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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호 장치를 제거하는 규제프리존법 졸속 합의 통과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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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호 장치를 제거하는 규제프리존법 졸속 합의 통과 중단하라.

익명 (미확인) | 금, 2018/08/24- 11:28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호를 포기하는 ‘박근혜정신’ 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인가?

- 규제프리존법, 서비스발전법, 개인정보개악법 등 여야졸속합의 규탄한다.

- 박근혜최순실법을 졸속 합의해준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했던 대표적 의료영리화, 규제완화법안들이 이 달 30일 일제히 통과될 위기에 놓였다. 여야는 규제프리존법 등 규제완화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개인정보보호법 개악안을 8월 30일 통과시키겠다고 나섰고 청와대는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냈다. 박근혜가 감옥에 간 이유이자 범죄의 온상인 법안들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졸속합의해 국회 통과까지를 약속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정부와 여당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관련 법안에 대한 졸속합의를 폐기하고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정책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1. 규제프리존법 등 규제완화 법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여야가 산자위에서 병합 심의하기로 한 규제특구법들은 그 내용상 거의 차이가 없는 전면 규제완화 법이다. 다른 관련법보다 우선하고, 관련법에서 명시된 내용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가티브 규제법이며 신기술이나 신제품의 경우 우선 허용하고 부작용 등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 규제하겠다 내용이다.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자사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자의적 판단을 해도, 신기술이면 안전성검증이 안되어도 일단 시장에 진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도 병합심의되는 관련법 공통이다. 국민 안전 포기이고, 국민 대상 임상시험‧생체시험 허용이나 다름없다. 기업이 유해성을 은폐해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사망자가 1300여명, 피해자 수백만 명에 달한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안전성 문제를 온전히 기업에게 맡기고 사후에 평가하겠다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이 법들은 또한 의료민영화법이다. 규제프리존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시도에서 지역전략산업 육성계획을 만들어 기재부에 신청하기만 하면 지정될 수 있다. 이는 지역특구법도 마찬가지이며, 그 영역은 의료, 관광, 제조업 등 제한이 없다. 과거 규제프리존 지역전략산업으로 강원도에 스마트헬스케어(원격의료), 대전에 유전자의약품, 대구에 웰니스산업이 선정되어 발표된 바 있다. 최근 울산시는 언론을 통해 ‘지역특구법이 통과 후 3D프린터로 의료기기를 만들면 허가절차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시는 규제프리존 지역에 포함시켜달라며 ‘의료와 바이오의약품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요구하고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그 내용에 병원 부대사업을 조례로 정해 무한정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병원에 의약품, 의료기기 판매업까지 허용된다면 병원의 과잉진료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고 시민들의 의료비 폭등만이 아니라 건강을 위협하는 일까지 발생할 것이다. 수영장, 헬스장, 여행사를 넘어 부대사업이 더욱 확장되면 병원은 복합 쇼핑몰이 되고 말 것이다.메르스같은 감염병 확산을 막을 길이 없어진다. 규제프리존법은 전국 병원을 영리화하고 감염병의 온상으로 만들 메르스법이다.

이 외에도 미허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특례, 국유재산 매각 허용으로 국공립 병원 민영화의 발판을 만들어주는 조항도 문제가 크다.

민주당은 ‘우선 허용, 사후규제’를 최대 4년만 허용하고, 국민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규정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 4년이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광범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기간이고, 생명과 안전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야가 함께 합의한 ‘산업융합촉진법’과 ‘정보통신 융합법’ 개정안은 이런 ‘우선허용, 사후규제’라는 규제프리존 원칙을 전국에 도입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7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의 경우 제품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을 사실상 생략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법은 이 위험천만한 정책기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사용, 사후 규제’ 원칙이 의료에 적용되면 환자 생명‧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료기기 뿐 아니라 어떤 제품이든 제대로 된 안전·효과 평가기준을 거쳐야 한다.

 

2.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와 사회공공서비스 전체를 민영화하는 법이다.

서비스법은 농림어업과 제조업만 제외하고 의료를 포함한 모든 사회공공서비스를 대상으로 민영화하기 위한 법이다.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인 기재부장관이 의료, 교육, 철도, 가스, 전기, 개인정보 등 공공재에 대한 각 부처 소관의 정책과 법령의 개폐 권한을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한다. 의료법 등 관련 법률을 무력화하며 영리화와 규제완화를 일괄 처리하길 원했던 박근혜 정부가 목을 매왔던 법이다. 2011년 이명박정부 시절 처음 등장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도 통과되지 못했던 대표적인 민영화 법안이기도 하다.

22일 더불어민주당은 보건의료를 제외하는 서비스법 대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는 보건의료 분야 뿐 아니라 사회공공성 전체를 침해해 시민들의 안전과 복지를 침해하고 기업 돈벌이만을 손쉽게 할 이 법에 원칙적으로 반대해왔다. 건강은 보건의료제도 뿐 아니라 노동조건, 교육, 주거, 환경 등 사회적 결정요인이 중요하고, 사회 공공성이 무너진 나라에서 건강권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보건의료 제외’가 아닌 서비스법의 전면 폐기를 요구한다.

 

3. 개인 건강정보를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유출하려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악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지난 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민의 상병내역, 진료내역, 처방내역이 모두 포함된 데이터셋 누적 1억명분에 해당하는 자료를 국민의 동의 없이 민간보험사 13곳에 건당 30만원을 받고 팔아 넘긴 사건은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이런 황당한 일은 박근혜 정부가 만든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법률이 아닌 가이드라인으로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팔아넘긴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개인건강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해 쉽게 개인이 식별될 수 있는 특수성이 있는 정보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악 내용은 박근혜가 행정독재로 시행한 ‘개인정보 비식별 가이드라인’에 제대로 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인정보 규제완화는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임상시험 비용을 절감하거나 보험료 지급률을 줄이려는 기업 요구를 법적으로 승인해주는 것이다. 다국적제약사는 3상 임상시험에 드는 비용절감과 엄격한 심사 그리고 그 시간을 단축해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 혈안이 돼 있다. 민간보험사는 가입자 개인의 건강과 질병정보를 더 많이 가질수록 보험료 지급범위를 줄이고, 위험을 최소화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전국민 주민등록번호가 해외에서는 누구나 사용하는 공공재가 되어 있는 웃지못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기는커녕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인권을 팔아먹는 행위다. 개인의 건강과 질병정보 유출은 그 피해가 개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 그리고 그 피해가 해결되지도 못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개인 건강정보 규제완화는 원격의료를 위한 선행조건이기도 하다. 이는 IT기업과 대형병원들이 눈독을 들이는 건강관리서비스 산업화를 위한 선행조건이기도 하다.

 

이 법안들의 처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에게 약속한 자신의 공약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규제프리존법을 지지하는 안철수 후보에게 “규제프리존법은 의료, 환경, 교육 등 공공규제를 풀어서 시민의 생명 안전,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다” 며 “안철수 후보는 이명박-박근혜정권 계승자”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는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선한 원격의료’라는 말도 안되는 표현까지 써가며 원격의료 허용 방침으로 나아가고 있고, 의료기기 허가심사 규제완화를 대폭 하겠다고 발표 했다. 우리는 이런 전면적 의료영리화 방향을 보며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정권 교체 1년 2개월 만에 말이다.

그 어떤 정부든 의료영리화로 국민들의 삶을 공격한다면, 또다시 촛불의 분노가 정권을 향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

 

2018년 8월 24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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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11/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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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경제위기 20년과 행복한 삶

 

 

이주하 |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지난 10월 13~14일 양일간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제7회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국사회정책학회,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한국사회보장학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등 사회복지정책과 관련된 여러 학회 및 연구기관들이 모여서 함께 소통하는 장인 연합학술대회의 올해 주제는 바로 “IMF 경제위기 20년, 한국 사회의 격차해소 전략과 정책”이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미증유의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IMF 경제위기를 겪은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그 당시 출생한 아이들이 벌써 대학의 새내기가 된 것이다. IMF 경제위기가 초래한 가장 큰 문제점은 (학회 주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신자유주의의 적극적 도입으로 인한 불평등과 불안정성의 심화라 할 수 있다. 즉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1996년 12.9%였던 자살률(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1998년 18.4%로 급증하였고, 이후 일시적으로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을 겪으면서 23.7%(2004년)로 다시 급등하였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1.2%(2010년)까지 치솟은 자살률은 2015년 24.6%로 다소 낮아졌으나 OECD 국가 평균은 12명으로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라는 불명예를 짊어지고 있는데, 노인자살률은 압도적으로 높고 청소년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 

 

사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자살률 뿐 아니라 노인빈곤율, 저임금노동자비율, 임시직노동자비율, 성별임금격차, 노동시간, 저출산율, 사교육비, 산재사망률 등의 지표에서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인의 삶은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발표한 다양한 행복지수의 국제비교를 살펴보면 한국은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일례로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조사한 ‘2015 세계의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평균 71점보다 한참 낮은 하위권(59점)으로 조사대상 143개 국가 중 118번째에 그쳤고, 유엔 산하자문기구인 ‘지속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가 발표한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10점 만점에 총 5.984점으로 158개 국가 중 47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OECD의 ‘2015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OECD 평균 6.58점보다 낮았으며,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를 차지하였다. 

 

흔히들 행복 혹은 삶의 질을 측정하고 평가할 때에는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삶의 질 내지는 만족도에 초점을 두는 방식과 개인이 처한 ‘객관적’ 조건과 자원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 행복을 주관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하버드대의 긍정심리학자 탈 벤-샤하르가 지적하였듯이 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행복을 손에 넣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탈 벤-샤하르 교수의 ‘행복’ 강의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예일대 셜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과 함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3대 명강의로 꼽히는데, 그는 일상에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4가지 요소로 관계맺기(socializing), 베풀기(giving), 집중하기(focusing), 극복하기(coping)를 제시하였다. 한편, 행복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도를 측정한 지표가 객관적인 삶의 질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부탄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매우 높은 국가에 속한다. 어찌 보면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받는 소득에 좌우되는 빈곤도 결국 한 사회가 감내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수준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주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나이 든 노숙자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은 뉴스가 못 되는데, 주가가 2포인트 빠진 것은 어떻게 주요 뉴스가 될 수 있는가?”라고 던진 질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주지하듯이 객관적인 측면에서 행복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는 소득을 들 수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세 차례의 경제적 위기 상황이 자살률 증가에 미친 영향이나 OECD 평균의 4~5배에 달하는 한국의 높은 노인자살률은 상당부분 OECD 1위의 노인빈곤율에 기인하고 있다는 연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 이후에는 비록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행복의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이스털린 역설(The Easterlin Paradox)’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주관적 행복에 있어서 소득을 중시하는 욕구이론(needs theory)과 만족점(satiation point)을 통해 행복의 상대성을 강조하는 이론 사이의 유명한 논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서 만족점을 인정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만족점과 최저생계비, 국민최저선, 기본소득 등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현금급여 보다는 개별적 욕구에 기초한 서비스가 만족점을 수월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생각해보야야 한다.

 

이스털린의 주장과 다른 맥락에서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인 UC 버클리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소득이 많고 소비를 더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는 세계적 권위의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던 배 안에서 빌 클린턴과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클린턴 행정부 첫 번째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하였고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돌아오면 아무리 늦더라도 아빠가 집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 깨워달라는 막내아들과의 선문답과 같은 대화 이후 깨달음을 느끼고 장관직을 사임하였다(<타임>은 그를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10대 장관으로 지명하였다!). 라이시가 주목한 것은 신경제가 주는 여러 혜택은 한층 더 필사적인 삶, 직업 불안정성,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라는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시키고 있으며, 더 풍요로워진 세상이 결코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인터넷이나 대형마트에서 싼 물건을 ‘득템’하거나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오르면 기뻐하게 된다. 그런데 대형마트가 싸게 팔기 위해선 물품공급자에게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며, 자원의 남획과 이에 따른 환경파괴를 감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우리나라의 현실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네이버 웹툰 <송곳>과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라!). 결국 소비자 본인과 주변인, 그리고 소비자의 존립기반인 공동체 전체는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조치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주가를 올리는 대표적인 방안이 대량해고와 인수합병인 상황에서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는 언제든지 대량해고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결국 라이시에 따르면 오늘날 ‘슈퍼자본주의’ 체제 하 권력이 ‘시민’의 손에서 ‘소비자’와 ‘투자자’ 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를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라이시의 주장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전후 서구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요체인 것이다.

 

행복 혹은 삶의 질에 대한 국제비교를 살펴보면 역시 복지선진국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호연관성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저자 토머스 게이건이 언급한 소위 ‘복지와 연애의 상관관계’이다. 즉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에선 남녀가 상대방의 직장, 재력, 사회적 지위 보다는 매력, 개성, 인품을 보고 사귈 수 있기 때문에 연애성공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의 가장 근원적인 영역인 사랑에 있어서도 복지국가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수, 2017/11/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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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를 복수정당제의 허용 여부로 구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해 당사자들에게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 역시 민주주의의 기초 요건이다. 입법부가 아닌 대통령의 포고령이나 행정명령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집행된다면 그 체제를 권위주의라고 하지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경쟁하는 정당과 자율적 결사체, 의회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요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기능을 최소화하는 대신 민간 자율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의 반정치 담론만큼이나, 정당과 의회 및 이해당사자들의 역할을 냉소하면서 일반 시민이 직접 개헌하고 입법하고 정책을 만들고 부적격 공직자도 쫓아내도록 하자는 직접민주주의론 역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촛불 집회를 직접민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직접민주주의 체제라면 촛불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물론 합법적으로 뽑힌 정부에 대해 비판과 반대를 조직할 자유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 기본권이다. 공론 조사로 대표되는 숙의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참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대의민주주의 프로젝트의 하나다.

숙의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직접민주주의로 보는 것을 “난센스”라고 일축한다. 참여자들의 숙의 능력이 그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다소 엘리트 편향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숙의민주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을 직접민주주의로 보는 것도 잘못이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국민투표식 민주주의(plebiscitary democracy) 혹은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으로 부른다.

최근의 사례는 유럽의 극우 정당들인데, 이번 독일 총선에서 제3당으로 올라선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내건 슬로건, ‘스위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이 대표적이다. 대의민주주의를 간접민주주의라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간접민주주의는 정치 이론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일종의 통속어다. 이 말이 대대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2월 15일에 실시된 유신헌법 국민투표 때였다. 당시 야당과 재야 세력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확대되자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 찬반을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헌법학자들을 동원해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는 이상한 유형론을 펼치게 했다.

과거든 현재든 직접민주주의론자들이 확고하게 추구했던 이상은 공적 사안을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이었다. 9일에 한 번씩 민회를 개최했던 고대 아테네가 대표적이다. 시민 총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과 조직, 결사는 인정되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의 경우 민회 밖에서의 그 어떤 집단 행위도 허용되지 않았다. 장자크 루소를 추종했던 프랑스혁명의 주도 세력들 역시 시민의 전체 의지를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정당은 물론 이익 단체의 결사를 법으로 막았다.

시민 총회에서 결정된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들 역시 독립된 행정 조직을 만들 수 없었다. 관료제는 없었으며 시민이 번갈아 행정관·평의원·배심원 역할을 맡았다. 아테네에서는 추첨으로 그 역할을 수행할 시민을 뽑았다. 선거로 동료 시민의 지지를 동원해 대표가 되는 것 역시 권력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같은 공직을 두 번 할 수 없었고, 임기는 1년 이하로 짧았다. 사회 규모의 확대는 최대한 억제되었다. 규모의 증가는 기능 분화와 전문화를 낳고, 그것은 곧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의무였다. 아테네의 경우 참여가 법으로 강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비난받았다. ‘바보 멍청이’란 뜻의 영어 ‘idiot’는 고대 그리스어 ‘idi ̄ot ̄es’에서 유래한 말로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는 시민을 가리켰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제도와 원리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해당 시기의 역사적 제약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현실적 최선을 추구한 실험인 것은 맞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이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때가 많다. 지금은 지금의 조건에 맞는 민주주의 발전론이 필요하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1024/86916628/1#csidxcfc3fd8be35f8ff9b8c185d8e2eba2a

화, 2017/10/2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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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외교안보 위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기대가 높았던 7월11일. 문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이 있다고. 그건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고백이었다. 취임 두 달 만의 무력감 토로라니.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과장법이려니 했다. 난제에 직면한 지도자가 한 번쯤 할 수 있는 푸념일 거라고 넘겼다.

[이대근 칼럼]문재인의 힘

두 달이 흘렀다. 한반도 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은 더욱 존재감을 잃어갔다. 트럼프 추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펴졌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번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은 모욕을 참고 가랑이 밑을 긴 한신을 문 대통령과 동일시했다. 며칠 뒤인 9월22일 문 대통령이 김 의원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금처럼 잔뜩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섣불리 다른 해법을 모색하기도 어렵죠.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추종은 이제 가설이 아닌, 입증된 사실로 확정됐다.

이때만 해도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정부가 한신처럼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뭔가 도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은 충분히 그럴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인구, 산업능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로 보나 기업혁신, 문화, 정부, 교육과 같은 소프트 파워로 보나 명실상부한 중견국이다. OECD 가입국이자 여러 국가의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주변 강국으로 인해 중견국에 걸맞은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한 세대 전, 한 세기 전과 같이 주변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했던 약소국은 더 이상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이 굴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처지를 새삼 부각하지만 381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취임 5개월째인 10월10일 문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과 미련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세 번째다. 우리는 그가 세 번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푸념도 과장도 아니다. 역전의 순간을 위해 일부러 힘을 감추려는 전략도 아니다. 그의 정직한 안보인식이자 정부 능력에 대한 자가 진단의 결과다. 또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곧 다른 경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고 가슴 한쪽에 품고 있는 낙관론을 접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무기력증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최후의 생존게임을 하고 있다. 자원을 최대로 동원해야 하고 무얼 하든 결사적이어야 한다. 남한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의 무릎을 꿇리려 한다. 게다가 남의 말 잘 안 듣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런 북·미 대결 상태도 한국이 손 놓고 물러선 상황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 반대다. 한국이 더 많은 힘을 쏟고, 다른 방법을 찾고,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내놓은 해결책은 이런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이 도발을 스스로 중단하면 그때 근본적 해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기다리면 위기는 누가 해소하나? 문 대통령도, 트럼프도 아니라면, 김정은밖에 없다.

한국의 안보와 미래가 달린 일이다. 북한과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면 한국은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가? 미국에선 요즘 대안 논의가 활발하다. 트럼프의 외교 멘토 키신저는 주한미군 철수 대가로 중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는 안을 백악관·국무부에 제시했다고 한다. 백악관 실세였던 스티브 배넌은 미군철수와 북핵동결 구상을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한·미연합훈련 축소 한마디 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주한미군 철수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건 한국인이 말할 수 없는 말이다. 미국은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상을 마음껏 논하는데 한국인은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누가 좀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정은도 세계를 흔들었다. ‘당당한 외교’를 하겠다던 문 대통령은 왜 흔들리고 있나? 문 대통령은 광야에 홀로 선 존재가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이끄는 강력한 통치자,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민주사회의 지도자다. 트럼프·김정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을 믿고 싶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운명, 우리 손으로 개척할 수 있다. 문재인은 힘이 있다. 그 힘을 보고 싶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172115025&code=990100#csidx60c975ee78b420e8a028e2384f106b3

목, 2017/10/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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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일부터 28일까지 내가 속해 있는 정치발전소의 ‘독일 민주주의 기행 프로그램’으로 독일을 방문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9월 24일 치러진 독일 총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계기와 맞물려 있던 탓에 독일 정치의 소용돌이를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로 언론에 의존해 다른 나라의 정치에 관한 정보와 해석을 접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해외토픽 수준의 단편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그 나라 정치의 움직임이나 정당, 정치인, 노동조합 등 주요 정치행위자들의 실질적인 고민을 알기는 어렵다.
물론 현장에 있었다고는 하나, 일주일여의 짧은 기간 동안 독일의 정치를 지켜본 경험과 느낌으로 독일 정치 일반을 말하는 것은 눈감고 코끼리 가죽의 어떤 언저리를 만지는 일처럼 한계가 크다. 다만, 이번 방문이 총선 전후의 긴박한 기간 동안 이루어졌음에도 다행히 주요 정당 및 독일 노총(DGB)과 금속노조(IG Metall) 등의 주요 관계자, 독일 정치 분석가 등을 인터뷰하고 독일 정치에 대한 그들의 고민과 전망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은 성과였다. 또 총선과 관련된 몇몇 정당의 선거행사에도 직접 참석해 현장의 분위기를 날것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이지만 독일 민주주의라는 외부의 창을 통해, 익숙하기 때문에 둔감해지기 마련인 한국 정치의 몇몇 문제를 객관적 거리감을 갖고 낯설게 조망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이 준 가장 큰 소득이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연재될 이 글은 독일 정치에 대한 어떤 분석을 위한 글이 아니다. 독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바라보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지점을 필자의 시각에 따라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선거”  
우리에게는 총선하면 떠오르는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우리의 선거는 이렇다. 요란한 유세차와 율동패들, 하루 종일 지속되는 선거운동원들의 구호와 인사, 쏟아지는 명함과 선거 공보물, 언론에 나기 위해 쥐어짜듯 연출된 행보에 주력하는 정치인….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거리에서 밟히는 것은 전부 선거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한 과잉된 전쟁을 치룬다. 공통점은 이 모든 행위가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사실 이런 일에 우리는 별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대체로 이런 것은 ‘선거니까 당연한 일’로 수용되었고 이제 관성화 되어 있다. 선거운동원 숫자부터 선거운동 방법 등 선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관료적 통제 대상으로 삼아 정치활동 자유를 크게 옥죄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 선거와 정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선거는 어떨까. 약간의 설렘과 호기심을 안고 독일 총선일을 나흘 앞둔 지난 9월 20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베를린의 주요 거리를 둘러보며 느낀 것은 “독일이 지금 선거 중인가”하는 의아함이었다. 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하고 차분했다. 거리 어느 곳에서도 소란스런 가두 캠페인이나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는 선거운동원을 만날 수 없었다. 유세차도, 길거리에 뿌려진 명함이나 홍보물도 없었다. TV에서도 정치인이 연예인처럼 분해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현란한 미디어 선거의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방인에게 독일이 선거 중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곤 거리 곳곳에 부착된 선거 포스터(Wahlplakat) 정도였다. 이마저도 거리를 오가는 베를린 시민들의 눈길을 붙잡는 것 같지 않았다.

▲ 베를린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선거용 포스터 ⓒ(사)정치발전소

선거일을 하루 이틀 남기고 베를린 시내에서 진행된 몇몇 정당 집회(우리는 마틴 슐츠 사민당 총리 후보가 참석하는 사민당 집회와 좌파당의 집회를 참관했다)도 우리의 광화문 선거 유세처럼 선거 막판 세과시를 목적으로 대규모로 동원된 집회는 아니었다. 총리 후보가 직접 참석한 집회조차 많이 잡아도 500명 미만의 사람들이 참석한 규모로, 장황하지 않고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굉장한 이벤트나 대중적인 명망가, 스타들을 불러 올려 막연하게 시민들을 불러모으는 것이 아니라, 당원과 지지자들이 스스로의 확신을 공유하고 표현하는 성격이 커 보였다.

▲ 9월 22일 베를린 도심에서 열린 사민당 총리 후보 마틴 슐츠 유세 ⓒ(사)정치발전소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가 한국에서 들었던 대로 이번 독일 선거가 “쟁점 없는 맥 빠진 선거”라거나 메르켈의 기민당 승리가 예견되는 “뻔한 선거”의 탓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한 독일교포는 ‘자신이 경험해 온 독일 선거는 늘 이렇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사람들은 정치를 매우 중요하고, 진지하게 받아드린다”며 “직업‧계층‧연령‧취미 등 다양한 필요에 따른 풍부한 시민 결사체들이 있고, 지역의 작은 커뮤니티까지 잘 정비된 정당조직과 당원들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활동과 대화는 일상적이며 참여 역시 조직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같은 보여주기식 선거운동은 여기서는 매우 우스꽝스런 일”이라고 했다. 일상 속에서 접하는 정당과 정치, 그리고 선거와 선거 사이에 정당이 보여준 활동에 대한 집합적 평가들을 통해 자신들의 선호를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이익 있는 곳에 결사 있고, 결사 있는 곳에 참여 있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다원주의적 원리가 독일 사회 전반에 잘 뿌리 내려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정치적 진지함은 각 정당이 선거공약(Regierungsprogramm)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민/기사연합은 기민련과 기사련의 정치 협약의 형태로 선거 강령을 제시했으며, 사민당은 당대회(Parteitag)라는 당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선거 강령을 확정했다.(주1)
선거공약이 선거를 앞두고 캠프 주변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원들과 당 주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조직적인 협상, 토론, 동의과정을 통해 확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일이 임박해 구도를 흔들어 보기 위해 캠프가 없던 공약을 급조하는 일은 독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 메르켈 총리(CDU 대표)와 제호퍼 CSU 대표가 회담을 마친 후, 기민/기사연합의 선거강령 “Wohlstand und Sicherheit für alle(모두를 위한 번영과 안보)”을 발표하고 있다.(2017.7.3.) ⓒ CDU(www.cdu.de)

선거운동 역시 정당의 조직력에 기초해 기초 지역 단위부터 꾸준하고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민/기사연합의 청년조직인 JU(JUNGEN UNION, JU는 유럽최대의 청년 정치조직이다)의 관계자는 이번 총선을 맞아 지난 8개월간 독일 전역에서 100만 호에 달하는 가구별 방문을 통해 선거운동 활동을 지원해왔다고 밝혔다. 그들은 누적된 호별 방문을 토대로 지역별 지지자의 분포를 DB화하는 일도 함께 진행했으며, 이를 해당 지역의 지역당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호별 방문은 한국에서는 불법이라고 하자 JU관계자는 꽤 놀라는 눈치였다. 그는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선거운동에 제약이 없다”며 그것은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규제하고 금지하는 반면, 독일은 선거법에 선거운동과 관련된 금지 규정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선거운동에 관한 사항은 각 지역별로 정당들의 자율적 협의에 맡겨져 있다.

▲ JU가 진행한 가구별 방문 선거운동의 모토. “Der Walhkampf steht Vor der Tür(선거운동은 문 앞에 서 있다)” ⓒ www.cdu.de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JU는 기민/기사연합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위성 조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적 의사결정, 재정,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정당(기민/기사연합)으로부터 독립된 청년들의 독자적인 조직이라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단순 실무자나 율동부대, 또는 선거의 얼굴마담 격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차원의 정치활동과 선거활동의 전면에서 스스로의 조직에 기초해 자율적이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청년 스스로 기초부터 정치활동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정당의 청년조직이 처해 있는 현실에 비춰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당원과 지지자가 주인공인 선거파티(Wahlparty)”
그렇다고 독일의 선거가 열정 없는 조용한 선거는 아니다. 현장의 뜨거운 분위기가 느낄 수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선거가 끝난 직후에 개최된 정당의 선거파티(Wahlparty)이다. 선거파티는 말자체가 생소하기도 했거니와 그 내용에서도 선거나 정당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된 인상과 현저하게 달랐다. 선거파티란 간단히 말하면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모여 선거의 종료를 축하하는 행사이다. 우리와 비교한다면 방송사 출구조사 시청 행사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중앙당 강당의 단상을 차지한 카메라 앞에 서열별로 줄지어 앉은 당 지도부가 출구조사 결과에 따라 환호나 박수 등을 연출 한다. 방송사 요청에 따라 사전 예행연습까지 한다. 출구조사 시청은 선거 마지막을 장식하는 빠질 수 없는 이벤트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행사의 주인공은 당 지도부와 방송사이라는 점이다.
녹색당(Bundnis`90/Die Gruenen)의 선거파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총선일 저녁, 베를린의 칼-맑스가(Karl-Marx Strasse) 인근 한 강당에서 개최된 녹색당의 메인 선거파티에 초청받았다. 우리 일행은 방송사 첫 예측조사가 발표되기 한시간 쯤 전에 현장에 도착했다. 행사장 안과 밖은 이미 수 시간 전부터 몰려든 당원,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부터 평범한 노동자풍의 중년, 개성 넘치는 청장년과 노인들, 성소수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들었다. 독일 녹색당 관계자는 선거파티장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과거 양조장이었던 홀을 간단하게 손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길을 끈 것은 공간의 구성이었다. 강당 어디에도 당 지도부를 위한 특별한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강당 옆에는 바(bar)가 설치되어 있어서 누구나 맥주와 와인 등 간단한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 지도부 전면의 상석을 차지했을 카메라를 위한 공간은 강당 뒤편에, 기자들을 위한 공간은 2층 객석으로 구분되어 배치됐다. 강당의 메인 공간을 가득 메운 것은 당원과 지지자였다. 빽빽하게 들어선 강당 한 가운데, 마이크가 있는 좁은 단상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선거 종료와 함께 방송사의 첫 번째 예측조사(Hochrechnung)가 발표되자 사회자는 당의 공동 총리 후보인 카트린 괴링-에카르트(Katrin Göring-Eckardt)와 젬 외즈데미르(Cem Özdemir)를 호명했다. 당원들 속에 묻혀 있다 단상에 오르는 두 당 대표의 손에는 참모가 써준 연설문이 아니라 바로 직전까지 당원들과 함께 마시던 음료가 들려 있는 것도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당원들을 한껏 고무시킨 두 공동 후보의 연설이 끝난 후 곧 그들은 또 다시 당원들 속으로 사라졌다. 인터뷰를 위해 당의 주요 인사를 찾아 이리저리 방송사 카메라와 아나운서들이 군중 속을 헤집고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이방인의 눈엔 서로 격려하고 또 긴 선거운동의 노고를 나누는 그 자리에 운집한 사람들 모두가 당원이고, 또 한편으론 모두다 주요 인사처럼 보였다. 말그대로 당원들을 위한 파티였고,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 녹색당의 선거파티 장면. 선거파티에 참석한 당원들 속에서 연설하는 녹색당 총리 후보인 카트린 괴링-에카르트와 젬 외즈데미르가 보인다. ⓒ (사)정치발전소

예년에 비해 높았다고 하는 우리의 지난 20대 총선의 투표율은 58%였다. 우리는 절반을 조금 넘는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고 오기 위해 정당들은 선거 때가 되면 이름을 바꾸고, 실천의 뿌리나 축적된 노력 없는 공약들이 전략이라는 거창한 말로 대중에게 제시된다. 사나운 선거운동으로 거의 나라 전체가 내전을 치른다. 사회적 대표성이 취약한 정당이 만들어내는  “시끄럽지만 약한 선거”라 할 수 있다. 이번 독일 총선의 투표율 잠정치는 76.2%다.(주2) 2013년 총선에 비해 4.6% 증가했다고 한다. 누가 그 대상인지 알 수 없는 현란한 선거캠페인도, 이벤트도 없었다. 또한 이번 선거는 쟁점 없는 뻔한 선거라는 평가가 선거 직전까지 독일 안팎의 일반적 전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독일 유권자가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정당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선거결과 5% 진입장벽을 넘어 독일 의회(Bundestag)에 진입한 정당의 수도 지난 총선의 4개(CDU/CSU, SPD, LINKE, GRUENEN)에서 6개 정당(CDU/CSU, SPD, LINKE, GRUENEN, FDP, AfD)으로 늘어났다. 물론 이 가운데는 극우정당인 AfD도 포함되어 있지만(AfD 문제는 3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독일 시민들이 자신들의 더 많은 정치적 대표들을 의회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영국 등의 사례에서처럼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활력 있고, 강력하며, 안정되게 작동하는 독일의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보는 것은 또 다른 감회이기도 했다. 강한 정당과 잘 조직된 사회에 의해 뒷받침되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선거”, 이번 독일 선거를 보며 느낀 독일 민주정치의 힘이었다.

▲ 새로운 연방의원들이 자리잡게 될 연방의회 본회의장. ⓒ (사)정치발전소

주1)
기민당의 선거강령 결정과정과 내용은 다음의 CDU 보도자료 참조. https://www.cdu.de/artikel/regierungsprogramm-wohlstand-und-sicherheit-fuer-alle,
사민당의 선거강령 확정과정은 다음의 언론보도 참조. 사민당은 6월 25일 개최된 도르트문트 당대회를 통해 빽빽하게 정리된 116쪽에 달하는 선거강령을 확정했다. http://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spd-beschliesst-wahlprogramm-auf-parteitag-in-dortmund-einstimmig-a-1154172.html
주2)
독일에서는 선거 개표는 수개표로 진행하고 집계만 전자식으로 하기 때문에 검표까지 마치고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약 3주가 소요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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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10/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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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 걸린 내부고발자 퇴출 시도

 

강을영 변호사

강을영 l 변호사 · 공인노무사

 

내부고발자 퇴출 프로그램에 강한 제동이 걸렸다. 겉으로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것이라면 해고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제주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KT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간 사건에서 공익신고자 보호에 의미 있는 판결을 내 주목받고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면 그 불이익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한 것으로 추정한다. 추정의 효과는 회사로 하여금 정당한 징계라는 점에 대해 무거운 입증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만큼 공익신고자 보호는 힘을 갖게 된다.

KT 소속 직원 이해관씨는 KT가 제주 7대 자연경관 지정에 대한 전화투표 이벤트에서 소비자들에게 국제전화가 아님에도 국제전화라고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다. KT는 이씨를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지사로 전보발령했을 뿐 아니라 장기간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했다. 이에 권익위는 KT에 해고를 취소하고 원직에 복귀시키도록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을 했다.그렇다면 회사 내 조직적인 문제는 모두 공익 침해행위에 해당해 신고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이라는 5가지 사유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로서 권익위에 보호 요청을 하려는 사람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요건이 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은 언제로 봐야 할까? 공익신고를 할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공익신고가 이루어지면 통상 공익 침해행위가 공정거래법 등에 위반되는지 살펴 고발 조치하거나 수사 의뢰하는 일이 발생한다. 법률 위반 여부는 해당 법률의 구성요건에 따라 엄격히 그리고 사후적으로 판단된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더 엄하게 볼 것이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해당 법률에 위반됐는지 여부만을 놓고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를 보게 된다면 그 범위는 매우 좁아질 수 있다.

KT는 권익위가 보호조치 결정을 할 시점에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점을 들어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공익 침해행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나 최종적으로 법원 등에서 공익 침해행위로 확인된 행위만 공익신고 대상으로 본다면, 조사권한이나 법률의 해석권한이 없는 권익위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보았다. 공익신고자 역시 공익신고에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공익신고는 위축되고 공익신고 범위는 좁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있다. 

왜 공익신고자 보호를 얘기하는가? 공익신고는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영역에 있다. 공익 침해행위에 대해 침묵하는 다수의 문제점은 요즘 특히 빈발하는 안전사고에서 아프게 확인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사고 이전에 안전 등 운항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제보한 사람이 있었지만 인사문제만 다루고, 나머지는 덮어 결국 뒤에 큰 사고로 이어졌다. 기관의 관리감독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조직 내부의 문제는 공익신고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반면 회사의 보복조치는 집요할 뿐 아니라 겉으로는 그럴 듯한 징계 사유도 갖추곤 한다. 공익신고를 이유로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난다면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의 개인적인 희생을 눈감아 버린 것이 된다. 용기를 의미 있게 해주는 제도적 뒷받침과 법원의 해석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다.

 

 

* 이 글은 2015년 5월 26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화, 2015/05/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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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와 8000km이상 떨어져 있고, 미국, 일본, 중국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말하기도 어려운 유럽의 한 나라가 있다.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나라의 정치와 선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칫 호사가들의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 나라가 이런 나라라면, 아마도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유럽의 운명을 (미국에서 벗어나)유럽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막 깨닫고'(메르켈 독일 총리의 말이다) 유럽의 지도적 역할을 자임한 나라, 난민 100만 명을 수용함으로써 대륙 간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이끄는 나라, 남유럽 경제위기를 진정시키고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나라, 강대국 중 최초로 탈핵을 선언한 나라라면 말이다.
우리에게 케인즈 전기 작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워릭대 교수는 국내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독일이 EU를 지배한다’고 썼다. 독일의 권력분립형 통치체제가 EU의 구조와 체제에 그대로 복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주1) 이제 독일 모델은 독일만의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 통치 모델로 등장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독일 여행은 민주적 다원주의를 활력 있고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통치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였다. 사소한 차이도 내전을 방불케 하는 적대적 대립으로 귀결되고, 평화에 대한 일관된 시야를 갖지 못한 채, 미국의 뒤에서 그리고 강경한 여론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 이제 급기야 전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한국 정치의 문제를 더 도드라지고 아프게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독일의 선거에는 세상의 모든 의견이 다 있다” 
독일에서 놀라는 것은 정치적 목소리의 다양함과 자유로움이다. 총선 중 베를린 거리는 다양한 정당의 선거 포스터로 가득 찬다. 기민당(CDU)나 사민당(SPD), 녹색당(Grüne), 자민당(FDP) 등 독일정치에 과문하더라도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정당들은 물론, 포스터에 레닌을 등장시킨 독일 마르크스-레닌주의당(MLPD), 극우정당들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민족민주당(NPD), 동물생명권 보호를 내세우는 동물보호당(Tierschutzpartei), 시민권 강화와 정보 인권을 주장하는 해적당(Piratenpartei) 등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혁명 내세우는 극좌부터 나치와 다름없는 극우까지 수많은 정당들을 만나게 된다. 베를린에서만 24개의 정당이 정당 명부에 이름을 올렸고, 독일 전역에서 42개 정당이 이번 총선에 명부를 제출했다.(주2) 물론, 이러한 다양성은 정당의 기초가 되는 시민들의 자율적 결사체와 이념, 사상이 그 만큼 자유롭고 풍부하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 독일 총선 기간 중 만나는 다양한 정당 포스터 ⓒ(사)정치발전소

▲ 레닌의 얼굴을 모델로 활용한 극좌정당 독일 마르크스-레닌주의당 포스터 ⓒ(사)정치발전소

우리나라는 국가보안법이나 정당법 등으로 시민의 자유로운 결사와 정당 설립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독일과 같은 많은 정당은 대번에 ‘정당 난립’, ‘국론 분열’로 문제가 될 법도 하다. 그러나 독일은 유럽 민주주의 위기가 거론되는 지금도 여전히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강력하다. 무엇보다 독일이 이처럼 풍부한 정치적 자유와 다양한 정당들 속에서 안정되고 활력 있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까닭은 다원성과 안정성을 조화시키는 통치의 유능함과 책임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경우, 선거가 끝나면, 집권세력은 권력을 전리품쯤으로 손쉽게 사유화한다. 통치권력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야당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여당조차도 밀어내고 위계적으로 초집중화 된다. 적폐청산 같은 상대를 절멸시키고자 하는 전투담론이 정치공간을 메워버린다.
독일에서 정당과 노조 관계자를 만나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권력과 통치를 다루는 그들의 생각이었다. 정치와 사회(기업 & 노동)의 관계, 정당과 정당 사이의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차이가 존중되면서도 책임성을 공유한 폭넓은 분권과 자율, 공동통치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긴 놈이 다 먹는다’는 천박한 권력과 통치관을 뛰어 넘는 것이다.
“누가 독일을 지배하는가”
폭스바겐은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메이커이며 세계적 거대기업이다. 년 매출만 263조(2016년), 웬만한 국가의 1년 예산 규모다. 이 거대기업이 2015년 불거진 배기가스조작사건(디젤게이트)으로 마틴 빈터콘(M.Winterkorn)회장이 물러나는 홍역을 치렀다.
“누가 폭스바겐 신임 회장을 지명했는지 아느냐?”
독일 금속노조(IG-Metall) 지도부의 일원으로 연방의회 및 정당 관계를 책임지는 콘라드 크링겐부르크(Konrad Klingenburg : 자신을 3천명의 로비스트들이 득실대는 독일 금속산업계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 5명뿐인 로비스트 중 한명이라고 했다)가 물었다. “대주주가 결정하는 것 아니냐?” 일행 중 한명이 말을 받았다. 그는 “폭스바겐의 신임 회장을 지명한 것은 이사회의 노동자 대표였다”고 말했다.
물론 폭스바겐 사례는 감독이사회의 주주 이사들이 잇달아 사임했던 디젤게이트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긴 하지만 주주가 지배하는 영미식의 기업이나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우리나라의 재벌기업과 달리, 독일의 대기업들은 공동결정의 가치에 따라 주주와 노동자 대표로 균등하게 구성된 감독이사회에서 회사의 전략적 결정을 함께 내린다. 공동결정제도를 통해 노동자는 기업의 공동경영의 주체로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조와 노동자대표가 산업계의 단순한 이해관계자를 넘어, 독일의 사회경제를 지탱하는 공동 통치자의 반열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독일노총(DGB)의 국제담당 프랑크 차흐(Frank Zach)는 “노조는 다양한 자율적 협약과 협상을 통해 독일의 산업정책과 사회경제정책 전반에 필요한 결정권을 행사한다”며 지난 연정은 물론이고 “이번 총선에서도 AfD와 협상을 거부한 자민당을 제외한 주요정당의 선거강령에 노조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노조의 역할과 권위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신뢰는 확고해 보였다.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당원이자 JU(기민/기사련 청년 조직)의 국제담당인 크리스티안 크라이저(Christian Kreiser)는 “독일에서 노조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젊은 사람들도 노조에 많이 참여하고, 전반적으로 봤을 때, 나의 친구나 당원(기민당원) 등을 포함해 주변사람들이 노조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노조는 어떤 책임성을 갖고 있을까. 금속노조의 크링겐부르크는 아웃사이더 정당인 좌파당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자신들이 가진 통치자로서의 책임성을 말한다. “서독지역의 좌파당은 사실 금속노조의 조합원들이 만들었다.(주3) 좌파당의 선거강령은 금속노조의 노동정책을 많은 부분 담고 있고 지향점도 같다. 그러나 그외 부분들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EU정책과 외교안보정책 등은 우리와 전혀 상반된 내용을 갖고 있다. 솔직히 우리는 정치적 현실주의자다. 좌파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같은 지향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책임성을 구현할 수 없는 정당과 전략적 연대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AfD에 대해서는 더 단호했다. 그는 “연합노조(United Union)인 금속노조는 사민당, 기민당, 자민당, 녹색당 등의 당원도 모두 조합원이 될 수 있지만, AfD는 수용하지 않는다”며 “(AfD의 이념인)극우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금속노조의 강령”이라고 강조했다.

▲ 금속노조의 슬로건. “더 많은 협약을 통한 정의 실현(Gerechtigkeit durch mehr Tarfverträge)”이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사)정치발전소

인사이더 정당과 아웃사이더 정당의 조화
이번 독일 방문에서 느낀 것은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고 있지만, 통치하는 인사이더 정당과 문제를 제기하는 아웃사이더 정당이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고,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독일 민주정치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통치하는 정당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키면서도, 동시에 유럽정치(국제정치)의 리더십을 가진 독일의 통합과 안정에 대한 확고한 책임성을 공유하고 있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연정을 통해 언제든 집권세력이 될 수 있는 정당이다. 기민당과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이 이런 정당들이지만, 특히 기민당과 사민당이라는 보수-진보의 두 주축정당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지난 8년간 대연정을 했던 두 당 모두 지지율과 의석이 비교적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두 주축정당을 포함한 통치하는 인사이더 정당체제의 지위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독일에서 의석배분 기준은 정당 득표율이다. 지역구 의석이 없어도 정당투표에서 5% 진입장벽을 넘으면 받은 표만큼 의석으로 환산된다. 주요한 아웃사이더 정당으론 12.6%(95석) 득표로 최초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AfD와 9.2%(69석)를 득표한 좌파당이 있다. 그러나 전체 지역구 의석 299석 중 290석(97%)을 기민-사민당이 석권했고, 전체 709석 중 77%(546석)를 차지한 인사이더 정당의 지배력은 여전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유럽의 다수 국가가 극우 포퓰리즘의 발호 속에서 기존 정당체제가 붕괴하는 혼돈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가장 강력한 국가인 독일이 보여주는 통치체제의 예외적 안정성은 유럽의 미래를 위한 청신호라 할 만 했다.

▲ 2017년 독일 총선 득표율 ⓒ 독일연방선거관리위원회www.bundeswahlleiter.de

▲ 2017년 독일 총선 의석 현황 ⓒ 독일연방선거관리위원회www.bundeswahlleiter.de

▲ 2017년 독일 총선 지역구 현황 ⓒ 독일연방선거관리위원회www.bundeswahlleiter.de

인상적인 인사이더 녹색당(Bundis`90/Grüne)
비록 6당으로 내려앉기는 했지만 인상적인 것은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1980년에 반핵·환경·평화운동 세력과 신좌파 사회운동 세력이 만든 급진적 이념정당으로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체제비판 정당이었다. 녹색당은 1983년 연방 총선에서 처음 원내에 진출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1998년에는 사민당의 후견을 받는 좌파연정으로 최초로 집권당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그들의 환경의제가 사민당이나 좌파당, 심지어 기민당으로부터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당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정치적 현실주의를 수용해 통치능력 역시 발전시켰다.
특히 녹색당은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크고 영향력 있는 주인 바뎀-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에서 2011년 이래 현재까지 두 차례 연속 집권했다. 현재 녹색당은 연방차원에서 최초로 기민/기사-자민-녹색의 자메이카 연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반체제적 아웃사이더 정당이 37년간 꾸준히 스스로를 성장시켜, 이제 통치할 수 있는 인사이더 정당으로 진보-보수 모두로부터 신뢰받게 된 과정은 드라마틱한 감회마저 느끼게 했다. 당 안팎의 난관을 뚫고 정체성과 기반, 능력을 함께 발전시켜 온 녹색당의 사례는 침체한 한국 진보정당들이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 녹색당의 선거파티(Wahlparty)에 초대된 정치발전소 독일기행단 일행이 녹색당 로고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사)정치발전소

인사이더 못지않게 중요한 아웃사이더 정당들
안정적 통치에 있어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사이더 정당들의 능력과 책임성은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고 아웃사이더 정당들이 독일정치의 ‘문제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사이더 정당들 못지않게 아웃사이더 정당 역시 독일 민주주의에 중요했다. 이번 총선에서 반체제적 투표층을 목표로 캠페인한 아웃사이더 정당들은 의회에 진출한 좌파당과 AfD를 포함해 수십 개에 이르고, 이들 정당이 대표한 유권자의 규모는 약 20%선으로 적지 않은 비중이다. 큰 쟁점이 없이 메르켈과 대연정 체제에 대한 찬반 평결의 의미가 컸던 이번 선거에서, 수렴적 경쟁을 하는 인사이더 정당들이 포괄하지 못한 시민층을 좌우 아웃사이더 정당들이 대표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극우 AfD의 연방의회 진출은 우려가 컸지만, 아웃사이더 정당들은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을 대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시민들을 독일 정치 안으로 통합시켰다. 특히 통독 이후 30여 년 동안 동서독 격차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생활수준이 서독의 70~80% 수준인 동독지역 주민의 소외감과 2005년 하르츠 개혁 이후로 경제적 불안과 위험이 커진 빈곤층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데 이들 정당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소수의 극우정당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웃사이더 정당이 선명한 진보적 이념과 가치, 이슈를 대표하는 정당이라는 점도 다원주의에 긍정적 요소로 보였다.
녹색당 사례에서 보듯 아웃사이더 정당 역시 그들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통치 능력을 갖춘 인사이더 정당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 독립적으로 잘 분권화된 연방체제는 아웃사이더 정당들에게는 주의회와 주정부를 통해 협력정치의 경험과 통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일종의 ‘작은 독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다원주의를 이끄는 또 하나의 기반 – 언론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고 통합해 내는데 공론장을 구성하는 언론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은 전 세계에서 미디어 집중도가 가장 높고 언론 다양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주한 독일대사관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전역에는 350개 일간지가 있고, 구독률 71.4%로 각각 수백만 명의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신문들의 독립적이지만, 그렇다고 기계적 중립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각 언론은 정치적으로 다양한 견해를 대표할 뿐 아니라 지역마다 특색있고 차별화되어 있어 연방체제에 부합하는 다양한 정치적 공론장이 형성된다. 베를린만 보더라도 TAZ라고 불리는 진보지 타게스차이퉁(Tageszeitung), 베를리너차이퉁(Berliner Zeitung), 베를리너몰겐포스트(Berliner Morgen Post),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 등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다양한 유력 일간지가 있다.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도 특색있게 나뉘어져 있어 몇 개의 주류 언론이 나라 전체의 공론장을 장악하고, 일률적인 보도만을 쏟아내는 우리의 현실과 크게 대비되었다.
또한 특징적인 것은 독일 언론이 가진 책임성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한 유학생은 “독일 언론은 좌우를 떠나 기본적으로 온건하다”고 말한다. 매체가 가진 정치적 견해는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싸움을 부추기는 선동적인 기사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쟁점을 다룰 때에도 심층적인 분석과 다양한 견해가 충분히 소개되어 “흥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는” 보도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했다.
질 좋고 다양한 공론장 없이 민주적 다원주의를 생각할 수 있을까? 정치적 책임성 없이 정체도 불분명한 진영간 내전(內戰)에서 선무대를 자처하는 한국 언론과 이들에 포획된 공론장의 현실은 분명 독일과 크게 대비되는 것이었다.
 
“Wir schaffen das(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난민 위기가 발생했을 때, 메르켈 총리가 한 말이다. 메르켈이 언급한 ‘우리’는 모호한 말이지만, 그 속에 독일이 어떻게 통치되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은 국가의 관리와 통제를 받는 피지배자라는 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그러나 독일의 노동조합은 독일을 끌어가는 중요한 통치 주체이다. 노조만이 아니다. 여성, 청년, 중소사업가 등 다양한 시민들이 결사체와 정당을 통해 통치에 관여한다. 이렇게 정치와 사회는 정당과 자율적결사체로 이루어진 수많은 공동통치 공간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이 독일을 통치하는 ‘우리’이다.
독일은 책임성을 가진 진보와 보수가 함께 통치하는 나라이다. 집권한 정당이 모든 것을 다 갖고 나머지는 배제되는 정치가 아니라 상이한 정체성을 갖지만 통치의 책임성을 공유하는 정당들 사이에서 연정과 협력은 다양하고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독일은 ‘박근혜 정권이나 문재인 정권’ 같은 하나의 통치집단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정당과 결사체들의 “통치의 그물망”을 가진 사회이다. 자율적이며 분권화된 통치의 그물망은 이를 뒷받침하는 질 좋고 다원화된 공론장에 의해 뒷받침된다. 책임 있는 정당들과 언론은 독일을 통치하는 ‘우리’이다.
물론, 독일은 완벽한 사회가 아니다. 또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도 없다. 이민자 문제, 동서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있으며, 유럽이 몸살을 앓는 극우 포퓰리즘의 완벽한 안전지대도 아니다. 그러나 이를 다루기 위해 독일의 통치 주체들-정치지도자와 정당들, 노조들, 자율적 결사체들-이 전개하는 노력은 평가되어야 한다.
혹자는 제도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제도는 독일 정치의 장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의 제도가 독일만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왜 비슷한 제도에서 상반된 결과가 나오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다양한 정치적 가치와 갈등 위에서 거대한 선단을 이끌 듯 독일 사회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일, 그 일에 성과를 내기 위해 정치지도자는 물론이고 평범한 당 활동가부터 정치인, 노조지도자 등이 보여주는 통치에 대한 책임성은 무엇보다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우리 정치에 명백히 결여된 부분이다.
우리는 현재 외교안보 문제를 비롯해 양극화 등 수많은 위기적 문제들 앞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불모의 적대적 대립과 갈등, 우왕좌왕하는 외교안보적 대처 등 우리 공동체의 안정과 안전을 위한 ‘통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좋은 통치관과 이를 위한 집요한 노력은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 문제라면 그 해결책 역시 정치에서 찾아져야 한다. 역시 다시 메르켈을 인용하며 마무리할 해야 할 것 같다.
“WIR SCHAFFEN DAS”(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주2)  독일연방선거관리위원회(www.bundeswahlleiter.de) 자료 참조.
주3)  좌파당(Die Linke)은 동독지역의 민주사회당(PDS-동독집권당인 독일 통일 사회주의당의 후신)과 서독지역에서는 오스카 라퐁텐 등 사민당 이탈파와 일부 노조를 중심으로 형성된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이 2005년 통합해 창당되었다.
목, 2017/10/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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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준, 자유기고가

영화의 제목만으로는 무언가를 말하겠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입소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영화인지 알고 봅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우리가 보기 위해 영화관에 입장한 그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다룬 영화는 몇 편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하고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귀향>이 있고 티브이에서도 방영된 <눈길>도 있습니다. 두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시점과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영화 <귀향>은 사회적으로 성노예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모인 성금으로 제작되고 제작과정에서도 많은 사람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있었으며, 수익금은 성노예 피해자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이렇듯 분명 좋은 의도로 만든 영화지만, 영화 내부적으로는 분노를 강요하는 듯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가학적인 장면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피해자들을 수동적이고 폭력의 대상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한 점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귀향>의 존재의미는 과거에 있었던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잔혹한 실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귀향>은 과거입니다.

<눈길>은 과거의 끔찍한 경험으로 현재에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에게 필요한 “치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종분(김영옥)은 수십 년 전에 그 끔찍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직도 꿈에서 생생히 들려 잠에서 깰 때가 많습니다. 그런 종분의 집 한쪽에는 수요집회에 참여했을 때 찍힌 자신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장면만으로 <눈길>은 성노예 피해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상처와 그 상처를 지닌 채로 지금 하는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옆집 여고생의 사연은 주인공이 당했던 남성성의 폭력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렇듯 영화 <눈길>은 현재입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이 둘 영화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정서는 경쾌함입니다. 참혹함과 처절함이 가득한 <귀향>이나 슬픔이나 서늘함 속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눈길>과는 반대로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합니다. 그리고 앞선 두 편의 영화는 말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므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장치를 개인의 내면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외부로 표출하고 치유도 주변을 통해 얻습니다.

영화 초반은 옥분(나문희)이 어떤 인물인지를 그녀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옥분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시장에서 의류 수선가게를 하는 옥분은 8천 건의 민원을 넣어 구청에서는 도깨비 할머니로 불립니다. 그런 그녀 앞에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나타나면서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옥분은 평소에 영어공부를 해도 늘지 않는 실력에 고민을 해왔고, 우연히 민재가 영어강사와 유창한 영어회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조릅니다. 민재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자신의 동생 영재에게 밥을 차려주는 옥분의 모습을 보고 영어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그녀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과 동시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장면을 통해 옥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옥분이 유일하게 의지하며 지내는 정심(손숙)이 위독해지고 비로소 이야기하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영화는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와 주제를 접목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옥분이 미국 하원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에 옥분을 대하는 옥분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입니다.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왜 함께 나누지 않았냐며 되려 서운해하는 진주댁(염혜란), 항상 다투고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옥분의 사연을 듣고 몰래 달러를 전달한 족발집 주인(이상희), 청문회를 마치고 돌아온 옥분을 평상시처럼 대하는 시장 사람들에게서 상처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숭고함마저 느껴집니다. 그리고 민재가 옥분을 찾아가 건넨 한마디, “죄송합니다”는 우리 모두를 대신해 전하는 목소리입니다.

옥분은 청문회 참석을 마음먹었을 때, 잊으면 지는 거라고 읊조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인간의 존엄이 훼손당한 참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체력을 기르기 위해 공원을 걷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다니며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이 캔 스피크>는 미래입니다.


<아이 캔 스피크> 절찬 상영중!

월, 2017/10/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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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전망하는 외신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착 한국 정치는 일종의 초현실적 분위기에 젖어 있는 듯하다. 한반도 위기는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울 만큼 악화되고 있지만, 위기는 한국정치에서 중심이슈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우선 정부의 대응이 구태의연하다. 문재인 정부는 6차 핵실험 이후 보다 분명해진 북한 핵이라는 새로운 현실과 과거 정부의 경직된 사고방식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 보인다. 베를린 선언과 사드 배치, 신북방정책 천명과 북한 봉쇄. 엇갈리는 행보는 그 정책적 맥락을 알기 어렵게 한다. 며칠 전 논란이 된 외교안보라인의 집안싸움이 보여주듯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결정에 누가 참여하고 어떻게 결정되는지도 오리무중이다. 집권당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 데, 민주당이 나서서 위기의 진전된 해법을 제시하거나, 위기의 심각성에 상응하는 책임 있는 정당 간 논의를 이끄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까지 집권당이었던 보수정당은 야당이 되자 신속하게 자신의 입장을 더 강경하게 변경했다. 전임 정부를 이끌었던 보수정당은 당면한 외교안보 문제를 직접 다뤘기 때문에 현 위기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정당은 경험을 가진 통치주체로서 문제해결에 책임 있게 협력하기보다 위기를 틈타 강경한 여론몰이에 집중하고 있다. 공동체가 직면한 위기 속에서 대안정부의 실력을 보임으로써 신뢰를 회복하기보다, 정권을 때려 얻는 반사이익에 더 큰 관심을 가진 듯하다.
미국과 중국의 서로 다른 이해가 충돌하는 가운데 대두된 북핵 위기는 진보건 보수건 누가 문제를 다룬다 해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전례 없이 심각한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정치의 불신과 적대를 넘어서는 전례 없는 협치가 절실하지만, 그 길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북한 핵 문제로 격발된 외교안보적 위기에 더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내정치가 작동하지 못하는 2중의 복합 위기라 할 수 있다.
국제정치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말 중에 “물가에 가면 정치적 싸움을 멈춘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라는 표현이 있다. 중대이슈인 국가 간 외교문제에 있어 국내정치적 갈등은 가능한 줄이고 정치 내부의 합의와 협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말은 외교정책 결정에 있어 통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진보-보수를 나누는 가시적 기준은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경제적 입장이라기보다 주로 선거 시기에 보여지는 남북관계에 대한 태도였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거의 대부분의 전국 선거에서 주요 정당들이 동원한 중심 갈등은 남북관계 문제였다. 이번 대선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한쪽은 퍼주기 종북세력이라고 날 세워 헐뜯고, 다른 쪽은 수구 냉전의 호전 집단이라고 받아쳤다. 상대에게 악마의 이미지를 덧씌워 외교안보 무능 불안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또한 새정부에 의한 적폐청산론은 결과적으로 보수-진보 사이의 반목을 한층 강화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외교안보적 위기를 넘어설 힘과 기반을 만드는 협치는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난 대선, 선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는 전격적으로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의 사진을 표지 전면에 게재했다. 그 사진의 부제이자 TIME지의 헤드라인은 “THE NEGOTIATOR”(협상가)였다. TIME지는 “북한의 김정은을 다룰 수 있는 리더”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최고조의 긴장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한반도에서 ‘협상가’ 대통령의 출현은 국내외 모두가 기대하는 것이었다.
적폐, 즉 폐단을 바로잡자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폐단도 현재의 한반도 위기만한 것이 없다. 또 박근혜 정부를 실패로 이끈 가장 중대한 폐단은 무엇보다 집권파의 독단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독단은 협상가의 덕목이 아니다. 지금 한국정치는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해 우리 공동체를 통합으로 이끄는 “THE NEGOTIATOR” 리더십이 절실하다. “김정은을 다룰 수 있는 리더”로 평가된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국내정치의 지도자와 정당들의 협력을 끌어내지 못한 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 2017년 5월 15일 타임 아시아판(Time Asia) 표지 ⓒ타임

외교안보에 있어 보수는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세력이다.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전환은 보수정부(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었다. 그 성과와 한계의 토대 위에서 민주정부의 햇볕정책과 화해협력 정책이 뿌리 내릴 수 있었다.
외교적 협상은 국가 간 협상과 국내정치 내부의 협상인 협치가 결합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해당사자가 많은 만큼 첨예한 이견을 다뤄야 하는 내부 협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국가 간 협상에서 힘을 받지 못한다. 설사 일부 성과를 내더라도 지속되기 어렵다.
외교정책은 정권의 책략이 아니라 정치가 만든 합의된 대안일 때 오래가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걸 위해서는 정치적 숙의와 공동통치를 이끌어 내는 민주적 리더십에 기초해야 한다. 심각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지도자들이 만나 위기를 진지하게 다뤄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외교안보 정책의 정치적 컨센서스와 공동 통치를 위한 정치 대화를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우리 정치는 한 번도 외교안보에 관해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책임 있게 참여하는 협치 과정을 만들지 못했다. 외교안보 문제가 온전히 외교안보적 맥락에서 다뤄진 적도 없다. 정치와 정당을 우회해 성공한 외교정책은 없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THE NEGOTIATOR”의 정치를 이제 시작해야 한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월, 2017/09/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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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만이 아니라 나쁜 선례에서도 배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격언이다. 지난 대통령의 사례 역시 대통령이 견지해야 할 민주적 통치 규범과 관련해 큰 교훈을 준다.

우선, 역사 해석을 바꾸려는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정교과서 문제만큼 이를 잘 보여준 사례도 없다. 역사에 대한 보수적 시각 못지않게 다른 시각도 존재해야 하고 다양한 관점이 다퉈질 수 있어야 민주사회라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역사를 재정의하겠다고 하면 부작용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건국절 논란을 자초한 문재인 대통령도 생각할 점이 있어 보인다.

여야와 국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의 역할을, 대통령의 통치 행위를 뒷받침하는 종속적 역할로 낮춰 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강조해야겠다. 권위주의에서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도자로서 정치에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스스로 정치가로서 변화를 이끄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이를 경시한 사례도 드물다.

재임 기간 내내 국회, 야당과 함께 일하기보다는 그 밖에서 지시하고 요구만 했다. 급기야 국회와 야당을 적폐로 몬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민주주의는 ‘법에 의한 통치’의 원리 위에 서 있고, 그런 의미에서 ‘시민 주권의 제1부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입법부라는 사실이 중시되어야 한다.

박정희 정권 때의 ‘구악일소’나 전두환 정권 때의 ‘사회정화’처럼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앞세운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점이다. 이것들은 하나의 옳음만 정당화될 수 있는 정치 언어이자, 반대할 수가 없는 강요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다원주의를 억압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성장이냐 분배냐 혹은 안보 우선이냐 평화 우선이냐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처럼, 서로 다른 가치를 두고 경쟁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사회를 통합하는 효과를 갖는 민주적 정치 언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정치가 적폐 세력과 적폐척결 세력의 싸움으로 정의되면, 나머지 세력은 적폐옹호 세력, 방조 세력으로 단순화되게 마련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세력을 배신자로 공격하려는 열정도 제어되지 못한다. 독일을 대표하는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강조했듯 ‘자신이 옳기 위해 도덕적 심판의 구도를 불러들이는 일은 정치적 범죄 행위’라는 경계심이 규범화돼야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대통령이 적극적인 지지자를 앞세워 정치를 압박하려 한 것 또한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국민 소통을 강조했다지만, 실제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을 증폭시키는 채널만 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반향에 있었다. 합창에 비유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와 적극적 반대자의 강한 목소리만 들리는, 양극화 정치의 극단적 심화를 낳았기 때문이다. 주변이 적극적 지지자로 채워지면 대통령은 소외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특별한 일로 기록될 대통령 탄핵과 새누리당 붕괴는 촛불 시위 이전에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추종 세력을 앞세워 당내 경선과 선거를 지배하려 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 모든 일은 결국 국민을 앞세우는 한편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反)정치주의로 귀결되었다. 대통령이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은 최악의 일이었다. 이런 무모한 일에 당당했던 건 국민의 지지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고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오래 걸리고 지루하고 소란스러운 민주적 정치 과정을 견디기 싫어하는 대통령일수록 정치를 탓하며 국민을 불러들이려는 조급증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를 개혁을 바라는 국민과 일치시키고, 그 맞은편에 파당적 이익만 얻으려는 사악한 정치 집단을 설정한 뒤, 이들 때문에 대통령이 일을 못한다는 희생자 이미지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국민을 위한, 국민의 대통령’이길 바라지만 정치 때문에 일이 안 된다는 생각은 군주의 태도이지 정치가의 자세는 아니라는 사실을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실패를 통해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통치 모델을 보여줄까? 아니면 적폐 청산을 앞세워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대통령,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며 대의제를 우회하려는 대통령, 극성 지지자 저편에서 이미지로만 보이는 대통령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도 돌아볼 일이 아닌가 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919/86390520/1?lbFB=4f747b9845d652eb2b65880e319ff97#csidx4e7e2727d98dd369cd056f6de3d8f19

수, 2017/09/2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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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로 입대하라', 전 법정에 서는 걸 택했습니다

[대체복무제가 답이다①] 양심 내세워 군복무자 양심 짓밟는다? 사실 아닙니다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 


 


▲  홍정훈 병역거부 기자회견 ⓒ 홍정훈    
 

2017년 4월 20일,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서려다, 다시 앉아서 발톱을 깎았습니다. 1심 판결로 구속될 수도 있다는 변호인의 조언에 이미 많은 걸 정리했습니다. 10분 남짓한 법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안주머니에 챙겨둔 펜과 편지지를 꺼내어 전날 밤 생각한 인사를 적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많은 분들이 법정 입구에서 초조하게 절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당사자는 평소의 습관대로 제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그날따라 법정 안에 들어서면서 유치장으로 향하는 문이 가장 먼저 눈에 밟혀, 다시 마음을 단단히 여미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제 재판이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아, 옆에 앉아있던 변호인에게 편지를 건넸습니다. 워낙 악필인데다가 흔들리는 버스에서 어렵게 쓴 글씨라 잘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는 편지를 받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변호인을 울린 게 미안해서 손수건을 꺼내려는 순간, 재판장이 홍정훈이라는 이름을 호명해 변호인과 함께 피고인석으로 향했습니다.

 

5개월여 전인 2016년 11월, 느닷없이 집으로 통지서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4주 후에 논산훈련소로 입대하라는 병무청의 통보였습니다. 작년 초부터 "해당 기간에는 입영가능한 날짜가 없습니다"라는 병무청 홈페이지의 메시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안심했는데, 느닷없는 국가의 요구에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군대에 관한 오래된 고민을 끝낼 수 있는 결정에 대한 마지막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결정을 마치고, 우스갯소리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권유했던 동료들에게 덤덤하게 제 뜻을 밝혔습니다.

 

최후변론 한 대목에서 소리없이 흐느낀 변호사

 

10여년 전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던 변호사를 다짜고짜 찾아가 두 번째 변호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피고인 홍정훈을 변론하는 법정에서, 멋지게 준비했던 최후변론의 한 대목에서 갑작스레 말을 멈추고 소리없이 흐느꼈습니다. 

 

그가 온전히 읽을 수 없었던 대목은 10여년 전 자신이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던 법정에서, 또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문장입니다. 마지막 순서로 제가 힘겹게 최후진술을 읽자, 법정은 방청석에 앉아있던 동료들의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결국 저는 1심 재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저에게 씌워진 죗값의 크기가 왜 1년 6개월이나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어떠한 종류의 폭력에도 가담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어떻게 범죄로 정의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신념을 가진 개인이 무려 국가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무기를 들겠다는 선택도,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정훈과 같은 병역거부자들이 양심을 내세워, 군대에 복무한 수많은 남성들의 양심을 짓밟는다는 비난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국가제도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신념과 존재 자체를 인정받을 수 없는 비난을 직면해야 합니다.

 

대체복무제 도입, 정말 그렇게 어려운 문제인가요

 

 
▲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자 및 엠네스티 관계자들이 옥중 기자회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옥의 문턱에서 겨우 멈춰서 숨을 돌리고 있을 무렵, 항소심 재판의 시작을 알리는 법원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7년 8월 17일, 항소심 재판의 첫 기일에 출석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는 달리, 재판을 곧바로 진행하지 않고 올해 12월까지 기일을 연기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냈고, 올해 안에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단을 내릴 경우, 사법부는 더 이상 저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사처벌을 할 수 없으며, 정부와 국회는 곧바로 대체목부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2016년 UN자유권위원회는 한국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즉시 석방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제게 유죄를 선고했던 1심 재판부도 판결문에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음에도 현재까지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점"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에도 대체복무제법이 발의되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체복무제는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문제인지 묻고 싶습니다. 행정부도, 입법부도, 사법부도 스스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옥을 눈앞에 둔 제게, 그리고 이미 감옥에 수감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시간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의 생각과 신념을 감옥에 가두는 일은 멈춰야 합니다. 왜 병역거부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아무런 중압감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부디 내년에 감옥이 아닌 곳에서, 대체복무를 하면서 저를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웃으며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 http://omn.kr/o5n8

수, 2017/09/1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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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라" 문재인 정부의 이 결정에, 성주 소성리는 언제 또 다시 사드 장비를 맞닥뜨려야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결정에 '잘했다'고 찬성 의견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짚어봅니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가 정말 '잘 한 결정'일까요?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 http://omn.kr/o3wh

 

① '촛불 정부'라면, '2006년 5월 4일' 반복하지 마세요

② 사드 배치, '인권 변호사'다운 검토가 필요하다

③ '사드 배치'는 왜 '신고리 5,6호기'가 될 수 없나

④ '박근혜 적폐'. 문재인 정부가 완성하지 말라


'박근혜 적폐', 문재인 정부가 완성하지 말라

[연속기고] 문재인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 이의 있습니다④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제가 지금 견딜 수 없는 것은 시민 문재인이었을 때, 광화문에서 우리와 같이 촛불을 들었던 문재인이었을 때는 적폐였던 저 사드가 어떻게 대통령 문재인에게는 합법이 될 수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 2017. 8. 30. 소성리 수요집회에서, 김천 주민

 

지금 성주와 김천을 관통하는 감정은 깊은 배신감이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그래서 투표장으로 가는 마음이 설렜던 만큼, 이 복잡하고 첨예한 사드 문제 해결의 공을 촛불 정부가 꼭 가져가기를 누구보다 바랐던 만큼, 그 실망감은 크고 깊다.

 

첫 번째 기대, 국회 동의 공약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직후 문재인 후보는 사드 배치는 득보다는 실이 커 보인다며 재검토와 공론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사드 배치 같은 중대사가 국회 동의 없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국회는 SOFA 협정 개정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드는 차기 정부 재검토' 입장을 유지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 "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 추진"을 명시했다. 찬반을 떠나, 적어도 국회 동의 과정만은 거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참여연대가 보낸 대선 질의서에는 사드 문제가 "집권 시 최우선 해결 과제"라고 답했다. 성주, 김천 주민들이 보낸 대선 질의서에는 사드 배치가 국회 동의와 더불어 주민 동의도 필요한 사안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 심재권 민주당 사드특위 위원장을 포함해 수많은 의원들이 지난 1년간 사드 배치는 헌법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약에 따라 적어도 국회 동의 절차를 책임 있게 추진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 7월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이러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집권 시 최우선 해결하겠다던 사드 관련된 내용은 중국과 사드 문제 관련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지금까지 국회 동의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발사대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결정만 나왔다. 공약을 파기한다면 왜 그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생각이 바뀌었는지 단 한 마디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두 번째 기대, 진상조사와 적폐 청산

 

 ▲ 광화문 1번가 국민마이크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정책 제안 발언을 하고 있는 김천 주민 ⓒ 참여연대    

 

사드 발사대 4기 반입 보고 누락과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기 위한 부지 쪼개기 2단계 공여가 드러난 이후, 지난 6월 7일 문재인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사드 배치의 절차적 투명성 확보를 위한 범정부 합동 TF'를 구성했다. 국무총리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 합동 TF에서는 환경영향평가 회피 등 그동안 사드 배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지적 사안들에 대한 추가조사 문제,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적정한 환경영향평가 실시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미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6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발사대 1기는 2017년 말에, 나머지 5기는 2018년에 배치하기로 당초 한미 양국이 합의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사실상 탄핵과 대선 국면에서 사드 배치가 누군가에 의해 빨라졌다고 강조한 것이다. 국방부는 새로운 장관 취임 후 내부 협의를 통해 사드 배치에 대한 자체 조사와 감사원에 직무 감찰을 의뢰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이에 어떤 방식으로든 사드 배치 과정의 불법성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적폐 청산을 시작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약속했던 진상조사는 지금까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송영무 장관이 취임했지만 국방부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없다. 보고 누락 등을 이유로 위승호 국방정책실장이 경질된 후, 사드 배치 협의를 위한 한미공동실무단 단장을 맡았던, 사실상 박근혜 정권 사드 배치의 실무 책임자 장경수 정책기획관이 지금까지 정책실장 대리를 맡고 있다. 제대로 된 자체 조사가 과연 가능할까?

 

지난 7월 12일 성주, 김천 주민과 원불교 교도,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은 사드 배치 합의·결정, 부지 취득과 공여, 환경영향평가 회피, 관련 자료 비공개 등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전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 행위와 비민주성을 하나하나 정리하여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무총리실을 대상으로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감사원의 답변 역시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그토록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범정부 TF에서 세 달 동안 논의하여 발표한 것은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것이며, 환경영향평가 종료 전 사드 장비 운용을 위한 기지 공사 등은 허용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이마저도 바로 다음 날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 결정을 발표하며 무색해졌다.

 

사드 배치는 국방·군사시설사업으로 전략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이며, 환경영향평가의 핵심 목표는 '사전에' 입지 타당성과 계획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선(先)사드 배치와 공사 후(後) 환경영향평가는 국내법 어디에도 없는 기형적인 조치다. 남은 발사대를 모두 배치하고 상시 전기 공급이 가능한 전기시설까지 설치한다는데, 사후 환경영향평가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세 번째 기대, 주민과의 소통

 

 

▲ 사드저지전국행동은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협의, 결정, 집행 과정 전반과 불법성에 대해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했다 ⓒ 참여연대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소성리 마을회관에 찾아와 지난 정권에서 일방적인 사드 배치 강행으로 주민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하고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는 점을 강조했을 때만 해도, 이번 면담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소통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기대는 높았다.

 

그러나 그 후 벌어진 일들은 다음과 같다.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이야기했더니, 뜬금없이 전자파 측정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박근혜 정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환경영향평가서는 군사 3급 비밀이라 수치를 포함해 아무것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전제로 지역 토론회를 강행하려 했다. 요식행위였다. 미8군 사령관은 주민들이 거부한 명분쌓기용 전자파 측정을 하는 날, 사과하겠다고 찾아왔다. 사과를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고 했지만, 주민의 의견은 사실 작은 것 하나 반영되지 않았다. 화려한 소통쇼만 이어졌다.

 


▲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저지를 위한 국민비상행동 시작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소성리 주민 ⓒ 참여연대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이 임박했다. 성주, 김천 주민들은 2016년 7월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었다. 집회, 농성, 평화캠핑, 고발, 소송, 헌법소원, 기자회견, 언론기고, 1인 시위, 신문 광고, 대국민 홍보, 영화 상영, 국회 토론회, 정부 관계자 면담,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결국 발사대 4기와 공사 장비 추가 반입이 강행된다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막는 일 뿐이다.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니 이해하라고 주민들을 밀어붙이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절차적·민주적 정당성, 스스로 했던 약속들부터 되돌아보아야 한다. '박근혜 알박기, 문재인 못박기 사드'라는 오명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 필자 황수영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이며,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화, 2017/09/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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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라" 문재인 정부의 이 결정에, 성주 소성리는 언제 또 다시 사드 장비를 맞닥뜨려야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결정에 '잘했다'고 찬성 의견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짚어봅니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가 정말 '잘 한 결정'일까요?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 http://omn.kr/o29v

 

① '촛불 정부'라면, '2006년 5월 4일' 반복하지 마세요

② 사드 배치, '인권 변호사'다운 검토가 필요하다

'사드배치'는 왜 '신고리 5,6호기'가 될 수 없나 

 

'사드 배치'는 왜 '신고리 5, 6호기'가 될 수 없나

[연속기고] 문재인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 이의 있습니다 ③ 

 

정주진 평화갈등연구소 소장

 


이번 위기는 이전 것보다 심각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큼지막한 것이 뚝 떨어졌다. 재수 없게 맞은 사람만 억울하다. 사드 배치 결정이 그랬다. 이전 정부는 성주 주민들과 사전에 소통하지도, 그들의 삶을 고려하지도 않고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저항을 할지, 그냥 '재수 없는 일'로 생각하고 넘어갈지, 아니면 보상을 받기 위해 정부와 협상을 할지는 모두 주민들의 숙제가 됐다. 

 

주민들은 많은 선택지를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주민들은 거부를 선택했고 저항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문제는 더 악화됐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하자 정부는 곧바로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웠던 정부 역시 일방적 불통 행정을 보여줬다. 새로운 정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주민들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사드 배치 결정 직후부터 정부와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은 시작됐다. 갑작스런 결정 때문에 갈등은 발생 직후 위기로 치달았다. 조기 대선 직전과 직후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로 소강 상태를 유지했지만, 7월 말의 추가 발사대 배치 결정으로 갈등은 다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번의 위기는 이전 것보다 심각할 것이다. 높은 기대감 이후 깊은 실망감이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로 인한 정부와 현지 주민들 사이의 문제는 전형적인 공공갈등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정책 결정과 실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 정부도, 현 정부도 의도적으로 이를 일반적 공공갈등으로 보지 않으려는 것 같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드 배치는 갈등 현안이 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통한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책이나 사업이라고 해서 갈등을 비켜가지는 않으며, 존재하는 갈등을 없는 것으로 취급할 수도 없다.

 

주민 저항과 갈등이 생긴 이유는 명확하다. 주민들에게 사드는 건강, 농사, 지가 하락, 생활권 침해, 지역 개발 등 삶과 생존의 문제다. 그런데 기존 2기의 철수가 아니라 추가 4기를 배치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주민들은 더욱 위기감을 느끼고 분노하고 있다. 효용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군사적 카드로 쓰기 위해 추가 배치를 결정한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존재와 삶을 하찮게 여기는 증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갈등, 다시 말해 공공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것을 공공갈등으로 보지 않고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저항은 강해지고 갈등은 악화될 것이다. 

 


▲  8/19 소성리 평화행동에서 합창을 하는 성주 소성리 주민들 ⓒ 참여연대    

 

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사드 배치 갈등은 다른 공공갈등과 유사한 발생과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실수를 반복하고, 그 결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곤 한다. 가장 기본적인 실수는 저항을 예상하면서도 일방적이고 기습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다. 정부 결정이기 때문에 결국 주민들이 수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론을 설득해 주민들의 주장을 님비(NIMBY), 또는 이기주의로 포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일방적, 기습적 결정은 주민들이 합리적인 내부 논의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수용 또는 거부 의사를 표할 기회 자체를 막아버린다. 이것은 갈등 전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책이나 사업 자체에 대한 이견에 더해 '배신감'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갈등 발생 후 정부가 저지르는 실수는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저항하는 이유는 정부와 협상하기 위해서인데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저항이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안이한 대응은 역효과를 내고 오히려 저항을 강화시킨다. 갈등이 위기에 도달하면 사실 대화와 협상의 여지가 생기곤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 상황에서도 강력 대응과 여론전을 통해 해당 지역사회나 저항하는 주민들을 고립시킴으로서 증오와 불신을 높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주민들은 결국 모든 것을 거는 저항을 결심하게 된다.

 

이 모든 실수를 관통하는 것은 불통, 불성실, 무책임이다. 덧붙여 힘에 의존하는 대응 방식이다. 사드 배치 갈등도 위의 일반적 경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 정부 또한 이미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고 앞으로도 반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은 이전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변명을 할 수 없게 됐다. 발사대 추가 배치를 결정하면서 정부는 사드 배치 문제를 완전히 현 정부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남은 선택은 그로 인한 갈등에 어떻게 대응하고 갈등을 어떻게 잘 해결하느냐다. 정부가 갈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갈등은 이미 생겼고 계속되고 있으니 이전 정부들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길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응책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성주, 김천 주민과 원불교 교도, 평화활동가들은 매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 함형재    
 

사드 배치, '갈등 관리' 적용 가능하다

 

사드 배치 논란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소통과 대화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있다고, 그래서 추가 발사대 배치를 적어도 하루 전에 주민들에게 통보할 계획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방적 실행을 통보하는 것은 소통으로 볼 수 없다. 소통은 일방적인 주장이나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과 쌍방에 의해 평가돼야 하는데 주민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진짜 소통을 위해서는 일시적, 이벤트성이 아닌 조직적인 소통 체계를 만들고 지속시켜야 한다. 그래야 갈등이 위기로 치닫는 것을 막고 대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정부 판단으로 사드가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더욱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소통과 대화를 해야 한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지속 또는 중단을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시민참여형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것은 획기적이 일이고, 앞으로 공공갈등이 예상되거나 진행 중인 정책이나 사업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갈등 관리' 방식을 택하겠다는 의지와 방향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갈등 관리 접근은 사드 배치 문제에도 적용돼야 하고,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국방부는 대통령령인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대한 규정'에 따라 2010년 6월부터 국방 정책 및 사업과 관련된 갈등 사안을 심의하고 자문을 받기 위해 '갈등관리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갈등 관리 상세 실행을 명시한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훈령'도 가지고 있고, 훈령에 따라 진행 중인 공공갈등 해결을 위해 '갈등조정협의체'를 설치해 운영할 수도 있다.

 

소통, 대화,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근거가 마련돼 있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국가 안보' 담론을 내세워 사드 배치 논란을 공공갈등으로 보지 않고 아무런 갈등 관리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갈등 관리'를 적용해 불통이 아닌 소통으로, 배제와 외면이 아닌 수용과 접촉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일방적 결정이 아닌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항은 계속될 것이고, 성주가 제2의 강정이 될 수도 있다.

 

 
▲ 국방부와 롯데가 사드 부지 교환 계약을 체결하던 날 ⓒ 참여연대    
 

* 필자 정주진은 평화갈등연구소 소장이며, 평화학 박사입니다.

 

화, 2017/08/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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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해 공석이 된 노원병과 함께 공직선거법... 이에 따라 유 변호사는 출마를 포기해야했고,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를 준비해왔던 김영순 전 송파구청...
월, 2017/08/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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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7 아시아생각] ① 시리아 토마호크 공습, 짜고 친 힘자랑 

[2017 아시아생각] ②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 시리아 비극, 해법은?

[2017 아시아생각] ③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평화의 페달을 밟는 사람들

[2017 아시아생각] ④ 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2017 아시아생각] ⑤ '계엄령' 두테르테, 왜 필리핀 민주주의 위기인가

 

로힝자 인종청소, 소수민족이 불법체류자인가?

[아시아 생각] 소수민족을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은 미얀마 정부


김기남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활동가

 

지난 8월 7일 미얀마 정부는 로힝자 사람들에 대해 인종청소 또는 인도에 반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공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련 의혹은 근거 없거나 조작되었다고 일축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는 미얀마 군대와 경찰이 작년 10월부터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 마웅도우 인근에서 로힝자 민간인들에게 살해, 고문, 구타, 강제실종, 집단강간, 성폭력, 방화, 재산약탈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난민이 된 로힝자 사람 ⓒAbul Kalam 

 

국제인권단체들은 미얀마 정부의 조사결과가 왜곡되었다며 반발했다. 우선 조사위원회 구성이 독립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 출신의 부통령 민트 쉐가 위원장을 맡았고, 조사위원 중 무슬림계 소수민족 출신은 아무도 없었다. 

진상조사 과정도 공정하지 못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에 따르면 목격자, 조사과정에서 피해자 등의 진술에 대한 비밀보장도 없었고, 때로는 윽박지르고 진술하지 말 것을 강요하고 거짓말한다고 다그치는 등 조사는 공정하지 않았다. 

미얀마 정부의 조사결과는 이양희 유엔인권특별보고관이 공식방문조사를 수행한 지 불과 2주 만에 나온 것으로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자족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지난해보다 악화되었다고 우려하며 군 작전 중 인권침해가 계속 발생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밝힌 특별보고관의 성명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학대의 흔적들 ⓒADI 
 

아울러 미얀마 정부는 공식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라카인주 마웅도우 인근에 군 병력 500여 명을 증파하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불교계 소수민족 남녀 세 쌍이 살해된 사건의 배후로 로힝자 반군세력을 지목하고 소탕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지만 본격적인 토벌작전이 다시 시작되면 로힝자 민간인들의 인권침해가 더욱 심각해질 것은 자명하다. 미얀마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에 대해 반박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타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태도의 변화 없이 군 작전을 재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정부의 태도이다. 국가자문관으로서 미얀마를 총괄하는 아웅산 수치는 국제사회에 로힝자 사람들을 '로힝자’라고 칭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들은 로힝자 논쟁이 국내의 화해 프로세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로힝자를 불법체류자로 규정짓는 용어인 '뱅갈리'로 부른다. 이는 로힝자 사람들을 화해를 위한 대화의 상대로조차 인정하지 않고 강제 퇴거할 불법체류 외국인으로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불법체류자의 강제퇴거시에도 이들의 기본적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인권기준이다.

 

미얀마 시민들은 어떨까? 얼마 전 라카인주 17개 타운십 중 15곳에서 15만 명의 승려와 불교도가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로힝자 국내난민을 지원하는 유엔난민기구와 국제시민단체의 활동중단과 추방을 요구했다. 이는 현재 미얀마 전역에 퍼져있는 반무슬림 정서와 혐오, 그리고 차별관행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고, 앞으로 '무슬림 = 테러리스트' 프레임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로힝자 이슈는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랜 역사, 정치, 경제, 종교 영역의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인구 69%의 버마족을 포함한 135개 인종과 인구 79%의 불교도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연방국가. 영국식민지배와 그 훨씬 이전부터 그리고 독립 이후에도 지속된 버마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수많은 소수민족과의 내전, 소수민족 무장세력에 대한 군부정권의 소탕작전과 그로 인한 인권침해 그리고 소수민족 문화말살정책(버마화).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도 한편에서 소수민족과 내전을 치르고 있는 NLD정부의 이중적 상황. 군대, 내무부, 국경부 등을 장악하고 의회의 25% 의석을 점하여 헌법 개정을 저지할 수 있으며 대통령의 통제를 받지 않는 군부의 존재. 군부 또는 이들 자본을 기반으로 한 기업 주도의 경제개발프로젝트에 따른 토지 약탈과 강제로 추방되는 로힝자를 포함한 소수민족 사람들의 처지. 군부의 관리를 받아온 극우 불교도 승려 주도의 혐오와 차별관행의 전국적 확산 그리고 누군가 의도한 왜곡된 정보의 확산과 이로 인해 점차 빈번하게 발생하는 마을공동체에서의 반무슬림 폭력사태. 문제의 본질은 열거된 모든 것 이상(beyond)의 종합이다.  

 

▲ 강간 피해자 로힝자 사람 ⓒAbul Kalam 
 

8월 23일, UN인권특별보고관에게 듣는 '미얀마의 로힝자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가치는 로힝자 사람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이들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일이다. 이들의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는 일이다. 이것으로부터 지속가능한 해결은 시작된다. 무고한 로힝자 민간인에 대한 인종청소는 중단되어야 한다. 무장헬기를 동원한 무차별 폭격, 근거리 사격에 따른 살해, 무차별적인 구타, 자의적 체포와 구금 그리고 이어지는 강제실종, 고문과 적법절차의 부인, 여성에 가해지는 집단강간과 성폭력, 민간인 주택의 방화와 가축, 식량, 장신구 등의 재산 약탈 등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 이 사건에 대하여 독립적이고 공정한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회복적 정의 실현과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나아가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은 7500여 명의 난민과 2만여 명의 국내난민들에게 인도주의 지원이 시급하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 보건, 식량, 교육 분야의 심각한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 이들에 대한 인신매매 등 2차 피해도 우려된다.  

 

필자가 만난 어느 로힝자 피해생존자 모하메드는 평화롭게 살고 싶단다. 자신은 미얀마에서 태어나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정부는 미얀마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고 싶어도 제약이 따랐고 이제는 군부의 탄압으로 방글라데시에 난민이 되었다.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지 않으면 아마도 살 수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고는 눈물을 터트리며 물었다.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필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지난 9년간 열거하지 않아도 우린 안다. 너무 바빴다. 일상으로 돌아간 지금,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이들과 무엇을 하며 연대할 것인가. 우리는 이제 로힝자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연대의 마음으로 오는 8월 23일 저녁 7시, 서울시 NPO 센터 '품다'에서 열리는 'UN인권특별보고관에게 듣는 미얀마의 로힝자 이야기' 자리를 마련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 [함께듣기] 아시아팟 3회 / 버마의 '로힝쟈',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 프레시안에서 보기 >> 

화, 2017/08/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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