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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인양 가능’ 알고도 5개월 허송”… 세월호 2차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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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인양 가능’ 알고도 5개월 허송”… 세월호 2차 청문회

익명 (미확인) | 화, 2016/03/29- 21:16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2차 청문회가 ‘참사의 원인과 선체 인양’을 주제로 3월 28일부터 이틀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이번 청문회의 주요 장면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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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인양 가능’ 이미 알고도 5개월 허송”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말 이미 유력한 선체 인양방식을 내부적으로 정해 놓고도 2014년 11월 수중수색 중단 이후 ‘인양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며 5개월을 그냥 흘려보냈고, 이로 인해 세월호 인양이 크게 지연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월호 2차 청문회 이틀째인 3월 29일 제3세션에서 신현호 특조위원은 “해수부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5월 1일 인양 컨설팅 업체인 영국 TMC와 계약을 맺고 5월 23일 국내외 7개 인양업체의 기술제안서를 검토한 보고서를 제출받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보고서는 7개 업체의 인양 방식이 모두 부적합하다고 평가한 뒤 대안방식을 제시했는데, 당시 제시된 방식이 정부가 세월호 수중수색 중단 직후인 2014년 11월 15일부터 5개월 동안 가동한 선체처리기술검토TF의 최종 결론과 동일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가 수색 중단 즉시 인양업체 선정 절차에 착수했다면 지금은 이미 선체가 인양돼 있을 시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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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증인으로 나선 박준권 전 해수부 항만정책국장은 “2014년 5월 TMC가 보고서로 제출한 인양방식은 아이디어 차원이었을 뿐”이라면서 “세월호 인양의 관건은 1만여 톤의 중량물을 선체 훼손 없이 띄울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을 모색하는 것이었다”고 답변했다. 즉, 선체처리기술검토TF의 활동에 소요된 5개월은 선체 를 제대로 들어 올릴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답변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5년 4월 10일 기술검토TF가 제안한 선체 부양 방식은 선체 표면의 93개 지점을 크레인에 연결해 들어올리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석 달 뒤 인양업체로 선정된 상하이샐비지가 제시한 방식은 선체 밑으로 24개의 철제빔을 끼워넣고 선내에는 보조부력재를 넣어 부양시키는 방식이었다. 즉, 기술검토TF가 5개월을 소요하며 찾아냈다는 선체 부양방식을 실제 선정된 인양업체는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2014년 11월 수색중단 직후 즉시 인양업체를 선정하고, 해당 업체가 선체 부양방식을 제시하도록 한 뒤 검토하는 것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절차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 위원은 또 2014년 5월 당시 정부 내부 문건을 제시하면서 증인의 주장을 반박했다. 당시 범정사고대책본부 산하 인양준비기획단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TMC의 역할에 대해 ‘인양 준비에서 완료까지 인양 솔루션을 제공하고 입찰 과정에서 계약조건과 방법, 비용을 검토하는 것은 물론, 실제 인양작업에서 감리와 감독 역할’까지 맡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실제로 TMC는 현재 상하이샐비지의 인양작업 현장에서도 감리역할을 맡고 있다. 신 위원은 “우리 정부가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이처럼 전적으로 기대다시피하고 있는 업체가 당시 제시한 인양방식을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었다고 치부하는 것은 부적절한 답변”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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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와 관련해 특조위는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한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다큐 <참혹한 세월, 국가의 거짓말>을 심문 자료로 활용했다. 당시 뉴스타파는 정부가 2014년 5월 23일 TMC로부터 제출받은 ‘세월호 인양 입찰 검토’ 문건을 입수해 폭로했다. 이 문건에는 세월호의 인양방식으로 선체를 해저면에서 5~10미터 들어올려 잠수바지(플로팅도크)에 실은 뒤 수심 30미터 이내인 동거차도 남단으로 이동시켜 수면 위로 완전히 부상시킨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으며, 이는 11개월 뒤인 2015년 4월 10일 정부가 발표한 유력 인양방식과 판박이처럼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2014년 11월 11일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 이후 ‘인양 가능성’을 검토한다며 5개월을 끌다가,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여론이 고조되던 4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인양에 나서겠다”고 언급하자 나흘 뒤인 4월 10일에 ‘인양 가능’을 공식 발표했던 바 있다.

“선사가 선내대기 지시했다”…생존 승무원 첫 증언

청문회 첫날인 28일에는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강혜성 승무원은 참사 당일 9시 26분쯤 양대홍 사무장(사망)과 무전 교신을 했는데 양 사무장이 “지금 조타실인데 10분 후에 해경이 올 거야. 선사 쪽에서 대기 지시가 왔어. 추가 지시가 있을 때까지 구명조끼 입히고 기다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강 씨는 당시 박지영 승무원으로부터 무전기를 건네 받았고, 양 사무장에게 무전 채널을 바꾸라는 얘기를 듣고 채널을 5번으로 변경한 뒤 이같은 대화를 했다고 밝혔다.

강 씨는 청문회를 앞둔 지난 3월 16일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 과정에서 처음 이런 내용을 밝혔고, 이날 청문회에서 다시 한 번 진술했다. 강 승무원은 그동안 선내 대기하라는 선사의 지시가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이유를 “희생된 여객부 직원(양대홍 사무장)에게 누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앞두고 심경의 변화가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조사 받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에게 깊은 죄송함을 느꼈고, (특조위) 조사관들이 윽박지르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해줘 마음이 움직여 사실대로 말했다”고 밝혔다. 강 승무원은 청문회 마지막 발언으로 “유가족들이 힘든 것에 비하면 미미하겠지만 저도 힘들게 지내고 있다”면서 “진심으로 빨리 진실이 밝혀져서 유가족들에게 일부분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조준기 조타수도 선내 대기 지시에 대해 강 씨와 비슷한 취지로 진술했다. 조 씨는 “강원식 1등항해사가 조타실에서 선사와 통화한 직후 항해사들 중심으로 몇몇 선원들이 모여 ‘해경이 오면 안전하게 구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면서 “해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1등항해사의) 명령을 선사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원식 1등항해사는 “당시 항해사들끼리 모여서 그 같은 논의를 하지 않았다”며 이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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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원인 규명은 미흡… “인력과 예산의 한계 있다”

이석태 위원장은 2차 청문회 정리 발언을 통해 “참사의 원인과 관련해 정부의 AIS 항적 자료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혔고, 진도와 제주 VTS의 교신 음성파일이 편집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 등이 성과였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들은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에 다가서기보다는 ‘숨기거나 조작된 흔적이 있으니 뭔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는게 아니겠느냐’는 식의 음모론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권영빈 상임위원은 “정부 여당의 비협조로 인한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인해 충실한 조사에 한계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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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특조위는 지난 11일 마감된 239건의 조사신청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해 12월 열린 1차 청문회 결과를 바탕으로 국회에 요청해 놓은 특검을 성사시키고 특조위의 활동 시한을 선체 인양 이후(오는 7월 이후 예정)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특조위는 올해 6월까지의 예산만 확보한 상태다.


취재 : 김성수, 조현미
촬영 : 김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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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은 학교 앞에서 독재타도와 민주쟁취를 외치며 시위를 하던 중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당시 쓰러진 이한열 군의 사진은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한열의 피에 빚을 졌다”고 말한다.

▲2016년 6월 9일, 이한열 군의 29주기를 맞아 연세대학교 앞에 동판이 세워졌다.

▲2016년 6월 9일, 이한열 군의 29주기를 맞아 연세대학교 앞에 동판이 세워졌다.

당시 이한열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29년이 지난 지금,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호헌철폐, 독재타도’ 이한열과 함께 민주주의를 열망한 그의 친구들

1987년 6월 9일 오후, 연세대학교 민주광장에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한열과 함께 현장에 있었던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당시 연세대 1년)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삼백 명 정도의 비교적 소수의 학생들이 모였던 거로 기억해요. 교문 밖으로 나가서 신촌 로터리나 시청 쪽으로 나가서 그다음 날 있을 집회 6.10항쟁의 집회를 알리기 위해서 전단을 나눠주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때 겁나더라고요. 못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고 있는데 이한열 선배가 딱 손을 내미는 거예요. 가자고 그런데 도저히 그걸 못 뿌리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잡고 갔죠. 이한열 선배는 내 앞줄에 있고 저는 그 이한열 선배 뒤통수 보고 이렇게 교문까지 나간 거예요.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전 MBC기자) / 당시 연세대 1학년

▲ 1987년 연세대 정문 앞의 모습

▲ 1987년 연세대 정문 앞의 모습

이렇게 이한열은 이상호 기자의 손을 잡고 연세대 교문으로 나서던 때, 그의 어머니는 광주 집에서 노심초사 걱정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발 나서더라도 앞에 서지 말고 뒤에서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침에 TV를 틀어놓고 보면 연세대 정문에서 막 최루탄 쏘는 게 다 보여요. 그럼 한열이의 하숙집 주인아줌마한테 전화해서 ‘우리 한열이 좀 바꿔주세요’ 해서 ‘지금 오늘 아침에도 정문에서 최루탄 쏘는 게 다 보여 그러니까 뒤에서 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하도 아침마다 전화를 하니까 저 애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아들을 믿으라는 거예요. 톤을 높여가면서 ‘엄마, 아들을 믿으라’면서… ‘그런데 뒤에서 한다고 막 소리 높여서 한 사람이 왜 제일 앞에 가 서 있었어?’ 이거 하나 묻고 싶네요.
배은심 / 故 이한열 어머니

연세대 교문 앞은 일촉즉발의 연속이었다. 교문 맞은편에서는 전투 경찰이 최루탄을 장전한 총으로 학생들을 겨누고 있었다. 곧이어 경찰은 최루탄을 난사했다. 이렇게 발사된 최루탄이 이한열의 뒤통수를 직격했다. 이한열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눈동자는 풀려있었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곧이어 한 학생이 달려와 이한열을 부축했다. 이한열의 친구 이종창 씨다. 29년이 지금까지도 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기쯤 한 학우가 쓰러져 있었어요. 당시에 기억나는 건 정문 바로 기둥 옆에 전경들이 저를 계속 째려보면서 올까 말까 올까 말까 하는 그런 상황이 있었고요. 다행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는데 안 들어오고 저는 이한열을 한참을 더 끌고 올라가고 올라갔는데 주변에서 몇 사람이 저희를 발견하고 뛰어오는 게 보였어요. 그걸 보고 저는 힘들어서 놓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이종창 / 당시 연세대 2학년

‘한열이를 살려내라’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한 장의 사진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군과 이한열 군을 부축하는 이종창 씨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군과 이한열 군을 부축하는 이종창 씨

이종창 씨가 이한열을 부축하고 있는 순간, 한 외신기자가 그 모습을 포착했다. 정태원 로이터통신 사진기자다.

교문 앞에다 최루탄 발사를 하니까 시위하던 학생들이 ‘와’ 해서 교문 안으로 들어갈 거 아니에요. 그때 같이 들어가다 보니까 누가 쓰러지더라고 손이 위로 올라가더니 그냥 쓰러져 그래서 보니까 한열이. 그래서 내가 순간포착. 여기서 된 게 그 장면이에요. 쓰러져서 부축하는 거.
정태원 / 당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정태원 기자가 찍은 사진은 그 날 로이터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그 사진은 이례적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이창성 중앙일보 기자의 설명이다.

우리는 찍지 못했기 때문에 그 당시 로이터통신의 정태원 씨한테 연락을 했죠. ‘내가 사진을 구해야겠는데 좀 줄 수 없겠는가’ 그랬더니 자기 서랍에 몇 장의 사진을 만들어놓은 게 있으니까 그걸 가져가시오. 가져가서 보니까 엄청난 사진이 있어요. 아주 충격적인 사진. 그 사진을 딱 봤을 때 4.19 때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시체의 사진, 김주열 사진이 4.19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이거는 김주열 사진에 버금가는 사진이 들어있다 싶어서 바로 그 사진만, 조선일보에 난 사진 말고 그 사진을 바로 편집국장에게 들고 갔습니다. ‘국장님, 이 사진이 기가 막힙니다. 이 사진을 쓰게 해주십시오’ ‘이거 너무 심하지 않겠어?’ ‘아닙니다. 절대로. 이 사진이 큰 영향력을 끼칠 겁니다’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기자

▲ 최병수 씨는 이한열 군의 사진을 보고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목판화를 제작했다.

▲ 최병수 씨는 이한열 군의 사진을 보고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목판화를 제작했다.

중앙일보 지면에 사진이 실린 뒤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87년 6월 항쟁의 상징이 된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판화가 제작된 것도 이 보도를 통해서였다.

버스에서 신문을 펼친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이한열, 로이터통신 정태원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이 실린 거죠. 그 사진을 봤을 때 충격을 바로 받은 거죠. 무슨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 사진을 봤을 때 이 기억은 아마 저한테 평생 갈 것 같아요. 사진 찍으신 정태원 기자도 “우리는 이 젊은이한테 피로 빚을 졌다” 이렇게 말씀하셨나. 아주 단순하게 딱 짧게 말씀하셨는데, 저도 피에 대한 빚이 있는 느낌이 들어요.
최병수 / 당시 ‘한열이를 살려내라’ 목판화 제작

아들 이한열을 대신해, 어머니는 지난 29년 동안 시국 시위 현장이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 지금 어머니는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지금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생각해본다고 했다. 2016년 대한민국은 22살 이한열이 꿈꾼 세상이었을까?

▲ 2016년 6월 13일, 이한열 군의 모친 배은심 여사는 정부세종청사 앞 시위에 참여했다.

▲ 2016년 6월 13일, 이한열 군의 모친 배은심 여사는 정부세종청사 앞 시위에 참여했다.

어딘가에서 이한열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어서. 이한열이 이렇게 안 죽고 살았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를 내가 생각해보면서 그 어린 나이에 모든 게 거기서 그냥 끝났단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추상적으로 우리 한열이 이렇게 컸으면 이런 세상을 살았을 거란 걸 내 몸으로 한열이를 찾아보려고 다닌 게 30년이네요. 그런데 없어요. 아무리 다녀도 없어요.배은심, 故 이한열의 모친


취재작가 구슬희
글구성 정재홍
연출 서재권

금, 2016/06/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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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에 걸쳐 무려 5년 4개월 동안 보훈처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승춘 처장의 재임 기간 동안, 친일 행적으로 의심될만한 흠결이 있는데도 건국훈장을 수여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등 서훈 심사와 관리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같은 사람에게 동일한 공적으로 건국훈장을 중복 서훈하는 일도 벌어졌고,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담은 공훈록에서도 오류가 다수 확인됐다.

문제점 ① 박승춘 재임기 건국훈장 서훈자 중 ‘친일 의심 흠결’ 4명 확인

뉴스타파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건국훈장 수훈자 가운데 흠결이 있는 사람은 없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박승춘 처장 재임 기간인 2012년부터 2015년 사이 독립유공 포상자 1,480명 가운데 4명에게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행적이 발견됐다. 1년에 한 명 꼴이다.

취재팀은 독립유공 포상자와 1927년 일제가 발행한 ‘전국 면직원록’ 명단을 비교해 봤다. 면직원록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전국의 면장과 면협의회원의 명단이 수록돼 있다.

▲ 일제가 1927년 발행한 면직원록, 전국의 면장과 면협의회원 및 면서기의 명단이 상세히 나온다.

▲ 일제가 1927년 발행한 면직원록, 전국의 면장과 면협의회원 및 면서기의 명단이 상세히 나온다.

대조 결과 면직원록에서 독립유공자 4명의 이름이 나왔다. 이들은 3.1운동 참여로 옥고를 치렀지만 그 이후 면협의회 의원을 지낸 사실이 드러났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맡은 이00,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정00, 2014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박00,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이00 등 4명이다.

▲ 뉴스타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면직원록’에서 건국훈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은 독립유공자 4명의 명단을 1차 확인했다.

▲ 뉴스타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면직원록’에서 건국훈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은 독립유공자 4명의 명단을 1차 확인했다.

면협의회는 일제가 조선인 통제와 식민통치를 원활하기 위해 만든 지역 말단 행정조직으로 주로 지역 유지들로 구성됐다. 일제 강점기에 면장이나 면협의회 의원을 지냈다고 해서 모두 친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건국훈장 서훈 심사에선 주요한 흠결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용창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행정구역의 말단이 면인데요. 면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일제가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어요. 지역주민들을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말단부터 윗조직까지 순차적으로 통제를 하고, 그것을 또 총체적으로 아울러서 일괄 통제하는 그런 방식이었기 때문에 면장이나 면협의회원, 이런 분들은 일제가 요구한, 조선총독부의 가장 최하위 단위에서 지역 주민들을 통제하고 협력을 하게 동원하는 그런 역할을 했어요.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일제 강점기 때 면장이나 면협의회원 이력이 확인될 경우 그동안 건국훈장 서훈에서 아예 제외시키거나 수여를 유보해왔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최근까지 일제가 발행한 면직원록 명단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준식 전 국가보훈처 독립유공 공적심사위원은 “면장과 면협의회원은 물론 구장(區長)의 이력이 발견돼도 서훈 심사가 유보된다”고 말했다. 구장은 지금의 마을 이장에 해당한다.

문제점 ②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도 곳곳에 오류

독립유공자공훈록에도 곳곳에서 오류가 확인됐다. 공훈록은 국가보훈처가 발행한 것으로 지금까지 21권이 출간됐다. 공훈록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취재팀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김순도의 공훈록 내용을 확인했다. 독립운동가 김순도는 1911년 일제가 날조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기도 사건으로 항일 인사 105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이른바 ‘105인 사건’에 연루됐다. 국가보훈처가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에 있는 김순도의 공적 내용은 이렇게 돼 있다.

▲ 국가보훈처 발간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에서 확인한 독립운동가 김순도의 독립운동 공적훈내용.

▲ 국가보훈처 발간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에서 확인한 독립운동가 김순도의 독립운동 공적훈내용.

그런데 공훈록에서 잇따라 ‘그녀’와 ‘자모(慈母)’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국가보훈처는 김순도를 여성으로 판단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취재팀은 105인 사건 전문가인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를 만나 확인했다. 윤경로 교수는 ‘105인과 사건과 신민회’ 의 저자다. 또 1991년부터 2011년까지 국가보훈처 독립유공 공적심사위원을 지냈다.

윤경로 교수는 ‘105인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105명은 물론 기소됐던 123명 가운데,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공훈록에 명백한 오류가 확인된 것이다. 실제 국가보훈처는 1995년 훈장을 수여할 당시부터 건국훈장 명단에 김순도를 여성으로 기재했다.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는 물론 공훈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해당 수훈자의 성별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도 “(105인 사건에) 여성 분은 못 들어 봤다”며 공훈록의 오류를 인정했다.

신간회 활동으로 1993년 건국포장을 받은 김항규의 공적 내용에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 나오는 김항규의 공적 내용을 보면, 그가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 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서 독립운동가 김항규 관련 내용.

▲ 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서 독립운동가 김항규 관련 내용.

임전보국단은 1941년 일제가 징병 독려와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친일 단체다. 최린, 박흥식, 문명기 등 수많은 거물 친일파들이 임전보국단에 참여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공식 발행한 자료를 보면, 임전보국단이 1941년 12월 조선신궁 앞에서 한 선서문은 다음과 같다.

선서문
우리는 임전체제 하에서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과거에 구애받지 말고 개개인의 입장에 사로잡히지 말고 2400만 반도의 민중 전체가 일치 결속하여 성전 완수를 통해 황국의 융흉을 기하고, 성은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것을 맹세한다.
1941년 12월 13일
(조선신궁 앞에서)

실제 1941년 일제가 작성한 조선임전보국단 개요를 보면, 발기인 명단에 김항규라는 이름이 나온다. 보훈처는 김항규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하면서 공적 내용엔 오히려 중대한 흠결을 버젓이 기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공훈록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털어놨다.

이밖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 김기현과 고영신의 공적내용을 보면, 각각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적경에게 피체되어 1921년 7월 25일 피살 순국하였다.” “항일운동을 하던 중 적경에게 피체되어 1921년 7월 25일 피살 순국하였다”고 돼 있다.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의 확인 결과, 1923년 11월 10일자 독립신문에 ‘고영신과 김기현이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 생존자를 순국자로 기록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문제점 ③ 동일 인물에게 동일한 공적으로 중복 서훈

2012년 3.1절,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모두 72명에게 건국훈장과 포장,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취임한 이후 첫 3.1절 독립유공 포상이었다. 서훈자 명단에서 전천보(全天甫)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로가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그리고 1년 후인 2013년. 3.1절. 보훈처는 독립유공 서훈자 75명을 발표했고, 박근헤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훈포장을 수여했다. 건국포장 명단에 김천보(金天甫)라는 이름이 있다.

▲ 2012년도 보훈처 보도자료에 건국훈장 서훈자로 등장하는 전천보(사진 왼쪽), 2013년 건국포장 대상자로 나오는 김천보(사진 오른쪽)

▲ 2012년도 보훈처 보도자료에 건국훈장 서훈자로 등장하는 전천보(사진 왼쪽), 2013년 건국포장 대상자로 나오는 김천보(사진 오른쪽)

전천보(全天甫)와 김천보(金天甫). 성이 다를 뿐, 이름은 한자까지 같다. 국가보훈처 사료관에서 두 사람의 공적 조서를 비교해 봤다. 먼저 2012년 건국훈장을 받은 전천보의 공적내용이다.

1919년 중국 길림성 나자구에서 독립운동 중앙기관인 대한의사부 의사원으로 활동하였고 1920년 대한의사부 부장, 1924년 적기단행정부 지방부장으로 일본관서의 파괴, 요인암살,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됨.

전천보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 공적 발췌

이번엔 2013년 건국포장을 받은 김천보의 공적내용을 살펴봤다.

1919년 한족독립운동의 중앙기관인 대한의사부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 나자구공산당후원회 지방부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김천보 (2013년 건국포장) 공적 발췌

독립운동을 한 지역은 물론 활동 내용이 비슷하다. 혹시 같은 사람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보다 정밀한 검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중복 서훈으로 확인됐다.

(두 분의) 행적을 다시 확인해봤더니 전천보라는 분하고 김천보라는 분이 같은 분인 거예요 저희 판단으로는 명확히 같은 분이고, 두 분의 행적은 거의 일치해요.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는 전(全) 자와 김(金) 자을 잘못 판독해 일어난 일로 추정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한자를 혼동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박승춘 처장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 6.25전쟁 66주년 행사장에서 그를 만나 물어봤다. 취재팀은 박승춘 처장에게 건국훈장 서훈 심사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이뤄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공훈록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으나, 박 처장은 ‘나중에 답변하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 6월 25일 취재팀은 6.25 66주년 기념식장에서 박승춘 처장을 만났다.

▲ 6월 25일 취재팀은 6.25 66주년 기념식장에서 박승춘 처장을 만났다.

재임 5년, 보훈처 난맥상은 박승춘 처장이 자초

현재 보훈처의 각종 난맥상은 박승춘 처장이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편향적이고 극단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보훈처를 이념 대결의 수단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실제 재임 5년 4개월 동안 박승춘 보훈처장은 각종 논란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그의 해임촉구 결의안이 무려 3차례나 제출됐다.

2011년.
5·18 광주항쟁 유혈진압에 책임이 있는 고 안현태 씨의 국립현충원 안장 부당 개입.

2012년
민주화운동을 종북세력으로 폄훼하고,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안보 교육 동영상 제작 배포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무슨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라며 부적절한 발언.

2015년 – 2016년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 및 제창 거부

2016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에 투입됐던 공수특전여단의 광주 금남로 시가 행진 추진


취재 : 박중석,
촬영 : 최형석, 정형민, 김수영
조사 : 민족문제연구소, 뉴스타파 데이터팀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월, 2016/06/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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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청와대의 불법적인 KBS 보도 개입 사건과 관련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이의 통화 내용 전체를 공개합니다.

얼핏 들으면 이정현 전 수석이 읍소하고 부탁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전체 내용을 들으면 결국 두 사람의 관계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KBS 보도국장의 인사권은 KBS 사장에게 있고, KBS 사장은 KBS 이사회가 임명합니다. 그리고 KBS 이사 11명 가운데 7명은 대통령과 여당이 결정합니다. 이 같이 청와대가 사실상 KBS 사장 인사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결국 KBS 보도국장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 홍보수석은 자신의 인사권을 간접적으로 쥐고 있는 ‘상급자’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금, 2016/07/0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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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종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 .. 과연?

어제 (6월 30일) 공개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 개입 녹취와 관련해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오늘 (7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제 소신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추측컨대 홍보수석으로서 통상적인 업무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고 본다.

이원종 비서실장의 해명은 말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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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정무수석 시절에도 KBS에 전화해 ‘보도지침’ 내려

뉴스타파는 어제 이정현 홍보수석이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3번 걸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정현 ‘수석’이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건 것은 모두 4번이다. 왜냐하면 이정현 수석은 홍보수석이 되기 전, 정무수석 시절 당시에도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김 전 국장의 비망록을 보면, 이정현 수석은 2013년 5월 13일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정현 씨는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아니라 정무수석이었으며 6월 3일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정현 ‘정무수석’이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2013년 5월 13일은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방미 중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지 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방송들마다 연일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을 톱으로 다루던 때다. 이정현 정무수석은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은 김시곤 전 국장에게 “윤창중 사건을 톱으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무수석’ 이정현의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당시 지상파 3사가 윤창중 사건을 다룬 순서를 확인해보면, 이 같은 지시와 요구는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KBS
9시 뉴스
MBC
뉴스데스크
SBS
8시 뉴스
5.10
5.11
5.12
5.13 2번째
5.14 4번째
5.15 9번째 3번째
5.16 15번째 4번째 3번째
5.17 7번째 6번째 4번째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걸었던 5월 13일부터 KBS에서는 윤창중 성추행 관련 리포트가 점점 뒤로 밀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KBS는 뉴스뿐 아니라 특집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홍보했다.

2013.5.10 <특별좌담 – 박근혜 대통령 방미 결산 한미 네오 파트너십>
2013.5.11 <심야토론-한미 정상회담, 성과와 과제는?>
2013.5.18 <한미동맹 60년, 글로벌 파트너십의 미래>

세 번의 특집 방송에서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사실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이 가운데 통화 이후인 5월 18일 나간 <한미동맹 60년, 글로벌 파트너십의 미래>는 앞선 방송들과 내용이 중복되는 등 사장의 무리한 제작 지시로 인해 보도본부와 제작본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MC와 VCR은 보도본부가, 스튜디오 연출과 큐시트 제작은 제작본부가 담당하는 기형적인 과정을 거쳐 제작됐다. 임창건 당시 KBS 보도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의 방미가 망가진 상황에서 성과를 보도하라고 해서 굉장히 난감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나(임창건 보도본부장)와 시사제작국장이 여러 차례 길환영 사장에게 이야기했지만 사장이 재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결국, 윤창중 사건을 축소하고 방미 성과를 띄우라는 이정현 ‘정무수석’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청와대의 해명은 틀렸다.. 다시 해명하고 사과해야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정현 씨가 한 일이 “홍보수석의 통상적인 업무였다”는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해명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9시 뉴스에 개입하는 것이 정무수석이 해야 할 “본연의 업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이정현 전 수석의 월권 행위에 대해 다시 해명하거나 사과해야 한다. 이정현 전 수석은 현재 방송법 위반 혐의로 언론노조와 세월호 특조위에 의해 고발된 상태다. 검찰은 이정현 씨가 홍보수석이 아니라 정무수석으로서 공영방송의 보도에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해 이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

※ 이정현 – 김시곤 통화내용(전체)

금, 2016/07/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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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일,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국정화교과서 확정 고시를 발표한 이후, 집필진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밀실 집필’이 시작된 지 7개월째, 집필자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 현재 알려진 것은 집필진의 참여한 인원수뿐, 모두 46명 가량의 집필진이 꾸려진 정도만 공개된 상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여전히 “집필 완료 시점까지 집필진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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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어떤 과정으로, 어떤 내용으로 국정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것일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민족문제연구소 등 47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크워크>와 함께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정화교과서 집필의 실태를 추적했다. 추적의 구체적인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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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국정교과서 집필자의 명단을 알고 계신 분은 <뉴스타파> 또는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로 연락을 주세요.


취재작가 곽이랑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권오정

금, 2016/07/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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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에도 주역은 전관 변호사들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가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처벌을 받고,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과거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법조비리 사건의 주인공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 홍만표, 최유정 변호사의 미래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1998년 발생한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1999년 대전 법조비리, 2005년 윤상림게이트, 2006년 김홍수 게이트 연루자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집행유예가 대부분, 다시 서초동 변호사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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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취재진은 과거 법조 비리 관련 법조인들을 예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근황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법조계로 돌아와 활동 중이었고, 비리 사건 이후 더 화려하게 재기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후 사면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의정부 법조비리의 주역이었던 이 모 변호사. 그는 당시 사건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과거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를 한사코 꺼렸다.

아가씨(사무실 직원) 한 명 데리고 조용하게 살고 있어요. 친구들이 (사건)맡기고, 친척들이 맡기면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사회에 대해서 잊었다니까. 나는 내가 사는 이 세상, 요만큼 안에서만 살고 있는 거야. 자연인으로서 그냥 생존만 하고 있는 거야.

같은 사건에 연루됐던 김 모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던 그는 법조 비리 사건 이후 오히려 화려하게 재기했다.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던 그는 공정거래법을 연구하고 돌아온 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송무담당관을 지냈다. 이 자리는 공정위가 조사한 사건을 검찰에 고소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높은 공정성이 요구되는 자리여서 개방형 공무원 직위로 운영되고 있다. 그 이후에 김 변호사는 외교통상부 한-EU FTA 자문위원과 방송통신위원회 법률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사건을 반성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당시 판사들에게 준 돈을 ‘관행’이라고 합리화했다. 또 “검사들에게도 돈을 줬지만,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다”며 볼멘 소리를 늘어놨다.

지금은 몇 만원 이상도 문제가 되지만 그때는 판사든, 검사든 인사 치레 정도는 별 문제 안 되는, 용인된 시대였어요. 해방 전후부터 지금까지 다 그랬어요. 전국 어디서든 다 했어요. 다. 검사들이 지들 받은 것은 다 빼고, 판사들만 잡아서 처리시킨 게 의정부 사태예요.

김홍수 게이트에 연루돼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던 조 모 변호사. 그는 2010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은 뒤 줄곧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과거를 반성하지 않았고 후회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법무부가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인정해 나를 복권시켜줬다”고 말했다.

제가 법관 물러나게 된 데는 아쉽지만은 변호사라는 직업도 법관 못지 않게 보람이 있는 직업입니다. 법무부도 복권 신청도 안 했는데 저를 사면복권해줬어요. 솔직히 왜 그랬겠어요? 자기네들도 보기에 (기소가)무리했다, 미안했다 싶었겠죠.

법조계가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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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비리 전력자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다시 법조계로 돌아올 수 있는 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변호사법이 한몫하고 있다. 변호사법(5조)은 비리 법조인이 다시 법조계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 금고형의 경우 형기 만료 5년 뒤, 집행유예는 그 기간이 끝나고 2년 뒤면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변호사 등록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금까지 변협에 의해 영구 퇴출된 변호사는 단 1명도 없었다. 변호사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변호사법이 오히려 비리 법조인들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나오는 대책도 변함없기는 마찬가지. 매번 눈가리고 아웅식의 대책이 반복되고 있다. 대법원은 6월 20일,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한 대책을 내놨다. 판사의 외부 전화를 녹음하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업무를 제한한다는 것 등이다. 부당 변론 신고센터를 개설한다고 했지만 과거 대책의 반복일 뿐,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홍만표, 최유정 변호사의 미래를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재: 강민수
영상: 김수영
편집: 윤석민

일, 2016/07/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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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지난 4월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로부터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보여주는 동영상 파일과 자료들을 입수했다. 동영상 안에는 이건희 회장이 수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젊은 여성 여러 명을 안가나 자택으로 불러 성행위를 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

뉴스타파는 지난 3개월 동안 동영상의 진위 여부를 다각도로 검증했다. 검증 결과 동영상이 위변조됐거나 허위라고 볼만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동영상에 들어있는 여러 정보를 토대로 취재를 벌인 결과, 동영상이 실제 이건희 회장의 거처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근거를 추가로 발견했다. 특히 동영상이 촬영된 장소가 이건희 회장의 자택과 안가라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그 안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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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4-5명 불러.. “한번에 500만 원 받았다”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담겨있는 동영상은 모두 5차례에 걸쳐 촬영됐다. 날짜는 다음과 같다.

1. 2011년 12월 11일
2. 2012년 3월 31일
3. 2013년 1월 5일
4. 2013년 4월 19일
5. 2013년 6월 3일

언론에 공개된 이건희 회장의 일정과 비교해 본 결과, 이 회장은 동영상이 촬영된 5번의 시점에 모두 국내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영상이 촬영된 날은 모두 이건희 회장이 해외에 머물다 귀국한 뒤 짧게는 사흘 뒤, 길게는 두 달 이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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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은 주로 낮 시간에 촬영됐다. 촬영된 시간은 5개 영상 모두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한 번에 3명에서 5명이다. 외모로 봤을 때 이들의 나이는 대체로 20대에서 30대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건희 회장과 이 여성들 사이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 여성들은 다른 유흥업소에서도 일을 하고 있었으며 이 회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에 녹화된 여성들끼리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들에게는 한 번에 500만 원 가량의 비용이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

“위변조나 합성 의심할 증거 없다”

뉴스타파는 이 동영상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고 검증 과정을 거쳤다. 이에 따라 비밀리에 믿을 수 있는 영상 전문 대학교수를 섭외해 분석을 의뢰했다. 전체 7시간이 넘는 동영상을 한 프레임씩 정밀 검증한 결과, 위변조나 합성을 의심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건희 회장의 모습을 영상에 등장하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상에 찍혀있는 시간 정보 역시 촬영과 동시에 입력된 것이며 사후에 추가되거나 수정된 흔적은 없다고 했다. 또 동영상을 자르거나 이어붙인 편집의 흔적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결과를 얻고도 보다 확실한 검증을 위해 그와는 독립적인 다른 영상 분석 전문가에게 한 번 더 검증을 의뢰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영상에 들어있는 이건희 회장의 음성에 대한 성문 분석도 진행했다. 성문 분석을 하려면 비교 샘플이 있어야 한다. 영상에 나와있는 것과 똑같은 단어를 발화하는 음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취재진은 일반에 공개돼 있는 이건희 회장의 영상 가운데 동영상에 등장하는 3개의 단어를 찾아내 일반 영상에 나온 음성과 비교했다. 그 결과 2개의 단어는 ‘상당히 유사하다’, 1개의 단어는 ‘녹음 상태가 나빠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밖에 동영상에 나와있는 여러 가지 다른 정보들, 즉 벽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나 현장의 TV에서 방송되고 있었던 프로그램, 이건희 회장의 다리 부상 시점들을 검증한 결과 어떤 모순점도 찾을 수 없었다.

장소는 삼성동 저택과 논현동 호화빌라

뉴스타파는 동영상과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촬영된 장소를 추적했다. 그 결과 2011년부터 2012년까지의 영상은 서울 논현동의 한 고급 빌라에서, 2013년 이후의 영상은 이건희 회장이 새로 마련한 삼성동의 저택에서 촬영된 것임을 확인했다. 삼성동 자택이 완공된 시점은 2012년 3월이다. 2012년 초까지는 논현동의 고급 빌라를 안가처럼 사용하며 여성들을 불러들이다가 삼성동에 새로운 저택을 짓고 난 뒤에는 새집으로 장소를 옮긴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삼성동 자택의 용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추측이 분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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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저택은 성매매 여성이 촬영한 영상으로부터 확인됐다. 일을 마친 뒤 자동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이 여성이 갖고 있던 카메라에 차창 밖의 외경이 촬영된 것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건물들이나 전봇대, 간판 등을 토대로 역추적한 결과 삼성동의 한 대저택을 동영상 촬영지로 지목할 수 있었는데, 그 저택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소유자가 이건희 회장이었던 것이다. 취재진은 동영상이 촬영된 그 저택이 이건희 회장 소유인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

논현동의 고급 빌라는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현장 취재를 한 결과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외장하드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빌라의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검색을 하고 현장 취재를 벌인 결과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 고급 빌라는 세대별로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고, 비밀번호를 알아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사생활 보호가 철저하기로 유명한 곳이며, 이 때문인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예인들이 거주하기도 했다. 이 빌라는 전용면적이 245제곱미터이며 한 층에 3가구씩 모두 12가구가 살고 있다.인근 부동산 등을 탐문한 결과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이건희 회장이 해당 빌라를 한 달에 한 두 번씩 방문했다는 증언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해당 빌라에서 근무하는 직원 역시 전임자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 같은 증언들을 근거로 구체적인 호수를 특정한 뒤 빌라 내부를 취재진이 직접 확인했다. 그 결과,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에 나온 집과 구조 및 세부 사항이 정확히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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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안가, 비서실 출신 계열사 사장 명의로 전세 계약

그런데 해당 빌라의 등기부 등본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2012년 3월부터 9월까지 삼성 그룹의 계열사 사장이 해당 호수에 전세권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 이 빌라에서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촬영된 것은 2011년 12월과 2012년 3월이다. 전세권 설정 기간은 6개월이지만 통상 전세 계약기간은 2년이기 때문에 계약 시점은 2010년부터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문제의 계열사 사장은 현재 삼성 SDS 고문인 김인 씨다. 김인 사장은 2003년부터 2010년 말까지 무려 만 8년 동안이나 삼성 SDS 사장을 지내는 등 그룹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핵심 수뇌부로 활약해왔다. 201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는 삼성 라이온스 사장으로 활약했다. 김인 사장은 입사 4년 만인 1977년 회장 비서실에 발탁됐고, 90년대에는 비서실의 인사팀장을 지내는 등 이건희 회장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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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 사장을 만나 물어보니, 김 사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된 논현동 안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 사장은 심지어 기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온 것이냐, 동명 이인 아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등기부 등본을 보여주며 다시 묻자 김 사장은, 아마 삼성 SDS가 해외 인재 영입 조건으로 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대표이사였던 자신의 이름으로 전세 계약을 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 SDS 측에 확인한 결과 삼성 SDS는 그런 목적으로 주택을 전세 계약할 때 법인 명의를 사용하지 대표이사 명의를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13억 원이라는 거액의 전세 주택을 임차할 정도로 고위급 해외 인사를 초빙하는 경우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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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인 사장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김 사장의 명의를 도용해 고급 빌라를 전세 계약하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사용하도록 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체 누가 삼성 계열사 사장의 명의를 도용해 거액의 전세 계약을 한 뒤 이를 이건희 회장이 이용하도록 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은 누구일까?

뉴스타파는 지난 19일부터 삼성 그룹 측에 회장 비서실이 전세 계약에 관여했는지,전세 자금 13억 원의 출처는 어디인지 질의했지만 21일 밤 현재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에 질의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인 사장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전혀 모르는 일이라던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김인 사장은 2004년 경기도 분당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12년 동안 줄곧 한 곳에서 살아왔으며, 2011년과 2012년에는 삼성 라이온스 사장으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구단의 전 경기를 관람했다. 그런 김 사장이 왜 논현동에 13억을 주고 고급 빌라를 전세냈는지, 그리고 그 빌라를 왜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장소로 빌려줬는지 추가 질의했으나 김 사장은 당초 입장을 번복한 이후부터는 일체의 답변을 하지 않았으며 전화도 받지 않았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불법 성매매를 하는 과정에 비서실 등의 조직이 동원됐다면, 삼성 그룹 역시 법적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처벌법)에 따르면 성매매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누가 왜, 어떻게 찍었나?

동영상 화면에서 거울에 비친 장면 등을 분석해보면, 이 영상을 촬영한 사람은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 현장에 간 여러 명의 여성 가운데 1명이다. 이 여성은 촬영을 마치고 난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가방을 밖에 두고 가라고 해서 실패했다. 한 달 뒤 다시 예약이 잡혔다”는 식으로 상의를 한다. 상의를 하는 사실로 미루어보면 이 여성이 혼자서 이 일을 기획하고 실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함께 이 일을 꾸민 누군가가 있다는 얘기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외장하드에는 문제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 말고도 이 일을 모의한 일당이 남긴 흔적들이 들어있었는데, 이 자료들과 주변의 정황들을 토대로 추적한 결과 문제의 동영상을 찍은 주모자는 선 모 씨와 이 모 씨인 것으로 추정된다.

▲ 동영상 촬영 일당으로 추정되는 이 모 씨(왼쪽), 선 모 씨(오른쪽)

▲ 동영상 촬영 일당으로 추정되는 이 모 씨(왼쪽), 선 모 씨(오른쪽)

이들은 이건희 회장의 거처에 드나든 여성 중 1명과 협력해 동영상을 촬영했고, 이를 무기로 삼성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외장하드에는 이른바 ‘요원’이라는 이름의 폴더 아래 접대부로 추정되는 여성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으며,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삼성에 대해 조사한 내용들도 정리돼 있었다. 이 가운데는 삼성의 임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돼 있는 이메일 캡쳐 사진도 있었다. 이메일의 내용은 동영상을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지만 캡쳐 사진이라 실제로 이메일이 보내졌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동영상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전화는 받은 적이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고, 동영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동영상을 찍은 일당으로 추정되는 선 모 씨와 이 모 씨는 지난 2014년 같이 마약을 한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현재는 둘 다 다른 이름으로 개명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의 행방은 현재 묘연한 상태다. 취재진은 선 씨의 친형, 이 씨의 전 부인과 어렵게 접촉했지만 자신들도 이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재 : 김경래, 심인보
촬영 : 김기철
편집 : 정지성, 윤석민

목, 2016/07/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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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후보지를 경북 성주군으로 확정해 전격 발표했다. 성주읍 남동쪽에 자리 잡은 성산포대를 사드 기지 후보지로 정한 것이다. 마을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이다. 갑작스런 사드 배치 소식을 들은 성주 군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 사드 배치 후보지로 확정된 성주군 성산포대, 마을까지 거리가 약 200m에 불과하다.

▲ 사드 배치 후보지로 확정된 성주군 성산포대, 마을까지 거리가 약 200m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7~80년대 시대에 정치하는 거랑 똑같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딨어요. 민주주의가 없잖아요. 지금 예고 없이, 예고 없이 삽시간에 3일 만에 딱 결정 납니다 이거는 전 세계에도 이런 경우는 없지 싶습니다.백영철 / 성주군민

이날 성주군수와 군민들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국방부를 찾았다. 군수 일행은 성주 군민 2만 명이 넘게 참여한 사드배치 반대 서명서와 혈서를 국방부에 전달하고 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5시간 만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나타났다. 한 장관은 사드의 유해성에 대해 괴담이라고 일축했다.

이 사드 무기 체계는 어디 괴담처럼 돌아다니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거처럼 위해하거나 문제가 있는 무기 체계가 아닙니다. 사드가 배치되면 제가 제일 먼저 그 레이더 앞에 서서 전자파가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제 몸으로 직접 시험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한민구 국방부 장관

장관이 전자파 검증을 한다 하는데 어떻게 검증을 할 건데요? 사드 배치 해놓고 여기 와서 하루 있어서 그게 검증이 돼요? 우리는 10년, 20년 살 건데 하루 사드 앞에 있어서 그게 검증이 되냐고요. 괜찮으면 청와대에 설치하라고요.성주군민

▲ 지난 13일 성주군민들이 국방부 장관에게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국방부에 갔다.

▲ 지난 13일 성주군민들이 국방부 장관에게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국방부에 갔다.

성주 군민들과 국민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 넣은 한반도 사드 배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사드는 위험하지 않다?

한민구 장관은 사드 레이더로부터 100미터 이내만 위험지역이고 그 외에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성주읍 대부분이 전자파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육군 교범에 따르면 사드의 레이더 원점으로부터 3.6km까지 관계자 외 출입제한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성주읍내 대부분 지역이 출입 제한 구역에 해당된다. 또 5.5㎞까지는 폭발위험이 있는 모든 장비와 전투기 조종ㆍ정비하는 인원의 출입이 통제된다. 국방부가 사드 전자파 위험반경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 국방부는 사드 레이더로부터 100m이상 떨어지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2년 미 육군 교범에서는 비통제인원 출입제한구역을 3.6km로 설정하고 있다.

▲ 국방부는 사드 레이더로부터 100m이상 떨어지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2년 미 육군 교범에서는 비통제인원 출입제한구역을 3.6km로 설정하고 있다.

또 한 의학전문가는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에 직접 노출되지 않더라도 강력한 자기장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레이더의 길에 있는 건 당연히 위험하고요 왜냐하면 이 레이더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레이더 길에 있는 건 엄청나게 위험하고 그 밖에 레이더 길 내에 원통형으로 그려지는 어떤 장이 있는데 그 장에 형성되는 전자파의 밀도 이런 것들에 영향받을 수 있어서 사실 이 어느 장까지가 위험할 것인가 이 부분이 상당히 논란이 되는 것이죠.이상윤 /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사드 배치 후 환경영향평가 실시하겠다?

미국의 경우 사드 배치 지역에 지속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해오고 있다.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 내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의 경우 마을에서 떨어진 해안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레이더 방향도 해안을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자파로 인한 안전과 환경 문제 등 환경영향평가를 지난 2009년, 2012년, 2015년 세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 미국 괌 앤더슨 공군기지 내 사드포대

▲ 미국 괌 앤더슨 공군기지 내 사드포대

그런데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 후보지 발표에 앞서 별도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주군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사드 기지 레이더 때문에 피해를 입은 지역이 있고 여전히 전자파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도 사전에 환경영향평가 없이 사드 배치 지역을 먼저 지정한 것이다.

북한 미사일 공격 사드로 막을 수 있다?

북한은 현재 1천여 기의 미사일을 갖고 있다. 국방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고도미사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드 1개 포대에서 한꺼번에 대응할 수 있는 미사일이 48기에 불과하다. 또 재장전을 하는 데 30분이상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사드로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마저도 사드의 최대 요격거리는 200km이기 때문에 사드가 성주군에 배치될 경우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서울과 수도권은 방어가 불가능하다.

▲사드의 최대요격거리는 200km로 성주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수도권 방어는 불가능하다.

▲사드의 최대요격거리는 200km로 성주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수도권 방어는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조차 사드의 실효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13년 미 연방 상원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한국에서 사드의 효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있다. 또 미 국방부의 미사일 운용시험평가국장은 지난 2015년 3월 미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에 사드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고 자연환경 실험에서 결함을 보였기 때문에 사드가 배치되려면 이 같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지금까지 비행실험과 신뢰성 실험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사드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지속적이고 꾸준한 신뢰성 향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극한 온도와 온도충격, 습기, 비, 얼음, 눈, 모래, 먼지 등을 견뎌내는지 등 시스템 성능을 시험하는 자연환경 실험에서도 결함을 보였다. 이는 사드가 언제, 어디에 배치되든 적절하게 운용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꼭 해결돼야 한다.마이클 길모어 / 미 국방부 미사일운용시험평가국장 서변 답변서 중

사드 배치 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는 말만 남긴 채 7월 14일 아셈 참석 차 몽골로 출국했다가 18일 귀국했다. 성주군민들의 반대에도 사드 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닷새동안  여름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구성 정재홍
연출 김성진

금, 2016/07/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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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난 68년 동안 친일파 222명이 대한민국 훈장 440건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지난 넉달 동안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대한민국 서훈 72만 건을 분석한 결과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받은 훈장 내역의 전모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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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확정한 친일파 1,006명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700여 명을 서훈 내역 72만 건과 비교 분석해서 나왔다.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친일인사 222명 중 가운데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사람은 모두 105명이다.

일제의 훈장과 감사장 등을 받은 뒤 대한민국 훈장을 동시에 받은 친일파도 48명으로 집계됐다.

각 정권 별 친일파 서훈 건수를 보면, 박정희 집권 기간이 20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승만 집권 시기엔 162건이었다. 이어 전두환 28건, 노태우 22건, 김대중 7건, 노무현 정부에서 2건이 수여됐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친일파에게 준 훈장은 모두 368건으로 대한민국 정부 전체 친일파 서훈의 84%를 차지했다.

이승만 집권 시기에는 친일파에 대한 서훈이 주로 일제 경찰과 군인 출신에 집중된 반면, 박정희 집권 시기에는 교육, 사법, 경제, 문화 등 전 분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훈 내역을 연도 별로 살펴보면 친일파들에게 대한민국 훈장을 준 시기는 5.16 쿠데타 직후인 1962년과 1963년에 집중됐고, 1970년에도 많았다.

또 직군 별로 분류하면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 53명, 180건의 훈장을 받았고, 식민지 관료 출신이 31명에 42건, 일제 사법부 출신이 21명에 35건, 일제 경찰 출신 17명이 41건, 친일 문화예술인이 43명에 66건, 각종 친일 어용 단체 출신이 26명에 37건이었다. 조선귀족과 중추원 참의 출신 친일파 6명도 대한민국 훈장 9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개별 대한민국 훈장 서훈 상세 내역은 뉴스타파 ‘훈장과 권력’ 특별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 2016/08/0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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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수훈자 167명 친일 의심 행적 등 흠결 발견

뉴스타파가 지난 4개월 동안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만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일제 강점기 전 시기의 행적을 전수 조사한 결과 모두 167명에게서 부일 협력 행위 등으로 의심할만한 흠결이 발견됐다. 건국훈장 수훈자 전체 명단을 조선총독부 관보와 일제 강점기 면직원록, 각종 공적조서 등과 비교 조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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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에 참여한 전력이 기록을 통해 확인된 사람이 23명으로 나타났다. 일제에 국방 헌금 등을 한 기록이 나온 이는 9명이다. 또 일제의 대례기념장과 국세조사기념장 등 각종 포상을 받은 사람도 9명이었다. 이밖에 1940년대 일제가 작성한 <지나사변 공로자 공적조서>에 중일전쟁 지원 공로자로 등장하는 사람 2명의 건국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 강점기 면장을 지낸 이는 10명, 면과 읍회 의원 경력자 110명, 면직원 16명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행적을 곧바로 친일 행위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건국훈장 서훈 시에는 결격 사유가 된다. 일제 강점기 면장은 물론 지금의 이장에 해당하는 구장 이력만 있어도 건국훈장 수여를 유보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전 기간의 행적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건국훈장을 수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박승춘, 2012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23명 무더기 교체

지난 2012년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23명을 교체했다. 전체 공적심사위원의 절반 규모를 전격 물갈이 한 것이다. 대거 교체는 박승춘 현 국가보훈처장이 주도했다. 그 정도 규모로 위원이 대거 교체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해촉된 위원 중에는 서중석 교수, 윤경로 교수 등 한국독립운동사 분야의 권위있는 학자들이 많이 포함됐다. 박승춘 체제의 보훈처가 새롭게 위촉한 심사위원 명단은 비공개 상태로 지금까지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뉴스타파, 비공개해오던 심사위원 명단 최초로 입수

뉴스타파는 이번 ‘훈장과 권력’ 취재 과정에서 박승춘 처장 취임 후 위촉된 공적심사위원 명단을 최초로 입수했다. 이들을 분석한 결과 전직 공무원이 5명이나 들어 있었고, 이들은 독립운동과는 무관한 법학 전공자로 확인됐다. 정치사와 비교정치학 등을 전공해 독립운동사와는 무관한 학자도 7명으로 나타났다. 2012년 공적심사위원으로 위촉된 한 서울대 교수는 “자신은 독립운동사 전공이 아니어서 심사 위원으로 적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건전한 시민적 양심을 갖고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를 했다”고 털어놨다.

▲ 뉴스타파가 입수한 2012년 위촉된 23명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명단

▲ 뉴스타파가 입수한 2012년 위촉된 23명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명단

새로 위촉된 23명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중에는 ‘현대사학회’ 소속 인사가 8명이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의 34%다. 현대사학회는 뉴라이트 성향으로 알려진 단체다. 박승춘 처장 체제에서 건국훈장을 심사하는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에 비전공자와 특정 단체 소속 인사들이 대거 위촉된 것이다.

2013년 논란이 됐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교수도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위원에 위촉된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 공적심사위원에 위촉된 권희영 교수와 허동현 교수는 2013년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주도하겠다며 만들었던 역사교실에 초청 강사로 잇따라 참여하기도 했다.

목, 2016/08/1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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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대법원은 한전KPS 하청업체 근로자 40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한전KPS가 파견법을 위반했고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확정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이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한전KPS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2년 계약직으로 일한 뒤 2년 후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합의서를 제안했다. 한전KPS는 이들이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지 않고 보조 업무를 했기 때문에 무기 계약직으로 채용한다는 것이다.

▲ 한전KPS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제시한 합의서

▲ 한전KPS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제시한 합의서

그런데 한전KPS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정규직들과 똑같은 송전선로 관리, 유지, 보수 업무를 맡고 있다. 보통 25m, 최대 185m에 달하는 송전탑에 올라 작업을 한다. 하청노동자들은 이 송전탑 위에서 맨몸으로 고압선 사이를 오가며 전선 상태를 점검하는 위험한 업무이기 때문에 보조 업무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 송전선로 유지보수 업무는 보통 25m, 최대 185m 정도의 송전탑 꼭대기에서 이뤄진다.

▲ 송전선로 유지보수 업무는 보통 25m, 최대 185m 정도의 송전탑 꼭대기에서 이뤄진다.

실제로 한전KPS의 주간업무계획을 보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혼재로 근무해 왔던 것이 확인된다. 공기업인 한전KPS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채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8월 2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한전 KPS측에 직접 고용과 관련해 적극적인 이행을 하도록 권고까지 했다.

▲ <목격자들>에서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 <목격자들>에서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소송을 담당한 권두섭 변호사는 “한전KPS가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배치되는 내용으로 합의서를 들이밀어 사인을 하면 나중에서 합의서가 법적으로 효력을 갖게 되니까 그걸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도 비슷한 꼼수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대법원은 울진 핵발전소에서 일하다가 해고된 8명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한수원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이들이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인정했다. 6년 간의 소송 끝에 나온 판결이었다.

그러나 한수원은 이들을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으로 복직시켰다. 게다가 8명 중 5명은 연고가 없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 십여년 간 생활 터전을 잡아온 울진을 떠나야 했다.

이번에 양양에 있는 양수발전소 무기계약직으로 발령난 전병호 씨는 “한수원의 부임명령을 듣지 않고 출근을 하지 않으면 무단 결근으로 해고를 당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한수원의 부임 명령에 대해 응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이미 6년의 세월을 해고 당했기 때문에 가족들과 자신이 받을 피해를 잘 알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취재작가 곽이랑
글구성 고희갑
연출 박정대

금, 2016/08/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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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국회 김태년 의원실을 통해 산업은행의 경영 관리를 받고 있는 (주)STX의 법인 카드 사용 내역 8년 치를 입수했다. 주식회사 STX는 조선해양과 중공업 등 주력 기업의 부실로 해체된 STX그룹의 지주회사였다. (주)STX는 2013년 그룹이 해체된 뒤 2014년 1월부터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5,300억 원의 부채를 주식으로 출자 전환 받는 내용의 자율 협약을 체결한 뒤 채권단의 경영 관리를 받는 회사가 됐다. 막대한 규모의 출자 전환 금액은 대부분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국책 은행과 우리 은행 등 정부 소유의 금융기관들이 부담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 회사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경영 정상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또 채권단을 대표해 파견된 경영 관리단은 이를 제대로 감독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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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확보한 (주)STX의 법인 카드 사용 내역 15만 건을 분석했다. 여기엔 이 회사 임직원들이 어떻게 회삿돈을 써 왔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먼저, 접대비 총액 규모를 보면 2011년 11억, 2012년 12억, 2013년 8억4천만 원, 그리고 2014년에는 7억 2천만 원으로 다소 줄다가, 지난해에는 9억 6천만 원, 올 상반기에는 4억 6천만 원으로 다시 늘었다. 채권단과 자율 협약을 맺은 2014년에만 다소 줄었을 뿐 지난해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늘어난 것이다.

자율 협약이 맺어진 2014년이후만 따져도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골프가 101건에 4천 7백여만 원이 지출됐고, 심지어 자율 협약 이전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안마시술소에서도 19차례에 걸쳐 780여만 원이 결제됐다.

▲ STX연간 접대비 추이

▲ STX연간 접대비 추이

이 회사 임직원들의 구체적인 법인 카드 사용 행태를 보면 접대비와 부서 식대, 출장비 등을 혼용해 사용하거나, 여러 차례 나눠 결제하는 이른바 ‘카드 나눠찍기’ 행태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2급 호텔과 유흥 주점이 결합된 형태의 주점에서 성 접대로 의심을 살만한 법인 카드 결제도 여러 차례 발견됐다. 이에 대해 주식회사 STX측은 “상사의 특성상 접대비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영업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거래 선을 발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접대비 지출”이었다고 해명했다.

산업은행에서 파견된 경영관리단 역시 경영 상태를 관리 감독하면서 부실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는 커녕 공금을 쌈짓돈 쓰듯 했다. 자율 협약에 따라 STX측이 지원할 수 있는 한달 업무추진비가 60만 원이었지만, 2014년 9월 당시 경영관리단은 하루 저녁 식사와 술값으로 80여만 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또, 회사 임원으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STX 경영관리단 신 모단장은 “관리단의 경비 사용 실태에 대해서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지적받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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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파견 기업이 제공한 법인 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영관리단의 행태를 봤을 때, 해당 부실 기업들을 제대로 관리 감독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며 수 조원이 투입된 대우 조선해양이나 성동조선 등에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의심이 든다” 며 산업은행의 부실 관리 감독을 질타했다. 수 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 기업의 흥청망청 법인 카드 사용과 이를 막아야 할 산업은행의 나 몰라라식 부실 관리가 어우러지면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됐다.


취재 : 현덕수
데이터 : 최윤원
촬영 : 정형민 최형석
편집 : 박서영

목, 2016/09/0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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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부서도 접대비 부당 사용… 내부 문제제기는 ‘묵살’

2014년 자율협약 이후 (주)STX의 부적절한 접대비 지출 증대는 영업이 필요한 사업부서에서 뿐만 아니라 특별한 거래처가 없는 기획과 인사, 재무, 회계 등의 관리부서, 나아가 이 같은 문제를 감시해야 할 감사 부서에 이르기까지 전사적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한 직원이 내부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제기했다가 회사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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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살림’ 챙기는 관리부서도 접대비 계속 증가… ‘내부접대’ 때문?

종합상사인 (주)STX의 조직은 크게 사업부서과 관리부서로 나뉜다. 사업부서는 금속과 철강, 기계엔진, 자원, 성장 등 5개 본부 아래 12개 팀을 두고 11개 해외지사를 운영한다. 제품을 구매해 되파는 종합상사 업무의 특성상 다수 거래처가 존재하고 이에 따른 접대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반면 관리부서는 사업부서를 지원하는 경영기획, 재무, 회계, 인사총무, 법무감사팀으로, 이른바 ‘안살림’을 도맡는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거래처가 없어 접대비 발생 요인도 거의 없는 부서들이다. 전체 직원도 30명이 안 된다.

▲ STX 관리부서 조직도

▲ STX 관리부서 조직도

그런데 채권단의 경영관리가 시작된 2014년 1월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STX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해 보면, 이들 관리부서의 접대비 지출도 계속 늘어났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014년 6천 7백만 원에서 지난해에는 7천 9백만 원으로, 올해는 상반기까지만 4천 5백만 원을 접대비로 썼다. 특히 이 가운데 법무감사팀의 경우엔 지난해 1천 2백만 원을 썼는데 올해 상반기까지만 이미 1천 3백만 원을 접대비로 지출했다.

STX의 관리부서에 근무하다가 최근 퇴사한 한 직원은 “STX는 현재 거느리고 있는 자회사 2곳에 대해서는 접대비 관리를 타이트하게 하면서도 본사 직원들은 여유로운 수준으로 사용한다”면서 “관리부서들은 거래처가 거의 없지만 자기들끼리 먹는, 이른바 ‘내부접대’가 많다”고 말했다. 도대체 ‘내부접대’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직원들끼리 골프 치고 술 마신 뒤 “결제는 접대비로”

2014년 이후 STX 관리부서들의 접대비 사용 내역 가운데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골프접대(스크린골프 포함)였다. 2014년 불과 9건에 불과했다가 지난해 29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6월까지만 30건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실제로 외부 거래처를 상대로 한 접대가 아닌 내부 직원들끼리 즐긴 뒤 비용만 접대비로 처리했던 경우가 다수 파악됐다.

지난해 12월 12일 진천 크리스탈카운티 골프장에서 법무감사팀의 접대비로 지출된 18만 원도 그런 경우였다. 취재 결과 이날 라운딩을 한 사람을 차00 당시 STX 감사와 차 감사의 지인, 그리고 법무감사팀장과 팀원 등 4명이었다. 이날 함께 골프를 쳤던 STX 직원은 “차 감사의 지인이 외부인이었지만 회사 업무와 어떤 관계도 없는 분이었다. 그냥 내부 직원들끼의 친목을 위한 자리였는데 이 비용이 부서 접대비로 처리된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팀장들끼리 골프를 즐기고 접대비로 처리한 사례들도 있었다. 엄00 인사총무팀장과 윤00 법무감사팀장은 올해만 3차례 진천과 가평 등지에서 골프를 치고 주변 맛집에서 식사를 한 뒤 비용을 모두 부서 접대비로 처리했다. 이에 대해 윤 팀장은 “다른 회사에서는 사내 골프대회 같은 것도 열고 하지만 STX는 회사가 어려워진 뒤로는 그런 행사가 없다. 그래서 사내에서 마음 맞는 팀장들끼리 몇 차례 골프를 치러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서 접대비를 일종의 복리후생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직원들끼리 즐긴 골프를 접대비로 처리한 뒤 식사 접대를 한 것처럼 허위 영수증을 발급받아 처리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STX 법인카드 사용내역 데이터에는 주로 지난해부터 특정한 한식당 몇 곳에서 밤 10시를 전후해 10만 원 안팎의 접대비가 반복적으로 지출된 석연치 않은 기록이 다수 발견된다. 취재 결과 이는 모두 스크린골프 비용이었다. 스크린골프장이 인근의 식당과 계약을 맺고 손님들이 요구할 경우 영수증을 식대로 끊어주거나, 아예 스크린골프장과 식당으로 2개의 영업허가를 받고 손님들의 원하는 쪽의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방식이었다. STX 직원들끼리 스크린골프를 즐긴 뒤 이 같은 수법으로 식사 접대인 것처럼 허위 영수증을 제출한 것은 올해만 14건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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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점 등에서 하룻밤 백만 원 이상을 쓰고 이를 감추기 위해 영수증을 나눠 끊은 사례도 확인됐다. 법무감사팀 윤00 팀장과 이00 차장은 지난 6월 2일 저녁 서울 역삼동의 한 육개장집에서 식사를 하고 인근의 스크린골프장을 이용한 뒤 부서 접대비로 비용을 치렀다. 이후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양주를 마시는 고급 카페주점에서 75만 원 어치 술을 마신 뒤 영수증 2건으로 나눠 결제한 뒤 이를 접대비로 청구했다.

바로 다음날 이 차장은 업무시간인 오후 4시에 인근의 또 다른 카페주점에서 48만 원을 두 건으로 나눠 추가 결제한 뒤 역시 접대비로 청구했다. 확인 결과 두 카페주점은 동일한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하룻밤에 식사와 스크린골프, 유흥을 즐기는 데 130여만 원을 쓰고 접대비 처리한 것이다. 두 사람은 취재진에게 “식사와 스크린골프는 둘이서 쓴 것이지만 카페주점에는 외부 법무법인 변호사를 접대하느라고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윤 팀장은 변호사 2명을 접대했다고 한 반면 이 차장은 1명을 접대했다고 말하는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일치하지 않았다. 이를 확인하고자 해당 법무법인 변호사에게도 연락을 취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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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관리부서들의 한달 부서 접대비는 백만 원이다. 이렇게 하룻밤에 130여만 원을 사용한 법무감사팀은 어떻게 초과분을 메꿨을까. 취재 결과 윤 팀장은 한달 접대비로 200만 원을 쓸 수 있는 김00 재무담당 상무에게 부탁해 부서 접대비 초과분을 보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어떤 외부 인사를 만나 어떤 건으로 협의를 하느라 접대비를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등의 뚜렷한 설명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부적절한 접대 관계로 업무도 지장” 내부 제보했다가 되레 징계

지난 7월 초, STX 법무감사팀의 한 직원은 서충일 대표이사 앞으로 사내 신문고 메일을 보냈다. 같은 부서의 한 상사가 자신에게 수 개월 째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해 왔고 골프나 룸살롱 접대를 받은 특정 법무법인에 일감을 주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골프접대를 하기 위해 해외 출장 일정을 바꾸기도 했다는 등의 제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2주 간의 자체 조사 뒤 인사위원회를 열어 이 직원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고 경고장을 보냈다. 성희롱 부분은 양측의 주장이 상반돼 확인이 불가능하고, 부적절한 접대 관계로 인한 업무상 비위는 조사 결과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조사 기간 중 제보자가 사내에 미확인 제보 내용을 유포시켰다는 것이 징계 사유였다. 여기에 다소 뜬금없이 평소 근태가 불량했다는 것도 징계 사유로 덧붙였다. 이 직원은 회사가 제보 내용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부당한 징계를 했다며 현재 노동청 진정과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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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 만남이 아닌 직원들끼리의 유흥을 접대비로 처리하고, 이를 감시해야 할 내부 감사 기능은 정지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내부 제보를 한 직원을 되레 징계하는 회사. 부실경영으로 어려워졌지만 회생은 시켜야 한다며 국민 세금으로 수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STX의 현주소다.


영상취재 : 김남범 최형석
영상편집 : 윤석민

목, 2016/09/0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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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STX가 언론사 기자들을 상대로 한 접대비 규모는 회당 평균 65만 원으로, 정부 부처 공무원(접대액 28만 원)과 국회의원 보좌진들(접대액 33만 원)보다 2배 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이른바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돼야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뉴스타파는 주식회사 STX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입수, 기자와 공무원들이 STX로부터 얼마나 자주 향응을 제공받았는지 분석했다. 이를 위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STX 홍보팀 명의로 사용된 법인카드 사용액 7억9000여만 원 중에서 언론사 이름이 기재돼 있거나 ‘출입기자’, ‘외신기자’ 등 기자를 접대한 것으로 적힌 카드 결제 내역만 따로 추렸다. 접대비 또는 거래처 접대비로 적혀 있어 기자 접대비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은 모두 제외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기자 접대비로 분류한 법인카드 사용액은 2억5512만 원.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를 포함해 조선·중앙·동아 등 주요 신문, 경제지, 인터넷 매체 등 모두 36곳의 언론사가 391차례 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왔다.

이는 같은 기간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143차례 4700만 원 상당을,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56차례 1600여만 원의 접대를 받은 것보다 건수는 물론 1회 평균 접대 비용에서 훨씬 많았다.

공무원들이 주로 식사 대접을 받은 반면 기자들의 경우 식사뿐아니라 유흥업소와 골프장에서 한 번에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향응을 자주 제공받았다.

STX의 기자 접대비는 2010년 3000만 원에서 2013년에는 7000만 원을 넘었다. 전 STX 홍보팀 관계자는 이처럼 접대비가 크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 “경영위기가 오면서 기자들이 별의별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기사를 써댔다”며 “기자들과 친해지려면 수단이 접대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STX가 경영이 악화돼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기 직전인 2013년 한 해 동안 언론사 골프 접대만 무려 43차례, 금액으로는 5천200만 원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골프장 위치를 누르면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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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접대비에는 불법 성매매가 의심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됐다. 지난 2013년 한 경제신문을 상대로 한 ‘기업설명회’라고 적혀 있는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술값은 93만 원인데 봉사료는 이보다 두 배 많은 217만 원이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법인카드가 사용된 유흥주점을 찾아가서 손님을 가장해 여자 종업원에게 술값을 물어보니 “1인당 70만 원인데 여기에는 여성 접대부 한 명을 술자리에 앉히는데 10만 원. 이른바 2차 즉 성매매를 하면 1인당 30만 원이 추가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뉴스타파는 2012~2013년 기자 접대비 상위 10개 언론사 편집국장과 보도국장 등에게 공문을 보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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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STX로부터 접대 받은 사실을 인정하는 언론사는 없었다. 매일경제 측은 자료의 신뢰도를 문제삼았다. 매일경제 손현덕 편집국장은 “산업부장 근무시절 STX 홍보실 임원과 골프를 친 적이 없는데 STX 접대비 내역에 골프를 쳤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 등에서 자료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과 연합뉴스, MBC는 STX 홍보팀 직원들이 다른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해 놓고 언론사 이름을 도용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내놨다. 나머지 6개 언론사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STX 홍보팀에 근무했던 직원들은 기자들을 위해 하룻밤에 수백만 원씩 쓴 거액의 접대가 자주 있었다고 말했다. 전 STX 홍보팀 관계자는 “매일경제 한상대회 때 감사의 표시로 술을 샀다”고 말했다. 이날 결제된 법인카드 사용내역에는 ‘매경 한상대회 현지 기자간담회 초청행사’로 기록돼 있었다.

공교롭게 STX 접대비 상위에 오른 언론사들은 대부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7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직후 연합뉴스는 <김영란법 합헌> ‘밥값 3만원, 장사불가…외식업계 비상‘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다. 매일경제는 다음날 1면 머릿기사에 “김영란법은 한국 언론에 대한 모욕”이라는 김세형 주필 글을 실었다.

김진호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은 “강남 룸싸롱에서 수백만원의 술을 마신다는 것은 취재에 필수적인 과정이 아니고 일종의 길들이기”라면서 “고가의 향응을 받으면서 일하는 게 언론의 자유는 아니다”고 말했다.


취재 : 황일송
촬영 : 김남범
편집 : 정지성
데이터 : 김강민

목, 2016/09/0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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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찰 뇌물수수 사건

1998년 9월, 부산 남부경찰서 강력계 형사 오상훈 씨는 마약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2개월 뒤 돌연 검찰에 체포됐습니다. 그가 검거한 마약사범 손 모 씨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 오상훈 씨 경찰 재직 시절

▲ 오상훈 씨 경찰 재직 시절

손 씨는 자신을 체포한 오상훈 씨에게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카오디오를 대신 팔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손 씨의 사정을 들은 오 씨는 카오디오를 경찰서에 보관하고 손 씨의 지인이 가져가 팔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오 씨가 손 씨의 카오디오를 보관한 것을 두고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봤습니다. 결국 오 씨는 1심에서 징역 8개월,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오상훈 씨는 경찰직에서 파면됐습니다.

그런데 오 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상한 것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오상훈 씨가 검거했던 마약사범 손 씨는 뇌물공여 사건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뇌물을 받은 사람만 있고 준 사람은 없게 된 것입니다.

▲ 현재 오상훈 씨

▲ 현재 오상훈 씨

오상훈 씨는 이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낼 증거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는 결국 2014년 손 씨를 찾았습니다. 오 씨는 손 씨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시 뇌물수수 혐의로 자신을 검거했던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손 씨에게 오상훈 씨를 뇌물죄로 고발하도록 제안했다는 겁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당시 손 씨는 수사검사로부터 형량을 조절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손 씨의 증언을 확보한 오상훈 씨는 2015년 4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재심청구 재판에서 마약사범 손씨가 출석해 위증한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재심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오 씨는 대한변호사협회, 국가인권위, 국민신문고에도 하소연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 증거자료를 찾아 나선 박준영 변호사와 오상훈 씨

▲ 증거자료를 찾아 나선 박준영 변호사와 오상훈 씨

오상훈 씨는 올해 4월 재심 전문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 청구를 위한 증거 수집 중입니다. 오상훈 씨의 재심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정재홍
연출 김한구

금, 2016/09/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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