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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식 경제가 성공한 배경 – 영미의 사회주의자가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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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식 경제가 성공한 배경 – 영미의 사회주의자가 배울 점

익명 (미확인) | 금, 2018/09/21- 10:57

편집자 주: 최근 대서양을 마주한 미국과 영국의 정치판에 새로운 사회주의 그룹이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Financial Times 의 경제해설가인 Mr. Martin Sandbu 는 북유럽의 사회주의정책에 대한 매우 신선한 시선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양국의 사회주의 그룹에게 독선적이고 교조적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열어가도록 몇 가지 조언을 던지고 있다. 우선 북유럽국가들은 세계화에 친화적인 높은 개방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별 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환경을 국가단위의 강력한 사회안전망으로 유연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역동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부실한 실업복지 탓에 실업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현실에서 격렬한 노조의 저항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이 심히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 매우 소중한 이야기이다. 또한 북유럽이 복지라는 주제를 넘어 혁신과 성장 영역에서 가장 모범적 국가로 성장한 원동력은 노동시장의 강력한 사회연대임금(compressed wage), 즉 임금간 격차를 축소시킨 것이 혁신기제로 작동하여 산업구조의 전환과 신규 투자를 강력히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경제의 현재적 어려움을 모두 최저임금 탓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들이 반드시 귀를 기울어야 할 대목이다. 다른백년은 ‘최저임금의 적정인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신정책 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이다.


 

때로는 가장 예측 가능한 일이 가장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는 ‘사회주의’ 를 보라. 이들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하고 있다.

10 여 년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주의의 실패한 민낯을 드러냈고, 덕분에 좌파 정치인들에게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존 좌파 정당 중 대다수가 기득권과 타협하면서 정치세력을 키우지 못하고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재기가 아니라 후퇴를 하는 듯 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좌파 정치인들은 1990년대 소위 “제3의 길”을 거부한 이들이다.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최근 당원수가 급증한 노동당의 당수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2016년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사회주의운동이 경선에서 인기를 끌며,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위협을 느끼며 기부금 모금을 위해 뛰도록 만들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정가에서는 샌더스와 뜻을 같이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그리고 라시다-틀라입(Rashida Tlaib) 등이 민주당의 당선이 확실한 주요 지역구 연방의회의 경선에서 승리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젊은 미국인의 약 절반 가량이 “자본주의”보다 새로이 등장하는 “사회주의”를 선호한다.

그 결과 이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는 보편적 의료서비스나 근로조건의 개선과 같은 정책이 작동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표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코리 로빈(Corey Robin)은 대립적 정치이론으로 “사회주의”를 옹호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자유를 박탈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노동자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경쟁 내지는 양립이 불가능한 제도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개념적 차이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냉전시대라면 이런 생각이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적 이분법이 가능했을 때에도 북유럽은 분명 자본주의의 경계 안에 속해 있었다. 그저 “자본주의”에 반대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찬성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북유럽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 동안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구성요소, 즉 생산수단의 국유와 사유, 공적 규제와 시장 경쟁, 세금에 의한 재분배와 고용주와 노동자가 결정하는 임금 등을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혼합경제-mixed economy”라는 말로 표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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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정책이 바로 보편적 복지라고 불리는 평등한 복지 정책이다.

만약 오늘의 사회주의자들이 이 혼합체에서 자본주의가 하는 역할을 무시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를 따를 수조차 없게 된다. “사회주의자” 라고 부르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은 북유럽에서 다음의 세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북유럽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포용한다. 이들의 혼합경제 모델은 국제무역 노출도가 높은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시민들은 무역이 부를 창출한다는 것과, 그러나 급작스러운 글로벌 변동성의 위험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이해했고, 그 결과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보험적 요소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즉 “사회주의”를 표방하려고 한다면, 경제적 개방성만은 확실한 사회주의적 요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좌파는 오히려 무역 자체를 반대해 자신들과 북유럽 모델을 연계하려는 노력을 무력화한다.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들고나온 “Lexit”, 즉 유럽 국가 간 원활한 무역을 가능케하는 규칙을 벗어나자는 유혹 역시 마찬가지다.

둘째, 북유럽의 경제평등주의는 개괄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상세내용까지 알려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세내용이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고도로 압축된 (조세 및 이전지출 전) 시장임금의 분배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달리, 부와 자본소득의 분배, 정책을 통한 사회임금 이전 등은 다른 국가들도 시행하는 일반적 내용이다. 북유럽의 성공은 재분배의 극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재분배적 권한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는 산업영역의 효율적 경제를 구축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는 세번째 교훈과 맞닿아 있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대부분 국가들처럼 직접적 개입이 아니라, 특별히 노동시장 내 사회조직 간의 균형잡힌 상호작용에서 기인한다. 사회주의 옹호자들은 북유럽 경제 내 노동조합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이들은 경영주들의 합리적 구성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세상을 그저 노동자 대 자본가로만 보면 경영주들이 더 합리적으로 구성될수록 노동자의 권리에는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합리적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개별 기업에게 부담인 듯 보이는 사실(예건데 노동조합과 연대임금)이 경영주에게 오히려 전체 비즈니스에 이득을 가져오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압축된 임금구조(평균적 사회연대임금)가 생산성을 증진시켜왔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분야에 노동력을 비생산적으로 사용하기엔 대가가 너무 크고, 차라리 숙련된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면 기업은 혁신적 산업 분야에 투자를 가속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같은 논리로써 능숙한 기업 경영인은 기술진보로 인한 혼란을 겪는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간의 적응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영미에서 이야기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라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며, 북유럽인들은 세계 1,2차 대전 사이에 형성한 자유/중도주의의 위대한 통찰, 즉 지혜로운 정부의 개입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더욱 좋은 경제 시스템을 만든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다. 기득권과 타협적인 사회주의 중도파는 금융위기 전과 후의 과정에서 나쁜 평판을 얻었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이 시작하는 사회주의자가 결벽증 때문에 북유럽의 유연하고 역동적인 사회주의를 거부한다면 그들의 목표 역시 좌절되고 말 것이다.

 

Financial Times

마틴 샌드부(Martin Sandbu)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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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다른백년에 자유롭게 수시로 기고하시는 김광수 박사의 글로 다른백년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만절필동(萬折必東)과 그림책 <사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의는 지켜지고, 정도(政道)를 넘어서는 감동이 이번 선거에서 꼭 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도 예외 없이 그런 대의존중과 감동은 없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이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정치교본에 따른 선거의미보다는, 정파의 입장과 각 정당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현실의 문제로 더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례위성정당문제이다. 애초 선거법 개정을 통해 얻고자 했던 등가성의 원칙과 소수정당에 대한 배려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다수당이 되기 위한 이전투구만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선거를 정치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이기고지는 게임의 문제’, ‘이익의 문제’, ‘프레임의 개념’으로 이해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고, 이익이 걸려있다 보니 진영논리가 만들어져 네편·내편으로 나눠져 피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고, 더해서 우월적 프레임으로 도그마(dogma)하여 승자·패자를 분명히 하려하다보니 승패만 남게 되어서 그렇다. 그렇게 상대방을 죽여야만 내가 사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게 잔인하다.

연동되어져 진보와 보수를 떠나 과장된 언술과 정치적 선전선동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의도와 속임수는 다반사이고, 주의주장은 포퓰리즘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정도와 비(非)정도는 구분되지 않아 넘지 말아야할 선도 없다. 오직 있다면 유권자와 후보자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직립보행 진화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선거는 현실적인 문제이고, 권력을 향한 무한질주이다.

이를 위해 모든 정치세력들은 프레임 전쟁을 펼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는 세 개의 프레임이 작동한다.

정권심판 VS. 야당심판 VS. 적폐세력 부활저지다.

전자는 미00이, 중간 것은 민00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 것은 시민사회진영의 프레임이다.

과연 어느 프레임이 더 많은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게 되고, 승리하게 될까?

당연히 긴 시간과 역사적 관점, 운동적 대의측면에서는 적폐세력 부활저지가 보다 많은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내어야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 할뿐이고, 그 중심에 우리가(시민사회진영과 진보적 대중정당이) 왜 이번 선거를 전략적 사고로 접근해야하는지,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이 야당심판세력과 적폐세력 부활저지세력 간의 연대여야 한다.

이유는 지금의 현 정부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촛불시민항쟁으로 만들어진 정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당연히 적폐세력을 축출한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 선거는 적폐세력들 간의 부활노림이 최고치로 도달하고 있어 이들 세력의 부활을 막는 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당연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되고 있다.

해서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촛불시민항쟁 버전-2(version-2)이다. 그러니 각 정당들이 제아무리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심판이니, 여당심판이니, 대통령 국정전반에 대한 평가이니 하면서 떠들어 댄다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의미와 본질이 변할 수는 없고,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가 부정될 수는 없다.

똑 같은 적용으로 제 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후보전술의미가 커다하더라도 적폐세력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고, 연동하여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당선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다.(당선시키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오역하지 않았으면 한다.) 철저하게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복무하는 독자후보전술이어야 하고, 당선전략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준점과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이다. 여러 기준점을 상정할 수는 있겠지만, 함의되고 합의되는 지점은 ①친일세력 ②분단세력 ③보수수구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에 대한 입장정리문제이다. 여러 주장들이 난무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정당의 성격이 보수정당이라는 사실,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 정당이 보수수구세력은 아니라는 점, 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대해야 되는지가 분명해졌다.

다름아닌,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 있다면 이 당과는 연대의 관점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설명은 이렇다. 촛불시민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독자적 힘으로 적폐세력의 부활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위 ‘둘째’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려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촛불민의를 100% 반영해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부와 집권여당 민00에 의해 촛불민의가 일부 반영된 개혁입법이 그것조차도 적폐세력의 저항으로 좌절되고 있는 것도 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민00과도 연대해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과반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해야만 하는 당위가 충분히 발생한다.

그렇게 개혁입법을 완성시켜 낼 수 있는 동력이 이번 선거에서 마련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번 선거는 반드시 민00을 포함한 비(非)적폐세력들이 과반이상의 의원확보를 해내어야만 한다.

셋째, ‘첫째’와 ‘둘째’를 함의하는 선거전술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적폐세력 후보를 제외한 모든 당선 가능한 후보에 표를 집중해주고, 정당투표는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선택이 그 정답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다음과 같다.

각 정당들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민00은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서 자당 중심으로 과반이상을 목표로 하고, 반대로 진보적 대중정당은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는 동의하나 자당후보의 당선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나름 전략지구를 중심으로 후보를 내려할 것이다. 후보가 그렇게 대립한다.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위에서 확인한대로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이번 선거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조직적 강화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지역구에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없을 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민00 후보를 찍으면 되겠지만, 문제는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있을 때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셈법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 아니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 구축이라는 명분, 혹은 당원으로서 자당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의 의무를 다할 것이냐에 따라 그 선택지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했을 때 단일화가 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최종 투표선택을 해야 한다.

▪기준1: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 선거의 최고 당면목표는 누가 뭐래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이다, 그래서 이 관점에서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당위이다. 제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와 독자후보전술의 의의가 커다하더라도 이 선거의 의미를 뛰어넘어 설 수는 없다.

해서 감정적으로야 어느 교수의 심정대로 ‘민주당만 빼고’로 투표하고 싶지만,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집권당인 민00이 백번이고 비판받고, 또 역사적으로도 심판받아야 하겠지만, 위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에서 확인받듯이 민00이 적폐세력이 아님은 분명하고, 또 현실적인 측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민00만큼 촛불민심을 제대로 수용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상황은 이 당을 포함한 당선 가능한 모든 비(非)적폐세력의 후보들에게 전략적 투표행위를 해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선거당면목표에 반드시 부합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적폐세력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기준2: 위 ‘기준1’과 같은 기준으로 투표했다하더라도 투표할 기회는 한 더 번 남아있다. 다름 아닌, 정당투표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된 진보의 미래와 평화, 통일을 위한 여정은 계속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마련이 결코 포기되어져서는 안 된다. 해서 비례에 있어서만큼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취지에도 맞고, 또 민00으로는 한국사회의 근본개혁과 통일지향이 불가능함으로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들에 대한 전략적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한다.(여기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라고 복수화한 것은 유권자 각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지지정당 선호도 등에 따라 진보적 대중정당을 달리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

이렇게 이번 4.15 총선은 철저하게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으로 바라봐야 하고, 그러려면 비록 차선(혹은, 차차선)이라도 민00과 함께 적폐세력들의 발호를 막아내어야만 한다. 이것이 민00이 갖는 한계는 명백하지만, 민00을 버리고 갈 수 없는 명백한 이유이다.

그뿐만 아니다. 굳이 이번 선거가 아니더라도 민00과는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온전한 주권국가이고, 분단이 되어있지 않다면 시민사회진영은 위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민들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민00과 후보·정책연대 등을 그 핵심으로 하는 선거연대·정책연대 등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유럽등과 같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직접 창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를 지지하여 일반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숙명은 위와 같은 일반론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사회진영의 정치개입 방식과는 좀 다른 필연을 낳을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국가보안법 등이 존재하여 온전한 정치적 활동을 보장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법·제도의 측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운동방식이 정당정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전선적 조직운동이라는 그 측면 때문이다.

바로 위 2가지가 민00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보수수구이자 적폐세력의 본산인 미00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진보적 대중정당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적 책무라 할 수 있는 분단극복(=평화통일) 실현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이 존재하는 엄연한 상황하에서는 분단을 넘어서려는 그 어떤 정상적인 제도권 정치활동마저도 쉽지 않고, 그렇게 쉽지 않은 만큼 민00을 정치파트너 우군으로 함께 해야 할 전선적 원리가 발생한다.

해서 대한민국 정치는 광의적 개념으로 전선운동으로서의 정당운동도 함의하고, 좁은 의미로서의 제도권 정당운동으로서의 정치운동도 공존하는 그런 개념이 된다.

대한민국 정치의 숙명이 그렇게 규정되어진다.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강화를 주선으로 틀어쥐면서도 비(非)적폐세력인 민00과는 전략적 연대를 끊임없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운동적 요구가 그렇게 발생한다.

그래서 이번 4. 15선거는 현 정국하에서 민00과 함께 과반이상의 국회의원 획득과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원래의 조직적 목적이 충족되는 그런 수확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향후에는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분단극복을 위한 일상적 정치활동이 가능하게 되고, 촛불민의를 보다 일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확장된 정치 공간과 이후 선거에서는 보다 유리한 환경 속에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독자후보전술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이번 선거는 그런 선거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은 코르나19와 적폐세력들의 의도된 ‘낮은 투표참여전략’으로 조직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넘어설 묘책이 필요하다.

▪우선은 이 글 전반에 걸쳐 관통하고 있는 맥락,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을 떠나 크게 대의적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부터 투표허무주의나 무용론에서 빠져나와 차선(혹은, 차차선)이라하더라도 투표하고, 선거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을 반드시 투표장으로 안내하자.

구호는 다음과 같다.

‘4.15투표를 통해 적폐세력 청산하자!!!’,

‘촛불시민항쟁은 4.15투표를 통해 완성된다!!!’,

‘4.15선거투표 없는 적폐청산 없다. 투표로 적폐세력 심판하자!!!’

참여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그렇게 촛불시민항쟁을 계속 이어나가자.

 

민플러스, 2020년 3월 13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토, 2020/03/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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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 2020/03/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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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하였고, 9월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였다. 이 한 달 동안 한국 언론은 조국 법무부장관후보에 대한 사상 유래가 없는 치열한 검증보도를 하면서 이번 사건의 핵심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검찰도 국회인사 청문회가 끝나던 그 시각에 조국 신임장관의 부인을 기소함으로써 또 다른 핵심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정치권과 언론, 검찰이 플레이어가 되어서 만든 조국 이벤트는 광화문과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주최 측 추산 2백만 혹은 3백만의 시민을 끌어내는 마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을 광장으로 호출한 블록버스터급 흥행성공에도 이벤트의 주역인 언론과 검찰이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검찰은 연일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 수사와 기소독점, 불공정한 검찰권 집행 등의 이슈로 궁지에 몰리고 있고, 언론 역시 부실한 사실검증과 편향된 보도, 의혹 부풀리기 등의 잘못된 보도관행으로 시민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조국장관은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론 검증 보도량 감당할 수 없을 정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네이버에서 후보자 신분이던 한 달 동안 관련기사를 검색한 결과 적게는 13만 건, 많게는 80만 건이 검색되었다고 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장관임명 직후인 9월 10~24일의 15일 동안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된 단독기사는 7개 종합일간지 99건, 7개 주요방송국 67건으로 총 16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단독보도 중 검찰 및 법조계를 출처로 하는 보도가 81건에 달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이렇게 많은 기사와 단독보도들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조국장관을 둘러싼 사건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정치권과 언론, 검찰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구체회되고 있다. 시민들은 지난 10년간 진행된 서울대 입시의 실태도 알게 됐고, SCI논문의 저자 적격성 기준도 알게 됐다. 동양대에서 조국장관의 딸이 어떤 봉사를 했고, 장관의 부인이 해명 과정에서 손을 떨었다는 사실도 안다. 심지어 장관 딸의 중2 때 일기장의 압수수색 과정과 압수수색에서 검찰이 먹은 식사메뉴까지 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의 의미와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추측한다. 이건 시민들뿐만 아니라 정작 보도를 하는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는 ‘추측 된다’ ‘알려졌다’ ‘의혹이 있다’로 도배되어 있다.

언론 보도는 경우에 따라 ‘사실(fact)’이 ‘진실(truth)’을 감추는 경우가 생긴다. 격투기선수 출신인 K씨와 평범한 일반인 L씨의 싸움을 상상해보자. K씨와 L씨는 우연히 만난 술자리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주먹다짐으로 벌였다. 당연히 격투기 선수 출신인 K씨가 L씨를 늘씬하게 두들겼는데, 이 과정에서 L씨도 저항하면서 K씨를 몇 대 때렸다. 다음날 기사에 L씨가 격투기 선수출신 K씨를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면 어떨까? L씨가 K씨를 때린 건 팩트다. 그렇지만 사건의 실체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실보도가 아니며, 이런 뉴스가 바로 가짜뉴스다.

바람직한 보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있어야 한다. 진실보도는 사실성, 완전성, 균형성, 투명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진실보도는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사건을 분절화 파편화해서 퍼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최대한 모두 그려야 한다. 또한 진실보도는 이해당사자 모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담아야 하고, 취재원이나 정보 소스에 대해서 가능한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기자들은 조국장관에 대한 보도가 과연 이런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하고, 독자들 역시 이런 기준을 갖고서 보도를 접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조국장관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보도에 남발되고 있는 ‘의혹이 있다’, ‘전해졌다’, ‘짐작된다’, ‘예상된다’, ‘추정된다’ 등의 추상적 서술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보도가 가진 사실성은 끊임없는 사실확인, 팩트검증에 의해서 충족될 수 있다. 80만 건에 이르는 보도가 얼마나 사실확인, 팩트검증을 거쳐 작성되었는지 알 도리는 없으나, 보도된 내용 자체만 보아도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보도가 얼마나 보도의 완전성을 추구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조국장관 일가에 대한 수십만 건에 가까운 보도들을 통해 조국장관 부인의 손에 떨렸는지, 압수수색이 몇 시간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검찰이 짜장면을 먹었는지 한식을 먹었는지를 아는 것이 사건의 진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고, 이런 것이 단독이나 특종이라고 올리는 언론사들이 정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파편화되고, 분절된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들이 혹시 본 사건의 진실을 덮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마치 백대 때린 가해자를 폭행당한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부리려는 의도가 없기를 바랄뿐이다.

현재 조국장관 관련 보도에서 불편한 점은 균형성에도 있다. 우리는 검찰이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검찰의 행위를 공적인 행위 내지 중립적인 행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검찰이 기소를 하면 당연히 죄가 있으니까 국가가 나섰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해서 검찰은 소송의 당사자이다. 검찰이 사건 심판의 주체라면 굳이 재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검찰이 다 판결을 내리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언론 보도는 당연히 검찰의 주장과 동등하게 피의자에게 반론권을 제공하는 것이 정당하다. 사실 이런 검찰의존의 관행을 깨고 법원내지 공판 중심의 보도관행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계 내에서도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은 검찰의존적인 취재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몰고온 논두렁 시계보도의 참극을 겪고도 여전히 언론은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는 최대한 투명해야 한다. 보도의 내용은 언제나 검증을 통한 사실확인의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 사실에 대한 검증과 재확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취재원이 투명해야 한다. ‘관계자에 의하면’이 남발되는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다. 최소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이 드러나야 하고, 취재과정에서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모든 지식과 정보가 검증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룰을 가진 세상을 살고 있다. 아무리 확실하고 논리적인 지식 내지 정보라도 타인의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지식이나 정보로서 인정되어서 안 된다.

기자가 진실보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무한한 팩트 검증도 불가능하고, 사건 전체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해당사자들의 사이에서 균형잡힌 보도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계적 중립은 가능할지 모르나 균형의 추는 항상 모호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취재원을 밝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취재원이 공개에 동의를 해야 하고, 취재원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자에게 진실보도는 시지푸스의 바위와 같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조국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80만 건의 보도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80만 건의 보도가 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더 나아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보루로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많은 시민들이 왜 기성언론을 불신하고 언론개혁을 이야기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휘두른 검이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되었듯이, 이제 검찰을 개혁하고 나면 그 다음 우리사회의 특권과 반칙을 뿌리 뽑기 위해 개혁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언론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정완규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원

화, 2019/10/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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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칼럼_181004(2)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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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목, 2018/10/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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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침을 열며

성장의 저주

 

사제는 말했다. “이 병은 하느님이 우리의 죄를 벌 주려 보내신 것이요.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고 있소.” 신자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살고 싶다면 교회로 가서 회개하고 기도하시오.” 근엄하게 사제가 말하면서 킹스브리지 마을의 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 모두를 교회로 오라하고 그곳을 떠나지 말고 밤새 기도하라고 설교한다. 이것은 영국의 유명한 역사소설가 켄 폴릿(Ken Follett)이 ‘끝없는 세상’이란 책에서 중세시절 흑사병에 시달린 한 마을의 풍경을 묘사한 일부이다.

 

일명 흑사병이라고 불린 페스트는 14세기 중엽 유라시아를 휩쓴 대유행병이었다. 흑해 인근의 카파(Caffa)라는 도시에 죽은 몽골 병사들의 시체에서 묻어난 균들이 이탈리아 상인들을 통해 배로 베니스에 도착한 때가 1348년이었고 계속 북진하여 마침내 러시아까지 번진 것은 3년 뒤인 1351년이었다. 그 과정에서 7,500만명, 추정하기에 따라서는 최대 2억명의 인구가 목숨을 잃었단다. 유럽인구의 60%가 감소하였다는 이야기다. 결국 영국에선 그 페스트가 장원경제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자본주의를 낳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인구박멸 수준에 이르는 대재앙이 왔을까? 38도 이상의 고열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몸에 검은 반점이 생기다가 삼사일만에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이 끔찍한 새로운 질병은 당시의 유럽인들에겐 어마어마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 리 없기에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집시에게 원인을 돌리며 박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폴릿이 묘사한 것처럼, 대다수는 신의 분노라고 믿었기에 마을의 회당에 모두 모여 열렬히 기도하며 회개하게 되었다. 환자 역시 그곳에서 함께 기도한 것은 물론이다. 더욱 더 절실히. 환자의 격리가 아닌, 환자와의 동거라는 결과가 되고만 이 기막힌 대응법이 결국 대재앙의 단초 중 하나였던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의 저주’가 되고 말았다.

 

지금 이 시각 한국에 상륙한 메르스라는 이 전염병도 우리에겐 매우 생소하고 잘 파악되지 않은 질병이다. 어느덧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자랑하는 한국이 왜 이리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일까?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해당 병원에 미칠 손해를 생각하여’ 병원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는 정부의 초기 대응. 결국 경제도 잃고 병원도 잃고 무엇보다 소중한 이들과 평범한 일상을 나누었을 이십여명의 소중한 생명까지 잃었다.

 

한국에는 그 어떤 나라보다 성장의 DNA가 강하게 존재한다. 1990년대 말 맞이한 외환위기 전까지 전세계를 매료시킨 고도성장의 기억과 그 성과가 있었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 압축성장의 신화가 이 시점 우리에겐 ‘성장 신화의 역설’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성장 자체가 결코 악은 아니다. 중세 페스트로 분노를 표시했다고 믿었던 그 신이 결코 악이 될 수 없듯이. 그러나 맹목적인 신앙이 결국 신의 저주를 불러일으켰듯, 맹목적인 성장에의 집착은 ‘성장의 저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메르스로 인해 참담한 상황에 와있는 지금처럼.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가 중요하다. 경제성장률로만 표시되는 성장, 그 몫이 일부에게만 향유되는 성장,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뭉개고 그 위에 올라앉은 성장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성장의 모습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장이 아니라 ‘더 많은 인간존엄’이라는 가치이다. 이 시각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우리 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에서 왠지 우리에게 성장의 저주가 되풀이될 것이란 불길함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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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 본 칼럼은 2015년 6월 21일 한국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클릭! 원문보러가기)

일, 2015/06/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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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에 앞서: 한심한 통일부의 대북인식을 질타하며

필자는 이미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생략을 예측했고, 그래서 <통일뉴스>에 기고할 목적으로 하루 전날인 2020년 12월 31일에 원고를 미리 써놨고, 이걸 ‘예측: 2021년 북 신년사를 대체한 제8차 당 대회’라는 제목의 분석글을 기고한 바 있다.(<통일뉴스>, 2021.1.1.)

아니나 다를까 북은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위대한 인민 받드는 충심 변함없을 것 다시금 맹세”라는 내용을 중핵으로 하는 ‘전체 인민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형식의 새해인사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필서한 <출처: 로동신문>

이를 두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남측 사회에서 일어났다. 다름아닌, 통일부가 2021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새해를 맞아 주민들에게 공개한 친필서한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 집권 2012년 이후 전 인민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친필 서한 형태의 ‘신년사'”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첫 사례라면서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친필 서한도 ‘신년사’라고 판단한다, 했다.

참으로 수준 낮은, 아니 한심한 통일부이다. ‘새해인사’와 ‘신년사’가 어떻게 갔단 말인가?

말 그대로 새해인사는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새해를 맞아 보내는 덕담인사이다. 단지, 그 덕담의 내용과 수위가 우리 자본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수용하기 좀 어려운 정치적 행위의 연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해할 수는 있어도, 새해인사는 새해인사 일 수 밖에 없다. 반면, 신년사는 새해인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 최고지도자의 한 해 국정운영 철학과 국정운영 목표, 방식 등에 대한 계획을 당과 인민에 총화발표하고, 이를 당이 중심되어 군중적으로 조직동원하기 위한, 즉 한 해 북이 나아가가야 할 좌표방향과 목표에 대해 북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결의하는 내용과 형식으로 집중된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바로 그 행위를 김정은 위원장이 생략하고, 시기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제8차 당 대회(2021.1.5.개막)를 통해 대체한 것이다. 그러니 새해인사와 신년사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차원문제이다.

어쨌든 그래놓고 기억을 되돌려보자. 북은 이미 지난해 8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열에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에 개최할 것을 예고했고, 또 12월 29일에는 제7기 제 22차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 초순에 개최할 것을 최종 결정함에 따라 정권수립 이후 아주 이례적인 예외 없이는 곧잘 지속되어왔던 최고지도자의 신년사가 생략될 것임을 미리 예고했었다.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북도 여느 사회주의국가처럼 당 우위의 국가체제이다. 그러면서도 수령의 절대권한이 보장되는 수령중심의 체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 두 의미가 교집합되면 1월 초에 개최될 당 대회, 그것도 당의 최고의사결정 단위인 당 대회에서 그 조직의 최고지도자가, 그것도 ‘유일’최고지도자가 자신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용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체제원리적으로도 맞다.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가 5일 오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 <출처: 노동신문>

 

2.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에 대한 간략한 고찰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이 어디 있느냐는 <조선중통신>이 보도한 1월 6일 자 기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통신은 그 소집목적을 공개했는데, 이로부터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어떤 목적을 갖고 개최하려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가 도래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엄중히 총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 실제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8번째로 되는 당대회를 소집했다.”

분석하면 첫째, ‘새로운 고조기’는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전진하는 북의 향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름하여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의 ver.2이다.

둘째, ‘장엄한 격변기’는 미국과의 판가리싸움에서 결정적 승리국면을 반드시 열어제끼겠다는 의미가 있다.

셋째,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에서 확인받는 것은 자강력제일주의와 정면돌파전에 기초한 자체의 힘, 주체역량강화에 기반 한 전략노선이 채택된다는 의미를 함의한다.

넷째, ‘실질적인 개선대책’에서 확인받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와 질서를 ‘개건’과 ‘개선’을 통해 보다 우리 식(주체)사회주의제도를 더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했고, 그 모습은 수령-당-대중의 혼연일체에 있다.(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 구현과 당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무장된 혁명적 당으로 질적 전환을 내 오는 것, 그리고 수령의 절대성이 더 공고화 되는 방향으로의 정립이다.)

 

3. 총론적 분석: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중심으로

내용적으로는 대략 4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북 언론보도가 이를 증거 해주는데 △첫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둘째,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셋째, 조선로동당규약개정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의제가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부분, 그렇게 4가지 의제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후 북의 국정운영 방향과 좌표 관련해 핵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A4용지 20여장 분량에 해당되는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이하,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로 약칭, 정식 보고명칭은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을 새 승리에로 인도하는 위대한 투쟁강령’이다.)이다. 12일 폐막 때 채택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 부분도 매우 중요한 분석 자료이다.

해서 이 두 부분을 and적으로 조합하면 지난 제7차 당 대회 분석이 어떻게 심층분석 총화됐고, 향후 5년간 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총적과제가 집대성된다. 5년간의 국정운영 방침결정서가 그렇게 수립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당 대회도 일반적으로 당 대회가 개최되면 최종적으로는 결정서 채택을 끝으로 폐막되는 그런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 대회 기간이 좀 길어지면서(역대 두 번째로 긴 대회, 1/5 ~ 1/12) 한때는 결정서 채택없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 예외를 북은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기간 사업총화보고를 했는데도, 그에 대한 결정서 채택이 없다?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북 체제의 특성 간과이다. 결과, 이번 제8차 당 대회도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채택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는 북의 생각과 의도, 국정운영방향을 알 수 있다.

틀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

제2부: 제8차 당 대회 대내관계 분석: 정면돌파전과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에 대한 이해

제3부: 제8차 당 대회 대외관계 분석: 북미, 남북관계 전망을 중심으로

이 중 이 글은 우선 그 첫 번째,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위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시작해 보자. 총론분석 그 첫째, 북은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갖는 의미에 자신들의 현 단계 혁명발전단계 성격규정을 명확히 했다. 어떻게? 혁명의 ‘정착기(김일성시대)’를 거쳐 ‘과도기(김정일시대)’가 끝나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 단계로 진입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 당과 혁명발전에서 중대한 정치적 사변(강조, 필자)으로 되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는”에서 확인받듯이 이번 제8차 당 대회 개최를 ’정치적 사변‘으로 성격 규정해 북의 사회주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려 내었다.

구체적 뒷받침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는 조성된 대내외형세하에서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주객관적 요인들과 심중한 결함들을 인정하고 당과 국가사업전반을 혁신하며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의 다음단계로 이행시키는데서(강조, 필자) 나서는 명확한 투쟁과업과 방도들을 밝힌 위대한 실천강령이다.” 이어 “전투적 기치이며 주체위업의 력사적뿌리와 오늘, 미래를 굳건히 이어주는 혁명적 문헌으로 된다.”고 성격 규정한데서도 그 의미가 찾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제8차 당 대회에서 보고된 사업총화가 1월 12일 채택된 결정서(정식명칭: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에서는 자신들의 혁명단계를 “혁명과 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열여놓기 위한(강조, 필자)”단계로 성격 규정했다. 그렇게 북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되었음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정립해내었다.

총론분석 그 둘째,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물적·정치사상적 토대가 확고히 구축되었음을 선언하였고, 이를 5개년 국가발전계획 목표완성과 연동시켜 내었다. 그 대강으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강조, 필자)”임을 분명히 했다. 방침으로는 “현 단계에서 우리 당의 경제전략은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사이의 유기적련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우리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영향에도 흔들림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강조, 필자)”원리의 천명이다.

이미 이 기본원리는 제7차 사업총화보고에서 확인된다. “현 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진로를 명시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의 진수는 우리자체의 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여(강조, 필자) 현존하는 위협과 도전들을 과감히 돌파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을 일으키며”로 정의 된데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번 결정서를 통해서 “사회주의건설의 주체적 힘, 내적동력을 비상히 증대시켜(강조, 필자)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 나가자는 것이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입니다.(강조, 필자)”로 정식화 되었다.

▶총론분석 그 셋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쳐 확립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또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가 북의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되었다는 점이다. 달리는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이 확정되어졌음과 같다. 이는 통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스타일을 ‘선군정치’로 규정했다면,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치고, 규약 개정전문이 발표되지 않아 그 내용 속속들이는 알 수 없으나, 일부 공개된 당 규약 서문확정을 통해 드러난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은 분명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이다.

당 규약 서문 표현은 이렇다. “우리 국가의 지위와 국력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승리에서 더 큰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강조, 필자)하였다.” 그 근본정신에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기치가 있고, 이를 김정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정세가 아무리 엄혹하고 난관이 중첩되어도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철저히 구현하면 불리한 모든 요인들을 능히 극복하고, 방대한 과제들을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하였다.

북은 그렇게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방식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며 군대중시의 선군정치와는 달리 이번 당 대회에서 “인민군대가 참다운 인민의 군대라는 사명과 본분(강조, 필자)을 다하라”고 주문하면서 2020년도 여름 태풍과 홍수 피해를 당한 인민들을 위해 군인과 평양 핵심 당원들을 피해 복구 지역에 파견한 것은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구현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당과 군대의 존재 이유를 인민에 대한 헌신복무에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총론분석 그 넷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드러난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등 대외관계 부문은 기존 형제국들과는 친선과 우호협력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도 미국을 대하는 방식으로는 핵무력 강화발전노선에 근거한 대북적대정책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방향을 명확히 하였다. 증명하면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 고 못 박고, 그 방도도 “국가핵무력건설대업을 완성(강조, 필자)하는것은 우리가 리상하는 강력한 사회주의국가건설행정에서 반드시 선차적으로 점령해야 할 전략적이며 지배적 고지”임을 분명히 밝혀 핵무장력 강화발전을 통해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기본원칙이 ‘강대강, 선대선’의 대미정책이 수립되었다. 해서 향후 북의 대미전략은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에 기본방점이 찍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확립될 것이다.

이를 남북관계와 연동하면 총화보고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남조선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릴 때(강조, 필자)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해 남측당국(현, 문재인 정부)이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는 4.27판문점공동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약속이행이 담보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진전없음은 보다 확실해졌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이인영의 통일부는 여전히 방역과 인도적 지원문제 등에 집착하는 ‘작은교역’에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번지수 잘 못 짚었다.) 달리 표현은 북이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핵으로 해 남북문제를 해결해가겠다는 전략구사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소강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총론분석 그 다섯째, 통상 각급 당 체계를 중심으로 총화분석이 이뤄지던 특성과 절차대신, 이번 제8차 당 대회는 개최이전 4개월 전부터 당 중앙위원회에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구성하고 ‘요해사업 소조’를 각 도와 성, 중앙기관들에 파견하여 진행한 특성이 있다.(이름하여 ‘총결기간’으로 표현됨.) 아마도 이는 2020년 8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을 주관하면서 제8차 당 대회에서 결정될 5개년 국가발전계획과 관련해 제 7차 당 대회 결정사항인 5개년 국가발전전략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고”에 대한 약속이행절차였고, 그 만큼 핵심당원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총화가 이뤄졌음을 증거한다하겠다. 결과, 향후 5년 동안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인민대중제일주의’, ‘자력갱생전략’ 3대 키워드로 국가운영방침을 명확히 해냈다.

추진동력으로는 당 제7차대회가 강조한 ‘자력갱생정신’과 그 실현을 위한 투쟁방침인 ‘정면돌파전’을 지속시켰다. 이것이 사업총화보고에는 “우리 당의 자력갱생전략은 적들의 비렬한 제재책동을 자강력증대, 내적동력강화의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정치로선(강조, 필자)으로 심화발전되였다.” 더해서 “자강력을 증대시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투쟁속에서 자력갱생은 주체조선의 국풍으로,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투쟁정신으로 더욱 공고화(강조, 필자)되였다.”고 맺는다.

이상으로 제8차 당 대회 분석을 총론적으로 끝냈다.

핵심은, 북의 혁명발전단계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고조기·격변기로 분명히 한 것과,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 고지점령을 위해 보편적인 사회주의 질서체계(예, 김정은 위원장 총비서 추대, 당의 혁명적 기풍확립, 당 중앙의 유일적 사상체계 확립 등) 구축, 그리고 대외관계는 형제국들과는 상호협력·친선확대를 도모하면서도 미국과 남북관계는 보다 핵무력 강화와 자주·자결에 기초한 정공법에 보다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분쇄와 자주적 통일방향으로의 전환이다.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화, 2021/01/1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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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데이터 운동 | 민주주의의 산업화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지젝은 “자본주의의 바깥은 없다”는 말을 회자시킨 적이 있다. 세월호사태, 메르스사태, 옥시사태, 구의역 사고를 보면서 시민에 의한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강렬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감시자에 대한 감시 즉 역감시는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이다.

우리는 정보들을 축적, 가공, 공유, 공개하면서 권력과 자본을 감시할 수 있다. 그 효과는 위키리크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터넷을 통해 극대화될 수 있다. 영리서비스라고 해서 그 효과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며 도리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때 자본주의 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은 항상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의 목적은 정보주체들의 프라이버시 보호이다. 프라이버시 법익이 남아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정보들에 대해서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되어 그 축적이나 공개가 어렵게 되면 민주주의가 위축된다. 이 정신은 1980년 OECD가이드라인, 이를 계승한 2004년 APEC프레임워크에 문서화되어 있다.

아래의 두 가지 영리서비스들에 대한 독일연방개인정보보호법 판례와 EU의 1995년 개인정보보호지침 판례는 이와 같이 프라이버시 법익이 없는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참고로 EU지침은 회원국들에게 특정한 내용의 입법을 할 것을 강제하는 구속력을 가진다.

2007년부터 독일에 spickmich.de라는 웹사이트가 개설되었는데 학생들이 교사들의 실력, 복색 등을 점수를 매겨 평가하고 학교의 기자재, 건물, 학풍 등을 점수를 매겨 평가하는 사이트였다. 평가대상은 실명으로 거론되었지만 학생들은 익명으로 평가를 하였다. 2010년 3월에는 160만명 가입자를 모으고 있는 청소년대상 웹사이트 중 최대를 기록할 만큼 인기가 좋았다. 이 사이트는 곧바로 영리사이트로 발전하였다.

교사 1명이 위 사이트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연방개인정보보호법 상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지방법원, 지방고등법원 그리고 연방대법원에서도 패소하였다(23 June 2009 – VI ZR 196/08; LG Köln – 28 O 319/07 – Judgment of 30 January 2008; OLG Cologne – 15 U 43/08 – judgment of 3 July 2008). 연방대법원은 독일연방개인정보보호법 제29조, 즉 “개인정보의 상업적인 수집, 보존, 수정, 및 이용은 정보주체가 그와 같은 수집, 보전, 수정을 금지할 법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합법적이라는 조항에 따라 위 사이트의 운영이 합법적이라고 판시하였다. 정보주체가 그러한 법익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연방대법원은 “사실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견해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하며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교사의 평판정보는 아예 처음부터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교사가 은밀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애시당초 프라이버시 법익이 깃들지 않은 정보였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방헌법재판소 상고허가는 기각되었다. 위 판결은 정보주체의 프라이버시 법익이 깃들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는 상업적 이용도 자유롭게 허용됨을 확인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1994년부터 핀란드의 유료잡지 Veropörssi는 매년 핀란드인들의 소득과 자산정보를 게재해왔고 2002년에는 전 인구의 3분의 1 즉 120만명의 과세정보가 게재되었다. 이 정보는 핀란드법 상 완전한 공개정보이다. 2003년부터 이 잡지사는 문자로 사람 이름을 보내주면 그 사람의 과세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이 문자서비스에 대해 핀란드 개인정보보호기구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주장하자, 2008년 12월 유럽사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와의 균형을 고려할 때 EU개인정보보호지침 95/46/EC가 법적용을 면제하고 있는 “언론행위(journalistic activities)”는 “반드시 신문, 방송 등의 전통적인 언론사에 의한 보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일반대중에게 공개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매체와 영리목적을 불문하고 그렇다고 명시하였다. (ECJ Case 73/07 Satakunnan Markkinapörssi and Satamedia (2008)) 그 이후 유럽인권재판소가 언론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지만 그 이유는 인구의 3분의 1에 대하는 엄청난 양을 과세정보에 대한 논평, 토론이 부재한 문자서비스의 형태로 게시했기 때문이며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의 유효성에는 변함이 없다.

공공데이터는 운동이 되고 산업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에게 공개되어야 하는 개인정보들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로 보호되어야 할 법익이 깃들지 않은 정보들을 신중히 가려내 더욱 창의적이고 조직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위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6.06.14.)

 

화, 2016/06/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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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12/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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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은 왜 목이 길까?

Der Hals der Giraffe : Bildungsroman

짧은 목을 가진 기린들과 아이들 없는 학교
어느 생물 선생님의 3일간의 행적 :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종(人間種)

독일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의 장편 교양소설!
2011년 독일문학상(Deutscher Buchpreis) 후보작
2012년 9월 독일 부흐쿤스트재단(Stiftung Buchkunst)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독일 책”
2012년 1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빌레펠트, 괴팅엔, 하노버, 슈투트가르트에서 연극으로 상연

 

지은이  유디트 샬란스키  |  옮긴이  권상희  |  정가  16,000원  |  쪽수  360쪽 |  출판일  2017년 2월 28일

판형  사륙판 (127*188) 무선 |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피닉스문예 09  |  ISBN  978-89-6195-157-9 03850

 

유디트 샬란스키는 자연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닿을 수 없는 나무열매를 향해 목을 길게 뻗는,
그러나 결국 다윈 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마는 어느 생물 선생님을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몰상식한 곳 중 하나인 학교이다.

“공동결정권이니 선택권이니 하는 건 로마르크한테선 기대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한테도 선택권은 없었다. 도태 이외에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 본문 중에서

 

『기린은 왜 목이 길까?』 간략한 소개

유디트 샬란스키의 『기린은 왜 목이 길까?』는 교양소설 또는 성장소설 장르의 새 장을 여는 작품이다. 샬란스키는 사회적 다윈주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완고한 성격의 독불장군 이미지가 강한 잉에 로마르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 인물은 기존의 교양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상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뒤집어 버린다. 고전적인 교양소설에서는 세상 밖으로 나와 갖은 경험을 하는 젊은 남자 주인공이 항상 등장한다. 반면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마르크라는 여성은 학교에서든 사생활에서든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자신의 목표만을 좇으며, 변화하는 자연․상황․주변 사람들에 대해 극도의 예민 반응을 보인다. 학생을 천적으로 여기는 주인공 잉에 로마르크는, 학생들에게 생존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늘 강조한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은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여러 사건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무한경쟁 이데올로기에 둘러싸인 우리 삶, 경쟁에 치중한 우리 교육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극도의 냉소주의적 태도가 그녀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고 서글프게 만드는지 바라보면서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독일 통일 후 구동독 지역은 인구가 감소하고 학생 수가 줄어들어 결국 학생이 없는 학교가 하나둘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점차 이슈화되고 있는 사회 문제이다. 점점 상황이 악화하여 최악에 이르면, 미래 어느 시점엔가 세상은 학생이 없는 학교로 가득할 것이고, 마지막 인간종이 사라지는 날이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이 없는 학교라니! 마지막 인간종이 사라지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 그런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능성 있는 대답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대답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기린은 왜 목이 길까?』 상세한 소개

학생을 천적으로 여기는 교사 로마르크

2011년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 소설은 주인공 잉에 로마르크의 심리 흐름을 일터인 학교와 가정, 이웃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과 관련지어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로마르크는 자기 신념대로 우직하게 독불장군같이 사는 인물로, 새로운 변화와 주변 사람들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니컬하게 평가하곤 한다.

로마르크는 우글거리는 생명체들에 둘러싸여 있다. “자신들을 덮치는 호르몬으로 인해 나타나는 일시적 흥분상태에”(22쪽) 쉽게 빠지는 사춘기 학생들, 무너진 건물 터를 꽉 채운, “담 높이까지 자란 잡초”(93쪽)들, 어느 날 새벽 4시가 채 안 된 시각, 침실 안에서 “숫자 8을 그리듯 크게 공중회전을 하며 이리저리 휙휙 날아다니”(84쪽)던 박쥐, 남편 볼프강이 돌보는 “알록달록한 양말 대님을 신고” “목장을 뛰어다니는”(48쪽) 타조 아홉 마리 등. 재미있게도, 소설 내내 리듬감 있게 그려지는 로마르크 주변 세계의 생명력과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로마르크는 세계는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엇박자의 감각이 이 소설의 커다란 매력이다. 로마르크의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학생들이, 잡초가, 박쥐가, 뛰어다니는 타조들이 계속 로마르크라는 닫힌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다윈주의 신봉자 잉에 로마르크는 생존경쟁과 자연도태 원리로 학생을 우등생, 열등생으로 선별한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아이들은 똑똑하거나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다. 우둔한 아이는 당연히 도태된다. 도태되는 우둔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낙오자이자 건강한 학급의 몸통에 붙어사는 기생충”(18~19쪽)이다. 어차피 낙오할 아이들은 격려할 것이 아니라 낙오자라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게 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우둔한 아이들은 머지않아, 낙오자라거나 기생충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다윈주의 자연법칙에서 볼 때,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다. (이 세계의 많은 이가 그러하듯이) 다윈주의 법칙을 신봉하는 로마르크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쇠퇴와 변화, 그리고 학생들의 낙오를 그저 냉정하게 관망할 뿐이다.

로마르크는 자기 딸 클라우디아에게도 엄격하고 냉정하게 대한다. 언젠가 어린 클라우디아의 담임을 맡았던 때, 교실에서 클라우디아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과 왕따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외면하는 그녀다. 자연계에서처럼 인간들 사이에서도 강자-약자 관계가 필연적이고, 괴롭힘과 왕따도 자연스럽다.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낸 클라우디아는 성인이 되자 타국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된다. 로마르크는 딸과 관계가 소원해진 것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이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 버린다.

세상이 자연의 법칙대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한편 사람은 변화보다는 법칙,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 움직이는 것보다는 고정된 것을 반복해서 찾게 된다. 누구든지 변화하지 않으려 기를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 변화를 두려워하며 자기 고집을 지키려 안타까워 보일 만큼 노력하는 사람을 누구나 한 명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좁디좁은 자기 세계에 갇혀 세계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주인공 잉에 로마르크는 첫 만남에는 거부감을 주면서도 이내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마음 어느 한 구석이 찔리는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독일 통일 후,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생존경쟁과 자연 도태

기린은 왜 목이 길까? 잉에 로마르크에 의하면 기린의 목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생존을 위해 높은 나뭇가지에 달린 잎을 뜯어 먹으려 다른 기린들보다 목을 더 높이 뻗는 기린들이 생겼고, 기린들의 ‘목 뻗기 운동’이 반복되어 목이 길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리하여 긴 목을 가진 기린의 DNA가 그들의 후손에 전해진 것이다. 생존경쟁과 자연도태는 생물학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를 설명할 때에도 흔히 사용된다. 잉에 로마르크의 30년 직장인 구동독 지역 찰스-다윈 김나지움에서도 생존경쟁과 자연도태가 일어난다. 적어도 로마르크의 시선에서 이 점은 분명하다.

로마르크는 구동독 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에 위치한 찰스-다윈 김나지움에서 30년 넘게 일해 온 생물 선생님이다. 이 학교는 통일 이후 이농, 실업, 쇠퇴 등에 의한 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4년 후면 문을 닫게 될 운명이다. 지역 사회도 건물과 시설의 붕괴와 철거로 쇠퇴하여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로마르크의 시선에서 통일 후 학교와 지역사회의 변화는 생존경쟁과 자연도태로 설명된다. 생존경쟁에서 패한 것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것들이 채운다. 황폐해진 마을 구석구석에는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초, 들꽃 같은 식물들이 싹을 틔워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기린의 목은 이 소설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기린의 목에 대한 진화론의 가르침을 배우는 “수업시간이 이 소설에서는 중요한 순간이다.”(7쪽) 그 순간에 잉에 로마르크 또한 “목까지 물이 차올라”있기 때문이다. “목까지 물이 차오른다”는 말은 독일어에서 ‘(어떤 사람이) 곤궁에 처해 있다’는 의미의 관용구이다. “곤궁에 처해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목 길이가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이 되어버린다.”(7쪽)

정작 로마르크 본인은 지역사회와 학교의 변화에도, 또 서독에서 밀려드는 자본주의적 방식에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 로마르크는 통일 후 동독에 밀어닥친 급격한 변화가 달갑지 않다. 사실 괴롭기까지 하다. 구동독의 이웃들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고, 학생 수가 줄어 학교는 폐교를 앞두고 있으며, 새로운 자본주의적 사상과 유행이 들어와 기존의 삶의 방식을 흔들어댄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로마르크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교사는 교사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지녀야 하고, 학생들과는 늘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버리지 않고 우직하게 이러한 태도를 고수해 나간다. 하지만 30년 넘게 몸담고 있는 학교가 4년 후에 문을 닫게 된 상황에서 로마르크도 교사직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굳은 신념도 주변의 변화를 막지 못한다.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자기 자신이 자연도태될 운명에 처하고 만다.

냉소적인 시선으로 주변인을 평가하는 로마르크

로마르크는 새로운 환경과 변화에 잘 적응하는 인물과 그렇지 못한 인물로 주변인을 분류하며 평가한다.

동료 교사 카트너와 슈바네케는 새로운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인물들이다. 서독 출신으로, 동독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사명을 안고 찰스-다윈 김나지움으로 전근 온 카트너는 처음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학교장이 된 후에는 학교와 동료 교사들의 미래를 손아귀에 쥐고 좌지우지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슈바네케는 사교적이고 에너지 넘치며 시대의 유행에 민감하고, 때로는 자신의 아픈 사생활까지 숨김없이 드러내며 상대방에게 연민과 격려를 구걸하기도 한다. 또 전직 소 사육 기술자였던 로마르크의 남편 볼프강은 동물 생산업의 쇠퇴와 함께 한때 백수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시대 변화의 흐름을 타고 타조 사육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유명 인사가 된다.

반면, 동료 교사 틸레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공산주의자이다. 로마르크는 그를 늘 불평만 해대는, 정작 아무것도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사회적 낙오자’로 평가한다. 로마르크의 이웃, 한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스는 로마르크 이외에는 대화 상대도 변변히 없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소외되어 외롭게 사는 인간이다.

이처럼 로마르크 주변, 즉 학교, 가정, 이웃에는 통일 후 구동독 지역에 나타나는 사회적·환경적 변화에, 더 나아가 서구의 자본주의에 적응하거나 혹은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인간 군상의 여러 모습이 존재한다.

로마르크라는 인물이 그리는 현대자본주의의 내면

잉에 로마르크의 대인관계 방식, 그녀가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키려 노력함에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심적․물리적 변화, 그 과정에서 독자가 훔쳐보게 되는 그녀의 속마음은 우습다는 느낌을 준다. 어떤 장면들은 폭소를 자아낸다. 로마르크의 냉소주의는 지구 상의 어느 젊은이 못지않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현대인은 모두 잉에 로마르크처럼 생각하는 데 익숙하고, 잉에 로마르크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잉에 로마르크처럼 생각하기를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에게, 경쟁과 도태가 사회를 설명하는 지배적인 법칙이며, 개개인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으로 발버둥 쳐야 할 숙명을 짊어진 것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 이 책은 삶에 대해 또 인간에 대해 근본에서 질문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인간종에 대한 로마르크의 실패한 규정에 머무를 것인가? “인간은 그저 인과의 사슬에 강제로 묶인 채, 정신적 환상을 자아로 여기며 멀티미디어 쇼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만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욕구를 누를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 진정한 동물임이 틀림없었다.”(272쪽)


 

추천사

유디트 샬란스키, 독창적이고 개념 있는 독특한 작품으로 문학혁명의 최고봉에 서다. … 이 소설은 편협하게 해석한 반다윈주의적 선언을 담고 있다. 또 기후변화, 이농, 학문사회시스템의 실패 같은 핫이슈도 품격 있고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

펠리시타스 폰 로벤베르크,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신문』

통일이라는 변화에도 흔들림 없는 감정선(感情線)을 유지하며 인간과 아이들보다 동물에 더 마음을 쏟는 어느 생물 선생님의 생활을 그린 이야기. 강렬히 묘사된 비호감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이 영웅에 독자는 진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마누엘라 라이하르트, <독일라디오 문화>

유디트 샬란스키의 예술작품, 통일 이후 최고의 독창적 작품 중 하나.

세바스티안 함멜엘레, 『슈피겔』 온라인

 

책 속에서 : 잉에 로마르크와 다윈주의 세계관

그녀에게 학생들은 천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녀는 학생들에게 거리감을 둔다. … 생물을 가르치는 잉에 로마르크는 오로지 자연법칙, 강자의 권리, ‘고정 행동 양식’의 자동성만을 신봉한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6쪽

잉에 로마르크는 고개도 까닥하지 않고 반 전체를 쭉 훑어보았다. 이는 몇 년에 걸쳐 터득해낸,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거침없는 눈길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그녀만의 방식이었다.

― 「자연세계」 17쪽

하필이면 이 아이들이 진화 경쟁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정말로 선택은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 그들한테선 도무지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어설픈 운동법과 출렁거리는 피하 지방 조직만 있을 뿐이다.

― 「자연세계」 87쪽

“됐소, 로마르크. 당신의 미국 자본주의적 유전학이 이겼소.” 그건 결코 로마르크의 유전학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생물학의 일반적인 기조였다.

―「유전 과정」 225쪽

“잉에라고 불러도 되지요?” 그건 협박이었다. 모든 게 의도적이었다. “네, 그래도 돼요.”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눈물은 강력한 무기였다. 근데 하필 점심 먹는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 내다니.

―「유전 과정」 257쪽

교과 과정 지침에 지질 시대의 감성을 전달하라는 사항이 명시돼 있었다. 해마다 생일이 다가오길 학수고대하는 아이들에게 지구 나이가 관심거리가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 「진화론」 257쪽

“듣고 있소?” 그래, 그녀는 듣고 있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대참사도 아니고 소규모 운석 충돌도 아니었다. 그저 한 아이가 도태되었을 뿐인 일이다.

― 「진화론」 327쪽

“기린의 조상들이 아카시아 나뭇잎을 향해 꾸준히 목을 뻗었던 노력은 당연히 효과가 있었어요. 수많은 세대를 거쳐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엄청나게 긴 목을 만들어냈으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각자 성장해야 하는 거예요. 또 우리가 진정으로 노력하기만 한다면 모든 걸 이룰 수 있어요.” 대체 무슨 소릴 한 거지? 로마르크는 기진맥진해져 자리에 앉아야 했다.

― 「진화론」 333~334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유디트 샬란스키 (Judith Schalansky, 1980~ )

1980년 독일 북동부의 도시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난 유디트 샬란스키는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예술사를 공부했고 포츠담 전문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했다. 2007년에 학위를 마친 후 2009년까지 포츠담 전문대학교에서 타이포그라피를 강의하였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에 소설 『너에게 파란 제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2009년에 『외딴섬들의 아틀라스』, 2011년에 『기린은 왜 목이 길까?』 를 연이어 발표했다. 소설 『외딴섬들의 아틀라스』 는 부흐쿤스트재단에서 선정한 ‘2009년의 가장 아름다운 독일 책’에 선정되었고 『기린은 왜 목이 길까?』 로 2012년에 또 한 번 ‘가장 아름다운 독일 책’에 선정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1년 독일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그 외 2013년에 레싱 상, 2014년에 문학관 상, 마인츠 시 작가상, 2015년에 드로스테 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옮긴이 권상희 (Kwon Sanghee)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언어학, 독문학, 역사학을 전공하고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1월 독일 보쉬재단의 지원으로, 베를린 문학 콜로키움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초청되어 참석했다. 홍익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고문으로, 독일에서 출간된 에세이집 Warum wir hier sind (왜 우리는 이곳에 있는가)(루터, 2007)의 “Zwischen zwei Kulturen”(두 문화 사이에서)가 있고, 번역서로 『타인의 삶』 (이담북스, 2011), 『과거의 죄 : 국가의 죄와 과거 청산에 관한 8개의 이야기』 (시공사, 2015), 『박테리아 : 위대한 생명의 조력자』 (다른 세상, 2016), 『기린은 왜 목이 길까?』 (갈무리, 2017) 등이 있다.

 

갈무리 피닉스 문예 시리즈

『젊은 날의 시인에게』(김명환 지음, 갈무리, 2016)

김명환은 어린 시절부터 ‘시인’을 꿈꿨다. 하지만 정작 시인이 되자 ‘시인’이기보다 ‘문예선전활동가’로 살아 왔다. 철도노동자, 삐라작가, 활동가, 시인이다.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 시절, 철도노조민주화투쟁 시절, 철도민영화반대투쟁 시절의 이야기들이 제1부 ‘기차의 추억’과 제2부 ‘삐라의 추억’에 실려 있다. 제3부에는 짧은 소설과 동화가 묶여 있다. 제4부에는 선언, 칼럼, 에세이, 논설, 호소문 등이 묶여 있다. 제5부는 철도노조민주화투쟁 이야기를 무협지로 그렸다.

『산촌』(예쥔젠 지음, 장정렬 옮김, 갈무리, 2015)

1920년대 중국 중부 후베이성 작은 산골 마을의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상과, 혁명으로 인한 그들 삶의 극적 변화를 담은 역사 소설이다. 번역가이자 에스페란티스토, 잡지 편집자, 항일 투사였던 중국 작가 예쥔젠이 서방 세계에 중국 혁명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1947년에 영어로 쓴 책이다. <산촌>은 중국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었다. 출간 후 20개국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시로 읽는 니체』(오철수 지음, 2012)

제3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오철수 시인이 이시영, 기형도, 강수니, 조문경, 서은, 최영미, 월트 휘트먼 등 현대 시인들의 시 83편과 니체 철학의 접목을 시도했다. 저자가 시와 니체 철학의 만남 속에서 던지는 질문은,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 속에서 우리들의 삶이 좌절과 허무를 넘어 어떻게 자기긍정의 예술을 향해 갈 수 있는가이다.

『봄 속의 가을』(바진, 율리오 바기 지음, 장정렬 옮김, 갈무리, 2007)

장편소설 <가(家)>와 수상록 <매의 노래>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중국 작가 바진(巴金)의 소설 '봄 속의 가을'과, 바진에게 영감을 준 헝가리 작가 율리오 바기(Julio Baghy)가 세계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로 쓴 소설 '가을 속의 봄'을 묶었다. 이 두 편의 소설은 아프도록 아름다운 청춘의 자화상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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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소설, 문학, 성장소설, 생물학, 자본주의, 유전학, 진화론, 갈무리, 생존경쟁, 동독, 교양소설, 독일문학, 다윈주의, 자연도태, 유디트 샬란스키, 피닉스문예, 권상희, 기린은 왜 목이 길까?

수, 2017/03/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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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주제 : 신정-정치 ― 축적의 법과 국법의 이위일체 너머

강연 : 윤인로 (『신정-정치』 지은이)

▶ 참가신청 : https://goo.gl/KAzQqX

자본주의는 영속적인 종교운동이다
맑스에게 자본의 일반공식은 성부와 성자의 일체론으로 구동되며, 종교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였다.
이 책은 맑스를 따라, 신정정치로서의 자본주의라는 일관된 관점을 
세월호, 박정희, 박근혜, 메르스, 희망버스 등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 속에서 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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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7.4.23.(일) 오후 2시 
장소 다중지성의 정원 (문의 02-325-2102)

2:00~3:00 저자 강연회
10분 휴식
3:10~ 질의응답 및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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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자 소개 
윤인로 (Yoon In Ro, 1978~ )
문학평론가. 동아대에서 박사논문을 썼고 시간강사로 일했다. 2010년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았고 비평지 『말과활』『오늘의문예비평』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으며,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공동연구원으로 있었다. 『묵시적/정치적 단편들』(자음과모음, 2015)을 썼고, ‘게발트-신-론’이라는 이름의 연작 비평을 구상 중이며, 그런 구상의 한 층위로 『정통성 또는 정당성』이라는 책을 쓰면서 법신학적 축적체로서의 교회·전쟁체에 관한 저작들을 옮기고 있다.

찾아오시는 길 http://daziwon.net/visit





토, 2017/04/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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