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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연러항중(联俄抗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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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연러항중(联俄抗中)

익명 (미확인) | 금, 2018/08/10- 11:14

번역자 주: 얼마 전 트럼프와 푸친의 헬싱키 회담을 전후로 국제 언론계 일각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즉 미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펼칠 것이라는 것인데, 이하는 이에 대한 환구시보의 사설이다.


 

키신저는 트럼프에게 “러시아와 연합하여 중국에 대항”하도록 부추겼는가?

2018-08-02 00:05 (현지시각)

서구 매체와 중국 인터넷에서는 요즘 추측 하나가 떠돌고 있다. 즉 트럼프와 푸친의 헬싱키 회담은 키신저가 건의해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또한 지난해 6월 키신저가 모스크바에 가서 푸친을 만났다는 소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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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레디앙미디어

분석하길, 그것은 키신저가 트럼프를 도와 크렘믈린궁에 대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더욱 대담한 추측을 낳았는데, 즉 키신저가 트럼프로 하여금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도록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The daily beast>가 얼마 전 익명의 내막을 아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 가장 상세한 관련 보도를 하였는데, 점차 언론계에서는 키신저가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도록 건의했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러나 키신저 본인과 미국 정부는 모두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미국 매체의 보도가 “바람 없이 파도는 일지 않는다.”(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뜻-주)라고 간주하는 편이다. 만약 키신저가 정말로 트럼프를 도와 러시아와 관련된 전략 구상을 하였던들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키신저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이며 또한 견실한 미국의 애국자이다. 그가 당시 닉슨 정부로 하여금 “중국과 손잡고 소련에 대항”토록 한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만약 그가 반대로 트럼프 정부로 하여금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토록 추동한다면 이 역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여기서의 사상과 행위 논리는 모두 일관된다.

문제는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있다. 설령 미·러 관계가 얼마간 개선된다 하더라도, 미국 측이 이 같은 행동에 사치스럽게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한다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당시 “중국과 손잡고 소련에 대항”하는 것과 같은 뜻이거나 심지어는 전략적 등가물이라 할 수 있는가이다. 키신저의 수준이 미국 매체의 작은 편집만큼 조잡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90세가 넘은 그가 다시 ‘국제정치 표시 당’(뭔가 깜짝 놀랄 용어나 개념을 개발하여 남들의 시선을 끌려는 세력을 일컫음-주)을 만드는 선례를 열 정도는 아니리라고 믿는다.

키신저는 아마도 트럼프로 하여금 러시아와의 긴장 관계를 완화시켜 미국이 ‘양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을 피하도록 격려하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먼저, 미·러가 ’연합‘ 하는 일은 매우 곤란하며, 쌍방은 우크라이나·시리아 등의 여러 옭매듭이 있다. 러시아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또 미국의 양보는 곧 유럽의 신임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다음으로, 중국에 대한 ’대항‘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데, 러·중은 일찍이 국경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관계에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대항하는 것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이처럼 손해 보는 전략적 거래를 할 만큼 크레물린궁은 어리석지 않다.

21세기의 세계는 이미 냉전시대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적 경계선이 전체적으로 보아 약화됨으로써 어떤 대국도 진정으로 이념외교나 진영외교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현존하는 동맹체이다. 미국이 “유럽연합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은 가장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가능한가? 융커와 트럼프가 타협을 이루었지만, 마치 싸구려 남방처럼 이 같은 타협의 질량은 매우 낮아서, 유럽으로 돌아와 물 하나 건넜을 뿐인데도 각종 쟁론 때문에 전혀 딴판이 되었다.

또 미국이 “인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일은 매우 그럴 듯해 보이며, 중·인 간의 국경분쟁 때문에 “인-태 전략‘은 단번에 실현될 것만 같다. 그러나 인도 총리 모디는 금년 들어 두 번이나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인도는 서방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동시에 중국과는 안정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교활한 전략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는 지금까지 미국에게 전략적인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유럽 및 인도와 비교할 경우, 러시아와 미국·서방의 관계는 온갖 풍파를 다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충분한 외교적 경험이 있는 대국으로서, 중국과 격심한 이익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는 절대 중·러 간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관계를 대항관계로 바꾸는 높은 대가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투항서’(投名状)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키신저와 트럼프 모두 그것이 러시아에 있어서는 ‘좋은 거래’라고 간주한다면 워싱턴의 자기도취는 정말 구제불능이라 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시기의 그 같은 대삼각 관계(大三角关系)는 이미 재현되기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시기의 국가 관계는 진영이 분명하였지만, 지금 각국 관계는 훨씬 복잡하며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미소 대결 때와는 다른 방식을 채택할 것이 요구된다. 연합한다거나 대결한다는 이 같은 사고방식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것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소문은 그래도 우리를 각성시킨다. 중국에게 있어 이후 러시아 및 기타 모든 중요 국가들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중국인이 또 생각해볼 일은,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데, 중국이 일본과의 긴장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더 많은 조처들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이 이미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지명한 이상, 중국은 비록 미국과 첨예하게 맞서 맞대응해서는 안 되겠지만, 워싱턴이 중국을 겨냥해 통일전선의 전략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와해시키는 일은 마땅히 힘써야 한다.

  • 2018년 8월 7일 <레디앙미디어> 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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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최근 대서양을 마주한 미국과 영국의 정치판에 새로운 사회주의 그룹이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Financial Times 의 경제해설가인 Mr. Martin Sandbu 는 북유럽의 사회주의정책에 대한 매우 신선한 시선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양국의 사회주의 그룹에게 독선적이고 교조적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열어가도록 몇 가지 조언을 던지고 있다. 우선 북유럽국가들은 세계화에 친화적인 높은 개방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별 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환경을 국가단위의 강력한 사회안전망으로 유연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역동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부실한 실업복지 탓에 실업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현실에서 격렬한 노조의 저항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이 심히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 매우 소중한 이야기이다. 또한 북유럽이 복지라는 주제를 넘어 혁신과 성장 영역에서 가장 모범적 국가로 성장한 원동력은 노동시장의 강력한 사회연대임금(compressed wage), 즉 임금간 격차를 축소시킨 것이 혁신기제로 작동하여 산업구조의 전환과 신규 투자를 강력히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경제의 현재적 어려움을 모두 최저임금 탓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들이 반드시 귀를 기울어야 할 대목이다. 다른백년은 ‘최저임금의 적정인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신정책 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이다.


 

때로는 가장 예측 가능한 일이 가장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는 ‘사회주의’ 를 보라. 이들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하고 있다.

10 여 년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주의의 실패한 민낯을 드러냈고, 덕분에 좌파 정치인들에게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존 좌파 정당 중 대다수가 기득권과 타협하면서 정치세력을 키우지 못하고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재기가 아니라 후퇴를 하는 듯 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좌파 정치인들은 1990년대 소위 “제3의 길”을 거부한 이들이다.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최근 당원수가 급증한 노동당의 당수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2016년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사회주의운동이 경선에서 인기를 끌며,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위협을 느끼며 기부금 모금을 위해 뛰도록 만들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정가에서는 샌더스와 뜻을 같이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그리고 라시다-틀라입(Rashida Tlaib) 등이 민주당의 당선이 확실한 주요 지역구 연방의회의 경선에서 승리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젊은 미국인의 약 절반 가량이 “자본주의”보다 새로이 등장하는 “사회주의”를 선호한다.

그 결과 이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는 보편적 의료서비스나 근로조건의 개선과 같은 정책이 작동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표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코리 로빈(Corey Robin)은 대립적 정치이론으로 “사회주의”를 옹호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자유를 박탈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노동자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경쟁 내지는 양립이 불가능한 제도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개념적 차이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냉전시대라면 이런 생각이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적 이분법이 가능했을 때에도 북유럽은 분명 자본주의의 경계 안에 속해 있었다. 그저 “자본주의”에 반대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찬성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북유럽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 동안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구성요소, 즉 생산수단의 국유와 사유, 공적 규제와 시장 경쟁, 세금에 의한 재분배와 고용주와 노동자가 결정하는 임금 등을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혼합경제-mixed economy”라는 말로 표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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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정책이 바로 보편적 복지라고 불리는 평등한 복지 정책이다.

만약 오늘의 사회주의자들이 이 혼합체에서 자본주의가 하는 역할을 무시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를 따를 수조차 없게 된다. “사회주의자” 라고 부르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은 북유럽에서 다음의 세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북유럽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포용한다. 이들의 혼합경제 모델은 국제무역 노출도가 높은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시민들은 무역이 부를 창출한다는 것과, 그러나 급작스러운 글로벌 변동성의 위험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이해했고, 그 결과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보험적 요소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즉 “사회주의”를 표방하려고 한다면, 경제적 개방성만은 확실한 사회주의적 요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좌파는 오히려 무역 자체를 반대해 자신들과 북유럽 모델을 연계하려는 노력을 무력화한다.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들고나온 “Lexit”, 즉 유럽 국가 간 원활한 무역을 가능케하는 규칙을 벗어나자는 유혹 역시 마찬가지다.

둘째, 북유럽의 경제평등주의는 개괄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상세내용까지 알려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세내용이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고도로 압축된 (조세 및 이전지출 전) 시장임금의 분배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달리, 부와 자본소득의 분배, 정책을 통한 사회임금 이전 등은 다른 국가들도 시행하는 일반적 내용이다. 북유럽의 성공은 재분배의 극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재분배적 권한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는 산업영역의 효율적 경제를 구축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는 세번째 교훈과 맞닿아 있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대부분 국가들처럼 직접적 개입이 아니라, 특별히 노동시장 내 사회조직 간의 균형잡힌 상호작용에서 기인한다. 사회주의 옹호자들은 북유럽 경제 내 노동조합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이들은 경영주들의 합리적 구성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세상을 그저 노동자 대 자본가로만 보면 경영주들이 더 합리적으로 구성될수록 노동자의 권리에는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합리적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개별 기업에게 부담인 듯 보이는 사실(예건데 노동조합과 연대임금)이 경영주에게 오히려 전체 비즈니스에 이득을 가져오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압축된 임금구조(평균적 사회연대임금)가 생산성을 증진시켜왔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분야에 노동력을 비생산적으로 사용하기엔 대가가 너무 크고, 차라리 숙련된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면 기업은 혁신적 산업 분야에 투자를 가속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같은 논리로써 능숙한 기업 경영인은 기술진보로 인한 혼란을 겪는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간의 적응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영미에서 이야기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라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며, 북유럽인들은 세계 1,2차 대전 사이에 형성한 자유/중도주의의 위대한 통찰, 즉 지혜로운 정부의 개입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더욱 좋은 경제 시스템을 만든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다. 기득권과 타협적인 사회주의 중도파는 금융위기 전과 후의 과정에서 나쁜 평판을 얻었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이 시작하는 사회주의자가 결벽증 때문에 북유럽의 유연하고 역동적인 사회주의를 거부한다면 그들의 목표 역시 좌절되고 말 것이다.

 

Financial Times

마틴 샌드부(Martin Sandbu)

 

 

 

금, 2018/09/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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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대한항공 총수 가족들이 총출연하여 매스컴을 장식했던 유별난 갑질과 밀수입 및 불법행위 등에 대해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들 가족들에 대한 형사처벌의 수준과 경영권 배제여부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돌출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배경을 조양호 가족들만이 지닌 못된 관행과 버릇으로 제한하여 볼 것인지, 아니면 독점과 특혜로 점철되어온 개별 재벌 및 이에 결탁된 해당 공조직의 부패문제로 확장해서 접근할 것인지, 더 나가서는 한국 현대사에 뿌리를 내린 적폐와 봉건적 유제의 청산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적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할 매우 중요한 지점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당연히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문제를 단순히 개별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사회가 추구해 가야하는 미래를 위해 중요한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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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한국사회를 전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몇 번이나 놓쳤다. 우선 48년 9월 제헌국회에서 의결하고 공표된 반민특위법을 통해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적이고 기회적인 출세주의자들을 처단하고 그들이 형성해온 물적 조직적 기반을 해체하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웠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권유지에만 눈이 먼 독부 이승만에 의해 자행된 초법적 공갈과 협박으로 무력화 되었던 아픈 역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87년 민주화 대투쟁을 통하여 1961년 이래 기존의 군부개발독재에 의해 누적된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기득권 체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과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의 기반위에서 출발할 기회가 있었으나, 양 김씨의 분열과 뒤이은 IMF 사태로 인해 재벌 등 독과점구도가 약화되기는커녕 국내의 기득권 체계와 국제적 자본이 결탁하여 신자유주의적 수탈체계를 강고하게 진행하여 왔다.

젊은 세대들은 절망속에 이를 헬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지난 2016/7년 간 시민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남북의 적대적 대립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수구적 정치집단을 압출시킴으로써 대대적인 적폐청산과 변혁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부터 문재인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손잡고 새로운 역사로 진입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비이락처럼 돌출한 대한항공 총수 조양호 가족의 패악적이고 불법적 행위에 대해 단호한 대응으로 기득권 체계에 갇혀있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해 중대한 변혁을 가져올 기회로 삼아야 하며, 단순한 형사적 처벌과 일시적인 경영권 배제의 수준을 넘어서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실험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역사와 지배구조

1962년에 설립되어 국내선을 주로 운용하던 국영기업 대한항공공사에 적자가 계속 누적되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6.25동란과 월남전의 군수물자 수송사업으로 급성장한 한진상사 조중훈 회장에게 이를 대신 인수하도록 강요하여 1967년 9월에 한진상사 산하에 민항인 대한항공이 출범한다. 태극문양을 단 국적 비행기가 해외로 나는 것을 갈망했던 박정희는 적자투성이 대한항공공사의 인수를 거부하던 조중훈에게 권총을 뽑아들고 인수를 강요했다는 비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선정된 민간기업에게 독점을 허용하고 수많은 특혜를 제공하면서 대한항공을 적극 육성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중동건설의 붐으로 해외인력 및 자재 송출의 항공수요가 많아지면서 성장을 거듭하였고, 김영삼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로 일약 세계 20위권의 항공회사로 비약한다. 세계최초로 A300편을 도입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2000년 중반에는 화물수송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 기준으로 자산규모가 23조를 넘고 있으며, 매출액 11.8조를 실현하였고 8% 수준의 영억이익률에 종업원 18,550여명과 20여 개의 난삽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배구조를 보면 1대 주주인 주식회사 한진칼이 29.96%로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이 12% 수준의 지분으로 2대 주주인 셈이다. 한진칼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조회장이 17.84%, 아들인 조원태가 2.34 %, 말썽의 중심에 섰던 조현아 조현민 두 딸이 각각 2.31%와 2.30%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친지의 특수관계 총지분율이 29.8%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의 주가수익배율(PER)은 3.9배로 국내기업의 KOSPI 평균인 9.9배에 한참 미달하고 있고, 동종의 경쟁업체들인 싱가포르 항공 22.3배와 호주 콴타즈 항공 11.2배의 15-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가수익배율이 이처럼 부실한 것은 조회장 일가가 개인적인 횡포와 부정뿐만 아니라 경영능력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수준에 한참 미달임을 보여주고 있다. 연전에 문제가 된 계열사 한진해운 역시 능력이 부재한 며느리에게 경영책임을 맡기면서 결국 매우 소중한 한국 국적의 해운사 하나가 홀연히 사라진 경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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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투데이

이러한 배경과 중첩하여 기득권과 독과점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과 변혁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2018년 한국사회 과제상황을 고려하면, 부적격임을 스스로 연출한 대한항공의 총수가족 처리문제는 단순히 형사적 처벌과 일시적인 경영의 배제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의 중심과제인 재벌체제에 대한 예행적 모범적 대응방식의 실험으로 진행을 구상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국민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이 한국의 간판 재벌 기업들의 경영과 지배구조의 의결과정에 반드시 참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연기금사회주의’논쟁은 기득체계를 대표하는 재벌과 자본가들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으로 한마디로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권력유착과 특혜의 과정에 무지한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이래 인플레를 가장한 강제저축,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 들여온 대일청구 자금, 수천 명의 젊은 생명을 바친 월남파병 속에 전개된 이권, 밀수 및 삼분사건 등 온갖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이룩한 축재, 경제 쿠데타로 불리는 8.3 사채동결, 유신헌법과 군부독재를 통한 악랄한 노동운동의 탄압, IMF 이후 대기업에 투입한 엄청난 구제금융 등 한국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자원의 특혜와 혜택을 누리면서 형성된 것이 오늘날 독과점의 재벌기업들과 기득권 체계이다. 이제 시대를 달리하여 산업과 경제운용의 성과를 역차별적으로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자 시대의 요청이며, 이에 연기금과 기관투자기관들은 마땅히 능동적으로 부응해야 한다.

한진칼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조회장 일가의 특수 지분 29.8%에 대응하여, 국민연금이 11%, KB자산운용이 10%, 한국투자자산이 5% 수준을 가지고 있어 주요 기관투자자 지분이 26%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하여 대한항공 직원과 일반시민들이 합세하여 한진칼 지분을 집중 매집하여 조회장 가족지분을 훨씬 능가하면 조회장 일가들의 경영권 참여를 항구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필자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한항공의 노조 또는 직원회의가 중심이 되어 한진칼 주식 매입이라는 대대적인 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만약 대한항공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기에 전문성이 부족하면, 경실련 등 시민단체 누군가가 구심점이 되어 대한항공 직원과 더불어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독려하면서 한진칼의 지분에 대한 매집운동을 전개하고 매입한 지분의 권한을 몽땅 위임받아 기관투자자들과 연합하면서 문제가 된 조씨 가족을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해당 산업에 밝은 전문경영인의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

한마디로 향후 언제라도 사회적 문제가 되는 재벌기업은 연기금등 공적 투자기관과 시민들이 연대하여 ‘국민의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첫걸음을 시작하여야 한다. 물론 실천 가능한 더욱 좋은 아이디어나 방식이 있으면 필자는 언제라도 흔쾌히 사재의 일부를 털어 새로운 제안에 참여할 것이다.

 

경제 운용의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출범이 책임경영에 대한 경험과 역사가 미천한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지만,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의 적당한 규모와 항공수송이라는 특수분야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입을 실험적으로 과감하게 도입하고 진행할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국민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벌그룹에 소수 족벌의 가문이 전횡적이며 편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아니 된다. 이에 때마침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대한항공을 예로 삼아 새로운 출발과 가능성의 계기를 삼아야 한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를 논하는 이 시점에서 회사의 지배구조를 규정하는 주식회사 방식의 회사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작해 봄 직하다. 현재의 유한책임으로 애매하게 규정된 대주주의 경영참여 방식은 반드시 공식적이며 법적 지위를 강제적으로 부여하고 이에 따른 결과에 대해 무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경영참여권을 제한하고 다만 합의된 수준에서 이익 공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만 허용해야 한다.

더 나가서 회사의 경영권과 이익처분권을 오로지 자본 중심으로 결정하는 방식에서 자본과 노동과 기술과 소비자와 해당사회와 환경단체들이 공히 참여하여 합의하는 공동결정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본인이 일생동안 성취한 성공과 부는 살아생전에는 당연히 향유할 권리를 갖되, 죽음을 앞두고는 그동안 형성한 재산의 기여를 자신이 속한 지리 자연과 해당 사회와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하기에 일정액 이상의 재산전체를 의무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속시키는 것도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관행적이며 습관적 입장과 관점으로는 격변하는 현하 산업사회의 구조 이행과 경제 현안을 해결할 수 없음이 명증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현상이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의 경제운용에 대한 키워드는 배분과 순환이며 국가의 조세정책이 핵심을 이루게 된다. 보유세 등 자산세를 누진적으로 강화하여 자본의 탐욕을 규제하고 시장이 갖는 균형과 자원의 배분기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경제활동 영역에 참여 – 협력 – 혁신 – 공유 – 포용 – 분배와 소비의 순환 과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면 새로운 변화가 형성되고 지난 수백 년간 산업시대에서 형성되어 왔던 직업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미래의 일자리들이 제3의 섹터에서 우후주순으로 자라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의 변화를 바라보아야 한다.

월, 2018/06/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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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을 정리하다가 지쳤다. 화구보다 책이 많은 스튜디오다. 수십년 쌓인 책은 버리지도 다 읽지도 않은 채 널려있다. 인문서, 도록, 팜플렛, 자료집 들이 대부분이다. 산더미처럼 쌓여버린 책들 이제는 다 버리고 싶다가도 미련이 남아서 아직도 스튜디오를 차지하니 어지럽다. 열에 아홉은 눈길도 안 주는 종이무더기에 지나지 않게 된 책들에 무슨 미련이 많아서 끌어안고 사나. 나의 회의는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이 책들의 사고 대부분은 내 사고와 실천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부분이 인본주의 틀에서 서술한 이 책들은 산속 숲에서 사는 내 생활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흡사 21세기를 살 소년이 20세기 책으로 19세기 교사에게 배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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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민중미술과 영성’ 미술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민중신학을 개척한 서남동 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함께 벌린 일이다. 신학과 예술의 합류로 민중미술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다. 민중의 삶 현장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를 중심으로 초대전시 했다. 특히 민중과 신학과 예술의 문제를 서남동 목사처럼 합류정신으로 보았다. 민중, 신학, 예술. 서로 전혀 다른 주제 같지만 삶의 관점으로 보면 서로 연관되는 주제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주제, 행복과 고통의 주제, 존재와 무의 주제를 다 갖는다. 하나뿐인 지구의 생태계에서 인류는 너무 혼자 커져 버렸다. 각종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과 이상 기후 현상까지 만들어 지구 생태계를 망치는 인간의 존재가 무슨 염치로 세계 운영을 계속 주도하려는가,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대다. 이 성찰을 방해하는 사고가 대부분의 책들이고, 바보상자 티비, 엘리트 관료와 신자유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인간 아닌가.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는 르네상스는 서구의 근대적 인간을 만드는 뿌리가 되었다. 합리적 사고와 휴먼이즘이 나와서 인간이 신의 영역도 대신한다. 생산과 소유를 무한정 인간이 주도할 수 있다는 자기 오만이 생기게 되었다. 신성 중심이냐 인간성 중심이냐를 분리해서 보면서 세계관의 이원론적 오류에 빠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과 인간은 양단 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신성(세계, 자연, 우주)과 인간성은 둘이면서도 하나다. 인류학에서 좋은 개념이 있는데 그게 신인간이다. 신이면서 인간이고, 인성 안에 신성이 있다는 것으로 불이(不二)다. 현실 세계는 여러 가지 사물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모두 고정되고 독립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본은 하나라는 것인데 신과 인간의 분립적 사고는 세속의 인간, 피조물 인간을 만들어버렸다. 고대 인류의 사고에는 본래 신성과 인성을 불이로 보았다. 고대 예술과 유물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영성이 깃들어서 사물마다 지닌 신성을 놓지 않고 있다. 모든 만물에는 신성이 있어서 서로 외경스러워하며 경배한다. 동학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天地萬物莫非侍天主也

 

신은 인간의 내면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內有神靈이다. 인간은 이 신령스러움을 우주적 질서와 자연현상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보고 느끼고 겪는다. 우주질서를 다 표현하기 어려워서 비유한 것이 신이란 隱喩다. 숨긴 채 드러낸 신은 은유문화다. 지구촌마다 다른 모양의 신이 출현한 것을 보아도 신은 그 지역의 생태지리적 조건 속에서 창조한 은유문화인 것이다. 인류 초기의 신은 그렇게 추상적이지도 않고 인본적이지도 않은 신관을 갖게 되었다. 해 달 별 바람 그리고 동식물에서도 신성을 찾는다. 애니미즘, 토템이즘이라고 서구 인문학에서는 자연과 생물 믿음을 미신이라고 치부해버렸다. 토템, 각 종족마다 특별한 인연을 맺은 동식물에 대한 믿음은 생태계를 신성으로 본 것인데 토템이즘이란 프레임으로 미혹이고 미신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과학을 편의적이 잣대로 이용한다. 자기들이 믿는 신은 진리고 타자의 신은 미신이다. 자연을 환경이나 인간의 들러리로 보는 자연에 대한 오만한 시선을 본다. 자연의 신성에서 종족의 뿌리와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기를 낳고 기른 어머니 모성에서 신성을 찾는 인류문화르 파괴한 것이다. 철기시대부터 남성 권력은 자연의 구체적 신성(토템), 종족의 주체적 신성(모성신성, 조상신성)을 부정해야 권세를 완성하기에 다부족 다신교가 권력에 복속되면서 종교는 권력의 소유가 되었다. 권력은 영성의 힘을 활용하며 ‘신성한 권력’으로 권력을 미화하고 정당화했다. 신전을 왕궁으로 동일시했다. 철기시대 권력은 신의 이름으로 폭력과 살인과 약취를 정당화한 것이다. 종교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커졌고 동반해서 영적 지배력을 키워왔다. 신은 본래 부족 공동체의 세계에 대한 은유문화였던 것이 국가권력 자체가 되고 그의 배후가 되었다. 신성의 독점, 빅 갓(Big God) 시대로 바뀌며 오늘날의 남성 중심의 4대종교만 살아남는다. 그전의 인류는 스몰 갓 문화였다. 모든 신의 중심은 권력을 갖은 남신이 되면서 신석기시대 모계중심사회의 스몰 갓 여신들, 조상신들은 서서히 소멸한다. 신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민중은 신을 잃었다.

 

민중은 이데올로기로 사고하지 않는다. 신을 믿고 나를 믿고 혈연적 공동체에 의지하며 사는 것 같다. 지배 엘리트는 민중을 끊임없이 교육 시키지만, 단지 먹고 살기 위해 교육에서 정보지식을 기술 삼아 이용할 뿐이다. 민중은 학제적 사고를 하지도 않는다. ‘개똥밭에 살아도 이승이 났다’는 말처럼 사는 것 말고 더 중한 것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지만, 신성을 믿어서 초월적이다. 이는 ‘가난의 초월이다’.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이면서 동시 초월이다. 신성하면서 세속적이다. 진리는 원래 이중모순이다. 흔히 민중을 개념규정 할 적에 정치적으로 피억압 계급이고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문화적으로 비주류라고 말해왔다.(한완상 민중론) 그러나 민중은 존재적 규정으로 다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민중은 그 때 그 때마다 발생하는 사건이라 말하는 편이 났겠다. 사회학적 규정에는 신성이 빠졌다. 가나만 보지 초월을 보지 못한다. 민중은 초월성을 가져서 역사를 반란(혁명)으로 창조하곤 한다. 인간과 민중에게는 본래 깃든 신성이 있고 신성한 에너지를 믿고 초월한다.

 

민중은 신이 있었다. 고대 인류가 부족사회로 살 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철기문명에 와서 신화는 전설과 민담으로 변질이 되면서 범신이 유일신으로 바뀐다. 민중은 권력이 무서워 자기 신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민중의 마음 속에 신성이 다 소멸 된 것은 아니다. 자기 마음 속 신은 저마다 다르게 있지만 내 안에 있다. 작고 구체적이고 어머니와 조상으로, 지역의 자연으로 신들이 있다. 신의 의인화, 자연의 은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내 마음속 신인간이 지워지지 않은 무의식의 원형문화로 자꾸 솟아나는 것이다. 마르지 않은 샘처럼 다시 자기 안에서 신성을 재발견한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미래시대는 영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본다. 신화학에서는 이를 ‘재신화의 시대’라고 말다. 민중이 신성을 자기 안에서 회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이 원천적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정치 경제적 혁명만이 아니고 문명의 전환이다. 철기문명과 근대주의와 인본주의가 마감하고 생태문명과 탈근대주의와 범신성주의로 가는 신성문화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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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가 한반도로부터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분단체제에서 평화체제로서의 대전환이다. 이 기회를 잘 봐야 한다. 단순히 ‘평화는 경제다’. ‘평화는 적대 국가 간 화해와 수교’ 문제가 아니다. 평화는 국가 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풀 수 있는 것은 전쟁 상태를 멈추고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단계까지의 평화다. 평화는 시민이 성취해야 할 탈국가적 권리다. 평화는 자본권력이 먼저 가져다준 역사가 아니다. 평화는 자연권이고 천부인권이고 ‘가난의 초월’이 만드는 신성문화이다. 평화시대는 누가 가져다가 주는 것이 아니고 세계시민이 자기 내면으로부터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길게 보면 문명전환의 기점에서 세상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이다. 망가진 지구를 이대로 지속하다가는 아주 망가져 버리니까 다시 지구평화의 로드 맵을 평화시민이 연대하여 유라시아의 평화, 세계 평화를 다시 처음처럼 만들어가는 시대가 왔다. 무슨 의미인가. 어떤 평화를 만들 것인가. 우리는 지금 전쟁문명을 평화문명으로 바꾸는 시작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묻는다.

 

문명전환은 세계관의 전환이고 신관의 전환이다. 신관(무의식과 Meme)의 전환 없이 인간의 의식계 변화를 기대할 순 없다. 촛불시민혁명은 집단지성을 너머 집단영성을 찾고 있다. 시민은 내면의 힘 연대로 평화문명을 찾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은 시민의 내면에서 민중신, 평화문명의 신성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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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0/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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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18년 여름 우리는 혹독한 더위를 장기간 경험하면서 이대로는 인류사회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최근 북미를 덮친 허리케인과 필리핀 및 남중국 지역을 강타한 어마어마한 태풍의 영향을 통하여 기후변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절감하게 되었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조만간 인류역사에 없었던 강력한 6등급의 허리케인(나무껍질을 벗기는 정도의 위력을 지닌)이 미국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하였다. 문제는 눈앞에 닥친 기후변화와 환경보존의 문제를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연합 단위의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 의장으로 있는 Ms. Karin Nansen은 전지구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탐욕적인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여 인간과 사회와 자연보호를 우선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꾸어내지 못하면 인류에게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이 땅에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그녀의 주장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우리는 뿌리 깊은 기후, 사회, 환경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 시스템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다. 세계 최대 민간환경단체 중 하나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의 관점에서 시스템을 바꾼다는 시민의 주권과 환경 및 사회, 경제적 그리고 성(性)적 정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해체해보아야 한다. 기후재앙은 억압, 기업권력, 기아, 물부족, 생물다양성의 손실 및 산림파괴 등 많은 사회적, 환경적 위기와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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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UN 기후변화정상회의에 운집한 시위자들

평등과 상호주의

이러한 위기의 핵심은 오로지 끝없는 성장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속 불가능한 경제 시스템에 있으며, 이 시스템은 인구의 극소수에 부와 권력, 터무니없는 특권을 집중시킨다. 기업과 국가의 엘리트들은 바로 이 시스템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삶을 거리낌없이 착취할 힘을 얻게 된다. 우리는 자연과 사회의 민영화, 금융화, 상품화 그리고 지속 불가능한 생산 및 소비 시스템 등 근본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기후 변화와 그에 연결된 사회적, 환경적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이 엄청난 규모의 위기에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시스템의 변화는 지속 가능한 사회의 구성은 물론 평등과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변화, 사람과 자연의 관계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자본의 확대

그러나 시민들의 힘을 강화하지 않고는 이러한 사회를 구성할 수도, 시민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다. 우리는 정치를 재건해야 한다. 정치를 재건한다는 것은 국민의 주권과 참여를 중심으로 한 진정하고, 근본적이며 정당한 민주주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법은 반드시 기업의 이익보다 사람을 존중함으로써 기업이 따라야 할 규칙과 다국적 기업의 희생자를 위한 사법접근권을 보장하는 메커니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가부장제, 인종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계급과 자본주의적 착취와 같은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이 표현되어야 한다. 여성의 신체 및 노동 착취에 맞서기 위한 의지 또한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자본의 영역 확대가 여성의 권리 침해와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 증가로 이어지는지 목도하고 있다.

 

경제적 정의

성적 정의는 우리가 여성을 정치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여성의 자주성을 강화하고, 여성주의경제의 원칙을 발전시키고, 성별에 따른 분업을 해체하고, 보살핌 노동을 재편할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수이다. 이는 근본적인 질문, 즉 누구와 무엇을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는가에 대한 민주적인 답안을 내포하며, 화석연료 의존과 기업의 지배로부터의 완전한 탈피를 함의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와 공동체의 권리에 기반한 변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진화와 재생가능 에너지, 나아가 대중과 공동체의 주인의식과 통제에 의한 것으로, 에너지를 상품화하여 에너지에 대한 모두의 권리를 부정하는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평등과 정의가 필요하다. 이미 기후변화의 타격을 입은 제3세계 시민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진정한 시스템의 변화는 기존의 식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 식량주권과 생태농업을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며, 전세계에 식량을 공급하고 파괴적인 농업산업에 대항하고자 현지의 지식을 존중하고, 사회경제적 정의와 주민들의 영토 통제권을 강화하고, 토지와 물, 종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정의와 연대를 근간으로 한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고, 식량 생산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인정하도록 할 것이다.  생물다양성과 산림은 그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다. 산림을 보호하면 천연의 탄소 저장소를 얻게 되고, 벌목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동시에 공동체에는 식량과 섬유, 쉼터, 약, 물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런데 전세계 숲의 8%만이 공동체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숲과 그에 관련된 생계에 대한 공동체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국민적 행동

시스템의 변화로 시민들의 개인적 및 공통적 필요를 충족하면서 상호주의와 재분배, 공유를 증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해법 중 하나는 공공서비스로 조세정의와 사회적 소유권, 협력주의, 지역시장 및 공정 무역, 공동체의 산림관리, 시민과 지구의 행복을 위한 노력 등을 통해 성취 가능하다. 이미 전세계 시민들은 정의를 구현하고 자본주의 논리에 반론을 제기하는 수천개의 이니셔티브를 정착시켰거나 실행 중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국제적, 국가적 정책을 통해 자신의 권리 확보와 환경과 사회에 적합한 공공서비스와 시민의 참여가  가능한 민주적 상태, 물, 토지, 영토, 식량, 보건, 교육,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상태를 위하여 투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 지역 및 국제적 저항운동을 지지하고, 국민적 행동에 참여하고, 정책 변화를 위해 분투하면서 시민들을 위한 진정한 솔루션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변화이다.

 

 

카린 난센 (Karin Nansen)

카린 난센은 세계최대 풀뿌리 환경연합인 지구의 벗 의장이자 REDES와 지구의 벗 우루과이의 창립회원이다.

화, 2018/10/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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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이 발견한 자연법칙중에서 존재론과 우주론으로 연결되는 내용을 찾아 본다면 아무래도 물리영역에 대해서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및 복잡계이론 그리고 마음에 관하여는 인지과학으로 압축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존재론을 모색하기전에 오늘날까지 인류문명의 토대가 되어온 서구의 존재론부터 먼저 검토해보겠습니다!

서구의 존재론은 그리스의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철학에서 출발하여 플라톤을 거쳐 이후 기독교신학과 근대철학에서 활짝 만개한 실체론substance ontology이라할 것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becoming의 철학과는 상반되는 존재being의 철학을 구축하였는데 그 핵심은 사유와 존재는 일치하기에 오직 사유할 수있는 것만 존재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는 오로지 언어logos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데 언어의 특성을 살펴보면 언어는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능력이 없으며 단지 실재들의 정태적인 공통점을 추출하여 이들을 존재의 고유한 속성,본질인양 추상적으로 관념화함으로써 존재를 명사적,형용사로만 설명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단순 명료하게 해석할 수 있다라는 유용성때문에 존재를 실체로 규정하는 실체론이 서구의 존재론으로 내려오게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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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실체론이 서구의 존재론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어가면서 실체는 플라톤의 이데아, 기독교의 신, 근대의 주체, 현대의 표상성으로 이름만 바꾼채 오늘날까지 인류 대다수의 존재론으로 확장되어 자리매김하면서 인간의 사고 및 행동양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편 실체론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면, 존재를 생성의 과정이 아닌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게되는데 실체란 제1원인자로부터 시작하여 선행원인자로부터 존재근거 및 작용인, 목적인을 부여받으며 고정불변의 속성을 지닌채 자기원인자self cause로 규정되는 존재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모든 존재는 선행원인자로부터 존재근거와 작용인 및 목적인을 선형 인과론linear causality에 따라 일방적으로 부여받게 되는 즉, 선형인과율을 특징으로 하기에 역사를 선행원인이 제시하는 목적을 향해 단선적으로 이끄는 결정론을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실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존재를 고정불변의 동일자인 실체로 보기때문에 그 속성상 실체들은 서로 내재적인 생성관계가 없는 독립된 존재들로 실재할 수 밖에 없으므로 각 실체들은 서로 등가적인 존재가 아니라 에너지를 섭취Input하는 자와 에너지를 제공Output하는 자의 지배-피지배의 계서적 관계를 기본 질서구조로 가질 수 밖에 없으며, 특히 가치론적 측면에서는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가치마저 지배적 실체로 간주하고 타자의 가치를 피지배적 실체로 간주하는 이분법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에 타자의 가치는 지배적 가치를 거부하는 실체로 보기에 이들은 반드시 변증법적으로 지양aufheben 즉, 배제, 제거, 박멸 시켜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과 위, 선과 악, 미와 추를 이분법적인 실체로 간주하여 자신이 주장하는 선에 반대되는 악은 절대적 실체이기에 반드시 박멸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실체론은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키릴로스가 네오 플라토니스트이자 당대의 지성인 히파티야를 악의 화신이라고 주장하며 흔적도 없이 죽인 사례나 중세의 마녀사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실체론적 존재론은 근대에 들어와서는 인간을 주체적 실체로 간주하여 자연을 인간의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결국 인간도 생존의 위기에 처하는 어리석음을 초래하였으며, 또한 이성마저 실체로 간주하여 세계를 이성과 야만으로 이분화시키면서 서구의 식민주의를 정당화시켜 결국 제국주의를 거쳐 인류를 참화속으로 몰아넣은 세계대전까지 초래하게 되었음은 물론 감성을 가진 자연을 이성의 하위에 두게 되면서 결국 자연은 인간을 위한 대상에 불과하다는 실체론은 결국 환경파괴의 이론적 앞잡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러한 실체론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표상성Vorstellung을 실체로 간주하여 강자들이 제시하는 담론Discourse,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마치 진리를 구현한 실체인양 포장하여 유포, 강제시킴으로써 인간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을 원자적으로 분절화시켜 개인을 자본에 노예적으로 복무하는 노동자부품으로, 자본이 만든 상품을 무조건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수동적 소비자로 길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대까지 이어지는 서구의 실체론을 대체하는 존재론은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요?

하여 필자를 이를 찾기위해 무엇보다 현대과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양자역학의 정통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재는 실체의 단일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는 이중적 속성이 중첩되어 있는 실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소립자는 서로 병립할 수없는 파동성과 입자성이 중첩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실체론에 의하면 존재는 단일 속성을 가져야하는데 양자역학은 서로 모순된 속성이 동시에 중첩되어 있다고 보고있으므로 기존 실체론 관점에서는 절대로 설명이 불가하다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칩에 서로 병립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0과 1이 동시에 중첩하여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런 원리를 응용한 양자암호와 양자컴퓨터가 조만간 실현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닐스 보아도 자신의 상보성이론에서 존재는 반드시 2가지 상보량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 또한 존재는 하나의 속성만 가지고 있다고 보는 실체론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존재의 속성,즉 물리량은 반드시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2가지 상보량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존재는 상보량으로 이루어졌기에 하나인 위치를 알면 반드시 다른 량인 운동량을 알 수가 없기에 존재의 모든 속성을 동시에 완벽하게 알 수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찰자가 보고자하는 물리량외에는 알 수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이론은 어떤 존재는 선행원인자로부터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관찰에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보게되면 결국 우주의 모든 존재는 서로 상호 인과적으로 생성을 이루며 우주를 같이 창조해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론에 의하면 비실재성과 비국소성이 존재의 속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존재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며 또한 우주는 비분리되어있기에 전일적인 하나Holistic One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주는 끊임없이 생성을 도모하는 과정이기때문에 실체는 존재할 수가 없으며 나아가 우주의 모든 구성요소는 서로 원인으로 또는 조건으로 생성에 참여하기 때문에 서로 불가분하게 내재적으로 연결되어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양자역학은 실재는 단일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실체론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한편 아인쉬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관찰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즉 시공간과 관찰자의 운동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찰자의 시간과 공간이 바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는 존재는 실체가 아니라 서로 실재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끝없이 변해가는 생성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편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물질의 분포에 의해 결정되며 물질은 시공간에의해 새로 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말하면 존재는 상호 인과작용의 과정이자 그 산물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습니다! 즉, 상대성 이론은 단순인과로 이루어진 실체론이 진실이 아니라 현대과학의 상호인과와 복잡인과(연기법)로 이루어지는 생성론이 새로운 존재론이라는 것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최근에 각광을 받는 복잡계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열린계open system 는 항상 자기조직화 과정을 밟고있는데 일단 계의 내부에서 내적 요동과 외적 섭동에 의해 되새김feed back이 시작되면 계는 그러한 되새김을 통해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이 극에 달하게 되며 이후 임계점critical point에 도달하게되면 그 직후 새로운 질서를 창발하던가 아니면 카오스로 사라져 버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우주질서는 내부 구성요소들의 자기조직화를 하는 되새김과 임계점의 창발emmeregence과정의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주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상호 생성작용의 결과 특히,창발의 산물이자 영속적인 창발의 과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계의 창발이론과 유사한 이론으로 엔트로피 이론의 대가인 일리야 프리고진의 산일구조이론이 있습니다!)

결국 복잡계이론도 존재는 실체가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즉 영속적인 생성의 과정이라고 보여줍니다! 이에따라 현대물리학자인 스몰린Smolin은 존재는 무엇이라는 것은 없고 단지 빨리 변하는 과정과 느리게 변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라고 갈파하였습니다! ( 필자의 철학적 스승인 화이트 헤드도 존재는 명사,형용사가 아니라 다만 부사,동사일뿐이라며 그의 과정철학에서 스몰린과 같은 관점을 갈파하였습니다!) 결국 현대과학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은 존재가 실체가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즉 생성의 과정이라고 보기에 필자는 21세기의 존재론을 생성론(달리 표현하여 과정론 또는 사건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생성론에 의하면 존재라함은 시공간의 조건속에서 인과적 사건들의 연속적인 과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과적 사건에 개입하고있는 구성요소들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라는 입니다! 나아가 우주의 생성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있기에 모든 구성요소들은 공생자이며 따라서 생성론은 수평적 상호적 공생질서를 반드시 전제한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구성요소들 모두 138억년에 이르는 우주 생성의 산물이자 영속적인 생성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서구의 실체론에 의거하여 구축되어온 현대의 사고체계,즉 존재론과 우주론을 폐기하고는 것은 물론 현대의 사회체제와 규범및 제도가 노정하는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적 방안을 구축하는 시도를 이제는 생성론의 관점에서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자본주의체제의 내적 모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의 모색은 물론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대응책을 새로운 존재론에 기반하여 심도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존재는 모순된 속성이 이중적으로 중첩되어 있듯이 인간이라는 개체도 독립성을 욕망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귀소성도 희구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는 개체와 공동체를 이분적인 실체로 분열, 대립시키면서 어느 한 쪽으로 배치시키며 그 자리에 머물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인간 또한 서로 모순된 속성을 동시에 구유하는 것이 본래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간을 원자적으로 분절시키고 형식적 민주주의는 개체의 가치를 충분히 발현시키기 보다는 집단에의 순응과 종속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이분법적인 모순의 희생물이 되기 전에 생성론적 관점에서 중도적 대안(개체의 독립성과 공동체의 귀속성을 중도적으로 승화시킨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제시하여 상생의 세계를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한편 현대물리학자인 볼프강 파울리는 존재는 정신과 물질의 상보량으로 이루어져있기에 정신과 물질의 중도적 태도를 취할때만이 진정한 본성의 발현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보적 중첩성을 인간에게 적용해본다면 과연 정신을 배제하고 오로지 물질만 추구하는 화폐적인 삶이 존재의 본성에 부합하는지도 깊이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아가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보게되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제1원인자 되어 신제국을 건설하기위한 헤게모니 다툼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사고도 아직도 인간이 실체론적 존재론을 벗어나지 못하기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이러한 계서적인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체론에서 생성론으로 21세기의 존재론을 지구적인 차원에서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결국 생성론에 기초하여 개체로서의 자유와 평등은 물론 공동체에로의 참여와 책임을 병존적으로 추구할 수있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ㅡ실체론에서 생성론으로!

월, 2018/10/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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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직접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스위스 국적의 직접민주주의 전도사 Mr. Bruno Kauffmann이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하여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하는데 국민주권연구원의 상임이사 자격으로 인사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계기를 통해서다. 강연 내용은 상당히 신선하여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의 느낌을 4월 6일자 프레시안에 “직접민주제 – 시민발안과 국민투표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통해서 소상히 밝힌바 있다.

한편 한국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하여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며 민간정부로 출범하는데 성공하였고 2016/7년간의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탈법적이며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단죄하고 문재인 정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세계인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았으나, 정작 이후 전개될 미래정치의 로드맵은 실종되었고, 목불인견의 구태의연한 과거식 정치형태가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우리의 정치판이 도로묵으로 회귀하는 형국이다.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이에 대하여 헌법개정과 선거법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 한국 정치판의 구성과 상황, 헌정 제도의 결함과 시정잡배 수준의 정당구성원 자질 등 여러 문제로 난항을 겪으면서, 의회와 정당구조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 중의 최우선이라는 공론이 형성되면서 현하 한국사회의 가장 주요한 개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사회 내 선진적 시민사회의 주도로 비례민주제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시점에, 정작 정당명부식 비례민주제 시행의 모범국가로 알려진 독일에서는 오히려 대의적 정당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집권여당인 기민기사연합당은 차치하고라고 160년 역사를 지닌 사민당조차 냉대 속에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한다. 로마현지에 만난 독일 활동가들의 독일의 정당중심 정치에 대한 반응은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상’ 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의 주변부라고 칭할 수 있는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그리고 급기야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즉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어 급기야 중앙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국내 언론의 보도와 학계 대부분의 평가는 이를 부패하고 무능력한 남유럽의 정치문화에 국한된 일과성 내지는 대안을 찾지 못해 표출하는 포플리즘으로 치부하면서 오로지 책임질 수 있는 대의적 정당정치로의 복귀가 정답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편이다. 정말 그럴까?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미래구상에 대한 갈증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직접참여의 생생한 정치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볼 욕심으로 추석 다음날 일찍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비를 털어서 함께한 이들은 대구가톨릭대 이정옥 교수를 비롯하여 주권자전국회의 문국주 집행위원장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형식박사 등 이었다.

이번 제 7차 글로벌포럼이 영원한 도시(Eternal City)로 불리는 로마에서 열렸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상징적이었다. 로마시의 배려로 2,000여 년 전 인류역사에서 매우 소중했던 민회 중심의 공화정이 실행된 장소인 ‘포로로마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청건물(Palazzo Senatorio)에서 진행되어 역사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였고, 유럽의 21세기형 시민혁명이라고 평가받는 오성운동 운동의 출신으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로마시장에 당선된 Ms. Verginia Raggi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별했으며, 60여 개국에서 500여명이 참석할 만큼 이젠 직접민주주의 운동이 국제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열기 속에서 열렸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로 대회 이후 직접민주제의 확산을 위한 마그나 카르타의 제정 결의로 발전한다.

회의 일정은 25일 저녁 등록과 함께 개회선언과 로마시장의 저녁초대로 시작하여, 26-27일 양일간의 오전의 공동주제 발제와 오후의 각론적 워크샵으로 진행되었고, 28일은 전체회의를 평가하고 2019년 대회 주최 예정국인 대만 타이중(臺中)시의 구상 발표에 이어 마그나 카르다 제정작업의 착수를 선언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매우 인상적인 것은 전세계 7개 주요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례발표를 한 것으로 로마는 시장이 직접 발표를 하였고 다른 도시들은 모두 부시장들이 참여하여 발제를 하였는데 서울과 마드리드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역시 압권은 Raggi 로마시장의 사례발표였다.

그녀는 우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해마다 떨어지는 것은 기존 정치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체계와 참여방식의 일대 혁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아고라 광장의 원칙과 개념에 따라 모든 의제는 공개와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현대적인 통신기법인 on-line과 기존의 off-line 방식을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밝힌다.

소셜 미디어와 정보의 수단을 활용하여 시민들로부터 직접 제기된 안건에 대하여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내용을 공개하면서 모든 시민들에게 제공된 정보의 접근권을 보장하며, 회합과 토론을 통한 숙의 그리고 결론에 이르는 일련의 종합적인 과정에 치밀한 시민참여와 시민발의라는 민주적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예시로 로마시는 여론조사와 시민제안을 통하여 핵심 프로젝트로 지속가능한 공간이동권 (sustainable mobility in Rome)으로 선정하고, 이를 시민의 공론과 참여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영화제작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참여의 경로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뒤를 잇는 다양한 발표내용은 상기의 시나리오에 준하여 각자 도시들이 안고 있는 나름대로의 현안과 조건에 상응하는 여러 사례들을 발표하였는데, 추가로 몇 가지 사항을 보태어 설명하자면, 투명성(Transparancy)과 책임성(accounterbility)를 유난히 강조하였고, 발안와 숙의의 과정뿐만 아니라 실제의 집행과장에도 발안을 주도한 시민그룹들이 반드시 참여하여 모니터링하는 경로를 마련하여 땅에 떨어진 정치와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로설계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사항으로 적정한 예산배정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과 일정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가 입을 모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가능한 모두가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숙의하고 결론을 도출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참여 여부도 강압이나 규정이 아니라 관심과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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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글라루스주의 주민 총회 장면이다.

현재 국가단위에서 시민발안제를 포함한 직접민주제도를 채택한 나라에는 스위스와 우루과이 그리고 놀랍게도 이웃나라인 대만이 있다. 대부분의 참여국가들은 지방자치단위 수준에서 참여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거나, 주요 남유럽국가들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대부분 주정부, 미국의 선진적 주정부(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오리건 등)에서 시민발안제도가 채택되고 시행중인 듯하다. 우루과이라는 나라가 언급되자 농민출신으로 대통령으로 봉직하다가 건강문제로 사직하고 다시 농민으로 돌아간,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의 이야기가 필자에겐 직접민주제도와 함께 연상으로 겹쳐지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대만의 경우에도 국가의 중대한 사안은 아닐지라도 생활의 현안문제를 시민적 발안을 통해서 국민투표를 시행한 수 차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타이중시의 사례발표에는 초등학교부지의 선정과 학교이름을 작명하는 과정을 시민 발의와 투표과정으로 진행한 사례가 재미있게 소개되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례발표는 스페인의 경우, 포데모스 운동이 격하게 진행되기 전인 2011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은 특별한 이슈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real democracy)를 외치면서 기존의 정치제도를 다시 생각하고(rethinking), 다시 정의하고(redefine) 다시 설계(redesign)할 것을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통해서 요구하였으나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들의 요구에 등을 돌리면서 포데모스 정당운동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시민들이 직접 책임지고 결정한다( we, people, are to make decision in responsibility’)라는 구호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아직 전국단위의 직접민주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중앙정부에 직접민주제 책임장관을 임명하여 이를 준비하고 있으며, 대부분 지방정부에는 시민참여부서를 국장급단위로 직접 운용하고 있다. 직업정치 영역과 일반시민간의 간격을 줄여가기 위한 전자시스템의 구축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시민들은 이미 직접민주제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반하여 정작 정치인들은 이의 시행에 꼬리를 빼고 있다고 고백한다.

디지털 디바이드, 시민 연령의 고령화 및 25개의 지방정부간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그리고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투명성 부재가 직접 민주제를 당장 시행하지 못하는 현실적 장애라고 지적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시민간 자질의 간극과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전문가들의 안내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치적 고려와 기술적 사항 그리고 제도적 정착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시민발안 확정 이후 실제로 시행된 국민투표에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했던 경험도 지적되었다.

시민발안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직접민주제도가 비경제이라는 지적에 대해, 바젤 대학의 교수출신이 마이크를 잡아채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절대로 반대의 경우라고 외치면서 스위스 경험에 비추면 직접민주제를 통한 결정이 대의민주제의 과정보다 직접 비용이 20% 정도 절감되며 사회갈등으로 발생되는 간접비용까지 감안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직접민주제도가 시민들에게 만족감을 제공하는데 훨씬 경제적이며 효과적이라고 단언한다. 아이슬랜드의 사례로 금융위기로 국가부도상태에서 이를 극복한 것은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해결책을 찾고 모두가 하나되어 실천한 덕분이라는 발언도 있었다.  

민주제도를 정치를 중심으로 분류하자면 리바이던의 저자 홉스식으로 권력자에게 모든 것이 위임된 통치(統治)에서 시작하여 루소의 시민적 일반의지에 따른 사회계약론과 칸트의 보편적 법정주의에 따른 법치(法治)가 변형되어 공직사회가 시민을 통제하는 관치(官治)를 거쳐 시민들이 참여하여 진행하는 협치(協治)의 형태로 발전해 온 셈이다. 법치의 다른 형태로 민주적 사회로 들어오면서 합의된 선거의 규칙을 통해 시민의 선택을 받은 정당들이 책임지고 국정을 운용하는 이당치국(以黨治國)이 일반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인류사회 오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촛불혁명을 거친 2018년 한국사회는 이제 강압적up-bottom 통치시대를 끝내고 관치를 넘어서 협치를 지향하는 시점에 있기는 하나, 민본과 민생과는 거리가 먼, 표만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show-up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참여민주제로 포장한 유사민주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정당이라는 이름은 있으되 정당이 추구해야 할 강령과 정책의 실천의지가 실종된 사이비 정당시대에 한국시민들은 살고 있기도 하다.

이때 직접민주주의를 들고 나선 일군의 유럽 시민들은 기존 정당중심의 정치는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민주주의는 반드시 bottom-up 방식의 민치(民治)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출발점이며 새로이 마그나카르타를 준비하는 배경과 근거이기도 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동의적으로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 한국현대 정치사를 살펴보면 민치가 이루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성숙한 대의적 민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의 개혁 역시 매우 바람직하며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정당다운 정당이 없는 한국정치의 현실에서는 텅빈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당이 정당답게 변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확립을 위해서도 시민발안제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것이 로마에 참여한 지인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자 한국사회에 던지는 조언이기도 하다. 이제 비례적이고 균형적인 대의제도와 시민발안을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제의 쌍(双)도입이 2018년 이후 한국정치의 과제상황이 된 셈이다.

대회 이틀째인 로마대회의 직접민주주의 토론은 정치의 영역을 훌쩍 뛰어 넘어간다. 각론으로 넘어간 오후의 워크샵에서는 수많은 주제들이 다루어져 필자가 모두 참석할 수는 없었으나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구체적 경험과 내용을 담아내는 사회 경제 그리고 철학의 주제로 이루어 졌다. 필자가 선택하여 들어간 두 군데의 워크샵 주제는 ‘민주주의는 예술이자 타자와의 대화이다’ 와 ‘창의적인 공유재와 민주제도 – 혁신’이였다. 불행히도 주제강연과 토론이 독일어와 이태리어로 이루어졌고 어설픈 통역으로 깊고 세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첫째의 주제는 일정에 없던 것으로 저명한 독일 철학교수가 참여하면서 급조되어 이루진 워크샵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제도로 보지 말고 자신의 삶에 채워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음악의 여신인 뮤즈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뮤즈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타자와 대화를 통해서 더욱 성숙된 내용으로 정진하면서 일상적인 실천으로 나가게 된다고 가르치면서, 삶의 주인인 자신과 타자인 우주와 세계 및 사회간의 관계적 연결 매체로서 직접민주제도가 반드시 요청된다는 요지이다. 내용이 어려워 필자가 이해했는지는 불명하여 그가 강의 중에 칠판에 그려낸 한 폭의 예술적 강의기록을 찍은 사진을 아래에 게재하면서 이를 보완하고자 한다.

칼럼_181010

 

두 번째 주제의 발제와 패널은 그야말로 로마시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자리였다. 로마시당국의 시민참여국장, 로마시의 유럽대학 학장, 장관(?)연합회 의장, 디지털이태리 대표 등이 참석하여 주로 직접민주제를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이해했다. 직접민주제를 실시하는 데는 정보와 데이터가 매우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이를 사기업이 소유하고 있어 비용이 발생하면서 일반시민들의 접근이 제한되는 것을 여하히 극복하는 문제와 기업과 경제활동의 영역에 이해관계자 중심 또는 사회적 공유라는 개념을 직접민주제와 결합시켜 적용하는 주제를 다루면서 어떤 경우라도 모두를 위한 혁신과 창의를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것을 분명히 한 자리였다.

결론부이다. 3-4일간의 로마대회를 참여하면서 이제 정치적 제도는 통치와 법치의 영역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민치의 시대(以民治國)로 진입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으면서, 직접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제도의 영역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적 사건 속에서 원칙과 과정과 대화를 통하여 개인 그리고 인류사회를 보다 높은 미래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 라고 스스로 정리해본다.  2018-10.

추신 :

참여한 대부분 주요 도시에서 시민참여와 교육을 위한 수백만 유로(수십억원)의 예산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에 일년에 1,700조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나라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시민민주교육 예산이 3-4억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회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한국 인사들의 발표 내용과 수준도 이에 준했다. 촛불시민혁명의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현대적 민주주의에 관한 한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 2018/10/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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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소상공업체 수는 360만개, 종사자는 1,700만명에 이른다.  소상공업은 서민경제의 주요 기반이다. 선진국은 이미 21세기 경제를 떠 받드는 새로운 축으로  소상공업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5년동안 매년 100군데씩 500곳에 이르는 도시재생지구를 지정하려고 한다. 도시재생지구에 있는 산업은 대부분이  소상공업이기 때문에, 소상공업 부흥과 도시재생사업은 별도로 따로 노는 정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소상공업 정책과  도시재생 정책 모두 윈-윈을 가져올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20세기 산업화 시대에 조성되어 구도심과 재래 주거지에 아직도 남아 외면을 받아오던 소상공업이  모바일 경제로 대표되는 21세기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다. 소상공업은 교외지의 산업단지나 싸이언스 파크로 이전 할 필요가 없이 전통적인 도심이나 주거지역에 계속 머물며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고 도시의 번영을 도울 수 있는 장점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21세기 산업의 특징은 생산비용의 저렴화,생산도구 접근의 용이화, 소상공업에 필요한 물리적 공간의 소형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제는 소규모 수요에 기반하여, 하룻 밤사이에도 완제품이 나오는 산업경제로 진입했다.  

     소상공업은 도심과 재래 주거지 중심부에 입지하여 편익도 취하고, 지역의 재생에도 기여하는 성장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있다. 소상공업  생산시설은 근린주거지에서 요구하는 용도와도 양립하고, 소규모 공간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다. 또한 동네의 비즈니스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생활형 S.O.C.의 공급과 씨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근린주거지 재생에도 기여하는 다중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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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 소상공업의 존재는 Made in Baltimore, Cincinati Made같은 도시와 마을의 지명을 브랜드로 사용하며, 지역 공동체의 지명도를 높여, 지역의 결속을 가져온 성공적인 사례가 다수 있다. 

 

사례#1:워싱톤 D.C.에 있는 “아트 워크(Art Walk)” 지구는 가내수공업체들에 400-800 제곱 피트로 공간을 나누어 가로변 상점이 필요한 소상공업자들에게 낮은 임대료를 받고 임대해 주었다. 지하철 역으로 연결되는 통과로에 있는 이 건물1층은 소상공업 상점이고, 상층부는 임대아파트로 구성되었다.  섬유 업체 “스티치 앤 리벳(Stitch & Rivet)”같은 소상공업체는 지역으로 방문객을 끌어들이며 동네를 활성화시켰고, 또한 자사의 매출도 늘었다.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소규모 영세 업체에서 장래가 유망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소비자 대면을 위해 작은 작업장이 필요한 소상공업자가 동네에 입지하여 보행인을 유인해 거리를 활력 있게 하고,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해 성공한 사례이다.

 

사례#2:미시건 디트로이드에 있는 “쉬놀라(Shinola)”라는 시계부품제작업체는 지역 대학의 창조연구거점 건물에 입주했다. 디자인, 부품공급,시계부품 제작, 관리팀이 모두 한 건물에 입주해 한팀으로 운영했다. “쉬놀라”의 작업은 대학의 센터와 상호 보완적으로 진행되었고, 심지어 학생들의 디자인 워크숍과 파트너쉽으로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다. “쉬놀라” 소상공업체의 입주로 동네에는 많은 일자리가 생겼으며, 심지어 동네의 교육기관을 지원하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소상공업체는 마이크로 수준의 소매업이나 동업하는 업체에서부터 시설설비를 장착한 업체까지 그 규모가 다양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교육기관이나 관리팀 같은 성격이 다른 용도와 혼합해서 운영되기도 한다. 따라서 “쉬놀라”의 사례는 회사의 성장에 맞추어 복합용도로 생산공간의 임차, 재활용, 운영을 지원해주니 성공으로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적 경제 달성과 생활형 S.O.C.공급을 통한 낙후시설정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전통적인 주거지역은 낙후하고, 지방도시 원도심은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저출생, 고령화사회, 인구감소로 인해 도시는 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때, 소상공업기반 재생사업은 사회적경제와 생활 S.O.C.사업을 연결시켜, 사람이 떠난 도심에도 보행인을 끌어들이고, 낙후된 주거지역도 물리적으로 정비해 살고 싶은 도시로 변모 시키는 ‘스마트 전략’이 될 것이다.

 

21세기글로벌도시연구센타 대표/원광대 명예교수

조재성

일, 2018/10/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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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여성들은 공직에 입후보하지 못하는 걸로 여겨졌어요.”

선거 전까지 50만 번 이상 조회됐던 그의 영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공직에 입후보해 선거에 나서는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많은 재산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것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승리를 예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발표 직전까지 어디서 결과를 지켜봐야 할지 장소를 정하지도 못했다. TV 화면으로 승리를 확인한 직후 그는 놀란 눈을 크게 치켜뜨고 “오 마이 갓!”을 연거푸 외치며 입을 가린 채 말문을 잇지 못했다.

무명의 정치 신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28)는 지난 6월 미국 뉴욕시 제14선거구의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 예비선거에서 10선의 조 크롤리(56) 의원을 누르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크롤리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던 정치 거물이다.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어 후보 경선조차 2004년 이후 처음이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57.1%를 득표해 42.5%를 기록한 조 크롤리를 15%p 가까이 따돌렸다.

히스패닉이자 여성인 젊은 후보가 백인이자 남성인 기성세대 후보를 압도한 것만으로도 화제 거리였다. 그전까지 오카시오-코르테스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요 매체는 그의 승리를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가디언은 “최근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큰 이변(upset)”이라고 표현했다. 2014년 공화당 원내대표 에릭 캔터가 극우파 티파티가 지지하는 무명 후보 데이비드 브랫에게 패배한 사건에 견주는 분위기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미 하원 입성을 앞두고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당선은 단순한 ‘이변’이 아니다.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매김하는 그가 미국 정치에 어떤 발걸음을 남기게 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 하루 18시간 웨이트리스와 바텐더로 일하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1989년 10월 뉴욕시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노동자 계급’이었다. 건축가인 아버지는 브롱크스 남부에서 소규모 자영업을 했다. 어머니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었는데 주택 청소원으로 일했으며, 전 가족이 가족 사업에 매달려야 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부모는 브롱크스 지역 공립학교의 형편없는 질에 실망한 나머지 차로 40분이나 걸리는 북쪽의 요크타운 지역 공립학교로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보낸다. 그는 자신의 선거 홍보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나이부터 소득 불평등을 깊게 이해하면서 자랐다. 차로 40분 거리만으로도 학교 교육, 경제적 기회, 건강 상태가 크게 달라졌다. 아이가 태어난 곳의 우편번호가 운명의 많은 것을 결정짓는 게 명확해 보였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정치적 대화를 서슴지 않는 아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며 “그의 입을 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에는 과학에 뛰어난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 2007년에는 노화와 관련된 미생물학 연구 프로젝트로 인텔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에서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중고생 대상 과학 관련 경진대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대회다. 당시 MIT의 링컨 연구소는 새로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을 큰 과학경진대회의 수상자에게 주기로 결정했는데, 오카시오-코르테스 역시 ‘소행성 23238 오카시오-코르테스’라는 명명의 주인공이 된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과학조차도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고 했다. 고교 시절 과학 선생님은 “돈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돕기 위한 연구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스턴대에 진학한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본래 과학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전공을 바꿔 경제학 및 국제관계학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실에서 일하며 이민정책을 다루기도 했지만 훗날 그의 출마 결심에 계기가 된 풀뿌리 정치에 더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인 2008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위기를 맞는다.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가 휩쓸던 경기 침체기에 주 수입원마저 잃어버린 가족은 집까지 압류당할 위기에 처했다. 주택 청소원과 스쿨버스 기사로 일하던 어머니의 수입은 턱없이 부족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웨이트리스와 바텐더로 일하면서 하루 18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는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런 경험 속에서 정책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위기에 맞닥뜨린 가족들이 의료, 주택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경험하면서 시민들이 자력으로 의료, 주택, 교육 문제를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깨달은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다시 브롱크스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교육의 중요성을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교육과 지역사회 조직을 위해 일했다. 아이들의 문맹퇴치와 중학생들의 작문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롱크스의 긍정적인 부분을 묘사하는 동화를 내놓는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국립 히스패닉 연구소(NHI)에서 고교생들에게 지역사회 리더십을 가르치는 여름 강좌를 맡기도 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캠프의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한다. 선거 이후에는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그러다 그가 알고 있던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반대 활동가의 제안으로 친구들과 현장 탐방을 떠난다. 그는 송유관 건설 반대 활동을 진행하는 이들과 함께 나무 난로를 사용하는 텐트에서 몇 주를 지냈다. 오하이오주에서는 소상공인들을 만났고, 미시건 주에서는 플린트 시를 방문해 수질오염 사건을 살펴봤다.

이때 마침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조직한 ‘완전히 새로운 의회(Brand New Congress)’가 오카시오-코르테스에게 출마 제안을 한다. 이 단체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의원들을 당선시켜 샌더스의 구상들을 입법화하기 위해 출범했다. 현장 탐방 과정에서 사람들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전 존재를 던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공동체를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코르테스는 출마를 결심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 ‘더 많은 돈’으로는 이기지 못한다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출마한 뉴욕시 제14선거구는 노동 계급과 이민자들의 비율이 높아 민주당 성향을 띤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다. 80% 가까운 유권자가 명부에 ‘민주당(원)’으로 등록할 정도다. 그러나 투표율은 낮았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것이 유권자들의 낮은 수준 때문이라고 보지 않았다. 투표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유권자들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 크롤리가 엄청난 선거자금을 모으고 있을 때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풀뿌리를 조직하고 문을 두드렸다. 유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웃을 초대해 거실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6~7개월을 보냈다. 소셜미디어도 적극 활용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진보적인 정책을 소개했다. 30명가량의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왓츠앱 그룹채팅방을 활용해 소셜미디어 전략을 조직하고 전파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180개의 광고를 구매했다. 메시지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동시에 소개했다. 반면 크롤리는 광고를 110개만 샀으며, 그마저도 전부 영어였다. 크롤리는 후보 토론회에 오카시오-코르테스와 비슷한 외모의 라틴계 여성을 내보낼 정도로 상대를 무시했다. 이 대리인은 60명이 사망한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시위대 유혈진압에 찬성한다고 밝혀 민주당 지지자들을 기함하게 했다.

“많은 돈으로 더 많은 돈을 이길 수 없다.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해야 이길 수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가 모금한 기부금은 70% 가까이가 200달러 미만의 개인이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캠프는 19만4000달러를 썼는데 340만 달러를 사용한 크롤리의 18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대신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무브온, 저스티스 데모크라츠 같은 진보적인 시민 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뉴욕주 지사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섹스 앤 더 시티’ 배우 출신 신시아 닉슨도 그를 지지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크롤리가 월스트리트를 위한 규제완화에만 몰두하고 있고, 뉴욕이 아니라 버지니아에 거주한다고 공격했다. 자녀 학교도 워싱턴으로 보냈으며 우리와 같은 물과 공기를 마시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20년간 같은 대표에게 우리는 물어야 한다. 뉴욕이 뭐가 바뀌었는가? 나 같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 임대료는 오르고, 의료보험은 받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수입은 그대로다. 우리에게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내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다. 이 선거는 시민 대 돈의 싸움이다. 우리는 시민들이 있고 그들은 돈이 있다.”

승리가 확정되었지만 당일 밤 11시까지도 크롤리는 오카시오-코르테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크롤리가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카시오-코르테스 역시 자신의 번호를 갖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두 캠프 사이에는 간극이 컸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아웃사이더 중 아웃사이더였다.

나중에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크롤리는 오카시오-코르테스를 위해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Born to Run’를 연주해 헌정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11월 총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앤서니 파파스와 맞대결한다. 선거구가 민주당 표밭임을 감안하면 승리는 무난해 보인다. 최종 당선된다면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라는 기록도 세운다.

 

■ 한 사람의 돌풍이 말해주는 것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열풍은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미시간 주에서도 아랍계 중년여성인 라시다 타리브가 후보로 확정됐다. 다음 달 미국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여성 후보는 주 의회, 연방 상·하원, 주지사 등 전 부문에 걸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인지도가 낮은 진보 성향 후보들도 오카시오-코르테스만 언급하면 환호성을 이끌어낸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를 지지했던 저스티스 데모크라츠 같은 단체들이 지지하는 비슷한 성향의 후보들에게 지지 선언을 함으로써 힘을 보탠다. 오카시오-코르테스에게 지지받는다는 점만 내세워도 후원금이 3배 이상 늘어난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를 단순한 개인의 이변으로만은 보기 어려운 이유는 그의 탄탄한 사상적 기반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표방한다. 그의 승리 직후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사회주의’ 검색이 1500% 이상 증가해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가 속해 있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은 샌더스 열풍 이후로 회원수가 7000명에서 370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DSA는 정당은 아니지만 민주당을 통해 선거에 참여하는 사실상의 준정당 조직이다.

민주당에서 지금까지 사회주의는 금기어에 가까웠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의 말처럼 “경기침체와 치솟는 학자금, 불안한 의료보험, 일자리의 불확실성 증가 등 극심한 물질적 불안정을 겪은 젊은이들에게 공산주의의 광범위한 실패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자본주의의 실패는 곳곳에 널려”있다. 샌더스 이후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모순을 타파할 키워드로 ‘사회주의’를 찾기 시작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버니 샌더스처럼 보편적인 공적 의료보험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고른 교육 기회를 빼앗는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공립 대학부터 등록금을 폐지하자고 말한다. 국가가 모든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일자리 보장제’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주택 정책은 주거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며, 엄격한 총기 규제도 주장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폐지도 주장한다. 경선을 불과 이틀 앞두고도 텍사스로 달려가 불법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부모와 떨어져 분리 구금돼 있는 이민세관단속국 아동 보호 센터에 항의 시위를 나갔을 정도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는 한국 정치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매번 선거 때마다 절반 이상이 초선으로 물갈이되는 국회지만 실상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바뀐다 해도 매번 50~60대 법조 혹은 관료, 전문직 출신 남성으로 다시 채워지는 국회가 ‘그 나물의 그 밥’은 아니었을까.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돌풍이 있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쳐버린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젊은 세대들의 정치 무관심과 패기 부족 탓일까. 꽉 막힌 진보 진영의 낡은 운동 방식 때문일까. 그보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폐쇄적인 선거 제도와 정치자금법 때문은 아니었을까. 무엇이 됐든 고민해야 할 때다.

 

■ 참고자료

 

위키피디아-Alexandria Ocasio-Cortez

오카시오-코르테스 공식 홈페이지

[프레시안]제국의 퇴장을 재촉할 미국 좌파의 전진

[조선일보]민주당 경선서 10선 의원 꺾은 28세 라틴계 여성

[조선일보]美 선거 여성후보 사상 최다… 치마 입고 하이힐 신고 ‘돌풍’

[뉴욕타임스] Alexandria Ocasio-Cortez Defeats Joseph Crowley in Major Democratic House Upset

[뉴욕타임스] Alexandria Ocasio-Cortez Emerges as a Political Star

[뉴욕타임스] Alexandria Ocasio-Cortez: A 28-Year-Old Democratic Giant Slayer

[마더 존스] How Alexandria Ocasio-Cortez Pulled Off the Year’s Biggest Political Upset

[비즈니스 인사이더] Alexandria Ocasio-Cortez, the 28-year-old who defeated a powerful House Democrat, has an asteroid named after her — here’s why

[다른백년] 미국 정치에 부는 진보주의 운동

[다른백년] 미국 민주당 내 사민주의의 기세가 등등하다

[허핑턴포스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진보 후보들에게 새로운 에너지와 자금을 몰고 온다

[한겨레] ‘버니크래츠’ 꿈틀…샌더스는 돌풍이 아닌 밀알이었다

[가디언] Alexandria Ocasio-Cortez: who is the new progressive star of the Democrats?

수, 2018/10/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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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웨덴의 인구는 975만, 가구 수는 477만, 주택 재고 수는 467만, 천명당 주택 재고 수는 479호, 1인당 전용주거면적 49m²인 나라이다. 이중 자가 비중은 41.6%, 임차인 협동조합 거주 23.2%, 공공임대주택 16.0%, 민간임대주택이 19.2%로 공공임대와 민간임대 주택의 가격차가 별로 없고 모든 임대차에 대한 임대료가 규제되는 가운데, 자가 비중인 41.6%를 제외한 모든 세대가 공공 혹은 민간임대 주택에 거주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7년 국토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자가 거주가 57.7%, 보증금 낀 월세가 19.9%를 기록했다. 전세는 15.2%이었다. 나머지는 공공임대 전체재고가 140만호로 전체 주택의 9.5%이며 장기임대가 가능한 주택은 4.7% 남짓을 차지한다. 천명당 주택재고는 2010년 기준으로 302호, 2017년에는 대략 370호 정도이며, 1인당 주거면적은 30m²을 넘지 못한다.

 

2.위에서 본 스웨덴의 경우, 협동조합과 공공임대를 합치면 40% 정도의 국민이 공공이나 준공공의 주택을 ‘임대’하거나 지분을 가지고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 공공임대 4.7%만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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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에 위치한 핀보다 파크 협동조합주택

3.국민의 집 – 페르 알빈 한손(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지도자)이 1928년 주창하고 1932년 집권한 이래 1976년까지 ‘국가는 하나의 가족, 국가가 자식인 국민을 돌보아야, 국민의 집에서 가족 구성원인 국민은 자유평등을 보장받는다’는 모토로 국민의 주거와 교육 등 보편적인 복지 기능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사상이 보급되었다.

44년간 장기 집권한 사회민주당은 기초연금(35), 실업보험(35), 출산수당(37), 아동수당(48), 의료보험(55), 공공임대주택과 주택수당 – 임대료 조정 등의 정책을 꾸준히 진행하여 오늘날의 스웨덴을 만들어 냈다.

특히 1940년대 – 1950년대에, 하층 계급이 밀집하여 거주하던 지역의 낡고 오래된 집들을 파괴하고 대신에, 풍키스(funkis) 건축 양식이라고 불린, 모든 방에 볕이 들고 침실과 창문이 딸린 근대적 주택들이 만들어졌다. 같은 방법으로, 1960년대 – 1970년대에 도시 근교에 증가하는 인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택 100만호 프로그램 (Million Programme)〉이라고 불린, 새로운 노동 계급을 위한 주택 지구가 건설되었다.

 

4.우리나라 주택정책

1962년 주택공사가 만들어지고 이후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 그것 하나에 집중되었다. 자가소유형 주택, 아파트식 공동주택, 대규모 택지조성과 건설사를 통한 시공, 로또와 같은 분양과정… 정보와 금융접근성이 일부계층에게 제한되고. 이는 곧바로 축재의 무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 특히 대도시 주민들에게 주택은 거주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산이다. 주택공급정책에 기반한 정부도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에 끊임없이 부응해 왔고 나아가 앞장서서 조장해 왔다.

청약저축과 복권이익으로 만들어지는 주택도시기금은 주거취약계층에게 도움을 주고 있나? 지금도 주택도시기금은 자가소유주택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주택도시기금이 사용되는 곳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임대주택(국민·행복주택 등) 건설사업 출자 및 융자, 서민을 위한 분양주택(공공분양·다세대·다가구주택 등) 건설사업 융자 – 귀퉁이의 공공주택은 별개로 하고 분양주택의 경우는 자가소유주택을 공급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 노후불량주택 개량 등 융자, 국민임대, 행복주택, 영구임대 건설 시 주거약자용 주택편의시설 설치 융자 – 존재감이 전혀 없는 사업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3) 무주택 서민·근로자의 주택구입 또는 저소득층·도시영세민들에게 전세자금 지원, 전세가격 안정과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한 매입임대주택 자금지원 – 전세자금 융자는 전세금을 상승시키고, 주택가격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 무주택 서민에게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려면 얼마를 융자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4) 새로이 생겨난 리츠방식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지원 – 주택도시기금의 마중물 역할을 통해 임대주택 투자에 민간자금을 유치하여 재정부담 없이 지속가능한 임대주택 공급체계라고 한다. 하지만 부영이나 호반의 경우, 이런 사업을 이윤달성의 기회로 삼아 임대입주자를 억압하고 폭리를 취하여 왔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래서 시행자를 사회적경제 주체로 한정하겠다고 합니다만 이 경우에도 LH나 SH의 Exit을 위해서는 입주자가 적어도 시세의 7~80%의 주택가격을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기금은 전적으로 LH, SH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주택개발정책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주택은 기회가 적고, 사회주택 혹은 공공지원 민간주택은 모두가 반전세 방식으로 공급되는 주택들이다. 게다가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건설과정에서 방이 2~3개짜리인 집들만 제공하여 1인가구에게는 아예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반전세라는 것이 서울에서 신혼부부를 위한 49m²(제일 기회가 많다)인 경우, 1억5천~2억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목돈이 없는 계층, 새내기 직장청년들과 대학생들에게는 아예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5.주택정책의 목표 : 지원의 중립성과 형평성

우리나라 주택정책이 스웨덴처럼 ‘국민의 집‘까지는 아니어도 공공과 준공공을 적어도 20%까지는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특히 준공공 협동조합 주택(조합이 소유주체이며 임차인이 지분을 소유하거나 그 지분의 이전도 가능한)을 위한 법제도가 전무한 상태에서 지자체에서는 사회주택, 공동체주택 등의 애매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는 주택지원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정책의 목표는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 좋다. 즉 공공/준공공 주택, 소유형이 아닌 주거형으로의 주택보급, 이를 위한 중립적이며 형평성이 있는 제도와 지원이 필요하다.

 

6.협동조합 주택의 건설

현재 스웨덴 주택의 26%를 차지하는 협동조합 주택도 초기에는 조합의 투기, 자금횡령, 부실 건설 등으로 상당기간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가 23년 HSB (임차인 저축 및 건축협회) 설립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주택저축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소비자 협동조합의 설립으로, 매달 5만원 정도의 적금 납입 후 기다려서 입주권 가진다. HSB가 민간시장에서 비영리주택 모델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다. 릭스뷔겐 (건설노동조합이 지원하는 주택협동조합), 주택저축 통한 조합원 모집은 같고 이 두 기관의 재고가 전 협동조합 주택의 75%이다.

협동조합 주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액의 저축으로 주거가 가능하다, 주거의 개념으로 주택을 건설하자. 1~2억 보증금이 아니고 500만~1천만원 저축만으로 주거가 가능한 집의 보급, 우리도 가능하다!

주택도시기금을 자가소유나 전세자금으로의 융통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대신, 공공/준공공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특히 협동조합 (임대)주택을 위한 자금지원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도 조례를 제정하고 토지도 내놓아야 한다. 협동조합 주택이 만들어 지고 저렴한 주거공간, 1인당 보증금 500만원과 월 30만원 정도의 20~25m²의 공간, 지하철과 대중교통이 편리한 지점의 교통요지에 편리한 공공시설까지 갖춘 건물에서 청년들이 생활하는 것이 현실이 되도록 하는 것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다. 국민의 집 한손처럼!

금, 2018/10/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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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더 이상 맹목적으로 탐욕과 경쟁 그리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제적 사회경제 시스템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명증해 지고 있다. 자본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많은 노력들이 제시되고 시도되고 있는 가운데. US solidality Economy Network의 핵심 인물이자 매사츠세츠 주에 소재한 지역 협동조합 WellSpring의 책임자인 Emily Kawano 양이 매우 귀한 글을 제공한다. 그녀는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되어 있는 천사적 본성 즉 연대, 협동, 상호성, 상보적 이타심, 나눔과 열정 등을 제도와 실천을 통하여 계발하면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연대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그녀의 경험을 통한 신념과 원칙 7가지를 아래와 같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연대경제는 맹목적인 성장과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를 가장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전세계적 운동으로 하나의 계획이라기보다 연대, 참여 민주주의, 인종과 계급, 성별 등 모든 차원에서의 형평성, 지속 가능성 및 다원주의 등의 가치를 따르는 광범위한 경제활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모든 상황에 일괄 적용할 수 있는 접근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운동에는 공통적으로 좋은 삶(buen vivir[1])의 개념이나 잘 사는 것, 자연과 그리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것의 가치가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실천에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섞여 있으며, 주류활동과 ‘대안활동’이 섞여 있다. 공유경제 활동은 생산, 분배, 교환, 소비, 금융과 거버넌스 및 국가 등 우리 경제의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흔히 연대경제 하면 회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나 신용조합을 떠올리지만, 이런 조합은 수많은 가능성의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공동체토지신탁이나 시민참여형 예산, 소셜화폐, 시간은행, P2P대출, 구상무역, 선물교환, 마을정원 등 ‘공유’와 관련된 아이디어, 일종의 공정거래와 공유경제, 비영리적 돌봄서비스 등도 연대경제의 구성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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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선량한 본성’을 일깨워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연대경제는 자본주의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의 선량한 본성’을 촉진하고 장려하여 이러한 활동들을 확대하고 함께 결합하겠다는 것이다. 연대경제는 잘 계산된 자신의 이익과 이윤극대화, 경쟁 등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치들을 추구하는 대신 연대와 협동, 상호주의, 상호협력, 이타주의, 보살핌, 공유, 연민 그리고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다. 점점 더 많은 분야의 연구결과를 통해 인간은 원래 협동하도록 타고 났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인간의 생존과 발전은 함께 일하는 능력에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생각과 비슷하다면, 연대경제 확립을 도울 수 있는 다음의 일곱가지 방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1. 자체공급과 공동체 생산 늘리기

역사적으로 공동체는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성장했다. 그렇게 도로와 관개 시스템과 집을 만들었으며, 살아가기 위해 약과 옷, 가구, 예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 모든 것들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할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이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경제의 붕괴 후, 이런 형태의 경제가 가진 불안정성과 취약성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게다가 미국 내 일자리의 40%는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어떻게 공동체가 곧 닥칠 경제 붕괴와 엄청난 일자리 소멸에 맞설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내는 것이 더욱 시급해졌다.

공동체 생산은 마을농장에서 농사짓고 닭을 키우는 것, 도시지역에서 ‘먹을 것’을 생산하는 것 등은 물론 중고시장과 상호협력, 재능공유 등 크게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식들을 포함한다. 나아가 최첨단 기술의 민주화에까지 미친다. 예를 들어, (수십년간 많은 마을이 대규모 실업상태로 버티고 있는) 디트로이트에서는 James and Grace Lee Boggs Center to Nurture Community Leadership과 Incite/Focus 등에서 최첨단 제조기술을 지역사회에 전달하는 ‘팹랩 (제작 실험실)’을 통하여 도시농업, 중고시장, 재능공유, 3D 프린터를 활용한 제조, CAD 기반 디지털 제작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생산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1. 돈 옮기기

대형은행에 계좌가 있다면 그 돈을 지역 신용조합으로 옮기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신용조합은 조합원, 즉 계좌 소유주의 이익을 위해, 해당 조합원에 의해 운영되는 금융조합이다. 저소득 내지는 중소득 공동체를 위한 지역사회개발신용조합을 찾으면 더욱 좋다. 여느 은행과 마찬가지로 신용조합에서 보통예금이나 당좌예금을 개설하고, ATM/직불카드를 발급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용조합은 (대체로) 지난 2008년 경제를 무너뜨린 바 있는 약탈적 대출이나 다른 금융부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1. 새로운 경제단체에 투자 또는 후원하기

연대경제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예컨대, ‘직접공모 (Direct Public Offerings 또는 DPOs)’는 조합의 자본조달을 위한 대중적이고 성공적인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DPO는 기업의 임무를 믿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투자자를 찾는 공동체에 손을 내민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왔으나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는 순환대출(lending circles)의 경우, 매달 일정 금액을 납입할 수 있는 사람들의 그룹을 구성하고, 그 그룹의 각 구성원은 자기 순서에 납입된 총액을 제로 금리에 받게 된다. 클라우드펀딩에 참여하거나 연대경제 단체와 네트워크에 후원 및 다른 형태의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1. 투기가 아닌 거주를 위한 주택을 생각하기

기존의 부동산 시스템은 비정상적인 결과를 낳았다. 낮잡아 추산해도 미국 내 50만명 이상이 매일 밤 노숙을 한다. (별장과 팔려고 내놓은 집을 빼고도) 580만채의 주택이 공실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불균형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택이 점차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상품이 아니라 투기성 상품, 즉 엄청난 잠재 이익을 얻기 위한 도박판 자산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는 시장에서 매물을 거둬들이기 때문에 주택부족과 가격상승을 부추길 뿐 아니라, 2008년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폭발하여 세계경제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만약 지금 주택을 사려고 한다면, 토지신탁이나 주택조합, 코하우징 개발 등 주택을 투기시장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제한적 자본’ 주택을 고려해보자. 이러한 접근방식에서는 주택가격의 적적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판매가에 상한선을 둔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저소득 및 중소득가구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부를 축적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부동산 가격을 이들이 구입할 만한 수준으로 만드는 게 바로 이 제한적 자본 모델이다.

 

  1. 노동자협동조합을 찾거나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노동자협동조합은 조합에 소속된 노동자가 소유하고 관리하며, 이들은 비즈니스를 어떻게 운영할지, 수익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즉 나눌지 재투자할 지 아니면 수익 일부를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배정할지 등을 스스로 결정한다. 기업의 소유주가 노동자의 노동으로 생성된 수익 모두를 차지하는, 말하자면 착취이자 계급투쟁의 과정인 자본주의형 비즈니스와는 대조적이다.

뉴욕, 매디슨, 위스콘신 등 일부 도시들은 저소득층 사회와 유색인종 거주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 축적 기회를 제공하는 포용적 경제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노동자 조합을 육성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있다면 기존의 조합에 일자리를 찾아보거나 직접 조합을 꾸릴 수 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조합 훈련 프로그램과 기타 지원을 제공하는 지원시스템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 새로운 경제체제 내에서 타인과 연계하고 이야기하기

관심이 있다면 U.S. Solidarity Economy Network (미국연대경제네트워크) 또는 RIPESS (국제사회연대경제네트워크)에 가입하여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작가라면 관련된 글을 쓰고, 학생이라면 관련된 공부를 하고, 교사라면 연대경제를 가르치고, 활동가라면 소속된 단체에서 연대경제 프레임워크를 채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치인이라면 연대경제를 지지하는 정책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협동조합 같은 기관에 참여하고 있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연대의 원칙 하에 작동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할 방법을 찾아보자. 더욱 강력하고 뚜렷한 연대경제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수백만가지에 달한다. 연대경제에 대해 이야기만 해도 가치 있는 일이다.

 

  1. 원칙대로 살기

자본주의는 경쟁 중심의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가치와 행동을 옹호한다. 그러나 엘리노어 오스트롬 (Elinor Ostrom, 공공의 자산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 수상) 교수와 연구진은 몇몇이 불공정 이익을 취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규칙과 집행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숲, 어장, 목장, 물 등의 자원이 개인 소유일 때 보다 공동체가 관리할 때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평등하게 관리될 수 있는 지 문서화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전제로 하면서 위의 방식으로 연대를 추구하는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돈의 힘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 상호주의와 배려, 동정 등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아이와 노인과 이웃, 나아가 공동체를 돌보는 가치 있는 사회경제적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연대경제를 찾아보자. 이미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제 당신 안의 선량한 본성을 깨우자.

 

에밀리 카와노 (Emily Kawano)

화, 2018/10/2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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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기본적으로 개별적이고 주관적 요소가 강하지만, 국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행복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인간다움이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유도하는 제도와 규범 그리고 자연친화적 환경 더하여 공유재가 풍요로운 조건에서, 개개인이 노력을 통하여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해결해 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각자가 지닌 덕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꼭 순서대로 나열할 일은 아니지만.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데 기본 조건인 물과 공기가 으뜸을 차지할 것이다. 이것들은 원래 교환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말하자면 신이 선물로 제공하는 자연재(自然財)들이다. 그런데 산업화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되면서 자연에서 공짜로 즐기던 물이 이제는 재처리된 상품으로 변질되어 돈으로 사서 마시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속도로 대기가 오염되면 멀지 않아 필수적으로 안전 마스크를 착용하고 별도로 산소를 구매하여 달고 다녀야 할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환경오염과 생태의 파괴로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숫자로 표시되는 경제적 지표와 돈으로만 딱 한번뿐인 삶의 성공여부를 계산하고 있다. 젊은 시절과 신혼 초 십여 년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강남의 핵심지역에서 살다가 혼탁함과 소란을 피하여 공기좋고 물맑은 서울변두리 지역으로 탈출한 필자는 한국 부동산 광풍의 진원지인 강남지역을 지날 때마다 지난 시절의 기억이 겹치면서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든다.

꽉 막히는 교통체증과 매연 소음 그리고 하늘의 색깔을 잊고 살아야 하는 인위적인 고층 건축물에 둘러싸여 소란과 번잡함으로 사람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지역을 주요 매스콤들은 주거환경과 편이성이 뛰어난 지역이라고 떠들어 댄다. 솔직하자, 교육문제는 별도로 하고 주차 지옥과 고물가 등 주거의 쾌적성(amenity)으로 따지자면 최악의 수준이지만, 부동산이라는 자산의 투기적 가치가 가장 높고 이곳에서 형성되는 인적관계로 짜여지는 부패의 장막 속에 사회적 기득권과 불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으며 이곳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비인간적인 품격과 비루한 지위가 저절로 높아진다는 착각 속에, 몰려드는 가수요에 때문에 강남 부동산의 불패라는 해괴한 용어가 등장했다는 것을. 대체로 강남 지역은 생명으로 주어진 자신의 삶을 사는 온사람(全人間)들이 아니라 숫자와 과욕에 포로가 된 가인(假人)들로 가득찬 세상이다. 강남을 함께 지나던 유럽 친구는 숨막히게 빽빽한 고층 건물 사이에 밀집된 아파트촌들이 불우한 사무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몰려 사는 불량지역으로 보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것이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외국인의 눈에 비쳐진 강남 주거의 팩트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분류는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나열하자면, 시장에서 등가의 원칙에 의해 구매하는 사유재(私有財)와 자연과 국가 및 공동체가 제공하는 공공 또는 공유재(公有財), 그리고 생활 속에서 인연을 맺고 조우하는 사람들간에 형성되어 진행되는 관계재(關係財)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윤리철학에서 해방된 주류 경제학은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포용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가공적 프레임의 논리와 숫자로 재구성하고 생명의 논리에서 벗어나 임의적으로 해석해 가기 시작했다. 벤담식 공리주의가 도입되면서 산다는 것이 양적인 측정 대상이 되었고 제본스 등 한계효용 학파가 등장하여 우리의 일상을 수식과 도표로 바꾸어 놓으면서 개개인의 인격은 도표에서 움직이는 한 개의 점을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연적 품성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렸고 자연환경은 자기회복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각자가 처한 정치사회적 위치에서 나라에게 바치는 세금을 제한 후 남겨진 자원에 경험과 기량을 동원하여 만든 노동의 결과물을 교환하고 조우했던 물물교환식 시장이 근세로 들어오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적인 잣대와 점의 집합으로 표현되는 수요공급의 동선을 따라 오로지 자본의 이익실현이라는 가공의 법칙을 위하여 작동하기 시작했다. 근대경제학적 논리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공리주의가 만들어낸 양적 등가의 법칙이란 조건 속에 삶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매매하고 소비하는 양태를 사유재의 거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방식으로 시장 거래를 통하여 구매하고 소유하며 소비하는 사유재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zero-sum)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음식 등 소비재뿐만 아니라 각종 내구적 재화와 서비스를 포함하여 한 사람이 이를 소유하거나 소비하면 이를 타인이 함께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이에 더하여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업적 광고 속에서 단순히 생활에 필요해서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나치게 과다한 소비가 마치 약물 중독처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측면도 있고, 베블런이 지적하였듯이 자신의 지위와 재력을 타인에게 들어내고자 하는 과시적 성격의 구매형태도 꼴사납게 돌출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아파트의 평수와 사는 지역이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알리는 기준이 되었고, 최근에는 이름깨나 알려진 외제차를 소유해야만 사회적으로 행세하는 존재인 듯 착각하게 되었다. 미술사에는 내용이 텅 빈 철학으로 천박하고 겉보기에만 그저 화려한 로코코라는 양식이 있다. 귀족 중심문화인 바로크에서 시민사회의 문화인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 나타난 양식으로 주된 배경은 상업주의와 산업시대의 초입 시대에 갑자기 부자가 된 부류들이 귀족의 흉내를 내면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욕구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심에 있던 미술가 루벤스의 경우, 한국에서 조영남씨가 그리하였듯이, 쏟아지는 졸부들의 그림수요를 대량 공급하기 위하여 자신이 간단히 소묘와 스케치를 마치면 수십 명의 견습 제자들이 달려들어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상업적인 성공의 방식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예술이 지녀야 하는 순수함과 독창성을 생각한다면 혀를 찰 일이다. 서울 거리에서 흔히 보듯이, 개념없이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민 예식장 건물외장 모습에서 위에 언급한 로코코 양식의 끝장을 본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반성적 사고능력을 상실한 한국인 졸부들의 허황되고 적나라한 모습이 내용도 없이 겉만 화려한 로코코 풍의 결혼식장의 모습과 겹쳐지는 착각이 든다.

타인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유재와는 달리,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일단 공유재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요공급 곡선의 원리에 갇혀 있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를 수리적 경제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외부효과라는 용어로 설명하려 한다. 대부분 시민들이 주말이면 즐기는 자연적인 산과 바다, 도로 등 교통시설, 의무적인 교육기관, 공공 미술관과 도서관, 공원과 놀이터, 전력공급과 공공의 이동수단, 공공부조로 운용되는 의료 시스템 등 사회보장 제도, 더 나가서는 일반행정 및 국방과 방역시스템 등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공유재 또는 공공재이다. 사용 용도 및 성격과 유무상 여부 그리고 질적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겠지만 국가와 공공기관이 개입하고 관리하면서 여럿이 함께 사용하고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광의적으로 공유재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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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산업의 이익과 네오콘의 지위를 위하여 항시 지구상 어딘가에서 전쟁을 치루면서 전세계 군사비의 40% 정도인 700억불 이상을 지출하는 전쟁국가 미국은 한편에서는 국내의 사회간접시설이 형편없이 낙후되었고 공공의료 체계와 초중등 교육시설 등이 상대적인 유럽국가들에게 비하여 질과 양 모든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저하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 들어 한국의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지만 수천만의 빈민층 미국인들은 일상적으로 “Fucking USA” 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미국에 사는 친지 분들이 한국에 오면 공공교통과 병원사용의 편리함 그리고 소비생활 등 미국보다 지내기가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최고 부자나라인 미국의 공공적 수준이 이러할진대, 지난 민주당의 대선경선 과정에서 미국의 국방비를 대폭 줄이고 절감된 예산을 공공의료, 공공교육 그리고 사회간접시설의 개선과 확충에 써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했던 민주사회주의파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이 미국 서민들을 위한 미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반대로 국민총생산액의 55% 이상을 공공적 영역에 사용하는 덴마크는 시민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금융기관에 지고 있는 일인당 개인의 빚도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빚더미를 안고 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공유재가 풍족하여, 불안과 궁핍함 대신에, 공공적 신뢰도와 함께 개별적인 행복지수도 덩달아 함께 높아진 것이다.

세계 곳곳을 출장 다녀본 경험이 있는 필자는 복지안전망 체계를 제외하면 한국이 사회적 인프라 등 공공영역에 있어서는 경제규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고 느낀다. 87년 민주항쟁의 성과와 문민정부 이래 도입한 지방자치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나타난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수준과 공유재적 향유는 직접적인 함수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언급하고 가야 하는 것은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공유경제에 관한 것이다. 아마존 및 우버와 에어비엔비 등 벤처 전문기업들에 의해 온라인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상품거래의 편익을 제공하고 기존에 투자된 고정자산과 시설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크게 증대되고 있는 점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기능과 역할 자체는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하고 다다익선의 관점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통신기술과 인터넷 환경은 모두가 공유하고 활용하며 편리함을 즐긴다는 점에서 자연재와 같은 공유적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 환경과 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사업과 거래를 독점하는 상황을 ‘공유재’로 착각하게 만든 ‘공유경제’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데는 매우 조심해야 할 함정이 있다. 반드시 ‘공유재’와 ‘공유경제’라는 용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이 제공하는 사업망의 이점과 거래의 성과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되돌려 질 때 우리는 이를 공유재적(的)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공공재적 망을 이용하여 발생하는 거래의 이익을 국가단위 또는 세계적 규모로 독점하고 지배하는 형태를 ‘공유경제’라는 미명하에 묵인한다면 향후 인류 전체가 이들 거대 기업들에게 인질처럼 통제당할 위험성을 지닌다.

위에 언급한 기업들과 구글과 폐북 등 공룡처럼 커진 국제적 벤처기업들이 포장한 ‘공유경제’라는 가면을 벗기어 내고, 이들 기업을 국제적 협의를 통하여 공공적 과정을 거친 판단과 결정으로 통제하는 일이 인류 미래의 매우 중차대한 주제로 다가오고 있다. 공유경제의 플랫홈을 공유재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플랫홈 운용과정에의 공적 개입과 발생한 초과이익을 해당 국가 또는 국제사회로 환원하는 합의와 실행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양적 잣대와 수치로 삶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주류경제학이 절대로 포착할 수 없는 내용이 필자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공동체 속 상호성에 기반하는 관계재이다. 당연히 인간이란 존재는 동물계에서 출발하여 진화해온 탓에 의식주라는 기본재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이는 시장과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주된 배경이다.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해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절과 미소, 나눌수록 커진다는 도움의 손길, 함께하면 힘이 더욱 세지는 협력, 외로울 때 옆을 지켜주는 우정, 함께 즐기는 맛난 음식,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는 즐거움 등 일상의 마주침과 사건 속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들이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주제로 다가온다.

의식주를 포함한 관계적 사건을 우리의 선조들은 동학의 가르침을 통하여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무형적인 의미를 지닌 ‘관계’라는 단어에 물품을 뜻하는 재(財)라는 꼬리를 붙이는 것이 설명모순이라고 느끼지만, 사유재 및 공유재와 대비하고자 하는 뜻도 있고 제3섹타 경제론이 추구하는 주제의 연속선 상에서 설명하고자 편하게 관계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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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전작 ‘다른백년을 꿈꾸자’라는 책에서도 소개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차원적 그라프에 국가별로 종축은 행복의 크기로 지표를 삼고 횡축은 GDP로 표시한 도표를 작성해보면 행복의 크기는 대략 15,000 – 20,000불까지는 정비례 함수로 증가하지만 20,000불이 넘어서면 횡축으로 평행선을 그리면서 GDP가 아무리 늘어도 행복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과다하게 GDP를 늘려가면 행복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식주라는 기본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물질적 기반조건과 적정한 사회서비스의 공급망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단계에 이르면 물적 조건과 행복과의 정비례적 함수관계가 상실되고 지나치면 오히려 반비례적 위험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하여 경제적 활동에 과다한 시간을 투입하면 오히려 개별적인 행복지수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흔히 체험한다.

이스털린의 역설인 재화와 행복간 관계함수는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었던 ‘저녁이 있는 삶’의 이론적 배경이기도 하거니와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주당 최장시간 52시간의 정책과도 부합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삶의 질적인 향상이라는 본 글의 주제와는 별도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추가로 생성되는 일자리를 공유하면서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이기도 하고 더 나가서는 산업의 혁신적 기제로 작동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간이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는 매일 4-5시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적정한 노동시간의 단축은 자기학습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생산공정, 경영기법, 설비개선, 신규시설투자와 더불어 새로운 과학기술 등 혁신요소의 도입을 촉진하게 된다.

몇 해 전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5분간 진행되는 TED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동부벨트에서 정신과 치료 시스템을 운용하는 연구단체에서 70여 년간 긴 세월을 통하여 치료 대상을 추적해 본 결과 건강하게 오랜 수명과 행복한 삶을 누린 계층은,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공직자나 수입이 좋은 경영자도 아니었고, 평범하지만 사회적 참여에 열심이었고 친구가 많으며 이웃과 관계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것이 요지이었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전문가 집단에 의해 오랜 연구의 데이터를 통해서 재확인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관계재는 사유재처럼 시장의 등가적 법칙도 작동하지 않고 AóB 형태의 일대일 대응적 계약도 일방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교환되는 형식은 인격이 담아진 상호적 존중을 통하여 일대일의 맞대응보다는 방사적 형태일 수도 있고 물결과 같은 파장형태를 띨 수 도 있고 순환적인 고리형태로 나타낼 수도 있다. 교환되는 내용은 수고라는 형태의 노동과 감사라는 예의와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감성의 상호적 교류가 주를 이루게 된다.  실제로 우리들 대부분, 지난 시간을 반추하면서 행복했던 장면들을 회상하여 보면, 대체로 물질적 풍요와 재력에 의해 제공된 사유재의 소유 또는 소비의 순간보다는 진심을 담아낸 상호적인 관계재의 교환과 접속들이 압도적일 것이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개별적이고 주관적 요소가 강하지만, 국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행복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인간다움을 사회적 분위기로 유도하는 제도와 규범 그리고 자연친화적 환경 더하여 공유재가 풍요로운 조건에서, 개개인이 노력을 통하여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해결해 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각자가 지닌 덕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독과점이 통제되는 상태에서 시장적 순기능이 작동하여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제공할 기반을 확대하고, 국민경제가 창출해 낸 부가가치의 적정 부분을 할당하여 국민 개개인 모두가 의식주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공공재적 기반과 사회안전망적 토대를 구축한 가운데 각자의 삶의 터전인 공동체 속에서 관계재를 꽃피우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를 들여다 보면, 공직자 임명 절차에 따른 청문회마다 예외없이 겪듯이 법제와 관행이 잘못된 탓으로 모두가 하나같이 투기꾼이요, 편법을 저지른 잠재적 범죄 집단들이다. 한국사회 만악(萬惡)의 근원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토지공개념에 입각하여 적정한 보유세를 부과하고 매매차익을 회수하는 수준의 누진적 양도차익과세를 실시하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 없이 본질적 핵심사항의 시시비비가 너무도 분명한데도 이를 훼방하는 온갖 거짓 논리와 위록지마에 눈을 감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인류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부동산 투기의 광풍에 휘말려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고백하고 단호한 조치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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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생활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국민경제 수준인 GDP 2만 불을 훨씬 상회하여 3만 불에 도달한 나라에 천만이 넘는 시민이 매일 열심히 땀흘려 일을 해도 형벌 같은 가난(working poor)속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기득권의 탐욕과 횡포가 극심하고 위에 언급한 로코코 양식처럼 천박한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구석구석 지배하는 가운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마냥 무지무능하고 국가 단위가 유지해야 할 공동체적 규범이 송두리째 무너졌고, 시민사회 역시 보수 진보 구별할 것 없이 각자가 속한 집단의 속좁은 이기주의와 특혜와 이해에 갇혀, 당연히 행하여야 할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람의 도리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근 집권당의 대표가 제시한 4만불 시대가 설령 눈 앞에 도래한다 해도, 시민 개개인이 인간답게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우리사회의 내적 구조적 실상이 여전히 그대로 놓여 있다. 문제는 GDP 등 재화의 양적 규모가 아니라 정치적 무능에 더한 사회경제적 규범과 공동체적 관계재의 실종에 있다.

우리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10만이 넘는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하였듯이 배달민족은 매우 독특하다(exceptional). 필자의 앞 글 “한국역사 속 향촌의 자치운동”에서도 기술하였듯이 이화세상과 홍익인간이라는 오랜 전승의 좌표 속에 향음주례(鄕飮酒禮)의 공동체적 규범과 율곡선생이 내세웠던 해주 향약(鄕約)의 높은 뜻을 다시 일으키고 19세기말 근대화의 길에서 민중들의 자각 속에 동학이 크게 외쳤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정신을 실천해 가야 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추구하였듯이 정치권이 절치부심으로 앞장서서 사람이 사는 세상을 위해 모두에게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항심으로 노력해야 한다.

월, 2018/10/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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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부상하는 북한이 지속 가능하고 협력적인 경제 및 사회 발전의 새로운 벤치마크를 국제사회에 제공할 수 있을까? 지정학적 변화와 새로운 기술 덕분에 국가 ‘커먼스(The commons)’에 대한 아이디어는 점점 더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관계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긴급한 문제는 더 이상 화해 과정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및 문화적 인식에서 한반도가 향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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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과 기술과 함께 제도적 변화를 향한 ‘은둔의 왕국’의 문이 열리고 있다. 정부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새로운 기반 시설 구축은 다른 국가들이 북한을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고무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한반도는 앞날이 기대되는 발전 속에 있지만,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들이 북한의 풍부한 광물 자원 개발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빠른 부(富)를 창출할 약탈 경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빈곤한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대신 국제 투자자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이는 전후 이라크가 보여줬던 청사진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월스트리트나 일본, 중국의 투자자들이 북한 경제 개발에 관여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북한은 정체와 빈곤을 초래한 북한 노동당의 후진적인 경제 정책을 따를 필요도 없고, 글로벌 투자 은행과 그들이 펀딩한 컨설팅 회사에 의해 운영되는 소비 기반의 신자유주의 ‘개발’ 정책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여기에 대안이 존재한다. 북한이 더럽고 착취적인 ‘성장’을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지속 가능한 경제적 정치적 성공에 도달하는 제3의 길이 있다.

21세기의 커먼스 수용

북한을 위한 ‘제3의 길’은 바로 협력적인 경제와 사회이다. 이는 현재 부상하는 글로벌 커먼스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P2P시스템 및 커먼스 기반의 생산물(예를 들어 리눅스, 위키피디아)에 의해 교육·정치·제조 및 경제 분야에서 글로벌 커먼스가 가능해졌다. 본질적으로 북한은 처음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행해지던 것보다 더 포괄적인 방식으로 블록체인(blockchain)이나 홀로체인(holochain)과 같은 ‘검증 인터넷’을 채택할 수 있다.

사회주의 경제가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 이런한 경제 혁신이 공유되겠지만, 의사 결정 과정이 사회 전체에 분산되어 권위주의 정치를 타파할 것이며, 공동체가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북한이 국제 금융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국제화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P2P재단과 서울의 커먼스 파운데이션(Commons Foundation)은 착취 및 추출 시장 경제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인 공유 경제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했다.

남한을 비롯하여 세계의 동료들과 연결시키는 글로벌 P2P경제에 북한 주민들을 포함함으로써 북한은 자신의 주민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그리하여 국가나 월스트리트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커먼스 기반의 미시(微視) 생산을 통해 그들은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 북한은 값싼 노동력이나 값싼 광물 자원으로 착취당하는 대신, 자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작동되는 긍정적인 세계화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요구되는 근본적인 개념 전환의 예시를 전근대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 1910~45년의 일제 식민지 전략은 한때 한국 마을에서 번창했던 상호 지원 공동체를 파괴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그들의 땅과 전통적인 생산 수단을 빼앗은 일본의 ‘인클로저(enclosure)’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커먼스 파운데이션 창립자 최용관은 커먼스가 한국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향촌규약(향약)은 지역 사회에서 역할을 규정했지만 절대적인 소유권을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향촌규약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파괴되었습니다. 비인간적인 경쟁에서 비롯된 불평등의 심화와 그로 인한 부의 집중이 시작되었습니다.”

커먼스는 시민들에게 초점을 맞춘 공유 경제를 창출함으로써, 부유한 국가들이 건설적이고 비 착취적인 방법으로 덜 개발된 국가와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커먼스 경제는 외국인 투자나 노동 착취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의 대북 제재에 명시된 경제적 상호 작용의 표준 모델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희망의 문을 보여준다.

서방 언론이 북한을 기괴하고 고립되고 신비한 국가로 묘사하고 있지만, 최근 남한과의 협상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금융 기관이 지배하는 무자비한 세계화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북한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제안하는 혁신은 특정한 기술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방형 플랫폼으로서 북한이 전 세계의 지식·기술·전문 지식·금융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하여 과두정치에 빠지지 않고 경제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게 한다.

커먼스 101: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은 현대 기술이 거의 없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의 문화를 망가뜨린 상업주의나 소비자 물신주의도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의 출발점이 제로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제도 혁신을 위한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북한은 모든 건물에서 태양 에너지 발전을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 제조방식은 지역 단위에서 오픈소스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이 서비스는 중개인 없이 공유된다. 또한 지방 정부가 다른 국가의 다른 지방 정부와 교육 및 사회적 교류를 위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북한은 지역 경제 자치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암호화폐 및 크라우드펀딩을 사용하는 지역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크라우드펀딩의 형태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거나 전 세계 지지자들의 소액 투자를 허용할 수 있다.

북한은 진공청소기와 톱에서부터 세탁기와 태양열 발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공동체에 맡기는 공유 경제에 포함할 수 있다. 모든 시민의 공헌을 인정하는 서비스 교환(청소, 요리부터 아동과 노인돌봄 노동까지) 프로그램을 계획할 수 있다. 노인들을 젊은이들과, 농민들을 도시 거주민들과 연결하여 새로운 문화적, 경제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지역 농업과 미시 제조업에 뿌리를 둔 공유 경제의 커먼스를 도입하는 것은, 낭비와 경제적 격차를 촉진 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갈등의 주요 요인이기도 한, 오늘날 동아시아의 골칫거리인 지속 불가능한 과잉 생산을 줄이는 데 필수적이다.

북한은 양질의 고속도로와 자동차에 대한 의존성이 적다. 따라서 수송수단이 모두 전기로 작동하며 교통수단이 공유되는 도시, 자동차에 대한 필요성을 줄이는 도시를 계획하는 것이 가능하다.

북한의 개방은 건강한 P2P국제화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커먼스 101: 어떻게 할 것인가

남한은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P2P경제를 위한 강력한 전례를 확립했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참여 정치에 대한 엄청난 열의를 보여 왔고, 2016년 ‘촛불 혁명’은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나와 부패한 정치의 종식을 요구하였다.

서울시는 4년 전에 시 전역에서 공유경제를 위한 강력한 기반을 제공하는 지역 마을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또한 이 도시는 최근 서울 전역에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5,400만 달러(한화 약 6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북한은 단기 이익이 아닌 경제적, 기술적 변화의 윤리적 의미에 초점을 둔 P2P자문위원회가 필요하다. 남한도 이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신흥 경제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전 세계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북한에 6조 달러 규모의 석탄·우라늄·철·금, 아연 및 희토류 광물이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P2P자문위원회의 첫 번째 권고 사항 중 하나는 북한이 개발의 장기적인 환경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전문 지식을 보유할 때까지 지하자원 개발을 동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자원 개발, 교통 인프라 구축, P2P전문가 네트워크에 의한 도시 공간 개발에 대한 모든 제안을 검토하는 것은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개방의 첫 단계에서 과도한 부채를 지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 투자자의 단기 수익을 보장하는 것을 계획의 요소로 삼지 않는 정책을 수립하도록 위원회는 도울 수 있으며, 자본 도피의 위험이 없도록 분명히 할 수 있다. 소련 붕괴 이후 과두 정치가 부상했던 것과 북한의 상황이 유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공동체 은행을 만들고 참여적 자금 조달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선진국’ 산업화된 세계를 ‘따라잡아야’하는 신비하고 폐쇄적이며 불가역적인 냉전 시대의 잔재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북한은 블록체인 기술, 미시 제조업, 지속 가능한 에너지 인프라 및 국제화에 대한 P2P 접근 방식과 같은 새로운 시대, 동북아시아 및 세계를 선도하는 고무적인 실험이 될 수 있다.

화, 2018/10/3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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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원도 화실로 들어오는 길에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1년 중 시월이 맘 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은 나무다. 천 년을 살아온 이 은행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나는 이 나무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묵시로 노래 했다.

 

천년 나무 앞에서.

오전 내내 내린 비에도 안 떨어지네.

노랑 은행잎은 비바람에 지지도 않고

자기 때를 맞추어 지게 하려나 보다.

천년이 가도 의연한 은행나무여.

귀귀형용한 가지들마다 세월 비바람 사연들 다

받아 새기며 하늘 향해 두 팔 벌리니

나는 마침내 시월 상달에 대지신의 빛을 보았다.

노란빛으로 맞이하는 천신의례를 하노라.

여기 강원도 초입 문막의 신목은 따로 없구나.

반계리 천년 은행나무가 우주목이고 당산목 일세.

두 손 저절로 모아 모시나니

천년을 더 사시며 이 땅을 빛내소서.

자랑스런 새나라 새 땅 새사람 중원에서 빛나소서

칼럼_181102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 수령 1000년은 족히 되었다. 매년 10월 중순이면 잎이 노랗게 물들어 더욱 장관을 이룬다. 나무 높이 40미터, 둘레가 열명의 사람들이 팔을 벌려서야 겨우 잡힌다.

 천 년이 지나도 싱싱한 나무로 살아있는 반계리 은행나무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이 천 년을 넘게 살면 경이롭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천 년을 내려온 사실에 대해선 눈길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당장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시대에 살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우리겨레는 천년을 넘게 이어온 문화가 많다.  장맛 발효음식, 온돌, 옹기, 금관, 굿, 풍물, 탈춤, 상두소리, 국악, 고구려 붓그림, 민화, 단오굿, 마을신화, 농요….. .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나열은 그만하고 천년의 무형문화가 우리 겨레의 뿌리문화가 되어 오늘의 현대 한국대중문화까지 영향을 주는 사실만은 확인하고 싶다. 우리겨레의 뿌리문화를 한마디로 특징을 말할 순 없지만 대체로 영성이 깊고, 신명이 나고, 한의 정서가 깃들고, 정이 많은 모성적 문화란 점은 그 동안 한국학에서 누누이 밝혀온 것들이다. 이런 문화를 한국의 심층문화라고 부른다. 전통문화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풍진 속 초탈’로 다져져 왔다.

 

이 심층문화는 아직도 충분히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제도로 정착되지도 않고 헝클어진 채로 있다. 최근에 와서 민족문화 중흥이라는 헌법정신 차원에서 일부가 우대 보존되는 것 같지만 편의적인 발상으로 선별된다. 만일 정상적인 문화강국의 정책이 일관성 있게 펼쳐진다면 한국문화의 세계화니 한류니 민족문화 수립이니 하는 것들에 장기적 계획과 비젼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심층문화는 홀대 당하여 비주류문화로 갇혀 있다. 그나마 심층문화를 창조력으로 끌어 올리는 민간인들 덕분에 한류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한 복판에 예술인들과 전통장인들이 있다. 오늘은 한류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BTS(방탄 소년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BTS는 한류문화의 세계진출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꼽힌다. 유튜브 하루 조회수만도 4500만명이라는 신기록을 만들었고 미국 빌보드 챠트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그들의 공연을 보러 수천명의 미국민들(주로 소녀들)이 며칠씩 탠트를 치고 4회 연속 8만명을 관람을 기록하며 트유터 팔로워 16000, 유투브 조회수18000를 기록할 정도다. 그 의 노래는 이제 유럽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이건 일본 중국 노래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사회에서 이제는 서구유럽의 주류음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틀즈의 팝음악이 서구유럽의 음악문화를 바꾼 것과 맘먹는 성공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비 영미권 음악이, 가사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노래로 서방 주류 음악방송을 타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인가? 그 이유를 찬찬히 찾아보자.

 

  1. BTS는 주류 언론과 방송 루트를 타지 못했다. 한국3대 메이저 음반회사에 끼어야 겨우 세계로 진출하는 구조인데 돈도 없는 방탄소년단은 유튜브를 활용했다.
  2. 유튜브에 팬덤을 형성하였다. 이는 열성팬들 인데 주로 세계 곳곳의 소녀들이다. 유튜브 조회 하루 사이에 4500만명을 조사해 보니 세계 곳곳에 골고루 널리 퍼져 있다. 주류 방송 체널을 무시하고 SNS로 일대일 소통을 하는 미디어로 꾸준히 영향을 넓혀 마침내 세계적인 주류음악을 창조했다.
  3. 음악적으로는 사우스 아프리칸 비트 음악 위로, 국악 장단과 탈춤과 추임새가 곁들고 트랩 구룹의 랩을 최신 유행의 EDM 리듬 소스가 받쳐준다. 아프리카 댄스 구아라구아라와 한국 춤이 섞이고 사바나와 북청사자놀이 이미지, 서브 컬쳐 그래픽 효과와 유라시아 건축과 한국건축양식이 섞여 백 이미지로 작동한다.- 방탄소년단 앨범 소개 글에서.
  4. 이 열성팬은 아미(ARMY)라고 명명하고 방탄소년단 측이 직접 소통하고 관리하며 관심을 저버리지 않는다. 댓 글로 반응 해주고 콘서트장에 초대장도 보내주고 생일 축하해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팬들과 소통을 한다.
  5. 아미들은 스스로 고립을 벗어나 스스로 동아리들을 구성하고 끼리끼리 이벤트를 만들어 BTS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음악 행동에 참여하고 사회적 행동도 취한다. 이제는 세계시민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영상음악이 되었다.
  6. BTS는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가 춤과 영상과 어울려서 종합예술을 만든다. BTS 뒤에는 스텝의 협업이 돋보인다. 작사 작곡 영상제작 안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는 데 가사가 특히 십대 소녀 소년들의 갈망에 부응한다. 영상은 환상적이며 칼춤이라고 할 정도로 집단적 카르스마와 리비도로 넘쳐난다.
  7. 서구인들의 반응들을 보자. BTS영상을 보면서 “걸리쉬하다, 뱀파이어다, 이런 집단무용은 처음 본다, 하나의 잘 짜여진 축제 같다, 축제기념 송 부르는 거 같다. 여러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 전자목소리와 진짜목소리가 혼재해, 라이브로 보고 싶다, 흰 호랑이와 불과 물과 폭풍과 모래 등 신화적 상징들을 영상에 잘 사용 한다, 나를 슬프게 하는 뭐가 있다”  갇힌 공간 속에서 웅크림과 거절의 몸부림, 절망을 넘어 해방의 몸짓들이 춤이 되고 이미지로 흐른다. 물론 랩과 힙합과 아프리카 토속춤과 탈춤이 혼재되어 있다. BTS의 미학은 동서고금의 축제미학이 화려하게 섞여 있으나 자기들이 주장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축제로 젊은이들의 해방을 노래한다.             
  8. BTS는 “저는 여러분의 희망이고 여러분은 저의 희망입니다.” 팬들과 늘 일체감을 강조한다. 세계의 젊은 소녀들의 현실과 미래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고 든다. 젊은이들은 BTS를 보고 ‘나를 슬프게 하는 뭐가 있어서’ 그들 스스로 뭔가를 찾게 한다. 그것은 기성사회와 다른 심리적 전선을 치게 한다. 억압으로부터의 초월, 억압의 초월이다. 전자는 역사적 혁명이고 후자는 예술적 해방감이다. 미래에 ‘역사적 혁명’으로 진화 할지는 미지수 지만 ‘촛불혁명’이 필경 배경일 것이다.
  9. 동아시아3국의 다른 나라 청년들과 다르게 자유와 해방의 몸짓이 격렬하며 어딘지 슬픔과 격조(유럽 청년의 표현에 의하면 매너)가 느껴진다. 서구유럽 청년들이 유독 동양 삼국 중에서 한국의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1세기 불확실성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미래가 막막한 세계의 청년들에게 세계의 정치 경제 체제는 아무런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랑도 불안하고 더군다나 청년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지 매우 불안한 시대이다. 한국 사회만 삼포세대니 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불안한 미래는 세계사적 현상일 것이다. 여기에 젊은 예술가들이 빛을 밝힌 것이다. 세계청년들에게 심리적 위로가 되는 가사와 희망의 노래와 초월적 이미지로 K-pop의 새 경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미국 라이브 공연에서 아미들이 보여준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보여준 모습은 눈물이었다. 이 눈물의 의미는 후회와 성찰의 눈물로 보인다.

 주류사회에 방해 받지 않는, 무한대로 열려있는 SNS를 수단으로 해서 세계의 젊은이와 직접 소통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이 국가 경계를 너머 젊은 상상력으로 모이고 예술로 형상하여 가상적 현실을 이룬다. BTS의 가상현실- 유비코터스는 젊은이들의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청년들 스스로 만들어온 유비코터스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20년전 ‘붉은 악마’ 현상은 국가주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였으나, 이제는 발달된 SNS로 국경을 너머 세계의 젊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젊은 슬픔’을 극복하려는 힘이 결집하고 있다. 국가와 기성사회의 체제와 이념으로도 못 말리는 젊은이들의 신세계를 찾는 신성한 힘이 느껴진다.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현대신화를 창조하고 있었다.

 

 신화학을 집대성한 신화학의 거장 조셉 켐밸은 무수한 저서를 남겼다. 하루는 제자가 “선생님, 선생님은 신화 이야기를 책으로 많이 쓰셨는데, 신화란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요?” 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신화는 신성한 힘입니다.”

 

 이 답변을 주목한다. 신화학은 20세기 인문학을 다시 종합 정리하는 21세기 인문학으로 포스트인문학이다. 20세기 인문학이 주제별로 쪼개고 쪼개서 분할 시키고 나니 인간, 자연, 우주의 유기체적 관계를 망실한 인간 중심적 학문이 되었다. 그것도 엘리트들의 아카데미즘으로 박사들만 양산시키며 세상을 하나로 보는 관점을 잃은 이기적 인간중심주의를 만연시켰다. 모든 인문학을 융합한 신화학에 와서 이 이기적 인간중심주의가 깨지기 시작한다. 선사시대 신화를 독해해봐도 그렇고 오늘날에 와서도 신화는 살아 있다. ‘신화는 신성한 힘이다’라고 한 것은 신화가 단지 과거 옛 이야기만 아니고 지금 내 안에도 있는 이야기다. 신성한 이야기라 할 적에 이것은 문학적 표현이지만 신화, 의례, 예술, 행위로 들어나는 신성한 힘을 다 뜻한다.

 

조셉 켐밸은 이어서 말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행위야말로 신화다.” 오늘의 과학과 인문학으로 풀리지 않는 신성한 힘의 기적 같은 일은 얼마든지 우리 주변과 나에게도 있다. 그렇다면 종교가 말하는 기적과 영성은 무엇인가. 물론 이것들은 고대 신화시대부터 진화하며 각 지역의 큰 종교로 변화하며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종교가 신성한 힘을 독점하면 할수록 그 ‘신성한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자연과 인류의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신화적 현상을 종교가 철기시대 빅갓(Big God)시대를 지나면서 지배적 독점을 한 결과 배타적 도그마 현상을 갖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한 짝을 이루어 제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종교적 도그마는 해체되지 않는다. 아마 국가주의와 운명을 같이 할 때까지 ‘그들만의 종교’가 된다. 그래서 신화학적 관점으로 보면 오늘의 문화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들만의 신화를 갖고 사는 사람, 신화를 버린 유물주의자, 신화를 잊고 사는 세속주의자, 다시 신화를 갖는 자. 즉 재신화적 인간으로 분류한다. 그렇다. 재신화적 인간형은 배타적이고 유일신화적 종교적 도그마를 벗어나 내 안에 신성도 살리고 우주적 신성도 모시는 문화다원주의에서 산다.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탈국가주의적 평화시민의 문화다. 인류가 창조한 ‘유일한 믿음의 신은 없다, 자기들이 믿고 의지하는 다양한 신화(원형문화)가 있을 뿐이다. 인류는 다양한 신화를 창조했듯이 저마다 스스로 신화를 창조한다.

 

 미래의 인간형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BTS의 노래를 따라 부르듯이 “Love Yourself, Love Myself”에 기초하는 인간형 사회일 것이다. 20세기 산업사회에 개개인을 도구로 사용했다. 그런 인간형을 기르기 위해 경쟁력 교육을 시켰다. 자기 스스로 행복을 노래해도 모자랄 판에 자학과 열등의식에 젖게 하는 성적순위 교육, 산업 일꾼 교육, 애국교육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긍정하며 오직 나에게서 만이 희망이 있다. 희망은 나에게서 발견하고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 거기서 신화를 창조한다. 신화창조는 자기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자기 원형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진다. 신성한 힘을 벗겨버리고 거대한 신의 한낱 피조물이고 국가와 사회의 모범이 되는 시민이 되는 것을 젊은이들은 거부하기 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BTS가 국가를 너머 서구사회까지 진출해서 당당히 세계주류가 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세계 젊음의 반란은 과거처럼 이데올로기에 맹종하는 혁명의 전사가 아니라 ‘문화 아미’가 되어가는 것이고 자기들의 신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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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서울공원에서 열린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 환영문화제, 2018년 4월17일 유라시아의 절반을 달려온 강명구 마라토너를 환영하는 소년소녀들이 김봉준 작가와 타슈켄트 시민이 제작한 평화그림 깃발을 들고 환영하고 있다. 이곳 중앙아시아도 K-pop과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많다.

그렇다면 “종교가 한계를 들어 낸 오늘날 신화를 주력은 누구입니까?” 라는 물음에 조셉 켐밸은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예술가입니다.”

 왜 그런지는 이 글에서 상세히 말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예술가란 무엇인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만 언급한다면 20세기가 이기적 인간중심주의 인본주의 시대였다면21세기는 포스트모던이즘의 다원주의시대로 간다. 감성과 영성이 리드하는 시대가 분명하다. 나의 행복은 내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된 다는 시민적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원주의다. 세계의 젊은이들 중심으로 반란은 시작되었다. 그 젊은 마음들 속에 BTS가 잠시 꽂힌 것뿐이다. 이 거대한 세계청년의 문화반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며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사냥하면서 유비코터스를 형성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딘가 현실공간에서 청년의 창조도시라도 만들 것인가.

 20세기 기성사회가 스스로 개혁하는 힘은 상실한 것 같다. ‘거짓 사랑’에 염증을 느낀 21세기 소년소녀들이 문화반란으로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목도하는 세상까지 왔다. 그러나 이런 가상현실적 현상은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촛불혁명도 다르지 않다. 시민이 꿈꾸고 이루려는 유비코터스 같은 현장을 한겨울 맛본 것이고 도로 20세기 국가주의 제도 속으로 들어가며 적폐청산을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역사는 점진적 개혁’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이렇게 휩쓸고 한 세대를 걸친 문화전쟁을 세계는 열풍처럼 볼 것이다. 나는 기성세대에 별로 희망이 없다고 본다. 그렇게 되어 먹으며 살라왔고, 거기다 집을 짓고 시스템을 만들어 살아왔다. 청년의 반란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신화를 잃어 버렸다. 자기를 창조한 신성한 힘을 버린 채 굳어졌다.

젊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무조건 젊음만이 희망은 아니다. 저 천년의 은행나무 앞에서 비손으로 빌었다. 젊음이 보이지 않는 오랜 미래를 볼 적에, 예술에 그치지 않고 가상공간을 너머 현실공간에 초월적 상상이 창조도시로 뿌리를 내릴 적에 천년의 나무처럼 인류 미래의 희망의 싹이 나기를 빌었다. BTS 는 보여주고 있는 세계 청년문화는 집단무의식이 의식화하는 영성이 깊고, 일상을 축제화하는 신명이 나고, 한의 정서가 깃들어 있지만 슬픔을 이기고 나가는 매너 있는 젊음이 있고, 자유와 평화를 몸짓으로 외치며, 정이 많은 모성문화란 점들은 분명히 보인다. 신세계 청년문화의 비젼이 보인다.  BTS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풍진 속 초탈’한 세계인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금, 2018/11/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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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포용국가’를 핵심키워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며 포용국가를 역설했다.

칼럼_181111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포용국가를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로 제시한 대통령의 인식은 전적으로 타당

 

문 대통령은 “국민의 노력으로 우리는 ‘잘살자’는 꿈을 어느 정도 이뤘으나 ‘함께’라는 꿈은 아직 멀기만 하다”며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 격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는데 적확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문 대통령은 포용국가를 “사회안전망과 복지 안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 국민 단 한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라고 정의하면서, 포용국가를 ‘정부가 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 불평등이 그대로 불공정으로 이어졌다”며 “불평등과 불공정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해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포용국가’ 강조하며…”불평등 키우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포용국가 모델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길이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나라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적확하고, 큰 틀에서의 방향도 타당하다.

 

부동산 문제 해결없는 포용국가는 난망

 

다만 문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포용국가가 성공하려면,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가능하려면 부동산 문제 해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 조언이다.

 

대통령도 근래의 지지율 폭락이 무엇 때문인지 똑똑히 알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수직으로 추락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서울 집값 폭등이었다. 2015년에 346.2조원(GDP의 22.1%), 2016년 374.6조원(GDP의 22.9%)이 각각 발생한 천문학적 부동산 불로소득 규모가 말해 주듯 부동산 문제 해결 없이는 소득주도성장도, 혁신성장도, 공정경제도 불가능하다. 소수의 재벌과 지주들이 가만히 앉아서 사회구성원들이 피땀흘려 만든 부를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마당에 혁신과 공정이 가능할리 없으며, 임금 보다 주거 비용이 훨씬 가파르게 오르니 소득주도성장도 공염불이다.

 

부동산을 기준으로 신분이 정해지고 정해진 신분이 세습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니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평등 운운하는 슬로건은 문학적 수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만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다. 만시지탄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라도 부동산의 중요성에 눈을 뜨길 간절히 소망한다.

일, 2018/11/11-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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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세계경제 성장률의 30%를 떠받치던 중국이 경제의 속도조정과 구조개혁에 진입했다. 한국의 주요 언론과 전문가연(然) 떠도는 견해는 마치 중국이 미국과 무역마찰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분야에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Financial Times는 전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중국경제의 어려움은 미국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신용과잉에 따른 잘못된 투자와 과다한 부채 그리고 소비행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미국과 무역마찰과 적당한 경제성장률 저하는 질적인 구조개혁과 지속적 조건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상황에 더욱 절실한 이야기이다. 한국경제와 산업은 조속히 거대한 구조적 개혁과 체질개선을 이루어내야 한다. 능히 해내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다음 총선에서 사라질 야당의 비난과 사소한 성장률 수치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소신과 의지를 갖고 근본적인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시민을 위한 개혁정부인지 기득권의 관리정부인지,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칼럼_181110

중국의 성장률은 이번 해 3분기에 6.5%로 하락했다.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보인 가장 느린 성장률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충격 받을 일이 아니다. 성장률이 감소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성장률 자체로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가 튼튼해지고 있다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특히 전세계는 중국의 성장 속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버리고, 정말 중요한 점에 집중해야 한다. 즉 중국 경제 성장의 질과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장률의 감소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여파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매우 빈약하다. 오히려 중국의 수출액은 미화로 9월 기준 미화로 지난 달 대비하여 14.5% 성장했다. 동시에 중국은 같은 달 미국과의 무역에서 341억 달러의 흑자를 실현했다.

물론 미국과 무역에서의 마찰은 중국의 무역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징후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GDP 기준 성장률의 감소는 지난 2분기의 6.7%에서 6.5%로 감소한 정도이다.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경제라면 누구도 이러한 작은 차이를 유의미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중국이 제공한 통계가 0.2% 단위까지 정확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정말로 중국 정부의 발표 수치가 정확하다고 가정하면, 중국의 성장률은 아직까지는 매우 건강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 자신이 성장 목표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0.2%의 “하락”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성장 유형이 변화했냐는 것이다. 과거 중국 정부 당국은 신용을 큰 폭으로 팽창시킴으로써 성장 목표를 달성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지나친 투자로 이어졌다. 이는 당연히 과잉 생산시설이라는 낭비를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부채의 청산과정으로 연결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성장은 전혀 쓸모가 없다.

만약 오늘날 중국의 속도가 조절된 성장기조로 위에 언급한 쓸데없는 실수를 극복한 것이라면, 이는 문제가 아니라 매우 평가할만한 일이다. 성장률 감소 뒤에는 두 가지 유의미하고 유익한 변화가 있다.

하나는 자동차의 구매를 촉진하려고 억지로 적용한 뒤틀린 세금 감면을 줄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금융 시스템의 위험성을 감소시킨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세금 특혜를 줄인 것은, 다른 시장 요소들과 연동되어, 세계최대 자동차 시장의 매출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로 인해 위축된 소매시장의 실질수요 증가율이 6.4%로 줄어든 것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거대한 규모의 그림자 금융 분야를 통제하고 부채에 시달리는 지방 정부에 대한 대출을 억제하는 것으로, 금융 시스템의 위험 요소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반면에 지방 정부의 대출을 억제한 정책으로 인하여 기반 시설에 관한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고정 투자의 증가율이 2분기의 5.2%에서 3분기의 4.4%로 떨어진 것이다. 중국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해 걱정하면서, 최근 신용의 억제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내보이기도 했다.

지방 정부로 하여금 채권발행 시장에 좀 더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했으며,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은행의 예금준비 제도를 변경하여 이자율을 낮추고 회사들의 신용을 높였다.

중국 정부의 목적은 분명하다. 지난 8월 이루어진 중앙 위원회의는 “외부 정세가 변화했기 때문에” 여섯 개의 경제 분야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여기서 명시된 여섯 개의 분야는 고용, 금융, 무역, 외자, 투자와 시장기대심리 이다.

베이징 중앙은 2008년 금융 위기 때 했던 것처럼 신용이 과잉 분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탄력과 자신감을 합리적으로 유지하고 싶어한다. 여기서 어려운 점은 필요한 경제적 개혁과 조정 과정을 지속하면서도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혁적 조정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성장률의 사소한 변화는 잊어도 좋다.

성장률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월, 2018/11/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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