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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시민이 직접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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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시민이 직접 나서자

익명 (미확인) | 목, 2016/11/10- 12:05

박근혜와 최순실의 합작으로 대한민국은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국가의 기강은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지난 10월26일부터 실질적으로 대통령 역할이 정지된 상태에서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시위를 통해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퇴진과 탄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속한 새판짜기 나서야 

박근혜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임시방편으로 국가를 운용하는 큰 합의와 원칙을 다루는 헌법 개정이라는 카드를 휘둘러 이미 레임덕에 들어간 본인의 권력을 유지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패와 비리와 실수를 덮으려는 수작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개헌 제안은 다음날 곧바로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김병준, 한광옥 등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허접한 인물들을 동원하여 권력 유지를 시도해 보지만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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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4일, 두번째 사과를 했지만, 다음날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20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시민들의 마음 속에서 박근혜는 이미 심리적 탄핵을 당한 것이다.

식물대통령이 된 박근혜의 존재를 전적으로 묵살하고, 신속하게 새판을 짜야 함은 당연합니다.

동시에 현재 상황은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이어 대한민국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매우 중대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당시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아쉬움과 부족함을 그동안의 경험과 반성을 더하여 이제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볼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을 보탭니다.

그러나 국정운용이 불가능할 만큼 황당한 상황이 돌출하여 이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되여 있는 상태에서 정치권 내부가 역사와 미래를 위하여 대승적으로 바라보고 움직이기 보다는 각자의 입장과 탐욕에서 접근하면서 큰 혼란과 격동에 휘말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선 이를 수습하기 위한 당장의 과제는 박근혜 권력을 무력화시키고, 합당한 절차로 제대로 된 차기 정부를 탄생시킬 임시적이고 중립적인 거국내각을 신속히 구성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개헌 논의 중단해야

한편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소위 모든 대권 주자들이 개헌에 대하여 각자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막장드라마를 반영하듯 ‘박근혜는 개헌에 개입하지 말라’는 공통어 이외에는 모두 제각기 자신의 위치와 이해관계 속에서 중구난방의 제안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충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난 수십 년간 지겹도록 들었던 내용을 레코드판 돌리듯이,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권력구조에 편중되여 있습니다. 그 방식 역시 천방지축으로 원포인트 개헌방식에서부터 순차적 방식, 포괄적 방식 그리고 선거구제 개편우선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조급한 인사들은 당장 내년 초라는 시한부터 정한 상태에서 개헌하자고 분탕질부터 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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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전략포럼 주최로 열린 개헌 관련 특강 모습.

이에 대하여 일부 걱정여린 시민사회에서는 단순한 권력구조의 개편을 넘어서서 국민의 기본권과 주권을 강화하고 사법부의 인사권 독립 등 삼권분립을 분명히 하고, 양극화 등으로 심각해진 삶의 질적 내용을 개선하는 사회경제권의 보장을 확대하고, 더 나가 생명, 분권자치, 환경, 평화의 내용을 추가하는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박근혜는 물론이고 모든 정치인들은 개헌 논의를 중단할 것을 요청합니다. 제도 정치권은 위에서 언급한 과도기의 거국내각을 제대로 구성하여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합당한 절차에 의해 신속히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개헌 논의는 시민의 지혜를 모으는 방식으로

지난 과거 매우 중요한 계기와 국면을 맞이하면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고 성찰하며, 단단한 다짐으로 정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고 새로운 판으로 여태껏 보여준 시민들의 에너지를 집중시켜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조급하게 추진해서 일을 그릇쳐서도 안됩니다.

출발부터 야합적이였던 87년의 헌법체제가 명백한 한계를 들어낸 점을 인정하더라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이해당사자이며 마름꾼에 지나지 않는 정치인들로 구성된 국회에서 진행할 것이 아니라, 국가성립의 출발점이자 주권자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의회’를 구성하여 이를 추진하고 주도해야 합니다.

시민의회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정부수립 이후 지난 70년 간 관련 헌법조항들이 권력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개악되고 권력에 눈이 먼 정치꾼들에 의해 졸렬하게 수정되고 봉합되어온 상처투성이의 역사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3년이 주는 매우 중요한 의미는 좌우 진영 간의 이념대립이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가 자신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 않았고 민족 대다수의 열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기대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이야기한 ‘무지의 베일 속에 현실적 이해에 거리를 두어 적당히 무관심하고 중첩된 공동의 합의가 가능한 상황’에 근접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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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활동한 헌법기초위원회 위원들. 가운데 앉은 사람이 이승만 제헌의회 의장.

다행히 서구 헌법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했던 젊은 유진오 박사가 중심이 되어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험과 당시 국민들 70% 이상이 지지했던 사민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초안을 준비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적 흐름에 맞추어 제안된 기본권과 사회경제적 조항에 대해서는 제헌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쉽게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박사가 당연하다고 믿고 기초한 내각책임제라는 권력구조의 내용이 미군정이라는 배경과 막후조정으로 초대 대통령으로 내정되었던 이승만 당시 임시 국회의장의 개인적 고집과 권력에 대한 탐욕에 의해 수 일 만에 대통령중심제로 뒤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헌법역사는 출범부터 권력자에 의해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권력구조에 대한 굴곡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제헌헌법은 당시 세계 어느 나라의 헌법과 비교하여도 손색없는 현대적 내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고 투쟁하여 쟁취한 결과물이 아니라, 외부적 환경에서 주어진 수동적 독립신생국가라는 배경과 필요에 의해 유능한 헌법학자 개인들이 기초하고 제헌국회에서 채택하여 발효된 ‘단지 선언적 의미’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정치권의 야합으로 만들어진 헌법들

이후 진행된 개헌과정은 60년 시민혁명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외없이 권력자들의 불법적인 집권연장과 군사정권들의 불법적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내용을 보면 이름에서부터 손쉽게 파악되듯이,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군사정변에 의한 개헌, 장기집권을 위한 3선 개헌과 유신헌법, 신군부의 국보위 개헌, 87년 야합적 개헌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오로지 60년 시민혁명에 의해 이루어진 제3차 헌법개정만이 이승만 독재자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던 제헌헌법의 정신과 맥락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킨 정당한 과정이었습니다.

주요한 개정내용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자유권을 크게 강화하고 독재자 이승만에 의해 저지되었던 의원내각제를 도입하고 삼권분립의 핵심인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며, 위헌입법의 심사와 기타 헌법사항을 관할하는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선거의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중앙선거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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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18일 국회의장실에서 이재형 국회의장(가운데)과 여야 원내총무들이 6공화국 헌법안을 마주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민당의 정재원, 민정당의 이대순, 이 의장, 민주당의 김현규, 국민당의 양정규 총무. (사진 출처: http://jjlife.joins.com/club/club_article.asp?mode=CLIP&total_id=168016…)

일부에서는 87년 개헌의 내용을 6월 민주화혁명에 의해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만, 위의 제3차 개헌의 내용과 단순 비교해 보아도 87년 개헌은 당시 이루어야 할 역사적 소명과 민중적 요구는 철저히 묵살되고, 양 김씨의 탐욕에 의해 성급하게 이루어진 야합적 과정입니다. 

헌법재판소와 지방자치제의 부활 등 몇가지 유의미한 개선사항은 이미 60년에 있었던 개정내용에서 이미 쟁취된 것으로 권력구조에 대한 야합을 포장하기위한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정치적 전개과정이 필자의 입장을 그대로 증명해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시민혁명 또는 시민의 주도적 참여가 없는 개헌 논의와 과정은 지난 역사에서 보듯이 직업 정치꾼들의 정파간 이해관계의 충돌과 조정에 따른 개악으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거나, 또다시 시민적 요구와는 동떨어진 야합의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개헌에 대한 일체 정치권의 논의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4.19 민주혁명 또는 6월 민주항쟁과 같은 역사적 상황의 성숙을 기다리거나, 국민여론이 비등하여 빠른 개헌을 실행해야 한다면 이를 전적으로 시민들이 주도하는 논의구조에 위임해야 마땅합니다.

시민의회를 구성하자

후자의 방식으로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 구성이라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백년의 이사인 김상준 경희대 교수가 ‘미지의 민주주의’에서 제안한 제도개혁 방식인데,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된 정치실험이기도 합니다. 

캐나다(2004, 2006)에서 선구적으로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가 소집된 바 있습니다. 이후 네덜란드(2006)에서 시민의회 방식으로 첫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2013년에는 아이슬랜드가 시민의회 방식으로 개헌을 이뤄냈고, 올해는 아일랜드에서 개헌을 위한 시민의회가 소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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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열린 시민의회 모습.

선거법 개정이라는 주제 역시 개헌과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임의 룰로서 그리고 정치적 결정과정의 틀로서 선거법은 헌법과 함께 매우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선거구제 중심의 국회의원선거는 지역감정과 이해에 갇혀 국민들의 여론과 요구를 비례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며 정책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을 크게 제약하고 있습니다.  

단순다수제로 대통령을 뽑는 현행 대통령선거 역시 불과 30%대 지지로 당선을 결정하므로써 매우 취약한 정권을 만들어 내는 약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정치권은 중이 제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처럼 당장 각자의 정치적 계산에 매달려, 일반국민들의 요구와 기대를 무시하게 마련이며 중장기적인 국가발전의 비젼과 전략을 추진할 수 없는 근시안적 구조에 갇혀 버렸습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중에 주요 정당 간에 이루어진 비례대표제 처리과정은 이를 보여준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정치와 국정운영의 과정은 시민사회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매우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무당의 아바타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서는 참담함의 굿판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을 현재 우리 모두 절절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구속력을 지니는 합법적 진행을 위해서 우선 국회에서 (헌법과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의 구성을 헌법기관적 성격으로 결의해야 합니다.

시민의회를 통한 헌법과 선거법 개정 절차

시민의회는 그리스 민주제에서 실시하였던 무작위 표본차출방식과 현재 법원이 채택하고 있는 배심원선정의 경험을 결합하여 구성원을 선출하되 직접적인 이해를 가지는 기존의 직업정치인들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구성 인원수는 시민적 여론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인 동시에 현실적으로 충분히 토론하고 숙의하고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대략 500 -1000 명 수준이면 가능하리라 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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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기 위해 모인 시민의회 관계자들의 모습.

기간은 일년을 기준으로 하되 필요하면 기간을 언제든지 연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민의회 활동을 조직, 지원, 진행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지닌 운영위원회와 자문위원회의 구성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운영위 구성은 시민의회 구성원들 중심으로 민주적 절차를 걸쳐 선출하는 것이 순리이며, 자문위원회는 전문가 집단과 학계 그리고 검증된 시민단체의 활동가로 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헌법학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군, 변호사 단체 그리고 시민의회 구성원들 과반수가 동의하는 시민단체의 대표 또는 경험 많은 사회활동가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법과 선거법의 개정안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행정부처가 발의할 수도 있고, 10인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동의한 제안서를 받아들일 수 있고, 10만명 이상 시민들이 연명한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접수된 제안들을 자문위의 전문집단들이 검토하기 전에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과 조건 그리고 상황과제 등 일반적 주제에 대하여 폭넓은 발제와 성찰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가라는 존재의 근거가 부정되고 붕괴될 지경에 이른 현금의 사태에서는 더욱 절실합니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두뇌집단들의 다양한 고견을 청취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대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성찰의 기회와 과정을 거친 후 제안된 내용의 제안자들의 배경설명과 자문위의 전문가 집단들의 의견을 동시에 청취하는 단계, 이에 기초해 시민의회 구성간 토론과 숙의 과정, 필요하면 여론 조사과정, 숙려의 과정, 재청취와 재토론 과정을 거쳐 제안된 모든 제안을 검토하여 2-3개로 압축하는 과정, 압축된 안건에 대해 재차 여론조사와 숙려와 재차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최종 결선하는 투표과정 등을 거처야 할 것 입니다.

시민의회가 결정한 사안에 대한 이후의 진행은 현재의 헌법과 법률이 정한 과정으로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필자는 지난 7월 초 사드배치가 결정난 이후 100여일 간에 걸쳐 간단없이 반대투쟁을 해오고 있는 성주와 김천 지역시민들에게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짧다면 짧은 기간에 지역시민들이 스스로 토론을 조직하며 획득한 역사와 정세에 대한 지식과 판단력은 참으로 적확하고 해박하며 책임감과 통찰력까지 갖추었습니다.

그간 정권과 매스컴에 곡학아세하며 전문인 행세하는 무리들과는 격과 차원을 달리 합니다. 지역 변방의 시민이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고 토론과 숙의를 통하면 얼마든지 성숙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 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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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했다. 사드 반대 투쟁과정에서 성주, 김천 시민들은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으로 조직화됐다. 이런 시민의 각성을 바탕으로 헌법 개정 과정에도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봐야 한다. 헌법은 결국 공화국에 사는 시민들 자신과 그들의 후손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배치 반대 투쟁에 나선 성주와 김천의 지역시민들 뿐만 아니라 제주도 강정에서, 경상도 밀양에서, 강원도 삼척에서, 그리고 광우병과 세월호 등 시국사건의 경험을 통하여 나타난 전국적인 시민들의 역량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민의회는 이러한 가능성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역량으로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차기 대선주자들은 각자 이해관계에 갇힌 속좁은 개헌주장을 모두 거두고 차기 대통령 선거공약으로서 시민의회 구성을 제안하여 주시길 요청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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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영구 공사 중단 여부를 ‘공론조사’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국가 정책의 결정 권한을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촛불 항쟁의 결과로 탄생한 정권다운 일이다.

대체로 공론조사는 일반 시민 200~300명을 무작위 추첨으로 뽑아 시민 패널을 구성한다. 이어 사전 교육·전문가 패널의 프리젠테이션·질의응답을 통해 해당 분야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소통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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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처럼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맞붙은 정책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공론화위원회는 ‘정책과정에서 시민 참여’와 ‘숙고에 의한 정책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실험이라는 의미가 있다.

실험 중인 합의모델, 공론화위원회

이후 시민 패널을 10~15명 정도로 나눠 원탁 토론을 진행하고 다시 전체 회의를 여는 등 검토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퍼실레이터(facilitator, 토론 촉진자)가 함께해 민주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약 3개월 동안 숙의 과정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다루는 사안에 대해 시민 패널의 의견을 수렴한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공론조사를 여론조사 정도로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잠시 살펴보았듯이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공론조사란 국정 논의에 국민이 참여해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이다. 이것은 성찰적 합의를 이뤄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유용한 방식이며, 공공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합의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더 깊이 살펴보면, 여기에는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와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기도 하다.

기존 대의제 정치로는 갈등만 부추길 뿐 문제를 해결하지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도 못했던 우리사회에 이 합의 모델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공론조사에 대해 “앞으로도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신간 ‘추첨 시민의회’…왜 추첨인가?

만약 공론조사의 방식을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여 더욱 확대한다면 어떨까?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수백 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심의 기구가 국가의 중요 기관이나 지자체마다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소모적인 대결과 갈등의 정치를 넘어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기서 <추첨 시민의회>라는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대의제의 한계를 넘어서 참여 민주주의와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론조사, 시민 배심, 합의회의, 기획배심 등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추첨 시민의회다.

우선,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자. <추첨 시민의회>는 크게 둘로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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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민의회의 다양한 사례와 한국에서 실현가능한 대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첫째, 다양한 일반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면서도 토론이 가능한 규모로 인원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른바 ‘미니 공중’(mini public, 국민의 축소판)이다.

미니 공중은 “작지만 깊이 있는 심의가 가능하여 진정으로 민주적 대표성을 보유하는 심의 포럼”이며, “기존의 이익집단이나 계급처럼 당파적이고 동질적인 이익에 기반을 둔 주체가 아니라 비당파적이고 공적인 관점을 지닌 주체”다.(34쪽)

이 개념의 선구자는 현대 정치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로버트 달(Robert Dahl)이다. 그는 폴리아키(polyarchy, 다두 정치)가 ‘인민에 의한 지배’로 다가갈 수 있는 제도적 개혁으로 무작위로 선출한 수백 명의 시민 자문위원회를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이 자문위원회가 다두 정치 체제의 선출자인 시장, 장관, 의원, 대통령 등을 보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데모스(demos, 다중)에서 무작위로 선출한 미니 공중의 의견은 데모스 자신의 의견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니 공중의 판단의 권위는 민주주의의 정통성으로부터 도출된다고 말한다.

둘째, 추첨(제비뽑기)이다.

만약 미니 공중이 자원자에 의해 구성되면, 정확한 국민의 축소판이 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자원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편향성이 생기게 된다. 민주적 대표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추첨이라는 무작위 선택이 필요하다.

추첨은 대의제를 핵심으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잊혀진 공직 선출 방식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공직 선출 방식으로 선거보다 추첨이 더욱 일반적이었다.

고대 아테네의 시민평의회, 시민법정, 행정관을 모두 추첨으로 뽑았다. 매우 소수의 행정관만 선거로 뽑았을 뿐이다.

“추첨을 통한 공직 배정이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의 핵심”(36쪽)이었으며, 이것이 근대 민주주의와 본질적 차이를 낳았다. 근대 민주주의에서 추첨 민주주의는 사법 배심제로 남아 있는 형편이다.

추첨의 장점은 다양하다. 추첨은 선거가 만드는 대표성의 왜곡을 낳지 않고 대표자와 피치자의 유사성의 원리를 실현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다스리고 다스림 받는 것을 번갈아 가면서 하는’ 민주정의 기본 원칙과도 부합한다. 그리고 번갈아 가면서 하는 통치와 복종을 통해 시민 덕성을 키울 수 있다.

추첨을 통한 미니 공중 구성의 요청은 그 배경에 정치 참여에 배제되는 이가 없어야 하고 누구나 시민 덕성을 발휘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공화주의 사상이 깔려 있다. 이 새로운 모델이 공화주의자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의회의 실제 사례들

시민의회가 실제로 운영된 사례는 어떠했을까?

우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시민의회를 운영한 사례가 유명하다. 이어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의회를 운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정치인들의 개리멘더링을 막기 위해 시민선거구획정위원회를 운영했다.

아일랜드는 헌법 개정을 위해 시민의회를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지금도 시민의회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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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일랜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의회의 모습.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시민들이 냄비를 들고 나와 두드리는 이른바 ‘냄비 혁명’이 일어났고, 그 힘으로 헌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가 구성되었다. 아이슬란드의 개헌 시민의회는 집단 지성의 힘을 적극 활용하는 ‘크라우드 소싱’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시민의회가 기존 정치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선거법 개정과 헌법 개정 논의에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대의제로 대표되는 근대 민주주의를 넘어서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노력이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이들의 도입 배경, 구성 절차, 진행 과정, 운영 규칙, 성과와 한계 등에 대해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시민의회를 통한 개헌, 선거법 개정

이 책에서 더욱 주목할 내용은 시민의회 도입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다. 선거제도 개혁 시민의회, 헌법 개정 시민의회, 주민 자치 실현과 균형 잡힌 양원제를 위한 시민의회 도입 등이다.

선거구나 정치자금법, 의원 정수, 선거 제도 등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사안을 지금처럼 국회에 맡기는 것은 문제가 크다는 걸 누구나 동의한다. 간단히 말해,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없으니 다른 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를 공정하게 다룰 수 있도록 ‘선거제도 개혁 시민의회’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무작위 추첨으로 1년 임기의 시민 위원을 300명 가량 선출해 심의하고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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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이슬란드는 개헌을 위해 시민의회를 구성, 운영했었다.

또한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의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소가 선거구 획정 문제다. 그러니 더 나아가서 의회 내 상임위원회의 하나로 둬서 의회 불신과 정치 불신을 막고 시민의 일상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민주 정치의 고전적 딜레마를 풀고자 한 스나이더(snider)가 시민 선거 배심으로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년 만에 국회 내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렇지만 최고의 사회계약인 헌법 개정안을 개헌특위 36명 국회의원이 논의해서 마련하는 것은 부족함이 크다. 국민이 단순히 국민투표에서 찬성과 반대만 표시할 수 있어 국민 주권주의에 충실하지 못하다.

이 책은 이미 아일랜드와 아이슬랜드에서 경험으로 입증된 ‘헌법 개정 시민의회’를 법으로 뒷받침해 소집할 것을 제안한다. 국민이 정치 체제의 근본적 원칙을 수립하는 주체가 되어야 헌법 1조 국민 주권주의가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시민의회+국회…양원제 제안

특히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맞춤한 더 큰 제안을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현재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위촉이나 추천으로 구성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를 추첨으로 선발해 다양한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권한을 부여해 읍면동 민회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 자치 실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읍면동 민회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 민회를 구성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 민회에서 광역지방자치단체 민회를 구성하며, 결국 국가 민회를 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읍면동 민회를 기반으로 해서 국가 민회까지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특정 파벌이나 힘센 이익집단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민회로 기존 의회를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기존 의회의 한계를 보완하는 양원제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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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제도이지만, 실제 국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자신의 주장과 목소리가 국가 정책에 반영되기를 주장한다. 그러나 기존 의회와 함께 이런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양원제를 운영하면 어떨까?

기존 의회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하고, 새로운 민회는 추첨으로 선출된 일반 시민들로 구성한다. 기존 의회는 여전히 입법권을 지니지만, 새로운 민회에 의안 발의권·거부권 등을 부여한다.

이런 방식의 양원제로 입법 권력을 나누어 놓으면 양 원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 현 의회의 많은 단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되어 유용하다. 이는 계층 혼합이라는 공화주의 가치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에너지와 역동성은 예측 불가한 점이 있다. 시민은 2016년~2017년 촛불 항쟁으로 헌정을 유린한 대통령을 끌어 내렸다. 이 민주적 자산은 분명 시민의회 도입의 핵심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차례의 촛불 시위로 알 수 있듯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은 직접적인 행동을 동반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추첨 시민의회는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제도적으로 결집시키고, 정책 결정 권한을 부여받은 공론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201쪽)

대의제의 보완재로서 시민의회

시민의회를 제도화하려는 제안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책은 이를 한데 모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다른 제안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오늘날 대의제로 대표되는 근대 민주주의에 수많은 의문과 회의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정치는 관객 민주주의로 전락해 한편에서는 조롱거리로 희화화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인 개인에 대한 호감도 문제로 변질되었다. 특정 정치인을 무조건 옹호하는 이른바 ‘빠’ 정치 현상도 벌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시민의회는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와 관객 민주주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좋은 대안이다. 또한 촛불 정부로 불리는 문재인 정권이 새롭게 추구하는 합의 모델로도 유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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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내년 개헌과정에 시민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사)다른백년은 지난 3월, 시민의회를 주제로 한 2017년 백년포럼 시즌1에서 시민의회를 통한 개헌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물론 시민의회가 결코 만능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는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와 딜레마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대안이라는 점, 일반 시민의 참여를 제도화해서 국민 주권주의라는 이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점 등에서 강력하다.

민주주의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적응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극복하며 새롭게 태어난다. <추첨 시민의회> 책을 통해 한국에서도 시민의회 논의가 단지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안들이 논의될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하나의 주제를 정해 모의 시민의회를 가동해 본다면 어떨까? 그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며 논의를 더욱 진전시켜 보는 것도 좋을 테다.

수, 2017/08/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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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3년간 박근혜 정권에서만 수 십조원의 관련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2015년기준 역시 세계최저수준인 1.2에 머물렀다 한다.

1960년대에는 매년 100만명정도의 신생아가 출생하였으나 2015년에는 겨우 40만명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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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다고 알려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까지 조만간 경제가능 활동인구가 줄어들 것을 예상하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크게 걱정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책당국자들만 아니라 진보적 진영 그리고 복지정책을 연구하는 분들까지 한국의 출생율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예상되는 비난을 무릅쓰고 필자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우선 이와 관련하여서 출산율 증대를 위해 한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단시안적이고 지엽적인 정책에 대한 비판(“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질문“)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통계학적인 인구감소에 따른 걱정들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흔히 사용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성격이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고령화’도 ‘저출산’처럼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느낌을 풍긴다.

이를 서로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옳고, ‘고령화’는 예컨대 ‘평균수명개선’이라는 긍정적 단어로 바꾸어 사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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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출산장려책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출산율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문제의 요점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현상과 통계학적 구성에 있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저출산 인구감소’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를 염려하는 주요 배경에는 1) 경제활동인구 또는 생산담당인구의 감소, 2) 소비주체로서 인구수 감소에 따른 시장수요 격감과 경기침체, 3) 연금을 포함하여 현재 제도화된 각종 사회복지정책의 지속성 붕괴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웃한 일본의 장기적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을 일차적으로 인구문제라고 진단한다고 하니, 앞으로 한국에 닥칠 상황을 우리에게 미리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은 오히려 실업률 감소 요인

우선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에 대한 걱정은 앞으로 닥칠 미래의 모습인 제4차 산업혁명 및 알파고의 인공지능 시대와 매우 모순적이다.

신규 일자리는 고사하고 기존의 생산직뿐만 아니라 관리직과 전문직종까지 로봇과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대치될 것을 예상하는 미래사회에서 경제활동인구감소는 걱정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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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발전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로봇이 부족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Venturesafrica)

이제는 머릿수와 근육질의 과잉노동으로 생산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축척해온 과학기술과 사회경제적 시스템으로 일상에 필요한 서비스와 물적 수요를 생산하고 제공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실업문제는 자연히 해소될 소지가 크다. 출생율 1.5 수준의 독일과 일본 젊은층의 실업율이 절대고용수준 정도로 낮은 것에 주목해 본다.

소비자 권력 강화해야 

인구감소에 따른 소비수요, 그리고 경제의 침체를 염려하는 것 역시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경제의 규모는 연간 만들어지는 부가가치의 총량이다. 되풀이하는 이야기이지만, 생산측면에서는 머릿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기술력과 시스템이 해결하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배분과 순환과 소비의 과정이며 이는 전적으로 경제권력의 이해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이슈이다.

대다수의 시민들로 구성되는 소비주체들에게 더 많은 경제권력을 배분하고 양도하면 해결할 수 있는 주제이다.

최저임금의 대폭인상과 동일임금제 적용 등 노동배분율을 상응하게 높이고, 복지체계를 강화하여 균형적 순환이 가능한 재분배 과정을 설계하고, 필요하면 헬리콥터-드롭( helicopter- drop)등의 재정정책을 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된다. 중앙대 김교성 교수가 지적했듯이 미래는 반드시 소비중심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회변화 반영한 복지제도 설계해야

아래에 예를 드는 덴마크를 포함하여, 북유럽을 위시한 유럽 선진형 복지체계는 제2산업혁명과 2차세계대전 전후 50여 년간의 황금기에 형성된 것이다. 물론 이들의 경험과 사례는 매우 소중한 인류자산이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과 시대의 흐름에는 새로운 상상력과 상응된 정책의 도입이 요구된다. 산업구조와 경제활동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미래가 다가오는데, 과거의 발자취에 머물러 연령과 인구통계학적 구조의 좁은 시야로 비탄력적인 복지체계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경제활동 가능연령이 18세부터 설정되여 있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60-65세 이후에는 반드시 은퇴하리라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오히려 다가오는 21세기의 후반은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시대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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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ibu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89)

사회의 변화와 필요에 상응한 역할과 능력과 의사에 따라 경제와 사회복지의 정책이 탄력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물론 미래에서도 복지체계 또는 사회안전망으로서 교육, 의료, 주거 그리고 장애지원 등의 영역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고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여부와 수준이 복지체계에 대한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본다.

인구감소 충격 최소화할 유연한 정책 필요

조만간 한국사회가 겪을 인구감소의 어려움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화석연료가 고갈이 되는 시점 이후 한반도라는 물리적 지리적 환경적 제약조건 속에서도 반드시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 그리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조건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수치를 제시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1.1%로 OECD 국가들 중 최악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식량자급율도 오랫동안 2-30%에서 정체되고 있다. 지리적 한계로 65%이상이 산악지역인 남한의 가용면적당 인구밀도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고 용기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인구의 감소가 적응과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유연적 과정( adoptive & manageable flexibility)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 정착되어야 한다.

인구문제의 핵심은 상황변화에 대응하는 경제권력 배분 및 유연한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소비중심사회로 전환하는 과감한 정책적 합의와 결단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무책임한 관료들의 미개함에 있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암울한 현실도 소수에 닫힌 정치와 경직된 관료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출산율 높이려면 ‘행복한 나라’ 만들어야

출산율문제로 돌아가 본다. 1.2라는 숫자는 물론 재앙적 수준이다. 정밀한 분석을 요하지만, 필자의 감각적 느낌으로는 1.5-1.7 정도이면 적응과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인구감소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출산율이 1.8을 넘어서게 되면 평균수명개선과 더불어 제3국의 이민유입 등으로 Stock 인구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한반도라는 지리환경의 물리적 조건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1.5-1.7 수준으로 출산율을 회복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조한혜정 교수가 언급하였듯이 단편적이고 지협적인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환경적 조건에서 포유류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절대로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진화된 포유류종인 인간의 젊은 세대들도 불안하고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는 자식을 낳는 않을 뿐만 아니라 결혼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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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은 한 나라의 행복도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 태어난 아이가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기꺼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에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사진 출처: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06/2011100602548.ht…)

출산율을 높이는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국민들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이 전제가 된 환경속에서 젊은이들이 안정되고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으면 강요하지 않아도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능력만큼 아이들을 갖으려 할 것이다. 행복이라는 주제를 통해야, 비로소 인구문제는 자연스레 바람직한 순환과 균형을 찾아 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지구상에서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국가들의 내용과 조건을 살펴보려 한다 (각 국의 사정을 알려면 클릭!!)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찾는 유토피아는 없다. 가장 행복한 나라들이라고 평가하지만 나름대로 문제점과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각자가 겪어온 역사과정과 사회경제적으로 처한 조건이 서로 달라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행복의 조건 몇 가지를 적어본다.

행복한 나라의 조건들

우선, 3개국 모두 기본적으로 농업이 잘 발달되여 있고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생태조건이 매우 양호하다. 우리가 흔히 1차 산업으로 무시하고 소홀히 다루기 쉬운 농업기반이 환경의 생태적 순환을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준다.

삼면이 축복받은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65%의 산림이 아름다운 휴식공간을 제공해주는 대한민국은 어머니같은 역할을 하는 농촌과 더불어 행복을 제공해주는 자연의 기본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가 인구가 적은 상대적인 소국들이다. 인구소국이 갖는 함의는 자신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행정의 과정에 스스로가 참여하고 함께 결정하고 스스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에 합의적 민주제를 도입하며, 국민투표와 국민청원 및 소환제를 활성화하고 시민의회의 도입과 주요사법권력의 주민직접선출 등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강화하고, 지방분권을 더욱 발전시켜 주민참여와 자치를 확대해서 이들 소국들이 지닌 효과를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치와 자유가 행복의 기초가 된다.

세나라 모두 국가운영의 핵심 주제로 생태와 더불어 평화와 복지를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역사를 통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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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는 각 개인이 행복을 누리는 나라이고, 그래서 아이의 고고성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집권 이후 어느 누구도 충분히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는 없다. 내 꿈이 백일몽이 된 것이다.

동북아 중심으로 새로이 조성되는 미중 강대국간 군사력 대치 과정속에, 핵무기와 사드배치 논쟁으로 상처투성인 한반도가 궁극적인 지향해야할 방향은 끝없이 살상무기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위협이 없는 평화(협정)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장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국가로서 정치적 군사적 주권회복이 매우 중요하다.

복지국가라는 주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체험하듯이,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하여 작성된 기만적 각본이 아니라 항상적으로 국정운용의 주요한 실천의제로 설정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지리적 조건으로 형성된 공동체 의식과 가치가 매우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행복은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혼자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두가 손을 잡고 노력할 때 이루진다는 부탄의 국왕과 덴마크 작가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글을 맺는다.

월, 2016/09/1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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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청년 실업자> 1. “사랑도 유예가 되나요?”  2. “연애도 사치일 뿐”   

<자영업자> 1. “주말도, 휴일도 없는 30시간 편의점이예요”  2.  쉽게 문 열고, 쉽게 망한다

천호동은 2005년 전후로 상권이 발전했다. 먹자골목・로데오거리・아울렛거리와 백화점・마트, 골목가게와 시장이 공존한다. 천호동에선 신장개업한 점포와 폐업을 준비하는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천호동의 한 부동산업자는 “무리하게 빚을 내 점포를 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경쟁도 심하다. 더 많은 손님을 잡고 높아지는 임대료를 부담하기 위해 상인들은 장시간 노동을 택했다.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 보다는 가족을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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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역 현대백화점 뒤편으로 가보면 3층 정도 되는 상가가 길게 뻗어있다. 상가건물 앞에는 노점상이 좌판을 깔았다. 일명 ‘깔세’라 불리는 노점상이다. 깔세는 건물 세입자 점포 앞에서 단기 임대를 내 장사를 하는 방식이다. 보증금이나 권리금을 건물주에게 내지 않고 건물을 임대한 세입자에게 월세를 지불한다. 권리금이나 보증금과 같이 목돈이 없어도 장사할 수 있긴 하지만 월세는 조금 비싸다. 깔세 노점상은 점포 세입자의 권리금과 보증금의 1%를 매달 월세로 지불한다.

서원배(52)씨는 월세 150만원짜리 깔세로 5평 남짓한 와플노점을 운영한다. 서씨는 호텔 식당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요식업체를 전전하다 와플노점을 열었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여기에 재료준비 시간을 더하면 총 15시간이다.

서씨는 “임금근로자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자영업자와 비교하면 천국”이라며 “자영업은 소규모나 대규모나 직장생활 두 세배를 일해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설이나 추석 빼고는 매일매일 좌판을 벌린다. 주력상품인 벨기에 와플은 개당 1000원이다. 일반 점포에서 2000원에 파는 상품이다. 1000원짜리 와플로 수지를 맞추려면 일반 점포보다 배는 더 팔아야 한다.

아르바이트도 아까워…내 몸으로 때운다

천호시장 입구에서 2년째 국수가게를 운영하는 안숙자(54)씨도 장시간 노동과 가족 노동을 택했다. 안씨는 아침 8시부터 밤 11시~12시까지 일한다. 휴일은 따로 없다. 쉬는 시간은 손님 없을 때 5분에서 10분 정도다. 일이 버겁지만 사람을 사서 쓰기도 어렵다. 일당이 버겁다. 퇴직한 남편도 가게로 출근해 일을 돕는다.

안씨는 남편 몰래 일을 시작했다. 남편이 직장을 잃자 생계를 위해 국수가게를 연 가정주부였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지만, 벌이는 시원찮다. 월수입이 남편 퇴직 전 월급 절반이다. 안씨 남편은 “자영업자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IMF 때보다 힘들다”라고 말한다.

편의점 점주 이씨(64)는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는다. 아들과 2교대로 일하는 이씨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일한다. 식사시간, 휴식시간, 휴가도 따로 없다. 60이 넘은 나이에 버거운 일이지만 이씨는 직접 일을 한다.

“아르바이트는 일을 하지 않아요. 하루 매출이 60만원 가까이 준다니까. 청소도 안하고 돈도 비고, 도둑질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인건비도 버거운데 매출도 줄어요. 결국 내가 직접 합니다.”

이씨는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식품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잠은 하루에 5~6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먹는 게 부실하고 잠자는 시간도 없으니 몸은 힘들다. 이씨는 보약을 지어먹으며 버티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에 박했다. 사람들 수입이 늘면 더 많이 사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나가는 돈은 확실한데, 들어올 돈은 불확실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돈을 쥔 사람들이 자신의 가게로 들어온다는 확신이 없어서다.

“먹고 살기 바뻐서…”

이들에게 있어 최선은 경기부양이다. 경기가 좋아져 사람들 씀씀이가 커지기만 기다린다. 그러나 몇 년째 체감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다. 총선 때 투표했냐는 질문에 편의점 점주 이씨는 고개를 저었다. 투표하러갈 시간에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이득이란 이유였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을 하니 가족과 이야기할 시간도 적다. 국수가게 안씨는 딸과 아들이 있지만 연락하기 쉽지 않다. 가족이 각자 알아서 사는 형편이다.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다보니 친구와 주변 이웃에게도 관심이 옅어진다.

편의점 점주 이씨는 이웃상인과 친하냐는 질문에 고개만 저었다. 현재 인간관계는 오직 가족, 그리고 같은 프랜차이즈 점주와의 네트워크만 있다고 말한다.

와플노점 서씨는 “자영업자는 다 포기해야 한다”는 말로 자영업자의 ‘관계’를 설명한다. 가족과 여유 있게 식사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단 의미다.

이웃상인과 오해가 생긴 상인도 있다. 상권을 지나는 소비자는 늘지 않는데 경쟁자만 늘어나니 서로가 박해졌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40대 김씨는 “유독 ‘깔세’ 매장이 많이 들어서 문제”라며 “한, 두 달 짧게 세를 내고 장사해가는 사람들이라 질 나쁜 상품을 대량으로 싸게 판다”라고 말한다. 깔세 상인에게 손님을 뺏긴다는 푸념이다.

IT회사에 다니다 프랜차이즈 샌드위치가게 오픈을 준비 중인 박씨(55)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박씨는 “잘 되도 걱정, 안 되도 걱정”이라며 “장사가 잘되면 다른 자영업자도 이곳에 같은 가게를 열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 옆집 상인은 같은 골목에서 장사하는 이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잠재적 경쟁자였다.

치킨게임에 빠진 자영업자들

두 운전자가 서로 정면충돌하는 코스로 마주보고 달려온다. 먼저 피하는 사람에게는 겁쟁이란 뜻의 ‘치킨'(Chicken)이란 멸칭이 붙는다.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치킨게임’이다.

현재 자영업 현장에서도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자영업 치킨게임 참여자는 자신의 배포와 호기를 증명하기 위해 이 판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호프집을 하는 40대 이씨는 “저 업종이 잘된다니 내가 해도 잘되리라는 믿음이 있는 거 같다”라고 자영업 치킨게임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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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etoday.co.kr)

2016년 들어선 여기에 새로운 게임 참여자가 들어왔다. 명예퇴직이나 정년을 맞이한 베이비부머세대다.

신촌에서 대포집을 운영하는 한씨(63)는 본래 외국계기업을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한씨는 “100세 시대라는데 아직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라며 “물가는 오르고, 자녀 부양도 해야 해서 가게를 인수했다”라고 말했다. 재취업을 하자니 뽑아주는 회사가 없다. 경기 불황으로 고용도 적은데다, 직업재교육도 쉽지 않다. 인건비 부담 탓에 아르바이트를 고용도 버겁다.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소규모 부부창업이 인기를 끈 것도 이 때문이다. 편의점은 부부가 2교대로, 음식점은 부부가 홀서빙과 부엌일을 나눠 맡는 방식이다.

골목상권으로 들어오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대기업도 자영업자에겐 큰 걸림돌이다. 호프집 사장 이씨는 “프랜차이즈와 대기업도 골목으로 들어오는데 TV에서 대놓고 홍보해주는 식당도 골목에 들어온다”라며 “우리 가게가 경쟁할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자본과 기술, 노하우, 홍보에서도 밀리는 영세자영업자가 택하는 길은 ‘노오력’이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신촌에서 닭요리집을 하는 박종운(62세)씨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공기업을 다니던 그는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명예퇴직을 택하고 퇴직금으로 가게를 열었다. 삼계탕집, 횟집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가게다.

유력한 경제지에서 창업 모범케이스라고 소개하기까지 했다. 부인과 함께 출퇴근하며 부지런히 일한 보상이었다. 그런데 2015년, 구청에서 그의 점포가 있는 토지에 호텔설립인가를 냈다. 건물주는 상가를 매물로 내놨다. 박씨는 건물주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해외에 있는 건물주를 만날 수는 없다. 오로지 변호사와 이야기하라는 전언만 올 뿐이다. 그는 말한다.

“얼마 전 친구가 연락이 왔어요. 가게 시작하고 나서 손에 꼽는 친구 연락이라 반갑게 받았는데요. 은퇴를 앞두고 장사를 시작하고 싶은데 저한테 물어보고 싶다고 연락한 거에요. 그래서 한마디 했죠. 건물주에게 니 돈 다 먹힌다고.”

자영업 비율 OECD 5위…장사 안 되고, 대출 부담까지

자영업자는 점점 줄고 있다.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쓸고 간 후, 한국 자영업자는 580만 여명까지 치솟다 2012년부터 줄었다.

지난해 5월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비임금 근로자 중 자영업자 규모는 555만1000명으로 전년대비 10만5000명이 감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영업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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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행한 ‘OECD 팩트북 2015~2016’을 보면 2014년 기준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26.8%다. OECD가 조사한 36개국 중 5번째다.

자영업자에게 더 큰 문제는 ‘대출’이다. 자영업자는 줄었지만 대출금액은 늘었다.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4월 한 달에만 국내은행 자영업자 대출은 2조3000억원이 늘었다. 전체 기업대출 증가폭(5조8000억원)의 39.6%다.

빚을 내 창업한 자영업자가 불경기에 장사가 잘 되지 않자 또 빚을 내 점포를 근근이 굴리고 있다는 의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영업으로 넘어온다. 이들은 명예퇴직금 만으로 30년을 먹고 살아야 한다. 재취업은 어렵다. 잘된다는 요식업을 하자니 조리기술이나 장비가 부족하다. 이 탓에 은퇴한 자영업자는 보통 운영이 쉬운 프랜차이즈를 택한다. 본사에서 조리법과 운영노하우를 알려주니 창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서다.

하지만 그만큼 망하는 사람도 많다. 신촌 대폿집 사장 한씨(65)는 “7년 전과 비교했을 때, 신촌 상권의 90% 정도가 주인이 바뀌었고, 주인이 바뀌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라며 “‘잘 된다’란 광고만 믿고 프랜차이즈 가게를 여는 사람이 상당수다”라고 말했다.

분당에서 호프집을 하는 이씨는 “상권조사와 현장조사, 가게운영준비 없이 ‘월 000만원 수익보장’이란 프랜차이즈 가맹문의만 보고 가게를 연 은퇴자도 많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양산하는 시스템…근본적 일자리 대책 절실

준비가 덜 된 만큼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자영업자 진입·퇴출 추계와 특징>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자영업 퇴출자(65만6000명)는 진입자(58만2000명)를 초과했다.

KB금융지수경영연구소는 2015년 1월에 펴낸 <국내자영업자 현황과 업종별 생멸통계>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영업자는 OECD평균인 16.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자영업자가 국내 소비자 구매력보다 과다하단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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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daum.net/)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은행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239조 3000억원이다.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합하면 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519원5000억원이다. 수익보다 갚아야할 이자가 크다면 자영업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를 복지로 떠안아주기엔 600조원 적자인 국가재정상황이 녹록치 않다. 그렇다고 각 가정에서 받아들이기도 가계부채 1200조원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한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자영업에 몰리는 인구 역시 늘어나고 있다.

<한계가족>을 펴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서성민 연구이사는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한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쉽게 해주거나 특별상권지역지정 대책이 오히려 자영업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중장년을 자영업자로 내모는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 이사는 “중장년인구가 자영업에 몰리지 않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당연히 기업”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혁신과 투자를 계속해야 좋은 일자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손쉽게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부동산 투기에 집중하거나 골목상권 서비스업에 진출한 기업을 찾기가 쉬워졌다. 일자리가 없으니 돈 벌 길이 없는 가계는 무리하게 재테크, 부동산 투기에 참여했다. 결국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로 돌아와 만성적인 내수 침체를 일으켰다.

서 이사는 “일자리 시작은 교육, 일자리가 끝나는 지점은 복지”라며 “복지 부담도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고령화가 이미 진행된 선진국 역시 복지부담 증가와 세수감소로 정부재정적자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 역시, 중장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버산업을 육성하는 투자가 이뤄져야한다는 주장이다.

월, 2017/02/2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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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2개년 정책 실험(2017-2018)이 시작되면서 국내외에서 높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왜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의 도입을 검토하는 정책 실험 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

제도의 설계, 실행, 효과의 측면에서 핀란드 정부가 실험하는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내용과 성격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주요 정당 및 노조, 경영자조직 등 핵심 이해관계자들은 정부의 실험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프로젝트가 검토하게 될 기본소득의 모형과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에 기초한 현 사회보장 시스템의 차이는 무엇이며, 양자 간의 이질성과 차이가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가?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본소득 논의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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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우파정부는 2017년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기존의 복잡한 복지전달체계의 관료주의를 혁파하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핀란드의 정책실험을 무비판적으로 찬양 또는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지 출처: KBS)

지면의 제약과 이제 막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임을 고려할 때 여기서 위 질문들에 상세한 답변을 제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개괄적 묘사에 머물고 있는 미디어들의 보도 수준을 넘어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정책 연구와 사회적 토론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 글은 그 물꼬를 트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공상’에서 ‘구체적 정책’으로 – 최근 유럽의 기본소득 운동들

2015년 총선을 통해 집권한 유하 시삘라(Juha Sipilä) 총리가 이끄는 보수 우파 연합정부 – 중도우파인 중앙당(Centre Pary), 보수 국민연합당(National Coalition Party), 민족주의 포퓰리스트 핀란드인당(Finns Party) 연립정부 – 는 2015년 8월 기본소득 실험을 4년의 정부 임기동안 추진할 공식 정책 프로그램의 하나로 채택했다.

당시 스위스에서 매월 성인 한 명당 2,500프랑 (한화 약 300만원)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시민 발의(citizens’ initiative)가 국민투표에 부쳐진 직후였다. 발의안은 경제와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우려한 스위스 의회 상하원의 기각 권고 결정에 이어 국민투표의 결과도 찬성 23.1%, 반대 76.9%로 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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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스위스는 오는 5일 성인에게 매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650스위스프랑(약 78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됐다.

그러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적 삶을 영위하고 공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 (unconditional basic income)을 도입하자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적 캠페인은 뜨거운 공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상당한 시민적 지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 스위스 시민발의에 영향을 받아 진행된 ‘무조건적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유럽 시민발의’(European Citizens’ Initiative for an Unconditional Basic Income)도 285,041 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7개국 이상에서 1백만 명 이상의 서명을 요구하는 유럽연합의 절차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EU 집행위원회의 공식 심의 자격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또한 괄목할 성과를 낳은 캠페인으로 평가받았다.

2012년부터 시민 5만 명 (핀란드 인구의 약 0.9%) 이상이 서명한 법안이 의회에 제출, 심의될 수 있게 허용하는 시민 발의제도가 입법, 시행된 핀란드에서도 2013년 기본소득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 발의안이 제기돼 21,634명의 서명을 모은 바 있다.

이들 일련의 흐름은, 토마스 모어(1478~1535년)와 토마스 페인(1737~1809년) 등이 기본 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래 수 세기 동안 근대 산업사회적 복지 민주주의의 외곽에 유토피아적 관념으로 머물던 보편적 기본소득 혹은 시민 임금(citizen income)의 아이디어가 실천적 잠재력을 지닌 구체적 사회정책 의제로 인식되는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핀란드는 네덜란드와 더불어 현재 유럽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흐름에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나라이다. 네덜란드는 19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 제도를 실험할 의사가 있음을 천명한 상태이며, 2017년부터 우트레흐트 등 일부 지자체가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반면, 2017년부터 실시되는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는 국민국가 수준에서 정부 주도하에 시행되는 최초의 기본소득 관련 정책 실험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미디어와 정책 결정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기본소득 논의가 지자체와 지역 정당 및 시민사회 등 아래로부터(bottom-up) 주도되는 특징을 보이는데 반해, 핀란드는 총리와 행정부의 이니셔티브로 공적 논의가 급진전된 위로부터의(top-down) 혁신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핀란드의 기본소득 논의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의제인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2013년 시민발의 캠페인을 비롯해 이미 1980년대부터 13차례에 걸쳐 학자들, 시민사회 단체와 활동가들, 사민당, 녹색당(Green League), 좌파동맹(Left Alliance), 중앙당 등 주요 정당들의 다양한 기본소득 도입 제안들이 있었다 (Koistinen, P., & Perkiö, J. 2014. Good and Bad Times of Social Innovations: The Case of Universal Basic Income in Finland. Basic Income Studies, 9(1-2): 25-57 참조.).

이 제안들은 당시에는 현실적 정책 대안들로 주목받거나 크게 공론화되지 못했지만, 최근 스위스 국민투표 등 계기를 만나면서 핀란드 정부가 정책 실험을 감행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모델: 주요 내용과 비판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된 핀란드 사회보험청(Kela)는 2015년부터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실험 설계를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보고서에서 제안된 내용을 바탕으로 주요 정책 이해관계 집단의 의견을 수렴한 뒤, 핀란드 사회보건부(STM, Sosiaali- ja terveys ministeri)는 기본소득 실험 법안(HE 215/2016 vp)을 기초해 2016년 8월 의회에 제출했다.

2016년 12월 의회에서 승인된 이 법안에 따르면, 이번 실험의 기본 목표는 실효성있는 기본소득 모델의 설계도를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1) 기존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노동 형태의 변화에 더 잘 조응하도록 개선하는 것,

2) 실업수당에 의존하도록 하는 유인 요소를 줄임으로써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 그리고

3) 관료주의를 줄이고 지나치게 복잡한 사회보장 수당 체계를 단순화하는 것 등이 핵심 목표로 제시된다.

이를 위해 핀란드 정부는 2016년 11월 기준 사회보험청(Kela)으로부터 기본 실업수당(basic unemployment allowance) 또는 노동시장 보조금(labour market subsidy)을 받고 있는 만 25~58세의 사람들 중 2,000명을 무작위 선발해 2017년부터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2년 간 매월 560유로(약 70만원)의 기본소득을 별도의 자산 조사 없이 지급한다.

곧, 기본소득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발된 2,000명에게 자동적으로 매월 560유로가 2년 간 지급되며, 이 금액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지급된 기본소득은 기존의 실업수당을 대체하지만, 그 외에 참가자가 받는 다른 사회보장 급여나 수당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울러, 실험 참가자가 프로젝트 기간 중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에도 기본소득은 계속 지급된다.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들의 실험 참가 여부는 선택적이지 않으며, 지역적 수준의 실험은 따로 시행되지 않는다. 표집 집단 2,000명에 대한 실험 결과는 전체 모집단 173,000명과 비교 조사되며, 2019년에 연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 1월 9일 첫 개월분 급여가 이루어졌고, 다음 달부터는 매월 2일에 지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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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회보험청(Kela) 주관으로 2016년 11월 핀란드와 네덜란드 연구자들이 모여 두 나라의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비교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회보험청의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 책임자인 Olli Kangas 박사의 핀란드 실험 모델 발표 장면.

이쯤에서 독자들에게는 많은 질문들이 떠오를 것이다. 왜 560유로인가? 이 액수가 핀란드 사회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왜 사회보험청으로부터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가? 왜 2,000명인가? 

우선 560유로라는 숫자는 사회보험청(Kela)에서 기본 실업수당 또는 노동시장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매월 정액 지급되는 금액 약 700유로에서 20%의 세금을 제외한 금액과 동일한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선발된 참가자 개인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고 의무적(compulsory)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받던 기존의 소득 지원금보다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핀란드의 사회 상황을 고려할 때 이 금액만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액수는 아니며, 따라서 이번 기본소득 실험 모델은 전면적(full)이 아닌 부분적(partial) 기본소득 실험으로 분류된다.

Kela와 연구진들은 기본소득 실험 대상 그룹과 급여 액수를 다양하게 설정하여 참가자들의 행동 유형과 결과를 실험해보려 했으나 이는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의 침해의 우려가 있고, 촉박한 일정의 압력 속에 실험 설계가 더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조정되었다.

프로젝트에 책정된 정부 예산의 규모(2년 간 총 2천만 유로)도 실험 설계에 중요한 제약을 가했다 (사회보험청이 의뢰한 연구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10,000명의 샘플 집단 규모를 권고했다.).

이로 인해 일반 직장인들은 물론 월 300 유로 내외의 학생 수당(student allowance)을 받는 학생과 25세 이하의 청소년, 그리고 실험보험기금으로부터 임금 연계 실업수당(Earning-related income allowance, 실직 전 임금의 60~80%에 해당하는 액수를 500일 (100주) 간 받을 수 있음)을 받는 초기 실업자 등 다양한 사회 집단이 실험에서 제외되었고, 이는 여러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정부 법안에 대한 주요 단체들의 비판을 짧게 소개하면, 핀란드 기본소득네트워크 (BIEN Finland)는 정부 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기본소득이 단지 변형된 실업보조금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청소년 단체인 Allianssi는 독립 생활하는 15~24세의 청소년과 학생 등 교육제도와 노동시장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중요한 사회 그룹에 대한 기본소득의 영향을 실험하지 못하게 된 점을 비판했다.

핀란드 산업연맹 EK는 세금 조정 없이 부분적 수준의 기본소득을 제한된 그룹의 참가자에게 제공하는 이번 실험이 제대로 된 기본소득 모델이 아니며, 실업수당 외에 주거수당 등 다른 사회적 수당을 함께 다루지 않아 관료주의를 줄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반면, 핀란드 노조를 대표하는 SAK, AKAVA 등은 개인의 사회보장 수준을 심각하게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기본소득으로 소득연계 사회보장이나 기타 지원 수당들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비판하면서, 기본소득의 도입보다 현 사회보험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복지전달체계의 관료주의 철폐가 핵심 목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가 복잡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관료주의를 줄이면서 장기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변화된 노동 형태를 받아들이게 해 고용률을 제고하려는 중도 우파 정부의 보수적 정책 지향에 부응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의 역사적 굴곡을 거치면서 완성된 핀란드 복지국가 모델은 매우 포괄적이면서 복잡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조세 체계에 기반해 교육, 의료, 주거, 환경, 복지 등의 제 영역에서 수준 높고 평등한 사회보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아동수당, 모성/부성/부모수당, 학생수당, 실업수당, 징병수당, 주거수당, 질병수당, 산재수당, 장애수당, 재활수당, 생존자수당, 국민(노인)연금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개인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 지원을 보편적으로 혹은 소득 수준 등에 비례해 현금(또는 현물) 지원한다.

사진 2_Juha Sipila government and the Finnish model of corporatism
유하 시삘라가 이끄는 우파 연합정부는 경제위기 극복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협약을 추진했다. 사진에서 왼쪽 두 번째가 유하 시삘라 총리, 그 옆으로 재무부장관과 노동계 및 경영계 대표들이 도열해 있다. (출처: www.kauppalehti.fi, 2015.9.28)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각종 수당 신청의 자격 여부를 심사할 중간 행정 조직과 절차가 불가피하게 팽창되었고,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과 관료적 절차의 틈바구니에서 자칫 장기실업으로 이어지는 물적, 심리적 유인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2008년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 핀란드 경제를 선도해온 노키아의 부침,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 안보 위기로 인한 대러시아 무역의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10년 가까이 핀란드 경제가 사실상 제로 성장 상태에 머물러 있어 실업을 줄이고 고용률을 제고하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정책 목표가 되고 있다.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 동맹 등 진보 정당들이 신자유주의적 긴축 재정과 복지 축소 정책의 폐해를 비판하는 반면, 중앙당과 보수당 등 우파정당들은 공공섹터의 비효율성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줄이는 방향의 복지, 행정 개혁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기본소득 정책 실험을 주도한 중앙당의 유하 시삘라 총리는 그 자신 성공한 IT 벤처 기업가 출신으로 시장주의적 정책 대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야당 대표이던 시절 향후 10년 간 생산성 향상을 통해 공무원 수를 2만 명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호언해 진보정당들과 노조의 강한 반발을 샀던 일도 있다. 관료주의를 줄이는 것이 왜 이번 기본소득 실험의 주요 목표로 설정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단서다.

사실 현 총리와 내각의 신자유주의적 성향과는 별개로, 구 농민당(Agrarian Party)의 뒤를 이은 중앙당(Centre Party)은 전통적으로 도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 국민연합당(NCP)이나 도시 산업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민당(SDP)과 달리 중소자영농과 산림업 종사자, 그리고 북동부 시골 지역 주민들을 핵심 지지층으로 해 왔다.

전간기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민당과 자주 연합정권을 이끌며 핀란드 복지국가 모델을 완성시킨 주요 정치세력으로 21세기인 오늘날까지 북유럽의 농민당 계열 정당들 중 가장 높은 영향력을 자랑하는 독특한 사례이다.

사민당+농민당(중앙당)에 의한 복지정치

농민당(중앙당)의 영향력과 연정 참여의 역사는 강한 사민주의의 영향력과 더불어 북유럽, 특히 핀란드에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이 발전되는 것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열쇠가 된다.

노동운동에 기반한 사민당이 주로 고용과 연계된 사회보장 시스템을 선호한 반면, 자영농과 농촌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한 농민당(중앙당)은 보편적 사회보험 정책을 추진했다. 보편성(universality)과 무조건성(unconditionality)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중앙당의 정책 의제가 될 수 있었던 근원적 까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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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유럽의회 선거 당시 핀란드 정당 현황 및 득표율

실제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핀란드 사회보험청 Kela(Kansaneläkelaitos)도 원어로 국민연금기관이라는 뜻으로, 1920년대 사민당이 추진한 노동자 대상 건강보험 도입안을 당시 농민당이 의회에서 저지하고 1937년 연정을 통해 국민연금법을 제정한 뒤 설치한 기구이다. (사민당이 선호한 고용 기반 소득연계 연금 제도는 1960년대에 국민연금 제도와 병행하여 도입되었다.)

1954년부터 사회보험청장은 지금까지 모두 중앙당 출신의 인사가 역임해오고 있을 정도로, 중앙당의 이념과 가치, 정책 지향이 Kela의 운영 과정에 깊이 배태돼 있다.

핀란드 복지국가 형성과 발전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맥락과 과정을 고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왜 지금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왜 지금과 같은 정책 추진 목표와 방식의 실험 모델이 채택되었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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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핀란드 사회보험청(Kela)에서 제공하는 모성패키지(äityspakkaus). 신생아 옷과 돌봄 도구 등 50여 가지 물품이 들어 있는 현물 지원 수당으로 인기가 높다. 핀란드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회 창안(social innovations)의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특히, 1917년 독립 이후 내전과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 그리고 냉전 질서의 제약을 이겨내고 노사정+농민의 독특한 4자 협상 기반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제도화하며 합의적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한 20세기 핀란드의 정치경제사적 여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 기능을 수행한 주요 정당 및 사회단체들의 정치적, 정책적 상호작용이 이번 기본소득 실험을 둘러싼 논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험이 중앙당과 유하 시삘라 내각의 정치적 지향을 중심으로 기존의 제안들 및 주요 정책 이해관계자 집단들의 의견을 타협, 절충한 한계적 모델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의 제도화를 향한 긴 여정에서 중요한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을 연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 기본소득 가능할까?

한국에서도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녹색당 등 소수정당, 진보적 언론 매체 등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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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은 2015년 3월 대의원대회에서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bpark1391&logNo=220617491475)

그러나 한국은 매우 잔여적인(residual) 수준의 사회보장을 특징으로 하는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 머물러 있으며, 1990년대 이래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심화된 고용 불안과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총체적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노인과 아동, 청소년 등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긴급한 소득 지원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청년수당 등 유사 기본소득 논의가 가지는 개혁적 함의를 긍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핀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등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된 복지국가와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나라들이며, 이들 사회에서 기본소득 담론이 생산, 유통되는 정치사회적 컨텍스트는 한국의 그것과 매우 상이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번 광장의 촛불 민주주의가 보여준 역동적 에너지는 총체적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를 전면 개혁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이 아직 존재함을 역설한다.

21세기 후기 근대의 탈산업사회적 현실을 첨예하게 경험하는 동시에 내전적 심리 구조와 피난민적 사회 불안이 일상화, 내면화된 한국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사회적 권리를 누리고 공동체에 참여할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치경제 모델을 마련하는 일은 지난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결정론과 미래주의적 언설에 기댄 이데올로기적, 총론적 주장들을 넘어 비판적 정책 연구와 심층 분석에 기반한 공적 토론이 절실히 요청된다.

월, 2017/01/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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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해결은 간단...전면 철회 선언하면 된다

개혁의 폭과 속도​가 중요하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촛불 대선'이라고 불린 19대 대통령 선거가 적폐 청산을 약속한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시대를 압도할 것 같던 촛불시민 혁명의 열기가 이어진 선거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4​1​%를 간신히 넘은 지지율로 당선된 점은 ​새 정부가 가야 할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50% 이상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호소는 엄살만은 아니었다. 국회 의석이 여러 정당들이 나누어가지고 있는 상황, 게다가 여당이 된 민주당의 의석은 겨우 120석, 그러니까 국회 과반은커녕 40%에 딱 턱걸이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에 동의하면서도 ​문재인​ 후보를 찍지 않은 ​진보 및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협치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국민의 당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새 정부가 과연 적폐 청산이나 사회 대개혁에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임 정부와 달리 언론장악은 엄두 낼 수도 없는 정부이다. 언론의 비판과 감시 앞에 하루도 발 뻗고 잠자지 못할 정부이기도 하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청와대 권력 외에는 사회 권력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 대개혁은 그만큼 더 어려운 과제다.

 

게다가 이번에 권력에 접근하지 못한 이들은 더더욱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에 더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공언했던 바다. 개헌하자는 주장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헌 논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다른 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것이 쉬울까 싶다. 그야말로 믿을 구석은 정권교체와 사회 대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일 테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 ​이 새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역할만을 할 수는 없다.

 

고고한 척하면 되기 때문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과 감시, 더 개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과정에서도 해야 할 일은 많다. 북핵 위기, 사드 위기, 경제 위기 등 헤쳐가야 할 위기도 많다. 이럴 때일수록 우선순위를 잘 잡고 가야 할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이고, 시민사회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둘 사이에는 우선순위 설정이 다를 수 있고, 또 다른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갈등을 고조하고 정쟁을 가중시키는 정책부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삶을 보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국민들을 위한 따뜻한 돌봄의 실현과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국공립어린이집, 국공립요양시설, 공공병원 등 공공인프라의 확대는 국민들의 삶의 안정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 줄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계소득이 두터워지게 하는 것도 새 정부의 중요하면서도 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땀 흘려 일하면 먹고는 살 수 있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고, 미래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사회로 가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기관이나 공직자들의 불법 부당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잘못에 대해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국가정보원이 벌인 정치공작,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한 대통령이 책임지고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쟁이나 사회 갈등이 적으면서도 시민들의 기대와 열망이 쌓여있는 과제들은 또 많다. 물론 국회의 협력을 얻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18세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도록 추진하는 것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률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정보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근절하도록 국정원법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면 국회의 협력을 기다릴 필요 없이 대통령과 행정부 스스로 결단하면 될 일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전면 철회를 선언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 스스로 독립적 기구로 꾸리는 것도 그러하다. 그 위원회의 조사 활동에 모든 정부기관이 적극 협력하도록 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러저러한 개혁 과제들을 열거하자면 10가지도 100가지도 더 늘어날 것이다. 많은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몇 가지라도 분명하게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독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개혁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힘이 있을 때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국민적 동의와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개혁은 금방 벽에 부딪힌다. 그 좌절의 후유증은 다른 개혁의 추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적 동의, 그리고 다른 정치세력의 동의와 기반이 넓은 것부터, 그리고 기반을 넓혀가면서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체 정부인만큼, 국회 내에서도 40%의 의석만 확보하고 있는 여당인 만큼 개혁의 지지 세력과 동의 기반의 확인을 거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진보적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처한 환경도 이제 달라졌다. 지난 9년 ​동안은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는 청와대, 행정부와 집권 여당에 맞서 싸우는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 이제는 퇴행의 저지가 아니라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두고 싸우는 시대​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냐 일부 개정이냐를 두고 갈등을 빚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경우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7/05/1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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