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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166] 한 원어민교사가 우리 시대의 외국인 혐오에 던진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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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166] 한 원어민교사가 우리 시대의 외국인 혐오에 던진 경종

admin | 토, 2020/01/11- 03:47


바야흐로 다문화시대입니다. 지난해 12월 법무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외국인 수는 243만여 명에 달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4.8퍼센트에 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외국인 관광객 2천만명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도심 번화가의 주말은 한국어보다 여러가지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듯 외국인의 존재가 친숙해진 오늘날이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곳곳에 잔존한 '다름'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혐오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29일, 법원은 원어민 강사에게만 에이즈 검사를 강요했던 교육부와 광역시의 지시는 불법적 차별이라며 이에 대한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가 이 판결의 의의를 비평했습니다.


 

한 원어민 교사가 우리 시대의 외국인 혐오에 던진 경종

[광장에 나온 판결] 원어민강사에게 에이즈검사를 강제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5단독 김국식 판사, 2018가단5125207 

https://drive.google.com/open?id=1OjdoluJL2oJELqA_Q8dzYvsiM1VuyWtq" target="_blank" rel="nofollow">[판결문 보기 / 다운로드]

 


한상희 교수 사진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528/234/001/8e852... style="width:176px;height:200px;"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공포는 혐오가 움트는, 최적의 토양이다. 그 공포의 원인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거나 유언비어성의 집단심리에 의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허무맹랑한 혐오는 대중추수주의에 물들기 쉬운 국가에 의해서도 너무도 쉽사리 이루어진다. 2009년 이주노동자에게 에이즈(HIV) 검사를 강요한 교육부와 00광역시 교육청의 조치를 불법적 차별이라 판단하면서, 그에게 국가가 3000만 원을 배상할 것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건의 내역은 이러하다. 뉴질랜드 사람인 A는 2008년 8월 입국하여 울산광역시의 한 초등학교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근무하였다. 이때 그는 고용계약에 따라 자발적으로 에이즈 검사와 마약 반응 검사 등의 검진을 받고 그 결과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1년 후인 2009년, 원어민 영어교육 사업(EPIK)을 주관하던 국립국제교육원은, 원어민교사에게 마약, 에이즈 등의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제출할 것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2009년도 지침>을 마련하였다.

 

지난 1년 동안 원어민 교사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재계약하자는 제안을 받고 있던 A는 이 지침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조치라는 이유를 들어 건강검진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교육감은 그를 재계약 대상에서 빼버렸고, A는 어쩔 수 없이 2009년 9월 대한민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에서 A는 이 지침이 자신의 평등권, 근로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근로자에게 에이즈 검진 결과서 제출을 강요할 수 없도록 한 (구)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나아가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 인종차별 철폐협약 등의 국제인권규범에도 반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그는 2009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한상사중재원에 이런 차별적 조치를 고발하는 진정을 하였으나 이듬해 4월과 6월 각각 거부당하였다. 하지만 유엔은 달랐다. 그가 2012년 12월 유엔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이 사건을 진정하자, 이 위원회는 2015년 5월 제86차회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각하결정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계 외국인교사나 한국인 교사에게는 실시하지 않는 에이즈·마약검사를 외국인 교사에게만 강제하는 것은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위반한 차별임에도 아무런 구제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위원회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A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한편, 외국인 혐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의 조치를 권고하였다(이후 자유권위원회와 사회권위원회도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이 결정과 맥을 같이 한다. 교육청이 A에 대하여 에이즈 검진을 요구한 것은, (구)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위반한 것인 동시에, "감염인 또는 감염인으로 오해받아 불이익을 입을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저버린, 위법성이 농후한 행위로서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는 원어민 영어교육 광풍에 따라 외국인 강사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자녀들에게 '본토식'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욕망과 영어권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틈틈이 보도되는 "불법 외국인 영어 강사"와, "한국여성과 원어민 강사의 교제"에 대한 왜곡된 반감, 극소수 원어민 강사들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생소함 등등이 90년대부터 급격히 증가한 외국인 거주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가중시켰고, 여기서부터 '원어민 강사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자'라는 요구들이 가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성추행-에이즈 위협까지...일부 외국인강사 변태행각 충격"(2007. 5. 27. 스포츠조선)과 같은 가십성 기사는 이런 불안에 불을 붙인다. 

 

<2009년도 지침>은 이와 같은 당대의 공포 위에 만들어진다. 내국인교사나 한국계의 외국인교사에 비하여 일반 외국인이 에이즈에 감염되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가능성이 더 많다는 그 어떠한 증명도 없는 상태에서, 그래서 "갑작스런 정책 변경을 정당화할 만한" 그 어떤 사정도 없는 상황에서 그 지침이 만들어졌다.

 

이 판결이 지적하듯, 2007년 ~ 2009년 사이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으로 계약 해지된 원어민 교사는 겨우 3명에 불과하며, 2013년 ~ 2017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더구나 2010년부터는 이런 에이즈 검사를 요구하는 지침 자체가 폐지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이런 식의 외국인 차별과 혐오를 단 한 치의 반성도 없이 <2009년도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가공해 버렸다. 

 

그래서 A씨의 처절한 투쟁을 두고 "결코 권리 위에 잠자고 있지 않았음"이라 표현한 이 판결문은 "[5년이라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대한민국의 뻔뻔함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원고의 조치에 대하여 다투기만 할 뿐 현재까지도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피고 대한민국의 반인권적 처사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자, 외국인 혐오의 현실을 과감히 깨쳐 나가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뼈아픈 경종이다. 

 

A씨의 진정을 받아들인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법무부는 2017년 7월 외국인 강사에게 에이즈 검사를 강제하던 고시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이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하여 피고 대한민국은 더 이상의 상소를 포기함으로써 그나마 인권보장에 철저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판결의 의미는 그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저지른 반인권적 행위에 대하여 국제인권기구가 구제결정을 내린 경우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 결정이 내려진 때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판결의 내용 또한 우리의 인권을 보장하는 또 하나의 발판으로 자리매김된다. 민변과 경향신문이 이 판결을 2019년 디딤돌 판결(참조 기사)로 선정한 것은 그래서 당연지사이다. 사족으로, 10년 전 A씨의 진정을 각하해버린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판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없음이 아쉽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Judiciary&document_srl=147684...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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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장 시리즈> 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제2화에서는 제주해군기지 설치처분을 다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김필성 변호사의 칼럼을 통해 살펴봅니다.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_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 사건과 환경민주주의_김필성

 

 

[광장에 나온 판결] 대법원 2012. 7. 5. 선고 2011두19239 전원합의체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박일환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주심)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제주해군기지 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변호사

 

 

김필성(변호사, 법무법인 양재)

 

1. 제주해군기지 사건

 

제주해군기지 사건은 지금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여러 다양한 주장들이 존재함에도, 과연 이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점에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이 사건은, 노무현 정권이 제주해군기지 설치 결정을 강행했고,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이 그 공사를 강행하면서 항의하는 국민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처벌을 강행했다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정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동일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현 정권이 집권한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해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2. 사건의 특징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해군기지 설치처분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 그리고 또 하나는 해군기지 설치처분 자체에 하자가 있는지 여부이다.

이 중 첫째 쟁점은 환경영향평가의 완료 시점과 관련된 문제로, 법학적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주제라 볼 수 있으나, 실제 소송과정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진 문제는 둘째 쟁점이었다. 제주해군기지 설치처분은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해군기지의 설치는 두 번째 처분에 근거하여 진행되었는데, 첫째 쟁점은 최초 처분과 관련된 쟁점이었므로, 치열하게 다툴 실익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둘째 쟁점, 즉 설치처분 자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 사회 내에서 여러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환경 보호, 반전 평화, 자주 국방 등의 주제와 관련된 주장들이 다양하게 제출되었다. 그러나 실제 재판과정에서 다퉈진 쟁점은 법정 외의 주장들과는 조금 달랐다. 주로 절차적 하자가 다퉈졌기 때문이다.

 

두 번의 처분 모두에 공통된 것이기는 하지만, 특히 실제 제주해군기지 설치의 근거가 된 두 번째 처분과 관련된 절차적 하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강정마을 내부에서 제주해군기지 설치에 동의하는 결의과정에서 있었던 절차적 하자 문제, 또 하나는 제주도 의회 결의의 절차적 하자 문제이다.

 

이 두 가지 절차적 하자 중 강정마을 내부의 결의 과정에서 있었던 절차적 하자 문제는 제주해군기지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제주도 의회 결의의 하자 부분은 재판의 전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진 매우 중대한 쟁점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특별자치도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법령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이라 한다) 및 그 관련 법령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법령에는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제주도 내 지역 중 특별히 보호가치가 있는 구역을 “보전지역”으로 지정하여, 이 보전지역 내에서는 특정한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규정들이 존재한다.

이 보전지역은 크게 상대보전지역과 절대보전지역으로 나눌 수 있고, 절대보전지역은 다시 3가지 기준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세분한 후, 각 등급에 따라 금지하는 행위들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강정마을의 경우, 절대보전지역의 3가지 기준 모두 1등급에 해당할 정도로 청정한 환경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당연히 1등급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해군기지 설치가 1등급 절대보전지역에서는 금지행위로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정마을에 대한 해군기지 설치처분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강정마을에 대한 1등급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먼저 해제해야 하는데, 1등급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위해서는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강정마을의 1등급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위한 제주도의회의 의결에는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

 

제주도의회에 이 안건이 상정될 무렵에는 이미 제주해군기지 설치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주도 의회 내에서도 이를 격렬히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제주도의회 의장은 이 안건을 본의회에 상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는데, 당시 제주도의회 부의장직을 맡고 있던 아무개 의원이 몇몇 의원들의 지원을 업고 이 안건을 독단적으로 상정한 후 날치기로 통과를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날치기 통과과정이 제주도의회의 공식 의사록에 속기록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으로 그대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의사록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당시 표결에 출석한 의원들의 숫자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표결이 강행되었으며, 실제 찬성한 의원들의 숫자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공문서인 제주도의회의 공식 의사록으로, 당시 표결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입증된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1심 소송이 마무리될 무렵 알게 되었다. 그래서 2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치열하게 다투었고, 국방부는 변론 과정에서 공문서로 입증된 제주도 의회의 날치기 사실에 대해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2심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졌던 이 부분 쟁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축해버린 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갑 제19, 20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 사건 절대보전지역 변경을 위한 제주도의회의 2009. 12. 17.자 동의안 의결 절차에 원고 주장과 같은 안건심의규정위반·표결방법위배·일사부재의의 원칙 위배의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의 위 의결에 터잡아 한 이 사건 고시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이 사건 고시가 무효라고 할 수 없다.

 

한편 대법원은 아예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조차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추상적으로만 설시하여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절대보전지역의 지정 및 변경은 도지사의 재량행위라고 판단한 후, 이 사건 절대보전지역변경(축소)결정은 강정마을 내의 절대보전지역 중 이 사건 사업부지에 속한 105,295㎡를 해제하여 절대보전지역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므로 주민의견 청취절차가 필요 없고, 도지사가 관계 법령의 범위 내에서 도의회의 동의를 얻어 정책상의 전문적·기술적 판단을 기초로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행한 적법한 처분으로 봄이 상당하고, 거기에 사실오인, 비례·평등의 원칙 위반, 당해 행위의 목적 위반이나 동기의 부정 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위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절대보전지역의 지정 및 변경행위의 성격, 주민의견 청취절차의 필요성 및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

 

3. 환경과 민주주의

 

행정소송에서 절차적 하자를 중점적으로 다투는 것은 일종의 소송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행정행위는 행정청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재량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정청의 행위가 재량권을 벗어난 위법한 행위라고 인정받기는 쉽지 않지만, 법적 절차는 행정청에게 재량이 인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위법성을 입증하는 것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해군기지 사건 소송에서 절차적 문제가 주된 쟁점이었던 이유는 단순한 소송 기법상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해군기지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한 가치는 환경보호, 반전 등이었다. 이러한 가치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보 등의 가치도 그러한 가치들만큼이나 중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 반전등의 가치들보다 안보라는 가치가 우선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설사 제주해군기지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 사안마다 이렇게 서로 경쟁하는 가치들 중 어떤 가치가 우선해야 하는지, 사회 내에서 충분히 논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해군기치 설치 여부가 문제라면, 제주해군기지를 설치하려는 쪽에서는 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해야 하는지, 제주도에 설치한다면 왜 제주도 내에서도 가장 청정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경청해야 하고,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왜 국방부가 제주 강정마을에 제주해군기지를 설치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충분히 반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들이 공정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 사회 전체가 합의점을 찾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원리가 문제해결 절차에서 관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해군기지 설치 과정에서, 이러한 민주주의 원리가 지켜지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해군기지 설치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을 한 일이 없으며, 오히려 강정마을에 설치를 결정하고 이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과거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필자는 이 부분이 제주해군기지 설치 처분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라고 판단하였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극적으로 드러난 지점이 제주도 의회의 날치기 사건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부분을 소송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설정하고 재판을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원고의 주장을 일축함으로써, 이 부분에 대한 판단 자체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필자는 결국 법원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만 것이라고 생각한다.

 

4.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제주해군기지 설치 처분은 행정청이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무시하고 강행한 것으로, 참여정부 역시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군사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참여정부 이후 다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의 계승자들이 적어도 제주해군기지 설치와 관련해서는 참여정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아쉽게 여기는 부분은, 이 사건에서 사법부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법부는 헌법 체계 내에서 법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여야 함에도, 제주해군기지 사건에서 행정부의 결정에 대해 판단을 주저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결국 과거 군사정권의 사법부 수준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말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제주해군기지 사건이야말로 지난 대법원장이 이끌었던 사법부의 특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 2017/06/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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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제3화는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범위를 제한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의 칼럼을 통해 알아봅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광장에 나온 판결]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이상희 변호사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

 

1.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의 의미

 

2000년대 한국사회의 화두는 과거청산이었다. 국가폭력의 진상을 드러내고 피해자를 구제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민주화 과정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특히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이는 사법부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위법, 부당한 공권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권력의 조작, 은폐에 대한 진실규명을 방해하거나 가담했기 때문이다.

 

과거사 사건은 '①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 의혹 사건, ② 공권력의 조작 또는 은폐와 진실규명 방해'라는 2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심요건이나 소멸시효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힐 경우에 개별 판결을 통한 과거청산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참고로, 국가를 상대로 책임(손해배상)을 묻기 위해서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5년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유엔총회가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인권침해와 국제인도주의법의 중대한 위반행위 피해자를 위한 구제 및 배상을 위한 기본 원칙과 지침'에서도 ①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민사적 손해배상청구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② 정부가 중대한 인권침해의 진실을 은폐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거나 정부가 그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한 때로부터 시효가 진행된다는 중요한 원칙을 천명하였다.

 

2.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사법부 

 

1) 하급심의 태도 

 

법원은 2003년 수지 김 사건 판결에서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1987년 한국 여성 수지 김이 살해되자 국가안전기획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오히려 수지 김을 북한의 공작원으로 조작하였다. 

 

뒤늦게 진실이 규명되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법원은 국가가 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하다가 이제 와서 진실을 알지 못했던 유족들에게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 후 법원은 최종길 교수 사건 등에서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 법원은 형사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2) 대법원의 과거청산 

 

대법원은 2010년 12월 16일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하여 위헌, 무효를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1월 20일 조봉암 형사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2011년 6월 30일에는 울산보도연맹 사건에서 사법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울산보도연맹 사건에서, 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여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② 지금까지 국가가 진실을 은폐하여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는데, 뒤늦게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유족들에게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3.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에 제동을 건 대법원 판결 

 

1) 대법원이 2011년 1월 13일 처음으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결정이 내려진 재심 무죄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판결했는데, 이 판결은 그 당시 잇따른 과거사 사건의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대법원은 '과잉배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자 기산점을 기존의 법리와 다르게 사실심 변론종결일로 변경하는 판결을 하였다. 이 판결은 과거사 사건에 대해 '장기간의 세월', '통화가치의 상당한 변동'이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동원하여 굳이 기존 법리까지 무시해가면서 손해의 범위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 그런데 더 나아가 대법원은 2013년 5월 16일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에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상당히 제한하는 소멸시효 법리를 만들어 적용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을 통한 민주화에 역행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에서 대법원은 국가가 사건을 조작 또는 자료를 은폐했거나, 전쟁과 같은 국가위난의 시기에 국가권력이 폭력을 비호하거나 묵인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이 소멸시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즉,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당시에 무조건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가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립하여 진실규명을 한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니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시효를 문제삼지 않고 국가책임을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사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해자도 무죄판결 확정일 또는 형사보상결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지만 국가책임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하급심은 무죄판결을 받고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는데, 대법원이 자의적으로 그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급심 판결만 믿고 소송 준비로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낸 피해자들은 자의적인 대법원 판결 때문에 국가의 책임도 묻지 못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 6개월이 왜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른 채 말이다.

 

4. 결론

 

대법원은 2012년 이후 유독 과거사 사건에서만 자의적으로 권리구제의 기준을 변경하거나,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기존의 대법원 판결과 상반된 법리로 국가의 책임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겸허하게 과거를 반성하고 진지하게 피해자의 인권에 귀를 기울이며 공권력의 위법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묻는 사법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목, 2017/06/2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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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③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이상희)

 

 

[광장에 나온 판결]대법원 2014.11. 13. 선고 2014다20875.20882 판결[대법관 권순일(재판장) 민일영 박보영(주심) 김신]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 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

김태욱 변호사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1. 무엇인가에 쫓기듯 선고된 대법원 판결

 

2014년 2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아 무효라고 선고하였다. 2009년 초두부터 시작되어 무려 2646명(이중 생산직은 2319명으로서 당시 생산직 전체 인원의 45.5%)이나 되는 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잃게 한 쌍용차 구조조정(정리해고 일자는 2009년 6월 8일)이 부당하다는 점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고등법원 판결은 불과 9개월 후인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고 만다. 도대체 대법원이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한 이유, 그것도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듯 이렇게 초고속으로 선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 계속 완화되는 정리해고 법리

 

정리해고 입법화 이전에도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가능하다고 판시해왔다. 다만, 지금처럼은 아니었고 소위 정리해고의 4개 요건(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노력, 충분한 협의, 정당한 해고대상자 선정)을 모두 구비할 경우에 가능하고 특히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도산을 회피하기 어려운 경우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1997년 정리해고가 입법화 된 이후부터 오히려 대법원은 정리해고 요건을 계속 완화하는 해석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으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장래에 올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경우"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정리해고 4개 요건 중에 일부가 구비되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봐서 유효일 수 있다는 해석까지 하기 시작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문언상 위와 같은 해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법원이 사실상 법률을 만든 것인데, 입법부의 권한까지 월권을 하고 있는 셈이다.

 

3. 정리해고에 고속도로를 깐 쌍용차 대법원 판결

 

그런데 쌍용차 2심 판결은 이런 대법원 판결의 추세와 달리,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대로 정리해고의 정당성은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명확히 판시하였다. 특히 쌍용차 사건에서의 중요한 쟁점이었던 회계부정(즉, 유형자산손상차손-진부화 등으로 유형자산의 사용 및 처분으로부터 기대되는 미래 현금흐름 총액이 장부가액에 미달할 경우 그 차액을 손상차손으로 처리하는 것-을 과대 계상) 문제에 대해서도, 구(舊)차종을 상당 부분 단종시킨 것을 전제로 매출을 추정하면서도 후속 신(新)차종(이미 개발이 끝난 차종 포함)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 (유형자산손상차손의 전제인) '계속기업가정'(폐업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는 가정)에 위반된 모순된 주장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2심 판결은 회계부정 문제 뿐 아니라 정리해고의 나머지 요건에 대해서도 엄격한 입장을 원칙적으로 유지하였다. 즉, 장기간의 워크아웃에도 불구하고 쌍용차의 경쟁력 자체가 상당 기간 유지되고 있었던 점, 쌍용차가 주장하는 경영위기가 구조적, 계속적 위기라고 볼 수 없는 점,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 되었던 대주주(상하이차)가 회생절차를 통하여 교체될 기회가 주어진 점, 정리해고 규모가 과다한 점 등을 이유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부정했다. 또한 해고회피노력과 관련해서도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희망퇴직 등의 조치는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것이므로 해고회피노력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와 같은 2심 판결을 그야말로 전부 뒤집었다.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대계상과 관련해서는 "회사의 예상 매출 수량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과대계상되지 않았다고 하였고, 유동성 위기도 존재했으며 쌍용차의 경쟁력 상실은 계속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정리해고 규모에 대해서도 "잉여인력이 몇 명인지 등은 경영판단의 문제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해고회피 노력에 대해서도, 고용관계 종료하는 희망퇴직을 꼭 나중에 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해고회피노력도 다한 것처럼 판시하였다.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단은 객관적 증거에도 반하는 것으로서 문제가 심각했다. 특히  ① 회계 부정 관련하여 "다소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 부분은 회계 부정이 만연(ex. 얼마 전 대우조선 분식회계로 안진회계법인 회계사 실형 선고)하고, 몇몇 회계 지표만으로도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다고 쉽게 선고해버리는 한국의 실태에서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에 대한 사법 심사를 거의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② 또한 정리해고 규모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하라는 것은 기존의 잘못된 대법원 판결(동서공업 판결)의 내용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와 해고회피 노력에 대한 사법심사를 크게 완화하는 것이다. ③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희망퇴직은 현실에서는 정리해고와 거의 동일한 의미인데 이를 해고회피 노력으로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리해고는 최후수단이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쌍용차 대법원 판결은 정리해고에 고속도로를 깐 판결이라고 평할 수 있다.

 

4.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 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

 

쌍용차 정리해고라고 하면 아마도 대규모 정리해고라는 것 외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같이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누군가는 강성노조라고도 부르는) 노동자들(구조조정은 비정규직이 제일 먼저이다)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즉, 한국 헌법은 노동조건을 향상하고 지키기 위해서 단체행동권(파업)과 근로기준법 등에 의한 사법심사라는 2가지 방법을 노동자들에게 주었으나,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파업을 하면 그 자체로 불법 파업이 되어 거액의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을 당하고, 대법원은 갈수록 정리해고에 대한 사법심사를 완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정리해고에 대응할 수 있는 2가지 방식이 모두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쌍용차 정리해고에 관한 2심 판결은 적극적이고 문언에 충실한 해석을 통해 2가지 방식 중 1가지(사법심사)라도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대법원은 마치 무엇에라도 쫓기듯이 단 9개월만에 이를 파기해버렸다. 대법원은 정리해고 앞에서 노동자들은 한낱 "생산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철저하게 알려주고 싶었나보다. 그것이 이처럼 신속하고 자세하게 2심 판결을 파기한 대법원의 잔인한 의도였던 것 같다.
 

수, 2017/07/0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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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③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이상희)

 ④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김태욱)

 

[광장에 나온 판결] ①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다26746 전원합의체 판결
② 2011다53683,53690 전원합의체 판결 ③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④ 2012다1146,1153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박선종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박선종(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지난 6월 20일 국회 간담회를 통하여, ‘키코(Kiko: Knock in Knock out- 중소기업이 극히 제한된 기대이익을 대가로 무제한의 위험에 처하게 된 파생금융상품) 사건'의 피해기업들과 투자자들이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사건의 실체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에 따르면 초기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에 가입한 기업은 1000개를 넘었고, 피해 규모는 최소 3조원 수준이며 도산과 상장폐지 등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까지 보태면 10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규모도 크지만 피해 당사자가 한국 경제와 함께 견실하게 성장해온 수출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키코 사건은 우리 경제에 큰 상처를 입혔다. 

 

키코 사건의 본질

 

키코 사건의 본질에 대하여는 은행의 사기행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기업 측의 입장과 기업의 투기에 기인한 것이라는 은행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IMF 자료에 따르면, 키코와 유사한 형태의 파생상품에 기인한 거대손실 사례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지역 뿐만 아니라, 브라질,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과 폴란드 등 유럽 지역에서도 발생하였다. 각국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주요 쟁점은 어김없이 은행의 '사기' 여부였다. 키코와 동일한 구조의 파생상품은 미국이나 이탈리아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인도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일찌감치 사기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검찰이 기소조차 제대로 못해본 상태에서 민사소송에서 사기가 아니라는 이례적인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2013년 9월 26일 4건의 키코 사건 전원합의체판결(세신정밀, 삼코, 수산중공업, 모나미)에서 키코 상품의 본질에 관하여 헤지(Hedge: 위험회피) 부적합성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기 또는 착오로 인한 취소 등 기업 측이 주장한 무효 또는 취소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실상 대법원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판단한 것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에 집중되었다. 

 

키코 사태의 본질은 ‘사기적 판매행위’ 인데, 우리 대법원이 이를 밝히지 못한 점은 진실 규명과 사법 정의 차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은행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투기 상품을 기업의 헤지 상품으로 호도하다 보니, 사기나 착오의 문제가 대법원에서는 깊게 다루어지지도 못하였다는 점 또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은행측이 사기라는 주장의 근거
 
키코 소송에서 은행은 키코 상품을 일종의 보험상품(헤지상품)으로 판매하였다고 주장하고, 기업도 환율변동에 대한 보험상품으로 알고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주장하며, 각급 법원도 단 한건의 예외도 없이 보험상품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험계약자인 기업이 거액의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으로 인하여 거액의 손해를 입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업 주장의 요점은 거액의 손실 자체가 키코상품은 보험상품이 아닌 투자상품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은행이 투자상품을 보험상품으로 가장하여 판매한 것은 ‘사기’라는 것이다.  키코 법정에서 한 재판관이 은행측에게 물었다. "카지노에서도 6:4 비율 정도의 승률은 지켜지고 있는데, 키코사태는 12:0으로 중소기업이 완전히 잃고 있는데 이 정도면 사기 아닌가요?"  이에 관한 대법원 민사판결의 입장은 키코가 ‘헤지상품’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단의 근본적 오류
  
대법원 판단의 근본적 오류는 ‘헤지거래를 하려는 당사자가 현물의 가격변동과 관련하여 특별한 전망이나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특정 구간에서만 위험회피가 되는 헤지거래도 다른 거래조건들과 함께 고려하여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구간에서 위험회피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적으로 헤지에 부적합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내용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대법원은 키코 상품이 가격변동의 일부구간에서라도 헤지기능이 있으므로 헤지상품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수많은 기업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키코 계약을 체결했다가, 도리어 거대손실로 도산했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변동위험은 일부구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격변동의 전체구간에 걸쳐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의 제거 내지 감소 여부는 전체구간을 대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즉, 실제로 헤지의 효과는 가격변동위험의 일부구간에만 작용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전체 구간에서 작용하여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실, 헤지하고자 하는 위험이 일부구간에만 존재하는 작은 위험이라면 굳이 보험을 가입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이러한 키코상품의 근본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일부구간에서 헤지가 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부분 헤지(partial hedge)’로 포섭하며, 헤지 거래로 판단하고 있어 상품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 대로 키코가 부분 헤지 상품이었다면, 위험을 부분적으로 밖에 회피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지언정, 그 상품의 구입으로 인한 거대 손실이 발생할 까닭은 없다. 

 

감기보험과 암보험

 

대법원은, 키코가 발생가능성이 낮은 위험은 기업이 스스로 감수하고, 발생가능성이 높은 위험에 한정하여 헤지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위험의 헤지 여부 판단에 있어서는 발생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위험의 크기가 중요한데, 대법원은 위험의 크기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즉, 발생가능성이 아무리 높더라도 위험의 크기가 작다면 헤지의 필요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감기는 발생가능성이 높지만 위험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감기보험을 별도로 가입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법원의 판단을 비유하자면, 키코계약에서 기업은 발생가능성이 높지만 작은 위험인 ‘감기의 위험’만 보험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발생가능성이 낮지만 큰 위험인 ‘암의 위험’은 무보험으로 스스로 감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키코상품은 왜 더 이상 판매가 안 되는가?

 

 키코상품이 대법원의 판단대로 이색적이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범위에 드는 헤지상품일까? 키코상품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만약 문제가 없는 상품이라면 은행은 유사한 상품을 계속 기업들에게 판매할 수 있어야 하는데, 키코상품의 판매가 중단된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분적으로는 키코를 통하여 환헤지를 하던 많은 수출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경험함으로써 얻은 학습효과로서, 키코와 유사한 구조의 상품이 환율헤지라는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직접 체득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보험계약을 체결했는데, 거대손실로 기업이 도산했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외면하는 대법원의 판단을 평균적인 소박한 시민의 상식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요컨대, 키코 상품은 전체 구간을 통해 헤지가 가능하지 않은 상품으로서 본질적으로 헤지 상품이 될 수 없었다. 백번 양보하여 이 상품의 본질을 모르고 감기 보험인 줄 모르고 들었다가 대신 암의 위험을 감수하게 되면서, 결국 수많은 견실한 수출 중소기업들이 도산에 이르게 된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피해 중소기업들에게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로부터 적절한 손해배상의 길을 가로막아버린 대법원 판결의 오류가 지금이라도 바로잡히길 바라며, 나아가 검찰 조사를 통해 키코상품 판매에 있어서 은행의 사기성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수, 2017/07/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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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아픔, 이제는 ‘손잡고’ 가자 – [국가손배대응모임]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합리적 판결을 기대하며   김제완(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해고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
월, 2017/07/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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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노출되어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태아의 선천성 질환을 산재로 인정해달라는 이 여성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업무환경과 태아의 선천성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부인된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현행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에 대해 적용되는데, 이미 출생한 자녀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업무상 환경에 의해 장애를 입고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요? 조영관 변호사의 비평칼럼을 통해 이번 고등판결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태아의 선천적 장애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서울고등법원 판결

 

참을 수 없는 판결의 가벼움 : 신생아에게 직접 산재보험을 청구하라는 법원

서울고등법원 2015누31307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조영관 변호사

조영관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법은 최소한이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마땅히 지켜야 하는 원칙 중 최소한을 “법” 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한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일을 빠짐없이 ‘법“으로 정해둘 수 없기 때문이고, 뒤집어 생각해보면 “법”이 미처 정하지 못한 공백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원칙에 따라 메워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법의 흠결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자신의 “양심” 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03조). 가장 정제된 법 규범에 의하여, 가장 논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에게 “양심” 이라는 뜨거운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정한 이유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것은 법관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법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 해석에 매우 소극적이다.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판결에서는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정의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신의성실, 사회통념상 합리성, 관습헌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형식적인 법논리에 매여 정작 중요한 원칙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유행어에 빗대면, “뭣이 중헌지” 전혀 모르는 모양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판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만약, 임신 중인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하여 태아가 유산되었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어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런데 만약 태아가 포태 중 사망하지 않고,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라면 어떨까? 태아에게 발생한 질환이 출생 이후의 요인에 의한 후천적 질병이 아닌 선천성 질환이 분명하고, 그 발병요인도 포태 중 업무상 유해요인에 의한 것임이 의학적으로 분명하다면 태아의 선천적 질환 역시 “업무상 재해”에 준하여 치료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사안은 이렇다. 2009년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들 중 15명이 임신을 하였는데, 그 중 5명은 유산을 하였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결국 간호사의 근로여건과 작업환경이 노사간 쟁점이 되었고, 제주의료원은 2011년에 노사합의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역학조사 결과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주의료원에서 임신 중에 근무하면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주야간 교대근무,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ㆍ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으므로, 이러한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 고 하여 업무상 인과관계가 인정되었고, 이에 선천성 심장질환을 출산한 근로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였다. 1심 법원은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산재보험의 대상이 되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 된다고 판단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을 적용대상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근로자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병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항소심 법원은 판결문에서 “출산 이후에는 어머니가 아닌 출산아가 지닌 선천성 질병으로 바뀌므로 그 업무상 재해는 원고(어머니)들과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원고들의 자녀에 대한 질병” 이라고 하면서,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되는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 이므로, “산재보험법이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그 근로자가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 이상 원고들이 아닌 자녀(신생아)에게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 되므로 원고들에게는 수급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로 있을 때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던 질병이, 살아서 태어난 이후에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신생아의 선천성 질병으로 바뀐다는 해석도 기괴하고 소름이 돋지만, 산재보험의 수급권이 신생아에게 있을 뿐 근로자인 산모에게 없으니 청구를 기각한다는 대목에서는 그 논리의 가벼움에 부끄러워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태아가 산재보험을 청구하면 근로자가 아니라서 인정할 수 없다고 할 텐데. 앞으로 임신한 여성노동자는 출산을 앞두고 태아의 이름으로 산재보험에 가입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선천성 질환이라는 상처를 온몸으로 껴안고 태어난 것이 무슨 잘못이기에 공적인 보호를 배제하겠다는 것인가? 산재보험 제도가 정말 그런 것인가?

 

산재보험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적보험이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6조 제2항). 우리 헌법이 모성권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재생산 과정 없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으므로 임신, 출산, 양육에 필요한 보호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아니하고 공공영역에서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헌법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선언(헌법 제32조 제4항)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여성과 태아가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모성보호와 여성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천명하고 있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임신 중인 여성근로자에 대한 내용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현대 산업보건학계에서 유산이나 불임, 2세의 선천성 질환과 같은 생식보건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분야의 산업현장에 만연한 교대근무제가 노동자의 생식기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도 많다. 즉 생식보건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함에도,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그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2세의 선천성 질환’ 문제에 대하여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매우 중대한 제도적 불비이고 입법의 흠결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우리 법원처럼 형식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았다. 

 

독일의 경우가 좋은 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여성 노동자가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선천성 장애아가 출생한 사건에서 “산재보험에서 보험사고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발생한 재해[…]” 라고만 규정하고 있었던 당시의 독일제국보험법(RVO) 제539조 제1항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그 장애아를 산재보험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독일기본법 제20조 제1항의 사회국가원리를 구현함에 있어서 ‘본성상 단일체’(natürliche Einheit)인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독일기본법 제3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위헌결정을 하였다. 1977년에 있었던 판결이다. 

 

이후, 입법부는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취지를 반영하여, 독일사회법제 제7권 제12조에서  “임신 중 모(母)의 보험사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보험사고에 해당하며, 그러한 한도 내에서 태아는 피보험자와 동일하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모에게 업무상 질병을 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유해요소로 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비록 모에게는 업무상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보험사고로 본다.” 라고 규정하였다. 동일하게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업무에 따른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40년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두 나라 법원이 보여준 상반된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토록 하는 것”(서울행정법원 2014. 11. 7. 선고 2011구단8751 판결 등)이다. 이 사건 원고들의 자녀가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은 제주의료원에서 발생한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하고, 그러한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지 않고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분담토록 하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목적에 충실한 해석이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월, 2016/06/2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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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③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이상희)

 ④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 (김태욱)

 ⑤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박선종)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부정한 시대착오적인 판결

기성회비 합법화는 공적 책임의 방기일 뿐이다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기성회비 징수에 법적 근거가 필요 없다(?) 

 

2015년 6월 25일 대법원(대법원장: 양승태)은 시대 흐름과 걸맞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국립대학이 영조물인 국립대학의 사용료로서의 실질을 가지는 비용을 직접 납부 받지 아니하고 영조물 이용자인 학생이나 학부모로 구성된 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대학의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역무와 교육시설의 제공에 사용하더라도 이를 두고 교육 관련 법령의 취지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기성회비 징수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해 버렸다. 


이 사건의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재판장 김용대)은 기성회비 징수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즉 기성회비는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항의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에 포함되지 않으며, 기성회비를 영조물 사용의 대가로 볼 수 없기에 학칙 역시 근거가 될 수 없다. 기성회 규약에 따른 징수는 가능하나, 가입하지 않은 경우 강제 징수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종래 징수한 기성회비에 대해서 기성회는 부당이득을 반환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보았다. 


기성회는 편법 아니면 불법, 역사에 묻어야 할 부끄러운 유산


이 사건의 쟁점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논점은 대학운영경비를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헌법과 법령의 규정일 것이다. 헌법은 교육제도에 대한 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의 설치주체는 국가이다. 따라서 국립대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책무이다. 그리고 학생은 이차적으로 수업료 등을 부담하여 대학운영경비의 일부를 제공한다(고등교육법 제3조, 제4조, 제7조, 제11조).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국립대학의 운영경비를 부담하는 기성회라는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는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학의 설립과 운영의 기본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대학설립운영규정 참조). 이런 맥락에서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대법관 박보영, 고영한, 김신,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이 타당하다. 


대법원도 인정하듯 해방이후 국가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성회의 존재를 정당화시킬 수는 있다. 즉 국가가 충분한 재정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운영경비의 결손부분을 기성회에 기성회비로 전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편법이거나 불법이지 적법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판결을 내렸다면 헌법에 합치하는 고등교육관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국립대학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부정하는 판결로 인하여 국립대학마저 사립대학처럼 사적 책임의 대상으로 변질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부가 기성회비 대책으로 입법한 것이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국립대학회계법」)이다. 이 법률은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통합시켜 버렸다. 종래 학부모가 부담하던 기성회비가 학생이 부담해도 되는 교육경비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국립대학회계법」: 기성회비의 잘못된 해결방식이자 국립대학 재정자율의 질식


정부가 「국립대학회계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한 것은 국립대학 선진화정책의 일환이었다. 즉 국립대학 법인화정책이 국립대학구성원의 저항으로 실패하자 그 우회로로 선택한 것이 국립대학 선진화(?)정책이었다. 그리고 그 정책의 핵심이 바로 「국립대학회계법」의 제정이었다. 


「국립대학회계법」은 복식부기를 도입하여 재정·회계의 투명성을 높인 점은 장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단점이 너무나 많다. 국가의 관료주의적 통제와 감시가 강화되어 대학의 재정적 자율이 질식될 정도이다. 교육부는 국가관리감독권으로서 감시권(자료제출), 동의 또는 승인권, 훈령권 등을 통해 대학의 재정운영 및 회계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편성 운용하던 기성회계를 대학회계로 사실상 편입시켜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모든 대학경비지출에 대하여 국가가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국립대학 운영경비에 대한 국가의 안정적인 지원이 전혀 담보되고 있지 못한 점이다. 「국립대학회계법」은 “국가는 국립대학의 교육 및 연구의 질 향상과 노후시설 및 실험·실습 기자재 교체 등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동법 제4조 제1항)고 규정하고, 이어 “국가는 종전의 각 국립대학의 예산, 고등교육예산 규모 및 그 증가율 등을 고려하여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등 국립대학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각각 총액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동법 제4조 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들만 본다면 공적 책임감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지원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들 조항의 핵심은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등 사업별로 목적을 특정하여 각각 총액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는 부분이다. 즉 항목별로 칸막이를 설치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적 판단이나 운영에 심각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관료의 개입은 국립대학의 예산 삭감이나 자발적 법인화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고등교육의 중요성과 국가의 공적 책임 확보의 필요성


주지하다시피 헌법과 관련 법령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고등교육이 사립대학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비율이 78%나 된다. 이는 90% 이상이 국공립대학에 다니는 유럽국가나 82%가 주립대학에 다니는 미국(4년제 대학 기준, 영리대학 제외)과 비교해도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하여 고등교육여건은 매우 부실하다. OECD 국가들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지출평균은 GDP의 1.6%인데 비하여 한국은 0.8%에 불과하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고등교육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유럽국가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루벵선언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에게 직면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문화적‧사회적 발전을 끌어내기 위해 고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우선으로 고등교육분야에 공적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월, 2017/07/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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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06. 15.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 곽노현

06. 21. ② 제주해군기지 사건과 환경민주주의 / 김필성

06. 28.  '시효' 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 이상희

07. 05. ④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 / 김태욱

07. 12. ⑤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 박선종

07. 24. ⑥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부정한 시대착오적인 판결 / 임재홍

 

[광장에 나온 판결] 문인간첩단 사건(2015.1.22.선고 2012다204365판결, 전원합의체)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박보영, 조희대, 권순일, 김신, (다수의견)/ 이상훈, 김용덕, 고영한(주심), 김창석,  김소영(소수의견)

 

대법원, 민주화의 이름으로 비수를 꽂다

 

변호사 조영선 

 

너무도 짧은 봄날

 

대법원 긴급조치 제1호 위헌판결(2010.12.16.선고 2010도5986 판결)은 1970년대 유신긴급조치 시대에 대한 첫 사법적 단죄였다. 긴급조치를 발동할 상황도 목적도 아니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음이 30년 넘어 때늦게나마 확인된 것이다. 과거 긴급조치 정찰제 판결을 했던 사법부가 비로소 자기 판결로써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몸부림을 한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과거 한국전쟁 전후 울산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 피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한 뒤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를 인용하였다(대법원 2011.6.30.선고 2009다72599판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긴급조치 사건, 재일동포 사건 등 많은 과거사 문제의 법률적 쟁점이었던 소멸시효, 법률의 위헌 여부, 입증정도 등에 관한 대법원의 전향적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봄날은 너무도 짧았다. 

 

2011. 9.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출범하다 

 

울산보도연맹 사건 이후 법원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결정이 있은 때까지를 시효중단으로 보고 3년 시효를 적용하여 피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진도 민간인 학살사건(2013.5.16. 선고 2012다02819 전원합의체)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소멸시효를 6개월로 단축하는 한편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도 진화위 결정 후 3년으로 판시함으로써 퇴행의 전초를 마련하였다. 결국 고문ㆍ폭행, 증거 조작에 의해 파출소장 딸을 강도ㆍ살인하였다는 누명을 쓴 채 15년을 산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단 한 푼의 국가배상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이른바 1970년대 여성 노동조합운동의 상징이었던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2014.3.13.선고 2012다45603판결)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재판상 화해규정을 적용하여 기각하였다. 이후 원풍모방 노동자 사건(2014.4.30.선고 2012다202192판결), 문인간첩단 사건(2015.1.22.선고 2012다204365판결, 전원합의체, 이하 ‘비평대상판결’이라 한다), 그리고 백기완 사건(2015.7.23.선고 2015다212695판결) 등 수많은 긴급조치 사건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현재까지 부인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대법원(2015.3.26.선고 2012다48824판결)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써,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마저 부인하였다. 이로써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이유로,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화해규정에 의해 이중 삼중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대부분 국가배상 청구를 부인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연출한 과거사 퇴행의 백미라 할 것이다. 

 

대법원, 민주화의 이름으로 비수를 꽂다


비평대상판결 다수의견은 민주화운동관련자가 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위자료를 포함하여 그가 보상금 등을 지급받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위원회가 결정한 보상금을 받았다면 그 이후에는 추가적으로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어떤 피해보상도 더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상금 지급 이후 원고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아 그 억울함이 밝혀졌더라도 말이다. 

 

애초에 민주화보상법은 2010. 1. 12. 제정할 때, 5.18 보상법과 동일하게 진상규명과 실질적 보상을 전제로 재판상화해규정을 두었던 것인데, 5.18보상법과 같은 실질적 보상은 되지 않고 재판상 화해 규정만 삭제되지 않은 채 유령처럼 남게 된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2013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 화해 주장을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피고 대한민국이 보다 본격적으로 주장하고, 법원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사실 피해자는 민주화보상법에 의한 보상청구 당시 나중에 형사재심과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비평대상판결 소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피해자가 보상금 등을 받았을 때 나중에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무죄가 선고되는 사정이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가 그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였더라도,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의한 복역 등으로 입은 정신적 손해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타당하다. 소수의견은 적어도 동의 이후 재심무죄,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정까지 포함해서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이후의 정신적 위자료 청구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보상법에 의하면 변호사 등 전문직, 일정 직급 이상 공무원, 일정소득 수준 이상의 피해자들은 보상 등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곤궁하여 보상금 등을 받은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여유가 있는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역차별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재판상화해규정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곤궁한 피해자들은 대한민국으로부터 ‘알량한’ 몇 푼 보상 등을 받고 국가배상청구권을 빼앗긴 것이다. 

 

보상과 배상이 헌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다른 성격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비평대상판결 다수의견은 위헌적인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규정을 형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재판상화해, 헌법재판소에서 잠자다 

 

그래도 용기 있는 판사는 있기 마련이다. 지난 2014.6.11. 서울중앙지방법원(2014카기50515결정)은 ‘재판상 화해규정은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하게 재판 및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고, ‘실질적 보상 없이 생활지원금 5천만 원 한도에서 지급하면서 재판상화해까지 적용하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재판상 화해규정에 대한 위헌심사를 제청하였다.

 

그런데 굳이 ‘용기’라고 하는 것은 2013년 이래 대법원의 위와 같은 퇴행적, 반역사적 판결에 대해 하급심의 침묵이 너무도 길기 때문이다. 손꼽을 몇 개의 판결을 제외하고 누구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대법원 판결에 대들지 않았다.  

 

결국 민주화보상법 상 재판상화해규정의 위헌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재판부가 위헌제청을 한지 3년이 넘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헌법재판소의 ‘용기(?)있는’ 전향적 결정을 학수고대한다. 

 

*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다른 법률에 따른 보상 등과의 관계 등) ② 이 법에 따른 보상금등의 지급 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경우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목, 2017/07/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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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으로 날아오른 제주공항 비정규직

- 제주공항공사 불법파견 승소판결

[광장에 나온 판결] 제주지방법원 2017. 10. 26. 선고 2016가합12607 판결(재판장 서현석 판사 김봉준 서영우)

 

최종연 / 변호사(노동법률사무소 새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들어가며 – 공항 비정규직이라는 적폐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하여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었다. 탑승객이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비행기를 탑승할 때까지 마주치는 공항 직원 – 청소, 시설관리, 특수경비원, 보안검색직, 수화물시설 운영, 탑승교 직원 등 – 의 사실상 전부가 비정규직 근로자이고,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비중이 2016년 10월 기준으로 84.2%에 달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약속은 상당한 사회적 기대를 받고 있다.

 

약 6개월여가 지난 현재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범위 및 방법론상의 문제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번에는 제주에서 전혀 뜻밖의 불법파견소송 승소 소식이 들려왔다. 협력업체 소속으로서 제주국제공항에 근무하였던 폭발물 처리요원(소위 'EOD'요원)이 한국공항공사와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국공항공사에게 고용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위 '파견법'과 '파견소송'의 배경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견법의 도입 배경

 

'파견', 즉 '근로자파견'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지 아니하고 필요할 때 공급받아 사용하는 한 형태이다. 근로자파견이 자유로이 허용되면 누군가는 근로자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인력 관리만 하면서 영리를 취할 우려가 있으므로 종래부터 근로기준법 및 직업안정법은 노동조합을 제외하고 근로자파견사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1998. 2. 9. 노사정합의의 한 내용으로 근로자파견제도의 도입이 합의되면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 도입된다. 파견법은 파견의 사유, 파견의 기간, 파견사업의 허가에 관한 사항을 정하면서, 원칙적으로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한 전문지식ㆍ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로 제한하고, 파견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그 다음날부터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이른바 '고용의제'조항을 규정하였다(제6조 제3항).

 

파견소송의 간략한 역사

 

만약 불법한 근로자파견관계에서 근로기간이 2년이 넘었다면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그 유명한 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2320 판결에서 대법원은 고용간주조항이 적법한 근로자파견에만 적용된다고 축소해석된다고 볼 근거가 없으므로, 불법파견 근로자도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되어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이후 파견법 해당 조항이 '고용의무'조항으로 개정되었어도 '고용의제'가 '고용의무'로 바뀌었을 뿐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으로 판단된 근로자를 고용하여야 한다는 법원의 태도는 유지되었고, 결국 2012년 파견법 개정으로 근로기간 2년이 지나지 않아도 불법파견 근로자를 즉시 고용할 의무가 입법되었다.

 

결국 파견법에 따라 근로자 입장에서는 파견대상업무가 아닌 업종에서 내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는 점, 또는 파견대상업무에 해당하나 2년을 초과했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는 기준은 어느 것이 있을까? 기념비적이면서도 안타까운 2015년 2월 26일, 대법원은 세 건의 파견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면서 그 기준을 제시한다. 대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를 ① 제3자의 상당한 지휘ㆍ명령, ② 제3자의 사업 편입, ③ 원고용주의 독자적 권한 여부, ④ 계약의 한정성ㆍ업무의 구별성ㆍ전문성ㆍ기술성, ⑤ 원고용주의 독립 등 요소에 따라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 기준을 적용했을 때 KTX 여승무원들은 파견관계가 아니지만 현대자동차 아산공장과 남해화학 비정규직들은 각각의 회사와 파견관계에 있다고 인정했다. 위 대법원의 근로자파견 판단 기준은 이후 수많은 파견소송의 기준으로서 기능하여 오고 있다.

 

이번 판결의 요지

 

이번 제주공항 판결에서 법원은 원고가 비록 형식적으로는 한국공항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와 배경으로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음을 인정하였다. 우선 제주공항의 폭발물 처리요원은 정규직 2명 비정규직 3명으로서, 정규직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부터 업무 보고ㆍ결재를 받는 한편 공동의 공간에 근무하면서 공항공사가 제공한 장비를 사용하고 교육ㆍ훈련을 받았다. 또한 폭발물 처리 업무가 사용사업주인 공항공사의 사업에 계속적으로 꼭 필요한 업무라는 점도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 요소로 보았다.

 

한편 과거 대법원은 인천공항공사 소속 특수경비원들이 제기한 파견소송에서 공항공사의 지휘ㆍ명령은 경비업법상 특수경비원들에 대한 당연한 지휘ㆍ감독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2012다79439 판결). 이 때문에 이번 제주공항 판결에서도 폭발물 처리요원이 특수경비원이라는 공항공사의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폭발물 처리업무가 특수경비원이 수행하는 항공보안검색업무와는 근거규정을 달리하고, 자격요건이 특수경비원 또는 보안검색요원과도 다르므로 특수경비원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의미와 여전히 아쉬운 점

 

이번 제주공항 판결은 양대 공항공사에 근무하는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물론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정규직 전환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줌은 물론, 파견법의 취지를 살펴 사용사업주의 필수 업무 수행 여부를 근로자파견의 한 지표로 해석하였고, 생산관련업무가 아닌 안전서비스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 또한 불법 근로자파견관계의 대상이 된다는 선례로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경비원에 관한 대법원 판결 때문에 보안검색직군 근로자가 파견근로자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사실 공항 비정규직 대다수를 차지하는 직군은 보안검색직이다. 이번 판결은 보안검색직 근로자가 파견소송을 제기할 경우 여전히 특수경비원인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자기 힘으로 불법파견 여부를 입증할 증거를 모으고 장기간 버티는 것도 전형적인 파견소송의 어려움인데, 이번 제주공항 판결에도 그러한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원고는 2015. 12. 29.에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판결은 약 22개월 후인 2017년 10월에 선고되었다. 과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2천 명이 집단으로 제기한 파견소송은 약 4년 만에 1심 판결이 선고되기도 하였다. 파견소송은 근로자가 파견관계를 입증할 각 지표별 다량의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보통인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해고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장기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또한 파견소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통상 근로자가 관련 판례를 어느 정도 이해하였음을 토대로 각종 증거를 수집하여야 하는데, 문서ㆍ사진의 유출은 내부 보안규정에 대부분 위배될 수밖에 없으므로 원고인 근로자가 징계 등의 불이익을 우려할 수 있다.

 

맺으며

 

이번 제주공항 판결의 원고는 2017년 1월 20일, 설 연휴를 앞두고 신규 도급업체로부터 고용승계를 거부한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 이유는 '법적 소송을 진행중인 것으로 파악'돼서 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 2008년부터 성실히 일해온 일터에서 내쳐질 때 원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얻어낸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은 판결은 더욱 귀중할 수밖에 없다.

 

파견대상업종 위반, 파견기간 위반 등 파견법 위반은 엄연한 형사처벌 대상이고, 정부는 불법파견된 근로자가 있는지 확인하여 시정명령 및 기소를 함으로써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파견근로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정부가 파견법상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여부는 우선 공공기관 및 국가기관에서 비정규직 전환에 대해 얼마나 적극성을 보이는지, 나아가서는 이번 제주공항 소송에서 어떤 내용으로 항소를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목, 2017/11/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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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겁박 희생자? 이재용은 국정농단 공범

[광장에 나온 판결]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 2017노2556, 재판장 정형식

 

촛불의 힘으로 이끌어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갑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법원의 선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법원의 판단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판결비평]의 모토는 '광장에 나온 판결'입니다. 국정농단의 주범들에 대한 재판은 광장에 나온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런만큼 국정농단에 대한 법원의 판결 역시 광장에 나와 자유로운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국정농단에 대한 주요 판결의 법리를 시민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는 [판결비평칼럼 국정농단 특집]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 두번째 순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인의 뇌물공여 및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결 비평입니다.

 

국정농단 특집 바로가기

① 국정농단 주범은 엄벌, 재벌엔 관대... 사법부 절반의 심판(김남근)

② 박근혜 겁박 희생자? 이재용은 국정농단 공범(노종화)

 

 

 

금속노조 법률원 노종화 변호사

 

 

 

제3자 뇌물공여죄 성립 여부가 갖는 의미

 

이재용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혐의는 '제3자 뇌물공여죄'다. 제3자 뇌물공여죄에 대한 판단은 지난 국정농단 사태에서 이재용의 역할을 사법적으로 규정하는 문제와 직결돼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는 제3자 뇌물공여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국정농단에 대한 이재용의 책임을 사실상 대부분 덜어주었다. 나아가 재판부는 그를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공범이 아니라, 권력자의 겁박을 홀로 감당한 희생자였다고 평가했다.

 

 

재판부 판단의 핵심은 '증거불충분'

 

제3자 뇌물공여에서 핵심 쟁점은 '부정한 청탁'이다(형법 제130조). 공무원이 뇌물을 직접 받았을 때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만 있으면 뇌물죄가 성립하고(형법 제129조), 뇌물을 준 사람으로부터 별도로 청탁까지 받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반면, 이번 사건처럼 재단법인 같은 제3자에게 이익이 간 경우에는 뇌물을 준 사람으로부터 어떤 현안에 대한 청탁을 직접 받은 사실까지 요구된다. 쉽게 이해하면 공무원이 직접 이익을 받지 않고 제3자가 받은 경우에는 뇌물인지 여부가 상대적으로 불분명할 수 있으므로, 보다 확실한 증거로서 '청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뇌물을 직접 받은 것보다는 제3자에게 받게 한 것이 상대적으로 덜 나쁘다고 이해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현재로서는 형법과 법원의 입장이 그렇다.

 

이번 사건에서 부정한 청탁의 주 내용은 박근혜가 이재용으로부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작업 관련 현안(대표적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해결'이라는 청탁을 받았고, 이재용은 그에 대한 대가로 영재센터(16억 원)와 미르·케이스포츠재단(220억 원)에 자금을 출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특검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내용·분량 등 모든 면에서 정독하기가 쉽지 않은 판결문이지만, '증거불충분'이 판결의 핵심이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계작업 자체가 없었다는 재판부, 그러나 재판부만 몰랐던 승계작업

 

먼저 재판부는 승계작업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청탁의 대상 자체가 부정됐으므로, 여기서 이미 영재센터 등에 대한 자금 출연이 제3자 뇌물공여에 해당할 가능성은 없어졌다.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부정한 청탁의 주내용인 만큼 "명확하게 정의된 내용으로 그 존재 여부가 관련 증거에 의하여 합리적 의심이 없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승계작업을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승계작업은 엄밀한 법적 개념정의가 필요한 법률용어가 아니다.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삼성그룹 지배권을 최소비용으로 승계시키기 위해 갖은 편법을 써왔다는 것은 이미 1990년대 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 때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5년에 있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큰 주목을 받았던 것도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 승계작업이 완성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승계작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요구하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역사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검은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작성한 이재용의 지배권 확보 관련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보고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작성한 이재용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위 보고서들은 "삼성그룹의 승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정들을 추론하여 작성한 의견서에 불과할 뿐이고 그러한 보고서만으로 삼성그룹이 그와 같은 내용의 승계작업을 추진하여 왔음을 직접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즉, 정부가 작성한 보고서라고 해도 삼성그룹 외부에서 작성한 의견서에 불과하므로 충분한 증거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이다. 결국 삼성그룹 내부에서 직접 작성한 보고서(사실상 범행계획서)가 있어야만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까지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면, 특검은 이재용 측이 직접 작성한 범행계획서, 독대현장의 녹음파일을 확보해야만 제3자 뇌물공여를 입증할 수 있다.

 

 

결과는 있었지만, 의도는 없었다?

 

한편, 재판부도 이재용이 삼성그룹 지배력 확보에 있어서 유리한 결과를 얻은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재용이 얻은 유리한 효과는 "개별 현안들의 진행에 따른 여러 효과(예컨대 구조조정을 통한 사업의 합리화 등)들 중의 하나일 뿐"이므로, 그것만으로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결과는 있었지만 의도는 없었다는 판단이다. 

 

정부기관과 여러 금융·투자기관들이 모두 승계작업 일환이라고 분석했음에도, 재판부는 증거 출처가 삼성그룹이 아닌 이상 승계작업이라는 의도가 충분히 입증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오로지 삼성만이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직 타임머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형사재판은 국가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인신구속과 같은 처벌을 내리는 과정이므로, 무죄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범죄가 입증돼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원칙과 국가공권력에 의한 처벌권 남용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무죄라는 의심을 합리적으로 배제할 정도의 범죄 입증은 모든 형사재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재벌총수나 대통령이라고 해서 헌법원칙의 보호가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든 범죄사실을 100%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대가성, 부정한 청탁 등이 문제되는 뇌물범죄는 행위자들이 충분한 주의만 기울이면 – 이를 테면 '독대'와 같이 – 사실상 아무런 물적증거가 남지 않는다. 즉,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승계작업에 관한 청탁을 한 사실을 직접 뒷받침하는 증거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독대현장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지금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승계작업과 부정한 청탁을 뒷받침하는 주요 증거들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이 이재용을 이건희 후계자로 인정하고 지배구조 개편에 적극 관여한 사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여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 이재용이 경영권 확보과정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은 사실은 분명하다. 

 

더구나 문형표·홍완선은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직권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2심 판결까지 유죄가 인정된 상황이다. 이러한 제반사정을 종합하면 적어도 삼성그룹이 승계작업을 추진했고, 박근혜·이재용 사이에 승계작업 관련 청탁에 대한 묵시적인 이해와 양해가 있었음을 헌법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이 정도면 이재용이 무엇을 원했는지는 굳이 직접 말하지 않았어도(혹은 직접 말했다는 증거가 없어도) 박근혜가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할 만하다.

 

법원도 부정한 청탁에 대한 완벽한 입증이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부터 '묵시적 청탁' 법리를 인정해왔다. 비록 1심 재판부가 한 대부분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고 이번 항소심 판결을 이끈 것은 사실상 1심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적어도 1심은 여러 제반사정을 기초로 최소한 영재센터에 대한 자금출연은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도 미르·케이스포츠재단(220억) 부분은 청탁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다만, 1심도 미르·케이스포츠재단(220억) 부분은 청탁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분만큼은 1심 판결이 우리 사회 보편적인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을 했다고 생각한다.

 

 

재판부의 고민대상은 무엇이었을까

 

재판장이었던 정형식 부장판사는 판결 직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제3자 뇌물공여가 성립하려면 대가성과 별도로 부정한 청탁이 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므로, 판례를 변경할 권한이 없는 항소심 재판부에게 제3자 뇌물공여에 관한 법리 자체는 명확한 영역이었음은 수긍할만하다. 그러나 필자는 판결문을 읽을수록 법리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도 큰 고민이 필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는 인터뷰 발언과 달리, 실상 재판부의 가장 큰 고민대상은 법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의 구체적 내용은 법적으로 엄밀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법리'와 엄격한 '사실평가 잣대'를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으로 직접 설정한 다음, 철저히 그 영역 안에서만 판단했다. 나아가 항소심 재판부가 설정한 영역 안에서 제3자 뇌물공여의 성립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이 배제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 재판부에게는 고민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실심인 항소심은 말 그대로 주어진 사실만을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오로지 사실만을 평가하기 이전에 이미 판단범위를 스스로 제한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법률용어로 말하자면 '채증법칙 위반'이다.

 

 

나가며

 

제3자 뇌물공여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재용을 위한 '꽃가마'라는 비판(관련글: "재벌개혁? 사법부부터 개혁을")까지 받고 있는 이번 판결 중에서도 가장 부당한 결론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농단을 청산하는 데 제일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난 국정농단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국정농단에서 이재용의 역할이 '권력에 밀착하여 사익을 도모한 정경유착의 공범'이었다고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 

 

혹자는 현재 형법과 법원의 태도에 따르면, 제3자 뇌물공여죄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다는 재판장의 발언도 위와 같은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현행 형법과 법리에 충실하더라도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 충분히 헌법원칙에 어긋남이 없이, 이재용이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번 재판부처럼 스스로 사실판단의 영역을 매우 협소하게 축소하지 않는 한 말이다. 부디 대법원은 항소심의 채증법칙 위반을 바로잡고, 상식과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기를 바란다.

금, 2018/03/0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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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대법원은 20대 총선 때 최경환 후보 공천 반대 1인시위 피켓을 들었던 청년유니온 위원장에 대해 선거법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하였습니다. 이는 "공천 반대 1인시위는 유권자의 정당한 의사표현"이라는 1심과 2심 판단보다 크게 후퇴한 것으로, 선거 시기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위헌적인 선거법의 틀을 그대로 따른 판결입니다. 지난해 2016총선넷의 후보자 이름조차 쓰지 않은 피켓을 쓴 기자회견까지 유죄로 판결한 것에 이어 이번엔 1인시위까지 유죄라고 판결함으로써 유권자의 권리가 더더욱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장철준 교수(단국대 법학과)의 글을 통해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알아봅니다. 

 

법관들에게 헌법합치적 법 해석의 자유를 허하라!

[광장에 나온 판결] 최경환 공천반대 1인시위 유죄판결(대법원 제2부 2017도13103, 재판장 김소영, 주심 고영한, 조재연 대법관)

 

장철준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우리 헌법 제103조에 의하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사법부 자신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바라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겠다는 헌법적 의지가 드러난 조항이다. 이 헌법 명제가 지극히 타당한 이유는 누구나 그 어떤 내·외부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이성적 주체로서의 법관에게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관도 사람인 까닭에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 이 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동일 사건에 최대 세 차례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법 절차를 보장하고 있다. 재판 기회의 측면에서는 충분히 공정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이 진실과 멀어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거나 적용되는 법을 올바로 살펴 해석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사실관계에 관한 다툼은 증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증거를 충실히 찾아 제출하는 재판당사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적용되는 법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오롯이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몫이다. 복잡한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효과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는 법에 일반적 언어가 사용되어야 하는 까닭에, 재판에서 법관은 적용할 법을 반드시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몇몇 행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였다면, 특정인의 비위사실을 거론하며 공천 반대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행위가 법에서 금지하는 '선거운동과 관련한' 행위인지를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해당 법문에 대한 언어적 구조 파악과 더불어 법의 역사, 제정 목적, 헌법질서 속 그 의미에 대한 이해까지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 해석은 그 어떤 법관도 유일한 정답을 자신할 수 없기에 독선과 힘의 논리를 경계하고 건전한 토론의 자세로 임하여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공직선거법 해석의 원칙

 

이 사건 피고인은 청년활동단체의 위원장으로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2016년 4월 13일로부터 약 두 달여 전, 경산시 새누리당 후보자로 출마 예정인 현역 의원을 겨냥하여 문제의 1인 시위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40여 분 동안 실행하였다. 시위에서 적시한 공천반대 주장의 이유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채용 비리에 그가 연루되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0조 제1항 제1호(화환·풍선·간판·현수막·애드벌룬·기구류 또는 선전탑, 그 밖의 광고물이나 광고시설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하는 행위)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위 조항을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56조 제3항 제1호를 근거로 피고인을 기소하였다. 

 

공식선거운동 기간에만 선거운동을 허락하는 우리 공직선거법 구조상 제90조에서 열거하는 행위는 기간 이전에 행하여진 선거운동으로서 불법이다. 따라서 그 내용을 잘 따져보면, 문제된 행위가 선거운동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결정적 기준은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법해석의 문제이다. 그 해석 방향에 따라 선거운동기간 이전 6개월 동안 국민은 정치인에 대한 의사표시를 크게 제약당할 수도 있다. 대상자가 다가오는 선거에 출마 예정이라면 말이다.

 

제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시위 내용과 형태를 볼 때, 그것이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고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다. 아직 정당의 후보자 공천절차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제1심 재판부는 이러한 해석을 하게 된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바로 공직선거법 제58조 제2항,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선거법 자체에 비록 수많은 금지행위를 나열하는 바람에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기는 하였지만, 민주주의의 꽃으로서 선거는 자유로운 운동이 가능할 때 제 기능을 다하게 된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은 다른 어떤 힘도 아닌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법선거운동이라 열거된 규정의 해석과 적용은 매우 엄격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가치로 하는 우리 헌법에 부합하는 공직선거법 해석이다. 특히 선거운동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선거부정을 방지하는 것도 공직선거법의 중요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문제되었던 부정선거의 병폐는 주로 관권과 금권이 결탁되어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다.

 

선거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남용된 것이 그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면, 표현행위를 통한 선거운동의 불법성 여부는 자유로운 선거를 위해 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덧붙여 제1심 재판부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충실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256조를 비롯한 처벌규정은 선거법 위반사범에 대해 상당히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 죄와 형벌을 규정한 법률을 해석할 때에는 유추·확장해석을 피하여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 태도는 형사사법절차에 관한 헌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지극히 합당한 해석이다.

 

반면 대법원은 정반대의 해석 방식과 결과를 제시하였다. 제90조 규정이 아닌 제256조에서 처벌 요건으로 규정된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라는 용어에 주목함으로써, 무죄를 유죄 취지로 바꾸어버렸다. 그러면서 위 용어가 사용된 제135조의 해석 선례를 인용하였다(대법원 2010.12.23. 선고 2010도9110 판결 등). 제135조는 선거사무관계자에 대한 수당과 실비보상을 규정한 조항으로서, 여기에서 정한 수당 및 보상 이외에는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이나 이익 등을 취하거나 취하게 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 조항이 적용된 선례에서 대법원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의 뜻을 "선거운동에 즈음하여, 선거운동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하여"라는 의미로 해석한 적이 있다. 이는 "선거운동을 위하여"라는 의미보다 훨씬 넓은 의미이다. 어떻게든 선거에서 부정한 돈이 오가는 것을 광범위하게 막으려는 사법적 의지가 반영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대법원의 논리는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라는 용어가 제135조와 제256조에 동일하게 사용되었으니, 전자와 동일하게 후자 또한 확장하여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문자 중심의 편협한 법해석이다. 두 조항의 규제 성격(금지규정과 처벌규정)이 너무도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제256조는 "각종제한규정위반죄"라는 이름으로 수십 개의 법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의사를 밝힌 규정이다. 제3항 제1호만 해도 "선거운동과 관련"한 총 16개의 행위를 처벌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대법원의 논리라면 제90조 위반행위 이외에도 나머지 15개 조항 위반 또한 선거운동과 조금이라도 연관만 있으면 처벌하여야 하는 결과가 나온다. 예컨대 선거운동 6개월 전에는 정치인에 관한 현수막 하나만 내걸어도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다(가목). 이것이 선거운동의 자유와 죄형법정주의의 헌법원리와 조화된 해석이라 할 수 있을까? 이 해석에는 헌법과 선거법의 목적에 대한 숙고도 없고, 선거법 역사에 대한 조금의 성찰도 없다.

 

 

법관의 법해석과 재판 심급제

 

법관이 지나치게 텍스트에 얽매인 법해석을 감행할 때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판결을 맡기게 될 날을 두려워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합리적 이성을 통한 설득의 과정을 재판에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법원 판결의 논변 태도에서 또 한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제1심과 항소심에서 대법원 판결과 다른 법해석을 펼쳤다면, 단순히 그 해석이 이유없다는 말로 끝내버릴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에 대한 세밀한 반론을 제시하였어야 한다. 

 

법관의 법해석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두드러진 관료제적 사법구조의 횡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법원에 심급을 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판결의 오류를 다음번에 수정하도록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상급법원의 권위로 하급법원의 견해를 제압하도록 허락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대법원은 재판에서 나름의 권위 있는 법해석을 제시할 권한이 있지만, 하급심 법해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논증을 할 의무도 있다. 그것이 개별 법관을 존중하는 태도이며, 재판의 독립을 추구하는 헌법의 이상에 맞는 행위이다. 나아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법부 내에서 건전한 법리 논쟁의 장이 펼쳐질 수 있고, 결국 우리 사법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의 기계적 텍스트 해석에 의해 아쉽게도 이유없는 판결로 전락하여버린, 제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헌법합치적 법해석에 경의를 표한다. 선례를 고려하면 아직까지는 별로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에 한정위헌청구를 통해 다시금 부활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본다.

 

 

목, 2018/03/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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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 보호와 상생경제,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법에 대해 유통업계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위헌소송을 제기해오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기업의 자유권과 재산권,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의 공익적 효과의 중대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일관되며,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다시한번 확인되었습니다. 경제민주화의 헌법적 정당성을 다시한번 입증한 이번 결정에 대해 한국법제연구원의 최유경 박사가 분석하였습니다. 

 

상생과 협력을 통한 경제민주화의 길 -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통찰과 혜안

[광장에 나온 판결] 대형마트 의무휴업 조항 합헌 판결(헌법재판소 2016헌바77, 78, 79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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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대형마트 등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제1항, 제2항, 제3항에 대해 최종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2015.11.19. 선고 2015두295)의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헌법재판소를 통해서도 대형마트 규제 관련 정당성이 경제민주화적 견지에서 명료하게 정리된 점에 큰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 하겠다.

 

도시계획적 입지규제의 실패가 부른 불가피한 선택

 

'유통산업발전법'은 해외 유통산업이 공격적인 진출을 시도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 유통산업의 발전 기반을 확충하고자 1997년 제정되었다. 이 법으로 말미암아 대규모점포 개설 원칙은 허가주의에서 등록제로의 파격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8년경까지 전국적으로 대규모점포와 준대규모점포(Super Supermarket)가 우후죽순 개설됐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독일이나 미국, 스페인 등과 달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 정책을 수립하는데 철저히 실패했다. 이들 국가는 대규모 점포 등의 입지 단계에서 교통, 환경, 노동과 같은 다면적 요소를 사전적으로 고려한다. 무엇보다 매출영향 평가를 통해 기존 상권에 10% 이상 영향을 미치는 대형 쇼핑몰의 입점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 이 같은 엄격하고 일관된 도시 계획적 시그널을 통해 시장구조의 왜곡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나마 독일과 스페인 등지의 대형 쇼핑몰의 경우, 일요일은 여전히 문을 닫는다. 

 

현행법상 논란의 중심에 놓여 왔던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이미 난립한 대규모점포의 영업수행을 일부 제한하는 것으로 전통시장을 비롯한 중소상인과의 상생 및 업종 전환을 위한 연착륙을 보장하는 심폐소생술 정책이었던 셈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눈으로 읽은 경제민주화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119조 제1항과 제2항의 관계에 관한 적극적인 해석을 내리지 않은 점은 일견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헌법상 경제질서가 사회정의, 공정한 경쟁질서, 경제민주화 등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허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전제 하에 다양한 경제 주체의 공존을 전제로 하는 경제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한 시장기능의 정상적 작동이 가능하다는 해석은 보다 명백해졌다. 

 

특히 강력한 자본력과 시장지배력을 가진 소수 대형유통업체는 이미 우리 유통시장의 거래질서를 상당히 왜곡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업자들의 상권은 소멸했거나 현저히 위축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에 대한 영업제한은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재량'으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이나 법익의 균형성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헌법 해석상으로도 자연스럽다.

 

공개변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

 

2018년 3월 8일 이루어진 공개변론에서 헌법재판관들은 "헌법 제119조 제1항이 존중하는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는 비단 대형유통업체만이 아니라 중소유통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고, "그간 영업제한으로 인해 골목상권과 같이 몰락의 위기에 놓인 대형 유통업체는 없다"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 내려갔다. 그밖에도 근로조건의 협상에 있어 취약한 근로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일부 유통업체에 의한 독과점으로 다채로운 상권이나 유통경로가 무너진 이후의 소비자 후생까지도 깊이 고민한 흔적까지 돋보였다. 

 

또한 재판관들은 대형마트 근로자들이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건강권을 보장받는 방법으로서 대체 가능한 수단이 없다고 시사했다. 화려한 소비로 치환되는 현대인의 욕망이 최종적으로 분출되는 소비 공간에서 근로 관련 법령이나 근로계약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조건에 놓인 대형마트 근로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깊은 공감이 베어있는 대목이다.

 

규제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대한 일갈

 

일부 유통업체와 그를 대변하는 경제학자들은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경제적 효과가 전통시장 등의 매출증대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며, 규제로 인한 불편함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매출증대의 실제효과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고 일축하면서 "조사방법, 조사에 사용된 통계자료, 지역사정 등에 따라 서로 상반된 조사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고 하여, 사회적·경제적 효과가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실제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사후적 입법평가(한국법제연구원, 2017)'에 따르면, 의무휴업일 지정제도로 인해 적어도 '대형마트영향을 받는 전통시장'에서는 매출액 증가의 효과가 나타났는가 하면, 소비자의 약 66.7%는 현행 대형마트의 규제에 대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향후의 규제 전망과 방향성

 

최근 유통산업의 지형(地形)은 초대형 백화점과 가구전문점, 아울렛이나 복합쇼핑몰에 이르기까지 진화하고 있다. 인근 상권에 미치는 파급력은 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성공적인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다. 사회·경제적 효과에 관한 분석 결과도 저마다 상이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정치권을 중심으로 최소한 '복합쇼핑몰'에 대해 대형마트 영업규제와 동일한 메커니즘의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후의 논의들이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우리 헌법상 경제질서에 부합하는 공익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상인, 근로자 및 소비자에 이르는 "다양한 경제주체들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모색"하는 건강한 경제 민주화 실천의 길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 2018/07/1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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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지방의회 선거제도와 관련한 두 건의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습니다. 자치구·시·군의회 의원선거와 시·도의회 의원선거(2014헌마189결정)와 관련해 앞으로는 지역 선거구간의 인구편차는 최대 3:1 범위 안에서만 인정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참고로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지역구 의원 선거구에서 인구편차를 2:1범위 이내에서만 허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선거구 획정에 따라 선거구별 인구 편차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유권자의 1표의 가치가 달라지는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초래됩니다. 이에 김준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칼럼을 통해 지방의회 선거구 인구편차를 최대 3:1 범위까지는 인정하겠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를 짚어봅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방의회 선거제도를 조금 바꿨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광장에 나온 판결] 헌재 2018. 6. 28. 2014헌마166, 헌재 2014헌마189 [재판관 이진성(재판장)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유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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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지방의회 선거제도와 관련한 두 건의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다. 자치구·시·군의회 의원선거(2014헌마166 결정)와 시·도의회 의원선거(2014헌마189결정) 공히 앞으로는 지역 선거구간의 인구편차는 최대 3:1 범위 안에서만 인정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의미는 있지만 예견은 할 수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결정

 

종전에 헌법재판소는 시·도의회 의원선거에 대해서 선거구간의 인구편차 허용기준으로 4:1이 적절하다고 판단(2007.3.29. 2005헌마985 결정)했었고, 자치구·시·군 의회 의원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제시해왔다(2009.3.26. 2006헌마14 결정). 따라서 이번 결정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가 반영되는 것이 2022년 지방선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도의회선거는 15년 만에, 자치구·시·군 선거는 13년 만에 지방선거에서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다소 감축되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지역구 의원 선거구에서 인구편차를 2:1범위 이내에서만 허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2014. 11.30. 2014헌마53 등) 지방의회 선거에서 인구편차도 최소 3:1 범위로 엄격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조금 더 적극성을 띄고 조속히 결정을 내렸다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현재보다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감축된 선거를 치룰 수 있었으리라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비록 이번 결정을 통해서 지방의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가지는 표의 등가성은 종전보다 조금 더 확보되었지만, 이번 결정이 우리사회에 남긴 의문과 숙제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의원선거에서 표의 등가성이 달려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의문은 국회의원 선거는 2:1까지만 인구편차를 허용하면서, 지방의회 선거구에 대해서는 3:1로 더 넓게 인정하는 헌법재판소의 태도가 과연 타당성이 있는 주장인가 하는 점이다. 

 

헌법재판소가 주장하고 있는 가장 주요한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로 지역적 사안을 다루는 지방의회의 특성상 지역대표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사회가 도시와 농어촌 간의 인구격차가 크고 각 분야에 있어서의 개발 불균형이 현저하다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역대표성 및 지역 간의 격차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의 현재 입장은 특별한 논리적 설득력을 갖기보다는 다소 궁색해 보인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비해서 지방자치와 지방의회선거의 의미는 소홀히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일이다.

 

오히려 모든 선거에서 표의 등가성에 관한 기준은 동일하게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실제 2010년 전후에 헌법재판소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원선거를 동일하게 봐야 한다는 ‘소수’의견(김종대 당시 재판관)도 있었다.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와 시·도의회 선거의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는 헌법재판소  

 

물론 백번양보해서 지방의회가 갖는 특성을 조금 더 고려해야 한다는 유연한(?) 사고를 수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자치구·시·군의회 선거와 시·도 의회 선거를 같이 취급하는 것은 곤란하다. 양자 사이에는 차이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자치구·시·군의회 의회 선거의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계산하는데 있어서 해당 자치구·시·군내의 선거구들만으로 비교집단으로 설정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서울 송파구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계산할 때는 서울 송파구 안에 다른 선거구와만 비교를 하는 것이지, 서울시 다른 구의 선거구이나 다른 지역의 군 등과 비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자치구·시·군의회 선거’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주장하는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 등을 감안해야 할 이유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에 시·도의회 선거의 경우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된다. 같은 경기도 안에서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연천군과 인구 100만명이 넘는 경기도 수원·고양·용인시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회 선거를 달리 취급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회의원 및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는 같은 층위에서 판단하고 시·도 의회 선거는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차라리 타당한 절충론이 될 수 있다. 실제 2010년 전후에 헌법재판소 소수의견에도 (당시 송두환 재판관 및 조대현 재판관)이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이러한 섬세한 접근은 소수의견으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절충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적어도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의 경우에는 국회의원 선거처럼 2:1 수준으로 인구편차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무엇을 주장해야 할까? 

 

이번 헌재 결정이 미칠 영향과 효과도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와 시·도 의회 선거가 매우 다르다. 

 

먼저 자치구·시·군 의회선거의 경우는 그 효과가 대단히 제한적이거나 국지적일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의 특징상 범위가 좁기 때문에 3:1을 초과하는 선거구가 많지 않은 탓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경우 25개 자치구에 총 186개의 지역 선거구가 존재하지만, 실제 이번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구편차가 3:1을 초과하는 기초의회 선거구는 총 4곳에 불과했다. 이 기준을 국회의원 선거와 같이 2:1로 높이더라도, 서울에서 선거구 재획정을 필요로 하는 선거구는 총 8개의 선거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후 다음 지방선거 때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3:1 기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2:1을 기준으로 자치구·시·군 의원 선거구 획정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한편 시·도의회 선거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한 조건에 놓여 있다. 우선 이번 결정의 영향과 효과의 편차가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울·광주·대전의 경우 현재 선거구를 그대로 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부산·대구·울산의 경우도 많아야 2-3곳의 선거구 획정만 필요로 할 뿐이다. 그러나 농촌지역이 많은 광역자치단체는 다소 복잡한 셈법을 해야 한다. 지금 공직선거법 제22조에서는 시·도의원을 선출할 때 자치구·시·군에서 최소 1명은 선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에서 인구가 적은 무주·진안·장수도 1명의 도의원은 선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소멸 위기 지역들이 4:1이 아니라 3:1 기준을 설정할 경우 1명의 도의원을 선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실 더욱 황당한 것은 경상북도와 인천의 경우는 지금까지 4:1 기준도 충족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표적인 도서지역인 울릉군과 옹진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감안한다면 시·도 의원 선거의 경우 획기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전체 시·도의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부터 해서,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벗어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등 다양한 선거제도 개혁방안이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방주민들이 함께하는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1인 1표 시대를 위하여 

 

우리 헌법은 평등선거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유권자 1인이 갖는 표의 가치가 동등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거구간의 인구편차는 최대한 엄격한 기준 하에서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표의 등가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목소리와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른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투표가치의 평등이야 말로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8-90년대에는 4:1을 초과하던 인구편차도 허용되던 시기에 비하면, 이제 국회의원 선거는 2:1, 지방의원 선거는 3:1까지만 인구편차가 허용되게 된 것은 큰 발전이다. 그러나 프랑스(1.5:1), 독일(1.35:1), 영국(1.1:1), 베니스위원회 기준(1.22:1) 등에 비하면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드는 가장 나쁜 예감은 우리가 갈 길이 또다시 10년 후에나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이뤄질 것에 대한 우려다. 사실 이번 결정을 통해서 반복된 나쁜 관행은 다시 한 번 선거제도의 개혁이 국회나 지방의회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이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투표가치의 불평등을 감축하고 최소화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는 의회는 왜 항상 자신의 소임을 방기하는 것일까? 솔직히 200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서 정치개혁과 관련된 의미있는 변화는 항상/아직 헌법재판소가 주도해왔다. 이점에 관해서 국회와 기존 주요 정치세력(특히 거대 양당)은 한 번도 자기반성과 혁신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도 사회운동의 지속적인 개입과 운동이 필요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목, 2018/07/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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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사건 당시만이 아니라 이 비극을 다루는 국가의 방식에서도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겼습니다. 국가의 책임은 체계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분산되었습니다. 52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호 구조 실패로 실형을 받은 공무원은 아직까지 단 1명에 불과합니다.

비극적 참사에 있어서 국가의 책임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향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도 국가가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할 요인이 없습니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원한 유가족이 민사재판으로라도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던 이유였습니다. 그 기나긴 재판이 지난 7월 19일 첫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에 있어서 국가의 직접적 책임을 얼마나 인정했는지,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이 분석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광장에 나온 판결] 세월호유가족의 국가와 청해진 상대 손해배상소송(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0부 재판장 이상현 부장판사, 2015가합560627)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지난 7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0부(재판장 이상현)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117명, 일반인 승객 2명의 유가족이 정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판결했다. 가족 측이 승소했다. 비록 1심이긴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선장과 선원, 선사뿐만 아니라, 국가도 법적인 책임을 지닌다는 것을 사법부가 확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던 전명선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유족들은 이를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8월 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이상현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대리인인 김도형 변호사에 따르면 "1심은 국가의 구조 실패에 대한 책임 인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원고 측이 제기한 국가 책임은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구조작업에 간여한 공무원 중 유일하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당시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123정의 김경일 정장의 행위만을 국가가 져야할 책임으로 인정했다. 원고 측은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의 관제실패행위,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지휘, 항공구조사들이 선내로 진입하지 않은 행위, 국가재난컨트롤타워 미작동 등도 직무상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정된 것이라면, 공무원이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함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전제했는데, 결과적으로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의 관제 실패 행위,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지휘, 항공구조사들이 선내로 진입하지 않은 행위, 국가재난컨트롤타워 미작동 등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나마 재판부가 123정장 외에 판결문에서 유일하게 거론한 공무원은 511호, 512호, 513호 헬기에 탑승했던 항공구조사들인데, 재판부는 이에 대해 "항공구조사들이 선내에 직접 들어가 승객들에게 퇴선을 유도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적시했지만 그러한 행위와 희생자들의 사망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적용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다른 공무원들의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나 위법행위는 아예 판결문에서 거론되지도 않았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요약하자면 공무원 중 형사적으로 유일하게 최종적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공무원의 행위에 대해서만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다른 국가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판단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현장구조책임자'였던 123정장의 범법행위가 국가책임 인정의 근거로 받아들여진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123정장에 대한 형사판결에서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123정장의 형사책임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정에서 대법원은 123정장의 형량을 4년에서 3년으로 감경한 고등법원 판결을 인용하면서 "해경은 평소 해양경찰관에게 조난사고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했다. 이처럼 해경 지휘부와 함께 출동한 해양경찰관에게도 공동책임이 있는 만큼 김경일 전 정장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한마디로 대법원이 이미 당시 현장 지휘관 개인의 업무상과실치사 행위만이 아니라 '해경 지휘부의 공동책임'을 적시한 바  있고, 이번 판결은 이러한 대법원의 판례를 단순히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진취적인 판결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123정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소극적으로 인용하는 수준이었다면 1심 판결을 2년이나 끌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 의문이다.    

 

둘째, 기존 재판에서 형사처벌을 피한 다른 지휘라인의 공무원들의 행위를 이번 판결에서도 국가의 책임을 묻는데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해석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진도VTS 관계자들이 세월호 참사 당시 부실한 관제로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고, 2인 1조 근무 규정 등을 어겨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했다는 혐의로 진도VTS 관계자들이 기소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직무유기 부분에 대해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단지 진도VTS 관제사와 팀장들이 변칙적 근무를 하고도 이를 숨기기 위해 교신일지 등을 조작한 혐의만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고등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들의 행위는 "태만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나 "소홀히 직무를 수행한 탓으로 적절한 직무수행에 이르지 못한 것"에 불과할 뿐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로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2심 판결문 중)"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 이번 판결에서도 이들의 행위가 승객의 사망과 관련한 국가의 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당시 목포해경서장은 해임됐지만 기소되지 않았고 곧 서해지방청이 되었다. 당시 서해지방청장은 강등되었지만 기소되지 않고 정년퇴직했고, 당시 해수부 장관도 문책받지 않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책임자였던 유정복 안행부 장관도 문책없이 사임한 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구조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부인했던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구조책임을 물어 기소되거나 처벌되지 않았다.

 

당시 구조 지휘라인에 있던 인사 중에서 이번 판결 이전인 2018년 7월 중순까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 명 있긴 하다. 해양경찰청 차장이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당일 구조에 대한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구난업체 '언딘'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마찬가지로 해양경찰청 직원이 세월호 운항 관리규정 심사를 요청받고 세월호에 승선해 식사와 관광비용 등 수십만원의 향응을 받은 혐의 등으로 300만원 벌금을 받은 사례가 있다. 이 모든 행위들 역시 이번 판결에서 승객들의 사망과 관련한 국가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검토된 흔적이 없다.  

 

물론, 다른 판례에서 범법행위로 인정되지 않는 행위들에 대해 민사재판부가 국가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본 것으로 법률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당일, 목포해경 상황실이든, 서해청 상황실이든 해경 본청 상황실이든 세월호 구조에 책임이 있는 해경 상황실은 그 어느 단위도 세월호와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는다. 해경 본청이 있는 인천에서도 세월호의 선원과 얼마든지 통화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실제 인천의 청해진해운 본사는 여러 명의 세월호 선원과 수차례 통화를 하였다. 현장으로 출동한 해경 초계기, 헬기, 경비정은 모두 이동과정에 세월호와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는다.

 

세월호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하면 일정한 지시도 내리는 등의 행위는 너무도 당연한 행위이지만 그들은 하지 않았다. 덧붙여 해경 출동세력은 상황실에 세월호의 상황을 문의하지도 않았다. 설사 기존 재판 결과 이 모든 행위들이 범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더라도, 이 모든 부적절한 행위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구조실패를 만들어낸 것은 명확한데, 이 모든 일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상식적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123정장에 대한 형사재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애초에 123정장의 형량을 징역 4년에서 3년으로 낮춘 고등법원은 판결문에 다른 근거도 언급했는데, 감형의 사유가 지휘라인에서 구조를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서해지방해경 상황실 등에서 피고인과 20여회 통신해 보고하게 하는 등 구조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적어도 현장구조책임자를 구조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도록 한 지휘라인의 행위가 국가책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야 옳지 않았을까? 

 

셋째, 국가공무원이나 국가기구는 아니지만 국가가 해야 할 업무가 외주화됨에 따라 '운항관리', '세월호 증·개축 검사' 업무를 맡았던 한국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나 한국선급의 직원들의 범법행위가 승객들의 사망과 관련한 국가 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검토되지 않은 것 역시 아쉽다. 

 

이들의 일부는 실제 기소되어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이들의 불법행위들이 국가의 책임과 관련이 있는 지는 재판에서 다투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월호 출항 전 안전점검 업무를 담당했던 한국해운조합의 전 모씨가 대법원에서 징역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법원은 "안전점검에 관한 피고인 전정윤의 업무가 오로지 운항관리자인 피고인 전 씨 본인의 업무일 뿐이라는 판단은 타당하지 않고", 한국해운조합이 "한국해운조합은 그 자신의 업무로 출항 전 안전점검에 관한 운항관리자의 적절한 업무 수행과 이를 감독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내부 규정을 마련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증개축 과정에서 검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한국선급 검사원들에 대해서도 이번 판결이 내려진 직후인 7월 24일 대법원에서 새로운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4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한국선급 선박검사원 전모(38)씨의 상고심에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과는 달리 한국선급 선박검사원을 처벌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한국선급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검사원 개인의 허위보고가 한국선급에게 오인·착각 등을 일으키게 했다는 점만 인정했다. 또한 참사 직전까지 해운조합 인천지부 운항관리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세월호 및 오하마나호 등의 안점점검 업무를 맡아온 한모(53)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례들이 이번 판결에서 다투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최근 드러나고 있는 바, 박근혜 대통령의 임무방기와 국가의 진실 은폐,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불법 감시 및 사찰, 댓글공작과 조사방해 행위 등과 관련하여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설사 이들 국가 주도의 불법∙부당 행위들이 이번 소송의 검토 및 판결 대상이 아니었다하더라도, 큰 아쉬움을 남긴다.

 

구조당일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구조 지휘 책임을 모면하려고 대통령에게 최초로 보고된 '국가안보실 상황보고서' 1보 보고시점을 9시 30분에서 10시로 조작하여 구조골든타임에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은 것처럼 꾸민 일, 심지어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임의로 사후수정하여 마치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 위기시 정보와 상황을 종합하고 관리하는 콘트롤타워가 아니었던 것처럼 조작한 일 등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국가책임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본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김장수 전 실장은 최근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위조 등의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또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문건이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다수 발견되었고, 국정원과 기무사령부가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시민들의 활동을 불법으로 사찰하고 댓글공작등으로 비난한 것 모자라, 이를 파괴하기 위한 각종 작전을 기획하고 직접 조직까지 한 사례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이 모든 국가주도의 불법∙부당 행위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국가손해배상 소송이라도 제기하여 별도의 국가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수, 2018/09/0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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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9. ~ 2018.9.)만료로 새롭게 임명됩니다. 이번에 교체되는 5기 재판관들은 헌법재판으로 분류된 모든 재판을 다뤘다는 점에서 특별했던 기수로 평가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들 재판관의 임기 중에 나온 결정문 중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을 함으로써 5기 헌법재판관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 및 차기 재판관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자 합니다.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정당법 제41조 제4항 위헌확인 (정당등록취소 및 등록취소된 정당의 명칭사용금지 사건) 2012헌마431

 

장철준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이전과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우리 삶에서 정당은 아직도 멀리 있는 존재인 듯싶다. 촛불과 탄핵, 그리고 뒤이은 선거를 치르면서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정치적 인간”이니 “일상정치”니 하는 용어들이 제법 대중에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 잡기는 하였다. 백만을 넘겼다는 모 정당의 ‘권리’당원 숫자는 이전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임이 분명하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대규모 당원 가입을 이끌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 삶 속에 살아있기 위해서는, 정당에 훨씬 더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당원으로서 정당에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하면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와 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의 꽃인 선거에서 정당 후보가 당원들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함은 특별한 언급의 필요조차 없는 사항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 현실에서는 이러한 기본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정당 문화의 발전이 더딘 것은 어두웠던 권위주의 헌정사의 탓이 가장 크다. 여당이 폭압적 권력의 실행조직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야당에 가입하거나 지지자가 되려면 온갖 손해를 감수하여야 했던 시절이 오래 지속되었다. 자연히 정치는 개발독재의 군사적 카리스마와 민주화운동의 조직적 카리스마 간 대결의 장으로 압축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이후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참여에 기초한 새로운 정당모델이 실험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당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에 더하여 정당법의 후진적 체계 역시 정당문화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정당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아무리 높아져도 기성 권력질서와 이미 확고히 연계된 정당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민주화의 여정에서 정치개혁의 대의 속에 정당법 개정이 이어져 왔으나, 아직 정비하지 못한 과거의 유물은 여전히 건재하다. 여기서 논할 정당법 조항의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정당의 등록·취소제도

 

헌법은 제8조에서 4개 조항에 걸쳐 정당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정당의 법적 본질을 민법상 ‘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법인을 포함한)단체 중 헌법이 이만큼의 특권을 부여한 것은 없다. 그 내용을 보면,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도를 보장한다는 헌법적 의도에서부터 시작하여(제1조), 강한 보호에 걸맞은 정당의 민주성과 최소한의 조직 구조를 요구하였다(제2조). 또한 국가에게 법률에 따라 정당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자금지원까지 하도록 하여(제3조), 그 특권의 정점을 찍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될 때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해산될 수 있음을(제4조) 규정하였으나, 이는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절차가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함부로 정당을 해산할 수 없다는 보호의 의미를 밝힌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겉보기에 정당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여 아무 단체에게나 이러한 헌법의 특별한 취급을 해 줄 수는 없다. 정당법에서 정당의 구체적 요건을 매우 상세하게 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헌법상의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당법의 요건을 갖추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도록 정하였다. 등록된 정당에 대한 보호를 거두어야 할 때를 대비하여 등록 취소에 대한 요건도 구비하여 두었다. 만일 정당법의 등록 요건이 매우 까다롭거나 취소 요건이 지나치게 느슨할 경우, 헌법 제8조의 정당 보호의 의도를 왜곡하게 될 것이다. 본 결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정당법 제44조의 등록 취소사유가 헌법에 합당한지 여부였다.

 

이 조항에서는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한 정당이 의석을 한 석도 얻지 못하고 득표수가 유효투표 총 수의 100분의 2를 넘지 않을 경우 등록을 취소하고(제1항 제3호), 그렇게 등록취소된 정당의 명칭은 취소일 이후 최초로 실시하는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일까지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제4항) 하였다. 2012년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였던 진보신당, 녹색당, 청년당은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였고, 각각 유효투표 총 수의 1.13%, 0.48%, 0.34%를 득표하였다. 선거 다음날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여 등록이 취소되었고 곧바로 동일한 정당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은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정당이 “자신들이 원하는 명칭을 사용하여 정당을 설립하거나 정당활동을 할 자유”는 헌법 제8조의 정당설립의 자유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위 정당법 조항이 위헌이라 결정하였다. 즉, 이 제도를 만든 목적으로 추정되는 “군소정당의 난립 방지” 효과에 비하여 침해되는 정당설립의 자유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등록취소의 기준이 되는 국회의원선거 득표수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 신생·군소정당의 존속과 보장이 너무 쉽게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선거에 여러 번 참여할 기회를 주는 등 “덜 기본권 제한적”인 방법을 취할 수 있음에도, 국회의원선거의 기준 미달 한 번에 즉각 등록을 취소하고 향후 4년 동안 같은 이름을 쓸 수 없게 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 위헌적 제도라고 한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정치적 자유를 위한 정당법을 지향하며

 

정당등록취소조항은 동일한 정당명칭사용 금지조항과 함께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의해 개정된 정당법에서 신설되었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만들어졌을지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누누이 강조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의 담당자이며 매개자이자 민주주의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의 정당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제도이다. 정당을 통해 정치할 국민의 자유를 위해 헌법재판소가 비합리적이고 반기본권적인 정치제도를 없앴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다. 

 

정당과 선거에 관한 법제도는 본래 정치권이 주도하여 개혁하여야 할 ‘게임의 법칙’이다. 민주주의 주체들 사이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합의되어야 할 제도에 관한 문제이므로, 정치적 존중과 타협의 미덕이 강하게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우리 정치주체들이 이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득권 포기의 용기를 기대하기에는 정치권의 수준이 아직 모자란다. 결국 제도를 개혁할 새로운 대의주체를 세워야 하며, 이는 유권자인 우리의 몫이다. 국민의 지지 의사를 왜곡하는 대표의 권력 지형은 정의롭지 못하다. 속히 고쳐져야 한다. 또한 정당 민주주의가 확립된 정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정당을 가까이하고 정치활동을 장려하는 정치교육의 방향 전환도 필수적이다. 이 모두를 위해서, 제도 개혁의 길목마다 정치활동의 자유, 정당설립의 자유를 폭넓게 확인하는 헌법재판소의 이정표가 꼭 내걸려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정당법 개혁이며, 이는 반드시 ‘정치적 인간’의 자유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목, 2018/09/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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