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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째 ‘지혜의 기둥’, 김재형 신임 대법관 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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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째 ‘지혜의 기둥’, 김재형 신임 대법관 후보자

익명 (미확인) | 금, 2016/08/05- 14:57

“대법관은 임명된 날 하루만 즐겁고, 남은 임기는 내내 더없이 괴롭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 하루의 즐거움이 6년의 고달픔을 이겨내게 해 주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들 대법관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재임 시절 선고한 판결을 되돌아본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법원은 수도원이나 절간에 비유되기도 한다. 6년 동안 대법원에 감금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 대법관은 하루 종일 자료에 치이면서 끊임없이 사건기록을 읽고 동료 법관들과 토론하고 판결문을 써야 한다. 해마다 안경의 도수를 높이는 것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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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이인복 대법관이 물러나는 것에 맞춰 신임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됐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8월 중순 열릴 예정이다. (사진 출처: http://www.urimal.org/775)

민법 이론과 실무 겸비

그 고달픔 혹은 영광의 대열에 곧 합류할 신임 대법관 후보자가 최근 발표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는 9월1일에 퇴임하는 이인복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1)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대법원은 임명 제청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법 권위자이면서 학자로서는 흔치 않게 실무경력도 갖춘 법조인이다. 수많은 연구 논문 등을 발표해 한국 법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면 오는 9월2일 대법관으로 6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이름까지는 알아도 대법원장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대법관은 일반 시민들에게 낯설다. 법조 출입기자나 일선의 판사들조차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전부의 이름을 대 보라고 하면 얼마나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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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 14명 전원이 참석한 기념사진. 2013년 당시의 구성.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소극적인 권력기관이지만, 사법부의 결정에 따라 정책의 큰 물줄기가 바뀌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다른 두 기관에 못지 않다. (사진 출처: http://blog.ohmynews.com/jeongwh59/tag/%EC%A1%B0%EB%AC%B4%EC%A0%9C%20%E…)

대법원이 대통령이나 국회에 비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적은 것도 아니다. 변호사가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게 하거나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대법원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결정적 증거자료를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으면서 많은 이들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도 대법원이다.

어떤 때는 진보적인 한 걸음을 내딛다가도 어떤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뛰어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검찰과 달리 대법원장을 필두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보긴 어렵다. “대법원은 단일체가 아니다. 12명의 대법관(일상적 판결에 참여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행정을 맡는 법원행정처장 제외)들이 투쟁하는 사상과 이론의 전쟁터다.”

두 번째 교수 출신 대법관 후보…”부인과 법 토론할 때 가장 행복”

대법원 판결의 99.9%를 차지하는 소부(대법관 4명) 판결은 4명의 전원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소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거나 사회적 의미가 있는 판결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전원합의체로 가져가는데 여기서도 다수 의견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법관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을 고치고 또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법관 한 명 한 명의 이력과 성향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김재형 후보자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명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18기)을 거쳐 공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1992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1994년 서울민사지법 등에서 판사로 재직하다 3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짧은 법관 이력 중에 ‘칵테일사랑’이란 노래의 코러스 편곡자에게 2차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이 코러스 편곡자의 변호인이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였다. 1995년부터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로 돌아가 지금까지 학자의 길을 걸으며 법학도들을 양성해 왔다. 김 후보자의 부인은 지난 2월 사직한 전현정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9)이기도 하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양창수 전 대법관에 이어 교수 출신으로서는 두 번째 대법관이 된다. 2014년 양 전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교수 출신 대법관은 2년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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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퇴임한 양창수 전 대법관.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대법관으로 임명됨으로써 최초의 학자 출신 대법관이 됐다. 학계와 실무에서 ‘민법의 대가’로 꼽혔다. 현재 한양대 로스쿨 교수로 있다.

이전부터 김 후보자는 한국 민사법 분야의 권위자로 꼽혀 왔다. 민법론, 민법총칙 등 다양한 민사법 전공서적을 저술했다. 학계 출신 대법관이 다시 한 번 나온다면 ‘0순위’로 꼽힐 정도로 꾸준히 대법관 후보로도 거명돼왔다. 2011년에는 법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평가는 이렇다. “민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도산법·비교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활동과 실무계에서의 활발한 참여와 활동을 통해 학계와 실무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김 후보자의 학구적 면모는 주변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평소 제자들에게 하루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밤에 잠들기 전에 부인과 법 토론을 할 때라고 밝혀왔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도 강의를 계속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좋은 편이다. 수업 스터디 모임이 팬클럽처럼 발전되기도 할 정도라고 한다. 김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제청 소식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언론보도를 검색해보면 김 후보자는 외부활동이나 방송출연, 언론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도 극히 일부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1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EBS 뉴스 인터뷰에서 법인 이사회의 과도한 권한을 경계하는 취지로 “평의원회의 기능이라든지, 권한을 강화해서 이사회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밝혔다.

또 지난 5월 KBS 인터뷰에서 한자표기를 줄이고 알기 쉽게 풀어 쓴 민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될 위기에 놓인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민법은) 기본적인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입니다. 국민들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수일지, 진보일지….평가 엇갈려

어떻게 보면 다소 ‘진보 성향’으로 비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김 후보자는 과거 대체복무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출간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책에 실린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강제는 양심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여야 한다. 국민의 평등한 공적 부담의 원칙은 병역거부자에게 그 부담 정도가 병역의무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을 헌법불합치 결정해야 한다.”

이 논문 중에서 김 교수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대해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1980년대의 정치상황은 양심범, 정치범을 양산했다”고 평가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1980년 후반에는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 반통일 악법에 대한 개정 또는 폐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매우 고무적 현상”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처음 임명제청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대법원이 너무 보수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더 다양한 배경과 출신의 대법관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결국 새로 임명제청된 대법관 역시 ‘50대, 남성, 서울대’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임 이인복 대법관이 상대적으로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온 ‘진보성향’으로 분류됐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 후보자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반대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려는 더 커졌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파렴치한 기업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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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 6월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옥시 재발방지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0077282).

그는 2012년 펴낸 <언론과 인격권>에 수록된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손해배상은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과도한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것은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는 불법행위를 처벌하려고 민사책임을 이용하는 것은 법의 발전이 아니라 퇴보라고 본다고도 밝혔다. 형사처벌은 법률에 따라 이뤄지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법관의 ‘재량’에 따라 행사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논란이 일자 김 후보자는 “논문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부분은 신중히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의 ‘보수 성향’에 대한 우려가 기우라는 시각도 있다. 동료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 후보자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문을 언급하며 이렇게 밝혔다.

“김 교수가 보수적이라고 세평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다. 사고의 폭도 넓고 개방적이다. 꼴통보수적인 의견을 그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 민법을 기초로 한 토대 위에서 개방적 판례를 기대한다.”

이번에도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다양성 아쉬워

출신이나 배경을 가지고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가늠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 있다.

헌정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박보영 대법관은 호남 출신, 한양대 졸업, 이혼 경력, 현직 판사가 아닌 변호사 등의 이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많은 언론은 박 대법관이 ‘소수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진보적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 해고무효 사건에서 복직을 결정한 항소심을 뒤집었다. 재일동포 3세 정영환씨가 제기한 입국 거부 취소 소송도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 대법관뿐만 아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자 서울이 아닌 지방법원 경력만 있던 김신 대법관 역시 기대를 받았지만 대부분 다수의견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돼 이른바 진보대법관으로 불렸던 ‘독수리 5형제’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주류 중의 주류 출신이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사람이 4명, 서울대 법대 출신이 4명, 법관 경력뿐인 사람이 4명, 재판연구관 출신이 4명이다. 이런 조합은 “법원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최고급 엘리트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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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 대법관 구성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좀 더 다양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기대한다면 진짜 문제는 선출 방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선정한다. 후보추천위는 모두 10명인데 사실상 과반수가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추천위에 참석하는 법원행정처장을 통해 대법원장의 의사가, 법무부 장관을 통해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대법원장이 연수원 몇 기 이상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구체적 의견을 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검토 대상에 오른 이번 대법관 후보 역시 34명 중 33명이 남자, 1명이 여자였으며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의 50대 후반 법원장급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법원조직법 자체가 대법관의 자격을 만 45세 이상에, 20년 이상을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교수나 공공기관 종사자를 임명할 수 있지만 변호사 자격은 필수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대법관 자리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남성’이 독점해 왔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대법관 85명 중 95%가 남성, 75%가 서울대 법대 출신, 89%가 판사 출신이었다.

“양심을 따랐다면, 기존 판례 존중해야”

“헌법의 미학은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김영란 대법관은 앞서 책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해 방한 강연회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다수결의 원리를 토대로 한 기관인 국회나 행정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의무가 사법부에 부여되어 있다는 자각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발전하고 진화하는 헌법의 미학은 존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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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9인 전원 사진. 미국에서는 이들을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스칼리에 대법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후임 대법관을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우위 의회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어떤 인물을 대법관으로 뽑는지가 커다란 정치적 쟁점이 되곤 한다. (사진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21473981)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지만, 입법부의 입법 취지와 달리 해석해야 할 때도 있고 입법부의 부족하고 모자란 지점을 법 해석으로 메꿔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오랫동안 당사자들을 고통 받게 했지만 워낙 소수인 나머지 그들을 대변해 입법안을 제출해 줄 국회의원이 없었다. 정작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1997년 헌법재판소였다. 그러고도 법이 개정된 것은 8년이나 지난 2005년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자의 10년 전 발언은 곱씹어 볼만하다. 그는 이번에 자신을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2005년 대법관으로 지명될 당시 열렸던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양승태 후보자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너무 소수라는 게 단점이 아닌가”라는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기존 판례를 따르는 태도는 존중돼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교수’ 출신이었던 양창수 전 대법관은 민감한 사건에 대해 신중함을 넘어서 정치적으로 보일 만큼 사건 판단을 너무 미룬 탓에 사건 당사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김재형 대법관’에게 바라는 것도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협애한 시각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 터다. 그저 지금, 2016년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주기만 바랄 뿐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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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광장에서 나온 ‘이게 나라냐?’라는 질책은 국가와 국정의 총체적 변화를 바라는 강력한 요구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지향은 우선 시민사회 여러 분야에서 광범하게 제기된 개혁입법요구로 나타났고, 야당들 역시 최소한 겉모습으로는 이를 적극 수용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제스처와 실제는 크게 다르다. 탄핵 선고가 난 3월 10일까지 실제로 국회에 본회의에서 통과된 개혁 법안은 사실상 전무했다. 입법안들이 탄탄하게 준비되어 잘 올라오지도 않고 있고,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입법안과 같은 간단한 원포인트 변경 사항도 상임위 합의라는 입법과정의 첫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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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재의 판결에 시민들이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이 탄핵을 밀어붙였으나, 그 이후 개혁법안 등은 지지부진하다.

개혁에 저항하는 원내 수구파의 문제만으로 다 이해될 일은 아니다. 야당들 역시 개혁법안보다는 대선에 관심이 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과연 대선이 끝나면 그 동안 제기되어 온 개혁법안들을 국회가 확실하게 입법화시켜줄 수 있을 것인지도 매우 불확실하다.

촛불 이후…국민 빠진 개헌 논의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에서 그나마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신년 들어 구성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였다. 개헌특위의 구성은 1987년 이래 30년만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회 밖에서 이번 개헌특위를 바라보는 눈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 우선 과거 87년의 개헌이 당시 개헌특위 여야의원 8인의 밀실타협으로 졸속 마무리된 것에 대한 비판과 자성(自省)이 강하다. 당시에는 ‘대통령 직선제’ 하나로 타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2016-2017 촛불혁명이 바라는 개헌은 국민의 기본권이 대폭 강화되는 개헌이자, 개헌과정에 적극적인 국민참여가 보장되는 총체적 개헌이다.

과연 국회나 개헌특위가 이러한 여망을 잘 반영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촛불혁명의 총체적 요구를 담아주어야 할 개헌 논의에 막상 국민들 자신은 쏙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개헌특위의 주요논의는 여전히 밀실에서 진행되고 자문위의 논의조차 언론에 충분히 공개되지 못했다. 개혁법안들의 경우에는 각계 시민사회의 요구를 어쨌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야당들도 개헌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을 논의과정에 참여시키는 적극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주요 대선 예비주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던 중 3월 15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모여 3월 말까지 단일 개헌안을 발의하고 본회의 가결을 거쳐 대선과 개헌안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민사회의 우려를 크게 증폭시키고 있다. 87년과 같은 또 하나의 밀실야합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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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대선전 개헌’을 합의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 저의도 순수치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쿠타데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더욱이 그 3당중 최대의석 정당인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구체제를 여전히 옹위하고 있는 적폐청산 대상의 정당인데, 그러한 정당이 대통령이 탄핵된 마당에 개헌을 주도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개혁법안 합의 처리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정당과 의원들일수록 개헌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조속한 합의처리를 주장해왔다는 사실이다. 거의 정확한 역비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식의 자기들만의 조기개헌론은 촛불 민의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 여러 보도가 지적하듯 대선에서 유력 야권 후보에 맞서기 위한 정략적 이합집산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이 합의하자는 개헌안도 국회의원의 자기기득권 확대에만 치중한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대선 전 조기개헌이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원내 제1당인 민주당 그리고 정의당이 동의하지 않고, 국민의당 내부에도 회의적인 의견이 많으며, 무엇보다 우선 시민사회에서 이렇듯 수상한 개헌론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이다. 그래서 그 실제 목표는 개헌이 아니라 실은 대선용 세 결집, 즉 서동격서의 전술로 비쳐진다. 그러나 대선 전 개헌이 이렇듯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여, 과연 대선이 끝나고 나면 국회가 국민이 원하는 제대로 된 개헌안을 만들어내고 여기서 2/3 이상의 개헌선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한 전망 역시 매우 불투명하다.

개헌안 심의 시민회의의 필요성

제대로 된 개헌과정이란 어떤 것일까? 우선 현재 이 나라에 꼭 필요한 개헌 조항들이 공정하고 충분한 심의를 통해 선별·확정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정리된 최종 개헌안이 압도적인 초다수의 합의에 이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선 전이든 대선 후든, 현재의 국회에서 그러한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몇 유력 대선주자들이 대선 전 개헌의 불가능함을 지적하고 내년 지방선거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뜻이 현재의 국회만으로 그 목표를 이루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그 약속의 신빙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정 국민이 바라는 개헌안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합의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의식해서인지 같은 대선주자들은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또는 ‘국민 공론수렴을 통한 개헌’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필자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또는 ‘국민의 공론수렴을 통한 개헌’의 가장 효과적이고, 공정하며, 중립적인 방법으로서 ‘개헌안 심의를 위한 시민의회 소집’을 제안한다.

‘시민의회(the Citizens Assembly)’는 필자가 200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서 빈발했던 대형 사회갈등을 보면서 그 해결방안으로 제안해 온 것이다.

당시 사회갈등이 심각했던 의약분업이나 새만금개발문제에 대해 정부와 국회는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슈들에 관해 적정수의 시민의원을 무작위 선발하여 공정한 조건에서 논의하게 하면 다수의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안정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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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시민의회 모습. 아일랜드는 시민의회를 통해 ‘유럽에게 가장 혁신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irishtimes.com)

이후 캐나다, 네덜란드에서 필자가 구상했던 것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선거법 개정을 논의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에서 시민의회가 2016년 10월, 1년 기한으로 소집되어 헌법의 몇 개 조항 수정을 논의 중이다. 이곳에서는 2012-2013년에도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헌법의 몇 조항을 수정한 바 있다. 따라서 이제 ‘시민의회’는 더 이상 이론적 구상이 아니고, 이미 현실에서 여러 차례 실행되고 검증된 바 있는 기존제도의 하나다.

시민의회는 심의…국회는 의결

‘시민의회’를 처음 듣는 일반인들이 보통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회와 시민의회의 관계다.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국회를 대체하는 시민의회’가 아니라 ‘국회를 보완하는 시민의회’다.

실제 외국에서 소집된 시민의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의회는 선거법이나 헌법조항 수정을 최적의 조건에서 논의하여 합의를 이루어주는 단위이지, 그렇게 도달한 합의 내용을 직접 입법화하는 단위는 아니다.

시민의회에서 합의된 내용은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어 심의와 표결 절차를 거쳐 입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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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아일랜드 내각은 시민의회가 심의한 낙태안 등을 최종 승인했다. (http://www.newstalk.com/)

그 동안 시민의회에서 논의된 선거법개정과 개헌문제는 모두 의회 내에서는 원만한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문제들이었다. 문제는 제기되는 데 의회에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은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조직들과 진취적인 정당들이 이러한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동력을 입법과정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시민의회의 소집으로 이어졌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 동안 시민의회는 총선에서 시민의회 소집을 공약한 정당이 선거에 이겨 집권당이 되었을 때 그 공약을 이행하여 소집하는 경로를 밟아 출범하였다. 정당과 의회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정당과 의회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민의의 제도화 통로를 확장하는 윈-윈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의 개헌 시민의회 소집 역시 마찬가지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조만간 확정될 각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국민 참여를 통한 개헌’, ‘국민 공론수렴을 통한 개헌’의 구체적 방법으로서 ‘시민의회 소집을 통한 개헌’을 공약하고 그 공약 사항을 당선 이후 실행하는 경로다.

대선 일자가 2017년 5월 9일로 확정되었으니 이미 제안된 개헌안 국민투표일인 내년 지방선거일(2018년 6월)까지 1년여의 시간이 있다.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개헌안을 논의하기에 적절한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대선주자, ‘시민의회 소집’ 공약 제시하라  

대선 전 졸속 개헌론은 물론 망발이지만, 대선 후 개헌 역시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대선 전 개헌론자들은 역으로 대선이 끝나고 나면 개헌은 오히려 정말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해왔다. 대선에서 승리한 새 대통령이 개헌을 하려고 할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억지 논리의 성격이 짙다.

개혁적 후보가 당선되면 개혁의 지속을 위해 오히려 개헌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다. 진정한 문제는 대선 후가 되면 개헌 논의가 과연 국회 안에서 안정된 합의에 이룰 수 있겠느냐이다.

결국 국회에만 개헌을 맡길 것이라면, 사람은 똑 같은 데, 대선 후라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지금 대선 전 조기개헌을 주장하는 세력이 그때 가면 거꾸로 개혁 개헌안 합의를 비토하는 세력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대선 후 개헌을 약속해온 정당과 대선 주자들이 이렇듯 뻔히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 뾰족한 해법을 내놓았던 것도 아니다. 지금 하지 말고 대선 후에 하자는 말만 있었지, 반드시 개헌을 성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바 없다. 그렇다보니, 결국 말뿐이고 실은 개헌 의지가 전혀 없으며, 속셈은 대선 이기면 그만이라는, 밑도 끝도 없이 제기되는 갖가지 의혹과 비난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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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 대선후보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시점은 내년 지방선거이다. 오는 5월 대선부터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시민의회 등을 통해 치열한 개헌 논의를 거쳐야 한다.

‘대선 후 개헌’을 약속해 온 정당과 대선후보들은 이러한 의혹을 확실히 불식시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선 후 개헌의 약속이 결코 마음에도 없는 말, 또 다른 국민 기만용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대선 후 개헌을 실제로 가능하게 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민의회를 소집하는 길이다. 그러한 경로를 통해서만 현재의 개헌 논의는 안정된 초다수에 이를 수 있다.

또한 현재 시민의회 소집이 현실화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유력 대선 후보들이 ‘시민의회 소집을 통한 개헌’을 국민 앞에 분명히 약속하는 것이다.

왜, 어떻게, 시민의회가 개헌을 확실하게 담보해줄 수 있다는 것인가? 시민의회의 구체적 작동 방식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시민회의, 어떻게 운영되나

먼저 시민의회는 어떤 개헌안을 놓고 심의하게 될까.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의원들이 백지 위에서 스스로 개헌조항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시민의회에 대한 여러 오해 중 하나다).

시민의회란 의견이 갈리고 있는 사안에 대해 각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 받은 후 시민의원들 간의 충분한 토론을 통해 점차적으로 합의에 도달하는 합의기구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에서 시민의회가 소집된다고 가정한다면 현재 소집되어 활동 중인 국회 개헌특위는 시민의회에 개진하게 될 개헌안들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개헌특위와 개헌특위가 선정한 자문위는 2개 분과 6개 소위로 나뉘어 개정 대상인 헌법의 각 분야를 검토해 왔다. 주요 개헌사항은 통해 기본적인 골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 개헌 특위와 자문위의 각 분과 및 소위 논의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개헌안은 몇 개의 안이 병립하게 된다.

이렇듯 병립하는 안들이 시민의회에 개진되어 경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회가 소집되는 상항에서도 개헌특위, 자문위 그리고 국회전체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시민의회가 심의과정에서 고려할 개헌안이 국회에서 제출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 동안의 사례들에서도 의회의 의견들이 중요하게 청취되지만 시민사회 주요 의견집단과 관련 전문가들 역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회기 중 시민의회 홈페이지에 시민들의 의견제시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촛불혁명을 배경으로 소집될 한국의 시민의회는 기존의 모든 외국 사례들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강한 시민참여와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기존 시민의회에서 보여준 합의수준은 매우 높다. 2/3를 훌쩍 넘어 보통 4/5 이상의 초다수(super majority) 합의를 이룬다. 시민의회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렇듯 안정된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

심의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진정한 심의(deliberation)는 ‘선호변경(preference change)’이 가능할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심의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편이 갈라진 상태에서 서로 지지 않으려고 하는 토론에서는 이러한 선호변경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국회의 쟁점토론이 대부분 그러하고, TV의 시사토론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거꾸로 시민의회에서는 토론이 진행될수록 선호변경이 오히려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기존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심의를 통한 선호변경…폭넓은 합의에 도달

그것이 가능한 것은 시민의원의 선발원리(무작위 선발) 자체가 미리 결정되어 있는 입장이나 소속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선거와 원리상 반대다. 선거는 통상 피선거대상이 어떤 특정한 정당이나 조직의 소속이거나, 또는 특정한 입장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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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는 어떻게 사람들의 선호를 바꾸는가?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살인사건의 배심원으로 선정된 12명의 사람들은 객관적 증거 제시와 토론을 거치면서 차례차례 자신의 의견을 바꿔 결국 만장일치로 살인혐의자인 흑인에게 무죄를 평결한다. 사진은 ’12명의 성난사람들’의 한 장면.

반면 무작위 선발에서는 그러한 전제를 지운다. 특정 사안에 연관된 특정 소속이나 위치에 묶여있지 않을 때 일반인이 해당 사안에 대해 갖게 되는 견해와 입장이란 느슨한 느낌 또는 판단 이전의 유동적인 의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공정한 토론이 보장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숙고된 판단 이전의 초벌적 견해인 것이다. 시민의회에 추첨 선발되어 모인 일반시민들은 자신만 아니라 모두가 그러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의견이 자신과 다를 때 오히려 이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주의 깊게 듣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민의회의 논의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상황은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정의의 원칙’을 도출할 때 설정했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그는 이 상황을 각 개인이 자신의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귀속(歸屬)을 모르고 있다는 가정 위에서 합리적 판단을 모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귀속조건에 괄호를 치고 공적 논의에 임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롤스의 저작들에서는 이러한 가설적 상황이 어떻게 현실화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 언급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시행된 시민의회의 논의과정에서 그와 매우 흡사한 토론 상황이 구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선호변경이 이루어지는 토론과정을 통해 시민의회는 안정된 초다수에 도달하게 되며, 이 점이 시민의회의 큰 강점이다.

이번 대선 이후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개헌안을 논의하게 된다면 공중(公衆)의 관심은 대단히 클 것이고, 여러 지상파, 종편, 인터넷 미디어가 이를 중계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공개된 과정을 통해 높은 관심 속에서 도달한 시민의회의 초다수 결정을 국회에서 부결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이 안에 반대했을 때 져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9일의 국회 탄핵 가결과 유사한 표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국회에서 가결된 헌법개정안을 최종적으로 내년 지방의회 선거 때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면 된다.

국회에서 가결된 개헌안은 국민적 환영을 받을 것이고, 개헌안 국민투표는 축제적 분위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월, 2017/03/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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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차기 정권은 수개월 간 이어진 중국의 노골적 경제 압력에 시달리다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를 뒤로 미루며 중국의 더 많은 괴롭힘을 받게 될 지 모른다. 

물론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결정과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이어지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사드를 배치해서 이미 긴장감이 팽배한 상태에서 양자 및 지역적 긴장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두 시나리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정책적으로 손발이 묶이고, 차기 대통령이 마땅히 가져야 할 정책적 유연성과 기회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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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19일 틸러슨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은 미중간 사드 갈등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한국은 한반도, 나아가 지역의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협력을 이어가야 할 강대국 중 하나와 관계가 틀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드,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

그러나 차기 대통령은 양자택일만 강요하는 ‘홉슨의 선택’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최근 한국은 한국만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해 새로운 선례를 만들며 전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언론, 통치기관은 국민에게 책임을 보여야 한다는 대중의 의지가 만나 이루어진 시민의 폭넓은 참여와 행동은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를 역사 속 기록으로만 여겼던 한국의 신세대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줬다.

6주 전, 현대 시민의 성숙함을 보여준 시위 참여자의 발언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제 그 사실을 알았으니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고, 이번에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 국민이라면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정치 경험이 적은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 해도 20년의 정치 격변 이후 취임하는 만큼 중국이나 미국, 혹은 탄핵된 전임 대통령의 뜻에 복종하며 차기 행정부를 시작하는 건 허락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하주희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미국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뒤편으로 주한미국대사관이 보이고 있다.
사드 갈등은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핵심과제 중 하나이다. 지난달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민변 소속 한 변호사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드 배치의 일방적 수용과 그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이콧을 해결하지 못한 무능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만약 차기 청와대 주인이 중국이나 미국 정부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지난 10월부터 거리를 가득 메웠던 수 백만 명의 시민은 이를 얌전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은 두 가지 중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고 한국의 주권을 지키는 동시에 각국 안보 계획에서 한국의 무게감을 키우기 위해 중국과 미국에 대항할 지도 모른다.

차기 대통령이 이런 곡예를 훌륭히 해낼 수 있을까?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외교적 행보인 만큼 상당한 위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험한 곡예

우선은 시진핑 중국 주석의 계산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그는 경제 보복을 통해 중국이 한국의 정책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한국 대통령은 사드 문제를 합의하기 전에 중국이 먼저 확실하고 분명하게 경제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할 수 있다.

어찌 됐든 한국은 중국의 보이콧에서 상당한 손실을 각오해야겠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민주적 권한을 부여 받은 지도자라면 시진핑 주석도 쉽사리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정치∙경제적 대립은 이미 시작됐다. 차기 한국 정부는 신속히 이를 정면 돌파해야겠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음 단계로 한국 대통령은 사드 배치 쪽으로 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드가 일본에 벌써 두 대 배치되어 있으며, 중국 미사일은 대부분 사드 레이더를 피해갈 수 있다며 사드 1대 배치에 대한 군사적 효용성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사드는 방어역량보다 상징적 의미와 정치적 영향이 훨씬 크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동부 침해를 확장하기 위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해 미국의 미사일 체계와 연결하려 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국의 핵미사일 보유를 업그레이드해서 억지 능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낄 지 모른다.  

미중-정상회담
다음달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 등의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북한 및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을 상대로 외교∙경제적 교류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비추어 사드의 낮은 군사적 중요성에 주목한다면, 사드 배치를 뒤로 미루거나 아예 배치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한국에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런 시나리오도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한국 내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고 헌재의 탄핵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사드 배치를 서두른 행보는 오히려 배치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한국의 제 1 야당은 사드 배치 결정이 정상적인 허가 절차를 거치도록 만들기 위해 헌법재판소 제소 준비를 하는 중이다. 사드 배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치러야 하는 정치적 비용을 확실히 아는 셈이다.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외교 절실

사드와 북한, 중국이 얽히고 설킨 문제는 5년 단임 차기 대통령 임기의 시작점을 좌우할 것이다. 권위 있는 전문가와 분석가 사이에서 한반도 충돌 및 전쟁 위험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는 만큼 한국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이 글에서 논의한 대안 말고도 다른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조지 W. 부시의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의 중간자 활동은 자체적으로, 혹은 해외 압박에 대한 반응으로 억제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정책의 중심에 창의적 외교가 들어설 가능성이 생겼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진정으로 한국의 안보를 위하는 정책을 미국과 중국이 모두 받아들이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에게 최선의 결과를 선보이는 동시에 지역 문제해결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입지를 얻게 될 것이다.

화, 2017/03/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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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대통령의 탄핵 파면으로 정부가 기능정지 상태인데다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중이다. 이 소용돌이 속에 미국은 일방적으로 사드(THAAD, 종말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를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성주에 배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주도하고 있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한국 국민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한민구 국방장관의 국회 답변에 나타났듯이 한미 양 당국 사이에 어떤 계약이나 합의서도 없이 미국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집행하는 사태는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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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redian.org/)

한국 민주주의, 광장민주주의로 전진

한국은 현재 정부 수립 이후 또다시 중요한 민주주의 숙성과정에 진입하고 있다.

2016년 10월 이래 최순실 국정농단사태가 드러낸 남북관계-외교안보위기 경제위기 정경유착 등 국정전반의 난맥상에 분노한 시민들이 박근혜 정권의 탄핵을 요구하면서 광장에 촛불을 켜고 나왔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야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의 개혁보다는 시민들의 광장민주주의운동으로 전진해왔다. 2016년 촛불시민운동으로 이름 붙여진 이 운동은 20여 차례에 걸쳐 1,6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지만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사법처리하도록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게 희망이 있는 까닭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집단지성의 힘으로 정치-경제의 기득권 세력을 가끔 청소해내기 때문이다. 민주시민들의 힘을 기득권 세력이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들 깨어있는 시민들이 2016~17년 촛불시민혁명에서 비폭력평화운동으로 그 과업을 성공시키고 있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경이적인 진화라고 하겠다.

한국의 평화사상가 함석헌 선생이 60년 전인 1958년 월간 <사상계>에 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시론에서 처음으로 비폭력평화주의로 이승만의 독재정권에 대항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그러나 1960년의 4월혁명,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숱하게 이어진 민주화운동에서 가혹한 탄압에 맞서 전개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서 격렬한 저항과 투쟁이 잇따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시민 청년학생 노동자들이 사형으로, 고문으로, 분신자살로, 의문의 시신으로 죽어갔다.

촛불시민혁명에서 비폭력평화운동으로 

2016년 10월 하순부터 시작된 촛불시위에서 처음에는 청와대로 전진하는 시위대를 막아선 경찰 차벽 위로 뛰어올라가 경찰과 육탄전을 벌이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경찰방패를 빼앗아 공방을 벌이는 시위대도 있었다.

그러나 뒤에 있던 시민들이 버스 위에 올라가 공방을 벌이는 젊은이들에게 “내려와! 내려와!“를 외쳐 불러 내렸고 방패를 빼앗아 밀고 당기는 시위대에게 ”돌려줘! 돌려줘!“를 외쳐 싸움을 말렸다. 진압 경찰도 자제했고 시위대들도 신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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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visualdive.com/)

1,600여만 시민들이 참여한 촛불시위운동에 부상자 한 명, 구속자 한 명도 없었고 부모와 함께 나왔던 어린이들 가운데 부모를 잃은 어린이 한 명 없었다. 집회에서는 시민들이 목청 높이는 연설보다는 그들이 즐기는 노래와 춤으로 문화축제를 선물했다. 백만 시민들이 한마음 되어 한 밤에 벌이는 촛불 파도타기는 현란한 빛의 파노라마였다.

동아시아의 분단된 한반도 한쪽에서는 핵무기로 세계 최강의 미국과 대결하겠노라고 선언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비폭력평화운동으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리고 감옥에 보내고 있다. 

인류사의 비극 중의 비극인 한반도의 분단과 독재에 대해서 남북한은 비폭력과 핵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두 대응 가운데 어느 쪽이 인류의 양식에 큰 울림으로 다가갈지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한반도 남과 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극명한 전쟁과 평화의 대위법(對位法)은 인류의 해묵은 숙제를 끌어안고 씨름하고 있다.

세계가 한편으로는 놀라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으로 이 실험을 바라보는 이유다. 중국과 북한의 언론매체는 평화촛불시위의 보도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미국 언론은 새 행정부의 독단을 바로잡기 위한 대통령 탄핵을 한국에서 배우자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 시기에 일어났던 몇 차례 한국 민주주의 운동과는 결을 달리하는 숙성도 높은 집단지성형 민주주의 운동인 이번 평화촛불시민운동이 미국의 일방적인 사드 한국배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주목된다.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 탄핵사태에 매달리느라고 평화촛불시민들이 성주 사드배치에 제대로 관심을 기우리지 못해 안타까워했으나 이제 박근혜 탄핵이 확정되어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사드배치 저지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미 당국이 사드배치를 공식화한지 한 해가 흐른 지금 성주의 사드배치는 점점 굳어지고 있다.

다음달, 미중정상회담…촛불 목소리 전해야

오는 4월 6~7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의 첫 미중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사드배치 문제를 비롯해서 북핵협상 여부, 한반도 운명이 그들의 회담에서 요리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사드배치가 확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주장이 관철되어 북핵을 협상으로 타결하도록 합의되면 사드는 배치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가 되면 사드배치 결정은 관철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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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만큼 이번 미중정상회담 결과는 한국 운명에 치명적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탄핵당해 식물이 되어있고 다음 집권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이어서 행정부도 국회도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미-중 정상회담에 관심을 기우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목소리는 반영될 길이 없다. 촛불시민들이라도 평화촛불시위를 통해 그들 미국과 중국 집권자들에게 우리 목소리가 들리도록 해야겠다.

2014년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 사드배치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을 때만 해도 한국정부의 입장은 꼭 배치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방어에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인구밀집지역인 수도권 방어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 미사일 요격용이기보다는 중국 등의 핵미사일 기지의 움직임을 탐지하고 조기대응하자는 데 사드배치의 목적이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중국은 사드 한국배치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격앙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사드가 성주에 배치되면 성주 기지는 유사시 선제타격대상이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최근 러시아도 성주 사드배치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력균형을 깨뜨리는 도발이라고 비난하면서 러시아 역시 성주 사드기지를 선제타격목표로 지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개했다.

그동안 우물쭈물하던 박근혜 정권의 모호한 태도가 미국과 일본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사드를 불러들였다. 사드를 끌어들임으로써 한국안보를 미국과 중국의 싸움판에 밀어 넣은 꼴이었다.

사드배치를 단호히 반대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대화로 이끌 생각은 하지 않고 미국 뒤만 따라온 결과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물론 봉쇄와 제재를 벗어나려는 수단으로 핵-미사일 개발에 매달려온 북한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30년 만에 열린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경제병진 정책을 통해 강성대국을 지향한다는 국가시책을 채택함으로써 핵보유를 불변의 국가 최우선정책으로 확정했다. 그동안 몇 차례 표명되었던 협상을 통한 핵폐기 가능성은 위장전술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거둔 핵과 미사일 성과만으로도 자신의 체제안보를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더 이상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시도는 북한체제 파탄과 한반도 파멸의 구실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사회, 미국과 중국에 단호한 목소리 내야

미국에도 도날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섰고 한국에도 5월이면 새 정권이 탄생한다. 대화와 타협을 만들어낼 새로운 분위기와 조건이 조성되고 있다.

왕이 중국외상이 제기한 ‘북한의 핵활동 동결과 한미 군사연습의 중단’을 주고받음으로써 오랫동안 중단되어온 북핵 협상을 다시 열어야 하겠다. 부질없이 흡수통일론과 통일대박론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한 이명박-박근혜 정권들과는 달리 새로 등장하는 한국 정부는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 핵위기를 풀도록 미국과 일본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게는 2005년 북핵협상의 모범답안으로 꼽히는 9.19선언을 이끌어냈던 경험이 있다. 미국과 북한,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한자리에 이끌어냈던 노하우를 지닌 외교 전문가들도 대기하고 있다.

한국의 촛불시민들은 지난 5개월 동안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경제를 거덜 내고 안보를 위기에 빠뜨린 무능 부패 무책임한 박근혜 정권을 탄핵받아 물러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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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사드반대 집회에서 연설하는 필자의 모습(왼쪽). 사드기지 예정지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성주 소성리마을 주민들의 모습.

한국의 촛불시민들은 미국에게 정중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속되어야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탄핵당해 파면되었고 대통령선거가 진행 중인 지금, 한국의 주권을 무시한 채 사드를 졸속으로 배치하려는 미국 정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다음 사드배치를 협의해야한다. 만약 한국 국민들의 동의 없이 한국 국민들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드배치를 강행할 경우 한국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또한 사드배치를 빙자하여 한국에게 경제재제를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중국의 처사도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이 사드를 배치한다고 해서 중국이 한국에게 무역 경제 문화 관광 등 전방위적 제재를 가하는 처사는 중국의 국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중국 정부는 평정심을 되찾기 바란다. 한국에게 가하는 중국의 비이성적 목조르기가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겠는가. 중국이 그동안 비판해온 구미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자세와 무엇이 다른가.

이제 필자는 위에서 말한 것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 한국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 사드배치 철회하라.
  • 중국은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철회하라.
  • 북한은 더 이상의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라.
  •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왕이 외상이 제안한 북핵활동 동결과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서로 받아들이고 즉시 북핵을 협상으로 해결하라.
  • 한국의 촛불민주시민들은 비폭력평화집회를 통해 성주 사드배치를 저지하자.

 

(※ 이 글은 필자가 쓴 <씨알의 소리> 3, 4월호 권두언 ‘南의 비폭력평화운동–北의 핵무장, 이 대위법은 무슨 화음을 빚어낼까’와  지난 18일 ‘성주 소성리 범국민평화행동’ 집회 연설문 ‘사드는 한국 어디에도 필요 없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를 중심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화, 2017/03/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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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3/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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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그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 한 가운데였다.”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으로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고 헌재를 떠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13일 열린 자신의 퇴임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헌법재판관을 포함해 30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며 내놓은 짧은 소회다.

이 전 재판관은 선고일인 10일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머리에 달고 출근해 화제를 모았다. 헌재 관계자는 “이 권한대행도 머릿속에 오로지 ‘탄핵심판을 어떻게 원활하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밖에 없다 보니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을 세월호 7시간처럼 가장 긴박한 순간에조차 고수해야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와 비교하며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되새긴 사람들이 적지 않다.

법관으로서 최고 명예의 자리까지 오른 뒤 내려온 이 전 재판관의 나이는 이제 55세에 불과하다. 이 전 재판관의 퇴임 후 계획은 아직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사회생활을 그만두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 만큼 그가 과연 어떤 변신을 할지 주목된다.

고3 때 10ㆍ26사태…법대 진학 결심

이 전 재판관은 1962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부친이 경남 마산으로 전근을 가면서, 이 전 재판관도 마산여고로 진학한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1979년 이 전 재판관은 그곳에서 역사의 순간을 대면하게 되고, 수학선생님이었던 장래 희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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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이 선포된 지 7년만인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중항쟁은 박정희 암살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마산여고에 다니던 이정미 재판관은 이 사건을 보며 법대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해 10월 마산에서는 박정희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부산에 이어 일제히 타올랐다. 부마항쟁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기수이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안을 국회에서 변칙 처리하는 등 잇따랐던 유신 폭압 정치가 도화선이 됐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부마항쟁 수습책을 놓고 벌어진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간의 갈등 속에 10ㆍ26사태로 종말을 맞는다.

이 전 재판관은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생각하다 법대에 진학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난 2011년 7월 헌재 재판관 취임 100일을 맞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 근처에서 과격한 시위가 일어났고, 저나 친구들은 다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 사회 모습에 혼란스러워 했던 거 같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수자였던 여성 법조인

이 전 재판관은 1980년 고려대 법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상경했지만 혼란의 연속이었다. 80년 서울의 봄은 5월을 넘기지 못한 채 역사적 비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렇게 1984년 10월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를 얻게 된 측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여성 법조인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소수자였다. 이 전 재판관보다 선배인 여성 법조인이 19명뿐이던 시절이다.

여성 법조인은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이태영 변호사가 처음으로 합격했고, 1952년 황윤석 판사가 헌정사상 첫 여성 법관이 된다. 이후 18년간 명맥이 끊겼다가 1970년 훗날 스타 법조인이 된 황산성ㆍ강기원이라는 법조인도 탄생했지만, 여전히 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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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 이태영 여사가 1952년 법복을 입고 대법원 앞에 선 모습. 두번째 사진은 여성판사 1호 황윤석 판사. 세번째 사진은 여성검사 1호 조배숙 변호사의 모습.

이 전 재판관이 합격했던 사법시험 26회까지 3,094명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24명으로 여성 법조인 비율은 0.78%에 불과했다. 숫자만 적었던 게 아니다.

1961년 여성 판사 1호 황윤석 판사가 32세 나이로 의문사 하는 사건은 당대 여성 법조인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경찰은 남편의 타살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물증을 찾아내지 못해 미제로 남았다.

이 전 재판관과 박보영 변호사, 윤영미 고려대 교수 등 사시 동기들과 그 해 11월 사시 여성합격자 축하 모임에 참석한 사실이 신문 기사로 보도될 정도였다.

이 전 재판관 등은 축하 모임에서 “지금까지는 책에만 매달려 법조인에게 정직 필요한 인간에 대한 공부는 부족하다”며 “주어진 위치에서 불우한 이웃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열심히 배우겠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40대ㆍ비서울대ㆍ여성 헌법재판관

이 전 재판관은 1987년 3월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하면서 법관의 삶을 시작한다. 서른을 넘겨 결혼한 뒤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일을 했다.

아이들이 잠든 이후에 사건 기록을 살펴봐야 했고, 아이들이 깨기 전 새벽에 판결문을 써야 했다.

이 전 재판관은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조금만 일에 소홀해도 눈에 띈다”며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여성법조인에 대한 평가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전 재판관은 2011년 1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으로부터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자, 비 서울대, 40대 재판관이란 타이틀로 주목을 받았다.

이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을 중시하여 소수자 보호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대변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인지를 주요한 인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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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재판관이 2011년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m.blog.daum.net/sanatana/16527455)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헌법에 대한 전문성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헌법에 관련해 학위를 취득했거나 관련 논문ㆍ저서도 없고, 법관으로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례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재판관은 의원들의 지적에 “법원의 재판 자체가 헌법정신을 기초로 해 국민의 귄리를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반박했다.

이 전 재판관은 1987년 임관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을 재판관 외길을 걸었다. 2004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3년 동안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한 기간이 유일하게 재판정 밖에서 보낸 시간이었을 정도다.

인사청문회에서 원친적 답변을 해 의원들로부터 ‘소신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전 재판관은 청문회 통과 이후 “청문회를 준비하는 2주동안 짧게 생각하고 내 소신은 ‘이것’이라고 답하는 게 법률가로서 적절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했다”며 “차라리 소신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게 낫다는 게 제 소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진당 해산, 간통죄 위헌 등 참여… ‘법의 도리는 고통 따르지만 오래도록 이롭다’

이 전 재판관은 재임 6년간 헌정사에 남을 굵직한 사건에 다수 참여했다.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에선 주심 재판관을 맡아, “정당 해산 결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정당 활동 자유의 근본적 제약이나 민주주의의 일부 제한이라는 불이익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통진당 해산 주문을 읽기도 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간통죄에 대해선 “간통은 가족공동체 보호에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영란법, 사시폐지,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는 합헌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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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식이 열렸다.

이 전 재판관은 지난 13일 열린 퇴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는 문구를 인용하며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한다”며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월, 2017/03/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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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7. 3. 21)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환위기가 터진 지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정치는 두 번의 ‘진보개혁’ 정부 그리고 두 번의 보수 정부로 회귀하는 등 시소를 타고 오르내렸다. 박근혜씨가 촛불의 압력으로 대통령직에서 중도하차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시소가 위로 힘차게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과 청년들도 시소를 타고 올라간다고 느낄까? 지난 20년 동안 정치는 시소처럼 오르내렸는지 모르나, 교육 노동 인권 영역은 거의 변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

즉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조금 좋아졌다가 그 후 9년 동안 나빠진 것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실직한 가장들이 자살하는 일은 많아도 지금처럼 콜센터 실습 중인 학생이 자살하거나, 구의역에서 일하던 19살 청년 노동자가 전동차에 끼여 죽는 일은 없었다.

지금 세계는 1% 부자들이 99%를 약탈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유독 한국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가혹하고, 이것은 바로 비인간적인 교육과 살인적인 노동 현장이 하나로 얽혀서 서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과도한 입시만능 교육은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와 사회적 연대감 해체의 다른 표현이다. 학교의 입시학원화는 노동시장의 극심한 차별과 불안정, 취업 절벽이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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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안 나오면 인간도 아니고, 대학을 나오면 비정규직이다. 모두가 미친듯이 뛰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제 자리일 뿐이다. 반노동, 과도한 경쟁이 모두를 패자로 만들고 있다.

상위 10% 노동자들이 임금이나 직업 안정성에서 특권적 지위를 얻고, 나머지 90%가 불안한 저임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 현장의 위험과 폭력은 그냥 감내해야 할 숙명이 되고, 자녀를 상위 10%의 직장에 밀어 넣을 수 있다면, 노후 복지를 희생하고서라도 자녀 교육 투자에 나서겠다는 학부모의 출혈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입시 과열은 반(反)노동, 사회안전망 부재라는 현실과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약자가 노조나 정치적 대표체를 통해 권익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구의역에서 사망한 청년은 140만원 수입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을 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터에 나갔다. 이제 스카이(SKY) 대학은 거의 부유한 가정 출신자들로 채워지고 그들조차 안정된 직업을 얻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불안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현장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명문대 학벌, 공무원 합격밖에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명제다.

지난 20년 동안 비정규직을 희생시키고 고임금을 얻은 조직 노동자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내 식으로 표현하면 노동 문제를 교육, 복지, 재벌 문제와 한 세트로 보지 못하게 만든 기업노조주의에 원인이 있다.

노동계의 책임이 2라면, 단기 이윤 확보에만 매진해온 재벌 대기업, 교육과 노동을 경제의 부속품 정도로만 보는 경제관료, 국가의 장기적 정책에 무관심한 야당에는 8의 책임이 있다.

즉 비정규직 사용제한, 임금격차 축소, 노동시간 단축, 노조조직률 제고 등 노동의 절망을 해소하자는 각 대선 후보의 공약은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대기업의 경제 논리의 반격에 부딪힐 것이다.

한편 학교교육 정상화, 학벌주의 극복 등 교육 관련 정책안도 노동 현장의 차별 해소, 일터의 민주화와 노동의 자력화를 수반하지 않으면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없을 것이다.

임금을 적게 받더라도 고용의 안정성이 좀 더 높아진다면, 그리고 인위적 위험을 막아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더 확충된다면, 청소년과 청년들은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일자리와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언감생심이다.

지금 우리는 87년이 성취한 반쪽의 민주화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적 요구는 더 심층적이고 엄중해서, 한국은 사실 8·15 해방 시점과 맞먹을 정도의 체제 전환의 국면에 놓여 있다.

대선 후보들은 표 얻기 위한 공약에 매달리거나 지엽적 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노동 차별과 입시 과열이라는 ‘생존 전쟁’ 체제를 넘어서서 기회가 열려 있고, ‘고루 잘 사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촛불시민의 능동성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사회정책은 하나의 세트로 묶여 있다. 그래서 각각을 떼어서 해결할 수 없고, 긴 호흡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5년 단임 대통령은 시작하다가 말 것이다. 장차 국가교육위원회, 아니 국가사회정책위원회를 수립해야 한다.

화, 2017/03/2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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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통령이 되냐 보다 사드 배치 반대가 더 중요하다”

지난 3월 27일,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이 유나킴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래경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시죠.

그리고 오는 4월 1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로 세종대왕동상 앞에서 ‘사드배치 반대 시민집회’가 열립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화, 2017/03/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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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길 잃은 ‘새정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2017. 3. 2)

대세가 된 운명,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2017. 3. 8)

주류 편입을 꿈꾸는 변방의 정치인, 홍준표 경남도지사

제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어 한 번 돌리고 난 뒤에 새로 시작하겠다.”

‘스트롱맨’을 자임하는 홍준표 경남지사(63)의 행보가 거침없다. 반기문, 황교안이 떠난 자리에 보수 대선 후보로는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이다.

3월 넷째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31%), 안희정(17%), 안철수(10%), 이재명(8%)에 이어 6%로 5위를 기록했다. 전 주에 비해 4%가 오르며 ‘빅 5’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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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홍준표 경삼도지사가 대통령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http://www.kyongbuk.co.kr/)

각 정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5자 구도로 조사하면 지지율은 12%까지 뛰어오른다. 같은 보수 계열 후보인 유승민(5%)을 2배 이상 따돌렸다.

적어도 자유한국당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층에게 그는 진짜 좌파 세력과 대결할 마지막 ‘스트롱맨’이자 ‘희망’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성완종 게이트에서 기사회생

몇 달 전만 해도 홍 지사의 이런 행보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에 휘말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으면서 도지사직은 물론이고 정치생명까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로 몰렸다.

경남 도민들은 그의 독선적 도정운영과 ‘성완종 리스트’ 연루를 문제 삼아 주민소환까지 추진했다. 모든 것은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갔다. 주민소환은 겨우 0.31%의 유효서명이 부족해 무산된다.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다.

‘만사구비지흠동풍(萬事俱備只欠東風).’

홍 지사는 2심 승소 후 페이스북에 이런 고사를 올린다. 적벽대전을 앞둔 제갈량이 주유에게 ‘모든 조건이 갖춰졌고 가장 중요한 동풍만 남았다’고 한 말이다.

무죄 판결이 그에게 진짜 ‘동풍’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홍 지사는 ‘동풍’이라 믿고 불붙인 화살을 잰 활시위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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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저승에 가면 성완종이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고 했고, 자신이 연루된 것을 친박의 음모라고도 했다. 2015년 4월 자살한 성완종의 메모에는 ‘홍준표 1억’이라는 메모가 남아 있었다. (사진출처:http://m.kukinews.com/)

그는 ‘천하대란에는 크게 통치해야 한다’는 대란대치(大亂大治)의 지혜를 발휘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밝혔고, 딱 한 달하고 이틀 뒤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홍 지사는 “내가 밋밋한 대선후보에 머물렀으면 나한테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며 성완종 게이트 연루가 일종의 기회가 됐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완종 리스트 유죄 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하겠다” “문재인은 별 거 아니다. 토론하면 10분 안에 제압한다” 홍 지사는 본래도 좋게 말하면 거침없는 화법, ‘막말’로 유명했지만 대선 출마를 전후해서는 더 거칠 것 없다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빗대 ‘홍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다. 지난 24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인 김어준은 “지사님이 출연하자 욕 문자가 폭발하고 있다, 역대 최고다”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맞받아친다. “그거는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욕을 하니까 전혀 괜찮다. 트럼프가 그렇게 비호감이라도 대통령됐다.”

몸으로 기억하는 가난

“(당 대표가 돼) 이제 중심에 섰지만 치열했던 ‘변방 정신’을 잊지 않겠다.”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당 대표에 선출됐을 때 한 말이다. 홍 지사는 늘 본인이 권력과 힘도 없고, 조직도 없고, 변방에 머물러 왔다고 말한다.

그는 ‘흙수저’였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가난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과 아픈 시간으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민대통령’을 표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홍 지사는 1954년 12월 경남 창녕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당 800원을 받고 현대조선소 앞 백사장에 적재된 철근 쇳조각을 지키는 일을 했다.

어머니는 ‘달비’(부녀자의 머리카락) 장사를 했다. 어머니가 고리채를 갚지 못해 사채업자에게 길거리에서 머리채를 끌려 다니는 광경도 목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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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7년 2월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를 졸업할 당시의 모습 2. 어린 시절 누이와 함께 찍은 사진. 3. 중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4. 고대 법대 1학년 시절의 모습. (사진출처: http://m.kukinews.com/)

낙동강변 하천 부지에 살아 여름철 장마 때면 집을 떠내려 보내야하기도 했다. 양식이 없어 3일 동안 굶기도 했다고 한다. 먹고살 게 없어 가족들이 리어카 하나에 전 재산을 싣고 영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가난했지만 공부에 뜻을 두고 큰 도시인 대구로 올라가 영남중에 진학한다. 점심 도시락을 싸 갈 형편이 못 돼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성적이 좋았지만 당시 명문고로 꼽히던 경북고로 가지 않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영남고로 진학한다.

육군사관학교 진학도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장물인 비료를 매수했다는 누명을 쓰는 것을 보고 법대에 진학해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고려대 법대에 진학해서도 일주일 내내 과외를 해서 겨우 학비를 마련했다. 그런 와중에 잠시 운동권에 몸담기도 했다. 여러 차례 총학생회의 지하 유인물을 작성해주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죽도록 맞고 풀려나기도 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때는 선후배 돈을 모아 격려 광고를 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대학 시절에는 학교 구내 은행에서 일하던 여직원에게 반해 프로포즈를 했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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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의 모습. 홍준표 지사의 아내는 당시 은행의 말단직원이었다.

사법시험에도 몇 차례 응시했지만 합격은 하지 못했다. 시험에 떨어진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있는 울산에 내려갔다가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는 ‘일당 800원짜리 경비원’ 아버지의 등판을 보고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단기사병 복무까지 마친 뒤인 1982년, 스물여덟 살의 일이었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

청주지검 초임 검사 시절 그는 이름을 ‘판표’(判杓)에서 ‘준표’(準杓)로 바꾼다. 훗날 국회의원이 되는 이주영 당시 청주지법 판사가 ‘칼 도’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좋지 않다고 개명을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개명이 쉽지 않았던 터라 이주영이 당시 지원장에게 ‘판관의 표상’이라는 이름 때문에 판사처럼 행동한다며 설득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마침 새로 바꾼 ‘세인의 표상’이란 뜻의 이름은 이후 그가 검사로서 유명세를 탈 것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1988년에는 전두환의 외조카인 김영도가 모 기업인에게 석방을 조건으로 뇌물수수를 받은 사실을 적발해 구속 기소했다.

광주지검 강력부 시절에는 각종 협박과 로비에도 굴하지 않고 광주지역의 조직폭력배인 국제PJ파를 일망타진한다. 그는 지역정치인, 언론까지 나서 ‘조폭’을 비호할 정도로 복잡하게 연계돼 있었던 이 사건 수사에서 큰 고생을 겪는다.

그러고 나서 ‘검사 혼자 뛰어선 안 된다’며 언론이나 여론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또 그때부터 술집과 유흥가에 조폭이 연관된 것을 알고 나서는 여성 접대원이 나오는 술집은 안 가게 됐다고 한다.

서울지검 검사 시절에는 정덕진의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을 구속 기소해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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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시절,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와 엮어 ‘6공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기소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검사시절의 모습(왼쪽)과 박철언 전 의원.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강우석 검사가 그를 모델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의 칼날 앞에 당시 이건개 대전고검장,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엄삼탁 병무청장, 천기호 치안감 등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를 거침없이 수사하는 ‘소신 검사’의 표상이 됐다. 물론 당시 김영삼 정권의 6공 세력 청산 의도와 맞아떨어진 것으로 홍준표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이 수사로 검찰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홍 지사는 정형근의 소개로 안기부 파견 검사로 잠시 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검사직을 던진다. 1996년 김영삼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입당해 15대 총선에서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되지만 곧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2001년 다시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되고 18대까지 같은 선거구에서 내리 4선을 이어간다. 17대에서는 탄핵 역풍도 뚫고 서울 동북권에서 홀로 살아남는 기염을 토한다.

보수주류와는 다른 컬러

정치인으로서 그가 내놓은 정책을 보면 보수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이중국적 보유자의 병역 회피를 막는 국적법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이끌었다. ‘반값 아파트’ 법안을 발의하고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반대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부유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내게 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2006년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해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하고, 2007년에는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 뒤 이명박 지지로 돌아서 당 클린정치위원장으로 BBK 의혹 대응을 총괄지휘했다.

김경준의 ‘기획입국설’을 주장하며 가짜 편지를 흔들기도 했다. 당시 김경준과 이명박의 관계를 추궁하는 기자의 질문에 ‘식사했어요?’라는 엉뚱한 말로 받아치며 답변을 회피해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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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서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을 맡아 BBK연루의혹을 받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사진은 그가 2007년 11월 한나라당사에서 각종 문건을 제시하며 기획입국설을 제기하는 모습.

이명박 정권 출범에 즈음해 원내대표를 맡기도 했지만 정권 창출 공로에 비하면 크게 중용받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권과 당 내부를 향해서도 서슴없이 ‘막말’을 내놓는 탓에 ‘좌충우돌 홍두깨’ ‘통제가 안 되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급기야 친이계의 지원을 받은 안상수와의 당 대표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2011년 재수 끝에 당 대표직에 올랐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은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등에 휘말려 넉달여 만에 물러나야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 25.7%가 ‘사실상 승리’라고 발언했다가 각종 패러디에만 올랐다. 급기야 19대 총선에서 패배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스스로도 트위터에 정치를 접겠다는 듯한 발언을 올렸다.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 이제 자유인으로 비아냥 받지 않고 공약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정계은퇴가 아니라 공직생활 마감을 뜻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총선 패배 후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김두관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로 사임하자 홍 지사는 경남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범야권 단일후보인 권영길을 누르고 당선된다.

학교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진주의료원을 폐원시키는 등 독선적 행보로 비난을 받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3년 6개월간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채무를 갚고 흑자재정으로 전환했다며 자랑스러워한다. 도청 들머리에 ‘채무 제로’를 기념하며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다.

독설? 또는 막말?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결국은 풍차를 깨버렸다.”

슬롯머신 수사 당시 한 신문은 홍 지사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 즈음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돈키호테처럼 진실하고 가식 없게 살고 싶다”며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박상원)보다는 <넘버3>의 마동팔 검사(최민식)에 가깝다고 말한다.

“한 번 물었다 하면 표범처럼 놓지 않는” 거칠고 집요한 검사, 좌고우면하지 않고 목표물만 노리는 검사다. “검사에게 왜 변호사 자격증을 줍니까. 옷 벗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현직에 있을 때 소신껏 일하라는 거죠. 검사는 엉뚱한 것으로 고민할 필요 없어요.”

대학 시절 그의 별명은 ‘무계’였다고 한다. 기발하고 황당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해서 ‘황당무계’가 줄어 ‘무계’가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위아래 격의 없이 잘 어울려 ‘무계’가 굳어졌다고 한다.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입담이 탁월해 좌중을 압도한다고 전한다. 코미디언 시험에도 응시하려 했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순수하고 투박한 모습의 어딘가에는 ‘망언’에 가까운 독설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성정과는 반대편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거울처럼 비추는 것 같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망언도 처음이 아니다. 이미 당 대표 시절 “자기 성깔에 못 이겨 그렇게 가신 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을 향해서는 ‘꼴같잖은 게 패버리고 싶다’고 했고, 단식 농성 중인 도의원에게 ‘쓰레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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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독설은 위, 아래, 좌, 우를 안 가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강자를 상대로 할 때는 용감하게 빛나지만, 그 독설이 약자를 향할 때는 무례하고, 독선적이다. (이미지출처: https://mobile.twitter.com/korea486/status/690142159937388544)

무엇보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발언은 심각하다. 추미애 의원에게 “넌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했고, 종편 방송국 경비원에게는 “니들 면상 보러 온 거 아니다. 네까짓 게”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나 풍자는 권력과 재벌을 향해 있을 때 다윗의 ‘돌팔매’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당 대표 시절 홍 지사는 TV인터뷰에 나가서 “대기업 하면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뭐냐”는 질문에 ‘착취’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던지는 망언이나 폭언은 연못의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격이다. 홍 지사의 발언이 못내 불편한 이유다.

‘스트롱맨’은 역시 ‘스트롱맨’과 싸워야 멋있다. 스트롱맨이 약자를 괴롭히는 건, 그가 평생을 싸워 온 조폭만도 못하고 동네 양아치나 하는 짓이다.

보수의 구심점 될까

‘스트롱맨’인 그는 한편 스스로를 종종 ‘약자’로 자리매김한다. 성완종 게이트 연루에 대해서도 “권력이 없는 자의 숙명이고 ‘모래시계 검사’의 업보라고도 생각했다”고 말한다.

“청와대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직 재판받고 있을지 모른다”고도 말한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이나 국민의당, 바른정당과의 연대 시사는 극우보수층으로부터도 공격받고 있다. 상, 하, 좌, 우가 모두 그의 투쟁 대상이다.

어쩌면 ‘약자’이자 ‘스트롱맨’인 그의 정체성과 가장 비슷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자수성가형으로, 내가 다 해 봤으니 믿고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이다. 때로 내가 뱉은 이 말과 저 말이 맞지 않고 이런 태도와 저런 태도가 충돌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옳다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다.

밑바닥 생활을 거쳐 검사가 되고, 조폭들의 ‘죽인다’는 협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늘 사표를 품에 안고 수사를 했던 시절부터 예고된 성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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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지사는 2016년 6월, 채무제로를 기념해 도청 앞에 사과나무를 심었다.(첫번째, 두번째 사진). 그러나 이 사과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4개여월 만에 주목으로 교체됐다. (맨 오른쪽 사진). (사진출처: http://www.hani.co.kr)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그는 ‘리더십의 교체’를 부르짖었다. “소통과 통합이라는 위선의 가면에 숨어 눈치만 보는 리더십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가 두려워 결정을 미루고, 여론이 무서워 할 일도 못 하는 유약한 리더십으로는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그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작은 나라의 대통령도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은근슬쩍 자신이 하늘의 뜻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숨기지도 않는다.

지금 상황은 그에게 박근혜의 위기이지 보수의 위기가 아니다. 후보가 되고 나면 20% 가까이 출렁이는 게 여론조사이며,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표 선수가 정해진 뒤에는 집결하는 보수표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여론조사는 나는 믿지도 않고, 믿었다면 내가 국회의원 매번 할 리도 없고 경남지사 두 번 할 리도 없습니다.”

그가 ‘채무 제로’를 기념하며 경남도청 입구에 심어졌던 사과나무는 결국 시들어 뽑혀나갔다.  ‘천명’은 과연 홍준표에게로 향할지…

목, 2017/03/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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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쟁취한 ‘트럼프 대통령직’은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스티브 배넌(64)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지난 18일(현지시각) 한 말이다. 수석전략가에서 경질된 뒤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회장으로 복귀하자마자 내놓은 일성으로 그는 “난 이제 자유로워졌다. 무기를 다시 내 손에 쥐게 됐다. 반대하는 것들은 철저하게 박살내겠다”고 했다.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브바트> 이끈  ‘온라인 우익 전사’

 극우 성향의 온라인 매체 <브레이트바트’>를 운영하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돕고 백악관에 전격 기용된 그는 출발부터 최근 경질까지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섰다. 미국의 대안우익(alt-right)을 바탕으로 부상한 인물로서 우리로 치면 ‘미국판 일베’인 그가 권력의 중심까지 갔다가 제 자리로 돌아온 과정도 그 자체로 극적이다. 하지만 미국과 전세계가 그에게 촉각을 세우는 것은 ‘롤러코스터’ 같은 배넌의 이력 때문이 아니다. ‘좌충우돌’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론적, 정치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변화가 찾아올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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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스티브 배넌이 백악관 수석전략가직에서 경질된 뒤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회장으로 복귀했다. ‘어둠이 선’이라는 그의 말에서 극단적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jtbc)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은 미국 정치의 비주류와 아웃사이더들로 채워진 ‘트럼프의 사람’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 인물로 꼽혔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와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레이트바트>를 중심으로 한 ‘대안우익’ 활동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브레이트바트를 이끌면서 인종 차별과 여성, 이민자 혐오가 깔린 극단적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 온라인 언론은 “피임은 여성을 비호감으로 만들고 미치게 한다”, “기술 분야의 채용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없다. 그들이 면접을 망칠 뿐이다”, “당신은 아이들이 페미니즘을 배우느니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게 낫다” 같은 막말에 가까운 헤드라인을 거리낌 없이 내보냈다. 또 “남성의 관심을 끌려는 여성들이 인터넷을 망치고 있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질병을 갖고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동성애자들은 다시 벽장 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등의 차별과 혐오의 시각도 노골적으로 보였다. 

 ‘트럼프의 사람’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

온라인에서 ‘우익 전사’였던 배넌은 지난해 8월 당시 트럼프 캠프의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가 러시아 로비 관련 의혹으로 물러 난 뒤 캠프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네가티브도 주도했다. 미국 대선이 치러진 2016년 11월 <브라이트바트>의 페이스북 계정 접속자 수는 <CNN>, <폭스 뉴스> 등 기성 언론의 4배를 넘는 등 여론전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일등 개국 공신’이 됐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자신의 고수해온 철학과 가치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시켰다. “국익을 침해하는 모든 정책에 반대한다”는 구호 아래 미국의 군사개입 축소는 물론 유엔, 유럽연합(EU) 등 다국적기구 무용론을 제기했고, 세계화에 선을 긋고 철저한 보호 무역주의를 주장했다. 난민과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혐오를 보였다.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는 반이민행정명령,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파리기후협약 탈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온갖 갈등과 논란을 불러온 트럼프의 대표적 정책들은 배넌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외교정책에도 목소리를 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2월 배넌을 ‘위대한 여론 조작자(Great Manipulator)’라고 비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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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지자로 유명한 미국 헐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는 최근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배넌에 대해 “자신의 각본을 팔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얼간이'(schmuck)다”고 조롱했다.(사진 출처: AP)

하지만 개국 공신으로서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던 그의 권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라인스 프리버스 전 비서실장과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반이민 행정명령이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리는 등 백악관 내 입지가 흔들렸다. 전통적 개입주의 외교·안보 노선을 추구하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자주 충돌하기 시작했다. ‘실세 사위’인 온건파 제러드 쿠슈너 선임 고문과도 노선을 두고 갈등했다. 결국 배넌은 지난 4월  NSC 상임위원직을 내놓았다.

트럼프의 눈 밖에 나 수석전략가에서 경질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것이 그가 백악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일등 공신으로 평가되는 데 불쾌감을 드러내 왔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종종 배넌에 대해 질문 받으면 “그는 나의 대선 운동 때 나중에 합류했을 뿐이다”라고 답하곤 했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측근들 말을 인용해, 트럼프는 여론이 배넌을 “배넌 대통령”으로 부르며 마치 자신을 조종하는 것처럼 비판하는 데 불쾌감을 내비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블룸버그 기자가 출간한 ‘악마의 거래’에서 배넌을 트럼프와 동등한 관계인 양 묘사하고 책 표지 사진도 트럼프와 배넌이 마주 보고 있어 트럼프의 격노를 샀다”는 분석도 내놨다.

 

 결국 배넌은 최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혈 사태와 관련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심하게 비난하지 말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잘못된 조언을 해 인종주의 논란을 키우고, 지난 8월16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 공격 가능성에 대해 “군사적 해법이란 건 없다. 그런 건 잊으라”, “주한미군 철수도 고려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트럼프의 분노를 샀다. 이틀 뒤인 8월18일 배넌은 전격 경질됐다. 

배넌, 여전히 “트럼프의 반대파와 싸우겠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는 배넌 경질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변화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일단 미-중 관계를 패권 경쟁으로 바라본 배넌의 퇴장으로 대중 강경기조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배넌의 고립주의와 달리 북핵·미사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맥매스터 보좌관 등 군 출신들이 백악관에서 입지를 넓히며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US President Donald Trump (L) congratulates Senior Counselor to the President Stephen Bannon during the swearing-in of senior staff in the East Room of the White House on January 22, 2017 in Washington, DC. / AFP PHOTO / MANDEL NGAN
트럼프는 배넌을 경질했지만 자신의 트위터에 “배넌이 브레이트바트에서 터프하고 영리한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며 자신을 위한 역할을 주문했다. 배넌도 “트럼프의 반대파와 싸우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사진 출처: AFP BBNews)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근본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다수다. <CNN>은 지난 8월19일 “배넌 이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와 트럼프 행정부 문제점의 근원은 트럼프 자신에 있고, 배넌은 그런 트럼프의 원인이 아니라 징후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스티브 배넌은 브레이트바트에서 터프하고 영리한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 가짜뉴스는 경쟁이 필요하다”며 자신을 위한 역할을 주문했고, 배넌도 “트럼프의 반대파와 싸우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분명한 건 배넌의 퇴장과 상관없이 여전히 ‘트럼프 리스크’는 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 2017/09/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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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항의서한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구테헤스 UN사무총장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부영 사드 반대 한국 대표단 공동대표는 “한국의 국정운영 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사드 배치를 강압해 한반도와 동북아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는 미국에게 촛불시민들의 항의를 전달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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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주권자 전국회의 출범식에서 사드배치 반대 방미단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는 플랭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이번 한국 대표단의 미국 방문은 지난해부터 촛불집회를 주도해온 ‘주권자 전국회의’의 주도로 이뤄졌다.

한국 대표단은 이부영 동북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이삼열 2017민주평화포럼 상임공동대표,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등 3인 공동대표와 기독교 등 4대종단 대표로 구성됐으며, 4일 미국으로 출발한다.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은 “6일과 7일 워싱톤에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 맞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그리고 UN 사무총장에게 사드 철회를 요구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해서는 한반도와 동북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가는 사드배치 철회를, 중국에 대해서는 사드배치의 주체가 미국인데도 한국에만 보복조치를 퍼붓는 행태의 부당성을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 대표단의 방미 기간 중 국내에서는 ‘적폐청산-국가대개혁 주권자 전국회의’, 한국NCC, ‘사드저지 전국행동’ 등이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릴레이 피켓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월, 2017/04/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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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국정농단 스캔들로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귀결되면서, 우리사회 적폐의 근본 원인이 경제권력인 재벌과 정치권력의 유착에 있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정경유착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던 전경련은 이름만 바꾸고 조직을 축소·개편하는 혁신안을 최근에 발표했다. 또한 5월에 들어설 새 정부가 과연 제대로 재벌개혁을 할 의지와 능력이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꾸준히 제기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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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혁신안을 발표하며 단체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바꾼다고 밝혔다. 혁신안에는 정경유착 차단, 싱크탱크 강화, 조직 및 예산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는 모습.

재벌 개혁 못하면 제2의 남미

196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의 앞날은 없으며 한국 정치는 결국 재벌에 기생하고 민주주의는 형해화될 것이다.

따라서 재벌개혁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기초이고 촛불시민혁명을 완성하는 첫 삽이다. 만약에 진보적 세력이 집권하고도 제대로 재벌개혁을 못한다면, 한국은 제2의 중남미로 전락할 위험마저 있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에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의 와중에서도 한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률을 유지했고, 2012년 이후에는 경제성장률이 다시 상승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5년에 2.6%로 주저앉으면서 2016년도에도 2.8%에 머물렀다.

그런데 이런 경제성장률의 하락이 경기변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추론의 바탕에는 제조업의 위기라는 현실이 있다.

추락하는 제조업 경쟁력

한국의 제조업은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시작된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철강, 가전 등이 주력산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중화학공업의 특징은 이른바 장치산업이라는 것인데,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장치산업에서의 궁극적인 경쟁력은 숙련 노동력의 임금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후발 국가가 새로운 공장과 공정기술을 이용해 범용재(commodity)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기존 생산 국가가 범용재의 가격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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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 기업이 일본이나 유럽의 범용재 생산제조업자들을 대체했던 것처럼 중국이나 신흥국이 한국의 범용재 생산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은 고부가가치 중간재 생산과 고부가가치 특수재(specialized product)의 생산으로 산업이 진화해 가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한국 제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진화가 단절되고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 제조업에서 중간재인 부품소재 생산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부품소재 수출의 급속한 증가는 중국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한국산 부품소재의 대중국 수출이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산 부품소재의 선진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소재부문의 대 선진국 무역역조는 심화되고 있으며, 부품 수출도 IT 관련 품목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반도체 등 일부 IT 품목을 제외하고는 핵심 제품 및 기술이 존재하지 않고, 현재의 기술수준이 선진기업들에 비해 취약한 실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주력 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와 수익성 악화는 만성적 한계기업인 좀비 기업을 양산하고 있으며, 기업 도산과 이를 막기 위한 구조조정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제조업의 경쟁력과 수출주도적인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정부는 재정지출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건설투자를 통해 경기부양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경제는 기업 부실화와 가계부채 그리고 이어지는 금융 부실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정희체제에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로

이러한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개발체제에서 공고화된 정부 주도-재벌 중심의 경제를 전면적으로 대체할 새로운 경제체제가 필요하다.

이런 새로운 경제체제를 필자는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라고 부른다.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는 정부 주도-재벌 중심의 반(半)계획-반(半)시장 경제가 아니라, 약자의 재산권 보호와 공정한 경쟁을 제도로 보장하고, 스스로 돕고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사적 복지가 아닌 복지 및 사회안전망을 법적으로 구축한 체제이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가 다시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로 들어서고 사회적 양극화의 해소가 이러질 수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가 선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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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는 최근 ‘박정희개발체제’에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로의 경제구조개혁을 주장한 책을 발간했다. 재벌개혁은 이러한 구조개혁의 핵심이다.

재벌체제는 혁신을 통한 산업의 고도화와 고부가가치화를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도전 기업에게 혁신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혁신 경쟁의 소멸은 결국 재벌 기업들의 혁신 유인도 감소시키고 있다.

또한 재벌 대기업이 하청기업의 기술을 탈취하여, 하청기업들은 가격경쟁과 단가 후려치기에 내몰리고 결국 혁신할 유인도 여력도 잃게 된다. 기술탈취와 단가 후려치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의 근본 원인이 되고 노동 양극화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나아가 재벌의 세습이 가능한 상황에서 재벌 총수 일가는 도전 기업의 싹을 자르고 진입장벽을 쌓는다.

소유지배구조 개혁 절실

한국 재벌은 순환출자, 교차출자, 지주회사체제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소유지배구조를 가지고 과도한 수직계열화(over-vertical-integration)와 문어발식으로 다각화(over-diversification)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렇게 복잡한 재벌의 구조와 심각한 경제력 집중은 기업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들어 황제경영이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재벌 개혁을 위해서는 소유지배구조와 기업 거버넌스 개혁 방안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시행해야만 한다. 이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개혁을 위해서 2012년과 2013년에 단행된 이스라엘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혁 입법을 참고해 볼만 하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수 있는 조치가 빠진 개혁은 한국을 제2의 멕시코로 전락시킬 것이다.

1910년에 시작된 멕시코 혁명은 1917년 멕시코 헌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는 듯했다. 그러나 정치 주도 세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대지주와 새로이 등장한 멕시코 재벌이라는 경제권력과 경제구조는 더욱 공고화되었다.

멕시코 혁명 이후에도 제대로 된 토지개혁은 시행되지 못 했으며, 증여세 폐지와 차등의결권 주식의 도입 등으로 멕시코 재벌의 세습과 경제력집중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보호되었다. 그 결과로 멕시코의 경제는 오랜 침체에 빠지고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는 고착되었다.

한국 경제와 사회는 1920-30년대 멕시코처럼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갈지 아니면 퇴행의 첫 걸음을 내딛을지 갈림길에 섰다.

월, 2017/04/0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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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오십이 되어서야 지천명(知天命), 그 뜻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자가 그 뜻을 실천한 것은 그로부터도 18년이 지난 나이 68세 때입니다.”

지난해 2월 홍석현 중앙일보·JTBC 전 회장이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락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68살이 되는 올해 3월18일 돌연 회장직을 내놓았다. 1994년 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뒤 23년 동안 중앙일보와 계열사를 이끌어온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대선을 앞둔 정국과 맞물리며 ‘여의도’와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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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대선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자본-언론-정치의 내부자로 살아온 그가 스스로 대통령 권력까지 손에 쥐겠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가 일찍부터 ‘정치’에 대한 열망을 보여왔기에 ‘대선 출마’와 ‘킹메이커’라는 꼬리표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상황이다. 그는 현재 대선 출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내 인생을 이해해야 된다. 내가 나라 걱정을 하게 된 건 오래됐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의 날개짓이 ‘장미대선’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까.

신문업계의 ‘계몽군주’

홍진기 중앙일보 전 회장의 장남으로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 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산업공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유학 뒤 1977년부터 1983년까지는 월드뱅크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눈에 띄는 것은 귀국 뒤 한국에서 첫걸음을 공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3~1985년 사이 전두환 정부에서 강경식 재무장관 비서관, 강경식 대통령 비서실장 (특별) 보좌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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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의 부친 홍진기 전 내무부장관은 4. 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했다. 이 일로 그는 구속돼 1961년 12월 혁명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왼쪽 사진 첫번째 인물). 그러나 그는 1963년 8월, 박정희로부터 특별사면을 받는데, 여기에 이병철 전 삼성회장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이병철과 손잡고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한다. 창간 당시 윤전기를 살펴보는 이병철 회장(오른쪽 사진, 오른쪽 두번째)과 그것을 지켜보는 홍진기 전 장관(왼쪽 두 번째).

비서관, 특별 보좌관이라는 직책 자체가 아버지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의 후광 없이는 맡을 수 없는 자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부터 홍 전 회장의 정치적 열망이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짧은 청와대 생활 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2년간 생활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따라 기업인과 언론사 사주의 길을 걷게 된다. 1986년 아버지 작고 뒤 삼성코닝 상무로 기업에 발을 들인 그는 1994년 중앙일보 사장에 오르며 최근까지 중앙일보 회장 겸 발행인 등을 맡아 왔다.

그는 언론사 최고경영자(CEO)로서 일간지 혁신을 이끌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장 취임 뒤 한국 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일반/경제/스포츠 등 섹션을 분리한 신문을 발행하고,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중앙선데이> 일요신문을 창간하고, 한국 일간지 최초로 판형을 베를리너판으로 변경하는 등 언론의 혁신을 이끌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리더십에 ‘계몽군주’라는 비판과 찬사가 엇갈렸다. 이에 그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아시아 지역 출신 최초로 세계신문인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삼성X파일’로 주미대사 중도하차

그는 2005년 2월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오래된 꿈’인 정계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해 7월 터진 ‘삼성 X 파일 사건’때문에 대사직에서 물러났다. 삼성 X파일은 당시 이학수 삼성구조조정 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사이의 대화를 담은 녹취록이 공개되며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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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삼성X파일’ 사건에 관련돼 검찰에 출두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이 일로 그는 주미대사에서 중도 하차해야 했고, 아시아 몫으로 예정됐던 UN사무총장 자리는 반기문에게 돌아갔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삼성이 1997년 이회창 대선 후보와 검찰에 돈을 뿌렸다는 등의 대화 내용이 드러나며 삼성의 비자금이 불법 정치자금에 쓰였다는 의혹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검찰 조사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삼성 X파일은 ‘정치인 홍석현’의 꿈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직에 거론되던 그는 이 사건으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당선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은 당시 그가 주미대사 자리를 디딤돌 삼아 유엔 사무총장 당선, 대권 도전의 ‘큰 그림’을 그렸다고 보고 있다.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보듯이 삼성그룹은 그의 ‘자산’인 동시에 ‘그늘’이기도 하다. 홍 전 회장의 누나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이다. 중앙일보는 과거 대주주였던 이 회장에게서 처남인 홍 전 회장에게 넘어갔다.

재벌이 정치권력까지?…곱지 않은 시선

역설적인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까지 가는 과정에서 JTBC ‘최순실 태블릿PC’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홍 전 회장은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피가 통한 조카인데 당연히 가슴이 아프다”고 했지만, 탄핵정국에서 손석희 앵커와 JTBC가 보여준 영향력은 그의 인지도를 다시 높인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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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석현과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정운찬 전 총장의 회동이 알려지면서 구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각자 대권꿈을 꾼다는 점이 이들 3인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연대가 이번 대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지난해부터 그는 꾸준히 자신의 ‘대망’을 드러내왔다. 홍 전 회장은 지난해 경희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은 <꿈꾸는 젊은이, 매력국가의 길>과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는 에세이 두권의 책을 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지난해 자신의 저서를 통해 ‘홍석현 대망론’을 언급하며 부채질을 했다. 또 그가 회장직을 내놓기 전 중앙일보는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코리아’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중앙선데이>에 “촛불이 내세운 강력한 메시지가 ‘이게 나라냐’였다면 ‘이게 나라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책임감을 느낀 거다.(중략) 촛불혁명이 명예혁명이 되려면 탄핵 이후 새로운 나라가 태어나야 한다. 시스템적으로도 그렇고, 관행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평소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대선 출마설까지 나온 게 아닐까”고 말했다. 모두 지금의 행보와 궤를 같이 한다.

홍 전 회장이 이사로 참여하는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까지 그의 대망론과 연관돼 주목받고 있다.

여시재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이사장을,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총괄부원장을 맡고 있는데 참여인사들 대부분 홍 전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여시재는 이러한 시선에 선을 긋고 있다.

이러다보니 홍 전 회장을 둘러싼 ‘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회장직 사퇴 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종인 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를 잇달아 만나자 “’반문재인 연대’를 구축하는 것 아니냐”부터 참여정부 출신 이광재 전 지사를 연결고리로 ‘문재인-홍석현 연대설’까지, 극과 극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홍 전 회장이 새 정권의 총리나, 차기를 노린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건 홍 전 회장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그를 향해 제기된 오래된 질문은 끈질기게 발목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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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30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던 순간, 기다리고 있던 중앙일보 기자들이 “홍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소리쳤다.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그가 1999년 보광그룹 탈세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갈 때 중앙일보 기자 수십명이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한 일화는 아직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삼성 X파일 사건 역시 그의 오점이다. 자본-언론-정치 권력의 ‘내부자’로서 살아온 그가 과연 국정 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 우리 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수, 2017/04/0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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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지난 3월 15일,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워싱턴 D.C.에 있는 후쿠야마 교수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3세로, 현재는 스탠퍼드대 민주주의ㆍ개발ㆍ법치주의 센터에 있다. 1989년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라는 논문을 통해 인류의 역사의 진보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최종 승리로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주요 저서로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정치질서의 기원’ 등이 있다. 

페스트라이쉬: 청년들은 요즘 덫에 걸린 느낌입니다. 불리한 시스템에 갇혀 있고, 나갈 방법도 없어 보입니다. 청년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 심각한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청년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우선순위와 실제 정책 사이 격차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동시장의 변화…청년세대의 불안감 가중

후쿠야마: 그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청년 세대는 체제로부터 항상 소외감을 느껴왔습니다. 젊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정치에 직접 참여할 만한 사회적 지위와 자격이 없습니다.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느끼는 청년들이 정작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합니다. 역사상 항상 그랬고, 현대에 들어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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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그러나 노동시장 자체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국가는 미국이지만, 아시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기업이 내세우는 조건은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ematics)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일자리가 많아졌습니다. 원하는 전공이 아니면 이력서를 검토해 주지도 않는 세상이 된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서 청년들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혹시라도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종일 공부만 하는 청년도 생겼습니다.

아시아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 심하죠. 이에 더해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 변화와 격동이 몰아쳤습니다.

아직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만큼의 파괴적 정치 변화를 겪지 않았죠.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중의 참여가 제한되었고, 청년층 대부분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우선순위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탄핵 시위를 보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황도 빠르게 변해갈 수 있습니다. 정치에 관해 보편적 진실이 하나 있다면, 모두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여도 어느 순간 영감을 받으면 갑자기 열렬히 참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표면만 보고 아무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지난 두어 달 동안 정치 및 사회 흐름에 대한 한국 학생의 관심이 증가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자발적으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의지를 느꼈는데요.

후쿠야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그런 변화를 일으켰을 거라 확신합니다.

페스트라이쉬: 흔히들 ‘변화’라고 하면 정치적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러나 정치를 몰아가는 건 거침 없는 기술의 발전입니다. 정보를 기록∙이전∙조작하는 기술이 폭발적 속도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라는 보편적 추세는 정치와 사회의 작동 원리에, 그리고 이와 관련해 기업과 가족이 기능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나요?

가짜 뉴스 판 치는 세상…정보 옥석 가리는 능력 갖춰야

후쿠야마: 인터넷의 정치적 영향을 살펴 보도록 하죠. 1990년대 인터넷이 대중화됐을 때에는 인터넷으로 대중의 참여가 확대되어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란 낙관적 시각이 대다수였습니다. 정보도 일종의 권력이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확대되면 대중이 더 많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분명, 인터넷이 정치적 결집과 행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적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권위주의 정부를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했던 사례도 있었죠.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부상하는 걸 보게 됩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바로 ‘가짜뉴스’죠. 정보를 걸러주는 문지기(gatekeeper)나 사실을 확인해주는 기관, 전문 기자 등 중간 매체가 인터넷 때문에 자취를 감추면서 나타난 결과죠.

완전히 거짓인 글이 섞여 있는데도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면 다 타당하다고 믿어 버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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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mediatoday.co.kr)

특정 정치인의 이익에 부합하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각국에서 등장했습니다. 이런 정치 공작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바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죠.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죠. 미국에서도 지난 1년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동시에 언론의 데스크나 정보를 선택하는 문지기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언론 권력이 사회적 논의를 제한하고 미국 국민의 생각을 단순하게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이 주장은 어떻게 보시나요?

후쿠야마: 문지기 없이 개인이 정보를 직접 생성하고 공유∙배포할 수 있게 된 건 분명 인터넷 덕분입니다. 따라서 인터넷의 파급력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면 복잡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뉴스를 만들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죠. 그러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뉴스 내러티브를 마음대로 조작하게 된 건 인터넷이 도입됐을 때만 해도 생각도 못한 부작용일 겁니다.

페스트라이쉬: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해줄 말이 있나요?

후쿠야마: 동시대의 흐름과 이 흐름이 내게 줄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웹서핑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보다 진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죠.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탐색하려면 정보의 신뢰도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보 출처를 평가할 수 없고 독자를 조종하기 위해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파악할 수 없다면,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일단, 정보의 출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고 어떤 정치 논리와 수사학을 이용하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사실 확인에 대해서는 대학교 때 받은 교육이 도움이 되죠.

그런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주에서 어떤 사실을 알 수 있고, 신뢰할 만한 인용구가 무엇인지 눈치채는 능력은 인터넷에 산처럼 쌓인 가짜뉴스를 마주쳤을 때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도 변화를 가져왔죠. 스마트폰은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데이트를 하면서 스마트폰만 보는 커플을 많이 봤습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로맨틱한 카페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더라구요.

기술이 인간 사회와 인간이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분명 사람들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 변화는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분명 변화가 있을 겁니다. 이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힘들 뿐입니다.

페스트라이쉬: 상당히 심오한 변화가 있을 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세계 최고의 대학에 가서 인문학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죠. 철학이나 역사, 문학, 예술을 제대로 공부하면 좋을 겁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시대 정치적 변화와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배움을 이어갈 방법은 무엇일까요? 배움이나 독학을 위해 필요한 태도나 전략이 있다면?  

후쿠야마: 요즘은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어느 때보다 많죠. 의욕만 확실하다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온라인 학습자료가 풍부합니다.

칸 아카데미와 에드엑스(EdX), 코세라(Coursera) 등의 온라인 프로그램은 수준이 아주 높고, 원하는 수업은 무엇이든 들을 수 있습니다. 단,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확인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목적의식이 확실하고 본인을 다잡을 수 있다면, 유튜브에도 도움되는 자료가 많습니다. ‘하우 투(How to)’ 동영상 시리즈도 꽤 도움이 되더라구요. 뭘 찾고 싶은지 확실히 안다면 인터넷에는 많은 보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다면, 혼자서도 배울 수 있는 길이 어느 때보다 많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상세하게 들어가는 정보는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하죠.

도전받는 민주주의…청년세대의 정치참여 중요

페스트라이쉬: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도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자주 쓰는 말인데,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지금의 지정학∙기술적 변화가 계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민주주의는 어떻게 규정될까요?

우리는 뚜렷한 정의 없이 ‘민주주의’란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선거를 한다고 민주주의는 아니죠. 스탈린도 선거를 했습니다만, 자유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았죠.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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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report.dbpia.co.kr)

후쿠야마: 구체적으로 말해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상호작용하는 다음의 세 가지 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선, 정부가 필요합니다. 현대적 의미의 정부죠. 어떤 성격도 없는 중립적 체제입니다. 정부는 사회를 보호하고 법을 집행하며, 기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권력 분배 제도입니다. 특정 정치인의 지배력에 대한 의존 없이, 모든 시민을 상대로 평등하게 해당 작업을 수행해야 하죠.

두 번째는 법치주의입니다. 행정부 권한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걸 막기 위해 권력을 제한하는 투명한 법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견제가 분명히 이루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거 등의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지도층이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민주적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만 빠져도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강력한 정부, 법치주의와 함께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가 조합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입법 및 집행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과 역량을 가지되, 법과 민주 선거를 통해 제약을 받음으로써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균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균형점을 찾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개방적인 사회라도 끊임 없이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죠.

페스트라이쉬: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많은 도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우선, 현대적 정부를 구성하는 일 자체가 어렵습니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경우 특히 그렇죠. 부패는 전세계 많은 정부의 정통성을 갉아 먹는 보편적 문제입니다.

동북아시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해서 조직적으로 부패한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이를 위해서는 수 세대에 걸쳐 장기적으로 정치∙문화적 투쟁을 이어가야 합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새롭게 부상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개도국의 부패 문제와 성격이 매우 다르다 하겠습니다.

제가 설명했던 자유민주주의의 3대 요소를 다시 보자면, 요즘 서구에서는 정치 시스템 내에서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를 공격하는 새로운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선, 국수주의적 포퓰리즘 정치인이 정부를 시원하게 공격한다는 이유로 당선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국민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시작한 포퓰리즘 논리는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과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이 뒤를 이어 사용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습니다. 모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정통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유권자 층에서 폭 넓은 지지를 얻어 당선이 되긴 했지만, 이후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런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권력의 한계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에 인기를 이용해 정부의 권위를 끌어내릴 겁니다.

이들은 언론과 야당을 공격해 손발을 묶으려 합니다. 자신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법부 권위를 훼손하고 타락시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모범 사례였던 국가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봐 두렵습니다.   

페스트라이쉬: 그럼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도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언론을 통해 정치 뉴스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청년들이 일상에서 좀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치 문화를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요?

후쿠야마: 역사적으로, 학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학생 운동이 있었습니다. 국가 개혁과 민주화 운동에 학생들이 앞장 섰던 사례가 많습니다.

요즘 정치 참여절차가 정도를 벗어나는 건 학생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지지할 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면, 정치적 인식과 함께 효과적인 정치조직 구성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은 모래 속에 얼굴을 묻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척 하거나 출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선 안 됩니다. 끈을 놓지 않으면서 내가 참여해야 사회의 정치적 절차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학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취직을 하려면 경영이나 기술 관련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납니다.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도 생존을 위해 관심을 접고 학문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일본과 한국, 중국에서) 생활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죠. 왜 우리는 점점 인문학과 멀어지는 걸까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회계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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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withzone.net/)

후쿠야마: 노동시장의 성격이 변한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컴퓨터와 자동화 기술이 저숙련 일자리를 대체하며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보다 최근에는 자동화 기술이 한때 아주 안정적이었던 중산층 일자리까지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화 흐름 때문에 STEM 역량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게 된 거죠.

전반적인 일자리 부족 현상과 함께 특정 분야, 특정 기술에 대한 수요가 교육 체제를 뒤흔들었습니다. “어디서 일자리를 얻어야 하나?” 불안감에 휩싸인 학생들은 그 이상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40년 전만 해도 영어나 철학을 전공해도 졸업 후 기업에서 괜찮은 관리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정량적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면, 설사 인문학이 최고의 대학 교육이라 해도 기업 문턱을 밟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전반적으로 STEM에 대한 집중은 한때의 유행으로 볼 수 있고, 지나치게 강조된 면도 있습니다. 수요의 원칙이 가지는 압박 때문에 학생들은 인문학을 외면했습니다. 동시에 인문학 교수진도 상황 개선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죠.

그 동안 인문학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여성학이나 민족학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방식에 정치적 편향이 작용하면서 문학과 철학의 해석은 학생들의 불안감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다른 세상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을 겁니다.

학생들이 17세기 스페인 연극에서 나타났던 퀴어 문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페스트라이쉬: 교수로서 저는 아시아연구 저널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고 싶은 논문이 별로 없더군요. 글이나 주제가 현실이나 일상적 경험과 너무 동떨어져서 학문을 업으로 하는 저 조차도 논문을 읽는 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후쿠야마: 그런 추세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학계는 자신의 학문 분야와 권위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기술적이거나 방법론적으로 굳어지고, 애매한 전문용어로 논문을 가득 채우죠.

그 결과 일반 대중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학자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심해지면서 교육에 큰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아적 가치는 대안이 될 수 있나

페스트라이쉬: 아까 말씀하신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개념과 관련된 서구 문화는 전세계 공통의 가치와 원칙을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경제학과 정치학 이론부터 호텔 장식과 기내식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는 그대로 글로벌 표준이 되었죠.

그러나 동아시아도 역사적으로 뒤처진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2000년을 보면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경제∙문화적으로 대부분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유교와 불교 전통 안에서 나름의 보편적 가치와 정치 원칙을 수립하고 있었으며, 일부 가치는 대단히 정교한 수준으로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할수록 글로벌 기준 또한 변화할 거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교나 유교 전통은 어느 정도까지 세계 공통의 기준 및 규범으로 통합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절대적인 한계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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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포린어페어’지에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리콴유 싱가폴 총리가 ‘문화는 운명’이라며 아시아적 가치의 특수성을 주장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반박하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병행발전’을 주장했다.

후쿠야마: 아시아 문화가 궁극적으로 어떤 지위를 누리게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의 문화적 규범은 아시아 외 지역에서 영향력이 미미했습니다. 물론 인도 아시람으로 여행을 가거나 바둑을 배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문화 담론이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차원에서 생각해볼 때, 아시아는 제가 있는 지역의 주류 문화에서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모호한 정체성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아시아 문명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국가적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중국의 지도층이 19세기 백인 남성 두 명의 생각을 지도로 삼아 정책을 만드는 겁니다.

유교적 가치관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건성으로 하긴 했지만, 중국 지식인과 정치인은 유교적 가치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엄청나게 간극이 큰 두 개의 지적 전통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거죠. 그래서 중국 문명에 대해 일관성 있는 시각을 제시하기 힘든 겁니다.

일본과 한국은 지난 60년간 미국 및 서구 제도와 훨씬 많이 접촉하면서 서구의 가치관과 관습을 중국보다 많이 흡수했습니다. 이를 자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결합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서구인들은 요즘 일본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압니다. 이들 문화 장르에 일본적 요소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장르의 시작점 자체는 서구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죠.

이제 세계 어디에서든 100% 고유한 문화라는 건 더 이상 찾기 힘듭니다. 모든 전통이 복잡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했죠. 이제는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삼을 지에 대해 아시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들 가치가 전세계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지 여부는 그 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이고, 아직은 그 단계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미래

페스트라이쉬: 중국의 경제 발전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고, 비즈니스나 문화 상품에서도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중국과 중국의 의도에 대해 서구가 아직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보는데요.

어쨌든 전세계 인구의 1/6을 차지하는 중국은 세계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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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 권력의 이동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죠. 역사적으로 봤을 때 권력의 이동은 끝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신흥 강대국이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 평가하거나 ‘지는 해’가 된 기존 강대국이 힘을 잃지 않기 위해 버티면서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게임은 미묘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오판하기 쉽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면서도 새로운 강대국의 평화로운 부상을 수용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중국이 이 문제를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전의 신중함이 줄어들긴 했지만요.

페스트라이쉬: 최근 중국이 미국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미국이 다른 국가를 평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국을 평가하겠다고 나섰는데요.

후쿠야마: 전반적으로 중국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안을 다루고 있으며,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면 격한 반응이 나올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태가 어떻게 흐를 지는 일단 지켜봐야겠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청년들이 국수주의 논리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이전 세대보다 많아졌습니다. 걱정되는 현상입니다.

국가에 대한 새로운 자의식과 타국에 대한 적대감을 일깨워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결과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국수주의적 미사여구와 정치 논리를 앞세운다면, 다른 국가도 이에 반응하게 됩니다. 그럼 논의는 엉망이 되고 비생산적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국수주의적 주장을 통제할 의무를 가집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밟아나갈 단계들은 분명합니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기록하기 위한 독일과 폴란드의 노력이 가장 좋은 예입니다.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이후 폴란드를 점령하며 곳곳을 파괴했죠. 복구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고, 공산주의 지배를 받으며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인 시간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폴란드는 드디어 온전한 독립국이 되어 유럽연합에 가입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는 과거의 슬픈 원한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죠. 양국의 역사 교과서 공동편찬위원회를 설립한 겁니다. 양국의 동의를 바탕으로, 당시 있었던 사건의 순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설명해줄 공통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함께 모여 역사를 연속적으로 논의하는 일이 불가능할 겁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은 공통의 역사 논의를 위해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하지 못하니까요.

페스트라이쉬: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도 공통의 역사 교과서 편찬을 논의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후쿠야마: 물론 있었겠죠. 그러나 중국과 일본, 한국의 지도자들이 공동으로 편찬∙감수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동북아시아에 필요한 일이 바로 이거죠. 지금 각국은 자신의 편향적 시각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맞춰가기 위한 노력 없이는 3국 간에 어떤 실질적 이해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역사적 담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베 행정부는 역사적 사건의 상당수를 은폐하는 교과서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기존의 역사 교과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벌인 일을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은데 말이죠. 

다른 국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 또한 지난 15년간 역사적 내러티브에서 일본을 공격하는 표현을 늘려왔습니다. 

간극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요. 어떤 국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촛불시위,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

페스트라이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탄핵 결정으로 한국에서는 희망적 분위기가 생겨났지만, 국내 사태에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립이라는 국제 정세까지 더해지면서 불안이 가중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졌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한국 청년에게 줄 조언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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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YTN)

후쿠야마: 저는 한국을 지켜보며 큰 희망을 얻었습니다. 2016년 11월 한국을 방문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던 대규모 거리시위를 직접 봤습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민이 참여를 해야 합니다.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부는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안정을 회복할 절차는 이미 제자리에 있습니다. 대선을 진행하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고, 개혁안도 새로 마련될 겁니다.

한국 국민은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지,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정부는 엄청난 부패 사건에 휘말렸지만, 결국 의미 있는 방식으로 대응을 해나갔으니까요.

그것보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더 걱정입니다. 아직 어린 김정은은 아주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 받지 못하고 동북아시아 상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부가 취임했죠.

이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 개월간 침착하게 상황을 유지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페스트라이쉬: 청년을 위한 글을 쓸 때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청년을 위한 글을 쓸 때 제가 좋은 조언을 드릴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청년을 위한 글을 잘 쓰지 못했거든요. 아무래도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년들은 이제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가 했던 방식대로 정보를 소화하지 않죠.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성공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청년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아서 전달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책의 내용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 2017/04/0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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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북한같이 작고 가난한 나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그렇게 당황스럽지 않다. 당황스러운 것으로 따지면, ISIS나 트럼프의 당선만큼 당황스러운 일이 있겠는가.

진짜 두려운 것은 미국의 전쟁 상인들이 한국을 이용해 결국 우리 모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뜨릴지 모른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은 북한에 폭탄과 병원균들을 떨어뜨려 생지옥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진드기 병 등이 창궐했는데, 냉전으로 세뇌된 헐리우드 영화들은 이를 ‘공정한 댓가’(fair trade)라고 묘사했었다.

그 이후로 지금껏 미국은 전쟁을 끝내고 화해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남북한의 평화를 위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북한에 대한 핵공격 연습을 멈추면 북한도 핵실험을 멈추겠다는 북한과 중국의 제안을 미국은 번번히 무시했다.

북한과 중국은 핵무기 선제사용을 포기하려고 했다. 반면 미국은 핵무기 선제사용 계획을 세웠고, 한국은 제주에 해군기지를 세우고, DMZ에 정찰드론을 띄우고, 사드를 배치했다.

미국은 사드를 미사일 방어체제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것을 미사일 공격체제라고 믿는다. 또 미국은 사드를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그것이 중국을 포위하고, 선제타격 뒤 반격을 막으려는 수단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미국은 계속 중국과 북한, 심지어 한국의 출구를 막고 있고, 러시아와의 3차 세계대전 망상에 빠져 있으며,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서의 수많은 전쟁을 연장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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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방미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는 사드배치 반대 한국대표단의 모습

미국 현지시각으로 5일, 몇몇의 한국 대표단이 백악관 앞에서 반대시위를 벌였다. 이 가운데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은 나에게 이런 성명서를 보내왔다.

 

“한국인들은 오는 6-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이 만나 한반도의 사드배치에 대해 어떻게 논의하는지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의 정상적인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사드를 배치하려고 한다. 최근 이를 추진했던 한국의 대통령이 부패혐의로 탄핵당했고, 오는 5월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그런데도 중국은 한국에 대해 경제보복을 하고 있다. 미국은 사드배치를 중단해야 하고, 중국은 경제보복을 멈춰야 한다.

한국의 시민들은 평화적인 촛불시위로 부패한 대통령을 몰아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일제 식민지 이후 한국 시민들은 독립된 통일국가를 세우고 싶었지만, 미국과 소련의 군사점령, 그리고 미중 간의 전쟁으로 그 꿈은 좌절됐다.

한국인들은 조국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지난 70년 동안 매일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미국과 중국은 이러한 역사적 범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들을 돕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5일, 오전11시30분∼오후1시 사이 백악관 앞 시위에 참여하거나 또는,

둘째, 오는 7-9일, 알라바마 헌트스밸리에서 열리는 회의와 집회에 동참하는 것이다. 

목, 2017/04/0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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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시진핑이 플로리다에서 개인적 친분을 쌓았지만, 북핵문제 해결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중국의 ‘쌍궤병행’(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정책에 동의하지 않았고, 시진핑도 “중국이 나서지 않으면 미국이 나서겠다”는 미국의 태도에 동의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첫 번째 협상에서 양측은 별 소득없이 서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2.0을 계획하고 있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찾는 것은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지난 5일, 38노스(www.38north.org) 드루리(J. DeLury)는 이런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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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YTN)

북한 문제를 악화시킨 미국의 정책

첫째,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2001년, 미국은 북한, 중국, 한국, 미국 등이 지난 8년 동안 추진해왔던 복잡한 협상을 깨뜨렸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는 많은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미사일협정(ABM)을 파기한 뒤 새로운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이 사실은 분명하다.

9·11사태 이후 두드러진 이런 정책은 동북아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다. 그 이후로 미국은 그런 정책이 실수라는 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고, 북한과 협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미국도 절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언론, 학자, 의원들은 잘 모르는 이런 역사를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을 불안 속에 고립시켰고,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해왔다.

니키 헤일리 UN주재 미국대사는 김정은은 비정상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이 기존 정책을 뒤집음으로써 동북아의 안보와 발전, 그리고 핵무기 비확산을 위태롭게 했다는 점을 감추는 것이다.

한국을 소외시킨 미중 대화

둘째, 지난주 트럼프와 시진핑의 협상은 한국을 소외시켰다. 한국의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협상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퍼져있다. 부시 행정부의 합의된 틀(Agreed Framwork)이란 개념 역시 이런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중국의 민족주의자와 미국 대통령이 공유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지난 6일 트럼프와 시진핑 회담 중 이뤄진 미국의 시리아공습으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시리아 공습이 김정은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난 수 개월 동안 NSC는 무엇때문에 북한 정책에 대한 재평가를 했단 말인가.

트럼프, 북한과 대화에 나서라

트럼프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현실적인 행동은 새로운 북미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은 아직 테이블에도 올라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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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각각 미사일과 현금뭉치를 말로 내세워 한국 지도 위에서 게임하는 모습을 그린 뉴욕타임즈의 만평.

트럼프와 시진핑은 한국을 소외시킴으로써 손실을 입었다. 한국에서 전직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만간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워싱턴D.C.에 퍼진 ‘북한위기’설은 진실이 아니다.

몇 달 전 유명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의 평가“라고 말했다. 만약 다른 나라가 그랬다면, 연구와 개발로 평가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개발하는 다단계 ICBM이 실전배치되려면 아직도 몇 년을 더 걸릴 것이다.

중국의 경우 한국에 대해 경제보복을 하면서 미국과만 협상하는 것은 한중 간 전략적 관계에 부정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을 연구한 입장에서 보자면, 한중 간 전략적 관계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시진핑은 그런 장기적 관점에서 행동하는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과 중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이 동맹국인 자신을 소외시킨 것은 충격적이다. 이것은 과거 열강들이 한국의 이익을 침해했던 일들과 비슷하다.

또한 이번 일은 16년 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점진적 통합에 대한 희망이 무르익을 때, 미국이 이를 망쳤던 일을 연상시킨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어떤 의미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 한국과 미국은 좀 더 중도적이고, 뛰어난 정치력을 가진 대통령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당시의 일로 미국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트럼프의 유일한 길은 에드 마키 상원의원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다. 그는 시진핑이 충고한대로,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에게 진짜 정치인의 본능이 있다면, 지금이 그 본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월, 2017/04/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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