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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새로운 나라는 철저한 단죄와 과거 청산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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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새로운 나라는 철저한 단죄와 과거 청산에서 시작

익명 (미확인) | 화, 2017/04/18- 12:04

새로운 나라는 철저한 단죄와 과거 청산에서 시작

법의 심판대에 오른 박근혜게이트의 주범들
우병우 불구속과 SK 등 일부 재벌 불기소는 수사의 오점이자 한계

 

어제(4/17) 검찰이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등 18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결국 불구속기소했다. 이로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들이 모두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요구했던 새로운 나라는 헌법파괴와 국정농단의 범죄자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적폐를 비롯한 과거에 대한 청산에서 시작된다. 법원은 이러한 국민적 열망과 요구에 마땅히 부응해야 한다.

 

검찰은 관련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변명일 뿐이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가 연관된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우려대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뇌물을 약속한 SK 최태원 회장 등 일부 재벌 총수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재벌 봐주기 수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검찰 역시 새로운 정부에서 청산과 개혁의 대상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1차 수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진실은 다 밝혀지지 않았다. 특검과 검찰의 압수수색 실패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직무유기 혐의는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다.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광범위한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이뤄졌다 할 수 없다. 새 정부 출범이후 특검 등 추가 수사는 불가피하다. 20여일 이후 들어설 새로운 정부는 국정농단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과거 청산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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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2월 27일 최종변론을 끝낸 뒤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한 평의를 시작한다. 대통령 파면이냐? 탄핵청구 기각이냐? 뉴스타파가 평의에 들어갈 8명 재판관들의 과거 판결성향과 이번 박근혜 탄핵심판의 증인신문에서 보여진 태도를 분석한 결과 탄핵심판의 향배는 세 명의 재판관들에게 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 과거 판결 보수성향 – 증인신문 시간 확연히 적어

뉴스타파는 박근혜 탄핵심판이 시작된 뒤 열린 3차례 준비기일과 16차례 공개변론을 법정에서 지켜봤고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출석한 증인은 모두 25명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재판관들의 신문 태도에서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증인이나 대리인단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재판관이 있는 반면, 거의 침묵을 지키는 재판관들도 있었다.

뉴스타파는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15차례의 변론 동영상을 바탕으로 재판관 직권질문 시간에 개별 재판관들이 한 질문 시간을 하나하나 확인해 봤다. 박한철은 소장, 이정미는 소장대행, 그리고 강일원은 주심재판관으로 발언 기회가 많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재판관들과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머지 6명 재판관들 사이에서는 3대 3으로 질문시간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이진성, 안창호, 김이수 재판관의 질문시간은 모두 1시간을 넘겼다. 반면,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의 경우 세 명의 질문시간을 다 합쳐도 30분 정도였다. 특히 조용호 재판관의 질문 시간은 2분에 불과했다. 직권질문 시간의 많고 적음으로 박근혜 탄핵심판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신문 태도에 뚜렷한 경향성이 나타난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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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이들 재판관들이 과거 판결에서 어떤 의견 다양성을 보였는지도 살펴봤다. 개별 사건마다 재판관들이 공개한 위헌과 합헌의견을 바탕으로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이 서로 얼마나 유사한가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이용했다.

우선 현재의 재판부가 다룬 사건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모두 1,631건이었다. 그 결과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을, 김창종, 조용호, 서기석, 안창호 재판관이 보수 성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한철, 이정미, 강일원 재판관은 중앙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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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사건 중 언론보도가 이뤄진 사건 80건을 선별해서 같은 방법으로 다시 분석했다. 사회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사건의 경우 판결 성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판결 성향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양 끝에 있던 재판관들이 중앙으로 모이는 양상 속에서 조용호와 김창종 재판관은 여전히 보수 성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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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심판에서의 신문태도와 과거 판결성향 결과를 종합하면 신문에서 질문 시간이 매우 적었던 3명의 재판관은 과거 판결성향에서도 서로 비슷하게 보수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지명했던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의 성향은 어느 정도 예상됐었지만 대법원장 추천인 김창종 재판관은 의외의 결과였다.

법조계에선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탄핵 반대, 즉 소수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재판관 임명구조 상 대통령이 지명하거나 여당이 추천한 재판관의 경우 대통령 친화적인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평의에서 “탄핵사유 쟁점 별로 또는 전체에 대해 탄핵반대 의견을 내는 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4년 노무현 탄핵심판에서 탄핵에 찬성한 재판관은 3명이었다. 권성, 이상경, 김영일 재판관으로 권성과 이상경은 당시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추천한 재판관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탄핵사유 포함될까?

박근혜 탄핵심판이 시작된 후 재판부가 대통령 측에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대통령이 직접 소명하라는 것이었다. 대통령 측은 ‘완벽한 대답을 내놓겠다’며 시간을 끌다가 3주 만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답변서에는 각종 보고 시각만 나열돼 있는 등 청와대 홈페이지를 답습한 수준이었다. 재판부는 보고 당사자와의 통화내역 등 추가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 측은 보완 자료를 내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시간을 끌다가 추가자료는 없다며 입장을 바꿨다.

대통령 측은 처음부터 세월호 당일 행적은 탄핵사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명권 침해’ 쟁점이 탄핵사유에 해당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2월 22일 첫 준비기일부터 재판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을 규명하는데 꾸준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이수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할 일을 다했다”고 주장한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차장에게 ‘대통령이 적어도 상황실에는 나오셨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판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머지 쟁점은 세 가지였다.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과 ‘권한 남용’, 그리고 ‘세계일보 언론탄압’이었다. 이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권한남용’ 쟁점은 증거조사가 충분히 이뤄져 박근혜 탄핵의 주요 근거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연전락’에 단호 대처… 결정문 작성 들어간 듯

그 동안 대통령 측의 핵심 전략 중 하나는 탄핵심판을 최대한 길게 끄는 것이었다. 법정 안에서 돌출행동은 물론 대규모 증인신청과 색깔론, 그리고 음모론 등을 제기해왔다. 이같은 전략은 증인신문 마지막 날인 2월 22일까지 이어졌다. 대통령 측은 이날 20명이 넘는 대규모 증인을 신청하는 데 이어 강일원 주심재판관이 국회측 수석대리인 같다는 막말과 함께 재판관 기피신청까지 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재판부는 이미 결정문 작성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탄핵심판의 주심을 맡은 주선회 전 헌법재판관은 공개변론이 끝나기 전부터 이미 결정문 작성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관들이 초안을 잡은 결정문을 서로 토론하며 수정하고, 재판관 평의에서 수정본에 대한 의견을 받아 다시 고치는 과정을 거치며 밤샘 작업을 했다고 한다.

노무현 탄핵심판 때는 최종변론 2주 뒤에 선고가 이뤄졌다. 이번에도 최종변론 2주 뒤인 3월 13일까지는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2004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모든 재판관들이 자신의 의견을 공개해야 한다. 대통령 박근혜의 운명, 나아가 대한민국의 운명은 8명 헌법재판관의 결정에 달렸다.


취재: 김강민 임보영 최문호 최윤원 연다혜 이보람
촬영: 신영철 정형민 김남범 김기철 김수영 최형석
편집: 윤석민
내레이션: 조경아

금, 2017/02/2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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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해요.

2년 전 42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숨진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고 김혜선 과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영화평론가 이안(필명) 씨에게 남긴 말이다. 이 씨는 그가 손을 꼭 잡으며 “죄송하다”고 말한 뜻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의 의미는 김 과장의 사망 후, 한 문체부 고위 공무원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김 과장과 이안 평론가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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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문체부와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사람”

이안 영화평론가는 9,473명의 이름이 적힌 문체부 블랙리스트에 세 차례에나 이름이 오른 문화예술인이다. 이 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지지선언, 야당 정치인 지지선언 등에 참여한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씨는 평소 사회문제를 영화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칼럼을 써 왔다. 당연히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지지선언 등에도 서명을 했다. 그 결과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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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명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이 적힌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드러난 건 지난해 10월 경. 하지만 이 씨는 이미 그 이전부터 문체부 내에 블랙리스트 형태의 문건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 4월이었어요. ‘너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는 사업이나 문체부에서 하는 사업은 지원해봤자 안 될거다’라는 이야기를 그때 이미 들었어요. 블랙리스트 문건이 나오기 훨씬 전이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이 최초 작성된 시점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6월 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도 특정 문화예술인을 배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 형태의 관리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같은 사실을 고 김혜선 과장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씨는 2014년 4월, 자신이 프로그래머로 참여하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정부 지원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당시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소속이었던 김혜선 과장을 처음 만났다. 이명박 정부 이후 줄어든 영화제 지원금을 다시 늘려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김 과장은 며칠 후 “영화제 지원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과 함께 이 씨에게 “문체부 산하의 영화진흥위원회 업무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김 과장은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이 씨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로 김 과장은 연락이 없었다.

“이력서를 보내고 잘 받았다는 연락까지 왔었는데, 그 뒤에 연락이 없더라고요. 아마 제 이력서를 검토한 결과 문체부 파트너로 일하기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나 생각했죠. 이명박 정부 때부터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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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쯤 연락이 끊겼던 김 과장은 이 씨가 참여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수척한 얼굴이었다. 김 과장은 이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다시 1년쯤 뒤, 이 씨는 김 과장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마음이 아팠던 이 씨는 김 과장에 대한 추모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을 읽은 문체부 고위 공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씨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문체부 고위 공무원이 그 글을 보고 저한테 연락을 해왔어요. 김 과장이 생전에 저와 관련해 했던 말이 있다면서요. 김 과장이 제 이력서를 받고 같이 일을 해보려고 했다가 너무 놀라서 자기한테 와서 ‘이분은 도저히 우리가 하는 어떤 일에도 같이 할 수 없는 데에 이름이 올라있는 분이에요.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파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죠?’라며 미안해 했다는 거예요.

그 고위공무원은 이 씨에게 “무슨 글을 그렇게 써서 아무 일도 못하게 했느냐”는 핀잔을 덧붙였다. 그동안 사회비판적 시각으로 영화 칼럼을 써온 것이 문체부와 일할 수 없는 이유가 됐던 것이다. 1년 전, 영화제 개막식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죄송하다”고 말했던 김 과장의 속 뜻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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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알았어요. 김 과장은 이미 그때 모종의 서류를 봤던 거구나, 그래서 내 이력서를 받고는 연락을 못 했던 거구나.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던 거구나. 아, 그 안에서 얼마나 마음이 볶였을까… 그렇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건은 좀 더 철저하게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 조금 더 철저하게 따져봐야지만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겪었던 고초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돌아가신 분이 마음 아파했던 것도 풀리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조윤선 장관 등 책임자들이 전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데, 그걸로 고통받은 공무원이 실제 있잖아요? 제가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제대로 책임자 처벌이 되서 가슴 아프게 돌아가신 분의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기 때문이예요.

“실행하고 파기하라” 청와대 지시를 따라야만 했던 실무 공무원들.

김 과장과 같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공무원은 한두 명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를 최초로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문체부 공무원 여러 명이 자신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문체부 공무원들) 다들 힘들어했고요. (위에서) 시키니까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거 알죠. 청와대에서 문체부에 문건 내려보낸 다음에 좀 있다가 ‘그거 파기하세요’ 라고 시키고, 그리고 흔적 남기지 말라고 시키고, 이렇게 일을 해왔단 말예요. 떳떳하지 못한 일인 걸 아니까 그렇게 시켰겠죠. 그런 일을 해야했던 공무원들은 괴로웠을 거고요. 내부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이 결국은 파기하라고 해도 어떤 때는 했다가 어떤 때는 갖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게 결국 특검에 간 거예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블랙리스트의 몸통으로 지목한 유진룡 전 장관도 지난 23일 특검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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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에서 공무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블랙리스트)를 담당하던 직원들이 심지어 저를 만나 울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호소한 적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건강 해치니까 빨리 요청을 해서 다른 자리로 옮겨라 했더니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피하더라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가 양심에 어긋나서 하기 싫은 일을 다른 누구한테 맡기겠느냐”라며 울더라고요. 그 후임자도 그렇고. 그런데 그렇게 소신을 억지로 어기게 시킨 사람들은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요.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는 시키는 대로만 하라’라고 공공연하게 대놓고 했습니다.”

결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그 명단에 들어있는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 뿐만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일했던 문체부 공무원들의 양심까지 옥죄어 왔다. 현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종덕 문체부 전 장관, 정관주 전 차관 등이 구속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김종 전 차관 역시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승마계 비리 의혹을 조사한 문체부 공무원 2명의 옷을 벗기는데 일조한 만큼 넓은 의미로는 ‘체육계 블랙리스트’ 연루 혐의를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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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전현직 장차관급만 4명이 일거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문체부는 지난 24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결국 블랙리스트의 최고 책임자일 수밖에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을 시인하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문화예술인들과 부당한 지시로 양심에 반한 행동을 해야 했던 수많은 공무원들의 상처는 쉽게 씻겨지지 않을 것이다.


취재 : 홍여진, 김성수, 송원근
촬영 : 김남범, 김기철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삽화 : 김용진

수, 2017/01/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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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한 중소기업을 위해 KT와 SKT, 포스코를 돌아가며 이권 청탁을 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가 확보한 검찰 수사기록에서 확인됐다. 이 중소기업 대표는 공공기관 직원의 인사문제까지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청탁을 이행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를 받아 하던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지난 2015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은 KT에 피어링포탈이라는 회사의 기술을 쓸 수 있도록 알아보라고 안종범 수석에게 지시했다. 피어링포탈은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로 연 매출이 10억원 가량 되는 중소기업이다.

안종범 “중소기업 대표, 전화 기다렸다는 느낌”…비선 라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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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수석은 대통령 지시를 받자마자 이 회사 대표 한 모 씨에게 연락했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시대로 이 회사의 기술을 전해 듣고, 황창규 KT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피어링포탈를 소개했다. 검찰 조사에서 안 전 수석은 한 모 씨가 “자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비선 라인이 박 대통령에게 청탁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고, 안 전 수석은 이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안 전 수석의 보고를 들은 박 대통령은 같은 통신사인 SKT에 부탁해 볼 것을 다시 지시했다. 이에 안 전 수석은 이번에는 이형희 SKT 부사장에 전화를 걸었다. 이후 안 전 수석은 한 모 씨로부터 SKT와 관련된 문자를 받았다.

SKT 관련해서 말씀드립니다. 2주전에 SKT기술원장과 미팅을 하고 어제 실무 미팅을 가졌습니다. SKT에서 관심도 있어하고 일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서둘러 진행하지는않은 듯 싶습니다. 괜찮으시면 SKT에 말씀을 한번 넣어주시면 조속히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 4. 30, 피어링포탈 한 모 씨가 안종범 전 수석에게 보낸 문자
오늘 SKT 실무자와의 통화에서‘수천만원짜리연구과제 하나로 마무리하자’는 언질을 받았습니다. 과거 저희가 프랑스나 일본 회사와 공동 연구를 한 저희로서는 이 수준의 개발은 20~30억원 수준의 규모를 기대하였습니다. 어렵게 말씀도 해주셨는데 이렇게 진행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스럽습니다.
2015. 6.1, 피어링포탈 한 모 씨가 안종범 전 수석에게 보낸 문자

SKT 측이 제시한 수천만 원에 만족할 수 없어서 20, 30억 대의 계약 주선을 사실상 안 전 수석에게 요구한 것이다. 결국 SKT와의 거래도 성사되지 않자 안 전 수석은 이제 황은연 포스코 부사장에게 연락했다.

이 어이없는 청탁 과정에서 안 전 수석과 한 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문자를 주고받았다. 주로 한 씨가 “도와달라”는 내용이라면 안 전 수석은 “처리하겠다, 돕겠다”는 문자다. 청와대 수석이 한 중소기업의 해결사로 나선 듯한 모습이다.

더구나 한 씨는 자신의 이권 뿐만 아니라 한 공공기관 직원의 인사문제도 청탁하게 된다. 한 씨는 “말씀드린 임 모씨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혹시 말씀해 주셨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제가 폐가되는 청을 드린 것인지 궁금해서 연락드린다”고 안 전 수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에 안 전 수석은 “다시 알아볼께요. 부탁은 해 두었는데”라고 답했다. 안종범 전 수석은 검찰에서 “한씨를 만나거나 한씨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들은 대통령 지시를 받아 하던 과정에서 이루어 진 것임을 말씀드린다”고 진술했다.

검찰 “박근혜, 최순실 지인 회사 도우려 다국적기업에도 손 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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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패턴은 또 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초등학교 동창 부모 회사인 케이디코퍼레이션에 이권을 챙겨줄 때도 비슷했다. 최 씨가 정호성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기업의 청탁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검찰 수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3월 최순실 씨는 케이디코퍼레이션이 로열더치셸이란 네덜란드 회사에 납품할 수 있도록 정 비서관을 통해 네덜란드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대통령에게 청탁을 넣었다. 또 그해 11월 네덜란드 국왕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같은 요구를 했다. 청탁을 위해서 해외 정상회의든 외국 정상 방문이든 기회를 가리지 않았다.

케이디코퍼레이션은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집요한 챙기기를 통해 결국 2015년 2월 현대차와 10억 원대 납품 계약을 맺는다. 이후 최순실 씨는 케이디코퍼레이션 측으로부터 천만 원대 명품 가방과 현금 4천만 원을 2차례에 걸쳐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검찰 조사 결과 최순실 씨는 명품 가방을 받고 며칠 뒤 해당 매장에 찾아가 백 여만 원을 더 주고 다른 가방으로 바꿔간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 강민수
편집: 윤석민

월, 2017/01/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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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17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다. 이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해 10명의 증인이 특위로부터 위증으로 고발 조치를 당했다.

지난해 11월 17일 출범한 특위는 지난 15일 활동을 종료하기까지 2달 동안 7번의 청문회와 2번의 현장조사, 2번의 기관보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으로 골머리를 앓는가 하면 출석한 증인들마저도 시종 모르쇠와 부인으로 일관해 진상규명에 난항을 겪었다.

청문회장에서 딱 걸린 증인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로 17일 피의자로 특검에 소환된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모두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모르쇠로 일관하다 증언을 번복한 바 있다.

조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문체부 국정감사와 11월 국조특위 1차 기관보고 때 줄곧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모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9일 열린 7차 청문회에서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계속 추궁하자 결국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

김 전 실장도 지난해 12월 2차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계속 부인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을 공개하자 돌연 말을 바꿨다. 영상에는 당시 박근혜 캠프 법률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전 실장이 최 씨와 관련된 의혹이 언급되는 현장에 참석해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까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며 말을 바꿨다.

특검 칼날에 줄줄이 구속

지난해 11월 1차 기관보고 때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은 이후 특검 조사에서 국민연금에 찬성을 종용한 사실을 자백했다. 특검은 지난 16일 문 전 장관을 구속기소 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2월 4차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블랙리스트 존재와 관련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11월 1차 기관보고 때 출석한 정 전 차관도 마찬가지다.

청문회 때 정유라 씨의 부정 입학에 관여한 적 없다고 부인한 남궁곤 전 이화여대 입학처장도 구속됐다. 정 씨의 입학과 학사 특혜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경숙 전 이화여대 학장도 청문회에서 관련 의혹에 대해 전부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구속됐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2월 열린 1차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과 정유라 그리고 삼성의 관계에 대해 “몰랐다,” “보고받지 못했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국조특위가 고발 조치한 10명의 증인들이 청문회 당시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어떻게 탄로 났는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70120_link


취재: 이유정, 송원근, 박중석
영상: 김기철, 김수영
편집: 정지성
개발: 김슬
디자인: 하난희

금, 2017/01/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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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의 전직 검사 마티 스트라우드가 한 신문사에 사과문을 보냈다. 30년 전 자신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수사로 3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출소한 뒤 병마와 싸우고 있던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 미국 사회는 박수를 보냈다. 권력기관으로만 알고 있던 검찰의 반성과 사과. 우리에겐 그저 낯선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사법피해자를 찾아간 미국 전직 검사 마티 스트라우드(왼쪽)

▲ 사법피해자를 찾아간 미국 전직 검사 마티 스트라우드(왼쪽)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은 한마디로 혼란과 불신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사건이 의혹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검찰이 있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쥔 대한민국 검찰은 자의적인 판단으로, 때로는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수많은 사건을 조작하거나 왜곡했다. 수많은 간첩조작사건, 국정원 선거개입사건,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초래한 검찰 수사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잘못된 수사임이 드러난 뒤에도 검찰은 반성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재심사건을 주로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검찰개혁을 한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잘하겠다는 얘기죠. 그런데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없는 검찰개혁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박준영 변호사
▲ 정연주 전 KBS 사장

▲ 정연주 전 KBS 사장

정연주 전 KBS 사장.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만인 2008년 8월, 사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감사원, 국세청이 동원된 각종 조사에 시달렸던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직후 검찰에 체포됐다. 겉으로 드러난 혐의는 국세청을 상대로 한 세금환급 소송을 포기해 KBS에 천억원 대 손해를 끼쳤다는 것. 하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공영방송 KBS를 장악하기 위한 정치권력의 공작이었다. 검찰은 정치권력의 요구에 철저히 복무했다.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감사원이 해임의견을 통보한 지 6일 만에 이명박 대통령이 해임을 결정했고, 다음날 검찰은 정 전 사장을 체포했다. 그러나 이후 4년 간 진행된 재판에서 검찰은, 단 한번도 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 법원은 정 전 사장에 대해 1,2,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정 전 사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되자마자 바로 KBS 이사장을 불러서 ‘정연주 사표 받아내라’고 압박을 했습니다. 정연주와 KBS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릴수가 없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감사원 특별감사가 이뤄졌고, 동시에 정치검찰이 저에 대한 배임죄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모두 무죄가 났지만 수사검사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명동성 씨는 퇴직 후 대형로펌 대표가 됐고, 수사책임자였던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여당의 국회의원이 됐다. 반면 정 전 사장은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그 사건은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재판받으러 가는 서초동이 정말 싫었어요. 지금도 서초역을 지날 때면 아픈 기억이 자꾸 납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수사검사

▲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수사검사

지난 9년 간 정치검찰의 폐해는 일일이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참여연대가 매년 발간해 온 ‘검찰보고서’에는 그 사례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민간인 사찰사건 부실수사, 피디수첩 광우병 사건,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태광실업 수사, 한명숙 전 총리 사건…하나같이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사건들이다.

정치검찰의 칼은 일반 시민도 가리지 않았다. 일명 미네르바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1월, 20대 남성 박대성 씨가 검찰에 체포됐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썼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사문화된 전기통신법을 통원해 박 씨를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후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그에게 적용된 전기통신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뒤 법조문 자체가 사라졌다.

사건 이후 박 씨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고, 결국 잠적했다. 변호인과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 사건을 거치면서 박대성씨는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박찬종 변호사/ 미네르바 박대성 변호인

반면 박 씨를 수사한 검사들은 승승장구했다. 수사와 기소 책임자였던 김수남, 최재경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각각 검찰총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에 올랐고, 기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천성관 씨도 검찰총장 후보자로 영전했다. 그럼 당시 정연주 전 사장과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지금 어떤 입장일까.

뉴스타파는 두 사건에 모두 관여한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을 찾아가 입장을 요구했다. 최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로 재직하며 정연주 사장 사건 수사를 책임졌고,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의 초기수사를 맡았던 인물. 그러나 정식인터뷰를 거절한 최 의원은 보좌진을 통해 “할말이 없다”는 말만 전했다.

▲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 수사검사

▲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 수사검사

권력의 눈치에 따라 검찰이 전광석화 같이 움직인 사건은 또 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의 뇌물죄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안 전 청장은 2009년 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을 폭로한 뒤 검찰수사를 받고 구속됐다. 일명 도곡동 땅 실소유 논란 사건이다.

도곡동 땅 문제는 BBK 주가조작 의혹과 함께 2007년 대선 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적 약점으로 꼽혀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소유자라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됐지만, 검찰은 ‘혐의없음’ 결정을 내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을 도왔다. 도곡동 땅 문제는 BBK사건과 하나로 엮여 있다.

주가조작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투자자문사 BBK에는 삼성생명, 대양이엔씨 등 여러 기업과 개인이 투자했다.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곳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씨가 대주주였던 주식회사 다스(190억원)였다. 그런데 BBK에 투자된 다스의 자금은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 씨가 1995년 포스코건설에 매각한 도곡동 땅 매각대금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도곡동 땅은 1993년부터 이 전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불거졌던 바로 그 땅이었다.

만약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BBK 투자금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임이 확인되는 셈. BBK의 주가조작 책임을 이명박 대통령이 고스란히 져야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만해도 BBK를 본인이 설립한 회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선에 나선 뒤엔 BBK와 도곡동 땅 모두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안원구 전 청장은 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는 증거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 전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 전 청장은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2007년도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 때 도곡동 땅을 산 것으로 되어있는 포스코건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는데, 그때 도곡동 땅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고 적힌 문서를 보게 됐습니다. 조사를 담당한 직원들이 제 방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보안을 유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드커버 안에 서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드커버 표지에 도곡동 땅 번지수가 몇 개 적혀 있었고, 그 밑에 ‘실소유주:이명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검찰이 안 전 청장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에 착수한 건 안 전 청장이 이 서류를 봤다는 사실이 국세청과 청와대에 알려진 직후였다. 안 전 청장은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려 한다고 국세청과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를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검찰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은 나를 긴급체포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안원구 전 청장으로부터 2009년 당시 안 전 청장이 쓰던 개인수첩을 입수했다. 안원구라는 이름이 선명한 이 수첩에는 당시 그가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안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도 다수 확인됐다. 다음은 수첩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6월 14일 국세청 간부 안OO과의 대화내용

국정원(국정원이 청와대에 보낸) 자료에 안원구가 BBK와 도곡동 땅문제를 조사했고, 그 내용으로 지금 정부를 협박한다고 적혀있다. SD(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나 국정원장을 움직일 수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국세청을 떠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6월 18일 국세청 간부 A 씨와의 전화통화 내용

지금이라도 사표내라. 더 이상 국세청이 안원구를 도울 수 없다.

2009년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수첩

당시 검찰은 안 전 청장이 세무조사 대상 기업들을 협박해 가족이 경영하는 갤러리에서 그림을 사도록 했다며 뇌물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검찰의 뇌물죄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수사검사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수사검사

정치수사 의혹이 계속 제기됐지만, 안 전 청장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검 차장에 올랐고, 김기동 특수1부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내내 승진을 거듭한 끝에 현재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과거 대검 중수부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안 전 청장은 모든 것을 잃었다.

긴급체포돼 조사를 다 받은 뒤 피의자신문조서에 도장을 찍을 때였어요. 수사책임자였던 김기동 특수1부장이 누구와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엮었다’라고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분명 제 사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고 믿습니다. 본인들 수사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묻고 싶어요. 그 때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왜 수사를 했는지…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뉴스타파는 안 전 청장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김기동 단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다. 전화를 걸고 수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대검찰청 대변인실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보낸 뒤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개인수첩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개인수첩

인권을 무시하고, 권력과 타협한 정치검찰의 모습은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3년 전, 국정농단사건의 예고편이었던 정윤회 문건 파문을 무혐의 종결했던 검찰은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이 모습을 드러낸 뒤에도 수사를 주저했고, 핵심 피의자인 최순실을 방치했으며, 검찰 출신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에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수사책임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대상자인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과 돈봉투를 주고받은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검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검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논란이 된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검사들이 하나둘 검찰을 떠나고 있고, 권력에 맞서다 좌천됐던 검사는 화려하게 복귀했다. 검찰개혁의 목소리도 그 어느때보다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수뇌부 한두 사람이 바꾼다고 검찰이 정상화될 수 없다는 것. 과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이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한다고 검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검찰을 신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지고, 또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받을 때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준영 변호사
목, 2017/07/1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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