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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20대 국회,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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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20대 국회,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한다

admin | 수, 2020/05/13- 22:59

20대 국회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총 127건을 발의하였고 이 중 여전히 96건은 계류중에 있다. 5월 29일에 회기가 종료된다면 계류법안은 자동폐기될 예정이다. 발의법안의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20대 국회의 성과가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연금개혁 골든타임은 지나갔다.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발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합의 과정이 있었지만 연금개혁과 관련한 국회의 시간은 없었다.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있었고, 국민연금 제도발전 위원회에서는 ‘가’안(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1%)과 ‘나’안(소득대체율 및 수급개시연령 조정, 보험료율 13.5%)으로 2개안이 도출되었다. 2018년말 정부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하여 △현행유지, △기초연금 40만원 및 현행유지의 기초연금강화방안, △소득대체율 45% – 보험료 12%의 노후소득보장 강화방안①, △소득대체율 50% – 보험료 13%의 노후소득 강화방안②, 총 4개안을 발표하였다.

이후 2019년 8월 3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연금특위’)에서 오랜 논의 끝에 위원들의 3분의2 이상이 동의한 다수안인 가안(소득대체율 45% – 보험료율 12%)과 소수안인 나안(현행유지), 다안(소득대체율 40% 현행유지 – 보험료율 10%) 3개안이 도출되었다. 이견이 없는 보험료 지원, 크레딧 확대 등 사각지대 해소, 지급보장 명문화의 국민신뢰제고, 기초연금 내실화는 권고문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정작 국회에서는 핵심쟁점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관련 법안은 단 한 건도 제대로 논의조차되지 않았다. 심지어 노동자, 사용자, 청년, 비사업장가입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경사노위 연금특위에서 합의하며 이견이 없던 크레딧 확대 등 사각지대 해소, 지급보장 명문화 등 국민신뢰제고방안조차 제대로 논의, 의결하지 못했다. 지역가입자 납부재개자에게 연금보험료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부분만 권고문의 내용 중 일부를 담아 의결했을 뿐이다.

국민연금제도는 21년간 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로 절반가까이 삭감하는 연금급여 삭감일변도의 개혁만 진행되었다. 그것도 16대, 17대 국회에서 치열한 공방끝에 열린우리당이 다수였던 17대 국회에서 2007년 사실상 사학법 개악과 야합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다. 18, 19대 국회는 이른바 ‘폭탄돌리기’로 무책임하게 연금개혁을 뒤로 미루기만 하였다. 이제 20대 국회마저 사실상 ‘폭탄돌리기’의 대열에 합류한다면, 20대 국회 역시 연금개혁에 있어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한 무책임한 국회로 역사에 남게될 것이다.

아직 20대 국회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회기가 5월 29일에 종료될 예정이다. 핵심쟁점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관련 계류 법안의 처리가 필요하며, 최소한 경사노위 연금특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하여 이견이 없는 지급보장 명문화, 보험료 지원, 크레딧 확대 관련 법안은 꼭 처리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20대 국회가 ‘무책임한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벗을 유일한 길이다.

2020년 5월 13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붙임: 성명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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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일부 한국 외교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즐거운 회담을 한 것에 대해 자축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확인했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정상 회담이 심각한 지정학적 갈등으로 이어졌던 트럼프 대통령과 안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 비해 훨씬 더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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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상회담의 성적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쪽이다. 그는 지금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고, 시민사회에서 탄핵 움직임이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한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는 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말하지 않았던 이슈들

분명 필자의 미국인 친구들 중 대부분은 트럼프를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저명한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 중 상당수가 기후변화의 존재 부인, 과학에 대한 비난, 공교육의 파괴 개시, 인종 차별적 이민 정책의 명시적 추진, 트위터를 통한 구조적인 법치주의 훼손, 중국,이란, 북한 및 러시아에 대한 전쟁 요구 및 행정 명령 등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과 어떠한 협력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만약 도날드 트럼프가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부정 부패로 인해 사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필자는 어떤 수준의 정치적 마법을 사용한다 해도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잠재적으로는 중국으로도 이를 확장하려는 트럼프의 정책이 평양 정권과의 협력을 추구하는 문 대통령의 계획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이견을 회피하려 하다가는 향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나쁜 소식을 전하려면 한번에 모두 전하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문 대통령은 논리적이고 정중한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자신의 관점을 조기에 명백하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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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트럼프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 출처: http://www.timesofisrael.com)

필자는 문 대통령이 분명한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지만 공공 부문의 민영화 및 군국주의의 증가를 주장하는 강력한 세력에 의해 영향을 받았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반동 세력들과 거리를 두는 것을 꺼린다면 문 대통령의 전략적 한계선(레드라인)은 어디에 있는가? 문 대통령은 어느 시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 정책이나 경제 정책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인가?

문 대통령은 이번 방문 기간 동안 많은 미국인들이 기후변화가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으며 몇 달 전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카타르에서 이란 및 터키와, 시리아에서 러시아 및 이란과 군사적 대치를 통해 위험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현재 워싱턴 당국을 분열시키고 있는 문제들로 그는 그러한 무모한 행동과 거리를 두었어야 했다.

미국의 지원 및 격려에 고무된 사우디 아라비아는 카타르가 본질적인 정치적 경제적 독립성을 포기하고 터키 및 이란과의 관계를 종식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14년 독일의 지원을 등에 업은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주권을 포기하고 항복하도록 요구했던 상황과 매우 흡사한데, 1세기 전의 이 사건은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진 바 있다.

현재의 이러한 상황이 갖고 있는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사드배치, 세계 여론을 움직여라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단지 현재 한국에게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으니 이제는 트럼프 행정부를 잊고 미국과 실질적인 협력을 시작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교육 및 공공 정책, 기술 정책 개발 및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할 대화를 가질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합의 효력 기간은 4년인 반면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와의 합의는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다.

환경 영향 평가를 통한 사드 배치의 연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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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 문제는 미국만 설득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당장 한미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반발이 나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자국에서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만 매달릴게 아니라, 세계 여론을 움직이는 보다 큰 그림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보다는 서울에서 국제 회의 개최를 통해 저명한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미사일 및 드론 기술로 인해 야기되고 있는 지역 내 위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 회의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 조사를 통해 사드의 실상과 함께 일반적으로 특정 미사일 방어 체제가 새로 대두되고 있는 위협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실 조사는 미사일 방어가 아닌 군축 및 비확산 정책만이 장기적인 국방 전략이 될 수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기 도입 계약 체결에 대한 요구에 근거하지 않은 미사일 방어와 관련한 한국의 대응책을 미국에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으로 향후 문재인 행정부는 장래에 다양한 간접적 수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연계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아마도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나 다른 이들을 통한 비공식 대화 채널 구축 시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은 한국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을 약화시킬 것이다.

최근 있은 탄핵 및 대선 이후 한국은 법치주의 및 민주주의 실행에 대한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향후 있을 미국과의 모든 관계에서 규정 준수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화, 2017/07/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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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났나?”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5)를 새로운 장관 후보로 지명하자 나온 말이다. 박 교수의 지명 소식이 전해진 뒤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실제 검찰을 놀라게 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정책 과제 중 하나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검찰 개혁과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검찰은 그간 공수처 설치만은 일관되게 반대해 왔는데 새 수장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공수처 설치’였던 것이다.

중단없는 검찰 개혁 의지

안경환 후보자가 낙마한 뒤 박 후보자가 지명되는 데는 열하루가 걸렸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최선을 다해 정말 고민스럽게 깊이 들여다봤다”고 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으로 읽힌다. 안 후보자에 이어 다시 한번 검찰 출신이 아닌 비법조인 학자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법무부의 탈검찰화와 검찰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사·기소권이 100% 검찰에 독점된 경우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법무부 검찰국과 법무실 국·과장 보직에 검사 독점을 깨고 전문가를 임명해야 한다.”

박 후보자는 그동안 각종 논문과 언론기고문, 토론회 등에서 검찰의 과도한 권한, 인사시스템 등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확고한 의지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만약 장관에 임명된다면 언론인 출신 4대 김준연 장관(1950~1951) 이후 처음으로 사법시험을 거치지 않은 비법조인·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된다.

우연히도 검찰 개혁의 양대 축인 법무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민정수석이 같은 비법조인 학자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시민단체 출신으로 박 후보자가 경실련, 조국 민정수석이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대표적인 사회참여형 법학자

박 후보자는 195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배재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모교인 연세대에서 후학을 가르쳐 왔다. 연세대 법과대학장(2003~2006)과 동덕여대 재단 이사장(2004~2007)을 지냈다.

형법 전문가로 국내 형사법, 형사정책 등의 권위자로 꼽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형사판례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모교 은사인 박 후보자의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분에 대한 기억은 잘 웃지 않는 모습? 늘 진지하셔서 그 자체로 진정성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는 장점이 있는 분입니다.”

박 후보자는 학업성취도나 수업참여도가 낮은 학생들에게 가차 없이 C와 D학점을 많이 줬던 탓에 ‘CD플레이어’라는 별칭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보통 학생들끼리 진행하는 학회 세미나까지 참석해 직접 논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3년 법대 학장 시절에는 법대 학생 전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장학금을 성적순이 아닌 경제 형편에 따라 지급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들이 어려운 학우들에게 장학금을 양보한다면 대신 성적과 선행에 대해 표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법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기를 바라지만, 법은 인간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면서 오로지 법 적용만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법 기능인이 많아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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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임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인삿말을 하는 박상기 후보자의 모습.

박 후보자는 대표적인 사회참여형 법학 교수다. 시민운동가로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중앙위원회 의장을 맡아오다 후보자 지명 직전인 지난 5월 경실련 공동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경실련 공동대표 취임 뒤 쓴 칼럼 ‘새 정부에 바란다’에서 그는 새 정부가 꼭 해야 할 적폐청산의 대표적인 사례로 검찰개혁과 재벌개혁을 꼽았다. 특히 검찰개혁은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법과 정의가 평등하게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제안했다.

 

“검찰의 문민화를 통해서 법무부를 검찰조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고취하고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독일 법무부는 명칭부터 ‘법무 및 소비자보호부’이다.

검찰의 문제는 견제되지 않는 권력행사로 인하여 각종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검찰이 한국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까지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가 되었다. 검찰개혁은 검찰이 본래의 자리를 찾게 함으로써 검찰조직을 건강하게 만들고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법무부 정책위원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과 인연

박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부터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2005년에는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와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법무부 정책위원회는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과 법무부 문민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직속 자문기구로, 안경환 전 후보자가 위원장이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참여정부에서의 인연은 법무장관 후보자가 되는데 밑거름이 됐다. 참여정부 시절 박 후보자가 제안한 방향들에 대해 법무부나 민정수석실에서 많은 공감을 표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03년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이었던 박범계 의원은 이렇게 회상한다. “(박 후보자가) 검찰개혁을 포함한 여러 사법개혁안을 제시하고 관여하기도 하였지요. 법무부가 법무행정중심 부처로서 본연의 기능을 다하게 하는 데는 적임일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검사들 공부 많이 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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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열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실무위원회에 참석한 박상기 후보자의 모습(왼족 두 번째).

2003~2004년에는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등이 함께 위원으로 활동했다.

로스쿨 제도 도입, 법조 일원화 추진,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이 이 위원회를 통해 발표됐다. 박 후보자는 당시 로스쿨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2005~2006년에는 대통령 자문기구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도 김선수 변호사 등과 함께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사개추위에는 검찰국 소속 검사였던 박균택 현 법무부 검찰국장, 권익환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등이 있었다.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익숙한 얼굴들을 다시 보게 되는 셈이다.

2007~2010년에는 검찰 출신이 아니면서 최초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을 지냈다. 검찰 출신이 아니지만 경청하고 토론하는 스타일로, 비교적 검찰에 대해서 잘 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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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형사정책연구원장 시절, 연구원을 방문한 UNODC 동아시아태평양지역센터 관계자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 (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출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0년에는 연구원이 한국형사법학회와 공동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는데 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 적용범위 확대, 즉시항고권 폐지 등 검찰 권한 축소를 담은 내용을 포함시켜 화제가 됐다.

검찰 수사권의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준비하던 법무부의 안과 배치됐던 것이다.

청문세 공세, 색깔론이냐 자격론이냐

박 후보자는 검찰 개혁 외에 다른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각종 인터뷰나 기고를 통해 비교적 진보적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 왔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는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월호 참사 추모대회에서 태극기를 태운 시민에 대해서는 “국기모독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 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오자 “왜 무죄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핵심 피의자에게는 “국가보안법상 날조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건 문제”라고 했다.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다. 완전 폐지보다는 최소한으로 둬서 규범력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성매매 특별법도 “개인의 자유결정권을 너무 깊숙이 침해하고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해 일부에서는 비판도 나온다.

재벌 문제도 다소 관대한 시각을 보여줬다. 2009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비자금 조성과 횡령 사건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자 박 후보자는 유죄 인정 자체는 적절하며 대기업 오너 구속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 집행유예 선고를 내렸을 것이라 평가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서도 뇌물죄보다 공갈죄에 가깝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뇌물죄로는 유죄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취지이지만, 공갈죄로 적용할 경우 재벌은 ‘피해자’에 머물게 된다.

박 후보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왔고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펼친 적이 있다. 오는 13일 열릴 예정인 박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색깔론’ 공세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자는 과거 기고에서 “국가보안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며 “자유사고에 대한 족쇄는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서도 “일부 개인 당원의 행위를 일반화해 불법 정당으로 판단한 후 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려 공중분해시켜 버리는 것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위협으로 비친다”고 주장했다.

벌써부터 그가 쓴 <간첩죄에 관한 소고>라는 논문에서 “북한의 반국가단체성 여부는 해석상의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등의 문구를 들어 그의 대북인식을 공격하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해당 구절은 다른 이들의 견해를 소개한 것일 뿐이고, 전체적인 논문 내용은 간첩죄를 ‘적국’ 혹은 ‘반국가단체’에 한정해서는 제대로 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취지다. 북한 옹호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

동덕여대 사태, 깔끔하게 해결 못해

‘색깔론’보다는 동덕여대 이사장 재직 시절 보여준 박 후보자의 모습이 더 우려스럽다는 시선도 있다. 박 후보자는 2004년 비리로 얼룩진 동덕여대 재단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당시 동덕여대는 재단 이사장인 어머니를 등에 업은 조원영 총장의 비리와 전횡에 맞서 학교 구성원들이 힘겨운 투쟁 끝에 박 후보자를 새 이사장으로 뽑았다.

그러나 ‘동덕여대를 사학 개혁의 모범으로 만들겠다’는 박 이사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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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동덕여대 본관 복도에서 손봉호 총장 해임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학생과 교직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사이로 박상기 당시 재단이사장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명망가인 손봉호 전 한성대 이사장이 총장으로 취임했지만 학내 구성원들은 그를 독선적이라고 비판했고 해임을 촉구했다. 박 후보자는 처음에는 손 총장을 옹호했다.

총학생회와의 면담에서 “총장이 퇴진하면 학교는 큰 혼란에 빠지고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나중에는 해임 절차를 밟지만 절차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해임 취소 결정이 나기도 했다.

공과를 떠나 어쨌든 한 조직의 내홍을 원만히 수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법무부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를 향해 제기되는 비판들도 형사정책연구원장 시절 법인카드 사용이 잘못됐다거나 겸직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등 조직의 수장으로서 깔끔하지 못한 처신들에 관한 것들이다.

검찰개혁 어떻게 진행될까

“권력과 맞서는 검찰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소신 있는 검찰총장이 몇 사람만 존재해도 국민을 위한 검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박 후보자는 지난해 김수남 신임 검찰총장 취임에 즈음해 기고한 서울신문 칼럼 ‘검찰의 정의를 다시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에 문무일 부산고검장을 지명했다. 박 후보자가 새로 임명될 검찰총장과 어떻게 ‘검찰개혁’이라는 퍼즐을 맞춰나갈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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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의 낙마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비고시 출신 박상기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이다. 그가 검찰 내부의 조직적 저항을 뚫고, 검찰개혁을 순조롭게 이뤄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sbs)

검찰 조직을 얼마나 잘 장악하느냐에 따라 개혁의 성패가 좌우되는 만큼, 첫 번째 시험대는 오는 7~8월 단행될 예정인 검찰 인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개혁을 추진할 팀이 아예 따로 꾸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법무부 기획실장과 법무실장, 인권국장 정도를 외부에서 개혁이 가능한 사람들이 맡는 형태로 인사를 낸다는 것이다.

평소 그가 주장해 온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의 폭발적 사안은 그의 손에서 과연 어떻게 모양을 갖춰갈까?

지금으로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박 후보자를 잘 아는 동료 교수는 그를 “온건한 개혁주의자”라고 평했다고 한다.

20여 년 동안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경실련 관계자도 “굉장히 올곧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상황이나 조건을 감안할 줄 아는 합리적인 분”이라고 평가했다.

박 후보자는 과거 기고에서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민정수석을 통한 검찰권 장악 등 법조계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 ‘법-권 유착관계’부터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조개혁은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기대하긴 어렵다. 법조의 특징을 인정하면서 외부에 의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 그 ‘외부 개혁’의 중심에 박 후보자 자신이 서게 됐다.

수, 2017/07/0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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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글(“일본군 위안부, 한국 시민의 힘 느꼈다”)에서는 종군위안부의 문제와 한국 민중운동의 승리에 대해 썼습니다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반대 관점, 즉 정부측 관점에서 말해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이후의 한국 민중운동이 직면할 위기와 방해 등 여러 가지 곤란을 명확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종군 위안부의 문제를 간략히 개괄해 보겠습니다. 이전 기사에서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는데, 종군위안부가 탄행하게 된 배경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군위안부는 여성인권 침해행위

근대 이전, 칼과 창으로 싸우던 시대에는 종군위안부라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 시대는 행군하는 군대가 가는 곳마다 그 지방의 여성을 강강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종군위안부라고 말하는 조직이 생기가 되면서 적지 않은 군대의 행군선에서 강간당하는 여성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가 긍정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위안부가 되는 여성에게 일의 내용을 확실히 설명한 후에 그 일의 내용에 합당한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설명도 없이 여성을 속이고, 심지어 강제 연행해서 위안부의 일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행군선에서 강강당하는 어떤 여성의 피해를 다른 여성에게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군위안부가 인도적인 관점에서 고안되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당시의 일본 정부에는 그리 높은 인권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종군위안부를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2009년, 하토야마 유끼오 일본 수상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을 정치목표로 세웠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때문이었습니다. 

1995년, 오키나와 미군 기지 소속의 해병대원 2명과 미 해군 군인 총 3명이 당시 12세였던 소학교 6학년 소녀를 납치하여 3명이 돌아가며 강강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오키나와 현민의 반미감정과 반기지감정이 폭발했지만, 이 3명은 죄를 문책당하지 않고 본국으로 송환됐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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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일본 오키나와 현민들이 초등학교 소녀를 강간한 미군 해병대 사건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mbc)

이는 일미지위협정에 근거한 것으로,  공무 중인 미군이 일본국민에게 위해를 가해도 일본 법률에서는 재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 미군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른 죄를 문책한 경우는 한 번도 없고, 실제로 공무 중이 아니었다고 해도 보통 재판받지 않고 처리되었습니다.

오키나와에 배속된 미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흉악한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처벌되지 않는다고 확신해서 범죄행위에 가담하는 인간이 바로 가까이서 활개친다는 것은 지역주민에게는 공포이자 인권침해일 것입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을 계획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가 현지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빈발하게 되면, 현재의 오키나와처럼 그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와 이를 강제한 정부가 분노의 표적이 됩니다. 다시 말해 점령 후 해당 지역의 통치라는 문제에서 현지인들의 반감을 사서는 통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종군위안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는 군대가 주둔하는 지역의 여성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그 지역의 통치의 편이를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성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위안부가 될 여성을 속여서 데리고 간다든가, 강제연행해서 위안부 일을 하게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인

정부 관료와 정치가들은 통치라는 문제를 고민합니다. 국정의 담당자는 자국의 정치권력이 미치는 범위, 곧 자국 영토를 가능한 한 원만하게 통치하려는 의도에서 움직입니다. 이는 국내 치안이 정부의 책무라는 근대정치학의 정의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정치가와 관료가 국민의 입장에 선다면 극단적인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반대로 기계적으로 통치의 편이를 구한다면, 즉 정치가와 관료가 지배자의 관점에서 국민을 본다면, 시민운동을 억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 1960년 일미안보투쟁 당시, 키시 노부스케 총리는 국회를 포위한 33만명의 국민을 따돌리기 위해 진지하게 자위대 투입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실현됐다면, 천안문 사태 같은 일이 도쿄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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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아베 현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당시 총리가 일본이 유사시 다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미·일 안전보장조약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도쿄 시내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마이니치신문)

그러나 당시 아카키 무네노리 방위청 장관이 “자위대가 출동해서 데모참가자 중 사망자가 생길 경우 항거행동이 전국규모로 확대해서 수습이 어려워진다”고 간언한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자민당 간부에게 이성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로서 회자되고 있습니다만, 아카끼 방위청 장관의 발언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자위대 출동을 저지한 것은 그것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지, 결코 국민의 항거행동을 이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국민의 항거행동을 무력화시킬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그도 그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60년 안보투쟁 이후에도 베트남 반전운동 등 반정부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데모활동이나 정부에 대한 항거운동은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테러 준비법’ 등 인권탄압법안이 가결돼도 반대데모 참가자가 전혀 모이지 않습니다.

아마 수 십년 사이에 일본인은 정치에 무관심한, 인권탄압에도 둔감한 국민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가요?

일본의 엘리트층은 자신들이 국민의 지배자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통치자의 관점에서 국민을 봅니다. 이러한 엘리트들은 국민의 데모활동이나 항거운동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합니다. 

앞서 살펴본 키시 노부스케 총리는 국회를 포위한 국민을 자위대로 탄압하려고 했다가 그 방법이 효과가 없어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항거행동을 부수고 싶다는 욕구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항거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이 모색되었고, 그 하나로서 실제 실시되었던 것이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해체와 무력화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방법이 시행돼 현재의 일본인은 서서히 정치에 관심을 잃고, 시민운동도 그에 비례해서 무력화되었습니다.

80년대 후반은 일한 쌍방에 상징적인 시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강한 국민운동이 전두환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이어서 노동자대투쟁도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노동조합 해체와 무력화가 이 무렵부터 본격화됐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한의 시민운동은 명암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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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촛불시민혁명은 한국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근 한국의 촛불혁명은 공평무사해야 할 정부활동을 왜곡하고, 측근이 사익을 취하게 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켰습니다. 국민 항거행동의 승리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탐탁치 않아할 관료도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종군위안부 문제를 처리한 관료들에서 그런 징후가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민의를 무시하고 약간의 돈으로 일본 정부와 합의해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물론 한국의 관료  입장에서 민의를 무시하고서라도 일본과 합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향후 일본과의 합의를 이행할 수 없게 될 경우 이는 한국 정부를 매우 곤혹스럽게 할 것입니다. 

일본 시민운동의 실패 경험 배우기를

제가 한국의 시민운동, 사회운동 관련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두 사람들이 일본의 사정을 설명하는 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점. 아마 이런 진지함이 촛불혁명을 성공적으로 인도한 원동력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을 약화시킨 일본 정부의 수법이 한국에도 도입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갈수록 그 세력이 위축되고, 나쁜 정치가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여러 선배 운동가를 통해 그동안 일본정부가 시민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듣곤 했습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런 일본 정부의 길을 모방한다면, 한국민들이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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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과 관련해 한국 관료가 “민의때문에 어렵다”고 말한다면, 일본 관료가 “우리가 썼던 이런이런 방법이 있다”고 조언해준다면 어떨까요?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일본에는 ‘이긴 투구의 끈을 묶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부에 이겨도 방심하지 말고, 다음을 준비하자는 의미입니다. 계속 이기기 위해서는 승자도 평소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민운동과 국민항거행동은 계속해서 이겨야 합니다. 이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한국의 민중운동이 계속 승리하려면 일본의 시민운동의 실패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목, 2017/07/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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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표현 중에서 필자가 유독 좋아하는 것이 있다. 유사하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다른 점을 찾고, 다르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유사한 점을 찾는다. 어디서 읽은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에 꽤나 멋있게 들렸던지 중학교 시절부터 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말이다.

이는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열렸던 다윈페스티벌의 캐치프레이즈(See things differently!)가 말하는 것과 의미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고과정이다. 해외의 선진제도를 도입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한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르게 바라보기’ 이전에 우선 해당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창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정체가 불분명한 어정쩡한 ‘발명’ 혹은 섣부른 ‘모방’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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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패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조례 제정으로 서울시는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서울연구원에 근로자이사를 임명했다. 그리고 12개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도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모방한 근로자이사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사회에 이미 도입되었거나 또는 소개되고 있는 해외의 제도들 중에서, 특히 독일의 사례 몇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노동이사제, 노동회의소, 그리고 직업교육의 이원제도가 떠 오른다. 그리고 유명무실한 노사협의회를 대체할 종업원대표제로서 독일의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 제도의 도입 또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지면을 빌려 독일 제도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간략하게나마 필자의 견해를 보태고자 한다.

그 첫번째 주제로서 노동이사제는 서울시에서 도입했고(근로자이사제), 또한 지난 대선 국면에서 여러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다. 긴 내용을 짧게, 핵심적인 부분만 간추려보자.

독일의 기업은 두 개의 이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경영이사회(Vorstand)와 그 경영이사회를 관리감독하고,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을 임면하는 권한을 가지며, 회사의 장기전략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감독이사회(Aufsichtsrat)가 그것이다.

우리와 다른 이러한 시스템을 이원적 이사회제도(Two-tier Board System)라고 부르는데,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네덜란드가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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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및 이원적 이사회제도 개념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 차원과 사업장 차원으로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의 감독이사회(Aufsichtsrat)의 구성을 노사동수(또는 1/3 대 2/3)로 강제하고 있는 독특한 제도인데, 몬탄공동결정법(1951년), 공동결정법(1976년) 그리고 1/3-참가법(2004년)으로 규율되고 있다.

1/3-참가에 관한 사항은, 사업장기본법(1952년)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2004년에 1/3-참가법(Drittelbeteiligungsgesetz)이라는 명칭으로 분리되어 별도로 제정된 것이다.

사업장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사업장에서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를 구성하여 노동자의 경여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로서, 사업장기본법(1952)으로 규율된다.

달리 말하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대표적으로)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에 따라 노동자측 이사가 절반을 차지하는 감독이사회를 통해서, 그리고 사업장기본법(Betriebsverfassungsgesetz)에 따라 경영참여권을 보장받은 사업장협의회라는 두 축을 통해서 실현되는 제도라고 압축해서 말할 수 있겠다.

노사 동수 감독이사회에서 노동이사 선임

몬탄공동결정법과 공동결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감독이사회의 구성에 관해서 살펴보자. 먼저 각각의 법이 적용되는 대상 기업이 다르다는 점을 언급해야 겠다.

몬탄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제철 및 광산채굴업을 주로 영위하는 상시 근로자 1,001명 이상의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이고, 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2,001명 이상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및 협동조합이다(참고로, 1/3-참가법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501명 이상, 2,000명 이하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상호보험조합 및 협동조합이다).

독일 기업의 감독이사회는 이 두 법에 따라 노사 동수로 그 구성이 강제된다(이때 노동자측의 몫으로 배분된 감독이사회의 구성원을 노동이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필요적 상설기관)에 노와 사가 동일한 지분으로 참여하는 것이다(상시 근로자가 501명 ~ 2000명인 경우, 1/3-참가법에 따라 노측 감독이사회 구성원은 1/2이 아니라, 1/3이 배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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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노동의 경영참여가 제도화돼 있다. 감독이사회는 노사 동수로 구성되며, 여기서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Arbeitsdirektor)를 선임한다. (사진 출처: https://www.onetz.de/)

이 감독이사회에서 노동이사(Arbeitsdirektor; worker director)를 선임하는데, 위 두 법은 노동이사의 선임절차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후술한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먼저 언급해 둔다. 경영이사회에 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경영학에서는 주로 종업원이란 용어를, 노동법에서는 근로자 또는 노동자란 용어를 쓴다. 이 글에서는 그때그때 혼용해서 쓴다) 수가 1,000명을 초과하는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구성원(이사)의 수가 11명인데, 이 중 5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측 이사들이고, 5명은 노동자측 이사, 그리고 나머지 1명은 중립적 인사가 선임된다.

그리고 5명의 노동자측 이사 중에서 2명은 해당 기업의 종업원 중에서 사업장협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선출하며, 해당 기업이 속한 (산별)노조 및 그 상급단체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되고, 나머지 3명은 (산별)노조의 상급단체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역시 사업장협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정하게 된다.

감독이사회 구성원의 수는 납입자본의 크기에 따라 15명, 21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공동결정법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 수가 2,000명을 초과하는 (10,000명 미만의)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멤버(이사)의 수가 12명인데, 이 중 6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측 이사들이고, 나머지 6명은 (산별)노조 추천의 2명과 해당 기업내 종업원 중에서 4명이 선임된다.

종업원 수가 많아짐에 따라 감독이사회 구성원의 수는 16명, 2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몬탄공동결정법(1951)에서는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Arbeitsdirektor)는 감독이사회의 노동자측 이사의 과반수가 반대하면 선임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몬탄공동결정법이 적용되는 기업에서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이 적용되는 회사의 노동이사와는 달리 종업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법적으로 부과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몬탄공동결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절차에 따르면,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의 노측 이사가 표결로서 선임한다. 따라서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른 노동이사는 산별노조(또는 사업장협의회)가 추천하고, 사업장협의회(또는 산별노조)가 동의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다.

공동결정법(1976)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절차는 좀 더 까다롭다. 1차 표결에서 부결되면 감독이사회의 의장, 부의장, 노측 이사 1인 그리고 사측 이사 1인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 재차 표결하고, 다시 가부동수일 경우에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결정한다.

(참고로, 감독이사회에서의 통상적인 사안의 결의는 1차로 단순과반수로 표결하고, 가부동수일 경우 재차 표결하며, 이 또한 가부동수일 경우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최종 결정을 한다. 이처럼 독일 대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서는 노동자측의 목소리가 주주측의 목소리와 동일하게 반영되지만, 감독이사회의 의장에게는 첨예한 의사결정의 경우에 발생 가능한 노사간 가부동수의 상황에서 2개의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법에 규정함으로써, 굳이 따지면 주주측의 목소리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 소속…노무인사 업무 전담

경영이사회도 감독이사회와 마찬가지로 필요적 상설기관으로서 합의체(kollegiale Führung; board)이다. 경영이사회에서의 (보통)결의는 단순과반수로서 행해진다.

위에서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은 감독이사회에서 선임된다고 하였다. 노동이사(Arbeitsdirektor; worker director)는 위에서 언급한 몬탄공동결정법과 공동결정법에 따라 감독이사회가 임명하는 이사로서, 경영이사회의 여러 이사들 중의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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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82625.html)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멤버이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선관의무 등). 경영이사회의 이사는 분기별로 최소한 1회 이상 개최되는 감독이사회에 출석하여 자신이 경영관리의 책임을 맡은 소관영역에 대한 보고를 함으로써 관리감독을 받고, 감독이사회 이사와 함께 정기주총에서 해당연도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면책(책임해제)을 받음으로써 한 회계연도를 마무리하게 된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별 경영관리 영역에 대해서는 주식회사 정관의 임의적 기재사항인 경영이사회 이사의 업무분담규정(Geschäftsordnung)에 따라 나누어진다.

따라서 경영이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인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로서 감독이사회에 대하여 의무와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의 이해와 고충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회사가 정한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업원을 독려하기도 해야 한다. 회사가 종업원에게 요구하는 것과 종업원이 회사에 요구하는 것을 최적의 조합으로 조율하는 역할과 함께, 이사회에서 인사노무관리에 관한 전문가로서 다른 경영이사회 멤버들에게 자문역할을 하면서 인사노무에 관한 전략을 기업 전체의 전략에 정렬하여 수립 및 운용해야 한다.

 위에서 보듯이, 노조 친화적인 노동이사는 몬탄공동결정법의 적용 대상 기업에서 그렇고,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의 노동이사는 더 이상 노동친화적인 요인이 노동이사 선임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인사노무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이 결정기준이 된다. 광산업 및 제철업의 퇴조로 몬탄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현재 대다수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의 적용을 받는 기업의 노동이사들이며, 주로 직함도 인사담당임원(Personalvorstand; CHRO)이다.

참고로, 1990년대에 국영기업이었던 철도, 우체국(텔레콤)이 주식회사 형태로 민영화되면서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는데, 이 회사들의 노동이사는 대부분 친노조 성향의 인사들로 구성된 바 있다.

단순한 제도 모방 우려…실질적 노사관계 진전 계기 돼야

긴 내용을 짧게 간추린다고 했는데, 조금 길어졌다. 요약보다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고, 독일의 제도라는 것이 한 방(放)으로 정리되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이다.

최근 서울시가 도입한 근로자이사제가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를 모델로 한 것인지(용어만 보면 그렇다), 아니면 노동자측 대표에 의한 감독이사회의 구성을 모델로 한 것인지(노동자대표 이사제), 혹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전체를 모델로 한 것인지(종업원대표제에 대한 논의가 없다) 분명치 않다.

어쨌든 기타(Guitar/공동결정법)도 없이 피크(Pick; 속어로는 삐꾸/노동이사제)만 가지고 기타연주(공동결정제도)를 하겠다는 격은 아닌지, 말하자면 삐꾸(非俱)가 아닌지 의구심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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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sedaily.com/NewsView/1KW9DOPF3D)

정체가 불분명한 어정쩡한 발명 또는 섣부른 모방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노동자의 실질적인 경영참가를 보장함으로써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다분히 절충적인 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이해해 본다.

정부도 노동이사제가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단칼에 잘라버리지 말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위한 창의적 발상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노사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가 모두 너나없이 나서서 회사(우리경제)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우리만의 여러가지 노사 관련 제도를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만들 것을 이 지면을 빌려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관계 선진국들의 관련 제도에 관해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는 점을 사족으로 붙인다.

월, 2017/07/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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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갑론을박의 토론이 있는 것은 미래로 향해 나가는 한국사회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마침 필자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하면서 구성된 비전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새정치의 사회경제운영의 원칙’이라는 문건을 통하여 필자는 박근혜 정권이 마감되는 2018년 기준하여 최저임금 시간당 만원을 원칙으로 적용할 것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같이 참여한 비전위원 여러분들과 비전 내용을 당과 연계하는 의원들의 대부분 의견이 너무 과격하다 조언하면서 이를 공식적으로 만원에서 8천원으로 조정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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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경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1만원권 지폐가 인쇄된 유인물을 들고 2016년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 이상으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수면 위에 오른 ‘최저임금 1만원’ 

최근 소개된 국민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 내용은 매우 공을 들여 준비한 것으로 현실에 대한 통계를 중심으로 조밀하게 분석한 전문성은 인정할 만하나, 변혁기에 놓인 한국사회의 과제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변화에 대한 의지가 매우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행여 전문성을 가장해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문재인정부의 핵심적 정책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상기 보고서는 급격한 임금 인상이라는 개혁에 반대하면서 현재적 상황을 통계라는 단순한 프리즘을 통하여 접근하는 기능적 한계를 지니는 반면에, 다만 최저임금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준비없이 성급하게 시행하려는 것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어 후자의 부분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정말 가관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위원장이라는 사람의 발언이다.

평소부터 그를 국세청의 사무관급 인물이라고 낮게 평가한 필자이지만, 오래 전부터 합의하고 준비해온 종교기관과 종교직업인들에 대한 과세계획을 연기하려는 그의 의도적 발언에서 교회장로라는 사적인 신앙의 영역과 국가운영의 공적인 중심주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던 차에 역시나 대선의 선거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의 만원으로 인상’을 시기상조라고 우기는 편협한 그의 모습에서 민주당 정권의 성격과 문재인 대통령의 앞날에 심각한 불안을 느낀다.

그의 발언은 철밥통 공직사회의 반(反)개혁적 모습을 무의식 중에 적나라하게 들어낸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내수 활성화 기반될 것

최저임금 일만원’ 논쟁은 선거법과 헌법개정, 검찰과 국정원 개혁과 더불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매우 중차대한 기제이며,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규정짓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하게 저수준 노동의 임금인상이라는 단순한 영역을 넘어서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철학적 실천적 중심과제이며,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산업전반에 대한 변혁적 계기 또는 촉매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동산 투기 등 지대추구활동이 여전히 왕성하고 기득권의 위세로 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전 인구의 17% 가 천형적 빈민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원을 참여적 조건에서 개별적으로 제공하려는, 그리고 1997년이후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시장기제라는 미명하에 기업의 이익실현이 단세포적으로 작동하는 경제의 현실에서 시민적 삶의 영역을 온전하게 보호하려는, 최저임금 논쟁은 현재의 한국사회와 문재인 새 정부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앞서 언급한 국민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하게 최저임금이라는 분야만을 분리시켜 다른 OECD 국가들과 통계적인 수치만을 나열하여 비교하는 것은 예의 통계학적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질적인 평가는 정치경제학적 거시 관점에서 출발점을 잡아야 하며, 해방 이후 70년간 누적된 사회경제적 적폐와 결함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지를 담아내야 한다. 국제간의 비교는 총체적 내용을 담보해 낼 때만이 비로소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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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41962.html)

현재 한국에서는 통계상 제대로 잡히지 않는 토지소유 등 부동산 소유현황과 금융자산의 편재로 인해 연간 발생하는 400-500조의 불로성 자산소득의 80 – 90%를 불과 1.0 % 의 소수가 차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산업운용 체계 내에서 생산되는 주요한 부가가치의 70 %를 30대 재벌이 빨대처럼 독식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은, OECD 최고수준의 과다한 주거와 교육 비용, 그리고 역으로 OECD 최저수준의 사회이전소득효과와 사회안전망의 절대적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하루가 생존경쟁의 전장 터이며, 불안과 위기라는 단어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신속한 인상을 검토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적 이유는 내수시장 규모의 심각한 위축이다.

미국의 경우 내수시장의 규모는 국민순소득의 70% 수준이며 유럽국가들의 평균 역시 65% 수준을 상회한다. 반면 한국은 50% 수준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2016년 기준 국민순소득이 1400 조라고 추정할 때 내수시장규모는 800조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위에 언급한 극심한 불평등과 부의 편재, 그리고 복지안전망 이라는 국가기능의 결핍마비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우려하는 주요한 입장은 한국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는 걱정과 자영업과 중소기업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책적 선의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규모의 실업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이 보태진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첫단추

이런 입장에 대한 답변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국사회경제의 운용에 대한 두 가지의 변혁적 시각을 제공하는 문건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것은 2014년 상반기 두 달간 한시적으로 활동했던 새정치 비전위원회에서 필자가 피력하고 서면으로 제출한 내용이다.

 

“현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성장의 결과가 가져온 부정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긍정적 요소들을 키워나가는 일종의 강제적 순환이며 핵심은 경제운용의 성과를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달려있다.

배분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국민경제 내부에 생산과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그 성과를 국민모두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분의 영역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1차적으로 산업의 경제적 활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총괄적인 지수는 노동배분율로서 국민경제의 총 부가가치분에서 피고용임금노동자들이 받는 보수의 비중이다.

노동배분율을 적정수준으로 끌어올려야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노동배분율(자영업분야를 제외한)은 1997년 IMF 직전 14백만명의 피고용임노동자를 대상으로 63%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2013년 현재 17백만명의 피고용임금노동자 대상으로 58%수준까지 후퇴하였다. 즉 지난 15년간 피고용 임금노동자가 3백만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배분율은 오히려 5.0% 이상 격감한 것이며, 이는 내수경기가 어려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동시에 노동시장구조의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산업경제 활동의 영역에서 최저임금의 수준을 그저 시간당 만원이라고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평균임금의 70% 수준 이상으로 정하는 것이 규범적이며 정책적으로도 효과적이다.

산업별 직종별 사업장별 이라는 삼동(三同)의 조건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관철시켜야 하며, 저임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임금이 반드시 정규직 임금보다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

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조세체계의 전반적 개혁을 필요로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불로소득인 자산소득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강력한 누진세를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이러한 1차적 영역에서의 배분이 선순환을 이루면, 내수시장이 확장되고 560만명의 영세 자영자들의 수입이 증대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놀랄 만큼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문건은 최근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홍장표 전 부경대교수의 글로, 홍 교수는 놀랍게도 필자의 견해를 거의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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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41962.html)

그는 최저임금인상의 이론적 배경이 된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2015년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연구총서에 발표한 ‘소득주도 성장과 중소기업의 역할’이라는 연구논문의 결론부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발췌하여 옮겨 적는다.

 

“소득주도 성장은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증대를 통하여 내수를 증진하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한국경제의 수요체제나 생산성 체제에 관한 선행 연구들은 소득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질임금의 증가, 가계소득의 증진은 총 수요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실질임금 상승이나 복지의 증대는 단지 비용 상승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유효수효의 중가는 노동 절약적 기술진보를 촉진시켜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동시에 실질임금상승은 (내수기반을 확대하여) 고용을 증가시킨다… (중략)…

이는 지나치게 높은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를 낮추고,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중략)…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의 단계적 인상, 저소득가구에 대한 생활임금보장, 생산성 증가율과 실질임금 증가율의 연계를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한다, 그리고 영세소상인과 저임금노동자 가구의 생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제도의 강화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임금 부담이 오히려 기업 경쟁력 자극

최저임금의 시간당 만원 인상을 거부하는 이유로 한국 산업계 특히 중소기업에 급격한 부담과 타격으로 인해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이 증대할 것이라는 판단은 개혁의지를 거부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으로 명백한 잘못이다.

잘못이라는 근거로 두 가지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본다.

첫째는 북유럽에서 1960년대에 도입했던 랜-마이드너 정책 이야기이다.

당시에 불어 닥친 불황과 수출경쟁력의 저하의 원인을 임금 불평등과 산업경쟁력의 부족으로 보고, 사회연대임금정책을 실시하고 일정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동시에 부가가치증대와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혁신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저부가가치 분야에서 일하던 산업인력이 대거 고부가가치 산업분야로 이동하게 되면서 현재 북유럽은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지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사민당 중심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정치환경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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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7022457151)

두번째는 질풍노도의 6월 민주화운동 이후 1987년 에서 1990년대 중반의 한국에서의 경험이다.

이 기간 동안 인금인상율은 두 자리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가파른 임금인상이라는 걱정에 비춘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은 도산했어야 맞다.

그러나 오히려 이 기간 중에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며 우뚝 서는 거인들로 성장하였다. 실제적인 한강의 기적은 이때 이루어진다.

긴 설명을 대신하여 짧게 이야기하자면, 임금인상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혁신기제로 작동하였던 까닭이다.

이전까지 기업들이 성장에 의존해왔던 특혜와 투기 그리고 저임금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조건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양한 혁신의 노력을 통하여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IMF 과정에서 부도로 사라진 기업들 대부분은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혜와 비리, 부정 그리고 투기에 의존해 왔던 기업들이다. 선진국가 기업들의 역사를 보아도 임금이 높아서 부도가 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며 대부분 경영과 전략의 실패가 주류를 이룬다.

최저임금 인상은 한국경제의 약점인 중소기업의 혁신전략과 직접 연계되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 만큼,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의 구조혁신을 제약하는 온갖 산업생태계를 개선하는데 모든 정책을 선제적으로 강구하여야 한다.

대기업들의 갑질 불공정거래의 차단과 공정한 시장질서의 구축도 긴급하지만, 기존의 관행이었던 중소기업의 과잉보호 역시 매우 위험하다.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의 임금부담은 당연히 상품가격과 납품단가로 반영이 되어 시장에서 판매되거나 수요처인 대기업이 지불하여야 마땅하다.

장기적으로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인상 요인을 흡수하면서, 메기 이론에 따라 경쟁력을 키우되 시장기제에 의거해서 최저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만큼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마땅히 퇴출되어야 한다.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만 미래의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최저임금의 인상이 내수시장 수요의 확대라는 선순환적 효과로 돌아오는 약 3년간을 유예의 기간으로 설정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별도의 지원적 보상책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 관해서는 홍장표 수석과 김상조 위원장이 누구보다도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영업 부담은 섬세한 정책적 접근 필요

가장 크게 우려되는 영역은 560만명이 종사하는 자영업 분야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도 중소기업 영역 못지 않은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단기적 정책과 장기적인 관점이 동시에 필요하다.

경제적 성과가 선순환이 이루어지던 IMF 이전 시기에는 자영업의 평균소득이 봉급생활자 수준을 넘어서서 대부분의 임노동자들이 자영업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2017년 현재의 상황은 전문직종과 일정규모 이상의 소수 자영업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월 평균 수입은 임노동자들의 평균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2백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가계부채가 몇 년 사이에 급속히 늘어 부동산 대출과 함께 한국경제의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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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newstomato.com/)

따라서 자영업에 관한 접근은 단순히 현재 논쟁대상인 최저임금 인상만의 주제로 좁혀 보아서는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영업을 일자리 창출과 복지기능을 상실한 국가부재에서 오는 방편적 잠재적 반(半)실업군으로 인식하면서 접근해야 마땅하다.

한편 장기적 관점에서 필자는 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자영업 분야는 위에 언급한 심각한 현재적 문제를 노출함과 동시에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비선형적 직업선택(jobs on demands, GIG)의 형태로 진화하면서 자유롭고 전문적인 그리고 자기실현과 만족이라는 미래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며, 일인소유 형태의 자영업에서 지역내의 공동 협업과 공유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사회적 경제로 편입되고 재구성되면 질적인 부가가치와 내용을 담보해 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한국적 현실의 반(半)실업군인 자영업 분야는 최저임금인상 문제와는 별개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재편되고 재구성이 불가피한 영역으로 새로운 시각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경제의 운용성과와 연동되어 접근하고 파악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충격은 일반시민으로서 소비자들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흡수하여야 한다.

우선 임금인상 부분만큼 다양한 서비스 비용의 인상을 인정하여야 하며, 편의성을 떠나서 총 사회적 소비량은 영업시간과 대충 무관하므로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탈피하여 영업시간의 단축을 도입하여야 한다.

필자가 1980년 초 처음 유럽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상점들이 근무시간에 맞추어 문을 닫는 바람에 치약 하나 구매하는데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는 화가 났으나,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음식점들도 개폐점 시간을 정확히 명시하여 노동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야 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도 이제 이러한 유럽의 경험과 관행을 필요에 따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임금인상 부분만큼을 사회 전체가 긍정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효율성이 제고되고 노동의 소중함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의 시간당 만 원대 인상이 내수시장 규모를 확대하면서 자영업 분야에도 시차를 두고 선순환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며, 다양한 형태의 혁신기제로 작동하면서 거대한 변화를 불러 올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소규모의 자영업자들이 내수시장의 확대라는 효과가 나타나는 2-3년의 단기적 부담을 이겨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 분야의 전문적인 경험과 소견이 없는 관계로 필자로서는 책임있는 정책을 제시할 수 없으나, 다만 아이디어 수준에서 제안해보고자 한다.   

최저임금 1만원, 문재인정부의 개혁 가늠자 될 것

우선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문제는 사회에서 일찍 퇴출된 중년들과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일하는 청년세대가 주요 구성원이라 판단하면서 실업문제와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항상 실업의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이 현실적으로 실업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적인 지원체계와 환경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와 국가재정에도 도움이다.

그간 별로 실효적이지는 못했지만 저소득근로에 대하여 시행하였던 EITC(Earning Income Tax Compensation)라는 보충적 세제지원의 방식을 과감하게 확대하여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도 일정기간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여, 일정소득을 올리지 못한 부족부분과 결손부분을 역으로 보상해주는 방식을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난제는 투명한 회계기장을 의무화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도덕적 해이와 부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약점이 있다. 손쉽게는 임금인상의 일정 분을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는 유예기간 동안 직접 보상해 주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재정적 부담이 클 수 있는 반면에 감추어진 고용 (shadow employment)의 신고가 의무화되어 투명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보다 많은 제안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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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최저임금 일 만원 인상’은 문재인 새정부의 성격과 의지에 달려 있다.

유러피안대학연구소(EUI) 명예교수인 필립 슈미터가 지적했듯이, 문재인정부의 배경이 광장의 시민적 요구 분출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기존 정치적 세력의 타협의 과정으로 출범한 것이라면, 기존 최저임금 위원회의 절차적 타협과 조정을 통하여 해당 기간의 매년 인상률을 결정하는 일상적 과정으로 진행하면 될 일이다 (normal progressive).

만약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이 요구하는 것처럼 과거의 적폐청산을 넘어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열고자 출범한 개혁 정권이라면, 최저임금인상은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일상적 절차가 아닌 정권적 과제로 수행되어야 한다(reformative transformation).

최저 임금을 2020년까지 시간당 만원으로 급격하게 인상하는 것은 비교하자면 호족세력의 기반을 배척한 조선초기의 토지수세논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필요하다면 절차와 과정도 변혁을 향한 정치적 의지로 돌파해야 한다. 결정이 이루어지면 일체의 예외를 인정해서는 아니 된다. 단 한 건도 예외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최저임금인상 요구는 촛불시민혁명의 인권선언문이다.

월, 2017/07/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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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핀란드의 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토가 사망했다.

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복지국가, 개헌, 중립평화외교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100년 만에 이뤄낸 핀란드의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재임 중 성과를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싣는다. 

1. 국내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1), 어떻게 복지국가와 개헌을 이뤄냈나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최근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독일 방문 기간 동안 문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 중국 시진핑 주석, 일본 아베 총리,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등과 연속 회담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핵 등 한반도 위기를 해결할 방법으로 ‘단계적, 포괄적 접근’과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의 필요성을 강조해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도 한중관계의 회복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협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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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한미정상회담과 G20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정책의 운전대를 잡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북핵 등 한반도 주변 정세는 여전히 녹록치 않다 (이미지 출처: http://www.segye.com/)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사회적 시장경제의 진전, 그리고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피력했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베를린 평화구상’(2017.7.6.)을 발표해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추진,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등 핵심 정책방향과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비상한 과정을 거쳐 집권한 뒤 신속하고 광범위한 개혁 의제 선점을 통해 초기 높은 국민적 지지와 기대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로써 복잡하고 어려운 위기 상황의 한반도 국제정세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보편적, 민주적 가치에 기반한 ‘유능한 협상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따른 긴장 고조는 물론 의회 내 다수의석을 점하지 못한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개혁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발 등 새 정부가 당면한 과제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쉽지 않은 국제, 국내 정치의 조건 속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체제 수립과 합의적 민주주의 구현 등 핵심 개혁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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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고통받았다. 100년 전 독립을 이룬 핀란드는 100년 만에 복지국가와 중립적 대외정책을 확립했다.

20세기 동안 내전과 대외적 전쟁, 극심한 정치적 갈등과 분열 등을 지혜롭게 극복한 핀란드의 역사적 경험은 하나의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한 전직 핀란드 대통령의 삶과 행동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를 보여준다.

독립 100주년, 핀란드인들이 사랑한 노동자철학자 대통령의 죽음

2017년 5월 12일(금) 21시 15분, 핀란드 제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또(Mauno Koivisto)가 향년 93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다음날 핀란드 전역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기가 게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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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핀란드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또의 초상화. 그는 올해로 독립 100주년을 맞은 핀란드에서 시민들이 가장 사랑한 노동자-철학자 대통령이었다.

현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뙤(Sauli Niinistö)는 추모 성명을 발표했고, 공영방송 YLE는 하루 종일 추모 방송을 특집으로 편성해 내보냈다.

핀란드인들이 가장 사랑한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꼬이비스또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2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했다(2회 연임). 전후 25년간 장기 집권했던 중앙당(Keskusta, The Centre Party)의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Urho Kekkonen, 1956-1981년 재임)이 기력이 쇠해 사임할 당시 그는 사민당(SDP)-중앙당 연합정부의 총리를 맡고 있었다.

1982년 대통령 선거에서 폭넓은 지지로 당선되며 향후 30년간의 사민당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소련 붕괴, 경제위기, 유럽통합 등 대전환기에 핀란드를 이끈 그는 지혜롭고 합리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1994년 퇴임한 뒤 부인 뗄레르보 꼬이비스또(Telervo Koivisto) 여사와 함께 시골집에서 숲과 정원을 가꾸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한편, 후임 아흐띠사리(Martti Ahtisaari, 1994-2000 재임), 할로넨 (Tarja Halonen, 2000-2012 재임) 대통령과 정부에 국제관계와 외교정책 등에 관해 조언하며 전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과 시민들은 한결같이 그가 실용적 리더이자 독립적 지성인이면서 매우 소탈하고 겸손했던 정치인으로 진실로 ‘전 국민의 대통령’(koko kansan presidentti)이자 ‘나의 대통령’(minun presidentti)이었다며 슬픔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노동계급 출신인 그는 평생 손으로 하는 노동과 작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 국제관계 분야에 두루 정통하여 깊이 숙고하고 사유하는 것이 몸에 밴 사상가이자 저술가로 ‘철인왕’(philosophy king)에 종종 비유될 정도였다.

평생 배구를 즐겨한 그의 두 손은 노동과 사유 둘 다 위한 것이었다고 이야기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꼬이비스또는 핀란드가 내전과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2차 세계대전 및 전후 냉전 질서가 부과한 국제정치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성숙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평화적 국제관계를 달성하는데 기여한 탁월한 정치가였다.

20세기 핀란드의 현대사 굽이굽이를 지나온 뒤 독립 100주년인 2017년에 삶을 마감한 그의 인생 역정은 그 자체로 신생 민주공화국 핀란드의 첫 세기를 증언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어린 목수, 참전군인, 철학박사,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총리, 그리고 대통령의 삶

마우노 꼬이비스또는 1923년 핀란드 남서부 항구도시 뚜르꾸(Turku)의 한 가난한 조선 노동자(배 목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황제 치하의 대공국(Grand Duchy of Finland) 지위에서 갓 벗어난 신생 독립국이었다. 독립 직후인 1918년에는 좌우 내전이 발발해 약 4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정치적 분열과 적대의 상처는 핀란드 사회를 깊이 갈라놓았다.

열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죽고, 초등학교를 마친 뒤부터 항만에서 여러 일을 익히느라 꼬이비스또의 유년기는 짧게 끝났다.

16세이던 1939년에는 소련의 침공으로 이른바 ‘겨울 전쟁’(Talvisota, 1939-1940)이 시작됐다. 어린 꼬이비스또는 소방의용군에 편입된 뒤 전방 부대에 배치돼 ‘계속전쟁’(Jatkosota, 1941-44)이 끝날 때까지 싸웠다. 생사가 엇갈리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그는 정신적(종교적) 전환을 경험한다. 전쟁은 또 그가 세계정세에 눈뜨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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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겨울전쟁이 발발했을 때 꼬이비스또는 16세였다(왼쪽 사진). 전쟁은 어린 청년을 죽음의 공포에 맞서 싸우게 했고, 세계정세에 눈뜨게 했다. 오른쪽 사진은 전후 대학생이 된 꼬이비스또의 모습.

전쟁이 끝나고, 유공자로 전역한 꼬이비스또 앞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그는 1947년에 핀란드 사민당에 가입했고, 항만 노동조합에서도 중요한 직책들을 맡아 수행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사민당과 공산당 활동가들로 진영이 갈려 파업 전략 등을 두고 노선 투쟁이 치열했다. 사민주의 노선을 추구한 꼬이비스또는 공산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편, 꼬이비스또는 1947년부터 야간 학교를 다니며 중등 교육 과정을 이수했고, 이후 대학에도 입학했다. 교직 활동을 병행하며 학업을 계속한 끝에 1956년 ‘뚜르꾸 항만의 사회적 관계들’을 주제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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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노조와 직업 활동을 병행하면서 꼬이비스또는 공부를 계속해 1956년 뚜르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에는 향후 65년 간 평생을 함께 하며 가장 중요한 조언자가 되어준 부인 뗄레르보(Telervo Koivisto)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학위 취득 후 꼬이비스또는 1957년 헬싱키노동자저축은행(Helsingin Työväensäästöpankki)의 대표 자리를 제안받고 헬싱키로 이주한다.

이후 12년간 저축은행 대표 역할을 맡은 그는 경제 전문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사민당이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둔 1966년에는 재무장관에 발탁됐다.

1968년 핀란드 중앙은행장에 임명된 직후에는 총리로 다시 임명됐다.

께꼬넨 대통령 집권 시기에 성립된 사민당-중앙당 연합정부에서 총리(1968-1970, 1979-1982)와 재무장관(1966-67, 1972)직을 두 차례씩 역임한 그는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유일한 인물이다.

독립적 사유와 숙고된 판단을 중시하는 그는 강한 카리스마로 정치적 도전자를 잘 용납하지 않는 께꼬넨 대통령과 오래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내각에서 물러나 있는 사이에도 핀란드 중앙은행장으로 계속 활동했고, 이 시기 그가 획득한 경제와 재정 정책의 전문성은 경기 과열과 대소 무역의 붕괴 등으로 인해 그의 대통령 재임 후반기에 발생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경제 전문가였던 그의 재임 시기에 경제위기가 발생, 심화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소련 붕괴가 가져온 경제적 충격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환율 정책에 신중한 나머지 1980년대 후반의 인플레 현상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놓친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핀란드 복지국가의 팽창과 완성을 이끌다

그가 처음 총리로 임명된 1968년, 은 20세기 후반 핀란드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핀란드 역사상 최초로 노사정 대표가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전국적인 임금 인상률과 주요 경제, 사회정책의 방향을 결정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임 빠시오(Rafael Paasio) 총리 때부터 추진된 협상은 꼬이비스또가 총리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결실을 맺었다.

1930년대부터 3자 합의에 바탕해 보편적 복지국가로 이행한 스웨덴, 덴마크와 달리 핀란드는 북유럽 국가이면서도 내전과 대소 전쟁 등의 여파로 같은 경로의 발전이 한 세대 동안 지연되었다.

사용자들은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자주 총파업 등 물리적 투쟁으로 맞섰다. 내전 뒤에도 좌우 대립은 계속됐다. 나아가, 각 진영 안에서도 온건파와 급진파들 간에 치열한 논쟁과 대결이 벌어졌고, 정국은 자주 소용돌이쳤다.

대소 전쟁 등 국가적 위기를 거치면서 민족적 단합의 기운이 고조되고 사용자단체와 노조 간의 단체 협상이 개시되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께꼬넨 대통령이 첫 취임한 1956년에도 대규모 총파업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갈등이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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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노사정 합의를 계기로 핀란드는 민주적 코포라티즘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건설했다. 사진은 당시 역사적 합의를 도출한 노사정협의회 회의 장면.

그렇다면 1968년의 제도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중도우파로서 안정된 대러시아 관계 구축과 국내 사회통합에 역점을 둔 께꼬넨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정치적 뒷받침, 경기 인플레 등에 기인한 환율 재정위기라는 외부요인이 부과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 1966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사민당의 주도적 역할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가능했다.

이를 계기로 이른바 신조합주의(neo-corporatism)적 3자 이익 협상 체계가 제도화되었다. 일시적 중단 사례가 있지만 큰 틀의 변화 없이 현재까지 제도가 지속되면서 핀란드 노동시장 및 관련 사회⦁경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기제가 되고 있다.

노사관계의 안정과 고속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핀란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고용, 주거, 교육, 의료, 사회보장 등의 영역에서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복지국가 관련 법제와 정책들을 완비할 수 있었다.

꼬이비스또가 각료와 총리로서, 나아가 대통령으로서 재임한 시기에 핀란드 사회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팽창과 완성을 목도했던 것이다.

의회주의와 현대 인권국가를 향한 단계적 헌법 개혁

핀란드가 또 하나의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실현해가는 과정은 분열과 대결을 특징으로 하던 ‘캠프 정치’(camp politics)의 시스템과 문화가 ‘합의 정치’(consensus politics)로 전환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역사적, 지정학적 여건과 선거제도의 영향 등으로 핀란드의 정치 체제는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정당 시스템과 ‘진영 정치’의 양상을 보였다. 준(準)대통령제 시스템 속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때때로 내각과 의회를 해산했고, 정치적 교착으로 인해 관료 내각이 들어서는 경우들도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시도된 적록연정(punamultahallitus, 사민당-중앙당 연정)과 중앙 노동조합 조직들의 통합, 그리고 노사정 3자 협상의 제도화 등에 힘입어 핀란드 정치 시스템은 점차 안정돼 갔다.

특히 1982년 마우노 꼬이비스또의 대통령 취임 이후 중요한 정치적, 입헌적 개혁들이 시행됐다.

전임자 께꼬넨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줄이고 의회와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987년부터는 소련의 반대 등으로 27년간 내각에 참여하지 못했던 보수당(Kokoomus)이 사민당과 ‘블루-레드 연정’(sinipunahallitus)을 통해 집권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는 이른바 ‘무지개정부’로 불리는 초다수적 연합정부 (super-majority seeking coalition government) 수립이 일반화되었다.

꼬이비스또의 재임 시기에 헌법개혁위원회가 출범해 바람직한 헌법 개혁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제안했고,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점진적 개혁들이 이루어졌다.

우선, 그동안 300명의 선거인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던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전환돼 시민 참여가 대폭 확대됐다.

둘째, 대통령의 임기 제한 규정을 마련해 6년씩 2회(최대 12년)만 역임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1995년 핀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에 맞추어 헌법의 기본권 조항들을 전면 개정해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에 부합되도록 개편했다.

개정 헌법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근대적 주권 원칙에 기반한 시민권 모델을 뛰어넘어 보편적 인권 원칙을 헌법과 기본권 보장의 기본 원리로 수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기존의 부분적 개정 내용들을 집대성하고, 나아가 권력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전면적 헌법 개혁이 단행됐다. 회기를 달리한 두 차례의 의회 동의를 거쳐 2000년부터 발효된 신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대신 의회와 총리의 권한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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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또의 재임 시기 핀란드는 의회주의와 인권국가를 향한 단계적 헌법 개혁을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 헌법 전면 개혁이 단행됐다. 사진은 1980년대 이후 핀란드의 전현직 대통령들과 그 배우자들이 2012년 12월 6일 독립기념일 파티에 참석한 모습.

가장 중요한 변화는 총리 인선과 내각 구성의 권한이 대통령으로부터 의회로 이양된 것이다. 총리와 내각은 대통령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의회에서 선출, 구성되고, 총선 결과를 반영해 원내 정당들 간의 협상을 거쳐 다수결로 선출되는 총리는 내각과 행정부의 운영에 대해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책임지도록 했다.

아울러 대통령의 의회 해산권과 법안 거부권에도 중요한 제약이 가해졌다. 대통령은 여전히 총리와 장관을 임명하고, 의회 해산권과 법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 기능은 형식적 절차의 차원으로 국한됐다.

대통령의 정부 정책에 대한 통제, 특히 께꼬넨 이래 대통령의 배타적 권한 영역으로 인식되던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중요한 개혁 조치가 취해졌다. 외교 정책에서도 정책 주도권이 총리와 내각으로 넘어간 것이다.

2000년 헌법 개정 이후 핀란드의 헌정 체제는 형식적으로는 준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이지만 실질적 측면에서 표준적 형태의 의회주의(parliamentarism)로 전환되었다고 정치학자들은 평가한다.

최근 2012년의 헌법 개정은 의회주의적 권력 구조 개편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유권자 5만 명 이상이 서명한 경우 의회가 그 입법 정책안을 심의하도록 하는 시민발의제도(citizens’ initiatives)를 도입해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했다.

그 자신 한 번도 국회의원이었던 적이 없었던 꼬이비스또가 의회중심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일견 역설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당 내부에서 커리어를 쌓아간 기성 정치지도자들과 다른 경로를 통해 장관과 총리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전임 대통령과 달리 소수의 측근들로 구성된 권력의 요새를 구축하지 않았고, ‘올드보이들’ 간에 벌어지는 폐쇄적 권력 투쟁 성격의 정치행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의회와 제 정당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께꼬넨의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퍼져있었고, 이는 의회주의적 헌법 개혁을 위한 중요한 정치적 합의와 추동력을 제공했다.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대외정책 편은 다음에 계속)

(이 글의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지난 5월 핀란드 땀뻬레대학에서 핀란드의 의회정치와 시민참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여기(☞Reaching Out to the People)를 클릭해 다운받을 수 있다). 

화, 2017/07/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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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핀란드의 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토가 사망했다.

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복지국가, 개헌, 중립평화외교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100년 만에 이뤄낸 핀란드의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재임 중 성과를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싣는다. 

1. 국내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1), 어떻게 복지국가와 개헌을 이뤄냈나 

2. 대외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대통령으로서 마우노 꼬이비스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빠시끼비-께꼬넨 노선’(Paasikivi-Kekkosen linja)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들의 중립 평화 외교 노선을 한 단계 심화 발전시킴으로써 동서 냉전의 해체와 유럽 통합 등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간 일이다.

동과 서 사이에서, 중립 평화 외교의 계승자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3국, 우크라이나 등 다른 ‘경계국가’(border country)들처럼 핀란드도 동과 서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20세기 내내 내전과 전쟁, 냉전 제약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의 평화조약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관 출신 대통령 빠시끼비는 핀란드가 ‘지리’(geography)를 바꿀 수는 없는 이상 “동쪽의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서방과 소련 사이의 중립적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보수당 출신이지만 합리적 실용주의자였던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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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중립평화외교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빠시끼비 대통령(사진 왼쪽)과 께꼬넨 대통령

빠시끼비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께꼬넨도 같은 노선을 견지했다. 그는 핀란드는 국제관계 문제의 ‘재판관’(judge)이 아니라 ‘의사’(doc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과 1950~60년대의 대소 관계 위기(소련이 민주화와 인간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 진압할 당시 핀란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등을 집중된 권력의지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극복한 께꼬넨 대통령은 빠시끼비의 소극적 중립외교 노선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적극적 평화외교로 발전시켰다.

실제로 중도우파인 농민당(현 중앙당) 출신이면서도 적극적 대소 우호 정책을 펼친 그는 후르시초프, 브레즈네프 등 소련 서기장들과 사우나 외교를 통해 막역한 친구 관계를 맺었다. 이 시기 오히려 소련으로 치우친 듯 보였던 핀란드 정부의 대외 중립 외교 정책은 서구의 외교 이론가들로부터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 불리며 비판받기도 했다.

재임 초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그 진의를 의심할 정도로 소련과의 전폭적 신뢰 관계를 구축한 께꼬넨은 국내 권력 기반이 안정되고 세계적인 데탕트(해빙) 물결이 시작되던 1970년대 적극적 평화외교정책을 추진한다.

미국과 소련, 서구와 동구 사이의 소통의 메신저로서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실은 역사적인 1975년의 헬싱키 평화협정 체결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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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는 동서 양 진영의 34개 나라 정상이 ‘최종의정서’ 체결을 통해 ‘인권 존중’과 ‘국경 및 체제 존중’을 맞바꾸는 헬싱키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uvx&articleno=78138…®dt=20160403185527)

20세기 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르 알토(Albar Aalto)가 설계한 헬싱키 핀란디아홀(Finlandia Hall)에서 개최된 <유럽안보협력정상회의>에 미국의 닉슨 대통령,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 등 동서 진영의 34개국 정상이 한데 모여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절차와 방안을 담은 협약에 서명한 것이다. 당시 동독과 서독의 수상도 함께 참여하여 회담하는 등 큰 성과를 올린 역사적 정상회의 개최로 핀란드의 국제적 위상도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아직 냉전 질서는 강고했고, 미소 간의 핵무기 군사경쟁 등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께꼬넨 대통령이 연로한 나이와 체력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연거푸 나선 데는 불안정한 국제관계에 대한 (독단적) 책임감도 작용했다. (당시 쓴 일기들에서 그는 종종 세계정세의 불안정한 발전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을 토로하고 있다.)

께꼬넨의 사임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꼬이비스또에게는 빠시끼비와 께꼬넨으로 이어진 중립 평화외교를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국제질서의 대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이중의 과제가 주어졌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신보수주의를 표방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고, 소련은 이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주도하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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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 대통령은 ‘빠시끼비-께꼬넨’으로 이어지는 중립 평화 외교를 계승 발전시켰다. 1990년 미소 정상을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가장 큰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꼬이비스토 대통령은 핀란드 공산당과의 경쟁 관계에 있는 핀란드 사민당에 대한 소련 권부의 전통적 불신을 극복하며 외교적 성공의 첫 발걸음을 뗀 뒤, 점차 미소간 핵무기 감축과 평화 협상을 촉진하는 메신저 겸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는 러시아어를 직접 익히고 소련의 고위 인사들과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련 내부의 사정에 정통했고, 레이건과 부시 등 미국의 대통령들은 그의 해박한 식견과 외교적 역량을 존중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 미국의 조시 부시 대통령 내외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내외를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외교 활동 중 백미로 꼽힌다.

대전환기, 유럽통합으로 향한 길

1980년대 후반에는 세계정세가 급변하면서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그리고 1991년의 군사쿠데타 실패에 이은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 해체 등이 꼬이비스토 대통령의 재임 2기에 발생했다.

사태는 꼬이비스토의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빠르고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대소관계의 안정적, 평화적 관리에 최우선적 역점을 둬왔던 전후 핀란드의 외교안보 정책에 첨예한 도전 과제가 제기된 것이다.

꼬이비스토는 신중하게 사태를 관찰하며 핀란드 외교정책의 전환을 준비했다. 우선 소련 해체 직후인 1992년, 1948년부터 체결해온 소련과의 ‘우호협력⦁상호지원조약’의 연장을 중단했다.

냉전 시기 이 조약이 부과한 정치 군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는 서방으로 눈을 돌려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다.

핀란드는 1994년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결정했다. 100년 전 러시아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핀란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소련이 부과한 제약에서 다시 온전히 벗어나 새로운 초국적 정치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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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는 ‘전환기의 대통령’이었다. 독일 통일과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자 그는 외교 전략을 전환해 핀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 성사시켰다.

꼬이비스토의 뒤를 이은 아흐띠사리, 할로넨 대통령도 유럽연합과 UN 등 국제무대에서 핀란드의 평화 인권 외교를 지속, 확대하며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수행해냈다. (아흐띠사리는 2008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0년대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일방 병합하는 등 유럽 외교안보 질서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고, 현 핀란드 대통령 니니스뙤(보수당, 2012~재임 중)는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중재하는 등 2000년 헌법 질서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꼬이비스토의 유산이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적 혁신과 통합을 위한 리더십

마우노 꼬이비스토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 뒤인 2017년 5월 25일(목) 오후 1시부터 헬싱키 대성당에서 부인 뗄레르보와 딸 아씨(Assi Koivisto) 등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들과 현 총리 유하 시삘라(Juha Sipilä)를 비롯한 삼부 요인과 각국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생명을 다한 그의 육신은 하얀 바탕에 파란 십자가와 붉고 노란 사자 문양이 새긴 핀란드 국기로 감싼 관에 담겨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대성당을 출발한 장례 차량이 헬싱키 대학, 상원 광장, 정부청사, 중앙은행, 대통령궁, 의회를 지나 묘지가 있는 히에따니에미(Hietaniemi) 공원으로 향할 때 거리에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조용한 침묵의 눈길로 깊은 존경과 추모의 인사를 보냈다.

청명한 북구의 초여름 하늘 아래 신록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가지들이 군악대의 연주를 실은 바람결에 고요히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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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5일 꼬이비스토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 옆 자리에 그가 묻힌 헬싱키 국립공원 묘소에는 시민들의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 글의 필자가 묘역을 방문한 2017년 6월 14일의 풍경.

어린 나이에 직업 활동을 시작하고 전쟁에 참전했던 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은행장, 재무장관,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통찰하며 핀란드형 복지국가, 합의 민주주의, 중립 평화외교를 완성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유라시아 대륙의 맞은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아직 20세기가 강요한 내전과 전쟁 상태를 완전히 종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관점이 정치적으로 온전히 대표되는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의 변동에 대응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수립하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과 촛불 시민혁명이라는 비상한 계기를 통해 등장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시민들이 보내는 높은 기대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처한 엄중한 위기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검찰, 국정원, 언론 개혁 등 부패한 구체제(ancien régime)의 청산과 극복,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 및 지속가능한 복지사회 건설, 한반도 분쟁 완화 및 평화공존체제로의 전환, 헌법 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민주주의 질서의 재구성 등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의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지난 5월 핀란드 땀뻬레대학에서 핀란드의 의회정치와 시민참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여기(☞Reaching Out to the People)를 클릭해 다운받을 수 있다)

수, 2017/07/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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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인권보호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문무일(56) 검찰총장 후보자가 7월5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회의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동안 검찰의 ‘흑역사’에 비추어 보면 신임 검찰 총장 후보자가 ‘인권 검찰’을 강조한 것이 낯설기만 하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밤샘 조사 등을 포함해 그동안 진행했던 수사 관행을 되돌아보라”는 언급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백만 받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식의 검찰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¼¼­¿ï=´º½Ã½º¡½ÃÖÁø¼® ±âÀÚ = °ËÂûÃÑÀå Èĺ¸ÀÚ·Î °ø½Ä Áö¸íµÈ ¹®¹«ÀÏ ºÎ»ê°í°ËÀåÀÌ 4ÀÏ ¿ÀÈÄ ¼­Ãʵ¿ ¼­¿ï°í°Ë¿¡ ¸¶·ÃµÉ û¹®È¸ Áغñ »ç¹«½Ç »óȲ Á¡°Ë Â÷ ¹æ¹®ÇØ ÃëÀçÁøÀÇ Áú¹®¿¡ ´äÇϰí ÀÖ´Ù. 2017.07.04.    myjs@newsis.com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 (사진출처: 뉴시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은 비검찰 출신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투톱’을 이룰 검찰총장의 한 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래전부터 검찰 개혁을 화두로 삼아온 문재인 대통령이 뽑아 든 ‘문무일 카드’는 새 정부의 검찰 개혁 구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주의자’와 ‘특수통’, ‘안정’과 ‘개혁’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문 후보자는 새 정부 검찰 개혁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지존파 사건 단서 포착…‘원칙주의자’ 

문 후보자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2년 대구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검찰 내부에서 ‘원칙주의자’로 불린다. 문 후보자가 원칙주의자로 불리는데 빠질 수 없는 사건이 1994년 전주지검 남원지청 검사 시절 간접적으로 맡게 된 ‘지존파 사건’이다. 

당시 평검사였던 문 후보자는 지리산에서 일어난 승용차 추락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는 의심을 품었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주검의 부검에 참여하며 추락사고가 위장된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시민 5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지존파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단서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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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쇄납치 살인조직 지존파의 범행 현장검증 모습.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당시 문 후보자의 수사가 꼼꼼하고 원칙에 기반을 둬, “수사 교본에 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검찰 내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증언’도 많다. 문 후보자와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법연수원 시절을 회고하며 “군사정권 시절이고 집단행동이 금지된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직선제 개헌(호헌 철폐)과 군사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을 피할 수 없어 우리는 제적 등 중징계를 무릅쓰고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고 적었다.  

‘공사(公私)’구분이 뚜렷하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수사가 시작되면 친지들 전화도 안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대학 동기이자 연수원 동기로서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한 변호사는 그의 면모를 이렇게 설명한다. 

 

“문무일은 젊은 시절부터 등산을 아주 좋아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아직도 몸이 탄탄한 건 그 덕이다. 그런데 혼자서 다닌다.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니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다니면 부탁이 들어오고 말이 많이 나와서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고 하더라. 어릴 때부터 죽 그런 모습이었다.” ( ‘지존파’ 파헤친 문무일, ‘박근혜 수사 지침’ 돌파할까’ )

삶 자체도 소박해 보인다. 주말이면 산을 타거나 가족들과 주말농장을 다니는 게 전부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겨냥한 굵직한 특수사건 수사를 많이 맡아온 그가 큰 잡음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바탕에는 이러한 원칙주의자의 면모가 자리 잡고 있는듯하다.

홍준표, 윤석열과의 인연… 특수통의 길

‘지존파 사건’이후 문 후보자는 1995년 서울지검 특수부로 발탁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검팀 파견을 거쳐 대검찰청 특별수사지원과장,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요직을 거치며 정치권과 재벌에 칼끝을 겨누는 ‘특수통’(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으로 자리매김했다.

특수통으로서 현재 제1야당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문 후보자와 홍 후보는 고려대 동문으로 사법연수원 기준으로 홍 대표가 4기수 선배다. 두 사람의 인연은 문 후보자가 2008년 중앙지검 특수1부장 당시 ‘BBK 사건’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 의혹을 수사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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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한나라당사에서 당시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이 각종 문건을 제시하며 BBK의혹이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김경준 씨의 기획입국설을 뒷받침하는 “편지와 각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민주당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문 후보자는 “정치적 논평에 불과하다” 공선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한 홍준표 의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한나라당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등의 혐의로 고발한 통합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무혐의로 판단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5년 ‘성완종 리스트’사건으로 악연으로 바뀐다. 문 후보자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특별 수사팀을 맡아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를 기소했다. 

현재 홍 대표는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를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당시 문 후보자는 야당(현재 민주당)으로부터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권 실세 8명에게 거액의 금품을 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를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친박’ 6명을 무혐의 처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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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사건에서 문무일 검사는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만 기소하고, 나머지 친박6명은 무혐의 처리했다 (이미지 출처: http://theimpeter.com/39904/)

그는 7월5일 기자들에게 “그때 그 수사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이라며 “좌고우면한 게 전혀 없다. 정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인연도 눈에 띈다. 2007년 대검찰청 중수1과장 시절 ‘변양균·신정아 게이트’ 수사를 지휘하면서 파견검사였던 윤 지검장과 인연을 맺었다.

조직 안정 속에 검찰 개혁 이뤄낼까

문 후보자는 ‘특수통’으로 불리지만 ‘개혁통’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2011년까지 대검 선임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논의와 형사소송법 개정과 관련한 검찰 내 이론 대응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검찰개혁추진단 내 ‘바르고 효율적인 검찰제도 정립 TF’ 팀장을 맡아 검찰 개혁 작업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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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은 문재인정부의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 중 하나이다. 아래 왼쪽부터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을 담당할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문 후보자의 인선 배경에는 검찰 전반에 대한 이론과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 본연의 기소 및 공소유지 임무를 맡은 ‘형사부 강화’ 필요성을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한편에선 안정적인 일처리로 조직에서 신뢰를 받는 그가 ‘조직안정’에 최적의 카드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 수사를 많이 해왔지만, 정치권이나 외부에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원만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 비검찰 출신의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짝으로 검찰 내부에서 신뢰받는 문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시각도 있다. 

결국 그는 개혁과 안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검경 수사권 조정·법무부의 탈검찰화 등의 검찰 개혁 방안은 사안 하나하나마다 검찰 내부의 반발과 저항이 터져 나올 수 있는 ‘폭탄’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가 개혁의 깃발을 들고 검찰 내부를 다독이면서 새정부의 검찰 개혁 구상을 실현하는데 밑돌을 놓을 수 있을까.  

목, 2017/07/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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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핵발전이 시작된지 근 40년만에 최초로 시작된 본격적인 핵발전 논쟁으로 숨가쁘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에너지 정책, 특히 핵발전의 문제가 대중적 관심사가 되고 언론 지면을 채운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논의는 비단 에너지의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측면들로까지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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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고리 원전 5, 6호기 잠정 중단 결정으로 그동안의 원전정책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사진은 신고리 원전 1, 2호기 모습. (사진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고리1호기, 건설에서 폐쇄까지

‘탈핵’을 큰 방향으로 하는 새 정부의 정책 기조는 이미 조기대선 기간부터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통해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지만, 그 구체적인 모양새는 6월 18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드러났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건설되었고 또 폐쇄되는 핵발전소가 될 고리1호기의 퇴역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여 탈핵을 위한 대략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리1호기가 더 이상의 수명연장 없이 폐쇄되리라고 낙관할 수 없었다. 1977년 건설이 완료되어 다음해부터 계통 병입, 즉 상업적 전력 생산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이 30년이었으나 2007년에 10년의 수명연장 결정이 내려졌고, 이미 이즈음부터 노후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염려하는 환경단체들의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 같은 이른바 핵발전 강국들을 보면 설계수명이 다 한 후에도 20년 이상의 수명연장을 하여 가동한 사례가 많고, 고리1호기 다음으로 오래된 경주의 월성1호기도 2015년 2월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수명연장을 승인했던 터라, 고리1호기는 한 차례 더 수명연장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찬핵 논자들과 이전 정부들은 한국의 핵발전소는 일본의 것과 구조가 달라 안전하다는 주장을 계속했고, 고리1호기의 폐쇄 요구를 받아들이면 핵발전 정책 드라이브의 후퇴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폐로가 현실화할 경우 이제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해체와 사후관리 비용과 기술적 문제점이 드러날 것에 대한 염려도 컸다.

하지만 다른 한편, 핵발전업계와 찬핵 인사 일각에서도 고리1호기의 폐쇄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도 없지 않았는데, 노후 핵발전소의 폐쇄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순환을 자연스레 가져가면 핵발전 산업의 전체 규모는 줄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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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경주 지진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표면화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경주 근처 양산단층 지역은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한 지역 중 하나이다. (이미지 출처: http://kidshyundai.tistory.com/571)

고리1호기 폐쇄에는 2016년 9월 경주 지진의 충격이 결정적으로 적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즉흥적으로 탈핵 정책을 택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도 한국의 점진적 탈핵 입장을 분명히 했고, 그 사이에 밀양 송전탑 투쟁에 깊은 관심을 표하는 등 탈핵 로드맵 구상을 굳혀오고 있었다. 경주 지진은 부산, 울산, 경남에 지역구를 둔 기존의 찬핵 국회의원들도 노후 핵발전소 폐쇄에 토를 달기 어렵게 만들었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논의를 자연스레 폐쇄 쪽으로 기울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과 맥락이 존재하는 만큼 고리1호기 폐쇄를 해석하는 시각은 여럿일 수 있고, 이후에도 이것이 탈핵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노후 핵발전소만을 새 것으로 교체하는 핵산업 생명연장의 한 부분으로 머물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불과 한 두 주 만에 논점은 신고리5,6호기 건설 중지와 공론화위원회 문제로 옮겨갔다.

왜 신고리5,6호기가 쟁점인가 

한국에는 가동중인 핵발전소는 2016년 12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울주군 서생면의 신고리3호기를 포함하여 총 25기였다가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로 24기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거의 완공을 눈앞에 둔 신고리4호기, 신울진1,2호기뿐 아니라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중이고, 삼척과 영덕에도 핵발전소 예정부지 고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고리1호기 폐쇄로 핵발전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현재 건설 중인 핵발전소만 완공되더라도 수년 내에 오히려 더욱 많은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된다.

더구나 고리1호기가 58.7만kW의 시설용량에 30년 설계수명을 가졌음에 반해, 지금 건설중인 것들은 모두 140만kW에 60년짜리다. 이 발전소들이 모두 완공되어 핵반응을 시작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은 용두사미 또는 조삼모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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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task20.tistory.com/180)

그래서 쟁점이 되는 것이 건설중인 신고리5,6호기의 향배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탈핵운동 진영에서는 진행중인 모든 핵발전소의 건설 중단을 요구했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신고리5,6호기의 건설 중단까지 약속했지만, 고리1호기 폐쇄와 함께 발표한 입장은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중단 또는 계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완공이 가까운 신고리4호기와 신울진1,2호기는 별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그대로 두고 공정률이 28% 정도인 신고리5,6호기만 토론에 붙인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핵발전 설비용량 증대를 인정하는 내용일 뿐 아니라 신형 핵발전소의 설계수명을 감안하면 대략 2080년이 되어야 핵발전소가 모두 폐쇄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 변화, 사실상 일정한 후퇴는 탈핵운동 진영뿐 아니라 10년이 넘게 고압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웠던 밀양의 주민들에게 더욱 아쉽게 다가오고 있다. 왜냐하면 밀양을 지나는 765kV 송전탑은 실은 신고리5,6호기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쓸데없는 과잉 설비가 되기 때문에 송전탑과 송전선로를 철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인 탈핵 정책 발표와 고리1호기 영구정지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까지를 ‘노후’ 핵발전소로 보고 또 어느 것까지를 ‘신규’ 핵발전소로 볼 것인지, 어느 시점까지 어떻게 하는 것을 ‘탈핵’ 정책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논쟁과 다툼은 이제부터 새로 시작된 셈이다.

공론화위원회의 향배에 관심

정부의 계획은 신고리5,6호기의 건설을 3개월간 잠정 중단하고, 그동안 공론화위원회가 준비한 프로세스를 통해 시민배심원들의 결정으로 신고리5,6호기의 건설 재개 또는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탈핵이라는 정책 방향을 전제하되 신고리5,6호기부터 ‘신규’ 핵발전소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깔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탈핵을 기정사실화하는 프레임을 만들고 신고리5,6호기로 시선을 돌리는 꼼수라며 비판하고 있고, 반면에 탈핵운동 진영에서는 정부가 해야 할 정책 결정을 시민의 부담으로 돌리고 있다거나 신고리5,6호기만을 협소하게 논의하게 만든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리1호기 영구정지와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핵발전 현황과 정책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열어주었다는 점, 그리하여 국민과 여론의 관심이 한껏 높아졌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탈핵 에너지전환에 전례없는 계기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미 핵발전소의 실제 발전과 폐쇄 비용이나 전기요금 상승 전망, 에너지 안보 같은 여러 주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공론화위원회 3개월의 논점은 신고리5,6호기로 국한될 수 없을 것을 보인다.

즉 공론화위원회의 과정은 신고리5,6호기의 건설 승인과 핵발전 중심으로의 정책 복귀라는 결론도 가능하지만, 향후 전력예비율이 충분한 것으로 드러나거나 탈핵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인된다면 신고리5,6호기의 건설 취소뿐 아니라 공정률이 93%인 신울진1,2호기와 완공을 앞두고 있는 신고리4호기까지 완공이나 가동 유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더 많은 논의를 요구하게 될 쟁점들

고리 1호기 폐쇄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에는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쟁점들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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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울산시청 앞에서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이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왼쪽 사진). 지난달 21일, 경남도청 앞에서 한 시민이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우선 한국은 폐로 경험도 처음이고 관련 핵심기술도 다 갖추지 못하고 있다. 폐로를 위해서는 노심 냉각에만 5년 정도가 걸리고 짧게 잡아도 부지 복원까지 15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분 등 변수들을 해결하려면 그 이상이 걸릴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6천억원 남짓으로 산정해 놓은 폐로 비용도 그러한 변수들이 추가되면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

다음으로, 전력 부족이나 전기요금 상승 우려에 따른 시비인데, 이는 실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미 한국은 전력수요 증가세가 둔화되어 발전소 건설 계획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며, 총 설비용량 보다는 여름과 겨울 피크시간의 공급과 수요 조절이 관건이기 때문에 핵발전 보다는 LNG와 재생가능에너지의 유연한 활용이 더 중요해졌고 또 충분한 예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연구가 여럿 나와 있다.

물론 에너지 공급원 전환에 드는 비용과 핵발전 건설과 폐쇄에 따르는 비용 사이의 사회적 공론화가 요구될 것이다.

또 신고리5,6호기의 건설을 취소 또는 동결한다면 이에 따르는 행정적 또는 법률적 문제 시비가 있을 수 있다.

건설 중단에 따른 보상과 매몰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지금 28%의 공정률은 설계와 자재 조달까지를 포함한 것이라서 전체 사업비를 보상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중단 상태를 유지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 등 대체 사업 기획을 진행할 수 있다.

대만의 룽먼 핵발전소의 경우 공정률 98% 상태에서 탈핵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압도적 국민운동에 힘입은 민진당 정부가 건설을 중단시켰다. 결국 기술적 문제나 경제적 문제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 그리고 더 많은 시민의 각성과 참여다.

미래 에너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토론 계기

한편, 공론화위원회의 위상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신고리5,6호기의 건설 중단부터가 법적 근거가 없는 대통령의 ‘제왕적’ 조치이며, 전문가의 영역이어야 할 에너지 정책을 평범한 시민에게 맡긴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번 공론화위원회는 에너지 문제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제대로 된 관계 설정을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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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은 공론화위원회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번 공론화는 미래 에너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서울신문)

이제까지 주요한 에너지 정책은 언제나 국회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일부 관료와 핵에너지 전문가의 카르텔에 의해 정해져 왔고, 그것이 지금의 비대하지만 부실한 에너지 제도와 설비를 낳아온 것이었다.

또한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 같은 제도들은 핵발전과 폐기물 처분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어 왔다.

끝으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에 수반하는 과정과 결과를 공평하고 책임있게 나누는 준비도 필요하다.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한수원 노동조합과 원자력학계의 반발은 지나치게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에너지원 구성의 변경에 따르는 고용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충분히 예상하고 이 역시 공론화 할 주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런데 에너지전환에는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결부되어 있는 게 당연하지만, 그러한 이해당사자에는 단지 조직화되어 있고 제도적으로 자신들의 이해 관철이 가능한 주체들뿐 아니라,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주체들, 그리고 미래의 세대들까지 포함된다.

3개월이 아닌 수 십년 뒤의 바람직한 기후 환경, 에너지 체제, 경제 구조, 사회 복지를 위한 구상들이 포괄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고리1호기 폐쇄와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그러한 무궁무진한 논의들을 끌어내는 중요한 포석으로 역할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화, 2017/07/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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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경 (사)다른백년 이사장의 신간 ‘다른 백년을 꿈꾸자’가 출간됐다. 

이번 책은 이 이사장이 지난 1년 동안 이곳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을 다듬고 보완한 것이다.

그동안의 글을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하여’, ‘한국사회 대변혁은 가능하다’, ‘복지의 역사에서 만나는 사상과 사상가들’ 등 3개의 파트로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에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2꼭지를 함께 실었다.

이 이사장은 “민주화 투쟁과정에서의 투옥 등으로 한국사회의 내부조직에 편입되지 않고, 독일산업과 한국기업 간 연계를 담당하는 중립적인 중계자의 위치에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우리사회를 지켜볼 수 있었다”며 “이런 남다른 체험과 지난 40여 년간 느끼고 공부하고 고민해온 주제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족한 내용이지만, 이 책이 한국사회가 새로운 도약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책은 ‘책담’에서 출판됐다. 총 분량은 426페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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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7/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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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해 온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제이(J)노믹스’의 이론적 배경으로 평가 받는다.

홍 경제수석은 영ㆍ미권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경제학계에서 이례적으로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라는 이력을 자랑한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 개혁 성향의 비주류 학파 ‘학현학파’의 적자로 꼽히기도 한다. ‘분배’를 강조하는 학현학파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서강학파’와 함께 한국 경제정책의 방향을 좌우해 양대 학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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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입장하는 홍장표 경제수석비서관의 모습(가운데). (사진 출처: 연합뉴스)

홍 경제수석은 평소 최저임금제 강화, 정규직 전환 등을 강조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개혁과제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 과제들이다.

홍 경제수석이 문재인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콘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은 이유다.

학현학파 적통 잇는 국내파 경제학자

1960년생인 홍 경제수석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대통령상을 받으며 사회과학대학 수석으로 졸업했다.

경제학에 뜻을 둔 동료 들이 유행처럼 미국행 비행기를 타거나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홍 수석은 나 홀로 서울대에 남았다. 석ㆍ박사 학위를 따면서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의 제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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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남덕우 전 총리(왼쪽)과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전자가 성장을 중시하는 서강학파를 대표한다면, 후자는 분배와 개혁을 중시하는 학연학파를 대표한다.

홍 경제수석은 변 이사장의 아호를 딴 ‘학현(學峴) 학파’의 일원으로 우리나라 개혁성향 경제학자의 계보를 잇는 적통으로 성장한다.

학현학파는 서강학파와 함께 한국의 경제정책을 양분해 온 양대 학파로 꼽힌다. 서강학파가 성장을 강조하며 박정희 독재정부 경제정책의 이론 배경을 제공했다면, 학현학파는 주류경제학이 내세우는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그늘을 조명하며 ‘효율보다는 형평, 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변 이사장은 후학들에게 무엇보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완성자인 알프레드 마셜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취임 강연에서 “경제학을 배우려거든 먼저 런던의 이스트엔드에 있는 빈민가에 가보라”며 한 말이다.

상아탑 안에만 갇혀있지 않고 참여하는 지식인의 길을 걷게 하는 DNA는 후학들에게 이어져 1990년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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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변 이사장은 서울대 상대 교수로는 유일하게 4ㆍ19 혁명 당시 교수단 데모에 참여했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를 비판하며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지식인 134 시국선언’에 연루돼 해직되기도 했다.

홍 경제수석 또한 변 이사장이 주류경제학에 비판적인 개혁성향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꾸린 ‘한국경제발전학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

소득주도성장론 주창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로 학계를 주 활동무대로 삼아온 홍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론을 가장 먼저 주창한 학자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새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 되는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국민 개개인 소득이 늘어야 국가 경제도 발전한다는 논리다. 임금인상→소비촉진→생산증가→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루는 게 핵심이다.

기업 주도 성장이 노동자의 소득 증대로 퍼지는 ‘낙수 효과’와는 반대인 ‘분수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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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국회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의원(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이 홍장표 부경대학교 교수. (사진 출처: http://www.businesspost.co.kr)

국제적으로는 ‘임금주도성장론’에 가깝다. 영국이 현실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생활임금제’를 도입한 것이 최근의 예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때 대안 모델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2년 국제적 저성장의 원인을 ‘임금 격차의 블평등’에서 찾은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관심이 폭발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과도한 불평등을 피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며 ‘포용적 성장’을 내세웠다. 임금주도성장론에 가까운 주류 진영의 이론인 셈이다.

홍 경제수석은 2013년 임금주도성장론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꿔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같은 해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 패배 후 1년을 즈음해 내놓은 반성문 성격의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언급하면서 문 대통령의 대표적 경제공약으로 자리잡아 갔다.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서 내수 주도 또는 적어도 내수와 수출의 균형을 맞추는 성장전략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소득주도성장이 대안의 하나일 수 있다”고 밝혔다.

홍 경제수석은 이듬해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소득주도성장론이 한국경제를 되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다 분명히 했다.

“한국의 실질임금 증가율이 경제성장률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논증해 냈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경제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를 따져봤을 때 실질임금 증가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경제 성장률이 0.68~1.09%포인트,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0.45~0.50%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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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열린 ‘포용적 성장과 소득주도성장론’ 토론회에서 홍장표 경제수석(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 더미래연구소)

홍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제 강화,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정규직 전환 등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아울러 법인세 최고세율의 원상회복, 자본소득세 강화,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공정한 하도급거래 질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새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책 방향과 맞아떨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한 것도 홍 경제수석의 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평소 “소득주도성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은 중소기업이 될 것”이라며 “자본금 2조원인 기업 한 개보다 자본금 1,000억원인 중소기업 20개가 더 낫다”고 강조해 왔다.

주로 학계에서 활동하던 홍 교수가 2003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을 맡아서 추진한 과제도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 방안 마련’이었다. 홍 경제수석은 오랫동안 초과이익공유제(협력이익배분제) 도입을 주장해 오기도 했다.

장하성 실장, 김현철 보좌관과 삼각편대

홍 경제수석은 J노믹스를 이끌어가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재벌 저격수 평가 받는 장하성 정책실장, 소득주도성장론과 맥락이 비슷한 ‘국민성장론’을 주창한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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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제브레인 3인방. 왼쪽부터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다만 홍 경제수석이 부경대 경제학과, 장 실장이 고려대 경영학과, 김 보좌관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청와대 경제브레인 3인방 모두가 학자여서 경제부처에 대한 장악력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청와대 참모진의 개혁성향과 경제관료들의 보수성향이 충돌하면 불협화음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는 홍 경제수석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창한 경제학자로, 해박한 이론과 식견을 바탕으로 새정부의 경제정책 콘트롤타워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목, 2017/07/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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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윗물이 아랫물을 밀어내는 것은 자연현상(現狀)이고, 이러한 물의 성질들을 소상히 이해하는 것을 수리(水理)라고 하고, 성질을 잘 터득하여 우리 생활에 활용하는 것을 치수(治水)라고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최저임금 액수와 인상률에 대하여 사회적 논쟁과 불협화음이 정도를 넘고 있다. 대부분의 논쟁은 매우 지협적이고 한정된 예를 일반적인 것으로 과장하고, 자신만의 위치를 고집하는 좁은 시각에서 상황을 해석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말 악의적인 것은 수구적 지식인과 언론이 중심이 되어 최저임금이라는 주제를 을과 을, 즉 저임노동자와 자영업자/중소상공인 간의 이해충돌로 몰아가면서 갈등과 불안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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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사용자-근로자-공익위원들이 표결한 최저임금 인상안의 결과가 적혀 있다. 이날 표결로 내년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확정됐다.

최저임금에 대한 악의적 주장들

최저임금 논쟁은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고백적 접근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고자 하는 개혁적 관점과 이를 과제적 상황으로 설정하면서 우리사회를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노력의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시급 7,540원, 지난해 대비 16.4 % 인상에 대한 결정은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문재인 정권에 참신한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고, 다중다층의 이해관계 속에 한국도 이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대의 쾌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을 비판하는 핵심적인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의 현실에서 시급 일 만원 수준의 최저임금은 지나치게 과도하여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산업활동을 위축시키며 경제활동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가능성 매우 높으며, 최저임금 이하의 저소득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중소 상공업과 자영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고용을 축소시키거나 폐업을 하면서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증가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지역적 업종별 편차가 큰 현실적 조건에서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위법자를 양산시키는 매우 비현실적 조치이며, 정상적 노동조건을 적용할 수 없는 노령층과 장애우 등에게는 오히려 취업의 기회를 박탈하는 역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위의 주장은 한마디로 헬조선 같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무리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적당히 대처해 나가자는 것(status quo)이 요지이다.

엘버트 허쉬만은 보수의 수사학(The rhetoric of Reaction, 국역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입장을 허구적이거나 과장된 ‘역효과와 무용론과 위험이론’으로 포장한 수구적 논리라고 명쾌히 혁파한 바 있다.

유럽의 18세기 역사를 들여다 보면 당시에 보편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우 불순하고 위험한 인물로 취급한 황당한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고? 그 나라 복지수준 고려해야 

우선 최저임금의 인상이 과다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전개 해본다.

양측
내년도 최저임금 상승률은 역대 최고인 16.4%이다. 이러한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저임금의 수준은 단순히 최저임금 액수만을 떼어놓고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더불어 사회이전 소득과 공공서비스 수준 즉 사회안전망의 질적 수준이 고려된 종합된 내용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수준은 당연히 소속사회에서 인간적인 삶이 지속가능한 필요조건인 생활비용에 대응하여 설정되어야 하며, 생활비용은 소속사회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의 수준과 질적 내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의 경우 2016년 현재 GDP의 9-10% 수준이 사회안전망과 공적 서비스비용으로 지출되고 있으며 이전소득효과는 3-4% 수준에 불과한 반면에 OECD 평균으로 보면 GDP의 22-25% 수준이 공적 서비스비용으로 지출되면서 사회이전소득 효과가 10%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국가의 복지기능 결핍으로 한국시민들의 가계비에서 차지하는 주거, 교육, 의료, 통신 등 비용이 상대적으로 과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질 최저생계비 수준의 편차가 매우 큰 조건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외국의 예로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통계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2017년 현재 시점의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의 신속한 인상을 요청하는 것은 그 동안 발생한 국가의 실패에 대한 보상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의 수준은 소속사회의 복지정책과 공적 서비스의 수준과 상대적이며 반비례적인 함수관계를 지니게 된다고 할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비용으로 발생하는 최저임금의 앞에 붙는 인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다움 또는 존엄은 기업의 비용문제를 넘어서서 현대국가가 존재하는 제1의 근거이다. 만약 국가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하면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고, 시민들 입장에서는 국가에 의무를 다하고 공적 강제력에 승복해야 할 근거가 사리지는 것이다.

국가의 선택권이 자유롭지 못한 조건에서 소속국가에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로서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이기도 하며, GDP 규모에서 10위권을 형성한 한국에서는 국가의무적 사항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정책의 2차적 영역인 복지영역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조밀하게 구성하여 미시적 가계소득에 실질적 증대효과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20년간 궤도를 이탈한 (rush to bottom) 한국의 현실에서는 단기적으로 산업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일차적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최저수준의 임금을 신속히 인상하여 보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적정임금은 오히려 경쟁력 제고

양질의 노동력이 공급 가능한 조건에서,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은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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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인상의 범위는 노동생산성 내로 제한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노동생산성이 임금인상의 근거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임금인상으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향상도 있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후자의 효과를 고려한 측면이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mediapen.com/news/view/67320)

적정한 임금인상은 기술개발과 산업혁신에 촉매제로 작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임금과 경쟁력과의 관계는 역 포물선적인 상관성을 가지며, 일정수준의 임금인상은 해당기업과 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포물선의 극점을 넘어서면 급격한 부담을 주면서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포물선의 극점을 넘어서는 위험은 최저 임금의 인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밥통인 공공기업과 재벌수준의 대기업의 과다한 임금부문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기업을 파산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한국경제의 실력을 넘어선 과다한 임금분야에 있는 것이지, 기본생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산업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필자는 매우 중요한 제안을 던지고자 한다. ‘일시적인 최저임금 인상에서 오는 한국경제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평균임금의 두 배 이상 받는 영역의 임금을 5년간 동결 또는 억제하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구조는 수직하방적 삼각형 구조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주장하는 낙수효과와의 정반대방향으로 대부분 경제활동의 성과가 상층부를 향해서 이동하는 빨대의 경제이다.  

양질의 노동력을 생활수준 이하의 최저임금으로 고용하면서 발생하는 잉여와 혜택을 상층부의 재벌기업과 공공기업 그리고 여기에 기생하는 전문가 집단이 배타적으로 즐기고 있는 구조이다.

당연히 개혁정부로서 문재인 정권의 역할은 최저임금, 연대임금, 복지정책 등을 통하여 이러한 수탈적 빨대구조를 혁파하고 선순환적 재분배구조로 이동하여 한국 산업과 경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을’과 ‘을’의 싸움이라고? 장기적으로 내수 확대, 단기적으로는 보완대책 필요

이런 맥락에서 최저임금인상이 중소상공업과 자영분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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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오를 경우 60% 가량이 알바생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최저임금은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의 비용 증가를 초래해 궁극적으로 고용 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섬세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pollmedia.net/news/articleView.html?idxno=174)

최저임금인상을 포함한 종합적 소득주도 성장론의 배경에는 위축될 대로 위축된 내수시장 수요을 확장하여 내수에 기반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정상화하고,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두 분야에 시장의 적정규모를 기반으로 기술혁신과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데 있다. 

GDI 50% 미만인 800조에도 못 미치는 내수시장규모를 OECD 평균인 65% 이상인 1000조 이상으로 키울 수 있다면, 다른 어떠한 경제적 수단과 정책보다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2-3년 이상 잠복기간이 필요할 터인데, 이 기간 동안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기와 자영업이 잘 버티어 내서, 잠복기간 이후 나타날 선순환적 성과와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여하히 필요한 과정과 절차를 적정하고 효과적으로 설계해 내야 하는 점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임금인상에 따른 제품과 서비스비용의 인상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최저임금인상의 적용혜택을 받는 250-400백만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하여 5천만 시민들이 연대적으로 물가인상의 부담을 공유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경험을 할 것이고, 현재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작업이 이루어 질 것이다. 정부는 당연히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와 절차가 이루어지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 도입하고, 필요하면 강력한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

자영업 분야에 대해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까지 2-3년정도의 일정기간에 한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의 일정부분을 국가가 보조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EITC처럼 보상적 방식도 가능할 것이고, 고용에 대한 개별적 직접적 지원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10조원 이상의 재정투입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반(半)실업자 영역으로 머물고 있는 자영업 분양에 일대의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사회적 경제라는 주제를 결합시켜 지역단위의 협력과 공유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서 재구성하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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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인건비라기 보다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자영업 비중, 이에 따른 경쟁격화라는 분석이 있다. 따라서 최조임금 인상을 억제만 할 것이 아니라, 자영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과 혁신이 필요하다. (자료: 민주노총)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매우 복합적인 내용이 서로 얽혀져 있다. 우선 대기업과의 거래 또는 시장에서의 경쟁 관계에서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거래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고, 한국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양질의 인적 재무적 자원을 대기업과 공공영역에서 싹쓸이 해나는 조건에서 독자적으로 생존의 기반을 닦아나가야 하는 이중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역차별적으로 중소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공정거래의 환경을 조성해 주고, 중소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영역에 보호막을 쳐서 중소기업 영역에서 발생한 부가가치가 삼각형 빨대 구조로 상층부에게 일방적으로 흡수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정책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잘 지적하였듯이, 중소기업 영역에도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원과 함께 혁신과 변화를 위한 촉매적 자극이 매우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제고 없이는 한국경제에 미래는 없다.

환경적 일반적 지원제도와 정책은 강화할수록 도움이 되겠지만, 개별적 직접적인 지원은 오히려 독약이 되고 정치적 부패의 요인을 제공한다. 부득이 직접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면 사전적인 방식이 아닌 사후적으로 엄격하게 평가하여 집행되어야 한다.

경영을 잘못하거나 시대에 뒤쳐진 기업은 자연스레 퇴출되어야 한다. 썩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새살이 돋는 법이고, 장기적으로 최저임금을 지불할 수 없는 기업은 문을 닫는 것이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향후 2-3년간을 유예기간으로 설정하여 가능한 세제적 재무적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 失보다 得 많을 것

일부에서는 업종별 지역별 편차에 따라서 최저임금의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일리가 있는 듯하나 동시에 함정일 수도 있기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예컨대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 또는 개별적 국가주권이 여전히 유효한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현지 조건에 맞는 차별적 적용이 가능한 반면에, 헝가리 만한 조그만 국토 안에 도시와 농촌 그리고 지역단위의 편차가 심각한 한국 현실에서 편차에 따른 차별적 적용을 허용하는 순간에 기존의 격차는 굳어지면서 오히려 더욱 벌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과 업종에 관계없이 혁신과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오히려 예외가 없는 적용을 통하여 격차를 점차적으로 좁혀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까? 보다 심층적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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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에 근거해 최저임금 상승이라는 정책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시도가 목표한대로 바람직한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정책 당국의 섬세한 모니터링과 보완책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분야에 최저임금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시장의 조건이 작동되는 영역에만 최저임금이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 온다.

노령층과 장애우 같은 영역은 임금을 비용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노동시장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관점에서접근하여야 한다. 예컨대 65세이상의 노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는 인생 이모작이라는 새로운 경험과 사회적 봉사와 참여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노령층 생활비용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복지적 정책으로 풀어가야 할 사항이다.

장애우 문제 역시 주체적 참여적 사회활동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면서 이에 대한 보수는 정부의 지원정책과 연동하여 보상적 방식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순리적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최저임금정책을 노동시장이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법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일체의 예외가 없이 적용되도록 해야 하지만, 적용이 불가한 예외적 영역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명하게 합의되지 않은 예외가 묵인되는 정책과 법규는 더 이상 실행해야 할 의미가 없어진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임금이 비용이라는 사실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현상에 얽매여 규정 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잘 이용하고 극복하여 자유의 확대라는 역사 이야기를 형성하여 왔듯이,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의 잘못된 현실과 대립하는 장애물적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세상을 위한 견인적 조건으로 작동해야 한다.

물의 성질을 이해하고(水理) 이를 활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이어온 것(治水)이 자유를 향한 인류의 기록인 것처럼,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끌어낸 최근 최저임금의 합의 과정은 한국사회를 보다 성숙한 미래로 이끌어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금, 2017/07/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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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보기는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고과정이다. 해외의 선진제도를 도입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한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르게 바라보기’ 이전에 우선 해당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창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어정쩡한 ‘발명’ 혹은 섣부른 ‘모방’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사회에 이미 도입되었거나 또는 소개되고 있는 해외의 제도들 중에서, 특히 독일의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노동이사제, 노동회의소, 그리고 직업교육의 이원제도가 떠 오른다. 그리고 유명무실한 노사협의회를 대체할 종업원대표제로서 독일의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 제도의 도입 또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지면을 빌려 독일 제도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간략하게나마 필자의 견해를 보태고자 한다.

근로자이사제, 제도 모방인가, 노사관계 혁신인가?  

직업교육의 이원제도(Duales Ausbildungssystem)는 독일의 청년실업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는 제도로서, 독일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에 자랑하는 모델이며, 또한 전세계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모델이다.

핵심은 직업교육의 이론과 실무를, 직업학교(고등학교가 아니다!)와 기업현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이론은 직업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고, 실무는 직접 회사에 채용되어 회사로부터 소정의 직업훈련생 보수를 받으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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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훈련을 받는 독일 학생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eknews.net/)

고숙련 노동자 만드는 독일의 직업교육

저임금에 기반하여 낮은 품질로 생산하여 낮은 가격에 수출해서 먹고사는 로우로드(저진로) 전략에서 탈피하여, 높은 임금을 받는 고숙련 제조인력이 생산하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높은 가격을 받고 수출함으로써 높은 이윤을 달성하고, 이를 다시 고임금 숙련인력과 고품질 제조로 연결시키는 선순환의 지속적인 고리(하이로드 전략)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고숙련 노동자 양성을 위한 직업교육시스템이다.

그래서 폴 크루그먼(P. Krugman)은 이렇게 말했다.

 

 “(중략) 일자리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공교육 후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의 고용에 대해 그처럼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독일과 같이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하고, 고진로(하이로드) 전략을 취하는 경제구조 안에서는 탄탄한 직업교육시스템을 통해 숙련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하다”

330개 직업…이론과 실습 병행

독일의 직업학교는 1969년에 처음으로 제정된 직업교육법(Berufsbildungsgesetz)에 따라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이원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도제교육의 흔적으로서, 현장실습을 중시하여 직업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즉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에서는 연방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연방경제에너지부에서 정한 약 330개의 공인된 직업(anerkannte Ausbildungsberufe)에 한하여 직업학교에서 직업교육이 실시된다.

직업학교의 과정은 직업의 종류에 따라 2년에서 3년 6개월까지 그 기간이 상이하다. 이 기간동안 일주일에 1~2일은 직업학교에 등교하여 이론교육을 받고, 나머지는 기업현장에서 실무교육을 받는다(Teilzeitform).

이런 방식 외에도 매년 3개월 가량은 직업학교에 등교하여 이론수업을 받고, 나머지 9개월 가량은 기업에서 실무교육을 받는 방식(Blockform)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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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

독일에서는 초등학교(4년) 졸업 후, 성적에 따라 세가지 상급학교(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웁트슐레)에 진학하는데, 우리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상급학교 졸업생의 약 60% 정도가 졸업(졸업증서가 직업학교 입학의 요건이다) 후 직업학교에 들어간다.

약 480,000개 가량의 기업이 회사 내에 직업교육생을 받고 있는데, 이 중 80% 이상이 중소기업들이다.

직업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은 직업학교를 통하거나, 상공회의소 혹은 개별적으로 회사와 접촉하여 회사와 직업훈련생계약(Berufsausbildungsvertrag)을 체결해야 한다. 이 계약은 회사에서 직업교육훈련 과정이 시작되기 이전에 체결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직업학교의 개강이 9월이므로, 회사에서는 이 시기에 맞추어서 봄부터 직업훈련생을 구하고, 여름 무렵에는 이미 직업훈련생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자질있는 직업(교육)훈련생을 구하여 비교적 낮은 직업훈련생 보수를 지급하면서 회사의 업무를 충분히 가르치고, 이를 통해 잘 훈련된 인력을 추후 정직원으로 충원할 수 있다면 그만큼 회사의 인력계획에 도움이 되므로, 여러 경로를 통해 자질있는 교육훈련생을 모집하기 위해 연초부터 미리 준비하게 된다.

직업훈련생(Azubi 라는 약자를 많이 쓴다)을 채용하고자 하는 회사는, 사내에 사용자의 위임을 받아 교육훈련생에 대한 직업교육 전반을 주관하는 직업교육담당자(Ausbilder 혹은 Trainer)를 반드시 두어야 한다.

이 담당자는 해당 직종에 대해서 전문적인 업무지식과 숙련기능 그리고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자로서, 상공회의소(IHK) 혹은 수공업회의소(HWK)에서 주관하는 직업교육담당자 시험을 통과하여 자격을 갖춘 자이어야 한다.

기업 맞춤형 교육

직업교육의 대상이 되는 약 330여개의 직업은 연방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직업학교의 교과과정 및 관리는 주(州)정부의 소관사항이다.

직업훈련생은 기업에 채용되어 소정의 보수를 받는다고 했으므로, 독일 직업교육의 비용은 상당부분 기업이 부담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교과과정에서도 기업의 요구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들이 (의무)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상공(및 수공업)회의소가 직업학교의 졸업시험을 관장하고 있는 것도 그 점을 뒷받침한다.

그러니 우리사회에서처럼 채용한 신입사원들의 수준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볼멘 소리가 기업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대신 기업은 지갑을 열어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의 수준을 높이는 제도에 기꺼이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어차피 신입직원들을 대상으로 새로이 입직교육을 하는 비용은 기업별로 각각 발생하기 마련이다.

독일에서는 기업이 직업교육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고, 그리고 제대로 훈련된 신입사원을 받게 된다. 비용은 비슷하게 소요되지만, 독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근사한 직업교육시스템을 사회적으로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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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직업교육은 철저히 기업에서 이뤄진다. (사진출처: http://blog.daum.net/)

기업 뿐만 아니라, 청년 구직자들도 이 제도의 수혜자들이다.

우리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보다 명확해 지는데, 우리의 청년 구직자들은 취업시 기업이 요구하는 “경력”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취업을 해야 경력을 쌓을 수 있는데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경력이 있어야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니 여기저기 인맥에 기대어 인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고, 그 과정에서 열정페이니 뭐니 해서 사회적인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발생한다. 게다가 지방에는 그러한 인턴 자리 조차도 찾기 힘든 형편이다.

그러나 독일의 청년 구직자들에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직업교육 과정에서 이미 실무를 충분히 익힌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미 회사의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직업훈련생을, 직업교육훈련과정이 끝난 후 정규직원으로의 채용을 마다할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러니 직업교육과정이 끝난 후에는 정규직으로 가볍게 취업이 이루어진다.

직업교육 통해 기업 조직문화 익혀

조직문화는 쉽게 형성되지 않고, 또한 그 문화를 습득하는 것도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직문화란,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의식적 수준에서 형성되는 가치만이 아니라, 의식 이전의 영역에서 장기간에 걸쳐서 형성되는 믿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드가 샤인(E. Schein)은 이를 인공물과 가치 그리고 기본적 가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조직문화는 조직의 구성원이 그 조직에 몰입할 수 있게 하며, 한 조직 내에서 어떤 태도와 행동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처음 입사를 하게 되면, 개인들은 그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를 조직사회화 과정이라고 한다.

이 사회화 과정이 바로 조직문화에 구성원이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조직의 효과성(Effectiveness)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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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M&A가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조직통합에 실패하는 것인데, 이것은 상이한 조직문화가 강하게 부딪치기 때문에 그렇다.

또 한가지, 민주시민으로서의 교양이 필요한 것처럼, 기업이라는 조직 안에서도 조직시민행동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시민행동(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이란, 공식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업무도 아니고, 그에 따른 공식적인 보상도 주어지지 않지만, 내가 속한 조직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활동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행동)을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요소들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조직 내 인간관계에 따른 갈등을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일 직업교육의 이원모델에서는, 정규 입사 이전에 2~3년간 회사에서 직접 근무하면서 업무를 배우게 되는데, 이 기간동안 조직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조직문화를 이미 익히기 때문에 종업원에게도 그리고 회사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도 대졸 신입사원의 약 10%(300인 이상 기업) ~ 32.5%(300인 미만 기업)가 1년 이내에 퇴사를 한다고 한다. 취업 자체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취업 후 퇴사 비율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해서 그렇지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조직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이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데, 독일식 직업교육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이원모델을 통해 쉽게 극복된다.

마이스터교…국적 불명의 제도 모방

독일의 직업교육과 관련해서 또 한가지 언급해 둘 것이 있다. 독일의 직업학교는 학생들이 정규 공교육 과정을 “졸업한 후”에 가는 곳이다. 이는 스위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론은 학교에서 배우고, 실습은 기업(현장)에서 한다는 개념 때문에 종종 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기업에 실습을 나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작성한 자료가 많다.

굳이 이해를 해보자면, 독일에서는 정규 대학과정 이전에 직업학교 과정이 위치해 있으니, 직업교육은 고등학교급에 해당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독일의 학제(초등학교 과정은 4년으로 끝나고, 중고등학교 과정의 이수연수는 학교의 종류별로 다름)가 우리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길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정규 공교육 과정(중고등학교)을 끝내고 직업교육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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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 시절, 독일의 직업학교를 모방해 마이스터고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특성화/마이스터고의 중도 이탈자가 매년 1000명 이상에 달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출처: 베리타스알파)

독일과 스위스의 직업교육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도입했다고 하는 마이스터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정규 공교육 과정과 직업교육 과정을 섞은 것이 창의성의 발로인지, 아니면 정체불명의 어정쩡한 발명 혹은 섣부른 모방인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우리사회에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취업계약 입학제, 취업인턴제도 등 현장 실습교육을 강화하는 여러 제도들이 도입,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렇게 강화된 현장실습제도를 통해 저임금, 장시간 노동, 안전에 열악한 실습현장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 사례가 노출되더니, 급기야 사망사고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현장실습생을 값싼 노동력만으로 보는 기업과, 껍데기 취업률에 혈안이 된 학교, 그리고 정부의 무대응과 무책임이 합작하여 만들어 낸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것들이 혹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독일(스위스) 사례를 제대로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쉽게 도입해서 생긴 문제라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노파심에서 그런 우려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해외의 선진제도를 그 겉모습만 대충 이해하고, 또 우리사회에 대충 적용한다면, 그런 제도는 지속될 리도 없고, 문제점만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말 것이다.

우리만의 제도를 위한 창의적인 발상

독일의 직업학교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우리 사회에 관련 제도를 착근시키기 위해서는 이 제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 더해서,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할 것이다.

되풀이 하지만 창의적 발상을 위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우선이다. 창의적 발상이라는 요리를 위해 필자가 생각하는 기본재료는 이렇다.

1. 공교육과 구별한다. 공교육과 직업교육의 목표는 다르다. 공교육 과정에서 직업훈련을 시켜서 사회에 내보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이다.

공교육 과정에서 습득해야 할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가르치는 것에 소홀히 한다면, 이는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현상의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  

2. 법규정을 통해서 신분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에 따라 직업훈련생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소정의 보수(직업훈련생보수)를 지급한다. 독일의 경우, 관련 법(직업교육법)에 따라, 시용기간(1~4개월)에는 해고가 가능하나, 그 이후에는 특별해고만 가능하다는 점도 언급해 둔다.

3. 교육과정에 기업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한다. 독일에서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회원이 되는 상공회의소(수공업회의소)가 사내 직업교육담당자의 자격과 직업학교의 졸업시험을 주관한다.

직업훈련기관들이 저마다 알아서 교육훈련을 시키고, 의무시수만 채워서 내보내면 그만인 식의 직업교육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4. 비용의 상당 부분은 기업이 부담한다. 독일에서 직업학교를 운영하는 비용은 주정부가 부담하지만, 기업은 직업교육을 시키면서 직업훈련생 보수를 지급한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어차피 입직교육을 위한 비용은 드는 것일테니, 이를 공동기금으로 조성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모아서, 민관 협력을 통해 효과적이고 지속성 있는 사회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5. 중앙정부가 기본틀을 만들고, 직업교육 시스템의 운용은 지자체가 민간기업과 협력하여 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직업교육에 관한 법체계를 정비하고, 기왕에 공들여 만든 국가직무능력표준(NSC)을 보완, 활용하여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운용의 주체는 지자체와 지역의 민간기업이 된다.

6. 단기적인 경쟁력 향상보다는 미래의 지속적인 경쟁력 향상을 위해 당장의 비용을 감당한다.

7. 직업교육 과정에서 조직시민행동을 함양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 개발에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사회에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소통하고, 경청하는 태도와 갈등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를 갖추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시민행동을 중요시하는 의식변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런 것들이 직업교육 커리큘럼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직업교육제도를 통해 청년실업이 실질적으로 해소되고,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능 및 사무인력이 양성되어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노와 사가 모두 만족하는, 그래서 종국에는 우리사회에 새로운 노사관계가 형성되는 일대 전기가 직업교육제도의 혁신을 통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화, 2017/07/2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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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인사기능을 전문화하기 위해 인사수석 또는 인사보좌관 신설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민정수석실이 고위직 인사를 담당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002년 12월,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열린 ‘차기 정부 인사정책의 비전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연세대 김판석 교수는 이렇게 제안했다.

김 교수의 바람대로 노무현 정부는 역대 처음으로 청와대에 인사보좌관을 신설했고 이후 인사수석실로 확대 개편한다. 인사에서 인사수석실이 추천을, 민정수석실이 검증을 맡는 체제가 확립됐고, 두 조직은 인사에 있어 일종의 상호보완·긴장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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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취임사를 하는 김판석 신임 인사혁신처장

청와대 인사수석실 아이디어 제안

김 교수가 제안한 것은 인사수석 신설뿐만이 아니었다.

“장관의 정책보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장관을 보좌할 고위직 관료를 일부 임명할 수 있는 제도와 관행이 필요하다. 빈번한 장관 교체는 정책 일관성과 전문성·책임성을 훼손할 수 있으니 인사청문회를 거친 국무위원은 임기를 2년 정도 보장한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 연말을 즈음해 인사수석실 인사제도비서관으로 발탁됐고, 이 제안들은 대부분 현실화됐다.

어찌 보면 이날 이미 노무현 정부의 인사정책 큰 그림이 모두 드러났던 셈이다. 장관 정책보좌관이 신설됐고,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조각을 발표하면서 “장관 임기는 2년 내지 2년 반 보장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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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참여정부 인사시스템 개혁 로드맵 정책조정관회의(왼쪽). 참여정부는 최초로 인사수석실을 신설해 고위직 추천은 인사수석실이, 그에 대한 검증은 민정수석실이 맡도록 함으로써 인사과정에서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했다. 이 시스템은 이명박정부에서 사라졌다가 박근혜정부에서 다시 부활했고, 문재인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자료 출처: 박남춘 의원)

물론 노무현 정부의 인사가 100% 만족스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취임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장관 9명이 교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시스템적으로 여러 여건을 구축은 것은 사실이다. 기업·언론사·학교 등에서 7만5000여 명의 인물 정보를 모은 뒤 그 중에서 장·차관, 정무직 인사를 할 수 있는 인사를 추려 1500명 정도의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등 체계성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이명박 정부는 인사수석과 중앙인사위원회를 폐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노무현 정부로의 회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시 조직 얼개가 비슷해졌다.

인사수석이 부활했고 안전행정부로 흡수됐던 인사 기능이 인사혁신처로 독립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의 효용성만은 인정받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새 정부의 인사혁신처장으로 김판석 교수가 다시 등판했다.

김 교수는 과거 칼럼에서 “인사가 중요하다고 인식하면 그에 상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운영의 합리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우리는 인사가 만사라는 말만 되풀이하지 않았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 인사혁신처장으로서 그가 또 어떤 시스템을 문재인 정부에 새로 이식할 것인지 궁금하다.

인사행정 분야 권위자

김판석 교수는 1956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동아고와 중앙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플로리다국제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아메리칸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행정학자다.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행정학회인 세계행정학회의 회장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당선됐다.

2012년에는 인사행정학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미국 최대의 행정학 학술단체인 미국행정학회가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았다. 역시 아시아인으로는 첫 수상이었다.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 후’ 2010년 판에 이어 2011년 판에도 연속 등재됐다.

2015년 인사혁신처 산하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출강하는 외부강사 700여 명 중 ‘2015 베스트 강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 동아일보와 한국연구재단이 분석한 인문사회분야 연구능력 분석에서도 행정학자 중 영향력 5위를 차지했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 장오현 동국대 교수 등과 함께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안민정책포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현실 참여적 지식인들이 모여 사회 현안에 대해 비판과 함께 구체적 대안까지 내놓는 모임이다.

연세대 빈곤문제국제개발연구원 원장을 지내면서 세계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김 처장은 인사행정에 정통한 학자로서 공직인사제도 발전에 기여해왔으며 이론과 식견은 물론 풍부한 실무경험을 겸비한 인사행정 전문가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김 교수를 신임 인사혁신처장에 임명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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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참 나쁜 사람’으로 찍혀 쫓겨났던 전 문체부 체육국장은 이번 문재인정부에서 문체부 2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oQAxOfVOvU4)

김판석 교수는 인사혁신처장에 취임하면서 “공직자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으려면 인사부터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당한 인사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활성화해 능력과 전문성에 기초한 인사를 실현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무래도 전임 정부가 공직자 역시 말을 듣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며 ‘솎아내기’식으로 인사를 처리한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김 신임 처장은 인사혁신처가 ‘모범고용주’로서 역할을 해 나가자며 “여성, 장애인, 이공계 출신 등 정부 내 소수자들이 차별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균형인사를 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고용형태 차이로 인한 불합리한 차별이 없어야 하며, 특히 “일·가정 양립과 건강과 휴식이 있는 근로문화 조성을 위해 공직사회가 앞장서나가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 인사시스템 손볼 듯…행정고시 사라질까?

비슷한 조직이라 해도, 차관급의 인사혁신처장은 고위직 인사까지 담당했던 노무현 정부의 장관급 중앙인사위원장과는 위상에서 차이가 있다.

김 신임 처장의 초점은 우선 문재인 정부의 고위·정무직 인사 시스템의 개선보다는 공무원 선발, 양성, 보직관리, 복리후생, 조직문화 등의 개혁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취임사에서도 그는 “공무원 선발, 양성, 보직관리 등 인사정책 전반에 걸친 혁신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공직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중에서도 큰 관심사는 공무원 채용 방식의 변화다. 벌써부터 행정고시가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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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치러진 국가공무원9급 면접시험장을 찾은 김판석 인사혁신처장이 시험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출처: 인사혁신처)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5급 공채 시험인 행정 고시를 없애고 7급 공채시험과 합치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더미래연구소는 공무원이 일정 직급에 오르면 ‘승진 경로’와 ‘비승진 경로’를 택할 수 있게 하도록 하자는 안도 내놨다. 당론은 아니었지만 “문재인 후보가 행정고시를 폐지하는 공약을 내세웠다”는 루머가 돌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김 처장 역시 그동안 필기시험 위주의 공채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왔다.

또 개방형 직위제도와 계약직의 확대가 필요하며 “민·관과 학계, 지방정부 등 모든 부문에서 인력 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일종의 암기력테스트인 고시를 통해 공무원을 채용하다보니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필기시험 중심으로 고위 공무원을 뽑는 관례는 한국 등 아시아의 일부 유교권 국가에만 나타난다. 세계적 추세를 볼 때 고시를 개혁할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과거 논문에서 행정고시 혁신의 세 가지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다.

행정고시 시험 과목이나 채점 방법을 조정하는 ‘소폭 개선’, 현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병행하는 ‘중폭 개선’, 기존 채용 방식을 자격시험으로 바꾸거나 대학원을 설립해 완전히 전환하는 ‘대폭 개선’ 등이다.

이런 그의 성향으로 볼 때 당장 전면적 개편은 아니더라도 공무원 채용 방식에 어떤 변화를 주문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공무원 성과연봉제 개편도 관심사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와 성과평가제를 즉각 폐지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당장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은 김 처장 취임 직후 ‘공직사회 성과주의’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김 신임 처장은 과거 김대중 정부가 도입했던 성과연봉제 및 성과상여금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현재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관심사다.

김 신임 처장은 범정부적 저출산 극복 대책에 발맞춰 배우자 출산 휴가를 현재 5일에서 10일로 늘리고 배우자(아빠) 출산 휴가를 5일에서 10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도 밝혔다.

육아휴직 수당을 첫 3개월의 경우 8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협의 중에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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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석 신임 인사혁신처장이 공무원 노조 등이 반대하는 성과연봉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주요 관심사이다. (사진 출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 처장의 또 다른 관심사는 4차 산업혁명과 행정 분야의 접목이다. 김 처장이 홍길표 백석대 교수와 함께 만든 신조어가 바로 ‘휴로젠트(Hurogent; Humanized Robotic Agent)’다. 기술과 행정의 융합체로서 인간의 행정행위를 대행하는 지능화된 로봇을 뜻한다.

그는 “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한 로봇(행정서비스 대행 프로그램)기술이 발전해가면, 인간의 간섭 없이도 자율적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행정을 수행하거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취임사에서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공직사회의 역량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차츰 로봇이나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분야가 늘어나게 되면 ‘사람’인 공무원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의 탕평책 실현될까

“선거 후 논공행상에 눈이 멀면 인사는 파행을 겪게 되고 국민의 비판과 불만은 증폭된다. 사회의 복잡다단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단일 코드로는 곤란하니 인수위 기간 중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을 널리 구해 코드 인사 비판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 처장은 과거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희망제작소 주최로 열린 ‘대통령직 인수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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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대탕평인사를 약속했지만, 정권이 힘이 빠지는 후반기에는 모두 측근인사를 중용했다. 또한 잘못된 인사로 정권 차원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사진출처: 조선일보)

대통령 인사의 특징을 세 단계로 나누기도 했다.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사를 찾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선호하는 정권 초기(1단계), 외부 전문가들의 정부 경험 부족으로 불안감이 야기되고, 논공행상에서 제외된 이들의 불만이 제기돼 보은인사가 확대되는 후반기(2단계), 집권세력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증폭되며 자연스레 관료들의 발언력이 높아지고 그들에게 인사까지 포획되는 정권 말기(3단계)다.

문재인 정부는 김 처장의 단계 구분에 따르면 이제 1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2~3단계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김 처장은 당시 언론 기고에서 “전임 대통령들도 인사가 만사(萬事)가 되도록 하겠다고 취임 초기에 한결 같이 약속한 바 있지만, 불행하게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며 이렇게 주문했다.

비선 조직에 의존하지 말 것, 자기 사람과 아는 사람 위주에서 벗어나 널리 인재를 구할 것, 실적과 전문성을 우선시할 것.

쉬운 말이고, 지당한 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변할수록 지켜지기 어려운 원칙들일 것이다. 김 처장의 인사혁신처장 취임이 문재인 정부의 인사를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나침반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목, 2017/07/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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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6.19대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있다.(서울 아파트값 ‘질주’…3주 연속 오름폭 확대) 애초 6.19대책이 시장의 예측 수준에 머문 탓이 크다.

지금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이명박 정부 전 기간과 박근혜 정부 중반까지도 오르지 않던 서울의 집값이 왜 오르는가이다.

 

투기때문인가, 수요증가때문인가

집값이 오르는 이유를 크게 구분하자면 투기적 가수요와 실수요 때문이다.

투기적 가수요는 실제로 주택수급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보유세(보유세가 낮으면 주택 등 부동산 보유에 따른 부담이 현저히 줄어들고, 수익률도 훨씬 높아진다), 낮은 금리(금리가 낮으면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이 줄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데 주저함이 줄어든다), 약한 대출 관리(담보인정비율이나 부채상환비율을 느슨하게 가져가면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등이 조합 될 때 발생한다. 
 
실수요는 경제학의 제일 원칙이라 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수요(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들어가서 살 집이라는 의미에서의 수요)에 비해 주택 공급이 부족할 때 주택가격은 우상향하는데 이때의 주택가격 상승은 실수요에 의한 것이다.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와 실수요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이 투기적 가수요인지 실수요인지에 따라 정부가 사용하는 정책수단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투기적 가수요로 인해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라면 정부는 보유세를 높이고, 대출 관리를 강하게 해야 한다. 단 금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

반면 실수요에 의해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라면 정부는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시장에 공급하는데 집중해야 옳다. 

투기적 가수요가 집값 올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울의 주택가격 상승은 투기적 가수요 때문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서울은 인구가 줄고 있고(2003년 10,174,086명에서 2016년 9,930,616명으로 감소), 가구수는 늘었지만 대부분이 1인 가구라 주택시장에서는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져 유효수요로 보기 어려우며,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늘었지만(2005년 93.7%에서 2014년 97.9%로 증가), 주택소유율은 오히여 뒷걸음질쳤다(2006년 44.6%에서 2014년 40.2%로 감소).

이런 통계들은 주택을 투기목적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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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대표하는 ‘초이노믹스’는 한마디로 “빚내서 집 사라”는 것이었다. 부동산대책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활용한 이 정책은 가계부채만 늘린 최악의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이미지 출처: http://m.hyundaenews.com/27470#05G1)

 
게다가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2008년 311조 1,584억원에서 2016년 545조 8,396원으로 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 시기는 이명박근혜 시기인데 당시 정부는 빚내서 집 살 것을 강권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빚 내서 집을 사는 것과 빚 내서 전세금을 마련할 것 가운데 택일 하라고 시민들을 윽박질렀다. 보유세는 이명박 정부가 완전히 형해화시켰고, 금리는 바닥을 긴다.
 
형해화 된 보유세, 낮은 금리, 쉬운 대출, 부동산 구입을 위한 가계대출의 폭증, 인구 감소, 늘어난 주택공급, 주택소유자의 감소 등은 투기적 가수요가 서울 시내의 주택가격을 밀어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값 상승에 올인한 이명박 정부와 그런 이명박 정부조차 주저한 쉬운 대출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보유세 현실화, 유동성 관리 등 정책조합 필요

사정이 이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취할 정책수단은 자명하다. 

주택 소유 실태를 상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해( 특히 근래 서울시 소재 주택 매매 실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서울시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의 다주택 소유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 주택 소유 편중도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고, 보유세 현실화(보유세는 조세정의 확보라는 차원과 함께 자본화 효과로 인해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를 천명해야 한다.

또한 대출 관리도 한결 강화(대출관리는 과잉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어 투기의 실탄이 되는 걸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한다)시켜야 한다. 보유세 현실화 + 엄격한 대출 관리 + 주택 소유 현황 공개, 이 삼종 세트가 구비되어야 투기적 가수요 억제가 가능하다.

투기적 가수요을 억제해야 서울의 아파트 가격 상승세를 진정시킬 수 있다. 

혹여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의 폭등만 막으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하루 속히 그런 생각을 거두라고 권고하고 싶다. 시장은 항상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으며, 과한 수준만 아니라면 부동산 불로소득을 용인하겠다는 것은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월, 2017/07/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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