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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관료, 군림하는 심부름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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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관료, 군림하는 심부름꾼들

익명 (미확인) | 월, 2016/12/26- 11:15

대한민국 관료. 대단한 위세를 자랑한다. 관련 규정과 절차를 내세우며 “된다, 안 된다”를 규정할 때는 지방자치단체 말단 공무원조차 ‘하늘처럼 높은 분’이 된다.

도대체 뭘 이런 것까지 요구하나 싶은 각종 서류들을 기한에 맞춰 제출해야 한다. 빠져서도 안 되고, 늦어서도 안 된다. 이래저래 연줄이 없다면 만나는 건 물론, 전화 한통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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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관료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들의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임에도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음으로써 국민들에게 사실상 관재(官災)가 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hankyung.com/)

전화 한통으로 상징되는 관료의 위력은 다르게도 확인된다. 청와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국무조정실(보통 ‘총리실’이라고 하지만 현재 정부조직에 국무총리실은 없다)이나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같은 힘 쎈 부처 공무원들은 문서가 아니라 전화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서와 기록을 남기지 않기에 당연히 책임과 처벌도 따르지 않는다(물론 가끔씩은 녹취나 메모, 업무일지 등의 형태로 흔적이 남아 꼬리가 밟히기도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대한민국 관료?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관료들의 위상과 역할은 더욱 대단했다. 식민지와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낸 데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관료들 공이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었던 군사정권은 숫자로 확인되는 성장에 더욱 집착했고 관료, 특히 경제 관료들은 이를 가능케 했다. 군인과 관료들은 서로를 필요로 했고, 권력을 함께 향유했다(물론 그들 간의 위계는 존재했다).

IMF 경제위기는 대한민국 (경제)관료의 진짜 실력에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신자유주의가 광풍처럼 몰아치며 정부 주도, 관료 주도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 듯 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관료들은 시장과 기업에 주도권을 쉽게 내놓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칼을 휘둘렀고, 몸값을 더욱 높였다. 규제를 하는 것도, 규제를 푸는 것도 모두 그들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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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에서 관료들의 무능은 도를 넘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그 정점이다. 조류인플루엔자, 경주 지진, 그리고 세월호 사건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처리된 것이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가 정작 필요할 때,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20년. 2016년 겨울 대한민국 관료의 모습은 참담하다. 최순실과 차은택, 김종 등의 국정농단과 인사전횡으로 무너진 문체부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른바 ‘차은택 예산’이라 불리는 순증예산의 수많은 문체부 사업들이 기획재정부의 묵인과 협조 없이 가능할 수는 없었다. ‘최순실 사업’에 일사천리였던 것은 문체부나 기재부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2,5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 말 그대로 살육이고 학살이다. 아무리 ‘닭’이 미워도 이건 너무하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총리실과 농림부 등 관련 부처 관료들의 무능함 때문임은 다들 안다.

경주 지진 때도 그랬고, 조선해운업계의 파탄 과정에서도 그랬다. 국민안전처도, 기상청도, 금융위도, 해수부도 우왕좌왕, 허둥지둥했다. 속이고, 감추고, 떠넘겼다.

이 와중에 사드 배치, 국정교과서 추진, 한일군사협정 체결 등은 국민적 반발과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일단 정해졌다는 이유다. 대한민국 관료들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국민들은 참담해 할 따름이다.

대통령 탄핵까지 몰고 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피해자는 당연히 우리 국민이다. 하지만 동시에 ‘촛불시민’들은 최대 승리자이다.

관료들은 어떤가? ‘공직자’라는 이유로 촛불집회에 맘 편히 참여하지도 못하고, 세종로 정부청사는 커텐으로 가려지고 차벽으로 둘러쳐져 있으니 ‘시민’으로서 아쉬움은 클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아니 최소한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이라 믿었던 많은 일들이 최순실의 농단이었음을 확인한 순간 그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했다.

과연 그럴까? 시민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데도 단 한명의 관료도 “왜”라고 되묻지 않았고, “아니오”라고 거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자 본질이 아닐까? 자칭타칭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관료들은 왜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나?

‘뒤’와 ‘위’와 ‘안’에 속박된 대한민국 관료

1. ‘뒤’가 존재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 관료사회가 교과서에 나오는 관료제의 기본 원리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도 아님을 보여 주었다.

관료제는 전문화와 위계화, 그리고 공식적인 절차와 규범의 준수를 중요한 원리로 삼는다. 명령과 직무의 수행은 문서로 이뤄져야 한다. 관료제의 폐해를 논할 때 과도한 절차와 과다한 문서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관료사회에서는 문서와 규정이 아니라 전화나 구두지시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비선’의 존재는 관료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으로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될 수 없다.

‘앞’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뒤’에 권력의 실체(와 실세)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정 농단과 파탄인 셈이다. 그것이 전체 국정의 1% 미만이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관리’와 ‘정보공개’가 후퇴하고, ‘투명한 정부운용과 공식적인 권력행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순실이 아니더라도 비선에 의한 국정농단은 앞으로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과거’에도 비선실세가 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한다. 그렇지만 그는 ‘미래’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을 않는다).

2. ‘위’만 쳐다본다

이번 사태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위’였다. “위에서 시킨 것”이라는 한마디로 일사천리였고, 만사형통이었다.

‘위’는 직속상관이기도 했고, 장관이기도 했고, 청와대기도 했고, 대통령이기도 했다(물론 이번에는 대통령이 ‘위’의 끝이 아니었다). ‘위’에서 시키는 것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 처리하고, 그 결과를 잘 보고하는 것이 관료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주어지는 승진만이 관료에게는 유일한 관심사다(물론 승진 누락과 좌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민국 관료는 헌법과 법률로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국민의 공복”, “공익을 위해 일하는 자”, 말 그대로 공무원(公務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위’에서 시킨 것을 따를 뿐 ‘공적 가치’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다면 굳이 그들의 신분을 보장해야 할 특별한 명분은 없다.

민간기업, 특히 오너가 있는 회사의 직장인들이야말로 늘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냐”며 처지를 한탄한다. 더욱이 그들은 공무원과 같은 신분보장도 없다. 관료제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신분보장을 한 것인데 막상 관료제의 근간이 위협받자 공무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변보호만 그저 생각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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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2015년 말, 국방부 방위사업청에 방위사업감독관실을 설치하면서 방사청 차장, 법률소송담당관 등 고위 공무원 2명을 강제 퇴직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국가운영이 인치에 의해 좌우될 때, 법과 절차에 근거한 관료제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인사개입 논란을 빚었던 방위사업청 방위사업감독관실 설치 과정은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였다.

감독관실 신설 자체도 “위에서 내려 왔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었고, 기존 담당자들 교체도 “청와대로부터의 통보와 우수석의 뜻”대로 관철되었다. 민정수석실을 찾아가 다른 입장의 의견서를 냈던 방위사업청 차장은 부하 직원들과 함께 경질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정유라와 승마협회에 관한 감찰지시를 수행하며 상식적 수준의 결론을 제시했던 문체부 노태강 전 국장과 진재수 전 과장은 혹독한 책임을 져야 했다.

“조직에 충성할 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국정원 댓글 수사에 임했던 윤석렬 검사는 거듭된 좌천을 감내해야만 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무죄판결에 대해 ‘지록위마’라 비판했던 김동진 판사는 보복성 징계를 당했다.

“아니오”라는 답변은커녕 “왜”라는 의문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탄핵되고, 최순실이 사라지고, 우병우가 물러나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인가? 장담하기 어렵다. 관료 스스로 만들어 놓은 행정부 ‘안’과 ‘밖’ 사이의 높은 장벽 때문에 더욱 그렇다.

3. ‘안’만 고집한다

“우리한테 무슨 힘이 있나?”라며 한계를 호소하는 관료들이지만 ‘밖’으로부터의 도움이나 관심을 그다지 바라지도 않는다. 관료들은 행정부 밖으로부터의 도움은 물론 견제나 감시, 참여 모두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부 3.0’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정부 0.3’에 불과한 행정정보공개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협치’와 ‘참여’를 내세우며 만들어진 위원회에서의 형식적이고 무기력한 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시민들의 정보공개청구는 ‘귀찮은 것’이고, 의사결정 참여 요구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뿐만 아니다. 헌법이 정하고 있고,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3권 분립’의 원칙,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로부터의 자료제출과 설명요구는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국회의 권한이고 정부의 의무임에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을 원칙이자 자랑으로 삼는다.

징계 요구권을 갖는 감사원에 대해서는 겁을 내며 자료를 최대한 제출하지만 인사 조치를 직접 취할 수 없는 국회에 대해서는 자료제출도 최소한으로 하려 한다. 국정감사 등에서 혼나는 게 싫지만 그저 그때뿐이다.

더욱이 예산편성권도, 법률제출권도 정부가 다 갖고 있으니 국회를 겁낼 필요가 없다. 인사나 조직, 감사도 모두 행정부 ‘안’의 일이다. 국회와 국민은 행정부 ‘밖’에 있는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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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에 질문하고, 자료를 요청한다. 그런데 일부 관료들은 이것을 성가시고, 귀찮은 일로 여긴다. 행정부 견제는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며, 국회에 대한 답변 역시 관료의 헌법상 의무이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언론 지면에 “국회 갑질에 일 못하는 세종시 관료들”의 애환(?)을 다룬 기사들이 적지 않게 등장했다. 관료들의 ‘본래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자료제출 요구가 넘치고, 직접설명을 위해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가느라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고 설명을 하는 것을 ‘가욋일’로 여기거나 아예 ‘업무방해’로까지 생각하는 관료와 기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에게는 ‘질문권’과 ‘질의권’, 그리고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국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관료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반대로 관료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대해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진다(헌법 62조는 국무위원 등이 국회의 요구에 응해 ‘답변’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대한민국 관료들은 국회로부터의 자료요청과 설명요구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다. 국회가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도 미약하다. 행정부가 국민과 국회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해결해 보겠다고 끙끙대는 동안 최순실과 일당들은 국정을 맘껏 농단했다. 관료들은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일부는 그들에 협조하며 일신의 영달을 꾀했다.

국민과 국회에 열려 있는 ‘제대로 된 정부’

막스 베버는 전문 관료에 의한 독주와 그에 따른 관료제의 지배를 우려했다. 그래서 그는 의회민주주의와 정당, 정치지도자의 역할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대한민국은 최악의 조합을 이루고 있다.

‘관료제 아닌 관료주의’가 횡행하는 동안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했다. 문서와 절차, 규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공무원 개인 영달과 부처의 조직 보위만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었다. 행정부 스스로 쌓은 높은 장벽은 국민과 국회의 견제와 감시, 참여와 협력을 차단했고 자기 붕괴를 가속시켰다.

‘뒤’가 힘을 발휘하고, ‘위’만 쳐다보며, ‘안’만 앞세우는 관료 사회의 잘못된 행태와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추락이며,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붕괴이다.

그런데 이는 불법을 저지른 관료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조직을 일부 개편하고, ‘관피아 근절’을 위한 개혁조치를 취했지만 “국가란 무엇인가?”, “정부는 무엇인가?”라는 통절한 물음에 제대로 된 응답이 되지 못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다시 처절히 묻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실체에 대해 심각히 질문하고 있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정부’에 대한 물음 중심에 대한민국 관료가 서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들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부’라는 것이 행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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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개혁을 행정부 내의 조직, 인사 개혁 정도로 좁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행정부를 둘러싼 제도와 국민과의 관계라는 총체적 관점에서 고민돼야 한다.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차기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늘 ‘행정(부) 개혁’ 차원에서만 해법을 찾으려 했다. 그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 “이게 나라냐?”라는 근본적 물음에 행정부만으로 결코 답할 수 없다. 국민과 국회, 시민사회와 입법부를 행정부와 항상 함께 다뤄야 한다.

즉 행정부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관료들도 더 이상 ‘위’만 쳐다보고, ‘안’만 고집하는 행태를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제대로 된 정부’는 국민과 국회에 대해 행정부를 여는 것, 즉 ‘개방성’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 원칙은 ‘책임성과 투명성’과 ‘전문성과 효율성’이라는 방향으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과 방향은 정부 조직 차원만이 아니라 관료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드는 길과 ‘제대로 된 관료’를 키우는 길은 서로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과 국회에 대해 개방적이고, 책임성과 전문성을 강화한 ‘제대로 된 정부’를 갖기 위해서는 제도개혁이 우선 중요하다.

(1)개헌을 통해 정부의 예산편성권과 법률제출권을 제한하거나 감사원의 국회 이관까지 적극 검토될 필요가 있다(물론 이 경우 감사원이 갖는 직무감찰 권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쟁점도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회계검사 권한만 이관할 경우 감사원이 현재만큼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선 확신하기 어렵다).

법개정을 통해서도 ‘제대로 된 정부’를 위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2)순증예산에 대한 정부의 동의를 의무적으로 얻게 되어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고, 국회의 자료제출과 설명요구, 증인출석 등에 불응했을 때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3)국회의 감사원 감사청구요건을 상임위원회 의결 정도로 완화하고, 관료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실명제 도입 등도 적극 추진될 필요가 있다.

차기 정부의 과제

그런데 막상 탄핵 결정 이후 곧바로 치러질 대통령 선거, 인수위 과정도 없이 시작되는 다음 정부가 정부혁신과 관료개혁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준비할 시간은 너무 짧고,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공직기강은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져 있고 국회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는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도 조직 보위를 위한 연구용역과 인사 조치를 통해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대비는 부처 차원에서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하나도 변하(려 하)지 않는 관료들과 함께 다음 정부를 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회의 달라진 구도도 문제다. 다음 정부는 4개나 되는 원내교섭단체를 상대해야할 수도 있다. 여기에 연합정부까지 논의되고 있다. 법안과 예산안 통과는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대한민국 관료가 선택할 길은 명확하다. ‘위’만 쳐다보고, ‘안’만 고집하는 ‘관료제 없는 관료주의’로는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들 수 없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응답하기 위해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것이 관료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책임(responsibility)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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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의무를 위반한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마땅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229940" align="aligncenter" width="640"] ⓒ국회방송(2023)[/caption]  

국회가 8일 10.29이태원 참사와 관련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국정조사를 통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 명백함이 드러났음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민 장관에 대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그 책임을 물은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비호 아래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책임을 외면하는 이상민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당연한 귀결이다.

10.29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무능과 부재로 일어난 사회적 참사이다. 이번 참사는 충분히 예견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행안부를 비롯 지자체, 경찰 등 정부가 대비하지 않았고, 참사 직후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특히 정부 재난안전의 콘트롤타워인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참사 직후는 물론 참사 이후 수습과 피해자 지원 과정에서도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의무를 철저히 방기하였다. 또한 국가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막말로 국민의 신뢰마저 배반하였다.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고, 위증으로 고발당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 장관의 헌법과 법률 위반, 또 그 위반의 중대성은 명백하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정부의 재난안전체계를 총괄해야 하는 헌법과 법률 상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법적 책임이 없다며 이상민 장관을 재신임하고 국회의 해임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사 이후 100일 넘게 아무도 참사의 정치적, 행정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고위공직자가 없는 비정상적 상황이 지속되었다. 분출하는 국민과 피해자∙유가족의 파면 요구를 받아들여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탄핵에 나선 오늘의 결과는 오히려 늦은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상민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과 10.29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마땅하다.  끝.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수, 2023/02/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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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보수-진보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
2023. 4. 6.(목) 10시, 국회 소통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보수-진보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4월 10일부터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놓고 국회 전원위원회가 예정된 가운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4월 6일(목) 오전 10시,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의 소개로 <국회는 비례성 강화와 지역구도 완화 위한 선거제도 개혁방안 논의하라> –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보수-진보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2023년 1월 18일, 범시민사회단체연합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초당적 정치개혁 진보·보수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표의 등가성(비례성) 보장과 승자독식의 기득권 구조 타파, △특정 정당에 의한 지역 일당지배 체제 해소, △정당 공천의 문제점 개선 및 유권자의 참여권 확대 등 선거제 개혁의 3대 원칙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후 이들 단체는 위 3가지 원칙에 입각해 각 단체의 기본 입장과 국회에 발의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아래의 합의를 이뤘습니다.

  • 첫째, 국회의원 선거제 개혁에 있어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며, 위성정당 방지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 둘째, 다인선거구제를 채택할 경우, 대선거구제(5인 이상)를 도입하되 농어촌 및 인구희소 지역은 예외를 둘 수 있다(다만 1인 선거구는 불가). 이 경우에도 비례대표 의석은 늘려야 하며, 연동형과 병립형을 모두 검토 대상에 올릴 수 있다.
  • 셋째, 첫째와 둘째 방안 모두 권역별 개방형 명부제, 지역구 비례 동시등록제를 검토할 수 있다.

국회 전원위원회가 4월 10일부터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예정하고 있지만, 기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평가와 개혁의 방향에 대한 국민적 의견 수렴이 여전히 미진하고, 정치개혁특위가 전원위원회에 제출한 세 가지 방안 역시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라는 선거제도 대원칙에 비춰 매우 미흡합니다. 따라서 정개특위 의결안에 국한하여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이후 예정되어 있는 유권자 공론조사 등의 과정까지 고려해 선거제 개혁 방안에 대해 충분히 숙의 토론해야 합니다. 이에 범시민사회단체연합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원칙과 방향으로 삼아야 할 기준과 절차 등을 제시하고자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기자회견문

국회는 비례성 강화와 지역구도 완화 위한 선거제도 개혁방안 논의하라

대량의 사표를 발생시키고 민의를 왜곡하여 거대 양당의 기득권과 망국적 지역주의를 재생산하는 승자독식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오랫동안 우리 정치의 후진적 대립주의와 극단적 진영주의, 민심과 유리된 계파정치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획기적인 선거제도 개혁으로 한국 정치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열망은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국민적 요구이다.

국회가 오는 4월 10일부터 20년만에 전원위원회를 개최,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한다. 지난 1월 18일, 보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과 진보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국회의원 선거제의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원칙으로 표의 등가성 보장과 승자독식의 기득권 구조 타파, 특정 정당에 의한 지역 일당지배 체제 해소, 정당 공천의 문제점 개선 및 유권자의 참여권 확대 등 3대 원칙에 합의하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3월 22일 최종 제안한 세 가지 선거제도 결의안은 이러한 선거제도 개혁의 대원칙에 비추어 볼때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데 미흡해 보여 우려된다. 특히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와 위성정당을 방지할 대안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제 국회의원은 전원위원회를 진행함에 있어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의 한계가 뚜렷한 3개 결의안에 국한하여 논의해서는 안된다. 소속 정당의 유불리나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려는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회 개혁의 대원칙에 가장 걸맞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고민하고 국민 앞에 제안해야 할 것이다.

한편 선거제도는 주권자 국민이 자신을 대리할 대표를 구성하는 과정으로, 그 제도를 개편하는데 있어서 심도 깊은 토론과 국민적 대화의 과정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비록 현실적으로 선거구 획정의 법정 시한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지체되긴 했으나, 이제라도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공론조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다만 현재 제시된 로드맵 만으로는 시일이 촉박하고 성급하여 얼마나 내실 있게 조사될 것인지 낙관하기 어렵다. 또한 이렇게 도출된 결과가 국회의 논의과정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공개된 바가 없다. 비록 획정 시한은 준수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런 만큼 국회는 국민들의 의사가 논의 과정에 충실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향후 절차와 일정을 잘 조율해야 할 것이다.

선거개혁에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지향해야 할 원칙과 지켜야할 절차가 있을 뿐이다. 진보-보수 시민사회는 이런 원칙과 절차를 거쳐 도출된 대안이 국민에게 희망을 줄수 있는 정치를 가져오기를 희망하며, 비례성과 대표성의 강화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

첫째, 국회의원 선거제 개혁에 있어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며, 위성정당 방지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다인선거구제를 채택할 경우, 대선거구제(5인 이상)를 도입하되 농어촌 및 인구희소 지역은 예외를 둘 수 있다(다만 1인 선거구는 불가하다). 이 경우에도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하며, 연동형과 병립형을 모두 검토 대상에 올릴 수 있다.

셋째, 첫째와 둘째 방안 모두 권역별 개방형 명부제, 지역구 비례 동시등록제를 검토할 수 있다.

국회는 보수와 진보 시민사회가 당파와 이념을 초월하여 마련한 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앞으로 예정된 선거제 논의 일정에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선거 개혁의 성패는 국회가 얼마나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의 열망에 답하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국회가 될 수 있도록, 국회 또한 여야의 정략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합의된 개혁안을 마련하라.

2023년 4월 6일
범시민사회단체연합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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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3/04/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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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23년 4월 20일(목) 오후 2시~4시 장소: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 주관·주최: 고민정 국회의원, 윤미향 국회의원, 환경운동연합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수입 수산물의 원산지 둔갑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국민 수산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회와 시민단체는 국민 수산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이력제 관리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발제
  1. 국내 수산물이력제 관리 현황 - 강거영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품질관리과 과장
  2. 국내 수산물이력제 강화를 통한 국민 식품 안전 보호 방안 - 이용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팀장
  3. 수입수산물 이력제 현황 및 개선점 - 정우진 EJF(환경정의재단) 캠페이너
  토론 좌장: 백명수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토론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 최미정 서울 자양고등학교 학부모 김종식 연안어업인협회 회장 최성근 시사저널E 기자 김수현 에코생협 이사
일, 2023/04/1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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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전부개정법안> 당장 폐기하라! 강원특별자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라!

[caption id="attachment_231226" align="aligncenter" width="800"]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전부개정법안 폐기와 공론화를 요구하는 한국환경회의[/caption]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 44개 시민환경단체가 소속된 한국환경회의는 4월 26일(수) 11시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한국의 아마존, 강원도 난개발법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올해 6월 11일, 강원도가 강원특별자치도로 출범합니다. 이를 지원한다며 지난 2월, 22년 제정된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전부개정법안(이하 특별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의 대표 발의하고 여야 86명에 의해 공동 발의되었습니다.
특별법 개정안은 강원특별자치도의 지방분권을 강조하며 핵심 4대 규제(농지, 국방, 산림, 환경 분야)의 개선과 권한 이양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특별법 개정안은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규제 혁신을 통한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환경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 도민의 복리 증진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법 개정안을 면밀히 살펴보면 강원도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며, 국가의 온갖 권한을 유린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경악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정부가 법에 따라 국토환경을 잘 보전할 수 있도록 감시, 견제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기존 환경법 체계를 무력화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국토환경을 인질삼아 강원지역의 표를 구걸하는 행위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법안 보기> > 강원특별자치도_설치_등에_관한_특별법_전부개정법률안 공동발의자 : 허 영, 신정훈, 서영교, 이개호, 임호선, 김병주, 박상혁, 김철민, 강훈식, 송갑석, 소병훈, 최종윤, 한병도, 정성호, 김윤덕, 박광온, 백혜련, 안규백, 한기호, 김두관, 홍익표, 주철현, 고민정, 김회재, 이철규, 인재근, 노용호, 권성동, 신현영, 박정하, 김기현, 정우택, 김영주, 유상범, 오영환, 안철수, 조수진, 조은희, 양금희, 최강욱ㆍ정경희, 이종성, 전주혜, 우원식, 이양수, 황보승희, 서일준, 신원식, 윤상현, 이원욱, 하영제, 이주환, 장철민, 남인순, 최인호, 강대식, 김용판, 지성호, 정운천, 박대출, 이용빈, 박대수, 윤두현, 이 용, 노웅래, 송기헌
  <기자회견문>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전부개정법안> 당장 폐기하라! 강원특별자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라!

강원도가 강원특별자치도로 출범하기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를 지원하는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전부개정법안(이하 ‘특별법 개정안’)이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여야 86명에 의해 공동발의되었다. 국회는 약식 공청회를 해서라도 5월 중에 통과시키겠다며, 호언 장담하고 있다. 특별법 개정안은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규제 혁신을 통한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환경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 도민의 복리 증진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 개정안을 면밀히 살펴보면 강원도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며, 국가의 온갖 권한을 유린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더구나 경악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정부가 법에 따라 국토환경을 잘 보전할 수 있도록 감시, 견제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기존 환경법 체계를 무력화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국토환경을 인질삼아 강원지역의 표를 구걸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특별법 개정안은 「물환경보전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수도권 인구의 80% 이상이 상수원으로 이용하는 팔당 수질 관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 없다. 특별법 개정안은 도지사가 첨단과학기술육성 및 산업기반을 조성한다며 과학기술단지를 조성하는 개발사업에 한하여 상수원보호구역의 상류지역, 특별대책지역 및 그 상류지역, 취수시설이 있는 지역 및 그 상류지역에 배출시설 설치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대한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없는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조건을 달고 있지만, 환경부조차도 특정 방법으로 폐수를 처리하더라도 상수원은 무단방류, 화재, 공정누출 등으로 인해 오염 될 우려가 있어 수용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행안위 검토보고서에 제시한 바 있다. 한강 유역은 5개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지사에게 상수원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권한을 이양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특히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린 수도권 의원들에 대해서는 수도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법」 제도의 목적 자체를 상실시키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는 국가가 지역균형개발과 환경보전, 도모를 위해 환경의 영향을 평가하고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특히 전략환경영향평가는 계획의 적정성, 입지의 타당성 등을 검토하고 국토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제도다. 특별법 개정안은 전략환경영향평가부터 환경영향평가 협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관한 환경부 장관의 세세한 권한을 모두 도지사, 도의회에 권한을 이양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국토의 환경용량, 지역간 균형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의무를 져버리는 행위다. 산지관리법 특례를 통해 국가 산림생태축을 위협한다. 특별법 개정안은 산림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구역, 민간인 통제선 이북지역의 산지관리에 관한 특례를 명시하고 있다. 국가 산림의 약 20%가 강원도에 있으며, 강원도의 약 80%가 산림이다. 산림은 국가의 자원이자 국민의 환경권을 위해 종합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산림을 합리적으로 보전, 이용하기 위해 국토를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무는 국가에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산림생태축 일 뿐 아니라 강원도 생태계의 보고다. 강원도는 제주도처럼 섬이아니다. 특례를 통해 지정해제권한을 강원도지사에게 이양한다면, 국가 산림생태축의 붕괴 뿐 아니라 그 영향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특별법 개정안은 분권을 강조하면서 강원도가 누리던 국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은 계속 누릴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안무치하다. 기존의 법적 권한을 가져간다면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도 함께 져야 마땅하다. 개발 권한은 강원도에 내어주고, 경제적 책임과 의무는 국가에게 있다는 발상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인류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전지구적 도전 앞에 서있다. 한국 정부 역시 생물다양성 붕괴를 막고 더 많은 자연으로 나아가기 위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채택한 바 있다. 이같은 엄중한 시기에 여야 국회의원 86명이 주요 환경 법안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특별법 개정안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개탄할 일이다. 오히려 국회가 나서서 강원특별자치도가 한국의 자연자산을 잘 보전하면서도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환경회의는 특별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강원특별자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에 대한 공론화를 요구한다. 국회가 졸속으로 법안을 처리한다면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국회는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전부개정법안> 당장 폐기하라! 강원특별자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라!
2023.04.26
한국환경회의
수, 2023/04/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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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파괴의 원흉, 강원특별법을 가결한 국회를 엄중하게 규탄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강원특별법)이 오늘 본회의에서 의원 찬성 171명, 반대 25명, 기권 42명으로 통과했다. 국토의 허파 역할을 하는 강원도를 막개발로 몰아놓을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이양하는 법안이 단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강원특별법은 환경영향평가 등 주요 환경규제를 도지사에게 넘겼다. 한국환경회의는 강원도의 장점을 살린 지속 가능한 공생을 위한 공론화를 국회에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다. 강원특별법으로 시작된 난개발은 전 국토를 뒤덮을 것이고, 책임은 결국 시민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환경회의는 책임 없는 난개발법을 통과한 국회와 참여 국회의원을 엄중한 마음으로 깊이 규탄한다. 법안의 가결은 새로운 국토 파괴의 시작으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오늘 통과한 강원특별법은 지난 2월 6일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을 포함한 86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해 속전속결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은 ▲산림이용에 대한 특례 ▲농지전용허가 ▲산지산업과 자유무역 특례 ▲환경영향평가 권한 이양 특례 ▲민통선 및 보호구역 지정⋅변경 등의 특례 권한을 모두 도지사에게 이양하는 내용이다. 이번 법안은 23일 늦은 밤에 행전안전위원회 소위 개최를 결정하고 다음 날 오전 법안심사 제1 소위, 오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오늘 오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토의 허파인 강원도를 난개발 속으로 밀어 넣는 법이 충분한 논의 없이 단 이틀 만에 속전속결로 끝났다. 한국환경회의는 새로 출범하는 강원특별자치도의 녹색을 부각한 지속 가능성 공론과 숙의를 국회에 제안했지만 무시됐다. 법안 내용으로 예측 가능한 환경파괴와 생태계 훼손으로 발생하는 전 국민의 생명⋅환경권 문제를 해결하면서 강원도가 보유한 강원도만의 녹색 자산을 이용해 지속 가능한 발전 대안을 찾기 위한 공론과 숙의였다. 강원도가 생각하는 농지, 산림, 환경, 군사는 규제가 아니라 생태 도시로 발전하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강원특별법으로 시작하는 국토 파괴가 전국으로 퍼질 것이 우려된다. 강원특별법은 제주특별법과 동등한 수준을 요구한 법안이다. 하지만 지금 제주는 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제주 내부적으로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별법이 없어도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가 전국에서 일고 있는 상황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제외한 모든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도지사에게 넘긴 강원특별법은 전 국토 파괴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특별자치도를 준비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요구 수준은 강원특별법을 기준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환경회의는 예견된 환경파괴를 묵과하고 강원특별법을 통과시킨 171명의 국회의원의 그릇된 선택을 규탄한다. 더불어 이들은 국토 파괴의 원흉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171명의 국회의원은 앞으로 진행될 국토 파괴에서 무한한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통보한다.
한국환경회의
2023. 5. 25
목, 2023/05/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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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핵 오염수 해양투기가 지난 8월 24일부터 시작하여 현재 3차 투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오염수 방류구 인근에서 삼중수소 농도가 증가하는가 하면 설비 고장이 발생하고, 최근에는 오염수 정화 설비의 배관 청소를 하던 작업자들이 분출된 오염수를 뒤집어 써 피폭되는 등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종합적인 상황을 분석하고, 국민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국회 출입 시 준비물 : 신분증 필수지참!) ?일시 : 2023. 11. 16(목) 10:00 ?장소 :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 ?일시 : 2023년 11월 16일(목) 오전 10시 ?장소 :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 ?주최 :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국회의원 우원식, 이수진(비), 강은미, 용혜인, 강성희 ? 유튜브 생중계 : https://bit.ly/3sjyGnP ?프로그램⠀⠀⠀⠀⠀⠀⠀⠀⠀ [발제] - 제3차 해양투기의 문제점 - 해양투기로 인한 환경/건강 상의 위해 ⠀⠀⠀⠀⠀⠀⠀⠀⠀ [토론] -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의 해양환경 영향 검토 -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에 따른 어민 피해 현황 -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헌법소원 주요 쟁점 - 일본 방사성식품 수입금지 공공급식조례 재개정운동 제안 ⠀⠀⠀⠀⠀⠀⠀⠀⠀ [질의응답]
화, 2023/11/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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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핵발전 확대 위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폐기하라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기업위원회는 11월 22일 법안소위를 열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련 특별법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를 비롯해 지역대책위와 시민사회는 윤석열 정부가 노후핵발전소의 수명연장과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어떤 의견수렴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음을 비판해왔다. 특히 이러한 핵발전 확대정책이 고준위핵폐기물의 포화와 영구처분장 마련 등의 어려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짚어왔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내년 수립 예정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더 추가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상태다. 수명연장과 신규건설까지 아무런 제한없이 핵폐기물이 늘어나도 핵발전소 부지 내 저장 등을 허용하는 고준위핵폐기물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현재 핵발전소 지역은 발전소와 핵폐기물을 동시에 대책 없이 떠안고 사는 영구적인 위험지역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에 대한 의견수렴이 형식적인 공청회 수준으로만 그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밀어붙이면 지역주민들이 반대 의견을 가져도 막을 길이 없다.

정부는 핵발전 확대에 눈이 멀어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오염수 해양투기 마저도 용인하고 있다. 더 안전한 방법이 있음에도 이를 택하지 않고 바다를 핵으로 오염시키는 일본 정부와 핵산업계의 파렴치함을 용인할 이유는 없다. 오염수 해양투기에도 아무런 문제도 제기 못하는 정부가 고준위핵폐기물의 위험은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우리는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핵폐기물의 대책이 없다면 그 발생부터 줄여나가는 것이 최소한의 책무다. 적반하장 식으로 모든 노후핵발전소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핵발전소 최대한 늘리겠다는 것이 폐기물 대책이 될 수 없다. 핵폐기물이 제한 없이 늘어나는 정책을 수립해놓고, 마치 고준위핵폐기물 특별법이 이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서는 안된다.

핵발전 확대만을 위한 특별법 논의 중단하고 폐기하라. 핵폐기물 대책없고, 위험을 떠넘기는 핵발전소 수명연장, 신규건설 반대한다.

 

2023년 11월 20일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탈핵시민행동

 

월, 2023/11/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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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09]

 

'제왕 대통령'을 향한 국회의 사소한 펀치

국회법 개정안을 위한 변명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제왕적 대통령제, 그것은 우리 헌정사의 출발에서부터 잉태됐다. 이승만의 억지로 의원내각제의 초안에 대통령체제를 덧씌우며 출범한 잡종 교배식 제헌헌법은 애초부터 대통령의 전횡을 막기 어려웠다. 원내 제1당이었던 한민당과의 갈등을 빌미로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를 제치고 직접 국민을 동원하면서 추가의 권력을 확보해나갔다. 국회에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주고자 했던 내각제 방식의 권력 구조는 도리어 대통령이 국회를 조종하는 통로로 전락했다. 여기에 권위주의 군사 정권이 등장해 국회와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정치가 행정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 정치를 제어하고 통제하는 이상한 국정 운영의 틀이 고착됐다. 그리고 대통령은 거의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위임 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이런 질곡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이 개정안을 두고 절대아성으로 구축된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국회의 불경스러운 간섭으로 간주하는 즉물적인 반발도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대통령의 무결성, 무오류성이라는 저 권위주의 체제의 패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동안 위임 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라는 문제는 학계에서 수많은 분석(혹은 법 해석)과 제도 개선 제안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조차도 이전에 쓴 논문에서 독일이나 미국과 유사한 방식의 국회 개입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정도였다.(그 학자들이 왜 생각을 바꾸게 됐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변덕과 침묵은 너무도 자주 목도되는 바람에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게 됐다.) 적어도 법 이론적으로는 위헌론은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하여, 널리 국민이나 국가 기관 등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를 지는 법규범은 국회가 제정하도록 명령했다. 대통령령이나 총리령, 부령 등의 행정 입법은 이러한 국회의 고유 권한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그래서 그것을 전문 용어(?)로 '위임' 명령이라 한다).

 

이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 중개사를 찾아간 경우와 마찬가지다. 위치나 평수나 가격 등을 범위를 정해서 중개사에게 알려주면 중개사는 그에 맞추어 의뢰인의 의향과 능력에 맞게 매물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중개 수수료 수입에만 눈이 먼 중개사가 있어 아파트가 아니라 공장을 사라고 한다든지, 원하는 평수보다 훨씬 큰 아파트를 사라고 한다든지 혹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후려친다'든지 하는 경우(아쉽게도 중개사와는 달리 우리 행정부는 이런 월권을 비일비재하게 저지른다)에 의당 의뢰인은 그 중개사에게 "그게 아니니 제대로 하라"라고 요구할 수 있고 또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의뢰인이 그렇게 요구했다고 해서 중개사가 그 매물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매물 자료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시 한 번 지침을 주면서 제대로 된 매물을 찾아서 오라는, 아주 미미한 요구에 그칠 뿐이다.

 

이번의 국회법 개정안은 딱 이 정도이다. 그것은 그냥 대통령이나 장관 등에 대해 거기서 만든 시행령 혹은 시행규칙이 법률에 위반되거나 위임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니 수정하거나 변경하라-"그게 아니니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그친다. 여기에 강제력이 있니 없니, 그래서 그것이 권력 분립 원칙을 위반하느니 아니니 하며 입을 댈 일은 아니다. 사리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도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법률에서 하라는 대로 시행령과 시행 규칙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날 이유도 없다. 법률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의당 무효이기 때문에 권력 분립 운운할 여지도 없다. 오로지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가 못마땅한 권위적인 행정부 혹은 대통령만 존재할 따름이다.

 

사실 이 부분의 문제는 시행령이나 시행 규칙이 위법하거나 부당한지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발생한다. 국회는 위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고 수정·변경을 요구했는데, 대통령이나 장관은 그 요구가 잘못된 것으로 국회가 괜히 행정부의 업무에 개입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위임해 놓고도 이런 저런 간섭으로 중개사가 일도 못 하게 하는 의뢰인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세간사와는 달리 우리 헌법의 세상은 그러한 간섭 자체를 명령하고 있다. 현대 국가에서 의회의 역할은 입법이나 주요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일과 함께-혹은 그 이상으로- 막강한 권력과 권한을 가지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제어하는 일에도 중점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의회는 정치적 토론과 설득의 장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국민을 향해 열려 있다. 법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혹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의회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대통령이나 행정부로 하여금 그에 대해 답변하고 설명하고 또 반박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법률(시행령)이나 정책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칼 슈미트가 의회주의의 본질을 공개와 토론에다 두고 있음은 이를 의미한다.

 

이 국회법 개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국회가 정부에 대해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하며 간섭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간섭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회라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정치이다. 시행령·시행 규칙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는 국가 정책의 향방을 두고 국회와 대통령·행정부가 벌이는 정책 경쟁의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종래에는 아무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되던 것이 이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정쟁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국민은 왜 그것이 문제가 되며 그 해결을 위한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무엇이 최선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여론이든 청원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국민의 의사를 이 정책 과정에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수정·변경 요구권-과 그것을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어긋나게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월권적·위헌적인 것이 아니라, 국회라는 대의 장치를 통해 국민이 조금씩이나마 진정한 주권자의 자리로 가 앉을 수 있는 미미한 가능성이라도 열어주는 것이 된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전횡을 방지하며, 정치와 행정 그리고 국회와 대통령의 자리를 정위치시키는 유의미한 단초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제헌 이래 우리나라 국회는 지나치게 폄하되어 왔다. 이승만 정권의 권력욕은 국회의 권한까지도 용납하지 못 했고,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군사 정권은 정치 자체를 비생산적이라는 명분으로 부정적이거나 해악으로 가득한 것인 양 호도해 왔다. 그래서 국회는 무조건 무능하며 국회가 제기하는 문제는 국정의 혼란을 초래하는 발목잡기일 따름이라는 '데마고그(demagogue)'가 횡행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하는 위헌론 혹은 국정 파국론은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현실은 국회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하고 법관의 임명 과정에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개입하는 등 권력 분립의 헌법 정신이 여지없이 도륙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그나마 '민주적 입헌주의'(헌법재판소의 표현)에 부합하는 제 역할을 찾고자 마련한 그 작은 개선안 하나를 못 견뎌서, 공무원 연금 제도 개혁이라는 정부의 최우선적 국정 과제도, 메르스라는 국가적 위난도 다 제쳐버리고 서슬이 퍼런 비난을 퍼붓는다. 과거 군인·군속에 대한 이중 배상을 금지했던 국가배상법을 '감히' 위헌이라 판결한 대법관들에 대해 가차 없이 처단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처럼, 국가 그 자체인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입 대고자 하는 국회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무차별적인 처단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의 국회법 개정안이 입헌 정치의 최첨단에 서게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그것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태초부터 잘못된 우리 헌법의 맹점을 조금이라도 고쳐나가려는 갸륵한 시도이다. 그것은, 시행령, 시행 규칙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유린하던 반(反) 법치의 행정 관행과, 국회에 대한 행정부의 절대적 우위를 구가해왔던 잘못된 권력 분립의 체제,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미미하게나마 나름 의미심장한 흠집내기다.

 

그것은 법치주의의 실천을 위해서도, 국회의 제자리 찾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해서도, 그리고 너무도 비대해진 국가권력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진 우리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내어야 하는, 작으면서도 커다란 첫걸음이다. 로크는 "누가 군주나 입법부가 그들의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관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그의 통치론을 펼친다. 이번 국회법 수정안은 바로 우리 국민이 그 답이어야 함을 재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5/06/1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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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난 3월, 선거구 재조정과 정치개혁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했습니다.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 1로 줄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로, 2015년은 그 어느 때보다 선거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적기입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8월 말까지 활동할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관련 정당활동을 밀착 감시하고, 모니터링 논평을 연속 발표합니다. 


>> 국회 정치개혁특위 모니터링 논평 <1> 선거구획정안의 국회 수정 권한 없애는 것이 개혁의 핵심

>> 국회 정치개혁특위 모니터링 논평 <2> 소위원회 구성조차 하지 않고 늑장부리는 정개특위

>> 국회 정치개혁특위 모니터링 논평 <3> 선거구획정안 국회 수정 권한 폐지 합의 환영한다

>> 국회 정치개혁특위 모니터링 논평 <4> 선거구획정위 권한 강화한 만큼 획정위원 독립적 구성이 필수

>> 국회 정치개혁특위 모니터링 논평 <5> 정개특위, 소위원회 비공개하고 밀실에서 정치개혁 논의하나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 비례대표 확대 제안 환영한다

비례대표 확대 위해 의원정수 조정 방안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해

국회 정치개혁특위 모니터링 논평 <6>


7/26,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현행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369명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소장 :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비례대표 확대가 현재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이며, 이를 위해 예산 동결, 특권 폐지 등이 전제된다면 의원정수 확대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제안을 적극 환영하고, 이 제안을 계기로 국회가 비례대표 확대와 의원 정수 조정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할 것을 촉구한다. 

 

지난 6/30, 전국 174개 시민사회단체들도 2015 정치개혁방안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독점 현상을 완화하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최소한 2:1이 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의원정수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최근 참여연대가 진행한 선거․정당 전공자들의 설문조사에서도 비례대표제를 확대·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71.2%(총 응답자 111명 중 79명)로 나타났고, 의원 정수를 현재보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77.5%(111명 중 86명), 이 중 70.3%(78명)가 총 의석수가 최소 330석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이 비례성을 높이고, 적정 의원수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국민들도 헌법재판소 결정대로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현행 ‘3 대 1’에서 ‘2 대 1’로 줄일 경우 지역구 의석을 지금보다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주장은 비례대표를 축소하겠다는 것과 다름없고, 명백한 개악이다. 절반에 가까운 투표가 사표가 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하고, 다양한 입법적 요구의 반영과 행정부와 사법부 견제 감시를 위해 적정 의원수가 얼마인지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 때 국회의원 지원 예산 혹은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등을 축소하고 불필요한 특권을 폐지하는 등 자구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월, 2015/07/2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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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촉법·인터넷은행법·규제프리존법 등 문제 법률, 결국 국무회의 의결

국회의 입법권이 행정부에 좌지우지되는 민주주의 훼손 우려되는 법들

재벌에 대한 무분별한 특혜와 대표적 적폐인 관치금융을 연장하는 결정

실용의 탈을 쓴 재벌 특혜, 한 번 허용하면 큰 위기 없이는 돌이키기 어려워

지난 정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법안 통과 과정의 비민주성과 폭력성 드러내

 

어제(10/8)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개최하여 지난 2018.9.20. 국회를 통과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하 “기촉법”)을 의결하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이하 “인터넷은행법”),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개정법률」(이하 “규제프리존법”)을 포함한 규제샌드박스 3법 등을 공포했다. 이들은 모두 ▲재벌에 대한 특혜, ▲관치금융 적폐의 연장, ▲행정부에 대한 입법권의 과도한 이양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적 반대가 만만치 않았던 법들이다. 참여연대 역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들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2018.9.21.에는 다른 노동·시민단체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 법안의 국회 통과를 처음 추진했던 것처럼 이들을 최종적으로 우리 사회의 제도로 만들었다. 이는 규제완화가 가져올 결과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낙관적 전망에만 기댄 무모한 선택이다. 

 

이번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법들의 실상은 재벌에 대한 무분별한 특혜와 우리 경제의 대표적인 적폐인 관치금융의 연장일 뿐이다. 이런 특혜는 한 번 제도화 하면 커다란 경제위기와 같은 비극적 사태가 없는 한 돌이키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문재인 대통령에 보조를 맞춘다면서 이를 반대하는 의원들의 정무위 배제, 원칙 없는 밀실 야합, 의원총회 합의 도출 없는 당 강령 파기, 반대하는 시민들의 국회 출입 선별적 통제 등 박근혜 정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민주성과 폭력성을 보였다. 민간의 활력을 위한 규제혁신을 외치면서 역설적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차 없이 배제한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 김경율 회계사)는 문제 법들에 대한 거부권 행사 요청을 외면하고, 결국 국무회의에서 처리한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앞으로 이들의 폐기와 또 다른 문제법안의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임을 분명히 한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공포가 의결된 인터넷은행법은 우리나라 금융감독의 오래된 원칙인 은산분리 규제를 형해화(形骸化)하면서 재벌에게 은행소유의 문호를 개방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ICT 기업에는 은행소유를 허용하되 재벌의 은행소유는 막겠다고 주장하지만 ICT 기업이 동시에 재벌이기도 한 현실에서 이런 구분은 그 자체가 어설픈 궤변일 뿐, 절대로 현실적인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 대통령 스스로 대선 후보 시절,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현행 은행법 하에서 인가받은 은행법상의 은행이고, 특정 기업을 위해 섣불리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갈파한 뒤, 불과 1년 여 만에 이런 상식을 뒤집은 것이다. 사실상 재벌인 ICT기업에 은행 소유를 허용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재벌의 은행 소유를 봉쇄한 것 같은 모양새를 연출하기 위해 갖가지 꼼수를 부렸다. 그 대표적인 부분이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정책목표의 구체적 내용을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시행령에 백지위임하고, 또 동시에 “부대의견”을 통해 ICT 기업이라면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인가 요건을 적용하지 않도록 배제조항을 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대의견이 법률을 압도하고, 그에 따라 법률에 배치되는 위법한 시행령을 통해 현실을 규율하는 금융감독의 무법상태를 연출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정책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관치금융의 상징인 기촉법이 규제혁신의 홍수 속에서 은근슬쩍 부활한 것 역시 크나큰 문제다. 관치금융은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지적했듯이 정부가 모피아를 동원해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식으로 개입했던 지난 개발연대의 유물이다. 따라서 이 법은 관치금융이라는 금융분야 적폐청산을 위해서 폐지해야 할 대표적인 법안이었고, 올해 6월말을 계기로 일몰이 완료된 이후에는 ‘법원과 자본시장을 이용한 부실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선진적 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을 모색했어야 마땅하다. 만일 국가가 다른 정책적 목표를 위해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면, 부실기업이 회생절차에 편입되어 금융기관등 기존의 채권자가 응분의 부실책임을 모두 떠안은 이후에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채권자의 부실책임 분담, ▲공적자금 투입규모 최소화 그리고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생목적 활용 등의 측면에서 훨씬 더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마치 모피아에 의존하지 않고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는 양, 기촉법을 부활시켰다. 그것도 2년 한시법이 아니라 슬그머니 5년으로 그 기한을 늘렸다. 이제 이번 정부는 무슨 논리로 대우조선해양에 막대한 규모의 공적자금 지원을 결정한 ‘서별관회의의 문제점’을 단죄할 것인가. 인터넷은행법 통과를 통해 케이뱅크 인허가의 문제점을 은폐한 것처럼, 기촉법의 부활을 통해 지난 정부가 서별관회의를 통해 주도한 대우조선해양 지원에 대해서도 그대로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한 번의 잘못으로 도입된 제도를 청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은행법과 기촉법 통과가 지난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를 은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규제프리존법은 지난 박근혜 정부가 벌이려고 했던 미래의 정책 실패를 현실화 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법은 “관련 법령이 모호하고 불합리하거나, 제한규정 등으로 사업화가 어려운 신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사업자가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를 신청하면 민관합동 심의위원회(위원장 : 관계부처 장관) 심의를 거쳐 특례(2년 이내, 1회 연장 가능)를 부여”하는 법이다. 

 

이 법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그 법률의 취지를 이어받은 하위 규범을 행정부가 사실상 좌지우지하겠다는 점이다. 법률이 모호하거나 불합리하면 국회가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법률은 명확하지만 시행령 등 하위 규범이 잘못되었다면 정부가 이를 사전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바로잡으면 된다. 그런데 이 법은 이들을 하나로 뭉뚱그린 후 사업자의 신청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장관이 특례를 부여하거나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명백하게 국회의 입법권을 실질적으로 훼손하는 법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규제프리존법과 함께 공포안이 의결된 나머지 규제샌드박스 3법인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산업융합 촉진법」도 궤를 같이 하는 문제다. 

 

두 번째 문제는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사업자의 목소리는 체계적으로 보장되는 반면, 기존 규제가 보호하고 있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장치는 없다는 점이다. 이 법에 따르면 규제특례가 일단 인정되는 경우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자신의 의사나 선택과 관계없이 무조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기본권을 적용받는다. 개인정보보호라는 기본권을 예로 들면 규제특례가 허용된 지역의 거주민은 사용자가 일정한 비식별화 조치를 하기만 하면 다른 지역의 거주민과는 달리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문제는 비식별화 조치가 과연 개인정보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합의가 아직 도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국가가 개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개인에게 별도의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특정지역의 국민들에게 여타 지역의 국민들과는 차별적인 기본권 보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가이다. 환경개발과 같이 지금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래세대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를 지방자치단체가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행정편의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새로운 정책방향을 모색하는 대신 박근혜 정부가 물려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지난 2018.10.5.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TBS의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하여  “진보진영은 어째서 2002년 만들어진 현행 은행법 은산분리를 한 글자도 고치면 안 되는 금과옥조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https://bit.ly/2C1kjYA)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미국식 파산제도, 독일식 노사제도, 스웨덴식 복지제도 등이 진보진영 개혁의 골격”이라며 “하나하나는 바람직한 제도지만 이를 모두 묶었을 때 효과적으로 가동될 수 있을지 고민할 때가 됐다”며 진보진영 내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사금고화에 대한 기억을 쉽게 지울 수는 없겠지만 지난 30년간 산업자본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며 “금융감독당국의 금융그룹통합감독시스템 등 사금고화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김 위원장의 발언이 이번 규제혁신을 바라보는 정부 고위직의 거의 유일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하면서도,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다른 부처의 업무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긴 오만함과 자기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진보진영이 2002년에 만들어진 은산분리를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2002년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은행과 금융기관을 사금고로 활용하거나 지배구조에 동원하는 재벌의 관행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변화가 없는데 변화하지 않는 현실의 방어막을 고수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이 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또한 진보진영의 정책대안이 이 나라 저 나라의 좋은 제도를 짜깁기 한 것일 뿐, 전체적으로 통일적인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 본인이 주장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은 상당 부분 유럽식 규제철학에 근거하는 것으로 미국식 은행감독 원리를 반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은행법의 사각지대를 자동적으로 보충해줄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통과된 기촉법은 그저 관치금융의 유산일 뿐으로 미국 연방파산법의 골격을 상당 부분 수용한 우리나라의 현행 통합도산법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이다. 게다가 규제프리존법이 채택한 “비식별화 조치만 취하면 개인정보 보호의 예외”라는 정책방향은 정작 유럽이 지난 5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의 취지에는 기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규제혁신을 위한다면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법들이 우리나라의 현행 규제체제와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 관행과도 수미일관한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작금의 입법파동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입법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김 위원장처럼 근거가 희박한 ‘진보진영 때리기’나 문 대통령처럼 ‘무조건적인 규제혁신 추구’ 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대통령이 원하니까 우리는 간다’는 정도의 즉물적인 입장 표명만이 있었을 뿐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야당과의 교섭에서 타협할 것과 지킬 것을 구분하는 정치력을 보이는 대신, 이를 반대하는 의원의 정무위 배제, 원칙 없는 밀실 야합, 의원총회 합의 도출 없는 당 강령 파기, 반대하는 시민들의 국회 출입 선별적 통제 등 박근혜 정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민주성과 폭력성을 보였다. 특히 2018.9.20.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아무런 정당한 사유도 없이 시민운동가들의 국회 진입을 선별적으로 금지했던 부분은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한 것으로, 과연 이 정부가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부가 맞는지를 의심케 할 정도였다. 이번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허울 좋은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며 후일 돌이키기 어려운 정책을 비민주적으로 추진하는 현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연대는 잘못된 제도의 폐지와 또 다른 잘못된 제도의 정착을 방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을 분명히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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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10/0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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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는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등단 이후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수작들을 선보이며 대선배 김수현 작가와 함께 현 한국드라마계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활동한 지난 20여 년 간은 국내 드라마사에서 제일 역동적인 시기였다. 데뷔 시기인 1990년대는 트렌디드라마가 처음 등장해 현대드라마의 주류문법을 완성했고, 중견작가 반열에 올라선 2000년대부터는 한류드라마와 막장드라마라는 두 가지 현상이 방송가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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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노희경 작가(사진)는 작품성과 시청률 양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시간 동안 드라마계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는 ‘표피성’이다. 트렌디드라마가 속도감 있는 편집,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 감각적인 배경음악 등 형식미 강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스펙터클화 하는 데 집중한 최초의 장르였다면, 여기에 스타캐스팅, 해외 로케이션, 화려한 세트 등이 더해져 외적 스케일을 한껏 키운 형태가 한류드라마였다. 그 변화의 끝에는 인간의 내면이 극단적으로 얄팍해지고 외적갈등만 자극적으로 부각된 막장드라마가 있었다.

노희경 드라마가 호평 받아온 이유는 이 극단적인 표피화의 시대를 거스르며 일관되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왔다는 데 있다. 외적 갈등보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중심에 놓고 그 감정을 심층까지 파고들며 점층적으로 고조시켜나가는 특유의 서사 방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강렬한 정서적 환기력을 이끌어냈다. 그녀의 스물세 번째 드라마인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러한 인간 성찰의 힘이 원숙의 경지에 도달한 노희경 최고의 걸작이다.

 

드라마에는 평균 연령 67세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관찰자 역할인 37세 박완(고현정)을 제외하면, 86세 최고령자 오쌍분(김영옥)부터 63세 막내격인 장난희(고두심)까지, 8명의 주요인물이 모두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이 노인들은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기보다는 노희경 인간 탐구의 최종성장형으로서 존재에 가깝다. 노희경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심층적 내면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고, 내면의 깊이가 한층 심화되는 것을 성장으로 그려낸다. 물론 이 자체는 그리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이미 ‘속이 깊다’는 말은 ‘어른스럽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과정을 통해 내면이 깊어지는가에 있다. 노희경 작가는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녀의 인물들은 대개 극 초반에는 상처와 결핍으로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가다가 곧 자신과 닮은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관계를 맺으며 성장해나간다. 이때 이들의 상처는 사회적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공동체 성장의 가능성으로도 확장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미혼모, 과부, 이혼녀, 장애인, 가난한 노동자의 아픔 등 그동안 노희경 작품에서 다뤄진 거의 모든 사회적 상처가 총망라되어 있다. 이 드라마가 노희경의 가장 원숙한 작품인 것은 인물들이 이러한 사회적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해가는 과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밀도 높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례는 ‘보수 꼰대’ 석균(신구)의 각성서사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온 그는 자신의 노고만 중시한 나머지 철저히 이기적인 괴물이 됐다. 어느 날 아침 아내 정아(나문희)가 떠나고 혼자가 되자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본다. 자신이 그녀를 평생 노예처럼 부리고 발닦개처럼 취급해왔음을.

아내의 상처를 알아보면서 그의 시선은 조금씩 확장된다. 습관대로 버스에서 우악스럽게 자리를 뺏고 보니 쫓겨난 소녀의 장애가 눈에 들어오고, 평소 아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쏟아낸 폭언들이 떠올려진다. 제일 심한 폭언을 퍼부었던 완이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지 죄를 지가 모른다는 거”라고 고백하는 그의 반성은 뼈저리다.

석균의 뒤늦은 성장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지닌 치명적 문제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석균처럼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말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태도다. 정부의 철학도 지배하고 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약자들의 인권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얼마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민생’으로 포장된 경제우선주의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가.

물질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뚝심 있게 인간의 가치와 연대를 존중하는 노희경 드라마의 윤리적 태도는 지금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이 젊은 거장의 또 다른 20년과 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월, 2016/06/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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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과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한국산업의 화두가 되었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세계적 규모의 금융과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과정이 겹쳐서 미증유의 산업구조적 변동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밀려오는 있다. 해운과 조선업뿐만 아니라, 해외건설, 석유화학, 철강 그리고 현재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반도체와 액정판넬 및 자동차산업까지 위기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전문가의 예언을 빌자면 수 년안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백 만명이 넘는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해운과 조선업의 구조조정이라는 현안은 단순히 해당 산업과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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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당정협의를 가졌다. (사진 출처: http://www.ss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5008)

다시 말하면 밀려오는 구조조정 문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의 원칙으로 해결하면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당장에 책임회피라는 미봉책으로 처리하면 한국경제가 재기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권이 벌리고 있는 구조조정 대책을 보면 무책임과 무능함 정도가 미봉책 수준이 아니라 역사적 범죄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재벌들의 족벌경영이 위기 키워

우선 해운산업을 들여다 보자.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여파로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고 무역의 물동량이 격감하리라는 것이 명확했다. 자연스레 한국내 해운업을 영위하는 300여 대부분의 기업은 이를 인지하고 사전적인 사업축소와 인원조정에 들어갔다. 덕분에 2015년 현재 해운협회에 등록된 150여개의 업체중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건전한 재무구조와 흑자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로지 재벌들이 운용하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만이 심각한 결손상태를 보이고 있고, 나아질 전망마저 보이질 않는다.

물론 컨테이너 중심으로 정기선을 운용해야하는 특수한 조건, 즉 전세계를 대상으로 적정 인프라를 유지해야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을 무시한 채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강요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실책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적인 책임은 기업을 운영하는 주주의 판단과 경영진의 능력의 문제였다. 한치 앞을 못 내다보고 무리한 용선계약을 맺은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이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면면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결국 재벌들의 무능한 족벌경영의 핵심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대마불사라는 환상을 하늘처럼 믿었던 데는 정부 관료와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지금이라도 양사의 자본지분을 결손액만큼 감자하고 채권액을 지분으로 전환한 후 양사를 합병하여 축소조정해야 한다. 이렇게 급한 불을 끈 뒤 시장에 다시 매각하는 것이 순리이다. 쉽게 말하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무능한 재벌들의 소유에서 분리시켜 냉정한 시장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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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media.daum.net/news/view/print?newsId=20160612194609514)

이와 동시에 ‘롯데그룹 형제의 난’에서 보듯이, 지긋지긋한 재벌상속놀음과 무능한 경영에 국민경제가 멍들고 서민들이 고통받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번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단호한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이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을 이룬 배경에는 금산분리와 반독점법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결단의 역사가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재벌에 대한 타협없는 감시감독의 철퇴를 준비해야 한다 ( 박상인교수의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길> 참조).

정경유착의 다른 이름, ‘서별관회의’

조선산업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재벌에서 정권과 관료로 옮겨간다.

지난 수 십년간 한국 조선업이 세계 일등산업으로 효자노릇을 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1960-7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유럽의 조선업계는 스웨덴 ‘뮐뫼의 눈물’이 상징하듯이, 대부분의 일반선박 물량을 한국과 일본에게 물려주고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고기술 고부가가치의 크루즈선, 요트와 탐색선, 특수선 등으로 사업영역을 이동시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소를 폐쇄시켜야 했다.

유럽이 겪었던 고통의 과정을 이제 한국 조선업계가 받아 들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운업과 마찬가지로 보호무역주의 부활이 예견되고,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이야기되면서 일반 선박의 수요가 격감하리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때마침 터져나온 해양개발 특수가 한국 조선업계를 살려주었다. 지난 십 여년간 삼성조선이 필두로 수주하여 큰 수익을 올렸던 ‘드릴쉽’ 사업을 신호탄으로, 백 여척이 넘는 해양플란트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사실상 특수수요로 형성된 해양플랜트를 제작할 곳이 한국 외에는 없었다는 저간의 사정이 있다.

유럽은 인건비와 노동시장의 성격상 이를 수주하여 건조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싱가포르 조선업이 이를 감당할 만했지만, 우선 ‘반잠수시추선’으로 전문화되여 있었고, 건조 규모에서 일정 수요이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단순 조선에서 산업플랜트로 다변화 되었던 일본 조선업계 역시 고임금과 더불어 사업영역을 쉽게 변신하여 해양사업을 수익성있게 감당하기 어려웠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아지역은 기술수준에서 제외되여 있었다. 해양플랜트의 특수수요는 한국 조선업계가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기회를 극적으로 반전시켜 수 조원 손실의 악재라는 구렁텅이로 조선업계를 떨어트린 중심에는 대우조선, 그 중에 남상태와 고재호라는 조연 배우, 그리고 이명박근혜정권과 서별관회의라는 주연 배우가 있었다. 

청와대 본관 서쪽에 위치한 서별관에서는 비공개로 주요 경제·금융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이명박근혜시대의 ‘서별관회의’는 정경유착의 은밀한 장소였다 (사진 출처: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55035)

이명박 부인의 연고로 대우조선의 사장으로 임명된 남상태라는 인물. 그는 해양플랜트가 가지는 기술적 위험성을 무시하고 발주처의 적정 예가에서 20-30% 이상 저가로, 그것도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괄수주( 턴키방식)를 무모하게 감행한 자이다.

해양플랜트는 시담에서 수주 그리고 건조와 진수까지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자기 임기에는 진수와 인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예측할 수 없는 위험으로 회사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른 자이다. 이런 관행은 그의 후임자에게도 되풀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행위가 대우조선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리한 수주경쟁을 통해 경험과 양질의 조건을 갖추었던 타 조선업체, 즉 삼성조선과 현대중공업에게도 파급되어 적자수주가 일반화되었다. 한마디로 대우조선의 행태는 물귀신작전이였다. 사태는 여기서 멈추질 않았다.

대우조선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무능과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감행했다. 조선같은 수주산업의 분식회계 기법은 매우 단순하다. 재고와 기성고 부풀리기, 그리고 회수 불가능한 악성채권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우조선을 감독하고 견제해야 하는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이다.

악질적인 경영책임자, 이를 공모한 회계법인, 그리고 이를 눈감아준 산업은행로 이어지는 총체적 부패고리를 통해 전형적인 공범 행위가 이뤄졌다. 더구나 이들 뒤에는 정권 실력자와 출세에 눈 먼 경제관료들이 숨어 있었다. 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핵심들이다.

이미 서별관회의를 통해 5조원이라는 국민 세금이 흘러 들어갔고, 앞으로도 우선 10조가 넘는 돈이 들어가야 한다. 더큰 문제는 여기서 멈추질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다,

뼈를 깍는 구조조정과 책임자 처벌 절실 

눈을 다시 세계조선시장으로 돌려보자.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앞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완화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여 격감했던 신규 조선수요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일반 신규조선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중국도 열 개의 조선업체 중 7-8개의 업체가 극심한 수주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인건비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도 이미 조선산업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일반선박의 신규수요는 중국과 동남아 조선소를 채운 다음에야 남는 수요가 한국에 돌아온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한국 조선업이 목을 매는 해양플랜트 특수수요는 미국의 세일가스사업이 본격화되여 유가가 50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급격히 축소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해양플랜트사업을 발표하여 한때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Petrobras(브라질 석유공사)가 브라질 경제의 재앙으로 변했고,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비리혐의로 호세프 대통령까지 탄핵사태를 맞았다. 이미 발주되었던 계약도 시장환경을 구실로 취소되고 건조된 플랜트조차 인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유럽정상들이 지구환경회의를 계기로 2050년 이후에는 화석연료로 운용하는 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해양플랜트수요는 이제 가뭄에 콩나듯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유럽과 같이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선 중심으로 재편될 수 밖에 없다 (서울공대 교수들의 공저 <축적의 시간> 참조). 현재의 조선건조 시설과 규모는 너무 방대하다. 순차적인 전환과 축소 그리고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 첫번째 대상은 대우조선이 될 수 밖에 없다.

구조조정에는 반드시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고통이 무서워 이를 회피하면 더 큰 재앙이 닥치게 될 뿐이다. 썩어가는 다리는 잘라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이명박근혜정권하에서 사태를 책임져야 할 관료들은 썩고있는 다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라 !

대우조선소는 폐쇄하고,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나머지 조무래기는 법과 규정대로 처리하면 된다. 12조원에 달하는 구조조정비용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사용하고, 거제지역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책임 회피와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자들을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금, 2016/06/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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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6. 1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군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형 노동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시의 원인규명 작업, 책임자 처벌, 대안을 기대해 보지만, 이것은 서울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리라.

지난 6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던 그는 고용불안 때문에 피켓시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고,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손에 공구를 들지 않는 아버지 세대 메트로 출신 간부나 정규직 직원은 400만원의 월급을 챙겨도 자신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노오력’해야 했다.

그가 살았다면 1년짜리 계약은 갱신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정규직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소개서를 200번이나 써야 하는 지금의 대졸 백수 청년이 되진 않았을까?

그래도 19살의 젊디젊은 그는 이 사회가 만든 교육을 통해 정규직도 되고 관리자도 될 수 있다는 기성의 신화를 의문시할 수는 없었다. 현실을 그냥 감내하기에 그에게 ‘미래’는 너무 크게 열려 있었다. 불행히도 그에게 미래는 없었다.

노동비하/계층상승이라는 도그마는 이 사회 주류층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시간제, 위험 작업장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들에게 더 높은 보상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적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관행이고, 그 최대 수혜자들은 관료와 기업가들이다.

공기업 비용절감, 경영효율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어떤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다가 퇴직 후에는 공기업에 한자리 차고앉은 이 나라 고학력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복되는 도그마 유포 역시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경영자를 문책하지 않고 노동자부터 자르는 일은 가장 퇴영적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다.

메트로 노조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요 업무 아웃소싱으로 자식 같은 청년들이 저임금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모르는 체했고, 시민들은 자신이 비용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에 박수를 쳤기 때문에 청년들이 이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을 감수했고,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동 존중과 노동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김군은 정비공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대학 가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금, 2016/06/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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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공식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300여 명의 하객들이 행사가 열린 서울글로벌센터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새로 출범하는 다른백년의 미래를 축하했습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다른백년 5인 이사들의 토크쇼. 김미경 PD의 사회로 열린 토크쇼에서 5인 이사들은 서로의 인연, 다른백년이라는 조직을 만든 이유, 향후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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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 독수리 오형제, 5인 이사들의 토크쇼가 김미경PD의 사회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은 “내가 젊었을 때는 사병, 하사관의 입장에서 장교급 선생님들을 간판으로 모시고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내가 장교의 나이가 되고 보니, 사병과 하사관을 찾을 수 없다”며 “장교의 입장이 된 뒤에도 사병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원장은 ”앞으로 다른백년에 젊은 학자들, 활동가들이 더욱 많이 모여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활동이 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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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창립대회에는 300여 명이 하객이 참석해 다른백년의 출범을 축하했다. 하객들이 5인 이사들의 토크쇼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3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해오면서 항상 중립적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그런 직업적 태도를 통해 세상을 비판해왔지만, 그런 비판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와 프롬코리아팀의 북 공연은 행사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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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왼쪽)와 프롬코리아 팀의 북 공연으로 출범식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행사는 오후 7시30분에 시작해 9시쯤 마무리됐습니다.

그리고 프레시안에서도 이날 행사를 상세히 다뤘네요. (“그 많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어디로 갔나”)

또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도 다른백년 출범식을 말하고 있네요. (‘시민’과 ‘주민’, 대화가 필요하다)

월, 2016/06/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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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아가씨> 두 작품의 관람 가능 연령은 몇 세일까? <아가씨>는 여배우 김민희의 파격적 정사장면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19금이라 여길 듯 싶다.

그렇다면 <곡성>은 어떨까? 몹시 훼손된 신체가 등장하고, 일가족 살인과 같은 끔찍하고도 잔혹한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몇 세 관람이 적당할까? 정답은 15세 관람가이다.

15세 관람가, 만 15세 이상 관람을 권하는 영상물. 선정적, 폭력적 장면이 나올 수 있으나 청소년들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을 수준의 영상물을 가리켜 15세 관람가라고 부른다. <곡성>의 최종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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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이 개봉한 이후 과연 <곡성>이 15세 관람가가 맞는가에 대한 격론이 오갔다.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곡성>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긴장과 공포일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관객에게는 충격으로 흡수된다. 물론 <곡성>에는 존속살해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해 도구가 직접 등장하거나 살해 장면이 영화적으로 연출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는 점에서 찾자면 <곡성>에 연출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아마도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받는 장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을 보고 난 많은 관객들은 15세 관람가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는 영화가 무척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는 고백과도 같다. 비록 회칼이나 도끼로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끝내 마음을 졸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공포란 단순히 도구의 노출이나 장면의 재연이라는 물리적 현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등급은 이렇듯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곡성>보다 더 잔혹할 것도 없어 보이는 영화 <신세계>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 아마도, 범죄조직이 벌이는 범죄라는 점에서 좀 더 엄격하게 폭력성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세계>에 등장했던 정청(황정민)이 했던 대사, “들어와, 들어와”는 전 연령이 보는 T.V개그 프로그램 및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대사로 차용된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중 하나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가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패로디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모은 셈인데, 패로디의 원관념이 애당초 19세금이다. 영화의 장면이나 내용이 주말이면 방영되는 짜깁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패로디는 단순히 소개된 정도가 아니라 대중적 소비가 축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원관념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문화-놀이다. 19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패로디된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영화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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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가 19금이 되고, 또 어떤 영화는 청소년의 관람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문제적인 것은 대개의 한국 영화의 등급이 폭력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선정성에는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선정성에는 단순히 성적인 호기심 유발이 아니라 사회경제 및 정치적 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청소년 관람 불가, 즉 19금을 받을뻔한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묘사가 남북한 관계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천만관객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모두 11편이다. 이 중에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가장 많은 관람가는 15세 관람가였고, <국제시장>이나 <괴물>과 같은 작품은 12세 관람가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5세였는데, 왜 <국제시장>은 12세 관람가였는지 그리고 한편 동성애가 암시되는 <왕의 남자>가 지금 같았으면 과연 15세 관람가가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야 그래도 동의할 만 하지만 도대체 12세와 15세의 구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등급위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영화소비자들 역시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관객수를 몇 백 만 명씩 가늠하는 관람 등급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뉘고 구분되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검열은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진 단어라고 하지만 체감상 영화 등급제도가 검열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비단, 영화표를 사는 데 나이가 걸려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테다. <다이빙벨>과 같은 작품의 상영에 단지 프로그래머들만의 결정이 전부가 될 수 없는 상황도 여기서 멀지 않다.

무릇 추상적인 기준에는 그림자가 많다. 좀 더 투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창작자의 견해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야한다. 등급을 나누는 일이 권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 2016/06/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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