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5월 29일. 일본 동 광산 하나오카 광산 갱내에 갑자기 물이 차기 시작했다. 곧 붕괴 사고로 이어졌고, 23명이 갱도에 갇혔다.
사고 이틀 만에 기적적으로 조선인 한 명이 탈출했지만, 여전히 22명은 갱도에 갇혔다. 그러나 광산 측은 나머지 22명에 대한 구조 작업을 벌이지 않은 채 갱도의 입구를 막아버렸다. 모두 숨졌다. 남아있는 주 갱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명을 버린 반인륜적 조처였다.
희생자 가운데는 강제징용 당한 한국인도 있었다. 모두 11명. 그러나 70년이 지난 지금 애초 일본이 약속한 유골 발굴 및 송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방 70년 특집으로 준비한 목격자들 <돌아오지 못한 유골들> 편에서는 일본 강점기 강제동원돼 끌려간 나나쓰다테 사건의 희생자를 포함해 최근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로 논란을 빚었던 군함도 하시마 탄광 등지에서 강제노동하다가 목숨을 잃고서도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유골조차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태를 취재했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젊은협업농장’. 기반이 없는 도시 청년이 농촌을 배울 수 있는 정거장 같은 곳이다. 이 농장에서 청년들은 주로 쌈 채소를 재배하면서 고된 일 속에서 삶의 여러 의미를 찾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농장은 지난 2011년 비닐하우스 1개 동으로 시작했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8개 동으로 재배 면적이 열 배 가까이 늘어났다.
▲ 쌈 채소를 수확하는 모습
땅도, 돈도, 연고도 없는 상황에 농사를 짓겠다고 농촌으로 내려온 청년들. 그들은 무엇을 수확할 수 있을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젊은협업농장의 청년 농부들을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직후 해경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7개월 뒤 해경을 국민안전처 내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개편하면서 구조 업무가 강화됐다고 밝혔다. 특히 구조 작업에서 “육상은 30분, 해상은 1시간 이내의 이른바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 돌고래호 전복 사고 구조 당시 모습
그리고 1년 후인 지난해 9월, 제주도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사고가 났다. 돌고래호가 전복됐고 탑승자 21명 중 15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구조된 이는 3명 뿐이었다.
사고가 난 후 3시간이 지나서야 해경의 경비함정이 현장에 도착했다. “육상은 30분, 해상은 1시간 이내 신속한 구조작업을 하겠다는 해경의 발표가 무색한 대목이다. 지금 현재 해경의 안전관리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찰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다. 문재인 정부는 “인권경찰”로 거듭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경찰은 경찰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이철성 경찰청장은 고 백남기 농민의 유족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책임자 징계 없는 사과”는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 안팎에서도 사과의 진정성을 불신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6월 16일 고(故)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과 희망을 앗아간 경찰의 어두운 역사가 단숨에 해소될 리 만무하다. ‘권력의 충견’ ‘민중의 몽둥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대한민국 경찰, 시민의 편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뭘까?
무엇보다 수사권을 요구하기 전에 경찰 스스로 개혁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진압 등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경찰의 공권력 남용 사례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에 경찰이 저질렀던 공권력 남용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해선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질 사람들은 책임지고, 그러고 나서 우리가 이렇게 개혁하겠습니다 시민들한테 동의를 구하는 이런 절차를 밟아나가는 게 우선이 아니겠는가 싶어요.”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취재진이 만난 한 현직경찰은 촛불 혁명 과정에서 평화 집회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요컨대 경찰이 권력자의 안위보다는 시민의 권리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어요. 일단 불입니다, 불 대단히 위험한 물질입니다. 그런데도 다친 경찰 없고, 다친 시민 없고 아주 평화적으로 어느 순간부터 서로 묵시적으로 몇 시 되면 여기까지 물러가고, 해산하고 경찰관이 사진 찍어주고 아주 훈훈한 장면을 보였죠. 그 이유가 뭐겠어요 탄핵 정국이고 하니까 경찰이 보호해야 할 권력이 없어진 거죠. 만약 권력이 있어서 눈살 한번 찌푸리면서 ‘시끄럽다, 제대로 대응 못 하냐’ 하면 (행진을) 막았겠죠. 그러면 충돌이 발생하는 거예요.” – 류근창 경남지방경찰청 정보과 정보관 (경찰 재직 21년)
이번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권력자들 위한 경찰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경찰이 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지 취재했다.
‘우꾸라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6일 검찰에 소환된 이후 국회 국정조사 특위 출석에도 응하지 않은 채 46일 동안 종적을 감춘 것을 두고 누리꾼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지난 11월6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개인비리 의혹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를 쏘아보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우 전 수석이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12월 22일, 여야 국조 특위 위원들은 우 전 수석에게 △우병우의 장모 김장자 씨 소유 골프장에서 김장자, 최순실, 차은택 씨가 함께 골프를 친 사실 △민정비서관에 발탁되기 전 최순실 씨와 연계 의혹이 제기 된 황두연 씨의 사건을 변호한 점 등을 근거로 최순실 씨와의 친분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2014년 6월, 검찰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 해경과 청와대의 초기 대응을 파악하기 위해 해경 상황실 서버를 압수 수색 할 때 우 전 수석이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세월호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 의혹도 따졌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한결 같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청문회 대처법과 비슷했다. 청와대의 사법 방패 역할을 자처한 우병우가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 그가 청문회에서 명확하게 답한 게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냐는 질문이었다. 답변은 이랬다.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했고, 그 진정성을 믿었기 때문에 존경한다.” 그는 김기춘도 “존경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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