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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살인폭력진압 경찰청장 사퇴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시국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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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살인폭력진압 경찰청장 사퇴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시국선언문

익명 (미확인) | 목, 2015/11/19- 19:59

 

오늘(11/19) 오후 2시 30분 서울 대학로 흥사단에서 각계 시민사회노동농민 단체들 대표와 시민들이 함께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중상을 입은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고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지금 병상에서 사투 중인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오늘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인폭력진압 경찰청장 사퇴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시국선언문


 

 

11월 14일 개최된 민중총궐기에 대한 박근혜 정부와 경찰 당국의 대응이 많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경찰 당국은 집회 당일, 차벽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였습니다.

차벽은 시위 참가자와 국민을 격리시켜 ‘많은 국민에게 집회의 취지를 알린다’는 집회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미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고, 비록 완화되기는 했지만 법원으로부터도 “통행로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 당국은 이러한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결을 외면한 채, 광화문과 청계광장, 종로의 통행을 완전히 가로막는 불법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공권력이 집회 참가자에게 ‘불법 필벌’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법을 지키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이며, 시위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를 행하기 이전에 경찰 당국의 불법적 집회방해 행위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경찰 당국은 집회 당일, 고압의 물대포와 고농도 캡사이신을 동원한 과도한 진압을 펼쳐, 백남기 농민이 중태에 빠져 있고, 수십명이 크게 다치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 당국은 백남기 농민의 머리에 고압 물대포를 직사하였으며,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에도 수십초 간 직사를 계속하였고, 구호조치를 취하러 온 이들에게까지 직사를 계속해 빠른 응급 치료를 가로막았습니다.

 

백남기 농민 뿐 아니라,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에 고압 물대포의 직사가 이뤄졌으며, 참가자가 쓰러진 뒤에도 직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경찰 당국은 팔이 부러진 시민을 이송하려 온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직사해 구조를 방해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집회 이후 경찰 당국의 해명은 더욱 심각합니다. 경찰 당국은 살수차의 모니터로 시위 참가자의 하반신에 살수를 하는지, 참가자가 쓰러졌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백남기 농민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쓰러진 이후에도 살수를 한 것이 아니며, 당시 진압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수차가 진압 수칙을 수행할 수 없다면, 그 살수차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찰 당국의 진압수칙에 따른 진압으로 참가자 한 명이 중태에 빠지고 수십명이 중상을 입었다면, 그러한 진압수칙은 즉시 개정되어야 할 것이며, 살수차 사용은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불통’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14일 집회에 10만이 넘는, 2008년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이후 최대 참가자가 운집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 ‘일반해고제 도입’,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등을 강행하였기 때문이며, 쌀 관세화 개방 이후에도 관세화 유예의 조건이었던 ‘밥쌀용 쌀 수입’을 지속하여 쌀값 폭락의 가속화를 방치하였기 때문이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박근혜 정부는 성난 민심에 불법적 차벽과 고압 물대포, 고농도 캡사이신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모습을 어떻게 ‘불통’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지금 이 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는 국민과 소통해야 하고,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일 벌어진 과잉 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경찰청장을 파면하며, 관련 책임자를 문책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강행되고 있는 소위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밥쌀용 쌀 수입’, ‘노점상과 철거민들에 대한 강제 철거’를 중단하고, 이들과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 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은,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하며, 향후 우리의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임을 밝힙니다.

 

2015년 11월 19일

 

21C한국대학생연압 경기진보연대 경남진보연합 계승연대 광주노동자교육센터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진보연대 교육희망네트워크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건강연대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노동자연대  대구경북진보연대 대전민중의힘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권연대 민대협 민자통 미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주의국민행동 민주회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중의힘 범민련남측본부 변혁재장전 보건의료단체연합 부산민중연대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 사월혁명회 사회진보연대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진보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알바노조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예수살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우리사회연구소 울산진보연대 원불교개벽위원회 이석기의원내란음모사건 피해자구명위원회 인권교육센터'들' 인권운동사랑방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전남진보연대 전북진보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전태일재단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청년유니온 청년좌파 청년하다 촛불교회 추모연대 통일광장 통일의길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무모회 평화와 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재향군인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한국가톨릭농민연합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한살림 등 116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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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백남기 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 백 씨의 아픔, 개발독재 미몽에 사로잡힌 결과 Wycliff Luke 기자 출처 : 김상호(신비) 페이스북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와 어정쩡한 크기 때문에 늘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다툼의 희생양 신세를 감수해야 했다. 이런 질곡은 근현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깊어져 이 땅의 민초들은 기구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하근찬은 단편소설 <수난 이대>를 통해 ...

화, 2015/11/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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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과잉 수사를 파헤친다!”
-민중총궐기를 수사하는 경찰 대응의 문제- 

민중총궐기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습니다.  
소환자의 수만 봐도 전에 없는 규모입니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하다 보니 
엉뚱한 사람에게 소환장을 보내는 등 실수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에 민중총궐기 국가폭력 조사단에서는 경찰의 과잉 수사와 관련한 문제점을 고발하는 증언대회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일시 : 2016년 1월 11일(월) 오후1시 
*장소 :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사회 : 이정일 변호사(민중총궐기 국가폭력 조사단 단장)
*내용 : 당사자 증언(2명∼3명)
         유형별 수사 피해 소개 및 이후 대응(박진 인권활동가) 
         인권의 관점으로 살펴본 경찰 수사의 문제점(박주민 변호사)
*주최 : 민중총궐기 국가폭력 조사단

피해사례 신고(아래링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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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1/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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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순회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 참가자 모집 웹홍보물

 

 

정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은 바쁘게 먹고 사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이 놈의 정치는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고요,

 

그런데 우리네 먹고 사는 문제도 다 정치에 달렸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지역순회 민주주의 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에서 마음 뻥 뚫리게 함께 얘기해봐요!

 

참여연대는 거리가 멀어 참여연대 총회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지역회원님들을 위해 매년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회원 분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부산/대전/광주/대구광역시에서 회원 만남의 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성남/수원 등 경기남부권에 계시는 회원님들을 위한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를 준비하였습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충돌?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갈등? 노동당-정의당 합당? 녹색당은 뭐지? 현재의 뜨거운 이슈를 포함해 2016년 총선을 앞둔 우리는 지역에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면 좋을지, 비례대표의원과 전국구의원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원 수 확대는 어떻게 볼 것인지 등, 정치를 둘러싼 여러 질문과 해법들을 참여연대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를 통해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2015 하반기 <지역순회 민주주의 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

 

언제 어디서? 

2015년 7월 22일(수) 7시 수원 그리고 8월 22일(토) 4시 성남에서

(수원시 평생학습관 2층 세미나실 / 성남시 분당구청 2층 소회의실)

 

강사 

서복경 /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참가비

참여연대 회원 무료 (비회원 1만원)

 

참가신청하러가기>>클릭

 

문의

시민참여팀 02-723-4251 [email protected]

화, 2015/06/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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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은 학교 앞에서 독재타도와 민주쟁취를 외치며 시위를 하던 중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당시 쓰러진 이한열 군의 사진은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한열의 피에 빚을 졌다”고 말한다.

▲2016년 6월 9일, 이한열 군의 29주기를 맞아 연세대학교 앞에 동판이 세워졌다.

▲2016년 6월 9일, 이한열 군의 29주기를 맞아 연세대학교 앞에 동판이 세워졌다.

당시 이한열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29년이 지난 지금,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호헌철폐, 독재타도’ 이한열과 함께 민주주의를 열망한 그의 친구들

1987년 6월 9일 오후, 연세대학교 민주광장에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한열과 함께 현장에 있었던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당시 연세대 1년)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삼백 명 정도의 비교적 소수의 학생들이 모였던 거로 기억해요. 교문 밖으로 나가서 신촌 로터리나 시청 쪽으로 나가서 그다음 날 있을 집회 6.10항쟁의 집회를 알리기 위해서 전단을 나눠주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때 겁나더라고요. 못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고 있는데 이한열 선배가 딱 손을 내미는 거예요. 가자고 그런데 도저히 그걸 못 뿌리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잡고 갔죠. 이한열 선배는 내 앞줄에 있고 저는 그 이한열 선배 뒤통수 보고 이렇게 교문까지 나간 거예요.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전 MBC기자) / 당시 연세대 1학년

▲ 1987년 연세대 정문 앞의 모습

▲ 1987년 연세대 정문 앞의 모습

이렇게 이한열은 이상호 기자의 손을 잡고 연세대 교문으로 나서던 때, 그의 어머니는 광주 집에서 노심초사 걱정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발 나서더라도 앞에 서지 말고 뒤에서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침에 TV를 틀어놓고 보면 연세대 정문에서 막 최루탄 쏘는 게 다 보여요. 그럼 한열이의 하숙집 주인아줌마한테 전화해서 ‘우리 한열이 좀 바꿔주세요’ 해서 ‘지금 오늘 아침에도 정문에서 최루탄 쏘는 게 다 보여 그러니까 뒤에서 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하도 아침마다 전화를 하니까 저 애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아들을 믿으라는 거예요. 톤을 높여가면서 ‘엄마, 아들을 믿으라’면서… ‘그런데 뒤에서 한다고 막 소리 높여서 한 사람이 왜 제일 앞에 가 서 있었어?’ 이거 하나 묻고 싶네요.
배은심 / 故 이한열 어머니

연세대 교문 앞은 일촉즉발의 연속이었다. 교문 맞은편에서는 전투 경찰이 최루탄을 장전한 총으로 학생들을 겨누고 있었다. 곧이어 경찰은 최루탄을 난사했다. 이렇게 발사된 최루탄이 이한열의 뒤통수를 직격했다. 이한열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눈동자는 풀려있었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곧이어 한 학생이 달려와 이한열을 부축했다. 이한열의 친구 이종창 씨다. 29년이 지금까지도 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기쯤 한 학우가 쓰러져 있었어요. 당시에 기억나는 건 정문 바로 기둥 옆에 전경들이 저를 계속 째려보면서 올까 말까 올까 말까 하는 그런 상황이 있었고요. 다행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는데 안 들어오고 저는 이한열을 한참을 더 끌고 올라가고 올라갔는데 주변에서 몇 사람이 저희를 발견하고 뛰어오는 게 보였어요. 그걸 보고 저는 힘들어서 놓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이종창 / 당시 연세대 2학년

‘한열이를 살려내라’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한 장의 사진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군과 이한열 군을 부축하는 이종창 씨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군과 이한열 군을 부축하는 이종창 씨

이종창 씨가 이한열을 부축하고 있는 순간, 한 외신기자가 그 모습을 포착했다. 정태원 로이터통신 사진기자다.

교문 앞에다 최루탄 발사를 하니까 시위하던 학생들이 ‘와’ 해서 교문 안으로 들어갈 거 아니에요. 그때 같이 들어가다 보니까 누가 쓰러지더라고 손이 위로 올라가더니 그냥 쓰러져 그래서 보니까 한열이. 그래서 내가 순간포착. 여기서 된 게 그 장면이에요. 쓰러져서 부축하는 거.
정태원 / 당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정태원 기자가 찍은 사진은 그 날 로이터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그 사진은 이례적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이창성 중앙일보 기자의 설명이다.

우리는 찍지 못했기 때문에 그 당시 로이터통신의 정태원 씨한테 연락을 했죠. ‘내가 사진을 구해야겠는데 좀 줄 수 없겠는가’ 그랬더니 자기 서랍에 몇 장의 사진을 만들어놓은 게 있으니까 그걸 가져가시오. 가져가서 보니까 엄청난 사진이 있어요. 아주 충격적인 사진. 그 사진을 딱 봤을 때 4.19 때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시체의 사진, 김주열 사진이 4.19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이거는 김주열 사진에 버금가는 사진이 들어있다 싶어서 바로 그 사진만, 조선일보에 난 사진 말고 그 사진을 바로 편집국장에게 들고 갔습니다. ‘국장님, 이 사진이 기가 막힙니다. 이 사진을 쓰게 해주십시오’ ‘이거 너무 심하지 않겠어?’ ‘아닙니다. 절대로. 이 사진이 큰 영향력을 끼칠 겁니다’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기자

▲ 최병수 씨는 이한열 군의 사진을 보고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목판화를 제작했다.

▲ 최병수 씨는 이한열 군의 사진을 보고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목판화를 제작했다.

중앙일보 지면에 사진이 실린 뒤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87년 6월 항쟁의 상징이 된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판화가 제작된 것도 이 보도를 통해서였다.

버스에서 신문을 펼친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이한열, 로이터통신 정태원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이 실린 거죠. 그 사진을 봤을 때 충격을 바로 받은 거죠. 무슨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 사진을 봤을 때 이 기억은 아마 저한테 평생 갈 것 같아요. 사진 찍으신 정태원 기자도 “우리는 이 젊은이한테 피로 빚을 졌다” 이렇게 말씀하셨나. 아주 단순하게 딱 짧게 말씀하셨는데, 저도 피에 대한 빚이 있는 느낌이 들어요.
최병수 / 당시 ‘한열이를 살려내라’ 목판화 제작

아들 이한열을 대신해, 어머니는 지난 29년 동안 시국 시위 현장이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 지금 어머니는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지금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생각해본다고 했다. 2016년 대한민국은 22살 이한열이 꿈꾼 세상이었을까?

▲ 2016년 6월 13일, 이한열 군의 모친 배은심 여사는 정부세종청사 앞 시위에 참여했다.

▲ 2016년 6월 13일, 이한열 군의 모친 배은심 여사는 정부세종청사 앞 시위에 참여했다.

어딘가에서 이한열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어서. 이한열이 이렇게 안 죽고 살았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를 내가 생각해보면서 그 어린 나이에 모든 게 거기서 그냥 끝났단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추상적으로 우리 한열이 이렇게 컸으면 이런 세상을 살았을 거란 걸 내 몸으로 한열이를 찾아보려고 다닌 게 30년이네요. 그런데 없어요. 아무리 다녀도 없어요.배은심, 故 이한열의 모친


취재작가 구슬희
글구성 정재홍
연출 서재권

금, 2016/06/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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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산하 노조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은 토요일 아침 7시 반, 이른 아침을 틈타 전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찰이 수배자 체포가 아니라 포괄적인 집회, 시위와 관련해 민주노총 본부와 산하 노조 사무실들에 대해 동시 다발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는 2,3명의 근무자만 있을 정도로 이번 압수수색은 전격적이었다. 경찰이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 외에도 9월 민주노총 총파업, 5월 노동절, 4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범국민대회 등과 관련한 서류와 물품들이 대상으로 돼 있을 정도로 이번 압수수색은 포괄적이었다고 민주노총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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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실제 압수된 물품 중에는 14일 집회와 관련이 없는 물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서 사법 처리를 위한 트집 잡기가 아니냐는 반발을 샀다. 김은기 민주노총 총무실장은 “경찰이 이전 집회에서 ‘노동개악’ 얼음을 깨는 퍼포먼스에 사용됐던 해머 등을 닥치는 대로 가져갔다며, 그런 것들이 공개되면 이번 시위에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유발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은 압수수색 직후 압수품들이 시위에 사용됐는지 여부를 조사하지도 않고 바로 공개해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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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농민 백남기 씨가 사경을 헤매는 등 경찰의 과잉 대응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전에 없이 강도 높게 이뤄진 압수수색은 공안 정국을 조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농민에겐 지금껏 한마디 사죄없이 기습적인 압수수색, 공안탄압으로 비난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집회와 시위 장소를 자의적으로 제한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차벽’을 씀으로써 경찰 당국이 충돌을 유도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압수수색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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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바로 그 시각, 서울 시내에서는 백남기 씨의 쾌유를 비는 행진이 펼쳐졌다. 행진을 처음 제안한 중앙대학교 신지영 학생은 “그 날 물 대포는 시위대의 폭력을 막으려는 게 아니라, 제 목소리를 내려는 국민의 입을 막은 국가의 폭력이었다”며, “대학생 시절에도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선배님이 국가의 폭력으로 쓰러진 만큼 이제는 우리가 함께 행동해야 하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중앙대 동문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 농민, 학생 등이 이에 호응하면서 참가자는 4백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중앙대에서 시작된 행진 행렬은 한강대교를 지나 서울역과 남대문을 거쳐 백남기씨가 누워있는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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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이 서울대 병원에 이르자 백남기 씨 가족들도 시민들 앞에 나와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가족을 대표해서 큰 딸인 백도라지 씨는 “저희 가족 모두가 이번 행진에 감동했고, 아빠도 지금은 의식없이 누워 계시지만, 후배들과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행진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아실 것으로 생각한다”며 흐느꼈다. 백 씨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행진. 그리고 집회와 시위를 폭력이라고 몰아세우며 사법 처리 수순을 강행하는 공권력…주말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두 모습이었다.

토, 2015/11/2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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