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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세 번째 뉴스 한 접시(201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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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세 번째 뉴스 한 접시(2015.7.17)

익명 (미확인) | 금, 2015/07/17- 18:12

1.너의 죄를 또 사하노라?

“경제사범을 풀어줘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발상은 언제나 새롭다. 성범죄자들을 풀어줘서 여성들이 안심하는 나라를 만들자.” -트위터리안 ID ‘leejaehun80′

경제사범 특별사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타파스극장 : 국정원 해킹대작전

올 여름을 강타할 SF 스릴러
“우리는 네가 올 여름 할 일까지 알고 있다” ★★★★★
“카카오톡의 강렬한 쓴맛!” ★★★★☆

3.타파스클립 : 검열의 시대

“왜 안돼? 이번엔 내가 고른 영화 보자며.”
“상영하는 곳이 없는데 어떡해 그럼.”
“…….”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아니라 배급사가 고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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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세미나 후기]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 표현의 자유와 위기

글 | 김복희(고려대학교)

 

– 세미나 자료집(PDF): [자료집]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 표현의 자유의 위기_20181105

지난 11월 5일 사단법인 오픈넷과 정의당 추혜선 의원, 미디어오늘의 주최로, “가짜뉴스” 라는 현상을 빌미로 허위조작 정보에 정부가 대처하는 방식을 재고하기 위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사회를 맡은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김영욱 교수는, 토론 시작에 앞서 가짜뉴스가 혐오, 증오를 증식시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통합을 어렵게 하고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현상을 진단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발언하며 토론의 의의를 시사했다.

 

[발제 1] 이준웅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준웅 교수는 가짜뉴스 규제(허위조작 정보 규제)에 대한 정부 대응 방식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점을 들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하나는 정부의 허위조작 정보 규제 정책에 모순이 많다는 점, 또 하나는 허위조작 정보 규제 정책이 헌법적 가치를 위반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허위조작 정보 규제 정책은 2018년 10월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한 엄단 의사를 밝힌 이후로 명확한 정책의 전모를 제시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상태로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지난 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하려다 취소한 ‘범정부 종합대책’에는 임시조치 대상 및 통신심의상 불법정보에 허위조작 정보 추가, 통신심의 강화, 자율구제 추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등이 담긴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가짜뉴스’를 ‘허위조작 정보’로 그 정책 대상의 개념을 바꾸었다.)

이준웅 교수가 지적한 정부 대처에 대한 모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법행위를 특별 단속해서 엄단하겠다는 정책적 태도와 사업자 자율규제 기반조성과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와 같은 시민교육 정책 추구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태도를 양립시키겠다는 데에서 모순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둘째, 허위조작 정보의 제작과 유포자를 엄단하겠다는 주장과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현행법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현행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범죄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현행법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현행법이 미비하므로 강력한 새 법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므로 현행법에 대한 판단이 충돌한다.

섯째, 정부의 현실인식과 정책적 대응 간 무리한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짜뉴스가 국가를 분열시킬 만큼 위중한 사안이라면 지금과 같은 대응으로는 국가분열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만약 그렇게 위중한 사안이 아니라면 정부가 내놓으려 했던 대응 방식이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이준웅 교수는 민주주의를 여는 진정한 힘은 공론장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언의 행사, 수많은 논쟁을 가능하게 한 자유로운 의혹제기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표현의 자유만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피해자의 고소고발 없이도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켜 허위조작 정보 유포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민주주의의 복권 혹은 민주주의의 발전은 오히려 저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가짜뉴스에 대해 정부가 새로이 내린 ‘허위조작 정보’라는 네이밍에 대해서도 규제 대상의 모호함을 가중시켰기 때문에 정부가 제한을 걸 만한 대상이 광범위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허위조작 정보 규제와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내용의 사실관련성, 사실주장의 허위성, 그리고 허위사실 조작의 악의성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하는 판단 주체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제시했다. 사실과 의견의 구별은 그 누가 하더라도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행정권력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그 어떤 허위성도 사법심사 없이 가능하지 않고, 설령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수 있다고 쳐도, 허위성이 쟁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실 주장이건 간에 시간의존성이 있기에, 어떤 사건에 대한 설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변화하며, 자명하지 않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했듯이 허위정보 규제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위법 가능성을 내포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몇 차례(헌법재판소는 2002년 6월 27일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1항이 규정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통신을 금하는 법률조항과 같은 법 제53조 제3항정보통신부장관이 사업자에게 위와 같은 통신의 취급을 정지 또는 제한 할 수 있도록 명령할 수 있는 법률조항을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2010년 12월 28일 전기통신기본법 제27조 제1항을 위헌 판결했다.) 명확성 원칙의 위반을 이유로 허위통신죄에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모호한 법문으로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검열이란 모든 형태의 사전적 규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표현의 발표여부가 오직 행정권의 허가에 달려있는 사전심사를 거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발언이 공표된 이후 행정권력이 그 효과를 검토해서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것과 발언이 공표되기 전에 행정권력이 개입하여 사실상 해당 발언을 공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은 기본권 침해와 관련하여 명백하게 다른 함의를 갖는다. 이준웅 교수는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말을 빌어 행정권력이 먼저 허위성, 풍속성, 저열함 등과 같은 내용상의 이유를 들어 발언의 공표를 처벌할 것을 위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발언의 공표에 대한 사전규제의 효과를 발휘하고, 이는 사실상 사전검열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웅 교수는 앞서 비판 받은 현행 정부의 대책보다 가짜뉴스에 대해 정석적인 대안을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야스차 뭉크의 의견을 근거로, 이준웅 교수는 가짜뉴스가 대두된 현상 밑에 가짜뉴스가 퍼질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이는 주택공급을 늘리고, 유의미한 일자리를 공급하고, 복지제도를 재설계하는 등의 기초적인 제도 개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족적 분열주의에 기생하는 권위주의적 대중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포용적인 애국주의를 도입할 것을 강조했다. 파시즘, 공산주의, 독재자에 대한 시민적 교육을 강화하여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의 소통역량을 강화시키는 것, 민주적 시민의식의 확대가 필요하며 이는 도외시할 수 없는 해결 방안이라고 재차 언급하였다.

 

[발제 2] 이정환 대표(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도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부의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점에서는 이준웅 교수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이정환 대표는 먼저 2008년 미네르바 사건의 무죄 판결문 중 “‘허위의 통신’행위, 즉 ‘허위사실’이라는 것은 언제나 명백한 관념은 아니며 어떠한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려우며, 현재는 거짓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허위사실의 표현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포함된다”라는 대목으로 화두를 열었다. 이어서 공론장은 시끄럽고 지저분한 곳인 게 당연하기에 거기서 나오는 온갖 의견은 서로 쟁투를 벌일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환 대표는 가짜뉴스(허위조작 정보)를 1) 뉴스가 아닌데 뉴스인 것처럼 흉내 내는 가짜뉴스(fake news), 2) 거짓인 뉴스(오보 또는 왜곡 보도), 3)거짓된 정보(유언비어)로 구분했는데, 우리나라는 1),2),3)의 개념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제재의 범위와 그 대상이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정환 대표는 사실상 특정한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편중된 언론보도를 한다고 해도 규제할 수는 없고, 플랫폼 사업자가 임의로 뉴스를 삭제할 수도 없는 상황에 모두 처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들 정보를 규제했을 때 벌어질 일에 비하면 정보가 난립하는 것이 더 옳은 상황이라고 보았다.

임시조치 제도, 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44조 1항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인하여 법률상 이익이 침해된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당해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현재 인터넷상의 게시물에 조치를 가하는 임시조치 제도는 일단 요청이 들어오면, 포털 사업자들이 차단을 하는 식으로 운행되어 온 제도이다. 임시조치 제도는 신고가 들어올 경우 30일 동안 임시조치 처리하고 30일 안에 이의신청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의신청이 없는 경우 관행적으로 30일이 지나면 삭제 처리된다. 문제는 일단 차단하기는 쉬우나 해제가 어렵다는 점이고, 또 임시조치 요구를 하는 주체들이 주로 정치인, 기업들이며, 이러한 권력집단에 의해 임시조치가 남발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가짜뉴스 규제 또한 임시조치 제도처럼 악용될 수 있음을 사례로 들었다.

언론의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뉴스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뉴스에 나오지 않는 진짜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짜뉴스가 주목받는다고 진단하면서, 거짓정보를 이기는 것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외면받고 고립시켜 영향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 공론장의 힘이고 근본대책이라고 말했다.

이정환 대표는 정보나 주장을 두고 법적 제도에 의한 처벌을 내세우기보다 근본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은 차별금지법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이준웅 교수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차원을 들여다 보되 좀 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차원의 법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법 규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 민주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언론사들이 자정에 힘써야 하며, 플랫폼 자체적으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털과 인터넷 기업들은 영리기업이지만 공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이들이 공정한 플랫폼으로 진화하도록 사회적 비판과 압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자들 역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으로 확산되는 뉴스의 출처를 다시 보고 그 뉴스의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발제를 마무리했다.

 

[토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교 한상희 교수는 가짜뉴스의 본질을 먼저 봐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정부의 대응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 지젝의 말처럼 어떤 정보든 간에 그것이 통용된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의 사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희 교수는 즉, 그 뉴스를 유통하는 주체가 사실관계를 비틀거나 의미를 바꾸어 말함으로서 다른 뉴스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며, 이는 가짜뉴스가 100퍼센트의 거짓일 수는 없으며 일정 정도의 사실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먼저 밝혔다. 다시 말해 정부가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지, 규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은 정부에 대해서 답변을 요구할 권리, 추궁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상희 교수의 의견이었다. 어떤 허위사실로 보이는 가짜뉴스가 등장했다는 것은, 정부에 모종의 대답을 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가짜뉴스 자체를 퍼뜨리려는 목적이라기보다 뉴스라는 형식을 통해 정부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정부가 그에 대한 반응, 입장 혹은 진실을 규명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한상희 교수는 정부가 가짜뉴스의 본질을 파악하고, 사실에 근거한 뉴스로 보이지 않더라도 그러한 뉴스에 대응하여 정부의 입장을 밝힐,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어서 서울신문 논설위원실 문소영 실장은 정부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사건들에 관해 행정력을 행사했을 때, 공론장뿐만 아니라 정치장마저 망가뜨릴 수 있는 사례들을 예로 들어 공권력이 도리어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문소영 실장이 예로 든 사례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2015년부터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명칭 변경),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김해호 목사의 최순실과 박근혜 관계 폭로의 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있다. 해당 사건들은 모두 판결을 받은 후 다시 재심을 신청하여 무죄를 받은 사건들이다. 이 사례들은 모두 특정 소문 혹은 사건에 대해 공론장의 역할을 무시하고, 국가가 나서서 권력을 행사하였을 때 무고한 개인들이 긴 시간 고통을 받은 사건들이기도 하다.

문소영 실장은 마지막으로 정의는 늘 지연되는 것이 그 속성이기에, 우리 모두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는가하고 말하며, 어떤 정의나 진리건 간에 손쉬운 규정과 진단은 불가능하며, 어떤 주체도 사회를 정화시키는 주체로 스스로를 자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위원장 이강혁 변호사는 앞서 이준웅 교수와 이정환 대표의 의견에 동조를 표하고 법무부 대책상 허위조작 정보(가짜뉴스) 판단 기준은 규제 대상을 명확히 지정할 수 없기에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됨을 먼저 언급하였다. 이강혁 변호사는 정부가 ‘언론중재법’상의 언론기관이 아님에도 언론보도를 가장하여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던 바에 대해 비언론기관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했다. 실정법상 언론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규제받아야 한다면, 이는 평등권 침해이며 표현의 자유 침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법무부에서 대책으로 내놓으려 한 정보통신망법에 허위조작 정보 등의 삭제요청권을 규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로만 정보 삭제 등 요청권 제도가 이미 확립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대응 방식은 앞서 이정환 대표가 언급했던 ‘임시조치 제도’의 악용 사례를 보고도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는커녕, 시대적 추세에 명백히 역행하는 대응 방식이라는 것이다.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역시 앞선 발제자와 토론자들과 큰 맥락에서 입장의 궤를 함께 하되 가짜뉴스 규제에 관해 시민사회 입장에서 논변했다. 어떤 주장이 허위인지 진실인지 판단하는 것은 시간의존성이 있는 것이 확실하기에 내용의 허위성만을 가지고 규제해서는 안 되며, 허위인지 진실인지보다 판단 주체가 누구인지가 더 따져봐야 할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가기관이 ‘진실’, ‘허위’ 여부를 판단하여 표현을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의혹제기와 토론을 통한 진실 발견의 기회를 없애고 진실이 터져나올 수 있는 곳인 공론장을 위축시킨다. 현재 정부, 여당은 ‘사회통합 저해’, ‘국민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대통련과 관련한 ‘건강이상성’, ‘자녀 취업특혜설’, ‘남북정상회담 대가 지원설’, ‘북한 국민연금 요구설’과 같이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나 반정부적 표현에 대해 엄정 대응에 나서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표현물 규제는 주로 유력한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이용되어 왔으므로 가짜뉴스, 허위조작 정보 등 표현물에 대한 규제는 함부로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다.

또한 가짜뉴스 규제 도입에 앞서 이미 한국은 표현물 규제가 과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진실/허위 여부에 상관없이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될 수 있으며, 경멸적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한 경우에도 모욕죄로 처벌된다. 임시조치 제도로 연간 약 45만 건의 온라인 게시글이 차단되며, 선거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유포나 비방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로 처벌된다. 선관위는 매 선거마다 가짜뉴스 TF를 꾸려 온라인 게시글을 단속해 20대 총선에서 약 1만 7천 건, 19대 대선에서는 약 4만 건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손지원 변호사는 더 이상의 법 제재는 과잉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표현물에 대한 제한이 더 완화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규제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에 공감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이 주요하게 문제삼고 있는 정보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거나 국론 분열을 야기하는 정보이며, 설령 국론을 분열시킬 만한 정보라고 해도 이런 정보들이 다 없어져야 하는 정보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오히려 근거 없는 정보에 대해서 정부, 여당은 자신들의 입장은 전파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을 막강하게 보유하고 있으며, 신뢰성 있고 정확한 대응으로 반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가짜뉴스 규제 입법례로 쓰이는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은 정확히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혐오를 선동하는 표현물에 대한 것으로써 표현의 허위성을 이유로 규제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며, 이를 근거로 정부나 대통령을 공격하는 표현을 제한하는 데 쓰이면 안 된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구본권 소장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시켜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에 이에 반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민주주의를 역행하지 않으면서 현재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저널리즘에게 충분한 표현의 자유가, 개인에게도 발언의 자유가 주어진 상황이지만, 지금 민주주의가 계속 성숙하고 있나 돌이켜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 범사회적인 합의가 없어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널리즘의 고전적인 논리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기보다 최근 상황을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구본권 소장은 시민들이 뉴스를 접했을 때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화두를 던졌다. 시민들이 가짜뉴스에 주목을 하지 않는, 비판적 수용능력을 갖게 되는 것만이 원론적인 해결방안인데 이는 법과 기술로만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은 아니기에 근본대책을 내놓기가 더욱 어렵다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개인적 차원에서 시민 스스로도 노력하고, 제도적 차원에서 시민의 인지능력을 키우는 등의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조직된 시민단체라든지 시민의 운동 차원에서 도와야 하는 것이 있어야 개인의 노력도 지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권 소장은 인지적 회의주의를 지양하고 법, 제도, 기술 및 인지능력의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방점을 찍으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이어서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현재 정부가 내세운 제재의 형태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혐오와 차별을 선도하는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확실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원론적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며, 시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방안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발표자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표현물 자체를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게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금, 2018/11/0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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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기계

Transparent Machine

화이트헤드와 영화의 소멸

이 책은 영화의 밀림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다.
투명하다는 것, 그것은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합생과 변환의 과정 이외엔 더 숨길 것도, 더 보여줄 것도 없다는 의미다.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공포영화든, SF영화든, 실험영화든, 신파영화든 상관없다.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변신 이외에 다른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  김곡  |  정가  45,000원  |  쪽수  840쪽
출판일  2018년 10월 26일  |  판형  신국판 무선 (152*225)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Cupiditas, 카이로스총서 53
ISBN  978-89-6195-186-9 93680   |  CIP제어번호  CIP2018028527
도서분류  1. 영화 2. 철학 3. 미학 4. 예술 5. 정치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화염병처럼 쓰여졌다. 이 책을 쓴 김곡은, 아마도, 아마도 틀림없이,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당신의 책상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 영화는 세계를 다시 한 번 시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곡은 망설이지 않고 맞받아칠 것이다. 물론이죠. 믿지 않는 당신을 향해서 이 책은 달려든다.” ― 정성일 (영화평론가)

 

 

『투명기계』 간략한 소개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단지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 『투명기계』는 그 대답이다. 라이프니츠, 니체, 화이트헤드, 맑스 등을 가로지르며, 소비에트,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뉴저먼 시네마 등 영화사의 굵직한 사조들을 아우른다. 장르영화(공포, SF)뿐 아니라 실험영화(애니메이션, 구조주의)도 다룬다. 한국영화도 놓치지 않았다. 유현목과 베르히만, 임권택과 타르코프스키의 비교뿐만 아니라, 한국 뉴웨이브와 신파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접근. 영화의 세기에 영화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던 사람들이 애타게 찾고 있던 책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이제부터 이 책을 읽지 않고 영화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투명기계』 상세한 소개

 

이 책은 아주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영화를 본다’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일뿐더러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체험하는 상황이다. 스크린 앞에 앉아보라. 막이 오르고, 이미지가 투사되면, 내 온몸과 정신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내 신체와 내가 속한 세계가 잠시 잊히는 것과 같이, 나의 시간은 소멸되어 영화의 시간 속으로 그야말로 ‘빨려들어 간다.’ 혹은 ‘흡수된다.’ 이 ‘빨려들어 간다’는 사태를 지시하기 위해 우리는 ‘분위기’라는 아주 좋은 단어를 이미 가지고 있다. 분위기는 스크린에 풍경을 실질적으로 펼쳐냄으로써, 다른 예술장르(문학, 연극, TV … )와는 차별화되어, 영화만이 가지는, 진정 영화적인 요소다. 이 책은 바로 저 사태로부터 영화사를 다시 한번 읽어내려는 시도다.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철학적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우리 머릿속에서, 혹은 우리의 몸과 함께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

저 질문에 답해왔던 책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질문에 좀 더 엄격하게 답해보려 한다면,
영화의 철학은 매우 비본질주의적 철학이어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시간마저 편집되며, (그것이 샷이든, 몽타주든) 순수한 관계만으로 직조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시간은 지속이다’라는 익숙한 정식을 버리고(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시간을 실체로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소멸이다’라는 정식으로부터 영화를 다시 읽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호소하는 이유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이야말로 세계에 어떤 실체도 남기지 않으려는, 순수한 관계의 철학, 비본질주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시간론 : 시간은 소멸이다.

‘시간은 소멸이다’라는
화이트헤드의 시간론은 다른 어떤 시간론보다도 영화의 시간성을 가장 잘 해명한다. 영화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필름스트립이 바로 ‘시간=소멸’의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면과 표면이 부딪혀서 운동을 창발해내는 메커니즘으로서, 최소한 근대 이후엔 원자론이란 이유만으로 탄압당해 온 시간의 구도다.

이 책은 그것을 영화에서 다시 찾으려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영화를 하나의 원자론으로 다시 읽으려는 책이기도 하다. 단, 원자론의 정수가 ‘시간=소멸’과 동의적인 ‘원자들에는 마지막 원자가 없다’라는 비본질주의적 정식이라는 한에서 말이다.

최소한 베르그송의 사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는 이제껏 영화의 시간을 지속으로 사유해 왔다. 이 사유습관에 비추어 보면 영화의 몸통이 필름스트립이란 이유만으로 영화사를 원자론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며, 심지어 불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식이 사실보다 앞설 순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열광했고 또 투쟁했던 수많은 영화들이 얼마나 원자론적이었나, 우리가 느꼈던 그 흥분과 비애는 또 얼마나 ‘시간=소멸’이라는 정식에 입각해 있었나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영화사를 수놓았던 표현들에 이름을 붙인다

이 책은 영화사를 수놓았던 수많은 표면들에 이름을 하나씩 붙여보고자 한다. 또 가능하다면, 그 유형들을 분류하여 시간의 상이한 회로들을 분류해보고, 또 그 각각 안에서 유사하거나 대립하는 작가들을 다시 분류해 보고자 한다. 이 분류법이 또 다시 어색할 순 있겠다.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의 네 가지 회로다(과거, 현재, 미래, 영원). 우리는 영화의 시간을 네 가지 회로들(폐쇄, 스트로크, 병렬, 변신)로 나누었고, 영화사를 각각의 회로에 대응하는 사조나 장르로 분류하고, 또 그 안에서 세부분류될 수 있는 작가나 작가군으로 재차 분류하였다. 각각의 회로는 특유의 표면양태(각각 퇴행, 모방, 평행, 변신)를 가질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일반적 문법(각각 풋티징, 플릭커, 프린팅, 이멀전) 또한 가진다. 반대로 각 영화는 각자만의 존재론적 회로와 그 고유한 기법들로 각기 상이한 시간의 실현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니라, 유형학 혹은 계통학에 가깝다. 단 그것은 원자론적 유형학이다.

변신은 모든 영화의 공통패턴이며, 영화철학은 연극철학으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 네 가지 회로가 공통적으로 지시하는 구체적 사태는 아마도 ‘시간=지속’보다는 ‘시간=소멸’로서 더 잘 해명되는 ‘변신’이라는 사태일 것이다. 변신은 모든 영화의 공통패턴으로서, 비록 그것이 기억, 위장, 전이, 변형 등 상이한 양태로 나타날 손 치더라도, 어떤 영화의 어떤 회로도 직조하는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속성이다. 비록 4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겠으나, 변신은 우리가 고전 몽타주에서도 그 흔적과 징후를 찾을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고전몽타주에서 현대몽타주로, 그리고 네 가지 회로들을 횡단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변신이라는 테마가 이르는 영화적 결론은, 불행히도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이라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결론 중 하나다. 왜냐하면 변신은 배역과 무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영화철학이 끝내 연극철학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또 다시 어색하고 불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가 스크린이 상상과 실재, 이미지와 세계, 배우와 관객, 결국 순간과 지속을 나누는 차단막이라는 본질주의적 구도에 익숙하기 때문이지, 결코 영화의 본성이 연극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반대로 영화는 연극적일 때, 그의 시간을 가장 잘 소멸시킨다. 그때 가장 잘 변신하기 때문이다.이 변신을 지시하기 위해 우리가 택한 단어가, 화이트헤드가 자신의 가능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썼던 그, “투명”이란 개념이다.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모든 원자가 투명한 것처럼,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변신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다. 투명하다는 것, 그것은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합생과 변환의 과정 이외엔 더 숨길 것도, 더 보여줄 것도 없다는 의미다. 변신 이외에 다른 정체성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로라면, 심지어 우리가 으레 경멸조로 말하는 신파영화마저 투명하다.

편집되고 미장센 되는 과정으로서의 시간의 회로 안에서, 그것이 펼쳐내는
투명성 안에서 잘난 영화와 못난 영화의 구분 따위는 없다. 소위 예술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와 실험영화도 최대한 포괄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어떤 측면에서도 서구영화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동양의 영화들도 최대한 포괄하려고 했다(특히 한국 : 유현목, 김수용, 김기영, 임권택, 이원세, 이유섭, 박윤교, 변장호, 심우섭, 남기남, 하길종, 이장호, 배창호, 장길수, 이명세, 정지영 … ).

큰 틀에서
이 책은 리얼리즘에 반대하고, 연극학에 동의한다. 또한 모더니즘 비평에 반대하고 무속학에 동의한다. 후자 쪽이 네 가지 회로의 공통목표인 ‘변신’을 더 잘 해명하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의 부대목표는 영화와 함께 화이트헤드 철학이 얼마나 현대 퍼포먼스 인류학에 가까웠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 인터뷰

 

Q. ‘투명기계’라는 제목이 강렬하고 인상적인데 그것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계’란 말은 이제 익숙합니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그 둘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문제는 ‘투명’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투명이란 말은 단지 안 보인다는 그런 통례적 용법으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투명은, 항구적 변신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변함이라는 사태 이외엔 어떤 다른 정체성을 지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개념을 가능태의 실현방식에 관련해서 사용했는데요, 이 책에선 그것을 가능태의 한 속성처럼 업그레이드해서 쓰고 있습니다.) 영화는 너무 투명합니다. 변신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죠. 영화는 투명기계입니다.

Q. 책이 목차만 훑어보아도 대작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영화세계에 관해 거의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영화가 단지 철학적 대상이 아닌,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많은 저자들과 책들이 대답해 온 건 사실입니다. 허나 대부분이 ‘시간=지속’이라는 구도 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책은 반대로 ‘시간=소멸’이라는 구도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시간관이 변신이라는 사태를 더 잘 해명하기 때문입니다. 변신은 이전의 정체성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매우 운명적인 사태입니다. 영화는 그걸 너무 잘합니다.

Q. 영화를 투명기계로 사유하는 이 책을 접하거나 읽는 독자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책은 들뢰즈의 『시네마』일 것 같습니다. 들뢰즈의 『시네마』는 각 장마다 베르그송을 전유하고 응용하면서 스크린을 불투명한 것으로, 우주의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불투명한 막으로 사유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께서는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를 주요한 준거로 삼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들뢰즈 『시네마』와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영화의 시간은 지속되기 전에 편집되기 때문입니다. 변신하기 위해섭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베르그송적이기 전에 화이트헤드적입니다. 영화의 몸통을 이루는 필름스트립은 정확히 그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여러 장의 스냅사진들이 운동을 창발하는 형식으로. 영화의 본성이 지속이고 그 고유함이 베르그송적이라고 말하려면, 영화의 이 물질적 조건을 사상한 뒤 출발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그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불쾌한 유물론의 혐의를 뒤집어쓰더라도.

분명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굴뚝의 구조에 따라 연기의 색깔이 달라지지, 결코 그 역이 아닙니다.


Q. 국내외에서 출간된 다른 영화 서적들과 비교할 때 이 책 『투명기계』가 갖는 차별점, 이 책의 특이성과 고유함도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쎄요. 이 책이 지시하고자 하는 영화의 본성, 투명성에 거의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외 없음은 단지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닌, 우리가 단지 실용적이거나 때로는 권력적인 목적을 위해서 작위적으로 나누어놓은 범주들(리얼리즘/판타스틱, 예술영화/상업영화, 극영화/실험영화 … )의 경계선을 무력화시킴을 의미합니다.

이 책이 소비에트 영화, 독일 표현주의부터, 미국건국영화들(서부극, 느와르 … )과 현대 할리우드 영화들(SF, 공포, 액션 … ), 반대로 종교적이거나 금욕적인 예술영화로부터 도발적이고 혁명적인 실험영화까지 모두를, 같은 식으로 서양영화뿐만 동양영화까지 아우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모든 영화가 평등한 투명기계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만이 우리 스스로 영화에 대해서 양산해내는 편견과 경멸, 먹물 먹고 맴맴 하는 자의식 엘리트주의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경멸조로 말하곤 하는 신파영화조차, 그것이 영화로서는, 르느와르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만큼 똑같이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의 투명성, 이 앞에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극영화와 실험영화, 리얼리즘영화와 장르영화의 구분 따위는 없습니다. 그건 영화가 불투명하다고 쉽게 가정해버리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사태입니다.

이 책은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들은 무조건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양영화에 너무 매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섣불리 오리엔탈리즘으로 도망치지 않으려 분투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그 둘 중 어느 것으로도 작동되지 않으며, 단지 우리의 펜촉과 뇌세포, 그리고 입버릇이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할 뿐입니다.

또 하나, 영화의 본성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오던 영화적이란 개념과는 너무나 다름을, 심지어 그것은 연극적임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극학의 도움은 필수적이었고, 특히 통일성을 피하면서도 이야기를 직조하는 현대적 몽타주의 경향에 주석을 위해선 동양연극학, 특히 한국민속극의 참조가 불가피했습니다. 일례로, 다시 오리엔탈리즘에 회귀하는 일 없이도 펠리니의 영화가 어찌 마당극적이라 말할 수 없을지요?

또 하나, 영화의 가장 기본적 본성 중 하나인 변신을 설명하기 위해 인류학과 무속학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빙의는 단지 귀신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화엔 빙의가 있으며, 반대로 빙의가 없는 영화는 없습니다. (어떤 영화도 선험적인 공포영화라는 테제는 바로 이 빙의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같은 까닭으로 빙의는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또 하나,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극영화와 실험영화, 리얼리즘영화와 장르영화의 선재적 구분들에 저항하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범주들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혹은 권력으로 점철된 지식의 강단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투명성으로서의 영화는 어떤 장르, 어떤 형식, 어떤 스타일, 어떤 예산규모를 편애하지 않습니다. 그것의 역사는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아름답게 생존해내는 생물의 진화과정과 같습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추천사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화염병처럼 쓰여졌다. 이 책을 쓴 김곡은, 아마도, 아마도 틀림없이,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당신의 책상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영화에 바쳤던 자신의 청춘에 대한 가책과 원한, 분노로 가득한 행간들. 그런 다음 김곡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승리를 향해 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어떤 승리?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다시 한 번, Da Capo!” 영화는 세계를 다시 한 번 시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곡은 망설이지 않고 맞받아칠 것이다. 물론이죠. 믿지 않는 당신을 향해서 이 책은 달려든다. 얼핏 보면 지식의 도구상자처럼 보이지만 속으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화이트헤드. 영화라는 ‘과정’, 세계라는 ‘실재’. 그 둘 사이를 오가는 ‘느낌’의 명제들. 아니, 차라리 선언들. 김곡은 자유자재로 수많은 영화 장면들을 ‘등위적 분할’ 하고 난 다음 스크린이라는 ‘평탄한 장소’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연장적 결합’을 한다. 그러면 거기서 달려드는 수많은 영화제목들이, 정말 많은 이름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 개념들이, 영화에 관한 거의 모든 용어들이, 마치 드릴처럼 당신의 뇌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맙소사! 그러니 이 책을 붙잡기 전에 주의하기 바란다. 행여 여기서 어떤 지식도 훔쳐갈 생각을 하지 마라. 김곡은 이 책을 당신에게 집어던지기 전에 웅변하는 것만 같다. 나는 이제 동굴을 떠납니다. 미래를 밝히는 화염병, 그림자와의 격투. 부디 이 책을 한밤중에 읽지 마시길. 당신은 퇴각로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적이라는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한다” 니체의 그 유명한 말. 이 책은 그 말을 훔칠 자격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은이 소개

 

김곡 (Kim Gok)

본업은 영화감독이다. 공동작업자 김선과 함께 ‘곡사’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한다. <자본당 선언>, <고갈>, <방독피> 등으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밴쿠버 영화제, 부산 영화제, 모스크바 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으며, 상업영화로는 <화이트>, <앰뷸런스>, <기계령>(<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같은 공포영화들을 연출하였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참가하였으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자가당착>(2010)으로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와 소송 투쟁하기도 했다. 현재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포함한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공은 철학이다.

 

 

책 속에서 : 『투명기계』와 영화의 투명성

 

실상 영화는 단지 우리 눈앞에서만 일어나는 사태가 아니다. 그건 우리 눈 뒤에서도, 뇌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며, 엄밀히 말해선 스크린에 견주어도 하나도 꿀릴 것 없는 우리의 망막, 피부, 필름과 나 사이의 그 간극,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충만한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부와 외부 어디에도 독점적으로 속하지 않음으로써 그 둘을 접붙이는 그들의 공통경계로서의 표면에서.

― 들어가기, 6쪽

 

반대로 베르그송은 영화를 혐오했다. 원자론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개념에 있어서건 이미지에 있어서건 “영화적 환영”을 준다는 점에서 원자론과 영화는 그렇게 한통속처럼 보였다. 반면 “지속”은 원자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 1부 1장 소멸의 원자론 : 화이트헤드, 베르그송, 필름, 27쪽

 

브루스 엘더는 에이젠슈테인 체계에서 러시아 상징주의, 중세 신비주의, 심지어 오컬티즘의 흔적까지 찾아서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에이젠슈테인이 과학을 포기하고 신비주의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외려 그가 가장 유물론적 수준으로부터 가장 우주론적 수준으로까지 연역과 종합의 논리를 창출해냈음을 의미할 터다. 다른 소비에트 작가들과 견주어봤을 때 에이젠슈테인의 독창성은 여기에 있다.

― 1부 3장 표면의 초기 형태들, 67쪽

 

신화는 바보들의 놀잇감이다. 그것은 사소한 승패에 열중할 때의 흥겨움, 편을 나누고 역할을 교대하는 도취감, 내기해 놓고 기다릴 때의 설렘으로만 존재하는 대상이다. 하길종은 완벽한 장면을 보여준다. 신문팔이 소년이 거스름돈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오는지 내기 걸어보는 믿음 놀이가 그것이다(<바보들의 … >). 이밖에도 달리기 놀이(<병태와 영자>), 이장호의 보쌈놀이(<바보선언>)가 있을 수 있고, 배창호의 시간멈추기 놀이(<고래사냥 2>)가 있을 수 있다.

― 1부 8장 역사의 신화, 179쪽

 

다큐멘터리 영화야말로 모방의 장르에 속한다. 그것은 세상을 더욱 엄격하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베르토프가 한편으로는 소비에트의 거시적 몽타주와 거리를 두었다면 그가 다큐멘터리 전통에 속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후의 다큐멘터리 작가들과 이론가들이 그에게 이끌렸다면 그가 매우 엄밀한 개념을 통해서 다큐멘터리의 존재론을 정의하고 또 실천해 보였기 때문이다.

― 2부 3장 다큐멘터리, 242쪽

 

히치콕은 뉴턴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과 사물 사이에 편재하는 절대공간(vacuum)처럼, 관객은 연출자와 등장인물 사이에서 “신의 감각중추”(sensorium Dei)가 되므로 그는 물리적 용량이 더 허용되는 만큼 도덕적 책무를 더 져야 하는 셈이다.

― 2부 6장 화이트헤드의 두 번째 모험 : 프레이밍 이론, 305쪽

 

갱스터 영화보다 2틈 위상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장르는 없다. 갱스터는 쌍곡선(과장hyperbole)의 인간이기 때문이다(권세 확장, 부의 축적, 힘의 과시 등). 그 불법성은 도시와의 계약을 문제로 삼을 뿐 여기엔 아직 그 평면의 반전이 포함되어 있진 않다. 반전은 그 과장된 행동선들이 꺾이고 또 함입해서 주체 자신을 향할 때 일어난다. 갱스터 장르의 2틈은 ‘배신’이다.

― 3부 2장 내러티브의 비유클리드적 변형, 385쪽

 

모든 것은 <E.T.>와 함께 달라졌다. 스필버그는 더 이상 외부에 낯설게 남아있지 않고, 인간과 친구가 되고 소통하는 외계인을 보여준다. 또한 외계인은 초대되거나 이미 여기에 와있고(<미지와의 조우>), 인간의 연인이자 친구이다(카펜터 <스타맨>, 로빈스 <8 번가의 기적>). 테크놀로지 역시 더 이상 인간을 위협하는 외부가 아니라 온전히 인간 공동체의 역사를 이루며(트럼벌 <사일런트 러닝>, 와이즈 <스타 트렉>), 미래 역시 낯선 시대가 아니라 친숙한 것들의 잡종짬뽕이다(리들리 스콧 <블레이드 러너>).

― 3부 3장 미래의 내러티브, 461쪽

 

자유간접화법은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 문제다. 모든 말들을 신의 간접화법으로 전락시키는 로고스의 체계는 교회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와 파시즘에 들어앉아 모든 궁핍을 정신 탓으로 돌리며 정작 그 자신은 육체를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파졸리니가 ‘미메시스’를 말한다면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 4부 2장 영원과 육체, 567쪽

 

공포영화를 정의하는 단 하나의 술어, 그것은 전염(contagion)이다. 원한, 살의, 광기, 트라우마, 무엇보다도 그 고통이 전염된다. 물론 전염을 항상 물질적인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전염이 정신적인 양상을 띨 때조차 공포영화의 전염은 육체적이다. 전염은 이물異物 과의 접촉이기 때문이다.

― 4부 3장 공포영화, 595쪽

 

김기영이 결국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맑스주의의 용어법 그대로 소멸충동과 불멸충동의 공존이라는 “모순적 법칙”과 그 “내적 모순들의 전개”다. 하녀들은 독점자본주의 그 자체다. 그리고 축적이 한계에 다다라 과농축된 불멸소의 무게 자체가 장애물이 될 때, 하녀는 마지막 소멸을 결단해서 불멸을 보존해야 한다.

― 4부 5장 김기영, 667쪽

 

영화에서 데모스의 이상적인 형태는 투명기계다. 샤먼기계 혹은 리미노이드 기계. 친구와 적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은 변신 이외에 다른 현존방식을 모르는 변신바보다. 그는 개헌밖에는 자신의 재현법을 모르는 입법바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다시 ‘절차의 투명성’과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의미하진 않는다. 이때 투명성은 지식과 행정의 투명성이 아니라 권력과 변전의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 4부 9장 결론, 776쪽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영화와 공간 ―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적 실천』(이승민 지음, 갈무리, 2017)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비평하고 재편성하였다. 이 책은 ‘왜 공간이 부상하기 시작했을까?’에 대한 거시적 물음에서부터 ‘재개발 투쟁과 은폐된 역사를 파헤치는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은 지금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라는 로컬적 질문까지 아우르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를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동시에 2010년 이후 부상한 영화의 공간(들)을 정리해서 공간의 의미를 펼치며 다양한 함의를 부여한다.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정병기 지음, 갈무리, 2016)

대선에서 경쟁력 있는 제3후보가 적어도 한 명이라도 출마한다면, 1,000만이라는 숫자는 유효 투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해 당선 확정에 근사한 수치다. 2005년 이후 천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들은 권력과 관련되는 내용을 다루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사회 부조리와 관련된 이슈들을 주로 다루었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화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들뢰즈의 씨네마톨로지』(조성훈 지음, 갈무리, 2012)

씨네마톨로지란 영화(cinema)와 증후학(symptomatology)의 합성어로 들뢰즈가 <시네마> 1권, 2권에서 제시한 이미지 분류학을 말한다. 이미지를 질적 차이에 따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그러한 분류학은 우리 삶에 어떤 함의를 가질까? 이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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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1/1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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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_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제정반대
2018. 9. 17. 국회 정론관, “대통령 공약 파기,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

 

“대통령 공약 파기,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

최소한의 명분도 사라진 은산분리 완화 시도 중단하라
규제완화 정당성도 방향성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추진할 뿐
재벌대기업의 은행 소유 허용하는 과오 저질러선 안 돼

 

최소한의 명분과 방향성도 잃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 시도가 정기국회에서 다시금 추진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제시했던 재벌대기업은 제외하고 ICT기업에 한정하겠다는 내용도 사라진 채, 사실상 모든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방안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https://bit.ly/2MCz3yL)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간사가 은산분리 완화 대상을 법에도 명시하지 않은 채, 그저 시행령에 담는 방식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는 사실상 모든 산업자본의 은행의 소유 및 지배를 허용하는 것으로, 애초에 정부·여당이 강조한 바 있던 재벌대기업의 은행 소유는 막겠다는 마지막 원칙도 사라진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금융정의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빚쟁이유니온(준)·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주빌리은행·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정부·여당이 그토록 강조한 바 있던 ‘ICT기업에 한정된 은산분리 완화’라는 최소한의 보루도 명분도 사라진 지금, 맹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은산분리 완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는 2015년 6월 18일,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계획을 발표하며 “비금융주력자 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규제완화 대상에서 제외(현행 규제를 그대로 적용)(https://bit.ly/2QAXpMv)하여” 경제력 집중 논란을 불식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재벌 배제 원칙은, 문재인 정부가 갑작스럽게 대선 공약을 위배한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총수 있는 ICT 재벌대기업에 대한 예외 허용, ▲국회 상임위원회의 논의 시작 전 8월 임시국회 처리 합의 등 은산분리 완화 주장은 내용과 형식 모두가 부적절했으며, 그로 인해 이미 은산분리 완화 주장은 예외가 원칙을 압도하고, 졸속이 신중함을 내치는 등,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8월 임시국회 처리는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당초에 갖추지 못했던 내용의 정합성이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기는커녕, 정기국회에서는 애초에 정부가 내세운 명분에서도 한참 벗어나 은산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할 우려가 있는 입법이 시도 중이다. 은산분리 완화의 명분으로 제시했던 재벌대기업 제외 원칙도 사라진 채 추진 중인 현재의 논의는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은산분리는 재벌대기업 중심의 독점적 경제구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금융질서를 유지하는 파수꾼으로 작동되어 왔다. 맹목적으로 추진되는 은산분리 완화는 재벌대기업에 모든 자본이 집중되는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으며,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급속도로 부실화되고 있는 케이뱅크의 사례는 케이뱅크의 사례는 은행에게 필요한 것은 산업자본 대주주가 아닌, 전문적 경영 능력임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자본이 은행의 대주주가 되어야 할 설득력 있는 논거는 은산분리 완화를 제시한 이후, 단 한 번도 제시된 바 없다. 그저 무조건 통과만 강조되어 왔고,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주장은 발목잡기로 치부되어 왔다. 오늘(9/17)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합의 도출을 시도한다고 한다. 정녕 더불어민주당은 재벌대기업이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의 문제점은 물론이고 과정에서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여실하게 드러낸 바 있는, 최소한의 명분도 상실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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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9/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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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주권 지키기” 토론회 개최

 

한국의 디지털 정책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국내 플랫폼의 역차별 해소, 해외 OTT의 정당한 망사용료 지불, 해외 IT 기업의 조세 형평 등의 목적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서버 현지화 법안을 발의했으며 정부는 망중립성의 완화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에 고려대학교 미국법센터, 사단법인 오픈넷, 주한미국대사관은 11월 28일 수요일 오후 1시부터 고려대학교 CJ법학관 512호에서 “국경 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주권 지키기”란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고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이러한 경향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제1세션은 “서버 현지화”를 주제로 데이터 현지화 및 서버 현지화의 정책적 함의와 대안을 알아봅니다. 조슈아 멜처 선임연구원(Brookings Institution)이 발제를 맡고, 주디스 리히텐베르크 사무총장(Global Network Initiative), 조장래 상무(한국마이크로소프트), 박훤일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가 토론자로 참여합니다.

제2세션은 “망중립성과 망상호접속”에 대하여 주요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지원하는 국제 비정부기구 Packet Clearing House의 빌 우드콕 사무총장이 발제하고, 김인성 IT칼럼니스트, 김정렬 통신경쟁정책과장(과학기술정보통신부), 최성진 대표(코리아스타트업포럼), 마이클 쿠 부연구소장(Technology Research Project Corporate)이 토론합니다.

참가신청은 아래 링크를 통해 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참가신청: https://goo.gl/forms/oxmDz3je21m71Stj2

 

[토론회 안내]
국경 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주권 지키기”
Borderless Internet vs. Digital Sovereignty

ㅇ 일시 : 2018. 11. 28. 수요일 오후 1시 – 5시
ㅇ 장소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CJ법학관 법률 리더십 아카데미(512호)
ㅇ 공동 주최 : 고려대 미국법센터, (사)오픈넷, 주한미국대사관

<개회사>
Harry Harris 주한미국대사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전체 사회>
박경신 교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사)오픈넷 이사

<세션 I : 서버 현지화>

– 내용: 데이터 현지화 및 서버 현지화란 무엇인가? 어느 나라에서 시행 중이며 그 정책적 함의는 무엇인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

– 발제: Joshua Meltzer 선임연구원, Brookings Institution

– 토론:
Judith Lichtenberg 사무총장, GNI (Global Network Initiative)
조장래 상무,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박훤일 교수,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세션 II : 망중립성과 망상호접속>

– 내용: 인터넷망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ISP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접속에 기여하는가? 망중립성과 상호접속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한국의 “발신자 부담” 상호접속고시에 대한 평가는?

– 발제: Bill Woodcock, 사무총장, PCH (Packet Clearing House)

– 토론:
김인성 IT칼럼니스트, (전)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김정렬 통신경쟁정책과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최성진 대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Michael Khoo, 부연구소장, TRPC (Technology Research Project Corporate)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화, 2018/11/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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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보도 막은 이명박 정부 국정원, 청년들은 분노한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 반값등록금운동에 색깔론을 입히고 보도통제

보도통제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촉구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청년들의 반값등록금 집회를 막기 위해 이명박 정권 국정원이 ‘보도 통제’에 나서고 방송사들은 동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청년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진행한 반값등록금 운동을 ‘종북좌파’라며 구시대적 색깔론을 입히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 청년참여연대・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는 이와 같은 행태에 분노하며, 이명박 정권 국정원, 방송사 부역자 등 반값등록금 보도통제와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

 

경향신문의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이 2011년 지상파 3사와 보도채널 2곳에 “반값등록금 집회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의 요구에 방송사들은 반값등록금 집회를 ‘종북좌파 시위’ 등으로 규정지으며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확대되던 반값등록금 집회를 막기 위해 국정원이 ‘보도 통제’에 나서고 방송사가 동조한 것이다.

 

‘2017년 OECD 교육 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사립대의 연평균 등록금은 8,205달러(PPP)로 OECD 회원국 중 미국 호주 일본에 이은 4위다. 시민사회는 살인적인 고등교육비에 대처하여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2008년 2월 참여연대를 비롯해 청년학생, 학부모, 전국 500개 이상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이하 등록금넷)’를 결성하고, 등록금에 대한 법적·제도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왔다. 등록금넷은 불투명한 등록금 산정, 과도한 적립금 적립, 비민주적인 등록금심의위원회 설치 등 등록금과 관련해 다양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이명박 정권 국정원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반값등록금 운동은 고등교육 비용을 개인이 온전히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며, 정부가 대학의 공공적 운영을 감시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청년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반값등록금 운동을 했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권 국정원의 몰상식한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은 2010~2016간 321만 명, 대출금액은 9조 4363억 원이나 된다. 청년 실업은 최악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청년들이 과도한 등록금을 채우기 위해 대학 등록을 연기하거나 포기한 채 열악한 청년노동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명박 전 정권의 보도통제와 등록금 운동 방해공작이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 큰 책임이 있다. 검찰은 이명박 전 정권 국정원의 반값등록금 운동 방해와 관련해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강력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끝.

 
청년참여연대⋅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
 
화, 2017/11/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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