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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 반공주의의 종언과 평화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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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 반공주의의 종언과 평화복지국가

익명 (미확인) | 일, 2018/07/01- 13:16

반공주의의 종언과 평화복지국가1)

 

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반공주의의 종언

무겁고 낡은 반공주의의 사슬이 끊어지는 것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수감은 박정희식 반공개발독재의 환상에서 우리를 깨웠다.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민생파탄과 민주주의의 퇴행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경제성장만 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반공개발독재의 최면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곧 박정희 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체제의 근원이었던 반공주의라는 오래된 사슬에 묶여있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반공주의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로 무장한 색깔론은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개혁세력을 공격하는 전가의 보도였다. 정부여당의 개헌안에 대해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은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한국을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려는 불순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색깔론을 덧씌우면 괴물이 되고 마는 세상이었다. 더욱이 북미 간의 적대행위는 한반도에서 죽음의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을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협박했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이라고 비난하면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단행하겠다.”라고 응수했다. 약삭빠른 아베 정권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에 체류 중인 일본인을 피난시킬 대책을 총선 공약에 넣어 발표했다. 또다시 우리의 운명이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결정될 것 같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역사가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가 그렇게 증오했던 ‘빨갱이’ ‘주사파’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며 평화와 민족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았던,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손을 맞잡고, 서로를 상찬하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드디어 우리 손으로 반공주의의 사슬을 끊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더 이상 반공과 반북을 빌미로 개혁적 변화를 가로막는 구태를 반복할 수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의 목적은 국민에게 보다 더 나은 삶을 보장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려는 반공주의의 산물이었다. 반공을 위한 죽음을 건 체제경쟁에서 사람의 안위가 존재할 공간은 없었다. 어떻게든 경제를 성장시켜 공산당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국가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에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이슈로 제기되었지만, 사실상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NLL을 둘러싼 반공주의였다.

 

한반도에서 남북한 권위주의 세력의 적대적 공존이 사라지고 평화체제가 실현되어 남북이 모두 한반도의 주체로 승인되는 순간 한국 사회에서 반북·반공의 정치적 효용성은 사라질 것이다. 대신 분배를 둘러싸고 계급과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경합을 벌이는 민주적 장이 열릴 것이다. 이제 누구도 두려움 없이 사회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자본주의의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릴 것이다. 정의와 평등을 외치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빨갱이’라는 사슬에 묶여 고통 받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이렇게 한국 복지국가의 새로운 길을 여는 역사적 변곡점이 될 것이다. 상상해 보라. ‘빨갱이’이라는 올가미 같은 사슬이 끊어지고, 보수와 진보가 민생을 위한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그날을. 이렇게 남북화해와 북미화해로 시작된 반공주의의 종언은 한국 사회가 박정희식 반공개발독재에서 벗어나 평화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열 것이다.

 

ⓒ 청와대 홈페이지

 

 

평화복지국가

평화복지국가는 반공주의와 경제성장 제일주의라는 반공개발국가를 대신해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평화복지국가에 대한 선험적(先驗的)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회체제의 성격이 그렇듯 평화복지국가는 한국사회의 사회·정치·경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의되는 것으로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권위주의적)반공개발국가의 대척점에 서있는 대안체제이다. 평화복지국가는 남북한의 극한대결을 조장하고, 한국사회 내부에서는 반대세력과 진보적 정치세력을 탄압하며 민주주의를 무력화·형애(荊艾)화시키는 반공주의(반북주의)의 존립근거인 한반도의 적대적 분단 상황과 동북아시아의 냉전적 대결상황을 평화체제로 대체한다. 이를 통해 평화복지국가는 한국사회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재벌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 성장방식을 지양하는 사회가 시장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함으로써 성장의 결과가 공정히 분배되는 복지체제이다. 

 

물론 평화복지국가는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최종목표는 아니다. 스웨덴 복지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사회가 실현해야할 평화복지국가는 우리들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잠정적 유토피아(Provisoriska utopie)가 되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복지국가는 어떤 고정된 도그마를 주장하지 않는다. 평화복지국가의 모습은 국내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그런 대안체제이다. 평화복지국가가 우리가 꿈꾸어야하는 최종목적지가 될 수는 없지만 평화복지국가는 우리가 매 시기 직면하는 구조적 조건이라는 가능성의 한계 내에서 모든 시민들이 선택하는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어야한다. 이를 위해 평화복지국가는 1945년 해방공간에서 민족의 절대다수가 지지했던 민주주의에 기반 한 사회주의, 즉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을 21세기 한반도에 창조적으로 재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평화복지국가인가? 한반도에서 남북 간의 적대적 대결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 내에서 민주주의도, 복지국가도 완전할 수 없다. 첫째, 반공주의(반북주의)는 단순히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을 넘어 (권위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진보세력을 억압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동원됨으로써 한국 복지국가를 건설할 주체인 친복지 정치세력의 형성과 성장을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반도 분단은 남한에서 사회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모든 좌파적, 진보적 이념과 그 결사체를 불법화하고 탄압하는 강력한 반공국가를 출현시켰다. 둘째, 평화복지국가는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일국적 과제가 아닌 국제적 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과 북미·북중 관계에서 보듯 한반도 평화문제는 일국적 문제가 아닌 동북아시아와 세계적 안보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제는 일국적 차원을 넘어 한반도에서 냉전과 대립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확대하는 과정을 전제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제는 남북한의 대립은 물론 한반도를 둘러싸고 지속되고 있는 한·미·일과 북·중·러 간의 냉전적 대립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다(구갑우, 2010; 김연철, 2013; 황지환, 2009).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53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는 1953년 전쟁당사국들이 맺었던 정전협정이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정전협정의 틀도 해체된 상태이다. 2013년 3월 5일 북한이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함으로써 현재 상태는 단지 서로에 대한 물리적 위협만이 공포의 균형 상태를 유지시키고 있는 상황이다(김연철, 2013). 현실적 과제는 당위적 통일이 아니라 남북한을 둘러싼 적대적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현재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통일이라는 최종목표에 다다르는 임시 정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은 한반도 남북 모두에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논리와 이념의 정당성을 약화시킴으로써 남북한 모두가 분단으로 인한 이념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민주적 정치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으로 조성된 평화적 여건은 한국사회가 ‘반공주의(반북주의)’라는 냉전적 이념 구도에서 벗어나 국가가 시장의 이해를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 되는 복지체제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할 것이다.

 

평화복지국가의 주체와 복지체제

그렇다면 누가 평화복지국가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한반도 평화구축이 그렇듯이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철저히 정치적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복지국가를 만들어갈 주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평화복지국가는 단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복지국가는 어느 한 정치세력(예를 들어 노동계급)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체제가 아니다. 복지국가는 정치세력 간의 연대(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연대)의 산물이다. 문제는 ‘평화복지국가를 실현할 주체와 연대세력이 누구인가’이다. 북서유럽의 경험을 보면, 노동계급이 복지국가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계급이 당시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고통 받고 불안정한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이야기해 노동계급이 의식적으로 복지국가의 주체가 되었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자본주의의 모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했고, 이렇게 구성된 노동계급이 자신들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중간계급과 연대해 복지국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평화복지국가의 주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반세기가 넘게 지속된 분단과 (권위주의적) 개발국가로 인해 가장 고통 받는 집단이다. 분단과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언론, 출판, 결사, 사상의 자유를 보장 받지 못하고, 생계의 위협에 내몰리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적 지식인,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여성, 농민, 청년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사회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평화복지국가의 주체가 되어야하는 당위성과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은 권위주의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지지키 위해 투쟁했던 경험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당면한 사회적 위험, 즉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싸워온 연대의 역사적 경험이 전무 하다는 것이다. 평화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바로 이들이 현실 생활문제에 대해 타협하고 연대해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 개발국가와 맞서는 연대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역사적 과정이 되어야한다.

 

어찌 보면 이렇게 다양한 계층을 하나의 주체로 구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노동계급 또한 처음부터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계급이 아니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는 대장장이, 벽돌공, 제화공 등 지금으로 보면 자영업자들이 자신들을 노동계급이라고 선언했고, 영국에서는 술집주인, 서적판매인, 전문직업인, 수직공, 면방적공, 장인, 소마스터 등을 노동계급이라고 분류했다(Sasson, 2014[2014]:66; Thompson, 1966: 610, 771). 중요한 것은 이토록 상이한 집단들이 노동계급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구성하고, 현실사회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조직화되고, 정치세력화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밝히는 것이다. 현실 자본주의로부터 고통 받고 있다는 당위만으로는 이들을 정체성을 공유한 정치적 세력으로 만들어 갈 수 없다. 당위를 실천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현실보다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전망’이다. 북서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1860년대부터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는 마르크스주의가, 1917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는 사민주의가 노동계급의 정치적 실천을 위한 대안이념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 개발국가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지금 보다 더 나은 미래를 보여줄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전망을 분단으로 비롯된 반공주의를 대신해 ‘한반도 평화’를,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의존하는 신자유주의 개발국가를 대신해 민주적 복지국가를 한국사회에서 실현하는 ‘평화복지국가’라고 주장한다.  

 

글을 마치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적대적 대립이 평화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불완전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사회의 과제는 평화복지국가를 만들어갈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주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반북주의와 신자유주의 개발주의로 가장 고통 받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여성, 청년, 농민, 진보적 지식인이다. 조직노동이 평화복지국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유보적이다. 복지국가의 전통적 주체였던 대기업 중심의 조직노동이 평화복지국가를 만들어갈 주체가 될지 아니면 주체의 연대의 대상이 될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판단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현 상태에서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평화복지국가를 만들어갈 주체가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조직노동이 주체가 아닌 연대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북서유럽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북서유럽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특정계급이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고정된 경험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 고용, 소득, 기업복지를 보장 받는 조직노동에게 국가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그리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에 근거했을 때 북서유럽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주체”는 그 시대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직노동은 북서유럽에서 중간계급이 했던 (연대의 대상이라는) 역할을 한국사회에서 수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들 주체에 의해 만들어질 평화복지국가는 주체들이 직면하는 사회위험에 대응하는 복지체제가 되어야한다. 평화복지국가는 중장기적으로 노동자의 숙련에 기초한 성장체제를 구축하고,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확대함으로써 이들에게 안정적 일을 보장해 주어야한다. 하지만 노동숙련과 안정된 고용은 단기간에 성취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평화복지국가는 시민들의 노동시장 지위와 관계없이 시민들의 기본생활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확대하는 복지체제가 되어야한다. 기여금에 기반 한 사회보험을 폐기하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청년, 농민, 여성들이 전통적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여에 기반 한 사회보험을 평화복지국가의 분배제도의 근간으로 둘 수는 없다. 평화복지국가의 근간은 기여와 관계없이 시민권에 기반 해 생활(소득과 사회서비스)이 보장되는 사회적 분배중심의 복지체제를 구축해야한다. 사회보험의 강화는 평화복지국가를 만들어갈 주체의 연대세력인 정규직 중심의 조직노동의 이해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배치될 수 있다. 평화복지국가는 시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각자의 성취에 따라 급여를 차등적으로 보장하는 복지체제이다. 한국 사회가 북서유럽이 걸어갔던 복지국가의 길을 걸어가야 할 이유도 당위도 없다. 모든 사회는 분배체계와 함께 존속될 수 있고, 최선의 분배체계는 그 사회가 직면한 역사적 현실에 근거해 구성되는 것이다. 

 

평화복지국가는 분단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한국사회가 만들어갈 역사적 분배체계이자 1945년 해방공간에서 우리민족이 꿈꾸었던 사민주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평화복지국가를 이 땅에 실현할 때 70여 년 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저항했던 수많은 영령들께서 편안히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 이다.

 


1) 이 글은 아래의 글에서 발췌하여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힘.

윤홍식. (2016). “한국 복지굮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바라보기: 반공개발국가에서 평화복지국가로.” 이병천·윤홍식·구갑우 편,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 pp. 91-143. 서울: 사회평론. 

 한국일보. (2018). [아침을 열며] 반공주의의 종언. 한국일보, 2018년 5월 18일.


<참고문헌>

구갑우. (2010). “녹색·평화국가론과 한반도 평화체제.” 『통일과 평화』, 2(1): 3-44.

김연철. (2013). “동아시아 질서와 한반도 평화체제 전망” 『경제와 사회』, 99:12-35.

황지환. (2009). “한반도평화체제 구상의 이상과 현실.” 『평화연구』, 17(1): 113-136. 

Sassoon, D. (2014[2014]) 『사회주의 100년: 20세기 서유럽좌파 정당의 흥망성쇠』. 강주헌·김민수·강순이·정미현·김보은 옮김(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 The West European left in the twentieth century, 2014 ed.). 서울: 황소걸음.

Thompson, E. P. (1966[1963]).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New York, NY: Vintag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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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재판 거래’ 피해자 강정·밀양 입장 발표 기자회견

강정·밀양 주민들 서울 상경 밀양 대책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발 예정

 

일시 장소 : 06. 08. (금) 11:00, 대법원 동문 앞

 

취지와 목적

  • 지난 6/5(화) 법원 행정처가 공개한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에 인용된 내부 문건에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판결과 밀양 송전탑 건설 관련 판결이 적시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대법원이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밀양 송전탑 건설 관련 판결을 두고 정권과 ‘재판 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강정과 밀양의 주민들이 믿었던 사법부의 독립성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문건에 언급된 판결들은 정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데 근거가 되었던 판결들로, 대법원이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사실상 ‘기획’한 것이 아닌지 주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판결은 2012년 대법원이 원고(강정마을 주민들)가 일부 승소했던 1심, 2심 판례를 뒤엎고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파기 환송한 판결입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 관련 판결은 2013년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이 한전의 주민들에 대한 공사방해금지가처분을 인용 결정한 판결, 주민들의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기각 결정한 판결입니다. 
  • 이에 양승태 대법원 ‘재판 거래’ 피해자 강정·밀양 주민들은 6/8(금) 오전 11시,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입장과 향후 계획을 밝힐 예정입니다. 기자회견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제주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 제주해군기지 전국대책회의가 공동 개최합니다. 기자회견 이후 밀양 대책위는 검찰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할 예정이며,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등은 향후 고발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개요

  • 양승태 대법원 ‘재판 거래’ 피해자 강정·밀양 공동 입장 발표 기자회견
  • 일시 장소 : 2018. 06. 08. 금 11:00, 대법원 동문 앞 
  • 주최 :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제주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 제주해군기지 전국대책회의

 

대법원 문건 중 강정·밀양 판결 부분

 

대법원 문건

 

 

보도협조 [원문보기/다운로드]

 

목, 2018/06/0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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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인터뷰 | 조준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기록 및 정리 |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신체적, 정신적 차이가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오래 전부터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시설로 보내 격리시킴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장을 사전에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 장애인을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예원 변호사다. 김예원 변호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법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2017년 초 1인 법률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장애인을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해 오늘도 발로 뛰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를 만나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장애인권법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예원이라고 한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재단법인 동천에 있었고, 이후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3년 정도 일했다. 
 

공익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법 연수생들은 2달 정도 연수를 하게 되어있다. 일종의 실습인 것이다. 당시 몇몇의 연수생들과 함께 여태 해보지 못한 활동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아 시민사회단체를 찾아갔다. 그렇게 몇몇 연수생이 난민, 장애인, 이주외국인, 성폭력 등 관련 단체로 흩어져 활동을 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인권침해가 상시적으로, 장기간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권력관계로 인해 문제제기를 못하는 수준이었다.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명확했다. 이 상황을 목도한 연수생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매주 만나 회의를 했다. 결국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아 공익전담 변호사를 세우기로 했다. 
 

공익전담변호사를 세우는 과정은 어땠나? 

당시 연수원 동기가 약 1,000명이었는데, 단순하게 일인당 1만 원만 걷어도 3명의 월급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수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팜플렛을 만들고, 거리홍보도 했다. 다행히 공감대를 얻어 약 3억 6천만 원을 모았고, 3명의 공익전담변호사를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그 3명이 현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류민희, 김동현 변호사와 세월호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던 배희철 변호사다. 
 

여러 분야 중 특별히 장애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앞서 소개한 공익전담변호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는 당사자가 되기보다는 펀드레이징을 역할을 담당했다. 연수원 수료 이후에도 개인적으로는 공공기관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설립한 재단법인 동천에 입사하게 되었다. 동천은 공익법률지원 등 법률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을 주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어떤 숭고한 뜻을 가지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장애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장애인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개인적 특수성일 수 있지만 나는 기득권(?)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했고, 합기도, 검도, 호신술을 배워 힘도 셌다. 결국 장애인 권리를 보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경험한 차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건들을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건, 어떤 사건들이었나?

2012년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이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검색사이트에 ‘원주 사랑의집’, ‘원주 장목사’라고 검색하면 사건 내용이 나올 정도다. 당시 사건을 접했을 때는 이미 장애인 21명 중 4명만이 생존해 있었고 나머지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중 한명도 직장암 말기로 곧 사망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여자인데도 주민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더라. 생일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청력이 너무 떨어져서 청각장애 신청을 하러 갔는데 청각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귀지가 3센티나 쌓여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후 생존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너무 다행스럽게도 그분들이 지역사회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홍천 실로암 사건’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 계시던 한 분은 지적장애만 낮은 정도로 있던 상태였는데 입소한지 일 년 만에 사망했다. 욕창 때문에 엉덩이뼈가 보일정도로, 어떤 보호도 되고 있지 않았다. 반면 시설장은 횡령은 기본이고,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며 제대로 시설을 관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원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권법센터를 만들기 전에도 계속 공익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특별히 독립단체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로펌에서 일할 때도 의미 있는 사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사건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로펌까지 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건이 일어나는 즉시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적으로 소진되어 지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 힘든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후 당사자를 직접 만나면서 일을 하기 위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로 이직을 했다.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는 피해자 등이 신고를 하면 개입하는 구조였다. 이전 보다는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많았고, 그렇게 3년 정도 일했다. 다만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이 서울시라는 공간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전화로 초기신고를 받기 때문에 도움이 정말 필요하지만 전화로 신고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신고를 할 수 있는 분들은 자기 옹호체계를 조금이라도 표현 가능한 분들인데, 발달장애, 장애여성, 장애아동은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아동 같은 경우가 너무 열악하다. 아동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주변의 옹호체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그 옹호체계가 가해자라면 더욱 답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하게 되었다.
 

장애아동의 경우가 가장 열악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동은 자신의 상황에서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장애아동은 더욱 심각하다. 그리고 장애아동의 인권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단체가 거의 없기도 하다. 
 
또한 장애아동의 권리보호는 사회적 인식개선과 제도 설계가 필요한 영역이다. 예를 들면 중증장애아동 중에는 주기적으로 석션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 내에서 석션을 못한다. 결국 중증장애아동은 일반학교에 입학하기 어렵다. 반면 일본은 간호사 입회가 가능하고 통합교육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도 법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재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법률 검토를 하는 중이다. 
 
<사진=장애인권법센터>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특별히 어떤 사건을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예은이(가명)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13살 예은이가 엄마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 핸드폰을 깨트리고 혼이 날까봐 집을 나갔다. 이후 강화도에서 예은이를 발견했는데, 예은이는 노숙인 상태였으며, 눈에 초점을 잃었고, 성폭력 흔적도 있었다. 예은이가 강화도까지 간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예은이가 집을 나간 후에 엄마가 이용하던 채팅앱에 접속을 해서, 집을 나왔다고 하니 성인남성들이 재워주겠다고 하며 예은이에게 접촉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만 13세 이상이면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보는데, 예은이는 13세 이상이었고, 법원은 이것을 성매매로 본 것이다. 그래서 처벌이며 피해보상에서 패소하였다. 안타까운 사건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문제는 성적자기결정권 부여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 없이 형식적인 부여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성폭력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관계적 교육이 부재하고 기술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다. 성폭력 상황에서는 위계, 권력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각한 피해에 이를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애여성이 성폭력을 당할 때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우리사회에서는 장애인은 비정상이라고 보고 장애인이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칭찬과 치켜세움 등을 통해 그루밍(길들이기)을 한다. 그렇다보니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도 이 상황이 거부해야 하는 폭력인지,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권리 옹호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한국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인식은 사람마다 달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대부분이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불쌍하지만 나랑 엮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가 파편화되는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변해간다고 느낀다. 
 
교육을 통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겠지만 같이 부딪히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가령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경험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는 장애인은 시설에 수용되어야하고, 사회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살기 바쁜, 척박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풍토가 심해지고 있다.
 

그런 사회의 인식을 직면하게 되면 절망스럽지 않나?

그렇다. 편견에 부딪힐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장애를 경험하지 못하고, 아니 경험이 없으면서도 완고한 편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장애인은 으레 그래야 한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부딪힐 때도 참 답답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고,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대한다. 장애인이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회라면 내가 하는 일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현재 아이가 2명이고 셋째를 임신했다고 들었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나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일종의 타임 푸어다. 그래도 센터를 꾸리는 일은 자영업이다 보니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람들을 만나면 앞으로 국회의원이나 관료가 되려고 인권운동을 하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일을 재미있게 오래 하고 싶다. 그리고 뜻이 맞는 동역자를 만나면 더욱 좋겠다. 그래서 현재도 열심히 연대하며 일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예 ‘어떤 태도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좋겠다. 사람에게 집중해 달라. 인간 대 인간으로 상호작용하면 다를 것이 없다. 장애라고 인식할수록 차이가 깊어지고 이것이 차별이 된다. 
월, 2018/01/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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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전관 과시 행동은 변호사법 위반”

참여연대가 징계 요청한 검사 경력 광고한 변호사, 1년 2개월만에 징계절차에 회부돼

 

작년 6월 1일 참여연대가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전관(前官) 과시 행위가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징계 개시 신청을 요청한 건에 대해, 올 8월(7월 24일 징계개시신청 결의, 8월 7일 진정사건 처리결과 통보)에 이르러서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개시신청을 하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징계절차 회부는 당연한 것이지만 너무 늦은 점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앞으로는 신속히 결정하여 검사 또는 판사 근무 경력을 내세워 사건을 수임하는 관행 근절에 변호사단체가 적극적으로 임하길 기대하며, 징계절차에 회부된 도 모 변호사 사건에 대해 엄한 처분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 모 변호사는 부장검사 출신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업하면서 “저는 부장검사를 끝으로 2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제 동기들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비롯하여 대부분 부장으로 있는 지금 적기라고 판단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주변인들에게 보내고 인터넷 카페에도 게시하였고, 변호사 사무실 개업 축하 행사에 현직 검찰청 특수부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참여연대는 전관(前官)을 과시한 도 모 변호사의 행위가 변호사법 제24조(품위유지의무 등) 및 제30조(연고 관계 등의 선전금지) 등을 위반한 것이라며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신속한 징계 개시 신청을 요청한 바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피조사자의 행위가 단순한 법조경력에 관한 내용을 광고한 것인지 법률사건 등의 수임을 위한 연고 관계 등을 선전한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지적하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모 인터넷 카페 자유게시판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과 수사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의 연고 등 사적인 관계를 드러낸 것이고 그 의도는 법률사건 등의 수임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될 여지가 많다”며 이와 같은 피조사자의 행위는 변호사법 제30조 연고 관계 등의 선전금지를 위반”했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도 모 변호사의 “카페 게시글들과 문자메시지는 피조사자의 공직 경력과 전문 분야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변호사업무광고규정에 따른 “광고”에 해당”되며,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의 수임을 위하여 재판이나 수사 등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의 연고 등 사적인 관계를 드러내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선전하거나 암시하는 내용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변호사업무광고규정 제4조 (광고 내용에 대한 제한) 제9호를, 서울지방변호사회 입회신청 허가 전에 글을 게시함으로써  제7조(사전광고의 금지)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참여연대는 ‘전관예우’가 관행이나 미풍약속이 아니라 변호사법 위반일 뿐이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범법행위이므로 ‘전관비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특히 당시 홍만표 변호사(전 검사장), 최유정 변호사(전 부장판사)의 전관비리로 사회적 논란이 컸던 시기였던 만큼 법원과 검찰은 제시한 전관비리 근절대책이 실제 어느 정도 근절 효과를 내고 있는지, 미흡한 점은 무엇인지 조사하여,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목, 2017/08/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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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인의 뇌물공여 및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에 대한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이하 전문 공개합니다. 

 

 

 

1심 판결문 [원문보기 / 다운로드]

2심 판결문 [원문보기 / 다운로드]

수, 2018/02/1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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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의무휴업은 합헌이다! 유통재벌은 탐욕을 멈춰라!”

복합쇼핑몰 매니저 죽음으로 내몬 ‘365일 강제영업’ 

 노동자 건강권 해치고 골목상권 짓밟는 유통재벌의 탐욕 멈춰야

대형마트의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의무휴업) 위헌소송 규탄 기자회견

일시 장소 : 2018년 3월 8일(목) 낮 12시, 헌법재판소 앞(안국역 2번 출구)

 
 
중소상인단체·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시민사회단체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는 오늘(3/8) 오후 12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명시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위헌소송 사건의 공개변론이 예정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의 건강권과 주변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유통재벌의 탐욕을 규탄하고, 헌법재판소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를 합헌으로 결정해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는 시작에 앞서 지난 2월 20일 스타필드 고양점 입법업체 매니저가 ‘365일 연중무휴’라는 영업정책과 매출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해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여 복합쇼핑몰 등도 의무휴업 대상으로 명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태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이 대형마트, SSM과 주변의 전통시장, 중소상인들의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대형마트와 SSM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마트산업노동조합 정미화 서울본부 본부장은 서비스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 보장을 위해 현재보다 의무휴업일과 영업시간 제한이 더 확대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또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기현 변호사는 이미 지난 2015년 대법원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건전한 유통질서의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발전 등과 같은 공익은 중대한 반면, 유통 대기업의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만큼 헌법재판소도 이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끝.
 
▣ 보도자료 및 기자회견문 [원문보기/다운로드]
 
 
▣ 붙임1 : 기자회견 개요
○ 제목 :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합헌이다! 유통재벌은 탐욕을 멈춰라!” 
               대형마트의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의무휴업) 위헌소송 규탄 기자회견
○ 일시장소 : 2018년 3월 8일(목) 오후 12시, 헌법재판소 앞(안국역 2번 출구)
○ 주최 :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전국유통상인협회, 민변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
○ 사회 : 김동규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
○ 순서
- 추모의 시간
- 발언1. 인태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
- 발언2. 정미화 마트산업노동조합 서울본부 본부장
- 발언3. 박기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 기자회견문 낭독
 
 
▣ 붙임2 : 기자회견문
 
유통재벌과 헌법재판소는 ‘제발 쉬고 싶다. 함께 살자.’는
중소상인과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들어라!
 
 지난 2월 20일 ‘365일 연중무휴’ 영업정책을 고수하던 한 복합쇼핑몰에서 입점업체 매니저가 해당 점포의 재고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6개월여 동안 점주가 쉰 날은 불과 3일 남짓했으며, 사망 직전 주말에는 지인에게 ‘설날에도 직원 월급을 못 줬다며 은행에 가서 비상금을 헐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은행에 간다던 월요일에 점주는 매장의 재고창고에서 발견되었고 결국 숨을 거뒀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기에 대형마트,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의 의무휴업 확대를 위해 투쟁해온 우리 중소상인단체, 노동조합, 시민사회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비통하다.
 
 대형 유통재벌의 탐욕이 빚어낸 희생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대형마트나 SSM이 입점하는 순간, 주변 지역의 전통시장상인과 골목상인들은 여지없이 매출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줄줄이 생업을 접어야만 했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24시간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에 노출되어 건강권과 휴식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어 대형마트와 SSM에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유통재벌의 탐욕으로부터 중소상인과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통재벌은 의무휴업 제도를 무력화하고자 본인들의 영업의 자유와 소비자 선택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었다고 3년에 걸친 법정공방을 벌였고, 2015년 대법원은 의무휴업 제도의 공익성이 중대하다고 이미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통재벌은 끝끝내 헌법재판소까지 와서 다시금 의무휴업 제도의 정당성을 다퉈보자고 한다. 자신들의 탐욕으로 인해 희생된 점주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그나마 대형마트와 SSM에 적용되고 있는 의무휴업제도마저도 없애자는 그들의 파렴치함에 우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유통재벌과 헌법재판소는 ‘제발 쉬고 싶다, 함께 살자’는 중소상인과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들어라!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는 합헌이다! 
 
2018. 3. 8.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목, 2018/03/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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