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복지톡] 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역

[복지톡] 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8/01/01- 18:27

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인터뷰 | 조준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기록 및 정리 |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신체적, 정신적 차이가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오래 전부터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시설로 보내 격리시킴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장을 사전에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 장애인을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예원 변호사다. 김예원 변호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법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2017년 초 1인 법률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장애인을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해 오늘도 발로 뛰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를 만나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장애인권법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예원이라고 한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재단법인 동천에 있었고, 이후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3년 정도 일했다. 
 

공익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법 연수생들은 2달 정도 연수를 하게 되어있다. 일종의 실습인 것이다. 당시 몇몇의 연수생들과 함께 여태 해보지 못한 활동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아 시민사회단체를 찾아갔다. 그렇게 몇몇 연수생이 난민, 장애인, 이주외국인, 성폭력 등 관련 단체로 흩어져 활동을 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인권침해가 상시적으로, 장기간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권력관계로 인해 문제제기를 못하는 수준이었다.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명확했다. 이 상황을 목도한 연수생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매주 만나 회의를 했다. 결국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아 공익전담 변호사를 세우기로 했다. 
 

공익전담변호사를 세우는 과정은 어땠나? 

당시 연수원 동기가 약 1,000명이었는데, 단순하게 일인당 1만 원만 걷어도 3명의 월급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수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팜플렛을 만들고, 거리홍보도 했다. 다행히 공감대를 얻어 약 3억 6천만 원을 모았고, 3명의 공익전담변호사를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그 3명이 현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류민희, 김동현 변호사와 세월호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던 배희철 변호사다. 
 

여러 분야 중 특별히 장애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앞서 소개한 공익전담변호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는 당사자가 되기보다는 펀드레이징을 역할을 담당했다. 연수원 수료 이후에도 개인적으로는 공공기관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설립한 재단법인 동천에 입사하게 되었다. 동천은 공익법률지원 등 법률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을 주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어떤 숭고한 뜻을 가지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장애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장애인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개인적 특수성일 수 있지만 나는 기득권(?)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했고, 합기도, 검도, 호신술을 배워 힘도 셌다. 결국 장애인 권리를 보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경험한 차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건들을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건, 어떤 사건들이었나?

2012년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이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검색사이트에 ‘원주 사랑의집’, ‘원주 장목사’라고 검색하면 사건 내용이 나올 정도다. 당시 사건을 접했을 때는 이미 장애인 21명 중 4명만이 생존해 있었고 나머지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중 한명도 직장암 말기로 곧 사망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여자인데도 주민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더라. 생일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청력이 너무 떨어져서 청각장애 신청을 하러 갔는데 청각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귀지가 3센티나 쌓여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후 생존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너무 다행스럽게도 그분들이 지역사회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홍천 실로암 사건’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 계시던 한 분은 지적장애만 낮은 정도로 있던 상태였는데 입소한지 일 년 만에 사망했다. 욕창 때문에 엉덩이뼈가 보일정도로, 어떤 보호도 되고 있지 않았다. 반면 시설장은 횡령은 기본이고,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며 제대로 시설을 관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원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권법센터를 만들기 전에도 계속 공익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특별히 독립단체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로펌에서 일할 때도 의미 있는 사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사건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로펌까지 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건이 일어나는 즉시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적으로 소진되어 지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 힘든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후 당사자를 직접 만나면서 일을 하기 위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로 이직을 했다.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는 피해자 등이 신고를 하면 개입하는 구조였다. 이전 보다는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많았고, 그렇게 3년 정도 일했다. 다만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이 서울시라는 공간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전화로 초기신고를 받기 때문에 도움이 정말 필요하지만 전화로 신고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신고를 할 수 있는 분들은 자기 옹호체계를 조금이라도 표현 가능한 분들인데, 발달장애, 장애여성, 장애아동은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아동 같은 경우가 너무 열악하다. 아동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주변의 옹호체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그 옹호체계가 가해자라면 더욱 답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하게 되었다.
 

장애아동의 경우가 가장 열악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동은 자신의 상황에서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장애아동은 더욱 심각하다. 그리고 장애아동의 인권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단체가 거의 없기도 하다. 
 
또한 장애아동의 권리보호는 사회적 인식개선과 제도 설계가 필요한 영역이다. 예를 들면 중증장애아동 중에는 주기적으로 석션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 내에서 석션을 못한다. 결국 중증장애아동은 일반학교에 입학하기 어렵다. 반면 일본은 간호사 입회가 가능하고 통합교육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도 법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재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법률 검토를 하는 중이다. 
 
<사진=장애인권법센터>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특별히 어떤 사건을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예은이(가명)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13살 예은이가 엄마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 핸드폰을 깨트리고 혼이 날까봐 집을 나갔다. 이후 강화도에서 예은이를 발견했는데, 예은이는 노숙인 상태였으며, 눈에 초점을 잃었고, 성폭력 흔적도 있었다. 예은이가 강화도까지 간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예은이가 집을 나간 후에 엄마가 이용하던 채팅앱에 접속을 해서, 집을 나왔다고 하니 성인남성들이 재워주겠다고 하며 예은이에게 접촉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만 13세 이상이면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보는데, 예은이는 13세 이상이었고, 법원은 이것을 성매매로 본 것이다. 그래서 처벌이며 피해보상에서 패소하였다. 안타까운 사건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문제는 성적자기결정권 부여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 없이 형식적인 부여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성폭력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관계적 교육이 부재하고 기술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다. 성폭력 상황에서는 위계, 권력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각한 피해에 이를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애여성이 성폭력을 당할 때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우리사회에서는 장애인은 비정상이라고 보고 장애인이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칭찬과 치켜세움 등을 통해 그루밍(길들이기)을 한다. 그렇다보니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도 이 상황이 거부해야 하는 폭력인지,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권리 옹호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한국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인식은 사람마다 달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대부분이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불쌍하지만 나랑 엮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가 파편화되는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변해간다고 느낀다. 
 
교육을 통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겠지만 같이 부딪히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가령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경험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는 장애인은 시설에 수용되어야하고, 사회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살기 바쁜, 척박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풍토가 심해지고 있다.
 

그런 사회의 인식을 직면하게 되면 절망스럽지 않나?

그렇다. 편견에 부딪힐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장애를 경험하지 못하고, 아니 경험이 없으면서도 완고한 편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장애인은 으레 그래야 한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부딪힐 때도 참 답답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고,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대한다. 장애인이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회라면 내가 하는 일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현재 아이가 2명이고 셋째를 임신했다고 들었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나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일종의 타임 푸어다. 그래도 센터를 꾸리는 일은 자영업이다 보니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람들을 만나면 앞으로 국회의원이나 관료가 되려고 인권운동을 하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일을 재미있게 오래 하고 싶다. 그리고 뜻이 맞는 동역자를 만나면 더욱 좋겠다. 그래서 현재도 열심히 연대하며 일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예 ‘어떤 태도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좋겠다. 사람에게 집중해 달라. 인간 대 인간으로 상호작용하면 다를 것이 없다. 장애라고 인식할수록 차이가 깊어지고 이것이 차별이 된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촛불 1주년 집담회,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촛불1주년 집담회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지난해 10월말부터 시작된 촛불은 해를 넘겨 23차례 동안 많은 것을 이뤄냈습니다. 뜨거운 겨울을 견딘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실현시켰고, 문재인 정부의 출범까지 이끌어냈습니다. 이에 지난 10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으로부터 ‘2017년 인권상’에 한국의 ‘촛불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닌 평화적 항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들 이면에 1주년 기념집회가 광화문과 여의도로 나뉘는 등 촛불시민들 사이에 내홍을 있었고, 촛불이 외쳤던 적폐청산이나 개혁입법 등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1년을 맞이한 현재, 지난 촛불이 지닌 잠재력과 한계를 성찰하고 1년 사이에 변화한 정치지형과 시민정치 담론 속에서 앞으로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의 전망을 밝히기 위해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소장 장은주)는 11월 17일(금) 오후 2시부터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촛불 1주년 집담회>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를 개최합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촛불 1주년 집담회>는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와 이승원 사회혁신리서치랩 소장,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참여해 촛불이 이뤄낸 성과와 한계, 향후 시민정치에 대한 전망 등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일시
2017년 11월 17일(금) 오후 2시
 
장소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패널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이승원 사회혁신리서치랩 소장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프로그램
14:00~15:00 <촛불 이후, 1년>
15:00~16:00 <촛불 1년, 이후>
16:00~16:30 질의응답
주최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문의

참여사회연구소 02-6712-5248, [email protected]
 

행사의 내용은 <시민과 세계>31호(2017년 12월 31일 발행)에 전문 수록될 예정입니다.

 

금, 2017/11/17- 11:54
206
0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합헌이다! 유통재벌은 탐욕을 멈춰라!”

복합쇼핑몰 매니저 죽음으로 내몬 ‘365일 강제영업’ 

 노동자 건강권 해치고 골목상권 짓밟는 유통재벌의 탐욕 멈춰야

대형마트의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의무휴업) 위헌소송 규탄 기자회견

일시 장소 : 2018년 3월 8일(목) 낮 12시, 헌법재판소 앞(안국역 2번 출구)

 
 
중소상인단체·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시민사회단체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는 오늘(3/8) 오후 12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명시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위헌소송 사건의 공개변론이 예정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의 건강권과 주변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유통재벌의 탐욕을 규탄하고, 헌법재판소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를 합헌으로 결정해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는 시작에 앞서 지난 2월 20일 스타필드 고양점 입법업체 매니저가 ‘365일 연중무휴’라는 영업정책과 매출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해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여 복합쇼핑몰 등도 의무휴업 대상으로 명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태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이 대형마트, SSM과 주변의 전통시장, 중소상인들의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대형마트와 SSM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마트산업노동조합 정미화 서울본부 본부장은 서비스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 보장을 위해 현재보다 의무휴업일과 영업시간 제한이 더 확대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또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기현 변호사는 이미 지난 2015년 대법원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건전한 유통질서의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발전 등과 같은 공익은 중대한 반면, 유통 대기업의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만큼 헌법재판소도 이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끝.
 
▣ 보도자료 및 기자회견문 [원문보기/다운로드]
 
 
▣ 붙임1 : 기자회견 개요
○ 제목 :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합헌이다! 유통재벌은 탐욕을 멈춰라!” 
               대형마트의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의무휴업) 위헌소송 규탄 기자회견
○ 일시장소 : 2018년 3월 8일(목) 오후 12시, 헌법재판소 앞(안국역 2번 출구)
○ 주최 :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전국유통상인협회, 민변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
○ 사회 : 김동규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
○ 순서
- 추모의 시간
- 발언1. 인태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
- 발언2. 정미화 마트산업노동조합 서울본부 본부장
- 발언3. 박기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 기자회견문 낭독
 
 
▣ 붙임2 : 기자회견문
 
유통재벌과 헌법재판소는 ‘제발 쉬고 싶다. 함께 살자.’는
중소상인과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들어라!
 
 지난 2월 20일 ‘365일 연중무휴’ 영업정책을 고수하던 한 복합쇼핑몰에서 입점업체 매니저가 해당 점포의 재고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6개월여 동안 점주가 쉰 날은 불과 3일 남짓했으며, 사망 직전 주말에는 지인에게 ‘설날에도 직원 월급을 못 줬다며 은행에 가서 비상금을 헐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은행에 간다던 월요일에 점주는 매장의 재고창고에서 발견되었고 결국 숨을 거뒀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기에 대형마트,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의 의무휴업 확대를 위해 투쟁해온 우리 중소상인단체, 노동조합, 시민사회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비통하다.
 
 대형 유통재벌의 탐욕이 빚어낸 희생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대형마트나 SSM이 입점하는 순간, 주변 지역의 전통시장상인과 골목상인들은 여지없이 매출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줄줄이 생업을 접어야만 했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24시간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에 노출되어 건강권과 휴식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어 대형마트와 SSM에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유통재벌의 탐욕으로부터 중소상인과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통재벌은 의무휴업 제도를 무력화하고자 본인들의 영업의 자유와 소비자 선택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었다고 3년에 걸친 법정공방을 벌였고, 2015년 대법원은 의무휴업 제도의 공익성이 중대하다고 이미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통재벌은 끝끝내 헌법재판소까지 와서 다시금 의무휴업 제도의 정당성을 다퉈보자고 한다. 자신들의 탐욕으로 인해 희생된 점주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그나마 대형마트와 SSM에 적용되고 있는 의무휴업제도마저도 없애자는 그들의 파렴치함에 우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유통재벌과 헌법재판소는 ‘제발 쉬고 싶다, 함께 살자’는 중소상인과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들어라!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는 합헌이다! 
 
2018. 3. 8.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목, 2018/03/08- 11:26
205
0

IMG_8879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이번 인터뷰는 그야말로 콩뿐만 아니라 밤도 구워 먹어보려고 속전속결로 알차게 진행하려 했다. 너무도 바쁜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찰나의 틈새를 포착해 영원처럼 부여잡아야 했기에 갑자기 시간이 되신다는 말을 듣고는 부리나케 민변으로 달려갔다. 그 동안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월례회뿐만 아니라 여러 팀 회의의 유리창 너머에는 늘 그 분이 있었다. 서울시, 참여연대 등 각종 회의에도 어김없이 그 분이 있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민생경제와 관련된 기자회견뿐 아니라 각종 현장과 토론회에도 어느새 그 분은 마이크를 잡고 계시더라. 교대와 시청, 여의도를 순간이동하며 종횡무진하시는 그 분. 라볶이를 특히 사랑하시는 그 분. 이쯤 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줘도 체력이 안 될 것 같은데, 그 분은 이를 비웃듯이 현재는 민변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시고, 최근 시국을 대비해 미르-K팀을 일찍이 조직해 현재의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분은 바로 늘 푸른 청년 변호사, 김남근 변호사님이다.

 

이혜정(이하 ‘이’) : 변호사님께 직접 소개하시라고 하긴 그렇지만, 변호사님을 모르는 신입회원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남근(이하 ‘김’) : 저는 사법연수원 28기이고요, 연수원 마치고 1999년에 변호사 개업하자마자 민변에 가입했어요. 회원 중 김진 변호사, 이재화 변호사하고 동기이구요. 장주영 변호사는 대학 동기예요. 학생 운동을 하고 감옥도 갔다 와서, 노동 운동도 8년 쯤 하다가 고시 공부를 해서 연수원에 들어갔어요. 36살 때는 노동법 학회장이었고요. 제가 주로 후배 변호사님들 모시고 참여연대, YMCA, 환경운동연합, 민변과 같은 시민사회단체를 후배 변호사들에게 소개시켜주고, 활동도 연결시켜주고, 이런 역할을 했죠.

 

후배님들! 꼭 운동하고, 밥 굶지 말고, 수줍어하지 말아요.

 IMG_8844

이 : 대외활동이 정말 많으신데, 사건 수임해서 재판도 가셔야 하고…돈은 언제 버세요?

김 : 제 나이 때쯤 되면, 시스템으로 일을 하게 돼요. 저 혼자서 상담도 다하고, 서면도 다 쓰고, 법정 나가고 이러긴 어렵고요. 우선 상담을 한 뒤에 바로 쟁점을 정리해서 사건을 어떻게 진행할지 기획하고, 기획에 따라서 쭉 자료 수집하고 서면 작성하고, 최종 감수해서 제출하는 거죠. ‘증인을 주로 통해서 할 소송이다’, ‘전문적인 사실 조회나 감정을 통해서 할 소송이다’, ‘치열한 법리 공방을 주로 해서 할 소송이다’ 이런 소송 전체에 대한 전략을 짜요. 보통 소장과 답변서가 나오면 큰 구도가 잡히잖아요. 진행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승패가 불투명하고 복잡한 사건을 많이 맡아두면 이런 활동을 할 때 어려워요. 그런 사건은 가능하면 안 맡으려고 하죠.

이 : 요즘 후배 변호사들은 변호사님 세대와 다르게 생계도 어렵고, 민변 활동을 하고 싶어도 여력이 안 된다 이런 분들이 많거든요. 가끔 내 생계도 못하는데 공익 활동도 못하니까, 더 뻘쭘해서 못 나가겠다, 이런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젊은 회원들이 민변 활동을 하면서 경제적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김 : 크게 두 가지 문제인 거 같아요. 하나는 일단, 3년 정도 숙련 과정이 필요해요. 성실하게 의뢰인과 상담도 하고, 소송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소송을 하더라도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서 하고. 그렇게 하면 신뢰가 생겨서 3년 후면, 처음에 한 의뢰인들이 그 다음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3년쯤 되면 의뢰인이 2배가 돼요.

그런데 3년 동안 너무 급해서 돈 되는 소송만 찾고, 안 되는 소송도 억지로 소송하고…이런 분들은 3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처음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처음에 기초가 잘 안 쌓여있으니 소송 능력에 대해서도 불신이 생기고, 본인의 실력도 잘 안 쌓이는 거죠.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3년 쯤 쭉 가다보면, 실력도 쌓이고, 의뢰인들과도 신뢰도 생기고, 그게 두 배쯤 되면서 안정화된다,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가만히 앉아있으면 의뢰인도 늘어나고 나의 실력도 쌓이느냐, 그런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여유가 있을 때 의식적으로 민변 같은 데에 참여를 하고, 시민 단체에도 참여하고, 필요하면 서울시나 중앙 정부에 참여해보고 하는 적극성이 필요해요. 변호사의 실력은 결국 여러 가지 케이스를 접하면서 느는 건데, 찾아오는 의뢰인만 기다리면 접할 수 있는 케이스에 한계가 있잖아요. 여기저기 많이 나와서 많이 활동하는 분들은 몇 년만 되면 금방 실력이 느는것 같아요. ‘나는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 만나는 거 싫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 싫다’, ‘어려운 거 하기 싫다’ 그러면 한계에 부딪혀요.IMG_8904

저도 대학 동기들한테 물어보면 지금 성격하고는 좀 달랐어요. 대학 때는 굉장히 어둡게, 침울하게 학교 다니고, 샤이하고 그런 사람이었어요. 시민운동을 하면서 남들과 자주 어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나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그러면서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거기에 맞춰서 필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의 소통 능력은 떨어져도 자주 어울리는 자리에 참여하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자신이 많이 배워서 다른 후배들과 소통하는 게 도움이 돼요. 아무래도 변호사나 법조인 하시는 분들이 성격 활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그런 분들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판검사, 변호사들이 성격이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소통능력이 떨어지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 법조인이 되는 게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변호사 시작할 때 똑같이 수줍음 많고 소통력 떨어지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5-6년 지나서 봤을 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의뢰인과 충실히 소통하며 하시는 분도 있고, 여전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분도 있어요. 그러니까 노력을 하면 변하는 부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변호사 초기 단계인 분들이 제일 많이 해야 할 일은 도움은 안 되더라도 사람들을 많이 접하고 상담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거라고 봐요. 물론 힘들죠. 나한테 도움이 될까 회의적이고. 당장 상담한다고 한 건의 수익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런 일들이 경험을 축적하는 기회가 돼요. 상담을 100번 하면 100개의 케이스를 접해보는 거니까. 그런 거를 많이 하시는 분은 선배들한테도 굉장히 적극적인 것 같아요. 상담을 하면 문제를 해결해야하니까 책임감이 생겨서 물어보고 그러는 거 같더라고요.

이 : 어떤 때는 참여연대에 계시다 또 민변에 계시고, 다시 서울시에 계시고, 재판도 하시고..오전에 서울변회에서 영어강의도 들으신다면서요. 대학원인지 무슨 시험도 보신다고 들었는데…아무튼 도대체 잠은 언제 주무시고 체력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거에요?

김 : 운동을 꼭 해야 해요. 헬스를 일주일에 3번하는데, 밤에. 일을 너무 막 하다보면 피로가 쌓이고 스트레스가 차고 하면 몸이 무겁고 그래요. 몸에 노폐물이 많이 쌓이잖아요.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고 나면, 쫙 빼고 나면 새로운 활력이 생기고 몸이 가벼워져요. 제가 노동 운동을 8년 정도 했는데, 저와 같이 노동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분들이 2, 3년쯤에 많이 떠나더라고요. 괜히 열정에 치우쳐서 아침도 안 먹고, 술도 많이 마시고, 그랬던 분들이 지쳐서 떠났던 거죠.

저는 공장 다닐 때도 꼭 제가 아침밥 해먹고 그랬어요. 활동을 많이 하려면 스케줄 관리를 잘 해야 되겠죠. 그리고 지적활동과 배움은 계속 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지적인 자기관리도 필요해요. 지적 활동을 안 하면 사고도, 머리도 쇠퇴되고, 사람이 그러면 보수적이 되거든요. 새로운 거에 도전하지 않고 자꾸 하던 것만 하려고 하고, 하던 것만 관리해서 살아가려고 하면 보수적으로 될 수밖에 없죠. 자꾸 새로운 거에 도전을 하려고 하고, 그런 정신을 안 놓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박근혜 정권 퇴진 특위, 민변의 역할에 대하여

 

이 : 이번 박근혜 정권 퇴진 특위의 역할이 커요. 광화문에 시민 100만 명이 모였고, 상황이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잖아요. 이 역사의 한 가운데서 민변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IMG_9001

김 : 역사라는 게 역동적인 거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면 권력 공백 상태에서 다음 권력을 만들어 낼 때 혼란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 전개될 수도 있죠. 그런 과정에서 헌법, 법률, 선거에서 전문적인 역량이 있는 법률가와 우리 민변이 해야 할 역할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불행하게도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이 완고하게 버티면서 정국이 지지부진하게 흐르면서 다 힘들어지겠죠. 어떻게 보면 정치적,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 국면일 수도 있고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기본적인 헌법과 법률의 원칙들을 잘 지켜내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우리 사회가 한 발 더 나아가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민변이나 변호사의 역할이 상당히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걸 우리가 충실히 해야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민변이 시민 사회 전체나 우리 민중 운동을 주도해 가는 단체다, 라고 생각하시는 회원분도 있으실 것 같고, 한편으로는 민중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다른 단체, 예를 들면 민주노총이나 참여연대 같은 곳이 하고 민변은 사회 변혁의 움직임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소송이나 입법이나 법률적인 의견이나 이런 것들을 지원해주는 게 더 현실적인 역할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죠. 그걸 민변 내 논의를 통해서 ‘어느 쪽이 맞다’, ‘어느 쪽으로 활동한다’라고 결판을 낼 수는 없는 것 같고, 두 가지를 잘 조화시키는 게 민변 집행부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아요. 집행부가 민변의 위치를 잘 잡아나갈 때, 대다수 회원들도 만족하고, 민변이 역동적인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민운동의 BIG PICTURE

 

이 : 민생위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민생위 분들은 특히 참여연대와 인연이 깊잖아요. 변호사님도 참여연대 활동을 많이 하시길래, 막연히 참여연대에 애정이 많으시구나 했는데 지금은 또 민변 부회장으로 계세요.

김 : 민변과 참여연대 중 어느 곳에 애정이 있느냐, 이런 건 유치하지만(웃음) 시민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시민운동의 전체적인 역량을 다 보고, 역량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치할 것인가, 대응할 것인가, 이런 관점이 있어야 해요. 민변은 민변이니까, 참여연대는 참여연대니까, 이렇게 자기 조직 입장만 생각하면서 운동하면 다 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시민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있어요. 민변 변호사님도 너무 민변 틀 안에만 있을 필요가 없죠.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역량으로만은 힘들어요.

변호사의 장점이라면 최종적으로 문제 정리 능력이 뛰어난 거예요. 우리 사회에 쟁점들이 생겼을 때 쟁점의 내용은 뭐고 그걸 최종적으로 어떻게 조합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송을 해야 한다, 법을 바꿔야한다, 문제 원인들을 정리해서 의견서를 내야한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실행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변호사들이 아무래도 최초의 문제제기를 하는 단계부터 문제에 함께 참여하기는 어렵죠. 대학교수나 연구자들이 거시적인 정책을 연구하고, 시민운동가 같은 사람들이 기동성 있게 운동을 전개할 수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저는 연구자와 시민운동가와 변호사의 삼박자가 잘 갖춰져야만 사회개혁을 할 수가 있다고 봐요. 민변 변호사님은 그 중 한 축을 담당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 저는 가능하면 역량 있는 변호사들이 밖에 나가서 여러 시민 사회 결합 활동을 하는 걸 많이 권장해요.

 

세상을 바꾸는 소셜 디자이너의 힘

 

이 : 좀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변호사님 활동력과 능력에 비추어 보면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많았을 것 같은데, 왜 정치권에 안 나가셨는지 궁금해요.IMG_9062

김 : 민생경제위원회는 경제 민주화, 민생에서 입법운동을 많이 해왔어요. 국회의원들도 끌어들여서 연대 활동도 하고, 재벌개혁 운동하시는 대중 단체와 전문가들도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해왔어요. 영어에는 deadlock(교착 상태)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어디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팽팽하다 보니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단어예요. 제가 보기엔 우리 사회가 십수 년 전부터 그런 데드락 상태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보수 입장에서도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규제를 풀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활개치는 사회로 못 나가니까 갑갑하다고 그러고. 진보 입장에서도 이미 실패한 신자유주의적인 국정 운영은 실패한 게 뻔한데, 좀 더 사회를 평등하게 끌고 나가야 하는데 거기를 한 발짝도 못가니까 갑갑하겠죠. 이런 상황에서 특히 사회적으로 위기가 와요. 진보 측 입장에서도 보수 측 입장에서도 자기들이 원하는 걸 못하는 그런 상태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해결을 꾀한다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럴 때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힘을 끌어 올리고, 전문가들을 모아내고, 큰 힘을 코디네이트 하려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봐요. 민변이나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시민 단체 간사들이나 후배님들한테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요. 우리 사회에 대한 social design을 하는 거죠.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될지 디자인하고, 그에 필요한 일들을 기획하고, 그 기획에 맞춰서 입법이 필요하면 정치권도 끌어들이는 거고, 전문가도 발굴해서 그분들과 끊임없이 소통도 하고 끌어들이고. 시민 단체들과도 결합하고.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꿀만한 힘을 모아내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해요.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겠다. 이러면 백날해도 나도 발전이 안 되고, 사회도 발전이 안 되고, 불만만 많아져요. 그래서 저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태도보다는 코디네이터적인 역할을 하자고 마음먹은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정치권에 가면 그런 코디네이터 역할은 어려운 것 같아요.

이 : 소셜 디자이너로서 사회를 코디네이트하고 조직하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그런 역할이군요. 그럼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포함해서, ‘소셜 디자이너로서 우리 사회를 위해 민변이 이런 것 좀 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나 기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IMG_8879

김 : 집회 현장에 나온 시민들은 굉장히 다종다양한 분들이잖아요. 집회를 주도하는 분들이 법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변론도 할 수 있죠. 다양한 관점과 계기에서 집회에 참여하는 다양한 시민들에게도 민변이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엔 희망 제작소가 이런 작은 소셜 디자이너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 이런 곳과 함께 기획해서 현장에 나온 조그만 단체들, 조그만 인터넷 모임들, 카페모임들한테 단체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해 보여요. 또 기존의 집회 시위와 관련해서 뿐 아니라, 세입자들을 위한 가이드북 같은 것도 해보고, 가맹점 대리점 창업 시작하는 분들한테, 창업해서 적어도 불공정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북 같은 걸 만든다든가. 그런 다양한 기획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민변 변호사만 하면 안 되고 여러 시민단체와 결합해서, 그런 쪽으로 관심을 두면 좋겠어요. 민변이 지금까지 너무 큰 담론, 큰 정책, 큰 기획에 집중했던 것 아닌가 싶고요. 많은 회원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다종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영역들을 개척해나가는 게 필요해요. 앞으로 민변이 이런 다양한 일과 기획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 오늘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바로 또 특위 회의가 있어서 이만 보내드려야 겠어요.

김 : 간단한 건 줄 알았는데, 무슨 청문회 하는 것 같아서..(웃음)

 

지속가능한 소셜 디자이너 활동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하고, 지적활동을 위한 배움을 멈추지 않는 김남근 변호사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새삼 ‘존경’이라는 두 글자를 아로새기게 되었다. 우리 사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소셜 디자이너, 김남근 변호사님을 민변이 찐하게 응원하고 애정합니다!

월, 2016/11/21- 20:17
205
0

“변호사의 전관 과시 행동은 변호사법 위반”

참여연대가 징계 요청한 검사 경력 광고한 변호사, 1년 2개월만에 징계절차에 회부돼

 

작년 6월 1일 참여연대가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전관(前官) 과시 행위가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징계 개시 신청을 요청한 건에 대해, 올 8월(7월 24일 징계개시신청 결의, 8월 7일 진정사건 처리결과 통보)에 이르러서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개시신청을 하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징계절차 회부는 당연한 것이지만 너무 늦은 점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앞으로는 신속히 결정하여 검사 또는 판사 근무 경력을 내세워 사건을 수임하는 관행 근절에 변호사단체가 적극적으로 임하길 기대하며, 징계절차에 회부된 도 모 변호사 사건에 대해 엄한 처분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 모 변호사는 부장검사 출신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업하면서 “저는 부장검사를 끝으로 2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제 동기들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비롯하여 대부분 부장으로 있는 지금 적기라고 판단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주변인들에게 보내고 인터넷 카페에도 게시하였고, 변호사 사무실 개업 축하 행사에 현직 검찰청 특수부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참여연대는 전관(前官)을 과시한 도 모 변호사의 행위가 변호사법 제24조(품위유지의무 등) 및 제30조(연고 관계 등의 선전금지) 등을 위반한 것이라며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신속한 징계 개시 신청을 요청한 바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피조사자의 행위가 단순한 법조경력에 관한 내용을 광고한 것인지 법률사건 등의 수임을 위한 연고 관계 등을 선전한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지적하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모 인터넷 카페 자유게시판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과 수사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의 연고 등 사적인 관계를 드러낸 것이고 그 의도는 법률사건 등의 수임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될 여지가 많다”며 이와 같은 피조사자의 행위는 변호사법 제30조 연고 관계 등의 선전금지를 위반”했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도 모 변호사의 “카페 게시글들과 문자메시지는 피조사자의 공직 경력과 전문 분야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변호사업무광고규정에 따른 “광고”에 해당”되며,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의 수임을 위하여 재판이나 수사 등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의 연고 등 사적인 관계를 드러내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선전하거나 암시하는 내용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변호사업무광고규정 제4조 (광고 내용에 대한 제한) 제9호를, 서울지방변호사회 입회신청 허가 전에 글을 게시함으로써  제7조(사전광고의 금지)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참여연대는 ‘전관예우’가 관행이나 미풍약속이 아니라 변호사법 위반일 뿐이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범법행위이므로 ‘전관비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특히 당시 홍만표 변호사(전 검사장), 최유정 변호사(전 부장판사)의 전관비리로 사회적 논란이 컸던 시기였던 만큼 법원과 검찰은 제시한 전관비리 근절대책이 실제 어느 정도 근절 효과를 내고 있는지, 미흡한 점은 무엇인지 조사하여,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목, 2017/08/17- 09:44
205
0

참여연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인의 뇌물공여 및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에 대한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이하 전문 공개합니다. 

 

 

 

1심 판결문 [원문보기 / 다운로드]

2심 판결문 [원문보기 / 다운로드]

수, 2018/02/14- 15:53
20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