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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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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의 덫

익명 (미확인) | 금, 2016/09/09- 17:33

부산 경찰 뇌물수수 사건

1998년 9월, 부산 남부경찰서 강력계 형사 오상훈 씨는 마약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2개월 뒤 돌연 검찰에 체포됐습니다. 그가 검거한 마약사범 손 모 씨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 오상훈 씨 경찰 재직 시절

▲ 오상훈 씨 경찰 재직 시절

손 씨는 자신을 체포한 오상훈 씨에게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카오디오를 대신 팔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손 씨의 사정을 들은 오 씨는 카오디오를 경찰서에 보관하고 손 씨의 지인이 가져가 팔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오 씨가 손 씨의 카오디오를 보관한 것을 두고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봤습니다. 결국 오 씨는 1심에서 징역 8개월,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오상훈 씨는 경찰직에서 파면됐습니다.

그런데 오 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상한 것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오상훈 씨가 검거했던 마약사범 손 씨는 뇌물공여 사건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뇌물을 받은 사람만 있고 준 사람은 없게 된 것입니다.

▲ 현재 오상훈 씨

▲ 현재 오상훈 씨

오상훈 씨는 이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낼 증거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는 결국 2014년 손 씨를 찾았습니다. 오 씨는 손 씨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시 뇌물수수 혐의로 자신을 검거했던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손 씨에게 오상훈 씨를 뇌물죄로 고발하도록 제안했다는 겁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당시 손 씨는 수사검사로부터 형량을 조절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손 씨의 증언을 확보한 오상훈 씨는 2015년 4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재심청구 재판에서 마약사범 손씨가 출석해 위증한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재심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오 씨는 대한변호사협회, 국가인권위, 국민신문고에도 하소연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 증거자료를 찾아 나선 박준영 변호사와 오상훈 씨

▲ 증거자료를 찾아 나선 박준영 변호사와 오상훈 씨

오상훈 씨는 올해 4월 재심 전문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 청구를 위한 증거 수집 중입니다. 오상훈 씨의 재심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정재홍
연출 김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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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blockquote> <p>해방 직후의 어두운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유독 '법'의 얼굴을 쓰고 자행된 국가 폭력이 많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과거사들을 마주하는데 있어서 오늘날의 법원이 보여야할 태도는 무엇일까요.</p> <p>지난 1월 17일에 선고가 나온, 제주4·3사건 수형 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 재판은 어두운 과거사를 대하는 현대 사법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바가 많습니다. 법적근거나 절차가 불분명한 '군법회의'를 빌미로 무고한 제주도민들에게 내려진 70년 전의 유죄판결을 법원이 바로잡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이 되돌아봤습니다. </p> </blockquote> <p> </p> <h1>실체적 진실에 충실한 역사적 판결</h1> <h2>[광장에 나온 판결] 제주4·3사건 생존 수형자 18명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 제갈창 판사, 2017재고합4)</h2> <p> </p> <p><img alt=""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447/585/001/3826…; style="width:139px;height:183px;" /></p> <p><strong>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strong></p> <p> </p> <p>판결문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e5f1EfF2Lh-FxnK0wZzppqwmmRTIjFkJ&quot;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 / 다운로드]</a></p> <p> </p> <p>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는 2019년 1월 17일 ‘제주4·3군법회의’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사건(2017재고합4)에서 모두에게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재심 청구인들은 70여 년 만에 억울한 ‘전과자 낙인’을 지울 수 있었다. 판결문조차 없는 사건에 대해 재심개시 결정을 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거니와 공소기각 판결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선고 당일에 즉각 환영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는 이 판결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p> <p> </p> <p> </p> <p><strong>탄압, 항쟁, 그리고 대학살</strong></p> <p> </p> <p>이 사건 판결의 의미를 따져보기 위해 우선 ‘제주4·3’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국무총리소속 4·3위원회는 2003년 공식 보고서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p> <p> </p> <p>해방 직후부터 제주도 밖에서는 치열한 좌·우 이념대립 속에서 1946년 ‘대구 10월 사건’ 등 인명이 희생되는 큰 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제주도는 미군정청 공보관인 케리 대위가 신년사에서 “육지와 달리 불행한 소요사태가 없었다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제주신보』, 1947. 1. 1.)이라며 감사의 말을 할 정도로 평온했다.</p> <p> </p> <p>하지만 1947년 3·1절 기념식 때 다른 지방에서 온 응원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된 사건은 제주도를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뜨렸다. 경찰 발포에 항의해 대대적인 ‘민·관 총파업’이 벌어졌고, 이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며 검거 선풍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4·3무장봉기가 벌어질 때까지 1년간 무려 2,500명이 구금되었다. 그 무렵 미군 감찰반이 “제주도 유치장은 최악이다. 3.3평의 한 감방 안에 35명이 갇혀 있다”고 보고할 정도로 유치장은 차고 넘쳤다. 무장봉기 한 달 전인 1948년 3월에는 경찰에 의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탄압의 국면’이었다.</p> <p> </p> <p>그러자 ‘항쟁의 국면’이 펼쳐졌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경,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일제히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이를 신호로 약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내 경찰지서 12곳을 동시에 공격했다. 또한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 습격해 살해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조국의 통일독립”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무장대는 5·10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해 주민들을 산으로 올려 보냈다. 결국 제주도는 3개의 선거구 중 북제주군 갑구와 을구 2곳의 선거가 무산되었다.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의 2개 선거구만이 무효화된 것이다.</p> <p> </p> <p>곧이어 참혹한 ‘대학살의 국면’이 전개됐다. 군·경 토벌대는 ‘해안선에서 5㎞ 이외의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하라’는 명령과 함께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중산간마을을 불태웠고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였다. 특히 토벌대가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약 4개월 동안 벌인 이른바 ‘초토화작전’ 때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치른 희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을을 포위한 군인들은 다짜고짜 집집마다 불을 붙였고 불기운에 놀라 뛰어나오는 주민들을 70~80대 노인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p> <p> </p> <p>해변마을로 소개(疎開·강제 이주)한 사람들의 희생도 컸다. 토벌대는 가족 중에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며 수시로 학살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고통의 시간이 짧으니 그나마 괜찮은 경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토벌대는 걸핏하면 ‘무장대 지원 혐의’가 있다며 총질을 했다. 야수로 돌변한 토벌대에 의해 글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여성들의 수난도 컸다. 이러한 행위의 책임은 당시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었던 미군에게 있다.</p> <p> </p> <p>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살극이 재연됐다. 제주도내에서는 이른바 ‘예비검속’으로 1,000명 가량의 목숨이 희생됐고, 또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2,500여 명의 제주도민이 인민군에게 쫓기며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했다. 이처럼 7년 7개월간 벌어진 사건의 전개과정은 ‘탄압의 국면’, ‘항쟁의 국면’, 그리고 탄압이나 항쟁이라는 용어를 무색케 하는 엄청난 ‘대학살의 국면’이 중첩되면서 차례로 펼쳐졌다.</p> <p> </p> <p>이로써 4·3무장봉기 당시 무장대 숫자는 350명에 불과했으나, 희생자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 가량인 무려 3만 명에 이르렀다. 중산간마을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는 등 재산피해도 컸고, 육체적·정신적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p> <p> </p> <p> </p> <p><strong>4·3군법회의 수형인, ‘불법 계엄령’과 ‘유령의 국방경비법’에 의해 희생</strong></p> <p> </p> <p>그렇다면 이번 재심사건과 관련 있는 ‘4·3군법회의’는 무엇이며, 수형인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형무소에 감금됐던 것일까? 필자는 1988년부터 ‘제주4·3사건’에 대해 공부해오며 피해자 및 유족 약 7천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중에는 4·3군법회의 피해자들의 유족도 있었고, 구사일생 살아 돌아온 4·3군법회의 수형인도 있었는데 이들의 증언은 한결같았다.</p> <p> </p> <p>유족들은 “말이나 소에게 먹일 꼴 베러 들녘에 나간 아버지와 형이 지나가던 군인들에게 잡혀 트럭에 실려간 후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하던데 그 후 행방불명되었다”거나,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면 살려준다’는 삐라를 보고 내려왔는데 주정공장에 가뒀다가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수형인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갔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형인들이 6·25전쟁 전에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가 거의 유일한 근거였다. 엽서에는 형무소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p> <p> </p> <p>그러던 중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인 1999년 9월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4·3특위 부위원장 추미애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수형인명부를 발굴해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전모가 밝혀졌다. 같은 해 12월에는 재미학자 고(故) 이도영 박사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직후 대전형무소 등지에서 수형인들이 집단학살 당하는 사진과 문서를 찾아냄으로써 희생사실이 확인됐다. </p> <p> </p> <p><수형인명부>에는 ‘4·3군법회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2,530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4·3군법회의’라 함은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 등 두 차례에 걸쳐 마치 열렸던 것처럼 허위로 자료에 기재된 군법회의를 가리킨다.</p> <p> </p> <p>1948년 12월의 제1차 군법회의 때는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여서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일제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적용했다. ‘4·3계엄령’은 헌법의 규정과 달리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선포되었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는 1949년 6~7월에 열린 것처럼 <수형인명부>에 기재돼 있는데, 이때 끌려간 사람들은 1948년 가을 계엄령이 선포돼 무차별 학살극이 벌어지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을 에는 듯이 추운 겨울에 한라산 기슭으로 올라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1949년 3월경 “하산하면 죄를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소위 선무공작 삐라를 보고 내려온 피난민들이었다. </p> <p> </p> <p>그런데 제2차 군법회의 시기인 1949년 6월~7월은 계엄령이 해제된 때라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수 없었지만 무리하게 국방경비법을 적용했다. 국방경비법은 기본적으로 군법(軍法)이므로 대개의 조문은 “군인 및 군속으로서~”로 시작되는데, 제32조(소위 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만은 “여하한 자로서~”로 시작된다. 이를 근거로 군인 및 군속이 아님에도 민간인을 역시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제32조와 제33조를 적용해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이다.</p> <p> </p> <p>학살극을 피해 은신했다가 하산한 피난민들을 느닷없이 ‘이적죄’와 ‘간첩죄’ 혐의를 씌워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방경비법 자체가 제정 주체도 모호하고 법률 호수도 없는 유령법이라는 점이다. 일부 법령집에는 국방경비법이 ‘법률호수미상(法律號數未詳)’으로서, 1948년 7월 5일 ‘공포’됐고, 같은 해 8월 4일부터 ‘효력 발생’했다고 슬그머니 끼워놓았다. 그리고 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국방경비법을 제정한 것처럼 표기했다. 그러나 1946년 12월 12일 개원식을 가진 미군정기 조선과도입법의원은 1947년 5월 6일 제1호 법률(Public Act)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1948년 5월 19일 제12호 법률을 제정한 후 이튿날인 1948년 5월 20일 해산되었는데, 조선과도입법의원이 제정한 12개의 법률은 국방경비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국방경비법은 실체가 없는 유령법이고, 유령법이기에 법률 호수조차 없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서종철·김정무·전부일 등 제주 주둔군 장교들조차 “군법회의 없었다” 증언</strong></p> <p> </p> <p>백보 양보해 계엄령이 합법적으로 선포된 것이고, 국방경비법이 실제로 제정·공포된 법률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당시 군법회의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허구의 재판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수형인들이나 심지어 수형인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호송했던 경찰 출신들조차 “형무소에 도착하니 간수나 형무소장이 죄명과 형량을 알려주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p> <p> </p> <p>군법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증언은 피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제1차 군법회의가 열렸다는 1948년 12월 제주 주둔 제9연대 부연대장이었던 서종철(국방부장관·초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역임)은 “군법회의를 열었던 기억이 없다.”라고 증언했고, 제9연대 군수참모였던 김정무(준장 예편, 육사2기 동기회장 역임)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4·3위원회에 증언했다. 증언 내용은 모두 캠코더로 녹화했다. 제2차 군법회의 당시 제주 주둔 제2연대 1대대장이었던 전부일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증언했다. 무려 2,530명이 군법회의를 받았다고 하는데, 주둔군 간부들조차 부인하고 있는 건 군법회의가 허구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군법회의는 ‘구색 맞추기’…주둔군 교체기에 형무소로 보내</strong></p> <p> </p> <p>제9연대의 초기 작전은 주로 ‘무장대로 여겨지는 젊은 청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전개한 ‘초토화작전’ 때에는 젖먹이부터 노인,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무차별 총살했다. 그렇다면 이 때 왜 일부 젊은이들은 총살하지 않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냈는가? 젖먹이 아기와 노인들은 ‘죄질이 무거워’ 즉결총살했고, 젊은이들은 그 보다 죄가 가벼워 징역형을 선고해 형무소로 보냈다는 말인가? 젊은이의 ‘죄’가 젖먹이의 ‘죄’보다 가벼워 총살대신 징역형에 처했다는 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p> <p>이는 ‘구색 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군법회의가 구색 맞추기임을 증명해줄 구체적인 사료는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런 자료가 있다 해도 비밀해제 되지 않았거나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식에 비춰 구색 맞추기 외에 다른 설명은 불가능하다. </p> <p> </p> <p>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내졌던 것일까? 제1차 군법회의(1948년 12월) 수형인들은 대개 1948년 11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 여름철에 끌려간 사람들이다. 증언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들녘에 촐(꼴) 베러 갔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갔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이라 무차별 총격을 가하지 않을 때여서 9연대 군인들은 일단 청년들을 붙잡아 주둔지인 제주농업학교에 설치한 ‘천막 수용소’에 가뒀던 것이다. 그리고 1948년 12월말 제2연대와 교체하기 위해 제주를 떠나게 되자 천막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낸 것이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1949년 6~7월) 수형인들은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으로 숨었던 사람들이다. 1948년 가을부터 초토화작전이 벌어져 무차별 학살극이 본격화되자 주민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기슭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던 중 무장대 세력이 약화된 1949년 3월 이후, 토벌대는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전단지를 비행기로 살포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전단지를 본 후 나무에 옷가지를 매단 이른바 ‘백기(白旗)’를 들고 내려왔다. 이때 토벌대(제2연대)는 하산한 주민들을 일단 ‘주정공장’에 감금했다. 주정공장은 당시 가장 넓은 공간이어서 많은 주민들이 그곳에 수감됐다. 제2연대는 1949년 여름 제주에서 철수하게 되자 주정공장에 감금했던 사람 중 젊은이들을 전국의 형무소로 보냈다.</p> <p> </p> <p> </p> <p><strong>담당 변호사와 판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까닭</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에서 피고인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김세은 변호사에게 참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필자는 군법회의의 부당성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하고 글을 써 왔지만,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지고 무죄판결과 다름없는 공소기각 판결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죽기 전에 가슴 속에 묻어뒀던 한을 마지막으로 토로하는 자리쯤으로 생각했다. 두 변호사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여겼던 이 재심사건을 맡아 열정을 다해 헌신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p> <p>재심개시 결정을 내리고 이어 공소기각 판결을 한 제주지법 제갈창 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필자는 재심개시 결정 전에 임재성 변호사의 요청을 받아 소위 ‘전문가 증언’을 하였다. 변호사는 필자에게 “통상적으로 판사들은 전문가 증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20~30분이면 끝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갈창 판사는 정말로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 했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나중엔 마이크를 끈 채 질문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필자의 증언은 2시간이 넘게 진행됐다.</p> <p> </p> <p><수형인명부>에는 한 사람당 달랑 한 줄씩 이름, 본적지, 형량, 복형장소가 적혀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판결문은 없다. 판결문 등 재판기록이 있어야 원 판결이 잘못됐는지 여부를 따져 볼 수 있을 텐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재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그동안 ‘내가 본 자료’와 ‘내가 들은 증언’에 대해 법정에서 성실히 증언할 뿐이었다. 그런데 판사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아! 형식적인 재판이 아니구나!’라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p> <p> </p> <p>제갈창 판사는 4·3군법회의가 판결문조차 없지만, 군인들이 실질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했으므로 재판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4·3군법회의가 절차상 하자가 많고 검찰이 시간, 장소, 방법 등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심개시 결정과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실체적 진실에 따라 재심결정을 내렸고,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한 것은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다.</p> <p> </p> <p> </p> <p><strong>검찰의 결단도 높이 평가해야</strong></p> <p> </p> <p>검찰은 처음엔 공소사실을 진술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소장변경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추측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수형인명부에 적힌 대로 제1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겐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제2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게는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를 옮겨놓을 뿐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 피고인들이 형무소에 가서야 죄명과 형량을 간수나 형무소장으로부터 듣는 등 처음부터 ‘허구의 군법회의’였으므로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p> <p>그럼에도 검찰의 마지막 태도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검찰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은 무죄구형의 성격을 띤 ‘공소기각 요청’을 했고,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이번 재심사건은 1심 법원의 판결만으로 확정되었다. 이전 정부라면 검찰의 태도가 어땠을까? 만일 검찰이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또한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각각 불복해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최종 결과도 가늠하기 어렵거니와 수형인들의 맺힌 한은 어떻게 풀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정부가 적어도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묻지 않는다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수준에는 도달했다는 증거이다.</p> <p> </p> <p>지난 2월 7일 이번 재심사건 청구인 중 한 명인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인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이 난 지 불과 20여 일 지났을 때이다. 살아계실 때 확정판결이 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실감나는 소식이었다.</p> <p> </p> <p> </p> <p><strong>‘4·3특별법’ 개정해 군법회의 결과 무효화해야</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은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4·3특별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함을 웅변해 주고 있다. 개정안에는 ‘4·3군법회의 무효화’ 조항이 포함돼 있다. 4·3군법회의를 무효화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아 형무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지금까지 장수하면서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무죄’이고, 형무소에 수감 중 6·25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에게 학살당한 분들은 여전히 ‘유죄’로 남는 큰 불합리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p></div>
목, 2019/02/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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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blockquote style="padding:10px 20px;margin:0px 0px 20px;border-left:5px solid rgb(91,192,222);background:rgb(248,248,248);text-align:justify;"> <p><font color="#666666" face="나눔고딕, NanumGothic, ng">해방 직후의 엄혹한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유독 '법'의 얼굴을 쓰고 자행된 권력의 폭력이 많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과거사들을 마주하는데 있어서 오늘날의 법원이 보여야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과거사 재판에서 법원은 권력을 견제하는 인권의 수호자로 거듭날수도 있지만, 반대로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구시대의 잔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판결비평 과거사특집>을 연재합니다. </font><br /><br /><font color="#666666" face="나눔고딕, NanumGothic, ng">1979년 부산·마산 민주항쟁 당시 박정희정권이 발동한 계엄포고령은 위헌·위법하여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지난 2018년 11월 29일 나왔습니다. 이 판단은 부마항쟁 당시 계엄포고령에 의해 체포되고 징역을 살았던 한 앰네스티 간사의 형사 재심 청구로 촉발되었습니다. 박근혜정권 기무사의 계엄 모의에서 보듯, 과거 권력이 국민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사법적 시정과 처벌이 없다면 이런 비극은 언제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상희 변호사가 집필하였습니다.</font></p> <p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 </p> <p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a href="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_filter=search&mid=Judiciary&sea…;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판결비평 과거사특집①] 실체적 진실에 충실한 역사적 판결 / 김종민</a></p> <p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a href="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Judiciary&document_srl=16151…; target="_blank" rel="nofollow">[판결비평 과거사특집②] 그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 김영환</a></p> <p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판결비평 과거사특집③] 30년 만에 '무효'된 부마항쟁 계엄... 결국 국가폭력이었다 / 이상희</p> </blockquote> <p> </p> <h1>30년 만에 '무효'된 부마항쟁 계엄... 결국 국가폭력이었다</h1> <h2>[판결비평 과거사 특집③] 부마항쟁 당시 계엄포고로 징역형 받은 엠네스티 간사의 재심 무죄판결(대법원 제3부 재판장 이동원 · 조희대 대법관, 주심 김재형 · 민유숙 대법관, 2016도14781)</h2> <p><img alt="이상희 변호사"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095/577/001/77ac…; style="width:168px;height:200px;" /></p> <p><strong>이상희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strong></p> <p> </p> <blockquote> <p>"북의 도발위협이 점증하는 상황 속에서 시위악화로 인한 국정혼란이 가중될 경우 국가안보에 위기가 초래될 수 있어, 군 차원의 대비 긴요"</p> <p>"국민들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하여 대응하고 상황악화 시 계엄(경비->비상계엄) 시행 검토"</p> </blockquote> <p> </p> <p>흡사 군사정권을 연상시키는 내용이어서 30~40년 전에 작성된 문건에 나오는 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은 불과 2년 전인 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아래 기무사)가 작성한 글이다. 기무사는 탄핵 촛불 정국일 때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문건에서 위수령과 계엄의 시행을 검토하였던 것이다.</p> <p> </p> <p>청와대가 2018년 7월 20일 발표한 '기무사 계엄문건' 세부자료에 따르면, 기무사는 계엄선포와 동시에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선포하고 집회 예상지역 2곳인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 계엄 임무 수행군을 야간에 투입하며 KBS·CBS·YTN 등 22개 방송사와 26개 신문사, 8개 인터넷매체에 배치될 통제요원 숫자까지 지정하였다.</p> <p> </p> <p>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일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탄핵 정국에서 군과 청와대가 계엄을 공모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정황들이다. 어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어떤 이들은 1979년의 부산과 마산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p> <p> </p> <p> </p> <p><strong>계엄, 권력을 원하는 자들의 '니벨룽의 반지'</strong></p> <p> </p> <p>계엄은 한 마디로 국가비상사태를 대비하여 군대에게 행정권과 사법권을 맡기는 것이다. '비상계엄'의 경우에는 군대가 국민의 헌법상 권리인 집회·시위나 체포·구속 등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래서 헌법은 계엄의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여,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여 병력을 동원할 군사상 필요가 있거나 병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선포할 수 있도록 하였다.</p> <p> </p> <p>그런데 지금까지 비상계엄은 ① 제주 4.3, ② 여순 항쟁, ③ 한국전쟁, ④ 4.19 의거, ⑤ 5.16 군부쿠데타, ⑥ 한일회담 반대 시위('6.3 학생운동), ⑦ 10월 유신, ⑧ 부산항쟁(1979년 10월), ⑨ 10.26 이후(1979년 10월 27일 ~ 1981년 1월 24일)에 선포되었다. 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대부분의 비상계엄이 '전시나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해서라기보다는, 부패 및 군사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하여 선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상계엄은 모든 권력을 군부에 집중하고 계엄사령관의 명령만으로 시민들을 손쉽게 탄압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을 불법으로 취득하거나 독재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에게는 '니벨룽의 반지'였다.</p> <p> </p> <p>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이 특별한 조치를 행사하기 위해 포고령을 발표하는데, 지금까지 발표된 포고령의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언론·출판은 사전검열을 하며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을 인정하였고, 정권에 대한 저항을 탄압하기 위하여 '유언비어 날조, 유포와 국론분열'을 금지하였다. 계엄사령관의 포고령은 절대적이어서 포고령 위반자는 형사처벌을 받았다. 군대가 제헌 헌법 이래 기본권 보장의 중요한 원칙으로 천명한 표현의 자유와 영장주의를 무시하고 시민들이 일상을 규율했으며 영장도 없이 사람을 구속하는 불법을 저질렀다.</p> <p> </p> <p>그러나 지금까지 비상계엄에 대하여 일부나마 진실규명과 법적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정도이다. 대법원은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하여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부를 통제하고 그 기능을 대체하게 한 것은 내란죄라고 판단하면서,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폭동'이라고 규정하였다.</p> <p> </p> <p> </p> <p><strong>부마항쟁 계엄포고의 위헌성이 인정되기까지</strong></p> <p> </p> <p>그런데 지난해 대법원은 1979년 10월 18일자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의 계엄포고에 대하여 위헌무효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부산지역에서 선포된 비상계엄의 위헌성도 인정하였다(대법원 2018년 11월 29일 선고 2016도14781 판결).</p> <p> </p> <p>신민당사에서 점거 농성한 YH무역 여성노동자에 대한 강경진압과 노동자 김경숙의 사망, 신민당 총재 김영삼의 국회의원 제명 사건은 부산, 마산 지역 일대에 도화선이 되어,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에서 시작된 시위가 시민들에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부산대학에 휴교조치를 명령하고 10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2개 여단의 공수부대를 투입하였다.</p> <p> </p> <p>부산지구 계엄사령관 육군중장 박찬긍은 유언비어 날조, 유포와 국론분열 언동 등을 금지하는 계엄포고</p> <p>제1호를 발표하였고 이를 위반하면 계엄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하였다. '유신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던 학생과 시민들, 시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박수와 먹을 것으로 시위대를 지지하던 시민들이 군인과 경찰의 폭력에 짓밟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p> <p> </p> <p>박근혜는 부마항쟁의 진실규명을 대선공약으로 주장했고 2013년 6월 4일 제정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정치적 기반에서 탄생한 박근혜 정권은 뉴라이트 계열과 박근혜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규명을 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을 배치하였다. 위원회는 법에서 정한 활동 기간 3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였다(2018년 12월 24일 법률의 개정으로 활동기간 1년 연장).</p> <p> </p> <p>1979년 10월 군에 강제징집 되었다가 제대한 A도 부마항쟁의 현장에 있었다. 긴급조치 제9호로 구속된 앰네스티 부산경남지부 활동가들을 대신하여 앰네스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비상계엄에서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부산지역을 방문한 한국기독교연합회 간사와 인권침해 사건을 논의하였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구속되어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p> <p> </p> <p>A는 부마항쟁보상법의 특별재심 규정에 따라 재심청구를 하여 재심결정을 받은 뒤,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판단받기 위하여 유언비어의 처벌 근거 규정인 계엄포고령의 위헌 무효를 주장하였다. A는 수사기관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하여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사실관계의 문제보다는 비상계엄과 A에게 적용된 계엄포고령의 위헌성을 정면으로 다투었다.</p> <p> </p> <p>A와 같이 형사재심 사건에서 계엄포고령의 위헌무효를 전제로 무죄를 주장한 피해자들이 많았으나 이 사건 선고 이전까지 법원은 계엄포고령의 위헌성 여부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유언비어'의 불명확성이나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p> <p> </p> <p>그런데 A가 청구한 형사재심사건에서 법원은 '부마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포고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계엄포고가 발령될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과 사회상황이 계엄법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계엄포고의 내용이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고 위법하여 무효라고 판단하였다.</p> <p> </p> <p>형사재심사건의 특성상 '비상계엄' 자체의 위헌 무효를 명시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비상계엄에 따라 선포된 '계엄포고'에 대하여 그 요건인 '군사상 필요'가 없다고 함으로써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정면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p> <p> </p> <p> </p> <p><strong>국가폭력의 진상규명에 시효가 있어선 안되는 이유 </strong></p> <p> </p> <p>비상계엄과 계엄포고의 위헌 무효를 선언하는 것은 과거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를 일부나마 진상규명하고 형사재심에서 피해자를 구제하여 원상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여기에 그칠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행위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국가의 사과와 재발방지에 대한 대책까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정의가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다면, '비상계엄'의 형식을 통한 국가폭력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p> <p> </p> <p>2019년으로 돌아와보자. 시민단체의 고발로 합동수사단이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을 내란음모죄 혐의로 조사하였으나, 문건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2017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한 후 현재까지 소재가 불명하여 수사가 중단되었다.</p> <p> </p> <p>지금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왜곡하며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있는 전두환을 보라.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통한 정의의 실현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자 했던 2017년의 내란음모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규명되고 처벌되어야 한다. 부정한 권력자들이 다시는 이러한 유혹조차 느끼지 못하게 말이다.</p> <p> </p> <p> </p> <p> </p> <blockquote style="padding:10px 20px;margin:0px 0px 20px;border-left:5px solid rgb(91,192,222);background:rgb(248,248,248);color:rgb(102,102,102);text-align:justify;"> <p style="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a href="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Judiciary&document_srl=14768…;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a>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br />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p> </blockquote> <p style="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color:rgb(102,102,102);text-align:justify;background-color:rgb(255,255,255);"> </p></div>
월, 2019/04/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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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총선넷은 무죄다”

-법원은 헌재의 위헌 결정 존중해 무죄 판결하는 것이 당연해

부당한 유권자 처벌 예방하려면 선거법 재개정해야

  [caption id="attachment_235286" align="aligncenter" width="640"] ⓒ오마이뉴스(2016)[/caption]  

◯10/18(수) 오후 3시 40분, 서울고등법원에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2016총선넷) 활동가 17인에 대한 공직선거법 재심 1차 공판이 열릴 예정입니다(2022재노70). 2016총선넷 활동가들은 이번 재심에서 법원이 활동가 17인의 유권자 운동이 정당했음을 확인하고, 위헌적 법조항에 근거한 유죄 판결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2016총선넷에 대한 1차 수사와 재판에 이어 정당한 유권자 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 헌법소원에서 2022년 위헌,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김선휴 ·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가 변호인을 맡아 재심 청구를 진행했고, 지난 8월 재심개시가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2016총선넷은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패나 비위를 저지른 낙선 대상자와 주요하게 추진되어야 할 정책과제 등을 선정하기 위한 시민 투표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유권자 운동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선거시기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유권자 운동을 불법행위로 몰아 검경의 무리한 표적수사와 기소가 있었고, 법률의 위헌성에 애써 눈감은 법원에서 관련 활동가들은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중 일부 활동가는 선거권까지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되었던 해당 조항(공직선거법 103조 3항, 90조 1항, 93조 1항)에 대해 2022년 7월 헌법재판소는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재심을 청구한 결과 지난 8월 재심이 결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번 재심에서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하고 2016총선넷 활동가들의 권리 구제와 모든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두고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한편 법원이 재심을 개시하면서도 91조 1항(확성장치 사용제한) 위반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이유로 들어 재심 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것은 유감입니다.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마이크와 스피커 등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처벌한 것이 과연 합당한지도 다시금 따져봐야할 일입니다. 집회 등에서 확성장치는 집회의 진행을 위해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범위에서 사용되는 의사표현의 수단이자 표현의 자유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및 개정 선거법에 따라 비록 미흡하나마 선거운동 기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의 개최가 허용되었는데도, 해당 조항으로 인해 유권자들은 마이크와 스피커 없이 집회를 진행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입니다.

◯유권자들은 지난 4년간 국회가 보여준 정치와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자들에 대해 평가하고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있고, 그 의견은 누구든지 기간과 장소, 방법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재심 결정의 계기가 되었던 헌법재판소의 선거법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은 이런 유권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끊임 없는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입니다. 그럼에도 국회는 위헌 결정 취지를 반영해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기는커녕, 유권자운동을 불합리하게 규제하는 독소조항들의 적용 기간만 소폭 단축하거나 모임 인원 수에 상한을 두는 등 턱없이 미흡한 대안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 바꿔야 한다는 핑계로 충분한 논의조차 거치지 않고 졸속처리했습니다. 다가오는 총선 등 중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또 다시 위헌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는 엉성하게 개정된 현행 선거법으로는 2016총선넷 사례처럼 또다른 억울한 유권자 처벌 사례를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기국회 내에 다시 한 번 선거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끝.

 

20231017

201총선시민네트워크

화, 2023/10/1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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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총선넷은 무죄다”

-법원은 헌재의 위헌 결정 존중해 무죄 판결하는 것이 당연해

부당한 유권자 처벌 예방하려면 선거법 재개정해야

  [caption id="attachment_235286" align="aligncenter" width="640"] ⓒ오마이뉴스(2016)[/caption]  

◯10/18(수) 오후 3시 40분, 서울고등법원에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2016총선넷) 활동가 17인에 대한 공직선거법 재심 1차 공판이 열릴 예정입니다(2022재노70). 2016총선넷 활동가들은 이번 재심에서 법원이 활동가 17인의 유권자 운동이 정당했음을 확인하고, 위헌적 법조항에 근거한 유죄 판결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2016총선넷에 대한 1차 수사와 재판에 이어 정당한 유권자 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 헌법소원에서 2022년 위헌,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김선휴 ·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가 변호인을 맡아 재심 청구를 진행했고, 지난 8월 재심개시가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2016총선넷은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패나 비위를 저지른 낙선 대상자와 주요하게 추진되어야 할 정책과제 등을 선정하기 위한 시민 투표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유권자 운동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선거시기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유권자 운동을 불법행위로 몰아 검경의 무리한 표적수사와 기소가 있었고, 법률의 위헌성에 애써 눈감은 법원에서 관련 활동가들은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중 일부 활동가는 선거권까지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되었던 해당 조항(공직선거법 103조 3항, 90조 1항, 93조 1항)에 대해 2022년 7월 헌법재판소는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재심을 청구한 결과 지난 8월 재심이 결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번 재심에서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하고 2016총선넷 활동가들의 권리 구제와 모든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두고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한편 법원이 재심을 개시하면서도 91조 1항(확성장치 사용제한) 위반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이유로 들어 재심 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것은 유감입니다.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마이크와 스피커 등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처벌한 것이 과연 합당한지도 다시금 따져봐야할 일입니다. 집회 등에서 확성장치는 집회의 진행을 위해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범위에서 사용되는 의사표현의 수단이자 표현의 자유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및 개정 선거법에 따라 비록 미흡하나마 선거운동 기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의 개최가 허용되었는데도, 해당 조항으로 인해 유권자들은 마이크와 스피커 없이 집회를 진행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입니다.

◯유권자들은 지난 4년간 국회가 보여준 정치와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자들에 대해 평가하고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있고, 그 의견은 누구든지 기간과 장소, 방법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재심 결정의 계기가 되었던 헌법재판소의 선거법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은 이런 유권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끊임 없는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입니다. 그럼에도 국회는 위헌 결정 취지를 반영해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기는커녕, 유권자운동을 불합리하게 규제하는 독소조항들의 적용 기간만 소폭 단축하거나 모임 인원 수에 상한을 두는 등 턱없이 미흡한 대안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 바꿔야 한다는 핑계로 충분한 논의조차 거치지 않고 졸속처리했습니다. 다가오는 총선 등 중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또 다시 위헌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는 엉성하게 개정된 현행 선거법으로는 2016총선넷 사례처럼 또다른 억울한 유권자 처벌 사례를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기국회 내에 다시 한 번 선거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끝.

 

20231017

201총선시민네트워크

화, 2023/10/1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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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 이인수 총장 측의 너무나도 엽기적인 수원대 교협 괴롭히기
10억 손해배상 소송 포함 무려 7번이나 소송과 고소 남발

최근 7번째로 업무방해‧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해직교수 4인 또 고소 확인

이인수 총장의 부인 최서원은 법인 이사장 사퇴한다 해놓고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어
교육부는 즉시 수원대 이사진 승인 취소하고 공익이사 파견해 이인수 총장 해임해야
검찰은 이인수 무고혐의까지 수사하고 법원은 이인수 엄벌해야!!

 

1. 수원대 이인수 총장 측이 수원대 교수협의회 소속 해직 교수들을 괴롭히는 정도가 엽기적이기도 너무나도 엽기적인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6번의 고소와 소송 남발도 모자라, 최근에도 7번째로 해직교수 4인을 고소한 것이 사실로 확인됐고, 이 일로 이상훈 해직교수는 지난 5.25일 검찰 조사를 받아야했고, 이재익 교협대표도 2016년 5.30일 오늘 2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이인수 총장은 해직교수들을 이미 지난 2013년 10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무혐의 됐음에도 또 2015년 12월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명백한 무고성 고소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7번이나 고소와 소송을 남발하여 수원대 교협 교수들을 검찰로, 법원으로 불려다니게 하며 끝없는 괴롭힘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원대 법인과 이인수 총장의 ‘막가파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또 이인수 총장의 배우자인 최서원 고운학원 이사는 수원대 비리가 부각되기 시작한 2014년 6월에 이사장직을 사퇴한다고 하고서도, 아직까지도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교육부는 사학비리의 백화점이자 끝없이 분규가 발생하고 있는 수원대 법인 이사진 전원에 대한 이사 승인을 취소하고, 즉시 공익이사를 파견하여 수원대를 정상화해야 할 것이며, 검찰은 참여연대 등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2건만 기소한 것에 이어 추가로 기소를 진행하고, 이인수 총장 부부를 무고 혐의로도 수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인수 총장에 대한 2건의 형사재판을 진행 중인 법원도 이인수 총장에게 법의 엄정함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3. 수원대 이인수 총장측이 수원대 교협의 6명의 해직 교수들에게 소송과 고소를 남발하여 괴롭히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인수 총장의 소송/고소 남발 일지 >

 

고소일
/소송제기일

고소인/원고

피고소인/피고

혐의내용

결과

사건1

2013.10.30

이인수

고운학원

(수원대)

이원영‧배재흠‧이상훈‧이재익 /수원대 교협 4명 외 2인(총6명)

1차 명예훼손 고소

2014.11.27. 불기소처분(수원지검)

2015.04.23. 항고기각(서울고검)

2015.06.10. 재정신청기각(서울고법.2015초재2038)

사건2

2013.10.

고운학원

(수원대)

이원영

업무방해

불기소(수원지검. 2014년제52260호)

사건3

2014.09.18.

고운학원

(수원대)

이원영‧배재흠‧이상훈
‧이재익

/ 수원대 교협 4명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10억 원 청구(민사)

현재 1심 진행중 (2014가합11263)

사건4

2014.11.

수원대 직원

유모씨

장경욱 교수

폭행치상죄

2015.08.12. 1심 선고유예(수원지법)

2016.03.30. 2심 무죄

현재 대법원 계류중(2016도5264)

사건5

2014.11.11.

수원대 직원

김모씨

이재익 교수

상해죄

2015.08.20. 선고유예(수원지법). 쌍방 상소

2015.12.09. 상소기각으로 판결 확정(수원지법 2015노4919)

사건6

2015.12.

이인수

최서원(고운학원 이사. 등기부등본상 이사장.

이인수의 배우자)

배재흠, 이상훈, 이원영, 이재익, 장경욱, 손병돈

2차 명예훼손 고소

수원지검에서 현재 수사중(2016형제7861)

사건7

2016.04.

최서원 및 수원대 직원 4명

이상훈‧이재익‧이원영‧손병돈 / 수원대 교협 4명

이상훈(주거침입 및 업무방해), 이재익(명예훼손), 이원영(폭행), 손병돈(확인중)

이상훈 교수 2016/5/25 조사 받음

이재익 교수 2016/5/30 14시 조사 예정

이원영‧손병돈 교수 미정

 

1) <사건1>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수원대 이인수 총장과 수원대학교 학교법인인 고운학원은 이원영‧배재흠‧이상훈‧이재익 수원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네 명과 카페 글 게시자 2명(총 6명)을 상대로 인터넷명예훼손(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수원대교수협의회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인수 총장의 비리를 고발하는 글을 카페에 게시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수원대 교협카페에 올린 글은 이미 감사원‧교육부가 감사를 통해서 그 비리가 드러난 것들이었고, 언론사를 통해서 보도된 내용이었습니다. 이인수 총장 측은 자신의 비리와 부정을 뉘우치기 보다는 고소를 자행하여 진실을 틀어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여섯 명의 교수들 전원이 불기소처분을 받았고, 이어 이인수 총장 측의 항고도 기각됐으며, 재정신청까지 기각되어 최종 무혐의 결정을 받았습니다. 이인수 총장 측의 무리한 고소 자행이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2) <사건2>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수원대 교협 이원영 교수는 수원대학교 안에 놀고 있는 토지를 개간해서 텃밭으로 가꿨습니다. 2007년부터 시작된 텃밭 개간은 학교 측으로부터 승인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2007년~2012년, 6년 동안 이원영 교수, 배재흠 교수 등을 비롯한 수원대 교수들이 텃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이인수 총장 측의 비리에 대해 공론화가 시작되던 2013년부터 텃밭 가꾸기를 금지하더니, 급기야 2013년 10월 이원영 교수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수원지검은 2014.05.27. 혐의없음 불기소 처분을 했습니다. 이후 이인수 총장 측이 또 항고했으나 수원고검도 2014.12.12.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이 또한 수원대 이인수 총장 측의 수원대 교협 괴롭히기 차원에서 자행된 무고성 고소였다 할 것입니다.

 

3) <사건3>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수원대를 운영하고 있는 고운학원은 이원영‧배재흠‧이상훈‧이재익, 수원대 교협 네 명의 교수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 10억 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주체는 이인수 총장인데 수원대를 운영하고 있는 고운학원 이사장이 나서서 손해배상을 받겠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또 <사건1>에서 이인수 총장과 고운학원이 수원대 교협 교수님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했으나 이비 무혐의 처분된 바가 있음에도 다시 같은 내용으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괴롭히기 소송 남발인 것입니다.

 

4) <사건4>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수원대 교협 장경욱 교수는 2014년 수원대 교협 교수들과 함께 수원대 정문 앞에서 ‘길거리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수원대 직원 유모씨는 교수들의 길거리 특강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며 실랑이를 벌였고, 이를 빌미로 장경욱 교수를 상대로 폭행치상으로 고소했습니다. 2심 판결문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목격한 취재 기자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고소인이 애초에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 가서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었던 기자들도 전부 와서 계속 웃고 있었습니다. 너무 허탈해서요. 좀 쇼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라고 증언했습니다. 결국 장경욱 교수는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2016.04.07. <수원대교수협 장경욱 교수 폭행치상 무죄 판결 받아> 참여연대 보도자료. http://bit.ly/1TFNXDF  2심 판결문에서 이렇게까지 밝히고 있는데도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가 현재 계류 중입니다. 이인수 총장과 그 측근 직원들의 고의적인, 역시 무고성 고소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사건5>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2014년 10월 수원대 교협 이재익 교수는 수원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이를 방해하려는 수원대 직원 김 모씨와 실랑이를 겪었습니다. 역시 이인수 총장의 측근인 김 모씨가 고의적으로 시비를 걸고 욕설과 막말을 퍼부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이 때문에 이재익 교수는 상해죄 혐의로 고소를 당하여 재판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선고유예를 선고한 1심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 김 모씨를 비롯한 수원대학교 교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매일같이 취업홍보와 교통안전캠페인 등 명목으로 학교 정문 앞에서 집회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교수협의회 측의 집회 내지 길거리특강을 조직적으로 방해하였는바, 이 사건 역시 피고인이 교직원들의 집회를 피해 1인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여 그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는 점…”이라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인수 총장 측이 얼마나 집요하게 수원대 교협 교수님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6) <사건6>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1차 명예훼손 고소(사건1)이 불기소 처분 확정 된 이후 수원대 이인수 총장과 고운학원 최서원 이사(이인수 총장의 배우자이자 등기부등본 상에서는 여전히 이사장)는 수원대 교수협의회 소속 여섯 명의 해직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또 고소했습니다. 혐의 내용은 명예훼손 1차 형사고소 이후 수원대 교협이 10여 차례 보도자료 및 성명서에 언급한 5개 사안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그 5개 사안은 ‘교비 펀드투자 배임, 미술품비리, 적립금 담보 저리대출, 영동건설 개인주택 무상 신축,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딸 특혜채용 의혹’입니다. 위 사안들은 교육부 종합감사를 통해서 사실로 드러난 것일 뿐만 아니라, 주요 언론사에서 수원대의 대표적인 비리 의혹으로 보도한 것들입니다. 이를 다시 수원대 교수협의회가 언급한 것뿐인데도, 이인수 총장과 최서원 이사는 이를 문제 삼아 재차 고소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미 <사건1>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비슷한 내용의 고소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이 역시 명백한 괴롭히기 고소, 무고성 고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7) <사건7>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수원대 이인수 총장의 괴롭히기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4월 수원대 이인수 총장 측은 수원대 교협 이상훈‧이재익‧이원영‧손병돈 교수를 상대로 또 고소를 제기했습니다. 이중에 주거침입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한 이상훈 교수는 지난 5.25일(수)에 다른 이보다 먼저 수원지검으로 피고소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상훈 교수는 2015년 12.9일 거래관계가 있는 신한은행 수원대학교점(수원대 내 위치)에 가고자 했으나 수원대에서 차량 통과 차단기를 열어주지 않아서 차량 진입을 하지 못한 채 직원과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112 신고를 해서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수원대 교무처장이 정문으로 내려왔습니다. 경찰의 중재 하에 이상훈 교수는 교무처장을 동반한 채로 신한은행에 가서 은행업무를 보고 귀가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원대가 이를 문제 삼아 올해 4월에 주거침입과 업무방해로 고소를 한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막힌 일입니다. 역시 해직교수에게 검찰에 불려다니는 괴로움을 주려는 가학적 고소임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8) 위에서 언급한 7가지 사건은 모두 이미 ‘협의없음’결정이 났거나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 모 재벌기업의  총수가 조폭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갑질을 했다면, 족벌사학 이인수 총장 부부는 검찰을 동원해 수원대 교협 교수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검찰은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을 섬기겠다고 부르짖지만, 이인수 총장 부부는 오히려 해직교수들을 괴롭히는데 검찰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낸 등록금을 떼먹은 것도 부족해, 검찰과 재판부를 농락하며 국민이 낸 세금을 좀먹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이를 그대로 용인해야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학비리의 ‘끝판왕’이라는 이인수 총장 부부가 검찰의 처벌을 받지 않고, 도리어 검찰을 부리는 갑질의 끝판왕이 되지 않도록 검찰의 성찰과 엄정한 조치를 촉구합니다. 

 

4. 이인수 총장 부부의 고소 남발, 계속되는 무고성 고소로 이재익 교수는 5/30(월) 14시에 수원지검에 출석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피고소인 조사를 받을 예정입니다.(이원영‧손병돈 교수의 조사 일시는 아직 미정) 수원대 교수협의회 교수들은 수원대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것도 모자라 검찰에게 불려다니는 괴로움을 계속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심지어 수원대 법인과 이인수 총장 부부는 대법원에서 복직이 확정된 손병돈 교수는 재 해고하고, 역시 복직이 확정된 장경욱 교수는 원래 소속이던 연극영화학부가 아니라 교양학부로 강제적, 일방적 전출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까지도 무시하고 거부하는 수원대 이사진의 행패에 대해 교육부가 즉시 나서서 이사진 전원에 대한 승인을 취소하고 이인수 총장 해임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5. 한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인수 총장의 배우자인 고운학원 최서원 이사장은 이인수 총장측의 비리가 부각되고 있던 2014년 6월 이사회에서 이사장 사임 의사를 밝힌바 있습니다만, 2016.5월 현재까지도 고운학원의 이사장은 최서원으로 등기되어 있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이 역시 국민과 언론, 교육당국을 속이는 부도덕하고 반교육적인 행태라 할 것입니다. 한 고등교육기관에서 총장의 부인이 이사장까지 맡고 있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말로는 이사장을 사퇴한다고 해놓고는 실제로는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입니다. 이사장직을 사퇴했다고 하면서도 해직교수들에 대한 고소에 직접 나서는 것만 봐도 실제로는 이사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이사회 회의록과 수원대 법인 등기 첨부)

 

6. 이처럼 수원대 이인수 총장 측의 비리와 교수협의회 괴롭히기가 도를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엽기적이어도 너무나도 엽기적인 수준의 잘못된 행위가 계속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바로잡아야 할 교육부는 아직까지도 손을 놓고 수수방관 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수원대 고운학원에 공익이사를 파견하여 하루 빨리 학교를 정상화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이인수 총장의 40여 가지 비리 항목 중에서 검찰은 소송비용의 교비지출 건(업무상 횡령)과 교양교재 대금 관련 특경가법 배임 혐의로 기소하여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검찰은 이인수 총장 측의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를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법원도 이인수 총장의 형사재판에서 엄벌을 내려서 법의 엄정함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희대의 사학비리자로 평가받고 있는 이인수 총장을 교육계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할 것입니다. 끝

 

수원대교수협의회/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반값등록금국민본부

 

▣ 붙임자료 
1. 대법의 복직 판결에도 불구하고 손병돈 교수 재 해고, 장경욱 교수 부당발령에 대한 규탄 보도자료
2. 이재익 교수 등에 대한 7번째 고소로 인한 검찰 출석요구서
3. 수원대 법인 등기부등본(이인수 총장의 부인 최서원 이사장 등재 사실)

월, 2016/05/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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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문고 민원인 신분노출 재발방지 필요해

국민권익위 민원인의 개인정보 민원 처리기관에 그대로 전달 
참여연대, 권익위에 민원인 신분노출에 대한 경위조사·재발방지 요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소장 : 박흥식 중앙대 교수)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제기한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처리기관에 그대로 전달해, 민원인이 소속기관 상관에게 추궁 받은 사건에 대해 경위조사와 민원제기 후 신분이 노출된 사례 실태조사,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요구서를 오늘(7/1) 권익위에 발송했다.
 
시사인 기사(6월 25일자 458호 “내부 고발 막는 국민신문고”)와 참여연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총무과에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은 지난 5월 30일 자신의 상관의 직무태만 행위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으나, 권익위가 민원서류에서 민원인의 이름, 주소, 연락처 등을 가리지 않은 채 처리기관인 대법원 종합민원과에 그대로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접수된 민원은 대법원와 서울중앙지방법원 감사계를 거쳐 소속기관에 전달되었고, 그로 인해 민원인은 소속기관의 조사관들에게 민원제기 여부를 추궁 받고, 상관에게도 협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참여연대는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7조에 “행정기관의 장은 민원 처리와 관련하여 알게 된 민원의 내용과 민원인 및 민원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특정인의 개인정보 등이 누설되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하며, 수집된 정보가 민원 처리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권익위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그대로 처리기관에 전달한 것은 직무유기이자 직무태만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참여연대는 민원인의 신분이 민원접수·처리기관에 의해 노출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부패나 공익침해행위가 국민신문고를 통한 신고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민원인에 대한 개인정보가 소홀히 다루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행정기관에 의해 신분노출은 결국 정부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부패행위 신고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붙임자료 

 

국민신문고 민원인 신분노출에 대한 경위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요구서


안녕하십니까?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제기한 민원인의 개인정보가 피민원기관에 그대로 전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소장 : 박흥식 중앙대 교수)는 민원인의 신분은 철저히 보호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원 처리과정에서 행정기관에 의해 신분이 노출되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이에 귀 위원회에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조사와 더불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신분이 노출된 사례에 대한 실태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시사인 기사(6월 25일자 458호“내부 고발 막는 국민신문고”)와 참여연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총무과에 근무하는 한 사회복무요원은 지난 5월 30일에 자신의 상관의 직무태만 행위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접수된 민원은 대법원 종합민원과와 서울중앙지방법원 감사계를 거쳐 6월 1일에 민원인의 소속기관에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즉 국민신문고를 운영하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민원인의 이름, 주소, 연락처 등을 가리지 않은 채 민원서류를 처리기관인 대법원 종합민원과에 그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민원인은 신분이 노출되어, 소속기관의 조사관들에게 민원제기 여부를 추궁 받고, 피민원인인 상관에게도 무고죄가 될 수 있다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7조는 “행정기관의 장은 민원 처리와 관련하여 알게 된 민원의 내용과 민원인 및 민원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특정인의 개인정보 등이 누설되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하며, 수집된 정보가 민원 처리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민원처리 통합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권익위가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그대로 처리기관에 전달하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직무태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개인정보를 소홀히 다룬 담당자에 대한 문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민원처리 과정에서 민원인의 신분노출은 비단 이번 사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부패행위를 국민신문고를 통해 신고한 A교사의 신원이 민원처리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에 의해서 노출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져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처럼 민원인의 신분이 민원접수·처리기관에 의해 노출되는 일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패 및 공익침해행위 신고인에 대한 신분보장이 「공익신고자보호법」이나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규제되는 것과 달리 민원인에 대한 개인정보가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민들은 부패나 공익침해행위를 일반 민원과 구분하지 못하고, 국민신문고를 통한 민원제기의 형태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만큼 민원 접수·처리기관에 의한 민원인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정부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부패행위 신고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귀 위원회에 이번 사건의 경위조사와 재발방지를 요청드립니다. 

금, 2016/07/0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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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재심 결정에 대해 검찰이 항고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사건을 다시 심리해 유,무죄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길게는 6년, 짧게는 3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피해자들이 이번에는 제대로된 사법정의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다산인권센터는 이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판결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들이 겪었던 피해에 대해서도 적절한 배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검찰의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항고 포기를 환영한다.

-사건을 조작은폐 관계자에게 책임사과 그리고 반성을 촉구하며

 

99년 2월 6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했다잠자던 슈퍼주인 유모 씨의 반항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유 씨는 질식해 사망하였고그들은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났다당시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인 3(지적장애미성년빈곤)을 구속했고폭력과 폭언으로 거짓 진술을 만들어냈다. 3인조에겐 결국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각각 6, 3, 4년을 선고받았다선고 후 1개월 뒤부산지검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체포된 부산 3인조는 내사 과정에서 자신들이 삼례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했다하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삼례 3인조는 풀려나지 않았다사건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부산지검의 전주지검으로 넘어갔고당초 삼례 3인조의 수사를 맡았던 검사가 '다시사건을 맡았다그 과정에서 진범으로 지목되었던 사람들은 자백을 번복했고결국 무혐의처분으로 풀려났다그 후 17년 동안 진실은 잠들어 있었다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이들의 노력과 진범의 양심고백현장검증에서 폭력을 휘두르던 형사들의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을 증거로 2016년 6월 재심이 확정되었다.

 

우리는 법원의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재심 결정에 항고를 포기한 검찰의 결정을 환영한다재판부는 해당 사건을 조작은폐한 관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자신들의 행태를 반성하기를 촉구한다향후 진실규명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무엇보다도 17년 전 공권력을 남용하여 사회적 약자에게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씌우고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건을 왜곡하여 진범을 풀어준 이 사건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길 바란다힘없는 이들의 인권을 짓밟고억울한 세월을 보내게 한 공권력에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피해자들은 어쩌면 경찰과 사법부의 권력 남용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법정의를 누리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 중 극히 일부일지 모른다우리가 모를 뿐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해 억울한 죗값을 치르고 있을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다그런 면에서 이번 항고 포기는 반가운 결정이기는 하나 어찌 보면 검찰이 당연히 내려야 할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검찰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인권의 수칙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자신들의 실적이나 업적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인해 만만한 사회적 약자들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6년 7월 12

다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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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7/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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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스토리 펀딩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두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포기하지 않은 죄, 파산!" 토크 콘서트가 열립니다.


스토리 펀딩에 마음을 모아주신 참여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콘서트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변호사와 기자의 "파산" 토크 콘서트에서는 법의 불평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소수자의 법률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더불어 펀딩 이후의 향후 계획도 나눌 예정입니다.

파산 토크 콘서트는 재심사건의 지역에서 진행됩니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수원', 완주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전주',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광주',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부산', 그리고 '서울' 다섯개 지역으로 찾아 갑니다. 

그 첫 번째 문을 여는 곳은 수원입니다. 
11월 11일 금요일 저녁 7시 아주대 다산관에서 첫 번째 "파산" 토크 콘서트가 진행됩니다. 
여러분과 이  의미있는 이 만남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과 신청 부탁드립니다. 

*신청을 원하시면 링크를 눌러주세요. goo.gl/uyI8lr 
*모두에게 열려있는 무료 콘서트이지만, 후원해 주신 분을 먼저 배려하며, 선착순 입장으로 진행됩니다.


*향후 콘서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원] 11월 11일 금요일 19시 아주대학교 다산관
[전주] 11월 18일 금요일 19시 중부비전센터 비전홀
[부산] 11월 25일 금요일 19시 30분 창조문화활력센터
[광주] 12월 02일 금요일 19시 전남대학교 법학대학원 광주은행홀
[서울] 12월 17일 토요일 18시 홍대 베짱이홀

*문의 
전화: 031-213-2105
Email: [email protected]

주최: 광주인권지기 활짝, 다산인권센터, 대안문화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주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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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11/0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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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이다/바로이책7 - 박준영·박상규 『지연된 정의』

 

철학사이다 바로 이책 이번 시간은  『지연된 정의』 입니다. 작년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3개월 동안 무려 5억6천만원이 넘는 모금을 해서 화제가 된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의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재심사건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진행한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 사건의 세 주인공,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재심'사건에 대한 이야기, 고등어 2마리로 만난 두사람의 인연, 재심과정에서 느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편견,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바로이책에서 만나보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s://goo.gl/KbtfG9
 

 

같이보기

 

월, 2017/02/1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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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 각 언론사 복지담당 및 사회부 기자, 사진기자

발신 :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사무국장 구창우 010-8747-1275, 참여연대 김잔디 010-4917-0702)

제목 : [보도협조] 문형표 이사장,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직권남용 혐의 고발 기자회견

날짜 : 2016. 11. 23.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직권남용 혐의 고발 기자회견

– 11월 24일(목) 오후 1시 30분,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 앞 –

1. 취지와 목적

– 2016.6.16.(목)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주노총, 참여연대는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삼성그룹 총수일가, 구 삼성물산(주) 경영진과 국민연금공단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하여 배임·주가조작의 혐의로 고발하였음.

– 2016.11.15.(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주노총, 참여연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를 뇌물공여죄 또는 제3자뇌물공여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업무상배임) 위반, 뇌물수수죄 등으로 고발하였음.

– 위 고발 이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하여 투자위원회의 회의록에서 주식의 총가치가 적정 합병비율에 비해 삼성이 제시한 합병비율이 3,468억 원이 적다는 것과 국민연금이 손해가 발생할 것을 알고도 합병 전까지 제일모직 주식을 매도하고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한 사실이 드러났음. 더욱이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의 뜻’을 거론하면서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관련자 증언을 보도되었음.

– 이에 내일(11/24) 오후 13시30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국민연금기금의 관리책임을 진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고자 함.

2. 개요

◦ 제목: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직권남용 혐의 고발 기자회견>

◦ 주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 발언자: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집행위원장, 정혜경 민주노총 부위원장,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3. 귀 언론사의 취재와 보도를 요청합니다. 끝.

수, 2016/11/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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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법과 원칙에 따른 결과, 법원은 법과 원칙에 따라 구속영장 발부해야

 

박영수 특검은 오늘(1/16)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와 횡령,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브리핑을 통해 총 뇌물공여액은 430여억 원이며, 이는 단순뇌물죄와 제3자뇌물죄 전반에 대한 수사결과임을 밝혔다. 특히,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참여연대는 특검의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하여 피의자 이재용이 행한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의 가능성에 비추어 법과 원칙에 부합하는 당연한 수사 진행이라고 판단한다. 피의자 이재용은 그 뇌물제공액이 천문학적 금액인 점, 국민의 노후자금을 축낸 대가로 자신의 지분을 확대하였다는 점 등에 비추어 그 뇌물죄의 범죄가 중대하다 아니할 수 없고, 삼성의 사실상 총수 지위에 있고 모든 임직원의 임면을 좌우할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형사책임의 면책을 위한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대행 : 김성진 변호사)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게 될 법원 역시 피의자 이재용의 이러한 범죄의 중대성, 증거인멸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법원칙에 맞게 구속영장을 발부할 것을 기대한다.   

 

오늘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삼성그룹과 재계는 ‘경영진의 부재로 인해 삼성전자가 위기’라는 식의 언론플레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라 할 것이나, 실체가 없는 주장을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 2008년 삼성특검의 삼성총수 이건희에 대한 사법처리와 삼성전자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기업총수의 사법처리와 기업의 경영성과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적용된 430여억 원에 달하는 뇌물공여죄, 수백억에 이르는 횡령죄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져야 할 중대한 범죄이고, 그 범죄의 핵심은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치권력을 뇌물로 샀고,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약 6,000억 원의 손실을 끼쳐가면서 총수 일가는 약 3조 원 상당의 이익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총수의 사법처리에 따른 경영위기는 실증적인 근거도 없는 ‘삼성전자 경영위기 괴담’일 뿐이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존재이유인 사법절차에서 고려될 수준의 주장이 결코 아니다. 만일 지난 2008년에 사법부와 정치권이 이건희 회장의 범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면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삼성과 우리 경제가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여연대는 법원이 특검의 구속영장청구에 대하여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법이 정한 원칙과 상식에 따라 판단할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월, 2017/01/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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