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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헬조선 시리즈 1 –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가난해진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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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헬조선 시리즈 1 –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가난해진 노동자들

익명 (미확인) | 수, 2015/09/23- 19:00

얼마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담화를 통해 ‘노동 시장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다며 독일의 사례를 내세웠습니다.

독일은 노사간 협력관계 구축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의 개혁을 이뤄내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유럽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中-

박근혜 대통령의 이 말이 정말 맞을까요? 고용을 늘리는데 성공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늘어난 일자리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독일 사례는 이른바 ‘하르츠 개혁’이라 불리는 것으로 과거 슈뢰더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입니다. 골자는 간단합니다. 기존에 아르바이트 정도로 취급되던 월 소득 450유로 미만(한화 약 59만원)의 ‘미니잡’을 양성화하여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급여는 정부가 보충해 주고 소득세와 사회보장기금 납부를 면제해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정책으로 인해 ‘미니잡’ 종사자들은 늘고, 실업률도 낮아집니다. 하지만 문제 역시 발생합니다. 기업의 고용부담을 줄여줘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기업의 정규직 고용 의무를 없애고 대신 시간제나 파견제 같은 질 낮은 일자리로 채울 수 있는 고용의 자유를 기업에게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선 당연히 임금이 싸고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고용율은 올랐지만 일자리의 질은 나빠지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취업은 했는데 노동자는 더 가난해지게 되는 것이죠. 당시 창출된 신규 일자리 중 정규직은 15%에 불과한 반면, 저임금 직종은 무려 85%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일자리’를 마냥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1년 이상 재취업 하지 않거나 이유 없이 취업을 거부할 땐 하르츠 법에 의해 단계적으로 실업 급여가 삭감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억울한 게 청년들입니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이다 보니 일단 취업 후 경력을 쌓는다고 해도 옮겨 갈 ‘더 나은 일자리’가 드뭅니다. 한번 미니잡을 시작하게 되면, 계속 미니잡을 전전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미니잡’이 청년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 했던 정부의 장담과 달리 미니잡은 처음부터 한계가 명확한 ‘끊어진 사다리’였던 셈입니다. 결국 독일 정부는 하르츠 개혁의 부작용으로 늘어난 워킹푸어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 8.5유로 최저 임금제 도입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독일 사례를 내세우며 대한민국 정부가 외치는 ‘노동 개혁’은 과연 어떨까요? 하르츠 개혁의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개선된 안을 추진하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그 반대입니다. 나쁜 신규 일자리를 양산했던 하르츠 개혁의 부작용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멀쩡하게 좋은 일자리를 이미 갖고 있는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규 일자리만이 아니라 기존 좋은 일자리까지 나쁜 일자리로 만드는 ‘개악’입니다.

원래 하르츠 개혁은 ‘기존 취업자 해고’가 아니라 실업급여만 받고 일을 안 하는 ‘현재의 미취업자들’이 취업에 나서도록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입니다. 미니잡이라도 선택하면 부족한 급여는 정부에서 채워줄테니 취업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노동 개혁’은 기존 정규직들을 좀 더 쉽게 해고한 후, 그 일자리를 임금이 낮고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이나 파견직 같은 나쁜 일자리들로 쪼개서 청년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르츠 개혁과 발상과 의도 자체가 전혀 다릅니다.

게다가 하르츠 개혁은 미니잡의 낮은 임금을 정부에서 보충해 줍니다. 실업수당을 삭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일은 연간 75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합니다. GDP대비 사회 복지지출 역시 27.2%인 그야말로 ‘복지 국가’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GDP대비 사회복지지출이 10.4%로 OECD 28개국 중 28위입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재계에서는 기존의 사회복지까지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쉽게 해고를 하는 것에 나아가, 해고된 이들에게 제공되는 복지까지 축소하자는 말인데요. 국민들은 살든지 죽든지 각자 알아서 하라는 말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정부와 재계가 공조하여 추진하고 있는 ‘노동 개혁’은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지옥 같은 대한민국’ , 즉 ‘헬조선’으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경영자총협회는) 건강보험은
‘필수적 급여’ 중심으로 재편하고…

사소한 질병은 개인들이 알아서
치료비를 부담하고…

노후보장은…개인연금을
더 많이…

건강보험에 대한
부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국민연금의 고갈을 막기 위해
실수령액을 더 줄여야…

고용보험은 육아휴직급여 지출을 줄이고
산재요양 기간의 장기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쉬운 해고도 모자라 사회보험 축소까지 주장하는 재벌(경향신문 2015.9.21)-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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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벌인 4대강 사업은 ‘녹조 라떼’라는 오명 만을 얻은 채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4대강 사업에 대한 평은 썩 좋지가 않죠. 하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은 좀 다릅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계천 복원 사업일 겁니다. 맞습니다. 대체적으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여전히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청계천 노점상들은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노점상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성동공고 뒤편에 자리 잡았던 청계천 노점상들은 강제 철거로 집기류를 모조리 압수당했습니다.

 

좀 더 살펴볼까요? 2003년 청계천 노점상들이 청계천에서 강제 철거된 후 이주된 곳은 대략 3곳입니다. 동대문 운동장, 동묘 벼룩시장, 성동공고 근처 이렇게 말이죠. 그 중에서 900여 명의 노점상들이 이주했던 동대문 운동장은 현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럼 노점상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또 집단 이주를 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 59세의 노인 노점상은 오른쪽 눈 안쪽 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기까지 합니다. 용역업체 직원에게 벽돌로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노점상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 잘 소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평가가 가능했던 게 말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언론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사람들이 청계천 복원사업의 실체를 잘 모르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본 편에서는 바로 그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이유가 4대강과 청계천 복원 공사의 결정적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4대강 사업은 그야말로 소수 건설사들 배를 불려주기만 한 반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주변의 평범한 영세 상인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갔다는 것이죠.

실제로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주위 상권은 급격하게 확장이 됩니다. 산책을 하러 오는 이들이 늘어 음식점이 호황을 맞게 되고, 덩달아 주위 건물들의 분양가도 상승을 합니다. 일부 도매상들의 경우 소매상들과 달리 이익을 기대했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청계천 복원 공사 덕에 적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 이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청계천 복원 사업의 ‘성공 이유’는 생태니 뭐니 하는 게 아니라, 상권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 온 서민들의 재산증식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이 이명박에게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왜 그에게 압도적인 표를 던졌던 것인지 이해가 갑니다. 지금은 역대 대통령 인기도 조사에서 거의 꼴지를 달리고 있지만 그는 분명 사람들이 무얼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서울시장 시절과 달리 대통령이 된 이후엔 소수의 이들에게만 원하는 걸 이루도록 해줬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서 물러났으니, 이명박에게 사람들이 투사했던 무언가도 함께 사라졌을까요? 그가 인기가 없는 전직 대통령이니 서민들이 바랬던 그 무언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걸까요? 서민들이 바라는 그 무언가가 과연 이명박 시장 혹은 대통령 시절에 새롭게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무언가를 바라는 게 꼭 나쁜 것일까요?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만약 그게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걸 얻기 위한 방법이 노점상과 같은 가장 힘없는 이들의 것을 빼앗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요?

청계천 복원사업으로부터 이미 1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과 얻어야 할 답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만드는 내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로부터 단 한 걸음도 내 걷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더불어 ‘다른 방법’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 시절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수, 2015/08/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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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가 전성기였던 1989년, 한 명의 신인가수가 등장합니다.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모범생 같은 앳된 외모. 하지만 그가 들고 나온 감미로운 발라드 ‘텅 빈 마음’은 변진섭과 이문세 같은 쟁쟁한 발라드 가수의 히트곡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이에 기세를 몰아 1집은 물론 2집과 3집까지 차례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당당히 유명 발라드 가수 대열에 오르게 됩니다. 수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가 된 것이죠. 하지만 그는 기존 스타들과는 좀 다른 길을 선택 합니다. 가수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 출연을 고사하고, 당시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없던 ‘공연장’으로 향한 것이죠.

“방송국 앞에는 팬들이 두 줄로 서 있고,
그 앞으로 차가 들어와 가수들을 모셔갔다.
거기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쭐거리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 선택이 현재 가수 이승환의 진짜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TV 스타’라는 편안한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한 이승환은 공연 위주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나아가 직접 제작사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은 남김없이 다시 음악에 투자합니다.

음악에 집중하고 더 좋은 품질의 음악을 만든다는 면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활동이지만 ‘마케팅’이란 측면에선 충분한 수익이 보장되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실제로 그가 차린 회사는 파산 직전의 상황에 반복적으로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고수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무리다,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마치 ‘독짓는 늙은이’처럼
그렇게 만들어 왔고,

그는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명석-

그렇게 무려 26년이란 긴 시간이 흐릅니다. 그 사이 그는 11장의 정규앨범과 무려 1,000회 이상의 단독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방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냅니다. 특히 그의 공연은 음악을 선보이는 일반적인 콘서트를 넘어서서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같다는 극찬을 받게 됩니다. 그로 인해 데뷔 초기 붙여졌던 ‘어린 왕자’라는 별명은 어느덧 ‘공연의 신’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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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체를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로 끌어올린 음악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성환-

이젠 누가 봐도 자신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룬 그였지만, 그의 마음 속은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언젠가부터 일과처럼 생긴 ‘분노’를 인식했고 그걸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자신들도 더 잘 살게 될 줄 알고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찍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가수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누구라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느낌을 모든 가수가 음악 활동으로 표현하는 건 아닙니다. 자칫 자신의 음악 활동에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합니다. 그가 26년간 늘 서 있었던 ‘무대’ 위에서 말이죠.

실제로 그는 2009년 용산 참사 유가족을 위한 콘서트, 2012년 방송3사 공동 파업 집회 등 여러 집회 공연 무대에 오릅니다. 더불어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자 그를 아끼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혹시라도 그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런 말들을 들으며 오히려 왜 이런 걸 겁내야 하는 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몇 번 이런 자리에 섰었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이상하게.. ‘그거 하면 너 이상해질지도 몰라’하면서.. 그러면서 사실 저도 많이 겁났습니다. 무서웠고. 그런데 순간 생각해 보니까 왜 내가 겁나야 하고, 무서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박수치시지 마시고… 왜냐하면 지금도 무서워요.”
-2012년 방송3사 공동 파업 집회 발언 중-

어쩌면 그는 정말 무서워해야 하는 것에 무서워하려 애쓴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알아채게 됩니다. 300여명의 국민들을 구하지 않은, 그리고 그에 대해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자신이, 그리고 국민들이 살고 있다는 진짜 무서운 현실을 알아채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참 불쌍한 국민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가가 우릴 지켜주지 못하는
혹은 지켜주지 않는

어떤 일에도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는
그리고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하지 않으려는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이상한 곳임을 알아채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집회 발언 중-

늘 그러하듯 그는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의 무대에 오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나아가 단식에까지 동참합니다. 하지만 1년여의 시간이 지나도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월호 참사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히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는 ‘면목 없는 어른’으로서의 자괴감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먹먹한 마음입니다. 우리 정말 가만히 있었구나,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이 돼 버렸구나 라는 생각 때문에 유가족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특히 여기 와 있는 많은 어린 친구들, 학생 여러분께 면목 없는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행사에서 이승환-

하지만 그는 자괴감에 매몰되지 않고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곡을 직접 만듭니다. 더불어 해당 곡을 다른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기를 바란다며 해당 곡에 대한 저작권 포기를 선언합니다. 신곡과 그 곡의 저작권이면 가수가 가진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별이 된 아이들을 그리고
또 기리는 마음에
<가만히 있으라>를 만들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는데,
세월호의 슬픔을 공감하는데
뜻을 같이 하는 분에게는

이 곡의 지적재산권을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런 그를 모두가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그를 발라드 가수로만 알고 있는 분들의 경우 다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일부지만 혹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의심어린 눈초리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시선에 문제를 제기 합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제 상식을 얘기하면 정치인 하려고 그러는 거란
편협하고 조잡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겁니까?

연예인 이야기는 시시콜콜 그렇게들 하시면서 왜 정작 먹고 사는
아니 죽고 사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하는 겁니까?”
-이승환 페이스북-

더불어 자신을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과 팬들에게도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이 자리에 선다고 하니까 주위 분들,
특히 팬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

왜 걱정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유치하거나
경직된 나라가 아니다.(관객들 웃음)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람의 도리,
가수의 도리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거니 팬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용산 참사 유가족 자선 콘서트 중-

‘도리’라는 말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이란 의미입니다. 오래전 가수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른길을 위해 방송국 대신 TV를 택했던 그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을 위해 지금의 선택들을 해 나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두 가지가 26년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좁혀져 이제 하나의 길로 합쳐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하는 사람, 이승환’ 안에서 말이죠.

‘음악 하는 사람은 세상과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수 이승환-

수, 2015/10/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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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언론에서 오바마의 노조지지 발언이 여러차례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9월 8일 노동절 연설에서는 매우 노골적으로 노조 가입을 권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2015년 9월 8일 노동절, 오바마 연설-

발언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한 나라의 대통령,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 발언치고는 낯선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오바마가 노조 지지를 부르짖는 데는 오래된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미국의 ‘노조 역사’가 그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노조의 역사는 미국 ‘중산층’의 역사와 일치합니다. 노조가 흥하면 중산층도 흥했고, 반대로 노조가 쇠락하면 중산층도 쇠락의 길을 걸었죠.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노조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노조의 임금인상 노력을 통해 중산층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더불어 흔히 ‘사내 복지’라고 불리는 주택, 대중교통, 의료시설 확충 등에 애쓰는 노조의 활동 역시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에 도움을 주게 되죠.

하지만 1981년 이러한 노조 활동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미국항공관제사 노조(PATCO)의 파업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레이건이 ‘참가자 전원 해고’라는 초강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레이건은 불과 파업 4시간 만에 레이건은 다음과 같은 경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48시간 내로 돌아오라.
그렇지 않은 관제사는 모두 해고되며,
재고용은 없다.

그리고 정확히 48시간 뒤 복귀하지 않은 관제사 11,345명은 전원 해고 처리 되고 그들이 일하던 자리엔 대체인력이 투입 됩니다. 미국 노조사에 그야말로 획을 그은(?) 사건이었죠. 특히 미국항공관제사 노조는 과거 대선에서 레이건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그 충격 여파는 미국 모든 노조에 급속하게 전파 됩니다.

이후 미국 노조는 자연스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동시에 미국의 중산층 역시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노조 가입률은 떨어지고 중산층 비율도 함께 떨어지는 것이죠. 반면 상위 10% 소득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일반 근로자 대비 대기업 총수들의 수익이 1965년 20배에서 2013년엔 무려 296배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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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 ‘쇠락한 중산층’의 회복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당연히 중산층 쇠락의 주요 원인인 쇠락한 노조의 회복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노조의 쇠락을 그대로 둔 채로 중산층 회복을 이룰 수는 없음을 미국의 역사가 증명하고 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사회가 처한 빈부 격차 증가와 양극화 그리고 중산층의 몰락은 노조의 쇠락과 맥을 함께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언론들은 노조 부흥을 이야기하기는커녕 노조를 여전히 경제 성장의 걸림돌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심지어 여당의 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만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되었을거라며 노조 혐오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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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고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언론은 드뭅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치 노조가 없어지면 행복해질 것처럼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노조가 없으면 파업도 없을 것이고, 파업이 없으면 대기업이 성장할 것이고, 대기업이 성장하면 국가 경제도 성장해서 그 덕에 자신도 부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게만 되면 하늘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부가 뚝 하고 떨어질까요? 그에 대한 답은 오바마의 발언으로 대신해 봅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에서는,
이 나라를 성장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은
백만장자, 억만장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금융기관과 오염원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고 하늘만 올려다보면서 어딘가에서
번영이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식이다.

-2015년 9월 8일 노동절, 오바마 연설-

수, 2015/11/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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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수저 계급론’이라는 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들의 계급 역시 결정된다는 걸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로 나눠 풍자하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일부 언론들은 청년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부모 탓’을 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정말 청년들이 부모 탓을 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상속이나 증여가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율을 살펴보면 1980년대엔 27%에 불과하던 것이 2000년대엔 무려 42%로 치솟습니다. 계층 상향 이동성의 경우도 24개국 중 20위를 기록하여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개인적 노력을 통해 계층 상승일 이루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처럼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재력이 성공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라는 게 객관적 수치로 증명됩니다. 수저계급론은 부모 탓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구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반응입니다. 객관적 수치를 제시해도 청년들의 노력부족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 기성세대, 특히 장노년층이 젊은 시절의 경제 현실과 지금의 경제 현실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경제가 고속성장을 하던 시절엔 가난한 이들에게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비록 절대적 빈곤 상태였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게층 상승을 이룰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에겐 당연히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노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저성장이 고착화된 현재엔 성공의 기회는커녕 일자리 자체가 부족합니다. 애초부터 ‘기회’ 자체가 제한되어 노력 여부와 상관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극도로 제한됩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청년들에겐 ‘노력’의 의미가 기성세대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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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상속세를 깎아주려 지속적으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소위 ‘효도법’과 ‘명문장수기업’에 대한 기업상속 공제가 그것입니다.

먼저 효도법은 10년 이상 부모와 함께 살면 5억 이하의 주택 상속세를 면제해준다는 게 골자입니다. 얼핏 들으면 정말 ‘효도’를 위한 법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이 법을 현행법과 함께 적용하면 최대 15억 주택까지 면제가 가능합니다. 15억 짜리 주택을 소유한 이들이라면 최소한 ‘중상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5억에서 10억 미만 주택의 73.9%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6억 초과 20억 이하 주택의 53%는 강남 3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즉, 전체 국민중 상위 2%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법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명문장수기업’ 세액 공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명분이야 오랜 가업을 이어온 명문장수기업을 육성해주는 거라 하지만 법 개정의 주요 골자는 세액 공제 한도를 현행 최대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상속세가 상당히 줄어들어 부의 대물림이 보다 강화됩니다.

부모의 재력이 과거에 비해 자녀의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세태는 영화 속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고속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와 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베테랑의 ‘배 기사’는 모두 가난한 처지이지만 덕수는 노력을 통해 자수성가를 하고 ‘배 기사’는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다 살해당하고 맙니다. 국제시장이 가난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베테랑이 경제가 더 성장한 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재벌을 응징하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은 이러한 시대 변화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2013년 KDI ‘행복연구 조사’의 결과를 소개합니다. ‘수저 계급론’에 대한 이견은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세대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악화된 ‘시대 갈등’이 본질이라는 걸 세대를 넘어서 공감했으면 합니다.

‘성공은 운이나 연줄보다는 노력이다.’
75.5%
(60대 응답자)

‘성공은 운이나 연줄보다는 노력이다.’
51.2%
(20대 응답자)

수, 2015/12/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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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희망’이란 화두로 접근을 해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올 한해 나왔던 대부분의 뉴스들이 ‘절망’적인 것들이라 뉴스타파 미니다큐만이라도 뭔가 좀 희망적인 내용을 담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찾은 두 가지 아이템이 백남기씨와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입니다.

언뜻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누워계신 백남기씨와 구조 후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는 물론 정부의 법적 책임 전가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민간 잠수사들은 ‘희망’과는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백남기씨와 민간잠수사들이 현재 처한 ‘현실’은 분명 절망스럽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분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젊은 시절을 데모와 맞바꾸고, 이후에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평생을 농민으로 살아온 백남기씨의 변치 않은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떤 희망을 느낍니다. 세월호 민간 잠수사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 현장에서 그 분들은 유가족들에게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요. 참 잔인한 일이지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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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 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사과를, 반드시 해야 할 이들이 하지 않은 사과를 바로 이 분들이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을 좀 더 낫게 바꾸려 그토록 싸운 분이 충분히 못 바꿨다고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합니다. 목숨을 걸고 바닷속에서 아이들을 건져 올렸던 민간 잠수사들이 실종자 모두를 구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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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자신에게 주어진 무언가를 ‘소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민주화 투쟁’이든, ‘생명을 구해내는 것’이든 결코 외면하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아마도 그런 소명은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어차피 세상이 바뀌어봤자지…라거나, 이미 다 죽었을텐데 구조는 무슨…이라고 생각했다면 소명을 느낄 일도, 미안해할 일도 없었겠지요.

그런 그분들에게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뉴스타파 미니다큐는 2015년을 마무리해 봅니다.

수, 2015/12/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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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집회에 나와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향은 대한민국의 어느 곳이 맞지만, 그 분들이 실제로 터를 이루고 산 곳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정착하게 된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타국입니다.

대부분 10대 중반에 끌려갔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가 60대 후반이니, 할머니들의 타국 생활은 50년이 훌쩍 넘습니다. 채 20년도 안 되는 한국 생활과 비교가 안 되는 긴 기간입니다. 타국이라기보다는 그곳이 할머니들에겐 사실상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곳엔 50여 년을 함께 한 가족들이 있습니다. 정든 이웃들도 많습니다. 할머니들은 그런 가족들, 이웃들을 뒤로 하고 한국에 홀로 귀국을 한 것입니다. 말이 귀국이지 할머니들 입장에서 보면 ‘정든 고향’을 남겨두고 ‘낯선 고국’으로 떠난 셈입니다. 더구나 귀국의 이유도 평생을 상처로 가슴에 품고 살았던 이야기를 만천하에 공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의 제목은 ‘할머니들의 용감한 귀국’입니다.

저번 때 중국에 가니까 이웃들이
할머니, 한국에 가지 말라니까, 자꾸 가더만 테레비 보니까
할머니 이렇게 이렇게 (주먹을 들고 구호 외치는 흉내를 내고 웃으며) 하더만
그 주먹질 하자고 갔느냐고 하잖아.
– 이옥선 할머니(88) –

이 정부를 위해서 아들 딸 놔두고
나도 여기 나와서 있어.
그렇지만은 이거는 내 쪼끄만 가정이고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
나라가 없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재미가 있나.
– 강일출 할머니 –

수, 2016/01/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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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 총리에 오른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주류 언론을 완전히 장악한 후, 이를 바탕으로 기득권 보수 우파의 장기 집권을 착실하게 마련해 나갑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무슨 대단한 비책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정부의 실정에 대해 언론이 철저하게 침묵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더불어 국민들의 관심을 비정치적 영역으로 돌려놓는 것을 병행합니다. 반민주적인 정권이 늘 사용하는 익숙한 방식입니다. 효과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 때 국민들의 분노를 신랄한 정치 풍자로 해소해 준 한 명의 코미디언이 있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베페 그릴로’입니다. 과거 TV에서 전 총리를 비판했다가 퇴출을 당했던 사람이죠. 그는 이후 TV 밖에서 공연 등을 통해 시민들을 직접 만나며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언론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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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0년 블로그 개설을 기점으로, 베페 그릴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 때부터 베페 그릴로와 그의 블로그는 단순히 팬덤 성격을 넘어 기성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이는 포스트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죠.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에서 서로를 알게 된 사람들은 어느덧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고, 각 지역별 단위 모임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2005년에는 전국적 그룹 활동으로 급성장을 합니다. 급기야 2년 뒤인 2007년엔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그릴로와 함께 무려 200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2008년 총선에서 베를루스 코니에게 3선 총리의 자리를 내어주고 맙니다.

결국 베페 그릴로와 그의 친구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데요, 그것이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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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는 거칠게 요약하면 대의민주주의와 미디어 정치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이는 거꾸로 말해 대의된 체제 상층부와 언론을 장악하면 민의를 좌지우지 하거나, 심지어 민의에 반하고도 권력을 장악 및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변화시키려면 이미 장악된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으론 부족하고,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거나 제도권 언론의 힘을 빌지 않고도 공론의 장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와 같은 정치 운동이 시도되었었는데요, 오성운동 역시 그러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단 1부에서는 오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현실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흥미로우실 겁니다.

수, 2016/05/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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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와 좌절감은 대개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시작된 오성운동은 오히려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인터넷과 베페 그릴로라는 유명 인사였습니다.

베페 그릴로의 블로그는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으로 모아내는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블로그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더니 2009년 10월엔 급기야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정당을 만듭니다.

정당 ‘오성운동’은 기성 정치권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국민들, 즉 자신들에게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목표 다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1. 공공수도
2. 인터넷 접속권리
3. 지속가능한 교통수단
4. 지속가능한 개발
5.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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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하는데, 역시 이데올로기를 떠나 일상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제도권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다수입니다.

‘국회의원 임금을 일반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삭감’
‘국회의원 2선까지만 허용’
‘국회의원들에게 헌법교육 및 시험 의무화’
‘전 국민 인터넷 무료 사용’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근로시간 20시간으로 단축’

당연히 기성 정치권은 좌우 가릴 것 없이 오성운동의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정책들이 일부 어설픈 지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정책들은 인터넷을 통해 3년간 이어진 토론과 투표, 나아가 전국 1,000여 개의 지역 모임 50만 명의 참여자들이 토론과 투표의 결과입니다. 기성 정치권이 흔히 이야기하는 ‘국민들이 정말 원하는’ 정책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정책들을 만든 오성운동 당원들은 2013년 총선 정당 후보로 직접 나섭니다. 인터넷을 통해 입후보한 예비 후보들은 역시 인터넷을 통한 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로 선출이 됩니다. 그리고 선거 결과 놀랍게도 870만 표(전체 유권자의 1/4)를 획득합니다. 무려 163명이 국회의원에 당선이 됩니다. 스튜어디스, 싱글맘, 남자 간호사, IT 기술자 등 정치 경험이 없는 30~40대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당선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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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경험이 없다 보니 기성 정치 안에서 미숙한 모습을 자주 보이게 됩니다. 총선 이후 언론으로부터 모호함, 부적절함, 무능력함 등에 대해 지적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성운동은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직접 민주주의’라는 방식을 동원해 성공을 이뤄낸 대표적인 운동임에는 분명합니다.

기득권 정치세력이 거대 미디어를 장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민 여론을 호도하여 장기집권을 도모하는 방식은 이탈리아만의 사례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08년 소위 ‘미디어 악법’을 통과시켜 유사한 방식의 전략을 구사했던 사례가 존재합니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도 합니다.

이 때 인터넷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유통시켜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됩니다. 이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과 같은 의견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하고 용기를 내게 됩니다. 오성운동은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까지 나아갔습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은 다름 아닌 ‘직접 민주주의’ 강화라는, 사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해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참여다.
대표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터넷 댓글 중에서

수, 2016/06/0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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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방송 수호를 위해 MB정권의 낙하산 사장 선임에 맞서 싸우다 해고됐던 YTN 기자들이 해직 3천일을 맞았습니다. YTN과 MBC 등 해직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진혁 감독의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1월 12일 개봉합니다.

금, 2016/12/2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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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웅, 권성민, 박성제, 박성호, 이근행, 이상호, 이채훈, 정대균, 정영하, 최승호(이상 MBC), 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 현덕수(이상 YTN), 조상운, 황일송(이상 국민일보), 이정호(부산일보), 정찬흥(인천일보), 이은용(전자신문).

이들은 이명박근혜 정부 기간동안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다 부당하게 해고된 언론인들이다. 일부는 지리한 법정 다툼 끝에 승소해 복직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많은 언론인들이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김진혁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정부의 언론 장악 과정과 이로 인해 붕괴된 저널리즘을 담았다. 특히 공영방송 MBC와 YTN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이 벌인 투쟁의 역사가 반영됐다.

지난 2012년 KBS·MBC·YTN·연합뉴스·국민일보의 연대파업은 그동안 권력과 자본 앞에 고개를 숙였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었다. 파업이후 상황은 더 악화됐고, 이명박근혜 정부 7년간 한국의 언론자유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해고자 21명을 포함해 정직, 감봉, 대기발령 등 모두 470여명의 언론인이 징계를 받았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난해 4월 발표한 ‘2016 언론자유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33점으로, 조사 대상 199개 국가 가운데 66위를 기록했다.

 4일 현재 해고 3013일째를 맞은 현덕수 기자는 지난 3일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YTN의 파업 투쟁은 우리가 공정한 보도를 계속 할 수 없다는 부끄러움에서 시작됐다”며 “해고된 지 8년 3개월이 지나도록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제가 이 직업을 택한 업보라고 생각하고 파업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은 “요즘 MBC를 향한 국민들의 비난이 아주 거세다. 거셀수록 꼭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며 “MBC와 YTN이 마봉춘, 윤택남의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언론인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취재 : 황일송, 김도희(연수생), 유승현(연수생)

촬영 : 정용훈

편집 : 박서영

 

수, 2017/01/0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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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ly_head

그리스가 지난 6월 30일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상환하기로 한 15억 유로를 갚지 못해 사실상의 디폴트에 빠졌습니다. 그리스는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안을 놓고 오는 5일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그리스 사태가 워낙 전세계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각국의 모든 언론이 원인과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언론에서만 다른 나라 주요 언론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독보적인’ 기사가 눈에 띕니다.

조선일보의 그리스 특파원이 썼다는 기사’입니다.

7월1일자 조선일보 그리스 특파원 기사

▲ 7월1일자 조선일보 그리스 특파원 기사

3백조 원이라는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복지에 과도하게 돈을 쓰다보니 파산을 맞게 됐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 채권단의 긴축안에 반대해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의 분노가 곱게 보이질 않습니다. ‘공짜복지를 즐길 땐 언제고 이제와서 저 야단이야?’라고 여기게 됩니다. 이 기사는 친절하게 다음과 같은 그래픽도 덧붙입니다.

7월1일자 조선일보 기사 중

▲ 7월1일자 조선일보 기사 중

하지만 아무리 위의 8단계를 들여다 봐도 그리스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명쾌하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해외 유력언론들은 어떻게 분석하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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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전문채널 CNBC는 이 모든 것이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한 2001년 1월에 시작됐다고 단언합니다. 들어올 자격이 없는 나라가 들어옴으로써 단일통화 시장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는 자국 통화인 드라크마를 버리고 유로 단일통화를 적용하는 12번째 나라가 됐다.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스는 경제가 건강하다는 표시를 보여줘야 했다. 재정 적자가 GDP의 3%를 초과하면 안되었고 국가 부채는 GDP의 60%를 넘지 않아야 했다. 유럽통계기구 유로스타트가 나중에 분석한 결과 1999년 이후 그리스는 이 조건을 한 번도 충족하지 못했다.
-미국 경제전문 채널 CNBC <그리스 타임라인:모든 것은 2001년에 시작되었다>

유로존 가입 직전인 2000년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3.7%, 국가 채무는 GDP 대비 100%였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그리스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럽 채무 위기의 진앙지가 됐다.
그리스는 수년 동안 적자 수치를 낮춰서 공표해왔다고 2009년 10월 발표했다.
그리스는 더이상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됐고 파산위기에 빠졌다.
-6.30 뉴욕타임즈 <그리스 채무 위기 해설>

국가 재정을 ‘분식 회계’했다고 자인하는 순간, 그리스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길로 들어섭니다.

새로 선출된 좌파 총리 파판드레우는 2009년 재정적자가 앞선 우파정부가 예상했던 GDP대비 3.7%보다 4배 가까이 많은 12.7%가 될 것이란 점을 인정했다. 그리스 국채를 매입해서 그리스 정부에 돈을 빌려줬던 이들이 깨달은 것보다 더욱더 그리스 재정은 어려운 처지가 됐다.
-6.30 미국 인터넷언론 복스 <그리스 사태:당신이 주저하는 9가지 질문>

그리스의 신용등급은 유로존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그리스에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결국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에 시달리던 그리스가 어떻게 유로존 가입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을까요? 이 역시 해외언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2002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와 100억 달러 규모의 달러 및 엔화 표시 채권을 스와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채무는 국가 채무에 잡히지 않았다…이 이종통화 스와프는 어느 순간이 되면 이미 부풀어 오른 채무를 더 팽창시킬 것이다
-2010.2.8 유럽 최대 주간지 독일 슈피겔, <그리스 채무 위기 : 골드만삭스는 어떻게 그리스가 채무를 감추는 것을 도왔나>

그리스가 발행한 국채 100억 달러를 골드만삭스와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해 유로화로 바꾸는 방법으로 부채 규모를 줄였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자 수치를 2% 정도 줄이면서 유로존 가입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슈피겔의 기사대로 이 계약은 결국 그리스에 재앙이 됐습니다.1999년부터 2010년까지 각각 5년씩 그리스의 공공부채관리청장을 맡았던 두 사람이 실토했습니다.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 조건을 맞추기 위해 골드만삭스와 계약했는데 당시 정부는 무엇을 사고 있는지 그에 따른 위험과 비용을 판단하는 데 부족했다. 그리스는 28억 유로를 빌리는데 6억 유로의 비용을 지불해야했다.이는 2001년 골드만삭스가 증권거래와 자본투자에서 올린 실적의 12%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28억 채무는 2005년까지 두 배 가까운 51억 유로로 불어나 있었다. 골드만삭스와의 계약은 시작부터 실수였다.
-2012.3.6 블룸버그 <고객이 망하면서 골드만의 그리스비밀대출이 두 죄인을 드러내다>

그리스 사태는 무리하게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 그리스 정부가 골드만삭스와 맺었던 파생상품 계약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것입니다. 골드만삭스에는 엄청난 수익을 안겼지만 국가채무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터지자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결국 국제구제금융을 받게 됩니다.

오랜 긴축정책으로 고통받는 그리스. 출처:구글

▲ 오랜 긴축정책으로 고통받는 그리스. 출처:구글

그렇다면 그리스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았는데 왜 회생하지 못했을까?

구제금융이 그리스의 재정을 안정시킬 것으로 기대됐지만 대부분의 돈은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그리스의 채무를 갚는데 사용됐다. 5년 동안 경제규모는 1/4만큼 축소됐고 실업률은 25%를 넘어섰다. 경제가 궤도에 오르지 않으면서 정부는 아직도 채무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6.30 뉴욕타임즈 <그리스 채무 위기 해설>

구제금융의 조건이었던 긴축정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스가 자국통화를 사용하고 있다면 돈을 찍어내고 환율정책을 쓸 수 있다. 화폐가치를 평가절하하면 국제수지가 개선돼서 국내 생산과 고용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떨어지면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럽 단일통화에 묶여 있다보니 그리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인상하면서 국민들에게는 높은 실업률을 견디라고 하는 일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0.2 파이낸셜 타임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펠드스타인 교수 기고문 <그리스가 유로존을 벗어나게 하라>

예산 삭감과 세금 인상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막대한 탈세는 국가 재정 파탄의 주범이었습니다.

금융위기 와중에 세금을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의 악명높은 세금체계의 비효율성을 고치는 것은 어려웠다. 일례로 그리스에는 6가지의 다른 부가가치세율이 있다. 보통은 23%인데 도서지역의 경우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감면세율을 적용한다. 이게 많은 경우 세금 회피를 가능하게 한다. -전 그리스 국세청장
-6.22 영국 BBC <그리스는 어떻게 이런 혼란에 접어들게 되었나>

탈세 때문에 1년에 3백억 달러씩 공공 재원을 손해보고 있다. 고소득층이 보유한 수영장에 대해 세금을 걷기 위해 위성 사진으로 조사했더니 16,974개의 수영장이 나왔는데 세무당국에 신고한 사람은 324명 밖에 되지 않았다.
-6.19 블룸버그뷰 <그리스를 가게 하라>

2010년 살펴보니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다양한 세무서가 운영되고 있어 심각한 부패 문제가 존재했다. 특별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큰 기업들은 세금을 회피하기가 너무 쉬웠다.
-2.14 영국 가디언 <그리스는 탈세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스의 연금제도를 놓고도 복지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하면서 오늘의 금융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하는 국내 언론이 많습니다. 물론 독일같은 채권국들은 그리스에 대해서 연금제도 개혁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이지 그리스의 연금제도로 인해 구제금융사태가 일어났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2012년 통계를 보면 그리스는 GDP의 17.5%를 연금으로 지출해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연금수혜자의 45%는 빈곤한계선인 월 665 유로보다 적게 받고 있다. 더우기 국민 4명당 1명 꼴인 실업자들 중 상당수가 연금을 받는 은퇴한 부모나 조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6.16 영국 로이터 <그리스 파라독스 : 고비용의 연금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인층은 파산했다>

GDP 대비 연금지출액. 출처:유로스타트

▲ GDP 대비 연금지출액. 출처:유로스타트

그리스의 GDP 대비 연금지출 비율은 유로존 내에서 최고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 사태로 GDP가 큰 폭으로 줄어든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65세 이상 노인 비중은 20%로 유로존에서 가장 높다.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연금지출액을 보면 유로존 평균 이하다.
-2.27 월스트리트저널 <그리스 연금은 그렇게 후하지 않다>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연간연금지출액. 출처:유로스타트,WSJ

▲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연간연금지출액. 출처:유로스타트,WSJ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유로존 국가로서의 신용도 상승 효과와 평가절상된 화폐가치를 이용해 금융위기 전까지 좋은 시절을 누려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세계 주요언론 가운데 그 어느 곳도 그리스의 금융위기가 지나친 복지포풀리즘과 이로 인해 나태해진 국민때문에 발생했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곳은 없습니다. 심지어 그리스에 빌려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한 나라의 언론도 말입니다.

끝으로 통계 자료 하나 덧붙입니다. 그리스는 세계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OECD 국가 가운데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OECD 국가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 출처:OECD, www.statista.com

▲ OECD 국가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 출처:OECD, www.statista.com

금, 2015/07/0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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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4] 

 

복지에 돈 쓰면 그리스처럼 망한다?

그리스 사태가 주는 교훈

 

조흥식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그리스 사태가 그나마 협상이 타결돼 다행이다. 유로존 19개국 정상들은 20시간 가까운 마라톤 협상 끝에 그리스에 추가 개혁안 이행을 조건으로 3차 구제 금융 제공에 합의했다. 그리스 사태는 일단 타결됐지만, 그동안 터져 나온 그리스 문제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와 전 세계 국민들이 겪는 불안은 차치하고라도 당사국인 그리스 국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이번 그리스 사태는 유럽연합(EU)과 전 세계 금융 시장에 또다시 많은 문제점을 던져 주었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재정 정책 없이 화폐 통합만을 추구하는 유로존의 본질적 한계를 한 번 더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리스식 금융 위기는 유로존 내 재정이 취약한 빈국에서 언제든 터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것은 그나마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걷어낸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리스 사태 타결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다행이지만, 전 지구적 금융 시장의 특성상 그리스 사태와 같은 혼란은 우리에게도 언제든 생길 수 있음에 대비책을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는 유럽 19개국의 단일 화폐인 유로화를 사용하는 등 환율 조정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해온 한국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유사점도 꽤 많다. 그리스 국민들의 도덕성을 이야기하지만 한국인의 근로 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멕시코 다음인 2위, 그리스인은 3위일 정도로 양국 일반 국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반면에 국제투명성기구의 2014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그리스는 69위, 한국은 43위일 정도로 정도 차이는 있지만 부정부패 문제를 안고 있음도 유사하다. 그리고 그리스 재정만큼 취약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한국인의 가계 부채도 급격히 늘고 있어 재정 문제를 얕볼 것은 아니다.

 

이번 그리스 사태가 한국에 주는 교훈을 몇 가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사태의 원인 진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 자기 논에 물 대기 식으로 이해관계에 따른 이념적인 잣대로 봐서는 절대 안 된다. 그리스 사태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대체로 국가 차원의 정부 재정 적자 문제, 유로 단일 통화권 편입에 따란 경쟁력 약화, 관광업 중심의 그리스 특유의 산업 구조, 유로화 강세 현상으로 인한 수출 경쟁력의 약화, 부정부패 문제, 서민의 삶과 유리된 복지 포퓰리즘, 부실한 국가 제도 개혁 문제, 지나치게 즐기는 문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그리스 사태의 근본 원인을 '공짜 좋아하다간 한국 또 당한다'는 제목을 내걸고 과도한 복지에서 찾으려는 보수 언론 등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왜곡의 여지가 있다. 그리스의 재정 적자가 심각한 건 맞지만 재정 적자가 과도한 복지 지출 때문이라기보다는 상류층의 만성적인 탈세와 조세 체계 부실에 따른 세수 부족에서 찾는 게 온당하다.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의 2010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을 보면 EU 전체 평균은 29.4%이고 그리스는 29.1% 수준으로서 실제 크지 않은데, 그리스 GDP가 쪼그라들면서 GDP 대비 복지 지출을 많이 하고 있는 듯한 착시 현상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를 보면 프랑스 11%, 독일 13.7%, 이탈리아 21.2%에 비해 그리스는 24.3%로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다. 독일 세무 공무원을 그리스에 파견하여 세무 행정을 혁신하면 그리스 재정 위기는 해결될 것이라는 농담이 유럽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복지 국가로 성장하다가 그리스처럼 망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복지 포퓰리즘도 여전히 들먹인다. 그러나 실제 그리스는 복지 국가였던 적도 없고, 오히려 빈부 격차가 심한 국가였다. 25% 세금으로 80% 수준의 연금을 지원하는 엄청난 복지 국가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복지는 상위층에게만 주어졌다. 오히려 상위층은 빈부 격차 속에서 탈세를 계속하니, 세금이 제대로 걷힐 리가 없어 복지국가로 성장하는 것은 애당초 바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리스는 대중 영합적인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먼 상위층만을 위한 복지를 했고, 실제로 상위층은 부패를 저질렀으며 이를 잡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사태를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방만한 재정 운용을 경계하해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바꿔야 한다. 특히 국가 채무를 조심하되, 특단의 저출산․고령 문제,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참에 저부담․저복지 구조를 적어도 중부담․중복지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스의 국가 부채 규모는 총 3240억 유로로 GDP의 1.7배에 달하며, 국채 금리는 연 15%에 달해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부담이 되고 있다. 그리스에서 손쉽게 실업률을 줄이는 방법으로 공무원 수를 대폭 늘려 이들이 퇴직 후에도 보수의 95% 이상을 연금으로 지급받도록 하는 등 일부 포퓰리즘 복지 정책이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된 것은 확실하지만 일반 서민들에 대한 복지 정책 지출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한국은 재정 건전성이 아직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경직성 예산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최근 3년 연속으로 세금이 적게 걷히는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세수는 부족한데 재정 지출은 늘어나면서 국가 부채 규모는 2013년 480조3000억 원에서 2017년 610조 원으로 늘어날 예측에 대해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의 하나인 가계 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 가계 부채액은 빠르게 늘고 있으며 이미 1100조 원을 넘었고, 또 부채 비율 등을 따져봤을 때 약 112만 가구가 채무를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한국은행의 진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저금리와 집세 인상,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덕분에 가계 부채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고 있지만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는 이미 위험 수준에 와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마치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처럼 어불성설이지만 한국에서는 통하고 있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지만, 건설 사업과 부동산 부양책 지출은 계속하거나 늘리면서 왜 복지 지출 중단에만 급급한지 알 수가 없다. 복지 지출의 구조 조정을 시행해 지출의 중복과 비효율을 없애야하는 것은 맞지만 저부담․저복지 구조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소득세, 법인세 감세와 종합부가세 축소, 비과세 감면 확대 등 세칭 부자 감세만 종전대로 돌려놓아도 부채 증가를 상당히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국가 재정 지출이 양극화 완화나 국민의 행복한 혹은 안전한 삶을 위해, 그리고 사회 양극화나 저출산․고령,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사용된다면 '복지 있는 증세'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복지 없는 증세에 국민 대다수는 분노하는 것이다. 연말 정산 논란과 담뱃값 인상 사태를 상고해 보시라. 서민 증세의 뒤틀린 모습 아니었던가.

 

올해 초에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41%가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작년에 발표된 한국복지패널 부가 조사를 보면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응답이 2007년에는 37.9%였지만 2010년 52.5%, 2013년 54.7%로 점차 증가해 가고 있는 점을 보면 증세 있는 복지가 충분히 가능하며, 이제부터 성장 있는 복지, 복지 있는 성장이 가능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라도 저부담․저복지 구조를 중부담․중복지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구조 전환을 위해, '복지 있는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의 몫이다.

 

셋째,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산업 자본주의의 꽃인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 그리스에서 GDP의 제조업 비중은 5.7%에 불과하며, 관광과 해운업 등 서비스업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업의 과잉 발달은 내수 시장에서의 제조업 발달을 더디게 하고, 해외 의존도를 높인다. 그리스가 제조업 관련 수입 의존도가 점점 높아갈 동안 제조업 강국인 독일 등은 단일 유로화의 수혜를 톡톡히 보았다. 금융 자본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환율 조정을 통한 해법을 모색할 수 없었던 그리스로서는 물가와 임금 하락만이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제조업 기반이 취약함으로써 이러한 조치의 효과는 나타날 수가 없었다. 환율 약세로 인한 기업 수출 증대야말로 'IMF 위기' 극복의 핵심 요인이었음은 과거 한국과 아일랜드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경우도 제조업이 갈수록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고 경제 성장률도 낮아지고 있어 환율 평가 절하에 따른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돼 가고 있음을 고민해야 한다.

 

넷째,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 그리스에서 부정부패는 상류층에서만 있는 게 아니고 이를 통제해야 할 공무원 사회까지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도 국제투명성기구는 "그리스의 일부 공무원 사회에서는 수십 년간 투명성과 효율성이 결여됐고 그 결과, 뇌물을 요구하여 받는 관행이 생겼으며, 불법 행위를 한 공무원 중 2%만 징계절차를 밟았을 정도로 처벌이 부실함"을 지적했다. 이러한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탈세를 부추겼고, 결국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고 눈먼 돈은 계속 나가니 재정 적자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한국에서 고소득 전문직 등이 국세청 사후검증으로 440억 원의 부가가치세를 추징당하는 등 추징 규모와 정치권의 뇌물수수 등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부정부패의 척결은 시급한 과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금, 2015/07/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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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씨는 스물 초반 뇌출혈로 말을 못하고 오른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뇌병변 장애인이 되었다. 살아갈 방법이 없어 이듬해 시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27년을 살았다. 마음껏 다니고 싶고 일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국현씨는 자립생활을 꿈꾸었고 선택했다. 자립생활은 쉽지 않았다. 혼자 밥조차 먹을 수 없었다. 활동보조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활동보조 서비스 대상 등급이 아니었다. 이의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현씨 집에 불이 났다.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었으나 소리 지를 수 없었다. 화마는 온몸을 덮었고, 심각한 화상으로 고통당한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2년마다 재심사, 등급은 더 아래로


광화문 지하 광장 한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이 들어선 지 3년이 넘었다. 2012년 경찰과 몸싸움 끝에 농성장 차리며 이렇게 시간이 지날 줄 몰랐다. 물론 언제 끝날지 모른다. 1천 일 넘는 사이 없던 것이 생겼다. 12개의 영정사진이다. 국현씨처럼 화재를 피하지 못해 죽어간 주영씨부터 등급을 부여받지 못해 사라진 얼굴들이다. 가난과 고통을 증명하지 못한 이들이다.


장애 등급은 1급부터 6급까지 다른 복지 혜택을 부여한다. 등급이 내려가면 혜택이 줄고, 수급권조차 박탈당한다. 영정사진 속 진영씨는 ‘등급외’ 판정을 받았다. 수급이 중단될 것을 예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등급은 내려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때마다 혜택은 일방적으로 줄어든다. 비장애인에게 야박한 일자리, 장애인에게는 아예 기회조차 없다. 기업들은 법으로 정한 알량한 장애인 의무고용을 벌금으로 때운다. 장애인들에게 수급과 혜택은 생존과 직결된다.


그나마 수급권자가 되어도 부양 능력 있는 가족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제외다. 얼굴 본 지 수십 년 된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성년 된 자식이 알바비를 받아도 예외 없다. 수급권을 얻기 위해 가족과 인연을 끊기도 한다. 얼마 전 심장이 멈춰 곁을 떠난 친구, ‘오렌지가 좋아’ 명환이도 신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13살에 가족과 헤어졌다. 어린 나이에 식당 한켠에서 쪽잠을 자며 병과 싸웠다.


한국 사회 복지는 가족이 첫 번째 책임자다. 국가는 등급 매길 수밖에 없는 이유로 예산 타령이다. 멀쩡한 강을 파헤친 돈 22조원.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을 위한 경찰 주둔 비용 100억원. 세월호 집회에 유족들에게 쏟아부은 물대포 73t. 돈 없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국민 위해 돈 쓰기 싫은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김무성씨는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말했다. 속내는 그럴 것이다. 재벌들이 쌓아놓은 사내 유보금이 710조원이다. 한국 사회가 가난한 것도 아니다. 가난하고 힘없으면 끝없이 추락할 뿐이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광화문 지날 때 12개 영정이 놓인 그곳에 잠시 걸음 멈춰주시길. 서명을 해도 좋겠고, 농성장 지키는 이에게 커피 한잔 건네며 격려해주셔도 좋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위치에 있는지 증명해야만 하는’ 사회의 야만을 온몸으로 막는 이들이 거기 있다.

"우리들은 현대 사회에 있어 ‘본래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인식되는… 비장애인 문명이 만들어온 현대 문명이 우리 뇌성마비인을 배척하는 형태로 성립되어왔다.” 일본 뇌성마비협회 푸른잔디회의 행동강령이다. 비장애인 문명은 고통에 등급을 매기는 중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 국현씨들의 시선으로 구성된 장애인 문명의 시대를 시작해야 한다. 마침내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2015.09.09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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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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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9/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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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료>(청년의사) 2015.9.12

<건강할 권리>(후마니타스) 2015.9.19

 

내 친척들 가운데에는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의료계와 법조계에 일하는 ‘인맥’을 가지는 게 복이라면 한 쪽이나마 실하게 복 받은 셈이다. 다만 이들이 어떻게 일하는 지에 대해서는 그리 밝게 알지 못하였다. 현장에서 일상화된 3교대로 밤낮이 바뀌는 생활에 피로를 느낀다던가, 명절에도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만 어렴풋이 했을 뿐이었다. 때문에 이번 정치적 책읽기모임에서 두 주에 걸쳐 한국의 보건의료에 다루는 책(『개념의료』(청년의사, 2013), 『건강할 권리』(후마니타스, 2013))을 읽으며 그들이 마주한 현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박재영의 『개념의료』는 한국의 보건의료 현실이 얼마나 복잡한 역사적 굴곡에 따라 형성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어째서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한 나라인데도 가족 가운데 한 명이라도 중병에 걸리면 온 가족의 집안 사정을 걱정해야 하는지,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민간보험이 그렇게 어르신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물론 책에서 다루는 의료계의 전문 용어들과 사안의 구조가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는 이 책이 어렵게 서술되어있다기보다는 현실의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창엽의 『건강할 권리』는 앞의 책보다는 더 넓은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보건의료의 현실을 다룬다. 이 책은 사회가 평등할수록,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가 활발해질수록, 보건의료 영역의 공공성이 강화될수록 더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건강은 개인적인 영역만으로 볼 수 없으며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까지 종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두 책의 저자 모두 보건의료에 대한 ‘정치적 접근’을 강조한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종합적이고 역사적인 이해(『개념의료』)와 함께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건강할 권리』)도 필요하다. 결국 이를 조율하고 종합해내는 것은 정당의 책임이 아닐까.

여하간 모임을 마치고서는 두 책을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선물하였다. 한창 바쁜 사람에게 숙제까지 떠안긴 셈이지만, 언젠가 동생에게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그리고 책을 읽은 뒤에 현장이 어떻게 달라보였는지 물어볼 참이다.

수, 2015/09/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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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내가 원하는 건, 민주적이고 학생이 학교의 주인되는 대학!"

 

"내가 원하는 건, 청년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키울 수 있는 배움터!"

        

"내가 원하는 건, 청년들이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

 

참여연대에 청년들이 배우고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가 뜹니다.

청년이 스스로를 대변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열려고 합니다. 

사회문제를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풀어보려 합니다. 

 

청년들이 맘껏 자신의 목소리를 펼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주세요. 

청년들이 직접적인 참여가 청년문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한 청년들의 실험과 도전에 참여연대도 함께 하겠습니다. 

 

청년의 삶을 바꾸기 위해 나서는 청년참여연대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가입문의는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02-723-4251입니다.

 

참여연대는 정부지원금을 받지않고 시민의 회비로 운영되는 시민단체입니다.

 

청년참여연대 바로가기

금, 2015/09/2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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