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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의 워싱턴리포트13] 대북 협상가 수잔 디마지오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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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의 워싱턴리포트13] 대북 협상가 수잔 디마지오와의 인터뷰

익명 (미확인) | 금, 2017/12/22- 20:42

사실상의 ‘북한 주재 미국 대사’, 수잔 디마지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국가안보 보좌진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무시하고 전쟁 위협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뉴욕의 한 싱크탱크 소속 외교협상전문가가 전직 미국 정부 관료들을 이끌고 김정은 정권과 정기적인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외교전문가인 수잔 디마지오 뉴아메리카 재단(New America Foundation) 선임 연구원은 십여 명의 전직 미국, 유럽 외교관들이 참여하는 북한과의 대화를 주재하는 ‘의장’이다. 참가자들은 이 대화를 ‘1.5 트랙’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비정부조직 관계자들과 북한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지난 11월 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였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실질적인 협상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마지오는 사실상 ‘북한 주재 미국 대사’ 역할은 한다. 디마지오와 1.5 트랙 대화 참가자들은 트럼프 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하도록 지정한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보다 훨씬 많은 고위급 회담을 북한 정부와 진행해 왔다.

실제로 지난 봄 오슬로에서 열린 회담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윤 대표가 처음으로 북한 측 인사들을 만난 자리였을 뿐 아니라, 평양에 수감됐던 미국인 학생 오토 웜비어의 석방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불행히도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면서 냉랭해진 분위기로 인해 북미 간 직접대화를 더 이상 진척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비공식 회담은 계속 진행됐다. 10월에 디마지오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핵확산방지 컨퍼런스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과 함께 발표자로 나섰다. 디마지오가 주재하는 1.5 트랙 회담의 핵심 참가자로 알려진 최 국장은 김일성 시절 부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딸로 북한 정권 내에서 입지가 확고하고, 몇몇 전문가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다.

▲ 북한의 대미 외교 핵심 실무자로 알려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 핵확산방지 컨퍼런스

▲ 북한의 대미 외교 핵심 실무자로 알려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 핵확산방지 컨퍼런스

최 국장을 비롯한 다른 북한 정부 관계자들과의 회담을 근거로, 디마지오는 1.5 트랙 회담에 함께 참여한  전직 미국 외교관 조엘 위트와 함께 지난 11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한이 “핵무장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들이 탈출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라고 썼다.

몇 주일 후 북한이 화성 15호 발사 실험을 감행한 뒤,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된 뜻깊은 날”이라고 발표했다. 많은 분석가들은 이 발표를 근거로 김 위원장이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었고, 그가 공약했던 것처럼 이제 궁지에 몰린 북한 경제를 살리는 데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디마지오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군축협회의 북한 관련 포럼에서 “나는 [김정은의 발표를] 향후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돌파구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정은은 핵개발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 자신의 신뢰성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북-미 1.5 트랙 회담을 주재하는 수잔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 연구원

▲ 북-미 1.5 트랙 회담을 주재하는 수잔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 연구원

디마지오는 김 위원장의 발표가 “양측 모두 유리한 입장으로 협상에 나설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 입장에서는 곧 한국에서 개최될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미군사훈련의 “수위를 낮춰서” 대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 한미 양국에서 고려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12월 초, 뉴스타파는 뉴욕에 근무하는 디마지오와 유선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북측 외교관들이 먼저 접촉한 ‘외교협상 전문가’

디마지오는 일본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엔미국협회 등 유엔 산하기관에서 일하면서 협상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02년, 그는 이란과 미국-유럽 간 고위급 회담으로 발전하게 된 대화를 성사시키면서 이후 2015년 이란과의 극적인 핵 협상 타결로 이어진 비공식 회담을 주재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디마지오는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이 참여한 이 비공식 회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자신의 성과를 전해들은 북한 외교관들이 ‘제3자’를 통해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뛰어들기 좋은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며 자신이 “수년 간 이란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경험, 모범사례와 교훈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할 때에는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과의 ‘예방적 전쟁’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워싱턴에서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디마지오는 공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것이 제가 목소리를 더 내고 (북한과의) 회담 내용에 대해 밝히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재까지 북한 이슈에 대한 논의를 지배한 관점은 우리가 북한 측으로부터 들은 내용과 전혀 동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디마지오는 자신이 내놓은 공개 제안은 최선희 국장을 비롯한 북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뒤 고안한 것으로, 북한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미적지근한 접근법을 탈피하고 진짜 전략을 세우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말한다. 디마지오의 공개 제안의 핵심은 트럼프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연기하고, 안전보장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혼합하여 김정은 정권이 핵 개발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현재 상태로 동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디마지오는 “북한은 비핵화에 대해서는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이 비핵화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 것을 미국이 알더라도, 미국은 비핵화를 협상 의제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디마지오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내세우는 ‘미국의 적대적 정책’을 미국이 폐기하는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북한의 안보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제재,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 그리고 북한을 겨누고 있는 미국의 핵무기를 ‘적대적 정책’으로 꼽고 있다.

디마지오는 “이것들은 잠재적으로 협상이 가능한 지점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측이 미국의 대북제재조치 해제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협상의 핵심이죠.

북한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디마지오는 미국의 단계적인 ‘조정’, 즉 “군사훈련을 완전히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찾을 수 있고, 이와는 별도로 경제적 인센티브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일차적인 동결에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양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한 보다 폭넓은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다뤄야 할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김정은 정권이 군사개발에 기울이는 노력을 북한의 2,500만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 쏟을 수 있는 협상 과정에 들어설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의 안전 보장이 중국이 일부 담보하는 방식으로 충족되면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접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디마지오는 비핵화는 장기적인 목표로 남겨놓고, 지금 당장은 바로 지금 실현시킬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도 이와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크루즈 미사일로 타격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6년 뒤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동결한 이후 북한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끝내고 미국과 북한 간 불가침 조약으로 이어졌을 합의의 협상을 주도했다. 그러나 당시 새로 들어선 부시 정부의 반대로 이 합의는 무산됐다. 그는 “만약 2000년에 그 합의를 체결했더라면 오늘날 이와 같은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북한과의 협상,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디마지오와 페리가 제시한 전략은 대북 압력을 최대한 강화함으로써 북한을 굴복시켜 비핵화를 협상 의제로 인정하게끔 유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전략과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이는 또한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과 그들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는 신조, 즉 소련과 중국의 핵무기를 상대로 오랫동안 적용돼 온 과거의 억제책이 북한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도 정면으로 맞선다.

조 시린시온 플라우쉐어재단 대표는 북한과의 대립이 위험한 수위에 다다랐기 때문에 디마지오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린시온 대표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전면전도 불사하자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우리가 정말로 군사적 선택지를 갖고 있고, 우리가 북한에 제한적 타격이나 대규모 선제타격을 감행할 수 있고, 새로운 한국전쟁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고,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반전평화단체 ‘플라우쉐어재단'의 조 시린시온 대표 ⓒ 플라우쉐어재단

▲ 반전평화단체 ‘플라우쉐어재단’의 조 시린시온 대표 ⓒ 플라우쉐어재단

그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디마지오가 주재하는 회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잔 디마지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자,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고, 외교적 돌파구가 있고, 북한 측이 대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들[북한]을 차단하거나, 그들이 굴복하지 않는 한 우리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행동과 위협이 “이 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폭격기 편대가 진주만을 향해 쳐들어오는 상황처럼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전쟁이 우리를 덮쳐 오는 상황과는 다르다.

그는 “상황이 우리를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이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에” 전쟁 위험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마지오는 바로 이 흐름을 뒤집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마지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측의 완전한 굴복이냐,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막느냐는 이분법적인 선택지만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군사적 선택지가 있다고 착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긴장이 고조되는 현재의 흐름이 지속될 것이고, 우리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면 잘못된 판단 때문이든, 이 상황이 군사적 충돌로 번질 가능성은 더욱 커집니다. 제가 가진 철학은 간단합니다. 적과 협상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Original Versi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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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6월 말로 종료된다고 통보했지만 정부가 과거 다른 정부 위원회와는 달리 세월호 특조위에만 구성 시점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지난 20년 동안 특별법 등에 의해 구성된 정부산하 행정위원회 가운데 세월호 특조위와 비슷한 성격의 위원회 12개를 모두 분석한 결과 위원회 구성 시점은 모두 관련 시행령이 제정된 이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행정자치부가 공개하는 ‘정부 위원회 현황’자료를 바탕으로 파악한 것이어서 정부가 유독 세월호 특조위에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존 12개 위원회는 모두 시행령 이후 구성…세월호 특조위만 다르게 해석

세월호 특조위처럼 과거 사건의 진상규명 역할을 법에 의해 부여받은 위원회는 지난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구성된 ‘거창사건 명예회복 위원회’부터 2010년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치된 ‘6.25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까지 총 12개다.

2016063001_01

이들 위원회의 구성 시점을 근거 법률,시행령의 시행시기와 비교한 결과 예외없이 12개 위원회 모두 위원회 구성 시점은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법률의 제정 이후에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 조직과 예산이 확보된 이후에 위원회가 구성된 것이다.

위원회 법 제정 법 시행 시행령 제정 위원회 구성
1996.1.5 1996.4.6 1996.4.6 1998.2.10
2000.1.12 2000.4.13 2000.5.10 2000.8.28
2000.1.12 2000.5.13 2000.7.10 2000.8.9
2000.1.15 2000.5.16 2000.7.10 2010.10.17
2004.3.22 2004.9.23 2004.4.19 2005.5.31
2004.3.5 2004.6.6 2004.6.29 2004.8.25
2004.3.5 2004.9.6 2004.9.11 2004.11.1
2005.12.29 2005.12.29 2006.6.29 2006.7.13
2005.5.31 2005.12.1 2005.12.1 2006.4.25
2005.7.29 2006.1.1 2006.1.1 2006.2.22
2007.12.10 2008.6.11 2008.6.11 2008.6.18
2010.3.26 2010.9.27 2010.9.27 2010.12.13
2014.11.19 2015.1.1 2015.5.11 2015.1.1 

①거창사건 심의위원회 ② 제주4·3진상규명 위원회 ③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 ④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⑤친일진상규명위원회 ⑥노근리사건 심의위원회 ⑦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⑧친일 재산조사위원회 ⑨과거사정리위원회 ⑩군의문사 진상규명의원회 ⑪태평양전쟁 강제동원희생자 지원위원회 ⑫6·25납북피해 위원회 ⑬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체적인 구성 시점은 위원들의 임명장이 수여된 날이나 공식 출범식이 열린 날, 또는 예산이 배정된 날 등 위원회 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세월호 특조위에 대해 판단한 것처럼 시행령도 만들어지기 전인 법 시행일에 위원회가 구성된 것으로 기록된 위원회는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특별법 부칙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지난 2005년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도 같은 내용의 부칙이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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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현직 부장판사는 해양수산부의 특별법 해석은 ‘넌센스’에 가깝다고 말했다. “위원회와 임원은 별개의 법률적 인격이기 때문에 위원회 활동 기간을 규정한 본문 조항과 위원 임기 개시일을 명시한 부칙은 서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또, “부칙에 종종 위원의 임기 개시일을 넣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는 결원이 생기거나 했을 때 혼란을 막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지 위원회의 구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축산위원회에서 박완주 의원이 “법리적 해석을 놓고 법제처에 문의해 본적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없다”고 답했다.

결국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만 전례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특조위의 활동을 조기에 강제로 종료시키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상취재:정형민,김기철,김남범
영상편집:박서영
그래픽:정동우

목, 2016/06/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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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메르스, 백남기.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늘 ‘창조’란 말을 반복했으나 오히려 ‘헬조선’을 탄생시켰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통합진보당 해산 등등, 박근혜 씨는 역사를 유신 시대로 되돌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현 직무정지)은 최순실 일당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게 나라냐”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습니다. 수백만 시민의 촛불이 이뤄낸 한국판 명예혁명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4년 만에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캄캄한 터널에서 가까스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을 다룬 보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지나왔던 암흑의 세월을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금, 2016/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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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최근 부착하고 있는 현수막 역사 교과서 관련 현수막(사진: 뉴스타파)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며 한국사회가 이념논쟁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현재 대부분의 역사과목 검정 교과서들이 좌편향 되어 있다며 역사과목 교과서를 국정화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야당과 시민사회는 현 기득권들과 깊이 연관된 과거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을뿐더러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할 경우에는 정권에 입맛에 따라 교과서의 내용이 편향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정화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 짐에 따라 여당인 새누리당은 현행 검정 교과서들이 아이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며 거리 곳곳에 현수막까지 붙이고 나섰습니다. 그러면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정말 역사교과서들이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현행 교과서들이 왜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교육부가 정하고 있는 교육과정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2009 고등학교 교육과정 해설: 사회(역사) 98페이지


2009년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마련한 2009년 교육과정과 그에 따른 해설에 따르면 이미 당시부터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에서 북한의 변화 과정을 파악해 학습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의 주체사상과 수령 유일 체제의 문제점 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과제와 해결방안을 탐색하는 교수·학습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2015 교육과정 한국사 175페이지


2009년 이후 차기 교육과정인 2015년 교육과정에서는 교육과정 해설이 아닌 교육과정 원문에는 주체사상이 아예 학습요소로 들어가 있습니다(세계일보 보도 교육부, 주체사상 교육과정에 명기…野 “황당무계”). 2015년 교육과정에서는 북한의 변화와 남북 간의 평화 통일 노력이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 천리마 운동 등을 학습 요소로 포함시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과정의 방침이 반영되어 문제가 된 검정 교과서들(2013년 검정본 금성출판사, 천재교육, 2010년 검정본 지학사 등)는 주체사상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교육부는 이들 교과서에 수정명령을 내렸고 이들 교과서는 이를 받아들여 주체사상을 비판하는 문장을 추가로 보강하는 조치를 했습니다.


문제가 된 교과서들은 정부의 수정명령을 받아들여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을 보강했는데도 정부는 이를 트집 잡으며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박근혜 정부는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을 주문하고 주문대로 만들어진 교과서의 북한 체제 비판의 수위가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치자 아예 교과서를 국정화 하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잘 되지 않는데요, 왜냐면 북한을 다루는 역사 교과서의 올바른 기능이라 하면 교과서가 정부가 원하는 만큼 북한과 주체사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북한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평화통일의 관한 과제를 탐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학생들의 학습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지 반공정치선전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9 고등학교 교육과정 해설(사회역사).pdf


한국사(2015 교육과정 한국교육과정평가원).pdf


저작자 표시 비영리
목, 2015/10/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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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논란을 무릅쓰고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시한을 2016년 6월 말로 종료시키는 핵심 이유가 특조위의 청와대 조사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뉴스타파가 지난 1년 간 유기준, 김영석 두 해수부 장관과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 사이의 수 차례 비공식 협의 내용을 취재한 결과, 두 장관 모두 특조위 활동 개시일을 지난해 1월 1일부터로 규정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을 내비치며 합리적 해법을 찾아보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특조위가 청와대 조사를 논의하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중순을 기점으로 이 같은 노력이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고, 특조위 활동을 6월 말로 종료시키는 게 정부 공식 입장으로 굳어진 정황들이 파악됐다. 결국 특조위 활동이 강제 종료되는 현재의 상황은 특별법 해석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여권의 ‘청와대 지키기’ 전략의 산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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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준 전 장관, 퇴임 직전 ‘특조위 기한 2016년 9월 이후까지’ 비공식 제안

지난 6월 28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축산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을 상대로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6월 말로 종료된다는 정부 방침의 부당성을 집중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특조위 활동 개시는 지난해 1월 1일, 종료는 올해 6월 30일이라는 정부 입장은 지난 19대 국회 때부터 정부의 일관된 입장임을 역설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해양수산부 전현직 장관들은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특조위 활동 개시일을 지난해 1월 1일로 규정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조위의 활동 기간에 대한 정부 입장을 처음 공식석상에서 언급했던 것은 유기준 전 장관이다. 유 전 장관은 지난해 5월 18일 국회 농해수위에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정부는 이미 1월 1일부터 특조위 활동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개월 남짓 후, 유 전 장관은 이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비공식 석상에서 내놓았던 바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유 전 장관은 2016년 해수부 예산 심의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초, 이석태 특조위원장에게 국회 내 모처에서 만남을 요청해 이후 세 차례 비공식 협의를 가졌다. 당시 유 전 장관은 4.13 총선 출마를 위해 퇴임을 앞둔 시점이었고, 후임으로는 김영석 차관이 내정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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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접촉에서 유 장관은 특조위 활동 개시일을 특조위원들이 임명된 3월 9일, 혹은 시행령이 공포된 5월 11일 중 하나로 해석해, 2016년 9월 혹은 11월까지 활동할 수 있도록 해보자고 먼저 제안했다. 이에 해당하는 예산으로 30억 원 정도를 추가해 보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적어도 2016년 말까지는 조사활동이 보장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특조위 활동 종료 시점을 일단 2016년 9월과 12월 사이로 정하는 데에 잠정 합의하고, 유 장관은 청와대와 여당을, 이 위원장은 유가족과 야당을 각각 설득하기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잠정 합의는 최종 성사되지 못했고 얼마 뒤인 11월 초 유 전 장관은 퇴임하고 말았다.

합의 불발 이유는 ‘청와대 조사’…김영석 장관 “해체 수준 조치 당할 것” 협박까지

해수부장관과 특조위원장 사이의 잠정 합의가 최종 불발된 이유는 당시 특조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의 맥락 속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유 전 장관과 이 위원장의 접촉 직후인 지난해 10월 20일,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회는 세월호 유가족이 신청한 ‘참사 당일 청와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 개시’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진상규명소위는 이 안건을 11월 초 전원위원회에서 의결하려 했지만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의 문제 제기로 한 차례 상정이 연기됐다.

그러던 중인 11월 19일, <머니투데이> 가 해수부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여기엔 특조위의 청와대 조사를 막기 위해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과 여당 농해수위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라는 등의 대응방안이 담겨 있었고, 이 내용들은 실제로 이뤄졌다. 특조위가 청와대 조사를 논의하고 있다는 정보가 정부와 여당 측에 유출된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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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틀 뒤인 11월 21일, 이번엔 유 전 장관의 후임인 김영석 해수부 장관이 다급하게 이석태 위원장과의 비공식 협의를 요청해 왔다. 장소는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비즈니스룸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이 위원장에게 청와대 관련 조사 개시를 절대로 의결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석태 위원장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조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재난컨트롤타워로서 참사 당일 적절하게 대응했는지를 조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김 장관은 “청와대 조사를 의결할 경우 특조위에 대해 해체 수준의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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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APEC 참석 등을 위해 해외순방에 나섰던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을 이틀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김 장관이 박 대통령 귀국 전에 특조위의 청와대 조사 개시를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틀 뒤인 11월 23일, 특조위는 예정대로 전원위원회를 열어 청와대 조사 개시 안건을 의결했다. 그러자 차기환, 고영주, 황전원, 석동현 등 여당 추천 위원들은 즉각 사퇴 의사를 밝히고 퇴장했으며, 새누리당은 특조위 해체도 검토하겠다면서 특조위의 2016년 예산도 대폭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제로 특조위 예산은 반토막이 난 끝에 올해 6월까지만 배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상 이때부터 특조위 강제종료 조치가 시작됐던 셈이다.

김영석 장관도 “특조위 연말까지” 제안했지만 새누리당은 “청와대 조사 빼면 협조”

그 이후 정부 여당과 특조위 사이에는 한 동안 눈에 띄는 충돌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국이 4.13 총선 국면으로 본격 진입한 탓이었다. 그러나 김영석 장관과 이석태 위원장은 이 시기에도 몇 차례 비공식 만남을 갖고 특조위 활동 기간 문제를 물밑 조율했다.

두 사람은 지난 1월 8일 서울시청 인근 플라자호텔 중식당에서 만났다. 신년 인사 성격이 강했지만 특조위 활동과 관련한 대화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특조위 활동을 나름대로 지원해 주고 싶지만 청와대 조사 건이 의결된 이후로 장관으로서의 재량권이 상당히 떨어졌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두 사람은 지난 5월 4일 강남버스터미널 인근 팔레스호텔 일식당에서도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됐지만, 여당은 대선이 있는 내년까지 특조위가 유지되는 것에는 절대로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특별법 시행령을 조금 가다듬어서라도 특조위가 올해 연말까지는 선체조사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도 6월 말로 특조위가 종료된다는 정부 공식 입장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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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장관의 이런 언급도 결국엔 성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최근 야당 원내대표의 폭로성 발언을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의 세월호TF 발족식에 참석한 우상호 원내대표는 총선 직후부터 특조위의 활동 기간 연장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물밑협상이 진행돼 왔었다고 털어 놨다. 새누리당측이 “청와대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 주면 조사 기간을 연말가지 연장해 주겠다”고 제안해 왔지만 성역 없는 조사라는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해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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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청와대와 여권이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을 특조위 및 야당과 조율한 기준은 참사의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안전사회 건설도 아닌 ‘청와대 조사 저지’ 뿐이었던 셈이다.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정지성

목, 2016/06/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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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 업체로 선정된 상하이샐비지의 현장조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인양 입찰 평가에서 기술평가 최고점을 받았던 업체는 네덜란드 스미트와 국내 코리아샐비지 컨소시엄이었던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정부가 인양 비용을 낮추는 데만 몰두하다 최선의 인양 방식을 놓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술점수 최고점은 스미트-코리아샐비지 콘소시엄

뉴스타파는 해수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던 세월호 입찰 평가 결과 문건을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인양 업체로 최종 선정된 상하이샐비지-오션씨앤아이 콘소시엄은 기술평가(90점 만점)에서 78.920점을 얻고 제안가격 851억 원으로 가격평가(10점 만점)에서 9.3977점을 획득해 종합평점 88.3177점으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 해수부가 작성한 세월호 인양 입찰 평가 결과

▲ 해수부가 작성한 세월호 인양 입찰 평가 결과

옌타이샐비지 콘소시엄은 86.6299점(기술 78.543, 가격 8.0799), 타이탄 콘소시엄은 85.5411점(기술 77.542, 가격 7.9991)을 얻어 각각 2, 3위 차선협상 대상자가 됐다. 리졸버마린 콘소시엄(기술 72.807, 가격 5.83)과 보해오션 콘소시엄(기술 59.217, 가격 8.353), 한국해외기술공사 콘소시엄(기술 54.069, 가격 10)은 기술점수 하한선인 76.5점을 얻지 못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종합평점 없이 ‘입찰무효’로 결정된 스미트 콘소시엄이다. 정부는 이 콘소시엄이 제안가격의 5%인 입찰보증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않아 탈락했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해수부 문건에는 스미트 콘소시엄에 대한 기술평가 점수는 기재되어 있었다. 80.908점으로 7개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80점을 넘긴 최고 점수였다.

뉴스타파는 스미트 콘소시엄의 국내 파트너로 입찰에 참여했던 코리아샐비지(출자비율 65 : 35)를 통해 기술평가 최고점을 받은 세월호 인양 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했다. 우선 대형 바지선에 물을 채워 침몰시켜 세월호 선체 옆에 위치시킨 뒤, 선체를 크레인으로 들어 수중에서 바지선 위에 싣는다. 이후 크레인 줄을 바지선으로 옮겨 연결해 통째로 수면 부근까지 끌어올리고, 여기서 바지선에 공기를 주입해 부력으로 띄우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떠오른 바지선이 그대로 세월호를 싣고 최종 거치될 항구까지 이동한다는 점에서 동거차도 인근 해역으로 이동시켜 플로팅바지에 싣는 상하이샐비지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또 상하이샐비지 방식은 선체 내부에 부력재를 넣기 위한 세부 설계를 위해 사전 현장조사 과정에서 잠수사가 화물칸(C, D데크)에 반드시 진입해야 하는 반면 스미트 방식은 이 과정이 필요없다.

▲ 스미트-코리아샐비지 콘소시엄이 제안한 인양 방식

▲ 스미트-코리아샐비지 콘소시엄이 제안한 인양 방식

스미트-코리아샐비지 콘소시엄은 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기술력을 갖추고도 입찰보증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일까. 스미트 콘소시엄은 자신들이 제안한 인양 방식을 적용하기 위한 비용으로 1천4백85억 원을 제시했다. 지난 4월 해수부의 인양기술검토TF가 세월호 인양비용으로 1천억~1천5백억 원이 소요되고 기상 상태 등에 따라 2천억 원까지 소요될 것이라고 발표한 수위에 맞춰 준비된 것이었다. 이어 지난 5월 18일 유기준 해수부장관이 국회 농해수위에 출석해 세월호 인양 사업비로 1228억 원을 책정하기 위해 기재부와 협의 중이라고 보고했을 때에도 자신들의 가격 수준을 유지해 입찰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나흘 뒤인 5월 22일 해수부의 입찰 공고에서 사업비가 1천억 원으로 제한되자 고민에 빠졌다. 격차가 너무 커서 탈락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단 기술제안서를 제출한 뒤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지 여부를 내부에서 논의했지만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중간 단계인 입찰보증금 예치를 하지 않고 입찰을 포기한 것이다.

이같은 내용이 확인되면서 정부가 세월호 인양비용을 과도하게 줄이려다 더 좋은 기술로 인양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장기욱 해수부 세월호인양추진과장은 “당초 1천억~1천5백억 원에서 사업비를 확정하려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수 인양업체들에 대한 사전 모니터링 결과 1천억 원으로 제한해도 충분히 좋은 기술을 갖춘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이를 고려해 최종 사업비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월호 인양 사업비가 계속 축소됨에 따라 아예 입찰을 포기했던 업체들도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얼마나 제대로 업계 의견을 모니터링했는지 의문이다. 천안함 인양에 참여하고 세월호 수색구조를 담당했던 88수중개발은 세계 4대 메이저 인양업체 중 하나인 네덜란드 마모에트와 콘소시엄을 꾸려 수중촬영 등 현지조사와 각종 자료조사 등을 통해 인양제안서를 모두 작성해 놓고도 결국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은 “해수부 기술검토TF가 발표한 인양 비용 추정치에 따라 2천억 원을 조금 상회하는 비용으로 설계한 인양 방식을 제안하려다 정부가 1천억 원까지 사업비를 떨어뜨려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입찰을 포기하게 됐다”고 전했다.

▲ 상하이샐비지 현장조사 장면

▲ 상하이샐비지 현장조사 장면

상하이샐비지 현장조사 난항…‘세월호 수색’ 국내 잠수사 활용 못해

세월호 인양 기술평가에서 최고점을 얻는 업체가 상하이샐비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현장조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된다. 상하이샐비지는 19일부터 22일까지 선체에 두 차례 접근한 뒤 23일부터 25일까지 태풍을 피해 정박했다가 26일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현장의 강한 조류에 잠수사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 국영기업인 상하이샐비지가 전 인양 과정에서 자국 잠수사들만으로 작업을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다.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효과는 있지만 지난해 세월호 수중수색에 참여했던 국내 잠수사들의 경험을 살릴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중국 잠수사들만으로 작업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월호 수중수색 당시 잠수팀을 이끌었던 류기주 88수중개발 잠수팀장은 “세월호 수중수색에 참여했던 잠수사들은 조류에 대한 적응은 물론 유리창 모양만 봐도 몇 층인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을 쌓았다”면서 “중국 잠수사들이 진도 해역의 강한 조류와 탁한 시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경험자의 조언이 없다는 것이 안전 문제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 2015/08/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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