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평전읽기 시즌1 참가자 모집
정치발전소에서 강의와 토론이 함께하는 <정치가 평전읽기> 시즌1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정치발전소에서 강의와 토론이 함께하는 <정치가 평전읽기> 시즌1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매년 8월 12일은 UN이 제정한 국제 청소년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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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청소년의 날은 청소년에게 문화·법적 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재정된 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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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청소년이 진로를 정말 찾기 어려울까요?
희망제작소는 지역 청소년을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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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직업 체험을 탈피해 나의 가능성을 엿보는 청소년진로탐색지원 사업 내-일상상프로젝트
상상학교-내일생각워크숍-내일찾기프로젝트 등으로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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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청소년이 기획부터 참여까지 이끈 작은 실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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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의 숨은 자원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사람책
[기획①] 진로 사람책, 교실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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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진주 지역 파트너인 길잡이 교사 인터뷰 시리즈
[기획②] 자유학년제X내일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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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청소년 진로탐색이 궁금하다면
희망제작소 홈페이지를 찾아주세요.
Q. 지난 10여 년 동안 청년들의 취업 절벽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요인이 영향을 끼치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청년에게 어떤 일자리를 공급했는지 살펴야 한다. ‘중위계층 청년이 취업하기 좋은 환경이었나’를 따져봐야 한다. 대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제조업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제조업 일자리도 1990년대 이후로 비정규직화되었다. 정규직 채용도 줄어들면서 누적된 게 청년 취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학생이 늘었난 점도 들 수 있다. 2000년대쯤부터 대학진학률이 70%까지 높아졌다. 대졸 청년들은 ‘화이트칼라’인 사무직이나 엔지니어직 혹은 연구직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이러한 대졸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졌다. 비정규직화 등 제조업 일자리의 질도 많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
Q. 실제 정부와 지자체에서 다양한 일자리 정책을 펴고 있지만 산발적이고, 임시적이라 ‘좋은 일자리’는 아닙니다. 이에 관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정부와 지방정부가 만들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공무원과 공기업밖에 없다고 본다. 청년취업 시장의 압박이 커지면서 공공부문에서 직접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시험을 치러야 하기에 허들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수의 청년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두고 ‘나하고는 먼 일자리’라고 여길 정도로 장벽이 높다.
또 다른 축으로는 정부가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며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 간접 일자리다. 대표적으로 고용노동부의 디지털 일자리 사업(개발자, 빅데이터 분석가, 유튜브 제작자)을 들 수 있다. 해당 사업은 정부가 기업에 인건비 제공 및 최소 6개월 고용을 보장하는 등 기업과 대학 간 이해가 맞물려 나름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청년이 볼 때 근무형태, 근무조건, 처우의 질이 떨어지는 간접 일자리가 많았다.
일자리 사업이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이 되는 동시에 청년은 커리어 패스를 만들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데 미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일 사례처럼 중소기업의 현황과 기술, 직무 등을 표준화해 업데이트하며 관리‧평가한다면 학교나 지자체에서 연결하는 간접 일자리의 질도 표준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Q. 부산, 울산, 경남(이하 부울경)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제조업의 중심축입니다. 어찌 보면 청년일자리가 풍부할 것처럼 보입니다.
부울경 중 부산과 울산‧경남은 다른 양상이다. 부산은 영세기업과 중소규모 이상의 서비스업 위주의 일자리가 있지만, 임금이 열악하다. 부울경 청년 중 화이트칼라로 일하고 싶은데 수도권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부산으로 취직해 박봉으로 일을 시작한다.
노동시장의 공급은 많고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울산‧경남은 전체 일자리를 보면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다. 들여다보면 생산직 일자리가 많고 전문직, 사무관리직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Q. 실제 현황은 어떤가요. 부울경의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일자리의 질적 전환 측면에서 보면, 생산직 일자리가 많아도 일자리의 질은 다른 문제다. 자동차 기업이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는 추세다. 생산직 인력이 필요함에도 정규직이 아닌 원하청 도급 형태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구직자가 ‘n차 하청’에 일할수록 일자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열악해지고 있는 셈이다. 주로 생산직에 취업하는 남성 청년은 ‘하청 일자리’를 아르바이트처럼 경험할 수 있어도 ‘직업’으로 삼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성 청년은 서비스업이 많은 부산에서 일하는데 박봉이기 때문에 이직을 원한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울산‧경남의 사무보조직으로 이직하고 싶어도 단기‧무기계약 형태가 많다. 만약 결혼하거나 출산하는 등 생애 경로 변화를 감안하면 일자리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규직으로 자신만의 커리어 패스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 일자리와 구인‧구직 간 구조적 미스매칭이 벌어지고 있다.
Q. 청년이 지방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지방소멸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또 이런 흐름을 바꾸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일자리 문제가 크다. 현재 일자리가 열악하더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면 지역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다. 용접을 배워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이직 사다리’를 타고 커리어패스를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일자리의 상향 이동이 어렵다. 대졸 사무직은 근속이 쌓여도 초봉 언저리를 맴돌고, 기술이 있는 생산직도 연봉 형편이 조금 나아도 비슷한 수준이다.
이밖에 지역에서는 대기업의 스핀오프로 생긴 중소기업이나 지자체의 사업이나 정부의 보조금으로 인건비만 유지하는 정도의 기업이 많아서 청년들이 지방에 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자리 관점에서 보면 이 중 하나는 보장돼야 한다. 진급 혹은 이직을 통해 더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거나 처우나 인정 등 대우를 잘 받을 수 있어야 한다.
Q. 지방소멸의 이슈와 연결되는데 지방대학의 위기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대학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지방사립대 중 올해 25%가 신입생을 뽑지 못한 곳이 다수다. 내년에는 지방대학의 위기가 전면화될 것이다. 지역에서 청년을 머금은 곳이 ‘일터’와 ‘대학’이다. 대학이 없어지면 지역에 청년이 없어지는 것이다. 현재 지방사립대에서는 정원 미달한 학과를 폐과하고 있는데 향후 지역의 전문가가 사라지는 동시에 물리치료, 사회복지, 다문화 전공 위주로 남는 상황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들 전공은 유연화된 일자리가 대부분이고, 직업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국립대 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즉, 지방국립대는 대학원 중심으로, 지방사립대는 학부 내실화 및 직업교육‧연계 전공 등으로 기초소양 역량을 보강하는 쪽으로 역할을 분담하면 어떨까 싶다.
Q. 지방정부들이 청년조례를 만들거나 다양한 청년정책을 벌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 지역의 청년정책과 관련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지방정부가 다양한 청년 정책 및 조례 제정 등을 펼쳤지만 청년 맞춤형으로 다원화된 모델을 개발한 경험이 미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마다 ‘베스트 프렉티스’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으로 ‘청년몰’ 사업이 아닐까. 청년몰은 ‘먹거리’, ‘미술’, ‘수공예’ 등으로 꾸려지지만 막상 사업을 들여다보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어렵다. 이처럼 ‘청년’의 이름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신화에 갇힌 정책들이 있다.
만약 해당 지역이 제조역량을 지녔다면, 이에 걸맞은 청년 정책을 발굴해야 하는데 오히려 관광산업으로 돌리는 등 선례를 따르고 있다. 지역의 전적인 잘못이기보다 다양한 청년 정책 및 사업의 개발이 더디고, 성공사례를 조직하지 못한 탓이다. 다만, 정책을 개발하는 더딘 속도보다 지방소멸 속도가 빠르다는 게 고민이다.
Q. 교수님께서는 지방소멸, 청년정책 등과 관련해, 여러 칼럼을 통해 청년의 언어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이에 대한 조금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나 ‘의대생 국시 거부 사태’ 등으로 ‘청년’과 ‘공정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들 사태는 엘리트 게임으로 노동시장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데 주목하고, 대다수 청년이 처한 현실은 다뤄지지 않았다. 대기업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도 일부 청년만 누릴 수밖에 없다.
청년으로 호명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봤을 때 다수 청년의 목소리는 투영되지 않고 있다. 고졸 남성과 여성, 전문대, 지방사립대 등 다양하게 구직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대표해야 한다. 오히려 지방의 기업에 청년이 일할 만한 환경을 만드는 표준 체제를 어떻게 도입할지 논의하는 게 건전하지 않을까. 청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논의에서 평범한 청년의 목소리가 자꾸만 소거되는데, 이러한 지점에서 청년의 언어가 필요하다.
Q. 우리나라에서는 산업구조의 전환도 함께 요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에너지전환, 전기차, 스마트팩토리 등). 청년 정책과 산업구조의 전환이 함께 결합될 수 있을까요.
자동차 산업이 수소차‧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전기 계통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수도권에, 내연기관 클러스터는 대구‧경북‧울산 반경으로 있다. 산업 전환 관련한 연구의 원천 기술은 수도권에서 개발하지만, 실제 기술로 구현하려면 동남권의 현장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지역에서만 궁리할 수 있는 일자리와 작업이 있다는 것을 좀 더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대개 ‘회사의 다각화’라는 측면으로만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지역의 ‘장소성’을 부각하고, 산업의 전환을 꾀한다면 역설적으로 지역에, 그리고 구직하는 청년에게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최근 희망제작소에서는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캠페인 설문조사(440명 응답)를 벌인 결과 40~50대 응답이 높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20대 청년의 응답이 높았고, 지역차별에 관한 체감도 높았습니다. ‘지역 격차’와 ‘차별’이 가까이에 존재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의견 있으신가요.
대학의 서열화가 심해진 측면이 있다. 과거부터 대학의 서열화가 존재했고, 차별의 언어도 있었지만 갈수록 그러한 언어를 일상적인 언어로 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고졸자’를 향해 ‘고졸 인성’이라는 둥 학력을 인성과 연결 짓기도 한다. 또 젊은층 사이에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가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이라면 지역 격차나 지역 차별도 덩달아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 인터뷰 진행: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
– 정리: 방연주 미디어팀 연구원 [email protected]
우리나라 인구의 2명 중 1명은 수도권에 거주 중이고, 5명 중 1명은 서울특별시 사람, 4명 중 1명은 경기도 사람이다. 가장 최신 자료인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2021년 6월 기준, 전국 인구는 약 5,167만 명인데, 서울시 인구는 약 957만 명, 경기도 인구는 약 1,350만 명이다.
반면, 매년 대구·경북은 약 2만 명, 전북·전남은 약 1만 5천 명, 경남은 약 1~2만 명, 광주는 약 3~4천 명, 대전·울산은 약 1만 명 정도 계속 줄고 있다. 통계청의 전입·전출의 인구 이동 통계를 보면,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시군 지역에서 교육 및 취업을 목적으로, 도 소재 대도시 및 광역시(또 이들 지역서 서울로) 및 서울로 이동, 서울에서는 집값을 이유로 경기도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이 흐름은 사실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중소도시는 인구감소 및 지역쇠퇴를 겪고 있고 농어촌 군 단위 지역은 지역소멸을 겪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급속한 저출생 고령화의는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19.6.27.)」로 확인되는데, 2020년 현재, 전국 고령인구 비중은 15.7%로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강원·전북·전남·경북은 20%를 넘어 이미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2047년에는 수도권·충청권 제외 대부분 지역이 생산연령인구 50%미만, 경제활동인구 23%미만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농어촌 및 중소도시의 인구감소 및 활력감소, 일부지역 소멸위기의 확산 경향은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청년 인구가 도시에 집중해 있을 뿐 아니라 농촌 및 지방소도시로부터 청년층의 이탈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청년층 이탈은 가장 핵심적 이유는 역시 전문대졸·대졸 이상의 젊은 층들에 양질의 일자리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울 및 수도권에 과도하게 인력 및 자원이 집중된 탓에 지방은 혁신을 위한 인재나 자원이 유출되고 부족하게 되는 이중고에 처하게 된다. 배규식 경제사회노동위회 상임위원(2021)은 이러한 ‘지역산업과 청년일자리의 악순환 구조’를 [지역산업 활력감소→양질의 일자리 부족→청년들의 출신지역 이탈→청년인력(인적자원) 부족→지역산업 정체/쇠퇴→지역 쇠퇴/소멸] 순으로 표현했다.
지역소멸 위기 속 거창군의 선택
지역소멸의 위기 속 나름 군 단위 농촌지역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대응을 하는 곳을 소개한다. 거창군의 승강기밸리로 거창군민·거창군청·중소기업 주도 산학연관 지향형 모델로 승강기 제조업을 기반산업화 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거창군 인구는 6만 1,555명(2021년 6월 기준)으로 지난 10년 사이 약 1500명 감소에 그쳤다. 인접 인구 유사지역인 함안군은 경우 지난 10년 간 3배 가까운 약 4,300명이 감소했다.
거창 승강기밸리의 성공요인을 찾자면 무엇보다 초기 거창군민들이 ‘교육도시’로 유명한 거창에서 폐교 위기에 몰린 거창기능대(한국폴리텍대Ⅶ 거창캠퍼스)를 어떻게든 존속시켜보자는 열망과 노력 끝에 한국승강기대학을 특성화 설립하면서 거창 승강기밸리의 시작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창기능대는 지난 2005년 노동부 전국기능대 정비계획에 따라 폐교 위기에 놓이자 거창군민과 거창군이 합심해 시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더 나아가 지방의회인 거창군의회 건의문 채택을 이끌고 경남도·노동부·국회 방문 탄원까지 진행했다. 광역지자체, 중앙정부, 입법부 등 상위 정책결정 단위 모두에 거창군민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끝에 거창군이 노동부로부터 거창기능대를 무상 양수·양도 받게 되고 한국승강기대학을 한국승강기안전공단과 함께 설립했다.
둘째, 거창군의 적극적 중소 승강기기업 유치 및 중소기업 주도 성장 모델이라는 점이다. 거창군과 경남도는 전국 최초로 승강기 밸리(산업)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초기에 분양가 90% 입지보조금 및 금융지원, 시제품제작비·승강기안전인증비용 지원, 직원사택 월세지원 등 파격적 지원을 약속하며 초기 22개 기업을 유치했다.
현재 37개 중소기업이 들어와 7백여개 일자리 창출, 연매출 2천억원 달성 등 거창군의 전략산업으로 거듭났다. 입주기업 중 코리아엘텍은 인력 12~14명에서 35명, 연매출 40~50억원에서 135억원으로, 누리엔지니어링(주)은 인력 12명에서 58명, 연 매출 2.8억원에서 200억원 이상으로 성장했다.
셋째, 산학연관의 외형적 기반을 마련하고 (사)승강기밸리기업협의회를 조직했다. 구체적으로 산(승강기밸리기업-기반산업화·지역고용)·학(한국승강기대학-실무전문인력배출)·연(승강기안전기술원(승강기 R&D센터)-성능·시험인증,시제품제작지원)·관(거창군-지원조례제정) 클러스터의 외형적 틀을 갖추고, 승강기밸리기업협의회를 통해 정기적 만남 및 정보교류, 의견 조율 및 국제승강기엑스포 참가, 신기술공동개발 기획 등을 하고 있다.
넷째, 승강기 제조업이라는 산업 선택이다. 승강기 산업의 신규설치 세계 시장규모는 ‘18년 기준(출처: 국제표준화기구) 92.2대인데, 한국이 약 5만대로 세계 3위다. 한국은 국토 면접이 좁고, 수도권 및 지역거점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되어 승강기가 구조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노후건축물 리모델링 및 고속엘레베이터 수요가 확대 되고 있다.
또한 기 설치된(우리나라 현재 약 75만대) 모든 엘리베이터에 대한 유지관리 보수도 법적으로 의무화 되어 있어 그 시장도 만만치 않아 인력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거창군의 승강기전문인력 공급처인 승강기대학과 승강기제조업은 승강기 기술역량을 갖추고 집적효과를 보일 만한 클러스터를 가질 경우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갖게 되는 장점이 큰 산업이다.
하지만 한계 지점도 분명하다. 우선 승강기대 졸업생들이 주로 취업선호도가 높은 대기업과 공기업, 수도권 소재 기업에 취업하면서 거창관내 기업고용에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승강기밸리 기업들은 직원들의 잦은 이직, 고급 숙련인력 확보 어려움 등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승강기대학의 숙련인력 배출, 적정처우 바탕 지역고용 확대가 시급한 과제다.
또한 산학연관의 외형적 기반은 있으나 활성화돼 있지 않다. 승강기밸리기업협의회 활성화 및 승강기안전기술원의 역할 확대로 현재 중단된 G엘레베이터 사업(협업생산·브랜딩) 재개, 스마트기반구축사업 및 신기술개발 협업체계 구축 등 기업간 협업 및 산학연관 네트워크 강화에 더 노력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주택·병원·문화시설 등 입주기업 노동자들의 정주 여건 강화도 중장기 과제다.
거창 승강기밸리가 지역소멸 대응의 완전한 성공사례가 부르긴 어렵다. 하지만 거창군민과 거창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특성화 대학인 한국승강기대학을 유치했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승강기 제조업을 기반산업화 해 37개 승강기기업 입주, 7백여개 일자리 창출, 연매출 2천억원 달성이라는 농촌 군 단위에서 보기 드문 성과를 보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인구감소에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거창군민의 지역고용, 거창군 외 지역 출신 노동자의 거창 정착이 좀 더 많아지고, 지속 가능하다면, 거창 승강기밸리가 지멸소멸 대응의 완전한 성공 사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며 그 점에서 거창은 현재 7부 능선을 넘어섰다고 평가할 만 하다.
-글: 고광용 연구사업본부 연구원 [email protected]
지역소멸 대응을 위한 지역고용 확대 및 지역경제 회복 전략 선택 및 성공지역 벤치마킹은 지역의 인구 및 자원, 산업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도시/농촌/도농복합지역으로 나누고, 산업 유형 별로 유형화한 지역고용 및 지역경제를 활성화한 성공 사례를 제시한다.
우선 도시지역은 크게 ▲제조업 혁신 ▲서비스업 혁신 ▲재생에너지혁신 등 3가지 모델, 농촌/도농복합지역은 ▲특정산업유치형 ▲혁신도시(이전기관)연계 산업유치형 ▲농업혁신형 ▲재생에너지산업유치형 등 4가지 모델로 유형화 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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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성에 맞춘 고용 활성화 전략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곳, ‘불모지’가 ‘기회의 땅’으로
Q. ‘주섬주섬 마을’의 근황을 전해주세요.
박현정: 저희는 신안군 ‘청년마을’에 오신 분들을 ‘플레이어’라고 부르거든요. 상상하긴 쉬운데 상상을 깨고 현실로 옮기긴 어렵잖아요. 게임처럼 거침없이 도전하면 좋을 것 같아 ‘플레이어’라고 부르는데 현재 각자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실행 중이고요. 1기수는 15명이 모집되었는데, 미국, 서울, 목포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오셨습니다. 이밖에 네트워킹을 하는 ‘주섬주섬 필요회’, 루프탑을 조성하는 주민회의 ‘비행청년’, 공간리노베이션 프로젝트 ‘무단점거’, ‘브랜드 탄생기록 피칭데이’ 등을 열고 있습니다.
Q.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데 소개해주세요.
박현정: 간판 프로그램은 ‘주섬주섬 한 달 살기‘입니다. 안좌도에서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이뤄나가는 건데요. 플레이어인 사진작가는 현재 저희가 머무는 ‘와우마을’(지명)의 주민 분들 얼굴을 찍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얼굴에 담긴 빛을 담아서요. 플레이어 한 분 한 분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게 핵심이죠.
또 주민과 네트워킹도 해요. ‘주섬주섬 필요회’와 ‘무단점거’를 들 수 있는데요. 안좌도는 인적 드물고,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돈도 벌어야 하고, 주민과 친해져야 하고, 스스로 행복을 얻어야 하잖아요. ‘주섬주섬 필요회’는 청년들이 일거리, 먹거리, 놀거리, 도울거리 등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해결하는 모임이죠.
마지막으로 ‘무단점거’는 4년째 방치된 폐교에 들어가서 일종의 청년을 위한 ‘메이커스 공간’을 만드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공간에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분도 계시고, 내부 소음이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차음벽을 설치해 랩메이킹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분도 계시고요.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실크스크린 공간, 영화관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포에서 신안으로, 안좌도로, 지역을 떠나지 않는 이유
Q. 신안에 연고가 있었나요.
박현정: 스픽스가 신안에서 활동한 지 3년 정도 됐어요. 목포를 주 무대로 활동하다가 신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동물 매개 교육’을 했거든요. 방과후교실에 앵무새와 파충류를 직접 가져가서 준비해두면 아이들이 어깨 위에 앵무새를 얹어보고 경험하는 고정이죠. 이렇게 신안에서 자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과 부모님과도 친해졌어요. 목포에서 신안을 왔다갔다가 이렇게 안좌도로 들어와 ‘주섬주섬 마을’을 하게 된 거죠.
Q. 수도권보다 신안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현정: 예전부터 지역에 애착이 강했어요. 스픽스는 대학 졸업하고, 남들처럼 취업하는 회사라기보다,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거든요. 신안군이 위치한 전라남도 서남권이 지역소멸이 심한 지역 중 한 곳이잖아요. 저희가 이곳에 남아서 지역을 존속하면서, 앞으로도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싶었어요.
Q. 안좌도에 막상 살아보니 어떤 변화가 느껴지나요.
박현정: 프로그램을 꾸리는 저희나 플레이어나 ‘안좌도는 생존의 영역’이에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더라도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 어렵고요. 택시도 없어요. 자연 그 자체의 환경이니까 지네에 물리기도 하고요. 도시에 비하면 확실히 많은 불편함이 뒤따르죠. 이러한 애로사항은 ‘주섬주섬 필요회’에서 서로 도와주고 토로하니까 많이 해결되고요. 무엇보다 안좌도에 온 플레이 분들이 도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 신기하고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죠.
Q. 안좌도에서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게 어땠나요.
박현정: 외지인이니까 당연히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목포에서 신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안면은 튼 학부모님도 계셨고, 아이들도 저희를 좋아하니까 조금씩 풀어갈 수 있었어요. 전보다 학부모님을 자주 찾아가서 만나고, 마을 어르신도 찾아뵙고요. 어르신께 “언제 밭 나가는 날이에요?”라고 여쭤봐요. 누구나 처음부터 마음을 확 여는 건 어렵잖아요. 자주 얼굴 보고, 일손을 보태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중이에요.
작은 섬마을, 작은 도시에서 청년이 삶을 꾸린다는 것
Q. 지역에서 청년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나요.
박현정: 대개 수도권을 두고 기회의 땅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지역이 더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에는 발굴되지 않은 여러 재미있는 문화와 이야깃거리가 많거든요. 발굴되지 않은 지역자원을 청년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게 지역을 존속시킬 수 있고, 청년이 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봐요. 일종의 ‘청년의 방식’으로 지역을 이어가는 거죠.
Q. 지역에서 살아보니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자원은 무엇인가요.
박현정: 지역에서 청년이 원하는 건 정말 다양해요. 다만 원하는 걸 모두 누리긴 힘든 현실이죠. 단번에 모든 불편함을 해결할 순 없어도 지역에서 청년들이 모여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좋겠다 싶었어요. 청년운영협의회가 있다든지, 지역에서 청년 초기 정착할 때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요.
Q. ‘주섬주섬 마을’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박현정: 주섬주섬 마을이 청년이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상상하는 것이 이상한 사회에서 상상하기 위해 모인 이상한 마을이라고 소개하거든요. 저희 마을에 처음 플레이어 중 독특한 청년들이 많아요. 요새 ‘N포세대’라서 상상하는 걸 당연히 포기하는 게 당연시하잖아요. ‘주섬주섬 마을’은 상상을 실현하고, 즐거운 소통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박현정: 저희가 청년마을을 준비할 때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전라남도의 섬의 섬의 섬에 들어와서 꿈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봐요. 다사다난하고 무엇 하나 쉽게 얻는 게 없지만, 손때 묻은 공간과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청년마을 ‘주섬주섬 마을’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방연주 미디어팀 연구원·[email protected]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안다. 단명한 예로 피타고라스부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이르는 학자들이 진실을 탐구하는 거듭된 노력 끝에 ‘지구는 둥글다.’라는 명제가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청년정책 역시, 청년을 국가 경제발전의 도구로 인식하던「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의 시대를 지나, 청년이 권리의 주체임을 천명한 「청년기본법」의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왔다. 청년당사자가 먼저 움직이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호응하며,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였고, 일자리 일변도 정책을 사회정책으로 전환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이 가히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시민’인 청년, 사회정책의 권리를 찾다
원가족과 교육제도에서 벗어나 노동시장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취업, 독립 등 생애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청년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자’로 분류되어 사회정책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왔다.
대표적으로 ‘국가건강검진’ 관련해 2019년 이전만 하더라도 직장 가입자거나, 혹은 지역 가입자의 세대주가 대상이었기 때문에 미취업 청년은 무료 국가건강검진 대상이 될 수 없었다. 2016년 전주에서 ‘청년의 건강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청년 무료건강검진 사업이 최초로 시작되었다.
뒤이어 시흥에서는 <청년 빈곤·건강 분야에 대한 실태조사>를 근거로 청년들이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무료 청년건강검진 사업’을 제안하였고, 주민투표로 채택되어 시행한 바 있다. 이후 <광화문 1번가>에 한 청년활동가가 ‘청년 국가건강검진 지원 확대’를 제안하였고, 2019년에 이르러서야 20~30대 피부양자와 지역가입자 세대원으로 대상이 확대되어 학생, 취업준비생 등도 무료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또한, 40세에서 70세에만 각 1회 우울증 검사를 시행했던 부분도 확대되어, 20세, 30세가 포함되었다.
이처럼 사회보장정책에서 ‘보이지 않는 시민’이었던 청년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청년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일자리 일변도 정책을 넘어 ‘사회정책’으로 확대하는 과정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국가건강검진 외에도 부모에게 지급되는 주거급여와 별도로 20대 미혼자녀가 학업이나 구직 등의 목적으로 부모와 따로 거주하는 경우, 주거급여를 분리 신청할 수 있도록 ‘청년 주거급여 분리지급’ 올해부터 시행되었는데, 이 역시 청년시민사회 진영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을 제안한 결과이다.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지역에서부터 청년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조례를 만들고 청년정책을 추진한 경험들이 쌓여, 「청년기본법」이 작년 2월에 제정되고, 8월에 이르러 시행된다. 「청년기본법」이라는 법제도 기반이 갖춰진 뒤, 곧바로 법을 근거로 한 ‘청년정책조정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한다.
기본계획에는 “원하는 삶을 사는 청년, 청년이 만들어 가는 미래”라는 비전과 △참여와 주도 △격차 해소 △지속가능성이라는 3대 원칙이 담겼으며, 참여·권리, 교육, 일자리, 주거, 복지·문화 등 5대 분야의 정책 방향과 20대 중점과제, 270개 세부과제가 포함되었다.
기본계획 수립과 발표 이후, 올해 「청년 고용 활성화 대책」을 정부합동 계획으로 발표함은 물론, 기획재정부가 「2021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튼튼한 청년 희망사다리 구축’에 관한 과제를 담았고 연달아 「자립준비청년 지원강화 방안」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제4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 개최를 통해 18개 부처합동으로 반값 등록금의 실현과 주거취약청년 대상 월세 특별 한시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청년세대 격차해소와 미래도약 지원을 위한 청년특별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제 막 시작한 ‘형성기 청년정책’ 남은 과제는?
이처럼 발 빠르게 중앙정부가 ‘청년정책’을 합동계획으로 발표하고, ‘청년정책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변화를 가져오기까지 ‘끝까지 끈질기게 안녕, 거버넌스야 하자!’는 말을 청년 당사자 그룹과 수없이 주고받았던 것 같다. 과정은 지난했지만 여전히 청년정책은 이제 막 시작한 ‘형성기 정책’이라는 점에서 갈 길은 멀다.
다만, 청년정책이 ‘형성기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제 분야가 총 망라해 있다 보니, 작년 기준으로만 볼 때, 전국에서 시행된 청년정책은 총 2,930개(중앙정부 239개, 지방자치단체 2,691개)에 이른다.
정책은 많지만, 청년정책 평가 및 수요조사(2019, 변금선)에 따르면, 청년 당사자들의 정책 인지율은 평균 38.3%, 수혜율 평균 7.2%로 매우 낮은 수준이였으며, 필요수준 평균 85.9% 대비 도움 정도 73.4%로 더 낮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정책을 필요로 하는 청년에게 ‘청년정책’을 어떻게 가닿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집중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작년 연말 기준 전국 청년센터는 171개에 이르지만, 지역별 역량에 따른 격차가 크고, 예산 규모의 한계, 센터 인력의 고용불안정 및 전문성 확보 문제 등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청년정책 전달체계를 어떻게 구축하고, 발전시켜나갈 것이며, 자원·역량·인력·예산 등 지역별 청년센터의 격차 해소를 위해 ‘중앙-광역-기초’ 단위의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교통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청년참여보장 시즌1)에서는 주요한 청년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 시,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 등 기반을 구성하는 시기였다면, 청년참여보장 시즌2 에서는 사회와의 연결과 참여의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청년들이 미래인지적 관점에서 주요한 결정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국가재정법」 제16조 예산 원칙에 대한 내용 중, ‘미래인지적 관점’을 추가하여, 미래 세대에게 주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예산 결정에 있어서, 반드시 ‘청소년·청년’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참여 권한을 강화하고 효능감을 재고하는 수준까지 검토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대전환의 시기에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중요한 삶의 과제를 청년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힘을 ‘일상의 결핍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경험’을 통해 쌓아갈 수 있도록 청년 능력개발 정책의 새로운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전통적 노동시장에서는 해석되지 않지만, 새로운 일자리 전환기를 맞이한 변곡점에서 청년들의 다양한 사회활동 지원을 통해 ‘업(業)’으로 전환 가능성을 타진하고, 사회적 실험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청년활동계좌제’, ‘청년참여소득’ 등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청년과 관련된 조례 제정 현황 중 한 흐름을 보면 청년들의 다양한 혁신 활동과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에서 ‘청년발전기금’, ‘청년미래기금’ 등의 이름으로 기금에 대한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국 최초로 청년발전기금 100억원 조성을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영광군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청년 지원 사업 추진을 위해 <청년발전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를 2017년 제정하고, △청년 희망 플러스 통장 운영, △청년 취업 활동 수당 지원, △청년 프리마켓 운영 지원, △청년학교 및 청년동아리 활동 지원, △청년센터 운영 등에 사용하기 위한 기금을 확보하기 위한 연차별 재원 확보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뒤이어 충남 서천군, 서울 금천구, 부산 진구, 부산 남구, 광주 남구, 제주도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한 상태이다.
청년의 삶을 둘러싼 과제는 앞에 열거한 내용 이외에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삶의 위기 앞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그동안 사회정책에 소외되거나 배제되어왔던 청년들을 위해 사회보장 범위를 넓히고, 사회적 안전망 보다 더 촘촘히 만드는 일이다.
청년정책이 형성기를 넘어 ‘제도가 안착하는 성숙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언제나 그래왔듯 우리는 ‘끝까지 끈질기게 안녕, 거버넌스야!’라고 외치며, 더디 가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함께 설정하고, 변화를 모색하며 삶과 현장을 지키는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 글: 조은주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
지난 2월 7일 북한은 위성을 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이 위성을 지구 관측 위성 ‘광명성 4호’라고 명명했으며, 이 위성은 지금도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다만 이 위성이 정말 지구 관측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상의 기지국과 통신이 가능한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해 실제로는 미사일 발사 실험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 유수 언론들은 북한의 위성 발사체를 곧바로 미사일로 단정짓지는 않았다. 주요 언론들의 기사 제목을 훑어보자.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North Korea launches ‘satellite’’(2월 6일), 즉 ‘북한 ‘위성’ 발사’ 라고 해서 북한의 주장을 인용하되 따옴표로 의심을 표시했다. 뉴욕 타임즈는 ‘ North Korea Launches Rocket Seen as Cover for a Missile Test’ (2월 6일), 즉 ‘북한, 미사일 시험을 위장한 것으로 보이는 로켓 발사’라고 해서 북한의 주장과 그에 대한 의문을 모두 표현했다. 영국 BBC는 ‘North Korea fires long-range rocket despite warnings’(2월 7일), 즉 ‘북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라고 했다. CNN과 알자지라 등 다른 국제 뉴스 네트워크도 모두 ‘로켓’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의 위성을 곧바로 미사일이라고 불렀다. 국방부는 북한의 위성 발사 당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북한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조중동은 물론 K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도 이를 그대로 받아 장거리 미사일 등의 표현을 단정적으로 사용했다. 그 뒤는 모두가 아는 바다. 하루 종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종편의 아우성 속에 북한이 실제 위성을 발사했다는 것은 까맣게 잊혀졌다.
한국 정부와 언론의 논리는, 위성 발사 기술이 미사일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위성이지만 이를 미사일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실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2월 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위성 발사 기술이 “미사일에 적용될 경우 만 2천 킬로미터에서 만 3천 킬로 미터 정도 사거리를 지닌 미사일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북한의 위성 발사 기술로 그처럼 어마어마한 사거리를 지닌 미사일을 곧바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쏘려면 일단 미사일을 대기권 바깥으로 쏘아 올린 뒤 우주 공간을 거쳐 목표 지점까지 보내고 (우주 공간에서는 공기의 저항이 없어 연료 소모가 거의 없다.) 목표 지점에 다다르면 이를 다시 대기권 안으로 끌어 내려야 한다. 이 때 미사일을 다시 대기권 안으로 끌어내리는 기술을 재진입 기술이라고 하는데, 북한이 이 기술을 확보했다는 증거는 아직 전혀 없다.
이런 점을 일단 접어두고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세계 지도를 열어 북한을 중심으로 지름 만 2천 킬로미터인 원을 그려보라. 동쪽으로는 미국 워싱턴을 넘어 대서양 한 복판까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끝까지 닿는다. 사실상 전 지구를 포괄하는 사정거리다. 그 말은, 당장 이번 미사일 발사로 잠재적 위험이 증대한 쪽은 북한과 겨우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보다는 멀리 떨어진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누군가라는 뜻이 된다. 물론 이번 위성 발사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기술의 수준이 높아지고 안정화되는 증거라고 보면 남한에 대한 잠재적 위협도 증대한 것은 사실이나 딱히 이번 발사와 연관시켜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의 국방부가 미국과 사드 배치를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지 불과 6시간 만이었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토마스 밴달 미 8군 사령관이 동석했다. 이 사실은 이번 북한의 위성 발사로 잠재적인 위험을 안게 된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다.
경위야 어쨌든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 다른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할만 하다. 그러나 사드가 남한 방어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드가 아직 실전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개발 중’인 무기라는 점이다. 실전에서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무기를 놓고 이게 한국의 전장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다투니 결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판단을 도와주는 근거들은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지난 2013년 ‘아태 지역에서의 탄도 미사일 방어 : 협력과 반대’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아태 지역에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 즉 MD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검토한 보고서이다. 보고서의 전체 결론은 ‘도움이 된다’는 쪽이다. 보고서의 전체 결론이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한국 쪽의 효용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 2015년에도 미국 의회 조사국은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냈으나 여기서는 한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방위사업청 역시 이 문제를 검토한 바 있다. 2013년 방위사업청은 미국 현지에 직접 가서 사드에 대한 실사를 벌였다. 방위사업청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측은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는데, 대구 부산 지역에 배치할 경우 스커드 B, C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 방어에는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수도권을 위협하는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서는 미국 측에서 아무런 시뮬레이션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고 싶어하는 미국 측조차도 사드가 한반도 방어에 적합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드 배치 찬성론자들은, 사드가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4차례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 실험들은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요격에 성공했다며 미 미사일 방어국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타겟 미사일을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점화시킨 뒤 표적으로 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한이 지상의 발사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환경과는 다르다.
뉴스타파는 이러한 실험이 한반도의 전장 환경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미사일 방어국에 타겟 미사일과 사드의 요격 미사일 간의 거리가 얼마인지, 요격 고도와 시간은 어떠한지, 타겟 미사일의 좌표가 사드 시스템에 사전 입력되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질의를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미국은 효과를 장담할 수도 없는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드의 구성 요소 가운데 X밴드 레이더(AN/TPY-2)가 있다. 이 레이더는 두 가지 모드로 세팅할 수 있는데 종말 모드(terminal mode)와 전진 배치 모드 (front based mode)가 그것이다. 종말 모드의 경우 감시 범위가 600km, 전진 배치 모드의 경우 감시 범위가 1,800km에 이른다. 문제는 전진 배치 모드의 경우 북한 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감시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레이더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실시간으로 괌, 하와이, 미국 본토에 있는 미군은 물론 주일 미군을 통해 일본 자위대에게까지 공유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의 국방부는 한번 ‘종말 모드’로 세팅을 해 놓으면 세팅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미 미사일 방어국에 질의했으나 역시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사드 레이더를 통해 수집된 정보가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 방어망에 실시간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사드는 미국이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 MD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MD로의 사실상 편입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을 MD에 편입시켜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해 이를 통해 북한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는것이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동북아 전략의 뼈대이다.
이러한 전략적 이점 때문에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을 MD에 끌어들이기 위해 애써왔다. 본격적인 압박이 시작된 것은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다.
부시가 당선되고 몇 달 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런데 부시는 기자들이 모인 공개석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 이라고 부르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이 외교적 결례의 배경은 몇 달 뒤 한국일보가 보도한 외교 전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배경은 바로 MD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며칠 전 미국은 한국에 외교 전문을 보내 “한국은 MD 배치 필요를 인정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성명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는데, 한국의 외교부가 그 부분을 삭제한 채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한국의 이러한 조치는 부시 대통령을 화나게 했고,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내내 미국의 홀대로 이어졌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끝내 MD 참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MD 참여 요구는 더욱 거세졌고, 이에 따라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이동식 레이더,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등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공식적으로는 MD 참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MD 참여를 적극 검토했으며, 실제로 MD 편입 쪽으로 상당히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게 한미 합동 미사일 방어 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MD 참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으로서는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고, MD를 받아들일 경우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이 가속화 되는 악순환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표면적으로는 비슷한 기조가 계속됐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MD에 참여하라고 압박했다. 대표적인 게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이다. 고의였는지 부주의 때문인지 국내 언론은 초점을 맞춰 보도하지 않았지만 당시 한미일 공동 회견 영상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하는 얘기는 바로 MD 참여 논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게는 미국에게 구실을 내줄만한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시 작전권 환수 연기 문제다. 전작권 환수 연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며 한국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자 미국에 매달렸다. 이 때 미국이 내세운 조건이 바로 MD 참여였다. 한국의 전시 작전권 환수 연기와 MD체제 편입이 맞교환된 게 아니냐고 전문가들은 의심하고 있다.
상징적인 장면이 2014년 서울에서 벌어졌다. 2014년 4월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당시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를 주로 얘기했고 국내 언론의 관심도 그 부분에 집중됐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발언 마지막 부분에서 뜬금없이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제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되 상호 운용성을 증대”하겠다고 말한다. 뒤를 이은 오바마 대통령은 발언의 순서가 정반대였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MD가 우선이고 전작권은 그 다음 관심사였던 것이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MD를 얘기하며 한국의 참여를 압박했지만 한국의 자세는 표면적으로는 요지 부동이었다. 한국은 사드 문제에 대해 이른바 ‘3 no’, 즉 미국의 요청을 받은 바도 없고 협의한 바도 없고 결정된 바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미국보다 중국을 외교의 중심에 놓는듯한 행보를 보이기까지 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이 급변한 것은 지난해 연말부터다. 첫번째 조치는 지난해 12월 28일 있었던 한일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다. 위안부 문제는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불과 70년 전까지 일본의 식민지로 고통받던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추진할 경우 국내 여론의 커다란 반발이 부담이 될 것이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위안부 문제였기 때문이다. 역으로 보면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MD 참여를 거부하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명분 중의 하나가 위안부 문제였다. 그런데 한국이 나서서 이 걸림돌을 스스로 치운 것이다. 미국에서 환영의 논평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사드 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다. 중국을 대북 제재에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국내 여론의 후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실제로는 이미 사드 배치, 그리고 MD 편입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었던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1월 22일 있었던 국방부의 신년 업무보고다. 국방부는 신년 업무 보고에서 한미일의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채널을 구축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2월 7일 북한이 예정에 따라 위성을 발사하자(북한은 이 기간에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국제해사기구, IMO와 국제전기통신연합, ITU에 사전 신고를 했다.) 이를 곧바로 미사일이라고 규정하며 6시간 만에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화했다.

과거 정부들과 달리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왜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이유를 현재로선 정확히 확언하기 힘들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전시 작전권 환수 연기에 따른 보답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공을 들여온 중국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배신감과 분노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야권의 주장처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의식한 ‘북풍 몰이’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두 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이 모든 이유들을 합한 것보다 훨씬 엄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보면 북한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넣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할 뿐 아니라 세계 2위와 3위의 군사대국인 러시아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돌리게 된다. 더 크게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 외교라는 우리 외교의 근본 기조와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성장 전략을 뿌리채 뒤흔드는 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한국은 90년대 중국의 개방 이후 전통적 우방인 미국으로부터는 안보를 제공 받고, 새롭게 수교를 맺은 중국으로부터는 경제적 실리를 취해왔다. 이 전략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강대국들의 이전 투구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해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이러한 전략을 포기함으로써 안보 비용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경제를 고사시킬 수도 있는 ‘최악의 결정’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암담하게 할 역사적 결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총선특집4 / 청년유권자파티 "이생망,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이런데도 우리 꼭 투표해야 하니?!
이번 총선 정말 핵.노.답.이라고 생각하는 청춘들이 유쾌한 입담파티를 열었습니다.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마시며 투표해야 하는 이유 딱 하나만 찾아보았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보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938483
참여연대 팟캐스트 총선 특집 일정 (업로드 일자)
외교부가 지난 3월 31일자로 공개한 30년 경과 비밀해제 문서에는 겉과 속이 다른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부터 귀국 이후까지 미국과 한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외교문서를 통해 추적했다.

▲2016년 3월 31일 공개된 30년 경과 외무부 비밀문서
김 전 대통령은 1982년 12월에 신병치료를 이유로 미국 망명길에 나섰다. 귀국 전까지 2년여 동안 한국 정부는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 전 대통령의 귀국 움직임이 포착됐고 한국 정부는 귀국하면 재수감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서에 따르면 월포위츠 당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유병현 당시 주미 한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선 전 귀국이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며 사실상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을 반대했다.

▲1985. 1. 5 주미 한국대사관의 월포위츠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면담 내용 보고 문서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LA의 한 강연에서 1985년 2월 8일에 귀국하겠다고 천명했다. 김 전 대통령의 귀국이 확실해지자 워커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정부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을 사면하는 조건으로 귀국을 총선 후로 연기시키자는 방안이었다.
놀라운 것은 제안 이유였다. 30년만에 공개된 비밀문서에 따르면 워커대사는 “김 전 대통령이 제안을 거부하면 그 사실을 공개해 궁지에 몰아넣고, 수락하더라도 정치활동을 계속해서 규제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귀국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그의 귀국이 한국의 정치발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다.

▲1985. 1. 19 김대중에 총선 후 귀국과 사면 제안에 대한 외무부 장관과 워커 주한미대사의 면담 문서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귀국 의지를 꺾지 않았고 “정치적 보복은 없어야겠지만 살인에 직접 관련된 사람들(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로 추정됨)은 예외”라고 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1985년 2월 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귀국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지 777일, 2년 2개월 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안전을 염려한 스물 일곱 명의 미국 인사들이 함께 입국했다. 이 중에는 두 명의 하원의원과 전직 고위 외교관도 포함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1985. 2. 8 귀국하자마자 동교동 자택에 가택연금된 김대중 전 대통령
그런데 이번에 비밀해제된 외교문서에는 이런 미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미국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폭행 사건 발생 후 한미 외교 담당자들이 주고 받은 대화록에 따르면, 워커 대사는 폭행 사건이 “과격 선동가들이 김대중과 짜고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1985. 2. 11 김대중 전 대통령 귀국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드러나는 외무부 장관과 워커 주한미대사의 면담 문서
미국은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이 가져올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축소 보도에 대한 미국 내 비난은 감수하겠다”며 AFKN에 대한 보도 규제를 실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공개된 외무부 비밀문서에는 미국의 입장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당시 외무부 공무원들의 이해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외교문서에 나타난 미국 정부의 속내는 미국의 겉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외무부 주미대사 –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면담
“김대중이 재수감되면 미국정부는 의회나 언론으로부터 시달릴 것”
“김대중의 선거 전 귀국이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것”
김대중의 안전한 귀국 요청 서한
하버드 대학 총장, 러스키 전 국무장관 등이 포함
외무부 – 주미대사
“김대중이 선거 후 귀국한다면 유럽여행을 허가하겠다”
LA강연에서 귀국을 천명
“1985년 2월 8일에 귀국하겠다”
워커 주한미대사의 제안 : 김대중에 귀국연기와 사면 거래를 제안
“제안을 거부하면 이를 공개해 궁지에 몰아넣자”
“수락하더라도 정치 활동을 계속 규제하자”
외무부 내부 회의
“선거 후 귀국을 추진”
“귀국하면 재수감, 병원수감, 가택연금하겠다.”
전두환 대통령 – 워커 주한미대사 면담
재수감에 대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강경한 의지
미국 국무성
“전두환 정권의 결정은 매우 실망스럽다.”
“김대중과 다시 접촉을 시도해보겠다.”
외무부 장관 – 워커 주한미대사
미국이 김 전 대통령에 귀국 연기 요청
김대중의 귀국 확정
“정치적 보복은 없어야겠지만 직접 살인관련자들은 예외”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나면 충분한 보복”
관계기관 합동회의
한국이 미국 측에 AFKN 방송규제 요청
김대중의 귀국, 그리고 미국인 폭행사건
“미국이 네 번의 강력한 항의와 불만을 표시”
외무부 장관 – 워커 대사
“이번 일은 과격 선동가들이 김대중과 짜고 한국 정부를 궁지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임으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
“미국이 거듭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지만 한국이 거절”
촬영 :최형석
편집 : 박서영
<민선영(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 구현모(청춘씨:발아), 이가현(알바노조), 박상훈(정치발전소) ⓒ청년참여연대>
여당이 이기든 야당이 이기든 내 삶에 무슨 변화가 있나?
여당이 압승할 게 뻔한 이번 총선, 꼭 투표해야 하나?
여당 독주를 막기 위해 내가 지지하는 정당보다는 전략투표를 해야 할까?
청년들은 총선을 앞두고 고민이 많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일, 앞으로의 장래도 걱정인데 투표도 마음 편히 할 수가 없어서요. 내가 좋아하는 당을 선택하자니 사표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이기는 선거를 하자니 마음에 안 들고. 그렇다고 주변에 정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친구들이 꼭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청년참여연대는 이번 총선에 대해 할 말 많은 청년이라면 누구든 모여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청년유권자파티 <이생망,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열었습니다. 이생망? 처음 들어보셨나요? 요즘 청년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여 만든 줄임말인데요, 풀어쓰면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랍니다. 그렇지만 한번뿐인 인생, 이대로 죽을 순 없잖아요?!!!
청년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줄 이야기손님으로는 온라인뉴미디어 <청춘씨:발아>의 구현모 친구와 알바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가현 친구가 함께 했습니다. 청년들의 궁금한 점이나 고민들은 정치발전소 학교장인 박상훈 선생님이 듣고 조언을 해주셨고요, <씨 없는 수박>의 가수 김대중 씨는 청년들의 애환을 담은 <300/30>, <불효자는 놉니다> 등의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청년유권자파티에 참가한 청년들(왼쪽), 노래를 하고 있는 씨없는수박 김대중님(오른쪽) ⓒ청년참여연대>
SNS에서 엄청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청춘씨:발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평범한 대학생이던 가현은 어떻게 알바노조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 내가 지지하는 정당보다는 전략투표를 해야 할지, 정말 흥미롭고 많은 이야기들로 유권자파티가 가득 찼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고요? 그럼 참여연대 팟캐스트 <참팟>으로 꼭 한번 들어보세요 :)
[팟캐스트] 총선특집4. 이생망,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클릭하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우리는 크게 두 차례의 민중 혁명을 경험했다.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1960년 4.19 혁명과 ‘호헌 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1987년 6.10 항쟁이 그것이다.
6월 항쟁 29년 뒤인 2016년 10월 말,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무능과 오만, 국정농단과 범죄 행위에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청와대 앞 광화문 광장에는 그런 열망을 가진 촛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고, 이내 촛불의 바다를 이뤄 청와대를 포위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도 100만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이날까지 전국의 촛불 인파는 연인원 천만 명을 넘어섰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던 분노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다. 과거 4.19 혁명 후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등장으로 민주화 대신 18년의 군부독재를 겪어야 했던 경험과, 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의 성과를 군부독재와 기득권 세력에게 빼앗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을 이번에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게 천만 촛불이 직면한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뉴스타파는 2017년을 맞아 신년특집으로 과거 민중혁명 과정에서 기성 정치권과 지배 권력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어떻게 묵살하고 교묘한 공작과 반격으로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다시 공고히 다져왔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60년 전과 30년 전의 뼈아픈 과거를 직시해 다시는 그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또 다시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연출 : 박정남 송원근
글 : 정재홍
취재작가 : 박은현
내레이션 : 박혜진
촬영 : 영상취재팀
편집 : 윤석민
정치발전소 회원모임인 ‘정치가 평전읽기’ 모임이 지난 1월 21일에 끝났습니다.
시즌 1과 2을 거쳐 긴 시간 이어졌던 모임이었습니다.
긴 모임에 함께 했던 후기 및 마지막으로 읽었던 김대중 자서전에 대한 서평을 ‘유성민’회원이 써주었습니다.
편견의 안개가 걷히자, 정치가가 보였다.
– 정치가 평전읽기 모임, ‘김대중 자서전’ 독서 후기 –
유성민
#1
정치가 평전 읽기 모임에 참여한 동기는 사소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치적으로 뭔가를 이것저것 해봤는데 여전히 잘 되지 않았고. 하다못해 나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SNS 사진 업로드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으로 인해 공적-사적으로 여러 부침을 겪고 있었다. 회복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반 발짝 정도 떨어져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무조건적인 예찬을 경계한다. 두 정치인의 행적 중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평전 읽기 모임에서 ‘김대중 자서전’이란 커리큘럼은 사실 마케팅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대중/노무현 자서전 읽기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활동이니까. 그래서 김대중 자서전에 대한 고민이나 기대보다는, 다른 해외 정치인들의 사례에서 위로를 받고 교훈을 얻고 싶었다.
사생아였던 빌리 브란트, 암살당한 올로프 팔메, 2권이라는 만만찮은 길이로 모두의 시간을 하얗게 불태운 빌 클린턴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적 실수와 약점, 다른 정치인과 여론의 공격에 고뇌하고 대응하는 그들에게 마음껏 감정을 이입했다. 그러한 감정이입과 공감 속에서 난 어느 정도 위로와 교훈을 얻었다. 여름의 아픔과 분노는 어느덧 가을의 차분한 안정으로 변했다.
부패한 정치인이 된 룰라, 다소 재미가 없지만 단단함을 느꼈던 메르켈을 지나 마지막으로 읽은 자서전은 드디어 김대중.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그런 정치적 평가를 뒤로 하고 그의 삶에서 배우고 얻을 것은 무엇일까.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읽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까. 그런 기대와 우려로 겨울의 마지막 평전 읽기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감상을 말하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는 너무 작았고, 우려는 너무 컸음이 드러났다. 드라마같은 삶의 전개, 눈물이 나오고 코가 찡한 장면들, 담담히 서술된 노(老)정객의 이야기에서 나는 배움에 더해 감동도 얻었고, 읽는데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된 정치인이었다.
#2
이유는 간단했다. 솔직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유난히 많은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 실패들을 온전히 다 거치고 난 우뚝 선 정치인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 “위대한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청년사업가, 요새로 치면 스타트업을 하면서 주거래은행에 법인계좌 만들고 마침내 신사업에 성공해 대금을 예치했는데, 다음 날 전쟁이 나서 은행 계좌가 동결되고 알거지가 된다면 나의 정신상태는 온전할까.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듯, 선거란 후보에게 특히 고달픈 일이다. 특히 패배는 한 순간에 그를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국회의원은 1번만 해도 전(前) 의원이다.”란 말로 2번, 3번을 도전했다. 목포에서 1번, 인제에서 2번을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4번째만에 연고지도 아닌 인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하루 만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서 당선증도 못 받고 국회가 해산되었을 때, 나였다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정권으로부터 납치되어 현해탄에 수장될 위기까지 넘긴 상황에서 나는 다시 나의 정치적 신념을 유지하고, 나와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을 겪고 또 다시 쿠데타를 겪고 나서는, “대통령 빼고 다 줄 테니 우리에게 협력해라”라고 하는 쿠데타 세력에게 “내가 당신들한테 협력은 할 수 없으니 날 죽인다 한들 내가 어찌 하겠소.”라고 말할 용기를, 자신있게 낼 수 있을까.
한일기본협정 당시의 김대중의 모습처럼, 국민들 다수가 지지해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소신은 끝까지 지켜내고, 설득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그런 그의 말들 중에서도 묘하게 먹먹한 말이 있었다.
“김 총재와 나를 라이벌로만 보지 마십시오. 나라가 잘 되려면 여러 인물이 커야 합니다. 내가 민주 회복 때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고, 김 총재가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제2, 제3의 김대중이와 김 총재가 필요합니다. 이래서 하나가 쓰러지고, 하나가 병들더라도 올바른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 회복이 되면 이까짓 것 따질 필요 없습니다. 그때 국민 여론과 여러분 의사로 결정하면 그만입니다. 애도 낳기 전에 이름 갖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김 총재는 오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래 이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단견으로 시국을 보지 않고 10년, 20년 뒤를 내다 보고 “더 많은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 자신과 파가 다른(김대중은 신파, 김영삼은 구파 출신이며 상도동/동교동 계로 계파가 다르다.) 사람도 “커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과 주변의 생존에 급급해 허우적대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옳음을 위해 정치적 상대방을 키우는 정치. (설사 그로 인해 훗날 자신의 기회가 뒤로 미뤄진다 해도 말이다.)
정말 먹먹했다. 나는 현재 내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을 본 지가 너무 오래 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멀리 내다보는, 대국적인 정치”는 그의 정치 일생 내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가령 의석 수 67대 6의 이기택 씨와의 통합 협상에서 “통합을 하려면 상대에게 내 것을 다 준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70%를 주고 30%를 갖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가능하다.”란 말을 하고 5대 5의 비율로 협상을 한다거나,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에도 내각제 개헌을 수락하고 DJP 연합을 성사시킨다거나 하는 일들은 모두 그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 멀리 내다보는 혜안에서 비롯됐다.
“정치꾼”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그가 “정치가”로 불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정치가의 “가”는 집 가(家)자를 쓴다. 정치일문, 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자서전에 있는 내용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의 집권 때 행했던 정책 중 일부는 동의가 안됐고, 이는 자서전을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던 문제, 정부 조직구조를 민간 컨설팅회사에 조직진단을 맡긴 일, “관치”를 없애겠다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부분은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자신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반대에 대해, “정치권의 반대”란 표현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반대가 정략적이라는 것만큼 정략적인 반격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그의 인생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입장을 동의나 수용은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면서 늘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강한 “관치”를 30년간 지켜 본 사람이었다. 사실 그의 “대중경제론” 등 ‘산업민주화’ 등도 지금 관점에서 보면 민영화 정책을 포함하고 있었다. 어쨌든 정치 민주화 이후의 “경제 민주화”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3
“돈”과 “정치”에 대한 그의 자서전 속 말도 한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정주영씨는 정치에 입문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다. 그와는 여러 자리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정치를 너무 쉽게 보는 듯 했다. 지방에 다니며 온갖 공약들을 다 쏟아내고, 당에도 거액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그러나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결국 그는 정치인으로는 실패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 정치는 이러나 저러나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단칠정이 다 녹아있는 행위의 예술이다. 돈은 칠정, 희로애락애오욕을 움직일 수 있을지언정, 사단, 인의예지를 차마 움직일 수 없다. 인의예지, 정치인에게 있어 이 “사단”을 움직일 수 있는 도덕과 신념, 이른바 사람을 움직이고 끌어갈 수 있는 ‘소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있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듯, 돈은 “주조된 자유”다. 돈은 내 마음과 본능이 욕망하는 것을 행하기 위한 ‘자유이용권’이다. 인간의 네트워크는 돈을 통해 오가는 마음과 물질을 통해 보다 더 단단해지고, 시간이 필요한 많은 것들은 돈을 통해 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가 많은 사람, 이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우러르고 따르게 된다. 그래서 돈은 힘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착각하곤 한다. 정치는 돈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일까, 돈이 있어서 하는 것일까,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정치는 재분배의 과정이다. 각 계층의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이고, 재분배 과정에 대한 관점들의 대결이다. 기업집단 같은 조직 내에서의 정치, 재분배는 “이익과 인센티브”가 제일 중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가 어디 그런가. 사회의 재분배는 보통 그 사회의 구성원이 믿는 신념과 가치, 문화가 물질적 이익과 함께 재분배된다.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치열한 신념의 대결과 설득의 과정이 바로 정치다. 그래서 정치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내가 당신에게 돈을 줄 수 있다는 확신보다 더 중요한, “소신”(소명)이 필요한 것이다.
돈으로는 사람의 능력, 그 사람이 한 행위의 결과물을 살 수 있지만, 정치가의 소신은 사람의 마음, 사람 그 자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신은 수시로 흔들린다. 돈을 위시하여 사람의 “칠정”을 움직이는 갖가지 변수에 의해. 그 무수한 흔들림을 이겨내는 “단단함”을 벼리는 과정이 아마 정치꾼이 정치인으로, 정치인이 정치가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4
국민의 정부 5년을 거치며 그의 인생 막바지를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대중이란 정치가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바로 소명이었다. 자서전에 적힌 그의 집권 5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0년 총선은 패배했고, 자민련과의 공조도 붕괴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노벨평화상 수상 등 그의 소신인 “한반도 평화”를 이뤄낸 영광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북-일, 북-미 수교와 핵 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꿈꾼 김대중-클린턴 구상은 뒤이은 조지 W. 부시의 당선과 9.11 테러로 무너져 내린다. 2003년 정권을 물려받은 참여정부는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그의 통치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열린우리당 창당,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파동을 통해 그가 구축한 호남과 청년의 민주개혁세력을 실망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불통은 그가 죽기 직전까지 심각했고, 급기야 그의 마음과 건강까지 앗아갔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전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뒤를 좇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행동하는 양심”을 촉구하며 대의 앞에서 뜻을 같이 하고 불의 앞에 같이 맞서려 했던 이였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비로소 편견의 안개가 걷히고, 민주화 이래 우리 곁을 다녀간 어떤 위대한 “정치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만약 정치적으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그 꿈을 누군가가 물어봐 준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저 “정치가”를 분골쇄신해 도울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자유한국당 일부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수사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박근혜에 대한 수사는 대선 이후로 연기하라”고 주장한데 이어 대선출마를 선언한 김진 자유한국당 상임고문도 13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 프로그램에 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뤄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고문은 ‘박 전 대통령의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진 이른바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을 예로 들었다.
김 고문은 “지금 (박 전 대통령) 수사를 해서 구속영장을 발부하니 마니 기소를 하니 이런 것들이 만약에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면 1997년에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사건과는 어떤 차이가 있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과 마찬가지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뜻이다.
과연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과 ‘박근혜 국정농단’이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진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좌)은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사건’처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대선 후로 미뤄야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10월. 여당인 신한국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이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360여개의 비밀계좌를 통해 67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다. 며칠 뒤, 강 사무총장은 김 총재가 10여개의 기업으로부터 130여억 원을 수수했다고 폭로했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대선용 기획 폭로로 정국은 후폭풍에 휩싸였다. 때문에 김태정 검찰총장은 이에 대한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 경제 회생의 어려움과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하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결국 대선 이후인 1998년 2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이 사건을 수사했고 결론은 무혐의였다.
사건의 주체가 다르다. 1997년 당시 김대중 총재는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던, 유력 대선 후보였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자, 피의자일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검찰과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다.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은 제보자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여당 사무총장이 직접 폭로한 수준으로 증거 자료가 부족했다. 김태정 검찰총장도 수사 유보 입장을 발표하며 “수사 기술상 대선 전에 수사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이미 검찰과 특검 수사,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통해 혐의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중간 수사 결과에서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관계로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가 있다며 피의자로 입건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또 검찰 수사를 이어받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박영수 특검은 지난 6일,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 삼성전자로부터 433억원 뇌물 수수▲KEB하나은행 본부장 승진 임용 직권남용 ▲KD코퍼레이션 현대차 수주관련 직권남용▲최순실에게 공무상비밀누설 ▲문화계 블랙리스트 지시와 관련 직권남용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헌법재판소 역시 탄핵 사유가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했다.
이미 공범관계에 있는 최순실은 구속됐으며 뇌물공여 혐의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구속 기소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폭로 수준이었던, 1997년과는 다르다.
김진 고문이 선거 영향을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1997년 폭로가 선거에 미친 영향도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비자금 의혹 미미’ 보도를 보면, 비자금 폭로 의혹에도 김대중 후보가 여전히 1위를 달렸다. 그해 대선에서 의혹의 당사자였던 김대중 후보가 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취재: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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