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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교체기인가, 체제 전환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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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교체기인가, 체제 전환기인가

익명 (미확인) | 월, 2016/11/14- 23:30

박근혜 퇴진운동의 절정인 11월12일 전국적으로 백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장에 운집했다. 1960년 4월혁명과는 배경 및 과정은 달랐어도 정치적인 분위기는 비슷했으리라 유추한다. 당시에는 결국 총격으로 수백명의 시민이 희생을 당하고야 비로소 이승만이 하야를 했다. 소중한 역사의 경험이다.

한줌도 안되는 수구잔당과 공안세력 그리고 경찰의 물대포에 의존한 채, 국기파탄의 범죄를 저지른 박근혜는 오늘도 여전히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한일군사정보협정 등 위험한 대외관계를 처리하고 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비웃게 하는 나라의 망신행위이며, 책임성이 배제된 채 국가존립을 위협하는 협박행위이다. 하루도 길다. 빨리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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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3차 촛불집회에서는 100만명의 시민이 운집해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사진출처: http://www.joongboo.com/)

狗不理가 판치는 나라

박근혜가 스스로 하야를 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방식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 도달한다. 탄핵 아니면 기어코 피를 보려하는가?

만약 탄핵을 거부하는 정치권과 사법세력이 존재한다면, 이들 역시 분노하는 거대한 시민들의 함성과 역사적 흐름에 묻혀 박근혜와 같은 처지로 몰릴 것이다. 루이16세처럼 권좌에서 죄수로 끌려 내려오는 초법적 비극으로 역사적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려는가?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자. 세월호 사건에서 시작하여 메르스와 가습기 사태를 거쳐 백남기 선생님의 사망, 그리고 성주 사드배치까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과 현안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2016년 대한민국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정부 인사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없고, 경찰인지 조폭인지 구별이 어려운 가운데, 정권이 앞에 내세운 공안의 앞잡이들만 다가오는 역사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설쳐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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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는 그 당사자 뿐 아니라 그들의 국정농단을 방조하거나 도운 일군의 부역자 무리에 대해서도 엄정한 책임 추궁과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한때 나라의 앞날은 차치하고 여전히 온갖 생떼 짓을 연출하며 개혁의 움직임을 여전히 겁박하는 친박계 새누리당 의원들의 역한 모습이나, 백남기 선생님의 죽음에 깊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 고통을 즐기려는 듯이 험담을 짖어대었던 인간 말종의 마구니들이나,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자들이 벌렸던 초법적인 해괴한 행태 등등…

이에 대해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최고 권력의 요구로 미르 재단, 케이(K)스포츠 재단을 설립했다가 강제 모금 의혹이 일자 갑자기 해산 결정을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백남기씨 사망, 사인 진단, 부검 시비에 연루된 경찰, 검찰과 서울대병원의 대응 등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의 ‘근대 국가’의 세 기둥, 즉 근대 관료조직, 시장경제, 그리고 시민사회가 뼈대 없는 껍데기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며 한탄을 겸한 진단을 내렸다.

필자는 조금 더 심하게 표현하려 한다. 중국 천진을 방문했을 때 자주 들은 단어가 구부리(狗不理)였다. 개만큼도 못한 놈이라는 뜻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8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사회는 어느새 정치권과 행정부와 언론계와 전문직 영역과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狗不理 족속들이 설쳐대는 나라가 되었다.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

부패지수 역시, 아시아 동반 국가들 중에 최악의 수준을 넘어 국제사회로부터 남의 나라까지 오염시킨다는 지탄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젊은 세대들의 취업난까지 겹치면서 헬조선 소리가 절로 나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가 돌아가는 꼴이 원칙과 법치에 기초한 사회가 아니라, 조폭만도 못한 사익집단들 세상이 되어 버렸다.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을 겪은 지 30년이 채 안된 세월에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이었다.

고 채광석 시인이 ‘밧줄을 탄다, 목숨을 탄다’ 라고 노래하였듯이, 유신시절에는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목숨이 위험한줄 알면서도 유인물을 뿌릴 5분을 벌기위해 건물옥상에 밧줄을 걸어 타면서 ‘군사독재타도’ 구호를 외치고 전단을 뿌리던 영화같은 장면이 연출됐었다. 그런 70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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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운구 행렬. 그의 죽음은 6월 항쟁의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

군부대 총칼에 수 백명의 목숨을 빼앗긴 광주민주화투쟁을 겪은 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살인마 군부정권의 탄압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한 정치투쟁에 목숨을 걸은 민청련과 전민련, 그리고 억압된 삶의 현장에서 터져 나온 온갖 요구를 결집시킨 전국연합 등을 결성하며 살인적인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화의 불씨를 키워왔던 투쟁의 기록이 남아 있는 80년대였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수많은 청춘과 노동자들이 목숨까지 희생당하고 옥고를 치루고는 후유증으로 다시 죽어갔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떳떳한 세월이였다. 87년 민주화 대투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 졌을 때는 우리 모두 민주주의라는 토대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세워졌고, 한국의 정치는 비가역적으로 발전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렇듯 타는 목마름으로 온 삶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였는데, 방심하고 설마 하는 사이에 오늘같은 아수라장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1987년 민주화의 성공과 좌절

현재가 매우 긴박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조금 느긋하게 ‘박근혜 이후’ 한국사회의 전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은 ‘박근혜의 국기파탄’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넘어서서 한국사회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연유 그리고 전망에 대해 화두처럼 던지는 시론이다.

우선 87년 이후 민주화과정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민주화 투쟁에는 두 개의 큰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제도 정치 속에 야당 지도자로서 김대중과 김영삼 두 분이 서로를 격려하고 연대하며 훌륭하게 정치투쟁을 이끌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권투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 농민투쟁이 전개되면서 개별적 사건을 뛰어넘어 전국적 연대를 형성하고 시작했다.  여기에 1960대부터 형성된 경험과 식견을 가진 학생운동출신의 전위적 운동가들이 결합되면서 민주화 투쟁을 지도하고 있었다.

열악하고 억압된 생활조건에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민중투쟁과 사건적으로 폭발하던 정치투쟁이 겹쳐지며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면서 군사정권은 타협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개과정은 제도정치 영역에 속해있는 야당 지도자들과 생존권에 기초했던 민중투쟁의 재야 지도부들이 함께 손잡고 연합적 성격의 국민기구를 만들어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고 내용을 더욱 발전시켰어야 했다.

국민적 합의기구를 통해 양대 세력은 시대적 소명과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협력과 견제라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민중투쟁의 지도부 역할을 했던 대부분 재야와 학생운동 인사들이 개별적 또는 선별적으로 야당 지도부로 포섭되면서 이후 밑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민중적 요구가 무시되고 제도정치의 대주주였던 두 김씨간의 권력쟁취를 위한 싸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군사정권이 퇴각하면서 전개되는 개헌 논의는 (실천이 가능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기초를 시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1948년의 제헌헌법은 당시 세계사적 흐름에 맞추어 매우 진보적인 내용을 담보하고 있었으나, 이는 시민적 투쟁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고 이식된 것으로서 사실상 실천적 토대를 가지지 못했으며 이후 권력자들에 의해 7-8번이나 개정되는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87년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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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화항쟁의 결과로 열린 정치공간에서 양 김씨의 분열은 민주화 세력에게 처절한 패배를 안겼다.

민주화 대투쟁 이후 과정에서 당연히 시대적 소명과 민중적 요구를 담아내는 개혁적 헌법이 재탄생했어야 마땅했지만, 두 김씨의 권력욕으로 어정쩡한 타협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87년 체제는 이렇게 하여 진정성의 상실과 스노비즘의 만연을 출발부터 잉태하고 있었다.

두 김씨의 다툼 과정에서 어부지리로 탄생한 노태우 정권과 3당 야합으로 재구성된 김영삼 집권의 10년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기간이 되었다.

유신체제와 개발독재의 온갖 병폐를 쓸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치사회적 규범과 질적인 전환을 유도할 산업경제적 환경을 형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상실했다. 반면 이전 40여 년간 온갖 특혜와 비리와 적폐 속에 형성된 기득권 체계가 외부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더욱 강화되는 시간이었다. 

위의 언급은 현재 제도 정치를 이끄는 야당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제발 개인적 야심과 정파적 이해를 떠나 민족의 장래를 진심으로 책임질 수 있는 거국적인 연합정권을 구성해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길 요청한다.

IMF외환위기와 김대중정부의 한계

대한민국이 군사정권과 야합적 민주화 과정을 격고 있는 동안 세계 환경은 대처리즘과 레이건노믹스가 절정을 이루고 소련체제가 붕괴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맞이했고, 거대자본의 논리에 따른 세계화 물결이 거세졌다. 그러나 이미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와 대자본을 위한 일방적 세계화의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1990년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격변하는 국제 환경, 그리고 내용도 파악하지 않은 채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세계화를 들고 나온 무지한 김영삼정권 탓에 우리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는 외환위기를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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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F 외환위기와 이로 인한 구조조정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아픈 순간 중 하나였다. 사진은 1997년 12월 3일 구제금융 합의안에 서명하는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시 IMF 총재.

월가의 거대한 자본들에게 지배되던 당시의 국제 환경과 조건에 무모하게 자본시장의 빗장을 열어 제꼈다. 한국정부의 무능함과 부정부패, 대기업들의 무책임으로 인한 과잉중복투자,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단기성 외채 도입 등등.

경험도 제어장치도 없이 개방된 금융시장, 주로 서울대 출신들로 구성되면서 탐욕과 정실로 무력해진 통제기구 등이 외환위기를 일으킨 우리의 민낯들이였다.

국민경제가 부도난 긴박한 상황에서 지역연합라는 정치지형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보수 세력과 연대하여 출범한 국민의 정부를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김대중정권은 IMF가 제시한 신자유주의적 요구사항을 선별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패착을 뒀다.

당시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던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수상과 아시아적 가치를 외쳤던 이광요 싱가포르 수상과는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들은 단순히 금융개방의 요구에 저항한 것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무기삼아 침투해오는 서구의 단세포적인 문명과 제국주의적 탐욕을 거부한 것이었다.

또한 초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김태동 교수가 주창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론’을 조기에 포기하고, 기득권을 대표하는 구시대의 경제관료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물이 점차 스며드는 것처럼,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깊이 내렸고 경기부양책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하면서 신용불량자를 대량 생산해 내기도 하였다.

동교동 가신으로 상징되는 구시대적 권위주의의 잔재를 유지한 채 유신독재의 한 축이였던 김종필씨와 지역연합으로 창출된 정권의 한계를 그대로 보였다.

노무현정부의 성과와 한계

지난 과거와 지역논리가 지니는 부담에서 자유롭게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양면적 성격을 지녔다. 과거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정치와 행정 그리고 시민사회에 개혁적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긍정적인 역할은 매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적이다.

반면 국민의정부 시절에 이루어졌던 대북지원에 대한 아마추어적 비판에서 시작하여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 논리를 도입하고 수구적 세력과 대연정을 제안하는 등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대응한 종합부동산세 도입과정에서 세정 시행의 패착을 보이고 (종합부동산세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고 진보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인 언술을 계속하면서도 행정의 시행과정은 신자유주의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재벌중심정책으로 노동자계층 등 민중적 요구를 외면했다. 지니계수는 더욱 나빠지고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서민들의 일상은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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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는 87년 민주화의 성과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노무현정부에서 추진된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습.

17대 대선 당시 서민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747 공약’과 ‘부자되세요’을 내세운 사기꾼 이명박 후보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불행하게도 이후 탄생한 이명박근혜 정부는 평가할 가치도 없는 민족적 재앙이었다. 국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사적 탐익에 놀아난 탈법의 약탈정권시대였다.

이제 우리는 박정희와 군사정권뿐만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등 민주화 이후 정권들에게 대해서도 냉정하고 혹독한 비판과 평가를 내려야만 할 시점에 와 있다.

지난 세월 애석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으로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선불교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때려 죽여야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듯이, 실패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고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시효를 다 한 87년 체제

지난 30년 세월을 주마등처럼 살펴보았지만, 민주주의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절차적 제도와 이를 실행하는 주체역량과 주위를 둘러싼 시대적 환경과 조건이라는 세 요소가 함께 물려서 형성되여 간다고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제도로서 87년 체제는 시대적 소명과 시민적 요구를 담아내기에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출범했다. 

주체적 역량으로서 시민사회 역시 성찰적 각성이 부족했고, 결사적 참여가 미진한 상태에서 기득권에 포섭된 직업적 정치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이 역사적 패착이었다.

당연히 한국민주주의 미래와 가능성은 87년이후 형성된 야합적 제도정치와 스스로 주연배우가 돼버린 직업정치인의 폐단을 극복하고, 다양한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에 기초한 정책정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할 것이다.

격동하는 세계사의 물줄기

한편으로는 1980년대까지 안정적이었던 세계의 시대 환경과 조건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1990대 경제 불황에 이어 더욱 거대한 파고로 덮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후유증을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세계는 급반전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신자유주의의 사망으로 이행하고 있으나, 이를 대체할 뚜렷한 흐름이 아직 보이질 않고 있다. 미국 금융시스템의 사기와 탐욕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유럽전역을 위기로 몰아놓고, 세계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BRICS를 눌러 앉혔다. 이젠 저성장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뉴노멀 시대로 진입하였다. 유럽의 진보그룹들은 성장이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탈성장 또는 새로운 개념의 발전을 논의하기 시작하고 있다.

문명사학자인 김기협 선배가 정확히 분석했고, 선재동자를 자처한 이병한 박사가 추가로 설명하였듯이, 수 백년에 걸친 서세동점의 시대는 미국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종말을 고하고, 다양다변한 문명권과 국가와 지역간 이해들이 서로 교차하고 대립하고 융합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역사의 미궁속에 방향을 상실하고 심한 양극화 현상속에서 트럼프라는 깡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건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시대를 마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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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지금껏 보지 못한 격동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싹트는 징조인지, 아니면 출구를 알 수 없는 대혼란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1)일대일로라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선언하면서 대국의 면모로 포효하는 중국, 2)영국 제도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위와 근시안적 포플리즘이 결합된 BREXIT, 3)난민들의 대거 유입으로 인한 유럽사회의 국수주의적 우경화, 4)서구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민주화의 봄이 이슬람주의로 회귀되고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상황, 5)오스만 제국의 후예인 터어키 민족의 굴기, 6)필리핀 민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두테르테 대통령이 보이는 반미적 행보, 7)순수한 토착문화에서 성장한 인도 모디 수상의 힌두인적 행보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현상들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전형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졌던 서구식 민주주의의 시각만으로는 새롭게 전개되는 세계사적 흐름을 더 이상 이해하고 포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근세이후 상업의 발달로 중산층이 크게 발흥하면서 천부인권과 시민계약론, 그리고 재산과 사적 소유권 보장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 삼권분립 그리고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한 대의민주주의가 핵심을 이룬다.

그 원형적 배경과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삼백년이 지난 21세기 수명을 다한 서구의 현재적 상황과 한국이 지닌 역사적 전승 속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형해화된 서구식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인민들의 일반적 참여와 합의로 이루어진 사회계약론에 기초하여 인류가 당대에 획득한 실천이성이 합리적이고 합당한 근거로서 공공의 영역에서 역할과 기능을 다할 때 적용가능한 것이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테가 상징하듯이, 무지의 베일 앞에서 법의 강제가 원리적으로 모두에게 정의롭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위의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법치주의는 위장된 강도짓에 불과하다.

필자는 한국에서 법치주의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 준비하고 개선하고 시행해야 하는 내용을 제시할 전문식견은 없다. 다만 오늘의 한국은 당당한 법치국가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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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은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림은 로마 원로원의 모습.

삼권분립 역시 허울 뿐이다. 입법과 행정과 사법의 독립적 역할과 상호견제라는 대원칙에 비추어 볼 때 우선 사법권이 행정권력으로부터 완벽히 독립되여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등 주요 사법직의 선출과 임명과정이 대통령의 직,간접 영향으로부터 명백히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듯이, 시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주요 법관들을 직접 선출하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가 검찰과 경찰직 주요 간부들 역시 해당 지역주민들의 손으로 선출해야 하며,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 독립된 상태에서 상호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의 별동대처럼 움직이는 검찰조직은 고사하고 대법원장 이하 주요 법관들마저 대통령의 신하처럼 처신하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위장된 독재국가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린 정책정당이 없는 한국의 대의정치는 그야말로 ‘극장식 민주주의’이다. 시민들은 그저 관객으로 참여하여 박수치고 분노할 뿐, 주로 연고와 지연과 금력에 의해 선택된 엘리트 또는 졸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회는 유력정당들끼리 ‘연출된 연극’을 공연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시민들의 참여와 결사와 숙의의 과정이 생략된 채, 대기업, 고급관료, 수구적 미디어와 이익단체에 포섭당한 기득권 중심의 대의체이다.

또한 일회적 선거만으로는 대의적 의회정치가 더 이상 민주주의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열려야 한다.

우선 시민 청원과 소환과 감시권이 확실하고 실제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IT통신정보기술이 발달한 현재 수준에서는 스위스와 같이 수시로 국민발의에 의한 직접투표를 검토해야 한다.

헌법과 선거법 개정 등 국민적 주요 관심과 핵심적 이해를 가진 의제가 국회 내 정당간 토론돼야 한다. 또는 결정이 어렵고 토론과 숙의적 과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시민의회’라는 새로운 헌법기관을 통하여 토론돼야 한다.

이런 시민의회는 서구의 몇몇 나라에서 이미 실험되고 있는 제도이다. 현재의 삼권분립제도를 넘어서서 실제적 시민권을 보장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사권분립 또는 오권분립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수명을 다한 서구식 민주주의…새로운 사상의 맹아들

이제 서구의 민주주의제도는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판단한다. 시민주권에 기초한 계약론과 법철학의 훌륭한 역사적 배경을 담고는 있지만 껍데기뿐인 제도와 절차만으로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형식상으로 평등하고 공정한 정치적 절차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권과 재산권 중심으로 지나치게 확장된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초래한 현실생활 조건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그런 형식을 껍데기로 만든다.

또한 불공정한 미디어로 인해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 ‘길들여진 제도’ ‘스포츠성 이벤트’로 변질되고 있다. 

이병한 박사가 언급한 ‘송학의 서천’(중국의 송나라 학문이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상업이 발흥하고 르네상스가 촉발되고 프랑스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일본학자의 이론) 경험을 다시 되새기며, 한계에 봉착한 서구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은 동아시아와 한국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지 제안해 본다.

우선 배달민족의 건국설화부터 매우 독특하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내려와 나라를 열고 건국이념을 ‘ 홍익인간 –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백성들’의 나라로 삼았다는 것은 놀라운 선언이었다. 서구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진보사상이다.

왕도와 덕치를 가르친 맹자가 의(義)를 정치의 핵심주제로 삼고 백성을 괴롭히는 제왕은 처벌할 수 있다는 역성혁명론이 유럽으로 전파되어 프랑스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세우게 하였다는 ‘송학의 서천’ 이라는 연상이 가능하다.

중국 월나라의 탁월한 재사였던 범려에서 유래했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역시 서구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언어의 영역이다.

쌀농사 중심의 농업이 집단적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배경에서 출발한 것으로 유추되는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의 미풍양속 역시 오래된 미래의 전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모여 공유하고 숙의하고 공동으로 결정한 향악의 전통과 내용은 서구의 근대적 자치제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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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내 사정전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위치한 만춘전과 천추전.

경복궁내에는 왕이 일상적 업무를 처리하던 사정전(思政殿) 양 옆에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축물들이 있다. 왕을 알현하기 전에 사전에 모여 현안을 토론하고 상의하던 건물이다.

만춘전에서는 이름그대로 젊고 혈기가 방장한 진보적 신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다. 건너편 천추전에서는 경험많고 노련한 원로그룹들이 숙의를 통해 국정의 구상을 가다듬던 장면들을 상상해 보라. 현재 여의도 국회의사당보다 내용면에서 매우 앞서 있지 않은가. 

구한말 동학에서 보여준 ‘시천주(侍天主)사상 역시 놀랍다. 서양에서 이야기하는 천부인권사상의 배경에는 인간은 신이 창조했지만 신을 닮은 피조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서양의 신에게 인간은 대상적 피사체일 뿐이다.

그러나 동학에서는 하느님이 인간 속에 원형적으로 내재한다. 신과 인간이 분리되여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내면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확장하여 보면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는 백성들이 함께 뜻을 모으면 곧 하늘의 뜻이 되는 것으로 민본 사상의 절정을 이룬다.

서구 민주주의 기초가 된 루소의 시민적 일반의지론을 훌쩍 뛰어넘는 격높은 사상이다.

홍익인간과 맹자의 왕도사상, 참여와 절차과정으로 향약과 두레, 견리사의가 뜻하는 공동체로서의 덕성, 선비사회가 보여준 절개와 비판정신, 모두를 어우르고 관통하는 동학의 시천주라는 경인사상 등, 동아시아의 역사와 전승은 퇴조해 가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미래를 밝힐 수 있는 미지의 가능성이다.

서체아혼(西体亞魂)의 견지에서 서구사회가 발전시켜온 법논리적 절차와 형식에 앞서 언급한 동아시아적 영혼을 불어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서구가 성취한 그릇 안에 민본(民本)과 민생(民生)과 민락(民樂)이라는 내용을 담아 삼민(三民)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21세기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서양의 형식에 동양의 영혼을 담는다면…

아무리 제도적으로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게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시민적 삶을 어지럽히는 것을 민주제라고 인정하고 허용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동양적 서술과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서구의 하버마스 역시 합리성과 효율성 중심의 관료제가 가져오는 폐단을 지적하고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에서 형성되는 소통적 담론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의 발달한 통신기술로 직접민주제를 포함한 다양한 민본적 정치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사민주의가 발전시켜온 사회적 시장경제를 넘어서 두레의 예에서 보여준 공유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인류가 쌓아온 과학기술의 수준과 금융시스템운용의 경험은 인간의 조건을 현재보다 훨씬 위대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모든 사회 경제활동의 출발점과 도착지는 맹자가 제시한 제민지산(齊民之産)에 근거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칼럼(경제성장과 행복…”뭣이 중헌디?”)에서 시민 개개인의 행복조건에 대해 반복하여 언급하였지만,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도 명기된 행복추구권이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은 민주주의와 경제시스템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다. 허접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적 표현으로 대동(大同)의 사회를 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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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촛불을 든 시민들은 자신들이 헌법에 명시된 주권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지금의 시민항쟁이 단순히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몰아낸 권력교체에 그칠 것인지, 새로운 차원의 정치, 경제, 사회체제를 만들 체제전환의 맹아가 될지 현재로는 알 수 없다.

권력 교체기 또는 역사의 전환기

2016년 11월12일 서울광장에 모인 백만 시민의 함성은 한국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매우 소중한 기회이다. 단순히 박근혜의 퇴진이라는 현안을 뛰어넘어, 우리의 시야를 세계로 확대하면서 역사를 살펴보는 깊은 성찰과 비판을 통해 제대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또다시 제도 정치권인사들의 탐욕에 의해 좌절된 역사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결과물이 아니라 실천적 과정이다. 시민사회가 성숙해가는 과정속에서 성찰과 비판 그리고 참여가 없이는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미지는 늘 현재 안에 움트고 있다. (다가올) 민주주의는 미지에 대한 동적 지향의 가장 포괄적 표현이여야 한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 <미지의 민주주의>  중)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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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학교장님의 새 저서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가 출간되었습니다.

지난 해 겨울에 진행된 동명의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시민을 위한 정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좋은 정치에 대해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추천기사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추천기사 : 정치학자 박상훈, 시민을 위한 정치이야기

월, 2017/05/0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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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무위당 학교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모두를 껴안고 함께 가는 것.’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한살림 생명운동을 그리 말씀하셨지요.
지난겨울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한 촛불광장은 ‘껍데기 민주주의’를 벗겨내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진짜 민주주의!
더 많은, 더 깊은 민주주의를 위한 배움터.
여러분을 한살림고양파주 무위당 학교에 초대합니다.

 

1. 대상 : 한살림고양파주 조합원과 일반 시민 60명(선착순)

2. 참가비 : 2만원(411-910004-61304 하나은행 한살림고양파주 / 입금 시 무위당-입금자명 기재)

3. 신청 : 홈페이지 해당 공지 신청란 접수 후 참가비 입금

4. 문의 : 기획홍보팀 031-926-3563

 

일정 등 자세한 내용은 참가하신 분께 별도 안내드립니다.

 

2017 무위당학교 참가 신청하기

 

 

화, 2017/05/0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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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통치의 시간’, 준비돼 있습니까?

정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거 시기가 되면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로부터 종종 안부 확인을 겸한 선거의 전망을 묻는 전화를 받곤 한다. 며칠 전에도 친구로부터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전화를 받았다. 긴 수다 끝에 친구가 물었다. “근데 왜 이번 대선은 12월이 아니라 5월에 하지?”,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중년의 건망증이라고 서로 웃어넘기긴 했지만, 통화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질문이 영 생뚱맞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잊은 채, 선거판의 정글에 빠져들어 길을 잃고 있는 것이 단순한 건망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선의 열기 속에 어느새 까마득한 일이 된 듯하다. 간간이 언론을 통해 양념처럼 등장했다 사라지는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사건 연루자들의 사법처리과정과 수감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만이 우리가 왜 12월이 아니라 5월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지를 문득 상기시킬 뿐이다.
이번 대선은 87년 민주화 이래 최대 사건, 헌정 중단에 준하는 정치적 대위기가 초래한 선거이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을 폭군을 내쫓은 일종의 명예혁명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는 명예혁명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주조해야 하는 비상한 책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그러한 비상함은 찾기 어렵다. 선거 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잊게 할 만큼, 이전의 여느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문제를 두고 냉전적 시각으로 상대를 적대하는 것도, 심판론의 연장인 적폐청산론으로 피아를 구별해 적대하는 것도 그렇다. 이놈 저놈 하는 격한 정치적 언사도 모두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틈을 타 탄핵당한 헌법 밖의 정치세력이 슬슬 다시 몸을 풀고, 또 그만큼 적대와 증오는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거라는 자족적 기대도 상당히 커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탄핵정국 통해 표출된 사회적 에너지의 규모에 비춰, 그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의 다양함에 비춰,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복합적인 성격에 비춰 지극히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번 대선이 12월이 아니라 5월에 치러지게 된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결과다 
보수-진보, 여-야를 떠나 절대 다수 시민들이 유사 사회적 합의를 통해 최고 통치자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 과정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넘어,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 시장을 지배하는 권력과 재벌 간의 오래된 담합구조, 대통령과 청와대로 초 집중화된 권력체계, 자율성과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을 비롯한 사회 각 부분, 예스맨들의 집합체가 된 집권당과 책임성 없는 내각, 외교안보적 무능력과 리스크 증대 등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의 누적된 위기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일거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조기 대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보인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함성은 더 나은 통치에 대한 시민들의 집약적 요구라고 할 수 있고, 이번 선거는 그것을 묻고 있다.
선거는 정치가 가진 여러 얼굴 가운데, 가장 경쟁적이며 대립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선거가 정치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누가 집권하든 통치의 시간이 온다. 통치(government)는 원래 배의 키를 잡는 행위에서 유래한 말이다. 키를 잡고 거대한 함선을 이끌 듯이 최선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나라의 전반을 조정하고, 조율하고, 운행하는 정치적 실천이 통치다. 따라서 선거하듯 통치할 수 없다. 민주적 통치는 경쟁보다는 건설적 협력을, 대립보다는 상호 존중과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더 좋은 통치의 비전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핍박과 조롱을 통해 이기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이번 대선의 의미를 정확히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 과정에서 과도하게 동원된 적대와 상대에 대한 모욕은 비단, 후보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그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 역시 그러한 적대와 모욕으로 고통받는다. 우리가 협력할 수 있고, 또 서로 존중받고 있다는 시민적 공감대가 없다면, 선거의 뒤끝은 격렬한 분열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의 분권정부, 즉 소수파 정부일 수밖에 없다. 지금 유력한 대선후보가 상대하는 후보와 정당은 선거가 끝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 촛불을 거치면서 높아진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수준 속에서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집권한 정당, 후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첩첩산중이다. 아무리 승부가 중요하다 해도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신뢰의 근거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것이 통치의 시간을 준비하는 ‘통치자의 태도’이다.
선거는 이제 종반전이다. 비상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평범한 선거를 보며,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단 며칠이라도 적대와 증오, 서로에 대한 모욕이 커지는 선거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이해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그 맨 가장자리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발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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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5/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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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부와 협력하지 않는 대통령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DB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여느 때처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아닌, 곧바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제1시민’ 혹은 ‘시민 중의 시민’을 뽑는 선거 일정이 오늘로써 마무리된다. 승자가 누릴 기쁨의 시간은 짧을 것이다. ‘시민 속’을 누비며 경합해야 했던 대선 후보로서의 지위를 마치자마자, 하루아침에 ‘시민 앞’에 우뚝 선 최고 통치자로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선거 후유증을 다독이며 숨을 돌릴 한동안의 여유가 내일의 대통령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수준의 대통령이라면, 일을 빨리 하는 것을 과시하려는 조급증에 빠지기 쉽다.

크고 빠른 성과에 연연하는 조급함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 모두를 망가뜨린, 일종의 ‘정치적 질병’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조급증은 이번 대통령만의 특별한 위험은 아닌데, 다만 심리적 압박은 어느 대통령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런 압박을 견디지 못한 대통령일수록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이 안 될 때마다 야당이나 반대파들이 협조해 주지 않는 것을 알리바이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청와대와 주변 참모들은 ‘국민과의 대화’나 ‘대국민 홍보 강화’를 빌미로 여론 정치를 확대하려는 충동을 절제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여야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정상적인 정당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태가 신정부에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풍모와 유머, 침착함을 대통령이 잃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상황에서 빠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새 대통령은 앞선 정부에서 임명된 내각과 앞선 대통령의 정책을 위해 마련된 예산을 갖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당 지도부 개편과 내각의 진용을 짜는 일을 서둘러야겠지만, 거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부조직법을 손보고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 일을 하려면 추경 예산도 편성해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 준비도 코앞의 일이다. 보통의 신정부에서보다 훨씬 늦게 시작하는 일정이니 내실을 기하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입법부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야당과의 협의 능력이 중요할 텐데, 이는 집권당 지도부의 유능함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에서 제1의 권력기관은 입법부이며, 대통령도 이를 초월할 권력은 갖지 못한다. 통치 행위는 법에 입각해야 하고 그런 법을 제정하는 입법자에게 시민 주권이 위임되어 있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다. 입법부를 움직이는 것은 시민의 의사를 나눠서 대표하는 정당들이며, 이 가운데 집권당과 내각이 긴밀히 협력해서 정부를 관장하는 것을 ‘책임 정부’라 부른다. 박근혜 정부일 뿐 새누리당 정부가 아니었던 지난 정부에서 책임 정치가 어떻게 실종되는지를 보았듯이, 신정부 역시 정당의 정부가 아니라 특정 대통령 개인의 정부로 불리면 민주정치의 미래는 없다.

입법부와 싸우는 대통령은 최악이다. 안정된 당정 관계를 바탕으로 입법부와의 협력을 도모하고 여야 정치인을 넘나들어 대화를 이끌 수 있는 ‘다정한 자신감’은 민주적 리더십의 핵심 덕목이다.

혹자는 양당제로의 수렴 효과가 큰 대선에서조차 5당 구도가 유지된 만큼, 신정부하에서 다수 야당의 발언권은 강해질 것이라 말한다. 경제와 외교 등 이런저런 상황의 어려움을 들어 ‘신정부 조기 실패’를 예견된 일처럼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간의 활동 가운데 정치만큼 독립 변수로서의 측면이 강한 것은 없다. 객관적인 상황이 좋아서 성공하고 상황이 나빠서 실패했다는 인과론이 적어도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치의 역할에 따라 나쁜 상황에서도 성공하고 좋은 상황인데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훨씬 더 가깝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셰리 버먼 교수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한 ‘정치가 우선한다’는 테제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닐 수 없다. 주권이라고 하는 절대적 권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창의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단연코 정치의 역할이다.

민주정치의 이상은 ‘숙고된 결정’과 ‘합의적 변화’에 있는데, 이는 통치자의 자신감이 침착하고 다정한 리더십으로 실현될 때만 가능하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ISSUE/2017president/News?gid=84267160&date=20170509&path=#csidx2103e245134d6618c882c45214adee5

화, 2017/05/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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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일주일, 사방이 소란하다. 벌써부터 어떤 단체들은 지난 정부가 결정하거나 행한 정책들의 시행을 막기 위해 집회를 열고,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다급한 현안이 조금이라도 더 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반영되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누군가는 조사를 요구하고 누군가는 입법을 요구하고 또 누군가는 이제 갓 일주일 된 정부에 공약을 지키라고 벌써부터 닦달이다.

 

이런 소란함이 불편한가? 두 가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렇다’는 답이 들려온다. 한 방향의 대답은 이른바 ‘너무 많은 민주주의’가 가져올 사회 혼란에 대한 우려다.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워 너도나도 자기 할 말만 하면 사회가 무질서와 혼란에 빠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니 선장이 이끄는 대로 질서정연하게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집권 정부는 이러한 사회 혼란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면 안 되고 공권력을 엄정히 세워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렇다. 우리 사회는 조용한 민주주의, 질서 잡힌 민주주의, 지도자와 여론 주도층이 이끄는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너무도 오랫동안 들어왔고 친숙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방향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새 정부가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서 들려온다. 이제 일주일 된 정부에게 해도 너무한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금방이라도 천지개벽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온갖 요구를 해대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다. 새 정부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사회적 요구들이 등장하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소 성급해 보이는 이익집단이나 이해당사자들의 요구가 혹시라도 새 정부의 반대파들한테 빌미를 줄까 걱정하며 마음을 졸인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이전에 한 명의 대통령을 안타깝게 잃었다. 그의 죽음 이후 많은 이들은 ‘지못미’의 부채를 짊어졌고, 5월9일 새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여기저기서 그런 비운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절실한 다짐들이 있었음을 안다.

 

그런데 그사이 우리 민주주의도 나이를 먹었고, 우리 사회는 지난가을 이래 닥친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낸 경험을 쌓았다.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절실함을 간직하면서도 정치공동체의 어려움을 함께 넘어선 값진 기억을 공유했다. 광장에서 우리는 평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동료 시민들의 다양한 절규들을 마주했고, 다소 불편하거나 동의할 수 없더라도 인내하며 서로를 북돋워주었다. 광장의 소란함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듯이 그렇게 일상의 소란함도 인내할 여유를 가져보자.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거리로 나서거나 마이크를 잡는 이들이, 새 대통령을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 줄 메시아나 슈퍼맨쯤으로 여겨서 그런 것은 아닐 터다. 누군가는 너무 절실해서, 누군가는 기다림에 지쳐서, 또 누군가는 이 정부에서조차 또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릴까 봐 두려워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새 정부를 위험하게 하는 건 이해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아닐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이 가만히 있도록 강요받았던 정치, 이해당사자들이 자기 요구를 하면 집단이기주의가 되고 불온한 이념에 선동당한 어리석은 대중으로 매도되었던 그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것이다. 누구든 필요하면 언제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런 정도의 소란함은 일상의 여유로 받아넘겨 줄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 민주정치가 자리잡아가지 않겠는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5153.html?_fr=mt5#csidx81408cf0e8a128aba41bca494dd8c3e

목, 2017/05/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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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주의 체제는 ‘정부·시민’보다 ‘국가·국민’의 개념을 선호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새 정부가 ‘정당 정부에 기초를 둔 책임정치 실현’을 약속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라 부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아울러 국가와 정부라는 용어 사용도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민주국가’보다는 ‘민주정부’가 잘 어울리듯, 민주주의는 정부라는 개념에 상응하는 정치체제다. 자주국가, 독립국가, 주권국가라 쓰듯 국가 역시 꼭 있어야 할 정치 용어지만 민주주의와 관련된 진술에서는 절제하는 게 옳다.

정부를 뜻하는 ‘government’는 ‘키를 잡고 배를 조종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쿠베르나오(kuberna´o)’의 라틴어 옮김 말인 구베르노(guberno)에서 유래했다.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 리더십 혹은 그런 리더십의 조직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반면 국가를 뜻하는 ‘state’는 라틴어 ‘status’에서 유래한 말로 애초에는 ‘지위’나 ‘상태’를 뜻했으나 16세기로 들어서면서 ‘배타적인 영향력의 범위를 가리키는 통치의 단위’라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는 ‘영토, 국민, 주권’의 세 요소를 가진 국제법적 주체로 발전했고, 그에 따라 통치자도 애국과 충성의 맹세를 해야 하는 윤리적 실체로 격상되었다.

주권(sovereignty) 개념을 기준으로 봐도 다르다. 국가는 주권의 대외적 측면을, 정부는 주권의 대내적 측면에 가리킨다. 대외적으로 주권의 부재가 ‘무국가 상태’ 혹은 ‘식민지 종속국’을 뜻한다면, 대내적으로 주권의 부재는 ‘무정부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국민(nation)이라 하고 그들의 정체성은 법률적 근거를 가진 국적(nationality)이 기준이 된다.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고 간첩죄나 내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 반면 정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시민(citizen)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가진 권리는 시민권(civil rights)이라 한다. 정부에 대해 시민은 자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비판하고 반대할 수도 있다. 정부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시민에게만 자유와 권리를 허용한다면, 이를 반대하는 시민과의 내전(civil war)은 피할 수 없다. 시민권에는 (정부조차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를 가리키는) ‘자유권’도 있고, (정부 선출에의 평등한 참정권을 가리키는) 정치권, 나아가 (정부에 사회경제적 분배 책임을 요구할 권리를 가리키는) 사회권 등이 있다.

비민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가를 신성화하고 국가안보와 국가이익, 국민의 의무, 국민교육 등을 강조한다. 시민 주권을 부정하면서 그로 인한 정당성의 결핍을 늘 외부로부터의 안보 위협으로 채우려는 권위주의 체제일수록 더 그렇다.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민주화의 요구를 억압하려 한 것도 같은 이유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공을 국시(國是)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정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반공국가라는 의미를 담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쓴다. 정부 행사라는 표현 대신 국가의 공식 행사라고 규정하길 좋아하거나,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조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안 되고 꼭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국가에 대한 맹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일 때가 많다.

국가가 아닌 정부라는 말에 친화적인 사회가 되어야, 시민은 그야말로 ‘갑’이 되고 주권자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정부는 ‘시민에 의해’ 선출되고,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의무를 안게 된,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의해 우리가 국민이 아닌, ‘동료 시민 여러분(My fellow citizen)’으로 호명되는 일이 많아야 민주주의일 것이다.

대통령이란 명칭도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가 있다. 통령(統領)이란 의미도 대단한데, 이를 더 크고 위대하게 높여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담는 듯하다. 시민의 공동체를 주관하는 의장 내지 시민 가운데 으뜸 자리임을 뜻하는 좀 더 자연스러운 용어가 있었으면 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523/84510160/1#csidx0a4c1c974309cf78c258b9435a72460

화, 2017/05/2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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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농민들을 중심으로 반봉건!반외세를 외치며
부정부패 척결과 전근대적 봉건 질서를 해체하고자 했던  동학농민혁명

'때가 왔소.
탐관오리 조병갑의 목을 베고
한양으로 진격합시다'

삽과 괭이로 무장한 농민군은
더이상 낡은 체제의 모순과 억압을 견뎌낼 수 없다고 외치며 일어섰습니다.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의 기치를 내걸고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근대역사의 첫움직임, 미완의 혁명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광장 민주주의"의 시작을 이야기 해보는 시간입니다.
6월 근현대사 아카데미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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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5/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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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다시 보기

 

강사 :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일시 : 6월 8일 ~ 6월 29일(매주 목) 오후 7:30

장소 : 정치발전소

수강신청 : http://bit.ly/rediscovery_assembly

수강료 : 8만원(비회원 12만원)

입금계좌 : 1005-702-851358 우리은행 정치발전소

 

1강. 근대 의회에 담긴 역사의 흔적

2강. 대한민국 국회의 1년 살이

3강.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방법

4강. 행정부가 법을 만든다?

 

목, 2017/05/2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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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유죄확정에 대한 논평

헌법에 명시된 집회·결사의 자유와 노동3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3년이란 중형을 확정한 사법부 판단은 납득하기 어려워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오늘(5/31) ‘불법집회를 주도했다’는 등을 이유로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징역 3년, 벌금 50만 원의 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헌법 21조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헌법 33조는 노동자에게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집회·결사의 자유와 노동3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3년이란 중형을 확정한 사법부의 판단을 납득하기 어렵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4월 16일의 세월호 범국민추모행동, 2015년 4월 24일에 진행된 민주노총의 1차 총파업 집회, 2015년 11월 14일에 진행된 민중총궐기 집회 등 13건의 집회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등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유죄의 근거로 지목된 사건은 지난 정권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국가운영의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과 노동자의 정당한 주권행사이었다. 사법부는 정권의 일방통행에 항의한 주권자로서 시민과 노동자의 의사표시가 정녕 3년의 실형을 받을만한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주권자로서 시민과 노동자가 자신의 정치적인 의사를 행동으로 직접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자의 정치적인 의사가 제약 없이 표현되어야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그리고 광장에서 증명된 우리의 경험이다. 집회·결사의 자유와 노동3권과 같이 기본권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자신의 역할을 부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유죄 확정은 헌법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마저 감옥에 가둔 판결이다.

수, 2017/05/3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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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민관협치, 그런데.. “주민토론회는 왜 평일 낮에만 열리지?” “어린이나 청소년 의견은 안 들어?” “주민 발의 주민투표는 0건…” 뭔가 부족하다! 협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행정이 시민에게 말을 거는 방식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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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6/0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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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강의노트 시리즈 세번째이자 박상훈 학교장님의 저서인 <민주주의의 시간>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그동안 공부하고 강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더 좋은 이해를 위한 내용을 담고있는 <민주주의의 시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월, 2017/06/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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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지역혁신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가는 목민관클럽은 지방자치의 길잡이 <목민광장>을 발간하고 있다. <제12호 목민광장>에서는 민주화항쟁과 개헌을 통해 형성된 87년 체제가 갖는 의미와 한계를 돌아보고, 97년 외환위기(IMF)와 그 과정에서 본격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한국사회 변화의 내용을 평가하면서, 지방정부·지방자치의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본다. 또한 다양한 주제로 우수한 정책을 학습했던 목민관클럽 정기포럼, 목민관 인터뷰, 전국 목민관클럽 회원 지방자치단체들의 소식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기획특집 ‘기억문화와 지역의 변화 : 한국과 독일 사례 비교’에서는 기억문화가 지역과 지방정부의 변화를 가져오는 과정 또는 기억문화와 지역의 변화를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 내용은 지난 3월 안산에서 진행된 한독도시교류포럼 ‘기억의 조건’(희망제작소, 목민관클럽,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공동주최) 발표 내용 및 추가 글로 구성되었다.

■ 목차

– 발간사
2017년, 분권에 기초한 연대와 협력의 시대를 꿈꿉니다

– 특집좌담
87년 체제 30년 그리고 한국사회

– 기획특집
기억문화와 지역의 변화 : 한국과 독일 사례 비교
/ 기억문화와 지역사회의 변화 : 5·18 광주의 경험을 통해 세월호를 보다
/ 세월호와 기억
/ 기억의 공간,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기억문화의 역사와 의미
/ 기억문화와 지방정부의 역할 : 베를린시 사례

– 목민관 인터뷰
주민과 함께 살맛 나는 으뜸도시를 만들어가는 광주 서구
성동, 청년 그리고 혁신을 이야기하다
시민이 행복한 자연치유도시, 제천

– 이슈&포럼
17차 포럼 :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 어디까지 와 있는가?
18차 포럼 : 에너지정책의 전환과 지방정부의 도전
19차 포럼 :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 희망제작소 Think and Do
주민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마을
지속가능 안전사회를 꿈꾸는 희망제작소의 고민
일단 찍어보고 싶습니다

– 목민광장을 읽다

– 목민관클럽 회원 지방자치단체 단신

수, 2017/06/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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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청와대 상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한 5당 대표들.
왼쪽부터 정의당 노회찬, 바른정당 주호영,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많은 사람이 지금의 정당 체계가 5당제인지 4당제인지를 묻는다. 이런 다당제가 지속될 수 있는지 불안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4당제든 5당제든 다당제는 유지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형태로든 양당제로 회귀하는 것이 ‘벗어날 수 없는 한국 정치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 정치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정당의 수’다. 정당이 하나라면 민주주의는 아니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일당제 내지 ‘당-국가(party state) 체계’라고 부른다. 전체주의 국가가 대표적인 예다. 복수의 정당이 경쟁하지만 야당 집권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는 권위주의 체계라고 한다. 우리의 경험으로 본다면, 과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기가 대표적이다. 결국 민주주의란 ‘야당도 집권 기회를 갖는 복수 정당 체계’라 할 수 있는데, 이때도 정당의 수는 중요하다.

양당제와 다당제 사이의 차이는 크며, 같은 양당제라 하더라도 일본처럼 하나의 우세 정당이 있는 곳과 미국이나 영국처럼 두 정당이 비슷한 영향력을 갖는 곳의 정치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같은 다당제라 하더라도 독일의 기민당과 사민당처럼 두 개의 주축 정당이 있고 이들 사이의 이념적·정책적 거리가 짧으며, 전체적으로 정당 수가 3∼5개 안팎인 ‘온건다당제(moderate multi-party system)’와 그렇지 않은 다당제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온건다당제에 대비되는 정당 체계는 ‘양극다당제(polarized multi-party system)’라고 한다. 정당의 수는 5개를 넘는 경우가 많고, 정당들 사이의 이념적·정책적 거리는 배타적이라 할 만큼 크다.

정치를 분열시키는 힘은 좌와 우 사이에만 있지 않다. 좌와 우 사이에서 중도 정당들은 마치 쐐기의 역할처럼 정치 양극화를 가속화시킨다. 개별 정당 내부에 비토 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당이 어떤 협력, 어떤 연정을 하든 이에 저항하는 비타협적 힘으로 작용한다. 1920, 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 정치가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힌다.

누구든 한국 정치가 양극다당제로 치닫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지금의 다당제를 잘 제도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때의 다당제는 온건다당제일 것이다. 반대로 정당의 수를 줄이기를 바라거나 양당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한국 정치에서 온건다당제의 전망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된다. 승자 독식을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제의 제도 효과 때문에 안 된다거나 이념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분단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즐겨 꼽는 근거다.

그들에게 다당제는 곧 양극다당제 내지 그 유사한 것으로의 퇴락을 의미한다. 1988년 총선에서 등장한 4당 체계를 인위적으로 재편한 1990년의 ‘3당 합당’은 그런 논리로 합리화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3당 합당이 정당의 수를 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일본식의 일당우위 체계나 영미식의 안정적인 양당제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에 대한 적대와 증오를 주 내용으로 하는 양극화 정치를 가져왔다. 비단 여야 사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 간 차이보다 친DJ 반DJ, 친노 비노, 친이 반이, 친박 비박 등 저급한 갈등이 당 내부를 지배하는 시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양당제에서도 얼마든지 정치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다당제가 불안하다고 해서 이를 작위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지난 대선에서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통합 시도가 젊은 유권자들에 의해 거부되고, 정의당의 독자적 목소리가 보수의 승리를 도와준다는 주장보다는 정치 발전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었던 것에서 보았듯이, 지금의 5당 구도는 나름의 합리적 기반이 있다. 다당제는 잘만 운영하면 연합과 협력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정치 안정을 이유로 규모가 큰 통합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힘과 대결의 정치를 부추기기 쉽다. 5당제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온건다당제로의 길을 개척했으면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 바꾸는 것은 그 첫걸음이겠지만, 각 정당도 인근 정당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협력과 경쟁의 합리적 기준이 분명해야 온건다당제는 생기를 띨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606/84732968/1#csidxf55765efe1e671695faf7f328a9d6d5

수, 2017/06/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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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홍성 찾은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 강연

17.06.02 07:55l최종 업데이트 17.06.02 07:55신영근(ggokdazi)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이 1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에서 홍성지역 주민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이 1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에서 홍성지역 주민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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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지역주민들과 함께 생각하는 인문학 교양강좌가 지난 1일 오후 5시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아래 홍성지원) 5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인문학 교양강좌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공개강좌다. 이번 인문학 교양강좌에는 주민 50여 명이 참여했다.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어사전은 민주주의를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와도 같은 뜻이기도 하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근간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이날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교양강좌에 강사로 나선 정치발전소 학교장 박상훈씨는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박상훈 학교장은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사실 민주주의를 역사화한 것은 의외로 그 역사가 길지 않다. 또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보다는 민주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다 공익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치를 잘해야 한다. 어떤 의견의 일치점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라는 것은 그냥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과 개인적인 삶 모두가 이유 있는 정치일 수도 있고, 우리의 대표를 정치라는 공간으로 시민대표를 보내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이라고 민주주의 기원을 설명했다.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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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우리와 밀접한데 정치는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살고 있다. 정치의 출발은 좀 더 나은 삶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이다. 또한, 가장 불행한 나라는 시라아라고 알려져 있다. 스웨덴에도 갈등도 만만치 않지만 그런데도 스웨덴은 갈등을 다루는 정치적 기능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시리아는 주권이 국가라는 관계에서 부정이 되어 무정부 상태가 된 것이다. 결국은 갈등과 차이 속에서 정치가 작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박 교장은 이어 어떤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120여 개 나라의 지수를 가지고 어느 사회가 민주주의가 높고 낮으냐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비교 정치학이라고 한다. 인과적 설명이 높은 것을 두 개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노사관계가 좋은 나라와, 정당정치가 잘되어 있는 나라로 나눌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인과적 설명이 높은 두 개의 지수는 노사의 관계가 고르고 공정한 게 전체사회에 미치는 요건이 가장 크다. 또한, 보수정당의 집권이 어느 나라든 집권 시기가 길며 이것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행을 유지하는 힘이 크기 때문에 보수정당이 많이 호감을 준다. 정당이 바뀌면 사회에 유익한 효과가 나야 한다.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이 1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에서 홍성지역 주민들에게 1시간여 동안 강연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이 1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에서 홍성지역 주민들에게 1시간여 동안 강연을 하고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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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 교장은 정당정치가 잘되기 위한 본인의 생각을 피력했다.

“시민사회에서 이해관계의 차이가 어디나 뚜렷하다. 그 이해관계를 나눠서 대표하는 정당들이 공익에 잘 헌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보수정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도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책임성을 갖는다. 정당들이 번갈아 가며 집권할 수 있어야 그나마 조금 더 자유롭고 건강한 가능성이 커진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공리 공론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생산한 결과를 비슷하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메커니즘 위에 세우면 그래도 민주주의가 잘 발휘되는 것”이라면서 “어느 나라든 식탁정치가 제일 좋다. 그걸 안 했기 때문에 우리 세대나 우리 윗세대 사이에 깊은 갈등 관계가 있다. 우리 사회를 살만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어릴 때부터 식탁에서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적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라도 아이들이 그 문제를 책임감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좋은 정당들이 성장하고 좋은 노사관계가 우리 사회 경제를 뒷받침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좋아지는데 작은 노력이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금, 2017/06/0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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