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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정체제,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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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정체제, 무엇이 문제인가?

익명 (미확인) | 수, 2018/04/11- 20:30

87년 헌정체제가 수립된 후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개헌 얘기가 나오지 않은 때는 단 한 해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의 개헌론은 시민사회의 호응이 상당해졌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과거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시민사회에서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실질적 의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그것도 언제부턴가는 경제력 수준이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라고 하는 제법 잘 사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다수 시민이 왜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어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수많은 시민이 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 노동자 및 영세 자영업자의 급증, 청년세대의 불안, 인간 소외 등의 이 심각한 사회 분열 양상을 대체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이냐고 한탄했다. 2017년 촛불 광장에선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프레시안
사진 출처: 프레시안

 

한국의 현 사회경제 상황은 “집합적 결정은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에 따른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즉 다수결의 원칙이 관철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원칙이 (엇비슷하게나마) 지켜지고 있다면 어떻게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이 소수에 불과한 강자들의 이익에 번번이 압도당하는 상황이, 그리하여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화‧확대되는 상황이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겠는가. 요컨대, 87년 민주주의 체제에선 다수결의 원칙이 너무도 심하게 무시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교과서적 개념을 따르자면, 87년 체제는 제대로 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의제 민주주의란 민주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그들을 통하여 국가공동체를 간접 운영하는 민주주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하고 있다면, 즉 대표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국가를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한국 시민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는 유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 소상공인, 청년 등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 중 누가 자신들의 유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는가. 실상이 이러하니 사회 구성원의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가 존중되길 바라는 건 애당초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소임은 일반시민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줌으로써 그들이 사회경제적 강자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길항력을 갖추게 하는 데에 있다. 노동이 자본과, 중소상공인이 대기업과, 청년이 장년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과 적어도 정치의 장에서는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할 수 있는 정책과 법, 제도 등은 적절하게 공급될 수 있다.

87년 체제의 수립 이후 만약 대의제 민주주의가 본령대로 작동하고, 따라서 정치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시장에서의 길항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왔더라면, 한국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수준은 지금쯤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87년 체제는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의 고착은 그 결과일 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가 구성원의 대다수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 즉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기만 한다면, 시대정신의 구현, 곧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충분히 달성 가능한 일이 된다. 단, 그러기 위해선, 헌정체제의 개혁 즉 개헌이 불가피하며, 그 핵심 목표는 정치적 대표성을 시민들에게 두루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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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 국회가 바빠졌다. 대통령 퇴진을 통한 정국 수습의 공은 국회로 넘어간 모양새다. 정치권이 어떤 선택을 해야 촛불 100만 민심을 반영하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朴 ‘조건부 퇴진’, 여야의 셈법은?>이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을 마련했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진행을 맡았고, 새누리당(장제원 의원/ 비상시국회 참여)과 더불어민주당(백혜련 의원), 국민의당(이태규 의원)에서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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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국민들은 탄핵 일정이 언제 진행될지 궁금하다.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시점을 2일로 할 것인지 9일로 할 것인지 의견이 나눠진다. 탄핵안 표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의원들의 선택도 관심사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이번 대통령 담화는 탄핵을 막기위한 시간끌기 전략”이라며, 2일 탄핵안 가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은 우선 최대한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보고, 만약 안된다면 9일에 탄핵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일 탄핵안에는 비박계가 “참여하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9일 탄핵안이 의결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탄핵의 열쇠는 비박계가 쥐고 있다면서, 대통령 퇴진에 동참하는 모든 정치세력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

왼쪽부터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

각 의원들은 이밖에 임기단축을 위한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논의에 대해서도 설전을 벌였다. 약 55분 동안 진행된 이번 토론의 전체 영상은 <朴 ‘조건부 퇴진’, 여야의 셈법은?>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토론 주제별 내용을 보려면 아래 주제를 클릭하면 된다.

① 대통령 담화 총평은?
② 새누리 ‘4월 퇴진, 6월 대선’ 어떻게 보나
③ 대통령 퇴진 의사 정말 있나?
④ 탄핵안 표결 시점은 2일? 9일?
⑤ 임기단축을 위한 개헌 논의는?
⑥ 퇴진 이후 정치 일정은?
⑦ 황교안 총리는?


사회 박성제
촬영 최형석, 정형민
기술 정대웅
편집 정지성
CG 타이틀 정동우
연출 김경래, 신동윤, 박중석

수, 2016/11/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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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민심으로 대변되는 대통령탄핵 국면은 개헌논의를 본격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으며, 개헌시기 또한 대선 후 추진 여론이 가장 높다. 하지만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의 개헌논의는 대통령제의 폐해나 권력구조 개편에만 매달리고 있다. 한마디로 기득권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이나 권력연장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득권화되어있는 정치권력 스스로를 개혁하려는 노력과 우리사회의 누적된 모순과 적폐를 타파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더욱이 개헌논의와 관련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절차와 과정은 더더욱이 부족해 보인다.

 

개헌을 주도할 정치권은 각 정당의 이해관계와 대권주자간의 유, 불리에 따라 상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단하나 제왕적대통령제를 바꾸어야 한다는데는 여야 모두 의견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제 하나 바꾼다고 해서 개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촛불민심은 구체제&적폐세력을 청산하자는 것이자 새로운 미래 만들자고 요구하고 있다. 당장 개헌을 요구하는 여야 정치권의 일부 정치인들과 다르게 개헌의 의미와 목표에 대해 촛불민심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논의의 내용은 첫째, 권력구조 개편(4년중임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둘째, 기본권과 사회권(소수자와 약자배려 등 미래가치) 셋째, 자치권(인사, 재정 등의 지방분권형 개헌 등) 넷째, 통일과 영토조항 수정 등으로 이해된다. 특히 현행 헌법의 지방자치 관련 내용은 117, 118조 두 개 밖에 없다. 따라서 제대로된 분권형 개헌이 이루어지려면 향후 개헌 논의과정에서 분권 및 자치권 관련 내용을 담아야 한다. 첫째 지방자치와 분권이 국가체제의 기본원리임을 헌법 전문에 분명하게 규정해야 하며, 둘째 현행 헌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주민복리에 관한 사무와 재산관리>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방정부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주민복리에 관한 모든 사무를 처리>한다로 바꾸어야 하며, 셋째 각종 자치권(자치입법권과 자치조직권 확대, 자치재정권 강화 등)의 강화, 넷째 직접민주주의(국민발안제도, 국민투표제, 국민소환 대폭 확대 및 강화) 강화, 다섯째 자치경찰제 도입 등, 여섯째 지역대표 비례대표제 도입 & 지역정당을 허용 등의 분권적 가치를 이행할 수 있는 여타의 내용을 담아내야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논의의 핵심은 조기대선국면의 원포인트 개헌을 완성하자는 주장과 같은 정치적 논리일 뿐이다.

 

따라서 촛불민심을 대변할 수 있는 개헌논의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헌논의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선후보들은 대선공약으로 개헌로드맵을 제시하고 이행해야 하며, 87년 개헌의 오류를 수정하고, 진정한 개헌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개헌추진에 촛불민심이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가칭)개헌추진범국민운동본부 등 구성으로 개헌목소리 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당분간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한 광장민주주의가 이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이를통해 백년지대계 통일한국의 미래상 그리고 누적된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국민합의의 개헌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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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1/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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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면?

'무난한 승리'에 안주하며, '제왕적 권력'을 원하는 정치

 

김종욱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참여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천일을 목 놓아 울어도 새벽은 오지 않았다. 절망의 아픔을 안고 눈물로 호소해도 꿈쩍도 안 했다. 그들은 애당초 세월호를 뭍으로 올릴 생각도, 진실을 밝힐 마음도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이 가능했던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다. 이 거대한 권력 앞에 '국민의 공복(公僕)들'은 침묵과 왜곡의 공모자가 되었고, 진실을 은폐하고 파기하는 협력자가 되었다.

이 극악한 공모와 협력을 단칼에 자른 것은 '민심(民心)'이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만든 것도 '촛불 민심'이었다. 두려움 없이 광장으로 나온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천만의 촛불, 그것은 억눌리고 고통스러웠던 약자들의 희망을 향한 절규이고,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을 방치할 수 없다는 국민의 요청이고, 기득권과 불평등을 혁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시민의 자존의 외침이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서서히 밀려오는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진주 촛불집회에서 발언한 어느 여대생의 의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진짜 바뀔까요?" 정치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천만의 촛불과 민심의 요동에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망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3년 6개월 동안 벌어진 국정 농단을 누구도 발견‧제어할 수 없었던 시스템, 입시 부정에 대한 이화여대생들의 절규와 우연히 찾은 태블릿PC로 촉발된 이 허망하고 답답한 사태, 대통령을 필두로 비서실장과 장‧차관들의 철저한 공모와 은폐로 일관된 상황, 이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다.

'제왕적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개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와 행정 수반을 겸직하며 막강한 '비상대권'(선전포고권, 계엄선포권, 긴급조치권, 긴급명령권), 헌법 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부의권까지 가진 '초강력' 권력이다.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권력이 부여된다. 이 과도한 권력집중 때문에 반복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고, 이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심각한 권력 갈등이 반복되며, 매번 적대와 갈등의 정치를 구조화해왔다.

따라서 현행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 이것은 민주적 정치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이 제도는 정치학자 황태연 교수에 따르면 "전 국민적 정통성에 독립적 기반을 둔 초당적 실권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수반'과 의회의 신임 여부에 종속된 당파적 실권 총리로서의 '정부 수반'이 나란히 공존하며 협력하는 정부제도"다. 공화정을 선택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초당적인 외교‧안보‧국방‧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다수 의석에 기초한 당파적 직무를 수행하는 내정 총리로의 분권 모델이다.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여야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가능케 하며, 여러 정당의 '공동 집권' 또는 '동거 정부' 등을 통한 '협치(協治)의 정치'를 보장한다. 즉 '제왕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반복적인 '갈등과 투쟁의 정치'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한 '상생 협력 정치'의 길을 열어준다. 정치적 '타협'은 대화와 토론을 전제한다. 민주적 토론을 통한 권력의 나눔과 연합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타협의 정치를 '밀실 야합'으로 폄하하고, 나쁜 정치로 규정했다. (필자는, '어느 학자'와 관련해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의 글을 주석으로 달았다. ☞관련기사 : "도대체 '친문패권주의'가 무엇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유럽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거래'와 '나눠먹기'를 일상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지속해 온 것이다. 그 필자의 의도는 알겠다. 개헌이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제외하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니, 그런 방향의 논의를 중단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정 후보가 헌정보다 중요할 수 없다. '국민은 곧 국가'이며, 국가의 정체는 헌법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저 심각한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제왕적 권력'을 그대로 둔다면, 또 다른 국정 농단이 재연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한 논의는 조기 대선에서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되어야 한다. 국민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차기 대통령 당선자는 이 사회적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


민심과 함께 하는 '공감의 정치'

이를 위해 첫째,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증오와 공격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정치인을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열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열광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아닌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그런 '빠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자기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역주의로 빠지면 다른 지역을 배타하는 증오와 적대의 정치만 남을 것이다.

둘째, 정의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선악(善惡)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공감의 정치'가 필요하다. '선악의 정치'는 단죄의 정치이고 적을 만드는 정치다. 특히,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문재인 후보부터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대세론'에 안주하고 쟁점을 회피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선 안 된다. 즉 '무난한 승리'에 안주하는 것은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패권적'으로 의심했거나 비판했던 부분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시대에 공감하는 것이다.

셋째, 국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많은 이야기들이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펼쳐져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있다. 각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논의들은 밀려나고, 비판적 논의는 집단적 공격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권력 구조는 그대로 놔두고, '정권 교체'만 이뤄지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승자독식,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게임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타협의 정치가 들어설 공간은 협소하다. '독식 권력'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할 가능성이 높고, 국민 전체의 공공선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의 내러티브(narrative)만 흘러넘칠 것이다.

'도깨비' 같이 '국민의 소환에 응하는 정치'

너무 아프고 슬픈 죽음들, 도대체 열심히 살아도 빈곤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천만 촛불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슬픈 죽음에 대한 공감, 그 아픈 삶에 대한 공감이 탄핵의 원천이었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친 '도깨비'에서 지은탁은 기억에서 사라진 도깨비 김신에 대한 감정만으로도 그렇게 쓰리고 아파했다. 저승사자 왕여를 사랑한 김선은 다시 이별이 와도 너무나 보고 싶어서 너무나 만지고 안고 싶어서 달려 나갔다.

세월호 부모들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죽어라 일해도 하루하루가 나락(那落)인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단어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겠는가. 이제 정치인이 민심에 공감해야 한다. 정치가 응답해야 한다. 도깨비 김신이 끝도 모를 그 매서운 눈길을 걸어 약속을 지켰듯이, 국민의 소환에 응하는 것이 정치다. 슬픈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마법을 기대해 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7/02/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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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한국 개헌 대통령 권력 분산 중점 -재벌과의 유착관계 제한, 청와대 개혁 필요 -권력 분산으로 대통령 부정행위 반복 중단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이 한국의 부정부패를 낳았고 이를 막기 위한 권력분산형 개헌이 추진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블룸버그는 31일 ‘Korea Moves to Curb Presidential Powers After Park Scandal- 박근혜 스캔들 이후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려는 한국의 움직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
금, 2017/02/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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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집중탐구’ 정치교실>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금/여기의 정치이슈를 참여와 토론을 통해 알아보는 정치발전소의 프로그램입니다.

* ‘집중탐구’ 정치교실은 일방적 강의가 아닌 참가자 상호간의 참여와 토론을 중시합니다.

오늘의 주제 : 개헌과 대선

일시 : 2017년 2월 18일(토) 2시~7시
장소 : 정치발전소
참가비 : 5,000원(비회원 10,000원/1005-702-851358 우리은행 정치발전소)
참가신청 : http://bit.ly/political_focus
문의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정치발전소

금, 2017/02/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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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토) 오후 2시, 정치발전소에서 <집중탐구 정치교실>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개헌과 대선’ 이었습니다.
네 분의 강사님이 강의를 해주셨고, 이를 듣고난 후 참가자들이 질의응답과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강의는 정치심리학자이자 통일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하시는 이상신 박사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인간 활동의 하나인 정치학과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심리학의 결합인 정치심리학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내러티브’, ‘스키마’ 등 새로운 개념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정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강의는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이자 정치발전소 이사이신 조현연 박사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한국정치사 속에서 개헌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맥락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총 9번의 개헌 중 대부분이 권력 유지를 위한 헌정파괴 개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시에 지금의 개헌 논의가 어떤 맥락에서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잠깐의 휴식 후 진행된 세 번째 강의는 박상훈 학교장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정치적 개헌론’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강의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민주주의에서 헌법은 문구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넘어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과 함께,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촛불이라는 시민들의 행동과 요구를 정당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개헌안으로 만들어가야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강의는 아주대 법학전문대의 오동석 교수님이 진행해주셨습니다. 법학자의 시각에서 개헌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해주셨는데요, 개헌이 되어 헌법의 문구가 바뀐다 해도 수많은 법령들이 헌법의 정신을 충분히 담지 못한다면 개헌이 의미있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때문에 지금 중요한 것은 개헌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입법 권력자인 국회의원들이 헌법의 정신이 잘 구현될 수 있도록 현행 법령들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강의가 모두 끝나고서는 참가자들이 모여 앉아 질의응답과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강의가 예상보다 긴 시간 동안 진행되어 토론을 길게 하지는 못했지만 정말로 좋은 방향으로 개헌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의견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날의 행사를 통해 ‘좋은 개헌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헌재의 탄핵 심판과 대선 등 굵직한 정치일정들이 남아있는데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후에도 많은 의견들을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집중탐구 정치교실>은 앞으로도 좋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사안을 다루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의견 바랍니다.

월, 2017/02/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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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평등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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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과 취지
 -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되면서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으나, 개헌 방안에 기본권 보장방안은 논의가 거의 되지 않고 있음. 최근 국제 사회에서 지속가능발전과 사회권 보장이 중요한 이슈이며, 사회권이 추상적 권리가 아닌 구체적 권리로 보장하라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 행보를 맞추지 못하고 있음

- 양극화,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시민의 생존권과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권의 실질화가 사회적 과제이며, 이를 개헌 과정에 제안하고 반영하여야 함. 헌법에 반영되어야 할 사회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고, 사회적인 공론의 장을 만들고자 함 

 

○ 토론회 개요
 - 일시: 2017년 3월 23일(목) 오전 10시 
 - 장소: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 
 - 주최: 참여연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한국사회보장법학회

 

○ 진행 순서
 - 사회자: 이호근 전북대 로스쿨 교수(한국사회보장법학회 회장) 
 - 발제 1: 개헌과 사회권: 실질적 평등권, 생존권 보장을 위한 헌법개정 |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발제 2: 국제 사회에서의 사회권 규약과 개헌 | 이숙진(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 토론 1: 정춘숙 국회의원 (국회 개헌특위)  
 - 토론 2: 헌법 개정에서의 사회권 보장의 실질화: 국제인권법과 외국 헌법례를 기초로 | 이주영 박사(서울대 인권센터)
 - 토론 3: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이주민과 사회권 부분) 
 - 토론 4: 신영전 한양대 교수(건강권 부분) 
 - 토론 5: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질의응답

 

참여연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한국사회보장법학회

 

월, 2017/03/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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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3당의 대선일 개헌 국민투표 합의

적폐 청산과 대선이 먼저다
주권자 참여 없이 권력구조만 바꾸겠다는 개헌은 정치적 야합일 뿐

 

오늘(3/15)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대선 당일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이 확정된 초유의 상황에서 나온 합의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당면한 대내외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다. 개혁과제 실현을 담보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시기에 정치권 일각에서 국가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개헌을 50여일 만에 처리하겠다니 터무니없기 짝이 없다.

 

대통령 탄핵과 함께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자 지금까지 국회 내 개혁입법을 가로막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포함해 이번 합의에 함께한 세 정당들은 권력 나눠먹기식 야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 의사와 관계없는 개헌 추진은 결코 있을 수 없다. 

 

 

1987년 헌법의 한계는 분명하고, 개헌은 필요하다. 하지만 개헌은 주권자의 참여와 주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 개정의 내용도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의 분산과 함께 국민 기본권과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권력 구조만 바꾼다고 정치권이 민의를 더 반영하거나, 권력 분점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개헌은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담고, 견제와 균형을 위한 틀을 바꾸는 일이다. 주권자들의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이 수렴되어야 하는 일이다. 개헌과 같은 중차대한 일을 졸속으로 처리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우리는 지난 해 10월 박근혜가 박근혜_최순실 게이트를 덮기 위해 국회에 개헌 논의를 제안했음을 기억한다. 시민들은 이러한 정치적 술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결국 국회 탄핵안 가결과 헌재의 파면을 이끌어냈다. 박근혜의 파면은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지 않고 헌법 수호 의지가 없어서였다. 그런데도 대선 시기에 개헌 논의를 부추기고, 개헌의 내용 역시 자신들 입맛에 맞게 졸속으로 처리하려는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파면된 박근혜는 만장일치의 헌재 결정조차 승복하지 않고 있다. 적폐 청산과 공범자 처벌도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함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국민들도 3당의 정치적 의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적폐청산과 대선이 먼저다. 개헌은 그 다음이다. 끝.

수, 2017/03/1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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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정략적 개헌논의 중단하고 선거법부터 개혁하라

 

오늘(3/15)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간사들이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에 합의하고 단일안을 만들어서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촛불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촛불민심은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1조에 충실한 것이다. 

 

국가의 기본이 되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견은 전혀 묻지 않고 자신들끼리 밀실에서 합의하여 헌법개정안을 발의한다면 촛불민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헌법을 개정하려 한다면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과정을 반드시 밟아야 한다. 그래야만 개헌추진의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대선 국면에서 정략적으로 개헌을 이용하려는 시도는 결코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선거법 개혁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선거제도는 개헌을 하지 않고도 법률개정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만18세 선거권을 보장하라는 것은 중앙선거관리원회도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당면한 조기대선에서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는 사실상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오늘의 국회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권자인 시민들은 국회야말로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하려면 선거법을 개혁하여 민심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국회를 구성하고, 국회의원 특권폐지 등의 국회개혁을 강력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권력구조 개편논의는 ‘기득권자들의 권력 나눠먹기’에 불과하다. 

 

전국 124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은 오늘 3당의 합의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절차에 관한 논의가 선행되고 선거법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졸속·정략적 개헌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힌다. 끝내 이런 식의 개헌을 밀어붙이겠다면 그 때는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수, 2017/03/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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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의 핵심은 '자치'여야 한다

분권과 자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

 

김종욱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국민 선택의 실패'와 시민의 책임을 확인하는 정치 과정이었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해야 했으나, 동시에 그 국민은 민주주의와 헌정을 지키는 주체임도 확인했다.


왕이 사라진 공화국의 국민은 그들의 손으로 선택한 대리자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연인원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토요일마다 광장으로 나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으니, 그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가슴 아픈 고백을 해야만 했다. 도대체 파악되지 않는캐릭터를 가진 대통령과 제왕적 권력이 만나 벌어진 이 답답한 해프닝은 탄핵 인용으로 귀결되었고, 이제 전직 대통령이자 피의자 신분이 된 탄핵 당사자는 삼성동에 칩거하며 자신의 무죄를 강변(强辯)하고 있다. 범죄 여부는 국민이 그토록 신뢰하지 않던 검찰과 법원에 맡겨두도록하자. 그 이유는 민심의 균형추가 무너진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자신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중대한 배신'을 통해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탄핵 인용 이후 개헌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집권당이 될 개연성이 높아진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하고, 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개헌안 국민투표를 5월 9일 대통령 선거일에 동시에 하자고 합의했다. 개헌의 시기와 내용을 중심으로 정치적 갈등과 국민적 분열이 시작되었다. 일방은 권력을 나눠 먹으려는 정략적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다른 일방은 제왕적 권력을 축소해서 재발을 방지하자며 빠른 개헌을 주장한다. 뭐 시점이야 올해 대통령 선거일이든 내년 지방선거일이건 간에, 그것이 국민적 합의 속에서 진행되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마도 이 논쟁은 헌법 개정 내용은 고사하고 시기 논쟁만 벌이다가 날을 샐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첫째, 제왕적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대립하면서 언제까지 국민을 분열로 몰고 갈 것인가? 둘째, 모든 문제를 대통령 개인의 잘못 탓으로 돌린다면, 매번 실패하는 유권자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셋째, 거대한 정치 변동이 지나고 난 이후, 대한민국의 변화를 차기 대통령의 통치에 맡겨 놓으면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개헌 문제에 대한 민주적 토론을 전개해야한다.


분권형 개헌은 다양한 정당의 연합정치 실현과 이념이 다른 정당의 '동거정부'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여러 정당의 연합정치와 동거정부의 경험은 토론과 협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다. 이미 입헌군주제나 내각제를 채택한 국가가 아니라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오죽하면 유럽에서 미국의 대통령제는 늘 공포, 멸시,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왕정복고와 독재적 권력 집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국 대통령제는 남북 갈등이라는 지역 대립, 연방제도에 의한 특유의 견제 장치 등 우연적이며 특수한 정치 지형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미국 특유의 정치제도인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권력 획득을 위해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아귀다툼을 하는 '싸움질'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분권형 개헌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서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불행한 대통령'이었다. 만약 이것이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면, 공화국 주권자인 국민은 매번 '나쁜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시원(始原)도 유권자인 국민이다. 이도 아니라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여야 정당정치와 입법부의 무능 때문이다. 즉 이 정국은 국민 선택의 실패이며, 총체적인 정치 기능의 마비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사라져야 할 것은 박근혜 전(前)대통령만이 아니라, 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방치한 정당체제를 해산하거나 정치인들 모두가 책임지고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의도 정치'의 종언을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 '87년 체제'가 선택한 헌법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고, 2012년 유권자가 선택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낙마했다. 국민은 탄핵 민심을 통해 문제가 된 대통령을 자연인으로 되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의 문제점을 고치는 것이다.

 

이번 탄핵 정국의 또 다른 핵심적 함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로 집약된다.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의 삶을 제고할 수 있는 '역사적 결절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 핵심인 자치를 헌법 개정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 루소는 자유란 인민의 자치 실현이며, 인민이 자기입법의 실천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라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주의는 자치의 확대였다. <예기(禮記)>에도 자유 평등한 백성들이 임금을 표준으로 삼아 자치하는 '칙군자치(則君自治)'를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치가 실현되는 풀뿌리의 변화, 즉 일상의 민주화가 중요하다. 자본과 행정관료, 지식권력과 법‧제도로 포박된 일상의 식민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치 권력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일상의 민주화는 앞으로 진행될 엄청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진지(陣地)를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의 격랑은 일상을 뒤덮을 것이다. 기술의 급속한 변화와 자본의 공룡화 시대의 도전에 맞서 가정, 일터, 마을, 공동체의 일상적 삶의 공간을 가꾸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도 자치 권력에서 나올 것이다. 잘못된 권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했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의 국민들에게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은 너무도 현명한 조치다. 더 많은 자치권을 획득한 대한국민은 가정, 일터, 마을, 공동체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그래서 자본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공감과 치유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투쟁하기보다는 분권과 자치의 시대로 전진해야 한다. 개헌 논의가 더 필요하다면 토론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대신 이번 대통령 선거의 입후보자들은 정당 또는 개인의 개헌안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거대한 민심을 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 민심은 헌법을 낳고 공론은 법률을 낳는다. 그래서 국민의 공감대를 헌법에 담는 것은 '국민이 곧 국가'임의 천명(闡明)이다.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서 '마마 용서하옵소서'라며 눈물을 흘리던 여성도, 경남 봉화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나라를 걱정하는 남성도, 그것을 애국으로 알고 있는 우리 국민이다. 이제 진짜 권력은 나누고, 국민에게 돌려주자.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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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7/03/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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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해결은 간단...전면 철회 선언하면 된다

개혁의 폭과 속도​가 중요하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촛불 대선'이라고 불린 19대 대통령 선거가 적폐 청산을 약속한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시대를 압도할 것 같던 촛불시민 혁명의 열기가 이어진 선거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4​1​%를 간신히 넘은 지지율로 당선된 점은 ​새 정부가 가야 할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50% 이상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호소는 엄살만은 아니었다. 국회 의석이 여러 정당들이 나누어가지고 있는 상황, 게다가 여당이 된 민주당의 의석은 겨우 120석, 그러니까 국회 과반은커녕 40%에 딱 턱걸이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에 동의하면서도 ​문재인​ 후보를 찍지 않은 ​진보 및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협치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국민의 당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새 정부가 과연 적폐 청산이나 사회 대개혁에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임 정부와 달리 언론장악은 엄두 낼 수도 없는 정부이다. 언론의 비판과 감시 앞에 하루도 발 뻗고 잠자지 못할 정부이기도 하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청와대 권력 외에는 사회 권력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 대개혁은 그만큼 더 어려운 과제다.

 

게다가 이번에 권력에 접근하지 못한 이들은 더더욱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에 더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공언했던 바다. 개헌하자는 주장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헌 논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다른 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것이 쉬울까 싶다. 그야말로 믿을 구석은 정권교체와 사회 대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일 테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 ​이 새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역할만을 할 수는 없다.

 

고고한 척하면 되기 때문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과 감시, 더 개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과정에서도 해야 할 일은 많다. 북핵 위기, 사드 위기, 경제 위기 등 헤쳐가야 할 위기도 많다. 이럴 때일수록 우선순위를 잘 잡고 가야 할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이고, 시민사회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둘 사이에는 우선순위 설정이 다를 수 있고, 또 다른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갈등을 고조하고 정쟁을 가중시키는 정책부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삶을 보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국민들을 위한 따뜻한 돌봄의 실현과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국공립어린이집, 국공립요양시설, 공공병원 등 공공인프라의 확대는 국민들의 삶의 안정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 줄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계소득이 두터워지게 하는 것도 새 정부의 중요하면서도 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땀 흘려 일하면 먹고는 살 수 있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고, 미래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사회로 가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기관이나 공직자들의 불법 부당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잘못에 대해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국가정보원이 벌인 정치공작,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한 대통령이 책임지고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쟁이나 사회 갈등이 적으면서도 시민들의 기대와 열망이 쌓여있는 과제들은 또 많다. 물론 국회의 협력을 얻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18세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도록 추진하는 것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률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정보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근절하도록 국정원법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면 국회의 협력을 기다릴 필요 없이 대통령과 행정부 스스로 결단하면 될 일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전면 철회를 선언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 스스로 독립적 기구로 꾸리는 것도 그러하다. 그 위원회의 조사 활동에 모든 정부기관이 적극 협력하도록 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러저러한 개혁 과제들을 열거하자면 10가지도 100가지도 더 늘어날 것이다. 많은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몇 가지라도 분명하게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독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개혁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힘이 있을 때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국민적 동의와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개혁은 금방 벽에 부딪힌다. 그 좌절의 후유증은 다른 개혁의 추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적 동의, 그리고 다른 정치세력의 동의와 기반이 넓은 것부터, 그리고 기반을 넓혀가면서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체 정부인만큼, 국회 내에서도 40%의 의석만 확보하고 있는 여당인 만큼 개혁의 지지 세력과 동의 기반의 확인을 거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진보적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처한 환경도 이제 달라졌다. 지난 9년 ​동안은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는 청와대, 행정부와 집권 여당에 맞서 싸우는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 이제는 퇴행의 저지가 아니라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두고 싸우는 시대​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냐 일부 개정이냐를 두고 갈등을 빚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경우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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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5/1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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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영수 |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 국정교과서 폐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세월호 참사로 숨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4대강과 문건 사건 재조사, 파격과 개혁이 어우러진 인사 … 불과 열흘 남짓 새 정부가 보여준 소탈한 소통 행보와 개혁적 조치들은 시민들에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에 대한 희망과 주권자로서의 자존감을 돌려주었다. 바야흐로 역사에 다시 봄이 왔다. 


새 정부를 출범케 한 바람은 광장에서 불어왔다. 지난 겨울 시민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만연한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한 삶에 내몰린 시민들의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개혁의 염원, 연대의 촛불로 옮아 들불이 되고 마침내 촛불시민혁명을 이뤄냈다. 그리고 촛불시민혁명은 반민주세력의 집권을 허용한 4.19 혁명, 6.10 항쟁의 비극적 역사를 딛고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하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분권·자치·협치, 적폐 청산, 경제민주화, 복지국가건설과 양극화 해소로 대표되는 촛불시민혁명의 정신과 요구를 담아내고 실천하는 것은 새 정부의 사명이고 시대정신이다.


87년 6.10 항쟁의 성과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심화와 승자 독식의 왜곡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지배구조를 공고화하는 결과를 막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물꼬를 트면서, 개헌은 내년 6월 당면한 일정이 되었다. 국회를 중심으로 일부 개헌 논의가 있어왔으나, 개헌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폭넓은 참여와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촛불시민혁명의 시대정신을 헌법에 구현해 내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복지동향 6월호는, 개헌 논의를 주권자인 국민의 장으로 넓히는 첫걸음으로 “실질적 평등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을 기획주제로 다루었다. 이찬진 변호사는 사회복지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의 관점에서 헌법 개정 시 반영되어야 할 사회권 조항과 그 기초가 되는 평등권 조항에 대해 포괄적으로 일별하고 시안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인 시안을 보면, 먼저 헌법전문에는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을 녹여냈다. 평등권의 강화·실질화를 위해 차별금지사유로 인종, 언어, 장애, 고용형태 등을 추가하고, 차별 피해자의 구제청구권 및 국가의 차별시정 노력의무와 적극적 조치의무를 신설하였으며, 특히 평등에 있어 사회적 약자인 아동, 장애인, 여성은 결과적 불평등의 시정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 조항에서 UN협약 수준의 권리를 명시하고 차별시정 및 적극적 조치의무를 보장하였다. 사회권의 영역에서는 헌법상 ‘근로’의 용어를 ‘노동’으로 변경하고 노동권을 대폭 강화하였으며, 노동의 소득분배율을 제고하기 위해5차 개정헌법 이후 삭제된 사기업의 노동자 이익분배균점권 조항의 명문화를 제안하고, 주거권을 신설, 확대한 내용이 주목을 끈다. 이숙진 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는 국제사회의 사회권 규약과 쟁점을 소개하면서, 국제사회의 사회적 규약이 국내적 규범력을 강화하고 사법적 심사가능성을 높여가는 추세임에 반해 우리 사법기관은 사회권의 규범적 효력 인정에 소극적인 현실을 지적하였다. 황필규 변호사는 이주민의 사회권의 개헌 및 법령 정비 방향을 정리하였는데, 특히 현행 헌법 제6조 제2항을 이주민에 대한 상호주의를 규정한 것으로 보는 종래 일반적 해석을 비판하고, 이를 헌법상 이주민의 기본권 전반에 걸친 일반적 기본권 구체화적 법률유보로 보아 차별금지와 내외국인 평등주의, 취약한 집단의 특별한 보호의 관점에서 이주민의 기본권은 재구성되고 재해석하여야 한다는 견해는 경청할 만하다.  신영전 한양의대·보건대학원교수는 건강권을 중심으로 개헌방향을 정리해주셨다. 국내체류 이주민의건강권 보장과 보건의료 정책 수립·시행 과정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국민의견수렴의무를 명시한 것이 눈에 띄는데, 후자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진주의료원폐쇄를 떠올리게 한다.

목, 2017/06/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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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을 어떻게 실효화할 것인가?

-건강권을 중심으로

 

신영전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 보건대학원 교수

 

 

헌법개정과 사회권 논의의 의미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사회권논의가 포함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은 첫째, 최근 정치, 사회, 문화 등 변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기존 헌법이 담지 못하거나 담았어도 충분하지 않았던 사회권의 내용을 분명히 하는 것이고(상황부응성, 범위의 확대), 둘째, 헌법에 명시된 각종 조항의 책임주체와 그 역할을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것이며, 셋째, 그간 사회권이 가졌던 핵심적인 문제,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여건’이 충분하지 못해 사회권을 실효화하기 어렵다는 (다양한 수준에서의) 결정을 돌파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서술을 어떻게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실효화). 넷째, 그 밖에도 국민의 정책결정과정의 참여 확대 등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공고히 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전쟁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 재난, 재해 등과 같은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체계를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상당수가 기존에 간과되어오던 사회권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발제안에 대한 의견

이찬진 발제문에 대한 의견

전반적인 의견에 동의하나,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완되거나 추가될 필요가 있다. 첫째, 현재 한국사회에 직면하고 있고, 또한 가까운 시일내에 직면하게 될 주요 문제들이 충분히 전제되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예를 들어, 대규모 재난 및 재해관련 안전문제, 사회의 다양성 문제, 기술의 급속한 발전, 한반도 통일과 평화체계 등). 둘째, 새롭게 추가되거나 개정된 헌법내 사회권 관련 내용들을 어떻게 실효화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개발이 필요하고, 그러한 전략에 입각한 헌법 조항의 배치, 기술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권적 건강권에 대한 내용은 아래 별도의 기술과 같다.

 

이숙진 발제문에 대한 의견

헌법에 명시한 사회권을 실효화하는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국제사회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권 이행 수준의 상시적 모니터링과 피드백이 가능한 체계의 마련, 국제적 비교지표의 설정, 보고의무, 불이행시 불이익조항 등과 같이 현재 국제사회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며, 그러한 장치를 헌법내에 어떻게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권과 건강권

기존 헌법에서는 제10조에서 행복추구권을 규정하고 있고, 제34조에서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짐을 천명하고 있다. 특별히 제36조에서는"모든 국민이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은 건강할 권리를 가진다”와 같은 적극적인 표현을 피하고 ‘보건’, ‘보호’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헌법에서는 구체적으로 ‘건강권’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있고, 보건의료관련 법령 중 이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보건의료기본법」이다. 그 내용은 다음와 같다.

 

제10조(건강권 등) ①모든 국민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성별·연령·종교·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이 외에도 건강권은 의료법, 소비자보호법, 환자권리장전 등 다양한 법률과 규정에서 언급되고 있다.1)

기존의 관련한 국내외 선언, 규약, 법 등에서 보이고 있는 건강과 관련한 권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건강권은 첫째, 최선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 둘째, 알 권리, 셋째, 치료과정에서의 자기결정권, 사전 동의(informed consent), 넷째, 진료 상의 비밀을 보장 받을 권리, 다섯째,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 생활환경의 확보 권리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사회권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는 건강권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유하는데 필요한) 최선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 생활환경을 보장받을 권리이다.

 

 

물론, 본질적으로 인권을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기계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이는 개념의 상대적 유사성을 중심으로 어떤 측면이 강한지를 중심으로 한 분류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권적 건강권은 『보건의료기본법』 제10조에서“모든 국민은 성별·연령·종교·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서 언급한 사회권적 성격이 강한 건강권 역시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신영전2011).

 

개정헌법에 포함되어야 할 사회권적 건강권

이러한 건강권의 요소들을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잘 포함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의 헌법은 사회권적 건강권의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요소들을 보다 명확히 하고, 표현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제36조 ③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제35조 조항을 다음과 같이 변경할 필요가 있다.

 

제35조 ①모든 국민은 건강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여야 한다.

②모든 국민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 생활환경에서 일하고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③모든 국민은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유하는데 필요한최선의 보건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④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과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응급 보건의료서비스와 같은 건강관련 기본적 권리는 국민 뿐만 아니라(거주의 합법성과 무관하게)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도 제공되어야 한다(제35조4항). 또한 책임이행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제35조5항), 국민참여기전(제35조7항)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도 34조 5, 6항 등 관련 조항들을 사회권적 건강권의 내용과 조응하도록 수정해야 할 것이다.

 

 

소결

무엇보다 사회권과 관련한 논의가 권력구조문제의 들러리나 구색맞추기 형태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헌법제정과정을 모든 국민들과 함께 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헌법안의 구체적인 항목을 검토하기에 앞서, 주요 이슈들(예를 들어, 전망, 수용가능성, 운영 전략 등)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인권은 선언적이고, 인권의 힘도 거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권과 자유권의 구분, 건강권, 주거권, 교육권 등으로 인권을 쪼개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것을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헌법의 조항을 보다 적절하게 개정, 신설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이에 비해 이러한 조항이 어떻게 실효적인 구속력을 가지도록 할 것인가는 조항의 개정, 신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와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법제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기구의 운영, ‘위험자 전환전략’(국민 개개인이 사회적 위험에 대해 우선적으로 위험을 부담하는 방식에서 국가가 위험을 부담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등의 작업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패방지, 수입과 소득파악률 대폭 향상, 재정사용 투명성의 획기적 확대 등과 함께 이루어지는 보장성의 확대를 통해 사회권 실효화의 전제조건인 국민적 지지와 안정적인 재원확보가 가능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정책 내용과 같은 각론작업에는 늘 맥락에 대한 고려, 다양한 접근방식에 대한 이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많은 경우, 이러한 이견의 존재는 애써 확보한 인권의 결실을 무력화시키는 중요한 이유가 되곤 한다. 따라서 인권이 지향하는 목적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 못지 않게 다양한 이견들을 어떻게 인권적으로 조정하고 결정해 나갈 것인지와 관련한 과정에서의 합리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내용이 함께 제시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헌법에 바람직한 조항들을 새로 새기고, 이를 지켜내며, 또한 이들 조항들이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끊임없는 행동, 헌신, 연대가 필요함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자세한 내용은 “신영전 (2011). "사회권으로서의 건강권-지표개발 및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 상황과 복지(32): 181-222.”을 참고할 것

 

 

<참고문헌>

신영전(2011). "사회권으로서의 건강권-지표개발 및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 상황과복지(32): 181-222.

 

 

 

 

목, 2017/06/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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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의 사회권 규약과 개헌

 

이숙진 | 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사회권 규약과 한국의 사회권 논의

우리사회에서 사회권 논의가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도 매우 소극적이고 주변화된 형태로 진행되어 사회권이 무엇인지, 혹시 사회주의국가들에서나 주장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는 수준에 머물러있기도 하다. 차별금지와 평등권 침해를 연구한 여성주의 연구자인 필자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관한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로부터 사회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논의는 현재 정치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개헌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에만 집중되고 있는 점을 두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로서의 사회권이 개헌 논의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사회권규약을 비준한 국가로서 이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헌 논의와 사회권 규약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자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사회권
사회권의 개념과 내용이 권리 개념으로 이해되고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의 장을 갖게 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사회권 논의 시작으로부터 그 계기를 찾을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사회권포럼을 개최했다. 당시 정강자 인권위 상임위원은 국가인권위가 출범 이후 상당기간 자유권과 평등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사회권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2005년 9월부터 발족한 사회권연구회의 결과를 사회권포럼을 통해 공유하고 국제인권기준에 입각한 사회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의무를 조명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힘입어 주요 연구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으며, 사회복지학계를 비롯한 관련 학계와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도 내부 조직에 사회권위원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주요 연구 동향은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 등 각 대상별 사회권의 내용과 실태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사회권 지표를 통해 우리나라 사회권 수준을 판단하는 내용들이었다. 이러한 논의에 기초하여 사회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사회권을 위한 재정의 확보와 실행 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 유엔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서는 이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인권위가 주최한 사회권 관련 논의는 2007년에 ‘빈곤과 사회권’이라는 주제로 기초생활 취약계층의 생존권 보호와 국가의 의무에 대한 심포지엄이 있었고, 2008년에 ‘사회권 지표를 통해서 본 한국의 사회권’을 주제로 사회보장권,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등의 현황을 점검하였으며, 2009년 비판사회학회와 공동으로 ‘경제위기와 사회권’ 심포지엄을 개최한 사례 등이 있다. 이후 인권위가 주관하여 사회권 논의를 적극적으로 주도하지는 못했는데 이는 정부의 성격과 인권위 내부의 동력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복지와 사회권 
기본적 인권으로서의 사회권에 대한 접근이 인권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사회복지분야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준에 대한 제도와 정책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졌다. 빈곤 심화, 사회적 배제 그리고 양극화 등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회보장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기초생활과 취약계층에 대한 프로그램과 제도의 보완을 요구하는 사회복지는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과제로 사회권을 다루어 왔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라는 측면에서 사회복지의 권리적 접근인 사회보장권은 사회권과 동의어로 이해될 만큼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권리영역이라 할 수 있지만, 사회권은 사회보장권을 포함하여,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등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의의 사회복지를 넘어선 영역이다. 사회복지 지표를 통해 나타나는 사회권 현실은 그런 점에서 사회권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기 보다는 빈곤, 실업, 건강상태 등을 중심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기준에 대한 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권은 사회복지 지표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게 되며, 2차 분배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권적 기본권의 확대를 추구하여야 한다.

 

유엔 사회권 규약
한국은 1990년에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사회권 규약)을 비준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회권 규약을 비준한 국가는 167개국에 달한다. 사회권 규약을 비준한 국가로서 무엇을 이행할 수 있는지 국가의 책무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사회권 규약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사회권 규약은 1966년에 채택되어 1976년에 발효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적용일은 1990년 7월 10일이다. 이 규약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세계인권선언에 따라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자유 인간의 이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경우에 성취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총 31개의 조문에 합의한다. 핵심적인 조문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제2조의2.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행사되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
제3조 모든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를 향유함에 있어서 남녀에게 동등한 권리를 확보할 것을 약속한다.
제6조의1. 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선택하거나 수락하는 노동에 의하여 생계를 영위할 권리를 포함하는 근로의 권리를 인정하며, 동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제6조의2. 근로권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취하는 제반 조치에는 개인에게 기본적인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조건하에서 착실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과 생산적인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 및 직업의 지도, 훈련계획, 정책 및 기술이 포함되어야 한다.
제7조 이 규약의 당사국은 특히 다음 사항이 확보되는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을 모든 사람이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a) 모든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다음의 것을 제공하는 보수
      (ⅰ) 공정한 임금과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한 동등한 보수, 특히 여성에게 대하여는 동등한 노동에 대한 동등한 보수와 함께 남성이 향유하는 것보다 열등하지 아니한 근로조건의 보장
      (ⅱ) 이 규약의 규정에 따른 근로자 자신과 그 가족의 품위있는 생활
  (b)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
제8조의1.(a)     모든 사람은 그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관계 단체의 규칙에만 따를 것을 조건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그가 선택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권리, 그러한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법률로 정하여진 것 이외의 또한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를 위하여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거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과할 수 없다
제9조 모든 사람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제10조의1.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인 가정에 대하여는, 특히 가정의 성립을 위하여 그리고 가정이 부양 어린이의 양육과 교육에 책임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가능한 한 광범위한 보호와 지원이 부여된다. 혼인은 혼인 의사를 가진 양당사자의 자유로운 동의하에 성립된다
제10조의2. 임산부에게는 분만전후의 적당한 기간 동안 특별한 보호가 부여된다. 동기간중의 근로 임산부에게는 유급휴가 또는 적당한 사회보장의 혜택이 있는 휴가가 부여된다
제11조의1.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제12조의1. 모든 사람이 도달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제13조의1. 모든 사람이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당사국은 교육이 인격과 인격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발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교육이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제13조의2. 동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인정한다
  (a) 초등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무상 의무교육으로 실시된다
  (b) 기술 및 직업 중등교육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중등 교육은, 모든 적당한 수단에 의하여, 특히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다
  © 고등교육은, 모든 적당한 수단에 의하여, 특히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에 의하여, 능력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개방된다
  (e) 모든 단계에 있어서 학교제도의 발전이 적극적으로 추구되고, 적당한 연구·장학제도가 수립되며, 교직원의 물질적 처우는 계속적으로 개선된다
제15조의1.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위에서 열거한 사회권 규약의 조문들을 실체적 권리들로 정리해보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남녀평등권, 노동권, 공정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노동조합 관련 권리, 사회보장권, 임산부·어린이 및 연소자의 보호, 식량, 의복, 주택 등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 건강권, 교육권, 문화와 과학 관련 권리 등이 규정되어 있다.

 

유엔 사회권 비준국으로서의 한국
사회권 규약을 비준한 당사국으로서의 한국에서 사회권 규약에 규정된 권리항목들의 실현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의 사회권적 기본권을 침해당한 경우, 이러한 피해를 구제할 법적 근거와 수단이 확보되어 있는가는 사회권의 규범력과 이행절차에 대한 핵심적 논의가 될 것이다. 현재 사회권 규약의 제 권리 목록에 대하여 우리의 헌법은 다양한 근거규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각 개별법을 통해 이를 집행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피해구제의 절차 혹은 국가의 사회권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는 미흡하며, 따라서 매우 소극적인 혹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권 규약 당사국의 관련 전문기구라 할 수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이후 5년마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작성하고 있다. NAP 권고안은 정부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의 근거가 되며 동시에 정부의 인권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법무부는 2007년에 1차 기본계획을, 2012년에 2차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3차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에 관련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연구는 사회권 실현을 위한 국가의 책무 실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사회보장권, 근로권, 노동3권, 건강권, 주거권, 교육권, 문화권, 환경권, 인권교육 등의 영역을 중심으로 인권 NAP 사회권 영역의 이행상황과 진단 그리고 정책수단별 이행상황을 점검하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연구에 기초하여 수립되는 3차 NAP에 국가는 사회권적 기본권의 각 대상별, 영역별, 부처별 정책을 실행하여야 하는 것인데 아직 3차 NAP는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시도하는 유일한 국가종합계획인 NAP의 이행과 효과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회권의 권리목록을 집행하는 각 부처별 특성과 이행 기준과 강제수단의 부재, 그리고 재정 범위의 제약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3차 NAP가 실행되어야 할 2017년 3월의 시점까지, 법무부의 NAP는 공개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 사회권 규약의 비준국으로서 한국은 양극화, 고용과 주거의 불안정, 차별과 혐오 문화, 교육격차 심화 등의 사회적 위기 상황에 보다 구속력있는 국가정책의 이행을 촉구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개헌 논의는 이러한 사회권 이행실태의 장애요인을 인식하여 헌법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권 규약의 쟁점

사회권 규약을 비준하고 이를 기본적 인권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왜 사회권의 이행과 실행에 대한 국가적 책무가 부재하며, 사회권 침해에 대한 피해를 법에 호소할 수 없는 것일까. 

 

사회권과 자유권은 서로 다른 인권이 아니다
우리는 1990년에 시민적, 정치적 권리로 알려진 자유권 규약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인 사회권 규약을 동시에 비준했다. 세계인권선언으로부터 자유권과 사회권이 분리되어 별도의 규약으로 선택된 세계사적 흐름이 있다. 자유권 규약과 사회권 규약이 서로 다른 권리목록인가에 대한 논쟁은 권리의 성격과 이행수단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권, 즉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권리들은 침해에 따른 법률적 구제가 사법적 심사를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권은 각 국가들마다 상이한 재정 수준과 사회권 기준들을 문제 삼으며, 침해에 따른 법률적 구제가 여의치 않다는 입장들이 제시되어 왔다. 과연 자유권과 사회권은 서로 다른 인권인가.

 

유엔 사회권위원회 위원이자 독일 만하임대 법대 Eibe Riedel 교수(2008)는 자유권과 사회권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사회권의 실현이 자유권의 실현임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사회권은 정책 가이드라인이거나 입법 활동 또는 자원의 이용가능 여부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시간을 초월한 신성한 청구권이 아니므로 인권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다. Riedel 교수는 자유권과 사회권이 비준국가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기제이며, 모든 UN기구는 인권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공분산성을 언급하고, 적정 수준의 생활, 보건, 교육, 사회보장 및 일자리에 대한 동등한 접근성이 없을 경우 자유권도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실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사회권이 자유권을 훼손할 수 있는 쉬운 예는 비용과 정책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장애인의 이동권이 제약되고 이러한 제약은 장애인의 투표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둘째, 자유권은 비용 중립적이지만 사회권은 국가의 적극적 행동을 통한 비용투입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인권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자유권의 보장을 위해서도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이 비용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안전을 위한 경찰력 배치가 필요할 수 있으며 귀가를 위한 대중교통 제공이 뒤따라야 하는 문제일 수 있다. 즉 비용의 문제 혹은 국가의 개입의 문제만으로 사회권과 자유권이 근본적으로 다른 인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셋째, 자유권은 절대적 보장 권리이며, 사회권은 상대적 보장 권리로 서로 다르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다. 절대적 권리인 자유권은 침해가 발생할 경우 바로 법에 호소할 수 있는 반면에 사회권은 각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고 국가 재정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침해에 대한 구제를 즉각적으로 호소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관해 Riedel 교수는 사회권 규약과 사회권위원회가 사회권이 자유권과 마찬가지로 변동가능한 권리인 것이 아니며 국가별로 다른 기준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언급한다. 오히려 사회권 규약 당사국들로 하여금 사회권의 실현을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정하고 있고, 특히 최저 핵심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모두의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Riedel 교수는 사회권이 본질적으로 자유권과 다르게 취급되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권 규약과 사회권 규약은 표현에 있어서 일정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자유권 규약의 경우 ‘모든 사람’ 등의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반면, 사회권 규약은 ‘인정하는 당사국’ 등의 표현이 사용됨으로써 권리주체를 달리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차이가 사회권은 모든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기본적 인권이 아닐 것이라는 해석을 가져왔는데,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선언 및 행동강령은 이에 대해 일정한 입장을 정리해준다. “모든 인권은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과 상호관련성을 갖는다. 모든 인권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이든 아니면 시민적, 정치적 권리이든 간에 직접적으로 적용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회원국에서 직접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며 자유권과 사회권이 서로 다른 권리가 아니며 그 차이를 더 이상 확대분리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박찬운(2006)은 국제인권의 시각에서 사회권과 자유권의 이원론은 극복되었다고 말한다. 이같은 입장은 노대명(2010)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사회권을 ‘자명한 구속력’을 갖는 원칙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프레드먼의 논의를 빌어, 국가가 사회권 보장의 의무를 가지며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주영(2017) 역시 인권에 대해 통합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으며, 1990년 들어 사회권에 대한 국가 의무의 성격을 명료하게 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시민적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책무가 뒤따라야 시민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두운 골목길에서 성폭력 등으로부터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가로등을 밝히고 도로를 정비하거나 대중교통이 제공되어야 하는 재정 투입을 필요로 한다. 자유권이 소극적 권리이고 사회권이 적극적 권리이며, 이에 대한 국가의 책무가 상이하다는 주장은 상호의존성에 의해 그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사회권의 구속력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와 함께 모든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구속력 있는 조약으로 만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1966년에 이르러서 사회권 규약과 자유권 규약으로 분리하여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었는데, 두 개의 별도 규약은 이후 냉전 상황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성격의 인권 목록인 것으로 설명되기도 했다.
자유권적 침해와 사회권적 침해가 달리 취급되는 가장 큰 쟁점은 침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구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권과 자유권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인권이 아니며,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구속력 있는 법률을 통해 집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상희(2010)는 사회권위원회가 발표한 1990년 일반논평, 1998년의 일반논평 등에서 사회권의 사법적 집행가능성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입법부나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사회권 실현을 해야 하는 이유로, 정치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사회권 수혜계층이므로 이들이 사법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박찬운(2009)이 번역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사법집행: 사법심사가능성 비교연구」에서도 자유권과 사회권이 인권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많은 국가에서 사회권이 사법적 보호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법관들이 사회권에 기초해서 국내영역에서 심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다. 특히 사회권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는 이유로 사법심사가능성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체법적이거나 절차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권의 내용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주영(2017)에게서도 비슷하게 제시되는데, 사회권에 대한 사법심사가 입법부나 행정부가 해야 할 정책결정과 집행의 기능을 대체하지 않으면서, 해당 사회권 문제에 대해 시민과 국가기관, 그리고 국가기관 상호간에 민주적 대화와 숙의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논의를 소개하고, 사회권의 규범력을 높이는 것이 사회권 이행을 위한 기본과제라고 보고 있다.

 

헌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권적 기본권의 인권으로서의 보편성을 적시한다면 개헌 논의에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사항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규정하여야 할 부분에 대한 검토이다. 또한 부당한 차별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시정 그리고 결과적 평등을 향한 책무를 헌법에 담아야 하며 이로써 평등권의 결과적 실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권과 헌법, 그리고 개헌의 과제

2016년에 제출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시민사회단체 약식보고서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지난 5년간 사회권을 중심으로 한 인권의 체감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아직 사회권 규약의 위반사항에 대해 국제적 차원의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사회권규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사회권 규약의 효력에 관한 시민사회단체 보고서는 대한민국 헌법이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유권과 사회권에서 배제되는 ‘사람’인 외국인 근로자가 있으며,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사회권 규약을 재판 규범으로 적용하거나 해석기준으로 인용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보았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사회권 규약 인용은 8건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사회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권규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위보다 넓지 않다. 모든 조항이 권리주체를 ‘국민’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기본권의 확대, 기본권의 실효성 확보 등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미 헌법 제6조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권 규약의 규범력 강화는 개헌 논의과정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인다.

 

Riedel 교수에 따르면 사회권이 국가 차원에서 인정되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헌법적 권리 보장의 포괄적 또는 무계획적인 형성을 통해 채택되는 경우. 둘째, 인간 존엄성에 대한 언급을 모든 권리의 일차적 원천으로 폭넓게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헌법 구성 원칙에서 사회권을 폭넓게 언급함으로써 그에 포함되는 경우. 셋째, 일반 법령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사회권의 실현을 입법적, 행정적 재량의 문제이며 정책적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로 간주되는 경우이다. 2008년 한국을 방문한 유엔사회권위원으로서의 Riedel 교수는 한국의 법질서에 사회권이 지니는 의미를 세부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나, 국제차원에서 이루어진 기준 합의가 국가 차원으로 유입되면서 국내 법리에 영향을 미치고 헌법 차원에서의 사회권 이행 문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재판소는 사회권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준일(2017)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기본권이라는 표현과 사회권적 기본권 혹은 생존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 개념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다. 헌재가 이해하는 사회적 기본권은 “자유권을 수정하는 의미의 생존권(사회권)적 성격”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지위를 보완·강화하는 기능 혹은 국가의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같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02년 기초생활보장 최저생계비 위헌확인사건에서 장애인가구의 생계급여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이와 같은 소극적 태도는 헌법의 사회권 명문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용자원의 범위 혹은 정책 프로그램으로서 작동하는 사회권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사회보장에 관한 헌법상 권리의 침해여부에 관한 심사기준과 관련한 정영훈(2015)의 연구 역시, 사회권의 헌법 반영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연구에서 헌법상 ‘사회보장’이란 ‘삶의 과정에서의 특정한 위험의 발생 또는 특별한 상황에 있어서 이것과 근본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개인의 재화의 결핍을 재분배의 방법으로 행정주체가 급부함으로써 저지 또는 제거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재화의 결핍을 조정할 1차적 책임이 국가에게 있고, 헌법상 사회보장권은 그 법적인 성격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주관적 권리로 보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의 심사기준과 심사강도에 대한 분석결과 최소보장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별다른 검토 없이 ‘제한’의 개념을 사용하며, 과잉금지원칙 또는 본질적 내용침해금지와 같은 심사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에 대해 검토가 없으며, 사회보장 급부 범위 심사가 최소보장의 원칙으로 무분별하게 적용되고, 심사강도에서 일률적으로 명백성 통제만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에 따라, 향후 헌법재판소의 사회권적 기본권 침해에 관한 심사기준의 정립은 시급히 요구되는 부분이며, 이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심사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헌법적 규정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헌논의와 관련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헌법은 주요한 참고 사례가 되고 있다. 사회권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과 평등에 대한 조항들은 우리의 헌법 개정 방향에서 참고할 만하다. 제9조 평등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함을 규정하고, 국가는 인종, 성별, 임신, 혼인상태,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피부색, 성적지향, 연령, 장애, 종교, 양심, 신념, 문화, 언어 및 태생을 포함한 하나 이상의 사유를 근거로 하여 누군가를 직간접적으로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차별금지사유를 열거하고, 복합적 차별 그리고 직접차별과 간접차별을 모두 위헌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 실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26조 주거는 ‘가용자원의 범위 내에서’ 모든 사람은 적당한 주거를 이용한 권리를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규정하고, 이 모든 관련 상황을 검토한 후 이루어진 법원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자신의 집에서 퇴거당해서는 안 되며, 집이 파괴되어서도 안 되고, 법률은 임의적 퇴거조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남아공의 Grootboom(2000)건은 케이프타운 인근의 빈민가 철거구역에서 390명의 성인과 510명의 아동이 강제퇴거될 예정이었으나, 대법원은 대체주택 확보 증거를 지방 당국이 제시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강제퇴거 조치를 중단시켰다. 적어도 남아공 헌법의 사례가 사회권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권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적용이 사법부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의 사회권 규약이 보다 국내적 규범력을 강화하고 사법적 심사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일반적인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저소득, 빈곤 노령층, 고용불안에 따른 근로빈곤층 등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필수적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 빈곤과 차별이 사회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혐오는 물리적 폭력으로 현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개헌 논의에 평등권 보장과 사회권적 기본권의 권리 목록을 반영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함이다. 권력구조의 개편에만 치중되어 있는 개헌 논의가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반영하는 개헌 논의가 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Riedel, Eibe(2008), "국제사회에서의 사회권 실현 전망“, “사회권 실현과 사법부의 역할”, 국제인권기준의 국내이행을 위한 초청강연 및 세미나, 국가인권위원회.
노대명(2010), “미완의 민주주의와 사회권의 위기-정치의 위기와 ‘사회권의 악순환 고리’”, 기억과전망, 여름호
박찬운(2009),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사법집행:사법심사가능성 비교연구”, 국제법률가위원회 저.
------(2006), “국제인권법에서 바라본 사회권의 법적 성격: 사회권에서의 국가의 의무를 중심으로”, 인권과정의, 대한변호사협회.
이주영(2017), “사회권 규약의 발전과 국내적 함의” [사회권의 현황과 과제], 조국 엮음, 경인문화사.
이준일(2017), “사회권의 복권을 위한 구상”, [사회권의 현황과 과제], 조국 엮음, 경인문화사.
정영훈(2015), “사회보장에 대한 헌법상 권리의 침해 여부에 관한 심사기준”,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한상희(2010), “사회권과 사법심사:여전히 ”생성중인 권리“의 복권을 위하여”, 공법연구 제39집 제1호, pp.93-133.

목, 2017/06/0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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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2017년 6월호 제224호_김영수 |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기획주제

실질적 평등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

기획1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중심으로
          이찬진 | 변호사
기획2 국제사회의 사회권 규약과 개헌
          이숙진 | 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기획3 사회권을 어떻게 실효화할 것인가-건강권을 중심으로
          신영전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보건대학원 교수
기획4 이주민과 사회권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동향

동향1 찾아가는 복지 실현을 위한 서울시의 무모한 도전 그리고 미래
          홍영준 | 상명대학교 가족복지학과 교수

동향2 무엇을 위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인가

          김보영 | 영남대학교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

 

복지톡

운동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_황수영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특별칼럼

문재인 정부와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_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생생복지

경기복지시민연대 | 전북희망나눔재단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목, 2017/06/0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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