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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41] 영남 패권, 새누리당 고립으로 죽이자: 영남 패권주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

지역

[시평 341] 영남 패권, 새누리당 고립으로 죽이자: 영남 패권주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

익명 (미확인) | 월, 2016/02/15- 14:18

영남 패권, 새누리당 고립으로 죽이자

영남 패권주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지난 번 "호남이 세속화되어야 한다고?"라는 제목의 나의 '시민정치시평'(클릭)이 나가고 난 뒤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 등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방향의 반응을 접했다.

 

내 글을 두고 '감동적'이라고 하는 적극적인 호응도 있었지만, 나더러 심지어 '싸이코패스' 같다고 하는 극언도 들었다. 그런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 양태가 지금의 야권 분열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여 무척 씁쓸했다. 조금이나마 이 분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게 시평을 쓴 의도였는데, 외려 내 글이 그 분열을 증폭시키는 촉진제가 되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들었다. 

 

김욱과 윤종대의 내 글에 대한 반론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관련기사①: "선거 전엔 '호남 몰표'! 선거 후엔 '호남 없는 개혁'?", ☞관련기사 ②: "호남 타령 그만하고, 영남 너나 잘하세요!") 내 글에 대한 오독도 오독이지만, 조금은 격앙되어 보이는 감정적 반응도 깔린 듯해서 걱정스러웠다. 아무래도 내가 조금은 불분명하게 그리고 (본의는 아니었지만) 논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분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글을 쓴 탓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나로서는 두 분을 포함한 당사자분들을 '서로 이견이 있는 친구' 사이로 여기고 싶은데, 혹시라도 이 근본 의도를 해치는 방향으로 이 논쟁이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우선 전한다.

 

물론 논의의 주제 자체가 매우 민감하긴 하다. 현실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대립도 얽혀 있는 데다 흔히 '지역 (감정)'이라고 말해져 온 문제를 건드려서다. 많은 호남 사람들에겐 심지어 어떤 '한(恨)'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김욱이 이야기하는 '논리'의 차원에서만 논의를 전개하기는 어쩌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더 나은 논증(이 가진 설득)의 힘'을 믿으면서 두 분의 비판에 답해보려 한다. 혹시라도 논의가 서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방식이 되지 않도록, 두 분의 세세한 비판과 언급에 하나하나 답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내가 애초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해 보려 한다. 

 

먼저 내가 이른바 '영남 패권주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어야겠다. 나는 그것을 영남이라는 지역 기반 위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의 선동과 그 '우리'에 속하지 않는 '남', 특히 호남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와 배제를 통해 사회적-정치적 이득을 누리려는 세력들의 한국적 인종주의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바로 새누리당을 이끌고 지지하는 세력들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다. 

 

나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 못된 인종주의와 그것이 낳은 반인권적, 반민주적 현실을 극복해야만 그 인간적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나아가 영남 출신 지식인으로서 이 이데올로기의 극복에 대한 모종의 사명감마저 가지고 있음도 밝혀둔다.

 

이런 출발점이 공유된다면, 두 사람과 나의 근본적인 이견은 이 영남 패권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내가 부정하고 비판하고 싶은 것은, 김욱이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 운운하던 대목과 또 그 영남 패권주의를 또 다른 종류의 지역주의적 인식 틀에서 바라보면서 극복하자는 제안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장 왜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를 구분하지 않는가 또 왜 '서울'이라는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는가 하는 정희준 식의 반문도 가능하겠지만(☞관련 기사 ③: "'친노'도 '영남 패권'도 없다! 문제는 '서울'!"), 나로서는 그런 접근이 무엇보다도 영남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어떤 방법론의 차이를 무슨 절대적 진영 차이로 실체화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아예 방법론으로서 적절한지도 묻고 싶다.

 

내 생각에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국의 민주 세력이 서로 연대하여 새누리당을 고립시키는 것뿐이다. 영남의 진보 개혁 세력은 그 세력대로 내부에서 새누리당 1당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영남 바깥에서도 모든 민주 세력이 그에 호응하여 손을 맞잡아야 한다. 

 

영남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데서 근본적으로 김욱의 인식을 공유하는 듯한 홍세화도 최근의 <한겨레> 기고에서 이런 길을 지지하며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부화를 위해서 몸부림치는 병아리를 나오게 하기 위해 어미닭도 밖에서 함께 껍질을 깨야 하는 것이다. (☞관련 기사④ : 영남 패권주의와 민주주의의 퇴행)

 

그런데 김욱 등은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하자면서도 지금까지의 연대를 파기하고 호남만의 길을 가자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새누리당의 고립이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임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글에서 호남에 대한 배신감 운운했던 것은 바로 이런 반(反)영남 패권주의 전선으로부터 호남의 일부가 이탈하려는 데 대한 우려의 표현이었다. 

 

다른 차원의 걱정도 있다. 김욱이라면 '지역주의 양비론'이라고 비판할 나의 제안은 규범적 수준에서 보면 지역적 차이와 갈등을 넘어 민주적-시민적 연대를 지향하는 민주 공화국의 이상 위에 서 있다. 이 이상에 따르면, 패권적이든 저항적이든(홍세화는 두 지역주의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한다) 차원은 달라도 원칙적으로 모든 종류의 배타적 지역주의나 지역 감정은 잘못이다. 

 

어떤 것이든 (서로 다른 지역 출신) 시민들 사이에 불신과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고 민주 공화국이 터해야 할 시민들 사이의 깊은 상호 존중과 연대의 기반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호남의 세속화' 주장은 이런 이상의 추구(김욱이 '호남의 신성화'라고 이름 붙인 것은 바로 이것일 텐데)를 거부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도대체 어떤 규범적 기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일까?

 

어쩌면 김욱과 윤종대는 사실은 영남 패권주의에 대해 나와는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지역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정치적 판단과 행동의 잣대이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인식 위에서 호남 및 다른 지역들에 대해 절대적 지배를 행사하고 거기서 오는 이익을 누리려는 '단일 실체 영남 사람들'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으로 말이다. 

 

바로 그래서 5.18이라는 '군부 독재 세력'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정말이지 엉뚱하게도 '영남' 사람들의 패권적 행태로 치환해 버리고(이는, 사실관계도 의심스럽지만, 단적으로 '범주 오류'다), 또 그 군부 독재 세력과 그 정치적 후예인 새누리당에게 온갖 핍박을 받으며 반대해 온 사람들까지 영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자라고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일 게다. 

 

지역이라는 것은 민족과 마찬가지로 어떤 '비자의적 귀속 집단'의 한 단위로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아주 중요한 정체성의 한 기반일 수 있다. 내가 볼 때 영남 패권주의는 사실은 (서울에 기반을 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 또는 (내 용어로 말하자면) '과두 특권 독점 세력'이 영남 지역민의 그와 같은 성찰되지 않은 자연적 경향성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 해야 한다. 

 

어떤 정치적 구성 작용 없이는 그것은 아무런 실체가 될 수 없다. 김욱과 윤종대의 접근법은 혹시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렇게 인위적-정치적으로 구성된 실체를 어떻게든 깨트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항적 지역주의를 정치적으로 구성해서 그것에 맞서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것은 결국 사실은 허깨비 같은 그 괴물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일 텐데도 말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나는 이미 2004년 4.15 총선 이후 <한겨레>에 기고한 한 칼럼(☞관련 기사⑤ : 영남 지역주의의 본질과 상생의 정치)에서, 탄핵 역풍 속에서도 '박근혜 바람'과 더불어 당시의 한나라당이 재기하는 것을 보면서, 영남 지역주의를 이렇게 규정한 바 있다. 

 

"그 지역주의는, 박근혜 바람이 몰고 온 박정희의 생환에서 상징되듯,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천민적 근대화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동일시의 표현이다. '잘 살아 보세'말고는 다른 삶의 가치와 목적은 모르는, 그러나 어쨌든 바로 그런 선동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허위의식, 그들의 알량한 기득권에 대한 보호 본능, 말하자면 어떤 방어적 패권주의가 그 영남지역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 진짜 문제는 단순히 어떤 지역적 개념으로서의 '영남'이 아니다. 진짜 적은 "성장 지상주의와 사회 다윈주의, 천박한 물신숭배와 권력에 대한 속물적 맹목, 마초적 공동체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 중앙 집중주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와 모욕 등"(같은 칼럼)에 뿌리를 두고서 이 땅의 사회적 삶을 황폐화시키고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주도하고 정당화하는 과두 특권 독점 세력의 헤게모니다. 영남이든 호남이든 또는 그 어디든 정치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수준에서도 어떻게 이에 맞서는 민주적 대항 헤게모니를 세우고 관철할 것인지가 우리 모두의 진짜 과제여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목도되는 지역주의는, 그 기원이 무엇이든, 1987년에 수립된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어떤 한계가 악화시켜 온 정치적 병리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지역주의로 극복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병폐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치유할 수 있다"는 서양의 격언을 빌려 말하자면, 그 병리는 호도된 지역주의의 강화가 아니라 단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지역주의를 강화시키는 단순 다수결 소선거구제의 혁파 같은 제도적 수준의 개혁을 추구함은 물론이고, 일상적이고 문화적인 수준에서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더 굳건히 하고 확대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호남에서 복수의 정당이 경쟁하게 한다는 식의 표피적 차원보다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지역적 생활 세계가 더 많은 인권, 더 많은 관용과 상호 존중의 문화, 더 많은 참여, 더 많은 시민적 연대, 더 많은 민주적 경제 같은 가치로 충만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내가 지난 글에서 호남의 '민주주의 부족'이 문제라고 했을 때, 그것은 호남이 그와 같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결정적인 진지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 희망을 다르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호남의 지금까지의 투표 경향도 어떤 지역주의적 몰표가 아니라 바로 이런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호남의 몰표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령 더불어민주당의 제대로 된 진보성을 견인하거나 다른 진보 정당의 성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게끔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야권 분열 과정은 이런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지금 무조건적인 단결과 통합만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야권의 분화를 무턱대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주도 세력이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잘했다는 이야기는 더 더욱 아니다.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수 없기에, 내가 이 당에 대한 아주 신랄한 비판자이기도 하다는 점만 분명히 해 둔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야권 분열 과정에서 그 주체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은 고사하고 기초적인 민주적 가치에 대한 헌신이나 당적 규율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존중해야 할 많은 호남인들의 지역에 대한 선의의 애착을 몇몇 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심을 은폐하기 위해 이용하면서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분열은 말하자면 보수적 분열인데다, 호남을 넘어서 결과적으로 전국적인 수준에서 새누리당만 이롭게 할 것이다.

 

지금 와서 분열을 다시 봉합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분열이 이제라도 호남 수준에서든 나라 전체의 수준에서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호남 지역의 맹주 자리 따위가 아니라 과두 특권 독점 세력의 제대로 된 격퇴를 두고 경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당과 지지자들이 서로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와 혐오 때문에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진짜 적을 이롭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소한 호남 바깥 지역에서는 반새누리당 연대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선거 제도 개편을 매개로 삼아도 괜찮겠다. 양당의 지지자도 이런 연대의 필요와 당위를 명심하면서 그 방향으로 지도자들을 압박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를 끝까지 잃지 말았으면 한다. 이 논쟁이 그렇게 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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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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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아무개 지원서 마감일 지나 접수돼 공정성 잃고
자격 미달자인 유 씨를 특별히 인정할 근거도 없어

지난해 6월 시청자미디어재단 신입 직원 공채가 유 아무개 씨를 위한 이석우 이사장의 특혜로 얼룩진 게 확인됐다.

1일 입수한 2015년 재단 신입사원 1•2•3차 전형 결과를 보면 유 씨의 입사 지원서는 제출 마감일인 2015년 6월 12일이 아닌 6월 15일에야 접수됐다. 6월 15일은 응모 마감일로부터 3일이나 지난 데다 하루 전(14일) 인재선발위원별로 평가 대상자 배정을 끝내고 1차 서류심사를 시작한 날이었음에도 유 씨가 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특혜를 누렸다.

▲유 아무개 씨 지원서가 ‘2015년 6월 15일(오른쪽 빨간 사각형)’에야 접수됐음을 보여 주는 시청자미디어재단 1차 전형 결과. 지원서 제출 마감일을 3일이나 넘긴 터라 특혜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유 아무개 씨 지원서가 ‘2015년 6월 15일(오른쪽 빨간 사각형)’에야 접수됐음을 보여 주는 시청자미디어재단 1차 전형 결과. 지원서 제출 마감일을 3일이나 넘긴 터라 특혜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유 씨 지원서가 3일이나 늦게 접수된 건 이석우 이사장 특별 지시 때문. 재단 인사 실무진이 2016년 2월 졸업 예정자인 유 씨를 ‘자격(2015년 8월 졸업 예정) 미달’로 탈락시켰는데 이사장이 뒤집었다. 이 이사장이 신입 지원자 435명이 낸 서류를 모두 살펴본 뒤 유 씨만을 ‘이사장이 특별히 인정하는 자’로 삼아 실무진으로 하여금 지원서를 받아들이게 했다.

유 씨는 그러나 이사장으로부터 특별히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나 근거를 전혀 제출하지 못했다. 이석우 이사장도 기자에게 “우리(한국 사회 또는 재단)가 학력 철폐로 가기 때문”이라고 강변했을 뿐 유 씨를 특별히 인정한 까닭을 입증할 자료를 내놓지 못해 특혜였음을 스스로 내보였다.

▲시청자미디어재단 2015년 신입사원 전형 일정. 6월 12일 지원서 제출을 마감했고, 3일 뒤(6월 15일) 서류 심사를 시작했다.

▲시청자미디어재단 2015년 신입사원 전형 일정. 6월 12일 지원서 제출을 마감했고, 3일 뒤(6월 15일) 서류 심사를 시작했다.

유 씨, 2015년 7월 입사했는데도 2015년 2학기에 12학점 이수

유 씨는 모교인 명지대에 ‘2016년 2월 졸업’한 것으로 돼 있다. 2015년 2학기에 특별한 일 없이 12학점을 모두 이수한 것으로도 기록됐다. 노춘환 명지대 인문학사지원팀장은 “(유 씨) 학적에 이상이 없다”며 “2015학년 2학기까지 수업을 들어 성적을 이수했고, 졸업사정위원회에서 졸업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해 2016년 2월 17일 졸업시켰다”고 확인했다. 노 팀장은 특히 6개월 앞당겨 졸업하는 체계가 학교에 있느냐는 질문에 “학칙에 의해 졸업 여부를 사정하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졸업시키기 때문에 2016년 2월 졸업 예정자가 2015년 8월에 앞당겨 졸업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며 “졸업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학적이 정상이어서 더욱 이상한 건 2015년 2학기 때문. 유 씨는 2015년 7월 시청자미디어재단에 들어가 2016년 2월 말까지 7개월 동안 대전센터에서 일했다. 유 씨가 졸업에 필요한 2015년 2학기 12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낮에 대전 유성구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171.5㎞나 떨어진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까지 오가며 일과 학업을 모두 소화했다는 얘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단으로부터 학교에 수업하러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은 일도 없었다.

지원 자격에 모자랐던 2016년 2월 졸업 예정자를 ‘이사장이 특별히 인정’해 채용한 재단뿐만 아니라 2015년 2학기에 수업이나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을 개연성이 큰 유 씨의 학적이 정상적으로 기록된 명지대도 특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석우 이사장의 호남 배척한 최종 낙점도 확인돼

신입 직원 3차 면접 전형 뒤 3배수로 추천된 48명 가운데 이석우 이사장이 유 씨를 포함한 최종 합격자 16명을 직접 낙점하면서 호남 쪽 지원자를 모두 배척한 것도 문서로 방증됐다.

재단 인재선발시험위원회가 2차 필기시험을 통과한 80명을 면접한 뒤 뽑은 합격자 후보 3배수에 든 광주(4명)•전남(1명) 출신 지원자 5명을 이석우 이사장이 모두 외면한 것. 서울(13명)에서 5명, 경기(8명)•인천(3명)에서 4명, 부산(6명)•경남(3명)에서 3명, 대구(5명)에서 2명, 대전(1명)•충남(1명)에서 1명을 뽑은 것과 사뭇 달랐다. 3배수 후보자가 있는 지역마다 1명 이상 낙점됐으나 광주•전남에만 이석우 이사장의 지역 안배가 닿지 않았다.

▲시청자미디어재단 3차 면접 전형을 통과한 48명. 이 가운데 16명을 이석우 이사장이 직접 최종 합격자로 낙점했다. 빨간 네모 속 5명이 광주•전남 출신 지원자. 파란 네모 속 16명이 낙점을 받은 사람. 이 가운데 한 명이 채용되자마자 그만뒀고 보결로 1명이 합류해 모두 17명이 이석우 이사장의 낙점을 받았다.

▲시청자미디어재단 3차 면접 전형을 통과한 48명. 이 가운데 16명을 이석우 이사장이 직접 최종 합격자로 낙점했다. 빨간 네모 속 5명이 광주•전남 출신 지원자. 파란 네모 속 16명이 낙점을 받은 사람. 이 가운데 한 명이 채용되자마자 그만뒀고 보결로 1명이 합류해 모두 17명이 이석우 이사장의 낙점을 받았다.

2015년 6월 신입 공채 전형 책임자였던 박태옥 시청자미디어재단 시청자진흥본부장과 실무자 이 아무개 씨, 그때 재단 직원 공채를 대행한 김 아무개 J사 채용컨설팅본부장은 전형 과정에 관한 기자의 질문과 통화 요구를 모두 외면했다. 김 아무개 J사 본부장은 공채 대행 기간 중에 이석우 이사장과 세 차례 이상 만난 게 재단 직원에게 목격됐음에도 “(채용 대행) 계약을 하기 전에 세부적으로 진행 절차에 대해 처음 설명을 드렸을 때 딱 한 번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석우 이사장은 지난 7월 4일 재단 월례 조회에서 “제가 와서 선발된 신입 직원들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객관적인 절차와 필기시험 등에 의해 가장 우수한 성적의 사람들이 선발됐음을 다시 한 번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아무개 씨를 ‘특별히 인정해’ 지원서를 받게 한 ‘객관적인 절차와 근거’를 여전히 내밀지 못한 상태다. 광주•전남 쪽 지원자를 모두 배척한 까닭도 아직 밝히지 않았다.

2차 필기시험에서 4위, 13위, 21위에 올라 3차 면접에 진출했던 광주•전남 출신 지원자 3명은 모두 3배수 밖으로 밀려났다. 2차 전형에서 11위였던 광주 출신 한 지원자는 3차 면접 뒤 3배수에도 들었지만, 이석우 이사장이 낙점하지 않았다. 2013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2년 동안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인턴•보조강사•비정규 파견 사원으로 일하다가 신입 공채에 응해 3차 면접까지 통과한 또 다른 광주 출신 지원자가 낙점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는 게 재단 내 중론이다.

▲“방통위가 시청자미디어재단 종합 감사 시점을 11월로 귀띔해 줬는지”에 대한 최성준 방통위원장(왼쪽)과 반상권 운영지원과장의 답변.

▲“방통위가 시청자미디어재단 종합 감사 시점을 11월로 귀띔해 줬는지”에 대한 최성준 방통위원장(왼쪽)과 반상권 운영지원과장의 답변.

반상권 방송통신위원회 운영지원과장은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인사, 회계, 사업 수행 방식 및 절차 등 업무 전반에 대해 종합적인 감사를 실시할 계획”이며 “감사 시점을 재단에 알려 준 적 없다”고 밝혔다. 반 과장의 이런 설명은 최성준 방통위 위원장 지시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석우 이사장은 그러나 7월 재단 월례 조회에서 방통위 종합 감사 시점을 11월로 예상하며 간부 중심 대응을 주문해 귀띔의 개연성을 엿보게 했다.

월, 2016/08/0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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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범죄 수사단서 제공 사실의 공표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반대한다

 

공직선거 후보자에 대한 정당한 의혹 제기를 막는 진실사실공표죄의 신설
홍철호 의원의 사심 입법을 규탄한다

2016년 12월 22일 새누리당 홍철호 의원은 “선거범죄 관련 고소·고발 등의 공표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요지는 선거범죄에 대해 신고·진정·고소·고발 등 조사 또는 수사단서를 제공한 자는 검사의 공소제기 전까지 그 사실의 공표를 금지하고, 위반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후보자 또는 예비후보자라면 피선거권을 5년 동안 박탈한다는 내용이다. 선거범죄 혐의가 있는 자에 대해 고소·고발을 했다는 진실한 사실의 공표를 막겠다니 허위사실공표죄보다 더 나쁜 진실사실공표죄의 신설이다.

제안 이유에 의하면, “국회의원 등 선거 시 선거범죄와 관련한 무분별한 고소, 고발, 신고 및 진정 등을 통하여, 사실관계가 입증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실을 언론 등에 공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공정한 선거문화가 저해되고 선거결과가 왜곡”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소·고발을 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정당한 의혹제기일 가능성이 높으며, 고소·고발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진실한 사실이므로 공표를 막을 이유가 없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의 장 등 공직선거 후보자는 그 어떤 공인보다도 더 날카로운 비판과 철저한 검증을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은 주권을 행사할 후보자에 관한 모든 사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해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이를 막으려고 하는 시도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국민에게 부여한 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며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흑색선전과 비방을 처벌하지 않으면 선거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으나, 오히려 공방 과정에서 제시되는 주장들과 정보들이 많을수록 유권자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흑색선전 등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허위사실공표죄나 후보자비방죄가 오히려 유권자의 정당한 후보자 검증과 비판을 막는 족쇄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은 최근 오픈넷이 지원한 공직선거법 판례 전수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났다.

‘굽네치킨’의 창업자이기도 한 홍철호 의원은 총선 당시 지역 경로당에 생닭을 기부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으며, 국회의원 당선 이후 검찰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작년 10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문제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이에 멈추지 않고 일주일 뒤인 12월 29일 무혐의 처분 시 무고 수사를 의무화하는 후속 입법도 발의했다. 이런 정황상 의원 개인의 사심이 담긴 입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홍철호 의원은 후보자 검증을 가로막는 진실사실공표죄 입법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2017년 1월 9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월, 2017/01/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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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개혁공약들 중요하나
국가와 대통령에 권력집중을
중심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다
관료행정체제 근본적 문제들의
책임을 묻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대선 과정에서 큰 공백이 될 것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해방 후 미군정 관리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이 1960년대 말 출간한 『소용돌이의 정치』는 권력이 국가권력의 중앙으로, 공간적으로는 서울로 집중하면서 중심을 향해 치닫는 권력경쟁의 소용돌이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그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더 강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믿는다. 정치체제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구 내에서 권력이 사회로 분산되고 다원화되기보다 국가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으로 더 집중화되고 있는 현상이야말로 그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헨더슨 이론의 모델이 되는 프랑스 정치이론가 토크빌은 구체제로부터 시작되는 중앙으로의 권력집중이 프랑스대혁명의 원인이었지만 혁명 이후 공화정하에서 그 권력집중을 구현하는 행정관료체제는 더 강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분석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설명력을 갖는다.

60~70년대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국가가 위로부터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모델 사례의 하나로 알려져 발전국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 있게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세계경제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에 관한 한 국가가 주도하는 관치경제는 그래도 유지돼 왔다. 이 특징을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라는 형용모순적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원래 사적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줄이고,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했던 신자유주의 이론이 경제 운영에서의 작은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할 때 한국에서의 관치경제를 통한 신자유주의는 최소한 그 원리와는 모순된다. 그 핵심원리로서 민영화는 관료기구의 역할, 기능뿐 아니라 관료행정체제의 목표와 운영의 규칙, 그리고 관료공직자들의 행위규범과 가치 자체를 외주화했다. 그리고 또한 공직윤리와 공익정신을 뚜렷하게 약화시켰다. 그러는 동안 중앙부서 산하의 300여 개에 달하는 공기업, 공사, 청 단위 여러 형태의 공공기구들의 재정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팽창했다. 또한 민영화는 공적 영역과 사적 민간 영역 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공적인 것도, 사적인 것도 아닌 애매한 기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넓은 영역이야말로 부패와 비리, 편법과 탈법, 무능과 무책임의 온상이 되기에 적합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는 것을 통해 승계를 지원했다는 혐의는 지금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주요 쟁점의 하나라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공기업, 사기업 모두를 포함해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재정 규모를 갖는 사업체의 하나인 대표적인 공공기구의 결정 과정이 이사회를 뛰어넘어 대통령의 의사 하나로, 그것도 사적 목적을 위해 결정이 날 만큼 허술하기 그지없다. 그 밖에도 코레일,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사업 규모와 거래는 천문학적이다. 대통령과 관료기구의 권력은 너무 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운영의 책임 또한 약하고, 불분명하기만 하다. 민주주의하에서 국가운영의 최대 과제는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공공기관의 장들과, 그들의 휘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공기업, 공사들이 수행하는 공적 결정과 업무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관리, 통제하고, 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본다.

민주주의에서는 제도를 벗어나 정치와 사회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은 단지 좁게 열려 있을 뿐이다. 모든 사회세력이 크든 작든 각기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상호 간 억제와 균형의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 큰 개혁은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가 불러온 정치적 격변은 일정 기간 그동안 현상을 유지했던 힘들이 작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왔다. 평상시에는 어려운 구조개혁도 가능한 공간을 열어놓았다. 대선에 나설 주요 정당 후보들은 청와대 개혁, 검찰 개혁, 재벌 개혁 등을 포함하는 여러 주요 개혁안들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 사안들이 무척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과 병행하면서 그것을 떠받쳐온 중심적인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개혁안들은 대통령과 국가권력의 팽창이라는 현상의 여러 측면 가운데 어떤 것들을 드러내는 문제들이다. 관료행정체제의 비대화와 무능력, 무책임과 비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아직 제대로 제시되지 못했다. 국가관료체제에 대해 책임을 묻고 또 그것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선 경쟁 과정에서 드러나는 큰 공백이라고 생각한다.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출처: 중앙일보] [최장집 칼럼] 관료 행정개혁과 책임의 문제

화, 2017/01/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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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이다.jpg

3번째 주제 [숨은 '민주주의' 찾기] - 1회. 승자독식, 한방 민주주의?


소수가 다수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어야 참된 민주주의다 - 존 스튜어트 밀

 

'승자독식, 한방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선거'는 다수결을 통해 이긴 쪽도 중요하지만 소수자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의 51:48의 결과 이후 박근혜 정부의 정책 집행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50%에 가까운 소수자의 목소리는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습니다. 토크빌(프랑스 정치학자)과 존 스튜어트 밀(정치철학자)는 다수자의 횡포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선거'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선거 만능주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공천 과정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 로마 카이사르의 독재에 맞서 지키기 위해 생겨났던 필리버스터의 기원, 97년 IMF로 인한 한국의 87년 민주주주의 체제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사유하고 이야기하는 다정한 민주주의자들의 팟캐스트 <톡톡!철학사이다> 지금 들어보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927147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kgR0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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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3/1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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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통치의 시간’, 준비돼 있습니까?

정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거 시기가 되면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로부터 종종 안부 확인을 겸한 선거의 전망을 묻는 전화를 받곤 한다. 며칠 전에도 친구로부터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전화를 받았다. 긴 수다 끝에 친구가 물었다. “근데 왜 이번 대선은 12월이 아니라 5월에 하지?”,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중년의 건망증이라고 서로 웃어넘기긴 했지만, 통화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질문이 영 생뚱맞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잊은 채, 선거판의 정글에 빠져들어 길을 잃고 있는 것이 단순한 건망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선의 열기 속에 어느새 까마득한 일이 된 듯하다. 간간이 언론을 통해 양념처럼 등장했다 사라지는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사건 연루자들의 사법처리과정과 수감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만이 우리가 왜 12월이 아니라 5월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지를 문득 상기시킬 뿐이다.
이번 대선은 87년 민주화 이래 최대 사건, 헌정 중단에 준하는 정치적 대위기가 초래한 선거이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을 폭군을 내쫓은 일종의 명예혁명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는 명예혁명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주조해야 하는 비상한 책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그러한 비상함은 찾기 어렵다. 선거 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잊게 할 만큼, 이전의 여느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문제를 두고 냉전적 시각으로 상대를 적대하는 것도, 심판론의 연장인 적폐청산론으로 피아를 구별해 적대하는 것도 그렇다. 이놈 저놈 하는 격한 정치적 언사도 모두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틈을 타 탄핵당한 헌법 밖의 정치세력이 슬슬 다시 몸을 풀고, 또 그만큼 적대와 증오는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거라는 자족적 기대도 상당히 커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탄핵정국 통해 표출된 사회적 에너지의 규모에 비춰, 그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의 다양함에 비춰,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복합적인 성격에 비춰 지극히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번 대선이 12월이 아니라 5월에 치러지게 된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결과다 
보수-진보, 여-야를 떠나 절대 다수 시민들이 유사 사회적 합의를 통해 최고 통치자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 과정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넘어,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 시장을 지배하는 권력과 재벌 간의 오래된 담합구조, 대통령과 청와대로 초 집중화된 권력체계, 자율성과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을 비롯한 사회 각 부분, 예스맨들의 집합체가 된 집권당과 책임성 없는 내각, 외교안보적 무능력과 리스크 증대 등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의 누적된 위기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일거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조기 대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보인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함성은 더 나은 통치에 대한 시민들의 집약적 요구라고 할 수 있고, 이번 선거는 그것을 묻고 있다.
선거는 정치가 가진 여러 얼굴 가운데, 가장 경쟁적이며 대립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선거가 정치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누가 집권하든 통치의 시간이 온다. 통치(government)는 원래 배의 키를 잡는 행위에서 유래한 말이다. 키를 잡고 거대한 함선을 이끌 듯이 최선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나라의 전반을 조정하고, 조율하고, 운행하는 정치적 실천이 통치다. 따라서 선거하듯 통치할 수 없다. 민주적 통치는 경쟁보다는 건설적 협력을, 대립보다는 상호 존중과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더 좋은 통치의 비전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핍박과 조롱을 통해 이기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이번 대선의 의미를 정확히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 과정에서 과도하게 동원된 적대와 상대에 대한 모욕은 비단, 후보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그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 역시 그러한 적대와 모욕으로 고통받는다. 우리가 협력할 수 있고, 또 서로 존중받고 있다는 시민적 공감대가 없다면, 선거의 뒤끝은 격렬한 분열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의 분권정부, 즉 소수파 정부일 수밖에 없다. 지금 유력한 대선후보가 상대하는 후보와 정당은 선거가 끝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 촛불을 거치면서 높아진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수준 속에서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집권한 정당, 후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첩첩산중이다. 아무리 승부가 중요하다 해도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신뢰의 근거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것이 통치의 시간을 준비하는 ‘통치자의 태도’이다.
선거는 이제 종반전이다. 비상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평범한 선거를 보며,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단 며칠이라도 적대와 증오, 서로에 대한 모욕이 커지는 선거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이해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그 맨 가장자리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발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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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5/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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