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김영한 비망록’ 속의 KBS…청와대 손바닥에서 놀았다

지역

‘김영한 비망록’ 속의 KBS…청와대 손바닥에서 놀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6/11/18- 18:30

청와대가 KBS 사장 선임과정에 개입하고 보도·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등을 논의한 사실이 ‘김영한 비망록’을 통해 확인됐다.김영한 비망록은 지난 8월 숨진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근무 일지 등이 적혀 있는 노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17일 공개한 비망록 자료에는 2014년 6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넉 달 동안 18차례에 걸쳐 청와대가 KBS의 인사와 보도에 개입한 정황이 기록돼 있다. 해당 자료는 언론노조 KBS본부가 김영한 비망록을 단독 보도한 TV조선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이른바 ‘기레기 보도’ 사태 후에도 KBS 장악은 계속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KBS를 비롯한 지상파 언론들은 ‘전원구조 오보’와 유족들에 대한 무분별한 인터뷰 시도,그리고 정부 책임에 대한 면피성 보도등을 통해 ‘기레기’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특히 KBS의 경우 참사 닷새째인 4월 21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도 내용에 대해 일일이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6111802_01

5월 5일에는 김시곤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유한 발언으로 논란이 촉발되고 이에 격분한 유족과 시민들이 5월 8일 밤 KBS와 청와대 앞에서 철야로 항의시위를 벌인다. 그러자 5월 9일 KBS 길환영 사장이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김시곤 보도국장을 직위 해제한다. 그러나 김 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자신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면서 “청와대의 압력으로 보도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온 길 사장은 자진 사퇴하라”는 폭로성 주장을 편다. KBS 기자협회 등 내부 구성원들은 대대적인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에 나섰고 결국 KBS 이사회는 6월 5일 길 사장 해임을 결의한다.

2016111802_02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4년 6월 14일 임명돼 다음날부터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으며, 그의 비망록 속에 등장하는 KBS 관련 내용은 이상과 같은 상황적 배경 아래서 해석이 가능하다.

KBS 새 사장 선임에 청와대 지속적 개입 정황

김영한 전 수석은 출근 첫날인 2014년 6월 15일자 메모에서부터 KBS문제를 적시해 뒀다.새 사장 선임을 7월 10일까지 마친다는 것이다.

▲  2014년 6월 15일 메모

▲  2014년 6월 15일 메모

다음날인 16일자 메모에는 “홍보/미래 KBS 상황,파악,plan 작성”이라는 글귀가 있다. KBS 사장 선임 관련 플랜을 홍보수석,미래전략수석과 논의한 흔적으로 파악된다.

▲ 2014년 6월 16일 메모

▲ 2014년 6월 16일 메모

이후 KBS 새 사장 선임 관련 메모는 평균 사흘에 한 번 꼴로 등장한다. 특히 7월 4일 메모에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직접 지시한 “KBS 이사 우파 이사 – 성향 확인 요”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KBS 이사진의 분위기는 사장 후보 6명 가운데 청와대가 선호한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아닌 조대현 KBS미디어 대표이사 쪽으로 기울었었다.청와대가 여당 추천 이사 7명에 대해 성향 파악과 함께 표 단속에 나선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 2014년 7월 4일 메모

▲ 2014년 7월 4일 메모

그러나 7월 9일 KBS 이사회에서는 7명의 여당 추천 이사들 중 2명의 ‘반란표’가 나오면서 조대현 씨가 새 사장으로 선임되고 만다.그러자 이틀 뒤 의미심장한 메모가 등장한다.각 부처가 공공기관 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특별히 KBS 이사들을 언급했는데, 이들이 ‘면종복배’, 즉 겉으론 복종하고 속으로는 배신했다고 평가해 놓은 것이다.

▲ 2014년 7월 11일 메모

▲ 2014년 7월 11일 메모

이에 대해 성재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비난으로 수세에 몰란 상황에서 청와대가 계획한 대로 KBS 새 사장이 선임되지 않자 KBS 이사를 교체해 KBS를 지속적으로 청와대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도·시사 프로그램 관련 소송에도 지속적으로 개입한 듯

김영한 비망록은 청와대가 KBS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주시하고 일일이 대응해 왔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길환영 사장 해임 직후인 6월 11일 KBS는 문창극 당시 총리후보자가 한 교회 강연에서 “일본 식민지배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던 사실을 발굴해 단독 보도했고, 이로부터 2주 뒤 문 후보자는 자진사퇴하게 된다.

2016111802_07

그런데 두 달 뒤 방송통신심의원회는 이 보도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배했다며 중징계 방침을 밝혔고,이 무렵 김영한 수석의 메모에는 이와 관련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직접 발언이 담겨 있다. “국가정체성, 헌법 가치 수호 노력 → 정책집행·인사관리를 통해서”, “일선 행태 – 반체제 집요 투쟁 – 미온·소극적”, “강한 의지·열정 대처 – 체제 수호 難 → 유념”, “전사들이 싸우듯이. ex 방심위 KBS 제재 심의 관련”이라는 내용이다.

문창극 보도에 대한 방심위의 제재를 두고,반체제 투쟁에 대해 강한 의지와 열정으로 대처하는 좋은 사례라고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청와대가 언론의 박근혜 정부 비판을 헌법 파괴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만한 대목이다.

▲ 2014년 9월 5일 메모

▲ 2014년 9월 5일 메모

실제로 문창극 보도 직후 검증TF 소속이던 한 KBS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검사장급 검찰 관계자로부터 “청와대의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당신을 노리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는 KBS 보도 관련 송사에도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0년 KBS <추적60분>의 ‘천안함 의혹’ 보도 이후 방송통신위원회가 경고 조치를 하자 제작진이 제재 취소 소송을 낸 바 있는데,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2014년 6월 13일 제작진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는 19일 뒤인 7월 2일 항소장을 제출하는데, 김영한 수석의 6월 26일자 메모에는 “KBS 추척60분 천안함 관련 판결 – 항소”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 내용이 적혀 있다.김 실장에 지시에 따라 방통위가 항소 조치를 취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 2014년 6월 26일 메모

▲ 2014년 6월 26일 메모

계속된 청와대의 KBS 장악 시도…현업자들은 시민들 조롱 감내

이처럼 김영한 비망록에 나타난 2014년의 공영방송 KBS는 ‘국민의 방송’이 아닌 ‘청와대 방송’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고대영 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인호 KBS 이사장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강동순 전 KBS 감사의 증언이 있었다.

2016111802_10

고대영 사장 취임 이후 보도와 제작 자율성이 거의 말살되다시피한 KBS는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지며 촛불집회 군중들로부터 현장에서 쫓겨나고,KBS 중계차에는 ‘니들도 공범’이라는 시민들의 비난과 스티커가 뒤덮이기도 했다.

▲ 11월 12일 촛불집회 현장의 KBS 중계차에 시민들이 잔뜩 붙여놓은 스티커

▲ 11월 12일 촛불집회 현장의 KBS 중계차에 시민들이 잔뜩 붙여놓은 스티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청와대의 방송장악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정치세력, 특히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구조를 바꾸는 언론장악방지법등을 국회가 즉각 논의하고 통과시켜야”한다고 말하며,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동 책임이 있는 새누리당은 관련 법안 논의에 대한 방해 행위를 중단하고 법 개정에 즉각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정형민
영상편집 : 정지성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제왕적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면?

'무난한 승리'에 안주하며, '제왕적 권력'을 원하는 정치

 

김종욱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참여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천일을 목 놓아 울어도 새벽은 오지 않았다. 절망의 아픔을 안고 눈물로 호소해도 꿈쩍도 안 했다. 그들은 애당초 세월호를 뭍으로 올릴 생각도, 진실을 밝힐 마음도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이 가능했던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다. 이 거대한 권력 앞에 '국민의 공복(公僕)들'은 침묵과 왜곡의 공모자가 되었고, 진실을 은폐하고 파기하는 협력자가 되었다.

이 극악한 공모와 협력을 단칼에 자른 것은 '민심(民心)'이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만든 것도 '촛불 민심'이었다. 두려움 없이 광장으로 나온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천만의 촛불, 그것은 억눌리고 고통스러웠던 약자들의 희망을 향한 절규이고,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을 방치할 수 없다는 국민의 요청이고, 기득권과 불평등을 혁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시민의 자존의 외침이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서서히 밀려오는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진주 촛불집회에서 발언한 어느 여대생의 의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진짜 바뀔까요?" 정치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천만의 촛불과 민심의 요동에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망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3년 6개월 동안 벌어진 국정 농단을 누구도 발견‧제어할 수 없었던 시스템, 입시 부정에 대한 이화여대생들의 절규와 우연히 찾은 태블릿PC로 촉발된 이 허망하고 답답한 사태, 대통령을 필두로 비서실장과 장‧차관들의 철저한 공모와 은폐로 일관된 상황, 이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다.

'제왕적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개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와 행정 수반을 겸직하며 막강한 '비상대권'(선전포고권, 계엄선포권, 긴급조치권, 긴급명령권), 헌법 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부의권까지 가진 '초강력' 권력이다.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권력이 부여된다. 이 과도한 권력집중 때문에 반복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고, 이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심각한 권력 갈등이 반복되며, 매번 적대와 갈등의 정치를 구조화해왔다.

따라서 현행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 이것은 민주적 정치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이 제도는 정치학자 황태연 교수에 따르면 "전 국민적 정통성에 독립적 기반을 둔 초당적 실권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수반'과 의회의 신임 여부에 종속된 당파적 실권 총리로서의 '정부 수반'이 나란히 공존하며 협력하는 정부제도"다. 공화정을 선택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초당적인 외교‧안보‧국방‧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다수 의석에 기초한 당파적 직무를 수행하는 내정 총리로의 분권 모델이다.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여야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가능케 하며, 여러 정당의 '공동 집권' 또는 '동거 정부' 등을 통한 '협치(協治)의 정치'를 보장한다. 즉 '제왕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반복적인 '갈등과 투쟁의 정치'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한 '상생 협력 정치'의 길을 열어준다. 정치적 '타협'은 대화와 토론을 전제한다. 민주적 토론을 통한 권력의 나눔과 연합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타협의 정치를 '밀실 야합'으로 폄하하고, 나쁜 정치로 규정했다. (필자는, '어느 학자'와 관련해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의 글을 주석으로 달았다. ☞관련기사 : "도대체 '친문패권주의'가 무엇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유럽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거래'와 '나눠먹기'를 일상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지속해 온 것이다. 그 필자의 의도는 알겠다. 개헌이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제외하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니, 그런 방향의 논의를 중단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정 후보가 헌정보다 중요할 수 없다. '국민은 곧 국가'이며, 국가의 정체는 헌법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저 심각한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제왕적 권력'을 그대로 둔다면, 또 다른 국정 농단이 재연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한 논의는 조기 대선에서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되어야 한다. 국민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차기 대통령 당선자는 이 사회적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


민심과 함께 하는 '공감의 정치'

이를 위해 첫째,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증오와 공격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정치인을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열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열광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아닌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그런 '빠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자기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역주의로 빠지면 다른 지역을 배타하는 증오와 적대의 정치만 남을 것이다.

둘째, 정의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선악(善惡)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공감의 정치'가 필요하다. '선악의 정치'는 단죄의 정치이고 적을 만드는 정치다. 특히,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문재인 후보부터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대세론'에 안주하고 쟁점을 회피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선 안 된다. 즉 '무난한 승리'에 안주하는 것은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패권적'으로 의심했거나 비판했던 부분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시대에 공감하는 것이다.

셋째, 국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많은 이야기들이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펼쳐져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있다. 각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논의들은 밀려나고, 비판적 논의는 집단적 공격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권력 구조는 그대로 놔두고, '정권 교체'만 이뤄지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승자독식,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게임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타협의 정치가 들어설 공간은 협소하다. '독식 권력'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할 가능성이 높고, 국민 전체의 공공선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의 내러티브(narrative)만 흘러넘칠 것이다.

'도깨비' 같이 '국민의 소환에 응하는 정치'

너무 아프고 슬픈 죽음들, 도대체 열심히 살아도 빈곤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천만 촛불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슬픈 죽음에 대한 공감, 그 아픈 삶에 대한 공감이 탄핵의 원천이었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친 '도깨비'에서 지은탁은 기억에서 사라진 도깨비 김신에 대한 감정만으로도 그렇게 쓰리고 아파했다. 저승사자 왕여를 사랑한 김선은 다시 이별이 와도 너무나 보고 싶어서 너무나 만지고 안고 싶어서 달려 나갔다.

세월호 부모들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죽어라 일해도 하루하루가 나락(那落)인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단어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겠는가. 이제 정치인이 민심에 공감해야 한다. 정치가 응답해야 한다. 도깨비 김신이 끝도 모를 그 매서운 눈길을 걸어 약속을 지켰듯이, 국민의 소환에 응하는 것이 정치다. 슬픈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마법을 기대해 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7/02/02- 17:24
291
0

블랙리스트 손해배상청구 소장 제출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고발 기자회견


일시 및 장소 : 2017년 2월 9일(목) 오전 10시 30분, 민변 대회의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는 ‘블랙리스트 법률대응 모임’을 조직하였고, 작년 12월 12일 김기춘 등에 대한 형사고발을 진행하였습니다. 

 

나아가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국가와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민변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 10여명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소송 대리인단’(단장 강신하)을 구성하였습니다. 지난 1월 16일부터 2월 3일까지 원고 모집을 진행하였고, 2월 9일(목)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이번 소송에는 각계의 문화예술인이 각자의 의지와 분노를 모아 참여 신청을 하였고 474명(소장 제출 시에 최종 숫자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이 원고로 참여하였습니다. 소송의 피고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고의적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공무원 개인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법인도 대상으로 하여 개별적 책임을 분명하게 물을 예정입니다. 청구액은 소장 제출 시에는 원고별로 100만 원으로 하고 향후 블랙리스트 기재 경위와 피해 실태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날 경우 피해 유형과 정도에 따라 청구액을 확장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소송 원고는 전체 피해자 중 일부이며 향후 소송 과정에서 블랙리스트의 전체 내역이 밝혀진다면 더 많은 피해자들이 추가로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또한 블랙리스트에는 개인의 성명, 직업 외에, 정치적 견해 등 개인정보호법상 민감정보가 포함되어 있는바, 위 김기춘 등은 개인의 민감정보를 불법 수집, 처리하여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였습니다. 따라서, 민사소송과 별도로 위 가담자들에 대하여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발할 예정입니다.

 

2월 9일(목) 오전 10시 30분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 제기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을 발표하고 설명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참석과 취재 부탁드립니다.

 

 

※ 문의 : 이원재(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02-773-7707
          송상교(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  02-522-7283
          하장호(예술행동위원회/예술인소셜유니온운영위원) 010-6430-1871
          김선휴(참여연대 공익법센터) 02-723-0666

 

 

□ 진행 개요
․ 사회 : 서중희 변호사 (대리인단 간사)
․ 경과 및 블랙리스트 규탄 : 장지연(문화문제대응모임 공동대표)
․ 블랙리스트 소송의 의미와 향후 진행방향 : 조영선 변호사(대리인단부단장)
․ 소송의 주요 내용 발표 : 전민경 변호사
․ 참여 문화예술인 발언(소송참여 취지) 
  - 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 참여 문화예술인 1인

* 소장 및 고발 내용은 당일 배포합니다.끝.

화, 2017/02/07- 18:54
299
0
기억은 단지 개인의 과거가 아닙니다. 기억은 우리 사회를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제기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행동입니다.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에서는, 기억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의미를 획득하는지 기억은 그리고 기억문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실천적 관점에서 알아봅니다.


초청발제자 소개 참가신청하기

수, 2017/02/22- 11:15
244
0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여러분과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 책은 오래된 책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세상살이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볼까요?


서른네 번째 책
 <기억 문화 연구>
과거는 기억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300440

하나의 소재로 대화를 하려면 그 소재에 관해 공통된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오해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 나는 가장 먼저 사전을 찾는다.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그 단어를 적확하게 쓰고 있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사업의 목적과 성격에 맞게 우리가 논의할 소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살을 바르고 가지를 친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좋은 개론서를 읽는 것이다. 2017년 한독도시교류포럼을 준비하며 내가 읽은 책은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중 한 권인 태지호의 <기억 문화 연구>다.

100쪽이 채 안 되는 이 책은 기억이 무엇이며 왜 최근 기억이 소환되고 있는지 학술적 토대를 기반으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여준다. 그리고 기억과 연관된 다양한 개념을 소개하고 학자들이 제시하는 개념의 의의와 제약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전통적 개념의 역사에 제기되는 문제점을 기억이 어떤 식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논의의 배경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이 책은 기억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기억’부터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맥락에 의해 기억이 변화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사회적 기억’, 문화적 재현을 통해 의미를 획득하는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문화적 기억’ 등 주창한 이론가를 중심으로 주요 개념과 그 의의를 짚는다.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기억의 터(Sites of Memory),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대중 기억(Popular memory) 등 기억을 설명하는 이후의 개념 역시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기억은 ‘정체성’과 ‘민족’이라는 개념들과 연관되며 상호작용하기도 하고, ‘기념’ 등의 방식을 통해 정치성을 갖게 되기도 하며, ‘다크 투어리즘’, ‘영상 기억’, ‘향수와 복고’ 등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산업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책은 기억이 어떻게 학계에 등장했고 이것이 사회현상과 맞물려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간결한 연대기 같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은 세월호 참사와 결합되면서 하나의 기호가 되고 상징이 된다. 평상시의 기억이란 지난 약속을 떠올리거나 추억을 상기하는 일 등에 사용하는 용어였는데, 이 한 권의 책은 ‘기억’을 파고든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고뇌가 담긴 시간의 결과물을 보여주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 중 만만히 여길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볍고 어렵지 않은 책이니만큼, 3월 23일 안산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 기억의 조건’에 오시기 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사회는 기억의 장이자, 기억의 조건인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조건들은 개인들의 기억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 속에서 회상과 망각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특정한 기억만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p6

“기억은 공식적 역사를 넘어 과거에 대한 다양한 재현 방식과 정체성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 p15

“기억은 ‘나와 우리가 누구인가’와 ‘나와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연결시켜 준다. 그러므로 정체성(들)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현재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와 연관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과 같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 한국 내 친일파 청산과 해석 문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역사 교과서 문제 등 일련의 ‘역사 전쟁’들은 정체성(들)을 규정짓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들이며 이는 곧 다양한 기억들 간의 갈등이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p69

“희생자들이 기억되는 방법은 최근 들어 이전보다 더 극단화된 희생자 숭배 혹은 재국민화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부조리한 죽음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는 점과 민족주의를 새로운 차원에서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p79

“트라우마에 대한 부정적 승화 혹은 순화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형태로 과거를 재현할 뿐, 오히려 그러한 참혹했던 과거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제시하는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공감(empathy)이다. 그는 공감으로 과거와 희생자를 진정성 있게 바라보고 끊임없이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트라우마 자체가 결코 물화하거나 객관화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p82

글 : 이민영 | 목민관클럽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7/02/28- 10:31
227
0

‘촛불의 성지’ 광화문 한복판에 포차를 세우자! 그곳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따뜻한 어묵 국물 한 그릇씩 대접하자!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지만, 그간 고생하셨다고 응원하자! 뉴스포차의 계획은 이랬다.

공개방송 당일인 3월 1일 전국에 봄비가 내렸다. 탄핵 반대 집회가 대규모로 열려 광화문은 어지러웠다. 밤이 되면서 기온도 떨어졌다. 바람마저 불었다. 내내 불안했지만 광화문을 지키는 시민들은 줄지 않았다.

뉴스포차 공개방송 첫 손님은 세월호 가족들과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 김명진 학생. 이들이 4개월 동안 촛불을 들면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촛불의 든든한 지원군인 박주민 의원과 이태호 국민행동 상황실장의 속 시원한 탄핵 해설.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와 촛불집회 때마다 데이트를 나온 모자 커플, 그리고 이번 촛불의 주인공 중 하나인 청소년들도 포차를 방문했다.

20170303_pc_001

이들이 촛불 속에서 외쳤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박근혜 씨가 탄핵된 뒤, 이들이 만들기를 원하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시작돼야 할까. 방송인 노정렬 씨가 특별MC로 출연했고,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의 감미로운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첫 번째 안주! 세월호와 인연

김미나/건우엄마(세월호 유가족)

홍영미/재욱엄마(세월호 유가족)

김명진/대학생

-두 번째 안주! 만쥬 한 봉지 어떠세요?

최용수/만쥬한봉지 리더, 카혼

만쥬/만쥬한봉지, 보컬

류평강/만쥬한봉지, 키보드

-세 번째 안주! 비 오는 날의 ‘개고생’

박주민/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태호/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본부 공동상황실장

-네 번째 안주! 모자는 용감했다

김민재/고등학생

전모 양/민재 엄마

-다섯 번째 안주! 무서운(?) 십대들

김재연/19세

한송이/16세

치리/19세

금, 2017/03/03- 19:01
252
0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둔 마지막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9차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95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전국적으로는 105만 명이 촛불을 들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29일부터 본격화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은 연인원 천 5백만 명을 돌파했다.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헌재의 탄핵 인용과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특히, 이번 집회에서는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붉은 공굴리기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붉은 촛불이 켜지기도 했다. 이와함께 세월호 가족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세월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고,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부르며 이에 화답했다.

20170304_001

광화문 본 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은 “박근혜가 가야 봄이 온다”, “황교안도 퇴진하라”, “촛불이 승리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총리관저 등으로 행진하고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와 집회를 마무리지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오는 10일 또는 13일로 예상됨에 따라 선고 전날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선고 당일 아침은 헌법재판소 앞,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낮 2시 서울시청 광장 등에서는 탄핵반대 집회가 열려 헌재의 탄핵심판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 대규모 세대결 양상이 펼쳐졌다.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시청앞 광장부터 남대문 앞까지 수 십만 명이 모였지만, 지난 3월 1일 집회와 비교하면 다소 인원이 줄었다.

20170304_002

이들은 헌재가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탄핵기각 보다는 국회의 탄핵소추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며 탄핵 각하를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군가에 맞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가 하면, 무대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이 낭독되기도 했다.

탄핵심판 결정이 임박한 것을 반영하듯 헌법재판소에는 주말임에도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6명이 출근해 막바지 기록 검토와 함께 주중에 열릴 평의 준비에 주력했다.


취재:심인보
촬영:최형석
편집:박서영

토, 2017/03/04- 23:48
164
0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파면(탄핵)했다. 지긋지긋한 박근혜를 만 4년 만에 민중의 힘으로 중도 하야케 했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본격화된 지 1백32일 만이다.

박근혜 파면은 1백32일간 눈비를 마다않고 광장을 지킨 1천5백만 촛불의 긍지이고 훈장이다. 그리고 지난 4년간 반(反)박근혜 투쟁의 선두에 서 왔던 노동운동의 자부심이다. 공장에서, 대학에서, 성주에서, 진주에서 전국 곳곳에서 정권의 악행에 맞서 싸워 온 민중의 정의다.

수십 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 온 독재 세력에 젖줄을 댄 강성 우익 박근혜 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민중을 “개·돼지 취급”해 왔다. 공작 정치로 대선 승리를 훔쳤고, 표를 얻기 위해 남발한 복지 공약을 간단히 취소했다. 기업주들이 책임져야 할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 계급에 전가해 왔다. 생때같은 자식들이 죽은 이유라도 알게 해 달라는 부모들을 좌익 세력 취급하며 적대했다. 일자리 같은 일자리를 달라는 청년들에게 (갖가지 위험이 있는) 중동에나 가 보라고 무시했다. 고통 전가를 중단하고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백남기 씨를 물대포로 죽이고는 그 사인(死因)마저 속이려 했다. 일자리 찾는 여성들에게 고작 저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내놓고는 애나 많이 낳으라고 모욕했다. 노동운동, 사회운동, 문화계 등을 사찰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자유로운 표현과 민주적 권리를 침해했다. 국정원과 재벌이 자금을 댄 관제 데모와 방송 장악으로 여론을 조작해 왔다.

이 모든 악행들에 대한 원한과 증오가 거대한 퇴진 운동으로 수렴됐다. 그리고 결국 그 뜻을 이뤘다. 박근혜 일당과 우익은 끝까지 발악했지만,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민중의 의지가 더 강했다. 세월호 참사로 구조도 못 받고 희생된 원혼의 분노가 그들의 생떼보다 더 강했다.

오만한 권력자들에게 더는 얕보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대중은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 후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줄기차게 모이면서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구속을 촉구해 왔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를 이끈 황교안에게도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세월호 3주기에는 반드시 박근혜를 몰아내고 구속시켜서 희생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염원했다. 오만방자한 우익들이 우리를 얕보고 바람 불면 꺼질 촛불이라고 비웃었지만, 촛불은 바람을 타고 들불처럼 번지고 커져 왔다.

바로 그 힘으로 이미 박근혜 탄핵 전에 정권 실세들인 김기춘·조윤선·안종범 등이 구속됐다. 박근혜의 분신과 다름없던 최순실이 구속됐다. 그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이 취소됐고, 부정 입학에 연루된 이대 총장과 관련 교수들이 구속됐다. 심지어 사후 퇴학 처분으로 그 다이아몬드 수저의 고졸 학력마저 박탈됐다. 그리고는 70년 불구속 신화라던 삼성 재벌의 총수 이재용까지 구속됐다.

이는 박근혜가 더욱 심화시킨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사회를 뜯어고치고 바꾸는 일의 출발일 뿐이다. 대선으로 박근혜 정권이 물러난다고 해도 앞으로 60일이나 기다려야 한다. 이 점을 이용해, 여전히 독재를 미화한 국정교과서가 떠돌고, 사드 등 미국의 대량살상무기들이 서둘러 들어오고 있다. 고통 전가와 노동 개악도 완전히 중단된 것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주들을 위한 고통전가와 친제국주의 정책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도 계속 좌절될 것이다. 박근혜도 구속을 피하려고 온갖 “염병하네” 할 짓들을 해댈 것이다. 앞으로의 재판에서 이 모든 적폐 인물들의 구속 판결을 받아 내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광장의 촛불이 계속 타올라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민중이 거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특히, 노동자들이 승리감을 자신감으로, 일터의 반란으로 번지게 해야 한다.

물론 적폐와 싸우는 일, 정권 퇴진 염원의 밑바탕에 깔린 불평등과 부정의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에는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 효과적인 정치와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쓰디쓴 논쟁과 난관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정권 퇴진 운동을 공상이라고 비웃던 반 년 전과는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

이제 사람들은 4년 전 박근혜 당선에 좌절하고 한숨 짓던 사람들이 아니다. 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사악한 통치자의 중도 하차를 이뤄 낸 사람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오래 핏빛 독재를 자행했던 세력을 계승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정권을 끝장낸 사람들이다.

여세를 몰아 정권의 청산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자. 일터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지역사회에서 노동자·민중의 조건 개선과 해방을 위해 싸우자. 교만한 지배자들에게 단결과 연대의 힘을 보여 주자. 권력을 쥔 자들에게 주눅들지 말고 그들에게 우리를 존중하라고 말하자. 박근혜 퇴진은 투쟁하는 민중의 자랑이다.

2017년 3월 10일
노동자연대

금, 2017/03/10- 13:43
189
0

2017년 3월 10일 11시.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시간.

헌법재판소 안과 밖,시민들의 반응을 뉴스타파 카메라가 담았습니다.


취재:신동윤
촬영:김기철,김남범,신영철
편집:정지성

금, 2017/03/10- 16:58
309
0

세월호 선체가 참사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어제 오후 8시 50분 본인양을 시작해 오늘 새벽 3시 45분쯤 선체 일부가 처음 물 밖으로 나왔고 현재는 선체 우측면 전체가 드러나 있는 상태입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인양 현장 상공에서 촬영한 세월호 모습을 전해드립니다.

목, 2017/03/23- 09:15
55
0

최헌국 목사님이 올리신 세월호 인양 사진들

-
세월호가 인양되어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완전히 인양되어
미수습자를 꼭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월호참사의 진실규명이 되어 다시는 이같은 참사가 없는 생명과 안전으로 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424821034254741&set=pcb.142482…

목, 2017/03/23- 20:07
1,659
0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 깊숙히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1073일 만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제 다음 달 초 목포신항만으로 선체를 거치하는 최종 단계를 무사히 마치면 세월호 인양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이후 9명의 미수습자 수색과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선체 조사가 이어지게 된다.

‘시험인양’에서 ‘본인양’ 결정까지…희생자 가족들의 피말랐던 하루

3월 22일 이른 아침부터 진도 팽목항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날은 세월호 선체 인양을 위한 필수 조건인 소조기(한 달에 두번 상,하현달이 떠 물살이 잔잔해지는 시기)의 마지막 날. 최소한 시험인양, 즉 세월호를 해저면에서 1m 정도 들어올린 뒤 66개 인양줄에 걸리는 장력 배분을 테스트하는 작업이라도 수행해야만 다음 소조기인 4월 5일 본인양에 나설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날까지 진도 앞바다에 파랑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았던 탓에 이날도 시험인양이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미수습자 가족, 22일 오전 기자회견

▲ 미수습자 가족, 22일 오전 기자회견

그러나 오전 9시 무렵, 해양수산부는 시험인양을 시도하기로 결정한다. 현지 기상 상태가 점차 나아지고 있었던 데다 향후 이틀 동안의  파고와 풍속도 인양 작업에 적합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상 예보에 따른 것이었다. 해수부는 시험인양 결과가 좋을 경우 그대로 본인양에 착수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동거차도로 향하는 선박에서 촬영한 인양 현장 모습

▲ 동거차도로 향하는 선박에서 촬영한 인양 현장 모습

해수부 발표에 따라 팽목항에 모여 있던 미수습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은 여러 척의 선박에 나눠타고 인양 현장으로 향했다. 세월호를 1m 들어올리는 작업 자체는 오후 일찍 마무리됐지만 장력 배분과 조율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희생자 가족들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해수부는 인양 현장에 짙은 어둠이 깔리기까지 본인양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동거차도 정상에서 바라본 인양 현장 모습

▲ 동거차도 정상에서 바라본 인양 현장 모습

그렇게 다음 소조기를 기대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던 저녁 8시 50분쯤. 해수부는 즉각 본인양에 돌입해 밤샘 작업을 통해 세월호를 수면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인양 현장에서 800m 떨어진 선박 위와 인양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동거차도 산마루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을 지켜보기로 했다. 세월호 바닥의 철제빔에 연결된 인양줄 66개를 끌어당기기 위해 잭킹바지선 2척에 빼곡히 설치된 유압밸브들이 쉼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7032304_08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해양수산부 제공 사진)

▲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해양수산부 제공 사진)

23일 새벽 3시 45분… 1073일 만에 수면에 닿은 세월호  

본인양이 시작된 지 6시간 가까이 지난 23일 새벽 3시 45분. 잭킹바지선 위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좌측으로 누운 채 수면을 향해 올라오던 세월호의 우현 스테빌라이저(선박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선체 좌우에 부착된 날개형 부위)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침몰했던 세월호가 참사 1073일 만에 다시 물 위로 고개를 내민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 위로 드러나는 선체 면적은 계속 늘어났다.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곧 날이 밝자 세월호는 수면 위 3m까지 올려졌다. 배의 좌측면 대부분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선체 표면에 녹이 많이 슬고 긁힌 자국도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후 2시엔 수면 위 6m까지 올라온 상태에서 양쪽의 잭킹바지선과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끌어올리는 속도를 크게 늦췄다. 해수부는 이날 중 세월호를 수면 위 13미터까지 끌어올린 뒤, 곧바로 인근에 대기 중인 반잠수선박으로 옮겨싣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며,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이르면 다음달 1일, 늦어도 5일에는 107km 떨어진 목포신항만에 세월호를 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모습 확인한 희생자 가족들의 눈물과 한숨

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육안으로 확인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눈물과 탄식, 회한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2017032304_05

미수습자 가족들은 해수부가 제공한 행정선 위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인양 진행 경과를 주시하다가 날이 밝자 인양현장에 접근해 세월호 선체를 육안으로 확인했다. 탄식과 오열이 터져나왔다.

2017032304_06

동거차도에 모여 있던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부모들도 날이 밝자 소형 선박을 타고 인양 현장을 찾아 세월호 선체를 직접 확인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3년 전 참사 당일의 기억으로 또 눈물을 흘렸다. 1073일 만에 바닷속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은 아직 요원하다.


영상취재 : 정형민,김기철

영상협조 : 미디어몽구

영상편집 : 윤석민

목, 2017/03/23- 21:58
311
0

희망제작소(소장 권한대행 권기태)는 안산시·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과 함께 23일 오후 2시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기억의 조건’ 포럼을 연다고 21일 밝혔다.

희망제작소는 한국과 독일의 사례로 기억문화의 역할과 과제를 점검하고자 이번 포럼을 기획했다. 제종길 안산시장이 ‘기억문화 조성을 위한 안산시의 노력’이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한다.

* 기사 저작권 문제로 전문 게재가 불가합니다. 기사를 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 기사 보러가기 

금, 2017/03/24- 14:30
64
0

■ 제목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기억의 조건 : 한국과 독일의 사례로 보는 기억문화의 역할과 과제

■ 주최

희망제작소, 안산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 일시

2017.03.23(목) 14:00~17:00

■ 소개

2017년 3월 2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17 한·독도시교류 포럼 자료집으로 당일 발표자들의 발표자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목차

1. 기조발제
– 기억문화 조성을 위한 안산시의 노력

2. 초청발제 : 시민과 도시가 함께 만드는, 독일의 기억의 문화
– 기억문화에서 시민의 역할 : 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
– 기억문화에서 도시의 역할 : Tim Renner (전 베를린 시 문화부 국장)

3. 사례발제 : 우리 시대, 기억의 조건
– 4.16 세월호의 기억 : 권영빈 (전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소위원장)
– 쌍용차 평택의 기억 :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 5.18 광주의 기억 :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참고
– 독일의 기억문화 들여다보기

월, 2017/03/27- 09:53
226
0

[기억과 다짐의 4월]

서촌에서 제일 큰 노란 리본, 
함께 만들어 주세요

 

참여연대_서촌에서 제일 큰 노란리본 함께 만들기

 

참여연대_서촌에서 제일 큰 노란리본 함께 만들기 참여연대_서촌에서 제일 큰 노란리본 함께 만들기

 

2015년 4월, 참여연대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서촌에서 제일 큰 노란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세월호가 인양된 지금, 참여연대는 다시 또 서촌에서 제일 큰 리본을 만들어 우린 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자 합니다. 총 63개의 로프에 4,160개의 작은 리본을 모아 큰 리본을 만듭니다. 함께 만들어 주신 분의 이름을 각각의 로프에 담아 기록하고 기억하려 합니다.

 

서촌에서 제일 큰 노란리본 함께 만들기

  • 2017. 4. 1. 토 10:00~18:00 (시간 선택 가능)
  • 장 소 : 참여연대 건물 ▶약도보기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 / 3호선 경복궁역 근처
    주인 없는 청와대가 보이는 참여연대 옥상과 해를 피할 수 있는 주차장에서 진행합니다
  • 할 일 : 리본 매기, 리본 고정하기 (4월 둘째주 참여연대 건물에 설치 ~ 5월 셋째 주 철거 예정, 변동될 수 있음)
  • 준비물 :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모자, 손을 보호할 수 있는 얇은 장갑,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든든한 겉옷. 그리고 세월호에 대한 기억.
  • 참가자격 :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 리본을 만들 줄 몰라도 참가 가능(가르쳐 드릴게요). 곰손 환영
    * 청소년 참가자의 경우, 사전 신청자에 한해 자원봉사 증명서를 발급합니다.
     
  • 신청마감 : 2017. 3. 31(금) 16:00까지
  • 문의 : 참여연대 사무국 02-723-5304 [email protected]

 

참가신청 바로가기(클릭!)

 

월, 2017/03/27- 15:26
218
0

민선6기 목민관클럽 19차 정기포럼이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는 주제로, 2017년 3월 21~22일 이틀간 경기 안산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기억문화의 중요성과 기억문화가 지역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생생한 현장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19th_mokminkwan_02_500281

민선6기 목민관클럽 19차 정기포럼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으로 시작했다. 공식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1시가 되기 30분 전부터 많은 참석자(지자체 단체장, 공무원 등)가 분향소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검은색 옷을 입고 가슴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있었다.

분향소 조문을 마치고 안산경기교육청에 있는 세월호 기억교실에 방문했다. 2014년 당시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총 9반까지 있었는데, 세월호 기억교실에도 이와 동일하게 1층에는 1~3반, 2층에는 4~9반 그리고 교무실이 있었다. 유가족 어머니들께서 직접 안내해주시며 설명해주시는 걸 듣던 참가자들의 눈시울이 빨개지고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렸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교실의 빈 책상 위에는, 아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사진과 편지 등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의 빈자리와 방문객들의 글을 접하니, 세월호 참사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19th_mokminkwan_03_500281

이후 안산 스퀘어호텔에서 본격적인 포럼 행사가 진행됐다. 제종길 안산시장의 기조발제와 독일 초청연사 발제, 지자체장 사례 발표로 이어졌다.

안산의 기억과 기록 : 기록을 위한 안산시의 노력

안산은 단원고가 있는 곳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의 역할이 중요했다. 지난 3년 동안 안산시는 다양한 기록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4·16 세월호 참사 기록물이 무려 181,354건이라고 한다. 기록물 종류는 단행자료, 연구자료, 박물자료, 멀티미디어자료 등으로 다양했다. 또한 안산시민 각계각층 39명을 대상으로, 참사 이전의 일상과 그 이후 변화된 일상 등을 주제로 한 구술기록을 담았다. ‘2014 안산의 기억 구술백서’가 그것이다. 또한 416기억저장소 시민기록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기록물 외에도 안산시에는 다양한 행정기록(전자 약 28만 철, 비전자 약 11만 권, 행정간행물 약7천 건 등 1999년부터 DB구축)과 역사문화기록(성호기념관, 안산향토사박물관, 최용신기념관, 단원미술관 등)이 있었다. 제종길 안산시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큰 논란이 된 블랙리스트에 행정가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고 한다.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지난 3년간 중앙정부의 비협조 아래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기억문화를 위한 독일의 노력

이번 포럼을 위해 독일에서 두 명의 연사가 안산에 방문했다. 첫 번째 발표자인 미하엘 파락(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은 ‘아래로부터 기억문화’라는 주제로 나치, 홀로코스트, 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 공산독재, 사회주의 통일당, 동서독 분단, 평화혁명, 통일’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과거 여러 사건에서 무엇을 기억할지에 대한 논의방법과 기념관 형성, 시민사회의 역할, 보상방법 등을 설명하고, 기억문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전해 주었다. 두 번째 발표자인 팀 레너(Tim Renner, 前 베를린 시 문화부 장관)는 ‘베를린의 기억 문화-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이라는 주제로, 지역민이 기억에 관해 직접 논의를 시작한 것과 독일 통일, 기억문화에 대한 제도적 논의 및 합의, 기념관 설립, 다양한 활용 시도 등을 거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토포그래피 박물관과 그 구성요소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기억문화가 앞선 국가다’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두 연사의 발표로 독일의 기억문화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독일도 처음에는 지역 단위의 소소한 논의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19th_mokminkwan_04_500281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기억문화, 더 큰 힘으로

제종길 시장과 독일 연사의 발제에 관한 반응이 뜨거웠다. 질의응답이 계속 됐다. 때문에 이후 예정돼 있던 지자체장 사례 발표가 늦춰졌는데도 모두가 진지한 자세로 포럼에 임했다. 13명의 지자체장이 각 지역의 기억문화 사례를 소개했다. 많은 지자체가 지역이 지닌 역사문화자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대에 그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축제, 기념관, 공원 등으로 지역을 가꾸고 있었으며, 공공기록물도 충실히 관리하면서 내실화에 애쓰고 있었다. 또한 비제도권에서 쉽게 사라지는 지역의 기억과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기록·조사·정리하기 위해 구술·사진기록을 하고, 지역주민을 위한 아카이브 공간 마련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독일의 두 연사도 한국 지역사회에서 세밀하게 작업 중인 기억문화 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기억문화가 모이기 시작하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19th_mokminkwan_01_500281

안산의 새로운 모습

포럼 둘째 날에는 참석자들과 함께 안산시의 다양한 지역자산을 살펴봤다. 시화호조력발전소를 견학하고, 대부해솔1길을 걸었다. 과거 환경문제로 골칫거리였던 시화호를 조력발전소로 전환하여, 지속가능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포럼 참석자들은 이번 포럼을 통해 한국의 기억문화가 한발 나아가 성숙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길 바랐고, 각 지역에서 그런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다.

– 글 : 박정호 | 경영지원실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목민관클럽팀

☞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 기억의 조건’ 자료집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화, 2017/03/28- 09:00
19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