명예훼손 신고로) 임시적으로 게시가 중단된 게시물입니다” 같은 알림말로 도배된 블로그를 보면서 블로거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지는 않았을까? 분노한 해당 네티즌은 블로그 서비스 제공사인 네이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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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7년 4월, 법원은 네이버의 손을 들어줬다.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 제도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는 것이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4항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권리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네이버와 같은 포털로서는 어떠한 게시글이 명예훼손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해당 조항에 따라 게시중단을 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에 따르면 온라인상의 모든 글은 특정인, 특정 기업이 언급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명예훼손 분쟁 소지가 있는 글로 간주될 수 있고, 따라서 관련자가 신고하기만 하면 모두 30일간 차단될 수 있다. 이번 소송의 원인이 된 게시글 중에는 남양유업이 아니라 무턱대고 글을 차단한 네이버를 비판하는 글도 있었다. 이 사건과 같이 공익성이 명백한 경우 게시글이 함부로 차단되지 않도록 법원이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든다.

공익성을 가진 합법적 표현물을 차단하는 행위에 대해서 책임지는 주체가 아무도 없으니, 기업이나 업주들이 이를 악용하여 자신에 대한 온라인의 비판적 이용 후기나 소비자 불만글을 대량 차단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번 소송 과정에서도 남양유업을 비판하는 글들을 신고한 주체가 남양유업이 고용한 ‘온라인 삭제 대행업체’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종류의 마케팅 서비스가 최근 번성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홍보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쓴 비교적 객관적인 후기까지 일방적으로 삭제, 차단하는 것은 평판을 조작하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임시조치 제도의 폐단은 우리나라의 불합리한 명예훼손, 모욕죄 법리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고 단순히 욕만 해도 모욕죄가 성립하는 우리 법제 하에서는, 누군가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순간 걸면 걸릴 수 있는 분쟁과 형사책임의 위험을 떠안게 된다. 이렇다보니 포털들도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차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게시자가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30일간 차단한 뒤에야 재게시하도록 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후퇴시키는 불평등한 조치다. 저작권법(제103조 제3항)에서 저작권 침해 신고로 게시 중단된 경우 게시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지체없이 심의하여 재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임시조치로 온라인상에서 사라지는 글은 한해 45만 건이 넘는다. 소비자 불만글, 대기업 비판글뿐만 아니라 공인에 대한 비판글 역시 임시조치로 무차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침해되고 공론장이 위축됨으로써 오는 피해는 오로지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불합리한 임시조치 제도는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조치 제도에 대해서 게시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는 즉시 임시조치를 해제하고 분쟁조정기구의 심의나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게시를 유지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새 정부가 최소한 이 공약을 지켜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한 단계 진보시키는 데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 위 글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기고했습니다. (2017.05.12.)

금, 2017/05/1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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