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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칼럼] 대법원이 민주주의의 무덤을 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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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칼럼] 대법원이 민주주의의 무덤을 파고 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7/20- 10:11
[김종철칼럼] 대법원이 민주주의의 무덤을 파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카카오톡’을 대대적으로 해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7월 16일, 대법원이 전 국정원장 원세훈의 ‘2012년 대통령선거 개입사건’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민일영)의 그 판결은 지난 2월 16일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가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원세훈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뒤 법정 구속한 것을 뒤집은 것이었다. ‘새정치연합 국정원 대선개입 무죄공작 저지특별위원회’는 “우리 국민은 원세훈과 국정원이 지난 정권에서 벌인 범죄행위의 남은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서 국민의 법정, 진실의 법정에서는 반드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야당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국정원 댓글부대 무죄에 국민 해킹까지. 박근혜 정권은 헌법 1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정원이 ‘부정선거 행위’를 적극적으로 벌였다는 사실이 2심에서 인정되자 가장 위협을 느낀 당사자가 당시 새누리당 후보이던 박근혜였으리라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시효에 관계없이 박근혜는 ‘당선무효’ 아니면 적어도 ‘선거무효’를 인정하라는 주권자들의 요구에 부닥칠 것이 명백하다. 2012년 대선 직후 20만명을 훨씬 넘는 시민들이 ‘대선무효 소송’을 제기한 뒤 대법원이 2년이 넘도록 재판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이 아직도 쟁점이 되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인 변호사 박훈은 아직도 대선무효 소송의 재판기일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원세훈이 국정원장으로 있던 시기에 만들어진 ‘국민 해킹 공작’이 보수언론과 일부 지상파방송, 그리고 대다수 종편 텔레비전을 제외한 모든 매체에 대서특필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원세훈에 대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날은 공교롭게도 제헌절 바로 전날이었다. 당연히 “제헌절 코앞에 두고 헌법정신 훼손하는 기회주의 판결”이라는 비판이 시민단체에서 터져 나왔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래 대법원이 ‘삼권 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노골적으로 외면하면서 행정부의 수장인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관련된 과거의 사건들에서 피해자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적은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신독재 시절인 1972년 말부터 1979년 10월 26일 직전까지 저질러진 반인간적·반민주적 사건들에 대한 판결들이었다. 대표적인 몇 가지 경우만 보더라도 ‘양승태 체제’의 대법원이 ‘법과 양심’을 저버리고 ‘박근혜의 친위대’나 다름없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긴급조치 관련 사건들에 대한 판결에서 대법원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완전히 부정하는 행태를 일삼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2년 12월,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74년 4월에 발동된 긴급조치 1호는 ‘위헌이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도 2013년 3월,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헌재의 결정이 나온 지 한 달 뒤인 4월 18일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최고법원과 헌재가 유신독재 시기의 대표적 악법인 긴급조치에 대해 ‘법적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었다. 그러자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 10명을 포함한 1천명 이상의 긴급조치 관련자들이 법원에 재심을 신청해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을 청구한 뒤 민사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명박 정권 시기에는 인혁당 관련자 전원과 민청학련 일부 사람들이 민사배상소송 1심과 2심에서 어김없이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2년 남짓이 지난 2015년 3월 26일부터 참으로 ‘요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법원 민사3부(재판장 박보영)가 대법원 자체와 헌재의 ‘위헌’ 판결을 뒤엎어버린 것이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권력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의 이런 판결이 나온 뒤부터 특히 긴급조치 9호 관련자들이 제기한 국가상대 민사배상소송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1심부터 패소 판결을 받아야 했다. 재판관들은 대법원의 3월 16일 판례에 기대어 ‘박정희의 고도의 정치적 국가행위’를 구실로 패소 판결을 일삼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원고들에게 “당시 고문을 당한 증거를 구체적으로 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1심에서 승소했다가 2심에서 패소한 고은광순(한의사, 사회운동가)은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배상액으로 ‘1원’을 청구한 뒤 이렇게 말했다. “긴급조치를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규정하면 히틀러 치하에서 공무원인 나치 부역자들이 행한 일들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부여하는 셈이다. 독일은 나치 부역자들을 70년이 지난 지금도 추적해 끝까지 책임을 묻고 있다.”

유신독재 시기인 1974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유신독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펼치다 강제해직당한 동아투위 위원 113명의 민사배상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2014년 12월 24일에 내린 판결도 박정희에게 면죄부를 준 대표적 사례이다. 1심과 2심에서는 박 정권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사에 광고탄압을 가하는가 하면 경영진에 압력을 가해 그들을 강제해고 하도록 했다는 진실화해위의 결정(2008년 10월)을 받아들여 손해배상권의 성립을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그것을 깡그리 부정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수많은 언론인들과 역사학자들이 ‘만인의 상식’이라고 확인한 바 있는 사실을 대법원이 무덤 속에 파묻어버린 것이다.

대법원의 수구기득권세력 편들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고법은 2014년 2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낸 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 노동자들이 패소한 원심을 뒤엎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상고심인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지난 6월에 대법원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에서, 항소심이 효력을 정지시킨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합법화해 주었다.

지난 6월 22일 열린 ‘대법원 긴급조치 판결 규탄 토론회’에서 발제와 토론을 맡은 법학전문가들은 법관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5·16이 쿠데타인지 혁명인지의 질문이 국회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대법원은 자신이 이미 ‘위헌 무효’라고 판단했던 긴급조치의 불법성을 새삼 부정해버림으로써 또 다른 친위쿠데타의 결과인 유신체제를 다시금 정당화하고 나선 것이다. (···) 사법부에 대한 미진한 과거 청산의 과오가 이제 양승태 대법원의 과거 회귀라는 또 다른 과거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시나브로 스러져가고 있다.”(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호소하건대,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와 인권을 옹호할 용기가 없으면 차라리 법관이 되지 말라. 그들이 내린 판결로 얼마나 수많은 무고한 자들이 고통을 받았는가. 양심을 판 법관들이여, 정의와 인권을 조롱한 법관들이여, 지옥에 떨어질지어다.”(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병효)

“최고권력자의 요구를 퇴짜 놓았다고 해서 판사를 끌어다 다그치고 고문하고 살해할 만큼 법조인에게 야박한 정권은 이 땅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판사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햄릿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재판을 거부하면 출세 길에 지장을 받을 수는 있겠다. 승진이나 출세를 염려하여 권력자의 편에 귀의한다면 그는 악마의 대리인으로 세상과 자신에게 화를 초래할 것이다.”(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승)

성공회대 민주자료관(관장 한홍구)과 평화박물관(이사장 이해동)은 광복 70주년 제헌절을 맞아 “헌법의 가치를 되새기고 우리 현대사를 왜곡한 반(反) 헌법 행위를 기록하기 위한 ‘반헌법 행위자 열전’을 편찬하겠다”고 밝혔다. 이 열전에는 반민특위 습격사건부터 민간인 학살, 각종 조작간첩 사건 등의 핵심 관계자와 고문 수사관, 고문을 묵인한 검사·판사 등 200~300명이 수록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법조인들 가운데서 과연 몇 명이나 그 열전에 수록될는지 궁금하다. <끝>

 

* 이 칼럼은 <미디어오늘>에 함께 개제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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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7/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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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집회 주최자 대법원 유죄 선고에 대한 입장

10년 동안 진행된 재판 끝에 대법원 유죄 선고

야간 집회‧시위 금지 위헌 등 집회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판결들도 있었지만

집회의 자유‧국민의 기본권 억압하는 종전 판례의 한계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해

 

지난 주 12월 22일(금) 대법원(제3부)은 2008년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약칭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상황실에서 활동했던 안진걸씨(현 참여연대 사무처장/당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에 대해 도로를 부분적·병존적으로 점거하여 행진한 부분과 미리 차벽으로 차단된 도로를 행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미신고 집회 주최와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서는 유죄의 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7도2023 판결). 검찰은 애초에 안진걸씨에 대해 야간집회·시위 주최 혐의로도 공소를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일부위헌 결정으로 야간집회·시위 주최 공소부분은 철회하였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굴욕적인 대미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독재로 회귀하는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100여 일이 넘게 전국 곳곳에서 진행됐다. 서울에서만 매일 수천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주말에는 수십만 명이 넘은 시민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시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차벽으로, 물대포로, 방패로 억압하는 데에만 주력했다. 당시만 해도 야간 집회‧시위가 금지되 있어서 시민들의 항의의 목소리는 물리적으로 막혔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막혀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법원도 2008년 촛불집회 재판을 계기로 헌법상 중대한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옥죄는 야간집회 금지 조항, 도로에서 진행되는 집회·시위에 대하여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한 중한 처벌을 가하는 관행 등에 제동을 거는 전향적인 판결을 여러 차례 내리기도 했다. 

 

특히, 일몰 후의 일체의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0조의 규정으로 인하여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마치고 저녁 이후에야 집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시민들이 모두 범죄자로 취급되고 처벌받았었는데, 안진걸씨의 형사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판부는 이러한 야간집회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였고 헌법재판소는 야간집회 금지는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 것으로(헌법불합치, 헌법재판소 2009. 9. 24. 선고 2008헌가25 결정), 이어서는 일몰 후부터 24시까지의 야간시위 전면금지 조항은 위헌인 것으로(일부 위헌, 2014. 3. 27. 선고 2010헌가2) 결정했다. 2008년 촛불집회가 국민들의 집회의 자유와 기본권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집회·시위는 도로나 광장 등 공적인 공간에서 개최되었고, 헌법 제21조의 집회·시위의 자유는 이러한 도로나 광장 등에서의 집회·시위를 보호하는 취지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일반교통방해죄는 도로를 파괴하거나 도로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교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인데,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를 도로파괴나 장애물 설치행위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장기 10년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는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독일과 일본을 거쳐 계수된 일반교통방해죄 규정이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운용되자, 2006년 법무부에서도 이를 개정하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공안검찰은 일반교통방해죄를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주최 단체들을 중하게 처벌하는 근거로 광범위하게 악용하고 남용하였다. 2008년 촛불집회 주최자 재판과정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러한 일반교통방해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였고, 헌법재판소는 합헌결정을 하면서도 법관의 엄격한 해석을 통해 도로파괴나 장애물 설치로 교통을 불통시키려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직접적인 교통방해의 의도와 현저한 교통방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를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취지를 받아들여 그 뒤 법원도 2008년 촛불집회 재판에서 도로의 일부 차선만 점거하여 행진한 경우는 무죄판결을 하게 되었다. 안진걸씨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부는 경찰에 의해 미리 차벽으로 도로가 차단되어 빈 공간을 행진한 경우에도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함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좀 더 신장시키는 판결을 한 바 있었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무죄판결의 정당성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도로 전차선을 행진하는 대규모 집회·시위에 대해서는(그것이 집회 참가 인원이 도로를 꽉 채울 정도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평화적으로 진행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파괴하거나 장애물을 설치해 고의적으로 불통시키는 행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법리를 고수하고, 야간집회금지 규정에 의해 신고를 하려고 해도 경찰이 집회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던 사정을 무시하고 미신고 집회 주최로 처벌함으로써 지나치게 편의적이었고 기본권 침해를 일삼았던 경찰행정의 입장에만 치우친 판결을 내렸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2008년 당시는 야간집회와 시위가 모두 불법으로 간주되어 원천 금지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집회 주최 측은 야간에 집회를 하겠다는 사실을 경찰에 신고할 방법이 없었다. 즉, 법에서도 금지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경찰은 집회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주최 측이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은 법의 잘못(위헌) 때문이지, 주최 측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에서 전면 금지·처벌하고 있었던 행위(야간시위)라도, 그리고 이것이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주최 측은 신고를 했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불법’의 ‘신고의무’라는 집회 판 불고지죄의 등장이라 할 만하다. 법과 공권력이 아무리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국민들은 불가능한 일을 했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은 실체 없는 가상세계, 발이 지상에 닿지 않는 허공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판단은 정당하지도, 적법하지도 않다. 매우 비현실적이면서 이상한 판결인 뿐인 것이다. 

 

또한, 부패하고 무도했던 박근혜 정권을 국민의 직접민주주의로 무너뜨린 2016~17년의 촛불시민혁명도 위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모두 일반교통방해죄의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에 한참 못 미치는 대법원의 인권의식이나 헌법수호 의지의 결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시민들이 태평로를 촛불을 들고 꽉 채운 것은 둘 다 동일하지만, 2016~17년은 경찰의 행진 금지 또는 제한통고를 법원이 집행정지 함으로써 집회와 행진이 합법적으로 진행되어 일반교통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 반면, 2008년은 야간집회·시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합법적 집회가 아니고, 따라서 일반교통방해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 참가자들도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법이 위헌적으로 야간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원의 집행정지를 받을 여지도 없었다. 합법적으로 할 방안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2008년과 2016~17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에게 하나는 유죄이고 하나는 죄가 안 된다는 것이 사법부의 태도라고 한다면,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일반교통방해죄를 만든 독일이나 이를 계수하여 우리에게 전달한 일본에서는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를 도로를 파괴한 행위와 동일하게 중하게 처벌하는 경우를 상상도 할 수 없는데, 왜 한국의 사법부 안에서는 진지한 입법적 검토와 법리적 검토 없이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를 도로를 파괴한 행위와 동일하게 처벌하려는 무리한 법리가 횡행하는지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의 설명 없이 그냥 유죄가 선언되었을 뿐이다.

 

2008년에서 2017년 말까지 10년 째 진행된 이 촛불집회 사건 재판 시기동안, 2008년 대검찰청 공안부장 시절 촛불집회 처벌을 진두지휘한 박한철 검사는 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퇴임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촛불재판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던 신영철 판사도 대법관 임기를 모두 다 채웠다. 반면, 국민들의 정당한 열망과 항의에 함께 했던 촛불집회 주최자는 2017년 연말 여전히 유죄의 선고를 받고 있다. 이번 2008년 촛불집회 주최자에 대한 대법원의 기계적 유죄 판결은, 결과적으로, 사법개혁이 매우 절실하다는 반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끝.

 

▣ 논평 [원문보기/다운로드]

화, 2017/12/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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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판결이란 무엇인가?

오디오로 듣는 전수안 전 대법관 초청 강연 맛보기

 


특강 후기 자세히 보기 => http://www.peoplepower21.org/Judiciary/1251171

목, 2015/05/0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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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블랙리스트 전면 재조사 즉각 실시해야

보다 명확한 진상조사 없이 제대로 된 개선책 기대할 수 없어


어제(5월 17일) 법원 내부 게시판을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외압 및 법관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판사들의 전국판사회의 소집 요구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언론에 보도된 지 72일이 지나서야 나온 첫 입장표명이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킨 점,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을 향한 사과는 없었다. 또한 재조사 요구에 대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사건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의혹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개선책을 제대로 논의할리 만무하다.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의 물증으로 지목된 기획조정실 컴퓨터,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회의의 참여자, 대법원장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는지 여부 등 재조사가 즉각 실시되어야 한다. 

 

대법원이 실시한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결과는 여전히 많은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다. 조사위원에 외부인사를 참여시켜 보다 투명하게 진상조사를 진행해야 했다. 법원 내부의 이해 관계자인 법관 출신으로만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예상되었던 대로 반쪽짜리에 불과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법관 블랙리스트’의혹의 핵심 물증인 기획조정실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았고, 법원행정처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사법행정권 남용행위에 관여한 최종 책임자 등을 밝혀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법원 인사행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양승태 대법원장이 어떻게 관여되어 있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진상조사위의 결과발표 후 대법원장의 조치 또한 미흡했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모색했어야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가조사 없이 이 사건을 징계위원회도 아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하였다. 이는 지난 2015년 4월부터 법원 내에 설치되어 있는 외부인사들 중심의 법원 감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은 개별 법관의 독립 및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와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법원 내부 조사에 이은 법원 내부 게시판 해명만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사건의 전모를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 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사건에 관여했을 수 있다는 혐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사법행정을 환골탈태하겠다는 약속의 진위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법원은 즉각 외부인사들 중심으로 진상조사위를 재구성하여 전면 재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또한 사법부 신뢰 추락을 스스로 초래한 만큼 대법원장이 직접 공개적인 대국민 사과를 하고 보다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목, 2017/05/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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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위 “정리해고 부당”->1·2심 “경영상 해고 불가피”->대법 “원심이 법리 오해, 파기환송”

한화투자증권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복직의 가능성이 열렸다. 대법원이 한화투자증권의 정리해고가 타당하다고 판결한 원심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이후 3년 6개월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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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대법원 제2부(주심 조희대)는 한화투자증권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정리해고가 타당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던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이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대법원은 특히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과 ‘해고회피 노력’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고(한화투자증권)가 정리해고 조치를 취한 2014년 2월 9일 당시는 이미 감원된 인원이 382명으로 최종 감원목표인 350명을 상회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최종 감원 목표를 상회해 감원한 상황에서 사측이 추가로 정리해고를 했다면, 이는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거나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사측은 정리해고 전후로 정규직 55명, 계약직 59명, 임원 6명을 채용하고 승진인사를 단행하는 한편 일부 부서에 대해서만 성과급 15억원을 지급했다”며 “그 비용지출 규모가 정리해고로 절감되는 비용에 비해 훨씬 크다고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사측이 적절한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못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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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사측의 정리해고가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모두 갖춘 정당한 해고라고 단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정리해고의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및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2013년 12월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직원 35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사측은 희망퇴직 대상자를 선정하고 퇴직신청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노동자 7명이 2014년 2월 정리해고 됐다. 정리해고자 7명은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선 노동자들이 패소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가 맞다”고 판정했다.

중노위 결정은 법원에서 다시 뒤집어졌다. 한화투자증권측은 “중노위 결정을 받아드릴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경영상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는 사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한화투자증권의 정리해고 당위성은 고법에서 다시 심판받게 됐다.

한화투자증권 노동자들을 변호해 온 김선수 변호사는 “사측이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않고, 꼭 해고를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정들이 있었음에도 해고를 한 것에 대해 1·2심에선 너무 가볍게 판단한 반면 대법원에서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했다”며 “고법에서 다시 심리를 하겠지만, 이미 대법원에서 사측이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만큼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화투자증권 측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 판결문을 받아 보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어떠한 결정도 한 게 없다”고 밝혔다. 앞서 한화투자증권 측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2013년 회사의 누적적자가 1500억 원에 달해 긴박한 경영상 위기였으므로 당시 정리해고는 부당해고가 아니다”고 답한 바 있다.

당시 구조조정의 책임자였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도 지난 2월 ‘주진형의 경제민주화’라는 팟캐스트에서 “한화투자증권의 구조조정은 해야 되는 일이라서 한 일이다. 한 번도 악역이라 생각한 적 없다”며 “구조조정을 악마시, 죄악시하는 사람은 (월급) 상위 몇%인 노동자들이다. 구조조정은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발전의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주 전 사장에게도 대법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 2013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당시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대표이사

▲ 2013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당시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대표이사

앞서 뉴스타파는 한화투자증권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고졸직원의 절반 가량을 채용한 지 1년 만에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해고하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을 모두 정리해고 했다고 보도했다. 또 경영상 이유로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면서 김승연 회장 가족이 100%지분을 보유한 총수일가 기업에는 지난 2011~2013년 적자규모에 맞먹는 1300억 원의 일감을 몰아주고, 정리해고 직후 홍보팀, 인사팀 등 일부 부서에는 15억의 성과급을 지급, 경영상 위기가 맞는지 의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금, 2017/06/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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