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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98] 개헌의 핵심은 '자치'여야 한다 : 분권과 자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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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98] 개헌의 핵심은 '자치'여야 한다 : 분권과 자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

익명 (미확인) | 목, 2017/03/23- 14:51

개헌의 핵심은 '자치'여야 한다

분권과 자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

 

김종욱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국민 선택의 실패'와 시민의 책임을 확인하는 정치 과정이었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해야 했으나, 동시에 그 국민은 민주주의와 헌정을 지키는 주체임도 확인했다.


왕이 사라진 공화국의 국민은 그들의 손으로 선택한 대리자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연인원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토요일마다 광장으로 나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으니, 그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가슴 아픈 고백을 해야만 했다. 도대체 파악되지 않는캐릭터를 가진 대통령과 제왕적 권력이 만나 벌어진 이 답답한 해프닝은 탄핵 인용으로 귀결되었고, 이제 전직 대통령이자 피의자 신분이 된 탄핵 당사자는 삼성동에 칩거하며 자신의 무죄를 강변(强辯)하고 있다. 범죄 여부는 국민이 그토록 신뢰하지 않던 검찰과 법원에 맡겨두도록하자. 그 이유는 민심의 균형추가 무너진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자신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중대한 배신'을 통해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탄핵 인용 이후 개헌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집권당이 될 개연성이 높아진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하고, 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개헌안 국민투표를 5월 9일 대통령 선거일에 동시에 하자고 합의했다. 개헌의 시기와 내용을 중심으로 정치적 갈등과 국민적 분열이 시작되었다. 일방은 권력을 나눠 먹으려는 정략적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다른 일방은 제왕적 권력을 축소해서 재발을 방지하자며 빠른 개헌을 주장한다. 뭐 시점이야 올해 대통령 선거일이든 내년 지방선거일이건 간에, 그것이 국민적 합의 속에서 진행되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마도 이 논쟁은 헌법 개정 내용은 고사하고 시기 논쟁만 벌이다가 날을 샐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첫째, 제왕적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대립하면서 언제까지 국민을 분열로 몰고 갈 것인가? 둘째, 모든 문제를 대통령 개인의 잘못 탓으로 돌린다면, 매번 실패하는 유권자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셋째, 거대한 정치 변동이 지나고 난 이후, 대한민국의 변화를 차기 대통령의 통치에 맡겨 놓으면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개헌 문제에 대한 민주적 토론을 전개해야한다.


분권형 개헌은 다양한 정당의 연합정치 실현과 이념이 다른 정당의 '동거정부'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여러 정당의 연합정치와 동거정부의 경험은 토론과 협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다. 이미 입헌군주제나 내각제를 채택한 국가가 아니라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오죽하면 유럽에서 미국의 대통령제는 늘 공포, 멸시,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왕정복고와 독재적 권력 집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국 대통령제는 남북 갈등이라는 지역 대립, 연방제도에 의한 특유의 견제 장치 등 우연적이며 특수한 정치 지형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미국 특유의 정치제도인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권력 획득을 위해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아귀다툼을 하는 '싸움질'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분권형 개헌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서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불행한 대통령'이었다. 만약 이것이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면, 공화국 주권자인 국민은 매번 '나쁜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시원(始原)도 유권자인 국민이다. 이도 아니라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여야 정당정치와 입법부의 무능 때문이다. 즉 이 정국은 국민 선택의 실패이며, 총체적인 정치 기능의 마비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사라져야 할 것은 박근혜 전(前)대통령만이 아니라, 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방치한 정당체제를 해산하거나 정치인들 모두가 책임지고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의도 정치'의 종언을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 '87년 체제'가 선택한 헌법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고, 2012년 유권자가 선택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낙마했다. 국민은 탄핵 민심을 통해 문제가 된 대통령을 자연인으로 되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의 문제점을 고치는 것이다.

 

이번 탄핵 정국의 또 다른 핵심적 함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로 집약된다.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의 삶을 제고할 수 있는 '역사적 결절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 핵심인 자치를 헌법 개정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 루소는 자유란 인민의 자치 실현이며, 인민이 자기입법의 실천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라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주의는 자치의 확대였다. <예기(禮記)>에도 자유 평등한 백성들이 임금을 표준으로 삼아 자치하는 '칙군자치(則君自治)'를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치가 실현되는 풀뿌리의 변화, 즉 일상의 민주화가 중요하다. 자본과 행정관료, 지식권력과 법‧제도로 포박된 일상의 식민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치 권력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일상의 민주화는 앞으로 진행될 엄청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진지(陣地)를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의 격랑은 일상을 뒤덮을 것이다. 기술의 급속한 변화와 자본의 공룡화 시대의 도전에 맞서 가정, 일터, 마을, 공동체의 일상적 삶의 공간을 가꾸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도 자치 권력에서 나올 것이다. 잘못된 권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했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의 국민들에게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은 너무도 현명한 조치다. 더 많은 자치권을 획득한 대한국민은 가정, 일터, 마을, 공동체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그래서 자본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공감과 치유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투쟁하기보다는 분권과 자치의 시대로 전진해야 한다. 개헌 논의가 더 필요하다면 토론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대신 이번 대통령 선거의 입후보자들은 정당 또는 개인의 개헌안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거대한 민심을 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 민심은 헌법을 낳고 공론은 법률을 낳는다. 그래서 국민의 공감대를 헌법에 담는 것은 '국민이 곧 국가'임의 천명(闡明)이다.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서 '마마 용서하옵소서'라며 눈물을 흘리던 여성도, 경남 봉화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나라를 걱정하는 남성도, 그것을 애국으로 알고 있는 우리 국민이다. 이제 진짜 권력은 나누고, 국민에게 돌려주자.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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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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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 이전, 이미 민심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박근혜. 뉴스타파는 그가 대통령 후보시절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10가지 주요 공약들과 지난 4년의 행적을 대비했다. 법적 탄핵선고가 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이미 정치적, 윤리적으로 철저히 망가진 대통령이었다.


1. “부패와 비리에 어떤 누가 연루되어 있다고 해도,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제 주변부터 더욱 엄격하게 다스리겠습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상설특검을 통해 즉각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2012.8.20. 새누리당 전당대회, 대통령후보 수락연설

▷ 특검이 적용한 범죄혐의 13개, 특검조사 거부


2. “국민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저부터 대화합에 앞장서겠습니다”
-2012.8.20. 새누리당 전당대회, 대통령후보 당선수락연설

▷ 영남-육법당-회전문 인사


3.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오늘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제 18대 대통령후보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 여러분께 말씀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2012.9.23.기자회견

▷ 국정역사교과서 강행, 한일위안부 합의


4. “저는 민생경제, 특히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는데서 더 큰 위기를 느낍니다. 요즘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 하는데, 왜 경제민주화를 하려고 하는가.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경제에는 지금 윗목이 너무 많습니다. 아랫목, 윗목 없이 온기가 골고루 퍼져야 합니다.”
-2012.10.29.골목상권 살리기 운동 전국대표자대회

▷ 자영업 체감경기 사상 최저,삼성등 재벌대기업과 독대이후 각종 지원


5. “예를 들어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 문제만 해도 저는 이것에 대해 100% 공감하는 일입니다.”
-2012.10.22 한국노총

▷ 비정규직 파견법 개정안등 노동법 개악 추진


6.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희생하고 헌신해 오신 분들이 바로 우리 농업인 여러분입니다. 저는 우리 농촌, 우리 농업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2012.9.11 전국농촌지도자대회

▷ 쌀값 폭락 항의차 집회 참가한 백남기 농민 경찰 물대포 맞고 사망


7. “지금, 전세를 살고 계신 분들은 급등하는 전세값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고, 민생정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9.23.집 걱정 덜기 주거정책 발표

▷ 전세값 사상 최대 폭등


8. “약속합니다. 열정과 잠재력만으로 취업이 가능한 세상..”
-박근혜의 정책 약속-취업편(TV광고)

▷ 정유라 이대 특혜 입학,우병우 아들 경찰청 운전요원 선발,청년 실업률 사상 최대


9. “부산 가덕도가 최고의 입지가 된다면 당연히 가덕도가 그 입지가 될 것입니다.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 바라고 계신 신공항, 제가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2012.11.29.부산 유세

▷ 영남권 신공항은 김해공항 확장


10. “제가 이렇게 확고하게 약속을,제가 좀 약속을 잘 지킨다고 이야기를 듣지 않아요. 왜냐면, 함부로 약속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2012.8.2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국민을 위한 약속의 정치’를 내세웠던 박근혜씨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명확한 해명도 하지 못했고, 대통령 임기 5년도 다 채우지 못한 채,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취재:최경영
C.G:정동우
편집:윤석민

금, 2017/03/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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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11시.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시간.

헌법재판소 안과 밖,시민들의 반응을 뉴스타파 카메라가 담았습니다.


취재:신동윤
촬영:김기철,김남범,신영철
편집:정지성

금, 2017/03/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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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7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었습니다.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만장일치로 인용되었습니다.어둠을 빛으로 밝혔던, 촛불의 승리입니다.
 
지난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삼성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은“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는 “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삼성이 잘 되어야 나라가 살지”, “어차피 민중들은 개·돼지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지게 돼 있다”며 헬조선을 만들고 박근혜-재벌체제를 수호해 온 자들의 기만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겨울 내내 한국사회는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헌정유린의 현실에 꽁꽁 얼어붙었습니다.그러나 촛불은 횃불이 되었고 추위를 녹이며 광장을 붉게 수놓았습니다.“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목소리는울림이 되어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역자들을 하나둘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변화의 씨앗이 움트고 있습니다.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는 꿈을 꾸며 촛불을 들어 온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들도, 모든 촛불들에게 “함께 했던 모든 날이 좋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부역자들과 재벌총수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고 박근혜표 노동정책도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위안부 합의 원천무효, 사드배치 철회 등 이뤄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없는 봄’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따뜻한 봄볕 아래 꽃내음을 맡으며,오늘의 승리를 만끽하고 내일의 승리를 꿈꿉시다. 박근혜-재벌체제가 쌓은 적폐를 청산하고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2017년 3월 10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토, 2017/03/11-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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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에 대한 성주·김천·원불교 입장발표 기자회견

파면된 박근혜의 최악의 적폐, 사드 배치 즉각 중단!
광화문의 민주촛불이 성주 소성리 평화촛불로 이어지길 호소한다


일시 및 장소 : 2017년 3월 11일(토) 오후 2시, 광화문 KT 앞 (주한 미국대사관 앞)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하고 자랑스런 국민의 승리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최악의 외교안보정책으로 꼽히는 사드배치는 강행되고 있으며,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은 이를 제어하고 있지 못합니다. 박근혜 탄핵을 이끌었던 국민의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드 배치 강행은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사드배치는 북핵 미사일 방어에 무용지물이며, 법적 근거도 없이 불법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군사적 효용성도 없고 불법적인 사드배치는 즉각 철회되어야 하며 사드 배치를 추진을 앞장서 왔던 황교안 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도 박근혜와 함께 물러나야 합니다. 

 

이에 성주 군민들과 김천 시민들 원불교 교도들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귀사의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를 요청드립니다.  

토, 2017/03/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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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됐습니다. 8 대 0, 전원일치 결정입니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입니다. 2013년 2월 25일,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1,484일만입니다.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까요?

대통령직 취임부터 탄핵까지 지난 4년 동안 대통령 박근혜의 헌정질서 문란과 국정농단, 법치주의 위반의 행적을 소리꾼 이덕인과 신새봄의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정재홍
연출 박정남
소리 이덕인, 신새봄

금, 2017/03/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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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사고 6주기 전국녹색연합 탈핵공동성명서>  안전과 생명이 우선하는 사회, 탈핵이 그 시작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6년이 흘렀다. 지금도...
토, 2017/03/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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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열린 20차 주말 촛불집회에 서울 광화문 65만 명(주최측 추산) 등 전국적으로 70만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헌법재판소가 어제 내린 탄핵 결정을 자축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된 촛불 주말집회는 약 4개월에 걸쳐 누적 인원 천 6백만 명을 돌파했다.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헌재의 탄핵 인용을 환영하며 “탄핵은 시작이다. 박근혜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집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성과를 자축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는 등 축제의 열기로 가득 찼다.

20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은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외쳤다. 박근혜 정부 아래 벌어진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는 것이다. 특히 재벌총수들의 구속과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연단에 올라 “언론이 여러분의 목소리를 대신 냈더라면 추운 겨울 여러분이 차가운 광장에 나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적폐청산의 출발점이 바로 언론의 개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본집회가 마무리된 뒤 시민들은 “박근혜 구속”과 “황교안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와 총리공관 방면으로 행진한 뒤 광화문에서 대규모 축하 콘서트를 이어갔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은 정기적인 주말 촛불집회는 11일로 마무리하지만 오는 25일과 세월호 3주기 전날인 4월 15일에 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를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탄핵무효를 주장하는 ‘제1차 국민저항운동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인 김평우 변호사는 연단에 올라 “3월 10일은 헌법재판소가 자기 스스로 무너뜨린 사법 자멸의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외치며 헌재해산과 탄핵무효를 주장했다.


취재/김새봄
촬영/정형민
편집/윤석민

일, 2017/03/12-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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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자유한국당 일부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수사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박근혜에 대한 수사는 대선 이후로 연기하라”고 주장한데 이어 대선출마를 선언한 김진 자유한국당 상임고문도 13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 프로그램에 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뤄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고문은 ‘박 전 대통령의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진 이른바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을 예로 들었다.

김 고문은 “지금 (박 전 대통령) 수사를 해서 구속영장을 발부하니 마니 기소를 하니 이런 것들이 만약에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면 1997년에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사건과는 어떤 차이가 있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과 마찬가지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뜻이다.

과연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과 ‘박근혜 국정농단’이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진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좌)은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사건’처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대선 후로 미뤄야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진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좌)은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사건’처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대선 후로 미뤄야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10월. 여당인 신한국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이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360여개의 비밀계좌를 통해 67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다. 며칠 뒤, 강 사무총장은 김 총재가 10여개의 기업으로부터 130여억 원을 수수했다고 폭로했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대선용 기획 폭로로 정국은 후폭풍에 휩싸였다. 때문에 김태정 검찰총장은 이에 대한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 경제 회생의 어려움과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하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결국 대선 이후인 1998년 2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이 사건을 수사했고 결론은 무혐의였다.

당시 김대중은 유력 대선 후보…박근혜는 전직 대통령

사건의 주체가 다르다. 1997년 당시 김대중 총재는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던, 유력 대선 후보였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자, 피의자일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검찰과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다.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은 제보자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여당 사무총장이 직접 폭로한 수준으로 증거 자료가 부족했다. 김태정 검찰총장도 수사 유보 입장을 발표하며 “수사 기술상 대선 전에 수사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이미 검찰과 특검 수사,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통해 혐의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중간 수사 결과에서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관계로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가 있다며 피의자로 입건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또 검찰 수사를 이어받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박영수 특검은 지난 6일,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 삼성전자로부터 433억원 뇌물 수수▲KEB하나은행 본부장 승진 임용 직권남용 ▲KD코퍼레이션 현대차 수주관련 직권남용▲최순실에게 공무상비밀누설 ▲문화계 블랙리스트 지시와 관련 직권남용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헌법재판소 역시 탄핵 사유가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했다.

이미 공범관계에 있는 최순실은 구속됐으며 뇌물공여 혐의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구속 기소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폭로 수준이었던, 1997년과는 다르다.

김진 고문이 선거 영향을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1997년 폭로가 선거에 미친 영향도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비자금 의혹 미미’ 보도를 보면, 비자금 폭로 의혹에도 김대중 후보가 여전히 1위를 달렸다. 그해 대선에서 의혹의 당사자였던 김대중 후보가 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취재:강민수

월, 2017/03/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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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헌법 절차는 끝이 났다. 시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부가 대통령의 잘못된 통치로 그 목적을 상실했다는 판결이 났고, 위임된 주권은 해지되었다. 다수 시민의 의견과 입법부의 판단 그리고 사법부의 결정이 일치했다는 점에서, 결정의 정당성은 확고해 보인다.

탄핵에 반대했던 쪽에서는 서운하겠지만, 필자는 이 모든 과정이 불가피했고 우리가 처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빠른 탄핵 결정이 ‘현실적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결정은 내려졌고, 이제 우리가 돌아봐야 할 일은 이로 인해 향후 한국 민주주의가 안게 될 여러 문제들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탄핵에 반대했던 다수가 나이든 시민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라는 사실만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도 없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감내해야 했고, 가난 속에서 급격한 산업화의 고된 과정을 겪어내야 했지만, 그 뒤 이어진 민주화와 세계화에서도 그들은 왜 늘 열패자의 위치에 있는 걸까. 태극기 집회의 그 험한 말과 행동에 동의할 수 없으면서도 뭔가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도저히 ‘체제의 수혜자’라고는 볼 수 없는 집회 참여자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번 탄핵 결정이 우리의 나이든 세대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청년 문제는 진보가, 노인 문제는 보수가 서로 배타적인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도 돌아보고, 그것이 낳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싶다.

‘나라’라는 언어의 분열도 주목할 문제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나라는 민족주의의 언어였다. 그런데 촛불집회에서 이 말은 민주주의의 언어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게 나라냐!”에서 시작해 “우리가 만들 나라”를 둘러싸고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나라는 ‘동화의 나라’나 ‘신의 나라’ 등의 용례에서 보듯, 좋은 의미로만 사용되는 특별한 정치 용어다. 자기 삶의 평가적 준거가 되는 ‘최선 국가(best polity)’이자 우리가 살고 싶은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를 뜻한다. 향후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민주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기여한 것은 물론 딱딱한 정책적 용어나 기술 관료적 접근을 제어하는 효과를 가졌다는 점에서, 필자는 나라라는 관념이 민주주의의 언어가 된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뒤 태극기 집회에서 등장한 ‘나라’ 관념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이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지켰는데”라며 “종북 좌파에 나라를 뺏길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군복과 성조기는 그 상징이었는데, 이쯤에 이르러서 민족주의와도 상치되고 또 민주주의를 거부할 수도 있는 새로운 나라 관념이 제기됐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 행동주의가 등장한다면 그때 그것은 이런 나라 개념에 순교자론이 결합된 내용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필자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치관에 몹시 불만이 많다. 그는 좌파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목적을 내세웠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의 역사관으로 국민의식을 개조하고자 했다. 의회와 정당을 적폐의 온상으로 여겼기에 통치 기간 내내 적대했고, 집권 세력 안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서슴없이 배신자로 공격했다. 그로 인해 민주 정치는 망가졌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태극기 집회는 그런 ‘좌파 정권 적폐 청산론’에 매달린 시대착오적 대중 동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좌파 정권의 적폐에 맞서 싸우다 패배한 순교자로 호명할 때마다 두렵다. 같은 이유에서 야당이 다른 종류의 적폐 청산론을 앞세우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방법으로도 경제를 더 잘 다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박정희의 경제 발전 신화’를 넘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듯이, 다른 종류의 적폐 청산론을 불러들이기보다는 우리가 정부를 맡으면 민주주의에 합당한 방법으로도 더 잘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음을 말하는 야당이 되었으면 한다. 탄핵이 야당에도 더 큰 책임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데, 그 길은 보수적 적폐를 척결하겠다는 결의를 과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보수보다 나은 진보 혹은 공동체의 발전에 더 잘 기여할 수 있는 진보가 되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314/83309285/1#csidx441a0416351f65ca775938a74f2da3e

화, 2017/03/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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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치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치학자 3인의 목소리
①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3.9)
②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3.15)
③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3.20)

※ 북DB는 ‘문제는 정치다!’라는 주제 아래 정치학자 연속 인터뷰를 준비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부패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기대감이 높아진 요즘. 정치학자들의 식견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쓰여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촉발한 촛불 시위는 결국 대통령 탄핵의 불씨가 됐고, 헌법재판소가 인용을 결정하면 대한민국은 사상 최초로 살아 있는 권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에겐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정치 체제와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책임이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3월 6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 자리 잡은 그의 집필실에서 만났다. 최장집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보적 정치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활자화된 현실이 아닌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기반에 둔 정치 연구를 계속해 왔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등의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노동 현실을 보여줬다. 최근 펴낸 <양손잡이 민주주의>에는 촛불 시위에서 탄핵에 이르기까지 다단하고 복잡한 한국정치 지형에 관한 그의 명쾌한 시각이 담겨 있다.

“나는 세잔이라는 화가를 좋아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풍경 속에 변하지 않는 본질을 그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정치학 연구도 이런 작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집필실이 광화문 근처에 있었기에 자주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는 최장집 교수. 최근 펴낸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17년)의 내용을 중심으로 혼란과 희망이 혼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길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민주주의 자체가 만능은 아냐…정부 잘 운영하는 게 중요”

 

Q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국민들의 태도가 변화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충만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 정당이 정부를 운영하는 동안 민주주의의 가치나 원리를 통해 정치를 보고 발전시키려는 관심이나 분위기가 많이 약해졌다. 이 상황에서 촛불 시위는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도록 했고, 그 결과 시민 의식이 고양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활력과 에너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분출되었다. 한국 사회가 좀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고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에 관심을 갖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Q 2008년 미국산 소고기 파동 때도 대규모의 촛불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2016년의 촛불만큼 강력한 화력을 갖진 못했다. 8년의 시차를 둔 양 촛불집회가 각기 어떻게 다른 성격을 띤다고 보는가?

 

2008년에도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했다. 하지만 당시 이슈는 이른바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즉 이명박 정부의 정책 사안에 대한 반대였다. 당시는 한나라당이라고 하는 보수적 정당이 최초로 집권한 때이기도 했다. 물론 그보다 앞에 있었던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도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따로 설명이 필요하다.

 

두 번의 민주적 정부를 경험한 후 등장한 최초의 보수적 정부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나 원리와 상충하는 정책이 만들어지면서 보수 정부에 대한 항의나 비판이 이 집회가 일어난 하나의 배경이었다. 또 다른 하나의 배경은 노무현 정부가 속했던 정당이 선거에 패배하고 보수 정당이 집권했으니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반격이 촛불 시위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2008년 촛불 시위는 시민참여, 시민정치, 시민이 중심이 되는 운동의 측면이 강했다.

 

그런데 2016년 박근혜 탄핵을 둘러싼 촛불 시위는 성격이 그것과 다르다. 민주주의 규범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면을 보인 현 정부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난 촛불 시위는 상당히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이번 탄핵은 단지 하나의 정책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연이은 보수 정부에게서 나타나는 통치 방식과 정책 내용이 과거 유신 때 경험한 권위주의가 복원되는 걸 느끼게 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 촛불 시위를 통해 과연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Q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단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닌 하나씩 학습해 가는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민주주의에서 ‘주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에서처럼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언어다. 민주주의도 이념의 형태로 이해하기 쉽다. 원래 서양에서 기원전 500년대에 나타났던 민주주의와 서양에서 현대까지 쭉 발전한 민주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통치형태, 정치체계였다.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이것이 현실의 정치로 나타날 땐 굉장히 복잡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민주주의만 되면 갑자기 억압되었던 인권이 실현되고, 좋은 사회가 이뤄질 것이라고 이해를 해왔다. 그러니까 상당히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30년간 실행된 실제 민주주의는 상당히 형식적이었다. 선거에서 1인 1표를 갖고 다수결 원리로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한 민주주의의 원리다. 하지만 민주주의 자체가 좋은 결과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2016년 촛불 시위에 이르기까지 30년간 경험하면서 정부를 잘 만들고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하단 걸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이것을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정부의 모멘트’란 말로 표현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중요한 변화라고 본다.

 

 

“체제만 민주주의…내용적으론 박정희 패러다임 지속해 왔다”

 

Q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민주화 이후에도 이어진 ‘박정희 패러다임’의 효능이 다한 결과”라며 “정치적 기반과 사회 운영논리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우선 박정희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해방 후 분단되고 전쟁을 치르며 굉장히 큰 격변을 거쳤다. 60~70년대 한국사회가 근대화하기 위해 산업화는 상당히 필요한 변화였다. 그럴 때 박정희 군부세력이 등장해서 정부를 세우고 산업화를 주도했다. 그러다 보니 국가로 모든 권력과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와 결부된 체제였다. 그래서 관치경제로부터 나타난 정경유착이나 비리, 부정이 많았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경제발전을 모든 사회적 가치나 목표에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작동했기 때문에 국가와 재벌 동맹이 필요했고, 이것과 짝을 이루어 노동의 배제가 발생했다. 1960~1970년대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국가 재벌 동맹을 한 축으로 하고 노동을 배제하는 것을 다른 축으로 해서 두 요소가 결합한 것이 박정희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민주화를 통해 박정희 패러다임의 권위주의가 부정당하면서 민주정부를 만들게 되었지만, 민주정부를 한다고 해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민주화가 되면서 정당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정당들이 진보/보수를 구분해 경쟁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만들어 놓은 틀 위에서 정치체제만 민주주의가 되었지 내용은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지금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박근혜 정부는 이 패러다임을 다시 재현해왔다고 본다. 탄핵에 이르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해 박정희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하게 한다.

 

이번 촛불 시위를 계기로 박정희 패러다임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나 완전히 해체되고 소멸하였다고 말할 순 없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통령 선거 이후에 나타날 체제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떤 국가 운영의 방향과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 가는지에 달렸다. 우리는 이미 박정희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왔고, 모든 사회 시스템이 이것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다시 그대로 복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촛불 시위 결과로 새누리당이 분당하지 않았나. 하지만 다시 이번 대선에서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국가 운영 방향에 따라 정부를 운영하지 못하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친박계나 극보수주의의 자유한국당 같은 정당이 기존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로 국가를 운영하게 될 수도 있다.

 

Q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대안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앞서 말했듯 60~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가 산업화를 만들고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현재에는 완전히 시대착오적이고 변하지 않으면 더는 사회가 움직이고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 따라서 여기에 반대되는 원리가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그동안은 국가의 권력이 너무 강력했고, 그것을 행사하는 영역(scoop) 또한 너무 넓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드러났듯이 국가는 무소불위로 경제는 물론이고 체육, 대학 교육, 문화 모든 영역에 관여했다. 마치 모든 걸 제어하는 전체주의 사회와 비슷한 모습이다. 일단은 국가의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분산은 즉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한국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상당히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국가가 끊임없이 개입하고 왜곡해서 결국엔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Q 촛불 집회의 반대편엔 태극기 집회도 있었다. 책에서도 “박 대통령의 개인적 위기가 그의 지지 기반인 사회 세력으로까지 확장될 때, 새로운 갈등과 대립이 동원될 것”이라고 염려를 표하기도 했다.

 

탄핵 반대를 위한 보수 세력의 동원이나 결집이 굉장히 강하다는 걸 볼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을 헌법재판소를 통해 탄핵하는 문제는 두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성적 차원이다. 촛불집회 전반기까지만 해도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와 규범을 인정한다면 탄핵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다. 여론 조사 결과를 봐도 80%에 가까운 시민들이 탄핵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적 차원에서는 이렇지만,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정치는 이성의 영역만이 아닌 비이성 또는 반이성도 포괄하는 굉장히 큰 영역이다. 여긴 열정 분노 같은 감정을 비롯해 온갖 것들이 다 들어와 있다. 우리가 정치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할 요소는 아이덴티티(identity, 정체성) 표현의 영역이기도 하다. 아이덴티티는 이성적이지 않은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이다. 어떻게 보면 보수에 가까운 정조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말을 했다. 감정이 발동할 때 이성이 그걸 합리화하는 하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복잡하고 힘든 것이다.

 

또한 보수파들은 수는 적지만 강도(intensity)가 굉장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제삼자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법의 내용을 따른 판결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감정과 감정이 충돌하고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대결하기 시작하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게 심각해지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개헌은 시기상조…사회 분열 봉합과 박정희 패러다임 대체가 우선”

 

Q 당장 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치르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책에서 확인했다. 정치권에서 개헌이 다분히 정략적 이슈로만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헌법을 고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하고, 지혜로워야 하고, 심도 있고 광범위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 의견합치(consensus)를 통해야 한다. 특정 시점에서의 정치적인 필요나 그 당시의 대안적 제도라고 할 수 있는 걸 주장하고 그 방향으로 개헌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대선은 특별한 대선이다. 이번 대선은 시민이 동원된 촛불 시위라는 사건이 있었고,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큰 사건 이후에 치르게 된다.

 

한편으론 여기서 나타난 정치적 사회적 분열을 치유해야 하고 다른 한 편으론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 시기도 앞당겨졌다. 이와 같이 여러 차원에서의 문제들이 중첩된 와중에 치러지는 대선이기 때문에 앞에 있었던 대선과는 성격이 다르다.(3월 6일 인터뷰 당시 최 교수는 탄핵 인용을 예상했다-기자 주) 이 대선을 치르면서 개헌까지 한다는 건 합리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Q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본격적으로 차기 대선에 돌입하게 된다. 정치권을 향한 제언이 있나?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캠프 중심이다. (선거철) 정당은 대통령 캠프를 서포트만 한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후보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구성된 정부와 대통령은 패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적 관계망을 통해서 정치가 조직되고 이 사람들에게 모든 공직을 줘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포섭적이지 않고 배제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반이 약해지게 된다. 인사문제도 진보면 진보, 보수면 보수라는 범정당 차원에서 좋은 인재들을 임명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엄청난 규모와 복잡한 사안을 다루고 수많은 공적 기구들을 통솔해서 사회전체를 이끌어야 하는데 대통령과 가까운 협소한 소집단에 의해서 이뤄지는 국가통치는 성공적일 수 없다. 이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Q 올해는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성적을 매긴다면 어떤 점수를 주고 싶나?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었다. 분단되어 있고, 전쟁도 경험했고, 서구의 자유주의 이념이나 민주주의 가치를 충분히 습득할만한 역사적 경험을 갖지도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주의를 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재로 산업화를 했지만 어쨌든 경제발전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경제발전이 토대가 되지 않은 민주화는 쉽지 않다. 이런 조건을 거치면서 이것이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힘이 될 수 있었음에도 민주화 운동도 했다. 후발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정당 정치의 경험도 갖지 못했고 사회적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정당 정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의 수준에서 평가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거의 우등생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열등생이나 낙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원문보기 :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Tp=1207&sc.mreviewNo=76722&Nnews#

목, 2017/03/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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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엄중한 시기를 맞고 있다. 모두 절망과 좌절, 고통을 말하지만 정작 ‘이렇게 바꾸자’는 외침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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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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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기사 보러가기

금, 2017/03/1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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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정의가 이겼어!” “이제 봄이에요. 봄”.

이틀 전만 해도 서울에 눈이 내렸는데,
이날은 영상 10도를 조금 넘게 가리키고 있었다.

에피소드 1. 25년차 50대 식당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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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순주입니다.
홍대에서 25년 동안 음식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 사장님이자
두 아이의 엄마죠.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오직 장사와 애들만 생각했던,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아줌마가
대통령 탄핵이란 민심에 하나의 촛불이 될 줄은요.

이렇게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주말 장사를 포기했다.

알게 뭐야. 나라가 먼저지.
장사 죽어라 열심히 하면 뭐하냐
나라가 엉망이면 다 소용 없어.

3월 10일에도 헌재 앞을 찾았다.
그리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국회의원들 너무나 답답했죠 답답했는데
그때마다 국민이 엉덩이 밀어서 이거는 다 국민 몫이니까
국민이 기뻐해도 돼요.

에피소드 2. 23살 대학교 4년 은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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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면 다들 촛불집회 간다지만,
그럴 형편이 못됩니다.
주말에는 알바를 해야 하거든요.
제 이름은 장은경. 대학교 4학년입니다.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게 가장 속상하다.
주말에도 오전에는 편의점,
오후에는 동네마트에서 알바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한 달에 50만 원.

은경 씨가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 생각했던 삶과 꿈은
어느 새 달라져 있었다.

수능 보기 전에는 되게 하고 싶은 거 많고
‘대학생 되면 어떨까?’
그런 생각 많이 했는데 막상 대학 오니까
뭐 큰 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공부 다 하고 졸업도 할 나이가 됐는데
그 사람들을 받아줄 곳이 없는 거잖아요.
사실 안정적인 일자리 가지고 생활을 하는 게
평범하고 소박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은경 씨에게는
이 소박한 꿈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어차피 혼자 살 거면 알바만 해도
그렇게 큰 지장 없겠다.
이런 사회에서 결혼하는 데 돈도 엄청 많이 들고
아이들 키우는 데도 제대로 된 보호도 안 되고…

에피소드 3. 28년차 50대 역무원 나상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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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57살살의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28년차 종각역에 근무하는 역무원으로 일합니다.
두 딸이 두고 있습니다.

그 역시, 거의 매주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주말이 끝나고 다시 업무로 돌아온 상필 씨.

첫차가 다니기전 30분 전에 규정상 영업개시를
준비하게끔 되어 있어요.
새벽을 여는 곳이잖아요.
생계를 유지하는데
교통이 시민의 발이 된다는게 자긍심이 있죠.

이렇게 자긍심을 갖고 28년을 일해왔다.
생활은 여전히 빠듯하다.

겨우 변두리에 경기도 쪽에
아파트 하나 겨우 장만해 놓고 있고
빚은 몇천만 원 있어요. 애들 학자금 때문에요.

63세부터 국민연금을 받는데
60세에 퇴직하면 3년 동안 소득절벽이기 때문에
먹고 살길이 갑갑하고 국민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한 100만 원 정도 받기 때문에
‘그걸로 노후생활을 어떻게 영위할까’ 이런 고민…

에피소드 4. 40대 샐러리맨 최황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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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황순. 작년 10월부터
아내 몰래 토요일마다
촛불집회를 나오느라 좀 힘들었던 아이 둘의 아빠입니다.
대한민국 평범한 샐러리 맨입니다.
수화는 대학교 때 재미로 시작한 지
벌써 25년째가 되어 가네요.

갈 수록 무섭게 올라가는 전셋값,
황순 씨는 걱정이 크다.

그러던 그가 에너지를 얻는 곳이 있다.
광화문 촛불 집회.
그 곳에서 황순 씨는 특별하다.
무대 위 한 켠에서 열심히 수화를 한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시민이고
광장에 참여하는 시민이고 하나의 국민 입장인데,
많은 분들이 보는 방향을 저는 거꾸로 보고 있어요.

저는 옆에서 무대 올라오시는 분들
발산하는 에너지,
아래에 광장에 계시는 분들이 보내는
에너지를 같이 보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감동적인 것도 많고요.

텅 빈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집회.
광장을 나온 국민이 1,650만 명에 이른다.

이제 촛불은 끝난 것일까?
은경 씨는 아니라고 말한다.

마지막은 아닌 거 같아요.
세월호 진상규명이 아직 안 됐으니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100회를 맞이했다.
<목격자들>은 지난 2년 동안
한국 사회 아픔과 부조리의 현장을 찾아 방송했다.

<목격자들> 100회 특집은 촛불 시민 4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취재작가 박은현
구성 김근라
취재연출 김성진, 이우리

금, 2017/03/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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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에서 대통령기록물 지정 권한이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있다는 국가기록원의 자의적인 법률해석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가 될 기록물이 폐기되거나 은폐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되도록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대통령 직무와 관련한 결재문서, 전자기록, 통화기록 등 모든 형태의 자료가 포함된다. 또한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기록물 외에도 비서실이나 경호실 등 소속기관에서 작성한 기록도 모두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업무일지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 중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이나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 역시 직무수행 과정에서 생산된 결과물이므로 대통령기록물에 포함된다.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56권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모금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대통령의 세세한 지시내용이 담겨 있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구속되는데 이른바 스모킹 건 역할을 했다.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 등이 담겨 있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구속에 결정적 단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통령기록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를 규명하는데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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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가기록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에서 대통령기록물 지정 권한을 황교안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한데서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엉뚱한 기록을 지정하거나 불필요하게 과잉지정할 경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차질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청와대 내에서 조직적으로 기록물을 파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기록물법 2조 1항 문서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법 제2조 제1항을 근거로 “권한대행에 지정 권한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기록물 관리 전문가들은 국가기록원의 이같은 해석이 잘못됐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관련법에 명시된 조문은 “생산주체를 정의한 것이지 지정권한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기록물 지정은 그 성격상 대통령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정하도록 만들어 놓은 제도”라며 “권한대행의 경우 권한대행 자신의 직무에 관련된 기록물 경우에는 지정권이 있겠지만 권한을 대행하는 그 대통령, 즉 탄핵된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해서는 지정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 여부를 규명할 자료가 될 기록이 은폐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황교안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반에 있어 사건들을 은폐하거나 부정하는 방식으로 관여를 해왔다”며 “책임을 져야 할 있는 황 대행이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국가기록원의 법률해석이 법제처의 공식적인 유권해석을 거치지 않았다는데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행정자치부 자문 변호인단으로부터 의견을 받은 만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록물 전문가들은 “커다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록원이 법제처의 유권해석조차 받지 않은 것은 매우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시바삐 검찰이나 법원이 법죄혐의와 관련된 증거들이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최장 30년까지 봉인되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 자료로 활용하는데 제약을 받게 된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국회 재적인원의 ⅔ 이상이 찬성하거나 관할 고등법원의 영장이 있어야만 열람이 가능하다.


취재: 이보람, 연다혜
촬영: 신영철, 정형민, 김기철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금, 2017/03/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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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그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 한 가운데였다.”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으로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고 헌재를 떠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13일 열린 자신의 퇴임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헌법재판관을 포함해 30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며 내놓은 짧은 소회다.

이 전 재판관은 선고일인 10일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머리에 달고 출근해 화제를 모았다. 헌재 관계자는 “이 권한대행도 머릿속에 오로지 ‘탄핵심판을 어떻게 원활하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밖에 없다 보니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을 세월호 7시간처럼 가장 긴박한 순간에조차 고수해야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와 비교하며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되새긴 사람들이 적지 않다.

법관으로서 최고 명예의 자리까지 오른 뒤 내려온 이 전 재판관의 나이는 이제 55세에 불과하다. 이 전 재판관의 퇴임 후 계획은 아직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사회생활을 그만두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 만큼 그가 과연 어떤 변신을 할지 주목된다.

고3 때 10ㆍ26사태…법대 진학 결심

이 전 재판관은 1962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부친이 경남 마산으로 전근을 가면서, 이 전 재판관도 마산여고로 진학한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1979년 이 전 재판관은 그곳에서 역사의 순간을 대면하게 되고, 수학선생님이었던 장래 희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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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이 선포된 지 7년만인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중항쟁은 박정희 암살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마산여고에 다니던 이정미 재판관은 이 사건을 보며 법대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해 10월 마산에서는 박정희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부산에 이어 일제히 타올랐다. 부마항쟁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기수이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안을 국회에서 변칙 처리하는 등 잇따랐던 유신 폭압 정치가 도화선이 됐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부마항쟁 수습책을 놓고 벌어진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간의 갈등 속에 10ㆍ26사태로 종말을 맞는다.

이 전 재판관은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생각하다 법대에 진학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난 2011년 7월 헌재 재판관 취임 100일을 맞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 근처에서 과격한 시위가 일어났고, 저나 친구들은 다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 사회 모습에 혼란스러워 했던 거 같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수자였던 여성 법조인

이 전 재판관은 1980년 고려대 법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상경했지만 혼란의 연속이었다. 80년 서울의 봄은 5월을 넘기지 못한 채 역사적 비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렇게 1984년 10월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를 얻게 된 측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여성 법조인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소수자였다. 이 전 재판관보다 선배인 여성 법조인이 19명뿐이던 시절이다.

여성 법조인은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이태영 변호사가 처음으로 합격했고, 1952년 황윤석 판사가 헌정사상 첫 여성 법관이 된다. 이후 18년간 명맥이 끊겼다가 1970년 훗날 스타 법조인이 된 황산성ㆍ강기원이라는 법조인도 탄생했지만, 여전히 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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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 이태영 여사가 1952년 법복을 입고 대법원 앞에 선 모습. 두번째 사진은 여성판사 1호 황윤석 판사. 세번째 사진은 여성검사 1호 조배숙 변호사의 모습.

이 전 재판관이 합격했던 사법시험 26회까지 3,094명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24명으로 여성 법조인 비율은 0.78%에 불과했다. 숫자만 적었던 게 아니다.

1961년 여성 판사 1호 황윤석 판사가 32세 나이로 의문사 하는 사건은 당대 여성 법조인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경찰은 남편의 타살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물증을 찾아내지 못해 미제로 남았다.

이 전 재판관과 박보영 변호사, 윤영미 고려대 교수 등 사시 동기들과 그 해 11월 사시 여성합격자 축하 모임에 참석한 사실이 신문 기사로 보도될 정도였다.

이 전 재판관 등은 축하 모임에서 “지금까지는 책에만 매달려 법조인에게 정직 필요한 인간에 대한 공부는 부족하다”며 “주어진 위치에서 불우한 이웃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열심히 배우겠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40대ㆍ비서울대ㆍ여성 헌법재판관

이 전 재판관은 1987년 3월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하면서 법관의 삶을 시작한다. 서른을 넘겨 결혼한 뒤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일을 했다.

아이들이 잠든 이후에 사건 기록을 살펴봐야 했고, 아이들이 깨기 전 새벽에 판결문을 써야 했다.

이 전 재판관은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조금만 일에 소홀해도 눈에 띈다”며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여성법조인에 대한 평가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전 재판관은 2011년 1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으로부터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자, 비 서울대, 40대 재판관이란 타이틀로 주목을 받았다.

이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을 중시하여 소수자 보호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대변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인지를 주요한 인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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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재판관이 2011년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m.blog.daum.net/sanatana/16527455)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헌법에 대한 전문성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헌법에 관련해 학위를 취득했거나 관련 논문ㆍ저서도 없고, 법관으로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례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재판관은 의원들의 지적에 “법원의 재판 자체가 헌법정신을 기초로 해 국민의 귄리를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반박했다.

이 전 재판관은 1987년 임관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을 재판관 외길을 걸었다. 2004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3년 동안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한 기간이 유일하게 재판정 밖에서 보낸 시간이었을 정도다.

인사청문회에서 원친적 답변을 해 의원들로부터 ‘소신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전 재판관은 청문회 통과 이후 “청문회를 준비하는 2주동안 짧게 생각하고 내 소신은 ‘이것’이라고 답하는 게 법률가로서 적절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했다”며 “차라리 소신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게 낫다는 게 제 소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진당 해산, 간통죄 위헌 등 참여… ‘법의 도리는 고통 따르지만 오래도록 이롭다’

이 전 재판관은 재임 6년간 헌정사에 남을 굵직한 사건에 다수 참여했다.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에선 주심 재판관을 맡아, “정당 해산 결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정당 활동 자유의 근본적 제약이나 민주주의의 일부 제한이라는 불이익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통진당 해산 주문을 읽기도 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간통죄에 대해선 “간통은 가족공동체 보호에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영란법, 사시폐지,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는 합헌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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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식이 열렸다.

이 전 재판관은 지난 13일 열린 퇴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는 문구를 인용하며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한다”며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월, 2017/03/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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