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도 노동조합합시다!
2008년 전국적으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부는 집회를 주최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광우병대책회의와 소속단체 및 활동가들에게 집회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6년 8월 19일에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결과는 1심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패소. 아직 정부는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5억 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할 위험에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인 김선휴 변호사가 이번 2심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짚어봅니다.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
[광장에 나온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손해배상(기) (재판장 김상환 판사 이영창 판사 조찬영 )
김선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변호사)
2008년 촛불집회를 기억하십니까
"2008. 5. 2.부터 2008. 8. 15.까지(10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2398회 이상 개최되었고, 참가 연인원도 93만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지난 8월 16일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판결문에 등장하는 사실관계다. 짧은 두 줄에서도 2008년의 촛불집회가 광범위하고 폭발적이었던 역사의 한 장이었음이 느껴진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당시 촛불집회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지니고 있을 듯하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도 몇 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했었다. 뉴스 댓글마다 여러 집회 일정들이 넘쳐났고, 누가 선동하거나 조직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곳곳에서 모여 촛불을 들었다. 집회의 주최자가 누구인지, 누가 집회신고를 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화문 등 규모가 큰 집회 현장에는 무대 차량이나 진행자가 있었지만, 시민들은 주최 측의 진행과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며 즉석 공연을 하였고, 스스로 만든 손팻말과 유인물을 나눠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행동했던 많은 시민들을 주최자에게 구속되어 그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움직이는 '객체'로 전락시키려 했다. 일부 참여자의 폭력행위로 발생한 손해 책임을 집회 주최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최자가 참여자들의 행동을 지시하고 통제한다고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시민들의 모임, 그것이 집회의 본질
이번 판결은 정부 측의 그와 같은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시간·장소 등을 제안하고 일부 장비를 준비하며 사회를 보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발생부터 진행, 소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지배하였다거나, 참가자가 피고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이 사건 집회·시위에 참가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특정 단체가 소속 구성원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개최하는 집회들도 존재한다. 그런 집회라 하더라도 일부 구성원의 일탈 행위에 대해 주최자나 단체 대표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자기책임원칙에 비추어 매우 엄격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물며 2008년의 촛불집회는 말할 것도 없다. 조직되고 통일적인 단일체가 아니라 다원적이고 자발적이며 큰 틀에서 동의를 이룬 개개인들의 모임으로서의 집회였기 때문이다. 판결은 그것이 바로 이 사건 집회의 특징이자 집회의 본질임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다.
"집회·시위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공통의 의견이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다양한 사람이 특정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이 집회·시위의 본질이자 현실적인 모습이다."
평화 집회를 원하는 다수를 보호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처럼 2008년 촛불집회의 특징에 비추어볼 때,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개별 참가자들의 폭력행위를 지휘하거나 선동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주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2심 소송에서 '과실에 의한 방조' 책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즉 주최자가 집회참가자의 폭력행위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질서유지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폭력행위가 이루어지도록 돕거나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구체적 증거들을 통해 광우병대책회의가 평화적 집회를 계획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점들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집회주최자에게 인정되는 '질서유지의무'의 내용을 설명하며 주최자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집회·시위 주최자가 마치 공권력이나 경찰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집회·시위 참자가의 폭력행위를 미리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거나, 폭력시위자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억압하여 완전무결한 집회·시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정도의 질서유지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때 집회에서 발생하는 일부 위법적인 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국민은 집회 외부의 국민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다수 집회참가자들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수의 일탈행위를 방지하여 평화적 집회를 보장할 책임은 당연히 경찰행정상 집회관리의무에 속한다.
그 점을 이번 판결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부 소수 참가자가 폭력·불법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사실상 예견할 수 있더라도, 집회·시위 자체가 집단적인 폭력·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는 보호되어야 한다. 소수의 폭력·불법행위가 사실상 예견된다는 사정만으로 평화적 집회·시위의 기회가 처음부터 박탈된다면, 폭력적인 소수가 자신들뿐만 아니라 평화적 참가자의 기본권행사 여부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 집회를 계획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 주최자에게 질서유지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부에게, 과연 공권력은 본래 자신의 책임인 평화집회 보장의 의무와 책임은 다하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과도한 통행제한, 인권침해적인 과잉진압이 국가인권위에 의해 인정된 바 있다.
여전히 정부는 평화적으로 진행하려는 집회를 과잉통제하고 일부의 일탈행위를 이유로 전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엄단을 선포하면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번 판결의 내용이 경찰에 의해 존중되기를 바란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
이 사건의 1심 판결에서 반복하여 등장한 표현이 있다. '증거는 수집되지 아니하거나 그 증거가 극히 미미하다',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다', '증거가 부족하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2심인 이 사건 판결에서도 역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 인정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하나 (...) 증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이러한 판결의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집회 주최자에게 제3자의 행위로 인한 피해의 책임을 물으면서, 일단 구체적인 피해의 주장이나 증명부터가 너무 부족하고, 이를 주최자에게 책임 지우기 위한 여러 인과관계들에 대한 증명의 노력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청구한 피해 중에는 출동하려고 방패를 꺼내다 너무 세게 잡아당겨 자신의 방패에 부딪힌 경찰의 타박상,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사한 물대포를 전투경찰이 맞아서 입은 피해, 장소와 경위가 전혀 특정되지 않은 채 분실하거나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방패, 군화, 이불, 카트, 아이스박스, 우산, 보온물통 등까지 포함되어 있다.
과연 정부의 소송이 모든 피해와 주최자의 과실을 입증하고 시민단체나 활동가들로부터 5억 원의 배상을 받아내 정부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함이었는지 그 목적이 의심스러워짐은 당연하다. 손해를 배상받겠다는 표면적인 목적 뒤에 숨은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이 사건 판결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폭력시위자뿐만 아니라 집회·시위 주최자에 대해서까지 손해배상책임을 확대한다면, 집회·시위 주최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안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정치현상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소수집단은 집회·시위를 주최하는 데 큰 부담을 갖게 되고, 종국적으로 소수집단의 구성원은 집단적 의견표명을 통해 공론의 장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정부의 이 소송이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행위"(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흔히 말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전형에 해당함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소송으로 인한 비용, 시간, 정신적 부담을 부과함으로써 공공 영역에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을 위축시키기 위한 소송인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정원,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언론인, 시민단체, 정치인, 인터넷에 글을 올린 누리꾼들에 대해서까지도 빈번하게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상당수가 무혐의나 고소취소, 손해배상책임 없음의 결과로 이어져 전략적 봉쇄소송의 남용을 보여주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박근혜정부의 국민입막음 사례 22선 http://goo.gl/uYQWKF 참조). 이와 같은 소송은 당사자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발언과 표현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미국 여러 주에서는 이처럼 법적, 사실적 근거 없이 제기된 전략적 봉쇄소송을 각하나 약식판결을 통해 소송절차를 조기에 종료시켜 피고들을 소송으로 인한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1심과 2심에 걸쳐 무려 8년 동안 소송절차가 진행된 것은, 피고들이 불합리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법원이 현 제도 아래에서 가능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것이어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장과 증명이 법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매우 부족하고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로 제기되었음이 충분히 드러남에도 말이다. 이미 광우병대책회의 소속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억 원의 배상책임의 불안함 속에서 8년 넘게 고통받았다. 정부의 목적은 패소결과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달성된 것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피고는 소송에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대법원이 최근 전략적 봉쇄소송의 요건과 규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집회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져오는 침해의 심각성을 대법원도 인지한 것일까. 너무 늦게 내려진 이번 판결과 달리 앞으로는 부디 전략적 봉쇄소송이 더 빨리 봉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검찰, 백남기 농민 사건 신속 수사해야
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경찰의 위법성 명백해
강신명 전청장 등 관련자 수사 미룰 이유없어
사건 발생 300일이 넘어서야 이루어진 국회의 백남기 농민 사건 청문회가 어제(9월 12일) 끝났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문회를 통해 경찰의 시위 진압이 위법하였다는 사실은 더욱 명확해졌다. 살수차 운용지침조차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고살수, 곡사살수를 하지도 않는 등 사실상 백남기 농민을 정조준해서 중태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검찰은 더 이상 수사를 미루어서는 안된다. 백남기 농민을 중태에 이르게 한 경찰 관련자를 신속 수사하여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경찰의 위법성은 명백하다. 이번 청문회에서, 백남기 농민에게 당시 경찰이 가한 물포의 수압은 “50층 건물 꼭대기, 150m 높이까지 물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수압”이라는 전문가의 증언이 있었고, 경찰 주장대로 1회가 아니라 쓰러진 뒤에도 7회나 더 살수가 진행되었으며, 살수차 운용경험이 없는 운용자가 ‘사람을 향해 직사 살수할 때 가슴 밑을 겨냥해야 하는’ 살수차운용지침에 따른 교육을 받는 적이 없이 살수차를 조정했음이 밝혀졌다.
그간 검찰은 사건 고발 7개월이 흐른 시점인 6월 16일부터 24일까지 핵심 관련자들을 세 차례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고 백남기 사건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된 시점에서야 겨우 물대포를 직사 살수한 직접 가해자와 현장 지휘책임자 등 핵심 피의자를 조사한 것은, 검찰이 이 사건의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있었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들은 대부분 이미 지난 9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밝힌 의견표명에서 지적된 사항들이기도 하다. 인권위도 백남기 농민의 중태는 경찰의 직수 살수에 의한 것이며, 당시 경찰이 살수차운용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경찰은 철저하게 비협조로 일관했다. 청문위원들이경찰청의 자체 진상조사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한 공권력 행사에 반성하고 책임을 지는 이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엄정한 검찰의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이번 청문회에서 강신명 전 청장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원들의 사과요구에 대해 강 전 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변했다. 밥쌀용쌀 수입을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파기한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위해 맨몸으로 집을 나선 농민이 경찰이 쏜 물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강 전청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야말로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떠나서 제일 먼저 예의를 갖춰 사과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게다가 강신명 전청장은 사건이 발생할 당시 경찰의 최고 지휘권자였다.
책임을 지지 않는 권한남용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를 통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이유다. 집회 과정에서 다시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를 위해서도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책임을 묻는 것이 검찰의 책무임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참여연대, 복면시위 가중처벌 양형기준 반대 의견서 제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 철회해야
얼굴감춘 것만으로 공무집행방해 계획성 단정할 수 없어
취지와 목적
- 지난 2016년 9월 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 수정안을 확정하였음.
- 주요 내용은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 기준 중, 일반가중인자인 “계획적 범행”의 표지의 내용으로 ‘신원확인 회피 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를 추가함.
- 참여연대는 이번 수정안이 결과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그 참여자들이 가지는 인격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봄.
- 이에 수정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구함.
개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군 양형기준 수정안의 요지
- 공무집행방해범죄의 일반가중양형인자 중 “계획적 범행”의 정의를 수정하여 “신원확인 회피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라는 요소를 신설 삽입함(이하 “수정안”).
-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회피하기 위하여, 행위자의 동일성을 식별하기 어렵게 한 경우에는 계획적인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와 같이 계획적 범행이 아닌 경우에는 제외함
수정안의 배경
- 양형위원회는 수정의 이유나 근거에 대하여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애초 법무부의 수정안 제안이유에서 추정하여 볼 수 있음
- 이에 의하면 수정안은 테러, 조직폭력, 집회·시위 과정에서 신원을 숨기거나 가장하여 범행을 은폐하고 처벌을 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면 등을 착용하는 경우가 흔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임.
- 즉, 집회·시위 등에 참가한 사람들이 복면으로 얻어지는 익명성에 기대어 범행이 과격화하거나 폭력성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사전 억지할 정책적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됨.
- 또한 외국의 경우에도 신원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착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참작한 것으로 보임
참여연대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번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수정안이 타당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청함.
- 신체일부를 가리는 모든 행위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성문화하여 양형기준요소의 판단지표로 특정하는 것은 지나친 과잉규제임
- 실질적으로 집회·시위 참석자들의 복면착용 등의 행위를 주된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함.
- 검찰의 기소 재량 및 법관의 재량까지도 확장하여 양형기준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야기할 우려가 있음.
- 집회·시위와 가장 연관성이 크게 발생하는 공무집행방해범죄군에 대해서만 가중인자로 포함하는 것은 다른 범죄와의 형평, 체계정합성에도 어긋남
- 법률로 규정되어야 할 기본권 제한 사항을 양형기준으로 대체 규정하는 사실상의 대체입법임.
- 익명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여 인격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조항에 반하는 것임.
▣ 붙임자료
1.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민주주의 회복!
故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며
지난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서울대병원에서 운명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 진압에 의해 의식을 잃은 지 317일 만이다.
백남기 농민은 학창시절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하고 고향 보성으로 귀향한 이후에는 농민회 활동을 하는 등 민주주의와 생태,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지난 민중총궐기 당시에도 그는 쌀시장 개방에 따른 쌀값 폭락으로 피폐해진 농민의 삶과 식량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랬던 그가 공권력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고인의 죽음에 대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기는커녕, 명백한 ‘외인사’가 ‘병사’로 둔갑됐다. 또한 사인이 분명함에도 경찰은 유족의 반대를 누르고 부검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이다. 이러한 비극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라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함께 요구하자!
<함께하는 방법>
1. 전국 곳곳 분향소 조문, 저녁 촛불 참여 2. 진상규명/책임자처벌 특검 서명운동 http://baeknamki.kr3. 백남기 농민 사이버 분향소 http://memorybaek.kr
복면시위 가중처벌 양형기준 반대 의견서 제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 철회해야
얼굴감춘 것만으로 공무집행방해 계획성 단정할 수 없어
취지와 목적
- 지난 2016년 9월 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 수정안을 확정하였음.
- 주요 내용은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 기준 중, 일반가중인자인 “계획적 범행”의 표지의 내용으로 ‘신원확인 회피 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를 추가함.
- 참여연대는 이번 수정안이 결과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그 참여자들이 가지는 인격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봄.
- 이에 수정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구함.
개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군 양형기준 수정안의 요지
- 공무집행방해범죄의 일반가중양형인자 중 “계획적 범행”의 정의를 수정하여 “신원확인 회피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라는 요소를 신설 삽입함(이하 “수정안”).
-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회피하기 위하여, 행위자의 동일성을 식별하기 어렵게 한 경우에는 계획적인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와 같이 계획적 범행이 아닌 경우에는 제외함
수정안의 배경
- 양형위원회는 수정의 이유나 근거에 대하여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애초 법무부의 수정안 제안이유에서 추정하여 볼 수 있음
- 이에 의하면 수정안은 테러, 조직폭력, 집회·시위 과정에서 신원을 숨기거나 가장하여 범행을 은폐하고 처벌을 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면 등을 착용하는 경우가 흔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임.
- 즉, 집회·시위 등에 참가한 사람들이 복면으로 얻어지는 익명성에 기대어 범행이 과격화하거나 폭력성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사전 억지할 정책적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됨.
- 또한 외국의 경우에도 신원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착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참작한 것으로 보임
참여연대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번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수정안이 타당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청함.
- 신체일부를 가리는 모든 행위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성문화하여 양형기준요소의 판단지표로 특정하는 것은 지나친 과잉규제임
- 실질적으로 집회·시위 참석자들의 복면착용 등의 행위를 주된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함.
- 검찰의 기소 재량 및 법관의 재량까지도 확장하여 양형기준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야기할 우려가 있음.
- 집회·시위와 가장 연관성이 크게 발생하는 공무집행방해범죄군에 대해서만 가중인자로 포함하는 것은 다른 범죄와의 형평, 체계정합성에도 어긋남
- 법률로 규정되어야 할 기본권 제한 사항을 양형기준으로 대체 규정하는 사실상의 대체입법임.
- 익명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여 인격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조항에 반하는 것임.
▣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
복면시위 가중처벌 양형기준 반대 의견서 제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 철회해야
얼굴감춘 것만으로 공무집행방해 계획성 단정할 수 없어
취지와 목적
- 지난 2016년 9월 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 수정안을 확정하였음.
- 주요 내용은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 기준 중, 일반가중인자인 “계획적 범행”의 표지의 내용으로 ‘신원확인 회피 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를 추가함.
- 참여연대는 이번 수정안이 결과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그 참여자들이 가지는 인격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봄.
- 이에 수정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구함.
개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군 양형기준 수정안의 요지
- 공무집행방해범죄의 일반가중양형인자 중 “계획적 범행”의 정의를 수정하여 “신원확인 회피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라는 요소를 신설 삽입함(이하 “수정안”).
-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회피하기 위하여, 행위자의 동일성을 식별하기 어렵게 한 경우에는 계획적인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와 같이 계획적 범행이 아닌 경우에는 제외함
수정안의 배경
- 양형위원회는 수정의 이유나 근거에 대하여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애초 법무부의 수정안 제안이유에서 추정하여 볼 수 있음
- 이에 의하면 수정안은 테러, 조직폭력, 집회·시위 과정에서 신원을 숨기거나 가장하여 범행을 은폐하고 처벌을 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면 등을 착용하는 경우가 흔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임.
- 즉, 집회·시위 등에 참가한 사람들이 복면으로 얻어지는 익명성에 기대어 범행이 과격화하거나 폭력성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사전 억지할 정책적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됨.
- 또한 외국의 경우에도 신원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착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참작한 것으로 보임
참여연대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번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수정안이 타당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청함.
- 신체일부를 가리는 모든 행위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성문화하여 양형기준요소의 판단지표로 특정하는 것은 지나친 과잉규제임
- 실질적으로 집회·시위 참석자들의 복면착용 등의 행위를 주된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함.
- 검찰의 기소 재량 및 법관의 재량까지도 확장하여 양형기준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야기할 우려가 있음.
- 집회·시위와 가장 연관성이 크게 발생하는 공무집행방해범죄군에 대해서만 가중인자로 포함하는 것은 다른 범죄와의 형평, 체계정합성에도 어긋남
- 법률로 규정되어야 할 기본권 제한 사항을 양형기준으로 대체 규정하는 사실상의 대체입법임.
- 익명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여 인격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조항에 반하는 것임.
▣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
썩은 내 나는 박근혜 정부야말로 부검 대상!
죽음의 정치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그러기에 국가는 죽음의 정치를 벌인다. 국가는 사람을 죽이고 또 살린다. 북한 붕괴론을 암시하며 공멸의 위험도 불사하려는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나,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극단으로 몰고 갈 사드의 배치, 지진대 위에 자리한 핵발전소 등은 이를 대변한다.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라고 국민을 강박하는 것은 국가 혹은 언제나 그의 이름을 차용할 권리를 확보한 정부다. 국가에 국민의 삶과 죽음은 절대 가치가 아니라 절대 수단이다. 살림을 볼모로 국민을 겁박하며 죽임을 핑계로 국민 위에 군림한다. 그것이 국가가 독점하는 폭력의 실체다.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죽음의 정치를 재차 되살린다. 박근혜 정부에 항의하는 민중 총궐기가 있었고, 경찰은 이를 대공비 작전을 펼치듯 강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고인은 경찰의 직사 살수에 타격받아 사망하였다. 사실은 이렇게 명료하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은 엉뚱한 곳으로 이끌린다. 한 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이 궤변이나 다름 없는 이유를 대어가며 내린 병사 판정 때문이다. 민중 총궐기와 그것이 비판하고자 한 정부의 실정과 그것을 강제 진압했던 경찰의 폭력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한 생명이 아니라, 참 구질구질하게 만들어진 그 사망 진단서가 대중의 관심을 호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망 진단서는 의사의 전문성보다는 국가의 생체 권력이 앞서는 영역이다. 무엇을 사망으로 간주하며 무엇을 그 원인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뿐 아니라 죽음 자체를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 관계의 틀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까지 그 모두가 의학에 선행하는 국가법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기에 '외인사'는 국가 폭력의 결정체인 수사권이 발동되는 예후가 되며, '병사'는 이제 장례와 애도가 허용된다는 국가의 처분이나 다름 없다. 죽음에 관한 신의 영역을 국가가 가로채고 나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가 국가 형벌권의 대상이 되어 버린 오빠(혹은 삼촌)의 주검을 두고 번민하여야 했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법의학은 의학이기 이전에 법학이자, 동시에 세심한 통치술의 한 부분일 뿐이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왜?"라는 법적 인과 관계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 이 법의학의 이데올로기다. 거기서는 어떻게 죽었는가는 묻지 않는다. 쌀값 인상의 공약을 저버린 대통령의 식언에 항의하다, 불법적인 차벽을 앞세운 국가 폭력에 저항하다, 혹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하다 과잉 경비에 나선 경찰의 살수차에 피격되어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폐 정지와 급성신부전과 급성경막하출혈이 가장 중차대한 문제인 것처럼 가장한다. 총체적인 정책 실패와 죽임까지 불사한 국가 폭력을 대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가, 한 전문가의 자의적 사망 진단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전치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고인의 시신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한 사태는 정확하게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주검을 해부함으로써 죽음을 해부하고, 그를 통해 어떻게 죽었는가의 문제를 왜 죽었는가의 문제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법원은 1차 부검 영장 신청은 기각하였다. 경찰은 검찰 지휘하에 또 영장을 신청하였다. 그러자 법원은 추가 소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약간의 어색함을 다스리고는 곧장 전대미문의 조건부 부검 영장이라는 것을 발부했다. 부검 장소와 부검 절차, 참관인 등을 유족과 협의해서 정하고 부검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라는 조건이 달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장 발부 행위는 그 자체 심각한 하자를 가진다.
우선, 부검 영장의 발부 요건이 어떻게 충족되었는가가 의문스럽다. 부검은 언제나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고인과 그 유족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의 증거나 자료들에 의해 외인사라는 점이 충분히 입증될 수 있으면 부검이라는 추가적인 강제 수사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역으로 부검을 실시하려면 외인사가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야 한다. 즉 경찰-검찰이 기존의 증거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증거나 소명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병사"로 기재된 사망 진단서에도 불구하고 제1차 결정에서는 영장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은 이미 "진료 기록 내역을 압수해 조사하는 것을 넘어 사체에 대한 압수 및 검증까지 허용하는 것은 필요성과 상당성(타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진료 기록만으로 외인사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뒤엎을 만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는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결정에서는 자료 보완을 요구한(사실 보완 요구 자체도 이례적인 것이다) 후 기다렸다는 듯이 부검 영장을 발부하였다. 사실 관계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되려 우리가 법관의 판단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법관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검찰-경찰이 어떤 용빼는 재주가 있어 순식간에 법관의 판단까지 바꿀 만큼 그렇게 중대한 자료를 만들어 소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둘째, 이 부검 영장은 가해자에게 증거를 찾아내도록 한다. 주지하듯 경찰은 살수차 운용 경관에서부터 당시 현장지휘부, 그리고 전현직 경찰총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이 사건의 폭력성을 부인해 왔다. 살수도 지침대로 했고 지휘도 제대로 이루어졌으며, 민중 총궐기에 대한 집회 관리도 전혀 잘못된 것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 경찰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래서 경찰은 내부적인 감찰도 중단하고 검찰은 검찰대로 수사에 손을 놓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나 자료, 증언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결백을 강변한다.
여기에 정부‧여당까지 나아가 보수 논객들까지 편들고 나선다. 설상가상격으로 부검을 담당하게 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의조차 부검이 필요하다고 공식 선언을 하였다. 누가 봐도 외인사인 것을, 누가 봐도 직사 살수에 의한 죽임인 것을, 그 부검의들은 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하면서 가해자인 경찰의 편을 들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부검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장담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경찰에게 부검을 맡길 때 그 부검의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절차에서는 그 어떠한 정의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 법관은 가해자인 경찰과 그의 한 손인 부검의에게 고인의 시신을 맡겨 버렸다.
셋째, 이 과정에서 사망의 이유와 원인이 교착되어 버린다. 고인의 사망에 이른 일련의 과정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다. 물론 살수차 운용 경관과 그 현장 지휘부, 경찰 총수까지 그 행위에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벽과 살수차, 막대한 경찰력 등의 폭력을 동원하여 국민의 입과 귀를 막게끔 지시한 통치권력과 그에 부종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책임추궁이다. 혹은 우리의 삶을 이토록 옥죄고도 우리들을 "개돼지"라고 명명하기에 스스럼이 없는 일단의 지배 세력들에게 이 세상은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경찰이 부검의 논란을 일으킨 것은 경찰관 몇 명의 문책을 피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사건이 이렇게 정치화되어 현 정치 권력에 대한 책임 추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민중총궐기의 정치를 부검의 정치로 되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검 영장을 발부한 법관은, 그리고 그가 속한 이 땅의 사법부는 이런 정치적 소명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지나치게 법에 충실함으로써 스스로가 또 다른 아이히만이 되기를 자처한다. 사법관의 지배(juristo-cracy)라는 것은 이렇게 발생한다. 정치의 문제를 법의 문제로 환원한 채 모든 것을 경직된 법교리 속에 매달아버리는, 저 권위주의 체제가 행사하던 탈정치화의 패악이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는 죽음과 주검까지도 철저하게 도구화하고 통치의 수단으로 삼는 그 엄청난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망자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정희진의 질문은 이 지점에서 아주 적절해진다. 고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국가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귓전을 울려 퍼진다. 그의 죽음과 그의 함성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망자의 몸'을 부검이라는 이름으로 탈취하고자 온갖 힘을 다한다. 그의 몸에 부착된 그의 목소리를 떼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함성이 부검의의 칼날에 갈가리 헤쳐져 우리의 귀에까지 와 닿지 못하게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저 법관의 영장 발부 결정은 너무도 무모해진다.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저렇게 붙인 조건들 때문에 가뜩이나 빗나간 문제의 해결 고리조차도 더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다. 부검 영장의 경우 집행장이 아니라 허가장의 성격을 가지는 것인 만큼, 그가 힘을 실어 제시한 조건들은 영장의 중요 부분으로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영장 자체가 효력을 상실하여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법리는 사족처럼 초라하다. 고인의 사망은 누가 보더라도 물대포의 타격에 의한 외인사이며, 그 배경에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적대하며 전투적으로 지워버리고자 하는 폭력적인 정권이 존재함 또한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부검 영장을 발부하는 법관의 치졸한 법리로는 도저히 가리지 못하는 그 엄중한 우리들의 정치가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검 영장이 진정으로 가리켜야 하는 곳은 따로 있게 된다.
그것은 고인의 시신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처절하게 죽임을 당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시신과 벌써 부패의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이 땅의 통치 권력이 죽여버린 민주주의의 시신이다. 백남기 특검법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은 그래서 의미 있어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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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앞에서 멈춘다”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
참여연대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오늘(10/12) 종각 앞 광장에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시민들의 ‘애도와 추모의 벽’을 설치하여 한 달간 운영합니다. ‘애도와 추모의 벽’은 <평화의 소녀상> 작품 작가인 김서경․김운성 작가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이들 단체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갈 수 없는 시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모의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명백히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책임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물대포를 쏘도록 명령한 자들을 기억하고, 책임져야 하는 자들이 마땅히 책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참여연대는 작년 11월 14일 집회에서 고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물대포사용 금지와 안전하고 평화로운 집회 보장을 위한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앞에서 멈춘다 -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을 오늘부터 11월 14일까지 진행합니다.
참여연대는 캠페인 기간 동안 ▷집시법 개정 및 물대포 사용금지 청원인 온라인 모집 ▷ 청원안 국회 제출 ▷집회금지장소에 릴레이 집회 신고 후 헌법소원 제기 직접행동 ▷ 카드뉴스, 이슈리포트 발행 등의 활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 집시법 개정 및 물대포 사용금지 청원인 온라인 모집 바로가기 ->http://bit.ly/2dhoeDN
-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앞에서 멈춘다 -> 집시법11조(청와대, 국회, 국무총리공관 등에서 집회금지조항)에 따른 집회금지통고 현황 이슈리포트
<캠페인 자세히 보기>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앞에서 멈춘다”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
◯ 취지와 목적
- 작년 11월 14일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생명을 잃은 고 백남기 농민사건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국가폭력 사건이었음.
- 이는 지난 9월 12일 국회 청문회 및 26일부터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경찰은 물대포사용지침을 위반하여 제대로 훈련을 받지도 않은 운행자에게 살수를 맡겼을 뿐 아니라, 곡사가 아닌 직사살수를 하였고, 전문가의 증언에 따르면 살수의 위력이“50층 건물 꼭대기, 150m 높이까지 물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수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다 명확해짐.
- 또한 11월 14일 사건 당일 고백남기 농민을 비롯한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은 밥쌀용쌀 수입반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쌀값21만원 공약을 지키라는 요구를 위해 이날 남대문에서 보신각에 집회신고를 냈다가 금지통고 받았음. 이날 민중총궐기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민주노총 등이 신고한 서울광장, 광화문 일대의 집회도 금지통고됨. 금지통고 사유는 주요도시 주요도로의 교통소통을 방해한다는 것이었음(집시법제12조)
- 결국 11월 14일 집회는 경찰에 의해 금지통고됨으로써 불법집회로 규정되어서 경찰이 과잉진압하는 명분이 되었음.
- 집회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며 집회 신고제의 취지는 행정적 협력의 의무임에도 경찰은 그간 대규모 집회, 특히 정부정책에 반대하거나 이견을 표하는 내용의 집회는 대부분 금지통고해 왔음. 이는 국회 안행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과 이재정 의원이 발표한(2016년 10월 5일) 자료에서도 확인됨.
- 세계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시각적으로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집회를 해야 집회시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음, 그럼에도 누구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청와대, 국회 인근에서는 예외 없이 집회가 금지됨.
- 이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물대포 사용금지와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안전하게 집회할 수 있도록 집시법 개정 촉구를 위한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을 11월 14일 고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날까지 집중 전개하려고 함.
- 원하는 장소에서 안전하게 평화적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유권자의 목소리를 국회에 직접 전달하여 집시법개정에 나서도록 촉구하고자 함
◯ 캠페인 개요
- 제목 : “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앞에서 멈춘다”-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
- 일시 : 2016년 10월 12일 ~ 11월 14일
- 캠페인 주요 활동
- 집시법 개정 및 물대포 사용금지 1114人 청원인 모집 온라인
- 기간: 10월 12일 ~ 11월 10
- 청원요구
① 청와대, 국회, 국무총리공관 등에서의 집회행진을 절대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 폐지 또는 개정
② 서울 종로 및 광화문 앞거리 등 주요 도로의 행진을 대부분 금지시키는 집시법 제12조 폐지 또는 개정
③ 집회참가자들에 대한 물대포사용(최소한 직사살수) 추방
* 지난해 11월 14일 이루어졌던 위법한 공권력에 맞서 1114명 청원인 모집
4. 집시법 개정 및 물대포 사용금지 입법․의견 청원진행
5. 집시법 12조 적용 현황 관련 이슈리포트 발행
6. 국회, 청와대, 서울중앙지검 등 집회금지장소에 릴레이 집회 신고 후 헌법소원 제기 직접행동
- 일정: 10월 17일~20일
7. 집시법제11조3호(국무총리공관 앞 집회금지) 헌법소원 공개변론 지원
고(故)백남기 농민 ‘애도와 추모의 벽’ 설치 기자회견
집회의 자유 확보 및 물대포 추방 캠페인 선포도 함께
1. 취지와 목적
- 시민사회단체연대회는 내일(10/12)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공원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 ‘애도와 추모의 벽’ 설치 기자회견을 갖고, 한 달간 추모의 공간을 운영할 예정임.
- ‘애도와 추모의 벽’은 <평화의 소녀상> 작품 작가인 김서경‧김운성 작가에 의해 제작되었음.
- 한편 참여연대는 내일 기자회견에서 11월 14일 집회에서 고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물대포사용 금지와 안전하고 평화로운 집회 보장을 위한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앞에서 멈춘다 -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을 선포하고, 향후 활동계획을 발표할 계획임.
2. 개요
○ 제목 : 생명과 평화의 일꾼, 故백남기 농민 추모의 벽 설치 및 물대포 추방,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 촉구 기자회견
○ 일시와 장소 : 2016년 10월 12일(수)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
○ 주최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주관 : 참여연대
○ 참가자
- 김금옥(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 정강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 김서경‧김운성 작가(평화의소녀상 작가)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각 단체 임원 및 활동가
- 유가족 장녀 백도라지님,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
○ 진행순서
- 묵상
- 추모의 벽 설치에 즈음한 입장
/ 김금옥(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 추모의 벽 제작자 김서경‧김운성 작가 말씀
- 발언: 유가족 및 가톨릭농민회 회장
- 추모의 벽 설치에 즈음한 입장 및 물대포 추방 캠페인 활동계획 발표
/ 박근용(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 문의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승훈 국장 010-3093-1386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이은미 팀장 02-723-5302
찾아가는 기본소득
지난 20대 총선, 나는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이때 당원들과 함께 ‘기본소득 선본’을 꾸려 기자회견, 온•오프라인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찾아가는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작은 규모의 기본소득 정책 설명회를 여러 차례 열었는데, 이때의 만남이 아직도 생생하다.
녹색당은 단계별 재원마련 방안과 연동한 단계별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1단계에서 현재 노동시장에 진입해 임금소득을 얻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청년, 청소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 우선 지급을 주장했다. 동시에 이들에게 기본소득 운동의 주체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던지고 싶었기에 관련한 지역조직, 공동체 모임 등을 위주로 찾아갔다. 또한 기존 복지 제도와의 교통정리를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복지 운동 당사자들을 만났다. 기본소득 자체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대다수였고, 한두 번의 만남으로 이들을 당장 ‘조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자신의 삶에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개입시켜보는 일이 시작됐다.
또한 기본소득 전국순회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부당해고로 생활고에 시달리며 장기투쟁 중인 노동자들, 생계 때문에 부당한 노동요구나 성차별에 맞서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오랜 세월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경제적 기반이 없어 독립하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 서울을 떠나 지역에서 소박한 삶을 꾸려가고 싶어도 당장 소득이 없어 단기적 일자리가 많은 서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청년들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기본소득이 삶에 어떤 전망을 주고, 그 전과 어떻게 다른 생애 기획을 가능케 하는지 이야기 나눴다.
기본소득이 어째서 민주주의의 소득이자 권리인지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들, 자신이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상상하고 희망을 품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부터가 손쉬운 냉소나 허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 복지와 증세, 사회적 신뢰와 정치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현재 어떤 다른 주제보다 모두를 논의에 참여시키면서, 흥분시키는 주제다. 이것이 기본소득이 가진 큰 장점으로 의제의 확장 가능성, 곧 대중성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신뢰 만들기
녹색전환연구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와 함께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을 모니터링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본소득 제도의 관점에서 이를 평가하고 제도의 결점, 중앙정부 정책으로 확대할 수 있는지 등을 모색하려는 의도가 컸으나 수령자 인터뷰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예컨대 청년들의 ‘복지 인식’과 같은 측면이다. 복지 인식은 제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반대로 제도가 복지 인식을 바꾸는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청년배당은 소득보장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당사자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 역시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금액이 적기 때문에 소득에 큰 도움이 되거나 극적인 변화를 보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하지만 설문 결과, 적은 금액임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답변이 많았다. 또한 청년배당이 당사자 청년들 사이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 동 세대 및 다른 세대와의 사회적 연대가 시작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제도 도입과 시행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신뢰’ 형성의 가능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복지 확대를 위한 정치적 의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아닌가.
또한 최근 여성들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조직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는 오프라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 제도 개선까지 이끄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 위기마다 성차별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소해왔다. 위험의 몫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돌아갔다. 구조조정 시 여성을 우선 해고한다거나, 구조조정 후 늘어난 저임금 계약직 일자리에 주로 여성을 고용했다(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빈곤화). 사회 안전망 부재로 인한 사회적 불만을 여성과 소수자 혐오를 통해 해소하는 것을 방치했으며, 사회적 재생산에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모른 체하고 출산과 육아, 가정 내 무급 가사노동 등 거의 모든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떠맡기고 있다. 이런 현실에 나 역시 한 명의 여성으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제도로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젠더 불평등을 해결할 가능성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 정규직 임금노동자 중심의 정상가족을 기본 단위로 구성된 복지국가 담론 역시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균열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여성과 소수자들이 공적 영역, 사적 영역 모두에서 남성 가부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독립된 경제적 시민권을 가진 주체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현재 이에 가장 걸맞은 제도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복지이며, 한편으로 복지를 넘어서는 기획이다. 젠더와 생태문제 때문이다. 서구 기준이긴 하나, 지지자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19세기 노예해방 → 20세기 보편참정권 획득 → 21세기 기본소득 보장’으로 이어지는 세계사적 과제라는 말에 동의한다. 기본소득은 자유와 평등을 증진해온 인간해방의 일환이다. 우리 중 누구도 보편참정권을 복지제도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회권 등 복지의 의미가 확장된다고 해도 복지만으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생명을 위한 기본소득
나아가 인간 해방만이 아니라 지구의 생명을 생각할 때 ‘시민배당’으로 기본소득이 절실해진다. 피터 반스는 <시민배당>에서 미국에서 부의 양극화가 심화한 구조를 파이프라인에 비유해 설명한다. 어딘가에 한 번 꽂아둔 파이프는 빨대처럼 부의 극단적 편중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에 자원 분배를 위한 다른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민배당을 그 방법론으로 소개한다. 분배할 자원은 땅, 지하수, 맑은 공기, 광물 자원, 주파수 등 이미 충분하며, 시민배당이 공유자원의 상품화, 시장화를 막고 지속할 수 있게 보존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후변화를 막고 재생에너지로의 시스템 전환을 견인할 방안으로, 탄소세 혹은 기후부담금, 생태부담금을 시민배당으로 나눠주는 것이 감세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롬비아 주에서는 2008년부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탄소세를 걷어 그중 일부를 탄소배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1년에 100달러 정도(저소득층의 경우에는 100달러 추가 지급)의 작은 규모이지만, 생태부담금-시민배당 지급을 현실화하고 있는 사례다. 한국은 생태 위기 논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고 최근 지진으로 인해 핵발전소 안전성이 논란으로 떠오르는 등 현재 상황은 결코 한가롭지 않다. 지구 자원의 정의로운 분배 방법론으로 시민배당, 즉 기본소득이 더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 시대의 여러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사람들의 정동(情動)을 흔들 수 있는 매력적인 의제다. 기본소득이 이론적으로 100%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법안이 발의되어 실험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긍정적인 변화, 즉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전반이 바뀌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처럼 의제 휘발성이 큰 나라에서(선거 국면에서 이상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질 운명에 처했다는 뜻) 단기간에 기본소득이 중요 의제로 부상하는 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을 막을 수도 없고. 대신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잘’ 해봐야지.
글 : 김주온 |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요? 더 나은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희망제작소는, 토의민주주의 확산을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시민과 함께 좋은 정치를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자리인 ‘정치잇수다’를 진행했습니다. 9월 29일 열린 토론회와 10월 15일 진행된 워크숍 후기를 전합니다.
첫 번째 정치잇수다는 ‘2016년 지금 여기의 시민+정치’라는 주제의 토론회로 9월 29일 스페이스노아 커넥트홀에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시민이 바라는 좋은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에 앞서, 시민정치 관점에서 한국 정치의 문제를 진단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시민의 정치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구조적 제약을 살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시도를 살펴보았다.
여론조사는 민의를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2016년 지금, 한국 시민정치 진단’에서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부소장은, 현행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 기간, 방식, 인적 등을 제한하는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법, 특히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특히 일상에서 시민이 자유롭게 정치에 대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크게 제약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분석 전문가인 정한울 박사는, 여론조사는 민의를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그 결과를 유권자의 결정과 같은 가치에 둘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의 의도적인 오용에 본질적인 책임이 있는 만큼 여론조사의 전문성 제고, 공직선거법 등 관련 제도의 개선은 물론 정치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 나은 민주주의와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의 발표가 진행됐다. 정치벤처 ‘와글(WAGL, We-All-Govern Lab)’은 온라인 기반의 풀뿌리 시민정치 연구,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수평적 의사결정 모델 등 정치혁신을 촉진할 기술을 개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와글의 김정현 매니저는 “많은 사람이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정치인이 문제고, 누구를 뽑아야 한다’ 등 선거 이야기를 주로 한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내가 말하는 것, 내 생각이 정치에 반영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많은 시민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것이다. 와글은 그런 방법,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유쾌한 민주주의 플랫폼 개발자 조합 ‘빠흐띠’의 권오현 대표는 온라인 정치토론 플랫폼인 ‘빠띠(parti.xyz)’의 사례를 소개했다. 빠띠는 독립적인 온라인 공론장으로, 이슈별로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변화의 방향을 논의하는 공간이다. 권 대표는 “한국에서 집회 정도는 나가야 정치에 참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언론을 통해 정보를 인지하고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것도 일종의 정치 행위일 수 있다”며, 빠띠를 통해 시민들이 자유롭고 일상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얼마나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민주적인가 고민해야
희망제작소는, 풀뿌리민주주의 확산 등 최근의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신과 불통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대의민주주의를 개선하려는 방법으로, 시민이 직접 나서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는 토의민주주의의 확산을 제시했다. 발표를 맡은 황현숙 연구원은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모여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하며 정치잇수다 기획의도를 밝혔다.
마지막은 토론의 시간으로 지정토론자의 발언과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는 “선거, 투표의 결과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승자와 패자만 있다. 그렇지만 투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설득이 필요한 과정이다.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소중히 하는 민주주의라면, 얼마나 효율적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민주적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며 새로운 시민 정치 참여의 평가 기준이 민주성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온라인선거운동 연구자 조희정 박사는 빠띠와 와글 등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많은 사람, 단체가 있다. 다른 대안 정치 세력과의 연결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 참가자는 민주주의와 참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첫 번째 수다에서는 정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이라는 공감이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아니라 진짜 시민들의 생각과 참여에 주목해야 하며, 일상에서 자유롭게 정치를 이야기하고 참여할 수 있는 대화와 경험의 장,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 최고의 순간, 최악의 순간
10월 15일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서 열린 두 번째 수다는 ‘여론조사로는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진짜 정치 이야기’라는 주제의 워크숍이었다. 시민들이 원하는 좋은 정치에 대한 생각을 직접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본격 정치 수다의 장으로 꾸며졌다.
첫 번째 세션의 주제는 ‘한국 정치 최고의 순간, 최악의 순간’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주요 정치적 사건을 담은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살펴봄으로써 참가자들의 좋은 정치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는 순서였다. 최고의 순간으로는 시민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거나 선거 결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때가 꼽혔다. 참가자들은, 최근 치러진 20대 총선이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이 예측한 것과 전혀 다른 결과로 나온 것을 보고 민심의 무서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악의 순간으로는 세월호 사건, IMF위기 등 국가나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함 또는 무능력이 드러난 사건 등이 꼽혔다.
정치에 관해 마음껏 ‘수다’ 떨기
두 번째 세션은 ‘시민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이관후 희망제작소 연구자문위원의 강연이 진행됐다. 이관후 위원은 민주주의 그 자체가 좋은 정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적 유래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인민이 다스리는 정치 체제, 민주주의를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건 100년도 채 안 된다. 한국 역시 1987년 민주화 이후 아직 서른 살이 안 되었다. 아직 자리가 잘 잡히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를 잘 한다고 좋은 정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많은 이들이 나쁜 것에 합의하면 나쁜 정치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정치 수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자 자신의 생업이 있는데 모두가 정치를 항상 고민하고 참여할 수는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숙의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라고 번역되는 ‘deliberative democracy’는 사실 ‘수다민주주의’라고 해야 한다. deliberation은 어렵고 딱딱한 숙의, 토론이 아니라 수다를 의미한다.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바꾸는 거다. 정치에 관해 수다를 떠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 세션은 우리들의 진짜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시민을 포함한 우리 사회 여러 정치 주체들 간의 연결 지도를 그리고, 좋은 정치를 위한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선거와 선거 사이, 투표 빼고 정치 이야기하기’와 ‘모두의 정치를 위한 액션플랜 짜기’를 주제로 모둠 토론이 진행됐다.
‘선거와 선거 사이, 투표 빼고 정치 이야기하기’는, 선거 이후 시민들이 일상에서 정치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혹은 어떻게 참여하지 못하는지 지금 현재의 정치적 연결고리를 그려 본 후 우리가 원하는 정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시민, 국회, 대통령, 사법부, 정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이익단체 등 우리 사회의 공식적·비공식적 정치 주체 간 연결 고리를 그려가면서 토론을 진행했다.
여러 참가자가 언론과 시민단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고,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의견을 알려야 하는데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기보다 그들만의 활동을 하는 것 같아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많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
다음으로, 앞서 나눈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모둠별로 주제를 정해 구체적인 참여 방법을 찾아보는 ‘모두의 정치를 위한 액션플랜 짜기’를 진행했다. 1조는 ‘지역의 도시계획 변경, 사업시설 예정 시 주민의 참여 보장 방법’, 3조는 ‘신혼부부에게 3천만 원 지원’이라는 주제로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방법을 토론했다. 2조는 ‘잘 먹고 잘살자’, 4조는 ‘숨어있는 90% 시민을 발견하고 함께하기’라는 주제로 좋은 정치를 위한 시민의 참여 방법을 토론했다. 1조와 3조의 발표에서는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을 때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는 SNS 캠페인, 지역 언론 기고, 사례집 작성, 집회, 시위 등 실질적인 활동 사례들이 제시되었다. 한 발표자가 지난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들과 손잡고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소개했을 때는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정치 구조의 변화에 관심을 가진 2조와 4조에서는 시민들이 자기 주변의 공동체, 관련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리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말할 수 있는 단체에 참여하고 다른 시민 동료들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참가자들은 토론을 시작할 때 투표 이외의 정치 참여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로의 크고 작은 참여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민이 바라는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유롭고 즐겁게 정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고 유익했다고 말했다. 또한 토론회와 워크숍 두 번의 모임을 통해 정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시민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합리적으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합의의 폭을 넓혀나가면 더 나은 민주주의, 좋은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글 : 황현숙 사회의제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우기 사진작가(첫 번째 수다), 오세인 사진작가(두 번째 수다)
박근혜 퇴진운동의 절정인 11월12일 전국적으로 백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장에 운집했다. 1960년 4월혁명과는 배경 및 과정은 달랐어도 정치적인 분위기는 비슷했으리라 유추한다. 당시에는 결국 총격으로 수백명의 시민이 희생을 당하고야 비로소 이승만이 하야를 했다. 소중한 역사의 경험이다.
한줌도 안되는 수구잔당과 공안세력 그리고 경찰의 물대포에 의존한 채, 국기파탄의 범죄를 저지른 박근혜는 오늘도 여전히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한일군사정보협정 등 위험한 대외관계를 처리하고 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비웃게 하는 나라의 망신행위이며, 책임성이 배제된 채 국가존립을 위협하는 협박행위이다. 하루도 길다. 빨리 정리해야 한다.

狗不理가 판치는 나라
박근혜가 스스로 하야를 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방식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 도달한다. 탄핵 아니면 기어코 피를 보려하는가?
만약 탄핵을 거부하는 정치권과 사법세력이 존재한다면, 이들 역시 분노하는 거대한 시민들의 함성과 역사적 흐름에 묻혀 박근혜와 같은 처지로 몰릴 것이다. 루이16세처럼 권좌에서 죄수로 끌려 내려오는 초법적 비극으로 역사적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려는가?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자. 세월호 사건에서 시작하여 메르스와 가습기 사태를 거쳐 백남기 선생님의 사망, 그리고 성주 사드배치까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과 현안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2016년 대한민국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정부 인사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없고, 경찰인지 조폭인지 구별이 어려운 가운데, 정권이 앞에 내세운 공안의 앞잡이들만 다가오는 역사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설쳐대고 있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한때 나라의 앞날은 차치하고 여전히 온갖 생떼 짓을 연출하며 개혁의 움직임을 여전히 겁박하는 친박계 새누리당 의원들의 역한 모습이나, 백남기 선생님의 죽음에 깊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 고통을 즐기려는 듯이 험담을 짖어대었던 인간 말종의 마구니들이나,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자들이 벌렸던 초법적인 해괴한 행태 등등…
이에 대해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최고 권력의 요구로 미르 재단, 케이(K)스포츠 재단을 설립했다가 강제 모금 의혹이 일자 갑자기 해산 결정을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백남기씨 사망, 사인 진단, 부검 시비에 연루된 경찰, 검찰과 서울대병원의 대응 등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의 ‘근대 국가’의 세 기둥, 즉 근대 관료조직, 시장경제, 그리고 시민사회가 뼈대 없는 껍데기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며 한탄을 겸한 진단을 내렸다.
필자는 조금 더 심하게 표현하려 한다. 중국 천진을 방문했을 때 자주 들은 단어가 구부리(狗不理)였다. 개만큼도 못한 놈이라는 뜻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8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사회는 어느새 정치권과 행정부와 언론계와 전문직 영역과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狗不理 족속들이 설쳐대는 나라가 되었다.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
부패지수 역시, 아시아 동반 국가들 중에 최악의 수준을 넘어 국제사회로부터 남의 나라까지 오염시킨다는 지탄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젊은 세대들의 취업난까지 겹치면서 헬조선 소리가 절로 나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가 돌아가는 꼴이 원칙과 법치에 기초한 사회가 아니라, 조폭만도 못한 사익집단들 세상이 되어 버렸다.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을 겪은 지 30년이 채 안된 세월에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이었다.
고 채광석 시인이 ‘밧줄을 탄다, 목숨을 탄다’ 라고 노래하였듯이, 유신시절에는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목숨이 위험한줄 알면서도 유인물을 뿌릴 5분을 벌기위해 건물옥상에 밧줄을 걸어 타면서 ‘군사독재타도’ 구호를 외치고 전단을 뿌리던 영화같은 장면이 연출됐었다. 그런 70년대였다.

군부대 총칼에 수 백명의 목숨을 빼앗긴 광주민주화투쟁을 겪은 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살인마 군부정권의 탄압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한 정치투쟁에 목숨을 걸은 민청련과 전민련, 그리고 억압된 삶의 현장에서 터져 나온 온갖 요구를 결집시킨 전국연합 등을 결성하며 살인적인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화의 불씨를 키워왔던 투쟁의 기록이 남아 있는 80년대였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수많은 청춘과 노동자들이 목숨까지 희생당하고 옥고를 치루고는 후유증으로 다시 죽어갔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떳떳한 세월이였다. 87년 민주화 대투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 졌을 때는 우리 모두 민주주의라는 토대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세워졌고, 한국의 정치는 비가역적으로 발전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렇듯 타는 목마름으로 온 삶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였는데, 방심하고 설마 하는 사이에 오늘같은 아수라장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1987년 민주화의 성공과 좌절
현재가 매우 긴박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조금 느긋하게 ‘박근혜 이후’ 한국사회의 전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은 ‘박근혜의 국기파탄’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넘어서서 한국사회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연유 그리고 전망에 대해 화두처럼 던지는 시론이다.
우선 87년 이후 민주화과정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민주화 투쟁에는 두 개의 큰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제도 정치 속에 야당 지도자로서 김대중과 김영삼 두 분이 서로를 격려하고 연대하며 훌륭하게 정치투쟁을 이끌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권투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 농민투쟁이 전개되면서 개별적 사건을 뛰어넘어 전국적 연대를 형성하고 시작했다. 여기에 1960대부터 형성된 경험과 식견을 가진 학생운동출신의 전위적 운동가들이 결합되면서 민주화 투쟁을 지도하고 있었다.
열악하고 억압된 생활조건에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민중투쟁과 사건적으로 폭발하던 정치투쟁이 겹쳐지며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면서 군사정권은 타협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개과정은 제도정치 영역에 속해있는 야당 지도자들과 생존권에 기초했던 민중투쟁의 재야 지도부들이 함께 손잡고 연합적 성격의 국민기구를 만들어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고 내용을 더욱 발전시켰어야 했다.
국민적 합의기구를 통해 양대 세력은 시대적 소명과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협력과 견제라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민중투쟁의 지도부 역할을 했던 대부분 재야와 학생운동 인사들이 개별적 또는 선별적으로 야당 지도부로 포섭되면서 이후 밑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민중적 요구가 무시되고 제도정치의 대주주였던 두 김씨간의 권력쟁취를 위한 싸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군사정권이 퇴각하면서 전개되는 개헌 논의는 (실천이 가능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기초를 시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1948년의 제헌헌법은 당시 세계사적 흐름에 맞추어 매우 진보적인 내용을 담보하고 있었으나, 이는 시민적 투쟁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고 이식된 것으로서 사실상 실천적 토대를 가지지 못했으며 이후 권력자들에 의해 7-8번이나 개정되는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87년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민주화 대투쟁 이후 과정에서 당연히 시대적 소명과 민중적 요구를 담아내는 개혁적 헌법이 재탄생했어야 마땅했지만, 두 김씨의 권력욕으로 어정쩡한 타협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87년 체제는 이렇게 하여 진정성의 상실과 스노비즘의 만연을 출발부터 잉태하고 있었다.
두 김씨의 다툼 과정에서 어부지리로 탄생한 노태우 정권과 3당 야합으로 재구성된 김영삼 집권의 10년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기간이 되었다.
유신체제와 개발독재의 온갖 병폐를 쓸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치사회적 규범과 질적인 전환을 유도할 산업경제적 환경을 형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상실했다. 반면 이전 40여 년간 온갖 특혜와 비리와 적폐 속에 형성된 기득권 체계가 외부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더욱 강화되는 시간이었다.
위의 언급은 현재 제도 정치를 이끄는 야당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제발 개인적 야심과 정파적 이해를 떠나 민족의 장래를 진심으로 책임질 수 있는 거국적인 연합정권을 구성해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길 요청한다.
IMF외환위기와 김대중정부의 한계
대한민국이 군사정권과 야합적 민주화 과정을 격고 있는 동안 세계 환경은 대처리즘과 레이건노믹스가 절정을 이루고 소련체제가 붕괴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맞이했고, 거대자본의 논리에 따른 세계화 물결이 거세졌다. 그러나 이미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와 대자본을 위한 일방적 세계화의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1990년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격변하는 국제 환경, 그리고 내용도 파악하지 않은 채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세계화를 들고 나온 무지한 김영삼정권 탓에 우리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는 외환위기를 맞은 것이다.

월가의 거대한 자본들에게 지배되던 당시의 국제 환경과 조건에 무모하게 자본시장의 빗장을 열어 제꼈다. 한국정부의 무능함과 부정부패, 대기업들의 무책임으로 인한 과잉중복투자,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단기성 외채 도입 등등.
경험도 제어장치도 없이 개방된 금융시장, 주로 서울대 출신들로 구성되면서 탐욕과 정실로 무력해진 통제기구 등이 외환위기를 일으킨 우리의 민낯들이였다.
국민경제가 부도난 긴박한 상황에서 지역연합라는 정치지형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보수 세력과 연대하여 출범한 국민의 정부를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김대중정권은 IMF가 제시한 신자유주의적 요구사항을 선별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패착을 뒀다.
당시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던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수상과 아시아적 가치를 외쳤던 이광요 싱가포르 수상과는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들은 단순히 금융개방의 요구에 저항한 것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무기삼아 침투해오는 서구의 단세포적인 문명과 제국주의적 탐욕을 거부한 것이었다.
또한 초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김태동 교수가 주창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론’을 조기에 포기하고, 기득권을 대표하는 구시대의 경제관료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물이 점차 스며드는 것처럼,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깊이 내렸고 경기부양책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하면서 신용불량자를 대량 생산해 내기도 하였다.
동교동 가신으로 상징되는 구시대적 권위주의의 잔재를 유지한 채 유신독재의 한 축이였던 김종필씨와 지역연합으로 창출된 정권의 한계를 그대로 보였다.
노무현정부의 성과와 한계
지난 과거와 지역논리가 지니는 부담에서 자유롭게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양면적 성격을 지녔다. 과거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정치와 행정 그리고 시민사회에 개혁적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긍정적인 역할은 매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적이다.
반면 국민의정부 시절에 이루어졌던 대북지원에 대한 아마추어적 비판에서 시작하여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 논리를 도입하고 수구적 세력과 대연정을 제안하는 등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대응한 종합부동산세 도입과정에서 세정 시행의 패착을 보이고 (종합부동산세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고 진보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인 언술을 계속하면서도 행정의 시행과정은 신자유주의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재벌중심정책으로 노동자계층 등 민중적 요구를 외면했다. 지니계수는 더욱 나빠지고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서민들의 일상은 더욱 어려워졌다.

17대 대선 당시 서민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747 공약’과 ‘부자되세요’을 내세운 사기꾼 이명박 후보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불행하게도 이후 탄생한 이명박근혜 정부는 평가할 가치도 없는 민족적 재앙이었다. 국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사적 탐익에 놀아난 탈법의 약탈정권시대였다.
이제 우리는 박정희와 군사정권뿐만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등 민주화 이후 정권들에게 대해서도 냉정하고 혹독한 비판과 평가를 내려야만 할 시점에 와 있다.
지난 세월 애석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으로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선불교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때려 죽여야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듯이, 실패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고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시효를 다 한 87년 체제
지난 30년 세월을 주마등처럼 살펴보았지만, 민주주의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절차적 제도와 이를 실행하는 주체역량과 주위를 둘러싼 시대적 환경과 조건이라는 세 요소가 함께 물려서 형성되여 간다고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제도로서 87년 체제는 시대적 소명과 시민적 요구를 담아내기에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출범했다.
주체적 역량으로서 시민사회 역시 성찰적 각성이 부족했고, 결사적 참여가 미진한 상태에서 기득권에 포섭된 직업적 정치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이 역사적 패착이었다.
당연히 한국민주주의 미래와 가능성은 87년이후 형성된 야합적 제도정치와 스스로 주연배우가 돼버린 직업정치인의 폐단을 극복하고, 다양한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에 기초한 정책정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할 것이다.
격동하는 세계사의 물줄기
한편으로는 1980년대까지 안정적이었던 세계의 시대 환경과 조건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1990대 경제 불황에 이어 더욱 거대한 파고로 덮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후유증을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세계는 급반전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신자유주의의 사망으로 이행하고 있으나, 이를 대체할 뚜렷한 흐름이 아직 보이질 않고 있다. 미국 금융시스템의 사기와 탐욕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유럽전역을 위기로 몰아놓고, 세계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BRICS를 눌러 앉혔다. 이젠 저성장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뉴노멀 시대로 진입하였다. 유럽의 진보그룹들은 성장이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탈성장 또는 새로운 개념의 발전을 논의하기 시작하고 있다.
문명사학자인 김기협 선배가 정확히 분석했고, 선재동자를 자처한 이병한 박사가 추가로 설명하였듯이, 수 백년에 걸친 서세동점의 시대는 미국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종말을 고하고, 다양다변한 문명권과 국가와 지역간 이해들이 서로 교차하고 대립하고 융합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역사의 미궁속에 방향을 상실하고 심한 양극화 현상속에서 트럼프라는 깡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건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시대를 마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1)일대일로라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선언하면서 대국의 면모로 포효하는 중국, 2)영국 제도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위와 근시안적 포플리즘이 결합된 BREXIT, 3)난민들의 대거 유입으로 인한 유럽사회의 국수주의적 우경화, 4)서구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민주화의 봄이 이슬람주의로 회귀되고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상황, 5)오스만 제국의 후예인 터어키 민족의 굴기, 6)필리핀 민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두테르테 대통령이 보이는 반미적 행보, 7)순수한 토착문화에서 성장한 인도 모디 수상의 힌두인적 행보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현상들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전형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졌던 서구식 민주주의의 시각만으로는 새롭게 전개되는 세계사적 흐름을 더 이상 이해하고 포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근세이후 상업의 발달로 중산층이 크게 발흥하면서 천부인권과 시민계약론, 그리고 재산과 사적 소유권 보장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 삼권분립 그리고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한 대의민주주의가 핵심을 이룬다.
그 원형적 배경과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삼백년이 지난 21세기 수명을 다한 서구의 현재적 상황과 한국이 지닌 역사적 전승 속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형해화된 서구식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인민들의 일반적 참여와 합의로 이루어진 사회계약론에 기초하여 인류가 당대에 획득한 실천이성이 합리적이고 합당한 근거로서 공공의 영역에서 역할과 기능을 다할 때 적용가능한 것이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테가 상징하듯이, 무지의 베일 앞에서 법의 강제가 원리적으로 모두에게 정의롭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위의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법치주의는 위장된 강도짓에 불과하다.
필자는 한국에서 법치주의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 준비하고 개선하고 시행해야 하는 내용을 제시할 전문식견은 없다. 다만 오늘의 한국은 당당한 법치국가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단언할 수 있다.

삼권분립 역시 허울 뿐이다. 입법과 행정과 사법의 독립적 역할과 상호견제라는 대원칙에 비추어 볼 때 우선 사법권이 행정권력으로부터 완벽히 독립되여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등 주요 사법직의 선출과 임명과정이 대통령의 직,간접 영향으로부터 명백히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듯이, 시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주요 법관들을 직접 선출하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가 검찰과 경찰직 주요 간부들 역시 해당 지역주민들의 손으로 선출해야 하며,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 독립된 상태에서 상호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의 별동대처럼 움직이는 검찰조직은 고사하고 대법원장 이하 주요 법관들마저 대통령의 신하처럼 처신하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위장된 독재국가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린 정책정당이 없는 한국의 대의정치는 그야말로 ‘극장식 민주주의’이다. 시민들은 그저 관객으로 참여하여 박수치고 분노할 뿐, 주로 연고와 지연과 금력에 의해 선택된 엘리트 또는 졸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회는 유력정당들끼리 ‘연출된 연극’을 공연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시민들의 참여와 결사와 숙의의 과정이 생략된 채, 대기업, 고급관료, 수구적 미디어와 이익단체에 포섭당한 기득권 중심의 대의체이다.
또한 일회적 선거만으로는 대의적 의회정치가 더 이상 민주주의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열려야 한다.
우선 시민 청원과 소환과 감시권이 확실하고 실제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IT통신정보기술이 발달한 현재 수준에서는 스위스와 같이 수시로 국민발의에 의한 직접투표를 검토해야 한다.
헌법과 선거법 개정 등 국민적 주요 관심과 핵심적 이해를 가진 의제가 국회 내 정당간 토론돼야 한다. 또는 결정이 어렵고 토론과 숙의적 과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시민의회’라는 새로운 헌법기관을 통하여 토론돼야 한다.
이런 시민의회는 서구의 몇몇 나라에서 이미 실험되고 있는 제도이다. 현재의 삼권분립제도를 넘어서서 실제적 시민권을 보장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사권분립 또는 오권분립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수명을 다한 서구식 민주주의…새로운 사상의 맹아들
이제 서구의 민주주의제도는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판단한다. 시민주권에 기초한 계약론과 법철학의 훌륭한 역사적 배경을 담고는 있지만 껍데기뿐인 제도와 절차만으로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형식상으로 평등하고 공정한 정치적 절차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권과 재산권 중심으로 지나치게 확장된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초래한 현실생활 조건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그런 형식을 껍데기로 만든다.
또한 불공정한 미디어로 인해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 ‘길들여진 제도’ ‘스포츠성 이벤트’로 변질되고 있다.
이병한 박사가 언급한 ‘송학의 서천’(중국의 송나라 학문이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상업이 발흥하고 르네상스가 촉발되고 프랑스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일본학자의 이론) 경험을 다시 되새기며, 한계에 봉착한 서구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은 동아시아와 한국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지 제안해 본다.
우선 배달민족의 건국설화부터 매우 독특하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내려와 나라를 열고 건국이념을 ‘ 홍익인간 –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백성들’의 나라로 삼았다는 것은 놀라운 선언이었다. 서구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진보사상이다.
왕도와 덕치를 가르친 맹자가 의(義)를 정치의 핵심주제로 삼고 백성을 괴롭히는 제왕은 처벌할 수 있다는 역성혁명론이 유럽으로 전파되어 프랑스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세우게 하였다는 ‘송학의 서천’ 이라는 연상이 가능하다.
중국 월나라의 탁월한 재사였던 범려에서 유래했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역시 서구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언어의 영역이다.
쌀농사 중심의 농업이 집단적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배경에서 출발한 것으로 유추되는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의 미풍양속 역시 오래된 미래의 전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모여 공유하고 숙의하고 공동으로 결정한 향악의 전통과 내용은 서구의 근대적 자치제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경복궁내에는 왕이 일상적 업무를 처리하던 사정전(思政殿) 양 옆에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축물들이 있다. 왕을 알현하기 전에 사전에 모여 현안을 토론하고 상의하던 건물이다.
만춘전에서는 이름그대로 젊고 혈기가 방장한 진보적 신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다. 건너편 천추전에서는 경험많고 노련한 원로그룹들이 숙의를 통해 국정의 구상을 가다듬던 장면들을 상상해 보라. 현재 여의도 국회의사당보다 내용면에서 매우 앞서 있지 않은가.
구한말 동학에서 보여준 ‘시천주(侍天主)사상 역시 놀랍다. 서양에서 이야기하는 천부인권사상의 배경에는 인간은 신이 창조했지만 신을 닮은 피조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서양의 신에게 인간은 대상적 피사체일 뿐이다.
그러나 동학에서는 하느님이 인간 속에 원형적으로 내재한다. 신과 인간이 분리되여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내면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확장하여 보면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는 백성들이 함께 뜻을 모으면 곧 하늘의 뜻이 되는 것으로 민본 사상의 절정을 이룬다.
서구 민주주의 기초가 된 루소의 시민적 일반의지론을 훌쩍 뛰어넘는 격높은 사상이다.
홍익인간과 맹자의 왕도사상, 참여와 절차과정으로 향약과 두레, 견리사의가 뜻하는 공동체로서의 덕성, 선비사회가 보여준 절개와 비판정신, 모두를 어우르고 관통하는 동학의 시천주라는 경인사상 등, 동아시아의 역사와 전승은 퇴조해 가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미래를 밝힐 수 있는 미지의 가능성이다.
서체아혼(西体亞魂)의 견지에서 서구사회가 발전시켜온 법논리적 절차와 형식에 앞서 언급한 동아시아적 영혼을 불어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서구가 성취한 그릇 안에 민본(民本)과 민생(民生)과 민락(民樂)이라는 내용을 담아 삼민(三民)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21세기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서양의 형식에 동양의 영혼을 담는다면…
아무리 제도적으로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게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시민적 삶을 어지럽히는 것을 민주제라고 인정하고 허용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동양적 서술과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서구의 하버마스 역시 합리성과 효율성 중심의 관료제가 가져오는 폐단을 지적하고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에서 형성되는 소통적 담론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의 발달한 통신기술로 직접민주제를 포함한 다양한 민본적 정치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사민주의가 발전시켜온 사회적 시장경제를 넘어서 두레의 예에서 보여준 공유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인류가 쌓아온 과학기술의 수준과 금융시스템운용의 경험은 인간의 조건을 현재보다 훨씬 위대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모든 사회 경제활동의 출발점과 도착지는 맹자가 제시한 제민지산(齊民之産)에 근거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칼럼(경제성장과 행복…”뭣이 중헌디?”)에서 시민 개개인의 행복조건에 대해 반복하여 언급하였지만,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도 명기된 행복추구권이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은 민주주의와 경제시스템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다. 허접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적 표현으로 대동(大同)의 사회를 향해 나가야 한다..

권력 교체기 또는 역사의 전환기
2016년 11월12일 서울광장에 모인 백만 시민의 함성은 한국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매우 소중한 기회이다. 단순히 박근혜의 퇴진이라는 현안을 뛰어넘어, 우리의 시야를 세계로 확대하면서 역사를 살펴보는 깊은 성찰과 비판을 통해 제대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또다시 제도 정치권인사들의 탐욕에 의해 좌절된 역사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결과물이 아니라 실천적 과정이다. 시민사회가 성숙해가는 과정속에서 성찰과 비판 그리고 참여가 없이는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미지는 늘 현재 안에 움트고 있다. (다가올) 민주주의는 미지에 대한 동적 지향의 가장 포괄적 표현이여야 한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 <미지의 민주주의> 중)
경찰의 19일 행진 제한에 대해 참여연대 오늘 집행정지 신청
경찰 조건통보는 12일 법원 결정과 100만 시민의 뜻에 반하는 것
경찰이 또다시 19일 촛불집회 행진을 막겠다고 나섰다. 경찰은 어제(11/17) 저녁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퇴진국민행동’)에서 19일에 행진하겠다고 신고한 8개 경로 모두에 대해 내자동 사거리 및 율곡로 남단으로 행진 경로를 제한하는 내용의 조건통보를 하였다. 경찰의 조건통보는 최근 법원 가처분 인용결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고, 집회와 행진을 통해 표출된 100만 시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오늘(11/18) 서울행정법원에 조건통보의 집행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경찰은 조건통보를 하며, 다시금 최소한의 교통소통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1월 5일과 12일 법원은 교통소통보다 집회의 자유 보장이 더 중요하고 교통불편이 국민들에게 수인할 수 있는 범위라고 인정하였으며, 무엇보다 다수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의사를 표현하고자 하는 집회를 ‘조건 없이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리고 법원의 인용결정 이후 실제로 100만 시민이 충돌 없이 성숙한 모습으로 집회와 행진을 마무리함으로써 그와 같은 법원의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더 이상 교통 불편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행진을 차단하기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19일 집회는 서울시가 17대의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주최 측인 퇴진국민행동도 분실물센터, 미아보호소 운영, 안내를 위한 직원과 자원봉사자 배치, 행진경로 안내를 위한 8대의 방송차량을 준비하는 등 원활한 집회와 행진을 위한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가처분을 신청하여 이러한 점들을 주장하고 다툴 것이다.
퇴진국민행동이 19일 행진하겠다고 신고한 경로는 총 8개로, 세종로 사거리에서 출발하여 새문안로 쪽과 종로1가쪽 양 방향으로 나뉘어 내자동 로터리와 안국동 로터리 쪽으로 행진하며,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와 정부종합청사 창성동 별관,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까지 행진하는 3개 경로를 포함하고 있다. 이번 집행정지 가처분은 8개 경로 조건통보 모두에 대해 신청하였고,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가 신청 및 변론을 담당한다. 서울행정법원의 심문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이다.
▣ 별첨자료
1. 19일 신고된 행진경로 및 경찰의 조건통보 지점 약도
법원, 경찰의 19일 행진 제한 집행정지 결정
12일 100만 집회에서 허용된 율곡로, 사직로 당연히 허용
단, 경복궁역~청운동사무소, 삼청로~북촌로 도로사정상 낮시간대만
경찰 더 이상 주요도로 교통소통 근거로 집회시위금지 명분 없어
오늘(11/19) 서울행정법원 제4부(재판장 김현국 판사)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퇴진국민행동’)이 19일 4차 범국민대회의 행진 경로로 경찰에 신고한 사직로ㆍ율곡로, 경복궁역 일대의 행진을 보장할 뿐 아니라 효자로 등을 통해 창성동 제4정부청사, 경복궁 동쪽 서울현대미술관길을 통한 행진도 보장하라고 결정했다. 다만, 경복궁역 교차로에서 자하문로 방향, 삼청로에서 북촌로5길 방향으로는 좁은 도로 사정상 갑자기 많은 행진인원이 운집했을 경우 안전사고 우려 등을 고려해 일몰 전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이번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지난 5일, 12일 박근혜퇴진 범국민대회에 대한 경찰의 금지통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한 가처분 신청이었다.
법원은 지난 12일 이미 가처분인용을 통해 율곡로 사직로의 행진을 허용한 바 있고 12일 집회에 100만이 넘는 참가자들이 모였음에도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던 점,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함에 따라 예상되는 교통불편은 감수하여야 할 부분임을 지적하며 19일행진도 허용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 지난 번 집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비판하는 집회시위의 목적상 장소가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하여 12일 행정법원이 허용한 율곡로, 사직로까지의 허용을 후퇴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다만, 장소의 특징상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를 경유해 청운동사무소를 거쳐 경복궁역으로 오는 경로 및 경복궁역 동쪽 삼청로에서 북촌로를 따라 행진하여 나오는 경로의 도로사정상 안전사고 등의 위험이 있어 낮시간동안인 15시부터 17시 30분까지만 허용한다고 한 점은 아쉽다.
퇴진국민행동이 19일 신고한 행진 경로는 총 8개로, 세종로 사거리에서 출발하여 새문안로 쪽과 종로1가쪽 양 방향으로 나뉘어 내자동 로터리와 안국동 로터리 쪽으로 행진하며,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와 정부종합청사 창성동 별관,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까지 행진하는 3개 경로를 포함하고 있다. 이번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결정으로 8개 경로 모두에 대해 경찰이 평화행진을 교통소통을 근거로 금지할 명분은 없게 되었다. 경찰은 차벽으로 도로를 막을 것이 아니라 집회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우선해야 할 것이다. 경찰 역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에 따른 질서유지가 본연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경찰의 집회시위 금지통고의 근거가 되었던 집시법제12조(주요도시 주요도로의 교통소통을 위한 집회시위 제한)의 개정도 시급하다.
▣ 별첨자료
1. 19일 법원이 허용한 행진 경로 약도
2. 법원의 가처분 인용결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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