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만이 아니라 나쁜 선례에서도 배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격언이다. 지난 대통령의 사례 역시 대통령이 견지해야 할 민주적 통치 규범과 관련해 큰 교훈을 준다.
우선, 역사 해석을 바꾸려는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정교과서 문제만큼 이를 잘 보여준 사례도 없다. 역사에 대한 보수적 시각 못지않게 다른 시각도 존재해야 하고 다양한 관점이 다퉈질 수 있어야 민주사회라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역사를 재정의하겠다고 하면 부작용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건국절 논란을 자초한 문재인 대통령도 생각할 점이 있어 보인다.
여야와 국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의 역할을, 대통령의 통치 행위를 뒷받침하는 종속적 역할로 낮춰 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강조해야겠다. 권위주의에서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도자로서 정치에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스스로 정치가로서 변화를 이끄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이를 경시한 사례도 드물다.
재임 기간 내내 국회, 야당과 함께 일하기보다는 그 밖에서 지시하고 요구만 했다. 급기야 국회와 야당을 적폐로 몬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민주주의는 ‘법에 의한 통치’의 원리 위에 서 있고, 그런 의미에서 ‘시민 주권의 제1부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입법부라는 사실이 중시되어야 한다.
박정희 정권 때의 ‘구악일소’나 전두환 정권 때의 ‘사회정화’처럼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앞세운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점이다. 이것들은 하나의 옳음만 정당화될 수 있는 정치 언어이자, 반대할 수가 없는 강요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다원주의를 억압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성장이냐 분배냐 혹은 안보 우선이냐 평화 우선이냐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처럼, 서로 다른 가치를 두고 경쟁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사회를 통합하는 효과를 갖는 민주적 정치 언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정치가 적폐 세력과 적폐척결 세력의 싸움으로 정의되면, 나머지 세력은 적폐옹호 세력, 방조 세력으로 단순화되게 마련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세력을 배신자로 공격하려는 열정도 제어되지 못한다. 독일을 대표하는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강조했듯 ‘자신이 옳기 위해 도덕적 심판의 구도를 불러들이는 일은 정치적 범죄 행위’라는 경계심이 규범화돼야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대통령이 적극적인 지지자를 앞세워 정치를 압박하려 한 것 또한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국민 소통을 강조했다지만, 실제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을 증폭시키는 채널만 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반향에 있었다. 합창에 비유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와 적극적 반대자의 강한 목소리만 들리는, 양극화 정치의 극단적 심화를 낳았기 때문이다. 주변이 적극적 지지자로 채워지면 대통령은 소외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특별한 일로 기록될 대통령 탄핵과 새누리당 붕괴는 촛불 시위 이전에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추종 세력을 앞세워 당내 경선과 선거를 지배하려 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 모든 일은 결국 국민을 앞세우는 한편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反)정치주의로 귀결되었다. 대통령이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은 최악의 일이었다. 이런 무모한 일에 당당했던 건 국민의 지지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고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오래 걸리고 지루하고 소란스러운 민주적 정치 과정을 견디기 싫어하는 대통령일수록 정치를 탓하며 국민을 불러들이려는 조급증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를 개혁을 바라는 국민과 일치시키고, 그 맞은편에 파당적 이익만 얻으려는 사악한 정치 집단을 설정한 뒤, 이들 때문에 대통령이 일을 못한다는 희생자 이미지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국민을 위한, 국민의 대통령’이길 바라지만 정치 때문에 일이 안 된다는 생각은 군주의 태도이지 정치가의 자세는 아니라는 사실을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실패를 통해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통치 모델을 보여줄까? 아니면 적폐 청산을 앞세워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대통령,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며 대의제를 우회하려는 대통령, 극성 지지자 저편에서 이미지로만 보이는 대통령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도 돌아볼 일이 아닌가 한다.
안녕하세요? 노동당 서울 종로중구당협 당원 윤자형입니다. 저는 2009년부터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GG, 持志)에서 활동해왔으며, 성노동자의 시민권‧건강권‧노동권 등 삶의 기본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전 세계의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합니다. 저는 다른 생산직 혹은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들을 지지하며, 성노동자가 일터 안에서든 밖에서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공장에서 일하건,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일하건, 집창촌 혹은 안마방에서 일하건 간에 한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 당시에 제가 다니던 대학의 총여학생회는 학내 성폭력과 ‘양성평등’ 문제에 집중했었고, 총여학생회 선거의 최대 이슈는 여학생 휴게실 확충과 생리 공결제도 도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학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저 역시 성폭력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내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비싼 등록금 및 취업난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을 성매매 문제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양성평등’보다 여러 성정체성을 포함할 수 있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써야겠다는 반성, 이웃 대학의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모두 양성쓰기와 ‘포르노 안 보기 운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 대학에도 이 운동을 제안하자는 의견, 성매매와 성산업은 성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니 여성주의자로서 이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학내 활동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논의의 전부였습니다.
성매매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더욱 쉽게 비하하고 대상화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성매매 여성 스스로가 알든 모르든 성매매 여성은 성차별적 구조의 ‘피해자’라고 믿었던 저에게,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는 다소 낯선 것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는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가 시켜서 거리에 나온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제정신인 피해자들이라면 업주에게 강요받지 않은 이상, 성매매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데모까지 할 리 없다는 것이었지요. 저도 한동안은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가 포주의 강요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친구로부터 “손가락을 사용해서 안마를 해주고 돈을 버는 것과 성기를 사용해서 섹스를 해주고 돈을 버는 것의 차이점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명쾌한 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성행위는 돈을 받고 하면 안 되는 것이지? 성이 나쁜가, 돈이 나쁜가?’ ‘다른 노동과 성매매가 다른 점은 무엇이지?’ ‘도덕주의자와 여성주의자의 반성매매는 어떻게 다르지?’ ‘성매매 여성의 존재는 정말로 여성의 지위를 악화시킬까? 그럼 남창(男娼)의 존재는?’ ‘성매매 여성이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는 이유는 무엇이지?’ ‘생계를 유지하려고 자발적인 성매매를 하는 것은 왜 범죄지? 더 나쁜 일들 중에도 합법인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명품가방을 사려고 술집에서 일하는 건 왜 나쁜 것이지?’
이런 질문들을 간직한 채 대학을 졸업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아는 선생님을 통해 한 통의 이메일을 전달받은 저는 ‘성노동’이라는 말도 ‘성노동자운동’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성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를 준비하는 모임이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고, 이곳에 참석하면 그 동안의 의문점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갔던 곳이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준비모임’이었지요. 지지는 6년의 활동기간 내내 무엇보다도 매춘에 대한 낙인을 가장 크게 문제 삼았고, 저 역시 여기에 동의합니다. 성노동이 불법인 것, 이로 인해 성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성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숨겨야만 하고 이로 인해 정당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매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기 때문입니다.
성노동자운동과 연을 맺고 지내는 동안 제가 단순히 성노동을 하는 당사자 활동가들 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노동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모든 이에게 필요한 이유는, 이 문제가 여성 및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기득권의 도덕 및 성적 억압, 계급, 장애인, 대학교육 등 온갖 주제를 포함하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지에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성노동자운동이 이야기하는 것이 저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이며, 성적인 억압을 느끼며 살아왔고, 돈 없는 계급에 속해 있으며, 달마다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각자만의 이유로 성노동자운동에 관련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지의 《똑바로 나를 보라 2》는 예전에 저도 했었던 질문들을 무대와 객석에 올리고, 관객과 배우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준비한 토론 연극입니다. 대본을 쓰신 노동당원 사미숙 씨는 “제가 지어낸 대사는 하나도 없어요. 전부 성매매를 반대하는 사람들 글이나 발언에서 나왔던 건데 그대로 정리만 한 거예요”라고 합니다. 어떤 대사들인지는 공연에 오셔서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매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신 적이 있다면, 공연 날 데자뷰를 체험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끝으로,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활동가 도균의 글을 소개하며 제 글을 마칩니다.
<성노동자 활동가 도균의 글>
《똑바로 나를 보라 2》 제작이 결정될 때만 해도 나는 굉장히 자신감에 차있었다. 작년에 연극 제작에 처음 참여해본 초짜 중의 초짜지만 나는 자신만만했다. 어쩌면 연극 제작 경험도, 연극 관람 경험도 거의 없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2014년 인권연극제 참여작 《똑바로 나를 보라 1》과는 달리 《똑바로 나를 보라 2》가 토론극 형식으로 바뀌고,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가면서 나는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나를 가장 멘붕하게 만든 것은 즉흥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아니었다.* 과거에 성노동을 했었고, 지지에 가입해서 1년 넘게 활동해온 당사자 활동가인 나는 나름대로 성노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토론 파트 연습을 할 때마다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거나 같은 문장만 반복하곤 했다. 토론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다. 다른 활동을 할 때 당사자‧활동가라는 정체성이 그 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보하지도 않고 내가 그 운동, 그 집단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고 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에 대해서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성노동자니까, 지지의 활동가니까 섹스와 성노동에 대해 잘 알고, 금기나 혐오로부터도 자유로울 거라는 막연한 환상. 그리고 이 연극이 성노동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내가 이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계몽하는 수단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성노동자라고 커밍아웃하고 활동을 하는 것은, 결코 내가 성노동에 대한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서가 아니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고 활동하는 것은 성노동에 대한 이 세상과 나 자신의 혐오를 똑바로 보고 그에 맞서기 위함이다. 성적 엄숙주의와 매춘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20여 년을 살아왔고, 이곳에서 훈육된 것들을** 내가 성노동을 한다고 해서, 활동을 한다고 해서 바로 털어낼 수는 없다.
이번 공연에 관객으로 참석하는 분들과 서로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나도, 지지의 다른 활동가들도, 관객들도, 단지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또 그 과정을 통해 이 연극을 연습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다.
나는 《똑바로 나를 보라》라는 연극의 제목을 오로지 주인공 나용자(성노동자)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로만 해석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똑바로 나용자를 보는 것 외에도 똑바로 마주봐야할 “나”가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질문이 궁금하다. 그리고 당신에게 질문하고 싶다. 똑바로 “나”를 볼 수 있나요?
* 물론 내가 디테일하게 연기를 잘하거나 즉흥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다 정 안되면 포기하면 편하다.
** 굳이 낙태 비디오를 틀어주던 고등학교 때의 성교육뿐만 아니라 내가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에는 성노동에 대한 혐오가 당연하고 그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이라는 전제가 깔여있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너희 엄마 창녀는 가장 심한 욕이었고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우리 엄마를 창녀다(a.k.a 엄창)가 또래들 사이에서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최근 프레시안이 마련한 대담(“결선투표제가 개헌 사항? 점쟁이 독심술하나?”)에서 사회자는 “결선 투표제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난관은 이를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이다”라며 토론을 시작했다.
결선투표에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결선투표제를 하면 단일화 게임에 매몰된 대선 과정이 뒤바뀌어서 정책경쟁이 활발해진다.
사생결단식의 상호적대를 벗어나서 정당 간 연합이 활성화되어 협치가 자리 잡는다.
소수 정당도 자신의 정책노선을 앞세워 선거완주를 할 수 있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된 유권자는 종전처럼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고통 없이 자신의 진정한 선호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의제도에 대한 효능감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당선된 대통령은 50% 이상의 지지로 당선된 만큼 지금보다 한층 높은 정통성(legitimacy)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기대에 따르면 결선투표제는 우리 현실에서 정언명령이요,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없다.
전혀 다른 학계의 논의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 대통령제 연구는 사실상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를 경험한 신생민주주의 연구의 일환으로 발전해 왔다.
대통령제를 비교연구하는 학문 공동체 안에서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라고 묻는다면 이 또한 우문으로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경험분석에 따르면 “결선투표제는 정말 나쁜 제도인가?”가 오히려 적절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는 과반 이상의 득표자가 없을 때, 한 번 더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제도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사례에 대한 비교정치학적 분석이 요구된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46829)
후안 린즈(Juan Linz), 아르투로 바렌주엘라(Arturo Valenzuela), 마크 존스(Mark Jones), 아니발 페레즈-니난(Aníbal Pérez-Liñán) 등 절대 다수가 결선투표제는 대통령 선출방식으로 위험하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이들의 반대논리를 살펴보기 전에 결선투표제가 부각된 이유를 우선 살펴보자.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며, 실지로 많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도입했고, 그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배경
(대통령 선출방식이 아니라) 선거제도 일반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결선투표제는 단순다수제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1등만 하면 득표율과 무관하게 당선되는 단순다수제에서 이른바 ‘콩도세 승자’가 당선자가 되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콩도세 승자(Condorcet winner)란 일대일로 붙였을 때 다른 모든 후보를 누를 수 있는 후보를 말한다.
하지만, 단순다수제에서는 상대 진영의 분열로 인해 어부지리로 1위가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화 이후 첫 대선이었던 1987년 선거이다. 민주정의당 노태우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 27.04%를 각각 득표했다. 노태우 후보는 과반은커녕 채 4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위, 3위의 지지층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므로 당선의 정통성과 집권의 통치력이 모두 낮을 수밖에 없었다.
진보진영에서 결선투표제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은 것은 1987년 대선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야권 분열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선투표제의 도입 여부는 단순히 대선의 승리 여부 뿐 아니라 정당체제 등 정치질서 전반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사진 출처: https://kr.pinterest.com/kiss7kiss/?redirected=1)
당시 콩도세 승자는 김영삼이었으며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각주3)
세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로 인해 민주주의가 무너진 사례가 있는데, 바로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다.
1970년 칠레 대선에서 인민연합(Unidad Popular)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는 36.6%로 당선되었는데, 2위가 35.3%, 3위가 28.1% 득표했다. 대통령이 된 아옌데는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주요공약을 이행했다.
물가동결, 임금인상, 석탄 및 철강산업 국유화, 주요 구리광산과 시중은행의 국유화 등. 그 결과는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이었고, 3년 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선거연구자들은 이를 ‘아옌데 신드롬’이라면서, 단순다수제에서 취약한 지지기반으로 승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태로 이해한다.
아옌데 신드롬은 이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대거 민주화되면서 선거제도를 설계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과반, 즉 절대다수(majority)에 이르지 못하고, 상대다수(plurality)에 그칠 경우 상위권에 대해 재선거를 하는 것이 결선투표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한적’(qualified) 상대다수 제도를 취하기도 했는데, 꼭 50%가 아니라 40%로 관문을 낮춘 경우도 있고, 1위가 30% 득표하더라도 2위와의 격차가 10%p. 이상이면 승자로 선언하는 경우도 있다. 재선거를 하더라도 다른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면, 또 한번 선거를 치르며 많은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2차 투표의 가능성이 열려 있게 되면 후보난립으로 정당의 파편화(fragmentation)가 우려되기도 한다.(각주4)
아래 <표>에서 절대다수나 제한적 상대다수제를 취하는 경우는 모두 결선투표를 갖고 있는 제도이다. 반면, 상대다수제도가 한번 선거에서 1표라도 많은 1위 득표자가 승리하는 단순다수제이다.
결선투표제의 문제점
만약 결선투표제를 했다면 1987년 한국과 1970년 칠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노태우와 아옌데는 당선되지 않았거나, 정책노선을 한결 온건화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상 어부지리로 당선된 노태우는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을 맞이했고, 국회에 끌려 다니다 급기야 3당합당을 추진했다. 남북기본합의서, 북방외교 등 당시 보수정권으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조치도 취한 것도 이러한 수세적 상황과 관계돼 있다.
아옌데가 결선투표에 가야했다면, 2위였던 호르헤 알레산드리(Jorge Alessandri)와 재대결하고, 3위 기독민주당의 토믹(Radomiro Tomic)이 획득한 표(28.1%)를 서로 가져오려고 경쟁을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옌데는 당선을 위해 공약을 대폭 수정해서라도, 산토끼를 가져오고 집토끼를 어느 정도 잃어버리는 모험을 감행했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콩도세 승자가 당선되고 정치안정과 지속가능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기대할 수 있다.
(1) 결선투표제는 콩도세 승자를 당선시킬까?
앞서 보았듯이, 단순다수제에서는 콩도세 승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할 개연성이 있다.
메릴 3세(Samuel Merrill Ⅲ)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두 제도를 비교했는데, 결선투표제에서는 콩도세 승자가 당선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각주6)
하지만, 확률이 높아질 뿐 결선투표제가 언제나 콩도세 승자를 당선시키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메릴 3세의 연구는 후보자수가 같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데, 결선투표제는 후보자를 증가시키기 마련이고, 이 경우에는 오히려 콩도세 승자가 당선될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각주7)
(2) 결선투표제와 후보자 증가, 정당파편화
결선투표제는 유효한 득표를 하는 후보자 수를 증가시킨다.
단순다수제라면 어차피 당선되기 어렵다는 전망 때문이거나, 괜히 완주했다가 자신보다 이념거리가 먼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우려해서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는 이러한 걱정이 한결 줄어든다. 소수정파로서는 1차 투표에서 자신의 세를 보여주기만 하면, 2차에서 구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경험연구에서 결선투표제는 후보자수를 증가시키고 정당파편화를 가져온다고 밝혀왔다.
선가가 있을 때마다 소수 정당들을 거대 여당에 맞서 야권단일화의 압력을 받았으며, 이는 소수 진보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로 인식됐다. 그러나 다양한 정당의 출현이라는 잇점이 있지만, 동시에 다당제 하에서 대통령의 통치가능성 저하라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결선투표제 도입은 결국 우리 정치체제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ziksir.com/ziksir/view/2918)
소수정당에게는 세력을 확대하고 자신의 의제를 내세울 기회가 되지만, 집권세력에게는 통치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와 민주화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헌정위기이고 정당파편화와 대통령-의회 간 교착이야말로 최대의 위험으로 간주돼 왔다. 이런 맥락에서 관련 학자들은 다수가 결선투표제를 반대해 왔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담론에서는 양대 정당의 독식구조가 주로 문제시돼 왔고, 이를 해체하기 위한 제도개혁으로 결선투표제가 제시되고 있다.
“정치안정과 통치력의 확보”와 “다양한 세력의 진출 허용”이라는 두 목표는 서로 대체 관계(trade-off)에 있다. 하나가 강화되면 다른 하나는 약화된다.
현재는‘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한다는 명분 때문에, 집권 대통령의 통치력 부족 사태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하다.
(3) 정통성 제고
30, 40%로 당선되는 것보다는 50%를 넘는 득표를 통해서 당선되면 유권자의 절반이상의 지지이므로 대표로서 정통성(legitimacy)이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페레즈-니난의 경험분석(각주8)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2년까지 모든 대통령선거를 통해서 단순다수제에서 당선된 대통령의 지지율은 48.4%이며, 결선투표제의 승자가 1차에서 득표한 비율은 44.2%이다.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런데도 굳이 결선투표를 해야만 하는가에 의문이 든다.
결선을 치르는 한 과반이 뽑히기 마련이지만, 1차 투표에서는 오히려 득표기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선자는 오히려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2차 결과는 제조된 과반(manipulated majority)일 뿐, 진정한 의미의 과반은 아니며, 2차에서 연합하는 인센티브는 특정 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 모이자는 부정적 합의(negative consensus)이기 십상이다.(각주9)
당선자의 취약한 기반을 확인하는 것은 한편으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소수의 선택을 갖고도 전체를 대변하는 양 정부를 운영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단순다수제에 비해 결선투표제의 제조된 과반이 질적으로 다른 정통성을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다. 애초에 지지세가 약하므로 다른 후보들의 지지를 가져와서 통치기반을 확대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지지기반을 갖게 되기도 한다.
더구나 2차투표에서 투표율이 낮아지는 게 일반적인 만큼, 이렇게 제조된 과반이 부여하는 정통성에 대해서도 의문부호는 남는 것이다.
(4) 순위 변경의 효과
일반적으로 단순다수제나 결선투표제나 실제 선거결과에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드물게라도 두 제도에서 결과가 달라진다면 결선투표제는 이런 상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단순다수제였다면 끝나버렸을 1차 투표에서 2위에 머무른 후보가 2차에서 1위로 올라선다면, 이것을 결선투표제의 진정한 효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레즈-니난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경우가 결선투표제가 낳는 진정한 위험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79-2002년 사이에 1차 결과가 2차에서 뒤집힌 경우는 7차례에 불과한데, 많은 경우 헌정위기로 이어졌다. 그의 통계분석에 따르면 헌정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결선투표제 자체보다 1, 2차의 1위자가 뒤바뀌는 경우이다.
에콰도르에서 1996년에 당선된 부카람(Abdalá Bucaram)은 1차에서 23%만 득표하고도 2차에서 54%를 얻어 당선되었다. 부카람의 롤도시스타당(Partido Roldosista Ecuatoriano)은 의회에서 23%의 의석만 갖고 있었고, 연합을 구성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6개월 여 만에 8%까지 내려앉았다. 의회 반대파와 대규모 시위가 결합되어 결국에는 탄핵되고 말았다.
페루의 후지모리도 1990년 선거에서 1차 33%, 2차 62%로 당선되었지만, 의회와 끊임없이 갈등하다가 1992년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과테말라의 엘리아스(Jorge Serrano Elías)도 1991년 1차 26%, 2차 68%로 당선되었고 의회와 교착이 지속되었다. 그는 후지모리와 같은 해법을 모색하다가 국내외 압력에 직면해서 1993년 중도사퇴하고 해외로 망명하였다.
(5) 전략투표가 아닌 진심투표
단순다수제에서 소수정파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경우 진정한 선호대로 투표하는 진심투표(sincere voting)를 하게 되면 사표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성향의 유권자는 할 수 없이 차선이나 차악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되거나, 기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선투표제에서는 적어도 1차 투표까지 소수파도 완주할 수 있으므로, 유권자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하지만,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동전의 양면처럼 후보난립을 수반한다. 더구나 2차 투표에 가서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이 과정에서 1차에 비해 투표율 하락이 일어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6) 정략적 합종연횡 문제
현재와 같은 단순다수제에서도 누굴 당선시키느냐보다 누굴 떨어뜨리느냐하는 부정적 연합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른바, 단일화 게임이 선거과정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도 1차 이후 2차 선거를 앞두고 보다 노골적인 연합게임을 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http://politicstory.tistory.com/770) 2012년 프랑스 대선은 ‘제조된 과반’이라는 결선투표제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2차 투표에서 범진보연합과 범보수연합이 결성됐고, 결국 범진보연합의 올랑드가 51.6%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게 제조된 과반으로 구성된 정부는 내부에 비토세력을 갖게 된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 대변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통치안정성이 낮은 것이기도 하다.
바깥으로는 의회가, 안으로는 연합상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행 제도에 비해 소수정당이 정책의제나 공직진출을 노릴 수 있게 되지만, 통치력이 약해지는 것 또한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불안정한 정당체제와 결선투표제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소수정당에게는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가 생길 것이고, 1차 투표에서는 지금보다 정책을 둘러싼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
우려되는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후보난립, 정당난립의 가능성이 크다.
개별 유권자 입장에서는 선호에 꼭 맞는 후보를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만, 당선 후의 통치가능성을 낮출 확률 또한 높아진다. 특히, 1, 2차 선거에서 순위변경이 통치력 약화를 가져오는 게 중대한 위협이라 할 수 있다. 앞서 페레즈-니난의 연구는 정당체제가 불안정할수록 이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교연구에서 정당체제의 제도화 내지 안정성을 측정하는 지표는 선거변동성(electoral volatility)이다. 선거 간 정당에 대한 지지가 이동한 정도를 말하는 데,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지지정당을 바꾼다면 그만큼 정당체제는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각주10)은 1945년 이래 현재까지 67개 민주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618번의 선거기간 선거변동성을 보여준다.(각주11)
<그림>에서 보다시피 한국의 정당체제는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정당체제가 불안정하다.
일반적으로 정당체제의 안정은 민주주의의 지속기간에 비례하는 데 한국은 민주화 이후 시간이 흘러도 정당 체제의 안정성은 크게 강화되지 못하고 있는 예외적인 국가 중의 하나이다.
현행 제도에서도 오로지 선거승리를 위해서 당을 깨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며, 새로 만들기도 하며, 없애기도 한다. 오로지 선거승리를 위해서 정책과 이념은 뒷전이고 후보와 세력 간 합종연횡을 추구한다.
이러한 정당체제의 불안정은 한국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선투표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이로 인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수파들에게는 결선투표제는 매력적인 대안이다. 주로 원내․외 진보정당들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이들 세력은 진보적인 의제를 실천할 기회를 갖기 위해 오랜 기간 고투해 왔으며, 현재까지 이룬 성과도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거 때면 급부상하는 정치적 아웃사이더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등장으로 진보정당이 어렵사리 쌓은 공든탑은 번번이 침식되어 왔다. 언론과 재벌, 관료 사회는 정치적 회의주의 확산을 주도해 왔고, 이는 언제나 현재의 정치세력 바깥에서 대안을 찾게 만든다.
결선투표제로 열리는 공간은 사실 현재의 정당행위자보다는 정치적 아웃사이더들에게 훨씬 넓게 열릴 것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통해서 등장하는 신생정당이라면 오로지 대통령 권력을 겨냥한 “떴다방” 같은 정당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정당이 늘어나는 다당제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다.
양대 정당의 독점구조를 해체하고 다양한 이념과 정책이 대표체제에 반영되도록 하려면 차라리 의회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지난 7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 자리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8·15 특별사면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필요한 범위와 대상을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제한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4년 1월 29일 딱 한 차례 특별사면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그 때도 기업인과 정치인 등은 배제했습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특사의 규모와 대상에 대해 정치권과 대기업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사 로비 의혹이 불거진 지난 4월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특히 경제인 특별사면은 납득할 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13일 회의에서 내수 진작과 수출 활성화 등을 언급함에 따라 재계 인사에 대한 대규모 사면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법무무로부터 건국이후 사면 내역 전체를 입수했습니다. 이 자료를 살펴보니 정부수립 이후 지난 65년 간 총 98회에 걸쳐 638만여 명이 사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광복절 특사는 총 26번 이루어졌습니다.
형을 선고받은 특정인을 지정한 특별사면은 지금까지 94회에 걸쳐 31만1천여 명이 받았는데 김대중 정부때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윤보선,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순이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 때 사면자가 많은 것은 학생사범을 대거 특사로 사면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정한 형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집행을 면해주는 일반사면의 경우 역시 김대중 정부(547만여 명)에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이명박(32만여 명), 노무현(12만여 명), 전두환(13만여 명), 김영삼(1만여 명) 정부 순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일반사면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81만여 명에 대해 운전면허벌점 등에 대한 대규모 감면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역대 정권별 특별사면 횟수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특별사면과 동시에 복권된 사람은 특별사면에 포함했고 두 번 이상 특별사면 받은 사람은 중복해서 집계됐습니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특별사면을 실시하는 이유에 대해 대부분 ‘국민대통합’이나 ‘경제활성화’와 같은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 대통령 측근, 대기업 간부 같은 특정 계층만 혜택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특사가 단행될 때마다 거기에 포함된 정계와 재계 주요 인물들이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수천억 원을 횡령하거나 배임한 혐의로 구속된 대기업 총수들이 빨리 특사를 받고 경영에 복귀하는 일이 반복돼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2002년 이후 특별사면된 기업인 수입니다. 이는 법무부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정부별로 살펴보면 노무현 정권에서 121명으로 가장 많은 기업인 특사가 있었고, 이명박 정권에서도 107명의 기업인이 특사를 받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장 많은 기업인이 특별사면된 것은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광복절 특사 때로 74명이었습니다.
다음은 2002년 이후 특별사면 주요 인물을 정리한 표입니다. 이는 법무부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표입니다.
프랑스 대선의 유력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 공식 선언을 앞두고 혁명(R´evolution)’이라는 책을 냈다. 1977년생으로 40살이 안 된 젊은 정치인과 어울리는 제목이다.
하지만 마크롱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온건한 성향을 보인다.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국민전선) 후보에 맞서 ’중도’에 닻을 내리고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유럽에는 네덜란드(3월), 프랑스(4월), 독일(9월)이 선거를 앞두고 있다. 오는 4월 프랑스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마크롱 전 경제장관이 지난 2월 프랑스 중부 리용에서 유세를 하며 두 팔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 출처: AFP)
민심을 잃은 집권 사회당을 뒤로하고 좌우를 아우르겠다며 지난해 ’앙마르슈(En Marche·전진)’을 창당한 마크롱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르펜을 결선 투표에서 꺾을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르펜의 돌풍에 우려를 표하던 유럽 사회와 언론도 39살 젊은 후보의 혜성 같은 등장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최근 ‘중도’를 내세워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전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비슷한 전략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좌우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중도노선은 언제나 어려운 실험이다.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프랑스 대선에서 마크롱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4월 프랑스 대선은 중도우파 피용(맨 왼쪽), 극우파 르펜(가운데), 중도파 마크롱의 3파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피용은 가족의 세비횡령 스캔들로 고전하고 있고, 르펜은 극우파 집권을 우려하는 여론에 의해 당선 가능성이 낮다. 현재로서는 이래저래 마크롱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올랭드정부에서 경제부장관…친기업 성향
마크롱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이다. 그는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로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에서 일한 은행원이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대통령 부실장으로 발탁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고, 2014년 36살의 나이로 경제산업부 장관이 됐다.
‘올랑드 키드’로서 그는 사회당의 금기를 건드리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대통령실 부실장 당시 “상위 1%에게 75%의 고세율을 부과하겠다”던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백지화하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400억 유로(약 49조9940억 원) 세금을 감면해주는 ‘책임 협약’을 추진했다.
진보 정당인 사회당 정부의 장관임에도 주 35시간 노동을 비판하며 노동시간 연장을 밀어붙였고, 해고 조건 완화 등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며 노동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주 35시간 노동제는 사회당의 상징과 같은 정책이기도 하다. 이에 공개 행사에서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던진 달걀에 머리를 맞고, “꺼져”라는 야유를 듣기도 했다. 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파리 샹젤리제 등 관광지구에 있는 상점의 일요일, 심야영업 제한을 완화하기도 했다.
2014년 9월, 엘리제궁에서 경제장관 시절의 마크롱이 생태, 지속가능성장 장관인 세골린 루야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장 왼쪽의 올랭드 대통령은 루야얄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 결별했었다.
그는 티셔츠를 입고 시위하는 노동자에게 “정장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분노를 사기도 했고, 젊은이들에게 “백만장자가 되려고 노력하라”고 권하는 등 좌충우돌 행보를 보였다.
결국 친기업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사회당 내부에서 강한 반반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우클릭’에 영국 <가디언>은 “사회당 옷을 입은 우파 늑대”라고, 프랑스 <르몽드>는 “좌파에겐 짜증 나는 아이러니, 우파에겐 호기심”이라고 평가했다.
경제-보수, 사회-진보…중도전략
하지만 이러한 그의 전략은 그를 단숨에 대선후보의 지위에 올렸다. 이에 그는 독자 노선을 택했다. 마크롱은 장관 재직 중이던 지난해 4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앙마르슈를 창당하고 8월에는 장관직을 사임한 뒤 대선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진(En Marche)은 정당이라기 보다는 정치운동단체에 가깝다. 사진은 마크롱이 지난 4월, 전진 출범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마크롱 전략은 ‘경제는 보수, 종교·평등·이민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진보’다.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내며 르펜과 각을 세우고 있다. 르펜으로 대표되는 극단주의의 물결을 막고, 보수·진보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자유주의적 진보주의자’로 포지셔닝 한 것이다.
실제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새로운 정치운동에 도전하겠다”고 중도에 깃발을 꽂자, 우파 쪽에서 그에게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국민전선 등 극우세력의 돌풍에 우려를 표하거나 기성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끼는 사회당, 공화당 중도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이다.
25살 연상과 결혼
그는 정치 이력보다 25살 연상의 아내인 브리지트 트로뉴의 존재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17살이었던 마크롱은 3명의 자녀를 둔 40살의 교사 트로뉴를 처음 만난 뒤 적극적인 구애로 2007년 결혼에 이르렀다.
마크롱은 현재 7명의 의붓손자가 있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파리마치> 인터뷰를 가지며 부부가 해변을 걷는 사진을 공개하는 등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25살 연상의 여선생님이었던 브리지트 트로뉴와의 로맨스는 마크롱의 주요 득표요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위장결혼이라는 풍문도 흘러나온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OP’와 ‘피 뒤 시알’이 3월1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르펜의 1차 투표 지지율은 26%, 마크롱의 지지율은 25.5%를 기록했다.
우파의 유력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공화당)가 세비 횡령 혐의와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휩싸이면서 추락하는 가운데 마크롱은 르펜을 막을 대안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극우세력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르펜이 확장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크롱이 2위로 결선 투표에 오를 경우 프랑스 대통령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문제는 그의 중도전략이 계속 위력을 발휘하느냐에 달렸다. 중도 노선은 일단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쉬우나 복잡하게 꼬인 개별 사안에서 “이도 저도 아니다”, “애매모호하다”는 공격을 받으며 지지를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마크롱은 지난 2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를 방문해 프랑스 식민통치가 “반인권적 범죄”라고 했다가 보수파의 집중 공격을 받고 사과했다. 피용은 “우리 역사에 대한 이런 증오와 회개는 공화국의 대선 후보로서는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도저도 아니거나…혹은 미래의 대통령?
파리정치대학의 뤼크 루방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마크롱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전략 때문에 덫에 빠질 것이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극단적 중도파>에서 영국 좌파 지식인 타리크 알리는 “내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주류 정치에 이름 붙인 ‘극단적 중도파(extreme centre)’는 바로 이렇게 체제에 봉사하면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겁 많고 고분고분한 정치인들을 뜻한다”고 중도 노선을 비판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인 올랭드는 낮은 인기때문에 재선을 포기했다. 그는 오랜기간 마크롱의 멘토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새정치’라는 기치를 내걸고 중도 노선을 취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시행착오를 겪고, 최근 안희정 지사가 ’선의’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연상되기도 한다.
물론 기성 정치인과 차별화된 젊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가진 마크롱의 돌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과거 마크롱을 두고 “정말 똑똑한 젊은이”라며 “언젠가 대통령이 될 재능이 확실히 있다고 믿는다.”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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