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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바꾸자”…사상 첫 경찰개혁 전국경찰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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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바꾸자”…사상 첫 경찰개혁 전국경찰토론회

익명 (미확인) | 목, 2017/08/24- 12:43

경찰은 오랜 시간동안 국민이 아닌 권력을 보호하는 활동을 했다.

경찰 노조 만들어서 권력이 아닌 국민에게 충성하는 경찰 만들자.

감찰기능을 민간에 넘겨서 시민들에게 통제받자.

경찰 개혁과 관련해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진솔한 과거 반성과 혁신적 개혁 방안은, 놀랍게도 시민단체나 경찰에 비판적인 그룹이 아닌 현직 경찰관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한국 경찰 역사에서 처음으로 열린 경찰 개혁 관련 전국 경찰 토론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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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전에선 ‘시민과 경찰의 인권 개선을 위한 전국 경찰 대토론회’가 열렸다. 경찰 내부 온라인 커뮤니티 폴네띠앙이 주최한 이 행사엔 전국의 현직 경찰관과 행정관, 주무관 등 130여 명이 모였다. 폴네띠앙 회장 류근창 경위는 “경찰개혁위원회로부터 경찰 개혁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의견을 수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토론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일선 경찰관 등 130여 명 참석해 인권 경찰, 민주적 통제 방안 등 토론

토론회 시작 전, 폴네띠앙 관계자는 현직 경찰관들이 얼마나 참석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오후 1시 토론회가 시작될 무렵엔 미리 마련한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경찰 관계자들이 몰려왔고, 의자를 추가로 가져와 앉아야 할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토론회는 3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에선 인권경찰 실현방안으로 경찰노조의 설립, 2부는 시민 중심 치안업무를 위한 인력재배치 필요성, 3부에선 경찰 조직의 민주적 통제방안이 논의됐다.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온 양영진 경정은 1부 발제를 통해 “인권경찰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경찰노조가 설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경찰의 3가지 장애물로 경찰 내부에서 경찰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반인권적 내부문화, 시민들의 인권보호를 막는 실적 경쟁주의, 그리고 장시간 야간 교대근무에서 비롯되는 열악한 노동여건을 꼽았다. 양 경정은 “노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이 세 가지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노조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노조 설립해서 시민인권침해하는 부당 지휘에 항거하자”

전북 완주경찰서 모두성 경위는 “지휘부가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뀌는 지휘방침에 경찰개혁을 내맡길 수 없다”며 “노조가 있어야 모든 개혁과제를 유지할 추진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당장 몇 명이라도 좋으니 법적 테두리 안에서 연구회나 토론회를 만들어서 노조 설립을 진행하자”, “경찰이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지휘에 항거하려면 저항할 수 있는 내부적인 체계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노조다” 등 경찰노조 설립의 당위성을 지지하는 발언이 계속됐다.

경찰 인력 재배치를 주제로 한 2부에서는 만성적인 현장 인력 부족, 조직 내 무기계약직 차별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됐다. 발제를 맡은 충주경찰서 정현수 경사는 “경찰청은 틈만 나면 현장에서 인력을 빼내 행정 경찰 수를 늘렸다”고 지적했다. 정 경사는 “고도로 훈련된 경찰이 무기도 휴대하지 않고 전혀 위험하지도 않은 쾌적한 사무실에 앉아 행정 업무만 전담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정 경사는 해결책으로 경찰청 내에서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는 주무관(행정담당 인력)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행정업무는 이들에게 맡기고, 경찰관들은 현장으로 내보내는 인력재배치를 제안했다. 또 경찰 내에서 주무관에 대한 차별적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경찰청 주무관노조 조합원들도 그동안 비정규직으로서 받은 차별과 설움을 토로했다.

충남 아산경찰서 신중성 경정도 “경찰청의 여러 개 실무국들이 하는 일을 경찰서에서는 한 사람이 담당해서 업무가 거꾸로 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방청, 경찰청 단위에서 사법경찰이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인력재배치를 통해 주무관 분들 정원을 확보해서 행정경찰 업무를 처리하게 하고 사법경찰관을 현장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적 경쟁의 폐해도 여러차례 언급됐다. 한 경찰관은 “스티커 단속실적 등을 수치화하는 실적경쟁은 국민과 경찰을 이간질시키는 공공의 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경찰관도 “실적경쟁은 경찰관이 시민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점수로 보게 한다”며 실적경쟁은 경찰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찰 내부감찰 기능 민간에 개방해 시민 통제 받자”

3부에서는 경찰을 정권이 아닌 시민에게 봉사하게 만들 수 있는 통제방안이 논의됐다. 발제를 맡은 청주흥덕경찰서 이장표 경감은 경찰조직의 민주적 통제방안으로 경찰위원회제도의 개선과 경찰청장 직위개방제, 그리고 감찰조직 개선 등을 꼽았다.

충주경찰서 정현수 경위는 지난 4월 파면당한 표정목 경장의 사례를 들며 감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표 경장은 경찰 지휘부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과도한 실적 경쟁 지시를 내렸다는 등의 비판글을 페이스북 등에 올렸다가 ‘먼지털이식 표적감찰’을 당한 후 파면된 바 있다. 정 경위는 경찰 지휘부가 자신들의 눈밖에 난 직원을 찍어내는데 감찰 기능을 악용했다며 “경찰관의 기강 확립을 할 수 있는 주체는 딱 하나, 국민이다. 왜 지휘관이 이걸 하고 있냐”고 질타했다. 부산북부서 정학섭 경위는 “감찰이 경찰 지휘부 입맛에 맞는 감찰활동을 하니까 문제가 된다”며 “아예 민간에 개방해서 시민들에게 통제를 받으면 우리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폴네띠앙 회장 류근창 경위는 토론회 마무리 발언을 통해 “경찰청장을 앞에 두고 시나리오 없이 자유롭게 토론을 해보고 싶은데, 안타깝지만 아직은 멀었고 우리끼리 하니 서글프고 마음이 아프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이 토론회는 경찰관 처우개선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 경찰관이 국민들의 인권을 어떻게 더 잘 보호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자리”라고 재차 강조했다. 류 경위를 비롯한 폴네띠앙 회원들은 이번 토론회 내용을 정리해서 경찰개혁위에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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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에 시작한 경찰개혁 대토론회는 저녁 6시까지 이어졌다. 토론에 참석했던 경찰관들은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류근창 경위는 “분위기가 좋아지면 앞으로 2회, 3회도 토론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전둔산경찰서 민인근 경위는 “이번에는 정말 바뀌어야 하는데..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결의를 다졌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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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보훈처장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외삼촌인 강진석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한 것은 정당한 절차로 진행돼 문제없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보훈처가 서훈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국가보훈처는 오늘(6월 29일) 정책브리핑에 보도자료를 내고, “새로운 공훈심사 기준을 마련해 빠른 시일 내에 “강진석과 김형권의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정체성 및 국민 정서를 고려”해 서훈 취소 방침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 국가보훈처가 오늘(6월 29일) 내놓은 서훈 취소 보도자료.

▲ 국가보훈처가 오늘(6월 29일) 내놓은 서훈 취소 보도자료.

그러나 이 같은 보훈처의 서훈 취소 방침은 전날(6월 28일) 강진석의 건국훈장 서훈은 “정당한 절차로 진행돼” 문제가 없다는 박승춘 처장의 발언을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이다. 전날 박승춘 처장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에게도 건국훈장을 수여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북한 김일성의 친인척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이 문제없다고 답한 바 있다. 박승춘 처장의 말이 하루 만에 뒤집히면서 박승춘 체제의 보훈처가 사실상 대한민국 건국훈장 관리 능력을 상실한 것 게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와 함께 강진석 이외에 또 다른 김일성 친인척에게도 건국훈장이 추서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국가보훈처가 2012년 북한 김일성 주석의 외삼촌인 ‘강진석’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2년 전인 2010년에도 김일성 주석의 삼촌인 김형권(실제 수훈자 명단에는 김형건)에게도 건국훈장을 수여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 국회 정무위에서 업무보고 중인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오전에는 김형권이 훈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 오후에 말을 뒤집었다.

▲ 국회 정무위에서 업무보고 중인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오전에는 김형권이 훈장을 받았다고 말했다가 오후에 말을 뒤집었다.

이와 관련해 박승춘 보훈처장은 6월 28일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 중 오전 답변에서 김일성의 친삼촌인 김형권도 건국훈장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가 오후엔 “포상자 명단에 없다”고 말을 번복해 보훈처의 서훈 심사와 관리가 엉망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오늘(6월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8.15 광복절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자 가운데, 만주방면 독립유공자로 ‘김형건’이 이름이 나오는데, 이는 김형권의 다른 이름으로 북한 김일성의 삼촌이 맞다고 밝혔다. 박승춘 처장이 28일 오후 국회에서 김형권은 건국훈장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한 발언이 부정된 것이다.

실제 국가보훈처 발행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을 보면 김형건은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출신으로 “1930년 8월 국민부에 가입하여 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에서 활동했다. 압록강을 건너 함경남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일제경찰을 살상하는 등 무장투쟁을 벌이다 9월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34년 5월 옥중 순국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같은 김형건의 행적은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실린 김형권의 출생지, 활동상과 내용이 동일하며, 다만 사망연도가 1934년과 1936년으로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보훈처가 혼선을 일으키며 실수를 거듭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과연 박승춘 체제의 보훈처가 제대로 서훈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무능과 거짓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승춘 처장을 즉각 해임할 것을 촉구했다.

수, 2016/06/2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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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6일, 해경 123정보다도 4분 앞선 오전 9시 26분에 세월호 참사 현장에 도착했던 B703기가 해경 지휘라인의 지시 없이 자체적으로 위급 상황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B703은 고해상도 영상수집 장치를 통해 당시 세월호의 상황을 어떤 구조세력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해경은 당시 B703에게 세월호 내에 승객들 대부분이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반대로 B703기로부터 현장 정보를 보고받은 일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 전망이다.

“B703 임무와 활동 내역은?” 질문에 해경청장 등 ‘꿀먹은 벙어리’

12월 14일 서울 중구 YWCA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첫날 일정은 참사 당일 해경 구조세력들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조위원들 17명 가운데 여당 추천 위원 5명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증인석에는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과 김수현 당시 서해지방경찰청장, 김문홍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 그리고 구속수감 중인 김경일 123정장 등 당시 해경의 주요 지휘라인들이 모두 출석했다.

▲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2015년 12월 14일)

▲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2015년 12월 14일)

이 자리에서 김서중 특조위원은 증인들에게 “사고 당시 B703은 오전 9시 26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123정보다도 4분이나 빨랐다. 더구나 구명벌 5개가 비치돼 있고 항공구조사도 탑승할 수 있게 되어 있음에도 세월호 구조에 투입시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이춘재 당시 해경 경비안전국장과 김석균 청장은 “B703은 고정익 항공기로 핵심 임무는 현장에 투입된 항공기들에 대한 관제이고 다음 업무는 현장 상황에 대한 수집 및 보고”라며 “당시 항공구조사는 탑승하지 않은 상태여서 구조업무에 나섰다 해도 구명벌 투하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 B703기와 같은 CN235기 자료사진. 35명이 탑승할 수 있고 구명벌 5개를 보유하고 있다.

▲ B703기와 같은 CN235기 자료사진. 35명이 탑승할 수 있고 구명벌 5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이 “그렇다면 B703으로부터 받은 현장 정보는 무엇이냐”고 묻자 김석균 청장 등 해경 간부들은 하나같이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러자 김 위원은 “특조위가 당시 B703 기장이던 강두성 경정에 대해 조사한 결과, 당시 B703은 중국 어선 정찰 업무를 하던 중 진도VTS의 교신 내역을 청취하고 자체적으로 위급 상황이라고 판단해 현장으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뉴스타파가 확보한 B703의 사고 당일 전보용지에 따르면 당시 B703은 오전 7시 18분 김포공항을 이륙해 서해상 중국어선의 활동 내역에 대한 순찰 활동을 벌이다가 오전 9시 15분에 세월호 사고 관련 ‘상황 수신’에 따라 현장으로 이동해 9시 26분에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특조위에 따르면 이때의 ‘상황 수신’이 해경 지휘라인의 공식적인 지시를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B703이 진도VTS의 교신 내용을 듣고 세월호가 위급하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 2014년 4월16일 B703기 서해해상 순찰 결과보고서

▲ 2014년 4월16일 B703기 서해해상 순찰 결과보고서

김서중 위원은 이어 “강두성 기장은 당시 해경 지휘라인으로부터 세월호와 관련한 어떤 정보도 직접 받은 것이 없으며, 만약 승객들 대부분이 선내에 있었다는 정보만 있었다면 자체 판단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직접 구조에 나섰을 것이라고도 진술했다”고 말했다.

B703도 123정도 “‘승객들 선내 체류 중’ 사실 전혀 몰랐다”

B703에 대한 특조위 조사 내용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참사 당시 해경이 세월호의 선내 상황을 어느 지휘라인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구조세력을 통제했고, 이것이 현장에 도착한 어떤 구조세력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청문회의 대부분은 참사 당일 사고 접수 이후 해경 본청과 서해청, 목포서 등 주요 지휘라인 및 현장지휘정으로 지정된 123정 가운데 누구도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통해 선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경위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참사 당일 오전 9시 6분 세월호와 직접 교신에 성공한 것은 진도VTS였다. 123정이 현장으로 이동하던 9시부터 9시 30분 사이 진도VTS와 세월호의 교신 내역에는 “배가 많이 기울어져서 승객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 승객들 대부분이 선내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장완익 특조위원은 123정이 이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현장에 도착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집중 추궁했다. 이와 관련해 유연식 당시 서해청 상황담당관은 “진도VTS에서 실시간으로 상황 보고를 해줘야 하는데 보고가 늦어졌다. 또 세월호 선장이 빨리 상황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이호중 특조위원은 “수난구호법을 보면 광역구조본부인 해경은 지역구조본부를 지휘감독할 책임이 있다”며 “세월호와 교신하고 있는 진도 VTS에게 교신 내용을 보고하라고 왜 지시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이춘재 당시 해경 경비안전국장은 “하급기관은 상급기관에 당연히 보고하는 것이므로 (보고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위원은 또 “현장에 도착한 123정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경 본청에 첫 보고를 했을 때 ‘명단 작성은 안 됐냐’고 되물었다는 것은, 구조를 제대로 하기보다는 윗선에 보고할 내용을 찾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현장 투입 헬기 기장들, ‘방송장비 구비해야’ 운영 규칙도 몰라

구조 초기 시점에 현장에 투입됐던 또 다른 구조세력이었던 해경 헬기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김재전 당시 서해청항공단 B512 기장과 고영주 당시 제주청항공단 B513 기장은 하나 같이 “현장으로 이동해 구조할 때까지 접수받은 세월호 관련 정보는 전체 승객이 450여 명이라는 것뿐이었으며 선내에 대부분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이 “구조 대상에게 고지할 수단인 방송장비를 갖추지 않고 현장에 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들은 “헬기에는 방송장비가 본래부터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권 위원장이 “해경항공운영규칙 27조 6항에 따르면 수색구조에 참가하는 항공기는 생존자에게 정보전달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런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라고 재차 따져묻자 이들을 비롯해 해경 지휘라인 증인들 모두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월, 2015/12/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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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1980년대 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 당시 생산된 외무부 비밀문서(작성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되어 지난 3월 31일부터 일반에 공개됨)를 분석한 결과 겉으로는 일본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던 전두환 정부가 막후에서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눈을 감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의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습니다. 국민들은 역사를 바로 세우자며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고, 이렇게 모아진 성금은 독립기념관 건립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왜곡 내용을 시정하겠다는 약속하자 구체적인 수정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즉각 수정이 필요한 13개, 조기 수정 19개, 그리고 기타 7개 등 모두 39개 항목이었습니다. 모두 심각한 역사 왜곡들이었습니다.

2년 뒤인 1984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두환 정부는 2년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손으로 써서 외무부에 내려보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북괴가 조총련을 이용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을 이용 한일간의 이간을 노리는 바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성(‘편승’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하지 않도록 협조 하시요.

▲ 전두환 자필 지시문 1984.2.6

▲ 전두환 자필 지시문 1984.2.6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자는 주장이 북한의 배후 조종을 받은 행위라는 거였습니다. 한국 정부의 저자세를 알았던지 일본 정부는 2년 전과는 반대로 한국 정부의 요구대로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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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가 시한폭탄이라는 것을 직감한 외무부는 대책을 세웁니다. 1984년 4월에 작성된 문서에 나오는 대책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우선 정부 차원의 대책들은 대부분 실효성이 희박한 것들이었고, 대책의 상당 부분은 역사 왜곡 수정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자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국민들이 알게 되면 국익에 해가 된다며 최대한 쟁점화를 억제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1984년 6월 말 일본 정부는 역사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일 한국대사가 검정 결과를 분석해 외무부 장관에게 긴급보고한 바에 따르면 역사 왜곡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예를 들어 1982년 즉각 수정을 요구한 13개 항목 중 우선 일본의 ‘침략’ 부분은 8권 중 6권이 ‘침략’이 아닌 ‘진출’로 표현했습니다. 두 번째, 주권 박탈 항목은 13권 중 중 8권이 한국이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것처럼 기술했습니다. 의병 항목에서는 4권 중 3권이 ‘무장 반란’으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10권 중 한 곳도 시정하지 않고 ‘암살’로 기술하는 식이었습니다. 결론 부분에서 주일 대사는 언론이 이 문제를 부각시킬 경우 역사 왜곡이 다시 한일 간 외교 문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주일 대사 전문 1984.6.26

▲ 주일 대사 전문 1984.6.26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 외무부는 주일 대사의 보고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 외무부는 논평을 통해 “한국이 ‘즉각시정’ 을 요구한 사항에 대하여는 일단 대체로 시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고 발표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 외무부에 즉각 수정 대상 13개 항목 중 한 권의 교과서 만이라도 수정됐을 경우 해당 항목에서 모든 교과서가 수정된 것처럼 통보했습니다. 외무부는 주일 한국 대사의 평가와 일본 정부의 통보 중 일본 정부의 통보를 수정 결과로 발표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자국 역사를 미화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특히 전두환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국내 언론 통제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 대책의 핵심은 일본 교과서 관련 기사를 외신면에서만 다루도록 유도하고, 문공부와 외무부가 역할을 나눠 보도 통제를 시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누가 왜곡하는 것일까요?

2015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합의는 하루도 못가서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무효 주장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20여 년 동안 풀지 못했던 난제를 풀어낸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30년이 지나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관련 외교 문서가 비밀해제된다면 그제야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취재: 연다혜
촬영: 최형석

 

월, 2016/04/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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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청와대의 불법적인 KBS 보도 개입 사건과 관련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이의 통화 내용 전체를 공개합니다.

얼핏 들으면 이정현 전 수석이 읍소하고 부탁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전체 내용을 들으면 결국 두 사람의 관계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KBS 보도국장의 인사권은 KBS 사장에게 있고, KBS 사장은 KBS 이사회가 임명합니다. 그리고 KBS 이사 11명 가운데 7명은 대통령과 여당이 결정합니다. 이 같이 청와대가 사실상 KBS 사장 인사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결국 KBS 보도국장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 홍보수석은 자신의 인사권을 간접적으로 쥐고 있는 ‘상급자’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금, 2016/07/0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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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 “사회발전 시정 위해 청년수당 필요” – 日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에서 청년배당 정책 설명 – 청년 실업 해법 위한 정책적 대안이라 강조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은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하는 정책이다. 청년배당은 성남 지역에 거주하는 24세의 젊은이에게 연간 50만원 상당의 지역 상품권을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웃 일본의 경우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경기가 살아나고 청년들의 취업문이 ...
목, 2016/10/1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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