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최저임금 인상 대응 정책으로 제시된 표준계약서 활용 관련, 적극적 정부행정 필요해
익명 (미확인) 님|목, 2018/09/13- 11:42
최저임금 인상 대응 정책으로 제시된 표준계약서 활용 관련, 적극적 정부행정 필요해
최저임금 인상부담 분담 방안으로 표준계약서 활용 제시한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유통거래·가맹 표준계약서 활용률 파악 못하고 있어
하도급대금·가맹금·납품가격 조정 안되어 공정위에 신고된 건수 0건, 원인 파악 필요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최저임금인상 부담을 나누는 내용이 포함된 하도급·가맹·유통거래표준계약서가 현장에서 얼마나 정착되고 있는지, 관련한 홍보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도급·유통거래·가맹 표준계약서 활용현황, 홍보내역 등과 관련한 정책질의와 정보공개를 청구한 바 있다(2018.8.21.http://www.peoplepower21.org/Labor/1579228). 참여연대는 2018.9.3.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령한 정보공개 답변서를 분석한 결과, 표준계약서 활용 정책 관련하여 정부의 행정이 부족한 상황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표준계약서가 몇 개의 사업체에서 활용되고 있는지, 2018년 최저임금 인상분이 계약서상 몇 %가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참여연대의 질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분야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중인 하도급서면실태조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음’, △가맹·유통거래 분야에 대해서는 ‘2019년도 공정거래협약이행평가를 통해 표준계약서 도입여부에 대한 점검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답변일 현재(9/03) 하도급·유통거래·가맹표준계약서가 하도급·유통·가맹업체에 얼마나 도입되었는지, 표준계약서상 2018년 최저임금 인상분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하도급서면실태조사는 올해 연말에나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공정거래협약이행평가도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내년에나 진행될 것”이라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나눌 방법으로 내놓은 정책의 활용 상황을 확인할 자료를 정책 시행 8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참여연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실시하는 하도급서면실태 조사의 경우 원사업자의 응답률은 100%에 가까우나 수급사업자의 응답률은 50% 가량이고 세부 문항에 대한 응답률은 더 떨어진다는 점(참고:http://www.peoplepower21.org/1559850)에서 서면실태조사가 끝난다고 해도 표준하도급계약서 활용 관련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 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상승으로 하도급대금·가맹금(가맹수수료)·납품가격 조정을 원사업자·가맹본부·유통업체에 요청하였으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공정거래위원회 또는 공정거래조정원에 신고된 건수에 대한 참여연대의 질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된 건수는 없고 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건수는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된 건수가 전혀 없다는 것은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나, 한편 불이익에 대한 우려 등으로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거나 제도에 대한 홍보 부족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부분에 대해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조정원의 관련 분쟁조정 신청건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주무기관으로서 적절한 행정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계약서의 홍보와 관련하여 참여연대는 “표준가맹계약서나 표준유통거래계약서의 경우 관련 단체와의 간담회나 홍보물배포, SNS 홍보 등을 하였다고 밝혔으나, 표준하도급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 게시, 사업자단체를 대상으로 한 홍보요청에 그쳤다”며 “표준하도급계약서 확산을 위해 하도급서면실태조사 대상 수급사업자 전체를 홍보대상으로 하는 등 홍보의 대상과 방법이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저임금인상을 분담할 수 있는 정책으로 대기업·가맹사업자와 하도급업체·가맹점주 양자 간의 “균형있는 거래 조건”을 만드는 표준계약서 활용을 제시한만큼, 표준계약서가 현장에서 얼마나 활용되는지를 면밀히 파악하고, 목표한 정책효과가 있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갑론을박의 토론이 있는 것은 미래로 향해 나가는 한국사회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마침 필자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하면서 구성된 비전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새정치의 사회경제운영의 원칙’이라는 문건을 통하여 필자는 박근혜 정권이 마감되는 2018년 기준하여 최저임금 시간당 만원을 원칙으로 적용할 것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같이 참여한 비전위원 여러분들과 비전 내용을 당과 연계하는 의원들의 대부분 의견이 너무 과격하다 조언하면서 이를 공식적으로 만원에서 8천원으로 조정한 경험이 있다.
2015년 5월, 경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1만원권 지폐가 인쇄된 유인물을 들고 2016년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 이상으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수면 위에 오른 ‘최저임금 1만원’
최근 소개된 국민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 내용은 매우 공을 들여 준비한 것으로 현실에 대한 통계를 중심으로 조밀하게 분석한 전문성은 인정할 만하나, 변혁기에 놓인 한국사회의 과제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변화에 대한 의지가 매우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행여 전문성을 가장해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문재인정부의 핵심적 정책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상기 보고서는 급격한 임금 인상이라는 개혁에 반대하면서 현재적 상황을 통계라는 단순한 프리즘을 통하여 접근하는 기능적 한계를 지니는 반면에, 다만 최저임금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준비없이 성급하게 시행하려는 것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어 후자의 부분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정말 가관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위원장이라는 사람의 발언이다.
평소부터 그를 국세청의 사무관급 인물이라고 낮게 평가한 필자이지만, 오래 전부터 합의하고 준비해온 종교기관과 종교직업인들에 대한 과세계획을 연기하려는 그의 의도적 발언에서 교회장로라는 사적인 신앙의 영역과 국가운영의 공적인 중심주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던 차에 역시나 대선의 선거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의 만원으로 인상’을 시기상조라고 우기는 편협한 그의 모습에서 민주당 정권의 성격과 문재인 대통령의 앞날에 심각한 불안을 느낀다.
그의 발언은 철밥통 공직사회의 반(反)개혁적 모습을 무의식 중에 적나라하게 들어낸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내수 활성화 기반될 것
‘최저임금 일만원’ 논쟁은 선거법과 헌법개정,검찰과 국정원 개혁과 더불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매우 중차대한 기제이며,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규정짓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하게 저수준 노동의 임금인상이라는 단순한 영역을 넘어서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철학적 실천적 중심과제이며,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산업전반에 대한 변혁적 계기 또는 촉매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동산 투기 등 지대추구활동이 여전히 왕성하고 기득권의 위세로 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전 인구의 17% 가 천형적 빈민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원을 참여적 조건에서 개별적으로 제공하려는, 그리고 1997년이후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시장기제라는 미명하에 기업의 이익실현이 단세포적으로 작동하는 경제의 현실에서 시민적 삶의 영역을 온전하게 보호하려는, 최저임금 논쟁은 현재의 한국사회와 문재인 새 정부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앞서 언급한 국민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하게 최저임금이라는 분야만을 분리시켜 다른 OECD 국가들과 통계적인 수치만을 나열하여 비교하는 것은 예의 통계학적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질적인 평가는 정치경제학적 거시 관점에서 출발점을 잡아야 하며, 해방 이후 70년간 누적된 사회경제적 적폐와 결함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지를 담아내야 한다. 국제간의 비교는 총체적 내용을 담보해 낼 때만이 비로소 유의미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통계상 제대로 잡히지 않는 토지소유 등 부동산 소유현황과 금융자산의 편재로 인해 연간 발생하는 400-500조의 불로성 자산소득의 80 – 90%를 불과 1.0 % 의 소수가 차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산업운용 체계 내에서 생산되는 주요한 부가가치의 70 %를 30대 재벌이 빨대처럼 독식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은, OECD 최고수준의 과다한 주거와 교육 비용, 그리고 역으로 OECD 최저수준의 사회이전소득효과와 사회안전망의 절대적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하루가 생존경쟁의 전장 터이며, 불안과 위기라는 단어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신속한 인상을 검토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적 이유는 내수시장 규모의 심각한 위축이다.
미국의 경우 내수시장의 규모는 국민순소득의 70% 수준이며 유럽국가들의 평균 역시 65% 수준을 상회한다. 반면 한국은 50% 수준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2016년 기준 국민순소득이 1400 조라고 추정할 때 내수시장규모는 800조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위에 언급한 극심한 불평등과 부의 편재, 그리고 복지안전망 이라는 국가기능의 결핍마비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우려하는 주요한 입장은 한국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는 걱정과 자영업과 중소기업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책적 선의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규모의 실업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이 보태진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첫단추
이런 입장에 대한 답변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국사회경제의 운용에 대한 두 가지의 변혁적 시각을 제공하는 문건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것은 2014년 상반기 두 달간 한시적으로 활동했던 새정치 비전위원회에서 필자가 피력하고 서면으로 제출한 내용이다.
“현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성장의 결과가 가져온 부정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긍정적 요소들을 키워나가는 일종의 강제적 순환이며 핵심은 경제운용의 성과를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달려있다.
배분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국민경제 내부에 생산과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그 성과를 국민모두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분의 영역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1차적으로 산업의 경제적 활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총괄적인 지수는 노동배분율로서 국민경제의 총 부가가치분에서 피고용임금노동자들이 받는 보수의 비중이다.
노동배분율을 적정수준으로 끌어올려야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노동배분율(자영업분야를 제외한)은 1997년 IMF 직전 14백만명의 피고용임노동자를 대상으로 63%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2013년 현재 17백만명의 피고용임금노동자 대상으로 58%수준까지 후퇴하였다. 즉 지난 15년간 피고용 임금노동자가 3백만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배분율은 오히려 5.0% 이상 격감한 것이며, 이는 내수경기가 어려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동시에 노동시장구조의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산업경제 활동의 영역에서 최저임금의 수준을 그저 시간당 만원이라고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평균임금의 70% 수준 이상으로 정하는 것이 규범적이며 정책적으로도 효과적이다.
산업별 직종별 사업장별 이라는 삼동(三同)의 조건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관철시켜야 하며, 저임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임금이 반드시 정규직 임금보다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
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조세체계의 전반적 개혁을 필요로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불로소득인 자산소득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강력한 누진세를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이러한 1차적 영역에서의 배분이 선순환을 이루면, 내수시장이 확장되고 560만명의 영세 자영자들의 수입이 증대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놀랄 만큼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문건은 최근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홍장표 전 부경대교수의 글로, 홍 교수는 놀랍게도 필자의 견해를 거의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그는 최저임금인상의 이론적 배경이 된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2015년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연구총서에 발표한 ‘소득주도 성장과 중소기업의 역할’이라는 연구논문의 결론부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발췌하여 옮겨 적는다.
“소득주도 성장은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증대를 통하여 내수를 증진하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한국경제의 수요체제나 생산성 체제에 관한 선행 연구들은 소득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질임금의 증가, 가계소득의 증진은 총 수요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실질임금 상승이나 복지의 증대는 단지 비용 상승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유효수효의 중가는 노동 절약적 기술진보를 촉진시켜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동시에 실질임금상승은 (내수기반을 확대하여) 고용을 증가시킨다… (중략)…
이는 지나치게 높은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를 낮추고,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중략)…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의 단계적 인상, 저소득가구에 대한 생활임금보장, 생산성 증가율과 실질임금 증가율의 연계를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한다, 그리고 영세소상인과 저임금노동자 가구의 생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제도의 강화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임금 부담이 오히려 기업 경쟁력 자극
최저임금의 시간당 만원 인상을 거부하는 이유로 한국 산업계 특히 중소기업에 급격한 부담과 타격으로 인해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이 증대할 것이라는 판단은 개혁의지를 거부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으로 명백한 잘못이다.
잘못이라는 근거로 두 가지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본다.
첫째는 북유럽에서 1960년대에 도입했던 랜-마이드너 정책 이야기이다.
당시에 불어 닥친 불황과 수출경쟁력의 저하의 원인을 임금 불평등과 산업경쟁력의 부족으로 보고, 사회연대임금정책을 실시하고 일정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동시에 부가가치증대와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혁신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저부가가치 분야에서 일하던 산업인력이 대거 고부가가치 산업분야로 이동하게 되면서 현재 북유럽은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지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사민당 중심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정치환경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다.
두번째는 질풍노도의 6월 민주화운동 이후 1987년 에서 1990년대 중반의 한국에서의 경험이다.
이 기간 동안 인금인상율은 두 자리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가파른 임금인상이라는 걱정에 비춘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은 도산했어야 맞다.
그러나 오히려 이 기간 중에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며 우뚝 서는 거인들로 성장하였다. 실제적인 한강의 기적은 이때 이루어진다.
긴 설명을 대신하여 짧게 이야기하자면, 임금인상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혁신기제로 작동하였던 까닭이다.
이전까지 기업들이 성장에 의존해왔던 특혜와 투기 그리고 저임금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조건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양한 혁신의 노력을 통하여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IMF 과정에서 부도로 사라진 기업들 대부분은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혜와 비리, 부정 그리고 투기에 의존해 왔던 기업들이다. 선진국가 기업들의 역사를 보아도 임금이 높아서 부도가 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며 대부분 경영과 전략의 실패가 주류를 이룬다.
최저임금 인상은 한국경제의 약점인 중소기업의 혁신전략과 직접 연계되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 만큼,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의 구조혁신을 제약하는 온갖 산업생태계를 개선하는데 모든 정책을 선제적으로 강구하여야 한다.
대기업들의 갑질 불공정거래의 차단과 공정한 시장질서의 구축도 긴급하지만, 기존의 관행이었던 중소기업의 과잉보호 역시 매우 위험하다.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의 임금부담은 당연히 상품가격과 납품단가로 반영이 되어 시장에서 판매되거나 수요처인 대기업이 지불하여야 마땅하다.
장기적으로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인상 요인을 흡수하면서, 메기 이론에 따라 경쟁력을 키우되 시장기제에 의거해서 최저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만큼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마땅히 퇴출되어야 한다.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만 미래의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최저임금의 인상이 내수시장 수요의 확대라는 선순환적 효과로 돌아오는 약 3년간을 유예의 기간으로 설정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별도의 지원적 보상책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 관해서는 홍장표 수석과 김상조 위원장이 누구보다도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영업 부담은 섬세한 정책적 접근 필요
가장 크게 우려되는 영역은 560만명이 종사하는 자영업 분야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도 중소기업 영역 못지 않은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단기적 정책과 장기적인 관점이 동시에 필요하다.
경제적 성과가 선순환이 이루어지던 IMF 이전 시기에는 자영업의 평균소득이 봉급생활자 수준을 넘어서서 대부분의 임노동자들이 자영업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2017년 현재의 상황은 전문직종과 일정규모 이상의 소수 자영업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월 평균 수입은 임노동자들의 평균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2백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가계부채가 몇 년 사이에 급속히 늘어 부동산 대출과 함께 한국경제의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자영업에 관한 접근은 단순히 현재 논쟁대상인 최저임금 인상만의 주제로 좁혀 보아서는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영업을 일자리 창출과 복지기능을 상실한 국가부재에서 오는 방편적 잠재적 반(半)실업군으로 인식하면서 접근해야 마땅하다.
한편 장기적 관점에서 필자는 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자영업 분야는 위에 언급한 심각한 현재적 문제를 노출함과 동시에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비선형적 직업선택(jobs on demands, GIG)의 형태로 진화하면서 자유롭고 전문적인 그리고 자기실현과 만족이라는 미래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며, 일인소유 형태의 자영업에서 지역내의 공동 협업과 공유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사회적 경제로 편입되고 재구성되면 질적인 부가가치와 내용을 담보해 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한국적 현실의 반(半)실업군인 자영업 분야는 최저임금인상 문제와는 별개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재편되고 재구성이 불가피한 영역으로 새로운 시각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경제의 운용성과와 연동되어 접근하고 파악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충격은 일반시민으로서 소비자들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흡수하여야 한다.
우선 임금인상 부분만큼 다양한 서비스 비용의 인상을 인정하여야 하며, 편의성을 떠나서 총 사회적 소비량은 영업시간과 대충 무관하므로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탈피하여 영업시간의 단축을 도입하여야 한다.
필자가 1980년 초 처음 유럽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상점들이 근무시간에 맞추어 문을 닫는 바람에 치약 하나 구매하는데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는 화가 났으나,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음식점들도 개폐점 시간을 정확히 명시하여 노동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야 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도 이제 이러한 유럽의 경험과 관행을 필요에 따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임금인상 부분만큼을 사회 전체가 긍정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효율성이 제고되고 노동의 소중함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의 시간당 만 원대 인상이 내수시장 규모를 확대하면서 자영업 분야에도 시차를 두고 선순환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며, 다양한 형태의 혁신기제로 작동하면서 거대한 변화를 불러 올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소규모의 자영업자들이 내수시장의 확대라는 효과가 나타나는 2-3년의 단기적 부담을 이겨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 분야의 전문적인 경험과 소견이 없는 관계로 필자로서는 책임있는 정책을 제시할 수 없으나, 다만 아이디어 수준에서 제안해보고자 한다.
최저임금 1만원, 문재인정부의 개혁 가늠자 될 것
우선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문제는 사회에서 일찍 퇴출된 중년들과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일하는 청년세대가 주요 구성원이라 판단하면서 실업문제와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항상 실업의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이 현실적으로 실업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적인 지원체계와 환경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와 국가재정에도 도움이다.
그간 별로 실효적이지는 못했지만 저소득근로에 대하여 시행하였던 EITC(Earning Income Tax Compensation)라는 보충적 세제지원의 방식을 과감하게 확대하여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도 일정기간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여, 일정소득을 올리지 못한 부족부분과 결손부분을 역으로 보상해주는 방식을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난제는 투명한 회계기장을 의무화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도덕적 해이와 부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약점이 있다. 손쉽게는 임금인상의 일정 분을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는 유예기간 동안 직접 보상해 주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재정적 부담이 클 수 있는 반면에 감추어진 고용 (shadow employment)의 신고가 의무화되어 투명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보다 많은 제안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최저임금 일 만원 인상’은 문재인 새정부의 성격과 의지에 달려 있다.
유러피안대학연구소(EUI) 명예교수인 필립 슈미터가 지적했듯이, 문재인정부의 배경이 광장의 시민적 요구 분출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기존 정치적 세력의 타협의 과정으로 출범한 것이라면, 기존 최저임금 위원회의 절차적 타협과 조정을 통하여 해당 기간의 매년 인상률을 결정하는 일상적 과정으로 진행하면 될 일이다 (normal progressive).
만약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이 요구하는 것처럼 과거의 적폐청산을 넘어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열고자 출범한 개혁 정권이라면, 최저임금인상은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일상적 절차가 아닌 정권적 과제로 수행되어야 한다(reformative transformation).
최저 임금을 2020년까지 시간당 만원으로 급격하게 인상하는 것은 비교하자면 호족세력의 기반을 배척한 조선초기의 토지수세논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필요하다면 절차와 과정도 변혁을 향한 정치적 의지로 돌파해야 한다. 결정이 이루어지면 일체의 예외를 인정해서는 아니 된다. 단 한 건도 예외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른 바 ‘문재인 케어’를 직접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를 포함하여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과 비교하면 매우 획기적인 대책이다. 우선 재정 규모가 역대 정부에서 최대 규모이다. 2022년까지 약 30조 6천억 원을 투입하여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비싼 항암제나 초음파 검사, 2~3인 병실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병원비를 전액 부담하던 건강보험 비급여에 대해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미용 성형 수술 같은 것을 빼고는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될 예정이다. 중병에 걸려 큰 병원비가 나와도 걱정이 없도록 고액 병원비에 대한 대책도 크게 강화된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보장률 70%가 아니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항목을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으로 전환하겠다고 한 것에 있다. 비급여가 없어져야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일 수 있고, 병원비 때문에 국민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급여가 없어지면 국민의 병원비 걱정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저수가로 인해 왜곡된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정상화시키는 결정적인 전기가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문재인 케어에서 왜 ‘비급의 전면 급여화’를 포함한 문재인 케어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검토하려고 한다. 끝으로 문재인 케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이야기 하려고 한다.
지난 정부 보장성 강화의 한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왜 핵심인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1979년 출범한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적게 걷는 대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가 많고 병원비 중 상당 부분을 환자가 부담하는 이른 바 저부담-저급여-저가격 체계로 시작했다. 국민소득이 높지 않아 건강보험료를 많이 걷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건강보험 수가를 통상적인 병원비 가격 수준에 비해 상당히 낮게 책정함으로써 국민의 병원비 부담과 건강보험의 재정부담을 줄였다. 그 결과 전체 병원비 중 건강보험은 일부분밖에 보장해주지 못했고, 중병으로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가계가 파탄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암과 같은 중병으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다. 때문에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최근까지도 ‘병원비 할인제도’라는 냉소적인 비판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국민이 병원비를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2005년부터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누적 금액으로 약 36조원을 건강보험에 투입했다. 매년 적게는 수천억에서 많으면 조 단위의 재정을 투입했다. 하지만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적표는 매우 초라했다.
전체 병원비에서 건강보험이 몇 퍼센트를 부담하는가를 말하는 건강보험 보장률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2004년 61.3%였던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15년 63.4%로 약간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증질환에서 병원비 본인부담률을 5~10% 수준으로 낮춘 결과 보장률이 크게 개선된 것과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를 크게 줄인 것이 그나마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중병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국민은 보장성 강화가 추진되는 기간 동안 오히려 더 늘어났다. 과중한 병원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가를 알기 위해 재난적 의료비 경험률이라는 지표를 널리 사용한다. 이는 한 가구의 가처분 소득 중 병원비로 40% 이상을 지출하는 경우를 말한다. 2000년 1.6%였던 재난적 의료비 경험률은 2015년 4.5%로 늘어났다. 2015년의 경우 전체 가구의 2.5%에 해당하는 44만 가구가 병원비 때문에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병원비 부담이다.
저수가와 비급여 풍선효과
지난 정부들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여년 간 36조원이 넘는 돈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장률이 개선되지 않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소위 ‘비급여 풍선효과’ 때문이다. 정부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를 늘리면 병의원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진료항목이나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늘려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정부는 보장성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병원비는 줄어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여년 간 기존 비급여 진료항목을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으로 전환했지만, 비급여 진료비는 급여 진료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이러한 결과는 비급여 풍선효과가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을 실패하게 만든 원인이라는 것을 실증한다.
그러면 ‘비급여 풍선효과’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이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의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병의원은 건강보험 진료비 가격이 낮아서 생기는 적자를 비급여 가격을 높게 책정해서 얻는 흑자로 메꿔왔었다. 그런데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을 늘리면 병의원은 적자를 메꾸기 위해 새로운 비급여 진료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의학적으로 필수적인 진료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급여 진료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진료문화와 비급여 진료가 남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제하는 기전이 없는 것도 비급여 풍선효과라는 현상이 만연하는 데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요약하면 비급여 풍선효과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저수가 체계에 기인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진료비를 낮게 책정한 대신 병의원이 가격을 높게 정할 수 있는 비급여 진료를 용인한 것이다.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 진료의 가격이 낮아서 생기는 적자를 합법적으로 벌충할 수 있는 일종의 용인된 사각지대였던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비급여 풍선효과의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저수가 체계에 기인한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간과했고 그 결과 새로운 비급여 진료비가 늘어나서 건강보험 보장률이 정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기존 비급여를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비급여가 생기는 것을 막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어야 했다.
왜 문재인 케어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약 30조 6천억 원을 투입해서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보장률 70%가 아니라 비급여 풍선효과를 해소하여 보장률을 높일 수 있는 실현가능한 계획을 제시한 것에 있다. 기존 비급여 진료의 대부분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로 전환함과 동시에 새로운 비급여가 생기지 않도록 가능한 한 모든 신의료기술에 우선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와 함께 비급여 풍선효과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낮은 건강보험 진료비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 오랜 숙제인 저수가 체계를 적정 수가 체계로 전환함으로써 비급여 풍선효과가 생겨나는 구조를 해소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더라도 ‘정규급여’가 아니라 ‘예비급여’로 전환된다. 예비급여는 정규급여에 비해 본인부담률이 높다. 입원환자에서 정규급여의 본인부담률은 20%이지만, 예비급여는 효과와 경제성에 따라 본인부담률이 50%-70%-90% 중 어느 하나로 책정할 예정이다. 예비급여는 일정 기간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평가를 거친 후에 정규급여로 전환되거나 비급여로 퇴출될 수 있다.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항목은 정규급여로 전환되고, 효과적이긴 하지만 경제적이지 않은 항목은 예비급여에 그대로 남겨두고, 효과적이지도 않은 경우에는 건강보험에서 퇴출시킬 예정이다.
중병에 걸려 병원비가 많이 나와도 가계가 파탄나지 않도록 고액진료비에 대한 보장성도 강화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병원비는 건강보험에서 전액 부담하는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상한선을 낮춰 고액진료비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자기 1년 소득의 최대 10%까지만 병원비로 부담하고 그 이상은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게 된다. 예비급여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적용하는 대신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를 통해 의료비를 지원한다. 최대 2천만 원까지 본인부담금의 50~70% 수준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노인, 아동, 여성의 병원비 부담도 줄어든다. 노인에서는 치매 진료와 치과 진료비, 어린이에서는 입원비와 치과 및 재활 진료비, 여성에서는 난임시술과 초음파 검사비 부담이 줄어든다.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쟁점들
문재인 케어 발표 후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1) 재정 관련 비판, 2) 적정수가를 포함한 의료체계 관련 비판, 3) 보장성 강화 효과 관련 비판의 3가지 유형의 비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재정 관련 비판은 다음과 같다. 첫째, 30.6조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가? 둘째, 30.6조로 약속한 보장성을 달성할 수 있는가? 셋째, 비급여 병원비를 과소추정한 것은 아닌가?
30.6조 원을 조달할 수 있는가?
문재인 케어에 필요한 재원을 정부는 1) 누적적립금 활용, 2) 국고지원 증가, 3) 과거 10년 평균 수준 이내의 보험료 인상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발표했다. 먼저 건강보험 재정 흑자로 쌓인 누적적립금 21조 원 중 약 10조원을 활용하고, 국고 지원비율을 기존 15%에서 17%로 늘려 약 5조 원을 조달하고, 건강보험료를 매년 3.2% 늘리면 최소 15조 원이 더 늘어난다. 이를 모두 합하면 약 30조 원이 된다. 하지만 이는 소득증가와 보험료 부과 기반에 따른 보험재정 증가를 고려하지 않은 추계결과이다. 지난 10년간 보험료 수입의 자연증가율은 약 6.4%로 이 같은 증가율을 적용하면 5년간 약 56조 원이 보험재정이 더 늘어난다. 보험료 수입의 자연증가율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약 30조 원은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를 매년 3.2% 올리더라도 가구당 월 보험료 증가액은 월 3천 6백 원, 연 4만 4천 원에 불과하다. 보험료 폭탄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사실 국민들이 보험료는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 입장에서는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 불리한 것은 아니다. 2016년 기준으로 국민들은 건강보험료 납부액의 약 1.8배에 달하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만큼을 기업과 국가도 보험료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30.6조 원으로 충분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하지만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 2015년 비급여 진료비는 약 12.1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용성형과 같은 비필수 비급여 진료비 1.4조 원을 제외한 규모이다. 예비급여로 전환된 비급여의 본인부담률 평균을 70%, 5년간 예비급여 진료비 증가율을 약 15% 정도로 가정하고, 매년 단계적으로 예비급여를 늘려나가는 효과를 고려하면 5년간 소요 재정은 약 16조 원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약 14조 원을 본인부담금 상한제와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 강화, 노인과 어린이, 여성에 대한 보장성 강화에 충당하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30.6조 원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재정지출의 총 규모는 가변적이다. 먼저 12.1조 원에 달하는 기존 비급여 진료 중 어느 정도가 예비급여로 전환될 것인가에 따라 지출 규모가 달라진다. 정부는 예비급여로 전환되는 비급여 진료비의 규모를 최소 8.7조 원에서 최대 12.1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음으로 평균 본인부담률에 따라서도 지출 규모가 달라진다. 개별 예비급여 항목의 본인부담률은 그것의 의학적 효과와 경제성에 따라 달라진다. 개별 예비급여 항목에 대한 의학적 및 경제적 평가 전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가장 가변적인 요소는 예비급여로 전환된 항암제의 약값과 MRI와 초음파 검사비가 낮아지면 약과 검사의 이용량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이다. 이는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약과 검사를 포함한 진료비 관리체계가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비급여 진료비를 과소 추정된 것은 아닌가?
정부는 비급여 진료비의 총 규모를 2015년 건강보험공단 진료비 실태조사 자료를 근거로 추정했다. 이는 전국 표본요양기관 1,825개 기관의 6월과 12월 외래 및 입원환자 진료비 약 1천만 건을 조사한 것이다. 이 조사에서 비급여 진료비의 표준오차는 약 0.4%이며 이를 근거로 95%의 확률범위 내에서 비급여 진료비 오차의 크기는 약 6천억 원 정도이다. 따라서 비급여 진료비 규모는 표본조사로 인한 오차를 고려하더라도 최대 12.7조 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병의원이 비급여 진료비 자료를 일부러 축소해서 제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병의원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조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다수의 병의원이 비급여 진료비를 축소 보고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된다.
문재인 케어에 대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이해관계자는 의료계이다. 이들이 주로 걱정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적정수가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2) 재정 지출이 증가할 경우 진료비를 대폭 삭감하면 진료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것 아닌가? 3)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이 심해져 지방 중소병원과 의원이 도산하는 것은 아닌가?
적정수가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건강보험의 낮은 의료비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기 위한 재원은 문재인 케어 소요재정 30.6조 원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급여 진료항목은 원가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다. 비급여 진료항목은 가격은 원가의 약 1.5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비급여 진료항목을 예비급여로 전환하여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높은 관행 가격을 원가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아래 그림과 같이 예비급여의 가격이 비급여 가격의 2/3 수준으로 인하되면 예비급여의 진료비의 규모 역시 비급여 진료비 약 12.1조 원의 2/3 수준인 약 8조 원 정도로 축소된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4조 원 정도를 낮은 건강보험 정규급여의 가격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은 어떤 방법으로 현재의 낮은 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할 것인가이다. 기존 수가를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 건강보험 수가는 검사비는 높고 의료진의 행위료는 낮은 매우 불균형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관리나 환자안전, 만성질환관리와 같이 의료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핵심적인 진료에 대해 아예 보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에 가격이 낮게 책정된 행위료를 크게 인상함과 동시에 의료의 질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진료항목에 대한 보상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진료 결과를 평가해서 의료 질과 효율성 높은 병의원에 대한 진료비를 가산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진료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것 아닌가?
비급여 진료를 없애려면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심사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MRI 검사는 암과 뇌혈관 질환에서 1회만 건강보험을 적용해준다. 다른 질환으로 MRI 검사를 하거나 1회 이상 검사를 하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다. 환자가 MRI 검사비를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가 된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에서 비급여 진료를 없애려면 모든 질환에서 의학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되기만 하면 MRI 검사를 몇 번 하던지 건강보험을 적용해줘야 한다.
기존 비급여 진료항목에 대해 질환과 횟수에 관계없이 건강보험을 적용하려면 병의원이 제출한 진료비 청구서 단위로 하던 진료비 심사를 의료기관 단위로 검사 횟수와 같은 진료량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른 바 ‘심평의학이라 불리는 행정적인 진료비 심사기준이 기계적으로 적용되어 의료전문가의 진료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지게 될 것이다.
환자쏠림이 심해져 지방 중소병원과 의원이 도산하는 것은 아닌가?
문재인 케어로 국민들의 병원비 부담이 줄어들면 수도권 큰 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우선 국민들이 굳이 큰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동네 병원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동네 병원이 바쁜 대학병원에서 하기 어려운 환자에 대한 교육이나 상담을 잘 해주고, 환자가 생활습관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국민들도 굳이 멀고 복잡한 대학병원에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국민들도 단순한 고혈압이나 당뇨병으로 대학병원을 찾는 국민들의 의료이용행태로 바꿔야 한다. 물론 고혈압이나 당뇨병도 심각한 동반 질환이 있거나 합병증이 있으면 대학병원에서 진료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케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의료전달체계를 강화하는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문재인 케어의 성공 요인
문재인 케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추진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문재인 케어의 추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추진과정에서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의료계와 시민단체 및 환자단체, 전문가로 이뤄진 ‘(가칭)문재인 케어 위원회‘를 구성하면, 여기에서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정책집행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지속적인 참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재원 조달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가 먼저 국고지원 규모를 밝히고 이를 지키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가 따로 놀면 국민들이 문재인 케어를 신뢰하기 어렵다. 셋째, 재정지출이 얼마나 늘어날지를 현재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 진료비 지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문재인 케어의 반환점에 해당하는 2019년 말쯤 중간 점검 결과에 따라 추진계획을 조정해야 한다. 넷째, 비급여 풍선효과가 행여나 다시 나타나는지도 면밀하게 감시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비급여 진료가 늘어나는 조짐이 나타나면 혼합진료금지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혼합진료금지제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진료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함께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혼합진료금지제도가 도입되면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를 하기 어렵다. 다섯째, 비급여 진료에 대한 동의 절차를 강화하고, 병원비 영수증 서식을 개선하여 환자가 모르는 비급여 진료가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급여 진료가 필요한 경우 의사가 반드시 비급여 진료가 필요한 이유, 건강보험에서 해당 진료항목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 가능한 다른 대안에 대한 설명 등을 반드시 설명한 후에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이 자신이 낸 비급여 진료비의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있도록 비급여 진료항목별로 사용 횟수와 진료비가 얼마인지 알 수 있도록 진료비 영수증 서식을 고쳐야 한다.
맺는말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우리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 문재인 케어는 국민들에게 병원비 걱정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이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가 성공하려면 의사, 병원, 환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고 양보하면서 최적의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교한 실행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장애인 학부모가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장애인 학교설립을 호소하는 장면이었다. 강서구 내 현재 1개의 장애학교가 있지만 수용인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왕복 3시간씩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추진 중이었던 특수학교 설립이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기회의 평등조차도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인가?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데, 강남으로 대변되는 집값과 특목고 및 명문대 진학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곧 교육이 기회의 평등을 촉진시키고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을 공고히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 입학에 도입된 기회균형선발 및 지역균형선발 특별전형은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이 낳은 능력 만능주의의 폐해와 학벌이 파생시키는 구조화된 차별 속에서 ‘기균충’, ‘지균충’이라는 용어로 희화화되고 있다.
그럼 결과의 평등은 어떠한가? 일찍이 ‘권력자원이론’의 대가인 코르피(Walter Korpi)가 『민주적 계급투쟁』(1983)에서 강조하였듯이 복지국가의 발전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결과의 평등이 어느 정도 실현되는가에 달려 있다. 때론 결과의 평등은 ‘가난의 평등’이라는 의도적인 왜곡 내지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산실인 시카고학파의 대부로 잘 알려진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그의 저서 『선택할 자유』(1980)에서 자유보다 (결과의)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재분배로 인한 낮은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평생을 불평등 연구에 천착해온 앳킨슨(Anthony Atkinson)은 『불평등을 넘어』(2015)에서 오늘날 불평등의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완전한 평등이 아닌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도 재분배를 통한 결과의 평등이 필요함을 설파하였다. 즉 ‘기회의 불평등’은 ‘결과의 불평등’을 낳고 이는 다시 ‘기회의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제도적으로 재분배를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오늘의 결과의 불평등이 심화될 뿐 아니라 내일의 기회의 불평등 역시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흙수저 계급’의 세습사회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상대적 빈곤율, 5분위 배율,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불평등 등의 기준으로 살펴볼 때 한국은 안타깝게도 OECD 회원국 중 결과의 불평등이 높은 국가에 해당된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의 경우 그간 통계청 산출방식에 대해 논란이 있어왔다. 즉 가계동향조사를 바탕으로 한 현행 지니계수는 전체 표본이 8,700가구에 불과하고, 고소득층의 소득 반영이 쉽지 않으며, 금융소득이 제외되었고, 1인 노인가구나 청년가구도 배제되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온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지니계수는 OECD 평균 보다 낮게 추정되었으며, 이는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소득분배가 개선되고 있다는 주장의 증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올해부터 가계동향조사가 가계지출조사로 개편되어 지니계수를 산출하기 어렵게 된 상황 속에서 통계청은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반으로 하고 국세청 조세자료를 추가로 참고한 새로운 지니계수를 12월에 공표할 계획이다. 사실 이전에도 가계금융복지조사나 국세청 통합소득자료를 토대로 한 지니계수의 보정작업이 있어왔는데, 그 수치를 보면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하였다. 결국 새로운 지니계수는 사회적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크루그먼(Paul Krugman),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같은 세계적 석학들은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진 과정은 경제발전에 따른 장기적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도래를 알린 레이건 정부 이후 공화당 집권기의 조세정책 때문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소득세 최고세율이 70-80% 이상이라 하면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유럽보다) 중시하는 선진국인 미국에서 그것도 보수정당인 공화당이 집권하였던 1950년대에 소득세 최고세율은 무려 91%에 달하였다. 그 이후에도 70%대 이상을 유지하던 소득세 최고세율이 레이건 정부 이후 30%대로 낮아진 것이다. 나아가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2007)에서 “정치가 경제를 바꾼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미국이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겪고 있는 것은 세계화의 결과가 아니라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층만을 위한 정부정책 때문이며,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적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역시 『불평등의 대가』(2012)에서 정치적 게임의 규칙이 상위 1%의 상류계층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 결과 경제 게임의 규칙 역시 1%에게 유리한 반면, 나머지 99%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시장만능의 정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명한 대선 구호인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에 빗대어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It's the politics, stupid!)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평등을 생각할 때 정치적 차원에서의 평등에 대해서 간과하기 쉬운데, 인류 역사에 비추어 보면 모든 시민이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평등을 누리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19세기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서 지대를 지불하거나 집을 보유하지 않은 남성 노동자들은 실질적인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웠고, 여성과 흑인의 참정권은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불과 100년 정도인데, 민주주의에 관해 상당히 진보적인 프랑스에서의 여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총선에서 선거권을 갖지 못했고, 스위스에서는 심지어 1971년까지 여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없었다. 미국에서 흑인은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문맹검사제 및 인두세 등을 통해 투표권이 제한되었는데, 실질적으로 정치적 평등을 쟁취한 것은 겨우 50년 전인 1965년이었다. 건강보험제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좋은 교재인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에서 영국의 유명한 정치인인 토니 벤(Tony Benn)은 “민주주의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심지어 사회주의보다도) 혁명적인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말을 남겼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세와 공적이전소득을 통한 소득재분배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어쩌면 정권교체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기회의 불평등-결과의 불평등-기회의 불평등’의 악순환에 균열을 내기 위해 정치적 평등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6월말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위원회 구조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노동 9, 사용자 9,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해마다 6월말까지 다음해 적용할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노사가 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는 노사교섭과 유사한 구조라 합의 도출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익위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9명의 공익위원을 모두 임명해 위원회 독립성은 물론이고 정권 입맛대로 인상액을 결정하는 구조에 대해 비판 여론이 높다.
갈등 속에 ‘공익위원’ 절대적 권한
최저임금 공익위원은 최근 10년간 8차례 최종안을 제시했고, 2차례는 최종 인상 범위를 제시했다. 10년 모두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최종안 또는 범위 안에서 결정됐다. 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공익위원이 내놓은 최종안이 예상보다 높으면 사용자 위원이 퇴장하고, 예상보다 낮으면 근로자 위원이 퇴장한 상태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2010년엔 사용자 위원이 퇴장했고, 2011년엔 근로자 위원이 퇴장했고, 2012~2014년엔 사용자 위원이 퇴장하진 않았지만 대부분 기권했다. 2015~2016년엔 근로자 위원이 퇴장했다. 이런 상태에서 공익위원의 최종안대로 모두 결정돼 공익위원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정권 입맛대로 최저임금이 결정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뽑은 공익위원이 절대적 권한을 가져 위원회는 독립성에 한계가 명확하다.
공익위원 위촉 기준도 제한적이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13조(공익위원 위촉 기준)에 따르면 ① 3급 이상 공무원 ② 노동경제, 노사관계 등 부교수 이상 ③ 공인된 연구기관 박사 연구원으로 돼 있다.
72명 중 45명이 교수, 전공도 경제-경영학 편중
1987년 최저임금위원회 구성 이후 현재까지 30년간 모두 72명이 공익위원을 맡았다. 72명 중 교수는 45명, 노동부 공무원 14명, 연구기관 12명, 시민단체 1명이었다. 절대다수인 교수의 전공은 경제학 20, 경영학 11, 법 7, 사회복지 2, 사회학 2, 소비자학 2, 문학 1명 순이다. 세부적으로 노동경제학이나 노사관계를 전공한 교수도 있지만 한눈에 봐도 경제, 경영학자 편중이 심하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실을 볼 때 복지학과 사회학 비중은 더 커져야 한다.
공익위원 중 시민단체 출신은 30년 동안 여성민우회 정강자 공동대표 딱 1명뿐이었다. 공익위원 위촉기준 4호엔 “상당하는 학식과 경험이 있다고 장관이 인정하는 사람”도 포함돼 있지만, 노동부장관은 30년 동안 교수와 노동부 공무원,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만 선호했다.
30년 동안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6명은 모두 교수였다. 조기준 고려대 교수, 김수곤 경희대 교수, 최종태 서울대 교수 등 초기 3명의 교수 출신 위원장은 학계에서 노동관련 전문성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후 3명의 교수 출신 위원장은 노사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교수 출신으로 보기 어려운 노동부 공무원 출신이나 국책 연구기관 출신도 있다.
[표1] 역대 정권 최저임금 인상률
정권별 인상률
적용 시기
시급 (원)
인상률 (%)
전두환
88
462.5 487.5
노태우 111.6%
89
600
29.7 23.1
90
690
15.0
91
820
18.8
92
925
12.8
93
1,005
8.6
김영삼 47.8%
94.1~8
1,085
7.96
94.9~95.8
1,170
7.8
95.9~96.8
1,275
8.97
96.9~97.8
1,400
9.8
97.9~98.8
1,485
6.1
김대중 53.2%
98.9~99.8
1,525
2.7
99.9~00.8
1,600
4.9
00.9~01.8
1,865
16.6
01.9~02.8
2,100
12.6
02.9~03.8
2,275
8.3
노무현 65.7%
03.9~04.8
2,510
10.3
04.9~05.8
2,840
13.1
05.9~06.12
3,100
9.2
2007
3,480
12.3
2008
3,770
8.3
이명박 28.9%
2009
4,000
6.1
2010
4,110
2.75
2011
4,320
5.1
2012
4,580
6.0
2013
4,860
6.1
박근혜 33.1%
2014
5,210
7.2
2015
5,580
7.1
2016
6,030
8.1
2017
6,470
7.3
공익위원 뒷문은 여당 국회의원, 정무직 단체장
문형남 전 위원장은 노동부 공무원 출신으로 노동부 기획관리실장과 산업안전공단 이사장을 지내다가 노동부가 전액 출연해 세운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4월부터 2년가량 8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위원장을 마친 뒤 곧바로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지냈다. 위원장을 맡을 때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였지만 사실상 정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문 위원장 후임인 박준성 교수는 2011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최저임금위원회를 맡았다. 박 위원장은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80년대부터 신인사 노무관리를 주제로 전경련과 포스코, 금성그룹, LG, 효성중공업 등 대기업 연구용역을 맡아 지난해 중노위 위원장 선임 때 노동계가 크게 반발했다. 박 위원장은 2016년 7월초 최저임금 의결 때 근로자 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사용자 위원들이 제시한 440원 인상안을 표결에 부쳐 정권의 대리인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부 교수는 2008년 5월 공익위원으로 임명돼 2012년 초까지 공익위원 간사로 활동하다가 그해 4월 총선에 출마해 새누리당 국회의원(분당갑)으로 변신했다. 유경준 박사는 국책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과 KDI에서 30년 가까이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15년 4월 24일 공익위원으로 임명됐으나 한 달(5월26일)만에 통계청장으로 옮겨갔다.
공익위원 여전히 교수 6, 국책연구기관 2, 공무원 1명
지금도 공익위원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9명의 공익위원은 교수 6명,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2명, 노동부 공무원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15일 뽑힌 어수봉 위원장은 노동연구원 연구원과 중앙고용정보원 원장,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등 주로 노동부 산하기관에서 주로 일했다. 어 위원장은 1999~2006년까지 공익위원으로 활동했다가 이번에 복귀한 셈이다.
6명의 교수 출신 공익위원은 전공별로 경영학 3명, 법학 2명, 경제학 1명 순이다. 현재의 공익위원 9명 중 문재인 정부 이후 새로 임명한 위원은 강성태 한양대 교수 1명 뿐이다.
연구원 2명도 국책연구기관인 직업능력개발원과 노동연구원 재임 중이라 정부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위원회 독립성 확보는 여전히 미지수다.
위원회 불러도 힘 있는 부처는 불출석
최저임금위원회가 고용노동부 산하로 돼 있어 기획재정부나 행정자치부, 국세청 등 힘 있는 부처를 관장할 수 없는 한계가 뚜렷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7명의 노.사.공익 위원 외에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산자원부 3급 공무원을 특별위원으로 임명한다. 실제 위원회 회의 땐 고용노동부 특별위원인 근로기준정책관이 매번 참석한다. 그러나 다른 2개 부처 특별위원은 얼굴도 비추지 않는다.
위원회는 2015년 회의 때 ‘공공조달계약 시 최저임금 인상률 미반영’ 문제 개선을 위해 기획재정부 특별위원의 의견을 듣고자 수차례 출석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결국 타 부서 직원이 대리출석해 발언하고 말았다.
위원회는 노동부와 통계청 통계가 서로 달라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삼는데 한계가 있어 더 정밀한 통계치를 가진 국세청의 협조를 구했지만 실패했다.
최저임금은 기재부와 산업부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법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 저임금 노동자가 몰린 여성가족부와도 무관하지 않지만 위원회가 노동부 산하라는 한계 때문에 범부처간 협조를 얻을 수 없는 구조다.
한정애 의원은 지난해 8월 이런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저임금위원회를 대통령 산하로, 민병두 의원은 총리 산하로 각각 격상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표2] 계류중인 최저임금 법안만 25개
발의자
결정
결정 기준
위원회 공개
위원회 위상
공익위원 선출
적용범위
처벌
1
이인영
통상임금 50%
2
정부
일부확대
약화
3
이용득
속기록, 방청
4
한정애
대통령 소속
국회 추천
강화
5
소병훈
회의록,회의공개
국회 6명 추천
6
김해영
청년 3명
7
강병원
속기록 방청
강화
8
윤후덕
노사3명씩 추천
9
이정미
속기록 회의공개 방청
노사 추천 투표
강화
10
김병욱
장애인 적용
11
송옥주
정액급여 50%
중소기업 대책
12
서형수
가사노동 적용 수습/감단 적용
13
조승래
시급~월급 단위 명확 발표
14
우원식
국회
15
민병두
평균임금 50%
총리 소속
국회-정부-법원 각 3인 추천
16
박광온
장애인 적용
17
이동섭
수습기간 단축
18
박찬우
강화
19
김삼화
이원화
속기록 회의공개
노사가 선출
가사노동 적용
20
정동영
평균임금 50%
노사가 선출
21
백혜련
적용 확대
20대 국회엔 개원 1년만에 최저임금 법안이 25개나 발의돼 있다. 9명의 공익위원을 모두 대통령이 뽑아 문제가 된 공익위원 선출방식을 개선하는 법안도 8개나 있다. 9명 중 일부를 국회가 추천하거나 노사가 명단을 놓고 서로 배제해 가면서 뽑는 방안도 나왔다.
최저임금 사각지대 해소를 담은 안도 많았다. 장애인과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에 적용되지 않는다. 1년 이상 고용된 노동자는 수습 3개월을, 아파트 경비원처럼 감시단속적 일을 하면 10%를 삭감해도 된다. 장애인에게 적용을 확대하고 대신 정부가 일정하게 지원하는 방안이다.
우원식 의원은 아예 국회가 결정하자는 법안을 냈지만 대부분 현행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유지하자는 쪽이다. 김삼화 의원은 위원회를 2개로 이원화해 한쪽은 인상 범위를 정하고, 나머지 한쪽이 최종액을 정하자고 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정부입법안으로 위반 사업자에게 현행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기는 것을 2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로 완화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부는 벌금형이 절차가 복잡해 과태료로 전환하면 실효성 있는 제재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 법안은 국회 환노위 전문위원조차 “과태료는 위반자가 받는 부담이 적어 오히려 위반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청도 못하는 위원회 폐쇄성
최저임금위원회는 방청 절차가 없다. 노동계와 사용계가 배석자를 2명씩 앉힐 수 있지만, 방청은 아예 못한다. 언론사 취재기자의 출입도 금지된다.
위원회는 2015년 3차 전원회의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전원회의 때마다 발표하는 보도자료까지 위원회 운영규칙 위반이라며 공식 사과와 재발장지를 요구할 정도였다. 이용득, 이정미 의원 등 4개 개정안이 속기록 공개와 방청허용, 회의 공개 등을 담은 건 이런 폐쇄성을 극복하자는 취지다. 반면 사용자 단체는 현재의 공개수준이 적절하고, 실명을 공개할 경우 자유로운 토론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입장이다.
민변 노동위원장 김진 변호사는 “2015년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가 222만 명에 달했는데도 노동부는 업주가 시정만 하면 아무런 처벌도 안해 문제”라며 “임금채권보장법상 체불임금 지급 요건을 완화해 정부가 미달 노동자에게 우선 차액을 지급하고 사업주에게 대위 청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에 대해, 남용금지와 차별금지를 많이 이야기한다. 남용금지가 정규직을 써야 할 일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는 것을 금지하는, 흔히 말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의미한다면, 차별금지는 비정규직을 쓸 경우 정규직과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2006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노동계 안에서도 비정규직 보호의 초점을 남용금지에 둘 것인지 차별금지에 둘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차별금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중요한 한 축임에 틀림없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한 축, 차별금지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15년 기준 146만 7천 원으로 정규직의 54.4%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의 주당 근로시간이 35.9시간으로 정규직의 44시간에 비해 적다는 것을 감안해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임금격차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비율은 국민연금이 36.9%, 건강보험이 43.8%, 고용보험이 42%로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에 있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주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데는 저임금 등으로 인건비를 줄이려는 것이 주요 이유이기는 하나, 업무의 계절성·전문성 등 노동수요의 단속성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화를 통한 남용금지로 해결될 수 있지만, 업무의 단속성으로 인한 비정규직 사용은 차별금지와 같은 노동조건의 공정성 확보가 중요한 해결 방안이 될 것이다.
더구나 남용금지와 차별금지는 상호 분리된 해결방안이 아니다. 비정규직 차별을 엄격히 금지할 경우, 단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사업주들에게 그 이유를 없앰으로써 비정규직 사용 자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해소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적용이 가장 중요한 방안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란, 직무에 관계없이 동일가치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미국 등에서 남녀 임금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원칙이다. 남녀 임금차별 해소를 위해서 처음부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확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출발하였으나, 남성과 여성의 직무가 분리되어 있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조금 더 진전된 ‘유사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거쳐 직무가 다르더라도 동일가치노동의 경우에는 동일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립된 것이다.
미국의 기준을 채택하여 한국에서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에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으로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가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설립한 별개의 사업은 동일한 사업으로 본다’고도 명시되어 있다. 기술, 노력, 책임, 작업조건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면, 남성 기술자와 여성 어린이집 교사의 직무도 상대적 가치가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으며 이 상대적 가치에 따라 임금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성별로 분리된 남녀임금차별의 경우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차별에 훨씬 용이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시설관리, 청소와 같이 과거 정규직이었던 직무가 비정규직화 되었거나, 정규직의 직무를 약간 변형하여 비정규직 직무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남녀 간보다 비교의 대상이 더 명확하다.
궁극적인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하여
현재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정규직과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노동자에 대한 차별 대우를 금지하고 있는데, 사업장 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는 동일노동의 개념보다는 조금 넓지만 한 직무 전체를 비정규직화 하는 상황에서는 비교가 어렵다. 따라서 우선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법률에서도 남녀평등을 위한 법률과 마찬가지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명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적 명시만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노동조합, 사업주, 전문가들이 함께 팀을 구성하여 장기간에 걸친 조사와 합의를 통해 평가절하되어 왔던 여성의 임금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맞게 올리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남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하나의 사업장이 아닌 동일한 사업주가 운영하는 모든 사업장으로 비교대상을 넓히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률 명시와 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노사의 노력이 성공에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으나,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방안들이 필요하다.
첫째, 이 원칙의 적용대상을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확대하여 대기업 정규직과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차별시정기관인 노동위원회에 조사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당사자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이나 노동위원회도 차별소송의 주체로 인정하는 등, 직접적으로 이 원칙의 적용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동일가치노동 판단을 위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고용공시제에 임금 등을 포함하여 전 사회적으로 임금격차에 대한 현상을 파악하고, 공공부문부터 정규직·무기계약직·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직무평가 틀을 마련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도 대표적 업종의 벤치마킹 직무에 대한 직무평가를 정부 지원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실시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기초적 직무평가 결과는 직무평가 사이트의 형태로 구축하여 산업전반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법처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동일 사업주의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특히 대기업에서, 간접고용까지 그 비교대상을 확대하는 것으로는 사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기업주를 뛰어넘어 산업별 혹은 업종별로 임금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완전한 실현은 오랜 동안의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공동체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새로운 정부가 비정규직의 남용금지뿐 아니라 차별금지와 관련해서도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비롯한 최소한의 노동조건 준수를 원청 사용자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이나, 고용공시제의 확대·강화, 공공부문의 직무평가 시행 등 행정적 의지로 가능한 일들이 있다. 이러한 행정적 실천은 평등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모음으로써 국회에서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적 명시와 관련 법 제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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