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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시민사회’ 없이 민주주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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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시민사회’ 없이 민주주의도 없다

익명 (미확인) | 일, 2016/12/04- 23:41

현재 세계는 민주주의 정치체계가 위기를 맞는 시대로 돌입했다.

서구 민주주의 본산인 영국은 역사적 흐름에서 뒤쳐진 상황의 구실을 정치인들이 무책임하게 외부에서 찾다가 ‘브렉시트’라는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구미 양 대륙의 자금을 중계하면서 금융허브로 성장했던 영국경제는 EU를 탈퇴하게 되면 금융중심지로서의 조건을 상실하게 돼 경제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위험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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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에 경고등이 켜졌다. 상단 왼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독일의 극우단체 페기다(PEGIDA)의 등장 그리고 프랑스의 국민전선의 약진 등. 정치영역에서 극우 또는 보수파의 약진은 시민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

중동 및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유입하는 것은 지난 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빚어낸 역사의 업보이다. 난민의 영향으로 1789년 대혁명으로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관용의 정신을 인류 역사에 선사했던 프랑스조차 합리적 진보집단인 사회당에 대한 지지가 격감하고, 인종차별을 내세운 극우세력이 집권(최소한 연정)할 현실적 위험에 처해 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개척정신과 기회의 땅으로 상징되었던 위대한 역사가 종말을 고하면서 미국은 초일류 깡패국가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와는 운명적으로 이웃나라인 일본 역시 기득권 중심과 오야봉 문화로 상징되는 자민당 일당체제가 지속되면서 우익의 반동적 성격이 세를 더하고 있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나라는 중북부 유럽의 몇 개 국가로 제한되어 있다고 판단되지만, 이들 역시 주변국 환경의 변화로 역시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많은 대내외적 요인들과 겹쳐서 집단지성의 지혜를 상실한 대중주의적 선택과 즉흥적 포퓰리즘으로 물들은 제3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민주주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정치(행정)-시장-시민사회의 3분법

그렇다면 민주주의 이외의 대안은 있는가?

전통적 과거 방식의 왕정체제는 이미 끝났다. 인민집중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일당체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통치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해도, 이를 인류의 보편적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한편 세계정부 단위로 합의된 강력한 통치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한, 더구나 분단 상황인 대한민국에서, 아나키즘적 접근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결국 대안은 현재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성찰하면서 부족하고 잘못된 것을 채우며 고쳐나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완성된 목표가 아니라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오늘날 다원적 민주제 국가는 1) 절차적 합의에 의해 위임된 삼권분립적 통치권력과 2) 경제사회를 구성하는 시장시스템 그리고 3)일상적 삶의 현장인 시민사회로 분화되어, 서로 관계하고 의존하는 동시에 상호 견제 및 보완 그리고 긴장하는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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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섹타로서 일차적 공공영역인 행정과 정치 분야는 합의 위임된 강제력을 집행하는 국가존립의 뼈대이다. 마치 게임을 하기 위한 전제로서, 게임의 룰을 정하고 원칙을 정하고 시행하는 이치이다. 당연히 게임의 룰은 당연히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정해져야 하며, 룰을 어긴 자에게는 벌칙과 징계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동시에 게임의 룰과 집행은 게임의 내용이 더욱 훌륭하고 흥미롭게 전개되도록 집행되어야 한다. 룰은 훌륭한 게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룰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새 정치시스템은 우리의 일상을 편하고 즐겁게 할 게임의 원칙이 아니라, 불쾌하고 짜증스러운 주제로 변질되었다. 한편에서는 의미없는 합리성과 목표를 추구하는 성과주의가 시민적 일상을 과도하게 짓누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합법적 강제성을 위장하며 ‘박근혜’의 사례에서 보듯, 온갖 부정과 비리와 편법이 이루어지는 온상이 되었다.

제2 섹타로서 시장시스템은 생활에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상의 영역이다. 정치적 합의체라는 인위적 사회구조 속에 사는 개인으로서 시민은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초재를 혼자서 만들고 공급할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교환과 매매를 통하여 제공받는다.

인류의 역사는 기초재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자 더 나은 자유를 향한 노력의 과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보편화되면서 천부적 자연재인 토지와 인간의 노동, 그리고 교환의 편리한 수단으로 등장한 화폐까지 상품화시키고, 자본의 탐욕을 실현하려는 시장에 종속시키면서 인간사회에 빈곤과 소외라는 갈등과 모순이 일상화됐다.

시민사회는 제1섹타와 제2섹타의 기반과 도움위에서 생생지기(生生之氣), 생육지장(生育之張)의 일상적 삶을 펼치는 영역이다. 정치와 행정, 시장도 결국은 시민사회의 일상적 삶이 풍요롭고 즐겁기 위해 필요한 기제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시스템 자체가 스스로를 강화하고 확장하면서 일상적 활동을 질곡시키고 억압하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시민사회는 각성과 조직화를 통해 정치와 시장을 원래의 기능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필요하다면 시민사회는 기존에 잘못된 정치와 사회경제 시스템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동력이자 주체의 영역이기도 하다.

필자의 절친인 소준섭 박사는 지난 11월 10일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강력한 시민 역량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확실한 방어력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시민의 힘을 강화시키고 그에 의존하는 것, 그 길이 우리의 방향과 가치가 돼야 한다. 시민적 역량이 성숙되어야만 비가역적으로 민주주의가 전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결론부터 기술하자면 민주주의는 마치 한그루 나무처럼 제대로 된 토양 조건과 기후 환경이 잘 맞아야 무성하게 자라고 성숙할 수 있다. 시민사회라는 일반적 조건이 바로 민주주의의 토양이자 받침대이며, 신뢰를 기초로 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 여부가 민주주의 운영과 성공의 열쇠이다.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이끌 리더십

실천적 근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들여다보고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간 한국사회를 ‘시민없는 시민사회와 시민단체’로 비판해 왔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열기, 미군 훈련 중 사망한 여고생들에 대한 추모집회, 2008년 쇠고기 수입반대, 세월호 사건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 그리고 최근 ‘박근혜 처벌’을 요구하며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으로 몰려드는 수백만 시민들의 열기를 보면서 ‘시민없는 시민사회’라는 분석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통해 한국사회안에 존재하는 시민사회의 폭발적 잠재력은 매우 크다는 점을 지난 10여 년간의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시민사회의 흡수력이나 시민단체의 조직구성이 시민의 거대한 잠재력을 현실적 힘으로 전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조직적 배타성(닫힌 구조)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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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한국의 시민사회는 중요한 계기마다 뜨거운 에너지를 분출하곤 했다. 왼쪽부터 2002년 월드컵 응원, 2004년 노무현 탄핵반대 촛불집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이런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어떻게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에너지로 이끌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론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진행되고 폭발하는 과정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1)상황을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대한 계획과 과정을 미리 잘 준비한 전문집단의 의도적 주도성(triggering intiative)에서 보는 관점과, 2)사건 자체를 오랜 누적의 발전과정으로 보고(accumulative spontaneity) 이를 수습하고 조직해나는 지도성이라는 관점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자가 주로 서양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영웅이야기와 전위적 조직론에 기초하고 있다면, 후자의 사례로는 동양역사에서 창의적(倡義的)으로 민중봉기를 통해 난세를 수습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을 꼽을 수 있다. 양자 모두 전위성과 자발성의 결합을 통해서 진행되는 것이지만, 무엇에 강조점을 주고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는 결국 이기(理氣)논쟁이기도 하다.

필자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으로 주기적(主氣的) 자연발생론에 일차적 우선성을 두지만, 이를 예비하고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전위적 예비조직의 존재 역시 매우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 전문적 집단이 상황의 진행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며 방향을 주도해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과거 십 년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변화무쌍한 현실을 모두 사전에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고 주도해 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발생한 상황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제대로 된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요체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시민사회가 나갈 방향은 모순의 누적으로 발생하는 현실세계의 자발적 상황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갈 예비적 시민사회의 지도력을 다양한 경로와 채널을 통해 배양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키워나가는데 있다고 본다. 

일상적 실천의 과정 속에서 모두의 참여가 가능한 열린 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발적 상황을 주도해 갈만한 배아적 리더십을 형성해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현재 다양하게 존재하는 한국의 시민사회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한 시민사회의 결사체들 

우선 시민사회담론을 크게 1)전근대적 공동체담론, 2)계층과 직업적 이해에 기초한 사회조합론, 그리고 3)사회변혁적 운동담론 등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근대적 사회의 전통적 공동체에는 가족과 농어촌 촌락사회, 그리고 전통적 공동체의 연장으로 농어촌에서 생활근거지인 도시로 이동하면서 형성된, 지연과 학연를 기초로 하는 다양한 모임과 단체를 꼽을 수 있다.

개인적 신뢰와 소통이 내재하며 친밀성과 개방된 이해관계를 지니는 한편 연고주의라는 폐쇄성, 패거리문화, 가족주의 지나친 이기주의 등이 민주적 시민사회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피아의 사례는 정실주의와 부패의 근거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유교적 전승을 기초로 하여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의무감을 고양시키고, 저질적 이기주의에 대한 도덕적 제어를 가능하게 하며, 개인과 집단 간의 이익을 조율하는 정서적 교감을 배양시킬 수도 있다. 전근대적 연고주의가 가지는 친밀성과 개인적 도덕적 의무감 그리고 광범한 연결망을 활용하여 전근대적 폐쇄성을 역으로 민주적 원칙을 지키는 보편적 사회의식으로 전화시킬 수 있느냐가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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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가 그 자체로서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가 오히려 정치적 보수주의의 근거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강한 민주주의는 강한 시민사회에, 허약한 민주주의는 허약한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가 정치체제의 토대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미지 출처: https://acase.co.kr/)

주요 도시에 산재한 향우회와 더불어 친목과 취미를 목적으로 모이는 동호인 모임, 특히 산악이 65%를 차지하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산악회 등이 사적 조직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은 아니지만, 더욱 중요한 일상적인 삶의 내용을 같이 공유하고 있기에, 이들 동호인모임의 움직임은 중요한 국면마다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시대적 배경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친목과 취미활동과 겸하여 시국에 따라서 독서모임이나 토론회를 겸할 수 있다고 본다.

소비자 주권운동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소비협동조합 역시 괄목한 성장과 주목할 만한 역량을 보이고 있다. 생명운동을 주제로 하는 조직과 윤리적 소비, 행복중심 등의 구호가 이들의 활동영역을 잘 대변하고 있다. 다만 다수 시민들을 수동적 소비주체에서 사회변화의 동력인 각성된 활동적 주체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지속적인 성찰이 가능한 교육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 것이 주요과제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시민단체는 종교적 네트워크이다.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등 주요 종교의 등록된 신자 숫자를 합치면 유권자수의 절반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필자는 종교계에 대해 언급할 자격도 없고, 언급을 해서도 아니 된다고 스스로 자제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안의 현각스님이 일갈했듯이, 인구의 과반을 점하는 한국 종교계의 참회와 변혁이 없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노동운동의 폐쇄성 극복해야 

유럽의 근대화 과정이 그러했듯이, 한국사회 역시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직업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수많은 길드적 모임, 직업적 단체와 협회, 이해관계를 형성하는 동맹, 그리고 노동자 농민들의 조합이 형성되었다. 다원적 민주사회에서 각자의 이해를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형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가와 정부는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 기본임무이기도 하다. 다만 필자는 한국현실을 염두에 두고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몇 마디하고자 한다.

87년 민주화 투쟁과 현재 진행 중인 ‘박근혜처단’의 광장정치에는 당연히 강력한 노동조합이 자리한다. 기득권 체계에 맞선 노동조합의 가열찬 투쟁은 당연하고 시민적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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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시민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결사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 노조는 연대의 가치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급급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시민사회 내의 연대의 가치가 깨질 때, 시민사회 전체의 역량도 약화된다. (이미지 출처: http://land.hankyung.com/)

그러나 노조는 지난 30년간 독점적 시장권력, 기업 규모 격차, 저임에 의존한 수출주도형, 금권유착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관치 관행 등에 의해 누적된 한국사회의 모순, 이에 따른 다층적 수탈구조에 안주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 노동자 일반의 현실과 시민사회의 보편적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0여 만 명으로 추산되는 금융과 재벌중심의 대기업노조 그리고 정부산하의 공공노조의 다른 한편에는 노조가입은 꿈도 못 꾸는 1500만의 중소기업 노동자, 저임구조에 갇혀있는 1000만의 비정규직, 궁여지책의 600만의 자영업자들, 생계수준의 200여 만 농어촌민 등이 갈등적으로 존재한다. 서비스업이 팽창에 따른 작업공간 분리로 인해 저임구조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단합이 분산되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산업구조와 노동계 내부가 너무나 다기하게 분산되고 이해관계가 모순적으로 상충하는 현실에서 한국사회의 상황을 주도하는 강고한 중심조직으로서 민주적 노동조합은 자신들만의 이해라는 폐쇄성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내부적 계층분화가 심해진 노동집단간의 연대, 더 나가 시민사회와 더불어 시대적 흐름과 호흡을 함께하는 실천방식을 연구할 시점이다. 여전히 강고한 기득권 체계에 맞서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일반적 연대가 매우 소중하다. 특히나 서비스중심의 제3차 산업혁명을 거쳐 혁신기술 중심의 제4차 산업혁명에 진입하는 현 단계에서 자기 위상만을 고집하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단기적 이해를 넘어서는 전략적 리더십의 문제이다.

민주정부시절의 역설

사회변화적 담론에 기초한 시민운동단체의 변천과정에 대해 부산디지털 대학의 정백교수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1962년 이후 1987년 이전까지는 군사쿠데타에 의한 박정희 정권의 새로운 공화국의 성립도 발전권위주의적 성격으로 인하여 시민권 보장의 수준은 낮았다. 이것은 유신정권 수립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전두환 정권 성립도 시민권 확대를 가져오지 못했다.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는 국가의 억압으로 인하여 일정한 한계를 가졌다. 시민사회의 정당성은 여전히 제한적이었지만 교육의 증대, 매스컴의 역할, 지구화의 영향에 따라 민주시민의식이 늘어나고 초보적인 수준의 자기규범성을 확보해 가는 수준이었다.

80년대는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였다. 1987년 6월 항쟁은 한국의 정치 민주화를 위한 일대도약이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됨에 따라 시민사회적 담론과 조직화를 위한 언론ㆍ집회ㆍ결사 등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이후 각종 NGO의 분출, 기존의 계급운동에 대응한 시민운동의 활성화, 신자유주의의 도입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 등으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사회변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확대기를 거쳐 (재조정기)에 진입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시민단체들과 자발적 결사체들을 포함하는 자율적 중간집단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실련, 참여연대, 공선협 등의 활동,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을 비롯한 환경운동단체, 여성단체, 소비자단체, YMCA, YWCA 등 기독교단체들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다.

노동운동, 학생운동, 전교조운동 등에 대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경실련운동,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여성운동 등에 대한 지지가 눈에 띄게 확산되었다. 이제 시민운동 단체들은 전교조, 전농, 한총련, 전노협, 전대협, 전국연합 등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조직된 정치 지향적 민중운동과 구분되는 새로운 사회운동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념적으로는 노동계급 운동의 일원적 중심성을 거부하고 다원주의적인 입장에 섰으며 생활세계의 이슈를 크게 부각시켰다. 문제제기 방식은 이데올로기적 설득에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제시로 바뀌었고 활동 주체가 조직화된 소수에서 다양한 계층의 학생, 주부, 직장인으로 이동하였다.

또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무시되어 온 도시중간 계층의 상대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운동방식에서는 비폭력적 원칙을 고수하는 양상을 띤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십년을 거치면서 시민운동과 단체들의 주체적 역량이 급격히 축소되고 시민적 참여와 열기가 격감했다.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뒤늦게 탄생한 민주개혁정부에 대한 기대로 시민적 관심과 리더십이 시민단체로부터 제도정치권으로 이동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십 년의 과정이 시민운동의 확대 발전에 심대한 장애로 귀결되었다. 시민운동에 경험이 있고 역량을 갖춘 인물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편입되고, 역으로 민주개혁정부로부터 다양한 지원과 프로그램이 제공됨으로써 시민단체의 자발적 역량이 퇴조하며 일상적 의존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실패로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적 지지가 상당히 철회되는 경향까지 보인다. 이후 이명박근혜의 수난시대를 겪으면서 시민단체들은 회복이 어려울 만큼 침체에 빠져 들고 있다.

시민사회와 제도정치권과의 연대와 고리는 일정부분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시민운동과 시민단체는 경험과 판단력을 갖춘 지도력을 중심으로 제도권의 정치와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해야 하는 본래의 자기영역을 굳건히 지켜야 했다.

시민운동의 당면 과제

세계화와 더불어 발전된 정보화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일상적 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도구로서 언론의 역할과 기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언론은 그 탄생 자체가 파쇼화와 재봉건화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알권리가 중요한 시민권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기에 유지되고 발전되어온 언론이 어느덧 제4의 권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당연히 시민사회가 언론도 감시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언론이 스스로 갖추어야할 사회적 윤리성과 도덕성에 의거해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시민사회는 이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제도언론과 별도로 정보통신의 발달이 시민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온라인으로 쌍방향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지리적 거리가 크게 좁혀지고, 가상의 공동체가 등장하면서 익명성을 통한 친밀성, 관계형성의 자유로움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성 결여와 저질적 포퓰리즘의 오염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특히 온라인 네트워크가 오프라인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지 여부가 아직은 불확실해 보인다.

세계시민교육
강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지속적인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http://blog.kdemo.or.kr/1188)

초중등 교육은 시민사회의 예비적 훈련장소로서 매우 중요하다. 현실세계가 경제적 이기주의 또는 야만성으로 지배당하고 있고, 부모의 재산과 지위가 학력을 결정하는 경쟁의 싸움터로 변질됐다.

소통과 협력과 창의적 공간으로 일상을 미리 연습하고 민주적 시민의 자질을 사전에 형성하는 훈련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학사회는 미래 사회를 주도할 수월성을 성취하는 동시에 현실의 잘못을 통렬히 비판하는 조선의 성균관 유생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다. 시민단체를 체제외적인 비판세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지속가능한 대안세력으로 인식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바람직한 정부와 시민사회와 관계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역할로 첫째, 정부와 시장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 둘째, 사회갈등적 이슈에 대한 조정자 역할, 셋째, 기아, 평화, 인권 등 범지구적인 문제 해결의 행위자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여전히 독자적으로 정부와 시장의 기능을 견제하고 삶의 본래적 영역을 지키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정부와 협치를 하게 될 경우의 위험성으로 자원과 조직의 종속화 현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조직과 자원의 측면에서 월등히 우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협치론의 일방적 시행주체는 항상 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함정이 상존한다. 정밀한 내용의 검토가 필요한 주제이다.

사회적 신뢰의 구축 

위에 열거한 다양한 모습의 단체, 모임과 조합들이 날줄과 씨줄을 이루면서 시민적 문화를 형성해 간다. 시민적 문화는 처해진 공간과 조건 속에서 정치적 상황과 사회경제적 상황과 맞불려 돌아가면서 각자 사회마다 특징적인 하나의 거대한 전승적 유전체계, 즉 사회적 밈(meme,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요소)을 형성한다고 한다.

사회적 밈으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신뢰라는 용어로 압축되는 ‘사회적 자본’이다. 신뢰는 복잡하고 다양하면서도 우연이 얽힌 현대사회의 거래비용을 줄이는 매우 중요한 기제이다. 이 분야의 대가인 퍼트남은 신뢰를 “협력적 행위를 촉진해 사회적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조직의 속성”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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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내부에 축적된 사회적 자본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무형의 자본이다. (이미지 출처: KBS)

신뢰는 개인적 신념으로서의 확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개인 차원을 넘어서 시스템 차원에서 확인되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전통적 사회의 해체에 따른 불안으로 인해 새로운 공동체, 연대성 회복에 대한 갈망이 생겨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에 대한 요구가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한다.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 사회는 파편화된 개별적 불안감과 심리적 위기를 촉발시킴으로써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뢰는 일상생활과 집단 및 제도, 그리고 여론과 문화로 형성되는 상징세계 등 다양한 층위에서 형성된다. 신뢰는 소통적 합리성 -상호주관성을 중시한다. 또한 신뢰는 사회경제적 조건 및 환경이 유발하는 긴장, 갈등, 경쟁 등과 같은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개인과 집단을 보호하는 상호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신뢰는 성실과 책임을 통한 상호의존과 협력의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적 변혁의 근거지로서 시민사회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스승이셨던 함석현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나라가 산다’라고 말했다.

한국 시민사회는 공론적 소통이론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다양한 경험과 실천사례를 참조하면서, 동시에 조선시대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올렸던 선비들의 비판정신을 온전히 계승할 때, 새롭게 전개될 것이다.

시민사회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채널과 열린 조직을 통해 일상적 토론과 학습, 그리고 참여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도적 구심력을 형성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중심이 돼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 합당한 정의와 역동적 평형이 실현되도록 시민사회를 일상적으로 추동해가고 견인해 가야 한다.

만약 정치와 사회경제 영역이 시민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반동화된다면, 당연히 시민사회는 이를 시정해야 한다.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기존의 권력과 체계를 무력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변혁의 근거지가 돼야 한다.

2016년 말 현재 ‘박근혜 처단’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더 나가서 ‘합당한 민주제도와 공의로운 사회경제질서’를 만들기 위해, 이제 한국 시민사회는 모두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광장의 에너지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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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한달 동안 26개국 70개 도시에서 시국집회 열려 – 재외동포들, 시국집회 역사 새로 써 – 12월 3일과 4일에도 14개국 30여개 지역에서 집회 열어 편집부 한국에서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가 열렸던 지난 3일, 전세계 곳곳에서 재외동포들의 시국집회 소식이 쏟아졌다. 이전에 집회가 없던 지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첫 집회를 하자는 제안 글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지지 댓글이 달리면서 집회가 ...
화, 2016/12/0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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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2차 기관보고에서는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과 최재경 민정수석 등 3명이 출석을 거부했다. 지난 1차 보고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출석하지 않은 데 이어 이번에도 국정조사 핵심 증인들이 출석을 거부한 것이다. 특히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은 세월호 참사 초기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추궁할 핵심증인이다.

이에 대해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경호실장이 지금까지 지금까지 국회에 출석해 증언한 바가 없다면 우리 특위가 직접 청와대를 방문하여 증언을 청취하는 일정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주 6일과 7일로 예정된 1,2차 청문회의 핵심증인들도 출석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과 그의 장모 김장자 씨, 홍기택 전 KDB 산업은행 회장 등 5인은 증인출석요구서가 송달되지 않아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에 대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김장자 씨의 경우 청문회 4차에 반드시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며 “동행명령장도 발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도 정부 측 주요 증인들의 이러한 행태에 비판했다.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은 “최순실 등이 청와대에 함부로 들어오고 나가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출입에 관한 모든 기록은 필요하다”며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사용내역 등에 대한 청와대 측의 자료제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의원들이 현장에서 재차 자료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청와대의 탈모제 사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모제로 발급을 하면 의료보험의 혜택이 안되기 때문에 이게 굉장히 비싸다”며 “전립선 비대증인 것처럼 속여서 지금 청와대에서 발모제를 지금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줬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이번 청문회에서는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집중적인 추궁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큰 오보가 났던 오후 2시 370명이 구조가 됐다는 중대본의 언론브리핑이 50분 후에 안보실에서 190명 추가 인원은 잘못된 것이라고 VIP께 유선으로 정정 보고를 했다”며 “그 직후 대통령께서 혼선에 대해 질책했고 정확히 통계를 재확인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의 이완영 간사를 비롯한 이만희 의원과 정유섭 의원은 1차 기관보고에 이어 2차 기관보고에서도 청와대 옹호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정유섭 의원은 “세월호 사건에 대통령은 총체적인 책임은 있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며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놀아도 될만큼 적절한 인사를 실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여야의원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특히 이번 국정조사의 핵심인물인 최순실, 최순득, 장시호씨를 비롯해 정호성 전 비서관과 안종범 전 수석, 차은택 감독 등 핵심 인물들이 오는 7일 청문회 출석을 거부한 것으로 알졌다. 최순실 씨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을 파헤치겠다던 국회의 국정조사가 핵심 중의 핵심인 최순실 씨도 증인으로 세우지 못하는 청문회를 열 상황에 놓였다.

화, 2016/12/06-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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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당장 동행명령장 발부해서라도 핵심증인 출석시켜야

물타기로 진상규명 방해하는 새누리당,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2차 기관보고가 어제(12/5) 진행됐다. 그러나 지난 11월 30일 1차 기관보고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등이 증인출석을 거부한 것에 이어서 2차 기관보고 역시 청와대 기관증인들이 국정조사 출석과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국민의 진상규명 요구를 묵살하는 것이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우롱하는 처사이다. 만약 국회가 증인불출석을 묵인한다면 국정조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국회 특별조사위원회는 동행명령장 발부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핵심증인을 국회 출석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청와대 방문조사를 실시해서라도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어제 진행된 2차 기관보고에 최재경 민정수석은 '국정현안에 신속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을 이유로, 박흥렬 경호실장은 '24시간 대통령 경호안전'을 이유로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이미 국정운영은 마비 됐고 식물 대통령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마당에 현안 대응과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증인출석을 거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도리어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의 의혹을 밝혀 줄 핵심 증인인 박흥렬 실장이 출석을 거부하고, '2급 비밀'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와 관저의 출입기록 제출을 거부한 것은 진상규명을 방해하려는 시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영석 경호실 차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모르쇠로 일관한 것도 그러하다. 

 

일반증인도 줄줄이 출석을 거부하며 국정조사를 무력화하고 있다. 최순실, 최순득, 장시호 등이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출석 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검사로 고위 공직에 있었던 우병우 씨가 문을 닫고 출석요구서를 수령하지 않은 방법으로 출석하지 않으려는 것은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것이다. 만약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 등을 증인으로 출석시키지 못한다면, 국정을 농단한 이들에 의해서 다시금 국회와 국민이 기만 당하는 것이다. 국회는 동행명령장 발부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하며, 불응 시 국회 모욕죄 적용 등 법적 처벌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 국회의 책무이다. 

 

한편 진상규명을 방해하려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물타기 시도 또한 여전하다. 지난 1차 기관보고에서도 국정농단 사태를 비호하여 비난을 받았던 이완영 새누리당 간사는 여전히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라크 무장단체가 김선일씨를 납치했을 때 관저에 머물렀다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또한 이완영, 이만희, 최교일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4월말 퇴진이라는 새누리당 당론 수용여부를 재차 확인하며 국정조사를 탄핵 표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용도로 활용했다.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사실상 국정조사 대상이어야 할 새누리당이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을 비호하고, 사태의 본질을 흐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집권연장을 꾀하려 한다면 국민들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방해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화, 2016/12/0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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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3_87청년16청년토크콘서트 (1)

1987년 당시 청년세대와 2016년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만났습니다. 사진ㅣ청년참여연대 

 

 

청년참여연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졌던 지난 10월 말부터 여러 행동을 준비하고 진행해왔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청년, 시민들께 #한줄시국선언을 받고 광화문광장에서 분노의 책읽기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다른 청년단체들과 함께 김제동 광장콘서트를 준비하기도 했고 매주 집회에서 현장스텝을 하며 더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일 수 있도록 함께 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을 연구하는 대학생 학회 <민주주의디자이너>와 함께 기획한 세대공감 거리시국 토크콘서트 <87청년과 16청년, 광장에서 만나다>는 이미 10월 말부터 고민해온 숙원사업이었습니다. 기획이 시국을 따라가지 못할만큼 상황이 매일매일 변하고 광장으로부터 다양한 논쟁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토크콘서트의 주제는 점점 풍부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12월 3일, 첫 만남이 청계광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2월에 접어들었는데도 광장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 이 시간에 눈바람이 몰아쳤던터라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본격적인 토크콘서트를 앞두고 한신대 강남훈 교수님이 청년배당의 필요성에 대해 10분 특강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지금 청년들의 상황이 어떤지, 왜 청년배당이 필요한지, 역시 기본소득 정책의 대가답게 '저게 될까?' 싶은 이야기를 너무나도 현실성 있게 그리고 쉽게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오늘 첫 만남에는 강남훈 교수님 외에도 손호철 교수님, 이조은 청년참여연대 활동가, 이지수 민주주의디자이너 대표가 함께 했습니다. 구체적인 강연 내용은 아래 두 기사를 통해 들여다볼까요?

 

[한겨레] 촛불 광장서 만난 87청년·16청년

 

3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세대공감 거리시국 이야기마당’. ‘87청년·16청년 광장에서 만나다’라는 부제는 이 자리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박근혜 즉각 퇴진” 구호 안에는 사실 많은 다양성과 차이가 존재한다. 세대 차도 그중 하나다. 87년 세대와 2016년 세대는 경험과 실존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윤리의 문제로 서로 오인하기도 했다. 광장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위치로 옮겨놓았다.


87년 6월항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30년 전 그때를 궁금해했다. “유인물 인쇄해서 뿌리고 구호 외치면 3년 감옥 다녀와 정규직으로 취직하던 시절이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독재 시절 우리는 대통령을 직접 뽑으면 뭐든 다 될 거라 생각했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지 토론하거나 합의하지 못했다”며 “그 때문에 30년이 지나 이토록 참담한 헬조선을 맞은 것”이라고 짚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30년 전과 오늘을 ‘감옥+생존 안전성’ 대 ‘정치적 자유+경제 감옥(생존 불안)’으로 정리했다.


한때 ‘정치적 무관심’과 ‘수동성’으로 상징되던 젊은 세대는 지금 광장 정치의 대표주자다. 대학생인 이지수 민주주의디자이너 대표는 “그동안 광장에 나올 수 없었던 이유가 지금 광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스펙 경쟁과 아르바이트에 내몰려 ‘참여’ 여력이 없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없는 체제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조은 청년참여연대 활동가는 “청년들은 결코 비정치적이지 않다.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훈련해온 세대”라며 “공론장에서 대화와 설득을 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 기성세대 눈에는 비정치적으로 보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6세대는 6·10항쟁 때도 폭력-비폭력 논쟁이 있었는지 물었다. 손호철 교수는 “당시 정권 자체가 오직 물리력에 의해 유지됐기 때문에 이에 맞서 ‘다양한’ 저항방식이 있었고, 이런 방식이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했다”며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폭력이 아니지만, 돌을 하나 던져도 대중이 거부한다면 달리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조은 활동가는 “고문받고 행방불명되던 때의 저항방식이 지금의 방식과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의 100만 집회에 소수자와 약자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평화가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호응했다.


‘광장 이후’의 전망과 과제는 세대를 넘어서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됐다. 강남훈 교수는 “박근혜 퇴진을 넘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요구가 광장 안에서 구체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치권에만 맡기면 안 된다. 이를 정치권에 강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수 대표는 “광장에서 경험한 민주주의와 인권 감수성에 대한 경험이 일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를 위한 다양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87년 6월 광장, 혁명의 장이었다” “오늘의 광장, 민주주의 학교 됐다"

 

‘6월 항쟁’의 주역 ‘87청년’이 2016년 청년에 응답해 광장으로 나왔다. 1987년과 2016년을 모두 겪은 그들은 광장을 ‘혁명의 장’이면서도 미완의 혁명이란 아쉬움의 대상으로 기억했다. 6월 항쟁이 직선제 개헌을 이끌었지만 이후 정치권의 분열로 항쟁의 의미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반면 2016년 청년들에게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이며 ‘반폭력의 상징’이다. 29년의 세월만큼 광장과 집회에 대한 인상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87청년과 16청년, 광장에서 만나다’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87청년으로 참여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13 호헌조치가 촉발시킨 민심이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맞아 항쟁으로 폭발했다”고 29년 전 6월을 회상했다.  

 

손 교수는 국민이 퇴진을 요구하는데도 3차 담화에서 임기단축을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과 87년을 비교했다. 그는 “당시 국민의 요구를 ‘위로부터의 개혁’이 흡수한 결과 6·29선언이 나왔고 이후 야권이 분열했다”며 “(혁명 이후를) 정치집단에 맡겼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도 “당시에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만 뽑는 나라가 되면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해 직선제 외에 다른 요구를 못했다”며 “이번 촛불혁명에는 대통령 퇴진 후 어떤 사회를 만들지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평화적인 집회 방식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손 교수는 “외국에 비해 비폭력적인 시위를 주로 해왔던 우리나라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처럼 폭력적 투쟁이 나타났던 건 정부의 위력을 제어해야 했기 때문”이라며 “정당화된 폭력이 되려면 다수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6년 청년들은 비폭력 집회 기조를 유지하자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촛불이라는 방식 덕분에 여성, 장애인, 청소년이 모두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조은 청년참여연대 활동가는 “물리적인 저항의 방식은 성인남성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학생인 이지수 민주주의디자이너 대표도 “이번 시위에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이 정말 많았다”며 “광장이 민주주의의 학교가 된 셈”이라고 했다.

 

이번 시위에서 불거진 ‘약자 혐오 논란’도 고민 대상이었다. 노교수들은 1987년 당시 ‘반독재’라는 큰 흐름에 매몰돼 인권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손 교수는 “그때만 해도 정치적 억압 문제가 중요해 일상적 민주주의는 다 눌려버렸다”며 “페미니즘, 장애인 문제 등이 모두 묻혔는데 그런 문제가 이제라도 폭발한 것은 다행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2016 촛불 이후 대한민국의 과제로 일상적 민주주의를 꼽았다. 이조은 활동가는 “큰 정치적 민주주의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직장, 가정처럼 작은 공동체 내의 민주주의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도 “시민이 광장에 나온 힘을 주체화하지 못한다면 일회성으로 끝날 뿐”이라고 덧붙였다. 

 

20161203_87청년16청년토크콘서트 (3)

 


다음 주에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주제로 서울대 우희종 최갑수 교수님, 민주주의디자이너의 장윤정, 청년참여연대 민선영 님과 함께 두 번째 만남을 갖습니다. 12월 9일에 탄핵안 표결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광장에서 만나게 될까요? 이번 주엔 꼭 만나요!

화, 2016/12/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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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삼성,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손실된 국민연금 약 4,900여억원에 대해 이재용.문형표.홍완선.박근혜.안종법.최순실에게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소송 국민청원인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모집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2. 5. 현재 6,400여명이 참여해주셨습니다. 

국민연금에 피해준 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기금을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지켜내야합니다! 

온라인 청원바로가기 

오프라인 청원 : 2016. 12. 5.(월) ~ 12. 9.(금) 11:30~13:00 청계광장 소라탑 앞 철도노조 농성장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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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12/0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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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접수된다. 다시금 헌재에 눈과 귀가 쏠린다.

헌재가 우리 사회의 주요 분기점에서 판을 흔들어 온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2013년 박한철 헌재소장(63) 취임으로 출범한 ‘5기 재판부’는 좀 더 특별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를 맡았던 김기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생에 이런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D-day는 오는 9일이다. 공이 헌재로 넘어가면, 박한철 헌재소장의 결정에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만약 이번에 헌재가 탄핵 심판까지 결정을 내리게 되면 위헌법률, 탄핵, 정당해산, 권한쟁의, 헌법소원 등 헌재가 내릴 수 있는 모든 심판에 대해 결정을 내리게 되는 헌재 사상 첫 재판부가 된다.

역사상 두 번째 탄핵의 중심인물

박한철 소장은 그 중심에 있다. 내년 1월31일로 끝나는 박 소장의 임기 자체가 탄핵안 처리의 주요 변수이기도 하다. 탄핵안 처리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과 6명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 박 소장이 임기가 끝나고 이어 이정미 재판관도 3월 중순에 임기가 끝나면 재판관은 7명만 남는다. 단 2명만 반대해도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애초에 헌법재판 가운데서도 가장 예민한 사안으로 불리는 탄핵심판이 9명 재판관 전원이 아닌 밑 빠진 상태에서 결론 나는 일은 국민들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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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9인 재판관들. 내년 3월초까지 박한철 소장, 이정미 재판관이 임기 종료로 물러나면 7명이 남는다. 이중 6명의 탄핵인용을 이끌어내야 한다. 변수가 너무 많아 어느 쪽으로도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idailynews.co.kr/)

그렇다 해도 박 소장 퇴임 전 심리를 마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12월 초에 순조롭게 탄핵안이 의결된다 해도 심리할 시간이 50여일 남짓밖에 없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사상 초유의 일이란 것을 감안해도 64일이 걸렸다. 게다가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이 탄핵 사유로 지목된 사실들을 모두 인정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지도 않다. 헌재가 검찰 수사결과를 준용할 수도 있지만 직접 사실 확인에 들어갈 경우 늘어질 가능성도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내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벌써부터 박 대통령 임기 내에 불가능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통진당 해산…김기춘과 교감 의혹

박 소장은 민감한 시기, 어수선한 시국 속에 의혹에도 휘말렸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발단이다.

김 전 수석은 비망록에 2014년 10월4일 수석비서관회의 중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이렇게 메모했다.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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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비서실장.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많은 반민주적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또 있을까. 유신헌법 기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초원복집 사건, 노무현 탄핵소추, 그리고 박근혜정부 탄생의 주역…여기에 통진당 해산 결정 이전에 박한철 헌재소장과 내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현대사의 살이있는 악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10월17일,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박한철 소장은 국회의원들에게 올해 안에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선고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당시 대다수가 대법원에서 이석기 통진당 의원 사건이 결론난 뒤에나 헌재의 결정이 가능하리라고 관측했지만, 헌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인 그해 12월19일에 해산 결정을 내린다. 석연치 않다. 대법원이 결국 헌재가 정당해산의 주요 이유로 꼽았던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으니 더욱 그렇다.

만약 김기춘 전 실장이 헌재 결정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폭발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보수정권 시국사건 주도한 공안통

박한철 소장은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2살에 인천으로 이사한 뒤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를 나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사법시험(23회·연수원 13기)에 합격했다.

1983년 부산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27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면서 특수와 공안, 기획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독일 유학과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근무 경험도 있다.

박 소장은 2005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재직 당시 법조브로커 윤상림씨 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보여준 ‘강골’ 면모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59건의 범죄 혐의를 밝혀내 10차례나 윤씨를 기소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 및 ‘떡값’ 수수 검사 명단을 폭로했을 때는 삼성 비자금 사건 특별수사·감찰본부장을 맡았다.

2008년 대검 공안부장 시절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미네르바 사건 등 각종 시국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2010년 7월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 조직을 떠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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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재소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정부의 공안통치를 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출처: http://photoismylife.tistory.com/)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지명으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오르면서 검사·변호사 시절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참여연대는 박 소장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서 검·경·노동부 관계자가 참석한 ‘공안대책협의회’를 주재하면서 촛불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강경대응 입장을 결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화 이후 축소·폐지 흐름을 밟아왔던 공안부에 다시 공안3과를 부활시키며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치’ 흐름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을 빚었던 ‘미네르바 사건’의 무리한 기소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4개월여 간 김앤장에 근무하면서 2억4500만원의 급여와 고급 승용차를 제공받아 ‘전관예우’ 논란도 벌어졌다. 사건 수임은 단 한 건도 없었고 10건의 자문만으로 받은 액수다.

특히 2007년 삼성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박 소장이 퇴직 후 삼성 관련 사건들의 변호를 맡은 김앤장에 취업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30년 가까운 법조 경력을 감안한 것인데 금융·경제 등의 부문과 비교하면 액수가 과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항변했지만 뒤늦게 김앤장 근무가 “조금 후회스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근혜가 임명…헌재의 활력 현저히 떨어져

박 소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고 나서도 각종 사건에서 보수적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검찰의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그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될 때부터 나온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대표적으로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울광장 추모 행사 당시 광장 전체를 전경버스로 에워싸 시민 통행을 원천봉쇄한 조치에 대해 합헌 의견을 냈다.

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과 SNS를 이용한 의사표현 금지, 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 ‘건전성’을 이유로 한 방송통신심의위의 표현 규제, 삼성X파일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의 처벌 등에 대해서도 모두 합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박 소장의 보수성도 문제지만 그가 소장으로 취임한 뒤 출범한 5기 재판부가 눈에 띄게 활력이 떨어졌고 심지어 헌재가 ‘침체’됐다는 평가도 있다.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합헌 결정 직후 국회에서 해당 법을 폐지하는 촌극을 겪기도 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과 그 외 8명이 대립하는 1대 8 구도가 굳어졌고, 토론이 사라졌으며, 권력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비판도 나왔다.

헌재는 박 소장 취임 이후 2년간 장기미제 사건이 줄었고 간통죄 처벌 조항에 위헌을 선고한 것 등을 업적으로 꼽았지만 ‘정치적 사법기관’이라는 헌재의 위상을 생각하면 뭔가 지나치게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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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위헌결정은 박한철 헌재소장 내려진 가장 유의미한 결정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간통죄 위헌판결 직후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박 소장이 헌재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출신 소장이라든가, 박 소장을 비롯해 공안통 검사 출신이 2명이나 재판관에 포진해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변화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중심에는 박 소장이 취임하면서 비롯된 헌재 소장의 임기 문제가 있다.

박 소장은 2013년 현직 재판관으로 재직 도중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소장 지명을 받는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낙마하자 벌어진 일이다.

헌법 재판관의 임기는 본래 6년이고, 지금까지 헌재 소장들은 재판관 겸 소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에 임기 6년을 꼬박 채웠다.

하지만 박 소장의 경우에는 재판관 임기 2년을 이미 소화한 뒤 소장에 취임했기 때문에 4년 뒤인 2017년에는 퇴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한 번 더 소장 지명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현직 재판관들이 추후 ‘소장 지명’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밖에 없고, 이런 분위기가 헌재를 더욱 권력에 눈치 보는 집단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탄핵, 어떤 결정 내릴까

재판부가 보수화됐다고 해서 탄핵안에 대한 결론을 섣불리 예측하긴 아직 어렵다. 검찰 출신이 보수적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 인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상황도 다소 바뀌었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데, 지난 4월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 무엇보다 촛불 민심도 변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어느 재판관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헌재법 개정으로 누가 탄핵 인용 의견을 냈는지, 기각 의견을 냈는지 밝혀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 4%에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쉽게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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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재소장은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임명해준 박근혜 대통령과 그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민심 사이에 끼어있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가 달라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박 소장의 일화 하나가 눈에 띈다. 그는 2008년 대검 공안부장 시절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촛불집회 현장을 27차례나 찾았다. 그런 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봐야 한다’며 강경 대응에 반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강경대응을 주도했다’는 일각의 시각과는 다소 다르다. 집회 현장의 ‘유모차 부대’를 목격하고는 경찰력 투입을 늦추자고 주장해 ‘조기 진압’을 요구한 정권 핵심부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도 돌았다. 실제 박 소장은 검찰 시절 고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이런 예를 보면 박 소장이 보수적인 성향에, 공안통이라 불려오긴 했지만 “‘수구꼴통’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촛불집회 당시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처리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기본권과 기본권의 충돌을 보며 무엇이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지 고민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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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실린 박한철 헌재소장의 인삿말. 헌재가 87년 헌법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헌재 홈페이지(www.ccourt.go.kr/)의 프로필을 보면 그는 자신이 처리한 2000여 건의 사건 중 일본군 위안부 및 원폭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외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국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던 것을 주요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헌법 전문이 규정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관을 헌법현실에서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정권 핵심 세력들과는 다른 시각인 셈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개인적으로 박 소장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소탈한 편이며, 법리에 밝은 ‘학구파’로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으로 후배 법조인들에게 신망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평소 시서화와 고전에 정통해 2009년 대구지검장 시절 전출·입 직원들에게 편지와 함께 시를 e메일이나 메신저로 선물하고 회의 때마다 애창·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문학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박 소장은 독특한 선행 이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2010년 서울동부지검장 시절 한 불교재단의 노인요양시설 건립에 보탠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9억 원대 서초동 아파트를 기부했다. 소유권을 넘겨주고 자신은 같은 집에서 다시 세들어 살고 있다.

2016년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을 다시 확인해 봐도 단출하다. 아파트 전세금 2억2000만원, 1999년식 EF소나타(168만원),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 13억 원을 합쳐 15억 정도다. 부동산은 없다. 전국 각지의 땅과 건물, 주식과 골프장 회원권, 귀금속과 고가의 그림 등으로 가득한 여느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사항과 달리 단 4줄이 내역의 전부다. 박 소장은 자녀가 없고, 1976년 입대해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박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왜 기부를 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부와 명예, 지위는 잠시 맡았다가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진 것의 한 부분을 필요한 곳에 돌려 드린 겁니다. 소장 이후에는 로펌에 가지 않겠다고 청문회 때 약속했고, 퇴임 이후 최고 공직 경험자로서 사회봉사하는 방법을 찾아볼 겁니다.”

그가 소장직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고 ‘사회’로 돌아갈지 주목된다.

화, 2016/12/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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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에 재벌 총수들이 국회 청문회에 총출동했다.

재계서열 1,2,3 위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 SK 최태원 회장을 필두로 롯데 신동빈, 한화 김승연, LG 구본무 , GS 허창수, 한진 조양호, CJ 손경식 회장 등 9명이 나란히 증인석에 앉았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국조특위)’ 1차 청문회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지목받은 재벌들의 잘못을 따지기 위한 자리였지만 이들 재벌 총수들은 청문회 내내 모르쇠와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심지어 검찰 공소장을 통해 확인된 내용마저 잘 모르겠다고 부인하는 대범함을 보였고, 모든 일들이 실무자들 선에서 이루어져 자신들은 문제가 생긴 뒤에야 뒤늦게 보고받았다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이재용의 ‘면종복배’

국조특위 위원들의 질의는 대부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중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민들에게 많은 우려와 심려와 끼쳐드린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사과말을 10여 차례나 반복하며 몸을 낮추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잘못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르쇠와 책임회피로 일관해 국조특위 위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이 부회장은 미르와 K스포츠에 80억 원을 보낸 사실에 대해 “송금 당시에 전혀 몰랐으며, 누가 그 일을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답했다. 또 여러 국조특위 위원들이 “최순실 씨의 존재에 대해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6차례나 반복했지만, 이 부회장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했다. 자신의 경영권 세습과 직결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서도 그 과정을 잘 몰랐다고 말했다. 특히 “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는 지분이 올라가서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저희 임직원과 고객사에게 인정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재용, 전경련 탈퇴 및 미래전략실 해체 약속

이 부회장이 인정한 단 한 가지의 잘못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에 대한 지원 방식이 부적절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신은 당시 그러한 사실을 몰랐고 실무자들이 저지른 잘못을 미리 막지 못한 게 자신의 불찰이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대신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문화 융성과 체육 사업에 대한 지원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이 피해자라는 입장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전경련을 탈퇴하고 삼성 그룹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고, “자신보다 훌륭한 경영인이 있으면 경영권을 언제든지 넘기겠다”고도 말했다.

국조특위 용두사미로 끝날까

이날 청문회에서는 기대와 달리 정경유착 의혹이 새로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나마 새로운 것을 꼽자면 일성신약 윤석근 대표의 증언. 윤 대표는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김태환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연금은 이미 찬성으로 가기로 되어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은 삼성 뿐 아니라 한화도 정유라에게 연습용 말을 수입해 제공하지 않았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승연 회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청문회가 저녁까지 이어지면서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건강을 이유로 병원으로 이동했다.  고령인 CJ 손경식 회장과 LG 구본무 회장 역시 각각 저녁 8시 40분과 9시에 조기 귀가했다.

한편 오늘 청문회장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출석할 때는 취재진 사이에 섞여 있던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습적인 시위를 벌이며 피켓을 펼치고 구호를 외쳤다. 청문회가 열린 국회 본관 뒤편에서는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재벌구속 특별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 백혈병 피해자 단체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현대차 부품업체 유성기업과 갑을 오토텍 노조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국회 의경들이 이를 저지했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취재 : 심인보

촬영 : 정형민

편집 : 윤석민

수, 2016/12/0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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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라진 7시간 관련’ 뉴스프로도 사찰 -김영한 비서 비망록에 ‘뉴스프로’ 언급 -뉴스프로 기자 압수수색, 후원계좌 내용 추적은 청와대 지시 이하로 대기자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뉴스프로에 가해진 압수수색, 계좌 추적, 뉴스프로 운영진 신상털이 등의 청와대 지시설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탄핵 정국의 핵으로 등장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뉴스프로가 언급됨으로써 사실로 ...
수, 2016/1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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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12. 7)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피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많았는데도 마다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때 국회·집권당이 수렁에 빠진 자신을 극적으로 구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무죄라는 자기 확신이다.

하지만 부결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지금 그의 믿음은 흔들릴 것이다. 세 번의 뒤집기 시도에 다 실패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쯤 했으면 포기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 이건 다른 사람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어제 청와대로 새누리당 지도부를 불러 예의 야당 탓과 변명을 반복하며 헌법재판소까지 가보기로 했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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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헌재까지 가보기로 결심했다. 운이 좋다면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박근혜를 둘러싼 구체제의 본질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게 된다. 탄핵 부결이든, 가결이든 구체제는 종말을 고할 수 밖에 없다. (이미지 출처: YTN)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깨끗이 손을 털고 나가겠다며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바짓가랑이라도 한 번 더 붙잡고 늘어지겠다며 현실을 거부하는 사람.

박근혜는 후자다. 당연히 이런 부류는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불장난을 하다 집을 다 태우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연기하는 그를 보며 시민들은 이미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잘못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반성하라며 타일러도 막무가내인 대통령과 실랑이하는 일에 지친 시민들은 이제 그와의 짧지 않았던 동행을 하루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시민들은 그저 그로부터 해방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틀 밤만 자고 나면 그날이다.

지금 확실한 것은 없다. 표결은 숫자의 문제다. 하나라도 모자라면 부결된다. 그렇다고 이런 불확실성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결정적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팽팽한 긴장감은 전 시민의 시선을 집중시켜 가까이는 9년간, 멀리는 70년간 한국을 지배한 기득권의 실상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국가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감춰진 적나라한 약탈구조, 그 국가에 의해 식민화된 경제·사회·문화, 금권과 권력의 융·복합, 권력·돈·말에 짓밟히는 지성의 전당, 이런 것들을 목격하는 것만큼 진실에 다가가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로부터 배운다면 지난 9년, 70년으로부터의 탈출을 시작할 수 있다.

가부 어느 쪽이든 구체제 탈피는 피할 수 없다. 가결된다면 어딘가 정상적인 구석이 있다는 생각에 경계심을 늦추고 그로 인해 개혁이 미진하게 끝날 수 있다. 오히려 부결이 구체제 청산 관점에서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부결이 부패한 기득권 체제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내고 그만큼 개혁의 표적과 목표를 분명히 해주기 때문이다.

국회가 탄핵 부결로 박근혜에게 대통령의 정통성을 다시 부여하고 박근혜는 무죄를 입증했다며 고개를 들고,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의 길이 열렸다며 환호한다고 해보자. 주권자인 시민이 6차례 촛불집회로 주권의 위임을 철회했는데 재신임 받았다는 모순이 생긴다.

이는 대통령, 국회, 집권당이 대의성을 잃은 껍데기 대의제도일 때만 가능한 현상이다. 정부기관에 쌓인 지식과 전문성, 엘리트 관료, 절차와 제도, 감시와 견제 장치들이 주는 권위와 믿음도 붕괴된다.

이건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시민을 통치하겠다고 나서면 그때는 최후의 수단, 즉 시민 저항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 시민은 정권, 국회, 정당, 재벌과 같은 구체제를 청산하는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이다. 말하자면 기성 제도의 하나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실패한 대신 기성 체제 전체를 탄핵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가결과 부결은 중간 경로만 조금 다를 수 있을 뿐 구체제의 해체라는 길에서 결국 만난다. 거대한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일엽편주가 어디로 가겠는가? 바다가 흐르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 마찬가지, 피할 수 없다.

대선도 독자적 사건이 아니라 구체제 청산과정의 일부이다.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세울 뚝심과 결기를 가진 세력이 누구인지 경쟁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기득권에 안주하며 과실이 익어 떨어지기를 기다린 자에게 돌아갈 것은 없다.

야당이 이 역사적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다. 새누리는 그동안 대선 준비 시간 확보를 위해 퇴진 늦추기에 총력을 쏟았다. 그러나 박근혜 유산을 털어내지 못한다면 겨우 몇 달 더 버는 것은 소용이 없다.

분명한 것은 금요일 부결 소식이 전해져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만세를 부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민과의 대결에서 부패한 기득권이 승리하고 시민이 패배한 의미를 그들도 곧 알아챌 것이다. 승리의 찬가 대신 조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수, 2016/12/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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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대거 불출석…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국조특위) 2차 청문회는 증인석 27개 가운데 절반이 겨우 채워진 채 열렸다. 최순실 씨를 비롯한 최 씨 일가(장시호 씨는 참석)와 문고리 3인방 등 핵심 증인들은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의 동행명령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장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가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김기춘 ‘모르쇠’, 김종 ‘거짓말’, 김재열 ‘오락가락’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수족 역할을 했던 증인들은 국조위원들의 집중 질의에도 불구하고 말을 아꼈다.

특히 김 전 실장은 국조위원들의 집중 질타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의 진상을 밝힐 주요 증인으로 지목됐지만, 그의 진술은 참사 이후 2년 넘게 반복된 답변의 수위를 넘지 않았다. 청문회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당일 계약직 미용사로부터 머리 손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등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지만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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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과 관련돼 있는 추궁도 이어졌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이 비망록의 2014년 10월 27일자 기록에 ‘세월호 인양 – 시신인양X, 정부책임, 부담’이라는 메모와 함께 김 전 실장을 뜻하는 ‘장(長)’이라는 글자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김기춘 실장이 한 말을 받아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메모는 세월호를 인양했을 경우 그 책임과 부담이 정부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아이들이 빠졌는데 시신을 인양하지 말라고 했다면 죽어서도 천당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작성자(김영한 전 수석)의 주관적 생각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김종 전 차관은 연이어 위증 의혹을 받았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4년 승마협회 관련 비리 의혹을 반박한 문체부의 기자회견이 누구의 지시로 이뤄졌는지 추궁했다. 당시 안 의원은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국가대표 선발 과정 둘러싼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여당 의원들과 문체부로부터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김 전 차관은 “여당 국회의원들이 지적해 기자회견을 한 것”이라고 답했지만 구체적인 지시자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안 의원은 “지난 9월 국회 국정감사 때 문체부의 지시를 받았다던 진술과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이라며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위증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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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실소유한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원하도록 삼성 측에 강요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진술이 엇갈렸다. 김 전 차관은 “영재센터에 대한 후원 제안을 한 일 자체가 없다”며 “김 사장은 만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 사장은 “서울 프라자호텔 일식집에서 다른 제일기획 임원과 김종 차관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후원금 16억 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구체적인 만남 장소까지 밝혔다.

김종 전 차관과 진실공방을 벌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영재센터에 대한 후원을 결정한 주체가 어딘지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당초 자신이 후원 결정을 내렸다고 진술했지만, 추궁이 계속되자 제일기획이 아닌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팀이 후원을 결정했다고 번복했다.

차은택 “장관도, 연설문도 최순실에 주면 그대로 반영돼”

다른 증인들이 말 수를 아낀 데 반해 그간 드러나지 않던 내막을 적극적으로 밝힌 증인도 있었다.  

지난달 초 입국 기자회견 이후 처음으로 말문을 연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최순실 씨의 부탁을 받아 자신이 써준 글이 대통령 연설문에 포함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정부 주요 보직에 후보자를 추천해달라는 최 씨의 요청을 받아 자신이 후보자를 추천했고, 곧 이들이 해당 보직에 임명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이 차 씨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인사로 직접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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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 씨는 자신에 대한 비위 의혹에 대해선 일체 부인했다. 각종 특혜 의혹을 받은 광고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 관련 의혹에 대해 “플레이그라운드의 실소유주는 최순실 씨였고, 나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포스코 계열의 광고회사 포레카 지분을 강탈하려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공소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최순실게이트’의 최초제보자인 고영태 씨 역시 최 씨와의 인연에 대해 진술했다. 고 씨는 최씨와 관련해 제기된’ 남녀관계설’을 부인하며 “대통령의 가방과 의상과 관련해 최 씨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방 3,40 개와 의상 100여 벌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최 씨로부터 4000만원 이상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고 씨는 직원들에 대한 최 씨의 부적절한 언행이 갈등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2014년 말, 고 씨가 TV조선을 찾아가 최 씨 관련 문건과 의상실 CCTV를 제공했지만 보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고 씨의 진술 과정에서 드러났다. 대통령연설문이 담긴 최순실 씨의 태블릿PC를 언론에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얼굴 드러낸 장시호 “최순실 이모를 거스를 수 없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누림기획, 더스포츠엠 등 차명법인을 소유하고 스포츠계 이권을 노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시호 씨도 이날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 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던 장 씨는 국회의 동행 명령에 응해 최 씨 일가로서는 유일하게 청문회에 참석했다.

장 씨는 자신과 관련된 법인 모두가 최순실 씨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고, 자신은 이모인 최 씨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연세대 입학 관련 의혹에 대해선 승마특기생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입학한 것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취재 : 오대양, 홍여진, 조현미

수, 2016/12/0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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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안진걸 공동사무처장 (참여연대)
  • 고정출연 : 정태인 소장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한상희 교수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이슈손님 : 권영국 변호사 (박근혜퇴진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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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팟 64회  #닥치고탄핵! '운명의 12월 9일' / 이철성 경찰청장의 망언

 

지난 12월 3일 범국민 촛불집회에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인 23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국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쳤습니다. 이제 국회는 이런 시민의 뜻에 '탄핵안 가결'로 답해야 할 것입니다.

 

참팟 64회는 탄핵안 의결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권영국 변호사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또한, 최근 법원이 청와대 100m 앞 행진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회의 자유 권한이 크다고 하는데 그건 법원의 입장, 법원의 입장과 경찰의 입장은 다르다, 앞으로도 율곡로까지만 행진을 허용하겠다”는 등의 법치를 무시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발언에 대한 문제점을 따져보았습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s://goo.gl/0SMIrb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ScE3Zk

 

 

같이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참여연대 팟캐스트 

 

목, 2016/12/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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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은 탄핵 찬반 입장 당당히 공개하고 그 책임을 져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내일(12/9) 예정되어 있다. 국회의 탄핵안 처리는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즉각 축출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이행하는 절차일 뿐이다. 따라서 국회는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에 따라 탄핵안을 반드시 가결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요구한다. 모든 국회의원들은 탄핵안에 대한 찬반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 표결에 임하라. 자신들이 취한 입장과 표결 결과에 따라 국민들은 단호히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 정치세력과 정치인은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할 것이다. 무기명 투표라는 제도 뒤에 숨어 국민의 심판을 모면하려 한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초유의 사태에 대한 국민의 뜻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그리고 온 국민이 국회를 지켜보고 있다.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초유의 국정농단세력을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목, 2016/12/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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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 이후 대한민국에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궁중정치와 촛불로 대표되는 광장민주주의의 역사적 대결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3차례 담화 등을 통해 거짓 해명과 눈물, 교란책 등을 내놓으며 줄기차게 국면전환과 반격을 시도했지만 촛불민심은 단호했다. 박근혜 즉각 퇴진과 처벌을 흔들림 없이 요구하며 우왕좌왕하던 정치권을 탄핵의 대오로 이끌었다.

촛불 vs. 박근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제일 먼저 꺼낸 카드는 ‘개헌’, 그것도 본인이 주도하는 개헌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과 정부 비밀문건을 미리 받아 봤고, 수정까지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개헌 카드는 하루만에 좌절됐다. 대통령은 1차담화를 발표했지만 거짓말 해명 논란에 검찰 수사를 대비한 가이드라인 제시 성격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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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2만 명 촛불의 민심은 허탈과 배심감, 그리고 분노였다. 전국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꺼낸 두번째 깜짝 카드는 일방적인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이었다. 새누리당이 제안하고 있었던 거국내각 취지에도 맞지 않고 야권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인데도 왜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했을까? 총리 지명을 강행함으로써 파행을 일으켜 총리 정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동시에 김병준 씨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국민의당을 회유해 야권 분열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대통령이라는 진술이 나오는 등 게이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자 대통령 지지율은 5%까지 추락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2차 담화를 발표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로 대표되는 이날 담화의 핵심은 진심어린 사과가 아닌 최순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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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촛불은 광장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서울 20만 명을 포함해 전국 30만 촛불 민심은 ‘박근혜는 물러나라’였다. 촛불에 놀란 야권은 탄핵이나 퇴진을 거론했을 때의 역풍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서 촛불을 두려워하며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고, 새누리당도 친박과 비박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촛불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번 반전을 시도했다. 본인의 거취나 총리의 권한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 없이 국회에 총리 추천 권한을 기습 제안한 것이다. 김병준 총리 지명자 카드는 결국 버리는 돌이 됐고, 당리당략이 복잡한 정치권은 흔들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끊임 없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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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을 느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는 기존 입장에서 180도 태도를 바꿨다. 퇴진이나 2선 후퇴는 없다고 못박으며 반격으로 돌아섰다. 우선 우선 검찰 수사에 적극 응하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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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수사를 회피하면서 부산 엘씨티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엄단하라는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차관 인사와 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 사드 배치, 그리고 교과서 국정화 등을 밀어붙였다. 친박계도 대통령의 행보에 발맞춰 각종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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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침묵했던 친박 중진들까지 전방위로 박근혜 호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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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친박의 반격에 촛불은 직접 청와대로 향했다. 서울을 포함해 전국에서 136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다음날 검찰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공범으로 박근혜를 지목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를 상상과 추측, 사상누각이라며 비판했고 국회에 제안했던 총리 추천권도 철회할 뜻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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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한파에도 최대 인파가 모였다. 190만 명 촛불 민심은 직접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청와대로 진격했다. 한달 만에 2만에서 190만 명으로 증가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새로 쓰여지고 있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회심의 한 수를 정치권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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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의 시기와 방법을 국회가 정해달라며 조기퇴진의 가능성을 비쳤지만 사실상 이간책이었고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우선 탄핵을 다짐했던 비박계가 돌아서면서 탄핵시계는 멈춰섰다. 친박과 비박계는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다시 합쳤고 청와대는 비박계를 설득하기 위해 면담을 추진했다.

비박이 이탈하자 야권은 우왕좌왕했다. 추미애 대표가 단독으로 김무성 의원을 만나 퇴진 일정을 논의한 것이 알려지자 다른 야당이 발끈했고 탄핵안 표결 시점을 놓고는 2일, 5일 또는 9일 등 오락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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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이간책과 이에 흔들리는 정치권의 모습은 촛불을 횃불로 만들었다. 236만 명의 민심은 청와대와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을 동시에 압박했다. 비박계는 민심 앞에 고개를 숙여 대통령의 4월 퇴진 여부와 관계 없이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로 돌아섰다. 광장은 거대한 축제의 장인 동시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의 산실이 됐다.

목, 2016/12/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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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탄핵안 가결을 앞두고 새누리당 의원들을 최대한 접촉해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9일 탄핵 표결에 참여할지, 또 민심과 박근혜 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 찬,반을 결정할 것인지, 결정의 기준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지난 4일 동안 뉴스타파가 문자메시지와 전화통화 그리고 국회 방문 등을 통해 접촉한 새누리당 의원은 80여 명에 이른다.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비박계 의원뿐 아니라, 지난 총선에서 진정한 친박으로 불리던 ‘진박’ 곽상도 , 추경호 의원, 바람 불면 촛불이 꺼진다고 했던 김진태 의원도 만났다.

지난 4일간, 새누리 80명 접촉해, 탄핵 찬반 여부 물어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려면,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2명 전원이 찬성하더라도 새누리당에서 최소 28명이 필요하다.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찬반 입장을 우선 물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혜훈 의원은 문자메시지를 보내,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박인숙 의원도 “탄핵 찬성”이라는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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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오신환, 김현아, 이은재 의원, 이철규, 정운천 의원 등은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초선인 신보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핵 표결에 찬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비박 김재경, “새누리당 내 탄핵 찬성 의원 40 플러스 알파”

비박계 김재경 의원은 새누리당 내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40 플러스 알파”라며, 탄핵 찬성 의원이 40명을 웃돌 것으로 예측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도 최근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현재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탄핵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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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시국회의 간사를 맡고 있는 황영철 의원은 지난 4일 모임에 참여했던 29명 외에 더 많은 의원들이 탄핵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장제원 의원은 “탄핵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일부 친박계 의원들도 저희가 알아본 결과, 탄핵에 찬성해야지 않느냐, 탄핵을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에 동의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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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의원, 촛불민심 크게 의식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대통령 탄핵 표결의 기준은 뭘까? “양심”, “소신” 등을 말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촛불 민심을 크게 의식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상당수 의원들이 촛불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민심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철규 의원은 지역구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여론 조사를 실시했고, 65.5%가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오자 기꺼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말했다.

‘진박’ 곽상도 “촛불민심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민심도 있다.”

그러나 민심 특히 촛불민심에 대해 다른 시각도 존재했다. ‘진박’ 곽상도 의원은 “촛불민심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민심도 있다”며 230만 명이 아닌 4천, 5천만의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민경욱 의원은 “촛불 민심이라는 게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래서요”라며 언짢아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고 했던 김진태 의원은 촛불 민심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채 “그만합시다”라는 말만 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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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주초 정치권이 다시 술렁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4차 담화를 통해 퇴진 시기 등을 밝힌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12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 대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렀다.

회동 3시간 뒤,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렸고, 이정현 대표가 마지막까지 탄핵 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오히려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 “이제는 탄핵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친박계 등 일부 의원들은 얼굴이 굳은 채 의총장을 빠져나갔다. 리틀 박근혜로 알려진 최연혜 의원은 어떤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았고 이장우 의원은 “물어보지 말라”고 했고, 전희경 의원은 탄핵 표결 여부와 찬반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답변을 거절했다. 이정현 대표 역시 탄핵 표결에 참여할 거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 없이 국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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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안 통과 여부가 사실상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달린 가운데, 어제부터 전국에서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8일에는 새누리당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도 탄핵 찬성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촛불 민심이 새누리당 의원들을 정조준하는 가운데, 역사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취재 박중석, 송원근, 이유정, 강민수, 정재원
촬영 최형석, 김기철, 김수영, 김남범,
편집 정지성
CG 정동우

목, 2016/12/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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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주목해야 할 것은 탄핵안 가결 이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총리 문제이다. 현 황교안 국무총리가 교체되지 않는 한 탄핵안 가결 이후 6개월, 탄핵 인용 이후 대선까지 2개월 등 최대 8개월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그러나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로 대통령 업무를 대신하기엔 매우 부적절하다.

(총리와 법무부 장관은) 즉각 수사를 받아야 될 부역세력의 핵심이라고 봅니다.송영길 /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6.11.11

철저히 정치검찰로서 대통령에게 부역한 거 아니냐 근데 그 지휘 책임을 맡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국무총리로서 국정을 통할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이 크죠.심상정 / 정의당 대표 2016.11.25

황교안 총리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입니다. 황 총리가 이번 국정농단에 대해 몰랐다면 무능력이고 알았다면 공범입니다. 무능력자이거나 범죄자인 황 총리를 대통령권한대행으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주승용 /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 2016.11.28

황교안 총리 내각을 인정하겠어요? 황교안 총리하면 야당이 가만히 있겠어요? 국민이 가만히 있겠어요?서청원 / 새누리당 의원_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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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2014년 말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에서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함께 국정농단 관련 사건의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라시 수준의 문건 내용”이라며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당시 주무 장관이었던 황교안은 수사를 직접 지휘했다.

이후 검찰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설을 ‘지라시’로 치부하고 문건 유출자들만 처벌한 채 급히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건 유출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최모 경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청와대의 회유와 강압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황교안 법무 장관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2년의 세월이 흘러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역사적, 사법적 책임으로부터 황교안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박영수 특별검사는 ‘2014년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알면서도 덮었다면 당시 수사팀뿐만 아니라 황교안 역시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올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가 불거지며 비선 실세 의혹이 다시 제기됐을 때도 황교안은 총리로서 박근혜 대통령 호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회 본회의(2016.09.22)에 출석해 “모금이 된 것 가지고 의심을 할 수는 없다.”, “기부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발언을 반복하며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왜곡되거나 과장돼 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이후에야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안타깝다”며 소극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가를 위한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국정농단이 벌어져 안타깝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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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로서 국정농단의 핵심 부역자일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 공안통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에서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하자 공개적으로 거부해 이를 무산시켰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악용해 축소수사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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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박근혜 정부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물이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2년 3개월을 장관직에 있었으며,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이완구 총리가 물러나자 곧바로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김병준 씨가 후임 총리로 지명되면서 황교안의 공직자 생활도 끝나는 듯했지만, 정치권의 혼선을 틈타 황교안은 조금씩 대통령 대행의 자리까지 눈 앞에 두고 있다.


취재 연다혜, 이보람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목, 2016/12/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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