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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최장집 교수가 꼽은 ‘대한민국 구조조정’ 3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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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최장집 교수가 꼽은 ‘대한민국 구조조정’ 3대 과제

익명 (미확인) | 금, 2017/03/24- 14:06

 ‘박정희 패러다임’ 벗고 새 단계 향한 방향타 잡아라

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신승민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 분권형 정부 : 1인 통치자가 국회에서 소속 정당까지 조종하며 사회의 모든 하위구조를 통제해서야
■ 새로운 경제 : 고용확대 못하는 재벌대기업 성장이 한국사회 성장과 복리 증진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
■ 협력적 노사 : 우리 모두는 노동자…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 방향 바꿔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가야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에 이어 곧바로 19대 대통령선거가 이어진다.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계속되는 ‘비상시국’은 비상한 생각과 아이디어, 실천력을 요구한다. 탄핵 과정에서 경험한 민주주의에 대한 특별한 경험과 교육은 새로운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탄핵국면 초기부터 언론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민주주의의 방향을 제시해온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견해를 듣는다. 최 교수가 3월 14일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소장 조운찬) 주최 시민대학 정치강좌에서 강연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대통령 탄핵 이후 ‘정부구조 개혁’ ‘새로운 경제 운영’ ‘노사관계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한국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든 대통령선거가 중요하지만, 특히 이번 대선은 정말 특별하다. 현 정권과 대통령이 탄핵으로 퇴진했고, 이걸 가능케 한 굉장한 촛불시위가 있었다. 되돌아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87년 이후 뭔가 잘못됐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잘못이 누적돼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탄핵 이후 대선일에 맞춰 각 정당과 후보들이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이번 조기 대선에서 요구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정책으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할 것인지 각 정당과 후보들은 고민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것이 뭔가 하는, 제 나름으로 생각한 주제를 세 개 정도로 골라 설명하겠다.

첫째, 정부의 계기(契機: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 즉 정부 구조 개혁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경제 운영과 관련된 것이다. 셋째는 노사관계의 개혁이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서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시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 이 세 가지 모두 괄목할 만한 변화나 진전을 이루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다음 정부는 최소한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다음 정부에서 시작하면 또 그 다음 정부로 이어질 수 있다. 촛불시위와 탄핵 인용으로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이 전환점으로부터 제대로 새로운 단계의 대한민국의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

Ⅰ. 정부구조 개혁


▎최근 최장집 교수가 젊은 학자들과 함께 펴낸 <양손잡이 민주주의>.

‘정부의 계기’라는 것은, 최근 젊은 동료학자들과 함께 펴낸 <양손잡이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중 한 부분에 ‘이번 촛불시위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계기였다’고 언급했다. 이번보다 앞선 정부의 계기는 1980년대 젊은 세대들이 민주화를 이뤄낼 때였다. 그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했다. 그 이전에는 경험할 수도 없었고, 권위주의 정권과 싸우며 문자 그대로 쟁취하는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직선제 대통령’이었다. 그걸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생각했다. 앞선 시기의 권위주의 체제는 군부정권이나 유신체제였다. 때문에 시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없었다.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통령을 직접 선출만 하면 국민의 뜻을 실현하는 대통령이 개혁의 선봉장이 돼 한국사회를 확실하게 뜯어고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한 민주주의를 30년간 경험한 지금 와서 돌아보건대, 그것은 민주주의를 아주 좁은 의미에서 이해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정부로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다.

민주주의는 영어로 데모크라시(democracy)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의 ‘데모크라티아’에서 온 말이다. 대부분 민주주의라고 하면 자유주의나 민족주의처럼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 등으로 이해했다.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이라든가 정치적 평등, 다수결의 원리를 통해 굉장한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어떤 이상적 체제의 이념 같은 것,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좋은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체제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즉 ‘데모크라티아’는 인민의 통치체제, 다수지배체제를 의미하는 한 가지 정부 형태를 말한다.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발전하면서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도달했다. 우리는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정당들이 선거운동도 하고 정부도 운영했던 경험을 갖게 됐다. 민주개혁파임을 자임하는 현 야당도 두 번이나 집권한 경험이 있다. 되돌아보면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이 실제로 한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정부를 잘 운영하기 위해선 정책대안과 비전, 좋은 의견 등을 수렴해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정부를 가져본 경험이 많지 않다.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이나 유사했다. 그동안 ‘박정희 패러다임’이 한국정치와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는데, 진보적 정권이든 보수적 정권이든 그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정부를 운영한 셈이다.

보수 정권이나 진보 정권이나 큰 차이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될 촛불집회.

박정희 패러다임은 성장제일주의를 국가 운영 목표로 삼고, 권위주의 또는 독재 방식으로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흔히 관치 경제라고 하는, 즉 국가가 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기업들에 사회·경제적 자원을 전폭적으로 쏟아붓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구축된 것이 국가권력과 재벌대기업 간 동맹이다. 관치경제란 사적 영역에서 시장의 힘, 즉 자율적 기업이 경제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목표를 집행하는 경제행정관료체제가 정책을 집행하고 경제를 운영해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이것이 박정희 패러다임의 첫째 요소다. 그리고 둘째 요소는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자 집단으로서 노동자·농민 같은 사회집단을 사회의 조직된 집단으로서나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데서 소외시키고 차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을 통해 조기 퇴진했다는 것은, 박정희 패러다임이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완벽히 실패했음을 드러낸다. 권위주의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경제성장과 그 운용방식은 민주주의의 규범과 가치에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물론 탄핵으로 귀결된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정부를 운영했던 제도적 측면이나 국정운영 방식, 리더십 스타일, 정책내용뿐 아니라 대통령과 최씨 간의 특별한 사적 관계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결과인 점도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복합적 요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를 운영하고 통치했던 제도와 방식, 그리고 대통령이 추구했던 이념과 가치 등 모든 요소를 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국가운영 모델을 새로운 시대에 맞춰 개혁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는 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 문제는 권력의 과도한 중앙집중화가 가져온 정부의 실패다. 정부가 잘못 돌아가서 그렇게 됐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를 움직이는 권력구조, 정부가 운영되는 방식, 기존의 제도 등 정부의 실패나 퇴행 또는 무질서(decay, disorder) 등을 포함하는 정부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정부의 계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실패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권력배분 구조가 너무 중앙과 정점으로 집중됐다는 점이다. 그 정점은 대통령이다. 국가가 다뤄야 할 문제들은 빠른 사회발전의 결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국가를 움직이는 권력은 대통령이라는 1인 통치자에게 초집중화됐다. 권력의 위계구조에서 하위 단위로 위임돼야 할 권력이 위임되지 않기 때문에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정점의 결정이나 행위에 의존하는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회의 모든 하위 구조를 정점에서 통제하는 구조다. 이는 집중화된 권력의 분산과 다원화, 팽창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강한 국가’의 대표적 사례가 한국이다. 강한 국가라는 말은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는 국가의 역할, 국가 행정의 권한과 권력이 얼마나 강하냐는 것이다. 정부가 정책과 법을 집행해나가고, 강력한 행정력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힘이 얼마나 강하고 효과적인가 하는 측면이다. 둘째는 국가의 범위가 얼마나 크냐는 것이다. 미국은 국가의 공권력이 집행되는 것은 강한 데 비해 범위는 좁다. 한국은 국가권력 자체도 강하고 국가의 범위도 넓다.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다원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국가의 사업인 듯 국가가 다 하는 식으로 국가가 팽창할 대로 팽창해 있다. 박근혜 정부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만들 때도 엄연한 사적기업들로부터 강압적으로 모금하지 않았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부 역시 국·공립 대학은 물론 사립대학까지 모두 관할하고, 명령하고 지휘하고, 통제한다. 정유라에게 특혜를 주고, 마사회를 길들이는 과정을 보자. 문체부 산하에 등록된 스포츠 단체들을 감사한다고 고지하면 자율적으로 조직됐다는 2600개가 넘는 결사체가 불과 며칠 사이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국가권력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구분 없이 사회 전체에 지배권을 확장해 행사된다.

이런 국가권력의 집중성을 완화, 축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방자치단체라고 하지 지방정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자치정부의 권력·권한·지위 등 모든 것이 약하다. 중앙정부와 대통령이 아니면 되는 게 없는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 대통령은 예산과 인사를 제 마음대로 못해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 헌재소장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이번 헌재의 탄핵인용 결정사유 중 ‘대통령이 법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했다.

그 다음에 볼 것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한 대통령제의 모델인 미국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미국 대통령은 제도적으로 한국처럼 강하지 않다. 일단 미국의 대통령은 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하원의 예산을 다루는 상임위가 주로 그 역할을 한다. 인사문제는, 그 비준이 상원 소관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모든 주요 공직자는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그 비준 과정이 무척 거칠어서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오바마 정부 출범 시기 수많은 고위 공직자가 비준을 못 받아 상당기간 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미국에서는 국회가 비준하지 않는 것이 전혀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일을 하지 못하게 “정파적 이익 때문에 국회가 발목 잡는다”고 비판하면서 느슨한 청문 절차조차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번에 탄핵 인용한 헌재 재판관 구성도 그렇다. 대통령·의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추천한다. 이렇게 되면 한 대통령 임기 안에 6명까지 지정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번에는 사이클이 잘돼서 헌재 재판관 구성에서 대통령이 이점을 갖기 어려웠다. 물론 이 말이 판사의 판결이 임명자에게 반드시 우호적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안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연방법원 판사를 추천하지만, 연방법원 판사들은 청문회에서 굉장히 힘들고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추천만 할 뿐, 맘대로 안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그런 것이 제도이기 때문에 애당초 누가 봐도 자격 있는 후보를 임명하게 된다. 미국은 또 종신제여서 각각 소신대로 판결하는 점도 있다.

한국의 행정부는 법안 발의권을 갖지만, 미국은 그런 게 없다. 집행부권력과 비교할 때 의회권력이 제도적으로 강하다. 그 위에 한국의 대통령은 정당 공천권까지 행사해 자신의 정당을 의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만들어 지휘할 수 있다. 공천권까지 가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당을 조종할 수 있다.

이번에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중요 결정 사안을 보자.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등 참으로 중대한 이슈라 할 만한 것이 여럿 있다. 이들 사안은 모두 숙고를 거듭해야 할 중대 문제다. 그런데 모두 밀실에서 누가 결정했는지도 모르게, 그리고 사려 깊지 못한 방향으로 결정했다. 사드배치만 해도 지난해 2월에는 국방부에서 안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반대로 바뀌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는데, 어느 순간에 돌아섰다. 애초에는 주무부서에서 이들 세 사안이 모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어떤 힘 때문인지, 곧 아무런 심의 없이 대통령에 의해 정반대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제도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런 중대 사안들은 국회의 비준 절차를 밟는 제도가 필요하다. 정책결정 과정을 좀 더 민주적 규범을 따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와대 개혁 역시 우선순위가 제일 높은 개혁 사안이다. 대통령 관저는 물리적으로 너무 크고, 권위주의적이고, 위압적이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청와대를 보통사람들이 사는 데로 옮기는 게 좋다고 본다. 대통령이라는 말을 쓰면, 듣는 사람도 그렇지만, 그 자신도 그 스스로 굉장하게, 사회 전체 위에서 군림하는 통치자인 듯 생각하기 쉽다. 자존망대의 권력관을 갖기 쉬울 것이다. 그 말은 분명 권위주의적 표현이다.

청와대,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스스로 법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부터 거부감을 갖기 쉽다. 이번 헌재의 탄핵 결정은 두 가지 사유에 근거했다. 즉, 대통령이라는 공적 권력을 남용해 사기업들로부터 사적 이익을 위해 거금을 모금한 실체적 행위와, 도무지 민주주의의 근본법으로서 헌법을 지키려는 의지와 행위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규범적 행위가 그것이다.

의회중심제 같은 권력 분할 제도 떠올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판결을 하루 앞둔 2017년 3월 9일 오후 청와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근무를 서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청와대를 개혁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며 물리적으로 너무 큰 건물이므로 보통사람들이 사는 데로 옮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동안 개헌과 관련해 대통령중심제를 주로 논의했다. 대안도 4년중임제가 많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 계기를 거치면서 대통령중심제 선호가 줄고, 의회중심제라든가 이원집정부제 같은 권력 분할 제도가 떠올랐다. 권력이 민주적으로 배분되고 공유될 수 있는 체제를 선호하는 여론의 변화는 이번 탄핵 과정이 만들어낸 좋은 효과다.

헌법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역할이 대표적이다. 헌법 86조, 89조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정책을 심의하도록 규정했다. 그래서 광범위한 정책 심의에 대통령이 참여하도록 적시했다. 이런 법칙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이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장관들이 대통령을 만날 수조차 없는 상황부터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는 헌법을 우습게 아는 면이 있다.

Ⅱ. 새로운 경제운영


▎2016년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한 비선실세 국정개입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압수품을 운반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전경련이 해체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사기업들의 공동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결사체가 재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권력과 재벌대기업 간 동맹관계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움직여왔다. 이것이 박정희 패러다임을 지속시켜왔던 정치적 기반이다. 공적 영역에서 국가권력, 사적 영역에서 재벌대기업에 의해 대표되는 경제권력이 합쳐질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은 한국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동맹관계는 1960∼70년대 국가 주도의 산업화 시기에 형성됐고, 그 이후 우리사회는 이 구조 위에 차곡차곡 구축됐다. 그리고 반 세기 정도의 긴 시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이 구조는 역사적 역할을 다하고 국가 능력, 경제성장, 사회발전 모든 측면에서 역기능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 되기 시작했다.

재벌대기업의 성장이 곧 한국사회 전체의 성장과 복리를 증진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양적 성장지표를 늘릴 수 있지만 고용확대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고용의 80% 이상은 중소기업에서 맡는다. 재벌대기업이 고용확대에 기여한 부분은 크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일국의 대기업이 국가의 경제발전에 곧바로 기여하는 비중도 줄어들었다. 국가권력과 재벌대기업의 동맹관계는 이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태는 이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사건만 봐도 전경련이 모금창구가 돼서 거의 강탈식으로 770억원을 거둬들였다. 이 과정을 너무나 투명하게 볼 수 있었다. 정경유착 고리의 단절이 중대 이슈로 제기됐다.

이제 재벌대기업은 세계적 수준이 됐다.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 혹은 정부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능력도 실력도 없다. 국가는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행위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정책방향만 제시해주면 된다. 시시콜콜 명령하고 지시하면 부작용만 낳는다. 유착관계가 분리돼야 한다.

그동안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한 전경련은 해체돼야 한다. 전경련을 해체한다는 건 재벌대기업이나 여타 기업의 결사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기업들 공동의 이익을 대표하고, 그들의 정책을 국가 경제정책에 투입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결사체가 재구성돼야 한다.

재벌을 해체하라는 건 비현실적이다. 순기능의 통로가 만들어져 자율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와 같이 대기업들이 선진적 거버넌스를 통해 스스로 국가경제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기업의 역할이 이 정도로 커지면 사익을 추구하기 어렵다. 10대 대기업의 매출액이 전체 국민총생산의 80%라면 사익 추구를 넘어 공적 역할을 하고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정책은 이들이 한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면서 경제·산업 엘리트로서 자율적이고 순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관치경제는 없어져야 한다. 대기업들로부터 자금을 갹출하는 채널이 폐기돼야 한다. 재벌대기업이 정부에 의존해 쉽게 돈 버는 습관도 변해야 한다. 이래야 한국사회에 제대로 된 법의 지배가 관철될 수 있다. 사적 영역에서 재벌대기업이 자율성을 가져야 작은 결사체들도 자율적이 된다. 강력한 집단이 국가권력의 명령을 받으면 다른 작은 집단은 어떻게 자율적일 수 있겠는가?

어떤 정당, 어떤 후보든 다음 정권에서는 이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습관에 젖어 있다. 권력을 가지면 뭐든지 다할 수 있을 거 같은 습관 말이다. 무엇을 손보겠다는 식의 행태는 적어도 민주적 국가 운영방식이 아니다.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존엄성을 가져야 하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갑을관계의 차별적 상호관계는 훨씬 더 평등하고 공정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구조는 법적으로 규제하되, 이해 당사자들이 시장경쟁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통해 체계적이고 사회적으로 조율된 규제가 필요하다, 국가가 할 일은 그것이다.

Ⅲ. 새로운 노사관계

노동문제는 한국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숙제다. 기업은 물론 정부, 사회 엘리트, 중산층 등 모든 분야 모든 사람이 ‘노동자’를 대체로 부정적으로 본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거나 과격하다는 등 나쁜 이미지로 인식한다. 한 발짝만 들어가보면 이는 사실 오해와 편견일 뿐이다. 굉장한 재산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이 노동자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셈이다. 노동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구조, 파업을 하면 친북·좌경·종북으로 매도하는 구조는 우리가 수십 년에 걸쳐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됐음에도 하나도 변화하지 않았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이를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기업 또는 경영자를 상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획득하려는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 방식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노동 있는 민주주의에 이르는 길은 기업경영과 노동운동 사이의 상호 교환의 문제라는 발상의 전환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적대시하거나 기업의 존속과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의 기업 발전에 동참하는 행위자라고 이해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자기의 이익을 획득하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기업에 협력적인 노동운동으로 질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허황된 게 아니다. 유럽의 자본주의 선진국가에서 다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실현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 노·사·정 타협/협력주의)’을 한국사회에서 민주적 노사관계의 대안적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원리는 이렇다. 자본과 노동 간의 이해갈등은 화해할 수 없다는 계급투쟁의 논리를 이론화한 마르크시즘의 전통이 한 흐름이다. 좌 대 우를 대립축으로 한 정치가 마르크스 이론이라고 한다면, 코포라티즘은 좌와 우 사이의 협상과 타협, 협력을 만들어내는 노사관계를 말한다. 그것은 마르크스 이론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노사관계 모델이다.

코포라티즘의 생성과 실천은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의 사회정책에 연원을 둔다. 독일에서 산업화가 처음 시작되고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할 당시 외교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국내의 노사관계 문제에 직면했다.

나는 비스마르크를 위대한 지도자로 본다. 물론 독일에서는 독재를 한 인물이니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보험제도를 체계화했고, 사회보장제도를 최초로 수립했다. 1870년대 당시 사회주의법으로 지금의 사민당을 억압하고 불법화를 했지만, 그 대신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 노년보험·실업보험·질병보험·산재보험을 만든 사람이 바로 비스마르크다. 이들 보험을 만들 때 중앙정부의 재정이 부족해 노동조합 기금들을 동원하고, 그들을 사회복지제도에 참여시켰다. 기금을 낸 만큼 노동조합들에 직접 관리를 맡겨 노조가 공동관리를 했다. 이러한 복지체제와 그 운영방식이 2차대전 이후 타협과 협력의 노사관계로 이어졌다.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체제 내로 들어와 그 가치와 병행돼야


▎1871년 독일 제국의 첫 총리 비스마르크. 프로이센 총리로 ‘철혈정책’을 펼쳐 독일을 통일했다. 최장집 교수는 19세기 비스마르크 시대에 만들어진 ‘노·사·정 합의주의 (코포라티즘)’를 다음 정부에서 도입해볼 것을 제안했다.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 정당의 활동을 억압했지만, 노동자를 억압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노사관계의 틀을 만들었다. 자본은 너무 억압하지 말고,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서로 공동의 이익으로 타협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조율하는 게 중앙정부와 국가를 구성하는 지방정부였다. 이 3자의 협력체제를 코포라티즘이라 한다.

1970년대 들어 독일의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었고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 큰 압박 중 하나로 부각되면서 이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이때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에서 다시 코포라티즘이 등장했다. 기업 대표와 노동자 대표들이 앉아 심사숙고했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요구 안 할 테니 자르지 말라’고 합의했는데, 이게 바로 코포라티즘이다.

이제는 노동운동의 방향과 성격을 바꿨으면 좋겠다. 투쟁 일변도의 옛날식 운동은 세상이 변하고 시대적 역할이 변했기 때문에 안 통한다.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체제 내로 들어와 그 가치와 병행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모든 정당의 노동관은 비슷하다. 귀족노조, 전문 시위꾼, 악성노조 등을 언급하면서 부정적으로만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노조가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노동운동 안에서 자정돼야 한다. 또 다른 노조를 만들어 정상적으로 활동하면 된다. 제조업을 부정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경제의 고용창출이 부진한 게 제조업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조업이 한계에 부닥쳐 한국경제가 힘들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이다. 우리나라 제조업 비중은 27.8%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국가 중에서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제가 있기도 하다. 몇몇 국가는 금융산업을 주로 추진한다. 미국과 영국 경제가 대표적인데, 이건 특수한 사정일 뿐이다. 세계제국이었고, 영어를 쓰며,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금융경제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다. 이런 장점이 있어 서비스업 방향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고학력 서비스 산업으로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없다.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의 희망은 제조업에 있다는 말이다.

노동문제는 ‘산업적 시민권’이라고 하는 권리를 규범으로 하고, 이에 기초한 접근이 필요하다. 유럽에서 실시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잘 조율된 시장경제 시스템 위에서 노동을 코포라티즘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함께 가야 한다. 그러면 불평 등의 차이가 줄어든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논의해야 한다. 다음 정부는 노동을 체제 내로 포섭하는 제도 개혁과 실천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대선 진행 과정은 너무 평범하다. 여러 가지 이슈의 중대성에 비해 그렇다. 이번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적 계기는 엄중하고 중요한 문제를 내장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포착해 방향을 제시하는 정당이나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논한 세 가지 주제를 놓고 풍성한 논의가 이어지고, 제도적·정책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면서 조금씩 진전하다 보면 지금까지의 방향과는 질적으로 다른 한국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신승민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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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패권, 새누리당 고립으로 죽이자

영남 패권주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지난 번 "호남이 세속화되어야 한다고?"라는 제목의 나의 '시민정치시평'(클릭)이 나가고 난 뒤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 등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방향의 반응을 접했다.

 

내 글을 두고 '감동적'이라고 하는 적극적인 호응도 있었지만, 나더러 심지어 '싸이코패스' 같다고 하는 극언도 들었다. 그런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 양태가 지금의 야권 분열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여 무척 씁쓸했다. 조금이나마 이 분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게 시평을 쓴 의도였는데, 외려 내 글이 그 분열을 증폭시키는 촉진제가 되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들었다. 

 

김욱과 윤종대의 내 글에 대한 반론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관련기사①: "선거 전엔 '호남 몰표'! 선거 후엔 '호남 없는 개혁'?", ☞관련기사 ②: "호남 타령 그만하고, 영남 너나 잘하세요!") 내 글에 대한 오독도 오독이지만, 조금은 격앙되어 보이는 감정적 반응도 깔린 듯해서 걱정스러웠다. 아무래도 내가 조금은 불분명하게 그리고 (본의는 아니었지만) 논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분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글을 쓴 탓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나로서는 두 분을 포함한 당사자분들을 '서로 이견이 있는 친구' 사이로 여기고 싶은데, 혹시라도 이 근본 의도를 해치는 방향으로 이 논쟁이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우선 전한다.

 

물론 논의의 주제 자체가 매우 민감하긴 하다. 현실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대립도 얽혀 있는 데다 흔히 '지역 (감정)'이라고 말해져 온 문제를 건드려서다. 많은 호남 사람들에겐 심지어 어떤 '한(恨)'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김욱이 이야기하는 '논리'의 차원에서만 논의를 전개하기는 어쩌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더 나은 논증(이 가진 설득)의 힘'을 믿으면서 두 분의 비판에 답해보려 한다. 혹시라도 논의가 서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방식이 되지 않도록, 두 분의 세세한 비판과 언급에 하나하나 답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내가 애초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해 보려 한다. 

 

먼저 내가 이른바 '영남 패권주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어야겠다. 나는 그것을 영남이라는 지역 기반 위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의 선동과 그 '우리'에 속하지 않는 '남', 특히 호남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와 배제를 통해 사회적-정치적 이득을 누리려는 세력들의 한국적 인종주의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바로 새누리당을 이끌고 지지하는 세력들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다. 

 

나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 못된 인종주의와 그것이 낳은 반인권적, 반민주적 현실을 극복해야만 그 인간적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나아가 영남 출신 지식인으로서 이 이데올로기의 극복에 대한 모종의 사명감마저 가지고 있음도 밝혀둔다.

 

이런 출발점이 공유된다면, 두 사람과 나의 근본적인 이견은 이 영남 패권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내가 부정하고 비판하고 싶은 것은, 김욱이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 운운하던 대목과 또 그 영남 패권주의를 또 다른 종류의 지역주의적 인식 틀에서 바라보면서 극복하자는 제안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장 왜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를 구분하지 않는가 또 왜 '서울'이라는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는가 하는 정희준 식의 반문도 가능하겠지만(☞관련 기사 ③: "'친노'도 '영남 패권'도 없다! 문제는 '서울'!"), 나로서는 그런 접근이 무엇보다도 영남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어떤 방법론의 차이를 무슨 절대적 진영 차이로 실체화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아예 방법론으로서 적절한지도 묻고 싶다.

 

내 생각에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국의 민주 세력이 서로 연대하여 새누리당을 고립시키는 것뿐이다. 영남의 진보 개혁 세력은 그 세력대로 내부에서 새누리당 1당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영남 바깥에서도 모든 민주 세력이 그에 호응하여 손을 맞잡아야 한다. 

 

영남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데서 근본적으로 김욱의 인식을 공유하는 듯한 홍세화도 최근의 <한겨레> 기고에서 이런 길을 지지하며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부화를 위해서 몸부림치는 병아리를 나오게 하기 위해 어미닭도 밖에서 함께 껍질을 깨야 하는 것이다. (☞관련 기사④ : 영남 패권주의와 민주주의의 퇴행)

 

그런데 김욱 등은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하자면서도 지금까지의 연대를 파기하고 호남만의 길을 가자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새누리당의 고립이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임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글에서 호남에 대한 배신감 운운했던 것은 바로 이런 반(反)영남 패권주의 전선으로부터 호남의 일부가 이탈하려는 데 대한 우려의 표현이었다. 

 

다른 차원의 걱정도 있다. 김욱이라면 '지역주의 양비론'이라고 비판할 나의 제안은 규범적 수준에서 보면 지역적 차이와 갈등을 넘어 민주적-시민적 연대를 지향하는 민주 공화국의 이상 위에 서 있다. 이 이상에 따르면, 패권적이든 저항적이든(홍세화는 두 지역주의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한다) 차원은 달라도 원칙적으로 모든 종류의 배타적 지역주의나 지역 감정은 잘못이다. 

 

어떤 것이든 (서로 다른 지역 출신) 시민들 사이에 불신과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고 민주 공화국이 터해야 할 시민들 사이의 깊은 상호 존중과 연대의 기반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호남의 세속화' 주장은 이런 이상의 추구(김욱이 '호남의 신성화'라고 이름 붙인 것은 바로 이것일 텐데)를 거부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도대체 어떤 규범적 기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일까?

 

어쩌면 김욱과 윤종대는 사실은 영남 패권주의에 대해 나와는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지역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정치적 판단과 행동의 잣대이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인식 위에서 호남 및 다른 지역들에 대해 절대적 지배를 행사하고 거기서 오는 이익을 누리려는 '단일 실체 영남 사람들'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으로 말이다. 

 

바로 그래서 5.18이라는 '군부 독재 세력'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정말이지 엉뚱하게도 '영남' 사람들의 패권적 행태로 치환해 버리고(이는, 사실관계도 의심스럽지만, 단적으로 '범주 오류'다), 또 그 군부 독재 세력과 그 정치적 후예인 새누리당에게 온갖 핍박을 받으며 반대해 온 사람들까지 영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자라고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일 게다. 

 

지역이라는 것은 민족과 마찬가지로 어떤 '비자의적 귀속 집단'의 한 단위로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아주 중요한 정체성의 한 기반일 수 있다. 내가 볼 때 영남 패권주의는 사실은 (서울에 기반을 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 또는 (내 용어로 말하자면) '과두 특권 독점 세력'이 영남 지역민의 그와 같은 성찰되지 않은 자연적 경향성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 해야 한다. 

 

어떤 정치적 구성 작용 없이는 그것은 아무런 실체가 될 수 없다. 김욱과 윤종대의 접근법은 혹시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렇게 인위적-정치적으로 구성된 실체를 어떻게든 깨트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항적 지역주의를 정치적으로 구성해서 그것에 맞서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것은 결국 사실은 허깨비 같은 그 괴물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일 텐데도 말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나는 이미 2004년 4.15 총선 이후 <한겨레>에 기고한 한 칼럼(☞관련 기사⑤ : 영남 지역주의의 본질과 상생의 정치)에서, 탄핵 역풍 속에서도 '박근혜 바람'과 더불어 당시의 한나라당이 재기하는 것을 보면서, 영남 지역주의를 이렇게 규정한 바 있다. 

 

"그 지역주의는, 박근혜 바람이 몰고 온 박정희의 생환에서 상징되듯,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천민적 근대화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동일시의 표현이다. '잘 살아 보세'말고는 다른 삶의 가치와 목적은 모르는, 그러나 어쨌든 바로 그런 선동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허위의식, 그들의 알량한 기득권에 대한 보호 본능, 말하자면 어떤 방어적 패권주의가 그 영남지역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 진짜 문제는 단순히 어떤 지역적 개념으로서의 '영남'이 아니다. 진짜 적은 "성장 지상주의와 사회 다윈주의, 천박한 물신숭배와 권력에 대한 속물적 맹목, 마초적 공동체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 중앙 집중주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와 모욕 등"(같은 칼럼)에 뿌리를 두고서 이 땅의 사회적 삶을 황폐화시키고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주도하고 정당화하는 과두 특권 독점 세력의 헤게모니다. 영남이든 호남이든 또는 그 어디든 정치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수준에서도 어떻게 이에 맞서는 민주적 대항 헤게모니를 세우고 관철할 것인지가 우리 모두의 진짜 과제여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목도되는 지역주의는, 그 기원이 무엇이든, 1987년에 수립된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어떤 한계가 악화시켜 온 정치적 병리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지역주의로 극복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병폐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치유할 수 있다"는 서양의 격언을 빌려 말하자면, 그 병리는 호도된 지역주의의 강화가 아니라 단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지역주의를 강화시키는 단순 다수결 소선거구제의 혁파 같은 제도적 수준의 개혁을 추구함은 물론이고, 일상적이고 문화적인 수준에서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더 굳건히 하고 확대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호남에서 복수의 정당이 경쟁하게 한다는 식의 표피적 차원보다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지역적 생활 세계가 더 많은 인권, 더 많은 관용과 상호 존중의 문화, 더 많은 참여, 더 많은 시민적 연대, 더 많은 민주적 경제 같은 가치로 충만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내가 지난 글에서 호남의 '민주주의 부족'이 문제라고 했을 때, 그것은 호남이 그와 같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결정적인 진지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 희망을 다르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호남의 지금까지의 투표 경향도 어떤 지역주의적 몰표가 아니라 바로 이런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호남의 몰표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령 더불어민주당의 제대로 된 진보성을 견인하거나 다른 진보 정당의 성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게끔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야권 분열 과정은 이런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지금 무조건적인 단결과 통합만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야권의 분화를 무턱대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주도 세력이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잘했다는 이야기는 더 더욱 아니다.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수 없기에, 내가 이 당에 대한 아주 신랄한 비판자이기도 하다는 점만 분명히 해 둔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야권 분열 과정에서 그 주체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은 고사하고 기초적인 민주적 가치에 대한 헌신이나 당적 규율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존중해야 할 많은 호남인들의 지역에 대한 선의의 애착을 몇몇 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심을 은폐하기 위해 이용하면서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분열은 말하자면 보수적 분열인데다, 호남을 넘어서 결과적으로 전국적인 수준에서 새누리당만 이롭게 할 것이다.

 

지금 와서 분열을 다시 봉합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분열이 이제라도 호남 수준에서든 나라 전체의 수준에서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호남 지역의 맹주 자리 따위가 아니라 과두 특권 독점 세력의 제대로 된 격퇴를 두고 경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당과 지지자들이 서로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와 혐오 때문에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진짜 적을 이롭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소한 호남 바깥 지역에서는 반새누리당 연대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선거 제도 개편을 매개로 삼아도 괜찮겠다. 양당의 지지자도 이런 연대의 필요와 당위를 명심하면서 그 방향으로 지도자들을 압박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를 끝까지 잃지 말았으면 한다. 이 논쟁이 그렇게 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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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월, 2016/02/1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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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을 그대로! 케이블카 계획을 철회하라" ⓒ함께사는길 이성수

산을 지키고 강을 복원하고 탈핵의 길로

2016 kfem 3대 중점사업

[caption id="attachment_155776" align="aligncenter" width="620"]영덕군 신규 핵발전소 부지 ⓒ함께사는길 이성수 영덕군 신규 핵발전소 부지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총선이 있는 해입니다. 총선 결과가 다음 대선의 향배를 가를 거란 전망도 무성합니다. 두 선거의 핵심의제가 여전히 ‘경제’인 것은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수출주도 경제체제인 한국경제가 활력을 잃었기 때문이고, 그보다 근본적으로 한국경제가 더 이상 과거의 성장세를 잃고 ‘저성장체제’로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는 서비스업 비중이나 에너지생산성의 수준으로 볼 때 다른 경제개발협력기구들과는 달리 산업구조적인 약점이 있어서 저성장체제 환경에서 불리합니다. 에너지다소비업종인 중화학기계, 전자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졌기 때문이고 수출 성과가 경제 실적으로 직결되는 구조인데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반격 사이에 끼이게 되자 수출로도 활로를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업과 자본이 활로로 잡은 것은 국내의 다른 경제 주체와 자원을 약탈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경제 주체란 노동자 서민(블루나 화이트를 막론한 피고용 노동자와 군소 개인사업자)들입니다. ‘아비를 해고해 아들을 고용하겠다.’는 노동개악을 무슨 경제 개혁이나 되는 듯이 주장하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놓는 일을 장애인 복지 정책으로 포장하는 것도 모자라, 보존해야 할 산악과 해안지대를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일을 경제 살리기로 분칠하는 게 바로 그런 정책들입니다. 이는 사회권력이 약한 내국자들과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자연을 식민지로 삼아 수탈하는 정책들입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자본과 기업들이 권력을 동원해 늘 하던 일이 또한 그런 일입니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시도를 기술과 자본운용 부문에서 찾기보다 노동비용을 깎고 자연 자원을 약탈적으로 이용하는 것에서 찾는 일은 신자유주의가 일반화된 기업국가, 한국에서는 너무나 흔해서 국민들도 지레 ‘그러려니!’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시민행동이 적거나 작지 않습니다. 2015년 11~12월이 민중대회가 연속해서 열려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시해 노동 의제, 케이블카를 비롯한 자연환경 의제들이 시민행동의 주요 슬로건이 됐습니다. 정권을 향한 ‘손팔매질’이 거세지지만 종편, 지상파, 수구 신문들을 묶은 보수 매체 연대와 공권력은 행동하는 시민들을 섬으로 만드는 전략을 밀어붙이고 무차별적인 검거와 벌금으로 자발적인 시민행동을 뒷단도리하면서 비민주적인 국가운영을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윤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리한 국가운영은 단기적으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양대 선거 이후 한국 사회를 기득권 집단의 영구 이권 추구 구조로 확실히 바꾸려는 기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참여 민주주의와 자연이 주권자의 한 축이 되는 생태 민주주의의 싹이 잘려나가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4월 13일 총선까지 전면적인 총선공간으로 진입해 들어갈 것입니다. 이미 정부여당이 풀어놓기 시작한 총선용 선심정책들은 자칫 전력 과소비를 부추길지도 모르는 ‘전통시장 전기세 보조’부터 지난해 가뭄을 틈탄 4대강사업의 후속인 지류 정비사업 등 ‘대형 토건사업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환경연합은 기업과 자본이 행정력을 동원해 국민경제와 서민생활은 물론 자연까지 사유화하려는 이런 시도에 대항하기 위해 2016년 3가지 중점사업을 선정했습니다. △신규 원전 백지화 △국토 난개발 저지 △4대강 복원을 선정하고 대의원총회에 상정하기로 했습니다.  

신규원전을 막아 핵 없는 사회로!

환경연합은 2015년의 활동력을 우선적으로 영덕과 삼척의 신규 원전을 막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2035년까지 현재 23퍼센트인 원전 비중(설비용량 기준)을 29퍼센트로 끌어올린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에 건설하는 중이거나, 계획중인 11기의 원전 말고도 7기가와트(GW) 용량의 원전을 신규로 추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에 따라 2029년까지 시행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7GW 가운데 3GW에 해당하는 원전 2기를 삼척이나 영덕에 건설하겠다고 밝히고 2018년 발전사업 허가가 나는 때에 맞춰 최종 부지를 확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원전 후보지는 이미 주민투표를 통해 85퍼센트와 91퍼센트라는 놀라운 비율로 원전 유치를 반대함으로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주민들의 이런 명백한 의사표시를 무시하고 2018년까지 일차로 두 지역을 ‘원전 유배지’로 고립시키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2018년 이후 이들 지역에서는 원전 유치 찬반을 두고 또 다시 지역이 분열될 상황이 재현될 게 뻔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5777" align="aligncenter" width="620"]영덕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개표 결과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결과를 받아든 주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영덕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개표 결과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결과를 받아든 주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영덕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이미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건설이 확정된 신고리7·8호기를 고리가 아닌 영덕으로 옮기겠다고 합니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신규 2기가 삼척보다 영덕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마당이라, 영덕에는 4기의 신규 원전이 2029년까지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더더욱 문제인 것은 실질적으로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은 핵재처리연구시설 등을 위시한 핵클러스터 또한 영덕을 중심으로 부지를 압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9년까지 적정 전력예비율을 22퍼센트로 유지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비율을 지키려면 2029년 전에 1, 2차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기존 원전 9기(7600MW)가 모두 계속운전, 즉 수명을 연장해야 합니다. 이 9기 가운데는 고리1호기 폐쇄 결정 이후 최대의 탈핵 현안인 ‘가장 위험하고 낡은 핵발전소’인 월성1호기도 포함돼 있습니다. 2035년까지 기존의 운영, 건설, 계획 중인 원전은 36GW에 달하고 여기에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의해 새로 추가한다는 7GW를 합하면 우리나라 원전설비와 총 기수는 현재의 2배 가량인 43GW에 39~41기에 이르게 되고 이에 따라 발전량도 35~40퍼센트로 높아지게 됩니다. 완전한 핵의 사슬에 묶이는 초고밀도 원전국가의 묵시록적 미래가 예상되는 것입니다. 환경연합은 △영덕·삼척 신규원전 백지화 운동 △20대 총선대응(탈핵후보선정 및 지지)운동 △체르노빌 사고 30주기 사업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 소송 △고리1호기 조기 폐쇄 캠페인을 벌여나감으로써 ‘원전국가를 향해 가는 한국사회의 방향을 탈핵 한국으로 전환하는 국민적인 탈핵행동을 조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탈핵운동사의 처음부터 오늘까지 환경연합의 활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016 환경연합 3대 중점사업의 첫 자리에 신규 원전 저지운동을 선정하고 탈핵 한국의 방패가 되겠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국토난개발 정책들, 고삐를 죄라!

2013년 5월 1일 이후 현재까지 박근혜정부는 7차에 걸친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1~2차 투자대책의 핵심은 ‘규제완화’였습니다. 산업시설의 입지 규제, 인허가 절차 간편화, 진입 규제·환경규제·산지규제 등을 완화 또는 철폐한다는 것입니다. 3차 투자대책은 친환경 관광호텔, 국제 테마파크, 도시 첨단산업단지 확충이 핵심이었고 또한 이를 위해 환경규제 완화, 환경영향평가제도 간소화가 뒤따랐습니다. 생활세계를 위협하는 화학물질 관리를 엄격하게 하기는커녕 역으로 기업 편의를 위해 관련법을 약화시켰고 이를 화학물질안전관리협의체라는 역할과 기능만 방대할 뿐 실행력이 약한 조직을 만들어 역할을 하게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5775" align="aligncenter" width="620"]"설악산을 그대로! 케이블카 계획을 철회하라" ⓒ함께사는길 이성수 "설악산을 그대로! 케이블카 계획을 철회하라"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4차 투자대책의 핵심은 ‘유망서비스 산업’ 육성이었습니다.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허용, 해외 진출 촉진, 해외 기관과의 합작 진출 허용 등 기업이 주인인 의료기관과 사학재단이 주인인 학교의 편에 선 ‘의료와 교육서비스 산업 육성책’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5차 투자대책은 ‘지역주도 발전전략’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개발제한지구 규제 합리화, 산지규제 완화, 도시 첨단산업단지 추가 지정, 투자선도지구 신설 등 기존의 환경보호 관련법에 저촉되는 대대적인 국토개발사업들에 힘을 실어주는 대책을 쏟아냈습니다. 6차 투자대책 ‘유망서비스 산업육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금융과 물류에 대한 투자대책을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1월 19일, 7차 투자대책이 나왔습니다. 7차 대책은 ‘관광인프라와 기업혁신’이란 슬로건 아래 이미 나온 규제 완화 정책을 관광 쪽에서 극단적으로 밀어부쳤습니다. 관광호텔과 케이블카를 국립공원에 세울 수 있도록 하고, 해외 자본이 주축이 된 카지노를 허가하고, 해안경관 개발을 핑계로 연안을 고도로 수탈하는 관광 인프라 개발용 대책이었습니다. 1~7차에 이르는 투자대책에 나타난 주요 환경 관련 규제 완화를 보면, 토지인허가 절차 간소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해제와 이용 제한의 무력화, 산지 개발행위 편의성 증대, 환경연향평가절차 간편화, 해안 경관지대 개발규제 해제 및 완화 등등 온통 국토환경을 해치는 것들입니다. 기본적으로 환경규제는 규제가 아니라 국토의 생태적 가치를 지키고 경관적 가치를 키우는 보호법입니다. 이를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로 이해하는 기업과 자본의 ‘해제와 완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투자대책들에서 나타난 환경 위해성 규제 완화 대책들입니다. 케이블카로 뒤덮이는 한반도(월간 함께사는길) 그 결과, OECD평균인 16퍼센트에도 못 미치고 전국토의 6.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개발 불가지역인 국립공원까지 케이블카를 세우고 관광호텔을 건설할 수 있게 하고, 해안경관을 관광용으로 개발하는 일을 지원하기 위해 해양관광진흥지구 지정을 도모하여 대통령령으로 ‘건축물과 시설의 용도와 종류, 규모를 제한하는 사항’을 완화하는 법률 개정을 시도하고, 30만 제곱미터 이하 규모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지자체에 부여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토 전역을 난개발 공사판으로 만드는 새로운 개발연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장기적인 국토관리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제 살리기 미명 아래 정치적인 이해타산을 앞세운 대책이라는 게 결정적인 문제점입니다. 환경연합은 △산악관광진흥법 및 해안관광진흥지구 지정 저지 △자연공원법 개정운동(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금지) △보호지역 지정 운동 △총선 난개발 계획 감시활동을 통해 자연을 약탈하려는 개발동맹의 시도를 막기 위한 활동을 연중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4대강 지류정비사업 막고 4대강 복원으로!

전 정권이 저지르고 현 정권이 한 삽 더 뜨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예산으로도 모자라 수자원공사에서 8조 원을 끌어와 완공한 4대강사업은 완공 이전부터 생태계 변화와 수질 오염이 시작됐습니다. 완공 이후 매년 강마다 녹조가 피어나고 물고기 떼죽음이 잇따르고 있으며, 4대강 곳곳에서 큰빗이끼벌레들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내걸었던 홍수 조절과 가뭄 대비용이라는 것이 완전히 허구이며 홍수와 가뭄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2015년 가뭄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수심을 6미터나 되도록 강바닥을 파내고 담아놓은 물들이 녹조에 섞어가지만, 그 한 방울의 물도 말라비틀어지는 바로 옆의 논에 댈 수 없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5774" align="aligncenter" width="620"]4대강사업 전 낙동강 ⓒ함께사는길 이성수 4대강사업 전 낙동강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4대강사업과 관련해 현 정부는 ‘이명박근혜정부’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4대강사업을 성공한 사업으로 강변하면서 환경연합이 제기한 4대강사업의 불법과 탈법을 심판하는 재판들에 대해 2015년 대법원을 통해 족족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 4대강사업 추진에 정부의 과오와 죄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4대강사업이 불러온 환경재앙이 일 년 내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현실 속에서도 말입니다. 이명박근혜정부는 한 술 더 떠 4대강사업이 본류만 공사를 해서 홍수 조절과 가뭄 대응력이 떨어진다며 4대강의 지류들에서도 정비사업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4대강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그 강들의 지류까지 망치겠다는 것입니다. 4대강 본류를 직강화하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16개 대형댐으로 호수로 만들어버린 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강의 지류에서도 벌어진다면 강은 다시 재기하지 못합니다. 뿌리가 썩어버린 나무가 살 수 없듯이 강들의 에코뱅크(수원)가 죽으면 강의 자연성 회복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환경연합은 2015년을 통해 △4대강 사업 상시모니터링 △4대강 찬동인명록 발행 △하굿둑 철거 운동 △좋은 수돗물 만들고 마시기 캠페인을 벌여나감으로써 4대강사업으로 인해 망가진 4대강의 자연성을 다시 복원할 토대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습니다. 4대강사업은 여전히 연간 1조 원이 넘는 국고가 투입되는 영원히 끝나지 않고 강을 해치는 사업입니다. 보를 헐어 강물이 자유로이 흐르는 날까지 4대강 복원운동이 계속돼야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일가가 전국적으로 소유한 토지의 시가총액이 23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보를 헐고 강의 옛 모습을 되살리는 데는 단지 2조 원이 필요할 뿐입니다. 국고는 바르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4대강사업 유지관리와 더 심각한 강 파괴인 4대강 지류정비사업에 국고를 낭비할 게 아니라 4대강 복원에 쓰여야 합니다.

글:함께사는길 박현철 편집주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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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1/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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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집회시위 특별보고관에 장소제한에 의한 집회의 자유 침해 의견서 제출

청와대, 국회 앞 등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과 교통혼잡 우려 이유로 주요도시 주요도로에서의 집회 금지 문제 지적

 

참여연대가 오늘(1월 26일)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s to freedom of peaceful assembly and of association)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보(Mr. Maina Kiai, 이하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보)에게 장소제한에 대한 집시법 규정의 현황과 사례를 지적하고 절대적 집회 금지구역폐지와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주요도시 주요도로 지정의 축소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평화적 집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와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1조에서 명시한 기본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온전하게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은 장소제한, 시간제한, 방법제한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헌법상 권리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1월 20일부터 29일까지 한국을 공식 방문하고 있는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보에게 한국의 집회시위의 자유가 집시법 상의‘장소제한’규정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참여연대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 근거로 ▼집시법 제11조1호(절대적 금지구역 설정)  ▼ 집시법 제12조 (주요도로 인근 집회 금지)를 꼽았다. 아래는 이들 조항에 근거한 집회의 자유 침해 사례들이다. 

 

 ① 2015년 4월 28일 법원과 인접한 대검찰청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을 개최한 박 모씨는 집시법11조의 1호를 위반했다며 유죄 선고받음.
 ② 2011년 1월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국회 앞에서 개최된 한미 FTA국회 비준 반대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집시법 제11조1호 등 위반으로 벌금 250만원 선고받음.
 ③ 2016년 1월 한국정부와 일본 아베총리의 위안부 관련 발표에 항의하며 일본 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매일 밤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는  대학생 8명을 경찰이 소환함 (이상 집시법제11조1호).

 ① 2013년 6월 참여연대는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반대 문화제를 열기 위해 집회 신고함. 관할인 종로경찰서는 교통 방해를 우려해 금지통고를 함.
 ② 2015년 12월 서울 대학로에서 농민단체 등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포를 맞고 위중한 백남기농민의 쾌유를 비는 집회를 개최하고자 하였으나 경찰은 주요도로이고 또 폭력이 우려된다며 집회를 불허함. (이상 집시법 제12조)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포함한다. 특히 집회를 어디서 개최하느냐는 집회의 성과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이다.  따라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어떤 장소에서'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집시법은 집회개최의 전면금지 장소를 두고 있거나, 주요도로라는 모호한 규정에 근거하여 집회를 제한한다.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정당화되지 않는 한 집회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유엔특보에게 한국의 이 같은 집회시위의 실상과 적어도 집회와 시위의 전면적 금지 구역 폐지 및 교통소통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는 주요도시 주요도로의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 참고 - 집시법 관련 조항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2.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3. 국무총리 공관. 다만, 행진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4.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 숙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가. 해당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를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다.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

제12조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① 관할경찰관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 서울시 주요도로 △세종대로-한강대로 △경인로-여의대로-마포대로-종로-왕산로-망우로 △하늘길-공항대로-성산로-율곡로-장충단로 등 16개 도로)

 

 

유엔 특보에게 전달하는 의견서(국문)

유엔 특보에게 전달하는 의견서(영문)

화, 2016/01/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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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과도한 신원정보 수집 경찰관에 대한 참여연대의 문책 요구에 문제없음 답변해 와 


서울경찰청이 어제(1/19) 집회 참가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한 경찰관의 행위가 특별히‘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는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소장 장유식 변호사)가 CBS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경찰폭력을 증언한 집회참가자를 ‘간첩 등 보안사범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경찰청 보안대 소속 경찰이 제작진에 신원정보를 요구한 것이 직권남용이므로 엄중문책할 것을 요구한 민원의 회신으로  답변한 내용이다. 하지만, 경찰권은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인 바, 단순히 집회에 참석했다는 사유만으로 신원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정당한 업무범위로 보기 어렵다. 경찰의 이 같은 태도는 지극히 수사편의적이고 반헌법적인 발상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11월 19일 강신명 경찰청장에 ▷신원정보 담당 경찰관 문책과 그 책임자인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의 책임 추궁, ▷집회참가자 정보수집 경위 조사 및 결과 공개, ▷집회참가자들에 대한 경찰의 전방위적인 정보수집 중단 등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은, 당시 해당경찰관은 보안수사 목적이 아니라 11.14 민중총궐기대회 관련 수사본부에 편성되어 수사본부일원으로 근무하면서 참석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자 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며 묵살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조②의“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남용되어서는 아니 된다.”에 따르더라도 여전히 해당 경찰관의 행위는 직권범위를 벗어난다. 집회에 단순히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 신원조회 대상이 된다면 시민들은 집회참석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은 전국에 수사본부를 차리고 11.14 집회 참가자 1531명을 대상으로 수사 중이라며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중에는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는데도 소환장이 왔다는 시민들도 있다. 

 

다중에 대한 위력의 행사인 집회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해야 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수사대상이 될 것을 각오하지 않고는 헌법적 권리인 집회의 자유마저 행사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적법한 직무범위를 벗어난 경찰의 집회참가자들에 대한 신원정보 수집은 즉각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수, 2016/01/2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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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여성연합은 2015년도 함께 해주신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으로 열심히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 여성연합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시민들의 삶의 조건이 더욱 열악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도 
함께하는 이들의 연대를 통해 꿋꿋이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여전히 암담한 현실이지만 희망으로 새해를 준비하려 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함께하는 많은 이들의 소망의 힘으로 
다가오는 2016년도 부지런히 걸어가겠습니다. 


올 한 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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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1/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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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한국인들, 경제발전 때문에 민주주의 희생시키지 않을 것
– 한국이 그동안 일궈온 정치ㆍ경제적 발전 박 정권 하에서 도전받아
– 신 노동개혁안과 국정화 교과서 정책, 국민들의 대규모 저항 야기해
– 청년실업률 최고치 기록, 젊은층의 기회 박탈로 인한 불안과 의욕상실, 신조어 ’헬조선’ 이 대변
– 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비정규직 비율, 장기고용 전망 어두워
– 노동 개혁안과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반대는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의지를 암시

동아시아포럼은 30일 한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박근혜 정권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암울하지만 한국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기사는 한국의 빈부 격차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친기업적 노동개정안과 시위 과잉진압,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반민주적인 정책들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으며 대규모 저항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또한 박 정부의 역사교과서 통제의도는 단지 자유와 다양성을 침해하는 사례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하며 ‘낮과 밤이 다르듯 한국을 북한의 꼭두각시 정권과 다르게 만든 민주주의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키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뉴욕타임스의 논평을 인용, 현 정부의 반노동자적이고 비민주적인 행보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동아시아포럼은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젊은 층에서 훨씬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자세히 짚으면서 암울한 한국의 현실에 대한 보도를 이어갔다. 신조어 ‘헬조선’은 취업과 삶에 있어 성공의 기회조차 없는 젊은 세대들의 의욕상실을 반영하며 이들의 불행과 불안을 함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도한 사교육비는 교육을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젊은이들에게서 수많은 기회를 박탈했으며, 심지어 대학교육을 받았다 해도 2000년대 들어서 가장 높은 청년실업률 수치를 보이는 것은 일자리 찾기가 예전보다 더욱더 어려운 상황임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장기고용에 대한 전망 또한 어둡다고 말하고 2011년과 2014년 사이에 취업한 사람들의 3분의 1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었으며 이는 OECD 회원국 평균보다도 훨씬 높은 비율로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이처럼 저성장과 악화되는 계층 간 간극 및 취업 전쟁으로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동아시아포럼은 그러나 한국인들이 이같은 경제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나 정부가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대감은 노동 개혁안과 국정교과서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에서 알 수 있으며 과거처럼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평가함으로써 희망적인 여운을 남겼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동아시아포럼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Eliz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Jh1akw

토, 2016/01/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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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100미터내 집회전면금지 위헌심판신청 


대법원 옆 건물인 대검찰청 앞에서 집회열었다고 체포당한 박성수 씨
외국 대사관 앞 집회 전면 금지조항 개정처럼 집시법 개정되어야 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 교수, 고려대)는 오늘(12/30) 법원 앞 100미터 내에서는 그 어떤 집회도 금지한 현행 집시법 제11조 1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참여연대는 국회 앞 100미터 내에서의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집시법 11조 1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2013년에 9월에 제출한 바 있는데, 집회구역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개선하기 위해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하게 되었다.

 

참여연대가 법률 지원하는 이 사건의 신청인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제작, 배포하여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은 박성수 씨다. 박 씨는 지난 4월 28일 박 대통령 비판 전단지 제작 및 배포를 단속하던 경찰을 지휘하던 검찰을 비판하기 위해 시민 10여 명과 함께 대검찰청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다 체포되었다.


 그런데 경찰은 박 씨를 명예훼손 혐의만으로 체포한 것이 아니었다. 박 씨가 기자회견을 개최한 장소인 대검찰청 정문 앞은 서울 서초구의 대법원 담장 바로 옆인데, 경찰은 법원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집시법 제11조를 위반했다는 혐의도 적용해 박 씨를 체포하였다. 그 결과 박 씨는 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혐의와 함께 금지된 장소에서의 집회개최 혐의로도 기소되어, 지난 12월 22일에 유죄를 선고 받았다.

 

법원의 경우, 다른 공공기관과는 달리 재판의 독립성, 공정성 보장을 위해 일정정도 집회의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박 씨의 사례는 법원에 항의하거나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박 씨는 검찰의 행태를 규탄하는 행사를 개최한 것이었고,  대검찰청이 법원과 담장을 경계로 붙어있어‘우연히’지리적으로 법원 경계지점 100미터 이내에 있었던 것 뿐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검찰청을 비롯해 각 지역의 검찰청들은 모두 법원건물 바로 옆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이 집시법 11조 1호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검찰청 앞에서의 집회는 대상, 규모 등에 상관없이 모두 금지당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박 씨는 바로 그 불합리한 조항의 피해자이다.


 미국과 독일 등 다른 나라의 경우도 법원 건물 안이나 법원 인근의 특정 장소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법작용을 방해할 목적을 가진 집회나 시위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제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처럼 집회의 규모에 상관없이 법원 인근 특정장소가 아닌 100미터 이내의 모든 공간에 대해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법원 100미터 이내 집회 전면금지조항뿐만 아니라 국회 앞 100미터 집회도 전면금지하는 현행 집시법 11조는, 외국 대사관 등 외교 기관 인접 100미터 이내에서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던 집시법 11조 4호를 2003년에 헌재가 위헌으로 선언하여 결국 2004년 1월에 개정된 것과도 비교된다.


 200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한 시민단체가 일본대사관과 미국대사관 인근의 세종로에서 미군의 양민학살 진상규명 관련 집회 신고를 불허한 근거가 된 “외교기관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를 할 수 없다”는 집시법 11조4호 조항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그 결과 외교 기관 앞에서 해당 외교 기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거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거나, 외교 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에는 외교 기관 100미터 이내 금지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집시법은 개정되었다.
  
법원에의 원활한 출입, 업무의 보장, 법관의 안전 그리고 이를 통한 재판의 공정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원 인근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제한이 어느 정도 인정되더라도 예외 없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다. 따라서 법원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소규모 평화적 집회, 법원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우연히 장소가 법원 인근인 집회 및 법원이 근무하지 않는 시기의 집회 등은 허용하여야 한다. 참여연대는 2003년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렸던 것과 같이 재판부의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한다.

 

 

※ 참고 


1. 현행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개정 2004.1)
1.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2.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3. 국무총리 공관. 다만, 행진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4.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 숙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가. 해당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를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다.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


2. 2003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전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1조 (옥외집회 및 시위의 금지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호에 규정된 청사 또는 저댁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백미터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국회의사당, 각급법원, 헌법재판소,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2. 대통령관저, 국회의장공관, 대법원장공관, 헌법재판소장공관 
3. 국무총리공관,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사절의 숙소. 다만, 행진의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수, 2015/12/3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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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07]

 

87년 체제,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동의 원천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 ①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작년에 이어 올해의 4.29 재·보선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참패했다. 여기저기서 숱한 분석과 조언이 넘쳐난다. 야권의 분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에서부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비판이나 향후 행보에 대한 다양한 훈수까지, 살짝 어지럽기까지 하다. 모두 귀담아들을 구석이 있기는 해 보인다. 그러나 어딘지 식상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특히 재·보선 이후 깊은 내홍에 빠진 새정치연합의 혁신이나 문재인 대표의 변신에 대한 주문은 너무도 적절해 보이지만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들린다.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볼 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교훈은 새정치연합은 물론 야권 전체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데 있다. 정치 자영업자들의 연합체 같은 새정치연합이 대안이 될 수 없음도 명백하지만, 진보와 보수가 대결하는 유럽적 정치 지형을 만들겠다던 국민모임이나 정의당 등의 오래된 '민주노동당 모델 2'도 다시 좌절했다고 보아야 하고, 천정배 의원의 '호남 정치 복원' 구상은 기껏해야 '새정치연합의 호남화 프로젝트' 이상이 되기 힘들 것 같다. 어디 하나 미더운 데가 없다.

 

상황이 무척 엄중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조건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데다 분열되기까지 한 야권이 계속 한국 정치와 사회의 진보적 미래에 대한 아무런 의미 있는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만 한다고 해 보라.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가 보수가 장기 집권하는 일본을 닮는 상황을 걱정하곤 한다. 내가 볼 땐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일천한 경험 등 여러 면에서 일본보다는 21세기 들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한 러시아, 헝가리, 터키 같은 나라와 더 가깝다고 해야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보수파 집권 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등의 온갖 악법으로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심지어 러시아의 푸틴과 터키의 에르도얀은 권좌에서 물러나고도 실권을 행사하다가 권좌에 복귀했거나 복귀할 예정이고, 헝가리의 오르반은 아예 개헌을 통해 자신과 보수파의 영구 집권을 위한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미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듯한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루빨리 야권의 올바른 정립과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문재인 대표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찾는 따위의 것에 있지 않다. 야권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개별 정당 차원에서 또 연합 정치의 수준에서, 뚜렷한 정치적 지향과 미래 전망, 신뢰할 수 있는 정책들, 관용과 포용의 정치 문화, 국가 운용 능력 등을 갖춘 정치적 대안을 형성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상투적인 혁신을 넘어,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위한 분골쇄신이 절실하다. 


내 생각에 그 출발점은 우리의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야권의 지리멸렬함을 그 근본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87년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87년 정치 체제는 더 이상 그저 어쩔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의 주어진 조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칙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결손 민주주의' 체제로서, 이제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심화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장애의 하나, 아니 심지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반동의 원천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 체제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주주의의 이 87년 체제는 오랜 민주화 운동의 성취를 부당하게 전취한 구민주당 세력과 구체제의 수구 세력이 밀실에서 이룬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제6공화국의 헌정 질서가 만들어질 때 정작 가장 앞장서 군부 독재를 종식시켰던 시민적 주체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더랬다. 비록 87년의 민주화가 이룬 역사적 진보의 의미 전부를 폄훼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 체제는 시민들의 자기-지배를 위한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시민적 권력'의 체제로서는 처음부터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의 제도와 통치 구조부터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리에 여러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승자독식의 단순 다수결 소선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선거 제도는 결코 공정한 민주적 대의 제도가 아니다. 이 제도에서는 예컨대 전국적으로 40% 정도의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 또 구조적으로 양당제를 강요하고 다양한 정치 이념의 실험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것을 매우 힘들게 한다.

 

또 이 체제에서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의 견제를 우회하여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심지어 사법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권력의 구조적 비대함은 우리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위임 민주주의(delegate democracy)'로 만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되는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전락시켰다. 

 

나아가 사법부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보듯, 87년 체제의 가장 중요한 민주적 장치의 하나로서 시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만든 헌법재판소는 외려 그 기본권 침해의 첨병이 되는 아이러니도 드러났다. 선출되지 않은 헌법재판관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의 자격을 간단히 박탈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와 함께 사법부 전반의 행정 권력 종속성도 자주 나타난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체제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적 요구를 담아내고 시민적 권력을 제도화 내어야 할 정치적 주체도 제대로 성숙시켜내지 못했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생활세계의 기초적인 시민적-민주주의적 조직들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배경이 있기는 하지만, 이 체제의 근본적인 정치적 틀은 무엇보다도 민주적 시민 사회의 정치적 기구가 될 수 있는 정당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지금까지 단지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민적 권력의 현실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새정치연합(구민주당)의 거의 범죄적 수준의 무능함은 일차적으로 87년 체제가 배태한 지역주의적 기득권 안주에서 비롯한다고 해야 한다. 나아가 이는 다른 진보 정당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막은 결정적 배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구조적 제약 말고도 우리 정치적 주체들의 이념적, 문화적 미성숙에도 상당한 탓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민주 진보 세력은 '역사적 공산주의' 이후 시대의 냉전적 분단 상황에서 유교적-근대적 특징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 걸맞은 제대로 된 민주적 진보 이념과 노선을 가공해 내는 데 완전하게 실패했다. 

 

특히 우리 정치적 주체들은 그동안 분단과 그에 따른 이른바 '48년 체제'의 냉전적 틀을 합리적으로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경도되거나(이른바 NL) 반대로 분단 문제 자체를 아예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이른바 PD) 거울상 오류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의 87년 체제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앙상한 민주주의'이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민주 세력은 딱 10년만, 그것도 거의 기적적으로 우연적인 상황에서 집권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짧은 집권 기간 동안에도 늘 정치적 불안정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숱한 차원에서 정치적 무능을 드러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층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괄하지 못하는 정당 체제 속에서 시민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기만 했다. 

 

결국 87년 체제는, 정의의 실현과 비-지배의 제도화라는 민주주의가 감당해야 할 본연의 과업을 제대로 수행해 내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 수구보수 세력의 과두 특권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주기까지 하고 말았다. 구조의 측면에서나 주체적 조건에서 우리가 이 체제의 틀 안에 머물면서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내 생각엔 이제 단지 이를 전체로서 극복하기 위한 담대한 정치적 기획을 실천함으로써만 우리 민주 진보 세력과 민주주의에 희망이 있을 것처럼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5/05/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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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쾌유를 빌고 국가폭력 추방을 위한 송년문화제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께서 의식을 잃은 지 40일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국민들께서 함께 마음아파하고 분노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국가는 이들을 잊었지만 그리고 잊고 싶겠지만,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았고 또 잊을 수 없습니다.

책임져야 할 자 책임지는 그날까지 함께 해 주시기를 다시한번 부탁드리며, 그동안 연대해 주신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제목  백남기 농민 쾌유를 빌고 국가폭력 추방을 위한 송년문화제

일시  20015년 12월 29일(화) 오후 5시 30분

장소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주최  백남기농민쾌유 범대위

 

 

목, 2015/12/2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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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일의 소망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머물렀던 24일 동안 조계사 주변은 거친 언행과 적대적 감정들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편을 가르고, 증오하고, 마침내 우리 편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거친 얼굴을 보는 일은 한없이 참담하다.

그리고 지금, 긍휼과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성탄일을 앞두고 마음 한 복판이 슬프고 아프다. 지난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농민 백남기씨 때문이다. 그는 뇌신경 중 극히 일부가 외부자극에 매우 미세한 반응을 보이기는 하나 의식불명상태로 30일을 넘어섰고 약물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한 생명을 사경에 이르게 한 진압 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도의적 사과도 없었다. 공정한 진상조사도 하지 않고 있으며 재발 방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백남기씨에 대한 물대포 직사가 과잉진압이냐,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냐 하는 시비와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숨을 고르고 관심을 옮겨 보자. 모든 행위에는 그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수많은 대중의 지속적인 외침이라면 그럴만한 절박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눈과 귀를 열어 사연을 보고 들어 주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예의이다.

 

그들의 사연과 요구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월 200만원 이하로 사는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 고용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것, 쉬운 해고로 근로자 생계를 불안하게 하는 법을 만들지 말자는 것, 그리고 쌀 한 가마니 값이 13만원으로 폭락한 농민의 현실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외침과 요구를 어찌 불순하고 편향된 이념이라고 덧칠할 수 있겠는가.

 

시위에 참가한 백남기씨의 요구도 이렇게 단순하고 절실했을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농민으로 헌신했다. 특히 우리밀을 찾아내 자칫 끊길 위기에 처한 토종 농사를 복원했다. 그렇게 정직하게 몸으로 일하며 살아온 그가 함께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과 함께 쌀값에 분노하며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일이다.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에서 쌀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따뜻한 밥이 되네.” 그러나 쌀 한 가마니 값이 도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십여 잔 값이라고 생각하면 농민의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진다. 쌀은 ‘절망의 밥’이 된다. 그래서 백남기씨와 농민들은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보자고 외친 것이다. 맹자가 말하지 않았나. 항산(恒産)이 되어야 항심(恒心)이 된다고.

 

쌓이고 막히고 눌리면 터지는 것이 생명의 순리다. 때문에 어떤 외침이 있으면 멈추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들어봐야 한다. 그리고 서로가 함께 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 경청대화가 필요한 시절이다.

 

절명의 기로에 선 백남기씨에게 당국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공권력의 권위는 법조문과 강경 대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은 시민이 국가에 ‘시민을 보호해달라고 위임한 권력’입니다.‘정권을 보호해달라고 위임한’ 것이 아니지요.” 참여연대 페이스북에 남긴 어느 시민의 댓글이다. 폭력 시위에는 결단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는 무리한 대응도 반대한다. 성탄일을 맞아 백남기씨 가족과 노동자와 경찰들에게 고린도 전서의 한 구절을 선물하고 싶다. “그러한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즉 그 중에 사랑이 으뜸이라.” 오직 사랑의 힘만이 사람 곁에 사람이 있다는 믿음을 세우고, 사랑의 힘이 사람과 사람이 함께 가는 소망의 불씨를 지필 것이기에.

 

이번 성탄일이 백남기씨의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성탄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인 대흥사 일지암 주지ㆍ참여연대 공동대표

 

*  참여연대와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 쾌유 범대위는 성탄절을 맞아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백남기 농민과 슬픔에 젖어 있을 가족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폭력을 행사한 경찰과 당국이 진심어린 사과와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기 위해 세 편의 칼럼을 언론사에 기고하였습니다. 이 글은 그 중 12월 24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경향신문 [기고] 이 지독한 폭력

한겨레 [왜냐면] 성탄절 전에 사과하라 

목, 2015/12/2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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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마구잡이 공안탄압은 민중과의 전쟁’ 선포민주주의는 다시 궐기한다

살인진압 사죄하라국가폭력 책임자 강신명을 파면하라! -

 

 

박근혜 정권이 민주노총 초토화 작전에 나섰다전쟁을 벌이는 듯 상대를 가리지 않고 대량살상 무기를 퍼붓고 있다이를 정부는 법치라 강변하지만 우리는 공안탄압이라 부른다공안탄압이란 국가공공질서를 핑계로 정치탄압을 벌이고 정부비판을 억압할 의도로 공권력을 남용 하는 정치다반면 법치란 국가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민주적 법률에 따라 권력행위를 규제하는 정치방식이다대통령 박근혜는 감히 법치를 운운치 말라당신은 불통정치와 공안탄압으로 연명하는 독재의 아류일 뿐이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대한 공안탄압은 가장 극명한 사례다. 10만이 넘는 민중이 시위에 나섰다민주적 정치라면 생존대책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최소한 대답이라도 하는 게 정치다그러나 대통령 박근혜는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를 직사했으며,체포와 구속소환장 남발로 보복했다시위 한 번으로 무려 1,531명이 수사대상에 올랐다그 중 585명의 사법처리가 진행 중이고나머지 946명은 인적사항을 파악 중이다. 1990년 노태우 군사정권이 권력위기를 모면할 의도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경찰력에 방범예비군까지 동원해 1년간 1,923명을 검거한 것에 비한다면단 하루 시위에 1,531명을 조사하는 것은민중과의 전쟁이라 할만하다.

 

유례없는 정치탄압은 민중노총에 집중됐다대통령 관심법안인 노동개악에 반대한다는 죄목(?)도 추가됐다. 12월 23일 현재 민주노총의 구속수배소환 대상자는 274명이다독재의 도구였던 소요죄를 뒤집어씌운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해 8명이 구속됐으며추가로 5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또한 5명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고소환장은 242명에게 발부됐다이들 민주노총 탄압 대상자 274명 중에는 구속영장 기각이 6명이고 무혐의 처분이 5명인데가장 황당한 경우는 당일 시위에 참석도 않은 조합원을 조사하고 소환장까지 발부한 경우다전교조 조합원1명은 시위 당일 해외출장 중이었음에도 경찰은 학교까지 찾아와 채증사진이 있다며 겁박했고,시위 불참은 물론 이미 퇴직한 조합원에게도 소환장을 발부했다경찰은 정확한 사실과 증거를 우선 파악하기 보단마구 혐의를 만들어 잡아넣을 궁리에 혈안이었다.

 

공안당국의 과잉수사와 인권침해는 앞선 사례뿐이 아니다소환에 응한다고 했음에도 집으로 들이닥친 압수수색으로 아이들과 가족들이 충격과 공포를 겪었으며개인정보보호법을 무시하고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11월 14일 상경인원 및 CCTV자료조합원 명부를 요구하기도 했다프레스센터 기자회견 사건은 대표적인 과잉수사와 혐의창조 사례다교통방해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인영장이 발부된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하고이에 조합원이 동행한 것을 트집 잡았다경찰은 조사도 없이 긴급체포영장을 집행하고 구속시켰다이에 앞서 경찰은 한상균 위원장에 대해 검거작전을 펼치면 충돌이 예상된다며 많은 인원이 모이기에 특수한 기법을 활용해서라도 검거 노력을 하겠지만큰 충돌 우려나 무리가 있을 때는 검거작전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바 있다그럼에도 당일 경찰은 무리하게 검거를 시도해 충돌을 유발시켰다그 후 경찰은 검거에 실패하자 보복에 나섰다경찰을 막아섰다는 이유만으로 3명을 구속했고, 3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이 건으로 무려 20여 명이 현재 소환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보복을 넘어 정치적 의도로 기획탄압을 하고 있다시위의 자유 원천봉쇄와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에 대한 비난을 역전시킬 의도로 민중충궐기를 폭력시위로 매도했다정부는 애초 어떤 시위도 보장할 생각이 없었다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지난 11월 9일 대화를 제의했지만정부는 거절하겠다는 대답조차 없었다또한 민주노총은 경찰이 인도행진조차 금지시키거나 막지 않는다면 평화적으로 행진할 것임을 밝혔다그러나 정부는 귀를 막고 폭력 진압을 앞세웠다시위 하루 전 정부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정책강행과 시위엄단 방침을 발표했다. 14일 경찰은 계엄령 전 단계인 갑호비상령을 발동했으며 위헌 차벽을 세우고 살인 물대포를 투입했다.결국 14일 일부 충돌사태가 발생했다그 책임은 헌법적 자유를 억압한 정부에 있다민주노총은 이미 평화행진을 무력으로 막고 충돌을 야기한다면그 책임은 경찰에 있음을 밝혔으며,대화와 협의를 무시한 것은 경찰이다.

 

정부는 민주적 비판세력을 불법집단으로 몰아 궤멸시킬 의도로 민주노총 외에도 전농전여농,전빈련빈해련 등 37개 단체 대표자들에게 소환장을 남발했다. 3차 소요문화제를 꼬투리 잡아 사법처리를 시도하고 있다. 11월 14일 벌어진 충돌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권의 충돌이었다. 14일 이후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 폭력은 경찰버스 파손이 아니라 백남기 농민에게 직사된 국가폭력이었다왜 살인진압 책임자를 조사하지 않는가왜 강신명 경찰청장을 파면하지 않는가?법치가 아니라 무도한 통치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민주노총은 공안탄압 대응기구를 구성해 다각적인 운동으로 맞설 것이다공안탄압을 부추긴 극우언론의 왜곡보도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14일 이뤄진 민주주의의 궐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충돌은 다시 시작이다.

 

 

2015. 12. 24.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11월 14일 민중총궐기관련 민주노총 공안탄압 현황

 

- 12월 23일 현재 총 274

구속 : 8명 [한상균 위원장플랜트건설노조 2건설노조 1공무원노조 1공공운수노조1]

구속영장 청구 : 5명 [민주노총 1플랜트건설노조 2공공운수노조 1금속노조 1]

구속영장 기각 : 6명 [플랜트건설노조 1공공운수노조 2금속노조 2민주노총 강원본부 1]

무혐의 : 5명 [공공운수노조 2화학섬유연맹 3]

미참석 : 3명 [전교조 3]

체포영장 발부 : 5명 [민주노총 3금속노조 2]

소환 : 242[민주노총 13건설노조 57공공운수노조 78금속노조 12민주일반연맹 10보건의료노조 9사무금융연맹 3전교조 9공무원노조 2화학섬유연맹 21서비스연맹 1민주노총 경남본부 1대구 9대전 3부산 1서울 9제주 1,충북 3]

 

 

※ 프레스센터 기자회견 탄압 피해

구속 금속노조 한국GM 1쌍용차지부 1

체포영장 발부 민주노총 1한국GM 1쌍용차지부 1

구속영장 청구 민주노총 1쌍용차지부 1

소환 : 20여 명

 

 

※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탄압 현황(파악 중)

- 14일 당일 연행자 : 50(43, 7)

- 11/17 총 8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진행 후 6명 구속영장 발부됨이중 3명은 민주노총 조합원나머지 3명은 일반 시민 참가자.

민중총궐기투쟁본부 51개 단체 중 민주노총전농전여농전빈련빈해련 등 37개 단체 대표자에 대한 소환장 발부.(특히 성명불상으로 소환자를 특정하지 않은 단체지목 소환장도 여러 건 있음)

- 3차 민중총궐기 소요문화제를 미신고집회로 규정전농 대표자에게 소환장 발부.

민중총궐기 참여 단체 및 참여자에 대한 소환도 계속 진행 중현재 약 100여명이 소환장을 받은 것으로 취합됨.(페이스북 뒤져 소환하기도 함)

목, 2015/12/2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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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 소요죄 적용정권의 독재성 밝힌 자충수 될 것

 

 

경찰이 한상균 위원장에게 기어이 소요죄까지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듣기에도 낮선 소요죄이를 적용한 것은 반노동 반민주 정권에 맞서 노동운동과 민중진영을 이끌어 온 한상균 위원장에게 최대한 많은 죄목을 뒤집어씌워 파멸시키려는 잔혹한 기도일 뿐만 아니라민주노총 전체를 집단적 불법·폭력집단으로 매도해합법적 존재기반을 박탈하려는 의도라 판단된다.그러나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경찰의 폭력시위 혐의는 악의적으로 과장됐다공권력의 살인진압을 고려하지 않아 형평성도 상실했다민중총궐기의 민주적 저항의 의미를 짓밟는 공안탄압일 뿐이다이러한 소요죄는 물론이고 다른 죄목의 과도함과 부당성 또한 결국 법정에서 밝혀지리라 확신한다.

 

공안당국이 소요죄를 적용한 것은 1986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섰던 5·3 인천사태 이후 29년 만이다이로써 박근혜 정권은 스스로 과거 독재정권에 못지않은 독재정권임을 역설하고 있다민주주의와 역사의 진보에 의해 인천사태는 결국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됐다소요죄라는 죄목 자체가 부당했다는 것이다한상균 위원장에 덮어씌운 소요죄 역시 다르지 않다결국 불의한 정권의 안위를 위해 공안탄압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한 대표적 사례로 판명날 것이다이처럼 거대한 국가폭력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당장 법정에서 그 과도함이 가려질 것이며아니라도 언제든 역사정의에 따라 정권의 불의와 민중의 정당성이 확인 될 것이다.

 

정부의 공안탄압과 노동개악 강행에 항의하는 한상균 위원장의 단식이 오늘로 19일째로 접어들었다불의와 노동착취 정책에 맞서 고행을 자처하는 노동자의 대표다그가 오늘도 처절하게 싸우고 있듯 민주노총 또한 일치된 의지로써 위원장과 함께 싸울 것이다경찰이 소요죄까지 덮어씌웠지만 그를 파멸시킬 순 없을 것이다한상균의 투쟁은 민주노총 안에 더욱 우뚝 설 것이다또한 경찰은 준비된 집단폭력이라며 소요죄가 가진 집단성을 근거로 향후 민주노총의 헌법적 권리와 사회적 위상을 괴멸시킬 모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자충수며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노동자 민중에게 총구를 겨누고도 영속했던 정권은 없다.

 

 

2015. 12. 18.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 2015/12/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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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와 사법감시센터는 12/22(월) 오후 1시,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를 개최했습니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토론회는 한상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의 사회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재정 변호사의 토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적 판단이기보다 재판관 8인의 정치적 판단, 헌법재판소 구성 다양화해야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법리를 적용한 사법적 판단이라기보다 재판관 8인의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정치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결정문 전반부에 헌법 제8조 제4항, 정당해산 조항이 해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렵게 함으로써 정당의 존속을 보호하려는 것임을 밝히면서도, 이를 확대해석했다. 오히려 중요한 쟁점들에서 구체적 증거 제시없이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숨은 목적이라고 단정했다. 북한 추종세력인 자주파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강령에 도입했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것은 '진보적 민주주의=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의 등식을 성립시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을 정당 전체의 활동이라고 판단하여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는데, 그 근거로 이석기 의원 등이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고 이들이 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주도세력'이나 '장악'은 법률용어가 아닐 뿐더러, 그들의 활동을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의 활동과 등치시킬 수 있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와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상실을 주문한 것이다. 어느 법규에도 해산 결정시에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은 없다. 헌법재판소가 법적 근거 없이 월권을 한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거꾸로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막으려면 재판부의 구성을 획기적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헌법재판관은 민형사상 재판 경험이 많은 걸 요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이 필요하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부의 삼권분립 몰이해, 국민 기본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사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당사자 뿐 아니라 5천만 국민들이 자기검열을 상시화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몰이해와 감정동원에 기인한다. 집권 2년 동안 검찰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수사 결과와 재판 결과가 법리적으로 내려졌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사법적 결정을 존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입법부의 심의과정에서도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집권당의 재량적 여지가 없어지고 여야 간 협상의 여지도 없어졌다. 입법권이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합의적 대안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집권 이후, 시민들의 결사체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여왔다. 민간 결사에 관한 헌법권리와 법률적 규정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통치행위의 유불리 측면에서 억압해왔다. 

 

감정적 동원에만 의존한 통치스타일도 문제다. 대통령마다 각기 다른 정책목표를 추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보편적 제도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이분법적 정치언어, 격한 감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합리적 논리나 설득의 과정을 생략하고, 감정적 동의 혹은 반대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3년동안 이와 같은 권력행사를 계속한다면, 적대적 저항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리적 한계를 스스로 노출한 헌법재판소, 1인의 소수의견이 기억되고 다수의견이 수치스러운 결정으로 남을 것  


헌법재판소 결정은 무모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베니스위원회의 정당해산지침이나 유럽인권재판소의 정당해산요건의 핵심요소를 애써 배제했다. 실질적 위해의 경우도 구체성 외에 '충분한 현존성'이 필요한데, 다수의견은 이를 무시하였다. 현존성은 강령만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이를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요구한다. 더구나 정당해산의 극단성에 비추어 '긴절한(pressing)' 필요성이어야 한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군소정당에서 4년만에 제1당이 되었던 선례를 통합진보당에도 적용하는 것은 논리비약의 극치다.  

다수의견은 무모함을 넘어 비겁하기까지 하다. 다수의견은 보편적 법원칙은 엄격하게 선언하면서 그 적용은 자의적으로 완화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정당활동의 자유에 극단적인 제약을 가하면서, 오히려 이러한 결정이 소위 진보진영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임을 명분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무책임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정신을 철저히 지켜서 헌법분쟁을 종결시켜야 그 존재의의가 있다. 그러나 정치적 소수파를 그 일부의 정치적 오류만을 이유로 반체제 세력으로 단정함으로써 종북논쟁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번 결정에서 그나마 1인의 소수의견이 있었기에 다수의견의 문제점이 선명하게 대비될 수 있었다. 1인의 소수의견이 헌법재판소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곳임을 보여준다. 헌법재판관 구성을 개편해야 한다. 법관 자격을 확대하고, 청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국회와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 3인씩 추천하는 것이 권력분립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그렇지 않다. 국회가 재판관을 추천할 때 가중정족수(재적 2/3의 동의)를 거치거나, 대법원장이 재판관 추천시 판사회의에서 제청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겠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제2의 민주화운동에 어떤 가치와 내용을 담을지 고민해야 할 때 


박근혜 정부가 정당해산이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택한 것은 이념적 시비, 소모적 이념갈등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결정은 전반적으로 정당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협소하게 만들고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대응해가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진보정당이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러한 결과가 나도록 여지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반유신, 유신으로의 회귀 등의 정치적 수사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시적 대응과 거시적으로 제2의 민주화운동도 필요하다. 어떤 내용과 가치로 만들것인지, 언어의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이재정 (변호사) 

많은 증거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기대면서도 최종심 보지 않고 해산 결정 


헌법재판소가 독일 공산당 해산을 사례로 들고 있는데, 독일의 공산당 해산결정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이념적으로 매도해도 충분할 상황에서도 5년이나 숙고해 내린 결정이다. 변론기일이 종결되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이 당연할텐데, 11월 25일 최종 변론 이후 12월 19일 결정까지 짧은 시간 동안 1년 여간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제출한 17만 여 페이지의 자료를 모두 재검토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해산심판청구도 다급하게 이루어졌고, 왜 대통령이 없는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헌재는 민사소송 절차를 준용했는데, 민사소송 절차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다행이지만 증거에 의한 재판이라고 보기에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증거에서 배치되는 것이 있는데도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상당히 많은 증거를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기대고 있는데, 이 사건의 최종심을 보지도 않고 해산을 결정했다. 독일 공산당의 경우 해산 이후 12만명이 넘게 수사를 받았고 6,7천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벌써부터 그 징조가 보여 우려스럽다.  

 

 

>> 토론 요지문은 첨부파일을 참고해주세요.

 



월, 2014/12/2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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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의 12.5 집회 인권지킴이단 파견 환영


경찰의 집회방해 감시 및 인권침해 예방 역할 해 주길

 

 

국가인권위(이성호 위원장)가 12월 5일 서울광장 집회에 인권지킴이단 20명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이는 지난 1일 참여연대가 이번 12월 5일 집회에 경찰의 강경대응이 예상되므로 인권침해 행위를 예방 및 감시하고 유사시 긴급구제 등 인권보호 활동을 할 인권지킴이단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소장 장유식 변호사)는 인권위의 인권지킴이단 파견을 환영한다. 아울러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경찰의 집회방해 및 인권침해 행위를 예방, 감시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인권보호 활동을 펼쳐 줄 것을 기대한다.

 

 

한편 인권위는 지난 11월 14일 집회에서 경찰의 위법적인 살수포에 맞아 중상을 입은 백남기 농민을 비롯해 다수의 참가자들이 경찰의 강경진압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입은 실태를 조사하기로 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도 서둘러 조사해서 진상을 밝혀 주기를 바란다. 

금, 2015/12/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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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국민께 드리는 글

“12월 5일 다같이 모입시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시계가 70년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달 14일에 13만 명이 모여 노동개악, 밥쌀용 쌀수입-TPP 반대, 노점탄압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일본의 재무장과 한반도 재침 시도 용인 등 이 정권의 실정에 대한 11대 요구안을 제시하였음에도, 정부와 여당은 귀를 닫은 채 관련 법안들과 정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무시되었고, 살인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이 정부는 병실 한 번 찾아오지 않은 채, 책임지라는 국민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돌아온 것은 공안탄압과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었습니다. 정부는 11월 14일 개최된 “민중총궐기”에서 나타난 국민의 분노에 대하여 ‘성찰’대신 ‘차벽’과 ‘살인 물대포’로 대응하였고, 12월 5일에 민중총궐기본부, 백남기농민쾌유기원범대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각각 신고한 집회에 대해서도 봉쇄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의 참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입과 행동을 막기 위한 부당한 정부 당국의 집회 원천봉쇄 시도는 실패하였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은 국민의 함성과 참여의 공간으로 열렸습니다.

 

정부가 헌법까지 무시한 채 집회 금지와 차벽 설치를 강행하고, 언론과 경찰을 동원해 공포분위기 조성에 나서는 것은 국민들이 다시 대규모로 모일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제 서울행정법원의 집회금지 통고 효력정지 결정은 경찰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집회 방해행위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정부에게 다음을 요구합니다.

 

첫째, 정부 당국은 민주회복과 민생살리기를 염원하는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대표적인 것만 강조하면, 노동개악을 중단하고 밥쌀용 쌀수입 등 우리 농업과 농민을 고사시키는 정책을 중단해야 하며 빈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비롯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정책들을 철회하십시오.

 

둘째, 정부 당국은 이제 내일 열릴 집회와 행진을 대상으로 위헌적 차벽 설치를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을 위축시키고 자극하는 일체의 부당한 시도를 중단해야 하며, 집회가 주최측의 취지에 맞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지난 11월 14일 집회에 참가했던 백남기 농민을 중태에 빠뜨린 살인적 진압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경찰청장은 사퇴하며, 관련자들을 처벌할 것을 촉구합니다.

 

국민 여러분께도 부탁드립니다. 


정부 당국이 국민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 여러분께서 백남기 범대위의 합법적인 집회신고로 열린 광장에 다시 모여 다시 한 번 분명히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정부당국에 더 표출해야 합니다. 


민주회복과 민생살리기를 염원하는 국민 여러분, 광장으로 나와주십시오. 더 평화적이고도 더 자유롭게 그리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주권자의 뜻을 표현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선생의 쾌유를 다 같이 기원해주십시오.

오늘 기자회견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우리 3개 단체들은 이번 12월 5일 집회와 행진이 더 많은 국민들이 더 평화롭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집회와 행진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고, 민생을 지켜냅시다. 

 

 

2015년 12월 4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쾌유와 국가폭력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금, 2015/12/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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