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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총리, 조세도피처 회사 통해 수백만 달러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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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총리, 조세도피처 회사 통해 수백만 달러 소유

익명 (미확인) | 월, 2016/04/04- 03:00

아이슬란드 총리, 질문을 회피했지만 대답은 계속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는 아이슬란드 은행이 발행한 수백만 개의 채권을 역외에서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금융 붕괴 이후 총리가 되었다.

기사 : 라이언 치툼(Ryan Chittum), 요하네스 Kr 크리스탠슨( Jóhannes Kr. Kristjánsson), 배스티안 오버메이어(Bastian Obermayer), 프레드릭 오베르마이어(Frederik Obermaier)

레이캬비크 – 2014년 5월 15일, 아이슬란드 총리는 의회에서 정부가 비밀 역외 회사를 이용하는 사기꾼들과 탈세를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 과연 아이슬란드도 독일처럼 역외 탈세 지역의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폭로 데이터를 구매할 것인가?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릭손 총리는 이에 대해 모호하게 말을 흐렸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유용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은, 아이슬란드가 구매를 검토했던 역외 탈세 지역 데이터들에는 귄릭손 총리 자신과 최소한 2명의 현정부 고위급 인사와 연계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국제 탐사보도언론인 협회, 독일신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 그리고 그 외 여러 제휴 언론사들이 입수한 수백만 개의 비밀 파일들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천 백만 개 이상의 문서들(1977년부터 2015년 12월까지의 이메일, 현금 지급, 회사 설립 정보 등)을 통해서 우리는 역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페이퍼 컴퍼니 등록 에이전트 가운데 하나인 파나마의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내부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파일들은 2007년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윈트리스’라고 불리는 회사를 포함, 20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개인과 회사로 등록된 약 214,488개 법인에 관한 비밀 정보를 밝혀주고 있다.

귄릭손 총리의 역외 활동

귄릭손 총리는 2008년 10월에 총리가 되었다.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지난 수 년간 행했던 투기와 사적 금융거래의 결과 불과 며칠 만에 붕괴되었던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은행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저널리스트이자 라디오-TV 방송인(그는 2004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이었던 귄릭손은 인디펜스(InDifence)라고 불린 그룹을 이끌었는데, 이 그룹은 금융 붕괴 이후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수십억 달러를 국제 채권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펼쳤다. 그 이후 두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인디펜스 그룹을 지지했고 성공적인 선거운동으로 귄릭손과 그의 당이 정권을 차지했다.

2009년 1월, 진보당은 민족주의자인 귄릭손(그는 한 때 아이슬란드 음식만으로 구성된 식사를 하기도 했다)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아이슬란드의 과거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38살이었던 2013년, 그는 해외 채권자들에 단호히 맞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택 보유자들의 채무를 구제해주며 긴축 프로그램을 끝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2015년 귄릭손 정부는 채권자들과 합의를 도출했으나 그의 그룹인 인디펜스는 이 합의가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의 가족이 (당시 합의에 따라) 채권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 덕분에 상당한 이권을 얻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유한 아이슬란드 도요다 대리점주의 딸인 귄릭손 총리의 부인이 2015년에 서명한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과 그의 부인은 2007년 12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3개의 은행 중 하나인 Landsbanki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모색 폰세카로부터 ‘윈트리스’(Wintris)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인수했다. 이들은 이 회사를 이용해 상속받은 돈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룩셈부르크와 영국에서 지점을 설립했으며 이곳에서 이들이 한 일은 고객들이 여러 자산들을 보관할 수 있는 역외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외 회사들은 탈세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아마도 몇몇 사람들이 이러한 기회를 이용했을 것입니다.” 금융위기로 붕괴된 한 소규모 은행에 대한 청산을 주도했던 레이캬비크의 변호사, Rob Jonatansson은 윈트리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다.

모색 폰세카 파일에는 ‘윈트리스’가 이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안 나오지만, 법원 기록에 의하면 ‘윈트리스’는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법원 기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은행들이 파산할 때 수백만 달러를 청구한 채권자였다.

2009년 11월 Landsbanki 은행을 청산할 당시 이사진은, 윈트리스를 1억7천4백만 크로나(16억 원)를 청구한 채권자로 등록했다. 또한 윈트리스는 2010년 1월에 Kaupthing 은행의 청구 목록에도 세 차례 언급되었으며 액면가로 2억2천1백만 크로나(20억 원)에 해당되는 채권을 보유했다. 그리고 윈트리스는 1억1천4백만 크로나(10억 6천만 원) 에 달하는 Glitnir 채권을 보유했다.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윈트리스는 금융 붕괴 이후 이 채권을 한 아이슬란드 투자자에게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귄릭손은 “벌처”와 같이 이러한 채권을 매입하는 해외 펀드들을 비판했다). 결국 윈트리스는 현재의 환율로 은행에 있는 자산 4백만 달러(금융 붕괴 이전 환율로는 8백만 달러)를 청구했다.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은행들의 파산 기록에 등장하는 채권 외에도 주식과 같은 다른 자산들을 보유했을 수도 있다.

ICIJ가 입수한 파일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4월 의회에 입성했을 때 부인과 함께 윈트리스를 공동 소유했으며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이 회사의 존재를 계속 숨겨왔다. 귄릭손 총리는 오직 상업적 활동을 하는 회사들에 대해서만 보고 의무가 있다며 아이슬란드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의회 사무 총장은 모든 회사에 대해 보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윈트리스의 채권은 여전히 액면가의 15%에서 30% 정도에 해당되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12월 31일 윈트리스 지분의 절반을 1달러에 자신의 부인에게 매각했다.

2016년 3월 15일에 총리 부인 Pálsdóttir는 처음으로 이 조세 도피처 회사를 공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그녀는 “이 회사의 존재는 절대로 비밀이 아니었다”라고 언급했다. Pálsdóttir는 지난 2007년 귄릭손과 그녀가 해외에서 거주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때 자신이 윈트리스를 설립했으며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받은 자금을 투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명했다.

이 글에 게시된 것은, ICIJ 제휴사인 레이캬비크 미디어와 SVT(스웨덴 공영 텔레비전)가 카메라 인터뷰에서 귄릭손 총리에게 윈트리스에 대해 질문하고 난 지 4일 뒤의 일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SVT는 귄릭손에게 조세 도피처 회사를 소유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제가요? 없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아이슬란드 회사들은 조세 도피처 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노동조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제가 가진 모든 자산과 제 가족의 자산에 대한 모든 세금을 납부했습니다. 따라서 어디에도 숨겨진 자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슬란드 정치가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뭔가에 대해서 비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절대로 숨겨진 자산이 없다는 것에 대해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윈트리스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귄릭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회사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제가 이사로 활동했던 여러 회사들 중 하나와 관련되어 있으며 제가 언급했듯 이 회사는 설립 이래 계속해서 세금 계정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들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제 세금 신고서에 있는 회사에 대해 저에게 질문을 할 때 마치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저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귄릭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터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로부터 4일 후에 Pálsdóttir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윈트리스에 있는 자산이 오로지 자신의 것이며 귄릭손이 공동 소유자로 등록된 것은 은행의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9년 이 실수를 확인한 뒤 실수를 바로잡아 그녀가 이 회사의 단독 소유자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이 자신의 지분을 Pálsdóttir에게 매각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Pálsdóttir는 이 자산이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얻은 자금 중 일부이며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항상 납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귄릭손의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공개적으로 설명된 것처럼 귄릭손 총리와 그의 부인은 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자산과 증권, 2008년 이후의 세금 환급 등에 대해 모두 신고하는 등 아이슬란드 법을 준수했습니다.

귄릭손의 정치적 입장이 이 채권의 가치를 높여주었는지 혹은 손상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이슬란드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Þórólfur Matthíasson은 이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총리 그 자신 이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외 회사를 운영하는 정치가들

이 문서는 다른 아이슬란드 정치가들의 자산 운용에 대해서도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기업가들과 똑같은 형태로 자산을 운용해서 이득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귄릭손 총리의 정치적 동료이자 아이슬란드 금융경제 장관인 Bjarni Benediktsson은 2015년 2월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인터뷰에서 “저는 조세 도피처 같은 곳에 자산을 보관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Benediktsson은 지난 2005년, 다른 2명의 아이슬란드 사업가들과 함께 인도양의 악명 높은 비밀 조세 도피처인 세이셸에 모색 폰세카가 설립한 ‘팰슨’(Falson & Co)이라는 이름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 “위임권”이라고 알려진 권한을 함께 소유했다. 위임권은 이 3명이 회사의 거래를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팰슨’은 무기명 주식을 발행했다. 무기명 주식은 누구든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해주는 주식이다. 누군가의 이름으로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기밀 보안에 더 유리하다. 무기명 주식은 사기와 탈세에 널리 이용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불법이 되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팰슨은 2012년 세이셸의 기업등록부에서 삭제될 때까지 페이퍼 컴퍼니로 이용되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회나 일반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

ICIJ와 제휴 언론사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이’팰슨’에 대해 물었을 때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두바이에서 건설 중인 4개의 아파트를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자신이 회사의 지분 3분의 1을 소유했었다고 대답했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법인을 통해서 처리할 수 있는 편의성을 위해서 지주회사를 설립합니다. ‘팰슨’의 소유자들이 2008년 이 회사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아파트가 완공되기도 전에 이 자산이 매각되었고 결국 이 자산은 손실을 안고서 매각되었습니다. 이 자산의 처분에 제가 관여했다는 점은 지난 수년 동안 공개된 정보였습니다.”

이 두바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난 2010년 아이슬란드 신문사인 DV가 입수한 이메일을 근거로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Benedikts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소유권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나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대한 소유권을 아이슬란드의 세무 당국에 신고했습니다.” ‘팰슨’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의회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Benediktsson은 “(공개) 규정은 2009년 5월에 시행되었으며 당시에 저는 운영 중인 사업체나 신고해야 할 부동산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뒤 Benediktsson은 Falson의 제휴자 중 1명으로부터 이 회사의 사업이 2009년 9월까지 청산되지 않았음을 언급한 서신을 받아 이를 ICIJ에 제출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2008년 11월에 인수 합의를 취소한 이후에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 이후부터 ‘팰슨’은 이 재산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소유자가 확인될 때까지 이 회사의 유일한 목적은 상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세 도피처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던 지난해의 인터뷰와 관련해 Benediktsson은 “저는 조세 도피인는 세이셸에 이 회사가 등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룩셈부르크 회사로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내각 구성원인 Ólöf Nordal 내무부 장관 역시 2006년 11월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비밀 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둘리 시큐어리티 SA’라는 회사를,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 모색 폰세카로부터 사들였다. ‘윈트리스’나 ‘팰슨’과 마찬가지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Nordal은 그녀의 남편 Tomas Mar Sigurdsson(미국의 거대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의 글로벌 고급 제품 사업부의 최고 운영 책임자다.)과 함께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위임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회사의 주식은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2007년 8월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으로부터 받은 융자의 담보로서 둘리의 주식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 은행은 1년 후에 붕괴되었다.

ICIJ로부터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이 알코아 스톡 옵션 매도와 관련한 과정에 대비해 이 회사를 설립하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함의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옵션을 실행하지 않았고 이 회사로 전혀 자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명확하게 저와 제 아내 모두 이 당시에(혹은 그 이후에도) 둘리 시큐어리티의 지분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어떠한 조세 도피처 회사도 갖고 있지 않으며 가진 적도 없습니다.

유출된 문서에는, 귄릭손 총리가 속해있는 진보당의 이사이자 총리의 고문을 맡고 있는 Hrólfur Ölvisson이 이 데이터에 언급된 2개의 회사(‘셀코 파이낸스’와 ‘카밀레 마케팅 SA’)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 있다. 2005년, Ölvisson은 진보당의 간부를 지냈던 Finnur Ingólfsson에게 셀코 파이낸스에 대한 지배권을 양도했다. Finnur Ingólfsson은 Kaupthing 은행이 민영화되었을 때 이 은행의 인수를 지휘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Ölvisson은 이 회사가 보험이나 다른 상품들을 아이슬란드에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들이 수년간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한 Ölvisson은 “저와 관련된 모든 일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일은 회계사가 모두 처리했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Ingólfsson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셀코’를 인수했으며 그 과정에 어떤 조세상의 이득도 없었다고 말했다.

바이킹 침입자

아이슬란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금융 분야에서 매우 뒤처져 있었다. 아이슬란드에는 1985년까지 주식시장이 없었고 이곳의 거대 은행들은 국가 소유였다.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에 국가소유로 인한 왜곡을 없앰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경제 자유화를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 정부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은행들을 민영화했고 밀려드는 해외자본은 아이슬란드 금융산업의 급속한 확장을 부추겼다. 2008년에 3개의 주요 은행인 aupthing 은행, Landsbanki 은행, Glitnir 은행의 자산은 국가 경제 규모보다 11배 더 큰 1천8백억 달러까지 팽창했으며 이것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금융 버블 중 하나였다.

언론은 아이슬란드의 거대 기업과 은행들을 새로운 바이킹 침입자라고 칭찬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 엘리트들은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해외 사업을 유치했고 개인 파티에 엘튼 존이나 50센트와 같은 뮤지션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의 어부들은 이제 투자자가 되었다.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800% 상승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 불과 3일만에 이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

아이슬란드의 거대 은행 3개가 붕괴됨으로써 국가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주식시장은 97% 폭락했고 아이슬란드 통화인 크로나 가치는 절반으로 하락했다.

아이슬란드는 거대 은행들을 국유화했고 해외 투자자들의 예치된 자금에 대해 지급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영국 및 네덜란드와의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다. 수천 명이 의회 앞에서 시위를 했고 건물에 돌과 폭죽을 집어 던졌다. 결국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 정부도 붕괴되었다. 의회는 당시의 총리였던 Geir Haarde를 과실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상징적인 조치로서 자신의 내각에 위기 상황을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 총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혼란 속에서, 아이슬란드의 고위급 은행가들 중 상당수는 조세 도피처 회사를 통해 가까운 동료들에게 돈을 보냈고 실제보다 은행이 더 건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시장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 내부자들은 서로 간에, 그리고 은행 소유자들과 주요 관계자들에게 수백억 크로나(몇 억 달러)를 융자해 줌으로써 아무런 위험 없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과 규제 기관들은 아이슬란드 은행 지분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오인하게 되었다.

엉킨 실 풀기

서구 국가들 중 오직 아이슬란드 정부만이 은행 간부들을 엄격하게 기소했고 최소 20여 명이 구속됐다. 최상위 은행 임원 7명 중 4명, 3개 거대 은행들의 주요 주주들이 모색 폰세카를 통해서 등록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을 지배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와 그 외 다른 중개인들로 인해서 이러한 거래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금융 붕괴 이후 7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행위와 보상 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금융 붕괴 이후에 구성된 특별검사 팀을 지휘했던 Olafur Hauksson은 ICIJ와 쥬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이 입수한 정보가 공개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틀림 없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뭔가가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Hauksson은 특별 검사로 임명되기 전에는 인구 6,600여명의 어촌 마을인 아크라네스의 건장한 경찰서장이었다. 당시에 그는 특별 검사직을 원했던 유일한 아이슬란드인이었다.

핵심 인사들을 구속시키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Hauksson은 조세 도피처 회사 때문에 숨겨진 기밀로 인해서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먼이나 토르톨라 등과 같은 곳에 있는 회사 그리고 룩셈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슬란드에 위치해 있는 은행들을 보십시오. 이로 인해서 사건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러 군데에 분산돼 있는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지 파악하려면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은행 부채

ICIJ가 입수한 문서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사업 거래를 은폐하고 돈을 더 많이 보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납세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글로벌 비밀 장치에서 모색 폰세카가 수행하는 상당히 폭넓은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문서들은 인구 329,000명의 작은 섬에서 형성된 엘리트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밝혀주고 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패스트-앤-루스 관행에 대해 가장 먼저 경고했던 학자이자 국회의원인 Vilhálmur Bjarnason은 “아이슬란드는 매우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가족들까지도 알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총리의 자산 운용 시점을 보면 그 중의 일부는 논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사업가들이 지배하는 기업들의 일정과 일치하는 것이 발견된다.

‘윈트리스’와 다른 두 개의 무기명 회사(이 회사들도 아이슬란드인들이 통제한다.)는 2008년 3월 같은 날에 런던의 크레딧 스위스에서 별도의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이 3개의 회사들은 각각 동일한 지명 이사들을 두고 있었다(이들은 모색 폰세카가 여러 결정들을 승인하고 소유자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공한 허수아비다). 이 3개의 회사(윈트리스, 잘 유니버설 SA,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 모두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인수되고 운영되었다.

이중에서 ‘제이드 트레이딩’과 ‘잘 유니버설’은 평범한 회사가 아니다. 이 두 회사는 아이슬란드를 혼란에 빠뜨렸던 시장 조작 스캔들에서 조사(기소되지는 않았지만)를 받은 막강한 Landsbanki 은행 임원들을 통해서 지배되고 운영되었다.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Andri Sveinsson이 지배했는데, 이 인물은 Landsbanki 은행의 회장인 Björgólfur Guðmundsson과 아이슬란드에서 최고 부자인 Guðmundsson의 아들인 Björgólfur Thor Björgólfsson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2008년 1월 ‘제이드 트레이딩’은 아이슬란드 투자자인 Sigurdur Bollason에게 위임장을 발급해 주었다. Sigurdur Bollason은 2008년 여름 동안에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Landsbanki 은행, Kaupthing 은행, Glitnir 은행으로부터 무담보 대출로 1억4천4백만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회사들을 이용했던 인물이다. 그 뒤 Bollason은 집단 소송에서 공동 피고로 지목되었고 시장조작 스캔들에 대해서 룩셈부르크의 Hauksson 특별검사 팀의 타깃이 되었다. Bollason은 기소되지 않았다.

‘잘 유니버설’ 역시 Bollason이 지배했다. ‘잘 유니버설’은 그가 지배했던 다른 회사들과 연계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는 Landsbanki 은행이 정부에 넘어가기 4일 전,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계좌로 622,000달러의 배당금을 보낸 회사도 포함되어 있다.

모색 폰세카 파일을 통해서 공개된 정보조차도 이 회사들이 정확히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이 파나마 법률 회사는 아이슬란드 은행 제도에서 사용된 기밀 체인의 핵심적인 고리이다. 이에 대한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은행, 투자 자문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와 연계된 다른 법률 회사의 내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Hauksson 특별검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일부 사례들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실제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기가 어렵습니다. 과연 이것의 배후 실세는 누구일까요? 앞으로 수사관들과 자금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간에 전투가 펼쳐질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세무 당국은 탈세자들을 찾아 미납된 세금을 회복하기 위해서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모색 폰세카와 관련된 문서들 중 일부를 구입했다. 이렇게 구입한 문서들에는 현재 귄릭손의 부인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인 ‘윈트리스’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까지 당국은 알아낸 사실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기사 원문 보기(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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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쌍용차’로 불리는 하이디스 ‘먹튀’ 사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 하이디스가 중국 기업에 팔렸다가 다시 타이완 기업으로 넘어가면서 기술은 무더기로 유출되고 회사는 껍데기만 남게됐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어버렸다.해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가운 길바닥에서 노숙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타파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자료를 분석하다 하이디스와 연관된 조세 도피처 회사를 발견했다. 먹튀 자본의 배후에 조세 도피처를 이용한 편법과 탈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이디스 전 사장과 중국 BOE 임원이 함께 페이퍼 컴퍼니 설립

하이디스와 관련된 페이퍼 컴퍼니는 ‘C&H 트레이딩’(C&H Trading ltd.)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에 2003년 4월 16일 설립된 것으로 나온다. 이 회사는 1달러짜리 주식 2주를 발행했는데, 당시 하이디스 사장 최병두 씨와 중국인 한궈지안(Han Guajin) 씨가 각각 1주씩을 소유했다. 이사도 이 두 사람이 맡았다. 중국인 한궈지안 씨는 당시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중국 BOE 그룹의 임원으로 확인됐다. 회사 이름인 ‘C&H 트레이딩’은 두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 설립을 중개해 준 업체는 홍콩에 소재한 법률 사무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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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걸친 하이디스 매각 과정에 이용된 페이퍼 컴퍼니일 가능성 높아

‘C&H 트레이딩’이 설립된 2003년 4월은 하이디스가 중국 BOE 그룹에 매각되고 5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10개월 뒤인 2004년 2월 28일 중국인 한궈지안 씨는 자신의 주식 한 주를 최병두 전 사장에게 양도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하이디스 매각과 관련해 최 전 사장과 중국 BOE 그룹 사이에 조세 도피처를 이용한 모종의 작업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5년 뒤 하이디스가 다시 타이완 E-ink 사에 매각된 직후에도 이 회사를 이용한 모종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매각 7개월 뒤인 2009년 4월 16일 ‘C&H 트레이딩’은 보유하고 있던 ‘하이디스 타이완’ 주식 50만 주를 한국 하이디스에 양도한다. 이 조세도피처 페이퍼 컴퍼니가 두 번에 걸친 하이디스의 매각 과정에 실제로 중요하게 이용된 회사라는 점을 방증하는 정황이다. ‘C&H 트레이딩’은 더 이상 용도가 남지 않았는지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09년 9월 1일 청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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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씨, BVI 회사 청산 6개월 전 사모아에 또다른 페이퍼 컴퍼니 설립

그런데 뉴스타파는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에서 한국인 최병두 씨가 연관된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를 발견했다. 이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은 ‘그레이스 퍼시픽(Grace Pacfic ltd.), 또 다른 조세 도피처인 사모아에 설립됐으며 이사와 주주는 모두 한국인 최병두 씨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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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의 설립 시점은 2009년 3월 2일로, 최병두 씨가 소유한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인 ‘C&H 트레이딩’이 청산되기 불과 6개월 전이다. 설립 당시 제출한 주소는 E-ink 사의 본국인 타이완으로 되어 있다.

조세도피처 페이퍼 컴퍼니들의 주주이자 이사로 등록된 최병두 전 하이디스 사장은 하이디스의 핵심 기술 200건을 포함, 모두 4,331건의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조하고 지시한 혐의로 2009년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뉴스타파는 하이디스에 조세도피처 페이퍼 컴퍼니의 용도에 대해 질의했지만 하이디스는 과거의 일이라 현재의 하이디스와는 무관하다는 입장만을 전해왔다. 최병두 전 사장의 경우 여러 경로로 소재를 수소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외 먹튀 자본이 조세도피처 이용한 탈법 저질렀는지 철저히 밝혀야

하이디스는 원래 현대전자의 LCD사업 본부였다. 그러나 2002년 현대전자가 무너지자 그해 11월 중국 BOE 그룹에 분리 매각됐다. 매각 가격은 3억8천만 달러였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중국 BOE 그룹은 하이디스에 약속했던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이디스의 기술과 인력을 중국으로 빼돌렸다.

약속했던 4천5백억 원 가운데 실제로 투자한 것은 천5백억 원, 그러나 이 가운데 천4백억 원은 지분 투자 명목으로 다시 중국으로 회수했다. 국내 기술자들을 중국으로 데려가 중국에 새로운 LCD 공장을 지었다. 결정적인 것은 기술 유출이었다. 하이디스가 보유한 핵심기술 200건을 포함해 4,331건의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됐다.

그 사이 하이디스의 경영은 점점 악화됐고 2006년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2008년 타이완 E-ink사에 재매각됐다. 그러나 새 주인 E-ink 사 역시 회사를 정상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한술 더 떴다. E- ink사는 하이디스가 가진 특허를 경쟁사들에 대여해주는 대가로 특허료만 한해 수백억 원을 벌면서도 투자는 거의 하지 않았다. 2008년부터 2015년 사이 하이디스가 FSS 기술(광시야각 기술)로 앉아서 벌어들인 특허료만 3,282억 원인데, 같은 기간 설비투자는 400억 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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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k 사는 그러면서 경영 환경이 어려워졌다며 잇따라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E-ink 사가 하이디스를 인수할 당시, 하이디스 노조는 중국 BOE 그룹의 기술 유출을 교훈 삼아, 기술 유출 방지를 약속한 단협을 요구해 쟁취했다. E-ink 사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면 노조는 없어지고 단협은 효력을 잃게 된다. 그러면 자유롭게 기술을 타이완으로 가져갈 수 있다. 잇따른 정리해고의 결과 한때 2천 명이 넘었던 하이디스의 정규직 노동자는 현재 4명만 남았다. 그 과정에서 40대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이디스의 매각 과정에 조세 도피처를 이용한 탈법이나 편법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조사돼야 할 것이다.


취재 : 이유정, 심인보
촬영 : 김남범
편집 : 윤석민

수, 2016/04/27-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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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한 고서화 수집가가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미공개 작품 2,800여 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한국 미술계 사상 최대의 위작 시비.

검찰이 수사에 나서 결국 위작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언론도 이를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SBS는 ‘SBS스페셜’을 통해 위작 의혹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검찰은 소장자 김용수 씨 등을 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고 1, 2심 재판부 모두 위작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이 사건은 국민의 기억 속에서 점차 멀어졌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위작 의혹 사건 수사와 재판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위조 논란 작품들이 위작으로 판정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여럿 발견했다.

지난 2007년 10월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틀 뒤 SBS 스페셜은 ‘이중섭 박수근 위작논란 2829점의 진실’이라는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위작 사건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파헤쳤다는 이유로 방송위원회로부터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다큐는 과학적 검증을 위해 미술품 과학감정 전문가로 알려진 최명윤 전 명지대 교수의 자문을 받았다. 과학적 검증은 위작으로 의심되는 그림의 물감에서 산화티탄피복운모가 검출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

SBS 스페셜은 “소장자의 동의를 받아 압수품의 일부에서 물감을 채취했다. 티타늄 성분의 단면을 잘라 조사했다. 그 결과 산화티타늄이 고르게 덮여있는 운모가 확인됐다”고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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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씨가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라고 주장한 그림들이 위작임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산화티탄피복운모는 말 그대로 운모에 산화티타늄을 코팅한 것으로, 반짝이는 색을 내는 재료다. 그런데 운모에 산화티타늄을 코팅하는 기술은 1980년대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 이중섭은 1956년, 박수근은 1965년 각각 사망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작품에 이 성분이 나왔다는 것은 진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최 교수를 수소문해 만난 자리에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이거는 저기서 만든 거에요. 아니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 SC 뭐죠 이게. SBS? 거기서 조작한 거죠. 만든 거죠. 저렇게 안 나와요. SBS에서 조작을 했다고요? 이거는 사실은 내가 한 얘기가 아니죠.

최 교수는 자신이 직접 티타늄 성분의 단면을 잘라 조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방송에 나온 그림은 한국화학연구원이 위작사건과는 별개로 산화티탄피복운모의 일반적인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SBS는 마치 이 사진이 이중섭 화백 그림의 물감에서 검출된 산화티탄피복운모인 것처럼 보도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당시 프로그램 제작 담당자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담당 기자는 이미 SBS에서 퇴직한 상태였다. 어렵사리 전화 연락이 닿았다. 그는 “일단 그게 굉장히 오래된 일이라서 전 전혀 기억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기자는 지난 2007년 방송이 나가고 난 뒤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법정에 증인으로 나가서도 “잘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산화티탄피복운모는 이중섭, 박수근 그림의 위작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증거다. 물감에서 산화티탄피복운모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산화티타늄을 구성하는 티타늄과 산소, 그리고 운모를 구성하는 핵심 원소인 SI, 즉 규소가 동시에 검출돼야 한다.

검찰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지난 2007년 국립중앙박물관 등 4개 기관에 위작 논란 그림에 대한 성분 분석을 의뢰했었다. 하지만 서울시립역사박물관이 검사한 그림 10개 중 6개에서는 규소는 물론 티타늄조차 검출되지 않았다. 국립경주박물관이 분석한 14개 시료에선 티타늄이 검출되긴 했지만, 물감이 아니라 종이 자체에 있는 티타늄 성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중앙박물관 분석결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최 교수는 이 4개 기관의 분석결과를 종합한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위작으로 추정되는 그림에서 산화티탄피복운모가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검사에 사용된 이동식 X선 형광분석기는 경금속인 규소를 잘 검출해내지 못하는 것일 뿐 산화티탄피복운모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당시 운용한 이동형 X선 형광분석기는 규소를 검출해낼 수 있으며,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산화티탄피복운모의 존재, 즉 위작 여부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전문가의 눈으로 판단하는 안목감정 이외에 과학감정에서도 산화티탄피복운모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해 2,800여점의 그림을 위작이라고 결론지었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하급심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 현재 압수 상태인 2,800여점은 모두 소각돼 폐기처분된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이 난 이후 2년 넘게 이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현재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600여 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로 유명 미술관과 부유층 개인 소장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2005년 당시 김용수 씨가 두 거장의 작품 2천여 점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미술계에서는 이 그림들이 시장에 풀리면 기존 작품들의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법원이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위작 판정을 내리게 되면 혹시 일부라도 있을지 모르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 잿더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목, 2015/08/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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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4개월 만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분리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최광 전 이사장 후임으로 찬성론자인 문 전 장관이 취임함에 따라 정부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강행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퇴진했던 문 전 장관이 복지부 산하기관의 수장으로 돌아오자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노조는 20일 넘게 문 이사장 출근 저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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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지난 14일 감사원이 메르스 사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보건당국의 총체적 부실 대응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문 이사장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돼 논란은 더욱 커졌다. 면죄부 논란에 대해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착수한 시점인 지난해 9월 10일 이전에 문 이사장이 장관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문 이사장 임명으로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장관 시절 국민연금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금운용의 수익률과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투자를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에서 분리해 별도 공사로 만드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7월 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국민연금 운용체계 개선안을 발표했다.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와 기금운용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하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 조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분리될 경우 과연 제대로 된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이 정치는 물론 시장으로부터도 독립돼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현재 공사화 관련 논의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기금운용본부가 공사로 분리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투명성이다. 국민연금은 투자 전략 노출 위험 등을 이유로 투자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들이 낸 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해외 부동산 투자의 경우 위탁운용사와 비밀 유지 계약 조건 등을 이유로 개별 투자에 대한 투자 대상, 수익률 등 대부분을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상세한 투자 현황을 요구해도 프로젝트 베타, 델타, 다이아몬드 등 암호명 같은 이름으로 가득한 자료를 제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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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지난해 프랑스 오파리노 쇼핑센터 투자 수익률 공개를 거부하다가 뉴스타파가 쇼핑센터 지분을 공동 보유한 영국계 부동산 회사 해머슨의 경우 이를 공시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뒤늦게 수익률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연금 기금의 투자 과정과 성과 공개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기금운용본부가 분리될 경우 기금운용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더 약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따르고 있다. 공사화 논의 이전에 투명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금운용본부 분리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최광 전 이사장이 쫓기듯 물러난 뒤 문 이사장이 취임함에 따라 공사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전주 국민연금공단 본사 건물 옆에 기금운용본부 사옥이 건립되고 있지만 공사화가 이뤄질 경우 이전 계획이 무산될 것이라도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기금운용 분리도 결국 연금의 주인인 국민들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이를 위한 심도 깊은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취재 : 이유정
촬영 : 김남범, 신승진
편집 : 정지성

금, 2016/01/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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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이 최근 뉴스타파가 강원 지역 일간지에 실렸던 기고가 사실은 국정원 작품이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부인했다. 조 위원은 지난 10일 오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가 끝난 후 “왜 국정원 직원과 이메일을 주고 받은 것인지 명확한 해명을 해 달라”는 질문에 “말하기 싫다”며 답변을 피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거듭되자 “기고는 내가 썼다”며 “내가 강원도 쪽에도 기고하고 싶은데 그 쪽 사람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에게) 부탁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에게 검찰 수사 자료를 보여주며 기고가 첨부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국정원 직원, 받은 사람은 조 위원으로 돼 있다고 질문하자 “내가 먼저 (이메일을) 보냈으니까 (국정원 직원이) 나에게 고맙다, 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했을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이메일에는 국정원 직원이 잘 전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라 강원도 지역 일간지 편집국장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그곳으로 기고를 보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2013년 7월 국정원 직원이 고려대 조영기 북한학과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해당 주소는 강원도 지역일간지 편집국장의 주소다.

▲ 2013년 7월 국정원 직원이 고려대 조영기 북한학과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해당 주소는 강원도 지역일간지 편집국장의 주소다.

“기고를 왜 국정원 직원에게 보낸 것이냐”는 질문에는 “왜 보냈는지 추측 한번 해보시라”고 답했다. 기고를 직접 할 수도 있는데 왜 국정원 직원을 통해서 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알았다”고 대꾸했다. 조 위원은 해당 기고글에 대해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썼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조 위원의 설명을 종합하더라도 왜 국정원 직원을 통해 강원도 쪽 언론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는지, 또 기고문을 왜 국정원 직원과 주고받았는지, 국정원 직원은 왜 일간지 편집국장의 이메일 주소를 보내줬으며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는지 명쾌하게 해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뉴스타파가 최근 2013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 검찰 수사자료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같은해 7월 국정원 직원은 조영기 교수에게 ‘안부문의’라는 제목의 파일을 보냈고 파일에 담긴 ‘국정원 댓글사건과 개혁의 본질’이라는 글은 이틀 후 강원도의 한 지역 일간지에 기고로 실렸다.

관련기사: 심리전단 활동 옹호 신문 기고, 알고보니 국정원 작품

금, 2016/03/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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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손배소송으로 노조 압박

파업에 참여했다가 전 재산과 임금까지 회사에 가압류 당했던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가 2003년 1월 분신해 숨지면서 손배소송의 위험이 세상에 알려졌다. 15년이 지난 요즘은 회사뿐 아니라 국가(경찰)도 손배소송으로 노동자와 노조를 위협하고 있다.

국가(경찰)는 노사갈등 때 중재자로 개입한다. 노조원과 경비용역이 충돌할 때 경찰도 일부 부상당한다. 폭력을 행사한 노조원은 형사처벌 받는다. 요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경찰)가 노조원 개인에게 인적, 물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손배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때문에 금속노조 법률원에는 노사갈등보다 노정갈등으로 인한 소송이 더 몰린다.

집회 관련한 형사사건이 더 많아

금속노조 법률원이 최근 20개월간(2015.1~2016.8) 맡은 소송은 모두 975건이었다. 소송 형식으로 나눠 보면 형사사건이 305건, 행정사건 290건, 민사사건 287건, 기타 93건 순이었다. 형사사건 상당수가 경찰과 집회및시위에관한법(집시법) 위반을 다투는 것이다. 노조 법률원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나 정부의 법제도개선을 법적으로 타투는 것보다 경찰(공권력)과 공방을 벌이는 게 더 많았다.

전체 975건의 소송은 사건 내용별로 노조활동, 단결권, 단체교섭, 단체행동권 등 25개로 나뉜다. 25개 내용별로 소송 건수를 보면 사업장 밖 노조활동(214건)이 가장 많고, 사업장 안 노조활동(94건), 단결권 침해(79건), 비정규직(71건) 순이었다. 1~4위까지가 458건(46.9%)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1~2위를 차지한 사업장 안팎 노조활동은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는 집회 중 벌어진 다툼이 많다. 결국 한국의 노사관계를 소송 측면에서 분석할 때 노동3권 중 단체행동(쟁의)이나 단체교섭이 아닌 기본적인 단결권을 둘러싼 다툼이 더 많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파업보다 기본적 단결권에 발목 잡혀

975건 가운데 금속노조 법률원이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직접 개입한 주요사건은 53건이었다. 53건 중 형사사건이 41건(77.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것도 노조가 제기한 소송은 20건인데 반해 피소 당한 게 33건이었다. 이는 노사 갈등을 조정해야 할 국가가 단결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노조와 노조원에게 집시법 위반으로 형사적 책임을 묻는데 이어 거액의 손배소송까지 제기해 이중 압박하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20개월치 소송을 분류한 금속노조 법률원 박현희 노무사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단체행동권이나 단체교섭은 고사하고 노동3권 중 가장 기본인 단결권조차 누리지 못한채 비정규직노조를 중심으로 사업장 안밖에서 노조인정 등 단결권을 요구하는 집회(시위) 하다가 공권력과 싸우는데 진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내용 형사 행정 민사 기타 합계
1 사업장밖 노조활동 168 22 14 10 214
2 사업장내 노조활동 26 36 21 11 94
3 단결권 침해 28 32 16 3 79
4 비정규직 16 13 38 4 71
5 통상임금     57 2 59
6 일반징계   46 5 1 52
7 쟁의행위 13 16 16 6 51
8 정리해고 10 9 18 13 50
9 복수노조 6 22 12 7 47
10 징계해고 1 19 10 3 33
11 단체협약 3 9 13 4 29
12 폐업 7 3 9 8 27
13 인사권 행사 1 12 8 4 25
14 차별 3 5 10 3 21
15 단체교섭 7 8 1 4 20
16 노조 채무 2 6 10 2 20
17 산재/노동안전/보건   14 2 2 18
18 임금체계 3 2 10   15
19 저성과 2 7 5 1 15
20 직장폐쇄 4 4 3 1 12
21 전임자 1 1 2 4 8
22 노동자 감시통제 3 2 2   7
23 근로시간   1 2   3
24 휴게/휴일/휴가     3   3
25 쟁의조정 1 1     2
합계 305 290 287 93 975

▲ [표1]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소송(출처 : 금속노조 법률원, 2015.1 ~2016.8)

노동권 미흡한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에 더 가혹

민주노총도 국가(경찰)의 손배소송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가(경찰)가 민주노총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걸어 종결된 13건 중 특수고용직이나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관련 사건은 6건이다. 배상액은 모두 2억 4,259만원인데 이중 비정규직 사건이 1억 5,069만원(62.1%)에 달한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된 걸 감안하면, 국가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비정규직에게 더 가혹했다.

  발생 피고 행사 내용 확정액(만 원)
1 2007. 6 민주노총 특수고용 권리보장 대회 2436
2 2007. 7 민주노총, 개인 8명 홈에버노조 파업집회(비정규직) 2520
3 2006. 6 금속노조, 개인 5명 하이텍코리아 집회(공장폐쇄) 910
4 2007.10 건설노조원 10명 건설노조 집회 1074
5 2007. 9 민주노총 노조원 19명 울산중부서 담장손괴(현대차 비정규직) 558
6 2007.11 기아차 노조원 6명 범국민행동의날 상경차단 1087
7 2007. 8 민주노총 뉴코아 앞 미신고 집회(비정규직) 380
8 2007. 7 S&T노조 등 6명 S&T 정문앞 집회 260
9 2009. 5 민주노총 화물연대 집회(334명 기소) 8101
10 2011. 2 민주노총 전북본부 민주노총 집회 (버스노조) 1480
11 2010.11 금속노조, 4명 쌍용차 집회 899
12 2011. 6 금속노조 등 12명 유성기업 집회 4520
13 2014.12 공무원노조 노조원   34
합계   2억4259만원

▲ [표2] 민주노총이 피소 당해 종결된 손배소송(출처 : 민주노총, 붉은색은 비정규직노조 사건)

노동3권을 제대로 갖지 못한 특수고용직과 간접고용 노동자는 쟁의행위에 제약이 많다. 때문에 이들은 정부에 정책개선을 요구한다. 요구는 집회(시위)로 표현된다. 이 때 공권력(경찰)과 충돌이 불가피한데 국가가 집회에서 생긴 피해에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 박은정 정책국장은 “경찰이 해마다 집회시위 따른 경찰장비 파손에 대비한 예산을 확보해놓고도 집회당사자에게 모두 배상하라는 건 지나치다”고 했다.

사용자 손배소송, 숫자 줄지만 액수는 급증

국가와 함께 사용자의 손배소송도 여전하다. 민주노총에 대한 손배청구 총액(기업,국가 포함)은 사용자가 노조탄압 수단으로 손배소송을 적극 활용해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의 분신을 불렀던 2003년 500억 원을 넘긴 뒤 올 들어 1867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손배소송을 당한 노조 수는 2003년 51개에서 24개로 절반으로 줄었지만 청구액은 크게 늘어 노조 당 청구액은 2002년 8억 8천만원에서 77억 8천만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조사 시기 청구액 (억 원) 사업장 수 (개)
2002. 6 345 39
2003. 1 402 50
2003.10 575 51
2011. 5 1583 12
2013. 1 1307 16
2014.  3 1692 17
2015. 3 1691 17
2016. 4 1558 17
2017. 7 1867 24

▲ [표3] 민주노총 연도별 손배 피소(출처 :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코레일은 2009년 노조파업 때 노조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제기해 오히려 이익을 냈다. 서울지법은 손배소송에서 코레일이 전면파업 때 72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으나, 인건비(무노동무임금)와 동력비를 줄여 86억원을 절약해 오히려 14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하청노동자 앞에 시간만 끄는 공권력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처럼 변호사 20여 명이 일하는 법률원이 있는 곳은 그나마 낫지만 지역의 작은 비정규직 노조는 회사와 국가의 손배소송의 휘청거린다.

강원도에서 시멘트를 생산하는 삼표동양시멘트는 1년 365일 24시간 공장(광산)을 가동했다. 명절 휴가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일했던 하청노동자들은 한 달에 잔업만 100시간 넘게 해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도 못 받았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자 원청은 수십 년 일한 100여명의 하청노동자를 도급 해지해 모두 내쫓았다. 쫓겨난 하청노동자들은 노동부와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불법파견)을 제기하고,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정문 앞에서 농성했다.

노동부는 8개월을 끌다가 노동자의 손(위장도급)을 들어줬다. 1심 법원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지만, 원청은 20억원의 벌금(이행강제금) 내면서까지 직접고용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법원이 불법파견으로 판결해도 회사가 버티면 그만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사건 때도 버티다 선별적으로 일부를 신규 채용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원청은 하청노동자 농성을 이유로 업체를 통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노동자를 대리한 공익인권법재단 윤지영 변호사는 “통상 회사가 손배 소송을 제기할 땐 파업(쟁의행위)이 문제가 되는데, 삼표동양시멘트는 계약해지 당한 뒤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농성한 게 손배청구 이유라서 이럴 땐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어떻게 구성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동양시멘트노조 김진영 교육부장은 “노동부의 위장도급 판정도 태백지청장실 점거 끝에 겨우 얻었는데, 그때 로비에 ‘동양시멘트 기증’이라고 새겨진 대형 거울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쫓겨나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하청노동자는 밤에 태백지청 근로감독관과 원청 임원이 만나는 걸 목격했다.

손배소, 한미FTA 이후 집회통제 주요수단

국가(경찰)가 집회와 시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 2006년 한미FTA 체결 반대집회가 처음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이후 손배소송은 국가가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 됐다.

집시법 2조는 ‘시위’를 “여러 사람이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결국 집회와 시위는 실력행사와 위력을 예정한다. 집회와 시위 등 기본권 보장은 국가 의무다. 그런데도 국가는 집회 관리통제의 수단으로 손배소송을 적극 활용해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서선영 변호사는 한 토론회에서 “정치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개인간 피해회복을 목적으로 한 손해배상이란 수단에 그대로 적용하는 순간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집회의 모든 책임을 주최자에게 전가하는 건 결국 정치적 반대의사가 강한 집회를 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엄포라서 국민 기본권을 위축시킨다”고 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난해 12월 열린 국가 손배소송 토론회에서 “기본권 중 타인의 불편을 전제로 인정하는 걸 ‘관계적 권리’라 하는데, 집회의 자유와 노동3권이 대표적 ‘관계적 권리’다. 집회와 시위는 교통제한이나 소음 등 생활방해를 당연히 동반한다. 국가가 이런 관계적 권리에 손배 청구를 남용하면 오히려 기본권을 방해하는 셈”이라고 했다.

집회때 불법은 형법으로 충분히 제재 가능

국가가 집회와 시위에 형법이 아닌 민법상 손배소송을 제기하는 게 법리상 이질적이고, 기본권 조정자로 국가의 의무에 반한다는 의견도 있다. 집시법은 위반행위에 대해 행정적, 형사적 재재를 부과하지만 민사적 제재는 입법화하지 않고 있다. 집회와 시위 등 표현의 자유로 인해 일어나는 법 위반에 대해 민법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남용하는 건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국가가 공익목적에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다가 생긴 피해를 갈등 당사자에게 물리는 건 기본권 조정자로서 국가의 의무에 반하고, 국가는 개인들에게 형법, 행정법으로 충분한 제재수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경찰, 광우병 촛불 손배소 고법까지 패소

경찰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최한 대책회의와 네티즌 등 17명에게 5억 1,709만 원의 손배를 청구했다. 경찰은 대책회의가 개입하면서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공소장에는 허점이 많았다. 누가 가해자인지 모르고, 부상경위도 입증하지 못하고, 출동하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동료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부상, 대치 중 탈진까지 모두 주최 측에 손해배상 청구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씨는 2008년 6월 25일 체포됐는데 경찰은 안 씨가 6월 29일까지 농성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고등법원까지 경찰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쌍용차 회사는 취하했는데 국가는 끝까지

노조에 대한 국가 손배소는 2009년 쌍용차와 2011년 유성기업 파업이 대표적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2,646명 구조조정에 반발해 2009년 5월 22일 점거파업에 들어가 회사 경비용역과 충돌했다.

77일 뒤 경찰은 8월 4~5일 헬기와 기중기로 공장 내 노조원을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경찰)는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장비파손과 치료비, 위자료 등 16억 6,961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14억원, 2심 법원은 11억원을 인정했다.

회사도 노조에 33억원 손배소송을 제기했으나 2015년말 모두 취하했다. 그러나 국가는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94명이 구속되고 300여 명이 벌금과 형사처벌을 받았다. 자살한 노동자도 28명이다. 여기에 국가(경찰)까지 손해배상 소송으로 압박하고 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노조탄압 무기인 손배, 가압류를 국가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기업노조는 교대근무제 개선을 위한 교섭결렬로 2011년 5월 18일부터 점거파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파업 첫날 직장폐쇄했다. 6일 뒤 경찰은 회사의 요청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노동자를 해산했다. 이후 노조원과 경비용역은 회사 앞에서 계속 충돌했다.

한 달 뒤 민주노총 충남본부가 회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공장 정문 앞을 통과해 예정된 집회장소로 이동하려는 집회참가자들과 이를 막아선 경찰이 충돌해 양측이 다쳤다.

국가(경찰)는 노조와 노조원에게 장비 손상과 경찰 치료비, 위자료 등 1억 1,1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4,500만원을 인정했다.

불법파견 해결 요구 파업에 20억 손배판결

부산고법은 지난달 24일 현대차 하청노동자가 불법파견 해결을 요구하며 벌였던 울산공장 점거파업을 지원한 당시 금속노조 간부와 현대차 정규직, 비정규직 4명에게 2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2010년 7월 대법원이 동료 최병승 씨에게 불법파견을 판결하자 현대차에 하청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그해 11~12월 25일 동안 파업했다.

민변 노동위원회 등 노동법률단체는 대법원 상고를 위한 인지대 비용 1,500만원 마련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이들은 원심 판결의 부당성을 알리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고,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된 손배소송의 부당함을 알리는 운동도 펼치기로 했다.

제주 강정마을은 실마리 찾아가는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정부가 반대 주민에게 거액의 손배소송을 제기해 문제가 된 강정마을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정부(해군)는 공사연장 손실을 시공사에 배상하고 그 중 34억 4천만원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해결책 검토를 약속한데 이어, 지난달 11일 열린 첫 변론에서 정부 측은 “소송 외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주민들과 협의할 시간을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해 실마리를 찾는 중이다. 하지만 노조 상대 손배소는 여전히 노조 통제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노총 박은정 정책국장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노조를 상대로 한 국가 손배소는 어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수, 2017/09/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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