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고]박설규氏의 가을

지역

[기고]박설규氏의 가을

익명 (미확인) | 월, 2015/10/12- 10:40

박설규氏. 그 동네 최고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시멘트 회사에 입사해 오래 근무했다. 잘생긴 남자였고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알뜰하고 착한 아내와 탈 없이 크는 세 자녀가 자랑이었다. 퇴근길 손에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담긴 누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득달같이 달려와 손아귀 물건을 채가는 아이들을 보며 고단한 하루를 마감했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세 아이 학자금까지 받을 수 있는 직장이었다. 정년을 앞둔 몇 해 전 명예퇴직했다. 다음날부터 실연당한 모양새였다. 밥도 잘 못 먹었고 좋아하는 테니스도 치지 않았다. 남자는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ㅍㅈ만


피크조차 찍을 수 없는 인생에

다시 일을 시작하고서야 어깨는 펴졌다. 평탄하지 않은 삶을 선택한, 남자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딸은 알았다. 책에서 배운 노동의 가치, 싸움 현장에서 본 해고의 아픔, 지표로 등장하는 한국 사회의 복지보다 더 직관적인 가르침이었다. 노동의 무게, 임금만으로 유지되는 복지, 또는 그런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배웠다.


남자는 퇴직 뒤 20여 년 또한 바쁘게 살았다. 골프연습장과 냉동창고를 관리하는 월급 사장님도 했고 지금은 고향에서 작은 민박집을 운영하는 진짜 사장님이 되었다. 수십 년 노동으로 마련한 아파트가 복지 밑천이 되었다. 덕분에 비교적 안정된 노후를 산다. 내 아버지의 노동과 어머니의 절약이 이룬 아슬아슬한 사회안전망이다.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선전 문구를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임금에 피크조차 찍을 수 없는 인생들에게 허상뿐인 희생을 강요한다. 1997년 노동법 개악 이후 정년이 보장된 일자리는 몇이나 되었던가. 해고는 살인이라 외칠 수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마다 해고되고 이듬해 부활했다. 내 부모처럼 구사일생하지 못한 노후는 폐휴지를 모으며 연명한다. 장례비 10만원을 남기고 유서를 쓴다.


그런 마당에 더 자유롭게 해고하고 노동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리며 원청이 하청을 맘대로 관리해도 되도록 하겠단다. 취업하자마자 빚부터 갚아야 하는 청년들에게 구직은 가까운 현실이고 해고는 먼일이라 속삭인다. 그들 운명도 불안정하며 언제든 폐기처분될 것이라 말해주지 않는다. “다 아시잖아요? 알면서 안 하는 거잖아요?” 대한민국 정부의 이른바 ‘노동개혁’ 광고에 등장한 청년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책망의 말을 던진다. 노동개악은 빚덩어리 청년들을 달콤하게 협박한다. “니들 어버이가 죄가 많다!”


박설규氏는 가을 뙤약볕 아래서 말씀하셨다. “영화 보러 가고 싶은데, 극장 가면 왠지 부끄러워. 젊은이들 틈에 노인네가 끼어 있으면 안 될 거 같아….” 무슨 말씀이냐 펄쩍 뛰었지만, 생산과 소비 공간에서 밀려난 이의 설 자리 없음을 안다. 곧 아버지 자리에 오빠가 설 차례다. 그리고 내가 서고, 다음엔 내 딸이 설 것이다. 남루하지 않은 노년인데도, 애를 써 시대와 국가가 밀어내니 서러워진 아버지 자리에….


출구 없고 희망 없는 이들의 재앙

노인들 추억을 빌려 왕이 되신 이는 알량한 20만원부터 떼먹었다. 그리고 노동개악으로 지옥문을 열어, 중년과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를 푼돈으로 계산하는 중이다. 청년들 명줄을 쥔 듯이 말이다. 노동개악은 노동자들만의 불행이 아니다. 출구 없고 희망 없는 이들의 재앙이다. 자신들 곳간을 늘리기 위해 세대 간 갈등으로 밀어붙이는, 탐욕이 머리끝까지 찬 왕과 부자들 때문이다. “당신들 우리한테 도대체 왜 이러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오늘,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2015.10.07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원문보기 

박설규氏의 가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한국노총 입장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심화시키는 노동개악으론 출산율 반전은 없다!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과 쉬운 해고의 길을 터줄 정부의 노동개혁이 이번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이대로는 정부계획대로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1.5명으로 올리겠다는 전망이 쉽지 않다는

월, 2015/12/14- 00:00
438
0

Over 10,000 unionized workers from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joined the one-day strike opposing the plan to reform the labor market in what they call a management-friendly way.

수, 2015/09/23- 23:00
434
0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시장 개혁이 박 대통령의 대선 일자리 공약은 물론이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라는 국가인권위 권고와는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이 노동자가 아닌 경제계의 오랜 숙원사업을 들어준 대기업 편들어주기의 전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5102203_01

“해고 요건 강화” 공약도, 국가인권위 권고도 무시…일반해고 도입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10대 공약 중 하나로 일자리 공약인 ‘늘지오’를 내세웠다. 좋은 일자리는 늘리고, 현재 일자리는 지키고, 일자리의 질은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이 공약의 핵심은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고용을 안정화 한다는 것이었다.

2015102203_02

박근혜 후보 대선공약집 183페이지에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구조조정 등 고용불안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고용안정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며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리해고 최소화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174페이지에는 “고용안정을 우선으로 하면서 기업경쟁력을 회복하는 일자리 지키기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다시 한 번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강조했다. 당시 노동계도 이 공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리해고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해고요건을 강화”하고, “해고자 선정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 권고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 근로자를 해고하라는 가이드라인 제정은 부적절하다. 근로자 대표와 협의를 통해 각 사업장의 현실에 맞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인권위 권고를 거부했다. 결국 가이드라인은 만들지 않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구체화하는 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정부는 이렇게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것에 미온적이었지만 지금은 대선 공약집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일반해고’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반해고는 9월13일 노사정 합의안에서 ‘추가협의’하는 것으로 보류됐지만, 이미 고용노동부는 연내 완료를 목표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불합리하게 이뤄지고 있는 일반해고를 대법원 판례에 맞춰 정당하게 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지,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해 정리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 했던 인권위 권고를 거부한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를 위해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재계 요구 대거 수용… ‘대기업 노동유연화 법’ 비판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선전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의 실체는 노동자가 아니라 대기업, 재벌 챙겨주기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가 공약 파기의 문제를 넘어서 노동의 문제를 완전히 자본적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노사정 합의안과 새누리당 노동5법을 두고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는 반면 경제계는 환영하고 있다. 그동안 재계에서 요구해온 것들이 대부분 반영됐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12년 5월 ‘청년실업과 세대간 일자리 갈등에 대한 인식조사’를 살펴보면 정년연장에 따라 청년실업이 늘어날 것이라며 청년 일자리를 위해선 법정 해고요건 완화 등 선행조건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정부여당이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내세우는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정부여당은 노사정합의안과 새누리당 법안을 통해 경총이 내세웠던 1위부터 5위까지의 선행조건을 모두 받아줬다.

2015102203_03

전경련의 경우에는 ‘2014 규제개혁’ 이라는 재계의 요구를 담은 건의사항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 가운데는 고용노동부에 요구하는 사항으로 ‘정당한 해고 사유 명확화(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 불이익 요건 완화’ 등이 있었는데, 이 역시 그대로 반영됐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벌들이 곳간에 쌓아둔 돈은 그대로 남겨둔 채 노동자들의 목만 비튼 격”이라며 “일반해고의 경우 이미 관행적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 받겠다라는게 재계의 바람이었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정부가 들어준 것이다. 이를 두고 ‘대기업 노동유연화법’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도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이들의 투쟁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이렇게 낮은 노조 조직률마저 깨부수고 70년대 새마을 운동 시절로 노동시장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정부와 기업의 욕구가 담긴 것이 이번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비판했다.

2015102203_04

이같은 비판은 청년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취업준비생인 김태훈 씨는 “사내유보금도 쓰지 않는 기업들이 임금피크제 등에서 아낀 돈을 청년들 일자리를 위해 쓸 것 같지 않다”며 “산업 전반적인 구조가 먼저 바뀌어야 일자리가 늘어나지, 노동시장 개혁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목, 2015/10/22- 19:55
431
0
BBC,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 보도 – 법원, 정부의 시위 금지령에 대해 부당하다고 판결 – 민주주의 수호하려 수만 명 운집 영 BBC는 서울광장에 모인 5만여 명의 시민들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고 노동개악 저지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외치며 벌인 제2차 민중 충궐기 대회 소식을 5일 보도했다. 기사는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한 ...
일, 2015/12/06- 16:21
43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