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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총리, 조세도피처 회사 통해 수백만 달러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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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총리, 조세도피처 회사 통해 수백만 달러 소유

익명 (미확인) | 월, 2016/04/04- 03:00

아이슬란드 총리, 질문을 회피했지만 대답은 계속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는 아이슬란드 은행이 발행한 수백만 개의 채권을 역외에서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금융 붕괴 이후 총리가 되었다.

기사 : 라이언 치툼(Ryan Chittum), 요하네스 Kr 크리스탠슨( Jóhannes Kr. Kristjánsson), 배스티안 오버메이어(Bastian Obermayer), 프레드릭 오베르마이어(Frederik Obermaier)

레이캬비크 – 2014년 5월 15일, 아이슬란드 총리는 의회에서 정부가 비밀 역외 회사를 이용하는 사기꾼들과 탈세를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 과연 아이슬란드도 독일처럼 역외 탈세 지역의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폭로 데이터를 구매할 것인가?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릭손 총리는 이에 대해 모호하게 말을 흐렸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유용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은, 아이슬란드가 구매를 검토했던 역외 탈세 지역 데이터들에는 귄릭손 총리 자신과 최소한 2명의 현정부 고위급 인사와 연계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국제 탐사보도언론인 협회, 독일신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 그리고 그 외 여러 제휴 언론사들이 입수한 수백만 개의 비밀 파일들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천 백만 개 이상의 문서들(1977년부터 2015년 12월까지의 이메일, 현금 지급, 회사 설립 정보 등)을 통해서 우리는 역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페이퍼 컴퍼니 등록 에이전트 가운데 하나인 파나마의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내부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파일들은 2007년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윈트리스’라고 불리는 회사를 포함, 20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개인과 회사로 등록된 약 214,488개 법인에 관한 비밀 정보를 밝혀주고 있다.

귄릭손 총리의 역외 활동

귄릭손 총리는 2008년 10월에 총리가 되었다.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지난 수 년간 행했던 투기와 사적 금융거래의 결과 불과 며칠 만에 붕괴되었던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은행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저널리스트이자 라디오-TV 방송인(그는 2004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이었던 귄릭손은 인디펜스(InDifence)라고 불린 그룹을 이끌었는데, 이 그룹은 금융 붕괴 이후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수십억 달러를 국제 채권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펼쳤다. 그 이후 두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인디펜스 그룹을 지지했고 성공적인 선거운동으로 귄릭손과 그의 당이 정권을 차지했다.

2009년 1월, 진보당은 민족주의자인 귄릭손(그는 한 때 아이슬란드 음식만으로 구성된 식사를 하기도 했다)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아이슬란드의 과거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38살이었던 2013년, 그는 해외 채권자들에 단호히 맞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택 보유자들의 채무를 구제해주며 긴축 프로그램을 끝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2015년 귄릭손 정부는 채권자들과 합의를 도출했으나 그의 그룹인 인디펜스는 이 합의가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의 가족이 (당시 합의에 따라) 채권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 덕분에 상당한 이권을 얻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유한 아이슬란드 도요다 대리점주의 딸인 귄릭손 총리의 부인이 2015년에 서명한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과 그의 부인은 2007년 12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3개의 은행 중 하나인 Landsbanki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모색 폰세카로부터 ‘윈트리스’(Wintris)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인수했다. 이들은 이 회사를 이용해 상속받은 돈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룩셈부르크와 영국에서 지점을 설립했으며 이곳에서 이들이 한 일은 고객들이 여러 자산들을 보관할 수 있는 역외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외 회사들은 탈세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아마도 몇몇 사람들이 이러한 기회를 이용했을 것입니다.” 금융위기로 붕괴된 한 소규모 은행에 대한 청산을 주도했던 레이캬비크의 변호사, Rob Jonatansson은 윈트리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다.

모색 폰세카 파일에는 ‘윈트리스’가 이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안 나오지만, 법원 기록에 의하면 ‘윈트리스’는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법원 기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은행들이 파산할 때 수백만 달러를 청구한 채권자였다.

2009년 11월 Landsbanki 은행을 청산할 당시 이사진은, 윈트리스를 1억7천4백만 크로나(16억 원)를 청구한 채권자로 등록했다. 또한 윈트리스는 2010년 1월에 Kaupthing 은행의 청구 목록에도 세 차례 언급되었으며 액면가로 2억2천1백만 크로나(20억 원)에 해당되는 채권을 보유했다. 그리고 윈트리스는 1억1천4백만 크로나(10억 6천만 원) 에 달하는 Glitnir 채권을 보유했다.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윈트리스는 금융 붕괴 이후 이 채권을 한 아이슬란드 투자자에게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귄릭손은 “벌처”와 같이 이러한 채권을 매입하는 해외 펀드들을 비판했다). 결국 윈트리스는 현재의 환율로 은행에 있는 자산 4백만 달러(금융 붕괴 이전 환율로는 8백만 달러)를 청구했다.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은행들의 파산 기록에 등장하는 채권 외에도 주식과 같은 다른 자산들을 보유했을 수도 있다.

ICIJ가 입수한 파일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4월 의회에 입성했을 때 부인과 함께 윈트리스를 공동 소유했으며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이 회사의 존재를 계속 숨겨왔다. 귄릭손 총리는 오직 상업적 활동을 하는 회사들에 대해서만 보고 의무가 있다며 아이슬란드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의회 사무 총장은 모든 회사에 대해 보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윈트리스의 채권은 여전히 액면가의 15%에서 30% 정도에 해당되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12월 31일 윈트리스 지분의 절반을 1달러에 자신의 부인에게 매각했다.

2016년 3월 15일에 총리 부인 Pálsdóttir는 처음으로 이 조세 도피처 회사를 공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그녀는 “이 회사의 존재는 절대로 비밀이 아니었다”라고 언급했다. Pálsdóttir는 지난 2007년 귄릭손과 그녀가 해외에서 거주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때 자신이 윈트리스를 설립했으며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받은 자금을 투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명했다.

이 글에 게시된 것은, ICIJ 제휴사인 레이캬비크 미디어와 SVT(스웨덴 공영 텔레비전)가 카메라 인터뷰에서 귄릭손 총리에게 윈트리스에 대해 질문하고 난 지 4일 뒤의 일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SVT는 귄릭손에게 조세 도피처 회사를 소유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제가요? 없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아이슬란드 회사들은 조세 도피처 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노동조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제가 가진 모든 자산과 제 가족의 자산에 대한 모든 세금을 납부했습니다. 따라서 어디에도 숨겨진 자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슬란드 정치가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뭔가에 대해서 비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절대로 숨겨진 자산이 없다는 것에 대해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윈트리스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귄릭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회사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제가 이사로 활동했던 여러 회사들 중 하나와 관련되어 있으며 제가 언급했듯 이 회사는 설립 이래 계속해서 세금 계정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들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제 세금 신고서에 있는 회사에 대해 저에게 질문을 할 때 마치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저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귄릭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터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로부터 4일 후에 Pálsdóttir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윈트리스에 있는 자산이 오로지 자신의 것이며 귄릭손이 공동 소유자로 등록된 것은 은행의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9년 이 실수를 확인한 뒤 실수를 바로잡아 그녀가 이 회사의 단독 소유자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이 자신의 지분을 Pálsdóttir에게 매각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Pálsdóttir는 이 자산이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얻은 자금 중 일부이며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항상 납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귄릭손의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공개적으로 설명된 것처럼 귄릭손 총리와 그의 부인은 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자산과 증권, 2008년 이후의 세금 환급 등에 대해 모두 신고하는 등 아이슬란드 법을 준수했습니다.

귄릭손의 정치적 입장이 이 채권의 가치를 높여주었는지 혹은 손상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이슬란드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Þórólfur Matthíasson은 이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총리 그 자신 이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외 회사를 운영하는 정치가들

이 문서는 다른 아이슬란드 정치가들의 자산 운용에 대해서도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기업가들과 똑같은 형태로 자산을 운용해서 이득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귄릭손 총리의 정치적 동료이자 아이슬란드 금융경제 장관인 Bjarni Benediktsson은 2015년 2월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인터뷰에서 “저는 조세 도피처 같은 곳에 자산을 보관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Benediktsson은 지난 2005년, 다른 2명의 아이슬란드 사업가들과 함께 인도양의 악명 높은 비밀 조세 도피처인 세이셸에 모색 폰세카가 설립한 ‘팰슨’(Falson & Co)이라는 이름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 “위임권”이라고 알려진 권한을 함께 소유했다. 위임권은 이 3명이 회사의 거래를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팰슨’은 무기명 주식을 발행했다. 무기명 주식은 누구든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해주는 주식이다. 누군가의 이름으로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기밀 보안에 더 유리하다. 무기명 주식은 사기와 탈세에 널리 이용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불법이 되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팰슨은 2012년 세이셸의 기업등록부에서 삭제될 때까지 페이퍼 컴퍼니로 이용되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회나 일반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

ICIJ와 제휴 언론사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이’팰슨’에 대해 물었을 때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두바이에서 건설 중인 4개의 아파트를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자신이 회사의 지분 3분의 1을 소유했었다고 대답했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법인을 통해서 처리할 수 있는 편의성을 위해서 지주회사를 설립합니다. ‘팰슨’의 소유자들이 2008년 이 회사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아파트가 완공되기도 전에 이 자산이 매각되었고 결국 이 자산은 손실을 안고서 매각되었습니다. 이 자산의 처분에 제가 관여했다는 점은 지난 수년 동안 공개된 정보였습니다.”

이 두바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난 2010년 아이슬란드 신문사인 DV가 입수한 이메일을 근거로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Benedikts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소유권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나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대한 소유권을 아이슬란드의 세무 당국에 신고했습니다.” ‘팰슨’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의회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Benediktsson은 “(공개) 규정은 2009년 5월에 시행되었으며 당시에 저는 운영 중인 사업체나 신고해야 할 부동산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뒤 Benediktsson은 Falson의 제휴자 중 1명으로부터 이 회사의 사업이 2009년 9월까지 청산되지 않았음을 언급한 서신을 받아 이를 ICIJ에 제출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2008년 11월에 인수 합의를 취소한 이후에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 이후부터 ‘팰슨’은 이 재산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소유자가 확인될 때까지 이 회사의 유일한 목적은 상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세 도피처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던 지난해의 인터뷰와 관련해 Benediktsson은 “저는 조세 도피인는 세이셸에 이 회사가 등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룩셈부르크 회사로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내각 구성원인 Ólöf Nordal 내무부 장관 역시 2006년 11월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비밀 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둘리 시큐어리티 SA’라는 회사를,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 모색 폰세카로부터 사들였다. ‘윈트리스’나 ‘팰슨’과 마찬가지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Nordal은 그녀의 남편 Tomas Mar Sigurdsson(미국의 거대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의 글로벌 고급 제품 사업부의 최고 운영 책임자다.)과 함께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위임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회사의 주식은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2007년 8월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으로부터 받은 융자의 담보로서 둘리의 주식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 은행은 1년 후에 붕괴되었다.

ICIJ로부터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이 알코아 스톡 옵션 매도와 관련한 과정에 대비해 이 회사를 설립하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함의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옵션을 실행하지 않았고 이 회사로 전혀 자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명확하게 저와 제 아내 모두 이 당시에(혹은 그 이후에도) 둘리 시큐어리티의 지분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어떠한 조세 도피처 회사도 갖고 있지 않으며 가진 적도 없습니다.

유출된 문서에는, 귄릭손 총리가 속해있는 진보당의 이사이자 총리의 고문을 맡고 있는 Hrólfur Ölvisson이 이 데이터에 언급된 2개의 회사(‘셀코 파이낸스’와 ‘카밀레 마케팅 SA’)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 있다. 2005년, Ölvisson은 진보당의 간부를 지냈던 Finnur Ingólfsson에게 셀코 파이낸스에 대한 지배권을 양도했다. Finnur Ingólfsson은 Kaupthing 은행이 민영화되었을 때 이 은행의 인수를 지휘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Ölvisson은 이 회사가 보험이나 다른 상품들을 아이슬란드에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들이 수년간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한 Ölvisson은 “저와 관련된 모든 일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일은 회계사가 모두 처리했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Ingólfsson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셀코’를 인수했으며 그 과정에 어떤 조세상의 이득도 없었다고 말했다.

바이킹 침입자

아이슬란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금융 분야에서 매우 뒤처져 있었다. 아이슬란드에는 1985년까지 주식시장이 없었고 이곳의 거대 은행들은 국가 소유였다.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에 국가소유로 인한 왜곡을 없앰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경제 자유화를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 정부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은행들을 민영화했고 밀려드는 해외자본은 아이슬란드 금융산업의 급속한 확장을 부추겼다. 2008년에 3개의 주요 은행인 aupthing 은행, Landsbanki 은행, Glitnir 은행의 자산은 국가 경제 규모보다 11배 더 큰 1천8백억 달러까지 팽창했으며 이것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금융 버블 중 하나였다.

언론은 아이슬란드의 거대 기업과 은행들을 새로운 바이킹 침입자라고 칭찬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 엘리트들은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해외 사업을 유치했고 개인 파티에 엘튼 존이나 50센트와 같은 뮤지션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의 어부들은 이제 투자자가 되었다.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800% 상승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 불과 3일만에 이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

아이슬란드의 거대 은행 3개가 붕괴됨으로써 국가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주식시장은 97% 폭락했고 아이슬란드 통화인 크로나 가치는 절반으로 하락했다.

아이슬란드는 거대 은행들을 국유화했고 해외 투자자들의 예치된 자금에 대해 지급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영국 및 네덜란드와의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다. 수천 명이 의회 앞에서 시위를 했고 건물에 돌과 폭죽을 집어 던졌다. 결국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 정부도 붕괴되었다. 의회는 당시의 총리였던 Geir Haarde를 과실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상징적인 조치로서 자신의 내각에 위기 상황을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 총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혼란 속에서, 아이슬란드의 고위급 은행가들 중 상당수는 조세 도피처 회사를 통해 가까운 동료들에게 돈을 보냈고 실제보다 은행이 더 건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시장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 내부자들은 서로 간에, 그리고 은행 소유자들과 주요 관계자들에게 수백억 크로나(몇 억 달러)를 융자해 줌으로써 아무런 위험 없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과 규제 기관들은 아이슬란드 은행 지분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오인하게 되었다.

엉킨 실 풀기

서구 국가들 중 오직 아이슬란드 정부만이 은행 간부들을 엄격하게 기소했고 최소 20여 명이 구속됐다. 최상위 은행 임원 7명 중 4명, 3개 거대 은행들의 주요 주주들이 모색 폰세카를 통해서 등록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을 지배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와 그 외 다른 중개인들로 인해서 이러한 거래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금융 붕괴 이후 7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행위와 보상 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금융 붕괴 이후에 구성된 특별검사 팀을 지휘했던 Olafur Hauksson은 ICIJ와 쥬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이 입수한 정보가 공개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틀림 없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뭔가가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Hauksson은 특별 검사로 임명되기 전에는 인구 6,600여명의 어촌 마을인 아크라네스의 건장한 경찰서장이었다. 당시에 그는 특별 검사직을 원했던 유일한 아이슬란드인이었다.

핵심 인사들을 구속시키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Hauksson은 조세 도피처 회사 때문에 숨겨진 기밀로 인해서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먼이나 토르톨라 등과 같은 곳에 있는 회사 그리고 룩셈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슬란드에 위치해 있는 은행들을 보십시오. 이로 인해서 사건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러 군데에 분산돼 있는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지 파악하려면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은행 부채

ICIJ가 입수한 문서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사업 거래를 은폐하고 돈을 더 많이 보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납세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글로벌 비밀 장치에서 모색 폰세카가 수행하는 상당히 폭넓은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문서들은 인구 329,000명의 작은 섬에서 형성된 엘리트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밝혀주고 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패스트-앤-루스 관행에 대해 가장 먼저 경고했던 학자이자 국회의원인 Vilhálmur Bjarnason은 “아이슬란드는 매우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가족들까지도 알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총리의 자산 운용 시점을 보면 그 중의 일부는 논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사업가들이 지배하는 기업들의 일정과 일치하는 것이 발견된다.

‘윈트리스’와 다른 두 개의 무기명 회사(이 회사들도 아이슬란드인들이 통제한다.)는 2008년 3월 같은 날에 런던의 크레딧 스위스에서 별도의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이 3개의 회사들은 각각 동일한 지명 이사들을 두고 있었다(이들은 모색 폰세카가 여러 결정들을 승인하고 소유자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공한 허수아비다). 이 3개의 회사(윈트리스, 잘 유니버설 SA,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 모두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인수되고 운영되었다.

이중에서 ‘제이드 트레이딩’과 ‘잘 유니버설’은 평범한 회사가 아니다. 이 두 회사는 아이슬란드를 혼란에 빠뜨렸던 시장 조작 스캔들에서 조사(기소되지는 않았지만)를 받은 막강한 Landsbanki 은행 임원들을 통해서 지배되고 운영되었다.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Andri Sveinsson이 지배했는데, 이 인물은 Landsbanki 은행의 회장인 Björgólfur Guðmundsson과 아이슬란드에서 최고 부자인 Guðmundsson의 아들인 Björgólfur Thor Björgólfsson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2008년 1월 ‘제이드 트레이딩’은 아이슬란드 투자자인 Sigurdur Bollason에게 위임장을 발급해 주었다. Sigurdur Bollason은 2008년 여름 동안에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Landsbanki 은행, Kaupthing 은행, Glitnir 은행으로부터 무담보 대출로 1억4천4백만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회사들을 이용했던 인물이다. 그 뒤 Bollason은 집단 소송에서 공동 피고로 지목되었고 시장조작 스캔들에 대해서 룩셈부르크의 Hauksson 특별검사 팀의 타깃이 되었다. Bollason은 기소되지 않았다.

‘잘 유니버설’ 역시 Bollason이 지배했다. ‘잘 유니버설’은 그가 지배했던 다른 회사들과 연계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는 Landsbanki 은행이 정부에 넘어가기 4일 전,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계좌로 622,000달러의 배당금을 보낸 회사도 포함되어 있다.

모색 폰세카 파일을 통해서 공개된 정보조차도 이 회사들이 정확히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이 파나마 법률 회사는 아이슬란드 은행 제도에서 사용된 기밀 체인의 핵심적인 고리이다. 이에 대한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은행, 투자 자문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와 연계된 다른 법률 회사의 내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Hauksson 특별검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일부 사례들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실제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기가 어렵습니다. 과연 이것의 배후 실세는 누구일까요? 앞으로 수사관들과 자금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간에 전투가 펼쳐질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세무 당국은 탈세자들을 찾아 미납된 세금을 회복하기 위해서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모색 폰세카와 관련된 문서들 중 일부를 구입했다. 이렇게 구입한 문서들에는 현재 귄릭손의 부인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인 ‘윈트리스’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까지 당국은 알아낸 사실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기사 원문 보기(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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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예산 확정못해 공공기관 초유 사태
이사회, 13일 이사장 해임 여부 의결

시청자미디어재단(이사장 이석우) 직원들이 1월 급여를 제때 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2017년 예산을 제대로 짜지 않은 채 새해를 맞아 시청자 권익 증진은커녕 아예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새해 예산을 정하지 못한 채 새로운 회계연도에 들어간 건 매우 드문 일. “대한민국 공공기관 역사상 처음일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재단은 예산 없이 기관 운영을 시작한 탓에 1월 1일부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을 어긴 셈이다. 이석우 이사장은 재단 사정이 이런데도 새해 들어 부서 업무카드를 여러 차례 써 ‘도덕적 해이’라는 입길에 올랐다.

무능이 부른 희극…‘예산서’조차 없어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이 재단으로부터 받아 낸 지난 12월 30일 자 ‘2016년도 시청자미디어재단 제8차 이사회 속기록’을 보면, 새누리당 출신인 박 아무개 재단 기획정책부장이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에 따른 ‘예산서’를 만들지 않아 2017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이 부결됐다.

박 부장은 281억8300만 원어치 예산 세목을 짠 ‘예산서’를 만든 뒤 정책 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와 협의해야 했으나 그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류재영 방통위 지역미디어정책과장이 2016년 9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예산서’를 꾸준히 요구했음에도 재단 이사회가 열린 2016년 12월 30일까지 응하지 않았다는 것. 특히 2016년 치 ‘예산서’조차 없어 올 2월 감사원에 낼 결산서를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지적됐다.

▲방송통신위원회 류재영 지역미디어정책과장이 시청자미디어재단 제8차 이사회에서 한 말. 그는 재단에서 ‘예산서’를 만들지 않은 걸 이해하지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류재영 지역미디어정책과장이 시청자미디어재단 제8차 이사회에서 한 말. 그는 재단에서 ‘예산서’를 만들지 않은 걸 이해하지 못했다.

부실한 경영공시 논란에 ‘노조 운영 개입’ 정황까지

박 아무개 재단 기획정책부장은 지난달 마무리한 공공기관 경영공시 관련 업무가 부실하다며 그 책임을 7급 직원인 한 아무개 씨에게 물었다. 그는 담당 부장인 자신이 결재한 일이긴 했지만, 관련 업무 지시에 따르지 않은 한 씨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아무개 씨는 그러나 박 부장의 업무 지시에 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도 부서별 공시 자료를 한데 모아 정리하는 데 그쳤다고 반박했다. 특히 박 부장이 지난 12월 27일 자신에게 경영공시 업무에서 ‘손을 떼’라고 했고, 그 무렵 폭언과 고성이 잦았다며 재단 ‘고충처리위원회’에 진정했다.

▲박 아무개 기획정책부장이 7급 직원 한 아무개 씨에게 보낸 메시지와 문책 정황이 담긴 문건. 한 씨가 재단 고충처리위원회에 내기 위해 쓴 내용이다.

▲박 아무개 기획정책부장이 7급 직원 한 아무개 씨에게 보낸 메시지와 문책 정황이 담긴 문건. 한 씨가 재단 고충처리위원회에 내기 위해 쓴 내용이다.

이석우 이사장은 경영공시 업무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일자 한 씨를 따로 불러 ‘노동조합이나 외부 기관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말 것’을 회유, 노동조합 운영에 지배, 개입한 뜻이 엿보여 물의를 빚었다. 그는 특히 ‘예산안 등의 문제로 재단이 위법 상태에 처했다’는 핑계를 들어 국민권익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에 진정하려는 한 씨를 막으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석우 이사장이 한 아무개 씨를 회유하고 노동조합 운영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 한 씨가 재단 고충처리위원회에 내기 위해 쓴 내용이다.

▲이석우 이사장이 한 아무개 씨를 회유하고 노동조합 운영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 한 씨가 재단 고충처리위원회에 내기 위해 쓴 내용이다.

채용 비위, 모두 사실…이사장 ‘해임’ 여부 눈길

재단의 여러 채용 비위는 방통위 종합 감사에서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특히 이석우 이사장이 비위 꼭짓점에 서 있던 것으로 드러나 재단 이사진이 1월 13일 ‘징계를 위한 특별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 이사장은 정직이나 감봉 같은 단계별 징계 절차가 없어 해임을 두고 의결하게 된다.

방통위의 재단 종합 감사에 따른 처분요구서를 보면, 이 이사장은 2015년 6월 신입 직원 공모에 지원할 자격이 없던 유 아무개 씨의 서류를 받아들이도록 ‘부당히 지시’한 뒤 최종 합격시켰다. 2016년 3월 자신의 고교 동창 딸인 엄 아무개 씨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 보내고,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탁을 받아 신 아무개 씨를 서울센터에 파견할 때에도 공모 절차 없이 두 사람이 뽑히도록 ‘부당하게 간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때 국회 베테랑 보좌관인 윤 아무개의 조카 백 아무개 씨를 광주센터에 파견할 때에도 공모 절차 없이 박 아무개 재단 기획정책부장이 백 씨를 추천해 ‘부적정하게 채용’했다.

이런 인사 비위는 모두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것으로 이석우 이사장과 관계자에 대한 문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15년 6월 이석우 이사장이 자격 미달인 유 아무개의 지원서를 받아들이게 부당히 지시하고 최종 합격시켰음을 보여 주는 방통위 감사 결과

▲2015년 6월 이석우 이사장이 자격 미달인 유 아무개의 지원서를 받아들이게 부당히 지시하고 최종 합격시켰음을 보여 주는 방통위 감사 결과

인재선발시험위원회 구성도 이사장 마음대로

방통위 감사팀은 이석우 이사장 대학 동문의 아들인 유 아무개 씨가 입사한 2015년 6월의 인재선발시험위원회 짜임새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봤다. 심사위원 7명을 위촉하면서 외부 위원 5명을 모두 이석우 이사장이 지명한 사람들로 짜 “채용 과정 전반이 불투명했고, 객관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부 위원 가운데 경력, 신입직 심사에 참여한 배 아무개 영남대 교수는 이석우 이사장의 고교 동창. 배 교수는 2015년 6월 유 아무개 씨가 재단에 뽑힐 때 함께 합격한 영남대 출신 지원자인 우 아무개 씨에게 면접 점수를 ‘97점’이나 줬다. 심사위원 7명이 우 씨에게 준 면접 평균 점수는 ‘75.15점’에 지나지 않았다. 배 교수는 2016년 10월 직원 공개 채용 때에도 인재선발시험위원이었다.

김 아무개 연세대 신방과 교수도 면접 평균 점수가 78.91점이던 학교 제자 송 아무개와 양 아무개 씨에게 각각 89점, 96점을 줬다. 김 교수는 “이석우 이사장은 저희 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출신이기도 해서 그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이 이사장으로부터 “(재단에서 심사위원 위촉) 연락이 오면 거부하지 마시고 일정을 맞춰 꼭 심사해 주십사 하는 전화”가 왔었다고 말했다. 이석우 이사장이 자신의 입김이 미칠 만한 사람들로 인재선발시험위원회를 짠 정황이 드러났던 것.

재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석우 이사장이 (2015년 6월 인재 선발) 심사위원들에게 자랑삼아 한 사람씩 뽑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해 공정하지 못한 채용 심사 의혹에 무게를 더했다.

▲2016년 6월 시청자미디어재단 인재선발시험위원회 외부 위원이 속한 대학교 출신 최종 합격자 면접 점수

▲2016년 6월 시청자미디어재단 인재선발시험위원회 외부 위원이 속한 대학교 출신 최종 합격자 면접 점수

처분 요구 뒤 1개월 내 이사장 ‘해임’ 여부 결정

방통위가 공을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회에 넘겼다. 이석우 이사장이 2015년 6월 유 아무개에게 채용 특혜를 줄 때 대학 동문인 유 씨 아버지로부터 청탁을 받았는지를 확인하지 못해 방통위 직권으로 징계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를 두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재단 이사회는 이석우 이사장 징계 처분 요구서를 받은 1월 3일로부터 1개월 안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김상근 재단 선임이사는 1월 13일 ‘특별 이사회’를 열어 이사장 해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석우 이사장 전 평화방송 보도국장
김상근 선임 이사 전 KBS PD
정진우 이사 전 한국전파진흥원장
최경진 이사 가천대 법학과 교수
신용헌 이사 전 부산MBC 보도위원
김연화 이사 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
김영관 당연직 이사 방통위 방송정책국장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진

시민사회단체 성명도 이어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월 5일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시청자 주권을 실현하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석우 이사장부터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1월 6일 성명을 내어 “이석우의 해임 사유는 차고 넘친다”며 “임면권자인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당장 이석우를 해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목, 2017/01/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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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5년을 결정지을 19대 대통령 선거가 눈 앞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당선자가 정권을 인수할 준비를 하기 위한 인수위를 꾸리지 못하고 곧바로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5월 9일 개표가 끝나면 이튿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자를 확정하고 그 뒤 선관위가 당선증을 교부하면 즉시 새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고 정부 요직 인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 선거를 치르고 있는 캠프의 관계자들은 곧바로 이어지는 차기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통령 캠프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어느 선거 때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주요 후보 다섯 명의 선거캠프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선거운동 시작부터 지난 25일까지 각 후보의 캠프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명단 936명이다. 뉴스타파는 이들의 정치 이력과 출신 지역, 직업군, 재산, 나이 등을 전수조사했다.

문재인 캠프 543명…나머지 캠프 합친 것보다 많아

캠프의 규모는 후보별로 큰 차이가 난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캠프다. 공식 발표된 인원만 543명으로 다른 네 후보 캠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안철수 캠프는 181명, 홍준표 캠프는 104명, 유승민 캠프는 63명, 심상정 캠프는 45명의 명단을 공식 발표했다. 문재인 캠프의 규모는 지지율 2위인 국민의당 안철수 캠프와 비교해도 3배 이상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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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캠프 원혜영 인재영입위원장은 이에 대해서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조기 대선을 초래했고,  현존 정치 세력 가운데 제대로 된 정권 교체를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울 역할을 할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뿐이라는 분위기가 확립되어 있다보니 그런 분위기가 지지세나 인재 영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재인 캠프에는 이렇게 사람이 많다보니 같은 직책에 여러 명을 임명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문재인 캠프의 국방 안보위원회에는 공동위원장이 11명, 부위원장이 28명이나 된다. 캠프 전체로 보면 직함에 ‘공동’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사람이 20%에 육박한다.

문재인 캠프에 비해 캠프 규모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안철수 캠프 손금주 대변인은 “현역 의원 수가 더불어민주당보다 적은 것도 이유겠지만, 안철수 후보 스스로가 방대한 조직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보다 모든 참여 인원이 적극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는 작지만 빠른 선거 캠프를 원했고, 그런 차원에서 캠프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도 다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안철수 캠프에는 후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보 직속의 핵심 위원회조차 위원장이 공석인 경우가 있다. 안철수 캠프 손금주 대변인은 이에 대해 “사람이 없다기 보다는 좋은 사람을 넣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캠프를 이끄는가.. 캠프내 최대 그룹은?

문재인 캠프 내부의 최대 그룹은 참여정부 인맥이다. 참여정부나 노무현 재단 출신이 104명으로 전체의 19%를 차지했다.  특히 이 가운데 30% 가량은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각종 수석이나 비서관, 행정관으로 일했다. 지난해 총선 당시 영입된 이른바 ‘문재인 키즈’와 올해 대선을 겨냥해 영입된 인사도 18%로 참여정부 인맥과 비슷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도 3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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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캠프의 최대 그룹은 안 후보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는 정책네트워크 내일 출신과 2012년 진심 캠프 출신이었다. 두 번째로 많은 그룹은 김대중 정부 출신들이었다. 캠프 안에 호남의 다선 의원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도 13%나 됐다.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나 행정부 출신이 3.7%였고, 박근혜 정부의  행정부 출신이 2명, 반기문을 지지했던 인사도 4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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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캠프와 바른 정당 유승민 캠프 내부의 최대 그룹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홍준표 캠프에는 이런 사람들이 40%였고, 유승민 캠프에는 65%나 됐다.  특히 홍준표 캠프에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차관급 이상 공직자나 민정당 의원을 지낸 이들도 8명, 7.7%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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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캠프의 경우 참여정부와 노무현 재단 출신 9%(4명)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캠프 인사가 진보정당 출신이었다. 정의당 선대위 박원석 공보단장은 “당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최대화하는 것이 선거를 잘 치르는 방법이지 유명한 사람 모시기와 같은 그런 경쟁은 진보정당의 가치에도 안 맞고 또 실제 진보정당에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판단을 선거 초반부터 했다”고 말했다.

안철수 캠프는 호남, 홍준표 캠프는 영남이 절반

캠프 참여 인사들의 출신 지역을 보면 홍준표 캠프와 안철수 캠프의 지역 편향성이 두드러졌다. 홍준표 캠프는 영남 출신이 절반을 넘었고, 안철수 캠프는 반대로 호남출신이 거의 절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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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캠프는 호남 출신이 가장 많았지만 영남과 수도권 출신도 상당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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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캠프와 유승민 캠프는 영남 출신이 가장 많았지만 수도권 출신 역시 비슷해 지역 편중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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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캠프 – 군인, 안철수 캠프 – 학자, 홍준표 캠프-법조

캠프 인사들의 출신 직업을 보면 문재인 캠프는 군인, 안철수 캠프는 학자, 홍준표 캠프는 법조인 출신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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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문재인 캠프 원혜영 인재영입위원장은 “대선이 되면 야당 후보한테 색깔론을 제기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안보 분야에 복무한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보니 영입에 중점을 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철수 캠프는 핵심 정책 조직의 책임자들의 상당수가 학자 출신이라 현실 감각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냐는 지적에 대해  “본부장이나 위원장이 주도해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형태가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의사 결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기우”라고 설명했다.

유승민 캠프는 학자 출신과 법조인, 기업인이 많았고, 심상정 캠프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출신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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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평균 재산 유승민>홍준표>안철수>문재인>심상정

캠프 참여 인사들의 평균 재산은 유승민 캠프가 51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홍준표 캠프가 그 다음, 그리고 안철수 문재인 캠프가 근소한 차이로 3,4위를 차지했다. 가장 평균 재산이 적었던 심상정 캠프의 경우, 유승민 캠프의 1/10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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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재산의 경우 캠프 참여자들이 고위 공직자나 선출직 출마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 전체 조사대상의 절반 정도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캠프 평균 연령, 홍준표>안철수>유승민>문재인>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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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은 심상정 캠프가 49.9세로 가장 젊었고 문재인 캠프, 유승민 캠프, 안철수 캠프 순이었다. 홍준표 캠프의 평균 연령이 60.8세로 가장 높았다.

캠프 여성 비율, 심상정= 유승민>홍준표>문재인>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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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캠프가 남녀 동수 내각 구성을 약속했지만 각 캠프의 여성 비율은 5개 후보 모두 20%가 채 되지 않았다. 유승민 심상정 캠프의 여성비율이 그나마 19%로 높은 편이었고 홍준표 캠프 14%, 문재인 캠프 12%, 안철수 캠프 11% 순이었다.


취재 : 심인보, 박중석, 오대양, 최윤원
리서치 : 한유주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목, 2017/04/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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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세력이 성신학원 이사들에게 외압을 행사, 각종 비리로 퇴진 요구에 시달리는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을 지난해 연임시킨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심 총장은 서울 운정캠퍼스 부지를 매입하면서 땅 주인으로부터 자신의 아들 2명 명의로 각각 1억5천만 원씩 3억 원의 뒷돈을 받았다. 심 총장은 또 학생들의 등록금중 수억 원을 자신과 측근들의 소송비용으로 유용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았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대학 총장으로 다시 선임돼 그 배경에 의혹이 일었다.

현삼원 성신학원 이사는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송인준 성신학원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성신여대 총장 선임과 관련해 청와대 교문 수석의 지시를 따르라’며 외압을 가했다”고 13일 뉴스타파에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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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이사는 지난 8월 정기 이사회가 열리던 날 송 이사장을 만나 “너무 섭섭하다. 황 장관이 당신을 믿었는데 심 총장을 연임시킬 수 있느냐”며 따져 묻자, 송 이사장이 “실은 말이야. 황 장관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황 장관 얘기가 교문 수석이 전화할 것이니까 거기에 따르면 된다. 사실 그렇게 된거야”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송인준 이사장은 처음에는 “청와대와 박백범 이사 등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았다”고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전화를 걸어 “황우여 전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성신여대 총장 선임과 교문수석이 전화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청와대 교문수석은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차은택의 외삼촌이다.

하지만 교문 수석이 직접 송인준 이사장에게 전화한 것은 아니고 대신 교육부에서 파견된 박백범 성신학원 이사가 교문수석의 의중을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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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전 수석은 진행 상황만 보고 받았을뿐이라며 자세한 이야기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답변을 피했다.

심화진 총장은 지난 2012년 해임위기에 몰렸을 때 나경원 의원의 측근 2명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이 때문에 나경원 의원 딸의 부정 입학을 계기로 이른바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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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률 전 교문수석과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

김상률 전 교문수석이 성신여대 총장 임면에 왜 관여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전 수석은 오는 15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화, 2016/12/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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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BS 이사 시절 정연주 사장 해임한 뒤 KISDI에 낙하
이명박 정부의 방송 정책 뒷받침하는 구실 만들어 줘
위법한 특별상여 잔치에 연구원 근태 관리도 부실

방석호 전 아리랑TV 사장의 부도덕은 한국 공공기관 낙하산의 민낯을 보여줬다. 권력을 좇은 덕에 낙하산을 얻어 내려앉은 기관장의 본디 모습과 한계를 잘 알아보게 했다.

방 사장은 2008년 5월 KBS 이사진의 일원으로 정연주 KBS 사장을 그만두게 한 뒤 4개월여 만인 그해 9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처음으로 공공기관의 으뜸 책임자가 된 그는 ‘방송 소유 · 겸영 규제 완화’와 ‘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종편) 허가’처럼 이명박 정부와 여당이 바라는 방향에 KISDI의 정책연구 목표를 맞추고 밀어붙였다.

이명박 정부를 위한 달음박질

방석호 제9대 KISDI 원장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2008년 9월 11일 취임식에서 “방송통신이 국가경제의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해 8월 13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방송통신 분야가 국가경제의 핵심적인 신성장동력”이라고 말한 것과 판박이였다.

▲2008년 9월 11일 경기도 과천시 KISDI 청사에서 방석호 제9대 원장 취임식. (사진: KISDI 보도자료)

▲2008년 9월 11일 경기도 과천시 KISDI 청사에서 방석호 제9대 원장 취임식. (사진: KISDI 보도자료)

‘공적 책임을 높여 시청자 권익을 보호하고 민주적 여론 형성을 꾀해야 할(방송법 제1조)’ 방송을 경제발전 도구(신성장동력)로 쓰려 한 것. 방송과 정보통신 간 융합 현상을 핑계로 삼았다지만 통신 또한 ‘이용자 편의를 꾀해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게 목적(전기통신사업법 제1조)’인 터라 그의 취임사는 공공성을 깨뜨릴 개연성이 큰 기조로 지적됐다. 방송통신 융합을 핑계로 내걸어 산업과 시장의 논리를 방송에 옮겨 심으려는 뜻으로 읽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인터넷(IP)TV를 상용화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함께 이루겠다고 밝혔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IPTV 가입자가 해마다 27%씩 늘어 33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같은 기간 생산유발효과 6조9000억 원, 고용유발효과 3만8000명처럼 이루기 힘든 미래상(ETRI 예측)도 곁들였다. 허풍선에 지나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의 ‘IPTV 도입에 따른 산업 전망’에는 방송을 산업으로 보려는 뜻이 분명했다. 방송도 산업이니 신문과 겸영할 수 있게 해 주고, 재벌에게도 문을 열어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정책에 심었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정책 방향은 “세계는 지금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글로벌 환경에 부합하기 위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생존 차원의 치열한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을 통해 신성장동력의 하나인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가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는 방석호 제9대 KISDI 원장의 취임 일성에 내려앉았다.

취임 20일 만인 2008년 10월 1일 방 원장은 KISDI에 ‘방송통신정책연구실’을 새로 만들어 맨 윗자리에 뒀다. 1985년부터 2008년까지 23년 동안 정보통신정책을 연구한 KISDI의 으뜸 과제를 ‘방송’으로 바꾼 것. 기관 이름을 아예 ‘방송통신정책연구원’으로 바꾸는 방안까지 따져 봤다. “KISDI도 기존 IT(정보기술) 정책에 국한한 연구를 벗어나 방송과 미디어를 아우르는 방송통신 종합연구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라는 방석호 원장의 뜻이 투영된 결과였다.

▲KISDI 조직 개편 흐름. 방석호 원장 재임 기간 동안 ‘방송통신정책연구실’이 으뜸 연구실로 떠올랐다가 1년여 만에 ‘통신’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획조정실’을 아래로 내린 것도 방 원장뿐이었다. (표: KISDI 30년사에서 갈무리)

▲KISDI 조직 개편 흐름. 방석호 원장 재임 기간 동안 ‘방송통신정책연구실’이 으뜸 연구실로 떠올랐다가 1년여 만에 ‘통신’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획조정실’을 아래로 내린 것도 방 원장뿐이었다. (표: KISDI 30년사에서 갈무리)

조직 개편과 보직 인사로 숨을 고른 방 원장은 다시 20일 만인 10월 21일 ‘방송의 경쟁력 강화와 공공성 구축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워크숍’을 벌였다. 그해 12월 9일까지 49일 동안 주제별 워크숍을 8차례 열어 KISDI 인터넷 홈페이지로 중계방송까지 했다.

워크숍은 재벌을 끌어들여 방송에 산업 논리를 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몇몇 보수 신문에 종편 채널을 내주려던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복심을 엿보게 했다. 첫 주제가 ‘방송 소유 · 겸영 규제 완화 추진방안’이었고 ‘신문방송 겸영이 미디어산업에 미치는 효과(11월 4일)’,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 사업자 구도(11월 18일)’, ‘종합 편성 정책(12월 2일)’으로 이어졌다. KISDI 쪽은 이를 방송 경쟁력을 높일 주제라고 주장했다. 또 공공성 구축 방안이라며 ‘공 · 민영 이원체계 구조화방안 및 공영방송 범주 설정(10월 29일)’, ‘공영방송 규제기구 위상 및 역할(11월 11일)’, ‘공영방송 재원구조와 경영투명성 제고방안(11월 25일)’, ‘공영방송의 공익성 구현과 책무(12월 9일)’로 주제를 이었다. 이를 두고 최고 권력자의 KBS · MBC · SBS 지배를 위한 밑거름을 제공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 “각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융합으로 대변되는 경쟁 환경에서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에 도움이 될 방안이 제시될 것”이라는 KISDI 쪽 첨언도 이를 방증했다.

새 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정부 여당의 뜻에 맞춰 조직을 바꾸고 예정에 없던 워크숍 중계방송까지 벌인 건 그 전까지 KISDI에 없던 일. 정부 출연금을 바탕으로 삼아 중점 연구 분야를 정해 둔 기관인 터라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하는 10월과 12월 사이에 새로운 과제를 띄우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방송 소유 규제 완화와 종편 관련) 미디어법 때문에 그랬던가요. 그때 대외 영향력을 많이 확대해 보자는 (방석호 원장의) 뜻으로, 내부에서는 그런가 보다 했죠. (워크숍을) 갑자기 하려다 보니까 외부에서 강사들이 오고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굉장히 활발하게 연속적으로 했죠.

KISDI에서 오랫동안 핵심 보직을 맡았던 이의 기억. 그는 KISDI에서 방석호 원장의 워크숍 밀어붙이기 같은 사례가 많았느냐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워크숍을 몰아붙인 게 그때 정부와 여당의 뜻에 너무 따라간 것 아니었느냐는 의견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KISDI 연구원이었던 또 다른 이도 “(워크숍의) 인터넷 공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며 “새 원장이 오자마자 (펼친 워크숍) 주제가 왜 그거(방송 소유 규제 완화)냐 하는 것엔 뭔가 (까닭이) 있었겠죠”라고 말해 워크숍이 정부 여당의 뜻을 품었음을 알게 했다.

조바심이 사고를 부르고

방송법 개정과 방송 규제 완화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낙관적으로 예측할 경우 생산유발효과가 2조9000억 원, 취업유발효과가 2만1000명에 달할 것이다.

기어이 말썽이 났다. 2009년 1월 19일 KISDI 이슈리포트로 내놓은 ‘방송 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두고 통계 조작과 왜곡 시비가 일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 규제 완화 정책에 따른 생산 · 취업 유발 효과를 돋보이게 하려다 정도를 벗어나고 말았던 것.

KISDI 보고서는 그 무렵 “방송 소유 규제로 인한 추가 자본투입 부재와 기존 사업자의 투자유인 부족”으로 콘텐츠 매력도가 낮아 저성장 양상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규제를 느슨하게 하면 “신규 사업자 진입과 추가 자본 유입으로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시키고 방송 콘텐츠 품질을 제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를 통해 생산이 2조9000억 원쯤 늘고 2만1000명이 일자리를 구할 거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예측 근거로 제시된 국가 간 방송시장 비교용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그 밖의 숫자 합산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이 일자 국회 예산정책처는 KISDI의 보고서 발표 14일 만인 2009년 2월 2일 “방송 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 의미가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냈다. KISDI는 그러나 같은 달 5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방법론에 근거해 작성됐다”며 반박했다.

KISDI는 그해 7월까지 통계 조작과 왜곡 의혹을 제기한 몇몇 언론과 야당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마다하지 않을 듯했지만 결국 “송구하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같은 달 10일 보고서를 재검토했더니 “연구자의 숫자 합산 오류뿐만 아니라 국가 간 방송시장 규모 비교에 사용한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자료의 한국 GDP 과대 추정, PWC 자료(2008)의 한국 방송시장 규모 과다 산정, 적용 환율 차이에 따른 오차 등 원 데이터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됐다”고 인정했다.

▲2009년 7월 10일 자 KISDI 알림.

▲2009년 7월 10일 자 KISDI 알림.

20여 일 뒤인 8월 초 보고서 작성 책임자(방송통신정책연구실장)가 KISDI를 떠났다. 이후 한 달여 만인 9월 1일에는 방석호 원장이 첫째가는 조직으로 만든 ‘방송통신정책연구실’도 ‘통신정책연구실’과 ‘방송전파연구정책연구실’로 나뉘었다. 방 원장 취임 1년여 만에 으뜸 과제가 ‘통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당파 이해를 짊어진 낙하산이 조직을 어찌 흔들고 어떤 부작용을 빚는지 잘 내보인 뒤였다.

그때 일을 지켜본 KISDI 출신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는 “KISDI 태생 자체가 청와대나 정부에 쓴소리를 하기보다 정책 브레인으로서 지원하는 것”이지만 “통계 오류에 조작까지,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하는 느낌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KISDI 관계자도 기자에게 “(통계 조작 의혹을 산) 보고서를 방석호 원장이 전하는 정부의 미디어 정책 목표에 맞춘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종종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을 자조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위법한 연구적립금 이자로 성과급 잔치

KISDI는 1985년부터 2001년까지 16년 동안 정부 출연 예산 이외에 ‘정보통신연구적립금’ 651억9000만 원을 따로 만들어 썼다. 한국전기통신공사(KT)와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이 KISDI에 출연한 470억 원을 종잣돈으로 삼아 이자수입을 더한 끝에 652억여 원에 닿았다. 이 돈은 옛 정보통신정책연구원법에 따라 모자라는 기관 운영 · 사업비를 채워 메우는 데 써야 하나, KISDI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생긴 이자수입 29억3300만 원 ~ 54억7200만 원쯤만 이듬해 예산에 넣었다. 대개 30억 원쯤이었다.

원금 651억9000만 원은 손대지 않은 채 이자 놀이를 한 셈. 특히 2005년 · 2007년 · 2008년 · 2013년 · 2014년에는 이자 수입이 애초 예상액(30억 원)을 넘어서자 기관 운영이나 사업과 상관없는 직원별 능률 성과급으로 지급해 버렸다. 2005년 이주헌 제7대 원장 때 10억4300만 원, 2007년 석호익 제8대 원장 시절 5억5500만 원, 2008년 방석호 제9대 원장 때 5억4600만 원, 2013년 김동욱 제10대 원장 시절 1억6100만 원, 2014년 김도환 제11대 원장 때 5억6700만 원을 썼다. 모두 28억7200만 원을 이듬해 KISDI 예산에 포함하지 않은 채 직원 성과급으로 다 써서 없애버린 것이다. 특히 방석호 원장은 2008년 9월 10일 취임한 뒤 3개월여 만에 조직 개편과 보직 인사뿐만 아니라 특별상여 차등 지급까지 해냈다.

직원들은 이를 ‘특상(특별상여)’이라 불렀다. 업무실적평가에 따른 정규 성과급과 달리 연말에 따로 줬기 때문이다. 모두 만족했던 건 아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금액 차이가 컸고 “기관 경영평가에 따른 상여금처럼 정해진 비율대로 준 게 아니라 연말에 주는 특별상여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지급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가 있었다”는 KISDI 관계자의 뒷말도 들렸다.

최성재 KISDI 기획전략팀장은 이와 관련해 “(그해 연구적립금에서 생긴) 초과 이자 수입뿐만 아니라 외부 용역 수입 초과분을 더한 금액을 직원별 업무실적평가에 따라 5단계로 나눠 차등 지급했다”고 밝혔다.

KISDI는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생긴 결산 잉여금 45억7500만 원도 이듬해 예산으로 넘기거나 정보통신연구적립금에 보태지 않은 채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운영자금을 핑계로 삼아 마음대로 썼다. 이 돈을 인건비 · 경상비 · 사업비 따위로 쓰려면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그냥 쓴 것으로 2015년 감사원 특정감사에서 드러났다.

KISDI의 이런 행위는 모두 위법했다. 1999년 1월 옛 정보통신정책연구원법이 폐지돼 정보통신연구적립금을 따로 만들어 운용할 근거가 없기 때문. 결산 잉여금을 이사회 승인 절차도 밟지 않은 채 마음대로 쓴 것도 정부의 ‘예산 · 기금 운용계획 집행지침’과 ‘KISDI 예산 총칙’을 어긴 행위였다.

최성재 팀장은 “자체 기금을 가지고 있지 말고 쓰라는 (감사원 감사) 처분에 따라 2017년부터 매년 130억 원씩 연구개발적립금에서 정부 출연 예산을 대체한다”고 전했다.

부실한 직원 근태 관리

제보다 젯밥에 마음이 있는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했다. 방석호 원장 재임 기간과 2년 4개월쯤 겹친 2008년 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3년 동안 KISDI 직원의 대외 활동 3856회 가운데 89회만 미리 승낙된 것으로 밝혀졌다. KISDI 임직원 행동 강령과 대외 활동 요령에 따라 외부에서 대가를 받고 강의하거나 자문해 주려면 미리 원장에게 신고해 승인을 얻어야 함에도 3767회나 허락 없이 이루어졌던 것. 2010년 12월 기준 정규직 123명 가운데 75명이 한 차례 이상 신고하지 않은 채 대외 활동으로 사익을 누린 것으로 감사원에 적발됐다.

이들 75명 가운데 21명은 2008년부터 3년 동안 신고나 허락 없이 외부 강의와 자문으로 각각 1000만 원 이상 벌었다. 21명은 대외 활동을 976회나 벌여 모두 5억3230만 원을 자기 주머니에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균치로는 대외 활동 46회에 2534만7000원씩 벌어들였다.

▲신고하지 않은 대외 활동으로 1000만 원 이상 소득 올린 KISDI 직원 현황. 빨간 네모 상자로 표시(19번)한 ㅎ씨는 32회 대외 활동으로 9973만 원을 벌었다. (자료: 감사원)

▲신고하지 않은 대외 활동으로 1000만 원 이상 소득 올린 KISDI 직원 현황. 빨간 네모 상자로 표시(19번)한 ㅎ씨는 32회 대외 활동으로 9973만 원을 벌었다. (자료: 감사원)

특히 ㅎ씨는 방석호 원장이 취임했을 무렵인 2008년 10월 KISDI에 합류해 방 원장이 퇴임한 2011년 9월까지 3년 동안 외부 자문 · 기고 · 토론 32회로 무려 9973만4000원을 벌었다. 그는 KISDI에서 맡은 일과 관련이 없는 금융 분야 자문을 해 주느라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KISDI 출입 체계에 흔적이 남지 않아 무단결근한 것으로 보이는 날도 32일에 달했다. 방석호 원장에게 미리 신고하거나 허락을 얻지 않은 채 벌어들인 9973만4000원 가운데 8282만7000원을 금융 관련 자문비로 받았다. 그의 정규 연봉은 6585만7000원(2010년)이었다.

그때 KISDI에서 일했던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는 “2011년 10월 감사원 감사에서 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미리 신고하지 않고 외부로 나간 것과 모 박사의 금액이 큰 게 문제가 됐다”며 “그 일이 있은 뒤엔 대외 활동 사전 신고와 승인은 물론이고 횟수까지 엄격히 살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KISDI 올해 예산은 246억2300만 원. 해마다 정부 출연금 100억 원쯤을 받아 정보통신기술(ICT)전략 · 통신전파 · 방송미디어 · ICT통계정보 · 국제협력 · 우정경영 정책을 연구하는 데 썼다. 나머지 예산도 인건비 · 일반사업비 · 경상운영비처럼 정부 출연금을 바탕으로 삼아 일군 수탁용역수입과 청사 보증금 · 매각 잔액(99억4800만 원) 따위에서 나왔다. 이처럼 정부가 세금을 모아 KISDI에 주는 것(출연)은 관련 분야에서 시민의 삶을 넉넉하고 윤택하게 할 길을 열어 달라는 뜻. 위법한 성과급 잔치를 벌이거나 지나친 대외 활동으로 개인 살림을 늘리라는 게 아니다.

‘방석호 KISDI’처럼 정파 이해를 타고 내려앉는 낙하산 인사로는 ‘공공기관’ 운영이 ‘공공의 이익’과 동떨어질 위험이 크다. KISDI를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 인사 행정에서 여태 풀지 못한 숙제다.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화, 2016/02/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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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은 보성 농민 백남기(69세)씨는 뇌출혈 수술 뒤 중환자 실로 옮겨졌으나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중 총궐기 투쟁 본부 측은 15일 서울대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히고, 현재 백씨의 뇌 안에 피가 모두 빠지지 않아 2차 수술이 필요한 위독한 상태로, 코뼈나 안구 손상 등 외상 수술은 아직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본부 측은 14일 저녁 7시쯤 경찰이 백씨의 얼굴 정면을 향해 물대포를 최초로 분사했을 뿐 아니라, 넘어진 백씨를 향해 계속해서 20초 이상 조준해 살수했다며,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에 가깝다고 밝혔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정현철 회장은 “백씨는 전남에서 밀,콩 농사 짓는 평범한 농민으로 계속되는 농산물 값 하락에 이렇게 집회라도 나오면 농산물 제값 보장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참가한 것”이라며 “이런 농민 요구는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물대포를 쏘는 정부에 반드시 책임 묻겠다”고 말했습니다.

민중 총궐기 본부는 물대포 직사 등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골절 등 크게 다친 집회 참가자는 수 십 명에 이르고, 엄청난 캡사이신 살수로 인해 피부와 눈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참가자는 500여명에 이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노동자, 농민, 대학생, 시민 등 50 여명이 연행돼 서울 시내 7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들이 연행될 때에도 경찰의 폭행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며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따라 본부 측은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부상자들이 속출한 것과 집회를 원천 봉쇄한 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강신명 경찰청장의 파면을 촉구했습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5일 오후 서울대병원 정문앞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열기로 했으며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과 농업 말살,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다음달 5일 2차 총궐기 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자회견 영상을 정리했습니다.

일, 2015/11/1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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