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이 화제다. 표절은 타인의 글 일부나 전부를 베끼거나 모방하며 제 것인 양 외부에 공표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문제 된 작품의 문장들은 비전문가가 아닌 눈으로 읽어도 표절 아니라 부정하기 힘들더라.
그 작품과 작가의 소란에 한마디 얹으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사족으로만 의견을 붙이자면, 고뇌에 찬 제보와 이어지는 성토는 문단 권력과 시장 이윤에 지친 한국 문학의 현재로 보인다.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 뱉은 울분의 자리임에 분명하다.
거기서도 바꾸지 못하면 한국문학은 표절을 한 장르로 인정하거나 수치심에 둔감하기로 작정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다. 그건 그렇고! 표절이 문제가 아니라, 복사의 시대는 아닌지 묻고 싶어졌다.
중학생 딸이 논술시험을 보았다. 문제가 이해되지 않아, 친구들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더니 “답을 외워!”라는 조언을 들었다 한다.
딸은 논술이란 문제를 이해한 후 자신 생각을 쓰는 것이 맞다 믿기에 신념대로 시험을 보았다. 선생님은 딸을 불러 물어보았다. “너는 답을 외우지 않고 네 생각을 썼지? 읽는 동안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너에게 최대한 점수를 주기 위해 노력했단다.
그런데 좋은 점수를 주지는 못했단다.” 천편일률적인 외운 답 중에 좋은 말로 담백하고 나쁜 말로 거친 글이었으리라. 비논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평소 말버릇대로 썼으면 분명 재미있는 발상이 담겼을 테지만, 좋은 점수는커녕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선생님을 성토하려는 게 아니다. 선생님의 노고를 이해한다. 대학에서 강의 하나 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똑같은 딜레마에 처한다. 과제를 내 주면 대게 학생들은 자신들 생각이 아니라, 어디선가 나옴직한 글을 복사하고 붙여서 온다.
그래서 원칙을 세워준다. “컨트롤 씨(Ctrl-C)와 컨트롤 브이(Ctrl-V)한 글은 무조건 F학점이다. 아무리 어설퍼도 자기 생각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그러나 익숙지 못한 학생들의 글은 대학생이라 해도 봐줄 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논리적 구조로 문장 뼈대를 세웠다 생각하면 여지없이 복사 문장이다. 한국 교육의 참혹한 무덤이다.
“무조건 외우라”는 복사 교육에서 사유는 자랄 수 없다. 학생만을 탓할 수 없다. 두 장을 겹쳐 고대로 쓴 생각을 정답으로 인정해주는데, 어떻게 외우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수백만 명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적 상태였음을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진단했다.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다.” 평범했던 아이히만에게는 ‘말하기의 무능, 생각의 무능 그리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판단력의 무능’이 있었고 이 세 가지 무능은 대량 학살을 지시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감각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악마 되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임을 반복되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복사는 사유의 불능을 낳을 수밖에 없다. 사유의 불능은 판단의 불능, 공감의 불능으로 이어진다. 아이히만의 예가 극단적이었으면 좋겠다.
딸은 앞으로도 논술과목 답을 외우지 않겠다고 한다. 문제를 이해한 후, 자신의 생각을 쓰겠다 한다. 나무랄 데 없는데 걱정이다. 원칙과 양심을 지킬수록 풍요로운 미래와 반비례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원할 수밖에 없다. ‘사람’으로 커 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한 남자가 있다. 선거사무실 벽면 전체를 덮는 큰 현수막에서 그 남자는 ‘일’로 보여주겠다며 한 손가락을 든 채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그 남자의 손가락이 국민을 향한 삿대질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왜 그 남자가 말하는 ‘일’이라는 게 우리 지역 사람들의 의견과 민심을 대변하는 것과는 무관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왜 그 남자의 말과 행동에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걸까? 도대체 왜?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남자가 지난 1년 9개월 동안 국회에서 보여준 언행에서 잘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참 많은 말을 했다. 물론 그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권리는 있다. 문제는 그의 말에서 악취가 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남자가 국회의원이자 특정 당의 대변인이라는 이유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듣다보면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그가 대변인(代辯人)인지 대변인(大便人)인지 헷갈릴 정도다. 아마도 그 악취의 근원은 권력을 향한 썩어빠진 탐욕일 것이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국민의 삶을 위하는 말이 아니라 윗선의 눈치를 보며 내뱉는 말, 좀 더 높은 자리와 더 큰 권력을 얻고 싶어 안달 난 마음에서 나온 말이 좋은 향기를 뿜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엉뚱하게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려고 한다고 비난하며 특조위의 주장이 일본 극우파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폭도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간 일흔 살 농민에 대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므로 지엽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그 농민은 135일이 넘도록 아직까지 의식조차 찾지 못하고 계신 상태다. 그는 국민의 삶을 통째로 감시하고 사찰하려는 소위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국회에서 10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를 이어간 동료의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그런다고 공천 못 받는다는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처럼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한 사람의 말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도 했다. 반대로 세 치 혀가 사람을 잡는다고도 했다. 이런 속담뿐만 아니라 옛날이야기나 역사 속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왔다. 또한 인간이라면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가려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수 없이 들어왔다. 다시 말하지만 그 남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 사람들 앞에서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그것은 공인(公人)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질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남자의 말들을 살펴보면 그는 그런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할 말, 못할 말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말을 내뱉어내는 그 남자의 혀는 독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서는 웃으면서 국민을 위해 ‘일’ 하겠다 말하지만 그 독사가 언제 어디서 우리의 발꿈치를 깨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그 남자의 행동은 어떠한가? 말이 그 모양인데 행동이라고 크게 다를까? 그렇다. 그 남자의 행동을 봐도 그가 개차반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선 그는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 600만여 명의 서명과 염원이 담긴 특별법 제정을 대놓고 반대한 것이다. 그는 갑질 논란에도 휩싸였다. 자신의 의정활동을 돕는 보좌관을 폭행하고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의 임기 1년 중 보좌관이 7~8명 바뀌었다고 한다. 보통 국회의원들의 임기 동안 보좌진의 수가 평균 8명이라고 하니 그 남자가 평소에 자신의 보좌관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는지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옆에서 자신의 일을 돕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갑질을 해대는데 또 다시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게 되었을 때 과연 그 갑질이 국민을 향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사실은 작년 초 우리 사회를 갑질 논쟁으로 뜨겁게 달구었던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그 남자가 대기업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한 일명 ‘조현아 특별법’을 발의했다는 점이다. 이것이야 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게 나무라는 격 아닌가?
1년 9개월 정도 국회에서 경험한 권력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는지 그 남자는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후보가 되어 다시 한 번 더 자신을 국회로 보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 남자가 국회의원이 되어 보여주겠다는 일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렇게 막말과 막돼먹은 행동을 해도 다시 금배지를 달게 되었을 때 이 남자는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확실한 것은 그 남자의 행동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며, 과거의 행적으로 봤을 때 그는 국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서민들의 삶을 위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를 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말하고 행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 속에서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선거에서 제대로 된 후보를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특정 당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됨됨이나 정치에 대한 비전은 보지 않은 채 그 남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우리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보다 못한 그 남자는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더 팍팍하고, 더 고단하게 만드는 ‘일’들로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자, 이런대도 그 남자를 국회로 보내겠는가?
확 마음이 엎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예상치 못한 때 온다. 요즈음 만인을 즐겁게 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었다. 몇 회였지… 어머님 상을 치른 덕선이 아빠가 택이에게 묻는다. “너는 언제 엄마가 보고 싶냐?” 택이는 대답한다. “매일 보고 싶어요….”
그 친구의 볼에 깊이 흐르던 눈물을 보며 주체할 수 없이 엎어졌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맥없이 터졌는데, 지치도록 울었다. 울다가 생각했다. 나는 뭐가 이렇게 슬픈 거지? 세월호 엄마들의 그리움도 뒤집어썼고,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황상기 아버지의 설움도 뒤집어썼다. 지난해 정동진 바다에 뿌린 염호석, 또는 별이 아빠 최종범, 멀리는 배달호와 박창수, 강경대…. 나는 살았는데, 이제는 살아 있지 않은 이들이 빼곡히 떠올랐다. 참 괜찮지 않았다.
마음이 베이고 빼앗겼고 애통했다
그리고 며칠째 영화 제목 하나를 떠올렸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라는 오래된 영화. 줄거리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유독 제목만 기억에 남은 영화. 되뇔 때마다 자꾸 가슴에서 칼이 솟아올랐다. 조계사에서 나오던 한상균,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코와 입에서 쏟아지던 피, 딸들이 흘리던 눈물. 뒤숭숭한 꿈으로 괴로웠던 밤은 불면으로 지새웠다. 결국 제대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던 날, 깨달았다. 가슴에 칼이 돋으면 내 심장이 먼저 베이는 거구나. 마음이 깊이 베인 것을 알게 되었다.
살펴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키는 국가와 공권력, 자본 때문이다. 끊임없이 숙제를 내주는 그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법, 제도들. 그들은 쉬지 않고 ‘질서’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시간의 승리자였다.
반대편에 서 있으니 기진맥진했다. 빼앗겼고 애통했다. 그들이 조성하는 공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파생적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 위협이 출현하든 안 하든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는 공포에 대해서 그것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순환되는’ ‘파생적’ 공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또한, 그러하기에 심연에 도달해 있기도 했다. 더 이상 빼앗길 수 없기에 벼랑 끝에 선 자들이 되었다. 민주주의 정체는 괴물과 같다.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갈하게 줄을 서 준법을 외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쩌면 공포를 조장하는 자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일지 모른다. 본 적 없기에 상상해본 적 없기에 피해가고 싶은 공포가 있다.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그들이 먼저 공포를 조성한다.
보지 않았기에 두근거리는 ‘무엇’
조심히 가다듬어보았다. 역사를 바꾼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에 역사의 주인이 되었던 자들, 민주주의 정체는 그런 것이다. 지금 몇 가지 제도를 빼앗겼다고 징징거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해결책은 기승전 박근혜도 아니며, 기승전 새누리당도 아니다. 기승전 자본주의도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다.
진짜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보지 못했기에 두렵지만, 보지 않았기에 두근거리는 무엇. 응팔, 1988년. 주인공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화합과 전진의 축제, 세계인이 하나되는 자리, 88올림픽’ 세대. 이제 더 이상 어차피 덕선이 남편은 택(어남택), 어차피 남편은 류정환(어남류)에 관심은 없다. 우리 세대는 안다, 로맨스는 끝났다는 것을. 그래서 선택하자면 어차피 민주주의… 닭의 목을 쳐야만 온다는, 그 민주주의. 그러니 당신들은 괜찮다, 괜찮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교종의 가슴에 단 세월호의 노란리본을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며 떼는 게 좋겠다는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난 5월1일부터 2일까지 노동절 집회와 세월호 시행령 폐기와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까지 1박 2일 동안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했다. 참담했고, 비참했다. 365일을 2014년 4월 16일로 살아온 유가족들의 고통 앞에 청와대와 경찰은 애초부터 ‘중립’은 없었다.
중립
경찰은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시위 참가자들에게 최루액은 물론 최루물질인 ‘파바(PAVA·합성 캡사이신의 한 종류)’를 섞은 물대포를 난사했다. 경찰차벽으로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고, 심지어 차도는 물론 인도까지 시민들의 통행을 막았다. 이에 항의하면 어김없이 채증 카메라가 등장했다. 어떤 근거로 통행을 막고 있냐는 시민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집단적 항의에는 예외 없이 해산을 종용하는 선무방송이 이어졌고, 곧이어 최루액이 시위대를 향해 뿌려졌다.
▲ 지난 5월 1·2일 세월호 참사 1박2일 노숙농성 관련 인권침해감시단 활동모습(사진=엄명환)
세월호 유가족들은 경찰의 의도적인 ‘고립작전’에 지쳐갔다. ‘차라리 잡아가라’는 호소는 ‘농담’이 아니었다. 도로에 ‘방치’된 유가족들은 교통불편을 초래한다며 지나가는 일부 차량 운전자들에게 욕을 들어야 했다. 인도를 열어줄 것을 경찰에 요구해보지만 마찬가지로 경찰방패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 과정을 촬영하던 MBC 카메라는 유가족들에게 쫓겨났다.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인 유경근씨가 목에 밧줄을 묶었다. 연이어 유가족들은 목에 밧줄을 묶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죽어서 아이들을 보러 가는 게 이 비참한 현실보다 낫겠다며 밧줄을 묶었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인다. 이들의 호소는 절박했지만 경찰의 태도는 단호했다. ‘당신들은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가만히 있으라’
진압
‘인권침해감시단’은 전국인권단체들의 네트워크인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변’에서 주요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모니터와 현장대응을 목표로 수년째 운영 중이다. 지난 5월 1일, 2일에도 10여명의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형광색 조끼를 입고 현장에 투입(?)됐다. 말이 감시단이지 법적인 권한도 없고,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행도 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고, 재판까지 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집회현장에서 경찰의 항의도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집회현장에서 감시활동을 하던 활동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시민들이 경찰을 욕하는 것은 인권침해 아닌가요? 좀 공정하게 하세요!”
뭐, 욕뿐이겠는가. 버스에 줄을 묶어 당기고, 물병이 날아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몸싸움도 벌어진다. 여기서 인권은 ‘경찰에게도 인권이 있으니 자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인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회 시위 현장에서 인권옹호 활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 맨몸으로 맞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권리는 애초부터 ‘진압’ ‘봉쇄’ 당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박노자의 말처럼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시위란 그 자체는 어떤 물리력 행사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집단행위”이기에 여기서 ‘폭력은 나쁘다’는 양비론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최근 세월호 관련 대규모 집회는 경찰의 차벽설치와 통행제한으로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소위 불법, 폭력시위를 ‘예방’한다는 논리로 시민들의 호소와 집회시위의 권리, 이동의 자유가 완벽하게 차단당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을 차단해놓고, ‘교통불편을 초래하니 해산하라’는 경찰의 말은 그래서 문제적이다.
국제엠네스티 아놀드 팡 동아시아 조사관은 “시위대는 청와대 앞에서 집회·시위를 할 권리가 있다. 단지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용도로 차벽이 사용됐다.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자유에는 시위대가 그들의 주장을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 보이는 거리, 그리고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돼있다”고 논평을 발표했다. 저들이 밥 먹듯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자유’는 경찰차벽에 가로막혀 있다.
▲ 유가족들은 청와대도 광화문도 갈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경찰의 고립작전은 인권도 무용지물이었다(사진=엄명환)
자유
헌법,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어렵사리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보편적 권리를 항상 주장해 왔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쯤은 살다보면 누구나 느낀다.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은 악다구니라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서 최소한의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권력자, 정부다.
하지만 이 정부에게 애초에 ‘중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태생이 국정원을 비롯하여 온갖 국가기구를 동원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통해 만들어진 권력이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중립적,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이 좋아하는 ‘법대로’ 혹은 ‘법의 심판’은 단지 시민들의 자유를 옭아매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그래서 인권은 결코 중립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인권은 법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편을 들어 주세요. 중립은 항상 강자를 도와주지 약자를 돕지 않습니다. 침묵은 고통주는 사람에게 유리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보호하진 못합니다.
1986년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의 투쟁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위젤이 남긴 말이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인권침해 감시단은 경찰의 기대처럼 앞으로도 결코 중립적이지 않을 것이다.
너 때문에 청소 안 했던 것도 아닌데, 삼우제 마치고 돌아와 변기 밑까지 손을 넣어 닦았다. 너 때문에 미뤄뒀던 것도 아닌데, 세탁소에 맡길 겨울 옷들을 모두 꺼냈다. 몇 시간째 쓸고 닦고 꺼내고 넣고 수선을 피웠더니 모든 게 새삼스럽다. 그 사이 우리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구나. 지난 몇 주, 네 심장을 대신하던 에크모(ECMO)와 깨어날 듯하던 순간들과 포기하던 순간들 간격이 너무나 짧았던 기억까지 모두….
임종의 시간과 장례를 시작하던 시간, 너를 찾아온 많은 이들의 눈물과 입관하러 들어가던 네 낯선 얼굴들까지 모두, 정말, 있었던 일인가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네가 없다는 것. 그게 또 떠오르니 뭐 더 청소할 것은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별이란 원래 갑작스럽다 하더라. 준비된 이별이라고 느긋할 수 없다더라. 이별 앞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더라. 후회는 그래서 뒤늦다 하더라. 이렇게 말하게 돼서 미안하다. 잘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다. 한 겨울 얼음 씹으며 와삭거리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다만 유별스럽다 생각했다. 묻기만 했어도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은 물 한 모금 벌컥 마시지 못해 얼음 씹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말이다.
전화 받지 않는 너를 구박했었다. 부탁한 일인데 책임감 없다 생각했었다. 투석이 얼마나 피 말리는 고통인지 좀 더 세심했으면 알았을 것이다. 괜찮다고 하니까, 진짜 괜찮다 생각하고 말았다. 무엇이든 눈을 빛내며 궁금해 했다. "박진, 이건 뭐냐?"고 늘 조심스레 물었다.
지나친 진지함과 남다른 따뜻함이 부담스러워 건성으로 대답했다. 뭐든지 오지랖이고 언제나 넘친다 생각했다. 12살에 걸린 병, 16살에 홀로 상경해 살아내기 위해 쌓은 조심스러움인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자상했던 것을, 사람들 추억을 통해 재구성하고 알았다. 그러지 말 것을... 부질없는 후회의 순간들
▲ 고 엄명환('오렌지가 좋아')님의 빈소 ⓒ 박김형준
각막과 장기 기증 딱지가 네 주민증에 붙어 있었다. '아무렴, 오렌지 답네…' 그런데 2주 동안 제 기능 하지 못한 장기는 남에게 줄 수 없는 상태였다. 숨넘어가던 순간 네 운명을 지키기 위해서 안구 적출 위한 수술대에 올리지 못했다. 살아온 삶만으로도 안구나 장기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기에 네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
네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장례기간 내내 확인했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마웠고 너를 찾게 한 네 삶에 감사했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죽는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장례 오신 분들이 말했다. 죽는 순간까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런 네가 자랑스러웠다.
2008년 너를 만났다. 광화문 촛불 열기가 잠잠해졌던 때, 수원 작은 촛불에 찾아왔다. 신장병 환자며 수급자라 소개했다. 신장 이식 받았지만 다시 투석중이라 얘기했고 검도 사범이라 말했다. 의료민영화에 반대해서 나왔다 말했다. 꼬박꼬박 출석부에 도장 찍는 너를 보며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 해 보지 않겠냐 물었다.
그러지 말 것을 그랬다.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토록 거칠고 메마른 땅에 널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촛불 들다 사그러질 때 쯤 다른 흥미 거리 찾아 떠났을지 모른다. 네 한 몸 건사하며 하고 싶은 것 하며 살도록 했어야 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만나거나, 쌍용차, 용산, 안산, 세상의 모든 현장 속으로… 무거운 사진 가방 메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난 5월 1일과 2일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밤샘 집회 사이 캡사이신 흠뻑 맞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 이후 붓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말했는데 그것도 깊이 듣지 못했다. 네 짧은 생에 기름을 부었던 것은 아닌지 아프다. 부질없는 후회의 순간이 너무 많다.
현장을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피자 한판 먹고 잠든다 말할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신장 환자는 피로하면 안 되고 짠 음식 피해야하는 것을 다 늦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방 무게 줄이라고 잔소리 더 했어야 했고, 잠 못 잘 부탁은 하지 말아야 했다. 혹시라도 이렇게 떠나면 어떻게 해줘야 했는지 소상히 들어야 했다. 그 중에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네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 우리에게 남겨두렴
▲ 오렌지가 떠나기 전, 다산인권센터 앞에서 그의 동료들이 마지막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 ⓒ 박김형준
지인 만나러 갔다 병원 벤치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2주간 깊은 잠에 든 너를 보며, 살려고 그랬나 싶었다. 살려고 오렌지가 병원에서 쓰러진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사람들 불러 모으려고 그랬던가 보다. 좋아지는 소식 없이 조금씩 스러지는 네 생명의 시간들, 많은 이들이 다녀갔고 많은 이들이 치료비를 모아주었다. 회복을 기원했다.
쓰러진 지 딱 2주, 6월 10일 오후 2시 40분 영원히 깊은 잠에 들 때 쯤 깨달았다. 오렌지가 보고 싶은 이들이 참 많았음을.
"이 눔의 시키. 민중항쟁의 날 갔네…. 4시 16분…. 4.16시간에 맞추지는 못했네…. 그거 맞출려고 버텼을 거야, 오렌지 답다, 참…"
그렇게 우리를 한 번 더 웃게 해 주었다. 너는.
네 장례식은 발 디딜 틈 없었다. 다산인권, 인권교육 온다, 반올림 식구들, 수원촛불, 수원지역 선후배, 골목잡지 사이다, 인권활동가, 사진작가,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 쌍차, 기륭전자, 삼성전자서비스, 금속노조 삼성지회, 민주노총, 아 뭐 그리 아는 사람들이 많던지… 네 덕분에 알게 된 샘터야학, 신장병 환우회(메르스 때문에 정작 제대로 병문안도, 조문도 못 온 이 분들이 가장 마음 아팠다).
아프고 병중이던 삶이 언제나 걱정과 근심거리였을 가족들에게 마지막 순간, 점수 모두 만회했기를…. 가수 박준씨는 추모제에 달려와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꽃다지의 '당부'였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으니.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
35살. 살아갈 날은 더 이상 없지만, 다시 돌아간대도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될 수 있겠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거기 언제나, 누군가 분명히 있었음을 알게 해준 친구. 그래서 위대한 친구."
누군가 그러더구나. 너를 위한 추모제를 모두 마쳤을 때…. 사실 너는 그렇더구나. 영정들고 다산인권센터 사무실과 수원역, 네가 살던 집, 삼성전자 앞을 지날 때… 너를 모신 유골함 들고 납골묘로 걸어갈 때. 오렌지가 있었으면 이 모든 순간을 빨빨 뛰어다니며 기록했을 거야. 언제나 거기 있었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너의 부재를 하나씩 발견하며, 웃는 연습도 해야겠지.
참 열심히 살다간 친구, 참 치열하게 싸웠던 동지, 무수한 수식으로 장식할 수 있음을 보내고야 깨달았다. 고맙다. 오렌지. 네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 우리에게 남겨두렴. 다시는 아프지도 말고 다시는 가난하지도 말고 다시는 외롭지도 않을, 그 세상에서 쉬고 있으렴. 연화장 추모의 집에서 그토록 마음 아파했던 단원고 친구들 만나면 사진 예쁘게 찍어주고… 세상이 그들과 너를 기억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주렴.
고마웠다. 샘터 야학 작은 새 반 명환아, 신장 환우회 1등 팔뚝감 엄명환, 다산인권센터와 수원촛불, 반올림의 오렌지.
굿나잇 굿럭(Good Night Good Luck). 참 잘 살다 갔구나. 명환아, 오렌지야.
혼식표, 국민교육헌장, 대한늬우스, 국기 하강식…. ‘이거 알면 당신은 몇 살?’ 희끗한 머리카락 수처럼 부질없는 나이 세는 일이면 괜찮겠다. 대부분 소리 없이 사라졌거나 1994년에 명을 다한 것들이다. 그러나 요즘, ‘국가’라는 이름으로 대동단결하여 괴뢰도당을 물리치고… 헉헉…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새 역사를 창조할 운명을 짊어졌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모골 송연한 기시감이 엄습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날부터 역주행은 시작됐다. MB가 예고편이면 본편이다. MB 정부 초 대한늬우스가 관 뚜껑 열고 일어났던 것을 기억해보라. 마지막 편이길 바라지만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공포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그들 입에서 나오는 ‘민족’과 ‘국가’
광복 70년이 대한민국 런웨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두려움은 구체적이다.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기쁨과 억압됐던 설움을 되짚는 것이 무에 문제겠나. 영화 <암살>을 아직 보지 못했으나 “친일파에 대한 매듭을 못 지었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찌꺼기가 남아 있잖나. 그런 눈으로 1930년대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는 감독 말처럼 친일 청산조차 못한 현재, 과거를 바라보는 것은 마땅한 의무다. 그러나 묘하다. 억압으로부터 해방, 현실과 연결하는 청산 작업은 보이지 않는다. 백화점 외벽 대형 태극기‘만’ 휘날린다. 심지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동 걸자, 삼성은 ‘합병은 애국’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코웃음) 합병으로 3대 세습이 용인된다는 비판은 대세가 아니었다. 국민연금조차 찬성하는 거수기 노릇을 했다. 먹고 먹히는 이해관계 사슬 속에 애국은 적절히 이용되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모두 부친의 친일 경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애국과 어울리지 않는 이들 입에선 ‘민족’과 ‘국가’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 고 권정생 선생님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떠올린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중략)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낭만주의자의 한가로운 소리라 폄하할 테지만, 단언한다. 애국자가 없어지는 날, 분명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나라가 덜 위험해질 것이다. 따지지도 말고 입 닥쳐야 하는 한-미 동맹만 아니면, 위험천만의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달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정보원 해킹쯤이야 국가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뻔뻔한 소리도 쏙 들어갈 것이다. 목숨과 존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군대에서 젊은이들이 위태로운 시절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SK 회장 최태원 같은 범법자들이 국가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석방되는 일도 없어지겠지!
나는 절대 사랑하지 않을 테다
존재와 주장이 따로 노는 애국자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로 국가관을 검증하기 시작했을 때, 너나없이 국가관을 증명하기 위해 국기 앞에 손을 얹었다. 결백을 맹세하듯이. 그러나 한편, 사랑해 마지않던 국가는 어떤가. 자녀 일자리를 위해 당신 임금을 조금씩 양보하라 강요한다. 계산에는 양보한 임금만큼 자녀들 채무 느는 건 포함되지 않았다. 배~ 배신이다. 그러나 합리와 이성적 사고만 두고, 고색창연한 과거로 리턴했으니 비판은 어느 벌판에서 봄을 기다리겠지. 그래서 따지고 보면 모든 불합리의 바탕에는 ‘애국’과 ‘애국하는 당신’이 있다.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다카기 마사오들이 있을 테고. 젠장, 쫀득이·쫄쫄이 같은 추억의 과자조차 4대 악으로 검문하는 나라! 나는 절대 사랑하지 않을 테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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