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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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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다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2- 10:42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아침. 서울 부암동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여시재 대화당(大化堂)에서 개벽학당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하자센터 출신을 비롯한 여러 벽청(개벽하는 청년)들과 그들을 이끄는 이병한 선장. 사공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선장의 출항사를 지켜보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보고 들은 올해의 3.1운동 행사 중에서 가장 빛나는 축제였습니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삼일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장을 빌리면,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개화의 시대가 거(去)하고 개벽의 시대가 래(來)하도다.”에 다름 아닙니다.

개벽학당 개강식

이날 행사에 초대받은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님은 “큰일을 하셨다”고 이병한 선생님을 격려하였습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5년 전을 돌아보았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생활을 막 시작한 1994년, 지금의 개벽학당 청년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입니다. 저는 대학로에서 막 개원한 도올서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때의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자리만 뒤바뀌었을 뿐입니다. 도올서원 학생에서 개벽학당 선생으로-.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의식은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서원과 학당을 오가고 있을 것입니다.

도올서원은 굳이 말하자면 동양학, 중국학의 범주였습니다. ‘서원’이라는 말에서부터 유학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이에 반해 개벽학당은 한국학(K-Studies), 개벽학의 산실입니다. 동양학에서 한국학으로, 중국학에서 개벽학으로의 전환. 지난 25년 동안의 변화이자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벽학당 당장 로샤(이병한)

 

개벽은 나이순이 아니다

제가 개벽학당의 출항을 3.1운동 100주년의 가장 빛나는 사건이라고 선정한 것은 ‘기념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재양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기념행사에는 청년들이 없지만 개벽학당에는 청년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양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출범식에서 보여준 학동들의 몸짓은 젊고 발랄했습니다. 신명이 넘쳐났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을 사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들을 받아줄 마당이 없습니다. 어른들의 나라이자 기성세대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낼 젊은이들을 길러낼 ‘뜻’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네들이 다 ‘해 쳐먹고’ 있는 느낌입니다. 개벽은커녕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정신세계가 20세기의 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절망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북관계보다 훨씬 비관적입니다. 남북관계는 기대라도 하게 만들지만, 한국사회는,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인문학계는 활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통유학과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삼각구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한국철학사 서술에서는 여전히 100년 전의 실학담론과 주리주기론의 틀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삼일독립선언서」에 두 차례나 나오는 ‘독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개벽정신이 만개한 한국근대사상은 주류 학계에서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고, 최근에는 ‘개벽’이라는 말을 쓰면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한심한 수준입니다. 총체적인 문제로는 한국사상 연구가 분야별로, 인물별로, 종교별로, 학문별로 쪼개져 있어서 ‘한국학’이라는 큰 틀을 고민하는 학자가 없습니다. 산적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개벽학당 모시는선생님 새별(조성환)

 

동아시아담론의 허구

동양포럼에서 어느 중국인 학자가 지적했듯이, 전 세계에서 개화의 독을 가장 심하게 먹은 나라가 한중일 삼국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중독이 심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문학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이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처럼 식민지를 당한 경험도 없고 분단의 현실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개화학에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아시아론에서 벗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적어도 1860년 동학 창시 이후부터는 한중일 삼국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 선언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를 직시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유교’나 ‘동아시아’라는 범주로 한중일의 근대를 논하거나 동아시아의 미래를 모색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인도나 아프리카와 같은 이른바 ‘제3세계’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존의 동아시아담론은 유학 아니면 개화학 중심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개벽학이 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도 이성적 근대가 아닌 영성적 근대였습니다. 동학에서 ‘하늘’을 불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일운동에서 기독교가 참여한 것도 “새 하늘 새 땅”을 건설하고자 하는 개벽정신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동서합작’인 셈입니다. 과연 동시대의 중국이나 일본에 이런 합작품이 또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길이자 개벽 정신입니다.

개벽학당 운영위원장 아띠(황지은)

 

청년들의 눈물, 어른들의 나라

개벽학당 첫날, 오후에 있었던 세미나 시간에서 몇몇 벽청들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북받쳐서 말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대안학교 출신으로, ‘자발적 고졸’로 살아가는 서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당연히 대학생인 줄 아는 한국사회에서 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대학에서 생활하는 저로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총장에서 시작해서 대학교수, 대학박사, 대학원생, 대학생 등등, 온통 ‘대학인’들만 접해 온 저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유교경전에 대학이 있어서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가 되었나.”

그리고 이틀 뒤에 참석한 협동조합연찬 모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50대 이상이었는데, 유일하게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울음을 터트린 것입니다. 자기랑 같이 활동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쏟아낸 눈물이었습니다. 그나마 자기는 이런 자리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기성세대로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또 하나의 과제가 생긴 셈입니다. 이전부터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인 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기성세대의 독재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삼일독립선언서」에서 자부한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신동엽의 _금강_을 읽고 있는 벽청 하야티(김지현)

 

동학혁명에서 삼일혁명으로

최근에 있었던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멋지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과연 창비와 세교연구소에서 다년간 쌓아온 내공이구나 싶었습니다. 저 역시 만북울림행사와 선언문에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종교’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은 행사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선언문의 내용도 지적하신 대로 ‘개벽선언문’에 다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벽’이라는 말이 모두 9차례나 사용되고 있을 정도니까요. 만약에 종교단체의 선언문이었다고 한다면 ‘개벽’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개벽’이나 ‘손병희’가 빠진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동학혁명과 삼일혁명을 나란히 병기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삼일독립운동을 동학농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런 역사관이 사회 전반에 퍼졌을 때, 대통령의 연설문에도 개벽이나 손병희의 이름이 들어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도삼장>의 첫머리에서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점도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개벽학이 요청되고 있다는 신호에 다름 아니니까요.

수양하자 시간, 하와이의 영성 댄스인 훌라 수업

 

동학을 품은 서학

종교단체가 기획한 3.1운동 100주년 행사 중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원도 원주에서 발행하는 농촌과 목회의 <3.1운동 특집기획>이었습니다. 올 봄에 나온 최신호에서 <3.1운동, 동학,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기독교를 비롯해서 동학, 천도교, 장일순에 관한 총 6편의 글을 싣고 있습니다. 3.1운동을 둘러싸고 자기 교단의 활동을 강조하기 쉬운데, 오히려 다른 교단인 천도교와 그것의 모태인 동학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태도가 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머리에 나오는 한경호 편집위원장님(횡성영락교회 목사)의 권두언 <농(農), 동학사상, 주체사상>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일부만 떼어 오기가 아까워서 통으로 가져와 봅니다.

나는 동학(천도교)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자랐다. 춘천에서의 어린 시절 사창고개 넘어가는 곳 어디에 천도교 교당(모임장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주위에 천도교 관련자가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통해 겨우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조선후기 농민들의 피폐상, 조선왕조의 몰락, 크고 작은 농민들의 봉기들,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얼어난 동학혁명, 이후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됐다는 사실 정도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청년시절에는 동학혁명이 농민혁명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보게 되었다. 동학보다는 농민전쟁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수운과 해월의 말씀과 행적도 농민봉기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학은 이제는 시대적 사명을 다한 사상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12월초, 첫 목회지로 원주 호저면의 호저교회에 부임하였다. 부인한 지 얼마 안 된 1989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날은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교회 앞 찻길로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고산리에서 무슨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일순 선생이 중심이 되어 원주의 고미술동호회 회원들이 해월 최시형 선생이 잡혀가신 호저면 고산리에 그를 기리는 비(碑)를 세웠다는 것이었다.

이후 생명운동을 하면서 장일순이 해월 사상에 대하여 설명한 내용들을 보게 되었다. 장일순은 한국 생명운동을 처음으로 주창하고 한살림운동을 촉발시킨 생명사상가인데 해월의 사상을 많이 언급하고 있었다. 해월 선생의 사상을 장일순을 통해 새롭게 접하게 되었고 크게 공감하였다. 그러고 보니 장일순은 해월을 현대 한국사회 생명운동의 사상적 원조로 불러내어 부활시킨 분이다. 부임한 호저면이 해월 선생이 은거하며 포교하다가 잡혀간 곳이고, 원주가 장일순 선생이 살고 계신 곳이라는 사실은 부임하고서야 알았다. 생명운동을 중심적인 선교과제로 삼고 실천하고 있는 나아게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요,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것은 3.1운동 100주년과 동학, 그리고 기독교의 관계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학은 그 세가 왜소해졌고, 반면 기독교는 강성해졌지만 민족 자주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그 해결을 내생적, 자주적으로 풀지 못하고 외생적, 비자주적으로 해결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불교문화가 쇄락하자 유교문화를 수용‧대체하였고, 유교문화가 쇠퇴하자 서양 기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왔다. 반면, 동학은 유‧불‧선 3교와 기독교까지 아우르는 독자적인 사상을 제시하면서 구한말 당시의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에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후 천도교가 대중종교로 발전해가지 못한 점은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앞으로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데 있어서 기독교권이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족의 전통사상 특히 동학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의 한국근대사 속에서 민족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몸부림친 내생적 사상운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전 지구가 생명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동학의 생명사상은 더욱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생명을 농본주의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일이다.

3.1운동에 기독교가 기여한 것도 많지만, 천도교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상황에서는 천도교의 교세가 기독교보다 훨씬 강했고, 재정적인 능력도 컸으며, 보다 주체적이고 계획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최근 기독교의 장로 몇 분이 동학(천도교)으로 옮겨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자주적 영성, 영혼의 탈식민지화이다.

우리는 그동안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신학적 작업에 소홀하였다.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서 상대방과의 대화에 소홀하였고, 그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지 못했다. 유명한 신학자인 폴 니터는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너’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나’를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기독교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농(農)의 시각으로 성경을 새롭게 보고, 동학사상과 주체사상을 아우르는 신학적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글입니다. <선언문>이라기보다는 <고백록>에 가깝습니다. 젊었을 시절, 개벽학으로서의 동학보다는 개화좌파로서의 농민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고백, 아니 개벽학 자체를 몰랐다는 고백이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기독교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전망한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기독교와 천도교의 관계를 “붓다 없이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는 폴 니터의 고백으로 대신하고 있고, 남한학과 북한학을 아우르는 한국 신학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동학이 서학을 품었다면 지금의 서학은 동학을 품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라면 <개벽포럼>에도 한 번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세기의 삼전(三戰)

마지막으로 손병희 선생의 「삼전론」과 선생님의 「서신」에 힘입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삼전(三戰)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역시 도전(道戰)입니다.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의 선언문에서도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고 설파했듯이,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철학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강성원 교무님의 언어를 빌려서, ‘개벽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전(人戰)입니다. 개벽시대를 개척할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개벽학당과 같은 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은 심전(心戰)입니다. 한경호 목사님도 언급하신 영혼의 탈식민지화입니다. 중화(中華)와 개화(開化)의 포로와 노예에서 벗어나고, 공자(孔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술이창작(述而創作)의 마인드로 전환시켜서, 「삼일독립선언서」에서 표방한 ‘독창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 삼전의 내공이 쌓이면 한반도에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개벽학당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큰 걸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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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안보 보좌진들의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과 행보는 매우 걱정스럽다.  문제를 너무 안이하고 단편적으로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국방부의 보고과정에서 4대 발사대의 한국내 반입을 고의로 누락한 사건을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항명사건으로 판단하고 철저하고 신속한 조사를 명했을 때만 해도 상당수의 국민들은 사드 배치의 전반적인 조사를 통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줄 중대한 조치가 나오기를 내심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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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골프장에 4기의 발사대를 비공개로 추가 반입했으면서도 이를 새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은 국기문란 행위에 해당한다. 그 배후로 김관진 전 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목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신문)

그러나 국방 예산권을 쥐고 있다는 미국의 일개 상원의원의 청와대 면담 이후 전반적인 흐름이 변하면서 조사의 범위를 보고누락의 과정과 환경영향 평가라는 실무적인 주제로 제한하면서 결국 시간을 끌어 국민의 여론을 잠재우며 사드 배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품게 한다.

문재인정부, 사드 배치 근본적 해법 모색해야 

발사대 4대의 반입에 대한 보고누락과 배치에 대한 환경영향은 당연히 실무적 과정으로 조사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실무적 절차와 내용을 넘어서 핵심적인 문제로 미국의 중국과 북한을 향한 미사일 방어체계에 한국을 일방적으로 편입시키고 있는지 여부와 앞으로 전개되는 미일 합체적 군사동맹체계에 한국이 하위적 동반자로서 종속되고 있는지 과정을 살펴보면서 문재인 정부는 자주국방과 주권외교라는 관점에서 당당한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민적인 동의를 구해야 하는 등, 매우 중차대한 국가적이며 역사적인 아젠다로 다루어야만 한다.

내용의 격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몇 개월 전에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에 가입을 결정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집행기구를 돕기 위해 승인한 수 조원의 지원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의 일부 산업계의 이해를 해치고 자신의 정치적 판단과 다르다는 이유를 설명으로 내세웠다.

촛불시민혁명의 덕분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사드의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매국적 행위와 부패혐의 그리고 불법적이며 자주국가에게 치욕을 안긴 일련의 배치의 과정에 대해 주권적 조치로서 이를 낱낱이 밝히지 못한다면, 트럼프 정부만도 못한 치졸한 허수아비 정권으로 전락하면서, 문재인 후보를 믿고 선택한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키는 것이다.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을 구실로, 문재인 정부는 과거정권이 잘못 내린 결정은 파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난번 칼럼(‘누가 사드 배치를 원하는가‘)에서 밝힌 내용에 이어서 지난 몇 년간 벌어졌던 벌어졌던 참으로 희한한 사건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

박근혜정부의 어이없는 사드 배치 결정

첫 번째는 박근혜 정권의 사드 배치 결정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6년 중반까지만 해도 사드 배치에 대하여 미국에서 검토를 요청받은 바도 없고 미국과 협의한 바도 없고 더욱이 이를 결정한 사실이 없다고 반복하여 공언하여 왔다.

이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미국이 한국정부에 줄기차게 MD의 참여를 강요하여온 사실에 부합한 것으로, MD의 참여는 동아시아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일대의 사건이기에 양대 정권에서는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미루어 온 사안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7월에 들어오면서 MD의 편입을 상징하는 사드 배치를 기습적으로 발표한다. 더구나 사드 배치를 발표하면서도 이는 결코 미국의 MD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 가증스런 거짓말을 뻔뻔하게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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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뉴스타파)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사드를 배치하면서 MD에 편입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것은 마치 최신형 갤럭시 S8을 구입하면서 온라인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식의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고 일축한다.

앞선 칼럼에서도 암시하였듯이, 사실상 한국의 미국 MD 편입은 박근혜 정권이 2014년에 전작권의 무기연기를 요청하면서 이미 양해각서라는 형식으로 가서명하여 이루어졌고, MD 프로그램의 첨병 역할을 하는 사드 배치의 최적지가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사에 의해 바로 현재의 성주 지역로 선정되였다는 소문이 항간에 돌기 시작하였다.

성주지역이 최적지인 까닭은 이미 두 군데 X-band 레이더가 설치된 일본 본토 및 오키나와 지역과 삼각법을 형성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역이라는 설명까지 붙어 다닌다.

일본, 북핵 핑계로 군사대국화

두 번째는 일본 아베 정권하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사건들이다.

지난 5월27일자 파이낸스타임즈의 고정 칼럼인 ‘노트북’의 필자는 한 일본여성을 만난 경험을 적고 있다.

일본 사회의 오피니언 그룹에 속하는 그 일본여성은 항상 방사선에 대비하는 알약을 가지고 다닌다는 고백을 했을 때, 이를 황당하다고 생각한 필자는 당연히 몇 년 전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 때문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본 여성의 답변은 북한의 핵공격을 대비하여 상비하고 다닌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일본의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신간센의 운행을 중단하고, 방송으로 거리의 시민들에게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훈련 방송이 나가고, 각 가정마다 대피장소를 마련하도록 강권하고 있으며, 당연히 대부분 시민들은 핵공격에 대비한 비상식량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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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일본 북부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 대응태세 점검을 위해 실시한 첫번째 모의 훈련에서 초등학생 학생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사진출처: 뉴스위크)

과연 아베 정권은 정말로 북한이 일본을 선제적으로 핵공격을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의 대답은 이러하다. 간교한 아베는 북핵 실험을 구실로 전 일본인들에게 전쟁의 위험을 과장하고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하여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소위 정상국가라는 미명하에 군사대국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비판적인 지식인들과 언론의 입을 봉쇄하기 위하여 마치 과거 ‘치안유지법’을 연상하게 하는 ‘공모죄’ 법안을 발의하여 의회의 심의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미일합체적 군사동맹을 수치로 느껴오던 일본사회가 중국이 굴기하면서, 아베 정권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오히려 주도해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MD 체계의 핵심인 요격미사일을 미국의 지원 하에 일본이 주도적으로 개발해 나가고 있으며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는 가공할 미래의 무기를 구상하고 있다 한다.

아베 정권이 온 일본국민들을 공포에 몰아 놓으면서까지 실시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핵공격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미국과 연합하여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선제 공격후 예상되는 북한의 보복공격에 대한 예비훈련인 셈이다.

더 나가서는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봉쇄하면서 옛 대동아 공영권의 추억을 되살리려 하는지도 모른다.

중국, 사드를 자국 위협용으로 파악

세 번째는 중국의 대응과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조치에 관한 것이다.

중국이 경제대국을 넘어서 군사대국화하고 국제정치에서도 미국을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미국이 중국에게 상당한 군사적 실력행사를 할 것으로 중국지도부는 항상 긴장하고 있다.

중국 군사전문가들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지 않은 남중국해의 어느 지점에서 미국과 국지전적인 군사대결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예측하는 가운데, 당연히 북한의 핵무장이 가장 위험한 이슈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것은 우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사드와 함께 배치되는 X-band의 기능이 중국의 군사전략을 탐색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선발적 조치라고 파악한다.

중국은 핵전략에 관한 한, 그 동안 매우 절제하는 방어적 방식을 취하여 왔다. 미국이 핵탄두를 7000여 기 이상 보유하고 있는데 반하여, 300대 수준으로 제한하여 상대방 공격에 대한 효과적인 보복 공격력을 보유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하는데 주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동풍 3호라고 불리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2-3000 KM 안에 있는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면서 중국에 접근하는 미군의 주요 군사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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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중국은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를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최신형 탄도미사일 둥펑(東風)-16B의 실사격 장면을 관영 CC TV를 통해 공개했었다. (사진 출처: http://egloos.zum.com)

그러나 최근 미일합체적 군사력의 증강에 이어 한국내 사드 배치는 명백히 중국의 봉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중국은 북한핵에 대해서 ‘강고한 반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반면에,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 한층 강한 표현인 ‘심각한 불만과 강고한 반대’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더구나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서 여러 번 사드 배치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사드 배치를 주도적으로 수용한 점에 대해 매우 분노하였으리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최근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는 대국답지 못하고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은커녕, 한국내 반중 감정까지 야기하면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경제보복조치를 통해서 한국정부에게 사드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는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제재의 수위는 상당한 수준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사드를 철수하지 않는 한, 중국정부의 한국기업에 대한 불이익조치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또 중국 인민들에게는 한국이 적성협력국이라는 이미지를 지니게 함으로써 한국상품의 중국시장 접근에 큰 한계로 작동할 것임이 분명하다.

한편 중국은 제한적 방어개념의 핵전략에서 공세적 주도개념으로 전환하여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동풍 4호를 실전배치하고 향후 수천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동아시아의 핵전쟁 위험성이 급격히 높아지게 되었다.

사드배치, 국내 절차 따라야

마지막으로 박근혜가 탄핵되어 권력이 공백인 상태에서는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일대 변화를 가져오는 사드 배치를 더 이상 진행해서는 안되는 사안이었다.

수구적 세력의 일부에서 사드 배치는 기존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준하여 미군이 배치를 결정하면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고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철저하게 잘못된 주장이고 매우 자해적 발상이다.

우선 상호방위조약에 준한다 하더라도 국내법상의 절차와 과정을 당당하게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공석인 가운데 긴박한 유사 상황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배치를 강행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매국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위에서 누누이 설명하였듯이, 사드 배치는 단순히 군사기술적인 사안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군사전략적 균형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지정학적 조건에 일대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상호방위조약의 범위를 넘어서서 국가주권적 행위가 개입되어야 만 한다.

반드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주권적 통치적 판단이 이루어 질 때까지 진행을 당연히 보류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일정이었던 2017년말 배치계획을 앞당기어 마치 도둑고양이가 생선을 훔치는 듯 지난 3월 한미군사 훈련과정 중 일방적으로 한국 땅에 반입을 시킨 후, 차기 정권이 혹시나 무효화시킬지 염려한 나머지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4월말에 군사작전을 실시하듯 성주에 배치를 감행하였다. 이 당시 성주군민들을 적군처럼 상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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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미군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 4기의 발사대가 비공개로 추가 반입된 사실을 보고받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사진 출처: https://www.voakorea.com)

미국내 의회 보수파와 펜타곤 그리고 로마시대의 총독부를 자처하는 미태평양 사령부의 의도는 명백하다.

첫 째는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의 속국이라는 메시지이다.  두 번째는 새로 등장하는 개혁정부를 미국의 입맛대로 길들이겠다는 신호인 셈이다. 세 번째는 미국과 핵심동맹인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은 희생시킬 수 있다는 천명이다.

새로운 한미관계 정립해야 

이제 새로이 들어 선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둘러 싼 현안에 대해서 취해야 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히 절차와 과정의 문제를 넘어서서 핵심과 본질에 다가서야 한다.

우선,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배경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만의 하나, 미국과 맺은 MD 편입의 가서명이 근거라면, 새로운 정부에게 인수 인계되지 않은 가서명은 무효 임을 선언하고 자주국방의 기초위에서 새로운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MD에 편입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며 반드시 자주적인 미사일 방어체계(KAMD)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MD에 비밀히 가서명을 추진한 모든 인사들을 밝혀내고 처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탄핵되어 대행인 체제에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진행한 경위를 밝히고 이를 추진한 행위자들을 밝혀내야 한다.

더 나가서 이를 기화로 50년이 넘은 미군지위협정( SOFA)에 대한 재협상을 시작해야 하며, 전작권을 시급히 반환 받아 자주국방, 주권외교의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기초를 분명히 하되, 서로의 이해가 명백히 충돌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은 재고되어야 한다.

사드 배치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주권국가로서 분명하고 단호할 때만이 한미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면서 양국 모두에게 진정한 우방과 동맹으로서 굳건한 협력이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이러한 한미협력 관계 속에서만이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 가면서 북핵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 가능해 진다.

한국은 이제 50년 전의 나라가 아니다. 세계인들이 우러러 보는 촛불혁명의 이름으로 미국의 잘못을 지적하고 함께 인류의 미래를 열어갈 선도국가들의 깃발이다.

월, 2017/06/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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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16일, 오후 2시, 서울글로벌센터빌딩 국제회의장(☞여기)에서 ‘한국보고서 발표회’(사)다른백년 창립 1주년 행사가 동시에 열립니다. 

이번에 발표되는 한국보고서(Report on Korea)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정치, 경제, 외교안보, 교육노동 등 4개 분야로 나눈 뒤 각각에 대한 대안을 다룬 것입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해 지난 1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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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1부에서 한국보고서 발표, 2부에서는 (사)다른백년 창립행사가 열립니다. 

(사)다른백녁은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했지만, 공식적으로 사단법인 승인을 받은 6월 16일을 매년 공식 출범일로 정했습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화두로 출범한 (사)다른백년의 첫 돌인 셈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궁금하신 내용은 전화(02-3274-0100)나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문의하십시오. 

수, 2017/06/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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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안철수의 멘토’에서 ‘문재인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다. 외교ㆍ안보를 제외한 새 정부의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 자리다.

1990년대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개혁적 학자로서 대중적 명성과 지지를 쌓아온 그가 공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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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추가 인사 명단을 발표한 후 장하성 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文 대통령 삼고초려… 안철수 멘토서 새 정부 정책실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장 신임 정책실장을 모시기 위해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삼고초려(三顧草廬)였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개인적 인연이 없던 장 정책실장에게 “경제 정책 설계를 맡아달라”고 캠프 참여를 제안했다. 하지만 장 정책실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고 경쟁 관계인 ‘안철수 후보 캠프’에 국민정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4ㆍ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장 정책실장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이후 국민의당 창당으로 이어진 탈당 사태로 내홍에 휩싸였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장 실장의 생각이 컸던 때문에 허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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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안철수, 천정배, 장하성의 위기의 대한민국, 공정성장으로 길을 찾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당시 안철수 공동대표와 장하성 교수.

문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장 정책실장의 마음의 문을 두들겼고, 영입에 성공했다.

장 정책실장은 지난달 21일 인선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 감동했다”며 “문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서 뭔가 변화를 일으키고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것을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있구나 (하는) 그것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인선 발표가 있을 때까지 장 정책실장의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장 정책실장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 보인다.

2015년 펴낸 자신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진보적 정부였다고 평가 받는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집권 초기 경제정책의 구성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할 정도로 재벌에 의존적이었다”고 비판했던 정 정책실장이 문 대통령과 손을 잡고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주목된다.

독립운동가ㆍ정치인ㆍ학자… 3대를 이어온 뿌리

장 정책실장이 그려 낼 새 정부의 모습을 짐작해 볼 때 그의 집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5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호남의 대표적 명문가 품 아래였다. 할아버지 세대는 독립운동가로,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로 이름을 떨쳤다. 장 실장을 포함한 3세대는 내로라하는 학자가 여럿 배출됐다.

장 정책실장의 증조부는 구한말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일대에서 손꼽히는 만석꾼 부호였다. 증조부 슬하 형제가 나란히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작은 할아버지 장홍재씨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뒤 고문 끝에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큰 할아버지 장병준씨는 일본 니혼대를 졸업한 뒤 김구 선생 곁을 지키며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외부무장을 지냈다.

막내 할아버지 장홍렴씨는 중국 베이징국민대를 다닌 뒤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들어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검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장 실장의 할아버지 장병상씨가 철도공무원으로 집안을 건사하며 형제들을 뒷바라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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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tstory.tistory.com/113)

장 실장의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가 주축이다. 아버지 장충식씨는 한국은행 출신으로 도의원을 지냈다.

작은 아버지 장영식씨는 장면 정부에서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막내 삼촌은 3선 의원을 지낸 장재식 전 산업부 장관이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할아버지 세대에 이어 아버지 세대 4형제 모두가 6ㆍ25 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 장씨는 압록강 전투에서 기관총탄에 맞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장 실장 세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수가 여럿 있다.

장 실장의 친누나는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의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막내 동생은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다. 나란히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몸담고 있는 장하준ㆍ장하석 교수가 사촌동생이다.

소액주주 운동ㆍ기업 지배구조 개선 앞장서 온 개혁성향 학자

물론 장 정책실장은 개혁 성향의 학자로서 더 이름이 나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1990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임한 27년차 학자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하며 재벌ㆍ대기업 등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주창해 왔다.

장 정책실장은 1996년 참여연대에 몸을 담으면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경제민주화를 시민운동을 주도하며 참여연대에 ‘경제민주화 위원회’를 만들었다.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13시간 17분간 계열사간 부당거래 문제를 집요하게 따져 물어 ‘삼성 저격수’ ‘재벌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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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당시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장하성 정책실장이 삼성전자의 책임경영 체제가 미흡하다며 성토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 받은 100만여주(지분율 1.05%)가 유일한 무기였다. 2006년 제일모직 소액주주 2명과 함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게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30억여원의 배상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가(家) 편법승계의 핵심 고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이끌어낸 사건이다.

시장의 힘을 빌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를 바꿔내겠다는 게 장 정책실장의 목표였다.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후보자로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이 장 정책실장과 함께 했었다.

2006년에는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편드’(KCGFㆍ일명 장하성 펀드)를 만들어 다시금 화제를 뿌렸다.

당시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지분은 인수한 뒤 주주총회를 통해 불투명했던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으로부터 1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남양유업ㆍ일성신약 등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좋은 기업지배구조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운영위원과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는 등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 두 마리 토끼 잡을까?

대중들에게는 ‘재벌 저격수’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학자로서 장 정책실장의 관심은 항상 ‘소득 양극화 해결’에 닿아 있었다.

문 대통령도 인선 결과 발표에 직접 나서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오신 경제학 분야 석학이자 실천운동가”라며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중심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사회 정책으로의 변화와 경제 민주화, 소득주도 성장과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최고 적임자”라고 극찬했다.

장 정책실장은 최근 잇따라 펴낸 ‘한국 자본주의’ 등의 저서에서 소득양극화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 정책으로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쌓아두는 내부유보금과 관련한 초과 내부보유세 도입, 소득세 누진 강화, 법인세 개혁,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배상제 도입 등을 언급했다.

이명박ㆍ박근혜 보수정권 10년 동안 강조해 온 성장 중심의 ‘낙수효과’가 아닌, 분배구조 개선을 통한 ‘분수효과’과 실현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정책들이다.

이러한 클 틀에서 재벌개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장 정책실장은 임명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벌 때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재벌 개혁에 ‘두들겨 팬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재벌 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 등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장 정책실장이 쓸 칼은 크게 두 자루다. 참여연대에서 손발을 맞춰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한 손에,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보수 성향의 테크노크라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다른 한 손에 쥐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추게 될 장 정책실장의 칼춤이 춤사위로 이뤄져 있을지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목, 2017/06/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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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의 시민운동가인 하라 히로유키씨가 기고한 글입니다. 하라 히로유키씨는 앞으로 (사)다른백년의 고정필진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의 여러분. 저는 하라 히로유키(原 裕幸)라고 합니다. 일본인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의 소개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러 한국분들과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다른백년에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백년 측에서 무엇인가 일본에 대해서 써 달라고 해서 무엇을 쓸까 생각해 보았는데, 종군위안부라든가 북한의 핵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종군위안부에 대해서 말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 종군위안부 사죄해야

종군위안부의 문제는 일한의 문제로서 양국민의 우호에 골을 만들고 있지만, 잘못은 일본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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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중국 윈난성에서 미군이 촬영한 일본군 조선인 위안부들 모습.

원래 군대라고 하는 것은 남성 중심 집단으로서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수요가 생겨납니다. 이는 인간의 성욕이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문제로서 이 문제를 방치하면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등 폐해가 있으며, 부대를 관리하는 장교는 이 문제에 대해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 이전에 칼로 싸우던 시대라면 위안부라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행군하는 곳마다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는 사건이 빈번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종군위안부의 존재는 행군하게 되는 지역의 여성을 지킨다는 인도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위안부라는 여성을 합법적 도덕에 기초하여, 그 일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군하는 지역에서 강강당하는 여성의 피해를 다른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어떠한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 문제는 위안부가 된 여성을 어떻게 고용했는가하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즉 일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속여서 먼 전장까지 동행하게 하고, 강제로 연행했다면 이것은 인권 피해로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당시의 일본 정부가 그러한 비인도적인 행동을 한 증거는 없는 듯합니다. 저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일본측에서 종군위안부가 된 여성을 속여서 전장에 동행하게 했다는 증거는 위안부가 된 여성의 증언으로, 실제로 위안부를 산 구일본군 병사의 증언 등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증거가 없는 점이 현재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져서 항복하기 직전에 이후 문제가 될 법한 자료 등을 소각처분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로서, 증거가 없다고 해서 인권 피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일본 정부가 한 일은 동시기의 다른 소행으로부터 유추하는 것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며, 당시의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통해 타국인에게 무엇을 했는가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인 여성을 카페의 급사나, 아니면 비슷한 일이라고 속여서 먼 전장에 데리고 가, 위안부 일을 하지 않으면 일본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든가, ‘나라를 위해’라고 속여서 적함에 자폭공격을 강요한다든가 자국민을 속인 당시의 일본정부라면, 더 약한 입장에 있는 조선반도의 사람들에게 더 심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실제 당시 일본 정부는 포로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를 금지한 제네바 협정을 따르지 않은 채 태국에서 잡힌 영국과 미국인 군인 포로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킬 정도였으니 인도주의에 기초한 행동을 할 의도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비록 증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종군위안부에 대한 인권피해는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일한의 이후 우호를 생각할 경우 일본 측의 사죄는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의 양심있는 정치인들

이는 단순한 인간관계에 비추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싸운 상대와 그 이후에도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려면,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잃어버린 상호신뢰를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죄를 통해 과거의 불행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우호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성의있는 대응을 해온 이가 우리나라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입니다. 그는 일본의 수상이었던 시절에 미군기지의 피해에 시달려온 오키나와인들을 위해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에서 이전하도록 계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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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의 종미적 매스컴과 친미매국적인 관료들에 의해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가 그의 사임을 가져왔습니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하토야마 유키오의 한국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오키나와 기지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보자면, 그의 정치가로서의 위치가 보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공통적인 그의 행동은 피해자의 측면에 다가섰다는 것입니다.

한국인 종군위안부들은 과거 일본의 악정 피해자이고, 오키나와 분들은 현재 일본의 악정 피해자입니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고난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그의 행동의 근거일 것입니다. 나 자신은 하토야마 유키오씨와 일면식도 없고, 자세히 말해본 적도 없지만, 긔 행동에서 보자면,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렇게 하토야마 유키오는 국민편의 정치가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정치가이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종미 매스컴이 그에 대한 대한 비난을 집요하게 유포시켰기 때문에, 일본 내에 그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이전에도 일본에는 평가할 만한 정치가가 존재합니다. 그러한 정치가로서는 야마모토 타로의 이름이 거론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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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출신 참의원인 야마모토 타로의 모습(왼쪽). 그는 2013년 10월, 도쿄 아카사카교엔(赤坂御苑)에서 열린 가든 파티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오른쪽)에게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실상을 알리는 서한을 전달한 일로 ‘무엄하다’는 보수파의 공격을 받았지만, 진보진영으로부터는 ‘개념 의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국의 여러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야마모토 타로는 현재 일본에서 시민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희망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원래 배우로서 정치나 시민운동과는 전혀 연이 없는 인물이었지만, 2011년의 원전사고 이후 자신의 이전까지의 생활을 던져버리고 원전사고의 피해자를 위해 활동했으며 예능계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그것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참의원이 됐습니다.

야마모토의 정치가로서의 출발점도 하토야마와 같이, 피해자에게 다가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현재는 정치가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지식 면에서도 발군입니다. 또, 이전에 하토야마와 손을 잡았던 오자와 이치로와 함께 자유당의 공동대표를 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틀림 없이 국민 편의 정치가로서 평가받을 만한 정치가입니다. 한국의 여러분은 야마모토 타로를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촛불혁명, 한국 민주주의 저력 느껴 

끝으로 종군위안부의 문제에서 실제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 위안부의 명예회복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항거의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에 명예회복이나 과거의 인권피해에 대한 보상이 실현된 듯한 감이 있습니다만, 일본인 위안부의 명예회복은 결실없이 끝난 듯합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그들의 존재는 잊혀졌습니다. 간혹 대형 미디어에서 위안부 문제가 다뤄지더라도, 대개 한국인 위안부 문제이고, 더욱이 반일운동의 하나로 밖에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에 의한 인권피해라는 관점은 보통 간과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이 일본인 위안부가 잊혀지는 이유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본인이 동포의 불행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일본인 위안부의 구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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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를 몰아낸 촛불혁명은 한국 시민의 힘과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일본인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여러분들이 동포의 불행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높인 것이 위안부 문제에 빛을 던지고 해결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국 여러분들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국민의 연대이며, 이것이 국민을 지키는 기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쁜 정치에는 반드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러분, 앞으로도 나쁜 정치에는 항거의 목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동포를 지키고, 국가를 지키고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횡행하는 현재의 일본에서는 정부가 당연한듯이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된 것은 이미 늦어버린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정부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국민의 의사를 늘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근의 한국의 시위를 보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여러분들은 일본의 현실을 정치를 잊어버린 국민의 말로라고 생각하시고, 언제까지나 마음에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아래는 일본어 원문>

はじめまして、韓国の皆様。私はHiroyuki Haraと言います。日本人です。先日、とある人の紹介で初めて韓国を訪れました。その時、多くの韓国の方々とお逢いし、それが縁となり、このたびTomorrow webに寄稿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Tomorrow webのMr.Hyunki Shinさんから何か日本について書いてくださいと言われ、何を書こうかと考えていたところ、従軍慰安婦とか北朝鮮の核問題が注目を集めますと言われたので、それならば従軍慰安婦について語ろうと思いました。

従軍慰安婦の問題は日韓の問題として両国民の友好に溝を作るものですが、非は日本の側にあります。

そもそも軍隊とは男性偏重の集団であり、それゆえに必ず女性への需要が生じます。これは人間に性欲がある限り避けられない問題で、この問題を放置すると軍の士気が落ちるなどの弊害から、部隊を管理する将校は、この問題に対処する必要があります。

近代以前の刀槍で戦っていた時代だと、慰安婦と言う存在がなかったために、行軍する先々で兵士達が地元女性をレイプする事件が頻発しました。それを考えれば、従軍慰安婦の存在は行軍先の女性を守る人道的な仕組みと言える面もあります。

しかし、そう言えるには慰安婦として雇う女性を合法的、道徳に基づいて、その仕事に見合う対価を払わねばなりません。でなければ、行軍先でレイプされる女性の被害を他の女性に転化したに過ぎず、何の意味もありません。

とすると、従軍慰安婦の問題は慰安婦になった女性をどのように雇用したかと言う点が問題になります。

つまり仕事の内容を詳しく説明せず、騙して遠い戦地へ同行させたり、強制連行したら、それは人権侵害であり、糾弾されねばなりません。

とは言え、当時の日本国政府がそうした非人道的な行いをした証拠はないようです。私自身も知りません。日本側で従軍慰安婦となる女性を騙して戦地へ同行させた証拠は、慰安婦となった女性の証言や、実際に慰安婦を買った旧日本軍兵士の証言などが主なものです。

この証拠の無い点が、現在の日本政府が従軍慰安婦の強制連行はなかったと主張する根拠になっているわけですが、戦争に負けて降伏する前には、後々問題になりそうな資料などを焼却処分するのが常であり、証拠が無いからと言って人権侵害がなかったとは言えません。

ですから、当時の日本国政府がしたことは同時期の他の所業から類推するのが真実に最も近いはずで、当時の日本国政府が日本国民に何をしたか?統治下の他国人に何をしたかで判断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日本人女性をカフェの給仕やそれに類する仕事と偽って遠い戦地へ連れて行き、慰安婦の仕事をしなければ日本へ帰れない状況に追い込んだり、「お国のため」と騙して敵艦への自爆攻撃を強要したりと自国民をも騙していた当時の日本政府なら、より立場の弱い朝鮮半島の人々へはさらにひどいことをしたと考えるのが理にかなっているでしょう。

実際、当時の日本国政府は捕虜の非人道的扱いを禁止したジュネーブ協定を批准しておらず、タイ国では捕らえた英米軍の捕虜に強制労働させていたくらいで、人道に基づいた行動をするつもりでいたとは考えにくいです。

したがって、たとえ証拠がなくとも従軍慰安婦による人権侵害はあったと考えるべきであり、日韓の今後の友好を考える場合、日本側の謝罪はなくてはならないと言えるでしょう。

これは単純な人間関係に置き換えれば分かりやすいです。過去に諍いがある相手とその後も友好関係を築いて行くつもりなら、過去の非を謝罪することで失われた相互の信頼を取り戻すことができます。謝罪によって、過去の不幸にとらわれない新しい友好関係がはじまるのです。

この点、誠意ある対応をしてくれたのが我が国の鳩山由紀夫氏です。彼はかつて日本の首相であった時に、米軍基地の害悪に苦しむ沖縄の人々のために米軍基地を沖縄から移転させることに取り組みました。

しかし、残念なことに日本の従米マスコミや親米売国の我が国の官僚たちによって、米軍基地の移転どころか辞任を余儀なくされました。非常に残念なことです。

とは言え、鳩山由紀夫氏の韓国従軍慰安婦への謝罪や沖縄基地問題への対応を見るに、鳩山氏の政治家としてのスタンスが見えます。この二つの問題に共通する鳩山氏の行動は、被害者の側に寄り添った行動です。

韓国人慰安婦の方々はかつての日本の悪政の被害者であり、沖縄の方々は現在の日本の悪政の被害者です。これら被害者の方々の苦しみを何とかしたいと言うのが、鳩山氏の行動の原点でしょう。私自身は鳩山由紀夫氏と面識もなく、詳しく話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が、鳩山氏の行動を見る限り、そのように読み取れます。

このように鳩山由紀夫氏は国民の側の政治家として評価に値する政治家と言えますが、惜しむらくは我が国の従米マスコミが鳩山氏の悪口をしつこく流布し続けたため、日本国内であまり人気がないところです。

鳩山由紀夫氏以外にも、日本には評価に値する政治家が存在します。そうした政治家として山本太郎氏の名前が挙げられるでしょう。

韓国の方々には馴染みがない名前だと思いますが、山本太郎氏は現在の日本で市民運動に従事する人々から、数少ない希望として強く支持されています。

山本太郎氏は元は俳優であり、政治や市民運動とは全く無縁の人でしたが、2011年の原発事故以来、自分のそれまでの生活を投げ打って、原発事故の被災者のために活動して、芸能界から干されました。しかし、それでも活動をやめず、その活動が原発に反対する人々の強い支持を受けて参議院議員となった人物です。

山本氏の政治家としての原点も鳩山氏と同じで、被害者に寄り添い、苦しんでいる人々を助けることです。現在は政治家として勉強も旺盛で、知識の面でも抜きん出たものを持っています。また、かつて鳩山由紀夫氏と手を取り合った小沢一郎氏と共に自由党の共同代表を務めております。山本太郎氏は間違いなく国民側の政治家であり、評価に値する政治家です。韓国の方々には山本太郎氏のことを覚えていてほしいです。

最後に、従軍慰安婦の問題で実はあまり触れられていない問題があります。日本人慰安婦の名誉回復です。韓国では大勢の人々が抗議の声をあげたので、名誉回復や過去の人権侵害への補償が実現できそうな気配がありますが、日本人慰安婦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ることなく終わりそうです。

これは日本人の間ですらも、慰安婦の存在が忘れられており、慰安婦の問題が大手メディアで報道されても韓国人慰安婦のことばかりで、しかも反日運動の一つとしてしか報道されません。国家による人権侵害と言う視点が常に抜け落ちています。

それだけが日本人慰安婦が忘れられる理由ではないのですが、日本人が同胞の不幸に無関心でいるせいで、日本人慰安婦の救済は全くなされずに終わりそうです。とても悲しいことです。

韓国の多くの方々が同胞の不幸に抗議の声をあげたことが、慰安婦の問題に光を当て、解決の可能性を広げたのは確かでしょう。

私が韓国の方々の慰安婦問題への取り組み方を見て思うのは、最終的に国民を守るのは国民、国民の連帯こそが国民を守る礎となり、悪い政治には必ず抗議の声をあげねばならないと言うことです。

韓国の皆様方。これからも悪い政治には敢然と抗議の声をあげていってください。それこそが同胞を守り、国を守り、政府の腐敗を正す最善の方法です。政治への無関心が横行する現在の日本では、政府が堂々と国民の人権を無視しはじめています。このような状況になってはもう手遅れです。そうなる前に政府に道を踏み外させないよう国民の意思を常に見せつけていかねばなりません。

昨今の韓国のデモの盛り上がりを見る限り、大丈夫と思いますが、韓国の方々には本の現状を政治を忘れた国民の末路として、いつまでも心に留めてほしいと願っております。

금, 2017/06/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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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프레시안에 ‘문재인정부에 던지는 하나의 요청과 하나의 제안이라는 제목으로도 실렸습니다)

6월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반드시 수개월 이상 연기되어야 한다.

우선 미국의 상대역인 트럼프 대통령을 감싸고 있는 대내외적 여건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서 무리한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한다는 것은 도무지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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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트럼프 행정부

우선 지난 대선에 러시아 개입여부의 조사과정을 놓고 벌어지는 전 FBI 국장 코미의 상원청문회의 여파가 진행 중이며 그 귀추 여부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통치가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닉슨으로 하여금 탄핵 직전에 사임하게 하였던 워터게이트의 내용보다 심각하며 악질적이라는 논평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미국 내 여론의 향방에 따라서 공화당 내부가 분열하게 되면 수개월내에 탄핵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으며, 설령 공화당의 내분사태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년 의회선거를 통하여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를 점할 것이 분명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실효적인 정치생명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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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의회 증언에서 코미 전 FBI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과 충성맹세를 강요했다고 폭로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렸다.

대외적으로는 지난 G7 회의 과정에서 미국이 나토의 기본정신조차 묵살하면서 유럽은 이제 스스로 안보와 국방체계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더구나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으로 성사된 파리기후협약을 일방적으로 탈퇴함으로써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한없이 하락하했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체로 합의된 자유무역체계의 질서를 안하무인 격으로 무시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주의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트럼프 정권의 행태를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제국의 자살골’ 이라고 비아냥대고 있으며, 2007년 세계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였던 <파이낸스타임즈>의 수석 해설가인 마틴 울프는 미국을 배제하고라도 기후협약의 원칙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미국은 자신들의 폐허도시(rust belt)와 불량산업의 재기를 위해서 국제사회로부터 따돌림과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며, 미래에 다가올 기후 재앙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감당해야 한다.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볼리비아의 대통령은 트럼프를 지칭하여 ‘어머니인 대지(지구)와 일상적 삶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 (Main Threat to Mother Earth and Life Itself)’ 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마디로 미국은 이제 세계를 지도하는 초강대국에서 졸지에 세계를 어지럽히는 불량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천 억불이 넘는 무기판매를 계약성사 시키는 과정에서 트럼프 자신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하여금 카타르를 외교적으로 고립단절 시키도록 부추기고 최근 벌어진 IS 조직의 이란내 테러를 조장한 혐의를 받는 가운데, 중동아 지역이 수니파 연맹과 이란 중심의 시아파 그리고 터어키 등이 서로 대립하면서 일대 전운이 감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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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이디 아라비아 등 9개국은 카타르가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테러리스트 단체로 규정한 집단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의 외교 단절을 선엄함으로써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카타르와의 외교단절을 선언한 나라들은 모두 친미국가로 분류된다.

중동아의 불안정은 한국을 포함하여 중동아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의존하는 선진 산업국가들에게 심각한 안보 상황을 야기시킨다.

트럼프로 인하여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있는 미국인들은 시스템이 완전 망가졌다고 한탄을 한다 (The US as system is completely broken).

국내외적으로 트럼프가 가는 곳마다 분쟁이요 불화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형세이다. 한마디로 현재 미국의 행정부와 정치권은 불난 집의 형세이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한다는 것은 기름을 끼얹고 불구덩이에 달려드는 꼴이다. 트럼프는 곤고한 자신의 신세를 만회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미정상회담에 임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며, 통제가 불가능한 그의 돌출적 행동으로 회담의 과정과 결과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십중팔구는 문재인 대통령이 치명적인 화상을 입기 십상인 형국이다.

아직 완료되지 않은 외교안보라인

정상회담을 연기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도 존재한다. 우선 주한 미국대사가 공석 중인 가운데 외부부장관 지명자가 국회의 청문회과정을 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한미간의 일상적 교류에 와류가 형성되고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외교적 채널을 넘어서 문재인 정부가 과연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확고한 전략적 구상과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사드 배치에 대하여 전략적 모호함 이라는 입장을 취하여 왔고, 저간의 사정과 흐름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현재 역시 벌어진 상황의 보류라는 어정쩡한 조치로 봉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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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외교안보 라인업에서 이른바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라인의 부상이 주목받았지만, 개인사정, 인사청문회 등으로 난항을 겪으면서 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도 어려움에 처했다. 왼쪽부터 최근 개인사정을 물러난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 강정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

지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는 제갈량과 장자방을 합한 지헤있는 전략가를 필요로 하는 절대시점이다. 그런데 통일부 장관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의용씨가 안보실장으로 진즉 임명되어 있지만, 그는 경험이 풍부한 외교와 통상의 전문가이지 안보적 전략을 구상할 만큼의 지략가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외교는 전략적 구상과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설득하고 협상하는 과정일 뿐이다. 전략적 역할이 기대되었던 문정인과 김기정 등 ‘연세사단’은 개인적 사정과 스캔들로 공식적인 활동을 고사하거나 낙마하였다.

국민의 정부시절 임종원 장관과 같은 인물이 보이질 않는다. 자신의 계획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중국의 굴기와 북한 및 북핵 문제를 앞에 두고 미국의 MD 편입여부와 한미일 군사동맹 여부가 매우 주요한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안보가 최우선이라는 구호는 있으되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질 않는다. 자주국방과 주권외교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런 가운데 전시작전권의 회수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는 결례를 무릅쓰고라도 6월말로 예정되어 있는 정상회담의 일정을 무조건 연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안보와 외교라인의 인선을 우선적으로 확정하고 나름대로 전략적 구상과 실천적 로드맵을 선행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현재 불판 위에 앉아 있는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국정부의 연기 요청을 환영하거나 최소한 양해할 것이다.

동아시아 이니셔티브 제안해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착실히 준비가 되는대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담대한 제안’을 한미정상회담이 있기 일주일전에 <뉴욕타임즈> 등 세계 유수언론에 특별기고 형식으로 기고하기를 제안한다.

한미FTA의 재협상, 방위분담금 문제 또는 사드배치 여부(이는 칼루치가 이야기한 바처럼 전적으로 한국정부의 결정사항이다)는 아예 무시하거나 실무라인에게 돌리는 것이 맞다.

미국측에서 먼저 제기하는 현안에 휘둘리는 것은 하책 중에 하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한다는 것보다는 지난 5-60년간의 굳건한 한미동맹이라는 신뢰기반 위에서 미국사회 전체와 미국을 이끌어갈 미래의 주도 세력을 향하여 발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리 세계 유력지들에게 기고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의미이며, 예측 불가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휘둘리지 않는 안전판을 확보하는 선제적 조치이기도 하다.

동시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프랑스 대혁명에 견줄만한 역사적 대사건인, 한국시민 촛불혁명의 의미를 확인하며 진행중인 이의 실험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최대한 포용+실효적 제재’로 전환해야

한국의 미래를 구상하는 (사)다른백년의 이사장으로서 필자는 상기의 ‘담대한 구상’ 제안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조언하고자 한다.

우선 북한과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을 ‘최대한 압박과 포용(Max pressure & engagement)’이라는 트럼프 방식에서 ‘최대한 포용과 실효적 제재(Max Engagement & effective sanction)’이라는 문재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상대에게 등뒤로 칼을 내밀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기대와 신뢰를 담아 설득을 앞세워야 협상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이미 90년대 제네바 협의와 6자회담의 협상을 통해 맺은 합의내용(AF, Agreement Frame)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7.4 공동성명과 6.15 합의라는 역사적 성과도 지니고 있다. 현재적 엄중한 현실을 살피되, 단기적 현안의 봉합보다는 장기적 미래전망이라는 원칙을 앞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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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ajunews.com)

현재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시키도록 국제적 기구에 협력을 요청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는 물론이고 제2의 개성공단을 외국인 투자단지로 조성하여 미국기업과 중국, 유럽 등의 투자를 유치하고 이것이 성공적일 경우, 항공운송이 편리한 평양근처에 제2, 제3의 외국인 투자공단으로 확장하도록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주선해야 한다.

북한에 외국인 투자공단을 유치하는 것이 북한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동아시아를 방어하는데 사드 배치보다 만 배 이상 효과적일 것이다.

쿠테헤스 사무총장은 유엔의 인권위원회와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의 장애우와 여성인권의 향상을 위해 114백만불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북한 제재에 묶여 어려움을 겪는 유엔에 대하여 이를 시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데 한국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또한 한국인 2세인 김용씨가 총재로 있는 세계은행으로 하여금 북한의 기반시설 투자에 필요한 차관을 제공하도록 설득과 보증을 검토해야 한다.

철의 실크로드 구상으로 주변국 협력 도모

중동아의 불안으로부터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위협을 느끼는 이때, 러시아와 협상하여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매설을 통하여 공급받는 역사(役事)를 시작해야 한다. 시베리아의 천연가스의 여유량은 한반도가 수 백 년을 사용할 만큼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신재생 에너지의 가능성이 무제한인 몽골과 협력하여 전력선 역시 북한을 통과하여 한국의 전력망과 연결하는 구상을 연구해 봄직하다.

이를 통하여 북한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건립하여 주고 필요한 연료와 전력을 공급해 줌으로써, 북한 경제발전의 최대 애로사항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여 줄 수 있다.

이는 참여정부시절 제안하였던 아마추어 수준인 남한의 전력공급 제안과는 차원이 다른 상호 안전과 통제를 통하여 남북한 공영을 도모하는 중차대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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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시절부터 검토되었던 것으로 북한을 통과하는 유라시아 연결의 철도망 건설을 다시 복원하여 추진하는 것에 더하여, 일본정부와 협의하여 부산과 쓰시마를 통해 큐슈를 연결하는 해저터널 공사를 시행하면 일본의 역사적 소망인 대륙과의 육로 연결망이 이루어지면서 한일간의 갈등이 전화위복이 되어 오히려 친선우호의 협력국으로 전환될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출발하여 큐슈, 부산과 신의주 또는 나진 선봉을 거쳐 유럽의 끝단인 포르투갈 또는 도버 해협을 거쳐 영국까지 연결되면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프로젝트와 쌍벽을 이루는 인류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장차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도 해저터널로 연결되면 남아공의 희망봉까지 연결되는 셈이다.

‘동맹의존증’에서 벗어난 담대한 구상 필요할 때

파리기후협상에 이은 차기 기후협상회의를 서울에 유치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한국은 촛불시민혁명에 이어 인류모두에게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88 서울 올림픽’을 통하여 한국이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듯이 세계기후협상회의 유치와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주도권을 한국이 차지하면 환경과 에너지 산업에 상당한 활력과 탄력을 제공하면서 한국산업의 미래지향적 재편과 경제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게 생존의 위협을 가하는 한미군사훈련을 새롭게 개방하여 중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이 함께 참여하고 북한 역시 참관국가로 초대하면 동아시아에 점증하는 지역의 전쟁위협을 현격히 감소시키며, 공존공영의 기반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천문학적 국방비에 시달리는 미국의 장기적 전략과 국가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이를 기회로 북미간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북미와 북일 간의 국교정상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남북간에는 통상 및 교류 등 정상화되고, 북미간의 현안인 북핵문제는 평화협상과 국교정상화가 진행되면서 자연히 순차적으로( freezing & roll back) 해결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병영세습체제인 북한은 점차로 보통국가로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함께하는 미래는 담대한 용기와 지략을 가진 자만이 만들어 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감당할 수 있기를 손모아 기대하여 본다.

(추신: 이 글은 이제 막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만열(미국명: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와 장시간 토론을 거쳐 작성된 것입니다.)

토, 2017/06/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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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대만의 헌법재판소는 동성애 합법화 판결을 내렸다. 한중일은 물론이고 아시아 최초이다.

같은 날 한국에서는 휴가 중 동성과 성관계를 가진 A대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그에 앞서 군은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앱을 이용하여 ‘잠입조’를 투입, 동성애자 색출에 나선 바 있다. 인터넷의 비판적 힙스터들은 한목소리로 군법원의 비겁한 행태를 비판했으며, 이참에 군법원의 정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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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대만 동성애자들이 대만 지도가 그려진 무지개 깃발을 들고 동성애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AP뉴시스)

바야흐로 2017년, 한국에서도 동성애 합법화 이슈가 뜨겁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2000년부터 매년 퀴어문화축제를 열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동성애자와 성소수자에 대해 강팍하고 완고한 듯하다.

지난 해 한국의 사법부는 2013년 영화감독 김조광수씨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 제기한 소송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아직도 한참 더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할 듯하다.

<불한당>, 대중의 냉소와 후죠의 열광 사이에서

이 시점에서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불한당(不汗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불한당>은 동성애 합법화가 논란이 되고 있는 작금의 한국사회에 적시에 혹은 너무 빨리 당도한 비운의 명작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감독의 홍어 발언으로 당사자가 일베로 몰리는가 하면 일부 ‘달레반’들로부터 평점 테러와 관람 보이콧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린 진출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3주 만에 백만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숫자를 기록하며 스크린을 내렸으며, 최근 흔해진 이른바 ‘알탕 조폭 영화’의 아류라는 세간의 냉소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참이었다.

일명 후죠시(婦女子, ふじょし, 이하 후죠. 후죠는 비엘(BL, Boy Love), 곧 게이 로맨스 서사를 즐기는 여성 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곧 부녀자들이 이 영화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사태를 납득할 수 없었던 열혈 후죠들은 <불한당>을 ‘지옥에서 온 비엘(BL, Boy Love)’, ‘이 시대 단 하나의 정통 퀴어 멜로’라 부르며, <불한당>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n차 찍기(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는 물론이고 단관과 대관을 도모하는가 하면, <불한당> 위키트리의 작성, 각종 사이트에서 댓글달기 등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유툽과 네이버 등을 통한 이중 삼중의 VOD 구매에, 더해서 “불다”를 막기 위한 인터넷 야경꾼에 이르기까지, 과연 무엇이 이토록 후죠들을 <불한당>에 열광하게 한 것일까.

믿음과 배신의 딜레마: Careful who you trust

영화에서 ‘재호(설경구)’는 ‘철창 안의 지저스’이다. 정통 주먹은 못 되어도 “독고다이로는 못 이기는” 부산 바닥의 뽕쟁이가 바로 그다. 左‘영근(문지윤)’ 右‘방개(홍인)’를 거느린 그는 감옥 안의 최고 권력이며 모든 율법의 주재자이다. 자신을 죽이려던 부모 밑에서 살아남은 그에게 세상은 믿을 수 없는 곳이거니와, 프로이트(Freud, G.)가 갈파한 바대로 애착형성이 되지 않는 이에게 삶은 곧 불신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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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재호(설경구)

믿을 놈 하나 없이 살아가는 재호에게 세상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속에 있지만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그는 곧 어디에건 있으나 아무 곳에도 없는 유령같은 존재이다.

감옥 안에서의 공놀이는 재호의 이러한 자폐적 자아를 잘 보여주는데, 라깡(Lacan, J.)의 ‘포르-다 놀이(fort-da game)’에서처럼 벽에 튀겨진 공은 끊임없이 그에게 되돌아온다. 타자가 부재하는 독방에서 동일자의 공놀이를 반복하는 재호에게, ‘현수(임시완)’는 공을 되던지고 말을 건네는 최초의 타자가 된다.

잠입조로 투입된 부산 경찰청의 언더커버(under-cover) 현수는 “혁신적인 똘기”로 단숨에 재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불쌍한 사람은 도와야 한다”는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 재호의 목숨을 구해 줌으로써, 그와 “제일 큰 방”을 나눠 갖는 사이가 된다. 현수는 재호를 통해 “큰 건을 만들어” 흥행시키려 하고, 재호는 그런 현수를 이용하여 자신을 담그려는 ‘병철(이경영)’을 묻고 새로이 보스가 되고자 한다. 두 남자의 동상이몽, Careful who you trust, 네가 믿는 자를 조심할지니 혹은 너를 믿는 자를 조심할지니.

수치와 죄의식, 사람으로 살기 위한 죽음에 대해

이 영화는 재호와 현수 어느 쪽으로나 성장이자 몰락의 서사를 가진다.

먼저 재호의 경우. 현수는 재호에게 사랑과 소망, 믿음을 가르쳐 주는 존재이자, 다시 그 모든 것을 거두어가는 배신의 유다(Juda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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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영화의 외피를 입은 <불한당>은 노골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드러낸다.

버려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신을 일삼던 재호에게, 난생 처음 현수는 설레임과 무구함, 신뢰의 얼굴로 다가온다.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이가 재호라는 것도 알지 못 한 채 투명하고 말간 얼굴로 “나는 형 믿어요.”라고 말할 때, 사람의 온기를 알지 못하는 재호의 마음에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드리운다(그래서 영화에서 재호가 회상하는 현수는 시종일관 따뜻한 노란색으로 빛난다).

레비나스(Levinas, E.)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온전히 기대어오는 타자를 통해 구원받거니와, 연약하고 가련한 그에게 복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들 자신을 구원한다.

그리하여 재호가 현수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지저스라는 별명에 퍽이나 어울리게도, 사랑과 소망, 믿음이다. 아무도 믿지 않던 재호가, “멍도 예쁘게 드는” 풋내기에게 가슴이 설레이고(사랑)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소망)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던 마음밭에 약하디 약한 믿음이 자라난다. 그리하여 하룻강아지 경찰 하나를 “감아 보고자” 삼십년지기 고아원 친구 ‘병갑(김희원)’의 조언을 마다할 때, 그리이스의 비극처럼, 예정된 재호의 파국은 시작된다. 한 번도 누군가를 믿어보지 못 했던 이가 건네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달리 목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결국 죽음을 자초한다.

믿음을 모르던 자가 믿고자 할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갈등과 불신, 죄의식이라는 인간의 길이다. 죄의식을 외면해 가며 살기 위해 저질렀던 모든 일들이 들통났을 때, 수치와 죄의식을 아는 인간이라면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다. 타자를 믿고 그를 소유가 아닌 소망으로서 사랑하고자 한다면, 이제 내놓아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이다.

재호가 택한 것은 죄의식을 모르는 짐승으로 살아남는 대신, 사랑을 아는 사람으로 죽는 길이다. 사람의 윤리를 배운 이에게 돌아갈 길은 없다,

남은 것은 파멸 뿐. 첫 번째 성장 혹은 몰락의 서사. 그러므로 “너 진짜 나랑 같이 일해 볼래?”라고 현수에게 물었을 때 기실 재호가 건넸던 것은, 미처 그 자신조차 알지 못했겠으나, 실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마찬가지로 정통 조폭 김성한에게 죽음의 세례를 내리면서 베어물던 사과는 결국 수치와 죄의식의 선악과였던 셈이다.

성장한다는 것, 아비를 죽인 불한당들의 세상에서

사랑에 서툰 이들은 흔히 소유를 사랑으로 오해하는데, 재호는 현수를 갖기 위해 그를 자신처럼 버려진 존재로 만든다. 현수로부터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인 어머니를 빼앗거니와, 어머니와의 합일된 ‘상상계’에서 살아가던 현수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그 자체로 세상의 끝이다.

현수에게는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필요한데, 이제 재호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알에서 깨어난 조류가 처음 보는 이를 어미로 따르듯, 재호는 현수의 두 번째 태양이 된다. 바야흐로, 유사 아버지의 탄생.

그러나 유사 아버지의 법은 철창 안에서만 통하는 법이다. 불한당의 법은 햇빛 찬란한 대낮 에는 견지될 수 없기에, 이카루스(Icarus)의 날개처럼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의 과오가 드러났을 때, 부친 살해는 자명한 귀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비극은 언제나 미리와 당도해 있거니와, 재호를 죽임으로써 현수는 비로소 고아, 곧 어른이 된다. 그가 만나는 세상은 더 이상 이전처럼 순결하고 무구하지 않은 것이, 그것은 배신과 뒤통수로 얼룩진, 죄의식을 뒤로 하고 제 손에 피를 묻혀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 현수는 재호처럼 불신과 배덕의 삶을 살 것으로, 현수는 재호이며 재호는 현수이다. 이는 영화 도입부 재호의 빨간 머스탱의 자리가 그의 것이 되는 데에서 또 홀로 창고에서 포르-다 놀이를 하는 현수의 모습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데 아들이 아비가 되는 뫼비우스의 저주 속에서 두번째 성장 혹은 몰락의 서사는 완성된다. 불한당들만이 가득한 세상,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불한당, 여성들의 억압된 쾌락과 욕망의 텍스트

후죠들에게 <불한당>은 느와르도 갱스터도 아닌,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실사판 비엘일 뿐이다. 그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백전노장 설경구가 “연기 인생 32년의 내공을 녹여 임시완을 사랑하는 이야기“일 뿐으로, 덕분에 영화의 모든 것은 퀴어 멜로의 코드로서만 독해된다.

이를테면 수산시장 습격 장면에서 후죠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재호와 현수의 시계이다. 현수가 시계를 풀어 최사장을 난타할 때, 또 재호가 현수를 거들고자 시계를 푸를 때, 이는 가장 로맨틱하고 열정적인 장면 중 하나가 된다.

시계는 넓게는 자본주의적인 근대 질서, 좁게는 경찰과 조폭이라는 세속의 법을 의미하거니와, 시계를 푼다는 것은 이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규율과 질서를 벗어던지고 오로지 서로를 향하겠다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회의 관습과 통념, 억압을 뒤로 하고, ‘우리 이대로 사랑하겠다’라는 강력한 외침이자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거친 남성들의 배신과 폭력이라는 외피를 쓴 이 영화는, 후죠들의 필터(filter) 속에서 은밀하고 비극적인 사랑으로 재탄생될 수 있었으며, 감독이 원했던 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눈물과 신파, 격정의 멜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후죠들 사이에서 변성현 감독은 “영화의 신”이라 불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불한당>은 향후 족히 50년 동안은 다시없을 바이블(Bible)이 되었다.

한국, <불한당>을 허락하지 않는 반동성애 국가

문제는 이러한 후죠들의 열광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흥행 실패는 단순히 일부 정치 팬덤의 분탕이라는 표피적 사실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곧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호모포비아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곧 동성애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버틀러(Butler, J.)가 말하는 ‘수행성’ 혹은 젠더 도식의 해체라는 비엘에 내재하는 전복의 가능성과는 달리, 대부분의 비엘은 여전히 이분법적 젠더 도식을 반복하며 이로 인해 오히려 가부장제 이성애자들의 호모-소셜(homo-social)한 연대를 강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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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도 예외가 아닌 것이, 영화가 함의하는 명백한 동성애적 코드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화 내에서 동성애는 부정되고 처벌되기 때문이다.

현수를 욕망하는 유사 아버지 재호의 법은 실현될 수 없었으니, 그는 죽음으로써 댓가를 치르고 거세되어야 했다. 곧 “철창 안의 지저스”는 호모포비아 헬조선을 위한 희생양이었으니, <불한당>은 기존의 남성중심 이성애자의 젠더 권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강화한다.

이렇게 보면 후죠들의 욕망은 가부장제의 호모포비아를 담보로 한 것으로서, <불한당>의 좌초는 “21세기가 아무리 개방적일지라도” 여전히 범법자로서 야만의 사냥에 내몰려야 하는 한국사회 동성애자들의 참람한 현실을 시사한다.

백만이라는 어이없는 성적표는 이에 대한 에필로그에 불과하거니와, 군동성애자 색출 작업이 한창인 야만의 헬조선에서 <불한당>은 필연적으로 배척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서둘러야

지난 4월 25일 대선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은 반대한다”는 모호한 발언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의 공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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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향해 동성애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가 이슈가 됐다는 점만으로도 놀랄만한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같은 토론회에서 심상정 후보는 마지막 발언을 문후보의 해당 발언을 비판하는데 할애하였으나, 이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을지언정 실질적인 파급효과가 되지는 못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선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군내 동성애자 색출 사건이 일어났고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한국사회는 이제, 동성애자들을 이대로 계속 박해해도 좋은지 공론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출생과 인구감소가 연일 ‘뜨거운 감자’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언론과 정부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냉담하게 침묵한다.

동성애자와 성소수자들이 절망의 끝에서 포기하기 전에 하루빨리 이들을 위한 제도적 권리의 확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참고로 진선미 의원은 지난 2014년부터 ‘생활동반자법(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상정하였으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일부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연 한국 사회는 언제쯤 저 너머의 ‘무지개’를 향해 달릴 것인가.

화, 2017/06/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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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선 그는 낡은 갈색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공정거래위원장에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였다.

한 매체가 “가방이 웬만한 독자보다 선배일지 모른다”고 썼을 정도로,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는 가죽 가방은 한눈에도 오래되고 낡아 보였다.

그의 제자라고 밝힌 누리꾼이 올린 글이다. “가방이 진짜 거적때기 같이 너덜너덜한 걸 들고 다니셨거든요.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가방 꼴이 그게 뭐냐니까, (…) 웃으시더니 가방은 그냥 대학원 때부터 쓰던 거라 편해서 쓴다고, 뭐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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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공정거래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 차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화제가 된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의 가방을 보고 있다. (사진출처: 서울신문)

깔수록 ‘미담’만…”국민 눈높이 검증 통과했다”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위장전입, 논문 자기표절, 특혜 분양, 아들의 군 특혜 및 금융회사 인턴 청탁, 부인의 채용 기준 미달 취업, 다운계약서 작성 등의 의혹이 제기됐지만 대체로 사실이 아니거나 결정적 흠결로 몰아세우기에는 모자랐다.

오히려 논리 정연한 발언과 함께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 일한다. 최근에 와서는 돈 쓸 틈이 없었다”는 등의 ‘미담’만 회자됐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가 계속되자 500명 가까운 각계 인사들이 김상조 교수에 대한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 ‘전국 대리기사 협회’ 등 17개 단체도 김 교수의 임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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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국회 앞에서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 등 골목상권 관련 17개 단체들이 ‘골목상권 지킴이,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레신문)

“보았나? 그게 김상조다. 알았나? 그게 김상조다. 우리들에게 김상조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20년 지기인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야당의 의혹 제기를 ‘우리 모두에 대한 모욕’이라고 표현했다.

“하루 만에 거의 500명의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성명을 주도한) 전성인 선생도 놀랐단다. (…) 사실 김상조를 변명하는 것은 좀 객쩍은 일이다. 워낙 깨끗이 살아온 사람이다. 성품 탓도 있지만 무소불위의 재벌을 상대로 전면에 나서서 싸워 왔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 몸가짐에 신경을 써 왔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윤영찬 국민소통수석)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밀어붙인 것은 처음이다.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선출직에는 안 나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책을 펼치는 정부 당국자 자리라면 해볼 용의도 있는데 그런 제의는 안 오더라. 10년 뒤에는 저 같은 시민단체 사람이 할 일 없는 경제 사회를 만드는 게 삶의 목표다.”

지난 2009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불행히도 1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어떤 면에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다만 김 위원장이 ‘정부 당국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진보라고 해야 할까.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정권교체가 돼 10년 만에 집권했는데 실패한다면, 그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소액주주운동’으로 출발한 ‘삼성 저격수’

김 위원장은 196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대일고를 졸업하고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창시절 스승이었던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두 스승은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며 연구실에만 있지 말고 현실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라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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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의 스승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왼쪽)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정 전 총리는 이렇게 회고한다. “미국 유학을 권했더니 ‘한국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버텼다. 정말 국내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면서 유학생 이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김 위원장은 박사 학위를 마친 이듬해인 1994년 한성대 교수로 임용된다. 1995년에는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 총무국장을 맡았다.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99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고려대 교수)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에게 제정하라고 권유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제정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그때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을 찾아가 “기업지배구조가 임단협보다 노동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관심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터였다.

조언을 얻기 위해 장하성 실장을 찾아가자 그는 김 위원장에게 “직접 답을 찾아보라”며 참여연대 합류를 권했다. 장 실장은 1997년부터 참여연대에서 이미 ‘소액주주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발족과 함께 단장을 맡는다.

훗날 ‘삼성 저격수’란 별명을 얻게 된 시발점인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도 이때 시작됐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의 위법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때 주식총수의 0.01%를 확보한 주주가 경영진에게 손해배상을 회사 대신 청구하는 소송이다.

승소를 해도 배상액이 회사에 들어가는 만큼 원고에게 실익이 없는 공익 소송이다. 초기의 소액주주운동은 이렇게 ‘주주 이익’보다는 “소수주주권이란 법적 권리를 이용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였고 ‘재벌 개혁 운동’의 다른 이름이었다.

2005년까지 계속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건희 회장 등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1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 위원장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재벌기업 경영진의 부당한 경영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식시킨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한다.

김 위원장이 대중에 널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소액주주 자격으로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된 이학수·김인주의 이사 재선임 반대 및 징계 등을 요구했다.

당시 사회를 보던 윤종용 삼성 부회장은 설전 끝에 “왜 남의 주총에서 이렇게 망신을 주느냐”며 “나도 삼성전자 주주야. 당신은 몇 주나 갖고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김 위원장은 “주총 무효소송을 내겠다”며 퇴장한 후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 에스원 직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바지까지 찢어졌다. 삼성은 이후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결정적 조언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편법·불법 승계를 위해 벌어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및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헐값발행 의혹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는 그를 ‘삼성 저격수’로 뚜렷이 각인시켰다.

특히 6차례나 고발했지만 검찰의 ‘무혐의’ 처분만을 손에 쥐어야 했던 삼성 SDS 건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사실임이 입증됐다. 삼성 특검으로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 임원들에게 유죄까지 선고됐다.

‘왜 삼성인가’라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이런 취지로 말했다.

 

“삼성은 다른 재벌과 다르다. 삼성전자를 삼성생명이 지배하고, 생명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가 지배하고 이재용씨가 이를 소유하는 기형적 형태다. 문제는 이 지배가 삼성생명이라는 금융계열사를 통해 이뤄진다는 거다.

삼성생명의 자산 대부분은 결국 고객 돈 아닌가. 자본주의 기본인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되고 현행법과도 충돌한다. 삼성은 이 비정상적인 구도를 적법하게 만들려고 국회를 비롯해 국세청·금감원·공정위·검찰 등에 전방위적 로비를 펼친다. 다른 재벌들도 법을 어기긴 하지만 삼성처럼 현행법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바꿀 의도와 힘은 없다. 그래서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2014년 5월 김 위원장은 삼성 SDS 상장을 계기로 SDS 사건을 되돌아보며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당부하건대, 또다시 불법·편법의 우를 범하지는 말기 바란다. 부족한 지분을 채우는 것은 CEO의 비전과 리더십이다.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임을, 총수가 ‘은둔의 제왕’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짊어진 미래의 책임이다.”

앞날을 내다본 것일까. 불과 4개월 뒤인 2014년 9월,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과 만나 ‘승마 유망주’ 육성을 당부한다. 삼성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한다. 이듬해 삼성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로 나서면서 정유라를 본격 지원한다. 그 뒤는 알려진 바대로다.

오랫동안 삼성을 연구해 온 김 위원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자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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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집 합병에 대해 답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언까지 하면서 재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데 공헌한다.

최순실 측에 로비를 한 것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부터이므로, 로비의 목적이 단순히 합병 문제가 아니라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허용,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전반에 대한 지원이었다는 취지로 폭넓게 구속 사유를 주장해야 한다고 알려준 것이다.

‘실패의 경험’만 가득했던 한국의 진보 진영에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자는 그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시민단체 운동을 하면서도 기업을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서 절반가량은 이겼다고 한다. 한국 재벌의 정점인 삼성 총수 일가의 사법처리도 이끌어냈다.

‘김상조’라는 이름은 어느새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재벌은 김 위원장이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문의하자 바로 해당 계열사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문제점을 지적당한 공정위 과장이 “우리가 일을 잘못 처리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출발점

김 위원장은 이번 공직에 나서기 전 직함이 딱 두 개였다. 하나는 한성대 교수, 다른 하나는 2001년부터 맡아 온 경제개혁연대 소장직(2006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분화)이다.

유명한 교수에게 으레 제안이 오는 기업의 사외이사나 정부의 위원회 위원 자리도 맡지 않았다. “거절하기 전에 제의 자체가 없었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유혹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정부나 기업이 발주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운동에 투신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휴강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강을 하게 되면 주말에라도 꼭 보강을 했다. 인사청문회 다음날도 보강을 했다.

앞서 글을 올린 제자의 증언에 따르면 강의 신청 인원이 초과될 때가 많았는데 수업 듣겠다는 제자들을 어떻게 물리치느냐며 직접 강의실을 큰 곳으로 변경하러 다녔다고 한다. 시험 감독도 본인이 직접 들어오고 학점 이의신청도 얼마든지 하라며 그것이 학생의 권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88 담배’를 피우며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2013년 삼성에서 강의 요청이 왔을 때 ‘내가 받는 강의료의 최고 수준인 50만 원만 받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삼성은 강의가 끝난 후 강의료 영수증을 300만 원짜리로 준비해 놓았더라. 다시 수정해 오라고 해서 50만 원만 수령했다. 만 32세 전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교수가 돼 현재 기준으로는 상위 3% 이내에 드는 연봉 1억 원 이상을 받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시민운동으로 지난 20년간 한 획을 그은 그가 공정위원장으로서 그리는 재벌개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일부에서는 과격한 재벌 해체론자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김 위원장은 현실 법 테두리 내에서 법과 원칙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쪽이다. 그는 위원장 내정 뒤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년간 시민운동을 해오는 동안 제 입에서 재벌을 해체하자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재벌이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으로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유도하는 게 재벌개혁이다. 재벌개혁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면 경제민주화의 본령은 하도급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영세자영업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우클릭? …4대 재벌 개혁에 집중

보수 진영에서 ‘막 나가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하는 만큼 진보 진영에서는 ‘개혁 의지가 불분명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개혁 의지는 절대 후퇴하지 않았다”고 강조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기존 순환출자 해소 등의 정책도 대선 주요 공약에서 빠졌다.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인정해야 한다거나 변화된 경제 환경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김 위원장은 이미 순환출자는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곤 상당부분 해소됐으며, 자산총액 10조 등을 기준으로 하는 어중간한 규제는 상위재벌에겐 효과가 없고 하위재벌에겐 과잉 규제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4대 재벌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재벌개혁은 정부만 나서서 될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나 소액주주 등 경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확대함으로서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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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 교수 시절,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의 모습 (사진 출처: http://newszeen.tistory.com/)

김 위원장의 이런 신중하고 차근차근한 스타일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시민운동 시절부터 그는 기업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먼저 비공개로 질의서를 보내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방안을 택했다.

기업경영은 공개된 자료로만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섣불리 문제제기를 했다가 뜻밖에 피해를 보는 기업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유독 삼성에 문제제기를 많이 한 것은 아예 가타부타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순실 사태 이후 삼성 불매운동 얘기가 나왔을 때도 성급한 측면이 있다며 ‘반대’ 입장이었다고 한다.

2013년 삼성의 수요 사장단 회의에 초청돼 강연을 하면서는 “나는 삼성의 적이 아니다. 삼성을 사랑한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 측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인데다 오랫동안 ‘애증의 역사’를 겪어 온 김 위원장 취임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바라는 ‘제대로 된 개혁’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에 따라서 김 위원장이 펼칠 정책의 만족도는 각자 다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김상조 위원장 취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재벌개혁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 같다며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토대로 기업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과 방책들을 그이(김 위원장)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곳에서 행간의 의미를 통해 그이 스스로 밝혔듯이 자신의 임기 중 과제라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혜안을 가진 전문가이므로 (…)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하도급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거나 또는 바로 잡을 기틀을 제공할 수도 있으리라 예상도 된다.”

김 위원장은 저서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개혁은 선거 승리 후의 집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국회에서의 새로운 법률 통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물리적 제재를 통해서든 경제적 보상을 통해서든 규칙을 어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규칙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혁은 혼자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단과 조급증은 금물이다.”

목, 2017/06/1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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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열린 (사)다른백년 창립 1주년 및 한국보고서 보고회는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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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글로벌센터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사)다른백년 창립1주년 및 한국보고서 발표회가 열렸다.

특히 이날 발표된 한국보고서(Report on Korea)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정치, 경제, 외교안보, 교육노동 등 4개 분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 연구결과물입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지난 1년 동안 공을 들였습니다.

이날 경제분야는 최배근 건국대 교수가 ‘민주주의와 공정의 경제시스템‘을, 교육노동분야는 반상진 전북대 교수가 ‘한국교육과 노동시장의 연동에 촛점을 둔 교육불평등 극복과 교육의 정상화’를 발표했습니다.

외교안보분야는 정일준 고려대 교수가 ‘외교안보레짐의 사회적 구성‘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소 소장이 한국보고서에 대한 종합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자료집(여기☞[다른백년] 한국보고서 자료집_170616)을 다운로드하시면 됩니다.  

한국보고서의 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월, 2017/06/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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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24일, 오후 4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사드 철회 범국민 평화행동’이 열립니다. 

오는 29일과 30일 이틀 간 미국백악관에서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사드배치가 주요 현안으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이번 행사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 국민의 반대의사를 미국 당국에 명확히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 행사는 사드 한국배치저지 전국행동이 주최합니다.  (사)다른백년은 그동안 꾸준히 사드 한국배치의 부당성을 주장해왔습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사드철회 범국민평화행동

월, 2017/06/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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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기치로 지난해 6월, 출범한 (사)다른백년이 창립 1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사)다른백년은 연구활동을 통한 연구기반 구축,  전문가 칼럼 등을 통한 선도적 의제 제기, 백년포럼과 강연 등을 통한 시민과의 소통 등에 주력해왔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 덕분에 이만큼 왔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여기 두 개의 영상이 있습니다. 첫번째 영상은 지난 1년의 활동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두번째 영상은 지난해 첫 출발하면서 포부를 밝힌 것입니다.  두 영상을 비교해보시면, (사)다른백년이 어디를 향해, 얼마만큼 왔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다른백년도 쉼없이 전진하겠습니다. 

 

화, 2017/06/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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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혁신’ 

6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김상곤(68) 전 경기도교육감을 설명하는데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다. 

공교육 정상화, 보편적 복지, 학생인권 등 진보적 의제들은 그의 손을 거쳐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의 정책으로 현실화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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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 (사진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

이제 그는 경기도를 넘어 한국의 교육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에 오를 기회를 갖게 됐다. 언론은 문 대통령이 그를 지명한 것에 대해 새정부가 개혁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가 인사청문회라는 험난한 검증대를 넘어 ‘진보’와 ‘혁신’이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 전체에 던질 수 있을까.

민교협 창립 주도…독재와 싸웠던 행동하는 지식인

1949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 후보자는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병치레를 자주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의 청·장년기는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했다.

 

“4.19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이고, 5.16이 6학년 때인데요. 4.19때 우리 학교 옆에 공고가 있었어요. 공고학생들이 우리 학교 담을 뛰어넘어서 우리 학교 교문으로 거리 진출을 하더라고요. (중략) 고등학교(광주제일고) 가서는 광주학생운동의 태동지에 어울리게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행복한 학교 유쾌한 교육혁신을 말하다> 지승호·김상곤 저) 

1969년 박정희 정권 아래서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발을 들였다. 1971년 상대 학생회장,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맡아 교련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 제적된 뒤 강제 징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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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상대 졸업 당시의 김상곤 후보자의 모습. 왼쪽에서 3번째. (사진 출처: http://koridol.tistory.com)

당시 박정희 정권은 1971년 10월 15일, 이듬해 단행한 ‘10월 유신’의 사전 조치로 ‘위수령’을 발동했고, 서울대 등 10개 대학에 휴업령을 내렸다. 당시 김 후보자를 비롯해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이호웅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재홍 경기대 교수 등 200여명의 대학생들이 데모 주동자로 몰려 제적되고 일부는 강제 징집을 당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다시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86년 6월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전국대학교수단 명의로 발표된 ‘연합시국선언’ 초안을 고 김수행·정운영 교수와 함께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합시국선언에는 △민중의 생존을 위한 권리와 요구가 완전히 반영될 수 있는 민주헌법 △대학과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미 및 반일 등 반외세 주장을 반국가나 용공으로 단죄하려는 흑백논리에 반대 △사회정의에 기초한 새로운 자주적 경제체제의 모색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 등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진보·개혁적 가치 등이 담겼다. 

이후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1987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창립을 주도하고, 1995~1997년 민교협 공동의장을 맡아 지식인과 사회 운동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힘을 쏟았다. 전두환·노태우 구속 수사 운동(1995년), 에너지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저지 운동(1997년), 전국교수노조 위원장(2005~2007년) 등 진보 운동에 꾸준히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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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국립대 법인화 반대 교수대회에서 당시 김상곤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kyosu.net/)

‘무상급식’…한국 정치에 등장한 첫번째 진보의제

강단과 거리에서 보내온 그의 삶은 2009년 전환점을 맞는다. 경기도 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고 2010년 연임하며 민선1·2기 교육행정가로서 자신의 포부를 펼치게 된 것이다. 

이론과 사회 운동으로 다져온 그의 진보적 의제들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정책으로 현실화됐다.  ‘무상급식’은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졌고, 전국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보편 복지’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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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경기 광주 오포초등학교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배식을 마치고, 학생들과 점심을 먹고 있다. 그의 브랜드가 된 ‘무상급식’을 통해 그는 한국 정치에서 최초로 복지 의제를 수면으로 올렸다.

교육의 공공성과 학생들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추진한 혁신학교, 학생 인권 조례 등의 정책도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잇달아 도입하며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2010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당비와 후원금을 낸 혐의로 기소된 전교조 교사를 중징계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어기고 경징계하는 등 중앙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내세운 ‘진보 아젠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침체에 빠져있던 진보·개혁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지방선거는 ‘3무1반 정책'(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반값등록금)이 표심을 갈랐고, 야권에 승리를 안겨줬다.

선출직에는 연이은 불운…교육정책 수장으로

2014년 교육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폭을 넓혔지만 성적표는 썩 좋지 않았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경선에 도전했지만 탈락했고, 같은 해 7.30 수원을 국회의원 재선거 때도 공천을 신청했지만 후보가 되지 못했다. 

선출직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2015년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의 혁신 작업을 맡는 당 혁신위원장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김 후보자가 가진 ‘진보·개혁·혁신’의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김 후보자는 11차례의 혁신안을 발표했고 이를 당헌·당규에 반영했다. 그는 혁신위를 마무리하며 성적표를 B+로 자평했다. 당시 혁신위는 시스템 공천안을 마련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 깊은 계파 갈등 문제의 해법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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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김상곤(왼쪽부터), 이종걸, 추미애 당대표 후보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 경선의 최종 승자는 추미애였다.

혁신위위원장을 하며 “나부터 내려놓겠다”고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8.27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 도전했지만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패배했다. 

하지만 그가 정책으로 증명해온 진보와 혁신이라는 화두를 현실 정치권은 계속 호출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교육 정책 전반을 다듬었고,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진보와 운동권이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강성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온화하고 젠틀하다”고 평가한다. “학교를 방문하면 경비원에게까지 예의를 갖출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정책으로 실현할 때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계속해왔다. “온화하지만 강단 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성향이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동력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그는 논문 표절 의혹 등을 제기하는 야당과 언론의 검증 공세를 넘어야 한다. 그가 이번에도 얽히고설킨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를 진보와 혁신이라는 화두로 풀어낼 수 있을까. 

수, 2017/06/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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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7. 6. 13)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1950년 11월30일 “핵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마 이 협박이 북핵 개발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1956년 2월23일 북한이 소련의 드브나 핵연구소에 30여명의 연구원을 파견한 것이 핵개발의 기원일 수도 있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한 지 올해 60년이 넘는다. 이 60여년은 한마디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핵 대장정의 시기였다.

때로는 경제붕괴 상황에 직면하고, 때로는 선제공격의 위험이 닥쳐도 중단 없이 행진한 시간이었다. 오랜 고립과 제재를 견디고, 온갖 난관을 헤쳐온 끝에 드디어 핵 보유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북한이다. 제재를 더 강화하거나 추가한다고 핵 국가의 꿈을 포기할 리 없다.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핵 문제들을 풀려면 단계적 접근법이 합리적이다. 북한과 외부세계가 상호 조치로 신뢰를 쌓아가며 원인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는 방법이다. 과거 핵 합의 때 많이 해본 것이다.

그러나 순서대로 풀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고 그만큼 인내심을 요한다. 최근 평양에서 이런 통첩이 날아왔다. “주체 조선이 대륙간탄도로켓(ICBM)을 시험 발사할 시각이 결코 머지않았다.” 그런데도 남북, 미국은 “여건이 되면 대화하겠다”며 사돈 남 말 하듯 하고 있다.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핵 상황을 악화시켰던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가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를 천명했을 때만 해도 상당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금 압박뿐 관여는 없다. 누구보다 상대가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북한은 “최대의 압박과 제재로 누구를 굴복시킨 다음 대화 탁에 끌어내어 항복서를 받아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이 말해주듯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벌써 실패했다.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와 대북정책 전환도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라는 말일까?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60여년 수없이 제재도 하고, 경제지원도 하고 타협도 해봤지만, 사실 모두 변죽을 울리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초기 실패를 거울 삼아 관여의 수준을 높인다 해도 북핵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있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압박 수위를 올려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핵항모, 핵잠수함,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면 할수록 핵에 대한 북한의 물리적, 심리적 의존도는 높아진다. 위기 고조는 북한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위기 조성으로 보상의 크기를 키운 뒤 미국이 제시하는 카드가 마음에 들 때 적당히 물러서면 그만이다. 북한은 현 국면에서 아쉬울 게 별로 없다.

과거의 게임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지긋지긋한 핵 현상 유지를 깰 방법이 하나 있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 핵 문제의 본질로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북한은 평화의 부재 상태, 즉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정치·군사적 환경 때문에 핵을 선택했다. 한반도 평화 체제의 대안으로 핵을 손에 쥔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를 주고 핵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사리에 맞다. 그러나 한·미는 반공주의 이념과 제도, 주한미군, 군사력 우위를 기반으로 한 기득권 체제인 정전체제의 수혜자였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핵과 ICBM을 품은 정전체제는 이제 더이상 쓸모없게 됐다. 대전환의 시간이 온 것이다.

북한이 60년간 요구했지만 한·미가 외면하던 것, 평화체제를 준비해야 한다. 그걸 위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지 말고, 선제적으로 평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 첫 신호로는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 중지, 한·미 연합훈련 유보가 적당하다.

그건 북한이 바라던 바이므로 호응할 것이다. 그럼 북한과 탁자에서 마주 앉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논의할 수 있다. 이게 진정 대화의 시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말 트럼프를 만날 때 양국의 북핵 문제 원칙을 확인하는 것에 만족하기보다 핵 문제 돌파구를 열 과감한 구상을 던져야 한다. 북핵 개발 60년사를 전해주며 지난 20년간의 협상에도 왜 비핵화에 실패했는지 이해시키면 어떨까.

트럼프가 믿고 있듯이 김정은은 미치지 않았다.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계승되고 학습된 생존법칙을 따를 뿐이다.

트럼프는 기성 논리, 기존 경로에 집착하지 않는다. 창의적 해법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이 좀 터프해야 한다. 오마바가 취임 초 의기양양하게 말했던 터프한 외교(tough diplomacy)를 상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진짜 거래를 제안해 보라. 트럼프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될 것이다.

수, 2017/06/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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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7. 6. 13)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촛불시위와 대선,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 사회는 큰 전환기에 섰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육정책 즉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고급인력 양성과 장기 국가발전 전망 수립이다.

그런데 교육정책이라 하면 우리는 언제나 대학입시 개편을 떠올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나 사회의 지력(智力), 즉 학문 생산 능력이다.

지력은 국제 대학랭킹에서 국내 대학들의 순위, 혹은 교수들의 영어 논문 편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얼마나 생산해 낼 수 있는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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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규모를 감안했을 때, 미국내 한국 유학생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미지 출처: http://premium.chosun.com/)

2011년 봄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과학협의회가 공동으로 <세계 사회과학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 보고서 집필에 한국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단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보다 학문적으로는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국 및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이 상당수 참여했다는 사실이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내 유학생 수에서 한국 학생은 전체 3위이지만, 인구 대비로 보면 압도적 1위다.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 학술시장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수십년째 교수나 박사 연구자를 미국 대학에서 공급받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미국 박사의 비율은 80% 이상이며, 경제학 교수의 95% 이상이 미국 박사다.

타계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자 암스덴은 한국만큼 재벌 대기업 문제가 중요한 나라가 없는데, 한국에 대기업 연구자가 드문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질타한 적이 있다. 다른 중요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학원은 한국 학생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줄 리 없기 때문일 것이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대학의 기능은 학문과 교육인데, 지금까지 한국에서 국민들의 입신출세, 지위추구 열망에 부응하는 학부 중심의 대입 정책은 넘쳐났어도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학문 정책은 없었다. 대학원, 특히 박사과정 육성은 언제나 무시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세계의 유명 대학은 거의 대학원 대학이지만 한국의 상위권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부 대학이며, 특히 사회과학 분야 박사과정은 거의 텅 비어 있다.

배울 학문적 내용과 학위취득 후 취업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둘 다 부정적이다. “학부는 한국에서, 박사는 미국에서”, “이론은 중심부에서, 적용은 현지에서”. 식민지 지식순환 체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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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열등했던 한국 유학생은 미국 박사를 따고 한국에 돌아오면 엘리트 지식인으로 대접받으며 지배계급의 일부로 편입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서울대나 주요 대학 학부 정원을 축소하고 박사과정을 내실화하자는 요구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없이 제기되었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소 지원 사업, 특히 국내 인문사회계 박사과정 학생 지원도 이런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변화된 것은 거의 없다. 주요 대학이 학부 대학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연구 중심, 대학원 대학으로 변신을 시도하면 가장 좋을 것이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식의 만성적인 외국 의존, 서울 주요 대학의 국내에서의 지위독점 구조를 극복하고,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회과학 박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국가 사회과학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단극적인 지식권력 독점구조를 다극화하고, 지방 국립대학들의 사회과학 연구의 허브 기능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종시가 최적지일 것 같다.

세종시에 입주한 정부기관, 국책연구원의 정책 의제를 수용하고 지방 국립대학과 교수·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큰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대학, 아니 대학원과 지식 생산 능력에 달려 있다. 국가가 자체 사회과학 박사를 양성할 수 없다는 말은 아직 국가의 장기 정책이 없다는 말과 같다.

인문학,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은 현장성, 문제의식, 역사성, 그리고 정치·사회적 적용 가능성에 기초하되 보편성을 지향한다. 사회과학자들의 국제적인 교류는 더 활성화되어야 하고, 국내 박사과정생도 더 국제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과학의 독자성과 독창성, 박사 양성의 기반 마련이다.

‘학문’에 뜻을 둔 청년들이 ‘교수’가 되기 위해 미국에 갔다 와서 한국을 이론 적용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이제 끝나야 한다.

수, 2017/06/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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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 개월간 일어났던 시민촛불혁명의 핵심구호는 ‘이게 나라냐’ 였다. 정신 나간 박근혜 전대통령과 그녀의 사적 측근들이 국가권력을 농단했던 사실들에 분노한 시민들이 외친 한 줄의 비명이었다.

외교안보특보로 문 대통령의 방미에 앞선 탐색에 나선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의 최근 발언과 이에 대한 미국측 반응을 다룬 국내의 언론보도를 접하는 필자는 ‘이게 대한민국 언론이냐’는 비명을 절로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미국보다 더 미국을 걱정하는 보수언론

주권국가의 통치자 특보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당당하게 한 문교수의 발언을 두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의 한심스런 시각은 차치하고라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응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내린 사드 배치의 과정에 대한 조사결정과 문정인 특보의 미국 내 발언에 대한 보고를 접한 트럼프 자신이 ‘욕설까지 동반한 격노’를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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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에 대해) 트럼프 격노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일부 보수층과 보수언론의 대미사대주의를 풍자하는 한겨레신문 만평.

이들 언론보도 기사의 행간에는 마치 종주국 황제의 역린을 건드렸으니 이제 큰 일이 났다 식의 경고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듯하다. 이는 수구집단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공갈협박( black mail) 수법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한미정상회담, 잠시 미루는게 맞다)을 통해 문대통령의 방미를 수 개월 뒤로 연기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정된 일정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두 문(two Moons)의 환상적 콤비 플레이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히려 정당한 보도의 초점은 미주대륙의 절대적 패권국가와 국제정치의 균형자라는 엄청난 지위의 강대국 미국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자격미달과 오만함을 질책하고 비난했어야 마땅했다.

상기의 기사를 ‘트럼프의 격노’라는 제목으로 다룬 언론사들은 자신이 속한 국적부터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만약에 자신들이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면 국가의 주권과 체면을 팔아먹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이러한 비난을 거부하고 싶다면 그들의 실제적 조국이 미합중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정학적 지옥, 한반도의 숙명인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현재의 한미관계를 좀더 솔직하게 따져 들어가 보자.

서구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18세기 이래 국제정치를 판단하는 두 가지 시각 또는 이론이 길항하고 있다 한다. 한가지는 패권적 현실주의이며, 다른 시각은 상호적인 자유주의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진 제국주의간의 식민지 쟁탈과 패권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대단원으로 국제사회는 치열한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졌다. 수세기에 걸친 전쟁의 원인으로 작동한 패권주의를 견제하고자 다양한 국제기구와 시스템을 구축하여 상호주의의 입장을 강화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상호주의적 노력은 미소 양 진영의 대립으로 무력화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패전국도 아니며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반도는 오히려 분단과 민족동란이라는 비극을 거쳐서 오늘까지도 여전히 휴전이라는 잠재적 전쟁상황에 놓여 있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적 대결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하였으나, 오히려 미국이 일방적 패권주의를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폐해가 심해가는 중에, 중국과 인도의 굴기, 유럽연합의 탄생, 이슬람 문명과 러시아의 재기가 이루어 졌다.

바야흐로 다원적 패권주의 시대를 눈앞에 두면서, 한편에서는 극우적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호주의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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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일본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 시기는 대북문제접근에서 한국과 미국 간의 협력이 가장 잘 이뤄지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런 와중에 제2차대전 직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섰던 국력이 20%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소프트 파워의 급격한 상실 등 심각한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 일본전쟁의 전승국인 미국에 의해 이루어진 해방, 그리고 공산화를 시도했던 북한 때문에 치른 민족동란을 겪으면서 지난 70년간의 세월은 한미동맹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편승적인 한미종속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이는 동시에 피동적인 종속관계를 합리적인 동맹관계로 이동시켜야 하는 주권국가로서의 과제상황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전개는 역동적이고 이러한 역사의 파고를 능동적으로 타고 넘는 자만이 미래의 주인공이다.

지난 70년 간의 한미관계는 김대중-클린턴 시절의 3년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일방적 역사이다. 강자에 의해 형성되는 일방적 역사라는 것은 동시에 매우 위험하고 예측이 어렵다는 뜻을 포함한다.

김대중-클린턴의 황금기 같은 3년은 소중한 기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남북이산가족들이 만나고,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지고, 개성공단의 경제적 협력이 이루어졌고, 연평 해전이라는 위기가 있었음에도 굳건한 평화와 국방의 토대가 이루어 졌다.

황금기 같은 3년의 기간 동안에는 한반도 문제를 남한정부가 주도하고 미국이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후 들어선 부시 정권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1990년 이래 애써 이루어 놓은 북미간의 중요한 합의협정(agreement frame: AF)이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천하에 무식한 이명박 정권하에 이루어진 ‘선제적 비핵화 전략- 편승하기(bandwagonning)’과 무책임한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라는 허울이 어우러져 극심한 상호불신 속에 한반도의 비핵화는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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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한미 밀월은 부시 행정부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직면한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zquotes.com/)

북한의 자해적 핵무장 수준이 동아시아 전역과 미국본토를 대상으로 상호확실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 MAD)의 국면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매년 되풀이되는 한미군사훈련에 소위 미국의 전력자산이라는 초현대적 무기들이 대거 동원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남북한 민족 모두에게 일대의 위기국면인 동시에 동아시아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불장난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분명하게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도가 숨겨져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의 손으로 

문재인 정부하에 한국사회의 내부적인 주요 과제는 양극화 완화와 더불어 일자리창출을 포함한 불황극복이다.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산업과 경제정책, 교육과 사회정책을 강구해야 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과 정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조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국제적으로 상호적인 자유주의가 보장되지 못하면 실제적인 성과를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한미관계가 그간의 일방적 종속관계에서 합리적 동맹관계로 조정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정치적 번영과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출중심국가인 한국에게는 외적 조건이 내부적 성과를 확실하게 규정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중장기적으로 미국중심의 패권적 현실주의라는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수평적이고 합리적 동맹관계로 가는 중간단계의 종속적 동맹관계라는 과정을 거쳐가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그 핵심적 주제는 당장의 현실로 전시작전권의 이양과 장기적인 동아시아의 집단적 안보체제의 구축이다.

한편에서는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위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되, 한반도의 미사일방어체제로 일방적 편입과 한미일 군사동맹을 동의해서는 아니 된다. 이는 한국을 영구적으로 미국의 절대적 영향하에 종속국가로 묵어두는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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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의 각축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지정학적인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은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관점에서 생존과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http://www.fmkorea.com)

문재인 정부는 당당하고도 당연하게 법적 근거가 없는 전시작전권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한국적 미사일 방어체계를 포함한 자주국방의 요지를 미국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행사해야 하는 일차적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드의 문제는 잠정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해결의 주역은 당연히 대한민국이어야 하고 한반도 역사라는 차량의 운전석에는 문재인 정부가 앉아야 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적 패권주의 산물이다. 우선 중국에 맞서 한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시에 미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역사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자살 골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다원적 시대에 맞게 공존공영의 상호주의라는 큰 주류를 형성하면서 미국은 국제적 패자로서 동아시아의 균형적 중재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중국의 굴기에서 오는 잠재적 지역 패권의 위험을 견제하는 방식은 대결적 한미일 군사동맹이 아니라, 지역의 관계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나토방식의 집단적 지역방위체계 방향에서 해결해가는 것이 옳다.

일본은 과거 대동아권의 꿈을 꾸는 군사대국의 미망에서 벗어나면 아시아 이웃국가들과 함께하는 보통국가로 길이 열릴 것이다.  

중국은 과거의 패권적 종주국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보다 경제와 군사의 대국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것이 근대사의 치욕을 벗어나 중국몽(中國夢)을 이루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유러시아의 강국답게 미중일 사이에 이해를 조정하는 보증국가로서 명분과 실리를 살리는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호주, 베트남, 동남아 등은 중간국가(middle power)로서 균형자적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큰 그림의 시나리오와 연출은 당연히 미국의 몫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들을 교량하는 중추적 핵심적 역할을 해 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북핵의 문제는 북한정권의 생존과 평화보장의 문제로 접근하면 예상보다 너무 손쉽게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남한정부는 통일의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양국관계의 정상화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주변 국가들의 우려와 견제를 덜어내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상호이익에 근거한 진짜 동맹을 만들자

문재인 정부의 미국 전략은 그간의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맹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의 출발점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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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한국의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에만 의존하는 동맹의존증은 오히려 한국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오는 6월 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맹의 파트너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스스로의 생각과 플랜을 제시하고, 이를 미국과 조율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sbs)

동맹은 강자의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이라는 기초 위에서 서로간의 다른 시각과 현안을 조정해 가는 관계이다.

문대통령의 방미 길은 패권국가인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뿐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사회에 대하여 당당하게 한국정부의 입장과 비전을 밝히면서, 이해가 같은 지점에서는 굳건히 악수를 나누고, 입장과 시각이 다른 분야에서는 서로의 입장을 십분 경청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한반도의 안전과 미래에 관해서는 분명한 주도권을 요구해야 한다. 아닌 것은 미소를 품고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략과 용기와 결단을 기대한다.

목, 2017/06/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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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 서울기행]

일시 : 7월 1일(토) 오전9시30분
집결장소 : 와룡공원 정자(안국역 2번 출구에서 02번 마을버스 승차, 성대후문 하차, 도로변 인도따라 180m 이동)
참가회비 : 2만원 (기행 후 식사 제공, 막걸리 약간 포함됩니다)
장소 : 북악산 둘레길 (청와대 주변)
코스 : 창의문-와룡공원(2시간 소요)

기행 웹포스터

<세부프로그램 진행>
안내 가이드선생
9시 30분 집결
10시 기행 시작(와룡공원)
12시 30분 기행 마감(창의문)
1시 오찬 (막걸리 + 점심)

<코스 안내>

기행 코스

 

<참가신청서>
https://goo.gl/3dDuVp 클릭!!

 

<문의>
다른백년 홈페이지 http://thetomorrow.kr/
[email protected]

금, 2017/06/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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