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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공항에서의 423일, 난민 신청의 권리를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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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공항에서의 423일, 난민 신청의 권리를 보장하라

admin | 화, 2021/06/22- 04:11

공항에서의 423일, 난민 신청의 권리를 보장하라. 난민신청 접수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할 것을 청구한 소송에 대한 비평https://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788/790/001/e12e... style="width:800px;height:419px;" />

 


고국에서 박해를 피해 도망친 A씨는 인천공항 1터미널 43번 게이트 앞 1년 2개월의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오갈 곳 없이 공항 안에 갇혀 아파도 병원조차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진통제를 먹으며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버틴 시간이 아닙니다. 난민신청서를 '접수'하기 위해 기다린 시간입니다. 법무부가 A씨에게 난민 신청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23일의 기다림 끝에 법원은 다행히도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A씨는 공항을 벗어나 난민 신청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공항에 갇혀 있는 이들의 사연은 A씨의 것만은 아닙니다.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제도가 있음에도 법과 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참여연대 전은경 간사가 해당 판결을 비평하며 난민을 둘러싼 반인권적 실태를 지적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195번째 이야기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난민신청 접수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할 것을 청구한 사건

서울고등법원 2020누45348

 



전은경 간사https://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788/790/001/c0ad... style="width:180px;height:180px;" />


전은경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간사 

 

"저는 쌍둥이 형제가 있습니다. 형제는 고향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돌아가는 일이 두려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돌아가면 살해당할 것이라는 점이 가장 두렵습니다. 이제 저는 인생에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다섯 있었습니다. 이제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아이들도 다시는 볼 수 없겠지요."

 

인천공항 1터미널 43번 게이트 앞에서 423일을 지낸 아프리카인 A씨의 말이다. 그는 고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뒤 박해를 피해 도망쳤고, 경유지였던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려 했다. 그러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은 '환승객은 입국 자격이 없어 난민신청서를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서를 접수조차 거부했다.

 

그렇게 A씨는 공항에서 1년 2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공항 벤치에서 쪽잠을 자고, 제대로 씻을 수도, 먹을 수도, 아파도 치료받을 수도 없는 그런 환경에서 말이다. 

 

난민 '인정'은커녕 '신청 접수'조차 어려운 현실

 

그는 난민신청서를 '접수'라도 해달라고 소송했고 2020년 6월 승소했다. 법무부는 A씨가 입국 심사의 대상이 아닌 공항 환승객에 불과하므로 난민법 제6조에 따른 대한민국에 입국하려는 자로서 난민인정 신청을 할 법률상⋅조리상 신청권이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공항 환승객에게 난민인정 신청권이 있는지에 관해 명시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난민법 등 관계 법령의 규정내용과 취지 등을 종합해 관할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난민인정 신청 의사를 명확히 표명하는 공항 환승객에 대해서는 충분한 조력을 제공해 난민법에서 정한 절차를 개시할 의무가 있다 판결했다. 난민 신청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에 항소했고, A씨는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공항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국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지병을 얻은 A씨는 환승구역에서 불규칙하고 열악한 생활로 탈장 증상이 생겨 쓰러지기도 했다.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고, 24시간 불이 켜진 추운 공항에서 무수한 날을 굶기도 했다. A씨를 대리한 변호사는 "A씨가 보낸 공항에서의 1년 2개월은 어떤 중범죄자가 받는 형벌보다 가혹했다"고 했다. 

 

결국 지난 4월에 있었던 항소심에서 법원은 "공항 환승객에게 법률상 난민인정 신청권이 있다고 볼 여지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조리(편집자주 : 법질서 전체 또는 그 속에 흐르는 정신에 비추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원용되는 일반원칙 또는 자연의 이치)상 난민인정 신청권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난민법 제5조 제1항 제1문에 따라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인 공항 환승객도 난민인정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민국의 공항에 미치고 그 환승구역에 있는 외국인에게도 미치므로, 공항 환승구역에 진입한 외국인 역시 난민법에 규정된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난민법이 난민협약의 이행법률로서의 성격이 있고, 그 궁극적인 목적이 난민의 보호에 있음을 고려하면 공항 환승객의 난민인정 신청권을 부정하는 해석은 난민법의 목적에 반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공항 환승객에게 난민인정 신청권이 없다고 보아 처분청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을 용인하게 되면, 공항 환승객에 대한 난민인정심사 회부 여부 및 심사 등에 관한 법원의 사법심사를 원칙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도 보았다.

 

재판부는 또한 공항 환승객이 비호신청을 하는 이상 난민협약 제33조 제1항의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의 적용을 받고, 이를 국경에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난민인정 신청권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입장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합당하다.   

 

한편, 이 소송과 별도로 A씨를 환승구역에 방치하는 것은 '불법구금'에 해당한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도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A씨가 난민신청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환승구역을 벗어날 수 없으며, 환승구역에서 사생활보호⋅의식주⋅의료서비스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처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인신보호법상 '수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공항 환승구역에 방치한 난민신청자를 '피수용자'로 확인한 첫 사례다. 이 같은 전향적인 판결로 A씨는 지난 4월 13일 공항 밖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공항에 갇힌 사람들

 

2013년,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시행함에 따라 난민들은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출입국항 난민제도가 마련된 입법취지는 "공항⋅항만에서의 난민인정의 신청절차를 명문화함으로써 난민인정의 신청이 자의적인 행정에 의해 거부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종의 적격 심사인 회부심사제도를 운영해 대부분은 정식 난민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2020년 6월 난민인권네트워크가 발간한 '한국의 공항, 그 경계에 갇힌 난민들 - 공항난민 인권침해 사례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신청자 188명 중 13명만이 난민심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심사에 회부되지 못한 이들은 7일 이내에 본국으로 강제송환이 되는데 강제송환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고, 소송이 진행되는 긴 기간동안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기약없이 공항에 갇혀지내야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의 A씨처럼 말이다.

 

2019년에는 아동 네 명을 동반한 가족이 287일간 공항에 머무른 일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동이 공항에서 난민신청하는 경우, 아동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입국이 가능하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인권위의 의견표명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제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저는 한국 시민들에게 저를 받아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저를 머물게 해주신다면 실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점을 약속합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A씨를 공항의 좁은 벤치에 423일 동안 방치한 우리는 A씨의 약속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한다. 공항에 머물던 시간 그에게 인사를 건네준 청소노동자와 공항관계자들에게 특별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를 보면서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 법에는 분명히 입국허가를 받지 않은 외국인도 공항이나 항만에서 난민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항에서의 난민인정 신청 절차를 허용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의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패소한 법무부가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A씨에 대해 왜 무리하게 항소까지 했고, "출입국관리공무원은 난민인정 신청에 관하여 문의하거나 신청 의사를 밝히는 외국인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라는 법 규정은 왜 지켜지지 않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고 자랑하지만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자수는 2020년 12월 기준으로 1,091명에 불과하다. 난민 인정률 역시 2018년 3.6%에서 2019년 1.6%로, 2020년에는 1.0%로 감소했고, 올해 1~4월 난민인정률은 0.3%에 불과하다.

 

돌아갈 수 없기에 공항에 갇혀있는 이들에게 신속히 입국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공항의 난민신청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처우를 보장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번 판결로 인해 공항에 갇혀있는 이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인권침해의 현실이 개선되길 희망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https://www.peoplepower21.org/Judiciary/1476842" target="_blank" rel="nofollow">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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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06. 15.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 곽노현

06. 21. ② 제주해군기지 사건과 환경민주주의 / 김필성

06. 28.  '시효' 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 이상희

07. 05. ④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 / 김태욱

07. 12. ⑤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 박선종

07. 24. ⑥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부정한 시대착오적인 판결 / 임재홍

 

[광장에 나온 판결] 문인간첩단 사건(2015.1.22.선고 2012다204365판결, 전원합의체)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박보영, 조희대, 권순일, 김신, (다수의견)/ 이상훈, 김용덕, 고영한(주심), 김창석,  김소영(소수의견)

 

대법원, 민주화의 이름으로 비수를 꽂다

 

변호사 조영선 

 

너무도 짧은 봄날

 

대법원 긴급조치 제1호 위헌판결(2010.12.16.선고 2010도5986 판결)은 1970년대 유신긴급조치 시대에 대한 첫 사법적 단죄였다. 긴급조치를 발동할 상황도 목적도 아니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음이 30년 넘어 때늦게나마 확인된 것이다. 과거 긴급조치 정찰제 판결을 했던 사법부가 비로소 자기 판결로써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몸부림을 한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과거 한국전쟁 전후 울산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 피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한 뒤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를 인용하였다(대법원 2011.6.30.선고 2009다72599판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긴급조치 사건, 재일동포 사건 등 많은 과거사 문제의 법률적 쟁점이었던 소멸시효, 법률의 위헌 여부, 입증정도 등에 관한 대법원의 전향적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봄날은 너무도 짧았다. 

 

2011. 9.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출범하다 

 

울산보도연맹 사건 이후 법원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결정이 있은 때까지를 시효중단으로 보고 3년 시효를 적용하여 피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진도 민간인 학살사건(2013.5.16. 선고 2012다02819 전원합의체)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소멸시효를 6개월로 단축하는 한편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도 진화위 결정 후 3년으로 판시함으로써 퇴행의 전초를 마련하였다. 결국 고문ㆍ폭행, 증거 조작에 의해 파출소장 딸을 강도ㆍ살인하였다는 누명을 쓴 채 15년을 산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단 한 푼의 국가배상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이른바 1970년대 여성 노동조합운동의 상징이었던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2014.3.13.선고 2012다45603판결)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재판상 화해규정을 적용하여 기각하였다. 이후 원풍모방 노동자 사건(2014.4.30.선고 2012다202192판결), 문인간첩단 사건(2015.1.22.선고 2012다204365판결, 전원합의체, 이하 ‘비평대상판결’이라 한다), 그리고 백기완 사건(2015.7.23.선고 2015다212695판결) 등 수많은 긴급조치 사건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현재까지 부인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대법원(2015.3.26.선고 2012다48824판결)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써,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마저 부인하였다. 이로써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이유로,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화해규정에 의해 이중 삼중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대부분 국가배상 청구를 부인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연출한 과거사 퇴행의 백미라 할 것이다. 

 

대법원, 민주화의 이름으로 비수를 꽂다


비평대상판결 다수의견은 민주화운동관련자가 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위자료를 포함하여 그가 보상금 등을 지급받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위원회가 결정한 보상금을 받았다면 그 이후에는 추가적으로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어떤 피해보상도 더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상금 지급 이후 원고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아 그 억울함이 밝혀졌더라도 말이다. 

 

애초에 민주화보상법은 2010. 1. 12. 제정할 때, 5.18 보상법과 동일하게 진상규명과 실질적 보상을 전제로 재판상화해규정을 두었던 것인데, 5.18보상법과 같은 실질적 보상은 되지 않고 재판상 화해 규정만 삭제되지 않은 채 유령처럼 남게 된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2013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 화해 주장을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피고 대한민국이 보다 본격적으로 주장하고, 법원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사실 피해자는 민주화보상법에 의한 보상청구 당시 나중에 형사재심과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비평대상판결 소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피해자가 보상금 등을 받았을 때 나중에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무죄가 선고되는 사정이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가 그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였더라도,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의한 복역 등으로 입은 정신적 손해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타당하다. 소수의견은 적어도 동의 이후 재심무죄,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정까지 포함해서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이후의 정신적 위자료 청구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보상법에 의하면 변호사 등 전문직, 일정 직급 이상 공무원, 일정소득 수준 이상의 피해자들은 보상 등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곤궁하여 보상금 등을 받은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여유가 있는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역차별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재판상화해규정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곤궁한 피해자들은 대한민국으로부터 ‘알량한’ 몇 푼 보상 등을 받고 국가배상청구권을 빼앗긴 것이다. 

 

보상과 배상이 헌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다른 성격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비평대상판결 다수의견은 위헌적인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규정을 형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재판상화해, 헌법재판소에서 잠자다 

 

그래도 용기 있는 판사는 있기 마련이다. 지난 2014.6.11. 서울중앙지방법원(2014카기50515결정)은 ‘재판상 화해규정은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하게 재판 및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고, ‘실질적 보상 없이 생활지원금 5천만 원 한도에서 지급하면서 재판상화해까지 적용하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재판상 화해규정에 대한 위헌심사를 제청하였다.

 

그런데 굳이 ‘용기’라고 하는 것은 2013년 이래 대법원의 위와 같은 퇴행적, 반역사적 판결에 대해 하급심의 침묵이 너무도 길기 때문이다. 손꼽을 몇 개의 판결을 제외하고 누구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대법원 판결에 대들지 않았다.  

 

결국 민주화보상법 상 재판상화해규정의 위헌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재판부가 위헌제청을 한지 3년이 넘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헌법재판소의 ‘용기(?)있는’ 전향적 결정을 학수고대한다. 

 

*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다른 법률에 따른 보상 등과의 관계 등) ② 이 법에 따른 보상금등의 지급 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경우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목, 2017/07/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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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노출되어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태아의 선천성 질환을 산재로 인정해달라는 이 여성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업무환경과 태아의 선천성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부인된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현행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에 대해 적용되는데, 이미 출생한 자녀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업무상 환경에 의해 장애를 입고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요? 조영관 변호사의 비평칼럼을 통해 이번 고등판결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태아의 선천적 장애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서울고등법원 판결

 

참을 수 없는 판결의 가벼움 : 신생아에게 직접 산재보험을 청구하라는 법원

서울고등법원 2015누31307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조영관 변호사

조영관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법은 최소한이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마땅히 지켜야 하는 원칙 중 최소한을 “법” 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한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일을 빠짐없이 ‘법“으로 정해둘 수 없기 때문이고, 뒤집어 생각해보면 “법”이 미처 정하지 못한 공백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원칙에 따라 메워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법의 흠결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자신의 “양심” 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03조). 가장 정제된 법 규범에 의하여, 가장 논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에게 “양심” 이라는 뜨거운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정한 이유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것은 법관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법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 해석에 매우 소극적이다.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판결에서는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정의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신의성실, 사회통념상 합리성, 관습헌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형식적인 법논리에 매여 정작 중요한 원칙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유행어에 빗대면, “뭣이 중헌지” 전혀 모르는 모양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판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만약, 임신 중인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하여 태아가 유산되었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어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런데 만약 태아가 포태 중 사망하지 않고,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라면 어떨까? 태아에게 발생한 질환이 출생 이후의 요인에 의한 후천적 질병이 아닌 선천성 질환이 분명하고, 그 발병요인도 포태 중 업무상 유해요인에 의한 것임이 의학적으로 분명하다면 태아의 선천적 질환 역시 “업무상 재해”에 준하여 치료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사안은 이렇다. 2009년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들 중 15명이 임신을 하였는데, 그 중 5명은 유산을 하였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결국 간호사의 근로여건과 작업환경이 노사간 쟁점이 되었고, 제주의료원은 2011년에 노사합의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역학조사 결과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주의료원에서 임신 중에 근무하면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주야간 교대근무,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ㆍ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으므로, 이러한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 고 하여 업무상 인과관계가 인정되었고, 이에 선천성 심장질환을 출산한 근로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였다. 1심 법원은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산재보험의 대상이 되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 된다고 판단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을 적용대상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근로자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병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항소심 법원은 판결문에서 “출산 이후에는 어머니가 아닌 출산아가 지닌 선천성 질병으로 바뀌므로 그 업무상 재해는 원고(어머니)들과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원고들의 자녀에 대한 질병” 이라고 하면서,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되는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 이므로, “산재보험법이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그 근로자가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 이상 원고들이 아닌 자녀(신생아)에게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 되므로 원고들에게는 수급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로 있을 때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던 질병이, 살아서 태어난 이후에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신생아의 선천성 질병으로 바뀐다는 해석도 기괴하고 소름이 돋지만, 산재보험의 수급권이 신생아에게 있을 뿐 근로자인 산모에게 없으니 청구를 기각한다는 대목에서는 그 논리의 가벼움에 부끄러워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태아가 산재보험을 청구하면 근로자가 아니라서 인정할 수 없다고 할 텐데. 앞으로 임신한 여성노동자는 출산을 앞두고 태아의 이름으로 산재보험에 가입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선천성 질환이라는 상처를 온몸으로 껴안고 태어난 것이 무슨 잘못이기에 공적인 보호를 배제하겠다는 것인가? 산재보험 제도가 정말 그런 것인가?

 

산재보험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적보험이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6조 제2항). 우리 헌법이 모성권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재생산 과정 없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으므로 임신, 출산, 양육에 필요한 보호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아니하고 공공영역에서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헌법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선언(헌법 제32조 제4항)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여성과 태아가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모성보호와 여성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천명하고 있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임신 중인 여성근로자에 대한 내용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현대 산업보건학계에서 유산이나 불임, 2세의 선천성 질환과 같은 생식보건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분야의 산업현장에 만연한 교대근무제가 노동자의 생식기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도 많다. 즉 생식보건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함에도,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그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2세의 선천성 질환’ 문제에 대하여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매우 중대한 제도적 불비이고 입법의 흠결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우리 법원처럼 형식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았다. 

 

독일의 경우가 좋은 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여성 노동자가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선천성 장애아가 출생한 사건에서 “산재보험에서 보험사고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발생한 재해[…]” 라고만 규정하고 있었던 당시의 독일제국보험법(RVO) 제539조 제1항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그 장애아를 산재보험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독일기본법 제20조 제1항의 사회국가원리를 구현함에 있어서 ‘본성상 단일체’(natürliche Einheit)인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독일기본법 제3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위헌결정을 하였다. 1977년에 있었던 판결이다. 

 

이후, 입법부는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취지를 반영하여, 독일사회법제 제7권 제12조에서  “임신 중 모(母)의 보험사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보험사고에 해당하며, 그러한 한도 내에서 태아는 피보험자와 동일하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모에게 업무상 질병을 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유해요소로 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비록 모에게는 업무상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보험사고로 본다.” 라고 규정하였다. 동일하게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업무에 따른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40년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두 나라 법원이 보여준 상반된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토록 하는 것”(서울행정법원 2014. 11. 7. 선고 2011구단8751 판결 등)이다. 이 사건 원고들의 자녀가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은 제주의료원에서 발생한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하고, 그러한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지 않고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분담토록 하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목적에 충실한 해석이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월, 2016/06/2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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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정부 예산안 - 국토생태분야 : 환경부/국토교통부]



2021년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과연 내년도 예산안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는지, 올 한해 우리를 버겁게 한 코로나 19가 종식이 되면
다시 숲으로, 공원으로 놀러갈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국토교통부의 개발제한구역 관리 예산이 1,500억원 편성되었구요,
환경부의 생태계훼손지복원 예산이 150억원 편성되었습니다.
환경부의 국토생태네트워크 구축 예산이 211억원 편성되었고,
국토교통부의 제주제2공항건설에 473억원, 흑산도 소형공항건설에 68억원 편성되었습니다.

각 항목별로 어떤 예산인지 같이 알아보아요!


2021년 국토교통부의 개발제한구역관리 예산 1,500억원입니다.
사업 내용을 보면 "체계적인 개발제한구역 관리 운영 및 토지 매수를 통해 녹색인프라 조성을 위한 토지 확보"를 위한 예산이라고 되어있어요.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70년대에 도입된 제도로 전 국토의 5.4%인 5,397.1㎢를 지정하였으며, 이후 신규 지정사례는 없습니다.
반면, 2009년 부터 도시용지 공급의 목적으로는 해제의 물꼬를 터준 이래 중소도시권의 그린벨트 1,103㎢는 전부 해제되었지요.

기후위기 시대에 바람길로 도시의 열을 식혀주는 그린벨트, 더욱 적극적으로 국가에서 매입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린벨트는_곶감창고가_개발유보지가_아닙니다

 


2021년 환경부의 생태계훼손지복원 예산은 150억원입니다.
무슨 예산인지 잘 모르시겠다구요?

담당부처에서 작성한 사업 내용을 요약하면 "생태계보전협력금을 납부한 개발사업자가 훼손된 자연생태계 복원 등 자연환경 보전사업을 시행하였을 경우 납부한 협력금의 일부를 반환해줌으로써 생태계의 복원 및 보전사업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개발 사업자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태계를 훼손하게 될 시 복원을 위해 생태계보전협력금을 납부해야하구요,
이 기금에서 동일 사업자가 복원 사업을 추진할 경우 환급해주는 예산이 생태계훼손지복원 예산인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생태계가 한번 훼손되면 "기존과 동일한 상태"로 회복되기 까지는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리는데,
복원 사업을 '추진'한다는 이유 만으로 환급해주는 것 문제 있지 않나요?

 


환경부에는 백두대간에서부터 도시까지를 연결하는 생태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예산이 있습니다.
사업 내용은 매력적이에요. 백두대간에서 도시까지를 연결한다니, 우와! 사람과 동물, 식물이 같이 공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기재부에서 90억원이나 삭감시켰네요...? 연간 211억원으로...도시와 백두대간을 연결할 수 있을까요....?


한라산이 눈이 동그래져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도권 지하철보다도 더 잦은 제주공항의 비행기 이착륙 스케쥴, 괜찮은가요?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전세계가 멈추어버린 2020
우리는 무조건적인 증설만이 관광업계의 대안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함께 지속가능한 관광, '있는 자원은 다 활용하여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식의 개발은 아닌거지요.


철새들에게는 유일한 이동통로인 하늘길입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철새의 70%가 쉬어가는, #여기가_철새휴게소_맛집,인 흑산도이구요.
심지어 국립공원연구원에서 철새연구센터를 세워 특별관리하는 흑산도인데,
새들의 하늘길의 가장 큰 방해물인 공항을 건립해야한다니요.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요.
배가 입항을 하지 못할 정도의 악천후에서 섬주민들의 이동권 보장을 이야기하는데,
그정도 기상은 비행기에게도 당연히 위협적이지 않을까요?


정부는 그린뉴딜을 내세워 많은 정책을 홍보하는데 열심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전혀 "그린"하지 않은 예산들만 가득하지요.
"그린"한 예산은 삭감하기 바쁘구요.

누구를 위한 그린 뉴딜인가요?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 [보도자료] 환경운동연합, “2021년 정부 예산, 기후위기 예산 7,629억 원 증액 필요”

수, 2020/12/2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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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대법원은 20대 총선 때 최경환 후보 공천 반대 1인시위 피켓을 들었던 청년유니온 위원장에 대해 선거법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하였습니다. 이는 "공천 반대 1인시위는 유권자의 정당한 의사표현"이라는 1심과 2심 판단보다 크게 후퇴한 것으로, 선거 시기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위헌적인 선거법의 틀을 그대로 따른 판결입니다. 지난해 2016총선넷의 후보자 이름조차 쓰지 않은 피켓을 쓴 기자회견까지 유죄로 판결한 것에 이어 이번엔 1인시위까지 유죄라고 판결함으로써 유권자의 권리가 더더욱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장철준 교수(단국대 법학과)의 글을 통해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알아봅니다. 

 

법관들에게 헌법합치적 법 해석의 자유를 허하라!

[광장에 나온 판결] 최경환 공천반대 1인시위 유죄판결(대법원 제2부 2017도13103, 재판장 김소영, 주심 고영한, 조재연 대법관)

 

장철준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우리 헌법 제103조에 의하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사법부 자신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바라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겠다는 헌법적 의지가 드러난 조항이다. 이 헌법 명제가 지극히 타당한 이유는 누구나 그 어떤 내·외부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이성적 주체로서의 법관에게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관도 사람인 까닭에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 이 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동일 사건에 최대 세 차례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법 절차를 보장하고 있다. 재판 기회의 측면에서는 충분히 공정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이 진실과 멀어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거나 적용되는 법을 올바로 살펴 해석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사실관계에 관한 다툼은 증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증거를 충실히 찾아 제출하는 재판당사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적용되는 법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오롯이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몫이다. 복잡한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효과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는 법에 일반적 언어가 사용되어야 하는 까닭에, 재판에서 법관은 적용할 법을 반드시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몇몇 행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였다면, 특정인의 비위사실을 거론하며 공천 반대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행위가 법에서 금지하는 '선거운동과 관련한' 행위인지를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해당 법문에 대한 언어적 구조 파악과 더불어 법의 역사, 제정 목적, 헌법질서 속 그 의미에 대한 이해까지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 해석은 그 어떤 법관도 유일한 정답을 자신할 수 없기에 독선과 힘의 논리를 경계하고 건전한 토론의 자세로 임하여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공직선거법 해석의 원칙

 

이 사건 피고인은 청년활동단체의 위원장으로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2016년 4월 13일로부터 약 두 달여 전, 경산시 새누리당 후보자로 출마 예정인 현역 의원을 겨냥하여 문제의 1인 시위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40여 분 동안 실행하였다. 시위에서 적시한 공천반대 주장의 이유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채용 비리에 그가 연루되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0조 제1항 제1호(화환·풍선·간판·현수막·애드벌룬·기구류 또는 선전탑, 그 밖의 광고물이나 광고시설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하는 행위)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위 조항을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56조 제3항 제1호를 근거로 피고인을 기소하였다. 

 

공식선거운동 기간에만 선거운동을 허락하는 우리 공직선거법 구조상 제90조에서 열거하는 행위는 기간 이전에 행하여진 선거운동으로서 불법이다. 따라서 그 내용을 잘 따져보면, 문제된 행위가 선거운동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결정적 기준은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법해석의 문제이다. 그 해석 방향에 따라 선거운동기간 이전 6개월 동안 국민은 정치인에 대한 의사표시를 크게 제약당할 수도 있다. 대상자가 다가오는 선거에 출마 예정이라면 말이다.

 

제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시위 내용과 형태를 볼 때, 그것이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고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다. 아직 정당의 후보자 공천절차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제1심 재판부는 이러한 해석을 하게 된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바로 공직선거법 제58조 제2항,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선거법 자체에 비록 수많은 금지행위를 나열하는 바람에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기는 하였지만, 민주주의의 꽃으로서 선거는 자유로운 운동이 가능할 때 제 기능을 다하게 된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은 다른 어떤 힘도 아닌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법선거운동이라 열거된 규정의 해석과 적용은 매우 엄격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가치로 하는 우리 헌법에 부합하는 공직선거법 해석이다. 특히 선거운동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선거부정을 방지하는 것도 공직선거법의 중요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문제되었던 부정선거의 병폐는 주로 관권과 금권이 결탁되어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다.

 

선거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남용된 것이 그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면, 표현행위를 통한 선거운동의 불법성 여부는 자유로운 선거를 위해 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덧붙여 제1심 재판부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충실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256조를 비롯한 처벌규정은 선거법 위반사범에 대해 상당히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 죄와 형벌을 규정한 법률을 해석할 때에는 유추·확장해석을 피하여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 태도는 형사사법절차에 관한 헌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지극히 합당한 해석이다.

 

반면 대법원은 정반대의 해석 방식과 결과를 제시하였다. 제90조 규정이 아닌 제256조에서 처벌 요건으로 규정된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라는 용어에 주목함으로써, 무죄를 유죄 취지로 바꾸어버렸다. 그러면서 위 용어가 사용된 제135조의 해석 선례를 인용하였다(대법원 2010.12.23. 선고 2010도9110 판결 등). 제135조는 선거사무관계자에 대한 수당과 실비보상을 규정한 조항으로서, 여기에서 정한 수당 및 보상 이외에는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이나 이익 등을 취하거나 취하게 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 조항이 적용된 선례에서 대법원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의 뜻을 "선거운동에 즈음하여, 선거운동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하여"라는 의미로 해석한 적이 있다. 이는 "선거운동을 위하여"라는 의미보다 훨씬 넓은 의미이다. 어떻게든 선거에서 부정한 돈이 오가는 것을 광범위하게 막으려는 사법적 의지가 반영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대법원의 논리는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라는 용어가 제135조와 제256조에 동일하게 사용되었으니, 전자와 동일하게 후자 또한 확장하여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문자 중심의 편협한 법해석이다. 두 조항의 규제 성격(금지규정과 처벌규정)이 너무도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제256조는 "각종제한규정위반죄"라는 이름으로 수십 개의 법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의사를 밝힌 규정이다. 제3항 제1호만 해도 "선거운동과 관련"한 총 16개의 행위를 처벌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대법원의 논리라면 제90조 위반행위 이외에도 나머지 15개 조항 위반 또한 선거운동과 조금이라도 연관만 있으면 처벌하여야 하는 결과가 나온다. 예컨대 선거운동 6개월 전에는 정치인에 관한 현수막 하나만 내걸어도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다(가목). 이것이 선거운동의 자유와 죄형법정주의의 헌법원리와 조화된 해석이라 할 수 있을까? 이 해석에는 헌법과 선거법의 목적에 대한 숙고도 없고, 선거법 역사에 대한 조금의 성찰도 없다.

 

 

법관의 법해석과 재판 심급제

 

법관이 지나치게 텍스트에 얽매인 법해석을 감행할 때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판결을 맡기게 될 날을 두려워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합리적 이성을 통한 설득의 과정을 재판에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법원 판결의 논변 태도에서 또 한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제1심과 항소심에서 대법원 판결과 다른 법해석을 펼쳤다면, 단순히 그 해석이 이유없다는 말로 끝내버릴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에 대한 세밀한 반론을 제시하였어야 한다. 

 

법관의 법해석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두드러진 관료제적 사법구조의 횡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법원에 심급을 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판결의 오류를 다음번에 수정하도록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상급법원의 권위로 하급법원의 견해를 제압하도록 허락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대법원은 재판에서 나름의 권위 있는 법해석을 제시할 권한이 있지만, 하급심 법해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논증을 할 의무도 있다. 그것이 개별 법관을 존중하는 태도이며, 재판의 독립을 추구하는 헌법의 이상에 맞는 행위이다. 나아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법부 내에서 건전한 법리 논쟁의 장이 펼쳐질 수 있고, 결국 우리 사법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의 기계적 텍스트 해석에 의해 아쉽게도 이유없는 판결로 전락하여버린, 제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헌법합치적 법해석에 경의를 표한다. 선례를 고려하면 아직까지는 별로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에 한정위헌청구를 통해 다시금 부활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본다.

 

 

목, 2018/03/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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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 보호와 상생경제,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법에 대해 유통업계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위헌소송을 제기해오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기업의 자유권과 재산권,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의 공익적 효과의 중대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일관되며,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다시한번 확인되었습니다. 경제민주화의 헌법적 정당성을 다시한번 입증한 이번 결정에 대해 한국법제연구원의 최유경 박사가 분석하였습니다. 

 

상생과 협력을 통한 경제민주화의 길 -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통찰과 혜안

[광장에 나온 판결] 대형마트 의무휴업 조항 합헌 판결(헌법재판소 2016헌바77, 78, 79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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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대형마트 등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제1항, 제2항, 제3항에 대해 최종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2015.11.19. 선고 2015두295)의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헌법재판소를 통해서도 대형마트 규제 관련 정당성이 경제민주화적 견지에서 명료하게 정리된 점에 큰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 하겠다.

 

도시계획적 입지규제의 실패가 부른 불가피한 선택

 

'유통산업발전법'은 해외 유통산업이 공격적인 진출을 시도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 유통산업의 발전 기반을 확충하고자 1997년 제정되었다. 이 법으로 말미암아 대규모점포 개설 원칙은 허가주의에서 등록제로의 파격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8년경까지 전국적으로 대규모점포와 준대규모점포(Super Supermarket)가 우후죽순 개설됐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독일이나 미국, 스페인 등과 달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 정책을 수립하는데 철저히 실패했다. 이들 국가는 대규모 점포 등의 입지 단계에서 교통, 환경, 노동과 같은 다면적 요소를 사전적으로 고려한다. 무엇보다 매출영향 평가를 통해 기존 상권에 10% 이상 영향을 미치는 대형 쇼핑몰의 입점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 이 같은 엄격하고 일관된 도시 계획적 시그널을 통해 시장구조의 왜곡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나마 독일과 스페인 등지의 대형 쇼핑몰의 경우, 일요일은 여전히 문을 닫는다. 

 

현행법상 논란의 중심에 놓여 왔던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이미 난립한 대규모점포의 영업수행을 일부 제한하는 것으로 전통시장을 비롯한 중소상인과의 상생 및 업종 전환을 위한 연착륙을 보장하는 심폐소생술 정책이었던 셈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눈으로 읽은 경제민주화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119조 제1항과 제2항의 관계에 관한 적극적인 해석을 내리지 않은 점은 일견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헌법상 경제질서가 사회정의, 공정한 경쟁질서, 경제민주화 등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허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전제 하에 다양한 경제 주체의 공존을 전제로 하는 경제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한 시장기능의 정상적 작동이 가능하다는 해석은 보다 명백해졌다. 

 

특히 강력한 자본력과 시장지배력을 가진 소수 대형유통업체는 이미 우리 유통시장의 거래질서를 상당히 왜곡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업자들의 상권은 소멸했거나 현저히 위축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에 대한 영업제한은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재량'으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이나 법익의 균형성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헌법 해석상으로도 자연스럽다.

 

공개변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

 

2018년 3월 8일 이루어진 공개변론에서 헌법재판관들은 "헌법 제119조 제1항이 존중하는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는 비단 대형유통업체만이 아니라 중소유통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고, "그간 영업제한으로 인해 골목상권과 같이 몰락의 위기에 놓인 대형 유통업체는 없다"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 내려갔다. 그밖에도 근로조건의 협상에 있어 취약한 근로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일부 유통업체에 의한 독과점으로 다채로운 상권이나 유통경로가 무너진 이후의 소비자 후생까지도 깊이 고민한 흔적까지 돋보였다. 

 

또한 재판관들은 대형마트 근로자들이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건강권을 보장받는 방법으로서 대체 가능한 수단이 없다고 시사했다. 화려한 소비로 치환되는 현대인의 욕망이 최종적으로 분출되는 소비 공간에서 근로 관련 법령이나 근로계약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조건에 놓인 대형마트 근로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깊은 공감이 베어있는 대목이다.

 

규제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대한 일갈

 

일부 유통업체와 그를 대변하는 경제학자들은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경제적 효과가 전통시장 등의 매출증대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며, 규제로 인한 불편함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매출증대의 실제효과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고 일축하면서 "조사방법, 조사에 사용된 통계자료, 지역사정 등에 따라 서로 상반된 조사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고 하여, 사회적·경제적 효과가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실제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사후적 입법평가(한국법제연구원, 2017)'에 따르면, 의무휴업일 지정제도로 인해 적어도 '대형마트영향을 받는 전통시장'에서는 매출액 증가의 효과가 나타났는가 하면, 소비자의 약 66.7%는 현행 대형마트의 규제에 대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향후의 규제 전망과 방향성

 

최근 유통산업의 지형(地形)은 초대형 백화점과 가구전문점, 아울렛이나 복합쇼핑몰에 이르기까지 진화하고 있다. 인근 상권에 미치는 파급력은 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성공적인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다. 사회·경제적 효과에 관한 분석 결과도 저마다 상이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정치권을 중심으로 최소한 '복합쇼핑몰'에 대해 대형마트 영업규제와 동일한 메커니즘의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후의 논의들이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우리 헌법상 경제질서에 부합하는 공익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상인, 근로자 및 소비자에 이르는 "다양한 경제주체들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모색"하는 건강한 경제 민주화 실천의 길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 2018/07/1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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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지방의회 선거제도와 관련한 두 건의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습니다. 자치구·시·군의회 의원선거와 시·도의회 의원선거(2014헌마189결정)와 관련해 앞으로는 지역 선거구간의 인구편차는 최대 3:1 범위 안에서만 인정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참고로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지역구 의원 선거구에서 인구편차를 2:1범위 이내에서만 허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선거구 획정에 따라 선거구별 인구 편차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유권자의 1표의 가치가 달라지는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초래됩니다. 이에 김준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칼럼을 통해 지방의회 선거구 인구편차를 최대 3:1 범위까지는 인정하겠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를 짚어봅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방의회 선거제도를 조금 바꿨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광장에 나온 판결] 헌재 2018. 6. 28. 2014헌마166, 헌재 2014헌마189 [재판관 이진성(재판장)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유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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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지방의회 선거제도와 관련한 두 건의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다. 자치구·시·군의회 의원선거(2014헌마166 결정)와 시·도의회 의원선거(2014헌마189결정) 공히 앞으로는 지역 선거구간의 인구편차는 최대 3:1 범위 안에서만 인정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의미는 있지만 예견은 할 수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결정

 

종전에 헌법재판소는 시·도의회 의원선거에 대해서 선거구간의 인구편차 허용기준으로 4:1이 적절하다고 판단(2007.3.29. 2005헌마985 결정)했었고, 자치구·시·군 의회 의원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제시해왔다(2009.3.26. 2006헌마14 결정). 따라서 이번 결정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가 반영되는 것이 2022년 지방선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도의회선거는 15년 만에, 자치구·시·군 선거는 13년 만에 지방선거에서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다소 감축되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지역구 의원 선거구에서 인구편차를 2:1범위 이내에서만 허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2014. 11.30. 2014헌마53 등) 지방의회 선거에서 인구편차도 최소 3:1 범위로 엄격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조금 더 적극성을 띄고 조속히 결정을 내렸다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현재보다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감축된 선거를 치룰 수 있었으리라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비록 이번 결정을 통해서 지방의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가지는 표의 등가성은 종전보다 조금 더 확보되었지만, 이번 결정이 우리사회에 남긴 의문과 숙제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의원선거에서 표의 등가성이 달려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의문은 국회의원 선거는 2:1까지만 인구편차를 허용하면서, 지방의회 선거구에 대해서는 3:1로 더 넓게 인정하는 헌법재판소의 태도가 과연 타당성이 있는 주장인가 하는 점이다. 

 

헌법재판소가 주장하고 있는 가장 주요한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로 지역적 사안을 다루는 지방의회의 특성상 지역대표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사회가 도시와 농어촌 간의 인구격차가 크고 각 분야에 있어서의 개발 불균형이 현저하다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역대표성 및 지역 간의 격차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의 현재 입장은 특별한 논리적 설득력을 갖기보다는 다소 궁색해 보인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비해서 지방자치와 지방의회선거의 의미는 소홀히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일이다.

 

오히려 모든 선거에서 표의 등가성에 관한 기준은 동일하게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실제 2010년 전후에 헌법재판소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원선거를 동일하게 봐야 한다는 ‘소수’의견(김종대 당시 재판관)도 있었다.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와 시·도의회 선거의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는 헌법재판소  

 

물론 백번양보해서 지방의회가 갖는 특성을 조금 더 고려해야 한다는 유연한(?) 사고를 수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자치구·시·군의회 선거와 시·도 의회 선거를 같이 취급하는 것은 곤란하다. 양자 사이에는 차이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자치구·시·군의회 의회 선거의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계산하는데 있어서 해당 자치구·시·군내의 선거구들만으로 비교집단으로 설정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서울 송파구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계산할 때는 서울 송파구 안에 다른 선거구와만 비교를 하는 것이지, 서울시 다른 구의 선거구이나 다른 지역의 군 등과 비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자치구·시·군의회 선거’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주장하는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 등을 감안해야 할 이유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에 시·도의회 선거의 경우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된다. 같은 경기도 안에서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연천군과 인구 100만명이 넘는 경기도 수원·고양·용인시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회 선거를 달리 취급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회의원 및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는 같은 층위에서 판단하고 시·도 의회 선거는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차라리 타당한 절충론이 될 수 있다. 실제 2010년 전후에 헌법재판소 소수의견에도 (당시 송두환 재판관 및 조대현 재판관)이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이러한 섬세한 접근은 소수의견으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절충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적어도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의 경우에는 국회의원 선거처럼 2:1 수준으로 인구편차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무엇을 주장해야 할까? 

 

이번 헌재 결정이 미칠 영향과 효과도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와 시·도 의회 선거가 매우 다르다. 

 

먼저 자치구·시·군 의회선거의 경우는 그 효과가 대단히 제한적이거나 국지적일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자치구·시·군 의회 선거의 특징상 범위가 좁기 때문에 3:1을 초과하는 선거구가 많지 않은 탓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경우 25개 자치구에 총 186개의 지역 선거구가 존재하지만, 실제 이번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구편차가 3:1을 초과하는 기초의회 선거구는 총 4곳에 불과했다. 이 기준을 국회의원 선거와 같이 2:1로 높이더라도, 서울에서 선거구 재획정을 필요로 하는 선거구는 총 8개의 선거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후 다음 지방선거 때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3:1 기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2:1을 기준으로 자치구·시·군 의원 선거구 획정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한편 시·도의회 선거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한 조건에 놓여 있다. 우선 이번 결정의 영향과 효과의 편차가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울·광주·대전의 경우 현재 선거구를 그대로 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부산·대구·울산의 경우도 많아야 2-3곳의 선거구 획정만 필요로 할 뿐이다. 그러나 농촌지역이 많은 광역자치단체는 다소 복잡한 셈법을 해야 한다. 지금 공직선거법 제22조에서는 시·도의원을 선출할 때 자치구·시·군에서 최소 1명은 선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에서 인구가 적은 무주·진안·장수도 1명의 도의원은 선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소멸 위기 지역들이 4:1이 아니라 3:1 기준을 설정할 경우 1명의 도의원을 선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실 더욱 황당한 것은 경상북도와 인천의 경우는 지금까지 4:1 기준도 충족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표적인 도서지역인 울릉군과 옹진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감안한다면 시·도 의원 선거의 경우 획기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전체 시·도의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부터 해서,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벗어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등 다양한 선거제도 개혁방안이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방주민들이 함께하는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1인 1표 시대를 위하여 

 

우리 헌법은 평등선거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유권자 1인이 갖는 표의 가치가 동등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거구간의 인구편차는 최대한 엄격한 기준 하에서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표의 등가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목소리와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른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투표가치의 평등이야 말로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8-90년대에는 4:1을 초과하던 인구편차도 허용되던 시기에 비하면, 이제 국회의원 선거는 2:1, 지방의원 선거는 3:1까지만 인구편차가 허용되게 된 것은 큰 발전이다. 그러나 프랑스(1.5:1), 독일(1.35:1), 영국(1.1:1), 베니스위원회 기준(1.22:1) 등에 비하면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드는 가장 나쁜 예감은 우리가 갈 길이 또다시 10년 후에나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이뤄질 것에 대한 우려다. 사실 이번 결정을 통해서 반복된 나쁜 관행은 다시 한 번 선거제도의 개혁이 국회나 지방의회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이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투표가치의 불평등을 감축하고 최소화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는 의회는 왜 항상 자신의 소임을 방기하는 것일까? 솔직히 200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서 정치개혁과 관련된 의미있는 변화는 항상/아직 헌법재판소가 주도해왔다. 이점에 관해서 국회와 기존 주요 정치세력(특히 거대 양당)은 한 번도 자기반성과 혁신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도 사회운동의 지속적인 개입과 운동이 필요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목, 2018/07/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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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사건 당시만이 아니라 이 비극을 다루는 국가의 방식에서도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겼습니다. 국가의 책임은 체계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분산되었습니다. 52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호 구조 실패로 실형을 받은 공무원은 아직까지 단 1명에 불과합니다.

비극적 참사에 있어서 국가의 책임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향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도 국가가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할 요인이 없습니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원한 유가족이 민사재판으로라도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던 이유였습니다. 그 기나긴 재판이 지난 7월 19일 첫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에 있어서 국가의 직접적 책임을 얼마나 인정했는지,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이 분석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광장에 나온 판결] 세월호유가족의 국가와 청해진 상대 손해배상소송(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0부 재판장 이상현 부장판사, 2015가합560627)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지난 7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0부(재판장 이상현)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117명, 일반인 승객 2명의 유가족이 정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판결했다. 가족 측이 승소했다. 비록 1심이긴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선장과 선원, 선사뿐만 아니라, 국가도 법적인 책임을 지닌다는 것을 사법부가 확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던 전명선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유족들은 이를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8월 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이상현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대리인인 김도형 변호사에 따르면 "1심은 국가의 구조 실패에 대한 책임 인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원고 측이 제기한 국가 책임은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구조작업에 간여한 공무원 중 유일하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당시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123정의 김경일 정장의 행위만을 국가가 져야할 책임으로 인정했다. 원고 측은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의 관제실패행위,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지휘, 항공구조사들이 선내로 진입하지 않은 행위, 국가재난컨트롤타워 미작동 등도 직무상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정된 것이라면, 공무원이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함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전제했는데, 결과적으로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의 관제 실패 행위,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지휘, 항공구조사들이 선내로 진입하지 않은 행위, 국가재난컨트롤타워 미작동 등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나마 재판부가 123정장 외에 판결문에서 유일하게 거론한 공무원은 511호, 512호, 513호 헬기에 탑승했던 항공구조사들인데, 재판부는 이에 대해 "항공구조사들이 선내에 직접 들어가 승객들에게 퇴선을 유도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적시했지만 그러한 행위와 희생자들의 사망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적용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다른 공무원들의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나 위법행위는 아예 판결문에서 거론되지도 않았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요약하자면 공무원 중 형사적으로 유일하게 최종적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공무원의 행위에 대해서만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다른 국가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판단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현장구조책임자'였던 123정장의 범법행위가 국가책임 인정의 근거로 받아들여진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123정장에 대한 형사판결에서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123정장의 형사책임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정에서 대법원은 123정장의 형량을 4년에서 3년으로 감경한 고등법원 판결을 인용하면서 "해경은 평소 해양경찰관에게 조난사고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했다. 이처럼 해경 지휘부와 함께 출동한 해양경찰관에게도 공동책임이 있는 만큼 김경일 전 정장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한마디로 대법원이 이미 당시 현장 지휘관 개인의 업무상과실치사 행위만이 아니라 '해경 지휘부의 공동책임'을 적시한 바  있고, 이번 판결은 이러한 대법원의 판례를 단순히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진취적인 판결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123정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소극적으로 인용하는 수준이었다면 1심 판결을 2년이나 끌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 의문이다.    

 

둘째, 기존 재판에서 형사처벌을 피한 다른 지휘라인의 공무원들의 행위를 이번 판결에서도 국가의 책임을 묻는데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해석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진도VTS 관계자들이 세월호 참사 당시 부실한 관제로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고, 2인 1조 근무 규정 등을 어겨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했다는 혐의로 진도VTS 관계자들이 기소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직무유기 부분에 대해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단지 진도VTS 관제사와 팀장들이 변칙적 근무를 하고도 이를 숨기기 위해 교신일지 등을 조작한 혐의만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고등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들의 행위는 "태만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나 "소홀히 직무를 수행한 탓으로 적절한 직무수행에 이르지 못한 것"에 불과할 뿐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로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2심 판결문 중)"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 이번 판결에서도 이들의 행위가 승객의 사망과 관련한 국가의 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당시 목포해경서장은 해임됐지만 기소되지 않았고 곧 서해지방청이 되었다. 당시 서해지방청장은 강등되었지만 기소되지 않고 정년퇴직했고, 당시 해수부 장관도 문책받지 않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책임자였던 유정복 안행부 장관도 문책없이 사임한 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구조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부인했던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구조책임을 물어 기소되거나 처벌되지 않았다.

 

당시 구조 지휘라인에 있던 인사 중에서 이번 판결 이전인 2018년 7월 중순까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 명 있긴 하다. 해양경찰청 차장이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당일 구조에 대한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구난업체 '언딘'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마찬가지로 해양경찰청 직원이 세월호 운항 관리규정 심사를 요청받고 세월호에 승선해 식사와 관광비용 등 수십만원의 향응을 받은 혐의 등으로 300만원 벌금을 받은 사례가 있다. 이 모든 행위들 역시 이번 판결에서 승객들의 사망과 관련한 국가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검토된 흔적이 없다.  

 

물론, 다른 판례에서 범법행위로 인정되지 않는 행위들에 대해 민사재판부가 국가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본 것으로 법률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당일, 목포해경 상황실이든, 서해청 상황실이든 해경 본청 상황실이든 세월호 구조에 책임이 있는 해경 상황실은 그 어느 단위도 세월호와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는다. 해경 본청이 있는 인천에서도 세월호의 선원과 얼마든지 통화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실제 인천의 청해진해운 본사는 여러 명의 세월호 선원과 수차례 통화를 하였다. 현장으로 출동한 해경 초계기, 헬기, 경비정은 모두 이동과정에 세월호와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는다.

 

세월호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하면 일정한 지시도 내리는 등의 행위는 너무도 당연한 행위이지만 그들은 하지 않았다. 덧붙여 해경 출동세력은 상황실에 세월호의 상황을 문의하지도 않았다. 설사 기존 재판 결과 이 모든 행위들이 범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더라도, 이 모든 부적절한 행위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구조실패를 만들어낸 것은 명확한데, 이 모든 일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상식적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123정장에 대한 형사재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애초에 123정장의 형량을 징역 4년에서 3년으로 낮춘 고등법원은 판결문에 다른 근거도 언급했는데, 감형의 사유가 지휘라인에서 구조를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서해지방해경 상황실 등에서 피고인과 20여회 통신해 보고하게 하는 등 구조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적어도 현장구조책임자를 구조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도록 한 지휘라인의 행위가 국가책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야 옳지 않았을까? 

 

셋째, 국가공무원이나 국가기구는 아니지만 국가가 해야 할 업무가 외주화됨에 따라 '운항관리', '세월호 증·개축 검사' 업무를 맡았던 한국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나 한국선급의 직원들의 범법행위가 승객들의 사망과 관련한 국가 책임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검토되지 않은 것 역시 아쉽다. 

 

이들의 일부는 실제 기소되어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이들의 불법행위들이 국가의 책임과 관련이 있는 지는 재판에서 다투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월호 출항 전 안전점검 업무를 담당했던 한국해운조합의 전 모씨가 대법원에서 징역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법원은 "안전점검에 관한 피고인 전정윤의 업무가 오로지 운항관리자인 피고인 전 씨 본인의 업무일 뿐이라는 판단은 타당하지 않고", 한국해운조합이 "한국해운조합은 그 자신의 업무로 출항 전 안전점검에 관한 운항관리자의 적절한 업무 수행과 이를 감독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내부 규정을 마련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증개축 과정에서 검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한국선급 검사원들에 대해서도 이번 판결이 내려진 직후인 7월 24일 대법원에서 새로운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4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한국선급 선박검사원 전모(38)씨의 상고심에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과는 달리 한국선급 선박검사원을 처벌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한국선급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검사원 개인의 허위보고가 한국선급에게 오인·착각 등을 일으키게 했다는 점만 인정했다. 또한 참사 직전까지 해운조합 인천지부 운항관리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세월호 및 오하마나호 등의 안점점검 업무를 맡아온 한모(53)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례들이 이번 판결에서 다투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최근 드러나고 있는 바, 박근혜 대통령의 임무방기와 국가의 진실 은폐,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불법 감시 및 사찰, 댓글공작과 조사방해 행위 등과 관련하여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설사 이들 국가 주도의 불법∙부당 행위들이 이번 소송의 검토 및 판결 대상이 아니었다하더라도, 큰 아쉬움을 남긴다.

 

구조당일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구조 지휘 책임을 모면하려고 대통령에게 최초로 보고된 '국가안보실 상황보고서' 1보 보고시점을 9시 30분에서 10시로 조작하여 구조골든타임에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은 것처럼 꾸민 일, 심지어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임의로 사후수정하여 마치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 위기시 정보와 상황을 종합하고 관리하는 콘트롤타워가 아니었던 것처럼 조작한 일 등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국가책임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본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김장수 전 실장은 최근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위조 등의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또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문건이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다수 발견되었고, 국정원과 기무사령부가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시민들의 활동을 불법으로 사찰하고 댓글공작등으로 비난한 것 모자라, 이를 파괴하기 위한 각종 작전을 기획하고 직접 조직까지 한 사례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이 모든 국가주도의 불법∙부당 행위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국가손해배상 소송이라도 제기하여 별도의 국가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수, 2018/09/0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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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9. ~ 2018.9.)만료로 새롭게 임명됩니다. 이번에 교체되는 5기 재판관들은 헌법재판으로 분류된 모든 재판을 다뤘다는 점에서 특별했던 기수로 평가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들 재판관의 임기 중에 나온 결정문 중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을 함으로써 5기 헌법재판관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 및 차기 재판관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자 합니다.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정당법 제41조 제4항 위헌확인 (정당등록취소 및 등록취소된 정당의 명칭사용금지 사건) 2012헌마431

 

장철준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이전과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우리 삶에서 정당은 아직도 멀리 있는 존재인 듯싶다. 촛불과 탄핵, 그리고 뒤이은 선거를 치르면서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정치적 인간”이니 “일상정치”니 하는 용어들이 제법 대중에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 잡기는 하였다. 백만을 넘겼다는 모 정당의 ‘권리’당원 숫자는 이전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임이 분명하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대규모 당원 가입을 이끌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 삶 속에 살아있기 위해서는, 정당에 훨씬 더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당원으로서 정당에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하면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와 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의 꽃인 선거에서 정당 후보가 당원들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함은 특별한 언급의 필요조차 없는 사항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 현실에서는 이러한 기본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정당 문화의 발전이 더딘 것은 어두웠던 권위주의 헌정사의 탓이 가장 크다. 여당이 폭압적 권력의 실행조직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야당에 가입하거나 지지자가 되려면 온갖 손해를 감수하여야 했던 시절이 오래 지속되었다. 자연히 정치는 개발독재의 군사적 카리스마와 민주화운동의 조직적 카리스마 간 대결의 장으로 압축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이후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참여에 기초한 새로운 정당모델이 실험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당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에 더하여 정당법의 후진적 체계 역시 정당문화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정당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아무리 높아져도 기성 권력질서와 이미 확고히 연계된 정당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민주화의 여정에서 정치개혁의 대의 속에 정당법 개정이 이어져 왔으나, 아직 정비하지 못한 과거의 유물은 여전히 건재하다. 여기서 논할 정당법 조항의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정당의 등록·취소제도

 

헌법은 제8조에서 4개 조항에 걸쳐 정당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정당의 법적 본질을 민법상 ‘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법인을 포함한)단체 중 헌법이 이만큼의 특권을 부여한 것은 없다. 그 내용을 보면,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도를 보장한다는 헌법적 의도에서부터 시작하여(제1조), 강한 보호에 걸맞은 정당의 민주성과 최소한의 조직 구조를 요구하였다(제2조). 또한 국가에게 법률에 따라 정당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자금지원까지 하도록 하여(제3조), 그 특권의 정점을 찍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될 때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해산될 수 있음을(제4조) 규정하였으나, 이는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절차가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함부로 정당을 해산할 수 없다는 보호의 의미를 밝힌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겉보기에 정당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여 아무 단체에게나 이러한 헌법의 특별한 취급을 해 줄 수는 없다. 정당법에서 정당의 구체적 요건을 매우 상세하게 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헌법상의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당법의 요건을 갖추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도록 정하였다. 등록된 정당에 대한 보호를 거두어야 할 때를 대비하여 등록 취소에 대한 요건도 구비하여 두었다. 만일 정당법의 등록 요건이 매우 까다롭거나 취소 요건이 지나치게 느슨할 경우, 헌법 제8조의 정당 보호의 의도를 왜곡하게 될 것이다. 본 결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정당법 제44조의 등록 취소사유가 헌법에 합당한지 여부였다.

 

이 조항에서는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한 정당이 의석을 한 석도 얻지 못하고 득표수가 유효투표 총 수의 100분의 2를 넘지 않을 경우 등록을 취소하고(제1항 제3호), 그렇게 등록취소된 정당의 명칭은 취소일 이후 최초로 실시하는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일까지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제4항) 하였다. 2012년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였던 진보신당, 녹색당, 청년당은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였고, 각각 유효투표 총 수의 1.13%, 0.48%, 0.34%를 득표하였다. 선거 다음날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여 등록이 취소되었고 곧바로 동일한 정당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은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정당이 “자신들이 원하는 명칭을 사용하여 정당을 설립하거나 정당활동을 할 자유”는 헌법 제8조의 정당설립의 자유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위 정당법 조항이 위헌이라 결정하였다. 즉, 이 제도를 만든 목적으로 추정되는 “군소정당의 난립 방지” 효과에 비하여 침해되는 정당설립의 자유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등록취소의 기준이 되는 국회의원선거 득표수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 신생·군소정당의 존속과 보장이 너무 쉽게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선거에 여러 번 참여할 기회를 주는 등 “덜 기본권 제한적”인 방법을 취할 수 있음에도, 국회의원선거의 기준 미달 한 번에 즉각 등록을 취소하고 향후 4년 동안 같은 이름을 쓸 수 없게 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 위헌적 제도라고 한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정치적 자유를 위한 정당법을 지향하며

 

정당등록취소조항은 동일한 정당명칭사용 금지조항과 함께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의해 개정된 정당법에서 신설되었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만들어졌을지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누누이 강조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의 담당자이며 매개자이자 민주주의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의 정당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제도이다. 정당을 통해 정치할 국민의 자유를 위해 헌법재판소가 비합리적이고 반기본권적인 정치제도를 없앴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다. 

 

정당과 선거에 관한 법제도는 본래 정치권이 주도하여 개혁하여야 할 ‘게임의 법칙’이다. 민주주의 주체들 사이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합의되어야 할 제도에 관한 문제이므로, 정치적 존중과 타협의 미덕이 강하게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우리 정치주체들이 이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득권 포기의 용기를 기대하기에는 정치권의 수준이 아직 모자란다. 결국 제도를 개혁할 새로운 대의주체를 세워야 하며, 이는 유권자인 우리의 몫이다. 국민의 지지 의사를 왜곡하는 대표의 권력 지형은 정의롭지 못하다. 속히 고쳐져야 한다. 또한 정당 민주주의가 확립된 정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정당을 가까이하고 정치활동을 장려하는 정치교육의 방향 전환도 필수적이다. 이 모두를 위해서, 제도 개혁의 길목마다 정치활동의 자유, 정당설립의 자유를 폭넓게 확인하는 헌법재판소의 이정표가 꼭 내걸려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정당법 개혁이며, 이는 반드시 ‘정치적 인간’의 자유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목, 2018/09/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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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두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결정에 대해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필하였습니다. 특히 재판관 전원 일치의 탄핵인용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추사유들에 대한 법 위반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평가와 함께 현 사법농단 사태에 주는 교훈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대통령 탄핵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016헌나1

재판장 이정미(소장대행) 재판관 강일원(주심)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서기석 조용호

 

이종수(연세대 로스쿨 교수).PNG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최종 선고가 예정된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말 그대로 폭풍전야의 팽팽한 긴장감이 헌법재판소와 그 주위를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에 온 국민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서 석 달여가 흘렀다. 그새 헌법재판소에서는 세 차례의 변론 준비 기일과 열일곱 차례의 변론 기일을 통해 변론과 증거조사가 진행되었다. 최근에 뒤늦게 알려졌듯이 그 시간에 청와대와 군(軍) 일각에서는 만일 탄핵이 기각되는 경우에 위수령 발동과 심지어 계엄 선포를 준비했다하니 실로 전운(戰雲)이 감돌았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닐 터이다. 어쨌든 숨 가쁘게 진행되어온 탄핵정국은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으로 막을 내렸다. 이것이 해피 앤딩인지 새드 앤딩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에 직에서 쫓겨나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필자 또한 한 시민으로서 짐작과는 다르게 대통령직을 잘 수행해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어 주기를 진정 바랬다. 그런데 실망은 기대의 좌절이라고들 한다. 애당초 기대한 바가 적었으니 크게 낙담할 일도 아닌 셈이다. 스모킹 건이 된 문제의 태블릿 PC를 탓할 일이 아니다. 마지막 한 짐이 지친 낙타를 쓰러트린 게 아닌 것처럼.

 

여느 시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결정 선고가 있기까지 필자를 포함해서 대다수 법학자들은 드러난 비리사실로 판단할 때에 이번 탄핵심판에서 인용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헌법재판관 전원이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이 결정이 있고서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재판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헌법재판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법작용이기에 일부는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의적인 재판은 결코 아니다. 지난 2004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의 기각결정이 이를 방증한다.

 

국회가 제기한 여러 탄핵소추사유를 두고서 헌법재판소는 ① 비선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국민주권과 법치국가 원칙 등 위배, ② 대통령의 권한 남용, ③ 언론의 자유 침해, ④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과 직책 성실 수행 의무 위반 등 4가지 유형으로 소추사유를 다시 정리하였다. 구두변론과정에서 대통령측 소송대리인들은 탄핵심판의 적법요건과 관련하여 소추사유의 불특정성, 탄핵소추안의 국회 의결절차상 위법성 그리고 8인 재판관에 의한 탄핵심판 결정의 부당성을 문제 삼았으나 헌법재판소는 조목조목 이 주장들을 모두 배척하고서 탄핵소추가 적법하다고 밝혔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하는 것으로서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해악이 중대하여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 즉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는 때를 말한다.” 이 부분에 관한 판단 법리는 지난 2004년에 있었던 노무현대통령 탄핵심판사건(2004헌나1)에서 이미 정리된 바가 있기에 헌법재판소는 이를 거듭 재확인한 셈이다.

 

혼군방벌(昏君放伐), 즉 “어리석은 임금을 내치다.”

 

관건은 대통령이 범한 법 위배 행위의 ‘중대성’ 여부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최순실 등의 사익 추구를 위해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에서 정하는 공익실현의무 위반, 사익 추구의 목적으로 기업들에게 거액의 기금 출연 등을 강요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 및 중요한 국가기밀이 포함된 다수 문건의 유출에 따른 국가공무원법상의 비밀 엄수 의무 위배를 확인하였다. 그간 검찰 및 특검 조사에 대한 불응 등 대통령의 헌법수호의지 박약을 탓하면서,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인정된 여러 소추사유들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임을 밝혔다. 이어서 이 같은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이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확인하고서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하였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대응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 위반을 밝히는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 그리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니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관련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 덧붙여졌다.

 

재판관 전원 일치의 탄핵인용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추사유들에 대한 법 위반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헌법 제84조에서 정하고 있는 이른바 ‘형사불소추특권’으로 인해 피청구인인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어렵고,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도 불응하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증거조사에 나름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한편 수긍하지만,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거듭 확인하듯이 탄핵심판의 본질과 성격이 형사재판과는 다름을 전제한다면 이 부분은 보다 적극적으로 달리 판단할 수 있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로서는 중대한 법 위반으로 인정되는 여러 소추사유들로도 피청구인의 파면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확보되었지만, 만일 기각결정이 내려졌다면 헌법재판소가 인정하지 않은 일부 소추사유들이 두고두고 내내 시비꺼리가 되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결정이 있고서 관련 여러 사건들에 대한 특검의 본격적인 수사와 기소에 따라서 법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대통령에 대한 최초 보고시간과 당일 동선 등이 조작·은폐되었음이 드러났고, 아직 최종심급은 아니지만 문체부 고위 공무원 사직 강요행위 등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이지 않은 일부 소추사유들의 정당성이 뒤늦게 확인된 셈이다. 이로써 김이수, 이진성 두 재판관이 덧붙인 보충의견에 못내 아쉬운 눈길이 쏠리고, 한편 다행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이 있고서 수많은 촛불은 들불로 번지지 않은 채 조용히 사그라졌고, 광장은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떠들썩하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서 그간 북핵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긴박한 위기상태에 놓여있던 한반도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한 정상들 간의 대화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다. 흔히들 재판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수단이라고 말하는데, 헌법재판소의 이번 탄핵인용결정은 정치공동체에 다시 평화를 가져오고, 또한 민주헌법국가에서 헌법적 질서에 반하는 그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값진 교훈을 남겼다. 최근 불거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즈음해서 관련 법관들에 대한 탄핵 역시 더 이상 금기가 아니게 된 셈이다. 이번 결정과 함께 남겨진 교훈은 이렇듯 그 힘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글을 맺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금, 2018/10/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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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세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8년 8월 30일 일부 위헌으로 결정한 'DNA 감식시료채취 영장 발부 위헌확인 등'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조지훈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장)가 집필하였습니다. 이번 결정은 그동안 DNA법의 위헌성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일정 부분을 수용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삭제조항의 문제, 절차에서의 투명성, 용도제한성의 통제장치 부족 등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 있어 이에 대해서도 살펴봤습니다.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DNA감식시료채취 영장 발부 위헌확인 등

(별칭 : DNA감식시료채취 영장 발부 절차 사건) 2016헌마344, 2017헌바630(병합) 결정

재판장 이진성 재판관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유남석 

 

조지훈(민변_디지털정보위원장).jpg

조지훈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장

 

 

강력범죄수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작된 국가의 DNA 채취, 그리고 헌재의 합헌 결정

 

국회는 2010. 1. 25. 강력범죄에 대한 신속한 범인 특정·검거, 무고한 용의자 조기 배제, 재범방지 효과 등을 입법목적으로 하여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디엔에이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관하여, 국가가 시민들의 DNA 정보를 체계적·조직적으로 축적하여 관리·운영하는 것 자체가 개인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조두순 아동 성폭행 사건(2008년)과 강호순 여성 연쇄살인사건(2009년) 등의 강력범죄로 인한 영향으로 결국 입법으로까지 이어졌다.

 

디엔에이법 시행 이후 이 법률 자체의 내용과 이 법에 근거한 DNA 채취행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으로 여러 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⑴ 디엔에이법 제8조 제1항의 DNA 채취영장조항은 헌법상 영장주의를 구체화한 조항이 뿐이고, ⑵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 대상범죄는 재범의 위험성이 높아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수록·관리할 필요성이 높고 제한되는 신체의 자유의 정도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정도의 미약한 것으로 과도하게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⑶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수형인등이 사망할 때까지 관리하여 범죄 수사 및 예방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디엔에이법 제13조 3항의 삭제조항은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고, ⑷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범죄수사에 이용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의 중요성에 비하여 청구인의 불이익이 크다고 보기 어려워 위 삭제조항이 과도하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며, ⑸ 법률시행당시 이미 형이 확정되어 수용 중인 사람에 대한 DNA 채취도 법률의 소급적용으로 인한 공익적 목적이 당사자의 손실보다 더 크므로 소급입법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위헌여부가 문제된 쟁점 전부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내렸다[헌법재판소 2014. 8. 28. 2011헌마28·106·141·156·326, 2013헌마215·360(병합) 결정].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중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 대상범죄는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는 헌법재판소의 평가는 유독 눈에 띈다. 디엔에이법 제5조 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DNA 채취 대상 범죄는 18개 항목 80개가 넘는 범죄를 망라하고 있는데, 이 모든 범죄는 그 범죄유형 자체만으로 재범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가 DNA를 채취·축적·관리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재범위 위험성’은 범죄행위의 유형이 아닌 개별 범죄자의 구체적 요인들을 근거로 판단한다는 형사법의 기본개념하고도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이 강력범죄수사를 위한 DNA 채취 대상?

 

2014년 합헙결정에도 불구하고 디엔에이법은 DNA 채취의 대상이 된 시민들이 직접 현장에서 겪는 인권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기에 이에 대한 헌법소원이 계속 제기되었다. 특히 파업에 참가한 노동조합원들이 공장점거 등을 하는 경우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주거침입)죄가 적용될 수 있는데, 디엔이법 제5조 1항 6호는 이에 대해서도 DNA 채취 대상범죄로 정하고 있다.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을 매우 협소하게 인정하기에 합법적인 파업을 하기가 어려운 제도적인 환경 속에서, 파업행위의 전형적인 행위인 공장점거나 사업장출입행위가 폭처법위반이라는 형사범죄에 해당한다는 것도 모자라, 국가가 DNA를 채취하여 관리할 수 있는 ‘강력범죄’로 정해놓은 것이다.

 

노조원들이 DNA 채취 대상이라고 통지받고 이에 동의하지 않자 검사는 영장을 발부받아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DNA감식시료를 강제채취하였다. 노조원들은 이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최근 판결에서 디엔이법 제8조(DNA 채취영장 조항)가 아무런 불복절차 등을 규정하지 않고 있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므로 과잉금지원칙 위반(침해의 최소성 원칙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2019. 12. 13. 시한 잠정적용)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8. 8. 30. 2016헌마344, 2017헌바630(병합) 결정]. 즉 ‘디엔에이감식시료의 채취대상자가 영장 발부 과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고, 디엔에이감식시료채취영장이 집행되기 전에 그 영장 발부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집행된 이후에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구제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디엔이법의 위헌성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일정 부분을 수용한 것이다.

 

디엔이법에 대한 계속적인 기본권 침해 문제 제기 필요

 

현행 디엔이법은 DNA 채취 대상범죄가 포괄적으로 망라되어 있는 점, 국가가 채취대상자가 사망할 때까지 DNA신원확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는 점(이른바 삭제조항의 문제), 재범의 위험성에 대한 명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점, DNA신원확인정보의 관리·운영·조회 등의 절차에서의 투명성과 용도제한성의 통제장치가 부족하다는 점 등에 있어서 여전히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후 진행될 디엔에이법 개정 과정에 제도보완과 인권보장을 위한 충분한 의견수렴, 그리고 시민들의 DNA 정보를 강력범죄수사라는 명목으로 대규모로 집적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월, 2018/10/0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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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네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8년 4월 26일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하태훈 교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집필하였습니다.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의 30년 역사에서 인신구속에 관한 형사소송법에 대한 첫 번째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그 의미가 큽니다. 특히 2020. 3. 31.을 시한으로 법률을 개정할 것을 주문한 만큼 앞으로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할지에 대해서도 잘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으로 위헌 소지가 있는 형사소송법 다른 조항에 대해서도 살펴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③]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④]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 위헌제청 / 2015헌바370, 2016헌가7(병합)

※ 2013 철도 집행부 체포를 위한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관련

재판장 이진성 재판관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유남석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공동대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피의자가 있을 개연성이 높은 건물에 피의자 체포를 위해서 별도의 압수수색영장 없이 함부로 들어가도 되는가. 소위 긴급압수수색으로서 영장주의의 예외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압수수색영장 없이 피의자를 수색하는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이 정당한 공무집행인가. 현행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은 영장에 의한 체포(제200조의2), 긴급체포(제200조의3), 구속(제201조), 현행범인의 체포(제212조)의 경우에 필요한 때에는 영장 없이 타인의 주거나 타인이 간수하는 가옥, 건조물, 항공기, 선차 내에서의 피의자 수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영장주의의 예외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체포영장만으로 건물에 들어가 피의자를 수색하는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은 위헌적이고 불법이다. 제216조 제1항 중 영장에 의한 체포(제200조의2)의 경우에는 따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가 타인의 주거 등에 소재할 개연성은 소명되나, 수색에 앞서 영장을 발부받기 어려운 긴급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영장 없이 피의자 수색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헌법 제16조의 영장주의 예외 요건을 벗어난 것으로서 영장주의에 위반되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한국철도공사가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김○환 등 집행부가 벌인 대정부 파업에 대해서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하였는데,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이 피의자 등이 경향신문사 건물 내에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실에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하여 건물 1층 로비 출입구와 민주노총 사무실 출입문을 부수고 수색하였으나 이들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체포영장 집행을 위한 피의자 수색 과정에서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에 관한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청구인이 항소심 계속 중 위 체포영장 집행을 위한 피의자 수색의 근거가 된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 제1호 중 제200조의2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으나 그 신청이 기각되자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제청신청인도 위 혐의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는데, 항소심 계속 중 위 체포영장 집행을 위한 피의자 수색의 근거가 된 위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것이다.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답게 좁고 엄격해야

 

제216조 제1항에 열거된 영장 없는 강제처분이 허용되는 긴급체포나 현행범인체포는 ‘필요성’뿐만 아니라 당연히 ‘긴급성’이 전제된 경우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면 피의자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그가 소재한 곳을 영장 없이 수색해야 할 긴급성이 있다. 이에 반해서 체포영장에 의한 피의자 체포의 경우에 언제나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을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216조 제1항의 4가지 유형 중 긴급체포와 현행범인의 체포는 긴급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장에 의한 체포와 구속과는 성질을 달리한다.

 

헌법은 인신구속에 관한 영장주의의 예외를 인정(제12조 제3항 단서)하고 있다. 그러나 제16조는 주거보장을 규정하면서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의 경우에 영장주의를 천명하고 있지만 예외를 두고 있지 않다. 영장주의 원칙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인신구속에 관한 영장주의의 예외가 인정되기 보다는 주거에 대한 영장주의의 예외가 인정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그러나 헌법은 거꾸로다. 주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주의의 예외는 헌법이 아니라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긴급압수수색이 바로 그것이다.

 

예외는 예외다워야 한다. 헌법에는 없는데 형사소송법에 예외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예외규정은 엄격하게, 영장주의 원칙의 취지가 몰각되지 않도록 좁게 규정되었어야 하고, 해석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긴급을 요하는 경우란 판사의 명령을 받는다면 지체로 인하여 압수수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위험성이 있는 경우다. 단순한 추측 또는 조사에 대한 위험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실에 근거한 특별한 상황의 존재로 인하여 증거가 인멸될 것으로 보이는 급박한 상황에 인정되는 것이다. 

 

 

인신의 자유보호의 최후 보루다운 헌재결정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 최후보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동안 900건이 넘는 위헌결정이 있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헌법 해석의 권한으로 국민의 권리를 지켜낸 대단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입법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못했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물론 형사소송법처럼 1950년대에 제정된 법이라면 당사의 인권의식에 비추어 면책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제야 위헌적 규정이 발견되어졌다는 것은 형사법 학자와 법률가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인권감수성이 높은 법률가가 많아지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확대되고 보장되는 판결과 결정들이 많아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30년 역사에서 인신구속에 관한 형사소송법에 대한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은 처음이다. 헌법 제16조는 제12조 제3항과는 달리 예외에 관한 명문이 없는데도 적극적 해석을 했다는 점과 헌법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의 영장에 의한 체포(제200조의2) 부분은 위헌이지만 2020. 3.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이 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하고 합헌적인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할 것을 주문하였다. 덧붙인다면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에서 위헌결정을 받은 제200조의1과 마찬가지 근거로 제201조(구속)도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면 피의자 수색을 위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금, 2018/10/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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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다섯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8년 8월 30일 일부위헌으로 결정한 민주화보상 제18조 제2항(과거사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 간주’ 사건)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이상희 변호사(참여연대 공익제보자지원센터 실행위원)가 집필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나 조작의혹사건은 일반적인 손해배상청구권과 다른 특수성이 있으므로 그에 대해 소멸시효에 관한 일반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습니다. 뒤늦게나마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무리한 법해석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결정이지만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였다는 점 등 아쉬운 지점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 장철준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 이종수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③]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 조지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④]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 하태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⑤]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 이상희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2항 위헌소원

(별칭 : 과거사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 간주’ 사건). 2014헌바180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유남석

 

이상희.JPG

이상희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의 문제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진성 소장이 퇴임을 앞두고, 사법 농단 의혹이 있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확정된 과거사 판결에 대해 위헌 여부를 선고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 그들 중에는 1980년대 초반 노조 활동으로 해고되어 노동운동에 헌신하다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사망한 여동생 A를 위해서 국가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묻겠다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소멸시효로 패소한 오빠도 있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제대로 취업도 못하고 평생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다가 나중에 진상규명이 되어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민주화보상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을 받은 피해자 B도 있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6월 30일 동일방직, 청계피복, 원풍모방, 서통노조, 태창섬유노조, 남화전자 노조 등에 대한 노동기본권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노동조합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조합원들의 해고를 지시하여 노동조합을 와해시켰으며 블랙리스트의 형태로 해고 노동자의 명단을 관리하고 배포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일부 피해자들이 먼저 소송을 제기하여 국가배상판결을 받았다. A의 유족과 B는 늦게 연락을 받고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이 있은 지 2년이 지나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같은 사건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판결을 받은 선례가 있었기에 A의 유족과 B는 1심에서 당연히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를 부인하거나 소멸시효를 주장하면서 책임을 부인하였고, 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를 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항소심도 당연히 승소할 거라고 생각했다. 항소심 법원(서울고등법원)은2013. 5. 10. 첫 변론기일을 진행하면서 바로 그 날 변론을 종결하고 2013. 7. 12.로 판결선고기일을 지정하였다. B는 2006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이라고 함)에 따라서 생활지원금을 받았다. 다른 소송에서는 국가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에 따라서 소각하 주장을 하였는데, 이 사건에서는 국가가 그런 주장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재판부가 갑자기 이미 지정한 선고기일을 취소하더니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선고기일을 지정하지 않은 것이다.

 

B가 위암 투병 중에 있어서 필자가 수시로 법원에 선고기일 지정요청을 하였으나 소용 없었다. 그 사이 대법원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생활지원금 등의 보상금을 받았다면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손해배상청구등 그가 보상금을 지급받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고 손해배상청구를 각하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15. 1. 22. 선고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 / 관련 판결비평은 http://bit.ly/2CjkcYn 참조). 서울고등법원은 위 대법원 판결 이후 변론기일을 다시 지정하더니 국가에게 재판상 화해규정에 따른 항변할 기회를 준 다음 2015. 12. 18. B청구에 대하여 각하 판결을 하였다. 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기 위해 1년 6개월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선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판 내용만큼이나 재판절차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의문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2018. 5. 25.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조금이나마 밝혀졌다. 위 조사보고서에서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 체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 중 하나로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과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에서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한 것을 들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소멸시효를 제한한 판결과 위 대법원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었다. 즉, 양승태 체제의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협력하기 위하여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기 위하여 위 판결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 하에, 대법원은 1심에서 승소하여 서울고등법원에 올라온 B 사건에 대하여 선고를 연기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서울고등법원이 1년 6개월 이상 선고기일을 미룬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민주화보상 제18조 제2항에 대하여 일부위헌 결정을 하였다.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위자료)배상청구까지 재판상 화해로 보아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일반적으로 적극적·소극적·정신적 손해에 대한 청구로 분류되는데, 민주화보상법 상 보상금 등의 지급대상과 그 유형별 지급액 산정기준 등에 의하면 보상금은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상응하지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청구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마저 금지한 것은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 것이고,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제2문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으로서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뒤늦게나마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무리한 법해석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B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B는 민주화보상금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공권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운영에 위법하게 개입하였는지 알지 못했다. 민주화보상법의 입법취지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희생된 사람과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명예회복과 보상을 하여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공권력의 위법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은 위원회의 업무가 아니었다. ‘블랙리스트’에 대하여 유령처럼 떠도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원고의 블랙리스트를 공권력이 작성·운영하여 B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였다는 사실은 2010년 6월 30일이 되어서야 규명되었다. 

 

유엔은 2005. 12. 16.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에 따라서 이미 인정되고 있는 피해자의 권리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법적 의무를 한데 모은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이하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는데, 피해자의 권리를 정의·배상·진실에 대한 권리로 규정하였다. 사실의 인정과 진상규명, 법적 배상은 이러한 권리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다. 피해자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통해 공권력의 위법성에 대하여 법적판단을 받고 배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의·배상·진실에 대한 권리의 실현을 위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배상청구의 핵심은 ‘공무집행의 위법성’과 이에 대한 국가의 법적책임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국가배상청구가 갖는 의미와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민주화보상법 제2조 제1호 정의규정("민주화운동"이란 1964년 3월 24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 및 가치의 실현과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을 통하여 보상의 대상이 되는 행위의 불법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였다”고 보고 보상금 수령을 통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까지 일부 면책된다는 취지로 결정하였다. 법원이 공권력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고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권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판사블랙리스트를 통해 국가범죄를 반복하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판결비평은 <오마이뉴스><슬로우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화, 2018/10/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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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여섯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2년 12월 27일 합헌으로 결정한 구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등에 관한 법률 부칙 제2조 제1항 위헌제청 (“전자발찌”소급적용 사건)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서보학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가 집필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전자발찌 부착명령’의 소급적용을 매우 폭넓게 허용한 전자장치부착법 부칙 제2조 제1항에 대해 전통적 의미의 형벌과 구분되는 보안처분이며 보안처분에는 형벌불소급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을 충족함으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려습니다. 이번 판결비평에서는 헌재가 결정한 합헌 논리가 타당한지에 대해 따져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 장철준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 이종수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③]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 조지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④]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 하태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⑤]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 이상희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⑥] 국가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둔감한 헌재 / 서보학

국가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둔감한 헌재

구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등에 관한 법률 부칙 제2조 제1항 위헌제청

(별칭 : “전자발찌”소급적용 사건) 2010헌가82, 2011헌바393 병합

재판장 이강국 재판관 송두환 박한철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보학(경희대_법학전문대학원).jpg

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문제가 된 구 전자장치부착법 부칙 제2조 제1항은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국가통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전자장치(통칭 전자발찌) 부착명령’의 소급적용을 매우 폭넓게 허용하였다.

즉 전자발찌의 소급부착을 (i) 유죄 선고가 확정되어 형 집행 중에 있는 자 및 심지어 (ii) 출소 후 3년이 경과하지 않은 형 집행 종료자에 대해서까지 허용하였다. 이 조항의 위헌성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i) 전자장치부착 명령은 전통적 의미의 형벌과 구분되는 보안처분이며 보안처분에는 형벌불소급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ii) 성폭력범죄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를 방위하기 위한 목적의 전자발찌는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며 중대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법익균형성원칙에도 합치된다.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을 충족한다는 것이었다. 아래에서 과연 헌재 결정의 합헌 논리가 타당한지 따져보자.

 

 

첫째, 전자발찌는 보안처분인가

 

일반적으로 형벌은 과거의 행위책임을 근거로 부과되는 제재이고 보안처분은 재범가능성이라는 미래의 위험성 때문에 부과되는 제재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대법원 2009.5.14. 선고 2009도1947, 2009도5 판결)은 전자발찌를 보안처분의 일종으로 보고 있으나 형법은 전자발찌의 법적 성격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생각건대 전자발찌의 법적 성격은 부과근거 및 제재효과를 근거로 실질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전자감시가 가석방시 보호관찰과 결합된 중간제재의 형태나 경미한 범죄에 대한 대체제재로 도입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자장치부착은 가석방과 집행유예시 보호관찰과 결부시키는 유형보다는 형집행 종료 후 피처분자의 감시와 통제를 위한 목적에 중점을 두고 도입되었다. 특히 징역형 종료 후의 전자장치부착은 최대 30년의 기간 동안 부착을 명할 수 있고, 여기에 준수·제한사항까지 부과할 수 있어, 비록 자유의 완전한 박탈은 아닐지라도 그 어떤 형사제재보다도 강력하고 가혹한 제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전자장치부착이 일정한 준수·제한사항과 결합될 경우 피부착자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거주이전의 자유에 중대한 제한을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전자장치부착은 그 자체로서 이미 형벌이거나 형벌과 함께 제재의 효과를 더욱 가중시키는 목적을 가진 부수형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자장치부착제도의 법적 성격은 보안처분이 아니거나 적어도 순수한 보안처분이 될 수 없다. 앞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전부위헌의 입장에 섰던 재판관(송두환)의 견해도 이점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전자장치부착의 제재를 부과하는 목적과 의도, 전자장치부착으로 인하여 그 대상자에게 미치는 실제적 효과 등에 비추어 보면, 전자장치부착은 형벌에 못지않은, 강한 ‘형벌적 성격’을 가진 형사상 제재이므로, 전자장치부착이 형벌적 성격을 갖는 이상, 일정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전자장치부착을 명하기 위해서는 그 범행 당시에 이미 전자장치 부착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제정, 시행되고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 전자발찌의 법적 성격이 순수한 보안처분이 될 수 없고 실질적인 형벌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형사제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 당연히 소급효금지 원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둘째, 설혹 전자발찌를 보안처분으로 보더라도 소급적용을 허용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과거의 행위책임을 근거로 부과되는 형벌은 소급적용이 엄격하게 금지되나 행위자의 위험성을 근거로 장래의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를 방위하기 위해 부과되는 보안처분은 그러한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형벌과 구별되는 보안처분에도 소급효금지 원칙이 적용되는가에 관해서는 학설상 다툼이 있고 각국의 입법례도 다르다. 형사법학계의 다수설은 보안처분이 기본권의 제한·침해의 정도에 있어서 형벌 못지않은 불이익의 실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안처분에 대하여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면 형벌불소급원칙의 의의가 상실될 우려가 있으므로 당연히 보안처분의 소급 적용은 금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형법은 일부 보안처분의 소급적용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오스트리아 형법은 이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생각건대 법치국가 형법에서 소급효금지 원칙이 인정되는 근거는 단순한 책임원칙의 준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질서에 대한 시민의 예견과 신뢰를 보호하고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침해를 방지함으로써 법적 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소급효금지 원칙의 근본적 의미와 목적은 국가권력의 구속과 제한에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 보안처분은 명칭에 있어서만 일반 형벌과 다를 뿐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실제 제재의 효과에 있어서는 형벌과 아무런 차이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독일 형법학계에서는 보안처분이 명칭만 다를 뿐 실질에 있어서는 형벌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형사제재가 보안처분이라는 미명하에 법치국가적 제한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이는 ‘명칭사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가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사실상 형벌과 다름없는 제재수단인 보안처분이 사후에 만들어져 소급 적용되거나 피처분자에게 사후적으로 불리하게 변경되어 적용된다면 시민의 권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침해당하고 그로 인해 법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당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국가의 형사제재수단인 보안처분도 소급효금지 원칙의 적용대상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에 합치되는지

 

전자발찌의 소급 적용은 입법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그리고 법익균형성의 관점에서 비례성의 원칙에 반한다. (i) 국가가 이미 자신의 죗값을 정당하게 치룬 사람들을 부당하게 희생시켜 사회방위라는 공익목적을 추구하려는 부칙 제2조 제1항의 입법목적은, 시민 개개인을 목적으로 존중하고 개인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현행 헌법질서에 의해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 (ii) 전자발찌의 부착은 피처분자의 감시와 처벌에 중점이 놓여 있기 때문에 ‘재범방지’와 ‘성행교정을 통한 재사회화’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iii) 형이 확정되어 형의 집행 중에 있거나 형 집행의 종료로 이미 죗값을 치룬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호관찰이나 치료프로그램 등 보다 덜 침해적인 수단을 선택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가장 중한 제재수단일 뿐만 아니라 재사회화의 효과도 불분명한 전자발찌를 부착하도록 명령하는 것은 ‘피해의 최소성’ 요구에 반한다. (iv) 전자발찌를 소급하여 부착하는 경우 재범방지라는 공익에 비해 피부착자가 입는 피해(정상인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신뢰에 대한 침해, 직업선택의 자유 및 거주이전의 자유 등에 대한 중대한 제약, 그로 인한 재사회화의 어려움 등)가 매우 중대하여 공익과의 균형성을 유지할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강력범죄, 특히 성폭력범죄에 대한 강력대응의 일환으로 전통적 의미의 형벌과 보안처분의 성격을 벗어난 다양한 종류의 형사제재가 도입되고 있고 그 적용에 있어서도 소급효금지 및 과잉침해금지의 한계를 벗어나는 예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형사제재는 피처분자의 생명 또는 자유의 박탈 및 제한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시민의 인권 및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에 의한 형사제재의 부과는 인권 및 법적 안정성의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의 기본가치질서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을 확인하고 지켜야 할 헌법재판소가 국가 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매우 둔감함을 드러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가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라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결정이었다. 6기 헌법재판소의 각성을 기대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판결비평은 <오마이뉴스><슬로우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화, 2018/10/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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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여덟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4년 12월 19일에 내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비평을 한상희 교수가 집필하였습니다. 이번 결정은 대법원조차 부정하였던 R.O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 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외국의 사례와 함께 우리헌법에 위헌정당해산제도가 들어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 장철준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 이종수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③]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 조지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④]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 하태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⑤]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 이상희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⑥] 국가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둔감한 헌재 / 서보학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⑦] 패킷감청의 헌법불합치 결정, 정보 및 수사 권력 통제엔 미흡 / 오동석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⑧]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헌법재판소가 만든 또 하나의 “과거사”/ 한상희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 헌법재판소가 만든 또 하나의 “과거사”

통합진보당 해산 (별칭 :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 / 사건번호 : 2013헌다1

재판장 박한철 재판관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정당의 무덤.”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26개의 정당을 해산시킨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러던 터키조차 유럽연합 가입을 모색하던 2008년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며 원대 최대 다수의석을 확보하였던 정의개발당(AKP)에 대해, 해산이라는 극단적 방식 대신 국고지원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그 “위헌성”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선회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학살을 단행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박근혜정부가 최대의 권력을 휘두르던 2014. 12. 19. 헌법재판소는 장장 254페이지(헌재판례집 기준)나 되는 결정문을 통해 “대한민국 체제를 파괴하려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와 민주주의의 다원성 보장이라는 사회적 이익”을 위하여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을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 강제해산시키는 한편, 그 소속 국회의원 5명에 대하여 의원직을 박탈하였다. 독재의 길을 치닫던 이승만정권이 1958년 강력한 정적이었던 조봉암을 사법살인하고 그의 진보당을 강제해산시킨 바로 그 시절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이미 정해놓은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 한 헌법재판소

 

이 결정의 요체는 “주도세력” “퍼즐 맞추기” “숨겨진 목적”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에 있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수만 명의 당원과 함께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합법적 정당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진보적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세우던 주도세력들의 “이념적 성향 및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 주도세력으로 30여명을 선별한다. 하지만 그 주도세력들은 통합진보당의 창당이나 활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아니라 “숨겨진 목적”을 찾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택된다. 그리고는 이들의 발언이나 활동들을 하나하나 조각내어 전체의 큰 그림에 맞추어 나간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구두변론과정에서 정부 측 참고인이 말하였던 “퍼즐 맞추기”가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순간이다. 큰 그림을 먼저 정해놓고 이를 퍼즐조각으로 이리저리 잘라낸 뒤 다시 그 큰 그림을 짜 맞추는 “퍼즐 맞추기” - 그것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이후 선동으로 바뀌었다)사건에서 대법원조차 부정하였던 R.O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 하였던 헌법재판소의 이 장장한 결정문에 대한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판단 또한 마찬가지다. 정당을 강제해산하기 위해서는 그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주도세력”이 말했던 저항권이나 민중주권론을 언급하고 어떤 당원이 개인적으로 거론했던 식민지반자본주의론까지도 끌어들여 혁명론과 연계시켰다. 그리고는 이런 임기응변식의 짜 맞추기 논법을 통해 통합민주당의 “숨겨진 목적”은 북한의 그것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는, “발가락이 닮았다”는 식의 어정쩡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통합진보당이 폭력성의 혁명을 추구하였기에 위험하다는 논법이 아니라, 그를 해산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그 위험성이 있어 보이는 발언들을 추려내어 보니 이런 저런 발언들이 있었고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이 순환논법이다. 

 

현실이 되어 버린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 결정이 내세운 비례성판단 또한 흠투성이다. 정당해산은 어쩌지 못하는 최후의 순간에 비로소 가능한 조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장이 적절하게 작동함으로써 그 정당의 정치적 위험성을 상당부분 견제할 수 있다”면 그에 맡겨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 원칙을 과감하게 저버린다. 범죄행각이 드러나기도 전에 그 씨앗을 제거해버리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처럼 헌법재판소는 “예방적” 조치를 주도함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사회에서 헌법재판소는 시민들이 판단하고 시민들이 행동할 수 있는 공론의 장 자체를 무시하고 배제해 버린 셈이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저 정당학살자 터키 헌법재판소조차도 정당해산을 이유로 소속 의원들의 자격을 획일적으로 내치지는 않는다. 그 의원들이 정당의 위헌적 활동에 얼마나 개입했는지의 정도를 별도로 심사해서 그 자격여부를 심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해산결정의 취지와 목적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에 대해 가차 없는 징벌을 가하였다. 입법자인 국회가 법률로써 정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법률이 없으면 그 의원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입법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법정의견에 대해 유일한 반대의견을 내었던 김이수 재판관은 “경미한 오류들이 축적되어 거대한 논리적 비약을 만들어 내고, 혹여 그에 기초하여 정당해산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매우 불행한 일이다.”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 말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우리 정치사는 진행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체제는 “점진적 쿠데타” 내지는 “연성쿠데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통치술을 구사하고 급기야는 촛불시민의 분노와 압박에 밀려 바로 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결국 이 사건은 박근혜정권이 구사한 회심의 일격이자 동시에 아주 처참한 자충수였고 말 그대로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매우 불행한 일”로 기록된다. 

 

실제 우리 헌법에서 위헌정당해산제도가 들어오게 된 것은 4·19민주혁명 이후의 제3차개헌을 통해서였다. 그것은 이승만의 독재체제에서 진보당이 강제해산 된 전례를 반성한 결과였다. 정당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결사의 자유보다 더 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신나치주의의 발호를 막기 위하여 혹은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국가사회주의당이나 독일공산당을 해산시킨 독일의 경우라든가 혹은 아타투르크의 혁명이념을 전승하기 위하여 분리주의정당이나 이슬람정당을 해산시킨 터키 등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다. 독일식 방어적 민주주의를 앞세워 ‘나쁜’ 정당을 해산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다양성에 터 잡은 민주주의체제를 위하여 ‘나쁜’ 정당이라도 특별히 보호하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이런 헌법적 결단을 너무도 무뢰하게 저버리고 말았다. 

 

한국 민주주의를 해산하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심판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우리 헌법 그 자체였다는 비판도 가능해진다. 이 결정은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는 구태의연한 법률속담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 결정문의 도입부는 “입헌적 민주주의”라든가 “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와 관련하여 거창한 헌법이론이나 장밋빛 정치지형들을 그려낸다. 그에 의하면 어떤 사유에서도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어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정작 통합진보당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각론은 이런 총론을 과감하게 배신 한다: 사실관계에 대한 자의적인 선별작업과 그 의미에 대한 지레짐작과 자의적인 유추해석, 짜 맞추기에 충실하였던 논증,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서의 해산결정.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낭독한 이 결정의 주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는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해산한다.”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2014년 12월 19일은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정사에 남겨둔 또 하나의 과거사가 되어 내내 회자될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판결비평은 <오마이뉴스>와 <슬로우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목, 2018/11/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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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blockquote> <p>해방 직후의 어두운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유독 '법'의 얼굴을 쓰고 자행된 국가 폭력이 많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과거사들을 마주하는데 있어서 오늘날의 법원이 보여야할 태도는 무엇일까요.</p> <p>지난 1월 17일에 선고가 나온, 제주4·3사건 수형 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 재판은 어두운 과거사를 대하는 현대 사법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바가 많습니다. 법적근거나 절차가 불분명한 '군법회의'를 빌미로 무고한 제주도민들에게 내려진 70년 전의 유죄판결을 법원이 바로잡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이 되돌아봤습니다. </p> </blockquote> <p> </p> <h1>실체적 진실에 충실한 역사적 판결</h1> <h2>[광장에 나온 판결] 제주4·3사건 생존 수형자 18명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 제갈창 판사, 2017재고합4)</h2> <p> </p> <p><img alt=""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447/585/001/3826…; style="width:139px;height:183px;" /></p> <p><strong>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strong></p> <p> </p> <p>판결문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e5f1EfF2Lh-FxnK0wZzppqwmmRTIjFkJ&quot;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 / 다운로드]</a></p> <p> </p> <p>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는 2019년 1월 17일 ‘제주4·3군법회의’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사건(2017재고합4)에서 모두에게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재심 청구인들은 70여 년 만에 억울한 ‘전과자 낙인’을 지울 수 있었다. 판결문조차 없는 사건에 대해 재심개시 결정을 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거니와 공소기각 판결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선고 당일에 즉각 환영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는 이 판결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p> <p> </p> <p> </p> <p><strong>탄압, 항쟁, 그리고 대학살</strong></p> <p> </p> <p>이 사건 판결의 의미를 따져보기 위해 우선 ‘제주4·3’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국무총리소속 4·3위원회는 2003년 공식 보고서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p> <p> </p> <p>해방 직후부터 제주도 밖에서는 치열한 좌·우 이념대립 속에서 1946년 ‘대구 10월 사건’ 등 인명이 희생되는 큰 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제주도는 미군정청 공보관인 케리 대위가 신년사에서 “육지와 달리 불행한 소요사태가 없었다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제주신보』, 1947. 1. 1.)이라며 감사의 말을 할 정도로 평온했다.</p> <p> </p> <p>하지만 1947년 3·1절 기념식 때 다른 지방에서 온 응원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된 사건은 제주도를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뜨렸다. 경찰 발포에 항의해 대대적인 ‘민·관 총파업’이 벌어졌고, 이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며 검거 선풍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4·3무장봉기가 벌어질 때까지 1년간 무려 2,500명이 구금되었다. 그 무렵 미군 감찰반이 “제주도 유치장은 최악이다. 3.3평의 한 감방 안에 35명이 갇혀 있다”고 보고할 정도로 유치장은 차고 넘쳤다. 무장봉기 한 달 전인 1948년 3월에는 경찰에 의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탄압의 국면’이었다.</p> <p> </p> <p>그러자 ‘항쟁의 국면’이 펼쳐졌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경,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일제히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이를 신호로 약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내 경찰지서 12곳을 동시에 공격했다. 또한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 습격해 살해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조국의 통일독립”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무장대는 5·10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해 주민들을 산으로 올려 보냈다. 결국 제주도는 3개의 선거구 중 북제주군 갑구와 을구 2곳의 선거가 무산되었다.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의 2개 선거구만이 무효화된 것이다.</p> <p> </p> <p>곧이어 참혹한 ‘대학살의 국면’이 전개됐다. 군·경 토벌대는 ‘해안선에서 5㎞ 이외의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하라’는 명령과 함께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중산간마을을 불태웠고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였다. 특히 토벌대가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약 4개월 동안 벌인 이른바 ‘초토화작전’ 때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치른 희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을을 포위한 군인들은 다짜고짜 집집마다 불을 붙였고 불기운에 놀라 뛰어나오는 주민들을 70~80대 노인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p> <p> </p> <p>해변마을로 소개(疎開·강제 이주)한 사람들의 희생도 컸다. 토벌대는 가족 중에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며 수시로 학살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고통의 시간이 짧으니 그나마 괜찮은 경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토벌대는 걸핏하면 ‘무장대 지원 혐의’가 있다며 총질을 했다. 야수로 돌변한 토벌대에 의해 글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여성들의 수난도 컸다. 이러한 행위의 책임은 당시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었던 미군에게 있다.</p> <p> </p> <p>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살극이 재연됐다. 제주도내에서는 이른바 ‘예비검속’으로 1,000명 가량의 목숨이 희생됐고, 또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2,500여 명의 제주도민이 인민군에게 쫓기며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했다. 이처럼 7년 7개월간 벌어진 사건의 전개과정은 ‘탄압의 국면’, ‘항쟁의 국면’, 그리고 탄압이나 항쟁이라는 용어를 무색케 하는 엄청난 ‘대학살의 국면’이 중첩되면서 차례로 펼쳐졌다.</p> <p> </p> <p>이로써 4·3무장봉기 당시 무장대 숫자는 350명에 불과했으나, 희생자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 가량인 무려 3만 명에 이르렀다. 중산간마을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는 등 재산피해도 컸고, 육체적·정신적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p> <p> </p> <p> </p> <p><strong>4·3군법회의 수형인, ‘불법 계엄령’과 ‘유령의 국방경비법’에 의해 희생</strong></p> <p> </p> <p>그렇다면 이번 재심사건과 관련 있는 ‘4·3군법회의’는 무엇이며, 수형인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형무소에 감금됐던 것일까? 필자는 1988년부터 ‘제주4·3사건’에 대해 공부해오며 피해자 및 유족 약 7천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중에는 4·3군법회의 피해자들의 유족도 있었고, 구사일생 살아 돌아온 4·3군법회의 수형인도 있었는데 이들의 증언은 한결같았다.</p> <p> </p> <p>유족들은 “말이나 소에게 먹일 꼴 베러 들녘에 나간 아버지와 형이 지나가던 군인들에게 잡혀 트럭에 실려간 후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하던데 그 후 행방불명되었다”거나,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면 살려준다’는 삐라를 보고 내려왔는데 주정공장에 가뒀다가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수형인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갔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형인들이 6·25전쟁 전에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가 거의 유일한 근거였다. 엽서에는 형무소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p> <p> </p> <p>그러던 중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인 1999년 9월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4·3특위 부위원장 추미애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수형인명부를 발굴해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전모가 밝혀졌다. 같은 해 12월에는 재미학자 고(故) 이도영 박사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직후 대전형무소 등지에서 수형인들이 집단학살 당하는 사진과 문서를 찾아냄으로써 희생사실이 확인됐다. </p> <p> </p> <p><수형인명부>에는 ‘4·3군법회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2,530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4·3군법회의’라 함은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 등 두 차례에 걸쳐 마치 열렸던 것처럼 허위로 자료에 기재된 군법회의를 가리킨다.</p> <p> </p> <p>1948년 12월의 제1차 군법회의 때는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여서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일제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적용했다. ‘4·3계엄령’은 헌법의 규정과 달리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선포되었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는 1949년 6~7월에 열린 것처럼 <수형인명부>에 기재돼 있는데, 이때 끌려간 사람들은 1948년 가을 계엄령이 선포돼 무차별 학살극이 벌어지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을 에는 듯이 추운 겨울에 한라산 기슭으로 올라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1949년 3월경 “하산하면 죄를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소위 선무공작 삐라를 보고 내려온 피난민들이었다. </p> <p> </p> <p>그런데 제2차 군법회의 시기인 1949년 6월~7월은 계엄령이 해제된 때라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수 없었지만 무리하게 국방경비법을 적용했다. 국방경비법은 기본적으로 군법(軍法)이므로 대개의 조문은 “군인 및 군속으로서~”로 시작되는데, 제32조(소위 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만은 “여하한 자로서~”로 시작된다. 이를 근거로 군인 및 군속이 아님에도 민간인을 역시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제32조와 제33조를 적용해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이다.</p> <p> </p> <p>학살극을 피해 은신했다가 하산한 피난민들을 느닷없이 ‘이적죄’와 ‘간첩죄’ 혐의를 씌워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방경비법 자체가 제정 주체도 모호하고 법률 호수도 없는 유령법이라는 점이다. 일부 법령집에는 국방경비법이 ‘법률호수미상(法律號數未詳)’으로서, 1948년 7월 5일 ‘공포’됐고, 같은 해 8월 4일부터 ‘효력 발생’했다고 슬그머니 끼워놓았다. 그리고 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국방경비법을 제정한 것처럼 표기했다. 그러나 1946년 12월 12일 개원식을 가진 미군정기 조선과도입법의원은 1947년 5월 6일 제1호 법률(Public Act)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1948년 5월 19일 제12호 법률을 제정한 후 이튿날인 1948년 5월 20일 해산되었는데, 조선과도입법의원이 제정한 12개의 법률은 국방경비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국방경비법은 실체가 없는 유령법이고, 유령법이기에 법률 호수조차 없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서종철·김정무·전부일 등 제주 주둔군 장교들조차 “군법회의 없었다” 증언</strong></p> <p> </p> <p>백보 양보해 계엄령이 합법적으로 선포된 것이고, 국방경비법이 실제로 제정·공포된 법률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당시 군법회의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허구의 재판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수형인들이나 심지어 수형인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호송했던 경찰 출신들조차 “형무소에 도착하니 간수나 형무소장이 죄명과 형량을 알려주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p> <p> </p> <p>군법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증언은 피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제1차 군법회의가 열렸다는 1948년 12월 제주 주둔 제9연대 부연대장이었던 서종철(국방부장관·초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역임)은 “군법회의를 열었던 기억이 없다.”라고 증언했고, 제9연대 군수참모였던 김정무(준장 예편, 육사2기 동기회장 역임)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4·3위원회에 증언했다. 증언 내용은 모두 캠코더로 녹화했다. 제2차 군법회의 당시 제주 주둔 제2연대 1대대장이었던 전부일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증언했다. 무려 2,530명이 군법회의를 받았다고 하는데, 주둔군 간부들조차 부인하고 있는 건 군법회의가 허구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군법회의는 ‘구색 맞추기’…주둔군 교체기에 형무소로 보내</strong></p> <p> </p> <p>제9연대의 초기 작전은 주로 ‘무장대로 여겨지는 젊은 청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전개한 ‘초토화작전’ 때에는 젖먹이부터 노인,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무차별 총살했다. 그렇다면 이 때 왜 일부 젊은이들은 총살하지 않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냈는가? 젖먹이 아기와 노인들은 ‘죄질이 무거워’ 즉결총살했고, 젊은이들은 그 보다 죄가 가벼워 징역형을 선고해 형무소로 보냈다는 말인가? 젊은이의 ‘죄’가 젖먹이의 ‘죄’보다 가벼워 총살대신 징역형에 처했다는 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p> <p>이는 ‘구색 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군법회의가 구색 맞추기임을 증명해줄 구체적인 사료는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런 자료가 있다 해도 비밀해제 되지 않았거나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식에 비춰 구색 맞추기 외에 다른 설명은 불가능하다. </p> <p> </p> <p>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내졌던 것일까? 제1차 군법회의(1948년 12월) 수형인들은 대개 1948년 11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 여름철에 끌려간 사람들이다. 증언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들녘에 촐(꼴) 베러 갔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갔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이라 무차별 총격을 가하지 않을 때여서 9연대 군인들은 일단 청년들을 붙잡아 주둔지인 제주농업학교에 설치한 ‘천막 수용소’에 가뒀던 것이다. 그리고 1948년 12월말 제2연대와 교체하기 위해 제주를 떠나게 되자 천막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낸 것이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1949년 6~7월) 수형인들은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으로 숨었던 사람들이다. 1948년 가을부터 초토화작전이 벌어져 무차별 학살극이 본격화되자 주민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기슭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던 중 무장대 세력이 약화된 1949년 3월 이후, 토벌대는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전단지를 비행기로 살포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전단지를 본 후 나무에 옷가지를 매단 이른바 ‘백기(白旗)’를 들고 내려왔다. 이때 토벌대(제2연대)는 하산한 주민들을 일단 ‘주정공장’에 감금했다. 주정공장은 당시 가장 넓은 공간이어서 많은 주민들이 그곳에 수감됐다. 제2연대는 1949년 여름 제주에서 철수하게 되자 주정공장에 감금했던 사람 중 젊은이들을 전국의 형무소로 보냈다.</p> <p> </p> <p> </p> <p><strong>담당 변호사와 판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까닭</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에서 피고인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김세은 변호사에게 참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필자는 군법회의의 부당성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하고 글을 써 왔지만,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지고 무죄판결과 다름없는 공소기각 판결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죽기 전에 가슴 속에 묻어뒀던 한을 마지막으로 토로하는 자리쯤으로 생각했다. 두 변호사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여겼던 이 재심사건을 맡아 열정을 다해 헌신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p> <p>재심개시 결정을 내리고 이어 공소기각 판결을 한 제주지법 제갈창 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필자는 재심개시 결정 전에 임재성 변호사의 요청을 받아 소위 ‘전문가 증언’을 하였다. 변호사는 필자에게 “통상적으로 판사들은 전문가 증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20~30분이면 끝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갈창 판사는 정말로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 했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나중엔 마이크를 끈 채 질문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필자의 증언은 2시간이 넘게 진행됐다.</p> <p> </p> <p><수형인명부>에는 한 사람당 달랑 한 줄씩 이름, 본적지, 형량, 복형장소가 적혀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판결문은 없다. 판결문 등 재판기록이 있어야 원 판결이 잘못됐는지 여부를 따져 볼 수 있을 텐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재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그동안 ‘내가 본 자료’와 ‘내가 들은 증언’에 대해 법정에서 성실히 증언할 뿐이었다. 그런데 판사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아! 형식적인 재판이 아니구나!’라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p> <p> </p> <p>제갈창 판사는 4·3군법회의가 판결문조차 없지만, 군인들이 실질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했으므로 재판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4·3군법회의가 절차상 하자가 많고 검찰이 시간, 장소, 방법 등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심개시 결정과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실체적 진실에 따라 재심결정을 내렸고,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한 것은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다.</p> <p> </p> <p> </p> <p><strong>검찰의 결단도 높이 평가해야</strong></p> <p> </p> <p>검찰은 처음엔 공소사실을 진술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소장변경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추측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수형인명부에 적힌 대로 제1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겐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제2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게는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를 옮겨놓을 뿐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 피고인들이 형무소에 가서야 죄명과 형량을 간수나 형무소장으로부터 듣는 등 처음부터 ‘허구의 군법회의’였으므로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p> <p>그럼에도 검찰의 마지막 태도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검찰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은 무죄구형의 성격을 띤 ‘공소기각 요청’을 했고,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이번 재심사건은 1심 법원의 판결만으로 확정되었다. 이전 정부라면 검찰의 태도가 어땠을까? 만일 검찰이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또한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각각 불복해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최종 결과도 가늠하기 어렵거니와 수형인들의 맺힌 한은 어떻게 풀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정부가 적어도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묻지 않는다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수준에는 도달했다는 증거이다.</p> <p> </p> <p>지난 2월 7일 이번 재심사건 청구인 중 한 명인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인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이 난 지 불과 20여 일 지났을 때이다. 살아계실 때 확정판결이 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실감나는 소식이었다.</p> <p> </p> <p> </p> <p><strong>‘4·3특별법’ 개정해 군법회의 결과 무효화해야</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은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4·3특별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함을 웅변해 주고 있다. 개정안에는 ‘4·3군법회의 무효화’ 조항이 포함돼 있다. 4·3군법회의를 무효화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아 형무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지금까지 장수하면서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무죄’이고, 형무소에 수감 중 6·25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에게 학살당한 분들은 여전히 ‘유죄’로 남는 큰 불합리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p></div>
목, 2019/02/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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