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한인정치 1번지 뉴욕에서 디지털(온라인) 대전 시작하다
정세균이 옳고, 이정현이 틀렸다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의 위법성과 정당성 논란에 대해
좌세준 변호사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했다. 역대 여섯 건의 장관 해임 건의 중 다섯 번은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 건의를 어떠한 형태로든 받아들였는데,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거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만이 아니라 새누리당도 국회의장 형사 고발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인데, 새누리당에 그 많다는 율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정세균 의장은 과연 국회법을 위반하여 가면서까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일까?
아마 새누리당은 알면서도 짐짓 '포커페이스'로 "국회법 위반"이라 밀어붙여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번 해임 건의안 의결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국회법 위반' 논란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 1학년 정도면 배우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새누리당 의원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모르지는 않겠지만, 확인 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겠다.
23일 밤 국회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 과정을 지켜봤다. 23일 자정 직전까지 진행되던 제8차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정세균 의장은 본회의 차수 변경 및 의사 일정 변경을 통해 24일 0시가 넘은 시점-국회사무처 보도 자료에 따르면 24일 0시 18분경-에 제9차 본회의 개의를 선언한 다음, 해임 건의안 표결에 들어갔고 투표 결과 가결을 선포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장석 앞까지 나와 강력히 문제 제기한 부분은 정세균 의장이 국회법 제77조에서 정한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 차수를 변경하고 의사 일정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해임 건의안 통과 후 국회사무처가 낸 보도 자료에 따르면 "차수 변경을 위해 회기 전체 의사 일정 변경(안) 및 당일 의사 일정(안)을 작성하여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 : 9.23(금) 23시 40분경"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응이 "종이 한 장 보내 통보한 것은 협의가 아니다"인 것을 보면, 새누리당은 "산회를 선포하고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나온 새누리당 측의 '국회법 위반' 관련 주장은 사실상 이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국회법 제77조가 규정하고 있는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 절차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국회법상 '협의'의 개념은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하는 절차라는 성질상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그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종국적으로 국회의장에게 맡겨져 있다."
위 헌재 결정은 17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원기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2005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가결되는 과정에서 김원기 국회의장이 "야당인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아무런 협의도 거치지 아니한 채 본래의 의사 일정상 다섯 번째로 예정되어 있던 사립학교법 개정안 심의를 첫 번째로 일방적으로 변경하였는데, 이는 협의를 거쳐 의사 일정을 변경하도록 규정한 국회법 제77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었고, 위 개정안 통과 직후 엄동설한에 이듬해 1월까지 '장외 투쟁'까지 돌입했던 터라 가히 '잊지 못할'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8년 4월 24일 위와 같이 결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피청구인 국회의장은 장내 소란으로 국회법에 따른 정상적인 의사 진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효율적인 회의 진행을 위하여 의사 일정 제5항이던 사립학교법 중 개정법률안을 제일 먼저 상정하여 심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점, 사립학교법 중 개정법률안의 상정 자체에 반대하던 한나라당 대표의원과의 협의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던 점, 당시 회의록에 의하면 한나라당 의원들을 포함하여 274명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의사 일정을 변경하더라도 그 자체로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에 지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피청구인이 한나라당 대표의원과 직접 협의 없이 의사 일정 순서를 변경하였다고 하여 국회법 제77조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
8년 전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상황과 비교하여 보면 정세균 의장을 '직권 남용'으로 형사고발한다는 새누리당의 카드가 무리수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23일 자정 직전까지 이루어진 헌정 사상 '초유'의 장관 답변 필리버스터를 통해 해임 건의안 상정 자체를 거부하는 새누리당의 의사가 명백히 확인되는 상황이었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협의하는 것은 실질적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던 점, 정세균 의장은 새누리당 의원들도 본회의장에 출석하고 있는 가운데 차수 변경과 의안 심의 순서 변경을 직접 고지하였던 점 등이 모두 위 2005년 12월 본회의 당시의 상황과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의안 상정 순서 변경 외에 본회의 차수 변경이 있었다는 것인데, 국회법 제76조 제2항, 제78조 등에 비추어 볼 때 차수 변경 절차의 위법을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가 이번 해임 건의안 처리 과정의 '위법성' 논란에 대한 결론이다. 그렇다면 위법성 논란을 넘어,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과 가결,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한 박 대통령의 결정을 정치적 '정당성'의 잣대로 재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25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청와대가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임명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장관에게 직무 능력과 무관하게 해임을 건의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24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했다는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해임 건의안 통과는 유감"이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의 입장 표명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와 같은 입장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의 요건이나 제도적 취지를 완전히 오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우리 헌법 제63조 제1항은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는 요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헌법 제65조 제1항이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의 경우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는 요건을 명시하고 있는 것과 명백히 구별된다. 한 마디로 우리 헌법은 "직무 능력과 무관한 사유"로도 국회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를 의결할 수 있도록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 헌법은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의 권한을 대통령이 갖는 국무위원 임명권에 대한 국회의 통제장치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은 장관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법적인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 반면, 해임 건의는 대통령의 장관 임명권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위한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장관 해임 건의안 의결을 두고 "직무 능력과 무관한 해임 건의"라거나 "형식적 요건"을 거론하는 것은 난센스이자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청와대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헌법상 규정이 없다"는 이유, 이른바 '기속력'을 이유로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하는 것 또한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무위원 해임 건의 규정의 정치적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오랜만에 펼쳐본 헌법 교과서를 보면 국무위원 해임건의 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해임 건의가 갖는 기속력의 강약은 해석론이나 헌법 이론의 문제가 아니고 해임 건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정치 상황의 여러 변수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곳에 우리 각료 해임 건의권의 개방성과 정치성이 있다."
박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한 결정은 '합법성'의 영역을 떠나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인가, '그른' 선택인가를 판단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가 이루어진 최근의 정치 상황의 여러 변수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들의 정치적 감각이 발휘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국회법 위반이나 국회의장에 대한 형사고발로 접근하는 새누리당의 선택이나, 청와대가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하겠다고 한 결정은 한 마디로 '법'과 '정치' 모두를 무덤으로 가지고 가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 든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보다 나은 카드를 선택할 시간과 기회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권력형 비리 의혹의 최정점.. 그러나 베일에 쌓인 최순실
최근 언론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면 단연 최순실 씨가 첫 손에 꼽힐 것이다. (그는 최근 최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으나 언론에 알려진 대로 과거의 이름인 최순실을 쓰기로 한다. ) 최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종 비리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한복이나 각종 장신구 등을 마련해 전달했다는 사소한 의심에서부터 청와대 인사에 개입하고 정체 불명의 재단을 설립해 기업들로부터 수백 억 원의 출연금을 거둬들인 것 아니냐는 권력형 비리 의혹까지, 최 씨를 둘러싼 백화점식 의혹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 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의 얼굴 생김조차 몇 년 전 한겨레와 시사인이 촬영한 사진 두 장에 의해 겨우 확인된 수준이다.

뉴스타파, 최순실 – 박근혜 영상 최초 발굴
뉴스타파는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촬영된 영상을 최초로 발굴했다. 1979년 6월 10일 한양대학교에서 촬영된 영상이다. 당시 온 사회를 휩쓸었던 ‘새마음 운동’의 일환으로 ‘제 1회 새마음 제전’이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 당시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깜짝 방문했다.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박근혜 총재의 옆을 최순실 씨가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대통령의 딸이자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근혜 총재의 바로 옆에 밀착해 경호원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영상에는 담겨 있다. 두 사람이 단상에서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촬영됐다.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 등 유수의 기업인들도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박근혜 총재의 근처에도 오지 못한 채 멀찌감치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당시 박근혜 총재의 나이는 불과 27살, 최순실 씨의 나이는 23살이었다.


새마음 봉사단, 최태민-박근혜-최순실의 연결 고리
이 날 두 사람이 만나 친밀한 모습을 보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의 회장이 최순실 씨였기 때문이다. 최 씨는 당시 단국대 대학원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최순실 씨의 아버지인 최태민 씨는 ‘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를 창설한 뒤 스스로 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음 봉사단’ 총재를, 최순실 씨는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최순실씨가 ’새마음 제전’의 개회사를 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는 충, 효, 예라는 세 가지 기치를 앞세워 국민들의 정신 개조를 목표로 하는 관변 조직이었다. 그 활동 범위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참석시켜 범국민 궐기 대회를 여는가 하면, 새마음 병원과 새마음 학교를 지어 운영하고 대형 스포츠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이런 행사에는 당대의 거물급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줄을 서서 참석했다. 전국에 지역별 본부를 만들고 초,중,고 각급 학교별로도 조직을 만들었다. 각 기업들 내부에도 ‘새마음 봉사단 직장봉사단’이 창설됐다. 당시 영상을 보면 심지어 연예인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새마음 갖기 대회를 여는가 하면 버스 안내양들을 동원해 새마음 봉사단 조직을 만들기까지 했다. 박근혜 총재는 이 모든 행사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박근혜 총재는 심지어 직접 “새마음의 길” 이라는 책을 써서 발간했다.그의 첫 저서였다.책이 나오자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모여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이러한 ‘새마음 갖기 운동’의 근본이 되는 ‘새마음’의 창시자가 바로 최태민 목사였고 그 딸이 최순실 씨였으니 박근혜와 최순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뉴스타파가 발굴한 영상은 바로 그 관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순실 – 박근혜의 40년 우정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고 이듬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인생 최대의 시련기를 보내게 된다. 최순실 씨는 이 시기에도 충실하게 대통령의 옆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수면으로 노출된 것은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 때이다. 1990년 육영 재단의 직원들과 육영수 여사 숭모회 회원들이 재단 운영에 불만을 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씨에게 진정을 제기한다. 불만의 핵심은 최태민씨가 재단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노태우 대통령은 육영재단에 경찰 2개 중대를 파견하는 등 육영재단 ‘정상화’를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이 바로 최순실 씨였다. 당시 경향 신문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최(태민)씨가 87년 재단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것은 현재는 폐간된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 편집에 딸 순실씨가 간여하는 등 육영이 목적인 어린이 회관을 수익 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데서 비롯됐다.
-
1990년11월 17일 경향신문 “육영재단 속불은 안 꺼졌다”
그로부터 7년 뒤 오랜 은둔의 시기를 마치고 정치계에 입문한 박근혜 대통령 곁에는 역시 최순실 씨의 그림자가 있었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 씨가 바로 최순실 씨의 남편이었던 것.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 역시 정윤회 씨가 발탁한 인물들이다.
2006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는 지방선거 유세를 하던 중 칼로 얼굴을 베이는 정치 테러를 당한다. 이 때 병실을 지켰던 사람 역시 최순실씨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7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비선에서 지휘한 것은 최순실 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였다는 얘기 역시 떠돌아 다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40년 우정’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두 사람의 우정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씨의 입장에서는, 40년 동안 곁을 지켰던 ‘친구’인만큼 그 권력도 나눠가질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1년 차였던 2013년 4월, 승마 선수인 최순실 씨의 딸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탈락한다. 그러자 얼마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체육계에 대한 광범위한 감사를 지시한다. 물론 감사 대상에는 승마협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승마협회에 대한 문체부의 특별 감사 결과, “승마협회 뿐 아니라 최순실 씨 쪽에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한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이 갑자기 경질된다. 당시 문체부 장관이었던 유진룡 씨는 뒷날 이 문책 인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이러한 사정은 이른바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을 계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벌어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역시 그 도화선에는 최순실 씨가 있었다. 이 때 유출됐다는 이른바 청와대 문건은, 다름아닌 “최순실 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가 문고리 3인방 등 비선 실세를 통해 공무원 인사에 개입하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는 내용의 공직기강 비서관실 문건이었다.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 속에 이 사건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나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집권 4년 차인 올해, 이번에는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의혹이 터져 나왔다.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나는 사건이다. 정관도 회의록도 엉터리인 두 재단의 설립 인가가 하루 만에 떨어졌다. 공무원들은 재단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세종시에서 서울로 출장까지 와서 서류를 받아갔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도 단박에 받아냈다. 이 과정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서류에 일부 흠결이 있었으나 기재부는 문제삼지 않았다. 재단이 설립되자 기업들은 불과 보름만에 770억 원을 몰아주었다. 사정이 어렵다며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사회적으로 약속했던 재산 출연 약속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던 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수십 억 원씩을 갹출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주도하는 각종 행사와 사업에 두 재단이 참여하기 시작한다. 일반 기업이나 재단으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재단들의 설립 과정을 최순실 씨가 주도했으며 K-스포츠 재단의 경우 이사장까지 자신의 측근으로 지목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 K-스포츠재단(왼쪽), 미르재단(오른쪽) 사무실
박근혜 대통령은 이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이런 비상 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의혹을 원천 봉쇄하고 나섰다. 2년 전 비선 실세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때와 똑같은 대응이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발굴한 최순실-박근혜의 동영상은,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오래전부터 친밀했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의 40년 우정이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매우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취재 : 최윤원, 심인보, 강민수, 정재원
촬영 : 김남범
편집 : 정지성
국회 국정감사가 집권여당의 보이콧으로 인해 나흘째 파행을 겪고 있다. 김재수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과정에 야당과 야당 출신의 국회의장이 의회민주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보이콧의 명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국정감사에 우선하는지에 대해선 새누리당내에서조차 이견이 나오는 실정이다. 결국 의도적으로 국정감사를 파행으로 이끌기 위해 명분을 위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감 임해달라’ 당대표 요청도 거절…왜 이렇게까지?
시작은 지난 24일에 있었던 ‘김재수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의 본회의 표결이었다. 야당 의원 170명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를 개최해 이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여당은 ‘거야에 의한 횡포’라며 즉각 의정 보이콧을 선언했고, 국감 개시 나흘째인 오늘(29일)까지도 국정감사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여당의 주장이 더해지면서 보이콧 사태는 격화됐다.정 의장은 24일 표결 과정에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여당이 세월호나 어버이연합과 관련해서 양보하지 않으면 맨입으로는 합의가 어렵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 이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여야 대치 국면에서 조정을 해야할 의장이 한쪽에서 서서 거래를 한 것”이라며 26일 정 의장 사퇴를 촉구하는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정 의장은 당시 발언에 대해 “협상과 타협이 아닌 표결처리에 따라 해임 건의안을 처리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극단으로 치닫던 보이콧 사태가 잠시 진정의 기미를 보인 것은 지난 28일. 이정현 대표는 국회 앞에서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관철을 위한 새누리당 당원 규탄 결의대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감사에 임해 달라”며 다만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자신의) 단식 투쟁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한 당 대표의 결단으로 풀이된다.조중동을 비롯한 이른바 보수언론조차 이날 사설을 통해 여당의 국정감사 보이콧은 명분이 없고, 즉시 국정감사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할만큼 여당의 국감 전면거부에 대한 여론의 시선은 곱지 못한 상황이다.게다가 당내에서조차 국정감사에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더이상 국감 불참을 당론으로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은 개인적 소신에 따라 국정감사를 개의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당 원내지도부 의원들에 의해 사실상 감금되는 사태를 빚었다. 유승민, 이혜훈 등 비박 성향의 중진의원들도 국감에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당 대표의 요청마저 의원총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여당은 다시 탈출구없는 보이콧 정국을 이어나가고 있다.
국감파행 장기화…피해자는 결국 국민
여당의 국감 전면 보이콧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과거에도 쟁점 현안에 대한 여야의 의견차로 일부 국정감사의 상임위가 파행을 겪은 일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당론에 의해 여당 전체가 국감에 불참하는 일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오늘(29일)로 나흘째 국감 파행이 계속되면서 1년동안 국정검사를 준비했던 의원과 보좌진들 사이에선 볼멘 소리가 나온다. 4선의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년동안 국정감사를 치뤘지만 이처럼 증인 1명도 채택되지 않는 국감은 처음”이라며 “1년동안 의원과 보좌관이 함께 공부하고 조사한 것을 정부에 따지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보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정부여당이 말로만 비상시국이라고 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진짜 비상시국이라면 대통령이 나서 여당이 국정감사만큼은 국회의장 문제등과는 별개로 다뤄달라고 설득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29일 현재까지 열린 13개 상임위의 국감 가운데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5개 상임위는 개의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 가운데 국감이 개의된 상임위는 이른바 ‘위원장 감금사태’를 겪은 국방위가 유일하다.

개의가 이뤄지지 못한 상임위들이 다뤄야 할 현안에는 시급한 민생 관련 현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무위의 경우 △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물류대란, △ 가계부채 문제,△서민금융 지원,△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등이 주요 현안이다.조경태 새누리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기재위도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최저임금 인상 등을 시급히 다뤄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개선,(이상 미방위, 신상진 위원장)이나 △지진대응 문제, △지방세제 개편(이상 안행위, 유재중 위원장)도 민생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관된 현안이지만 국감 파행으로 인해 논의 기회조차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는 야당이 지난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이후의 최초 국정감사인 만큼,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가 컸다”며 “정세균 의장 건을 핑계로 여당이 불참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여당이 앞장서서 가로막아, 모면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대통령제에서의 의회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의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민주적이고 정당하게 권력을 행사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에게 문제가 있어서 국회의장이 국회법상 정당하게 해임건의안을 가결한 것을 여당이 문제 삼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망각했거나 이해가 부족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국감 파행으로 묻혀진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여당의 노림수?
이번 국감에서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고됐던 현안은 최근 불거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이다. 특히, 국감을 앞두고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관계자들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될지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여당의 보이콧으로 인해 현재까지 단 한명의 증인도 채택되지 못한 상황이다.
국감이 진행 중인 교문위에서는 최순실 게이트과 관련된 추가 의혹들이 제기됐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씨와 관련된 두 신생재단(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대기업들로부터 700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했다는 추가 증거를 제시했다.노 의원이 국감장에서 재생한 녹음파일에는 안 수석이 전경련을 통해 일괄적으로 기업에 후원금을 할당했다는 대기업 관계자의 진술 내용이 담겨있다. 이어서 공개된 미르재단 관계자의 인터뷰에는 정부가 미르재단의 사업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간여했다는 정황이 담겨있다.

최순실 씨의 딸이 이화여대의 학칙 개정을 통해 특혜를 봤다는 추가 의혹도 교문위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기됐다.야당 교문위 소속 의원들이 이화여대 현장조사 등을 통해 확인한 사실에 따르면, 승마 종목 체육특기자였던 최 씨의 딸은 2015년 이화여대가 기존 11개의 입학 운동 종목을 23개로 대폭 확대하면서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16년 6월에는 출석 대신 대회나 훈련 참여만으로도 학적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학칙이 개정됐는데,이 개정 학칙의 소급 기간을 당해 3월로 규정하면서 출석일수가 부족했던 최씨의 딸도 이 혜택을 봤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당측 교문위 소속 의원들이 국감 보이콧에 나서면서 이같은 의혹을 규명할 증인 채택은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다.야당 측 교문위 간사인 유은혜 의원은 “최소한 이들 핵심증인들이 국감장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선 종합감사 일주일 전에 증인 채택이 이뤄져야 한다”며 “늦어도 이번주 중에는 합의가 돼서 증인출석 요구서를 보내야 증인들이 출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여당이 핵심증인들에 대한 증인 채택을 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책임을 방기한다면 의혹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국민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이콧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재 : 오대양, 홍여진, 연다혜
촬영 : 정형민, 김수영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19대 대통령선거를 일년 남직 남겨놓은 현재 시점에서 주요 정당들은 당대회를 통해 선거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야당을 중심으로 잠룡후보군의 정치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7년 이후 지난 8-9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국가의 기틀과 내용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현실을 개탄하면서 다가오는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껴본다.

이번 칼럼에서는 2012년 말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을 중심으로 선거 과정과 이후에 전개된 사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필자의 경험과 추억에 의존했음을 미리 양해구하고자 한다.
박근혜의 대국민 사기극
현재는 국정원과 기무사 등 공안기관들의 대선불법개입이 사실로 들어나고 사전 선거조작이 있었다는 혐의가 농후해져 정권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받고 있지만, 당시 박근혜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인 2012년 연말에 필자는 프레시안을 통하여 새로운 정권의 출범에 승복의 박수를 보내며 기대와 조언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박근혜, 아버지 패러다임 넘어야 산다).
기대와 설렘의 배경에는 박근혜 당선자가 몇 해 전에 한나라당 의원자격으로 미국의 몇개 명문대에서 행한 명연설들이 있었다. 주요한 내용은 신자유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아버지가 못다 이룬 과업을 이어받아 국민 각자의 꿈을 실현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복지의 선진국가로 도약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다는 것 이였다.
당시에는 감동적이였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잘 짜여진 사기극의 각본과 연기였다고 본다.
실제 18대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새누리당 복지정책은 서울대 교수진 등이 참여하여 준비한 것으로 누리예산(0-5세 보육을 국가에서 책임진다)과 대학등록금 반액제 그리고 노인수당(노령기초연금, 65세이후 모든 노인들에게 20만원 무조건 지급) 등 일련의 내용들로 한국정치판에서 처음으로 ‘생애주기적 복지개념’을 분명히 했다.
이는 경쟁상대인 민주당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수구적 정치집단으로만 생각했던 새누리당의 공약이라고 믿기에는 참 놀라운 내용이였다.
필자가 8년간 공동대표로 활동했던 복지국가소사이어티(WSS) 내부평가도 그러했고, 복지라는 주제를 새누리당조차 한국사회의 주요한 의제로 선정했다는 사실에 WSS의 열정적인 활동이 그만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근거없는 뿌듯함도 느꼈다.
더불어 복지의 주요 기둥인 ‘돌봄’에는 어머니같이 섬세하게 배려하는 여성적 감성과 접근이 매우 필요한데, 박근혜씨가 여성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기대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의 기대와 설렘이 무참히 무너지고 그 자리를 허탈과 분노감으로 채워지는 데는 몇 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발간한 선거공약집은 4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대강만 실현해도 한국이 세계속 일등국가가 되는데 손색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나는 현재, 많은 시민단체에서 박근혜정부의 공약이행의 정도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나 유관 단체의 자체평가를 제외하고 중립적인 시민평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최악의 항목인 검찰개혁에 대한 평점이 100만점에 5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나마 경실련이 후하게 매긴 43점을 포함하여 대체로 30-40점 수준에 머무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실패하고 무능한 수준을 넘어 기만적 정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량적인 점수를 떠나 정권의 성격과 내용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로 2015년 당시 민주당의 정책위원장이였던 이목희 의원의 말을 빌려본다
“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는 크게 후퇴했고, 민생은 황폐화되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긴장상태로 악화됐다. 대한민국 경제는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고 불평등 심화의 덫에 걸려 있는 실정이다. 청년들은 질 좋은 일자리가 없어 흙수저를 탓하며 절망 속에 살아가고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선되자마자 폐기처분된 ‘노인수당’ 약속
필자의 경험과 시각으로 18대 대선공약이후 박정권이 보여준 기만과 실책 중 두가지 예를 상세히 기술하고자 한다.
노인빈곤이 50%에 근접하는 최악의 수준에 처한 한국에서 국민연금과 노인수당은 복지정책의 핵심정책이다. 박근혜를 당선시킨 주요 공약이였던 노인수당의 경우 대통령 서약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을 무조건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모든노인’ 대신에 대상을 70%로 축소하고 자산조사와 국민연금 수급여부를 연동시키는 것으로 수정 시행하였다. 시행초기에 당장에 부족한 예산과 비판적인 여론 등을 고려하여 대상을 선택적으로 축소하고 혹은 자산조사를 통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할 수 있다.
다만 예산이 확보되면 공약대로 시행하고 향후 사정이 좋아지면 푼돈 수준인 20만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증액한다는 약속을 반대급부의 조건으로 묵인할 수 있다.
그러나 뜬금없이 국민연금과의 연동하여 시행하는 것은 국민연금제도의 밑기둥을 흔드는 참으로 황당한 정책 이였다.
노후대책의 대들보 역할을 해야 하는 국민연금은 국가와 국민 개인 간에 이루어진 엄정한 약속으로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신뢰의 주제이다. 이러한 대원칙을 노인수당지급의 조건으로 연동시킨다는 것은 특히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국민 다수가 노후대책의 핵심인 국민연금을 믿지 못하고 기피하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대책도 없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의 기초를 밑바닥부터 흔들어 버린 박근혜 정권은 본인이 사용하기 좋아하는 용어 그대로 ‘국기문란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노인수당 지급여부를 일정한 고정수입과 연동하려면 국민연금이 아니라 퇴직연금과 관계지울 수 있었을 것이다.
퇴직연금은 국민들과 이루어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약속이 아니라 개별 기업과 단체 혹은 제한된 영역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재벌 대기업이나 공무원 그리고 공공기업체 등 소위 한국사회에서 갑질하는 상위 10% 정도가 실질적 혜택을 누리는 제도이기에, 예산부족을 이유로 이와 연동하여 노인수당을 보류하는 것에는 긍정적 동의가 가능했다고 본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분간 못하는 무식한 박근혜 정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이였던 진영 당시 복지부장관이 사태의 책임을 절감하고 스스로 사임을 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이다. 진영 장관이야 말로 박근혜 정권의 무지몽매한 작태를 깨닫고 책임의 자리에서 물러나 스스로 국민 앞에 사죄를 구한 진정한 공직자였다.
북핵 핑계로 사라진 ‘전시작전권 환수’ 약속
두 번째 사항은 전시군사전작권(전작권)에 관한 것이다.
군사작전권이 없다면 자립국가라 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은 국가방위을 주한미사령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절름발이 주권국가이다. 북한보다 수십배가 넘는 국방예산을 지출하는 남한 정부가 북한위협으로부터 자체방위 작전권한이 없다는 사실부터 어처구니가 없지만, 노무현정권 당시 진작 전작권을 돌려받고 일정까지 합의했음에도 당연히 이를 돌려받았어야 할 이명박정권은 분명한 사유없이 당분간 연기했다.
이후 18대 대선과정에서 박근혜후보는 선거공약집을 통해 ‘전작권을 예정대로 2015년에 당당히 돌려받아 한국군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한미연합군 동맹을 굳건히 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집권이후 차일피일하더니 급기야 돌변하여 정확한 사유와 설명도 없이 전작권반환을 아예 무기 연기하고 말았다. 땅을 치고 통곡할 한심한 작태였다.

방위산업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필자의 눈에도 현재의 한국군대는 너무나 무능하고 부패하여 국가를 방위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병력이나 군사력이 문제가 아니라 군을 지휘하는 고급간부들의 자질과 지휘역량의 문제이다. 썩어 곪아터진 방산과 군수의 부패를 시급하게 청산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군내부에 배치하여 전투지휘 능력을 배양시켜서 스스로 방위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국가가 해야 할 우선적 책무일 것이다.
또한 북한의 침략 가능성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제3국의 잠재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켜야 하는 것이 국방의 책무임에도, 엉뚱하게도 자력방위의 중요성을 외면한 채 오로지 2013년 초에 있었던 북한핵실험을 핑계로 전작권환수를 아예 포기한 것이다.
핵실험은 2013년 이전에도 두 번이나 있었으니, 집권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더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핵이슈는 남한과 관련된 문제라기보다는 리비아와 이라크의 경우처럼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미국침공에 대응하는 생존전략인 셈이다.
따라서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은 남북한간 군사력의 무한대치로 해결할 내용이 아니라, 관련국들과 함께 평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풀어가야 할 정치외교적 역량에서 찾아야 했다.
사안의 시비가 매우 분명함에도 대선공약으로 자랑스럽게 약속했던 군사주권의 핵심적인 내용이 뒤집어졌음에도 국민들에게 일체의 배경과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미국에게 군사전략과 나라의 안위를 통째로 맡겨버린 참으로 뻔뻔하고 무모한 정권이다.
자국의 군사전략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도 없게 된 박근혜 정권은 미군이 판단해서 사드배치를 결정하고 미군이 필요해서 장소를 정하면, 이를 시행하는 책임만을 지고 있을 뿐이다.
동북아의 뇌관이 되여버린 사드가 상주에 배치된 이후에 한반도에서 벌어질 상황의 전개는 여러분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동학농민군의 진압을 핑계로 청과 일본 군대를 불러들여 결국 치욕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고종의 전철을 밟는 역사적 실책을 다시 되풀이 할까 심히 염려가 된다. 현하 박근혜 정권은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매국적 죄업을 짓고 있는 중이다.
철학없는 대통령…일단 당선되면 약속 내팽겨쳐
18대 대선 선거과정을 겪으면서 대선후보가 약속한 공약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시대가 되었다. 정책공약은 신뢰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고 선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무용론이 대두하게 되었다. 마치 얼굴에 분칠하는 색조화장처럼 대선이라는 행사가 끝나면 신속히 지워내는 것이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과 기만으로 전락한 배경과 조건이 무엇이였을까? 필자는 제도정치에 관하여 문외한이여서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나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우선 조선시대의 국왕보다 권력이 막강하다는 현재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대통령 자신의 자질이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의원시절 미국의 명문대에서 행한 연설내용에 대해 지적했듯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자신의 철학과 학습과 의지가 담긴 결과물이 아니라 후보자와는 무관하게 선거에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당과 해당부처에서 급조하여 짜깁기 식으로 만든 각본이다.
내용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채, 무지한 박근혜 후보가 연출에 따라 주어진 대사를 앵무새처럼 읽어 내린 연기였다는 혐의가 짙다. 기본과 자질의 문제였다.
두 번째는 정권 출범이후 여건이 미비하고 야당과 여론의 반대가 거세여 공약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지도자의 역량을 시험하고 평가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본다.
여건과 자원이 부족하면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와 완급을 정하고 당장 시행할 수 없는 저간의 사정을 국민들에게 설명하여야 하며, 야당과 여론의 반대가 있으면 이를 설득하고 타협하고 공유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역할이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아예 귀를 틀어막고 나라의 장래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막장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려는 듯 혼자 북치고 장구도 치고 있으니, 노회한 박지원 의원도 “한국 정치의 최대장애물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한탄했다.
필자의 눈에는 장애물정도가 아니라 재앙덩어리, 그자체이다. 개인이 갖는 저질적 품성이 문제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럽고 화가 나는 점은 처음부터 아예 다른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자신의 본래 프로그램을 숨기고, 상대방의 공약 중 표가 될만한 내용을 차용하여 마치 자신 것으로 포장하고 과장하여 정당간의 차별성을 없앨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무책임과 변절로써 유권자인 국민들을 농락하려 꾸민 치밀한 새누리당의 사기극 이였다는 점이다.
후보 개인과 소속 정당의 차원에서 문제점을 지적해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적이고 역사적 흐름속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정책정당의 부재…약속 지키고, 책임 물을 주체 없어
우선,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정책정당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하다. 정의당과 녹색당 등이 핵심정책을 분명하게 내세워 프로그램을 준비해 오고 있지만 국민들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유의미한 지지를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반면에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유력 정당들은 이름만 정당이지 실천적 좌표로서 정책을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조직되여 있다고 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토대 위에 연줄과 지역감정 등 당선에 유리하고 편한 방식으로 결합된 집단이다. 정책 역시 시대영합적인 내용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수준에서 선거철이 되면 실천하려는 목표와 의지와 무관하게 유권자를 현혹하는 이슈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유력 정당들이 정책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치를 밥벌리 수단으로 삼는 정상배들 수준의 집단으로 변질된 현실에는 물론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족을 억압하고 약탈한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적 행위들을 정리하고 청산하기는커녕 일제가 만들어낸 기반 위에서 아집과 술수로 태동한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이후 강화된 공안통치의 무모한 우익적 토양위에서 진보적 개혁적 정책정당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고 두 번의 쿠데타로 장기집권한 군사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민주적 기반이 위협받고 억압되여 왔다.
60년대 이후 27년간 군사작전처럼 감행되여 왔던 경제개발정책의 산물인 재벌들이, 절름발이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세력간에 분열과 미봉적 타협으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강력한 봉건영주로 세력을 확장하여 한국사회의 사회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대학과 언론 그리고 문화의 영역까지 실질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과정과 흐름속에서 몇 번이고 민주화의 계기들이 폭발하였으나, 시민사회의 역량이 위에 언급한 장벽과 한계들을 뛰어넘어 각성되고 조직된 시민혁명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정착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 조건에서 민주적 개혁세력의 대응력이 무기력하면 기득권 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산된 개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유도하고 필요하면 조작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19대 대선의 핵심 현안은 또다시 공안의 조작이 개입하지 못하는 공정한 선거과정이 되도록 감시하고, 지난 4년간 재앙적인 박근혜 정권하에서 새롭게 각성된 시민사회 역량을 확장하고 결집시켜 나갈 강력한 정치지도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요행은 없다. 온전히 제도언론수단과 기득권의 물적기반을 장악하고 있는 강력한 수구정권을 몰아내고 그나마 중도를 표방하는 보수적 개혁정권이라도 출범시키려면, 진보그룹도 함께하여 시민세력의 ‘모든 역량이 결집되는 합의적 과정과 연합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1987년과 2012년처럼 소인배적 명예와 권력의 독식을 앞세워 역사적 소명을 그르치면 절대로 안될 것이다.
신뢰, 비전, 능력을 갖춘 후보 골라야
필자가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몇 해 전 백낙청 선생이 시대의 현안을 언급하는 중에 사용한 ‘적공(積功)’이라는 용어이다. 차기 대선은 반드시 적공(積功)을 갖춘 후보와 집단이 집권하기를 발원하면서 실천가능한 공약과 후보를 선별하는 기준에 대해서 몇마디 적어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신뢰의 문제다.
우선은 언어와 색깔을 믿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수구적 미디어를 통해 온갖 교언과 요설이 설치며 사람들의 정신과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미 체험했듯이 마녀는 공포스런 모습과 겁박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홀리는 미소와 달콤한 밀어로 다가왔다.
핵심은 역사적 흐름과 시대적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후보가 살아온 역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능란한 언어보다는 오랜 세월 살아온 삶의 자취가 진실을 담고 있다. 특히 그가 역경에 처했던 적이 있었는지, 위기를 당했을 때 어떻게 처신했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고통받는 서민들의 서러움을 보지 못하며 시대의 어려운 현실을 용기있게 돌파하지 못할 것이다.
비젼이라는 주제어다.
백화점처럼 제시된 온갖 프로그램의 현란함에 속지말자. 달콤한 사탕은 몸에 해롭고, 까닭없는 이익을 기대하면 망신을 당하게 마련이다. 기적은 없다. 격변하는 세계의 흐름속에 한국이 처한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어려운 미래를 예견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헌신하면서 국민들에게 함께 고통의 참여를 요구하는 후보를 지켜보자. 기득권 질서와 이해를 해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귀를 기울이자.
사람의 몸짓과 눈빛은 의지와 지혜를 담고 있다. 진실함과 강한 의지로 미래를 이야기하면 마음으로 들어보고, 근거가 있는 비젼을 제시하면 시대를 뛰어넘을 지혜가 담겨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살아온 행적이 믿을 만하고 기득권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에 의지와 지혜가 담겨 있으면 비로소 후보의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그가 경험한 행정적, 정치적 과정은 매우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능력은 소속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대로 일할 사람들을 모아내고 포용하고 배치하고 함께하는 지도자의 인사능력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설치는 자는 아예 자격미달이다.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 둘러싸여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소인배다. 2017 민주평화포럼 출범식에서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함세웅 신부는 “대한민국 어느 필부가 나와도 이명박과 박근혜보다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단언했었다.
살아온 행적에서 신뢰를 찾을 수 있고, 세계사의 흐름 속에 역사적 소명을 담아낸 비전을 실천할 의지와 지혜를 갖추고 있으며, 인사와 업무에 한반도 전체를 담아내는 포용적 능력을 갖춘 대인풍의 인물이라야 비로소 적공(積功)이라는 칭호가 가당하다.
2017년 대선과정에 합당한 인물의 출현을 학수고대하지만 아직은 잘 보이질 않는다.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던 17세의 학생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Joshua Wong)은 이렇게 외쳤다. 홍콩 중심부를 ‘노란 우산 물결’로 뒤덮었던 우산혁명은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체제에 대한 가장 대담한 도전으로 불렸다.

2017년부터 홍콩 행정장관을 시민들이 직선으로 뽑더라도 중국이 원하는 2~3명의 인물 중에 고르게 하겠다는 중국의 결정이 기폭제가 됐다. 최루탄과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아내고 거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물결에 서구 언론들은 찬사를 보냈다.
79일간의 투쟁은 진정한 직선제를 쟁취하지 못한 채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됐다.
중국이 제시한 선거 안은 홍콩 입법회(한국의 국회 격)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2017년 행정장관 선거는 지금처럼 간선제로 치러질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게 된다면 무늬뿐이라고는 해도 직선제보다 더 후퇴하는 셈이다. 중국이라는 거인 앞에서 어떤 몸짓을 해 보이더라도 결국 바위에 달걀 치기가 아니겠냐는 체념이 나올 법도 했다.
우산혁명 주역들의 약진
그러나 우산혁명의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28일 홍콩 시민들은 우산혁명 1주년을 기념해 또 다시 거리에 모여서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2월에는 홍콩 중심가 중 하나인 카오룽(九龍) 반도 몽콕(旺角) 거리에서 대규모 폭력시위까지 벌어졌다.
어묵을 파는 노점상을 단속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고 해서 ‘어묵혁명’이란 별칭이 붙었다. 몽콕은 우산혁명 기간에도 가장 치열한 시위가 벌어졌던 곳이다. 시위대는 경찰관을 향해 벽돌과 쓰레기통, 유리병 등을 던졌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기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절정은 아무래도 지난 9월5일 진행된 홍콩 입법회 선거(한국의 총선 격)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산혁명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이 총선에서 홍콩의 자주를 주장하는 우산혁명의 주역들과 시민운동가 등이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투표율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고인 58%를 기록했다.

현지 언론인 <빈과일보>의 분류에 따르면, 모두 70석 가운데 여권이라 할 수 있는 친중파(건제·建制)가 40석을 차지했다.
야권 중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전통의 범민주파(泛民)가 23석, 우산혁명의 주역을 포함해 홍콩의 자주를 강조하는 신생 자결파(自決)가 6석, 범민주와 자결의 중간파가 1석을 차지했다. (국내 언론은 주로 친중파 40석, 범민주 22석, 자결파 8석으로 보도했다) 친중파와 범민주파가 양분해 왔던 입법회에 자결파라는 제3세력이 탄생한 셈이다.

중요 법안에 대한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분의 1선(24석) 이상을 확보하는 선전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이전 친중파의 의석이 43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범야권의 의석은 고작 3석 정도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홍콩의 특이한 선거제도 탓에 70석 가운데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지역구 후보는 35석에 불과하고, 간선·비례 직능대표가 35명인데 대부분 친중파로 채워지는 탓이다.
지역구 선거로만 보면 이번 선거의 진짜 의미는 범민주파의 의석이 줄어든 만큼 자결파 의원들이 늘어난 것, 즉 야권의 세대교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새로 입성한 자결파 의원들의 면면이 이래저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참고로 자결파라고 해서 모두 중국으로부터 즉시 완전 독립을 주장하는 급진파는 아니다. ① 독립은 비현실적이지만 일국양제(一国两制·한 나라 두 체제, 1997년 홍콩은 대영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됐지만 50년 동안은 다른 정치, 경제, 사법 체제를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를 채택하면서 약속한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 시민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만은 지켜라(자결·self-determination) ② 홍콩은 내륙 중국과 구별되는 또 다른 본토로서의 홍콩이며, 본토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본토·localism) ③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자(독립· pro-independence) 등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홍콩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야”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아무래도 우산혁명 주역들이 만든 정당 ‘데모시스토(香港衆志·Demosisto)’를 이끄는 네이선 로 주석(23·羅冠聰·Nathan Law)이었다. 그는 6석이 걸린 홍콩섬(港島) 지역구에서 2위로 당선됐다.

로 주석은 1991년 28세로 당선된 제임스 토 의원의 기록을 25년 만에 깨고 ‘최연소 입법회 의원’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로 주석은 2014년 홍콩의 대학학생회 연합체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학련)의 상무위원 겸 홍콩 링난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우산혁명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중·고교생들의 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위원장 조슈아 웡과 함께 3m 높이의 정부청사 철문을 넘어 청사 건물 앞 공민광장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가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후추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강경 진압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우산혁명이 촉발됐다. 로 주석은 이후 진행된 우산혁명 시위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로 주석은 지난해 학련을 이끄는 비서장으로 선출됐다. 우산혁명 1주년 기념집회에서 “정부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식에 사회가 표출한 실망감과 분노를 잘 이해하고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거리 투쟁 대신 정치권 활동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웡과 함께 데모시스토당을 결성해 총선에 나섰다. 우산혁명 당시 공민광장 점거 시위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며 한때 출마가 위태로워지기도 했지만 징역형을 면해 출마가 가능했다.

로 주석과 함께하는 데모시스토당의 웡 비서장은 15살인 2012년 학민사조를 결성했다.
그는 홍콩 당국이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도록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교육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반대운동에 나서 저지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19세가 된 웡 비서장은 나이제한에 걸려 총선에 출마하지는 못했다. 입법회 의원의 출마 제한 나이는 21세다.
웡은 “중국 인민대표 회의 대의원 자격을 얻기 위한 최소 나이도 18세인데 말이 안 된다”며 홍콩 고등법원에 소장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로 주석과 웡 비서장 등이 결성한 데모시스토당은 홍콩의 독립을 직접 주장하지는 않는다. 독립이든 아니든 홍콩 사람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초 여론조사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왔지만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에 몰리면서 2위로 도약한 것으로 해석됐다. 로 주석은 새 입법회가 개원하면 홍콩의 미래를 결정할 국민 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혈 시민운동가의 당선
이번 선거에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시민운동가 에디 추(38·朱凱迪·Eddie Chu Hoi-dick)가 꼽힌다.

신계서(新界西) 지역에 출마한 추는 무소속으로 나왔음에도 8만4121표를 얻어 지역구 당선자 35명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홍콩 언론은 그에게 ‘표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개표 결과 당선이 확정되자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감격에 겨운 듯 벽에 기대 울기도 했다. 선거 자금도 부족해 많은 홍보포스터를 손으로 그려 붙였을 정도로 열악했던 유세 과정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추는 홍콩중문대학을 졸업한 뒤 이란 테헤란 대학에서 페르시아어를 공부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 페르시아어권 나라에 대한 뉴스를 홍콩 유력 일간지인 명보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로도 일했다.
본격적으로 환경 보호와 문화 보존 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6년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퀸스피어와 스타페리 부두가 매립 사업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면서부터다.
2009년에는 광저우-선전-홍콩을 잇는 고속철도 건설로 원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그는 토지정의연맹(Land Justice League)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추는 홍콩의 독립은 홍콩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의 활동은 홍콩의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현장을 누빈 그이지만, 현재 그와 가족에게는 더한 위협도 가해지고 있다. 추의 행보가 지역구인 신계서 지역의 원주민들의 이권을 대변하는 향의국의 큰 반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에서는 심각한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계 지역에 1만7000호의 공공주택을 더 지으려고 했다가 4000호 수준으로 멈추고 말았는데, 추는 이것이 정부와 향의국, 신계 지역 삼합회 등이 결탁한 결과가 아니었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다 그는 선거 기간 중 향의국 유관 폭력 조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경찰로부터 신변 보호까지 받게 됐다.
그런데도 그는 당당히 소신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신계 지역으로부터 오는 정치적 긴장과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입법회의 첫 번째 의제로 올릴 것이다.”
“자치가 아니라 독립”
데모시스토보다 더 급진적으로 평가되는 ‘청년신정(靑年新政·Youngspiration)’을 결성한 렁충항(30·梁頌恒·Sixtus “Baggio” Leung) 위원장과 야우와이칭(25·游蕙禎) 후보도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다.
청년신정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물과 식량의 중국 본토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렁충항은 홍콩시립대 총학생회장으로 우산혁명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진압되고 한 달 뒤 그는 청년신정을 만들었다. 그는 선거 종료 뒤 이렇게 말했다.
“우산혁명의 실패는 나와 다른 참여자들에게 한 가지 확신을 심어줬다. 베이징과의 급진적 결별이야말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국양제는 이미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야우와이칭은 청년신정의 렁충항과 함께 청년신정의 주요 멤버다. 그녀는 이번 선거에서 홍콩 입법회의 최연소 여성 의원이 됐다.

링난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했고 중국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던 그 역시 우산혁명 참여를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지방의회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아쉽게 친중파 후보에게 패배했던 그녀는 이번에 범민주파 거물 의원을 제치고 당선됐다.
야우와이칭은 “나 홀로 있을 때 내 힘은 적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청년신정이라는 팀이 될 때, 나아가 홍콩 인민이라는 팀이 될 때 우리의 힘은 매우 커질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우리가 오늘 흘린 땀과 피가 열매를 맺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폭력투쟁도 불사하는 가장 급진적인 독립파로 꼽히는 열혈공민(熱血公民·Civic Passion)의 웡잉탓(黃洋達·37)도 의원에 당선됐다. 열혈공민은 중국 정부가 홍콩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관련 조항을 홍콩기본법(홍콩의 헌법에 해당)에서 삭제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홍콩이공대 강사인 그는 우산혁명 참가 뒤 중국 본토인의 ‘병행수입’ 반대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병행수입이란 중국인들이 홍콩에 들어와 분유, 기저귀, 화장품 등의 물건을 사재기 한 뒤 중국에 되팔라 차익을 얻는 행위다.
웡잉탓은 가르치는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학생들을 선동했다며 고소당하기도 할 정도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논쟁을 피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선거 전 라디오 토론에 나와 “홍콩 정부에 대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여전히 그는 홍콩 사람들이 적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역시 홍콩이공대 강사인 라우시우라이(40·劉小麗)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범민주파 진영 중에서는 가장 많은 득표를 하며 당선됐다. 그녀는 라디오와 TV 토론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입지를 굳혔다.
성향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쪽인데 홍콩의 완전한 독립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보고 지금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의회 활약 기대…중국 압력 큰 변수
장외 투쟁의 열기가 현실 정치로 수렴되는 일이 드문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홍콩의 이런 분위기는 부럽기만 하다. 각 선거구에서 득표순으로 정해진 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도 하다. 물론 새롭게 입법회에 입성한 젊은 얼굴들이 얼마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홍콩의 젊은 세대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산혁명의 배경에는 날이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있는 젊은층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 자칫 홍콩이 중국 내의 이름 없는 삼류도시로 몰락해버릴 것이라는 절박감 등이 내재해 있다.
대다수의 홍콩 젊은이들은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국양제라지만, 홍콩은 중국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산혁명의 ‘센트럴을 점령하라’ 구호는 겉으론 실패로 보였지만 홍콩 사람들의 마음을 이미 상당부분 점령하고 말았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중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선거 결과를 보고 홍콩을 더욱 옥죌 가능성도 있다. 중국 국무원 홍콩 마카오 사무판공실은 선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선거 무대를 이용해 ‘홍콩 독립’을 선전하는 것은 중국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이번에 당선된 입법회 의원들이 중국 법률과 홍콩 법률에 맞게 직무를 수행해주기를 바란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홍콩의 열기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고 지난달 28일 저녁에는 우산혁명 2주년 맞이 집회가 열었다. 참가자들은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 도입 등을 또 다시 요구했다.
에디 추는 당선 직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콩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믿어야 한다.”
(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10. 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정치인·지식인 사이에서 헌법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의 개헌 찬성률도 높다. 개헌에 관한 한 여당과 야당의 차이, 진보와 보수의 대립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헌법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왜 그런가?
먼저 우리는 개헌에 합의할 수 없다. 의견은 제각각이고, 어떤 의견이든 무시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론자 사이에서도 정부형태만 고칠지, 전면 개정할지 통일된 견해가 없다. 전면 개정하면 너무 많은 쟁점 때문에 갈등하다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정부형태만 바꾸면 기본권 확대와 같이 중요한 문제를 반영할 수 있는 30년 만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정부형태만 바꾸기로 의견이 일치해도 마찬가지다. 이견은 여전하다.
새누리당의 이정현·유승민은 4년 중임제를 주장한다. 김무성은 이원집정부제, 남경필·원희룡은 분권형 대통령제, 정병국은 내각제를 지지한다. 야당의 문재인은 4년 중임제, 박지원은 분권형 대통령제, 김부겸은 이원집정부제, 김종인·천정배는 내각제를 선호하고, 안철수·박원순은 특별한 의견이 없다.
이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정부형태에 합의해도 문제는 남는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중임제를 제안했다. 당시 정가는 개헌에는 부정적이었지만 4년 중임제는 선호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국회의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중임제,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3개의 대안을, 국회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복수안을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때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분권형 대통령제 단일안을 마련했다.
요즘 추세는 중임제보다 분권형 대통령제다. 노무현 정부 때 중임제로 개헌했다면, 다시 개정하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동안 별로 조명받지 못했던 내각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선호도는 세월 따라 변하고, 우리는 무엇이 최선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개헌의 목적도 분명하지 않다. 권력분산 역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동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분산이 정국 교착, 국정 마비를 초래한다. 권력집중, 필요할 때가 있다. 분산과 집중은 선악 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성공적 국정을 위해 어떻게 조화시키고 균형을 이루느냐의 문제다.
권력 집중과 분산은 정부형태가 아니라 정당체제의 종속변수다.
본래 권력집중형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국회의 다수파가 정부를 장악하는 내각제다. 내각제가 권력분산형으로 보이는 이유는 내각제 채택 국가들이 대체로 다당제 효과가 있는 비례대표제를 도입, 여러 정당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분산을 원하면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말까지 선거구를 조정하라고 판결했을 때가 기회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양당제를 강화했다.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편만 해도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정치개혁에는 소홀한 정치인들이 새 헌법 이야기만 하고 있다.
새 헌법을 만들면 좋은 세상이 올까? 그게 궁금하면 세계 최고의 바이마르 헌법을 따랐다는 제헌 헌법의 노동자 이익 균점권이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1987년 경제민주화에 복지 조항까지 명시했지만 30년간 어떠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현 대통령제가 미국식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장점만 살렸다는데도 왜 불만인지 돌아봐야 한다.
흔히 87년 체제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극복 대상으로 헌법을 지목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87년 헌법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낡은 사회·경제 체제, 왜곡된 정치구조를 깨려는 의지와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을, 신성한 언어가 넘치는 헌법에 전부 물을 수는 없다. 우리 삶이 나아졌다면 그것 역시 헌법 속 우아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열정과 현실을 개선하고자 했던 피나는 노력 때문이다. 삶은 헌법보다 크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복지를 확대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고 싶으면 헌법이 아니라 사회·경제 정책을 바꾸고, 그게 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 검찰을 바로잡고 싶으면 검찰개혁을, 재벌체제를 고치려면 재벌개혁을 해야 한다.
헌법 개정은 아니다. 헌법에는 해결책이 쓰여 있지 않다. 불립문자(不立文字). 헌법에 쓰이지 않은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87년 체제는 우리가 스스로 가둔 공간이다. 헌법이 우리를 가둔 적이 없다. 방문은 잠겨 있지 않다. 방 안에 갇혀 있다는 공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다. 왜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