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신청] 좋은 정치를 위한 고품격 수다의 장 ‘정치잇수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현대 민주주의의 최초 모델 가운데 하나인 영국에서 처음 민주주의를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의미를 어떻게 정의했을까. 그것은 정당 정부(party government), 즉 정당이 정부가 되는 체제였다. 의회 주권이 강화되면서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는 못한다’는 규범이 자리 잡게 되었는데, 그때 등장한 것이 ‘그럼 누가 통치할 것인가(who governs)?’의 문제였다. 긴 논란 끝에 ‘선거에서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정부를 맡는다’는 정당 정부의 원리가 만들어졌고, 본격적인 제도화 기점은 1868년 총선이었다. 이 선거에서 윌리엄 글래드스톤이 이끄는 자유당이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이끄는 보수당에 압승을 거둬 자유당 정부를 구성했다.
정부가 다수 시민의 지지와 요구에 반응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위임된 시민 주권은 해지된다는 책임 정부(responsible government)의 원리 역시 이 정당 정부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발전했다. 정당이 책임 정치의 보루가 되지 못하면 그때의 통치자는 ‘선출된 군주’에 가깝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극 역시 ‘새누리당 정부’로 불릴 수 없게 된 것, 다시 말해 집권당을 ‘박근혜 정부’라고 하는 사인화된 정부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 때문에 발생했다. 특정 정당의 후보로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정당을 통해 책임 정치를 실천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에서도 ‘선출된 전제정(elective despotism)’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 것이다. 다음 정부는 어떨까. ‘문재인 정부’나 ‘안철수 정부’처럼 특정 개인의 정부로 불리지 않고 공통의 정견과 가치, 정책을 갖춘 ‘민주당 정부’ ‘국민의당 정부’로 부를 수 있게 될까.
민주주의에서라면 정당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고 조직적으로 유능하고 정책적으로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라는 거대한 공공재를 이끌 수 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선거를 하고 제아무리 좋은 사람을 청와대로 보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국정 담론과 정책 공약이 화려해도 지켜지거나 실현되지 않는 것은 정당의 조직적, 사회적 기반이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제도나 형식에만 매달려 존재할 뿐, 민주적 책임성을 감당할 수 있는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나 조직적 토대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정부가 되고자 하는 정당들이 해야 할 역할일 텐데 상황은 밝지 않다.
우리 정당들은 평소에 언론과 뉴미디어에만 존재하다가 선거 때 비로소 사회로 내려오지만 그나마도 개인 캠프가 주도하고 여론조사의 수치 올리기에만 매몰돼 있다. 이래서는 제대로 될 게 있을 리 없다. 후보 개인과 수치화된 여론에 따라 유동하는 선거를 치러서 누군가 집권한다고 한들 안정된 정당의 뒷받침 없이 대규모의 정부 조직과 행정 관료제, 시장경제와 노사 관계, 교육과 문화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영역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사회 구성체를 무슨 재주로 운영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의 정당들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다른 당 후보를 탓하기 전에 뒤를 돌아 자기 정당부터 돌아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무질서하고 무조직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다 해도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감동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지휘자가 청중을 등지고 자신의 팀을 향해 서 있을 때 가능하다. 각각의 악기는 그 자체로는 불협화음이다. 이를 거대한 화음으로 조율해 내는 것이 지휘자인데, 그 아래에서 악기 파트들과 악장들의 역할이 살아나야 좋은 소리는 가능하다. 무대 뒤 보이지 않는 스태프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게 제대로 되어야 관객들의 반응이나 태도도 제 몫을 하게 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치가가 여론을 향해 인기를 끌려고 하는 동안 자신의 정당은 공허해지고 끊임없는 당내 불협화음으로 시민들을 괴롭힌다면 어찌될까. 자신의 정당이 하나의 조직이자 팀으로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치가라면 여론을 뒤에 둘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정당을 제대로 기능하게 만드는 정치가가 대통령이 되고 그런 정당이 책임 있고 유능한 정부를 이끌 때, 민주주의라는 ‘시민의 집’은 제 모양을 갖춰 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또 다른 선출직 군주를 뽑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번 정부가 될 정당을 선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411/83793110/1#csidx1819994f3f2711ab04a7f7a6dbb3ed8 
백남기농민 국가폭력살인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본부(이하 백남기 투쟁본부)는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살인사건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해 2017년 4월 18일 화요일 오전10시30분 광화문 세월호 광장 앞에서 19대 대선 후보들에게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묻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시위진압 물대포에 맞아 317일간의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건 발생 50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건발생 직후 시민사회와 국회 야3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지난해 9월 국회 청문회가 열렸지만 당시 정부,경찰 관계자 그 누구도 사과지도 책임지지도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사건 직후 검찰에 고발된 당시 진압경찰관 7인에 대한 수사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기소는 되는지 알 수 없고, 지지부진한 검찰수사에 야3당의 발의로 특검법을 상정했지만 해당 상임위에 6개월째 계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500여일 동안 정부와 경찰은 자신들의 책임을 다 하지 않았습니다. 사회각계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도 잘못 조차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에 차기 행정부의 수장을 선출하는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해결에 대한 입장과 정책대안을 질의합니다. 대선 후보 및 후보캠프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립니다.
진상규명
정부와 경찰은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내부감사 보고서등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고 법적 판단을 기다리겠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시겠습니까? 마련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 하시겠습니까?
책임자 처벌
당시 진압경찰관 7명이 검찰에 고발되어 있지만 지난 500여일간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소는 되는지 조차 알수가 없습니다. 국회에 특검법안도 발의 되어있지만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고 있지 않습니다. 경찰 내부적으로도 해당 진압 경찰관에 대한 징계 검토조차 없었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한 사람의 국민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십시요
재발방지 대책
현재 백남기 투쟁본부는 집회시위에서의 국가폭력 재발방지를 위해 집시법,경직법개정 입법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입법을 통한 재발방지 이외에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정부차원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지에 대해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2017년 4월 18일
▲ 정의당 심상정 후보 ⓒ심상정 후보 공식 사이트
오늘(4월 19일) 국제적 인권 기구인 아티클19(Article19)와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Pryvacy International)이 각각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통신자료무단수집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제3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 두 국제 인권단체는, 지난 2016년 5월 18일 자신의 통신자료가 국가기관에 무단 제공된 사실을 확인한 500여명의 시민이 헌재에 제기한 통신자료 무단수집 헌법소원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무단 수집 근거 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4항이 익명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등 국제적 인권기준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고 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두 국제 인권 단체는 공히 한국의 통신자료무단수집제도의 근거 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등이 국제인권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헌재가 국제인권 기준을 고려하여 해당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판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아티클19는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 비정부 국제 인권 기구이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 또한 런던에 본부를 두고 전세계 사생활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 국제 인권기구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원리와 인권의 근본원칙 중 하나로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필수적인 기반 중 하나이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제한은 유엔 자유권 규약 제19조 3항에 명시된 대로, 명문화된 법률에 따라, 타인의 권리나 명예, 또는 국가안보, 공공질서 등을 위해서만 제한될 수 있고, 이때도 필요성, 비례성의 원칙에 부합하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4항은 이와 같은 국제적 인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이들 두 단체의 평가이다.
먼저, 아티클19는 이번 헌법소원 사례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 행사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지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제기를 한다고 보았다. 아티클19에 따르면, 사생활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라 둘 중 하나에 대한 침해는 나머지 다른 하나에 대한 침해의 원인이며 결과이다.
아티클19의 진단은, 한국이 가입하고 있는 시민,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과 세계인권선언(19조), 유럽인권협약 등 세계 각 지역의 인권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 기준을 적용하면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3항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구체적으로, ▶법률 문구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해당국가기관이 마음대로 광범위한 사용자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는 점, ▶ 이 조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위해’라는 문구 등은 지나치게 넓고 명확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며 자유권규약 19조3항이 요구하는 법률의 합목적성, 필요성 및 비례성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제83조 4항에서 ‘긴급한 사유’가 있을 시에는 서면요청 조차 무시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때의 ‘긴급사유’ 와 같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단어의 선택도 자유권 규약 제19조 3항에서 요구하는 필요성, 비례성의 요구를 준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4항은 사생활의 권리도 침해한다고 보았다. 세계인권선언 12조, 유엔 자유권 규약 17조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보장되는 사생활의 자유를 제한할 때도 자유권 규약 제19조에서 요구하는 합목적성, 비례성, 과잉금지원칙 등을 준수해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4항은 ▶ 정보 수집 절차에서 영장이 필요하지 않고, ▶ 정보제공 여부에 대해 정보주체에 통지 규정이 없어, 이와 같이 국제법에서 요구하는 필요성과 비례성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 자유권 위원회도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4항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은 특히 익명표현의 자유가 사생활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미치는 중요성에 천착하여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4항이 한국인의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의견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은, ▶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가입자 정보를 정부기관의 서면 한 장에 넘길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하고 있고, ▶ 이로써 사업자들이 개인식별 정보를 다른 인적 자료와 함께 묶을 수 있어, 익명성과 익명표현을 위태롭게 하여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익명성은 개인이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적 행위를 경감하거나 피하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이다. 익명성은 국가기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받는 권리를 향유하게 하는 수단으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데 중요한 안전망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편 인터넷의 출현과 현대기술이 가져온 소통방법의 변화는 익명성과 익명 표현의 자유를 위협해 왔다. 인터넷은 사람들의 소통방법뿐 아니라, 소통빈도와 개인정보 커뮤니케이션의 양적 증가도 가져왔다. 디지털화된 세계에서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정보가 가입자 정보와 결합되어 한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식별하는 것을 더욱 쉽게 만든다. 이에 국제법 전문가들을 비롯해 프랭크 라뤼 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및 데이빗 케이 현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 간의 상호연결성을 강조하며 익명성을 지지해 왔다. 그리고 익명성을 침해하는 요소 역시 적법성, 필요성, 과잉금지 원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보다 앞서 이미 유엔 자유권 위원회와 프랭크 라뤼 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정부에 ▶정부기관이 가입자정보를 요청할 때는 법원이나 독립된 행정조직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 하며, ▶정보주체에 통지 의무를 부과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은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4항이 한국이 준수의무가 있는 이 같은 국제인권법과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아티클19은 ‘우리나라의 통신자료제공에 영장 등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져서 비례성이 없다'는 점을,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은 ‘익명권도 다른 프라이버시권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단 1명에 대해 이루어지더라도) 영장처럼 법원이나 다른 독립조직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정보,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무단 수집에 항의하는 피해자 500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한 헌법소원은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이다. 헌법소원 사건 대리인단은 오늘 이들 두 단체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아티클19,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과 같은 대표적 국제인권기구들이 헌법재판소에 직접 의견서를 내면서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제4항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권기준을 침해한다는 점을 입모아 지적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헌재도 이러한 국제적 관심과 우려를 깊이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 붙임자료
1.아티클19 의견서-국문
2.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 의견서_국문
3.아티클19 의견서_영문
4.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 의견서_영문

책사이다 10회 / 선거와 민주주의, 그리고 선택
책사이다 4월의 주제는 '선거'입니다. 4월의 주제책 《신호와 소음》은 통계학을 기반으로 잘못된 정보를 거리고 의미있는 정보를 찾을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고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는 '민주주의=선거'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메이징 데모크라시》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현된 민주주의 탄생 과정을 담은 그래픽 노블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20일 정도 남은 지금 출연진들이 선정한 책을 통해 '선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s://goo.gl/gHhSkT (팟빵에서 듣기)
4월의 주제 [선거] 관련 추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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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판책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지켜줘야 할 존재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처럼 생각한다. 촛불집회에 나가다 보면 ‘기특하다’, ‘대단하다’, ‘청소년이 미래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을 많이 본다. 칭찬하시려는 의도는 감사하지만,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또 ‘집회 참여도 하지만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그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집회 참여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물론 공부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 중요한’ 공부를 하지 않고 왜 거리에 나왔는지 알아주셨으면 한다. 우리는 청소년의 정체성과 평가의 잣대가 ‘공부’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청소년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를 받지 못했다. 참정권, 즉 선거권이 없는 데다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청소년도 우리 사회의 정치 주체
2016년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개인적 그리고 조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알리면서 ‘촛불집회의 주역’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집회에 참여하신 어른들은 우리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셨다. 청소년들은 비상시국에서 진행하는 집회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 단체끼리 연합하여 스스로 집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의견을 더욱 많이 알리려 노력했다. 이는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으며, 시민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런 활동은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하게 이어져 왔고, 청소년도 주체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처럼 청소년도 우리 사회의 정치 주체로 성인 못지않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다. 나의 경우 한 정당의 예비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속한 당은 당원이 될 수 없는 청소년을 위해 예비당원제를 도입하여, 청소년이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대한민국청소년의회는 위원회마다 현직 국회의원 1인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입법청원의 길을 열어두었다. 물론 모든 청소년이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치 참여를 위한 활동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이런 노력에 비해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청소년에게는 선거권이 없을뿐더러, 정치인이 청소년에게 의견을 먼저 물어보는 경우도 거의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 성인들이 짜놓은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활동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정치와 사회 참여 기회를 얻게 된다면, 청소년을 위한 정책도 많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선거연령 하향이 그중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OECD 국가 중 대한민국만 만 19세로 선거연령을 제한하고 있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 확대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보완할 방안 중 하나다. 청소년 국회의원이 청소년을 위한 법 제정을 하고,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하면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만 18세 청소년 참정권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청소년의 의견이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찬영 고등학생
촛불 광장에는 늘 청소년들이 먼저 있었다. 헌법 조문을 외우고,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현실을 정확히 꼬집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18세 선거권이 실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소년들은 광장, 국회, 거리를 다니며 선거권을 외쳤다. 그리고 문제가 선거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질곡 돼 있다는 자괴감을 느꼈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칠 때,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뭣도 모르는 어린 것들’ 혹은 ‘기특한 학생’ 그 어디쯤 있다고 느낀다.
10대는 공부만 하는 존재?
지난해 한국청소년재단과 비영리여론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실시한 청소년 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5.5%가 선거연령 18세 하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보기) 이유로는 ‘정치적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 57.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기 때문’이 29.7%로 뒤를 이었다. 또한, 청소년들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응답이 82% 넘게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이 청소년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92%에 달했다. 청소년과 정치권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18세 선거권 문제만 하더라도, 청소년들은 자신 스스로 사회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치권이나 학교는 이들을 사회적 존재로 보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 청소년들이 광장에서 외치고 실현하려는 것들은 가정이나 학교로 돌아가면 무색해지고 만다. 그들은 여전히 훈육의 대상이다. ‘10대=학생(공부하는 존재)’이라는 강력한 인식의 프레임은 도통 변하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가 들어서고 촛불정국 속에서 선거연령 18세 하향 운동이 진행됐다. 이는 2000년 이후 계속돼 온 청소년 및 시민사회계의 선거연령 하향 운동의 맥락 속에 있다. 만 20세에 머물러 있던 선거연령은 2005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19세로 하향되는 데 그쳤고, 19대 국회 정개특위에서는 정치적 이해득실로 인해 18세 선거연령 인하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
참여민주주의 확대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선거연령 하향의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18세 연령의 독자적 인지능력과 정치 의식 수준 인정, OECD 34개국 중 한국 제외 33개국 선거권 18세 이하, 타 법률과 형평성 문제, 국가인권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18세 선거권 확대 공식 표명, 민주주의 선거권 확대의 타당성 등… 이러한 당위에도 불구하고, 선거연령 인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표 의견은 청소년의 미성숙이다. 공부해야 할 나이인 청소년들이 부모나 교사에 의해 정치적으로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 라면, 청소년은 18살에서 19살이 되면서 1년 사이에 미성숙이 성숙이 되고 어떤 연습 없이 교육대상에서 정치 주체가 되는 절대적 분리를 극복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보이지 않는 경로를 통해 스스로 성장해 왔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 사진출처 : 18세선거권국민연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hopevote18)
18세 선거권 운동은, 자발적인 청소년 당사자 운동과 함께 18세선거권국민연대, 18세선거권공동행동네트워크, 한국YMCA전국연맹 등이 활동을 주도해왔다. 20대 국회 개회 이후에는 선거 연령을 18세로 하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법안 발의, 피선거권 하향 조정 및 당원 자격연령 하향 등의 법안발의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16년 하반기부터 토론회, 캠페인, 축제 등 청소년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18세 선거권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대국민 캠페인, 국회 선거법 개정 청원 등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됐다. 2016년 11월에는 국회의원실에 18세 선거연령 인하 현판 부착식을 시작했고, 2017년 1월에는 18세 선거권 국민연대 창립, 대선 후보자 간담회, 정세균 국회의장 및 3당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18세 선거권 보장을 위한 국민대회 및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또한 2017년 2월까지 ‘18세 선거연령 인하 선거법 개정 통과 촉구’ 국회 릴레이 피켓시위와 기자회견 등이 계속 이어졌다.
학교가 정치 참여의 공론장 되어야
2017년 2월부터는 청소년 참여권 보장을 위한 연속토론회 ‘청소년 참여를 허하라!’(관련내용 보기), 2017년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 18세 참정권 확보 특별위원회가 주관한 5개 정당 청년당원 초청토론회 ‘18세 참정권 확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에서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실제로 반영하는 기구나 조직,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덧붙여 18세 선거권뿐만 아니라 피선거권을 포함한 참정권 확대 논의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또한 청소년이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운동본부를 출범시키고, 전국 청소년 선거인단 20만 명을 모집하여 모의투표 진행을 계획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이 좌절되면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18세 선거권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는 더 큰 참정권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장에 모인 청소년들의 모습은, 더는 미성숙을 이유로 그들을 학교와 교과서 안에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떤 이는 청소년의 사회참여 혹은 참정권을 위해 그들의 일상인 비인권적인 학교 현실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을 더 이야기해야 한다. 18세 투표가 학교에서 참여와 학생 인권 실현의 가장 크고 의미 있는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투표를 이야기하고, 후보를 평가하고,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정책과 공약을 논할 때야 비로소 학교가 정치 참여의 공론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확보된 권리를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학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그 자체가 민주시민교육과 체험의 장이 되는 것이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시작으로 그들을 문제나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온전히 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월호 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이야기한다. 그만 미안해하고, 그냥 기회와 권리라도 달라고…….
– 글 : 하성민 홍은청소년문화의집 관장·한국청소년재단 이사
* 기자회견 후 검찰청에 촉구서한 전달

박상훈의 민주주의 교실
> 정당은 왜 현대 민주주의의 중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
> 2번의 선거와 촛불집회를 거치며 만들어진 다당체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정당들의 연정은 무엇을 의미하고 또 어떻게 가능한가
> 좋은 정치를 위해 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
* 이 프로그램은 <정당의 발견>을 교재로 하여 강독과 토론을 통해 진행됩니다.
<프로그램 안내>
일 시 | 5월 22일~6월 19일(매주 월) 오후 7:00
장 소 | 정치발전소
정 원 | 15명
교 재 | 정당의 발견(후마니타스)
수강신청 | http://bit.ly/정당의발견
참 가 비 | 10만원(비회원 15만원)
입금계좌 | 1005-702-851358 우리은행 정치발전소
<커리큘럼>
| 날짜 | 제목 | 교재 |
| 1강(5.22) | 정치와 정당, 그리고 민주주의 | 1, 2부 |
| 2강(5.29) | 정당정치의 형성과 그에 대한 도전 | 3부, 4부 |
| 3강(6.05) | 정당의 민주적 기능과 역할 | 5부 |
| 4강(6.12) | 정당 조직과 체계의 변화 | 6부 |
| 5강(6.19) | 정당정치를 좋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 7부, 에필로그 |

박상훈 학교장님의 새 저서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가 출간되었습니다.
지난 해 겨울에 진행된 동명의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시민을 위한 정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좋은 정치에 대해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추천기사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추천기사 : 정치학자 박상훈, 시민을 위한 정치이야기

‘모두를 껴안고 함께 가는 것.’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한살림 생명운동을 그리 말씀하셨지요.
지난겨울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한 촛불광장은 ‘껍데기 민주주의’를 벗겨내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진짜 민주주의!
더 많은, 더 깊은 민주주의를 위한 배움터.
여러분을 한살림고양파주 무위당 학교에 초대합니다.
2. 참가비 : 2만원(411-910004-61304 하나은행 한살림고양파주 / 입금 시 무위당-입금자명 기재)
3. 신청 : 홈페이지 해당 공지 신청란 접수 후 참가비 입금
4. 문의 : 기획홍보팀 031-926-3563
일정 등 자세한 내용은 참가하신 분께 별도 안내드립니다.
2017 무위당학교 참가 신청하기
정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거 시기가 되면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로부터 종종 안부 확인을 겸한 선거의 전망을 묻는 전화를 받곤 한다. 며칠 전에도 친구로부터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전화를 받았다. 긴 수다 끝에 친구가 물었다. “근데 왜 이번 대선은 12월이 아니라 5월에 하지?”,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중년의 건망증이라고 서로 웃어넘기긴 했지만, 통화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질문이 영 생뚱맞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잊은 채, 선거판의 정글에 빠져들어 길을 잃고 있는 것이 단순한 건망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아닌, 곧바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제1시민’ 혹은 ‘시민 중의 시민’을 뽑는 선거 일정이 오늘로써 마무리된다. 승자가 누릴 기쁨의 시간은 짧을 것이다. ‘시민 속’을 누비며 경합해야 했던 대선 후보로서의 지위를 마치자마자, 하루아침에 ‘시민 앞’에 우뚝 선 최고 통치자로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선거 후유증을 다독이며 숨을 돌릴 한동안의 여유가 내일의 대통령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수준의 대통령이라면, 일을 빨리 하는 것을 과시하려는 조급증에 빠지기 쉽다.
크고 빠른 성과에 연연하는 조급함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 모두를 망가뜨린, 일종의 ‘정치적 질병’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조급증은 이번 대통령만의 특별한 위험은 아닌데, 다만 심리적 압박은 어느 대통령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런 압박을 견디지 못한 대통령일수록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이 안 될 때마다 야당이나 반대파들이 협조해 주지 않는 것을 알리바이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청와대와 주변 참모들은 ‘국민과의 대화’나 ‘대국민 홍보 강화’를 빌미로 여론 정치를 확대하려는 충동을 절제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여야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정상적인 정당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태가 신정부에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풍모와 유머, 침착함을 대통령이 잃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상황에서 빠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새 대통령은 앞선 정부에서 임명된 내각과 앞선 대통령의 정책을 위해 마련된 예산을 갖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당 지도부 개편과 내각의 진용을 짜는 일을 서둘러야겠지만, 거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부조직법을 손보고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 일을 하려면 추경 예산도 편성해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 준비도 코앞의 일이다. 보통의 신정부에서보다 훨씬 늦게 시작하는 일정이니 내실을 기하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입법부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야당과의 협의 능력이 중요할 텐데, 이는 집권당 지도부의 유능함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에서 제1의 권력기관은 입법부이며, 대통령도 이를 초월할 권력은 갖지 못한다. 통치 행위는 법에 입각해야 하고 그런 법을 제정하는 입법자에게 시민 주권이 위임되어 있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다. 입법부를 움직이는 것은 시민의 의사를 나눠서 대표하는 정당들이며, 이 가운데 집권당과 내각이 긴밀히 협력해서 정부를 관장하는 것을 ‘책임 정부’라 부른다. 박근혜 정부일 뿐 새누리당 정부가 아니었던 지난 정부에서 책임 정치가 어떻게 실종되는지를 보았듯이, 신정부 역시 정당의 정부가 아니라 특정 대통령 개인의 정부로 불리면 민주정치의 미래는 없다.
입법부와 싸우는 대통령은 최악이다. 안정된 당정 관계를 바탕으로 입법부와의 협력을 도모하고 여야 정치인을 넘나들어 대화를 이끌 수 있는 ‘다정한 자신감’은 민주적 리더십의 핵심 덕목이다.
혹자는 양당제로의 수렴 효과가 큰 대선에서조차 5당 구도가 유지된 만큼, 신정부하에서 다수 야당의 발언권은 강해질 것이라 말한다. 경제와 외교 등 이런저런 상황의 어려움을 들어 ‘신정부 조기 실패’를 예견된 일처럼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간의 활동 가운데 정치만큼 독립 변수로서의 측면이 강한 것은 없다. 객관적인 상황이 좋아서 성공하고 상황이 나빠서 실패했다는 인과론이 적어도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치의 역할에 따라 나쁜 상황에서도 성공하고 좋은 상황인데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훨씬 더 가깝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셰리 버먼 교수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한 ‘정치가 우선한다’는 테제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닐 수 없다. 주권이라고 하는 절대적 권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창의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단연코 정치의 역할이다.
민주정치의 이상은 ‘숙고된 결정’과 ‘합의적 변화’에 있는데, 이는 통치자의 자신감이 침착하고 다정한 리더십으로 실현될 때만 가능하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일주일, 사방이 소란하다. 벌써부터 어떤 단체들은 지난 정부가 결정하거나 행한 정책들의 시행을 막기 위해 집회를 열고,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다급한 현안이 조금이라도 더 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반영되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누군가는 조사를 요구하고 누군가는 입법을 요구하고 또 누군가는 이제 갓 일주일 된 정부에 공약을 지키라고 벌써부터 닦달이다.
이런 소란함이 불편한가? 두 가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렇다’는 답이 들려온다. 한 방향의 대답은 이른바 ‘너무 많은 민주주의’가 가져올 사회 혼란에 대한 우려다.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워 너도나도 자기 할 말만 하면 사회가 무질서와 혼란에 빠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니 선장이 이끄는 대로 질서정연하게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집권 정부는 이러한 사회 혼란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면 안 되고 공권력을 엄정히 세워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렇다. 우리 사회는 조용한 민주주의, 질서 잡힌 민주주의, 지도자와 여론 주도층이 이끄는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너무도 오랫동안 들어왔고 친숙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방향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새 정부가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서 들려온다. 이제 일주일 된 정부에게 해도 너무한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금방이라도 천지개벽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온갖 요구를 해대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다. 새 정부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사회적 요구들이 등장하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소 성급해 보이는 이익집단이나 이해당사자들의 요구가 혹시라도 새 정부의 반대파들한테 빌미를 줄까 걱정하며 마음을 졸인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이전에 한 명의 대통령을 안타깝게 잃었다. 그의 죽음 이후 많은 이들은 ‘지못미’의 부채를 짊어졌고, 5월9일 새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여기저기서 그런 비운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절실한 다짐들이 있었음을 안다.
그런데 그사이 우리 민주주의도 나이를 먹었고, 우리 사회는 지난가을 이래 닥친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낸 경험을 쌓았다.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절실함을 간직하면서도 정치공동체의 어려움을 함께 넘어선 값진 기억을 공유했다. 광장에서 우리는 평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동료 시민들의 다양한 절규들을 마주했고, 다소 불편하거나 동의할 수 없더라도 인내하며 서로를 북돋워주었다. 광장의 소란함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듯이 그렇게 일상의 소란함도 인내할 여유를 가져보자.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거리로 나서거나 마이크를 잡는 이들이, 새 대통령을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 줄 메시아나 슈퍼맨쯤으로 여겨서 그런 것은 아닐 터다. 누군가는 너무 절실해서, 누군가는 기다림에 지쳐서, 또 누군가는 이 정부에서조차 또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릴까 봐 두려워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새 정부를 위험하게 하는 건 이해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아닐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이 가만히 있도록 강요받았던 정치, 이해당사자들이 자기 요구를 하면 집단이기주의가 되고 불온한 이념에 선동당한 어리석은 대중으로 매도되었던 그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것이다. 누구든 필요하면 언제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런 정도의 소란함은 일상의 여유로 받아넘겨 줄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 민주정치가 자리잡아가지 않겠는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5153.html?_fr=mt5#csidx81408cf0e8a128aba41bca494dd8c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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