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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된 대통령,박근혜가 말했던 10가지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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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된 대통령,박근혜가 말했던 10가지 약속

익명 (미확인) | 금, 2017/03/10- 14:32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 이전, 이미 민심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박근혜. 뉴스타파는 그가 대통령 후보시절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10가지 주요 공약들과 지난 4년의 행적을 대비했다. 법적 탄핵선고가 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이미 정치적, 윤리적으로 철저히 망가진 대통령이었다.


1. “부패와 비리에 어떤 누가 연루되어 있다고 해도,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제 주변부터 더욱 엄격하게 다스리겠습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상설특검을 통해 즉각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2012.8.20. 새누리당 전당대회, 대통령후보 수락연설

▷ 특검이 적용한 범죄혐의 13개, 특검조사 거부


2. “국민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저부터 대화합에 앞장서겠습니다”
-2012.8.20. 새누리당 전당대회, 대통령후보 당선수락연설

▷ 영남-육법당-회전문 인사


3.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오늘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제 18대 대통령후보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 여러분께 말씀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2012.9.23.기자회견

▷ 국정역사교과서 강행, 한일위안부 합의


4. “저는 민생경제, 특히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는데서 더 큰 위기를 느낍니다. 요즘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 하는데, 왜 경제민주화를 하려고 하는가.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경제에는 지금 윗목이 너무 많습니다. 아랫목, 윗목 없이 온기가 골고루 퍼져야 합니다.”
-2012.10.29.골목상권 살리기 운동 전국대표자대회

▷ 자영업 체감경기 사상 최저,삼성등 재벌대기업과 독대이후 각종 지원


5. “예를 들어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 문제만 해도 저는 이것에 대해 100% 공감하는 일입니다.”
-2012.10.22 한국노총

▷ 비정규직 파견법 개정안등 노동법 개악 추진


6.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희생하고 헌신해 오신 분들이 바로 우리 농업인 여러분입니다. 저는 우리 농촌, 우리 농업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2012.9.11 전국농촌지도자대회

▷ 쌀값 폭락 항의차 집회 참가한 백남기 농민 경찰 물대포 맞고 사망


7. “지금, 전세를 살고 계신 분들은 급등하는 전세값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고, 민생정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9.23.집 걱정 덜기 주거정책 발표

▷ 전세값 사상 최대 폭등


8. “약속합니다. 열정과 잠재력만으로 취업이 가능한 세상..”
-박근혜의 정책 약속-취업편(TV광고)

▷ 정유라 이대 특혜 입학,우병우 아들 경찰청 운전요원 선발,청년 실업률 사상 최대


9. “부산 가덕도가 최고의 입지가 된다면 당연히 가덕도가 그 입지가 될 것입니다.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 바라고 계신 신공항, 제가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2012.11.29.부산 유세

▷ 영남권 신공항은 김해공항 확장


10. “제가 이렇게 확고하게 약속을,제가 좀 약속을 잘 지킨다고 이야기를 듣지 않아요. 왜냐면, 함부로 약속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2012.8.2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국민을 위한 약속의 정치’를 내세웠던 박근혜씨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명확한 해명도 하지 못했고, 대통령 임기 5년도 다 채우지 못한 채,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취재:최경영
C.G:정동우
편집:윤석민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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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비선실세 국정농단 규탄 재외동포 시국성명서 – “국정농단, 국기문란, 박근혜는 하야하라!” 편집부 10월 26일 (미국 현지시각)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장호준 외 재외동포 일동’ 명의로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 국정농단 규탄 재외동포 시국성명서>가 발표되어 재외동포들이 서명에 돌입했다. “국정농단, 국기문란, 박근혜는 하야하라!”로 시작되는 성명서는 “국가 공직자도 아닌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한 개인이 나라의 국정을 농단한 대국민 ...
목, 2016/10/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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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 이후 대한민국에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궁중정치와 촛불로 대표되는 광장민주주의의 역사적 대결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3차례 담화 등을 통해 거짓 해명과 눈물, 교란책 등을 내놓으며 줄기차게 국면전환과 반격을 시도했지만 촛불민심은 단호했다. 박근혜 즉각 퇴진과 처벌을 흔들림 없이 요구하며 우왕좌왕하던 정치권을 탄핵의 대오로 이끌었다.

촛불 vs. 박근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제일 먼저 꺼낸 카드는 ‘개헌’, 그것도 본인이 주도하는 개헌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과 정부 비밀문건을 미리 받아 봤고, 수정까지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개헌 카드는 하루만에 좌절됐다. 대통령은 1차담화를 발표했지만 거짓말 해명 논란에 검찰 수사를 대비한 가이드라인 제시 성격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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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2만 명 촛불의 민심은 허탈과 배심감, 그리고 분노였다. 전국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꺼낸 두번째 깜짝 카드는 일방적인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이었다. 새누리당이 제안하고 있었던 거국내각 취지에도 맞지 않고 야권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인데도 왜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했을까? 총리 지명을 강행함으로써 파행을 일으켜 총리 정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동시에 김병준 씨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국민의당을 회유해 야권 분열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대통령이라는 진술이 나오는 등 게이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자 대통령 지지율은 5%까지 추락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2차 담화를 발표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로 대표되는 이날 담화의 핵심은 진심어린 사과가 아닌 최순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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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촛불은 광장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서울 20만 명을 포함해 전국 30만 촛불 민심은 ‘박근혜는 물러나라’였다. 촛불에 놀란 야권은 탄핵이나 퇴진을 거론했을 때의 역풍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서 촛불을 두려워하며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고, 새누리당도 친박과 비박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촛불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번 반전을 시도했다. 본인의 거취나 총리의 권한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 없이 국회에 총리 추천 권한을 기습 제안한 것이다. 김병준 총리 지명자 카드는 결국 버리는 돌이 됐고, 당리당략이 복잡한 정치권은 흔들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끊임 없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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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을 느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는 기존 입장에서 180도 태도를 바꿨다. 퇴진이나 2선 후퇴는 없다고 못박으며 반격으로 돌아섰다. 우선 우선 검찰 수사에 적극 응하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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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수사를 회피하면서 부산 엘씨티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엄단하라는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차관 인사와 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 사드 배치, 그리고 교과서 국정화 등을 밀어붙였다. 친박계도 대통령의 행보에 발맞춰 각종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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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침묵했던 친박 중진들까지 전방위로 박근혜 호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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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친박의 반격에 촛불은 직접 청와대로 향했다. 서울을 포함해 전국에서 136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다음날 검찰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공범으로 박근혜를 지목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를 상상과 추측, 사상누각이라며 비판했고 국회에 제안했던 총리 추천권도 철회할 뜻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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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한파에도 최대 인파가 모였다. 190만 명 촛불 민심은 직접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청와대로 진격했다. 한달 만에 2만에서 190만 명으로 증가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새로 쓰여지고 있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회심의 한 수를 정치권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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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의 시기와 방법을 국회가 정해달라며 조기퇴진의 가능성을 비쳤지만 사실상 이간책이었고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우선 탄핵을 다짐했던 비박계가 돌아서면서 탄핵시계는 멈춰섰다. 친박과 비박계는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다시 합쳤고 청와대는 비박계를 설득하기 위해 면담을 추진했다.

비박이 이탈하자 야권은 우왕좌왕했다. 추미애 대표가 단독으로 김무성 의원을 만나 퇴진 일정을 논의한 것이 알려지자 다른 야당이 발끈했고 탄핵안 표결 시점을 놓고는 2일, 5일 또는 9일 등 오락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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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이간책과 이에 흔들리는 정치권의 모습은 촛불을 횃불로 만들었다. 236만 명의 민심은 청와대와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을 동시에 압박했다. 비박계는 민심 앞에 고개를 숙여 대통령의 4월 퇴진 여부와 관계 없이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로 돌아섰다. 광장은 거대한 축제의 장인 동시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의 산실이 됐다.

목, 2016/12/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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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사실관계 왜곡하는 정부 답변 반박 

‘합의’ 성과 과장 위해 역대 정부 노력이나 사실관계 왜곡으로 일관
일본의 ‘전쟁범죄’ 부정 관련 정부의 대응과 협상과정 등 2차 질의


참여연대는 오늘(2월 2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관련한 정부 답변을 반박하는 의견과 함께 최근 위안부 관련 전쟁범위를 부정하는 일본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안과 협상과정 등에 대해 묻는 2차 질의서를 발송했다. 관련하여 지난 1월 20일 참여연대는 합의의 내용과 협상과정 공개 등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외교부에 전달하였고, 외교부는 1월 22일 답변서를 보내온 바 있다. 하지만 답변 내용은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Q&A'에 불과했고, 사실관계와 국제사회 평가 등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어서, 이에 반박의견과 함께 추가질의를 하게 된 것이다. 

 

참여연대는 반박의견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역대 정부의 노력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정부 설명은 이번 합의를 추켜세우기 위한 사실왜곡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관련한 역대 정부의 노력들은 비록 일본 정부의 사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 운동에 디딤돌이 되어 왔으며, 정부가 주요성과로 꼽고 있는 일본 정부의 ‘군의 관여' 인정과 최초의 ‘일본 정부의 책임' 표명도 사실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한 참여연대는 이번 질의를 통해 최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등 전쟁범죄 사실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대응계획 그리고 한일간 협상 내용과 진행과정에 대해 재차 질의하였다.

 

참여연대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하여 피해자가 납득할만한 해결책이 모색될 때까지 합의내용과 과정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정부에 지속적으로 촉구할 예정이다.

 

 

▣ 붙임문서1.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질의 답변에 대한 반박 및 2차 공개질의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한국정부에 다시 묻습니다.

                                
수신 윤병세 외교부 장관
                                발신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지난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의 ‘위안부’ 합의 공동발표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이번 합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일 합의 무효’를 외치고 있으며 ‘위안부’ 피해 참상을 증언하기 위해 지난 1월 25일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찬 바닥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으나 일본 자민당에서는 지난 29일 ‘위안부’ 소녀상을 조기 철거할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일본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관련하여 참여연대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을 질의(1/20)한 것에 대해 지난 1월 22일 외교부가 보내온 답변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는 참여연대 질의에 대한 답변이 아닌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Q&A’를 그대로 전달해 준 것입니다. 

이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아래와 같이 외교부 답변에 대한 반박의견과 함께 외교부가 답변하지 않은 질의사항을 재차 질의하오니,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답변해주시길 기대합니다. 


1. 외교부 답변 관련 반박

 

○ 정부는 이번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의 성과를 과장하기 위해 관련한 역대 정부의 노력이나 과거 일본 정부의 입장에 대한 사실관계조차 왜곡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질의서 답변을 통해 “지난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제기된 이래, 24년간 역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으나,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번 합의의 주요성과로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으며 ‘일본 정부의 책임’을 최초로 명확히 표명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역대 정부가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정부의 설명은 사실과 다릅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지난 정부의 활동과 노력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왔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에는 일본군 ‘위안부’ 관여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가토담화’가 나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3월 일본정부에 대해 정부 차원의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법적책임을 요구하며 처음으로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법’을 제정하여 피해자들을 정책적, 제도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 아닌 민간 위로금 성격인 아시아여성평화국민기금을 반대하며 피해자 생활안정지원금을 대폭 인상하여 지원하면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을 압박하였습니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문서를 전면 공개하여 ‘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정부 방침을 처음으로 공식화하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외교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려 한일 양국정부의 관련 논의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최상의 것을 받은 합의”라 주장하고 있으나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법적 책임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며 종지부를 찍고자한 바는 없었습니다. 

 

<표1>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역대 정부의 노력

 

또한 정부가 이번 합의의 주요성과로 꼽고 있는 일본 정부의 ‘군의 관여’라는 역사적 사실 인정 및 ‘일본 정부의 책임’을 최초로 표명했다는 것 역시 사실과는 다릅니다. 이미 1992년 가토 고이치 관방장관이 ‘위안부’ 모집에 일본군과 정부가 관여했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였고 이어 1993년 고노담화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였습니다. 고노담화에서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영원히 기억에 머무르게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이번 합의에는 일본정부가 10억 엔 출연만 언급할 뿐 재발방지 차원의 역사교육에 대한 대응 조치가 논의되지 않아 오히려 고노담화보다 후퇴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 정부는 이번 합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 내용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질의서 답변을 통해 이번 합의에 대해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번 합의에 대해 즉각적으로 환영의 뜻을 표명하였고 주요 외신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요 외신으로 밝힌 미국 언론들은 이번 합의가 한국이 아닌 미국 입장에서 긍정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던 것으로 정부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2월 28일자 기사에서 이번 합의는 “일본과 미국의 승리”라고 지적하였으며 일부 외신에서는 이번 합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직접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 2일 LA타임즈는 “미안, 그러니 이제 닥쳐(Sorry, and Shut up)”이라는 제목의 만평을 실어 일본의 법적 책임을 확실히 묻지 못한 채 끝나버린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비판하였습니다. 

 

정부는 미 의회 마이크 혼다 하원이 이번 합의를 긍정적,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했다고 밝혔으나, 오히려 혼다 의원은 해당 성명에서 “일본이 더 이상 역사 수정을 시도하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교육하겠다는 약속이 빠져있다는 점이 매우 실망스럽다”고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하는 해외학자들의 이번 합의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 내 일본군 ‘위안부’ 연구 1인자로 꼽히는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는 “이번합의는 피해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며 이번 합의를 백지화하고 원점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 정부가 진정 피해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할 의사가 있다면, 이번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질의서 답변을 통해 그동안 정부는 “15차례에 걸쳐 피해자 및 관련단체와의 협의, 면담 또는 접촉 등을 통해 피해자 측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앞으로 후속조치 이행과정에서도 피해자분들과 관련단체의 의견을 겸허히 수렴하고 반영”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의 발표가 되자마자 피해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번 합의 결과를 전부 무시하겠다”며 한일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일본을 방문하여 피해 참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3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는 정부의 ”15차례에 걸친 피해자 의견수렴“ 의견에 대해 “설날에 선물 들고 오신 것”까지 포함했다며 조목조목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피해자 및 관련단체에서 이번 합의에 대한 비판 및 합의 무효 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피해당사자들의 어떤 의견을 수렴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진심으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면, 정부가 만났던 피해당사자와 관련단체와의 협의 혹은 면담 일정과 의견수렴 내용 등을 모두 공개해야 타당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할 의사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2. 일본 정부의 태도 및 협의 과정에 대한 질의

 

○ 합의 이후 위안부 관련 전쟁범죄 부정하는 일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방안

 

12월 28일 합의 이후 일본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위안부’관련 망언이 계속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민당 의원의 ‘위안부’는 ‘직업 매춘부’라는 망언에 이어 지난 1월 18일 아베 총리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전쟁범죄를 부정하였습니다. 또한 어제(1/31)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 63차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를 동원·모집·이송하는 과정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하며 12월 합의의 정신과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는 언행을 삼가라는 원론적인 대응만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1. 이번 합의 이후 일본 정부는 진정한 반성은커녕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된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일본 측이 12.28 합의에서 밝힌 사죄와 반성의 뜻이 거짓임이 이미 드러난 상황에서,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정부는 한일 간의 합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판단합니까?


○ 한일간 합의 내용 및 협상 과정 관련

 

 지난 1월 20일 참여연대가 보낸 1차 질의서 내용 중 아무런 답변이 없었던 질의사항에 대해 다시 질의합니다. 이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2. 일본정부가 출연하기로 한 10억 엔의 산출근거는 무엇입니까? 정부는 해당 금액이 공식 등록된 240여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이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액수라고 생각합니까? 

 

3. 박근혜 정부 들어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 28일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국장급 협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각각의 한·일 국장급 협의의 참석자는 누구였으며 각각의 협의 회의의 주제는 무엇이었습니까? 12차례 회의의 일지, 참석자 명단, 관련 회의자료 및 회의록 등 회의관련 일체의 문서를 공개해주시기 바랍니다. 

 

4. 2014년 4월 한일 국장국 협의를 시작할 때, 한국 측의 최초 협상안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명박 정부 시기의 협상안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5. 12차례 한일 국장급 협의를 진행하면서 대통령과 외교부장관에게 보고된 협상초안, 각종 전통문 및 보고서 등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를 공개해주시기 바랍니다. 

 

6. 한일 외교 장관이 발표한 공동발표문 문안 내용과 발표형식은 누가, 언제, 어떻게 결정했습니까? 한일 외교 장관이 발표한 공동발표문 문안과 발표형식을 일본과 사전에 조율, 합의한 회의 또는 의견교환의 경과 일지, 관련 서신 또는 회의록을 공개해주시기 바랍니다. 

 

7. 이번 한일 외교 장관의 공동발표문을 대통령에게 사전에 보고했습니까? 보고했다면 누가, 언제 보고했습니까? 

 

화, 2016/02/0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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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죄 빠진 최순실 게이트…검찰의 한계인가, 전략인가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이영렬 특별수사본부 본부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이영렬 특별수사본부 본부장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확정했다. 검찰은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과 공모해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20일 검찰은 최순실 씨 등을 구속 기소하면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 범위는 예상보다 좁았다. 알려진 의혹 중 기소대상에 포함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비리, 최 씨의 업무상 횡령, 정호성 전 비서관의 군사기밀 유출 등 혐의는 아예 다뤄지지도 않았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대통령과 최 씨의 뇌물혐의도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대기업들이 돈을 낸 대가로 사면, 세무조사 무마 등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삼성그룹이 최 씨 모녀에게 35억 원을 별도로 보내고 사업상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공소장에 없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774억 원을 몰아주며 뇌물 공여자로 지목돼 온 재벌기업들은 그저 ‘강요를 받은 피해자’일 뿐이었다. 뇌물을 준 사람이 없으니 받은 사람도 없는 상황. 검찰 수사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통령은 피의자, 재벌은 피해자?”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최순실 등에 대한 공소장에는 두 개의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공모’와 ‘강요’다. 공모는 피의자로 신분이 바뀐 대통령에 대해, 강요는 800억 원 가까운 돈을 낸 기업들과 관련된 혐의에 쓰였다. 대기업이 대통령의 강요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두 재단에 돈을 내고 최순실씨 관련 회사에 일감도 몰아준 것으로 검찰은 결론을 내렸다. 공개된 공소장만 보면 대기업들은 이미 수사 대상이 아닌 것이다. 공소장에는 이런 표현이 반복해 기재돼 있다.

이로써 피고인 최순실, 피고인 안종범은 대통령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이OO 등 전경련 임직원, 피해자 삼성전자 대표 권OO 등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 등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486억원의 금원을 출연하도록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재단법인 미르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에 대해

그러나 대통령-최순실측과 대기업이 돈을 주고 받는 과정에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은 이미 여러 곳에서 확인된 바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삼성그룹, 사면 등 법적인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한화그룹과 SK,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부영그룹, 정부 도움으로 해외 사업을 싹쓸이 했다는 의혹을 받은 대림산업 등이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기업들을 봐주기 수사한 것은 아닌지, 형량이 무거운 뇌물죄를 대통령이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들을 의도적으로 뺀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다.

의도적으로 뺐다면… 좋은 전략

물론 좋게 보는 견해도 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뇌물죄 부분을 기소대상에서 제외했을 것이란 예측 혹은 주장이다. 검찰이 피의자인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공소유지도 어렵고, 대통령측에 수사내용만 알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기업들이 돈을 낸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지 검찰은 수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뇌물죄의 경우 대가성을 특정하지 못하면 무죄가 난다. 피의자인 대통령을 직접 조사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뇌물죄로 기소하는 것은 부담스런 일이다. 피의자인 대통령에게 수사내용을 알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첫 기소에서 뇌물죄 부분을 뺀 것은 전략적으로 좋은 판단일 수 있다.노영희 변호사/전 대한변협 대변인

그럼 만약 검찰이 추후에라도 대통령을 뇌물죄(혹은 공범)로 기소한다면 적용 가능한 법조항은 어떤 걸까. 대다수 법조인들은 수뢰죄와 제3자 뇌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형법은 두 혐의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129조(수뢰, 사전수뢰)
①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될 자가 그 담당할 직무에 관하여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후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제130조(제삼자뇌물제공)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청와대 입장을 밝히는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입장을 밝히는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그러나 수뢰나 제3자뇌물 모두 쉬운 건 아니다. 최순실 씨가 범죄행위로 얻은 이익을 대통령과 나눠 가졌는지, 최소한 대통령이 자신의 행위가 최 씨에게 부당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 한 대형 로펌 소속 법조인은 “대가성 입증 책임이 덜하다는 점에서 검찰은 제3자 뇌물보다는 수뢰죄로 가려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덕적으로 끝장난 대통령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미르와 K스포츠, 문제의 두 재단은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졌다. 재단 설립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비서실(안종범 전 수석)에 지시한 사람도, 돈을 낼 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을 제안하고 모금을 독려한 사람도 모두 대통령 자신이다. 재단의 기금규모도 대통령이 결정했다. 대통령은 최순실 씨가 실소유하고 있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의 영업에도 발벗고 나섰다. 최 씨의 부탁을 받고 민간기업인 KT에 인사청탁도 했다. 대통령은 이 모든 과정에 대통령 비서실을 동원했다.

검찰의 공소 사실이 알려진 뒤 청와대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입장문에서 “검찰이 상상과 추측으로 환상의 집을 지었다”거나 “(검찰의 주장은) 한 줄기 바람에도 허물어질 그야말로 사상누각” 따위의 표현까지 동원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두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불법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 변호인의 주장은 대부분 검찰의 해석에 대한 반발일 뿐, 검찰이 제시한 사실관계에 대한 반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입장문 어디에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구체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은 없었다. 재단 설립에 나서며 대통령이 한 구체적인 지시 내용, 현대차나 KT 등 민간기업의 납품과 인사 등에 개입하며 대통령이 비서에게 한 구체적인 지시 내용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는 주장은 내놓지 않았다. 변호인의 주장을 굳이 해석한다면, “청탁을 한 것은 맞지만 결정은 기업들이 한 것이다” 정도로 읽힌다.

포스코와 GKL은 그런 제안을 받고 회사 내부에서 검토한 결과 회사 사정상 어렵다며 거절하고 수차례의 협상과 조정을 거쳐 계약이 성사된 것처럼 기재되어 있는데, 사정이 그렇다면 공소장 기재가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협박으로 본다는 것은 우스운 일임.유영하 대변인 입장문/11월 20일

그런 점에서 대통령 변호인의 주장은 사실 대통령의 고백 혹은 자백에 가깝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개인적인 부탁을 받고 비서실을 움직여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꼴이기 때문. 법조항을 두고 법정다툼을 할 만한 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에는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인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의 거짓말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발표한 1차 사과문에서 “최순실씨에게 연설문, 홍보문에 한해 일부 도움을 받았고, 보좌체계가 완비된 뒤 그만뒀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공소장은 대통령의 주장이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준다.

공소장을 보면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최씨에게 정부 문서가 흘러간 건 올해 4월까지. 전달된 총 180건의 문서에는 정부부처 고위직 인사안, 국무회의 대통령 말씀자료, 대통령 비서실 보고문건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중 47건은 ‘장차관급 인선 관련 검토자료’ 등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자료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변호인을 통해 낸 입장문에는 왜 대국민사과 당시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한 입장은 담겨 있지 않았다. 변호인은 공정성 시비를 이유로 앞으로 검찰 조사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정연국 대변인을 통한 긴급 브리핑에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내용이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진행될 특검 수사를 통해 대통령의 무고함을 밝힐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일, 2016/11/2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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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 광고탑에 올라 고공 단식농성을 했던 노동자들이 농성 27일만에 지상으로 내려왔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등 6개 노조로 구성된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 4월14일부터 광화문 사거리 40m 상공 광고탑에서 단식농성을 벌여왔다.

고공농성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은 △김경래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오수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민주노조사수 투쟁위원회 대표 △장재영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등 6명. 이중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건강 악화로 지난 6일 단식을 중단, 현재 녹색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이들이 대선기간에 광고탑에 올랐던 이유는 대선후보들이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쟁취’ 등 근본적인 노동문제 해결을 약속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대선후보는 없었다. 그렇게 대통령선거는 끝났고,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했다. 같은날 이들은 고공 단식농성을 중단했다.

공투위측은 “1700만의 국민이 촛불을 밝혔고, 박근혜 정권을 파면시켰지만 그 투쟁의 맨 앞에 섰던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문재인을 비롯한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며 “이제는 고공단식투쟁을 결의했던 그 마음으로 땅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겠다. 그렇게 문재인 정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취재 : 홍여진
촬영 : 김기철, 신영철
편집 : 정지성

수, 2017/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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