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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25회 예고 “음식으로 소통하다, 살래 청춘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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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25회 예고 “음식으로 소통하다, 살래 청춘식당”

익명 (미확인) | 금, 2015/09/18- 12:40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위치한 청춘식당 ‘마지’. 운영자 다섯 중 네 명은 이 지역 귀농 2세들이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이곳에는 젊은이들 5명이 운영하는 식당 하나가 있다. 식당 이름은 <살래청춘식당 마지>. 몇 달전 폐업한 일반 음식점 자리에 식당을 열었는데 주 메뉴가 파스타와 샐러드다. 특이한 점은 5명의 운영자 중 4명이 귀농 2세들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한 명도 산내면 출신은 아니지만 이 지역의 대안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

▲ 파스타와 샐러드가 주 메뉴인 청춘식당 ‘마지’의 운영자들. 이들은 ‘적당히 벌어 아주 잘 살자’고 말한다.

▲ 파스타와 샐러드가 주 메뉴인 청춘식당 ‘마지’의 운영자들. 이들은 ‘적당히 벌어 아주 잘 살자’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찾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지금, 다섯 젊은이들이 이곳에 파스타를 만들어 파는 식당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귀농 2세들의 고군분투 식당 운영기를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담았다.


방송 : 9월 19일 토요일 밤 11시 시민방송 RTV
다시보기 : newstapa.org/witness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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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9일 세월호가 올라왔다. 참사 이후 1,089일 만이다.3년만에 수면위로 올라온 세월호는 부서질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들뜨며 탔던 하얀배는 곳곳이 녹슬고 훼손돼 있었다.

2017041403_01

미수습자 가족들은 사진 없이 이름만 있는 영정을 들고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동행하며 목포 신항으로 이동했다. 가족들은 목포 신항에서 새로운 기다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육상 거치 작업부터 더뎠다. 선체 무게를 제대로 측정해 대비하지 못한 탓이다. 가족들은 배 안에 쌓인 뻘을 맨 손이라도 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문 감식가 없이 작업이 이뤄지면서 미수습자의 유골로 추정된 뼛조각이 동물뼈로 확인되는 등 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달라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냥 배를 앞에 두고 바라보고만 있는 심정이 참… 미안하다, 미안할 뿐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배 앞에 다녀오면 (다윤이한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허흥환 (미수습자 허다윤 아버지)

2014년 4월 16일 날, 그 시간에 멈춰 서있는 9명의 가족입니다. 어떤 것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은화, 다윤이, 현철이, 영인이,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 님, 어린 혁규, 이영숙 님, 마지막 1명까지 최선을 다해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그 약속을 정부와 국민이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이금희 (미수습자 조은화 어머니)
2017041403_02

이제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집에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지난 20여 일 동안 세월호 인양, 육상 거치 작업의 현장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또 다른 기다림을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고희갑
연출 박정대

금, 2017/04/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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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혼수 상태에 있다가 숨졌다.

경찰은 사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유족의 반대에도 부검을 시도하고 있다. 더욱이 일베 등 극우 집단에서 제기하고 있는 ‘빨간우의 가격설’을 앞세워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국가 공권력의 ‘적반하장’ 행태에 분개한 유족들은 한 달 째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있다.

일단 아빠를 편히 보내드리고 싶고요. 돌아가시긴 했지만 지금 이런 상황을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상관없을 수도 있는데 가족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일단 좀 편히 보내드리는 게 우선인 거 같아요.백도라지 / 고 백남기 농민 큰 딸

공권력에 의해 숨진 백남기 농민. 지금 공권력이 해야 할 것은 백남기 농민의 부검이 아니라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아닐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두고 보여주는 국가 공권력의 ‘적반하장’ 행태를 조명했다.


취재작가 : 곽이랑
글,구성 : 김근라
연출 : 권오정

금, 2016/10/2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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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8일 반올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이종란 노무사가 새로운 직업병 제보자를 만났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2011년부터 14년까지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협력체 직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리고 퇴사 이듬해 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협력업체 직원이던 그는 설비 세척, 소모품 교체, 재조립 업무를 담당했다.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당시 처리했던 화학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는 잘 알지 못했다. 회사에서 제대로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3월 29일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가 229번째 삼성 직업병을 호소하는 제보자를 만나고 있다. 그는 약 3년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다가, 최근 악성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 3월 29일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가 229번째 삼성 직업병을 호소하는 제보자를 만나고 있다.
그는 약 3년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다가, 최근 악성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삼성 반도체와 LCD 관련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호소한 이는 229명에 이른다. 이 중 2007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원판(웨이퍼) 세정업무를 담당했던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지는 등 모두 79명이 사망했다.

故 황유미 씨의 생전 모습

▲ 故 황유미 씨의 생전 모습

삼성 측은 최근 시설 현대화로 더욱 안전해졌다고 말한다. 또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업무와는 관계는 없는 일’이라며 직업병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와 LCD 작업장의 안전보건진단 보고서도 대부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반올림 측은 노동자의 안전 관련 사안을 ‘영업 비밀’을 명분으로 비공개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삼성이 10년 동안 풀지 않고 있는 직업병 문제. 반올림과 일부 직업병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오늘도 삼성전자 사옥 인근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500일이 넘고 있다. 이들의 바람은 삼성이 직업병 책임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더 이상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김한구

금, 2017/03/3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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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부역자이기도 한 김기춘. 그는 70년대 유신 독재와 군부독재를 거쳐 박근혜 정부까지 50년 가까이 그가 꾸준히 권력을 누려왔다. 그 배경은 뭘까?

그의 경력은 이렇다.

1960년 고등고시 합격
1972년 박정희 정권 유신 헌법 제정에 깊이 관여
1974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1988년 검찰총장
1991년 법무부 장관
1996년 국회의원 (3선)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 캠프 법률자문위원장
2012년 박근혜 후보 ‘7인회’ 중 한명
2013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2013년 박근혜 정부 대통령실 비서실장

화려한 김기춘의 56년 공직 생활은 한국 사회의 어둡고 굴곡진 역사가 그대로 담겨있다. 1972년 유신 헌법 제정에 핵심 실무 역할을 맡아, 독재에 협력했고, 1974년 중정 수사국장에 승진한 뒤 “재일동포학원간첩단 사건” 등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 1992년 대선직전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관권선거를 획책했다.

위기의 고비마다 끈질기게 살아나 권력자에 가까이 접근하며 일신의 영달을 좇았던 권모술수의 달인 김기춘의 처세술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곽이랑
글 구성 김근라
취재 연출 서재권

금, 2016/12/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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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100만 개의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뒤덮었다.

▲ 2016년 1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100만 개의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뒤덮었다.

100만 명이었다. 손에 든 촛불은 장관을 이뤘다. 젊은 부부, 아이의 손을 잡고 온 할아버지, 피켓을 든 교복 입은 중 고등 학생들, 혼자 참석한 이른바 ‘혼참러’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야하라”

서울뿐 아니라 부산, 거제, 광주, 대구, 대전 등 전국적으로 거리행진을 하며 촛불을 켰다. 대구에서도 촛불이 켜졌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는 최미란 씨는 대구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대통령이 하야해야죠. 이게 정말 나라냐. 정말 제대로 된 나라를 우리 국민이 다 같이 한 번 만들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 런던과 파리 등 전세계 10개국, 30여개 도시에서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크고작은 집회가 열렸다. (촬영 이지용 PD)

▲ 런던과 파리 등 전세계 10개국, 30여개 도시에서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크고작은 집회가 열렸다. (촬영 이지용 PD)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이후, 10월 29일부터 11월 12일까지 보름동안 촛불 민심의 분노와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몸짓을 뉴스타파 목격자들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작가 곽이랑
해외 취재 장정훈, 이지용
글 구성 김정연
취재 연출 권오정

화, 2016/11/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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