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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의 정치란? 평범한 이웃을 위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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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의 정치란? 평범한 이웃을 위한 ‘도구’다

익명 (미확인) | 월, 2018/09/17- 10:28

지난달 25일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서 7선 이해찬 의원의 당대표 선출보다 더 주목받은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변호사’ ‘거리의 변호사’로 불렸던 초선 박주민 의원(45)이 1위(21.28%)로 최고위원에 선출된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놓고 당선된 박 의원의 선전을 놓고 ‘돌풍’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최고위원에 나왔을 때도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성향대로라면 민주당보다 진보 계열 정당을 택해야 했던 건 아닐까?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함께 물대포를 맞던 그가 국회의원이나 최고위원 욕심까지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반대로 그는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았다. ‘서울대 법대-사시 패스’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음에도 공익소송에 매달리고 추레한 몰골로 집회·시위 현장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왔고 사법시험도 붙어 변호사가 됐는데 왜 그렇게 사냐?”고 물었다. 자서전 성격의 대담집 <별종의 기원>에서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은 제가 희생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매우 욕심껏 살아왔다고 자평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욕심껏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철거민들과 구청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뒤 “내가 변호사였다면?”이라는 생각에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대부분 변호사가 되면 자신을 변호사란 존재와 등치시키지만, 나에게 변호사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직업적 도구”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가 제대로 진상규명되지 않고 묻혀버릴 것이 두려워 정치권 입문, 그것도 현실적 힘이 있는 민주당을 택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였지만, 국회의원도 최고위원도 어쩌면 그에게 목적이 아니라 도구에 불과했던 셈이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박 의원의 출마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주민 변호사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바로 밝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6가족협의회의 모든 가족들은 박주민 변호사를 반드시 국회의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은 작지만 확실한 희망을 국회에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칼럼_180917포커스뉴스
사진: 포커스뉴스

■ 탁월한 승부욕을 가진 소년

 

박주민 의원은 1973년 서울 성북구 삼선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할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이었다. 할아버지 퇴직 후 할머니가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 생후 백일도 안 돼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당시 그곳은 시골과 마찬가지였다. 논밭이나 들판에서 뛰놀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밥도 얻어먹고 해떨어지면 집에 들어가는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고 수업시간에도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2학년 때 ‘예쁜 짝꿍’에게 잘 보이려고 더 까불고 장난을 쳤다가 “공부 못하고 깡패 같은 애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에도 빠져들었다. 그 뒤로는 성적도 늘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중학교 졸업 후 그는 대원외고에 진학했다. 당시 높은 서울대 진학률로 이름을 높여가고 있던 학교였다. 나름 공부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첫 중간고사 때 같은 학년 700여 명 중 153등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마중 나오는 강남 출신의 학생들도 많았고 이미 영어나 수학을 2학년 과정까지 선행학습 한 이들도 많았다. 집에 과외를 시켜달라고 졸랐지만 과외가 금지됐던 시절이라 “공무원의 자식이 어떻게 과외를 하느냐”는 아버지의 핀잔만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무식하게 공부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책을 붙들고 앉았다. 외모에 신경을 쓰면 공부를 멀리할까봐 3년 내내 거울을 보지 않았다. 여학생에 빠질까봐 땅만 쳐다보며 다녔다. 수학여행 때도 단어장을 들고 다녔다. 너무 무리한 탓에 장염을 달고 살았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고3 때는 오히려 대입시험을 망쳤다.

재수를 거쳐 199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장사꾼 기질이 있다고 믿었던 그는 경영학과에 가려고 했다. 어렸을 때 동네 구리선을 모아다 고물상에 팔고, 그 돈으로 산 장난감을 돈을 받고 빌려주기도 했다. ‘돈 버는’ 센스는 있다고 생각했다. 점수가 너무 잘 나온 탓에 벌어놓은 점수가 아까워 법대에 갔다. 변호사가 되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자 그는 고교와 재수 시절을 많이 후회했다. 친구들과 사귀지도 못하고 공부에만 매달린 그 시절이 ‘흑역사’ 같았다. 대학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친절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대신문사에 들어갔고 자연스레 운동권 학생이 됐다. 학생운동이 쇠퇴기였긴 했지만 농촌, 공장, 빈민촌, 철거지역을 다니며 연대활동을 벌였다.

4학년 때 그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신도림동의 작은 철거촌에 연대 활동을 나갔던 때였다. 철거민들이 구청장 면담을 요청했고, 함께 구청을 찾아갔는데 일방적으로 막혔고 면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성탄절 전야, 하루 종일 내린 눈이 머리에 수북이 쌓이도록 기다렸지만 허탕을 쳤다.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 처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변호사였다면 구청장이 거부하지 못할 최소한의 주선이나 조력이 가능했을 거다. 기왕 사회운동을 계속할 거라면,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것도 괜찮을 거다.”

그는 군 제대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갔다. 성남에서 헌병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한 병사가 남긴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지갑(박주민 의원의 별명)은 모든 소대원들이 공평하게 근무하기를 원했다. 초소 환경이 좋은 곳을 고참들이 독점하는 시스템을 고치려 했다.”

군에서 전역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에도 그랬듯 목표를 정하면 거기에만 몰두하는 승부욕 덕에 1년 반 만에 시험에 통과했다. 어차피 공익 활동을 하는 변호사가 목표였기에, 사법연수원에서 시키는 공부는 거의 안 했다. 인권법학회 활동에만 몰두해 회장도 맡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나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하는 선배 변호사들을 자주 만났다. 성적표를 전달하러 온 연수원 교수에게 그가 “졸업은 가능한가?”를 묻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네 밑에 세 명은 있다.”

 

■ ‘거지갑’의 탄생

 

변호사 생활은 법무법인 한결에서 시작했다. 민변 계열 로펌이어서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원하는 공익적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민·형사 소송, 금융 관련 프로젝트나 법률 자문 보고서까지 가리지 않고 일했다. 능력도 인정받았고 돈도 잘 벌었다. 당시 로펌에 실무수습을 나왔던 연수원 2년차 시보를 ‘열심히 쫓아다닌’ 끝에 마음을 얻어 결혼도 했다. 그가 항상 ‘짝꿍’이라고 부르는 아내 강영구 변호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상근 변호사로 일한다.

6년차가 되자 책임감을 갖고 조직에 참여해야 하는 파트너 변호사가 되어야 할 시점이 왔다. 민변에서는 마침 상근직인 사무차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아내의 조언을 받고 고민 끝에 사표를 냈다.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변호사들과 함께 공익변론에 주력하려고 법무법인 이공을 만들었다.

맡았던 공익 사건은 굵직굵직한 것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가 <별종의 기원>에서 밝힌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는 사건만도 G20 쥐그림 사건, 밀양송전탑 관련 경찰의 통행방해 손해배상 청구사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고발,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위한 변론, 쌍용차 해고 무효 소송,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청구,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가들을 위한 변론 등 50건 가까이 된다.

주로 집회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표현의 자유’와 국가기관의 인권 침해 관련 소송에 열정을 쏟았다. 평생 1건도 어렵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4번이나 받아냈다. 헌법재판소에서 야간집회 금지 위헌 결정을 받아낸 순간과 백남기 농민 진압 규탄 민중총궐기 시위 금지에 대해 집행 정지를 받은 사건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민변에서는 3년 연속 ‘접견왕’이었다. 집회나 시위에서 연행된 이들을 접견하러 가는 일을 가장 많이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이런저런 통로로 쇄도하는 접견 요청에 귀찮아하지 않고 하루에 서너 군데도 다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다녔다. 하지만 “이상하게 힘들지 않고 보람차고 뿌듯했다”고 했다. 밖으로 떠돌면서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다녔다. 남루한 행색으로 커다란 백팩을 들쳐 메고 어디서나 드러누워 쪽잠을 자는 그에게 붙여진 ‘거지갑’이라는 별명은 이때부터 생겨날 운명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삶을 다시 한 번 뒤흔들어 놓았다. 참사 두 주 뒤부터 안산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다. 유가족들과 대면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는 곁에서 의자 갖다 놓고 음식 나르는 일부터 도우며 조용히 다가갔다. 가족들에게 그는 “배운 티 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중에는 가족들에게 “유가족보다 더 유가족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2015년 5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과 특조위를 무력화하려 하자 유가족들과 함께 거리 농성에 나섰는데, 그때 경찰의 진압방패에 둘러싸인 채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조는 모습은 그의 상징이 됐다.

‘세월호 변호사’로 2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에는 거의 수입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통한 정계 입문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그는 유가족들과 국회 처마에서 4개월 가까이 노숙을 했다. 국회는 가까운 화장실조차 마음 놓고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 ‘문턱’들이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에 불을 댕긴 것 같다. 입당 인사에서 그는 “높은 문턱을 통해 국민을 거부하는 정치는 국민과 동떨어진 정책을 만들어낸다”며 “문턱을 낮추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입당 기자회견 자리에 서기 2시간 전까지도 국회를 배회했다고 했다. ‘정치하려고 저런 거야’라는 말이 쏟아질 게 뻔했다. 그냥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약속’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입당 전 세월호 가족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당선되더라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보좌진 중 한 명에게 전담토록 하겠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주 일요일 가족 회의에 참여하겠다.” 사실 민주당은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입당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현실적으로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압승하면 당연히 ‘세월호 지우기’에 나설 게 뻔하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책임 있고 힘 있는 야당을 택했다.”

약속을 받고 간 건 아니지만 공천 마지막 날까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입당하자마자 ‘너는 얌전히 있어라’ ‘비례대표는 안 된다’ ‘운동권은 안 된다’ ‘당에 약한 고리가 될 것이다’ 같은 악담을 당내에서 쉴 새 없이 들어야 했다. 민주당은 저울질 끝에 겨우 은평갑에 그를 공천했다. 뒤늦게 시작한 선거운동이었지만 그는 서울대 법대,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할 정도로 숫기가 없었다. 총선은 불과 24일 남았다. 명함에서 ‘대원외고’를 빼자고 했다가 ‘스펙’ 빼면 뭐로 승부할거냐는 핀잔을 받고 겨우 말을 삼켰다. 플래카드에 있는 ‘세월호 가족대책협의회 법률대리인’ 이력이 선거에 도움이 안 되니 빼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고 세월호 추모 뱃지도 떼고 인형탈까지 쓰면서 선거운동을 물심양면 도왔다.

신기하게도 가장 늦게 출발한 캠프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박 의원은 “(세월호) 아이들이 도와준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공천에 탈락한 이미경 의원은 선거조직과 사무실을 물려줬다. 김신호 국민의당 후보와 서울 지역 최초로 단일화도 이뤄냈다. 그렇게 그는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득표로 당선됐다. 국회의원이 되고 첫 일정은 안산 세월호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하고 유가족들과 만나는 일이었다. 1호 법안 발의는 ‘세월호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었다. ‘사회적참사특별법’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부터 본회의 통과까지도 힘썼다.

 

■ 평범한 이웃을 위해 정치한다

 

박주민 의원은 국회에 입성한 뒤 6월4일 현재 본회의에 100% 출석했고, 상임위는 149번 중 147번 출석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회의에 빠지는 의원들도 많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 법안 발의는 9월11일 현재 107건으로 상위권이다. 의원실 벽면은 A4 크기로 축소한 포스터 91장으로 빼곡하다. 모두 박 의원이 주최하거나 참석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노숙’에 대비해 백팩에 치약·칫솔, 물티슈, 휴지 따위를 챙겨 다녔다. 때로는 세월호 가족들과 때로는 백남기 농민이 누워있는 서울대 병원에서 밤을 지샜다. 첫해 정치후원금을 모금하자 나흘 만에 1억5000만원의 한도액이 가득찼다. 이듬해에는 40시간 만에 꽉 채웠다. 10만원의 소액 후원금이 상당수였다. 그 후원금 사용 내역은 179페이지에 10원 단위까지 적어 제출했다.

하루에 10~12개의 일정이 빼곡하다. 법안 발의에 각종 집회나 토론회 참석, 강연과 방송 출연, 지역구 민원 해결과 행사 참여까지. 옷깃에는 국회의원 배지 외에도 세월호, 4·3 사건, 청소년 참정권 관련 배지가 달려 있다. 손목에도 각종 팔찌가 주렁주렁하다. 주황색은 스텔라데이지호, 노란색 두 개는 세월호 가족과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이 줬다고 한다. 청년 기본법 제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좌우명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1cm라도 돌리고 죽자”라고 한다.

그가 정치하는 이유는 ‘평범한 이웃’을 위해서다. “여행을 보냈는데 아이가 돌아오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인데 주민의 절반이 전과자가 됐다.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했고 그 가운데 20명이 목숨을 끊었다. 아무 사전설명도 없이 주민에게 갑자기 나가라고 하고 땅을 수용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일 수 없다. 처음부터 법과 제도를 잘 갖추어 놓으면 이런 불행한 일이 덜 생길 거라 생각했다.”(<별종의 기원> 중 요약)

사람들은 ‘일하는 국회의원’을 신기해한다. 늘 피로에 절어있는 것만 같은 구부정한 어깨에 축 처진 눈을 한 그를 보고 ‘거지갑’이라며 환호한다. “박주민 의원 같은 정치인이 민주당에 50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한다. “저도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있다. 이 부끄러움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 참고자료

박주민·이일규, <별종의 기원>(유리창)

[중앙선데이 2018. 6. 2] ‘후원금 씀씀이의 정석’ 박주민, 179페이지에 10원까지 적었다

[경향신문 2016. 12. 16] 스펙 버리고 ‘거지갑’된 의원 “시민들이 ‘어 재밌네’ 그래요”

[경향신문 2016. 1. 26]물대포 맞던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은 왜 더불어민주당에 갔을까?

[한겨레21 2016. 5. 9]“세월호 특별법 개정이 일차 목표”

[한겨레21 2016. 5. 9]“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사람”

[한겨레 2018. 8. 25] 최고위원 1위 박주민…‘초선 세월호 변호사’ 돌풍

[한겨레 2018. 9. 1] 술 마시고 밥 먹는 정치는 가라…여의도 별종의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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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심판 3차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박근혜 대통령 측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해 신빙성이 의심되는 허점투성이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재판부 석명 사항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세월호 침몰 당일 행적에 대한 내용 대부분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을 재정리한 수준에 불과했고 신빙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그동안 홈페이지에 공개해온 대통령 행적에 대한 해명을 고수했다.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8차례, 국가안보실에서 3차례에 걸쳐 서면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6차례에 걸쳐 전화로 보고받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대통령 측은 국가안보실에서 보고한 세 건의 보고서만 첨부자료로 제시했다. 정무수석실에서 받았다는 8건의 보고서는 단 하나도 제출되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이었던 권영빈 변호사는 “국가안보실 보고서는 제출했는데, (사회안전비서관 보고서는) 왜 제출을 안 했냐”며 “행적 정리가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작성된 보고서를 대통령이 직접 전달받아 검토했는지도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서면 보고가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른바 ‘관저 집무실’에 있을 때 수행비서 역할을 한 윤전추 행정관에 따르면 오전에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는 한 건이다. 윤 행정관은 앞선 2차 공개변론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에는 서류가 한 번만 왔다고 말했다. 또 이날 오전 관저 집무실에 들어간 사람은 안봉근 전 비서관 한 명이었다고 증언했다. 즉, 이날 오전 보고된 것으로 제시된 9건 중 8건의 보고서는 이메일이나 팩스로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떤 과정으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지 구체적인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다. 권 변호사는 “메일로 전달됐다면 메일을 열람한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며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대통령에게 언제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간 서면 보고 내용
9:53 – 외교안보수석 서면보고 수령하여 검토
– 국방 관련 사항(세월호와 무관한 내용)
10:00 –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고 상황 및 조치 현황 보고서(1보)받아서 검토
– 사고 상황 개요 정리
– 해경 조치 현황 : 상선 3척, 해경함 1척, 항공기 2대가 현장 도착해 구조 중, 해군함 5척, 해경함 4척, 항공기 5대 현장 이동
10:36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사고 상황 보고서(1보)받아 검토
– 471명 탑승, 09:50현재70명 구조 완료
10:40 – 국가안보실 보고서(2보)받아 검토
– 10:40현재106명 구조,왼쪽으로60도 기운 상태,해군3척,해경2척,항공기7대 및 민간선박11척 현장 도착 구조 중
-합참 탐색구조본부(09:39),중대본(09:45)가동
10:57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2보)받아 검토
– 총476명 탑승, 10:40현재133명 구조 완료
11:20 – 국가안보실 구조 상황 보고서(3보)받아 검토
– 11:00현재161명 구조, 10:49선체 전복(침몰 선체 사진 첨부)
11:28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3보)받아 검토
– 탑승자 현황 및 구조 상황
11:34 – 외교안보수석실 보고서 받아 검토
– 000대통령 방한 시기 재조정 검토
11:43 – 교육문화수석실 보고서 받아 검토
– 자율형 사립고 관련 문제점

▲ 답변서에 정리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서면 보고 내역

대통령 측은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전화 지시 중 단 1건에 대해서만 통화내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세월호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내역 등은 제시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과의 통화내역 등 대통령의 다른 통화기록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3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 예정이었던 최순실, 정호성, 안종범은 입을 맞춘듯 나란히 출석 연기를 요청했다. 그 결과 1월 셋째 주에만 16일, 17일, 그리고 19일까지 세 차례의 공개변론이 열리게 됐다. 권성동 국회 소추위원장은 “피청구인들이 소송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증인들의 출석을 조종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 일정이 잇따라 연기되면서 박한철 소장이 퇴임하는 1월 말까지 탄핵 여부가 결정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초까지도 결론이 나오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취재: 김강민 최문호 최윤원 이보람 연다혜 임보영
촬영: 김남범 신영철
편집: 윤석민

수, 2017/01/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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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0일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9명의 미수습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인양한다던 세월호는 바다속에서 점점 훼손되고 있습니다. 7시간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습니다.

▲ 경기도 안산교육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의 故 한고운 양 책상, 고운 양이 사용하던 노트와 교과서가 놓여 있다.

▲ 경기도 안산교육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의 故 한고운 양 책상, 고운 양이 사용하던 노트와 교과서가 놓여 있다.

▲ 故 박수현 군 아버지 박종대 씨는 지난해 이사했지만, 예전처럼 아들방을 그대로 꾸며놓았다. 박 씨는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스무 살이 되었을 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지금도 사들고 온다고 한다.

▲ 故 박수현 군 아버지 박종대 씨는 지난해 이사했지만, 예전처럼 아들방을 그대로 꾸며놓았다. 박 씨는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스무 살이 되었을 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지금도 사들고 온다고 한다.

무엇보다 1,000일 동안 유가족들의 시간을 멈추게 한 데는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 큽니다.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정부와 여당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방해해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지난 1월 7일, 새해 첫 주말집회에는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함께  했다. 이날 집회의 주제는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진상 규명 요구였다.  

▲ 지난 1월 7일, 새해 첫 주말집회에는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함께  했다. 이날 집회의 주제는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진상 규명 요구였다.

지난 2015년 1월 1일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특조위 활동은 7개월이 지나서야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수사권과 기소권도 없었습니다. 정부의 비협조로 자료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의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조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특조위는 지난해 6월 30일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강제로 끝내야 했습니다. 특조위는 세월호 조사를 30%도 진행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 현재 한국 YMCA전국연맹 사무실에는 특조위 민간 조사관들이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며 상근하고 있다. 개인 책상도 월급도 없다.

▲ 현재 한국 YMCA전국연맹 사무실에는 특조위 민간 조사관들이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며 상근하고 있다. 개인 책상도 월급도 없다.

지난 7일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세월호 특조위 2기가 꾸려질 때까지 국민의 힘으로 세월호 진상규명을 이어가자는 취지입니다. 새로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안이 현재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여러 누리꾼들도 세월호 진실 추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진실규명 작업은 2017년에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취재작가 김진주
글 구성 김근라
취재연출 김한구

토, 2017/01/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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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세월호 기억행동 이모저모 – “세월호 가족들이 됐다고 할 때까지” – 음악회, 강연회, 영화상영회도 열려 1월 9일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아 한국은 물론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추모와 다짐의 행사가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과 그날 이후 1,000일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였다. 국민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세월호 가족들의 동영상이 공유되거나 집회 중에 ...
월, 2017/01/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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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국회,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이제 손 놓았나</h1> <h2>대내외 불확실성 높아, 입법 필요한 가계부채 대책 선제적 마련 필요</h2> <h2>취약차주 보호를 위한 3대 입법 과제,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h2> <h2>▲이자제한법 및 대부업법상 최고 금리 20% ~ 15% 수준으로 인하,<br /> ▲소멸시효 완성 채권에 대한 고지 의무, 추심 및 거래 금지, <br /> ▲채무자대리인제도 활성화 등</h2>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한국은행은 지난 3월 28일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고 관련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18년말 가계부채(가계신용기준)는 증가세(전년말 대비 5.8%)는 둔화되었으나 여전히 가계소득 증가율(3.9%, 추정치)을 상회해 2018년 처분가능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무려 162.7%에 달하고 있다. 또한,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인 이른바 취약차주의 부채규모가 2015년 이후 계속 증가추세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2017년 11월 24일, 개인회생 변제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채무자회생법’)을 처리한 이후, 가계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을 사실상 손 놓은 상태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종합적 대책이 긴절하다.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부채에 대한 가계의 상환부담을 절감하고,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위기시 파산상태에 처한 가계가 단기간 내에 회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상당부분 입법이 필요한 사항이다. 구체적으로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상 최고 금리를 법률상 일원화하고, 최고금리 수준도 선진국 수준(미국 각 주 8%~18%, 일본 20%, 대만 20%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 또한 ▲채무자대리인제도의 적용범위를 폭넓게 개선하여 추심과정에서 채무자의 방어권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채무자대리인을 통한 사적 채무조정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채권의 소멸시효가 도래한 경우 채무자에게 즉시 고지하도록 하고,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의 추심은 물론 거래를 금지하도록 하고, ▲채무자회생법을 개정하여 채권자가 이의하지 않는 경우 법원이 심사없이 면책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1세대 1주택에 한하여 주택담보대출 채무자가 주거안정을 위해 주택을 상실하지 않고 개인회생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별제권 행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누차 강조하건데, 채무자가 상환능력을 초과한 빚을 지게 되는 데에는 개인의 결정보다 가계가 무리하게 빚을 내도록 하여 경기를 활성화 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담보 물건만을 보고 정작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과다하게 대출을 집행하는 금융기관에 더 큰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개인채무자의 채무불이행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일이 아니므로, 이들 채무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정리하고 신속히 생산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는 인적자원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도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문재인 정부 들어서 상환이 불가능한 채무자에 대해 채무감면 기조의 정책이 계속해서 제시되고 있지만 지나치게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적용되어 그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가계부채 ‘증가율’을 연 5%내로 묶겠다는 목표말고는 가계부채 규모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나 수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계의 파탄을 막고 소비여력을 회복시키는 관점의 접근과 과중한 채무를 신속히 줄이는 정책이 요구된다. 특히,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으며, 한국은행마저 가계부채 상황을 우리 경제의 중요한 위험요소로 평가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국회는 더이상 가계부채문제의 해결을 위한 입법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국회에 여러 입법과제들이 충분히 발의되어 있다. 최고이자율을 현행 25%에서 20% ~ 15%까지 낮추는 이자제한법 개정안만 7건이 계류 중이다. 국회의 의지와 결단만이 남아 있다. 사후약방문식 대응은 많은 서민들의 피해를 담보로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는 국회가 선제적인 정책 대안을 심의하고 의결하여, 자기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center;"><strong>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소비자단체 연대회의( ‘금융소비자 연대회의’)</strong></p> <p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2px;">금융정의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주빌리은행,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span></p> <div style="text-align:justify;"> </div> <h2><a href="https://docs.google.com/document/d/1YXDpzJWrCpqqoOrZEfDPi9NuT9C9ypybEKz…; rel="nofollow"><span style="color:#6699cc;">논평 원문보기/다운로드</span></a></h2></div>
화, 2019/04/0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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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가 16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탄핵심판 시작 후 헌법재판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최 씨는 이날 5시간에 걸친 신문 내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증언은 모두 허위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최 씨의 증언 중 주요 부분을 모아 영상으로 구성했다.

1) “세월호? 어제 일도 기억 못 해”

이날 최 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등 다른 증인들의 진술이 모두 ‘허위’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난다”며 답변을 피했다.

2) “다 고영태가 한 일이다”

최 씨는 ‘고영태의 진술은 완전 조작’이고, 오히려 고 씨가 2014년부터 자신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3) 정 과장? 정 비서관?

최 씨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정 과장’이라고 불렀냐는 국회 대리인단의 질문에 ‘정 비서관’이라고 부른다고 했다가, 이후 다른 질문에 답변하다 무심코 ‘정 과장’이라고 호칭한 후 곧바로 ‘정 비서관’이라고 고쳐 말했다. 이후 정 씨가 언급된 질문에 대해서는 ‘그 얘기 이제 그만하고 싶다’, ‘아까 얘기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4) “검찰 조서 도장 찍었지만 인정 못해”

최 씨는 “검찰 수사가 너무 강압적이라 거의 죽을 지경”이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압수사와 폭언, 인신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검찰 조사 당시에 피의자신문조서에 도장은 찍었지만 지금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5) “돈 해 먹을 생각 없었다”

최 씨는 “유도 신문에는 대답 안 하겠다”며 진술을 거부하거나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뭐라고 대답하냐”고 반문하는 등 국회 대리인단과 여러 차례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최 씨는 또 자신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을 통해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6) “대통령, 국민 잘살게 하고 싶어 했다”

최 씨는 ‘(박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싶어했다’며 대통령을 엄호했다.

최순실 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헌재 탄핵심판 공개변론 전체 과정은 헌재 홈페이지(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동영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검찰수사기록을 토대로 한 뉴스타파 보도와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검찰수사기록 단독입수 – 탄핵사유 “차고 넘친다”
검찰수사기록 단독입수2 – 국기문란 증거 수두룩


취재 : 최문호 최윤원 임보영

수, 2017/01/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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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 위배” 
- 4.16국민조사위 등 6개 단체 공동의견서 헌재 제출
 

민간차원의 범국민진상규명활동기구인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이하 416국민조사위)를 포함한 6개 단체는 오늘(1월 19일) 2시 헌법재판소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당일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했으므로 탄핵사유로 인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1시 30분, 416가족협의회, 4.16연대, 민변, 민주법연, 참여연대 등 참여 단체 회원들은 공동의견서 제출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 단체는 공동의견서(대표집필: 4.16국민조사위 이정일 상임연구원)에서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인정한다”고 전제하고,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재난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당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출근 하지 않아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참사관련 보고서면을 작성하느라 40분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원인을 제공한 점, △피청구인이 사고당일 단 한 번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에 가지 않았고, 위기상황을 지휘·통제 및 조정역할도 전혀 수행하지 않은 점, △피청구인이 사고 당일 10:25경 “인명피해가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아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언술에 불과한 것이었고, 해경청장에게 특공대(대테러부대) 투입 등을 지시했다는 피청구인의 주장 역시 사고 및 구조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거나 일반적인 언술에 불과하므로 결론적으로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를 명백히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4.16국민조사위는 지난 1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4.16국민조사위 창립행사의 일환으로 “세월호 참사와 탄핵” 토론회를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손금주(국민의당), 이정미(정의당) 의원과 공동주최한 바 있다. 

 

□ 일시장소 : 2017년 1월 19일(목) 오후 1시 30분, 헌법재판소앞
□ 주관(대표집필) :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 공동주최 :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사)4.16세월호참사진상규명및안전사회건설을위한피해자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 참여연대

 

<순서> 

사회: 이태호 (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4.16연대 상임위원)
▶인사말: 정강자(4.16국민조사위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취지: 유경근(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의견서 소개: 이정일(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민변 세월호TF)
▶탄핵촉구발언1: 김선애(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탄핵촉구발언2: 이호중(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피청구인의 생명권보장의무 위반에 관한 의견서 (요지)


1. 사건 및 제출인

가. 사건명
    사    건   2016헌나 1 대통령(박근혜)탄핵
    청 구 인   국회 (소추위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
  
나. 제출인 
   ○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
   ○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 참여연대

 

2. 피청구인의 생명권보장의무 위반에 관한 의견서 요지

 

가. 사건개요

 

○ 2014. 4. 16.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함에 따라 탑승자 476명 중 배가 전복되기 전 서둘러 탈출하였던 생존자 172명을 제외한 304명이 사망함, 사망자 중 상당수는 단원고 학생들임.

○ 적절한 구조가 행해지지 않았고, 인명구조에 실패한 정부의 무능, 사고당일 09:19경 YTN보도 이후 △국가안보실(09:20), 해경상황실에 핫라인을 통해 확인 ☞청와대 내 문자메세지로 사고 발생 사실 전파, △해양경찰청(09:30), 제1보로 청와대사회안전비관실, 경호 상황센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상황전파,  △안행부(09:31), 청와대에 문자메세지(크로샷) 전파, △국방부장관(09:31), 청와대위기관리상황실에 전파, △경찰청(09:40), 제1보 국가안보실, 경호상황센터, 사회안전비서관 전파
에 국가안보실과 대통령의 콘트롤타워 역할부재에 대한 대통령인 피청구인의 생명권보자의무 위반이 탄핵사유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임

 

나. 피청구인의 직무상 작위의무위반에 대하여 

 

○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는 대통령이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을 의미함, 따라서 대통령은 헌법 제7조 제1항의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가재난 관리영역에서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할 의무를 부담함

○ 헌법 제34조는 대통령이“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의무도 있음

○ 정부조직법은 대통령이 정부의 수반으로서 법령에 따라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정부조직법 제11조)할 의무가 있고,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보좌를 받음(정부조직법 제14조, 제15조).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대통령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가안보실에게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계획의 작성·활용할 의무와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 작성·운용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음

○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대통령훈령 285호) 제8조는 국가안보실이 재난 분야 위기에 관한 정보⦁상황의 종합 및 관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해양사고(선박)위기관리 실무매뉴얼」에서 정한 위기관리기구의 임무․역할로 구체화되고 있는데 대통령이 최고정점에 위치해 있고, 국가안보실은 위기관리센터를 운용하는 등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함

○ 대통령인 피청구인은 세월호 참사와 같이 국가재난 위기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마땅히 수행해야 함.

○ 피청구인은 당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음. 피청구인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는 등 피청구인의 소재지가 불명확하여, 국가안보실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은 피청구인에게 신속한 보고를 할 수 없었음. 뿐만 아니라, 피청구인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아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참사관련 보고서면을 작성하느라 40분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원인을 제공함.

○ 피청구인은 사고 당일 10:00경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사고 개요, 사고 선박 제원, 구조 인원 현황, 구조 관련 조치 등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았고, 10:15분경 유선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사고당일 4. 16.경부터 같은 달 20.경까지 사이에 어떠한 회의를 주재한 적이 없음. 이는 피청구인이 국가재난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위기상황을 지휘 및 통제․관리하는 역할을 명백히 포기한 것임

○ 피청구인은 서면보고 혹은 유선보고를 받는 즉시 위기관리상황실로 가지 않았고, 국가위기관리평가회의의 개최 등을 요청하지도 않았음. 피청구인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연속 위기관리상황실에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전례, 2016. 1. 6.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듣고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40분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기도 한 전례에 비추어 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움


○ 결국,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서의 그 직무를 계속하여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였고, 이로 인하여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상태를 야기하였다고 볼 수 있음.

 

다.  피청구인의 생명권보호 의무위반은 탄핵사유에 해당함

 

○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인정함(헌법재판소 2008. 7. 31. 자 2004헌바81 결정)

○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고 소식을 보고받는 즉시, 위기관리상황실로 달려가 참모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상황 및 정보를 보고받고, 국가안보실장, 국방부장관, 안전행정부장관, 해양수산부장관, 해양경찰청장 등에게 상황에 맞는 가장 적합한 조치나 지시를 해야 했음. 그러나 피청구인은 사고당일 단 한 번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에 가지 않았고, 위기상황을 지휘·통제 및 조정역할도 전혀 수행하지 않음. 따라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배로 인정됨

○ 피청구인은 사고 당일 10:25경 인명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지시(①) 또는 해경청장에게 특공대 투입지시(②) 조치를 취했다고 하나, ①의 지시는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혹은 “적절한 조치들(appropriate steps)”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는, 아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언술에 불과하고, ②의 경우에 해경특공대는 대테러업무 등에 특수화되어 있을 뿐 잠수 및 구조의 업무에는 크게 익숙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고해역 주변의 관할권내에 있는 해경특공대원은 14명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고 및 구조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거나 일반적인 언술에 불과 함. 따라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이라고 인정됨

○ 헌법재판소는 생명권보장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구제가능성을 그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설령, 생명권의 구제가능성이 그 요건이라 하더라도, 국가안보실은 사고당일 09:19 YTN 속보를 통하여 사고를 인지하였고, 09:30경 해경본청이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 등에 전파한 상황보고서가 접수되어 474명이 탑승한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 중 침몰위험”이 있다는 매우 급박한 위기상황임을 알 수 있었고, 그 즉시 구조 활동의 책임을 지고 있는 자가 침몰 위험에 있는 여객선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에 대한 적절한 구조조치를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지휘․감독하여 피청구인이 퇴선조치 등이 취해질 수 있도록 하였다면 세월호 침몰사고로부터 안전과 생명의 위험에 있었던 세월호 승객들의 생명권을 구제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할 것임. 

○ 결국, 대통령인 피청구인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지위에서 국가의 존립근거의 역할을 하는 바, 피청구인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생명권을 침해한 것은 이들의 생명권을 침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의 유가족 삶도 송두리째 빼앗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주었다고 할 것이며, 이는 생명권 보장을 국가의 존립 근거로 하는 의미를 상실시켰다고 할 것이므로 국민의 생명보장의무를 위반한 것은 중대한 헌법위반행위에 해당하여 탄핵되어야 함.

 

 

 

 

 

목, 2017/01/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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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국민생명권 침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

 

 

일시 2017년 1월 19일 오후 1시 30분 헌법재판소앞
공동주최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사)4.16세월호참사진상규명및안전사회건설을위한피해자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 참여연대
주관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순서
사회 이태호 / 4.16 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

인사말 유경은 /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의견서 소개 이정일 / 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민변 세월호TF
탄핵촉구발언1 : 김선애(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탄핵촉구발언2 : 민주법연, 참여연대 중 참가자
 

금, 2017/01/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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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 위배” 
- 4.16국민조사위 등 6개 단체 공동의견서 헌재 제출
 

민간차원의 범국민진상규명활동기구인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이하 416국민조사위)를 포함한 6개 단체는 오늘(1월 19일) 2시 헌법재판소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당일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했으므로 탄핵사유로 인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1시 30분, 416가족협의회, 4.16연대, 민변, 민주법연, 참여연대 등 참여 단체 회원들은 공동의견서 제출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 단체는 공동의견서(대표집필: 4.16국민조사위 이정일 상임연구원)에서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인정한다”고 전제하고,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재난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당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출근 하지 않아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참사관련 보고서면을 작성하느라 40분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원인을 제공한 점, △피청구인이 사고당일 단 한 번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에 가지 않았고, 위기상황을 지휘·통제 및 조정역할도 전혀 수행하지 않은 점, △피청구인이 사고 당일 10:25경 “인명피해가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아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언술에 불과한 것이었고, 해경청장에게 특공대(대테러부대) 투입 등을 지시했다는 피청구인의 주장 역시 사고 및 구조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거나 일반적인 언술에 불과하므로 결론적으로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를 명백히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4.16국민조사위는 지난 1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4.16국민조사위 창립행사의 일환으로 “세월호 참사와 탄핵” 토론회를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손금주(국민의당), 이정미(정의당) 의원과 공동주최한 바 있다. 

 

□ 일시장소 : 2017년 1월 19일(목) 오후 1시 30분, 헌법재판소앞
□ 주관(대표집필) :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 공동주최 :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사)4.16세월호참사진상규명및안전사회건설을위한피해자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 참여연대

 

<순서> 

사회: 이태호 (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4.16연대 상임위원)
▶인사말: 정강자(4.16국민조사위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취지: 유경근(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의견서 소개: 이정일(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민변 세월호TF)
▶탄핵촉구발언1: 김선애(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탄핵촉구발언2: 이호중(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피청구인의 생명권보장의무 위반에 관한 의견서 (요지)


1. 사건 및 제출인

가. 사건명
    사    건   2016헌나 1 대통령(박근혜)탄핵
    청 구 인   국회 (소추위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
  
나. 제출인 
   ○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
   ○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 참여연대

 

2. 피청구인의 생명권보장의무 위반에 관한 의견서 요지

 

가. 사건개요

 

○ 2014. 4. 16.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함에 따라 탑승자 476명 중 배가 전복되기 전 서둘러 탈출하였던 생존자 172명을 제외한 304명이 사망함, 사망자 중 상당수는 단원고 학생들임.

○ 적절한 구조가 행해지지 않았고, 인명구조에 실패한 정부의 무능, 사고당일 09:19경 YTN보도 이후 △국가안보실(09:20), 해경상황실에 핫라인을 통해 확인 ☞청와대 내 문자메세지로 사고 발생 사실 전파, △해양경찰청(09:30), 제1보로 청와대사회안전비관실, 경호 상황센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상황전파,  △안행부(09:31), 청와대에 문자메세지(크로샷) 전파, △국방부장관(09:31), 청와대위기관리상황실에 전파, △경찰청(09:40), 제1보 국가안보실, 경호상황센터, 사회안전비서관 전파
에 국가안보실과 대통령의 콘트롤타워 역할부재에 대한 대통령인 피청구인의 생명권보자의무 위반이 탄핵사유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임

 

나. 피청구인의 직무상 작위의무위반에 대하여 

 

○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는 대통령이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을 의미함, 따라서 대통령은 헌법 제7조 제1항의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가재난 관리영역에서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할 의무를 부담함

○ 헌법 제34조는 대통령이“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의무도 있음

○ 정부조직법은 대통령이 정부의 수반으로서 법령에 따라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정부조직법 제11조)할 의무가 있고,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보좌를 받음(정부조직법 제14조, 제15조).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대통령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가안보실에게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계획의 작성·활용할 의무와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 작성·운용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음

○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대통령훈령 285호) 제8조는 국가안보실이 재난 분야 위기에 관한 정보⦁상황의 종합 및 관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해양사고(선박)위기관리 실무매뉴얼」에서 정한 위기관리기구의 임무․역할로 구체화되고 있는데 대통령이 최고정점에 위치해 있고, 국가안보실은 위기관리센터를 운용하는 등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함

○ 대통령인 피청구인은 세월호 참사와 같이 국가재난 위기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마땅히 수행해야 함.

○ 피청구인은 당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음. 피청구인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는 등 피청구인의 소재지가 불명확하여, 국가안보실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은 피청구인에게 신속한 보고를 할 수 없었음. 뿐만 아니라, 피청구인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아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참사관련 보고서면을 작성하느라 40분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원인을 제공함.

○ 피청구인은 사고 당일 10:00경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사고 개요, 사고 선박 제원, 구조 인원 현황, 구조 관련 조치 등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았고, 10:15분경 유선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사고당일 4. 16.경부터 같은 달 20.경까지 사이에 어떠한 회의를 주재한 적이 없음. 이는 피청구인이 국가재난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위기상황을 지휘 및 통제․관리하는 역할을 명백히 포기한 것임

○ 피청구인은 서면보고 혹은 유선보고를 받는 즉시 위기관리상황실로 가지 않았고, 국가위기관리평가회의의 개최 등을 요청하지도 않았음. 피청구인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연속 위기관리상황실에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전례, 2016. 1. 6.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듣고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40분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기도 한 전례에 비추어 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움


○ 결국,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서의 그 직무를 계속하여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였고, 이로 인하여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상태를 야기하였다고 볼 수 있음.

 

다.  피청구인의 생명권보호 의무위반은 탄핵사유에 해당함

 

○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인정함(헌법재판소 2008. 7. 31. 자 2004헌바81 결정)

○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고 소식을 보고받는 즉시, 위기관리상황실로 달려가 참모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상황 및 정보를 보고받고, 국가안보실장, 국방부장관, 안전행정부장관, 해양수산부장관, 해양경찰청장 등에게 상황에 맞는 가장 적합한 조치나 지시를 해야 했음. 그러나 피청구인은 사고당일 단 한 번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에 가지 않았고, 위기상황을 지휘·통제 및 조정역할도 전혀 수행하지 않음. 따라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배로 인정됨

○ 피청구인은 사고 당일 10:25경 인명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지시(①) 또는 해경청장에게 특공대 투입지시(②) 조치를 취했다고 하나, ①의 지시는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혹은 “적절한 조치들(appropriate steps)”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는, 아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언술에 불과하고, ②의 경우에 해경특공대는 대테러업무 등에 특수화되어 있을 뿐 잠수 및 구조의 업무에는 크게 익숙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고해역 주변의 관할권내에 있는 해경특공대원은 14명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고 및 구조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거나 일반적인 언술에 불과 함. 따라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이라고 인정됨

○ 헌법재판소는 생명권보장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구제가능성을 그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설령, 생명권의 구제가능성이 그 요건이라 하더라도, 국가안보실은 사고당일 09:19 YTN 속보를 통하여 사고를 인지하였고, 09:30경 해경본청이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 등에 전파한 상황보고서가 접수되어 474명이 탑승한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 중 침몰위험”이 있다는 매우 급박한 위기상황임을 알 수 있었고, 그 즉시 구조 활동의 책임을 지고 있는 자가 침몰 위험에 있는 여객선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에 대한 적절한 구조조치를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지휘․감독하여 피청구인이 퇴선조치 등이 취해질 수 있도록 하였다면 세월호 침몰사고로부터 안전과 생명의 위험에 있었던 세월호 승객들의 생명권을 구제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할 것임. 

○ 결국, 대통령인 피청구인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지위에서 국가의 존립근거의 역할을 하는 바, 피청구인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생명권을 침해한 것은 이들의 생명권을 침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의 유가족 삶도 송두리째 빼앗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주었다고 할 것이며, 이는 생명권 보장을 국가의 존립 근거로 하는 의미를 상실시켰다고 할 것이므로 국민의 생명보장의무를 위반한 것은 중대한 헌법위반행위에 해당하여 탄핵되어야 함.

 

 

 

 

 

금, 2017/01/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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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한국자유총연맹을 통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와 유가족들의 활동을 무력화시키려 한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특조위 활동이 진행중이던 2015년  11월,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과 자유총연맹 핵심관계자가 주고 받은 관련 문자메시지 내용을 입수했다. 허 행정관은 특조위와 유가족에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영상을 자유총연맹 측에 전달하고 이를 적극 활용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 행정관이 자유총연맹 관계자 김 모 씨에게 문제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것은 지난 2015년 11월 24일. 특조위가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조사에 나설지 여부에 여론의 관심이 모아지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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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3일 세월호 특조위 전원위원회

당시 정부여당은 특조위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청와대를 조사하려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해수부가 작성한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이 드러나며 정부가 조직적으로 특조위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허 행정관이 자유총연맹 측에 전달한 영상은 그해 11월 6일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416 진상규명의 길을 묻다’ 토론회에서 촬영된 유가족 홍 모 씨의 발언이었다. 발언자로 나선 홍 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기하고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묶어서 능지처참을 당해야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역사 앞에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중략) 세월호 참사 이후 2년이 채 안 됐는데 정부는 이제 역사교과서로 국민을 죽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차라리 가만히나 있던지 왜 들쑤셔서 죽은 귀신을 왜 불러내나. 자기 아버지 치부를 들어내서 부관참시를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홍 모씨)

뉴스타파가 입수한 문자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허 행정관은 이 같은 홍 씨의 발언을 대통령에 대한 ‘모독발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홍 씨의 발언이 담긴 영상을 특조위 내부의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며 이 내용을 활용해 달라고 주문했다.  

허 행정관은 영상을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점과 그 해결책까지 일러주는가 하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료를 활용할 지, 출처를 어디로 할 지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려줬다.

“보내드린 영상은 특조위에서 보내준 영상이라 당장은 사용하지 마시고, 월화쯤 공개를 추진하려 하는데 그후 사용해 주십시오. 다만 내용은 이미 공개됐으니 텍스트로 활용해 주십시오.”(허현준 행정관 / 2015년 11월 20일)

“세월호특조위 유가족 홍ㅇㅇ씨의 모독발언은 어제 mbc보도와 하태경 의원 영상 공개로 해지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공개, 활용하셔도 됩니다.(출처는 하태경 의원)”

“변호사 자문에 의하면, 홍ㅇㅇ씨는 모자이크 처리해야 민사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군요.”

(허현준/ 2015년 11월 24일)

특조위는 자체 조사를 통해 이 영상을 하태경 의원 측에 제공한 사람이 당시 특조위 부위원장(여당 추천)이었던 이헌 씨였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2월 특조위원직을 사퇴한 이 씨는 5개월 후 대한법률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청와대가 당시 세월호 유가족의 발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내용도 포함됐다.

“공직자(차관급)인 세월호특조위 박종운 위원이 홍씨의 대통령에 대한 극악 발언에 동조하며 박수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허현준 행정관/2015년 11월 24일)

실제 자유총연맹은 이같은 청와대의 주문에 맞춰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유총연맹은 허 행정관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지 이틀만에 특조위를 해체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성명 내용에는 유가족 홍 씨의 발언 내용이 그대로 인용됐다. 영상의 내용을 글로 다뤄 달라는 허 행정관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자유총연맹이 세월호 특조위와 유가족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 당시의 성명이 유일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능지처참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관참시를 당해야 한다는 세월호 유가족의 발언에 손뼉을 치며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 크게 개탄하며, 이같은 국가원수 모욕 행위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위원직에서 사퇴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자유총연맹 성명서 / 2015년 11월 26일)

청와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가도록 자유총연맹을 적극 활용한 정황도 포착됐다. 특조위에 대한 대응 주문이 나온 지 일주일 후, 허 행정관은 자유총연맹에 새로운 내용의 주문사항을 전달한다. 앞으로는 노동 등 4대개혁 입법 등 경제관련 이슈에 집중해 달라는 내용이다. 자유총연맹이 기획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할 장소가 결정되면 알려달라는 요청도 포함됐다.

“지금 핵심 쟁점은 노동 등 4대 개혁, 경제활성화법, FTA입법 사안이니 정기국회 기간에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 같이 하자고 (회원들에게 얘기)하면 좋겠습니다.” (허현준 행정관 / 2015년 11월 26일)

실제 자유총연맹은 허 행정관의 문자가 전달된 11월 26일 기점으로 이전까지 집중하던 국정교과서 문제나 세월호와 관련된 활동을 접고 청와대발 경제입법 관련 활동에 집중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9월부터 10여 개의 성명을 발표하며 국정교과서 도입을 촉구했던 자유총연맹은 허 행정관의 문자메시지가 전달된 이후 경제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놓기 시작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자유총연맹의 활동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단 첨부/ “2015년 9~12월 자유총연맹 발표 성명 목록” )

자유총연맹 내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그 동안 자유총연맹이 친박조직이나 새누리당의 이중대처럼 행동해온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며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내부의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VIP 뜻이니 사무총장 받아라”

민간단체인 자유총연맹 인사에 청와대와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도 확인했다. 자유총연맹의 한 핵심인사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2015년 2월 행정자치부의 고위관료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라며 특정인을 사무총장에 임명할 것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 당시 행자부가 추천한 인사는 같은해  6월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허 총재가 당선되고 두 달쯤 됐을 때였다. 사무총장 등 인선을 하고 있을 때인데, 당시 행안부 국장이던 김성렬(현 차관)이 허 총재를 찾아와 윤 모 씨를 거론하며 사무총장에 임명하도록 강요했다. 김 차관은 ‘VIP 뜻이다. 거스르지 마라’고 엄포도 놓았다. 허 총재는 윤 씨를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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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2016년 3월 허준영 전 총재가 자유총연맹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행정자치부 장관과 청와대 등에 보낸 항의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동안 저는) 행자부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해서 협조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사무총장 인사권이 저에게 완전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자부의 요청대로 일면도 없고 그 자격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던 윤OO을 사무총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 공직생활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인사권을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허준영 전 회장 항의문 중 / 2016년 3월)

허 전 회장은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을 지낸 본인이 직접 연맹의 문제를 언론에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청와대와 행자부의 인사권 관여, 세월호 문제 등 각종 정부 현안에 자유총연맹이 동원된 것은 모두 사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요청 관련 자유총연맹 성명서 (2015.9.9~2015.12.8) >

국회는 노동개혁법 등 민생법안을 즉각 통과시켜라 2015-12-08

민생경제 외면하는 국회 정상화 촉구 결의대회 및 100만인 서명운동”2015-12-01

청년실업 해소, 한국자유총연맹이 앞장선다!” 2015-11-30

민생경제 외면하는 국회 정상화 촉구 결의대회 및 100만인 서명운동”2015-11-27

민생경제 외면하는 국회는 각성하라! 2015-11-27

▷ 허현준 행정관 ‘경제활성화법’ 관련 문자메시지 발송 2015-11-26

세월호특위 차라리 해체가 낫다 2015-11-26

▷ 허현준 행정관 ‘세월호 유가족 영상’ 관련 문자메시지 발송 2015-11-20

강원 홍천군지회 회장 이•취임식에서 “올바른 역사교육” 지지 결의 2015-11-17

하와이에서 ‘올바른 역사교육 지지’ 결의 2015-11-12

한국자유총연맹 미주지부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합니다! 2015-11-11

알래스카 지부결성식에서 ‘올바른 역사교육 지지’ 결의 2015-11-09

미주지역 회장단, 올바른 역사교육 지지 결의 2015-11-05

전국 읍‧면‧동 분회회장 협의회장도 올바른 역사교육 결의 2015-11-05

한국자유총연맹은 왜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가? 2015-11-02

경남 하동군지회 회장 이•취임식에서 “올바른 역사교육” 지지 결의 2015-10-30

서울시지부 회원 2천명, 관악산에서‘올바른 역사교육 지지’결의 2015-10-28

서울시지부 회원 2천명, 관악산에서‘올바른 역사교육 지지’결의 다진다! 2015-10-27

한국자유총연맹, 전국 여성회 워크숍에서 ‘올바른 역사교육 지지’결의 2015-10-26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대국민 기자회견 2015-10-20

▷ 허현준 행정관 ‘국정교과서 홍보’ 관련 문자메시지 다수 발송 2015-10-20~2015-11-3

[논평] 朴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공감한다 2015-10-27

▷ 허현준 행정관 ‘대통령 국회연설 준비’ 관련 문자메시지 발송 2015-10-21


오대양, 한상진, 김성수

월, 2017/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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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면?

'무난한 승리'에 안주하며, '제왕적 권력'을 원하는 정치

 

김종욱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참여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천일을 목 놓아 울어도 새벽은 오지 않았다. 절망의 아픔을 안고 눈물로 호소해도 꿈쩍도 안 했다. 그들은 애당초 세월호를 뭍으로 올릴 생각도, 진실을 밝힐 마음도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이 가능했던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다. 이 거대한 권력 앞에 '국민의 공복(公僕)들'은 침묵과 왜곡의 공모자가 되었고, 진실을 은폐하고 파기하는 협력자가 되었다.

이 극악한 공모와 협력을 단칼에 자른 것은 '민심(民心)'이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만든 것도 '촛불 민심'이었다. 두려움 없이 광장으로 나온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천만의 촛불, 그것은 억눌리고 고통스러웠던 약자들의 희망을 향한 절규이고,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을 방치할 수 없다는 국민의 요청이고, 기득권과 불평등을 혁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시민의 자존의 외침이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서서히 밀려오는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진주 촛불집회에서 발언한 어느 여대생의 의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진짜 바뀔까요?" 정치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천만의 촛불과 민심의 요동에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망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3년 6개월 동안 벌어진 국정 농단을 누구도 발견‧제어할 수 없었던 시스템, 입시 부정에 대한 이화여대생들의 절규와 우연히 찾은 태블릿PC로 촉발된 이 허망하고 답답한 사태, 대통령을 필두로 비서실장과 장‧차관들의 철저한 공모와 은폐로 일관된 상황, 이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다.

'제왕적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개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와 행정 수반을 겸직하며 막강한 '비상대권'(선전포고권, 계엄선포권, 긴급조치권, 긴급명령권), 헌법 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부의권까지 가진 '초강력' 권력이다.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권력이 부여된다. 이 과도한 권력집중 때문에 반복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고, 이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심각한 권력 갈등이 반복되며, 매번 적대와 갈등의 정치를 구조화해왔다.

따라서 현행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 이것은 민주적 정치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이 제도는 정치학자 황태연 교수에 따르면 "전 국민적 정통성에 독립적 기반을 둔 초당적 실권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수반'과 의회의 신임 여부에 종속된 당파적 실권 총리로서의 '정부 수반'이 나란히 공존하며 협력하는 정부제도"다. 공화정을 선택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초당적인 외교‧안보‧국방‧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다수 의석에 기초한 당파적 직무를 수행하는 내정 총리로의 분권 모델이다.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여야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가능케 하며, 여러 정당의 '공동 집권' 또는 '동거 정부' 등을 통한 '협치(協治)의 정치'를 보장한다. 즉 '제왕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반복적인 '갈등과 투쟁의 정치'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한 '상생 협력 정치'의 길을 열어준다. 정치적 '타협'은 대화와 토론을 전제한다. 민주적 토론을 통한 권력의 나눔과 연합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타협의 정치를 '밀실 야합'으로 폄하하고, 나쁜 정치로 규정했다. (필자는, '어느 학자'와 관련해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의 글을 주석으로 달았다. ☞관련기사 : "도대체 '친문패권주의'가 무엇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유럽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거래'와 '나눠먹기'를 일상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지속해 온 것이다. 그 필자의 의도는 알겠다. 개헌이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제외하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니, 그런 방향의 논의를 중단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정 후보가 헌정보다 중요할 수 없다. '국민은 곧 국가'이며, 국가의 정체는 헌법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저 심각한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제왕적 권력'을 그대로 둔다면, 또 다른 국정 농단이 재연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한 논의는 조기 대선에서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되어야 한다. 국민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차기 대통령 당선자는 이 사회적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


민심과 함께 하는 '공감의 정치'

이를 위해 첫째,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증오와 공격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정치인을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열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열광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아닌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그런 '빠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자기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역주의로 빠지면 다른 지역을 배타하는 증오와 적대의 정치만 남을 것이다.

둘째, 정의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선악(善惡)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공감의 정치'가 필요하다. '선악의 정치'는 단죄의 정치이고 적을 만드는 정치다. 특히,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문재인 후보부터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대세론'에 안주하고 쟁점을 회피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선 안 된다. 즉 '무난한 승리'에 안주하는 것은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패권적'으로 의심했거나 비판했던 부분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시대에 공감하는 것이다.

셋째, 국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많은 이야기들이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펼쳐져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있다. 각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논의들은 밀려나고, 비판적 논의는 집단적 공격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권력 구조는 그대로 놔두고, '정권 교체'만 이뤄지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승자독식,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게임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타협의 정치가 들어설 공간은 협소하다. '독식 권력'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할 가능성이 높고, 국민 전체의 공공선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의 내러티브(narrative)만 흘러넘칠 것이다.

'도깨비' 같이 '국민의 소환에 응하는 정치'

너무 아프고 슬픈 죽음들, 도대체 열심히 살아도 빈곤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천만 촛불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슬픈 죽음에 대한 공감, 그 아픈 삶에 대한 공감이 탄핵의 원천이었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친 '도깨비'에서 지은탁은 기억에서 사라진 도깨비 김신에 대한 감정만으로도 그렇게 쓰리고 아파했다. 저승사자 왕여를 사랑한 김선은 다시 이별이 와도 너무나 보고 싶어서 너무나 만지고 안고 싶어서 달려 나갔다.

세월호 부모들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죽어라 일해도 하루하루가 나락(那落)인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단어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겠는가. 이제 정치인이 민심에 공감해야 한다. 정치가 응답해야 한다. 도깨비 김신이 끝도 모를 그 매서운 눈길을 걸어 약속을 지켰듯이, 국민의 소환에 응하는 것이 정치다. 슬픈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마법을 기대해 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7/02/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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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손해배상청구 소장 제출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고발 기자회견


일시 및 장소 : 2017년 2월 9일(목) 오전 10시 30분, 민변 대회의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는 ‘블랙리스트 법률대응 모임’을 조직하였고, 작년 12월 12일 김기춘 등에 대한 형사고발을 진행하였습니다. 

 

나아가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국가와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민변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 10여명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소송 대리인단’(단장 강신하)을 구성하였습니다. 지난 1월 16일부터 2월 3일까지 원고 모집을 진행하였고, 2월 9일(목)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이번 소송에는 각계의 문화예술인이 각자의 의지와 분노를 모아 참여 신청을 하였고 474명(소장 제출 시에 최종 숫자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이 원고로 참여하였습니다. 소송의 피고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고의적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공무원 개인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법인도 대상으로 하여 개별적 책임을 분명하게 물을 예정입니다. 청구액은 소장 제출 시에는 원고별로 100만 원으로 하고 향후 블랙리스트 기재 경위와 피해 실태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날 경우 피해 유형과 정도에 따라 청구액을 확장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소송 원고는 전체 피해자 중 일부이며 향후 소송 과정에서 블랙리스트의 전체 내역이 밝혀진다면 더 많은 피해자들이 추가로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또한 블랙리스트에는 개인의 성명, 직업 외에, 정치적 견해 등 개인정보호법상 민감정보가 포함되어 있는바, 위 김기춘 등은 개인의 민감정보를 불법 수집, 처리하여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였습니다. 따라서, 민사소송과 별도로 위 가담자들에 대하여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발할 예정입니다.

 

2월 9일(목) 오전 10시 30분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 제기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을 발표하고 설명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참석과 취재 부탁드립니다.

 

 

※ 문의 : 이원재(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02-773-7707
          송상교(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  02-522-7283
          하장호(예술행동위원회/예술인소셜유니온운영위원) 010-6430-1871
          김선휴(참여연대 공익법센터) 02-723-0666

 

 

□ 진행 개요
․ 사회 : 서중희 변호사 (대리인단 간사)
․ 경과 및 블랙리스트 규탄 : 장지연(문화문제대응모임 공동대표)
․ 블랙리스트 소송의 의미와 향후 진행방향 : 조영선 변호사(대리인단부단장)
․ 소송의 주요 내용 발표 : 전민경 변호사
․ 참여 문화예술인 발언(소송참여 취지) 
  - 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 참여 문화예술인 1인

* 소장 및 고발 내용은 당일 배포합니다.끝.

화, 2017/02/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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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단지 개인의 과거가 아닙니다. 기억은 우리 사회를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제기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행동입니다.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에서는, 기억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의미를 획득하는지 기억은 그리고 기억문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실천적 관점에서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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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2/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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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여러분과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 책은 오래된 책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세상살이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볼까요?


서른네 번째 책
 <기억 문화 연구>
과거는 기억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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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소재로 대화를 하려면 그 소재에 관해 공통된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오해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 나는 가장 먼저 사전을 찾는다.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그 단어를 적확하게 쓰고 있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사업의 목적과 성격에 맞게 우리가 논의할 소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살을 바르고 가지를 친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좋은 개론서를 읽는 것이다. 2017년 한독도시교류포럼을 준비하며 내가 읽은 책은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중 한 권인 태지호의 <기억 문화 연구>다.

100쪽이 채 안 되는 이 책은 기억이 무엇이며 왜 최근 기억이 소환되고 있는지 학술적 토대를 기반으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여준다. 그리고 기억과 연관된 다양한 개념을 소개하고 학자들이 제시하는 개념의 의의와 제약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전통적 개념의 역사에 제기되는 문제점을 기억이 어떤 식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논의의 배경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이 책은 기억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기억’부터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맥락에 의해 기억이 변화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사회적 기억’, 문화적 재현을 통해 의미를 획득하는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문화적 기억’ 등 주창한 이론가를 중심으로 주요 개념과 그 의의를 짚는다.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기억의 터(Sites of Memory),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대중 기억(Popular memory) 등 기억을 설명하는 이후의 개념 역시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기억은 ‘정체성’과 ‘민족’이라는 개념들과 연관되며 상호작용하기도 하고, ‘기념’ 등의 방식을 통해 정치성을 갖게 되기도 하며, ‘다크 투어리즘’, ‘영상 기억’, ‘향수와 복고’ 등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산업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책은 기억이 어떻게 학계에 등장했고 이것이 사회현상과 맞물려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간결한 연대기 같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은 세월호 참사와 결합되면서 하나의 기호가 되고 상징이 된다. 평상시의 기억이란 지난 약속을 떠올리거나 추억을 상기하는 일 등에 사용하는 용어였는데, 이 한 권의 책은 ‘기억’을 파고든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고뇌가 담긴 시간의 결과물을 보여주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 중 만만히 여길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볍고 어렵지 않은 책이니만큼, 3월 23일 안산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 기억의 조건’에 오시기 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사회는 기억의 장이자, 기억의 조건인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조건들은 개인들의 기억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 속에서 회상과 망각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특정한 기억만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p6

“기억은 공식적 역사를 넘어 과거에 대한 다양한 재현 방식과 정체성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 p15

“기억은 ‘나와 우리가 누구인가’와 ‘나와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연결시켜 준다. 그러므로 정체성(들)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현재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와 연관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과 같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 한국 내 친일파 청산과 해석 문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역사 교과서 문제 등 일련의 ‘역사 전쟁’들은 정체성(들)을 규정짓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들이며 이는 곧 다양한 기억들 간의 갈등이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p69

“희생자들이 기억되는 방법은 최근 들어 이전보다 더 극단화된 희생자 숭배 혹은 재국민화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부조리한 죽음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는 점과 민족주의를 새로운 차원에서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p79

“트라우마에 대한 부정적 승화 혹은 순화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형태로 과거를 재현할 뿐, 오히려 그러한 참혹했던 과거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제시하는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공감(empathy)이다. 그는 공감으로 과거와 희생자를 진정성 있게 바라보고 끊임없이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트라우마 자체가 결코 물화하거나 객관화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p82

글 : 이민영 | 목민관클럽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7/02/2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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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둔 마지막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9차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95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전국적으로는 105만 명이 촛불을 들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29일부터 본격화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은 연인원 천 5백만 명을 돌파했다.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헌재의 탄핵 인용과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특히, 이번 집회에서는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붉은 공굴리기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붉은 촛불이 켜지기도 했다. 이와함께 세월호 가족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세월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고,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부르며 이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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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본 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은 “박근혜가 가야 봄이 온다”, “황교안도 퇴진하라”, “촛불이 승리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총리관저 등으로 행진하고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와 집회를 마무리지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오는 10일 또는 13일로 예상됨에 따라 선고 전날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선고 당일 아침은 헌법재판소 앞,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낮 2시 서울시청 광장 등에서는 탄핵반대 집회가 열려 헌재의 탄핵심판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 대규모 세대결 양상이 펼쳐졌다.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시청앞 광장부터 남대문 앞까지 수 십만 명이 모였지만, 지난 3월 1일 집회와 비교하면 다소 인원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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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헌재가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탄핵기각 보다는 국회의 탄핵소추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며 탄핵 각하를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군가에 맞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가 하면, 무대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이 낭독되기도 했다.

탄핵심판 결정이 임박한 것을 반영하듯 헌법재판소에는 주말임에도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6명이 출근해 막바지 기록 검토와 함께 주중에 열릴 평의 준비에 주력했다.


취재:심인보
촬영:최형석
편집:박서영

토, 2017/03/0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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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파면(탄핵)했다. 지긋지긋한 박근혜를 만 4년 만에 민중의 힘으로 중도 하야케 했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본격화된 지 1백32일 만이다.

박근혜 파면은 1백32일간 눈비를 마다않고 광장을 지킨 1천5백만 촛불의 긍지이고 훈장이다. 그리고 지난 4년간 반(反)박근혜 투쟁의 선두에 서 왔던 노동운동의 자부심이다. 공장에서, 대학에서, 성주에서, 진주에서 전국 곳곳에서 정권의 악행에 맞서 싸워 온 민중의 정의다.

수십 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 온 독재 세력에 젖줄을 댄 강성 우익 박근혜 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민중을 “개·돼지 취급”해 왔다. 공작 정치로 대선 승리를 훔쳤고, 표를 얻기 위해 남발한 복지 공약을 간단히 취소했다. 기업주들이 책임져야 할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 계급에 전가해 왔다. 생때같은 자식들이 죽은 이유라도 알게 해 달라는 부모들을 좌익 세력 취급하며 적대했다. 일자리 같은 일자리를 달라는 청년들에게 (갖가지 위험이 있는) 중동에나 가 보라고 무시했다. 고통 전가를 중단하고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백남기 씨를 물대포로 죽이고는 그 사인(死因)마저 속이려 했다. 일자리 찾는 여성들에게 고작 저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내놓고는 애나 많이 낳으라고 모욕했다. 노동운동, 사회운동, 문화계 등을 사찰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자유로운 표현과 민주적 권리를 침해했다. 국정원과 재벌이 자금을 댄 관제 데모와 방송 장악으로 여론을 조작해 왔다.

이 모든 악행들에 대한 원한과 증오가 거대한 퇴진 운동으로 수렴됐다. 그리고 결국 그 뜻을 이뤘다. 박근혜 일당과 우익은 끝까지 발악했지만,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민중의 의지가 더 강했다. 세월호 참사로 구조도 못 받고 희생된 원혼의 분노가 그들의 생떼보다 더 강했다.

오만한 권력자들에게 더는 얕보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대중은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 후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줄기차게 모이면서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구속을 촉구해 왔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를 이끈 황교안에게도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세월호 3주기에는 반드시 박근혜를 몰아내고 구속시켜서 희생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염원했다. 오만방자한 우익들이 우리를 얕보고 바람 불면 꺼질 촛불이라고 비웃었지만, 촛불은 바람을 타고 들불처럼 번지고 커져 왔다.

바로 그 힘으로 이미 박근혜 탄핵 전에 정권 실세들인 김기춘·조윤선·안종범 등이 구속됐다. 박근혜의 분신과 다름없던 최순실이 구속됐다. 그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이 취소됐고, 부정 입학에 연루된 이대 총장과 관련 교수들이 구속됐다. 심지어 사후 퇴학 처분으로 그 다이아몬드 수저의 고졸 학력마저 박탈됐다. 그리고는 70년 불구속 신화라던 삼성 재벌의 총수 이재용까지 구속됐다.

이는 박근혜가 더욱 심화시킨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사회를 뜯어고치고 바꾸는 일의 출발일 뿐이다. 대선으로 박근혜 정권이 물러난다고 해도 앞으로 60일이나 기다려야 한다. 이 점을 이용해, 여전히 독재를 미화한 국정교과서가 떠돌고, 사드 등 미국의 대량살상무기들이 서둘러 들어오고 있다. 고통 전가와 노동 개악도 완전히 중단된 것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주들을 위한 고통전가와 친제국주의 정책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도 계속 좌절될 것이다. 박근혜도 구속을 피하려고 온갖 “염병하네” 할 짓들을 해댈 것이다. 앞으로의 재판에서 이 모든 적폐 인물들의 구속 판결을 받아 내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광장의 촛불이 계속 타올라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민중이 거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특히, 노동자들이 승리감을 자신감으로, 일터의 반란으로 번지게 해야 한다.

물론 적폐와 싸우는 일, 정권 퇴진 염원의 밑바탕에 깔린 불평등과 부정의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에는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 효과적인 정치와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쓰디쓴 논쟁과 난관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정권 퇴진 운동을 공상이라고 비웃던 반 년 전과는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

이제 사람들은 4년 전 박근혜 당선에 좌절하고 한숨 짓던 사람들이 아니다. 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사악한 통치자의 중도 하차를 이뤄 낸 사람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오래 핏빛 독재를 자행했던 세력을 계승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정권을 끝장낸 사람들이다.

여세를 몰아 정권의 청산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자. 일터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지역사회에서 노동자·민중의 조건 개선과 해방을 위해 싸우자. 교만한 지배자들에게 단결과 연대의 힘을 보여 주자. 권력을 쥔 자들에게 주눅들지 말고 그들에게 우리를 존중하라고 말하자. 박근혜 퇴진은 투쟁하는 민중의 자랑이다.

2017년 3월 10일
노동자연대

금, 2017/03/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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