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유임,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 파격 승진. 지난 18일 검사장급 승진·전보 인사의 핵심 내용이다. 같은 성에 서울대 출신 특수통 검사, 집요한 수사 스타일까지 비슷해 ‘대윤(윤석열)’, ‘소윤(윤대진)’으로 불리는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더욱 더 끈끈한 운명공동체가 됐다.
‘인사가 만사’인 것은 검찰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로 자신들의 뜻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뒤 서울중앙지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소를 유지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정치·선거 개입, 특수활동비 ‘불법’ 사용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의 ‘집단 범죄’도 수사로 밝혀내, 김성호·원세훈·남재준·이병기·이병호 5명의 전 국정원장과 직원들을 법정에 세웠다. 이명박·박근혜의 ‘과거사’ 청산은 서울중앙지검의 지휘아래 일사분란하게 계속 될 것이다.
또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으로 일했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 윤대진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이례적으로 검찰국장에 임명되었다. 검찰 인사·예산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은 과거 서울중앙지검장, 중앙수사부(중수부)장, 공안부장과 함께 검찰 내 요직 빅4로 꼽혔다.
‘정몽구 불구속 기류’ 맞서 동반 사표 썼던 칼잡이들
1960년생인 윤석열 지검장은 1983년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1991년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23기로 마친 뒤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서울지검 근무 때 김대중 정부의 실세인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을,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강금원을 구속 수사하며 주목받았다. 2002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활동을 제외하면 대검 검찰연구관, 대검 중수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치며 ‘특수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64년 태어난 윤대진 검찰국장은 1989년 서울대 졸업 뒤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25기로 마친 뒤 서울지검 검사로 발령 났다. 그 역시 대검 중수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일하며 윤 지검장과 같은 특수부 검사의 길을 걸었다.
비슷한 시기 검찰의 특수수사를 맡았던 두 사람은 동선이 비슷했다. 2006년 대검 중수부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 때 윤석열 지검장과 윤대진 검찰국장은 함께 대검 중수부 검찰연구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120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불구속 수사하자는 분위기에 맞서 두 사람은 사표를 썼다. 두 사람의 뜻대로 정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중수부장은 박영수 특검이고 수사기획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었다. 두 사람은 2007년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비호 의혹도 함께 수사했는데, 당시 중수1과장은 문무일 검찰총장이었다. 윤석열 지검장과 윤대진 검찰국장은 대검 중수1과장과 대검 중수부 첨단범죄수사과장으로서 2011년~2012년 저축은행 합동 수사반에서도 손발을 맞췄다.
사진: 시사인
박근혜 정권 때 ‘굴욕’ 딛고 화려한 복귀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두 특수 콤비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2년 12월19일 대선을 8일 앞두고 민주당, 경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집을 찾았다. 국정원 직원들이 여당 후보는 지지하고 야당 후보는 비방하는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2013년 4월 채동욱 검찰총장은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며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꾸리게 했다. 그러나 채동욱 총장은 같은 해 9월 혼외자 논란으로 사퇴했고, 그도 한달 뒤 직무에서 배제된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원 사건 보고를 듣고) 처음에 좀 격노를 했다. 그리고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 정 하려고 그러면 내가 사표 내면 해라’라고 말했다.” “외압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수사해서 기소를 제대로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무관하지 않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10월21일 서울고검 등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지검장은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해 연말 그는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면서 내부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고, 다음해 인사에서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윤대진 검찰국장은 2014년 6월5일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윤 검찰국장이 광주지검 형사2부장으로 세월호 참사 구조 관련 수사팀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해경 본청 등을 압수수색한 2014년 6월5일 오후 4시께 (우 전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통화한 사실이 있다. 해경 본청 상황실 경비전화 녹음파일이 보관된 전산 서버를 압수수색 안 하면 안 되겠느냐는 취지로 물어왔다.” 지난 1월 윤 검찰국장은 우 전 수석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상황을 알렸다.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건 아니지 않으냐”는 우 전 수석의 변호인에게 윤 검찰국장은 “그건 판단의 문제”라고 답했다.
윤 검찰국장은 2014년부터 3년 동안 지방에서만 근무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에서 2014년 광주지검 형사2부장으로, 2015년 대전지검 서산지청장으로, 2016년 부산지검 2차장검사로 발령 났다. 채 전 총장, 윤석열 지검장과의 친분이나 압수수색 관련 우 전 수석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두 사람의 운명을 돌려놨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19일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했다. 차기 총장 후보군인 고검장급 검사가 임명되던 자리였다.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검이 윤석열 지검장을 수사팀장에 임명할 때 이미 ‘부활’의 조짐은 보였다. 그리고 윤 지검장은 2017년 7월 윤대진 검찰국장을 서울중앙지검 1차장 ‘직무대리’로 불려들었다. 검사장급 이상 검사가 맡던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검사장이 아닌 윤대진 검찰국장을 임명하려면 검찰 규정 개정이 필요했다. 그는 곧 직무대리 꼬리표를 뗐다. 이어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고검장 승진을 앞둔 고참 검사장이 맡던 검찰국장에 발탁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4년 남았다. 두 사람을 위한 ‘파격’은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여혐 반대를 기치로 내 건 메갈리아(Megalia) 등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강남역에서 집회를 열었으며 이것이 여성혐오에 기초한 범죄임을 알리고자 하였다.
#사건 2. 소라넷과 ‘골뱅이’
소라넷은 일명 ‘골뱅이’라 불리는 인사불성의 여성을 함께 강간하는 일이 모의되고 실행되는 사이트. 해당 여성의 남자친구나 남편 등이 ‘초대남’ 혹은 ‘초대남편’이라는 이름으로 해당사이트 유저 남성들을 불러모아, 수 년 간 그 수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여성들에게 강간을 해 왔다.
메갈리아 등을 위시한 여성들이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고, 경찰은 마지 못해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소라넷 폐쇄라는 성과를 이끌어 냈으며 소라넷 운영자가 구속직전이라는 뉴스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10월 중으로 재오픈한다는 또 다른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사건 3. 만연된 몰카(몰래 카메라) 범죄
화장실과 탈의실, 언제부터인가 여성들이 옷을 벗는 곳에서는 온갖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올림픽 대표였던 수영선수마저 선수촌에서 동일한 범죄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메갈리아를 중심으로 여성들은 몰카 반대, 여혐 중지를 위한 스티커 붙이기 등 각종 캠페인을 시작했고, 덕분에 이전의 ‘몰카를 조심하라’는 피해자 책임 전가형 문구 대신 ‘몰카는 범죄입니다라’는 가해자 각성 촉구형 문구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여성을 향한 폭력들
여성혐오(이하 여혐), 미소지니(misogyny), 바야흐로 21세기 한국의 초상이다. 여혐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최근 들어 여혐의 사건 사고들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리는 듯하다.
아울러 이에 대한 여성들의 충격과 반발, 염오 역시 깊어지는 듯한데, 이러한 작금의 상황은 그간 수면 아래 있었떤 여혐의 문제가 사회 일반의 의식적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징후라 할 것이다.
여혐이 공적인 아젠다가 될수록 이로부터 여혐과 그 해악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활발해질 수 있을 테니, 이는 차라리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희망이다. 쉽게 낙관하기에는 여혐의 역사와 뿌리가 너무도 공고하거니와, 이것이 과연 여혐 척결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말지는 바로 지금부터이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여성혐오 현상이 만연해지면서 출간된 지 한참 뒤에야 뒤늦게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작금의 시점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이 책은 2012년 번역 출간되었으나 최근 앞서 말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올들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감이 없지 않다. 바야흐로 한국은 지금 여혐과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여성혐오 사회의 등장
우에노 치즈코는 일본에서 여성, 돌봄, 가족 등에 천착해 온 페미니스트 사회학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브 세지윅(Eve Kosofsky Sedgwick)의 주요 개념과 이론적 틀을 차용해 여혐 사회 일본을 해부한다.
여혐 사회란 말 그대로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된 사회를 말한다. 즉 남성은 이를 ‘여성에 대한 멸시’로, 여성은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로 체험하게 되며, 따라서 여혐 사회에서는 누구도 여혐으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짐작하다시피, 여성혐오 사회는 근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한다.
근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서 남성들은 자신들만의 호모소셜(homosocial)한 연대(남성간 유대)를 기초로, 여성과 동성애자를 배제하고 멸시한다. 이 사회에서는 남성성만이 유일하고 보편적인 기준이 되며, 여성과 여성성, 여성적인 모든 것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남성들은 여성을 두 가지 상반되는 대립적 범주, 즉 정결한 성녀(성모 마리아)와 유혹하는 창녀(막달라 마리아)로 이분화한다. 이 때 성녀는 가부장제가 보호하고 할 현모양처이자 욕망이 거세된 정녀(靜女)로서, 반대로 창녀는 가부장제 바깥에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위한 배설구로서 표상된다.
근대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성녀와 창녀라는 두 개의 이미지로 고착됐다. (윗단 사진). 이에 따라 그런 여성을 대하는 남성도 여성을 보호하는 신사와 그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바람둥이라는 두 가지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여자를 지켜주겠다’는 순정남들이나 ‘바람둥이’라 불리는 남자들이나 어느 쪽이건 실은 적극적으로 여혐을 체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여성을 고유한 한 인격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 하기에, 자신들을 구원해줄 이상향이나 성욕의 배설구로서 이해할 뿐이다. 곧 전자는 여성을 숭배함으로써, 후자는 멸시함으로써 타자화한다.
이러한 여성상 어디에도 여성은 없거니와, 여혐사회에서는 남성이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여성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남성은 결코 여성을 알지도 이해하지 못하며, 여성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엄마처럼 살지마”
여성들 역시 여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딸은 가부장제 하의 희생양인 어머니를 보면서 자라며, 어머니의 자기혐오를 물려받게 된다. 어머니는 딸의 ‘여자 같은 부분’을 증오함으로써 딸에게 자기혐오를 심어준다.
‘짧은 치마 입지 마라’,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여혐 사회에서 딸을 보호하기 위한 어머니의 모든 말들은 기실 딸에게 자기혐오를 촉발시킨다.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려 하나, 안타깝게도 지난 날 여성들의 역사는 이것이 거의 불가능한 가까운 기획이라는 것을 예증한다.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은 어떤 딸들은 적극적으로 아버지 동일시 전략을 취하게 되는데, 즉 이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남성이 되고 싶어 한다. 경제성장에 힘입은 고학력 여성들은 열등한 여성성을 탈피하여 아버지의 딸로서 가정 내에 갇힌 삶이 아닌 자아실현의 사회적 삶을 살고자 한다.
이른 바 ‘명예남성’으로 불리는 이들은 자신을 다른 여자들과 다른 ‘특권적 예외’로 설정하고 출세에 골몰한다. 그 결과 이들은 필연적으로 여자의 적이 되거니와, 이는 남성 기득권의 유구한 지배 전략 ‘분할하여 지배하라(divide and rule)’가 적용된 또 다른 예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들 명예남성들의 출세 전략은 여성 혐오를 확대 강화하게 될 것이며, 명예남성들 자신은 상징적 남근의 획득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성혐오가 만연된 사회에서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은 미묘하고 복잡하다. 엄마는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지만, 또 남성세계에서 성공한 딸에 대해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사진은 양희은의 싱글 ‘엄마가 딸에게’의 표지 컷.
사회적으로 성공한 딸이 된 딸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신이 딸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누구보다도 더 열렬히 바랐으나, 막상 아버지의 딸이 된 딸을 보며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딸이 가부장제의 노예로 살지 않도록 딸의 교육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는 정작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딸의 성공 앞에서 기쁨과 질투를 동시에 경험한다.
딸이 어머니가 인정할 만큼 훌륭한, 그러니까 여혐이 덜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신랑감을 골라 결혼할 경우에도 이러한 양가적(ambivalent) 감정은 다르지 않다. 이 경우에도 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딸이지 자신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성공까지 한 딸 역시 가부장제 속으로 편입된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한다.
아울러 그러한 딸을 질투하면서 동시에 질투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거니와, 딸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어머니는 질투와 비참, 우울과 죄책감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여혐사회에서 딸과 어머니의 화해는 이토록 지난하다, 이보다 더 완벽한 지배전략이라니!
근본주의적 설명의 한계와 대안적 실천의 가능성
인터뷰를 하는 이브 세지윅의 모습
이상의 내용들은 이미 페미니스트인 이들에게는 그리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다. 메리 울스튼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에서부터 시몬느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 베티 프리단(Betty Freidan),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역사는 1세대, 2세대를 넘어 3세대에 이르고 있다.
특히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을 비롯한 여성주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서 논의되어 왔는데, 프로이트와 달리 이들은 오히려 초기 대상관계 형성에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근원적임을 강조한다.
우에노의 논의는 미국의 페미니즘 비평가 이브 세지윅(Eve Sedgwick)의 이론적 틀을 그대로 가져왔기에 그의 한계 역시 고스란히 답습한다.
일찍이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이 남근을 선험적 기의로 파악함으로써 오히려 상상의 가능성과 변화의 단초를 봉쇄하였다고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우에노 역시 라캉의 ‘욕망의 삼각형’을 차용함으로써 여혐사회의 선험성을 확증한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구도에서는 남성성에 종속되지 않는 여성적인 것의 발견이나 여성의 권능화(empowerment)를 개념화하기 어렵다.
즉 여성이나 여성성을 남성이나 남성성의 이항 대립항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상상하기 위해서는, 남근이성중심주의에 갇히지 않는, 그것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이론적 틀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빠-엄마-나의 오이디푸스 삼각형을 변형한 라캉의 L자 도식. 여기서 S(주체)와 moi(나, ego)는 분열된다. 나(moi, ego)의 정립은 소문자 타자(a’utre)와 상상적 관계 속에서 가능해진다. 또한 주체(Sujet)는 늘 대타자(Autre)와 관련돼 있는데, 이 대문자 타자가 곧 아버지의 법으로 불리는 상징화된 질서이다. 라캉은 인간의 욕망을 이러한 삼각형 구도 안에 가둬버림으로써 여기로부터의 탈출을 아예 봉쇄한 숙명론의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뤼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와 엘렌 식수(Helene Cixous)는 남근과 남성성에서 출발하지 않는 여성적 주이상스(Feminine Jouissance)와 여성적 글쓰기 등을 논의해 왔으며,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 보봐르의 언명을 한층 발전시켜 젠더란 어디까지나 수행에 기초하며 그것을 통해 창조되는 것임을 명시하였다.
이들의 엄밀한 이론적 지향과 입장은 각기 다를 수 있겠으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의식이 있다면 여성/여성성이, 남성/남성성과 마찬가지로, 발명품(invention)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남근이성중심주의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그 강팍함에 지속적으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그리고 실천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여성/여성성을 상상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투쟁과 마찬가지로 패배주의를 넘어 언제나 지치지 않고 즐거이 희망을 좇을 때,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다.
다른 관계, 다른 공동체가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규정하지 않는 다른 여성과 여성성을, 관계 와 공동체 속에서 상상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세상은 딱 그만큼 달라질 수 있다.
성적소수자(LGBT)와 동성애자 부부, 1인 가구와 비혼 가정, 이 모든 이질적 성정체성들과 공동체를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넘어, 새로운 섹슈얼리티와 공동체의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최전선의 척후병이기 때문이다.
여혐과 동성애를 둘러싼 오늘날 한국사회의 소란과 불화는, 그러므로 더욱 시끄러워야 하고 더욱 첨예해야 한다. 갈등과 투쟁 없이, 대안과 공존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소란과 불화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의 삼각형에 금이 갈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 했던, 그러나 언제나 바라왔던 그 곳으로 탈주할 수 있을 것이다.
OO녀…여성에 투사된 좌절된 수컷들의 욕망
이 책은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통해 일본사회를 미시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일찍이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모든 사회가 일본화되어 갈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이는 후기자본주의 일본 사회가 가진 모든 모순들이 자본주의의 궤도를 따라가는 여타의 사회에서도 발견되리라는 것을 말한다.
이 책 속에서 분석된 여혐 현상들은 상당 부분 오늘날의 한국사회에도 발견될 수 있는 대목들이기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여사, 된장녀, 맘충, 세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각종 여성혐오적 언어들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요약한다.
운전에 서툰 김여사, 명품에 환장하는 된장녀, 남자 돈 빨어먹는 김치년 등 여성을 비하하는 각종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경제상황의 악화와 더불어 이전 시기 가부장들이 누리던 권력을 누리지 못하게 된 루저 남성들이 그 분노를 여성에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 최근 한국 사회 여혐 범죄의 근본적 배경이라 할 것인데, 일자리가 없기에 결혼이나 출산, 가정은 꿈도 꿀 수 없게 된 남성들이 그 분노와 좌절을 엉뚱하게도 가장 약한 고리인 여성을 향해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은 OECD 기준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70퍼센트를 넘지 못하며, 경제 위기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다. 가사노동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는 여성가장은 언제나 남성 가장 못지않게 많았으며, 경제 위기에 가장 먼저 퇴출되는 고학력 여성들(이른 바 경단녀, 곧 경력단절녀)’이다.
일자리를 가진 사회적 여성들은 직장 노동과 가사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 절대적 노동의 양은 오히려 남성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다. 가부장제의 바람막이 없이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비혼모’의 현실에서 언제나 비난받아야 했던 것은 ‘행실이 나쁜’ 여성들이었으며, ‘도망간 아내’들이 처한 현실은 언제나 간과된 채 모성이 결핍된 존재로서 마녀사냥 당했다.
남성도 굴레를 벗어야 할 때
남성들이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브레드 위너(bread winner)로서의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하게 된 것도, 그 결과 ‘전원결혼사회’를 뒤로 하게 된 것도, 그 어느 쪽도 여성들의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지금껏 남성들이 주도해 온 이 사회가 자본의 탐욕을 우선시하며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남성들 자신이 이를 수수방관한 채 그 이익만을 먼저 그리고 앞서 누리려 했기 때문이다.
월급을 빌미 삼아 가정 내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려 했기 때문이며, 가사노동과 육아로부터 스스로를 면책시켰기 때문이며, 가부장제의 모순을 외면하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사적 소유물로 좌지우지하려 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모순을 개혁하려 하기보다 그 안에서 편하고자 했고, 세상의 절반 여성을 사회적 장면에서 배제하려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숱한 ‘◯◯녀’ 사전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남성들이여,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마냥 남성연대를 만들고, 역차별이라며 옹색한 항변을 꺼내들기 이전에 부디 무엇이 진정 문제인지 돌아보길 바란다.
남성의 역차별에 불만을 품은 남성연대. 이들의 주요 주장은 여성부 해체였다(왼쪽 사진). 세종로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는 여성연대 회원들의 모습.
남성들에게만 짐지워져 왔다고 주장하는 가장의 무게나 사회생활의 고단함은, 여성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의도한 결과일 뿐이다. 이제라도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여성에게 더 많은 몫과 자리를 허락한다면, 당신들만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일도 가정으로부터 소외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를 멈추기 바란다. 남성과 여성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해 가든가, 아니면 지난날의 뒤틀린 영광에 사로잡혀 자위하든가, 이제 당신들이 선택할 차례이다.
오늘날 남성들에게 주어진 영광된 역사적 과제는 남근성과 마초성에서 탈피해 여성을 발견하고 여성과 만날 수 있는 남성성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일일 것이다. 언제나 당신들을 사랑하고자 해 왔던 애처로운, 그러나 꿋꿋한 여성들은 그 길의 초입에 미리 당도해 손 내밀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역자 나일등은 도쿄대에서 우에노에게 직접 배운 제자이다. 페미니즘과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기초지식만 있어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사례가 풍부해 읽는 재미가 있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소한 일본 사례들이 읽기를 더디게 할 수도 있다.
독자 편의를 위해서 인용된 문헌들의 자세한 서지사항을 생략한 것이 좀 아쉽다. 이 책의 이론적 근간이 된 이브 세지윅의 서지조차 누락된 것은 특히 그러하다. 해당 서적은 Sedgwick, E. K.(1993). Between Men: English Literature and Male Homosocial Desire. Columbia Univ. Press. 인 것으로 확인된다.
TV 시청 패턴은 시공간을 넘어선지 오래다. 시청자는 더 이상 거실에서, 안방에서 가족과 함께 고정된 수상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프로그램을 감상하지 않는다. 손에 쥔 모바일 기기를 통해 혼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만큼 소비한다.
500만 ‘대세’가 된 1인 가구만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TV는 혼자 본다는 통계가 나온다. 지상파나 유료방송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는 ‘제로 TV 가구’도 늘고 있다.
콘텐츠는 짧은 웹드라마나 유튜브 영상클립의 형식으로 TV 밖으로 뛰쳐나가고, TV에 남은 콘텐츠는 ‘혼자’화 한다.
TV가 ‘나홀로족(혼족)’을 반영하는 현상은 수 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개 1인 가구의 삶을 궁금해 하는 구경꾼을 겨냥하거나(<나 혼자 산다>), 싱글의 연애에 방점을 두거나(<나 홀로 연애중>, <불타는 청춘>), ‘혼자’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 가족을 만들어주는(<룸메이트>, <셰어하우스>) 식이었다.
1인 가구가 가장 지배적인 가구형태가 되면서 이들의 삶을 관찰하는 TV예능프로도 증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혼자’를 극복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프로그램들은 양상이 좀 달라졌다. 이들은 더 이상 ‘혼자’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니 물론 극복의 대상도 아니다. 이들은 이제 ‘혼자’라는 기본설정값 위에 다른 전략을 쌓아올린다.
거울면을 사이에 둔 ‘혼자’들
‘트렌디 드라마’라는 말의 뜻 자체로만 본다면 tvN <혼술남녀>야말로 이 시대의 트렌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에서 보듯, 드라마에는 최근의 뜨거운 트렌드-‘혼족’, ‘먹방’, ‘인스타그램’, ‘(수저)계급론과 생존’, ‘공무원 시험(과 청년실업)’ 등-가 모두 담겨있다.
노량진 강사들과 공시생들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에는 각자의 이유로 혼자 술을 마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tvN의 ‘혼술남녀’. 주인공은 항상 혼자서 술을 마신다.
매회 시작은 주인공 진정석(하석진)이 혼자 맛있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다. 노량진의 스타 강사인 그는 감정소모할 필요 없이 오로지 자신을 위한 “힐링타임”으로 “럭셔리 혼술”을 즐기는 지독한 개인주의자다.
반면 “노량진의 장그래”로 불리는 가난한 초짜 강사 박하나(박하선)는 반지하 자취방에서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며 맥주 한 캔에 과자 안주로 ‘혼술’을 즐긴다. 인기 없는 강사 민진웅(민진웅)도, 오랜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공시생 동영(김동영)도 밤이 오면 혼자가 되어 술을 마신다.
이들이 혼자 술을 마시는 장면들은 TV 밖 시청자를 향해있다. 진정석은 혼자 술을 마시며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고, 박하나는 그가 올린 음식 사진을 보면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시청자는 TV앞에 앉아 그들을 보며 맥주 캔을 따거나 야식을 먹는다. 어느 순간 우리는 진정석, 박하나, 민진웅, 동영, 그리고 TV 밖의 모든 ‘혼자’들이 거울처럼 서로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말하자면 드라마가 일차적으로 상정하는 시청자는 ‘혼족’이라는 현상의 구경꾼이 아니다. <혼술남녀>는 파편화한 ‘혼족’ 시청자 본인들과의 대면을 꾀한다. 이들은 종종 모니터 너머를 바라보듯 카메라 앞에 홀로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TV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점은 TV 모니터 안팎의 이들은 결코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TV는 본래 쌍방향 네트워크를 그 성격으로 삼지 않는다. 거기엔 채팅창도 별풍선도 없다. 그들은 말없이 거울면을 사이에 두고 홀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TV와 혼자인 시청자가 거울면을 사이에 두고 고요히 서로를(자신을) 바라보는 상상적 풍경은 올리브TV <조용한 식사>에서 극대화된다.
<조용한 식사>는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이 한 끼의 식사를 하는 장면을 조용히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프로그램이다.
올리브TV의 ‘조용한 식사’. 여기서는 연예인의 한끼 식사를 조용해 담아내는 것이 전부다. 시청자는 이를 지켜보면서 혼자 밥먹는 자신을 긍정하고, 또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에 대한 정서적 연대감을 느낀다.
한 회당 4~5명의 출연자가 나와 철길, 일식집, 공원, 미용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한 사람당 6~8분 동안 식사를 하는 장면을 정면에서 정직하게 비춘다. 별도의 내레이션도 코멘트도 없다. 홀로 경건하게 먹을 뿐이다.
<조용한 식사>를 보는 일은 단순히 개별 음식이나 장소, 식기에 대한 관심에서 나아가,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말할 때의 핍진한 심사, ‘먹는 기계’로서의 인간에 대한 자기혐오와 연민. 즉 때로 많은 이들이 ‘혼밥’을 할 때 느끼는 감정들이다.
그 때 이들은 TV 앞에, 모바일 기기 앞에 있을 것이며, TV 속 장면과 자신이 처한 장면이 단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연결되어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혼밥인 듯 혼밥 아닌 ‘따로 또 같이’의 전략
지난 주 첫 방송을 시작한 올리브 TV의 <8시에 만나>는 이 같은 TV 안팎의 풍경을 아예 TV 안으로 끌어들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장소의 연예인들이 원격 디바이스를 통해 화면 속 서로의 얼굴을 보며 혼자 밥을 먹는다는 구성이다. 단지 이 프로그램은 ‘원격 토크쇼’를 표방해 조금 시끄러워진다.
편성시간은 짐작한대로 오후 8시다. 제목 ‘혼밥할 땐 8시에 만나’는 명백히 TV 앞에 각자의 밥그릇을 들고 모이게 될 시청자를 향해 있다.
올리브TV의 ‘8시에 만나’. 여기서는 각자 혼자 밥을 먹으면서 모니터를 통해 소통한다.
출연자들은 각자의 ‘혼밥’ 사연이나 ‘혼밥력’에 대해 털어놓는다. 첫 회에 출연한 배우 류현경은 “혼자 있는데 같이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다. ‘따로 또 같이’ 혼밥을 즐기는 시간.
앞서 언급한 모든 프로그램들은 서로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실상 이 ‘따로 또 같이’의 전략 혹은 가치관을 품고 있다.
그들은 ‘혼자 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가치관 위에, 다만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제스처를 얹어둔다. 혼자임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혼자라는 연대의 제스처다.
물론 그것은 트렌드에 올라탄 얄팍한 위로의 상술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미디어에 의해 긍/부정 중 한 측면으로만 왜곡되어 있는 ‘혼족’ 트렌드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전략으로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붕괴된 공동체, 관계 단절의 절벽’에 선 사회문제의 한 차원으로서 혹은 단지 ‘새로운 세대의 쿨한 놀이 문화’의 소비주체로서의 혼족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개인이 바로 서는 징후로서의 혼족.
소통을 원하지만 내 삶이 전체에 의해 억압되거나 침범 당하고 싶지는 않은, 혼자인 동시에 서로 연결된 느슨한 공동체 안의 개인으로서의 혼족 말이다.
TV가 ‘혼자’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대중의 평균적인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4년 째 순항하며 1인 가구 프로그램의 원조 역할을 지키고 있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2013년 설 특집 파일럿 방송 때 <남자가 혼자 살 때>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프로그램은 애초 혼자 사는 남자들의 애잔함을 보여주는데 치중했었다. 이들은 ‘무지개 회원’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이들의 삶을 ‘궁상’으로 비추지 않으며, ‘무지개’ 회원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외로운 서로를 위로하는데 몰두하지 않는다. 김 반장이나 기안 84 등 혼자 사는 삶 중에서도 새로운 삶의 형태를 보여주거나 혼자 사는 다양한 이들의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전하는 방향으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고독, 왕따, 궁상’으로서의 혼자가 아니라 ‘자유, 개인, 다원’으로서의 혼자로, 그런 개인들의 헐거운 연대의 플랫폼으로 ‘혼자 보는 TV’는 진화 중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구원자에 관한 이야기다. (거칠게 요약하면) ‘네오(키아누 리브스)’라는 인물이 갑자기 ‘준비된 자’로 불리고, 컴퓨터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인류를 구원하는 영화다. 영화는 ‘네오’를 처음부터 신봉하는 사람들과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그를 의심하는 이들의 갈등을 부각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도 매트릭스의 ‘네오’를 기다린다. 기존 정치권 바깥의 구원자를 열망하고, 또 이에 실망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정당은 국가 지도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국민들은 희망을 주지 않는 기존 정치권을 불신하고 혐오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흐름을 발판 삼아 대선 주자에 명함을 내미는 ‘3지대형’후보들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박찬종•이인제 전 의원, 17대 대선을 앞두고 고건 전 총리,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등이 등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킨 안철수 의원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기존 정당의 밖이나 비주류에 있다가 갑자기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
대선을 1년 앞둔, 한국 사회는 또다시 네오를 호출하고 있다. 최근 내년 1월 귀국 의사를 밝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이야기다. 그를 두고 정치권의 계산은 복잡해지고, 유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있다. 그는 과연 ‘헬조선’의 ‘구원자’일까, 아니면 이전의 대선 후보들처럼 ‘바람’으로만 그칠까.
40년 외교관에서 ‘UN의 투명인간’으로
일단 그를 향한 국내외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모두 알다시피 그를 대표하는 이력은 정치인도, 대선후보도 아닌 외교관이다.
1944년 충북 음성의 한 작은 마을에서 출생한 그는 일찍부터 외교관을 꿈꿨다. 충주고 재학시절 미국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서 입상해 미국을 방문한 구는 존F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장래희망을 외교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 총장은 당시를 “외교관의 꿈을 다진 시기”라고 회상한다.
“위인으로 떠올랐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남정호 중앙일보 기자, 김영사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는 교과서에 나오기까지 하는 등 ‘위인’에 가까운 지위에 올랐다. 2006년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되고 2011년 연임에 성공하며 그에 대한 대한민국 일반의 평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이에 `대망론’이 불거진 뒤, 주요 여론조사 차기 대통령 선호도에서 그는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조사만 봐도 그는 최근 4개월 동안 평균 27%의 지지도를 얻으며 선두를 달리는 상황이다.
9월 26일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은 여야 13명 예비 후보의 다자 대결 가상 여론조사에서 27.4%로 선두를 달렸고, 유력한 야권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28.1%)와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14.5%)과의 3자대결에서도 38.5%로 1위를 기록했다. (9월23~24일 1000명 휴대전화 RDD(임의 번호 걸기)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응답률 13.1%)
게다가 충청권을 중심으로 ‘반딧불(潘)이’,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의 팬클럽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는 민주개혁성향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보수성향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각각 집권한 지난 20년 동안 강화된 정치혐오의 토양에서 ‘비여의도’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이 밑바탕을 깔고 있다. 보통 정치인에 대한 여론조사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여의도의 각종 논란에서 멀어질 때 높게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
여기에 유력한 친박 대선 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의 복잡한 사정이 반 총장 ‘대망론’을 부채질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5월 30일 “한국에서는 반 총장이 유엔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온도 차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처한 딜레마와 닮았다. 대선 후보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게 없지만 ‘준비된 자’로 호명되는 상황 말이다.
역대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제3후보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찬종, 이인제, 고건, 문국현, 안철수. 안철수의 도전은 아직 진행중이고, 이번에는 반기문이 제3후보로 등장할지가 관심사다. 제3후보의 부상은 한국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제3후보가 성공한 적은 없다.
이는 이전 3지대 후보들이 겪었던 상황과도 유사하다. 이제 본격적인 검증과 대선 레이스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그의 대망론이 이어질지 중간에 소멸할지 판명이 날 것이다. 이전 후보들은 그 과정에서 주저앉았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정치권의 각종 풍랑을 거치며 대선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현재 그의 강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일단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향후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이는 충청지역의 탄탄한 지지와 여권의 핵심 지지층인 50·60대의 지원을 업고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그는 야권의 유력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에 견줘 40~60대에서 강세를 보인다.
반면, 애매한 어법으로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아 적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 반반(半半)이란 별명과 아무리 곤란한 질문을 해도 이리저리 빠져나간다는 뜻인 ‘유만(기름 바른 장어)’이란 별명은 앞으로 벌어질 레이스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2014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은 뉴욕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첫번째 일정으로 UN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을 만났다. 반기문 대망론이 힘을 얻는 것은 친박 진영에 포스트-박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친박 후보라는 이미지는 반기문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또 친박세력의 지원을 받을 경우 중도층과 야권 지지층의 외면을 받아 ‘확장성’에 한계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대선을 1년 넘게 앞둔 지금의 전망은 무의미하다. 결국 누가 ‘시대정신’을 선점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냐에 승부는 달려 있다.
2000년대 이후 대선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타파’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 성공시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제시해 당선됐다.
그가 ‘네오’가 될지, 그저 미풍으로 스쳐 지나갈지는 내년 1월 귀국 뒤 행보에 따라 윤곽이 그려질 것이다.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던 17세의 학생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Joshua Wong)은 이렇게 외쳤다. 홍콩 중심부를 ‘노란 우산 물결’로 뒤덮었던 우산혁명은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체제에 대한 가장 대담한 도전으로 불렸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의 간선제 방침에 항의하는 홍콩시민들이 대거 거리로 몰려나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우산혁명’으로 불린 이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였다. (사진 출처: BBC)
2017년부터 홍콩 행정장관을 시민들이 직선으로 뽑더라도 중국이 원하는 2~3명의 인물 중에 고르게 하겠다는 중국의 결정이 기폭제가 됐다. 최루탄과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아내고 거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물결에 서구 언론들은 찬사를 보냈다.
79일간의 투쟁은 진정한 직선제를 쟁취하지 못한 채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됐다.
중국이 제시한 선거 안은 홍콩 입법회(한국의 국회 격)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2017년 행정장관 선거는 지금처럼 간선제로 치러질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게 된다면 무늬뿐이라고는 해도 직선제보다 더 후퇴하는 셈이다. 중국이라는 거인 앞에서 어떤 몸짓을 해 보이더라도 결국 바위에 달걀 치기가 아니겠냐는 체념이 나올 법도 했다.
우산혁명 주역들의 약진
그러나 우산혁명의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28일 홍콩 시민들은 우산혁명 1주년을 기념해 또 다시 거리에 모여서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2월에는 홍콩 중심가 중 하나인 카오룽(九龍) 반도 몽콕(旺角) 거리에서 대규모 폭력시위까지 벌어졌다.
어묵을 파는 노점상을 단속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고 해서 ‘어묵혁명’이란 별칭이 붙었다. 몽콕은 우산혁명 기간에도 가장 치열한 시위가 벌어졌던 곳이다. 시위대는 경찰관을 향해 벽돌과 쓰레기통, 유리병 등을 던졌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기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절정은 아무래도 지난 9월5일 진행된 홍콩 입법회 선거(한국의 총선 격)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산혁명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이 총선에서 홍콩의 자주를 주장하는 우산혁명의 주역들과 시민운동가 등이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투표율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고인 58%를 기록했다.
2016년 9월, 홍콩시민들이 홍콩 입법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포스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BBC)
현지 언론인 <빈과일보>의 분류에 따르면, 모두 70석 가운데 여권이라 할 수 있는 친중파(건제·建制)가 40석을 차지했다.
야권 중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전통의 범민주파(泛民)가 23석, 우산혁명의 주역을 포함해 홍콩의 자주를 강조하는 신생 자결파(自決)가 6석, 범민주와 자결의 중간파가 1석을 차지했다. (국내 언론은 주로 친중파 40석, 범민주 22석, 자결파 8석으로 보도했다) 친중파와 범민주파가 양분해 왔던 입법회에 자결파라는 제3세력이 탄생한 셈이다.
노란색-자결파, 파란색-범민주파, 붉은색-친중파. 이번 총선에서 우산혁명의 주역들로 이뤄진 자결파들이 8석의 의석을 얻었다. (이미지 출처: South China Morning Post)
중요 법안에 대한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분의 1선(24석) 이상을 확보하는 선전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이전 친중파의 의석이 43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범야권의 의석은 고작 3석 정도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홍콩의 특이한 선거제도 탓에 70석 가운데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지역구 후보는 35석에 불과하고, 간선·비례 직능대표가 35명인데 대부분 친중파로 채워지는 탓이다.
지역구 선거로만 보면 이번 선거의 진짜 의미는 범민주파의 의석이 줄어든 만큼 자결파 의원들이 늘어난 것, 즉 야권의 세대교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새로 입성한 자결파 의원들의 면면이 이래저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참고로 자결파라고 해서 모두 중국으로부터 즉시 완전 독립을 주장하는 급진파는 아니다. ① 독립은 비현실적이지만 일국양제(一国两制·한 나라 두 체제, 1997년 홍콩은 대영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됐지만 50년 동안은 다른 정치, 경제, 사법 체제를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를 채택하면서 약속한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 시민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만은 지켜라(자결·self-determination) ② 홍콩은 내륙 중국과 구별되는 또 다른 본토로서의 홍콩이며, 본토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본토·localism) ③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자(독립· pro-independence) 등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홍콩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야”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아무래도 우산혁명 주역들이 만든 정당 ‘데모시스토(香港衆志·Demosisto)’를 이끄는 네이선 로 주석(23·羅冠聰·Nathan Law)이었다. 그는 6석이 걸린 홍콩섬(港島) 지역구에서 2위로 당선됐다.
네이선 로(Nathan Law)
로 주석은 1991년 28세로 당선된 제임스 토 의원의 기록을 25년 만에 깨고 ‘최연소 입법회 의원’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로 주석은 2014년 홍콩의 대학학생회 연합체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학련)의 상무위원 겸 홍콩 링난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우산혁명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중·고교생들의 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위원장 조슈아 웡과 함께 3m 높이의 정부청사 철문을 넘어 청사 건물 앞 공민광장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가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후추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강경 진압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우산혁명이 촉발됐다. 로 주석은 이후 진행된 우산혁명 시위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로 주석은 지난해 학련을 이끄는 비서장으로 선출됐다. 우산혁명 1주년 기념집회에서 “정부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식에 사회가 표출한 실망감과 분노를 잘 이해하고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거리 투쟁 대신 정치권 활동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웡과 함께 데모시스토당을 결성해 총선에 나섰다. 우산혁명 당시 공민광장 점거 시위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며 한때 출마가 위태로워지기도 했지만 징역형을 면해 출마가 가능했다.
조슈아 웡(Joshua Wong) (오른쪽)
로 주석과 함께하는 데모시스토당의 웡 비서장은 15살인 2012년 학민사조를 결성했다.
그는 홍콩 당국이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도록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교육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반대운동에 나서 저지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19세가 된 웡 비서장은 나이제한에 걸려 총선에 출마하지는 못했다. 입법회 의원의 출마 제한 나이는 21세다.
웡은 “중국 인민대표 회의 대의원 자격을 얻기 위한 최소 나이도 18세인데 말이 안 된다”며 홍콩 고등법원에 소장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로 주석과 웡 비서장 등이 결성한 데모시스토당은 홍콩의 독립을 직접 주장하지는 않는다. 독립이든 아니든 홍콩 사람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초 여론조사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왔지만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에 몰리면서 2위로 도약한 것으로 해석됐다. 로 주석은 새 입법회가 개원하면 홍콩의 미래를 결정할 국민 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혈 시민운동가의 당선
이번 선거에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시민운동가 에디 추(38·朱凱迪·Eddie Chu Hoi-dick)가 꼽힌다.
에디 추(Eddie Chu Hoi-dick)
신계서(新界西) 지역에 출마한 추는 무소속으로 나왔음에도 8만4121표를 얻어 지역구 당선자 35명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홍콩 언론은 그에게 ‘표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개표 결과 당선이 확정되자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감격에 겨운 듯 벽에 기대 울기도 했다. 선거 자금도 부족해 많은 홍보포스터를 손으로 그려 붙였을 정도로 열악했던 유세 과정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추는 홍콩중문대학을 졸업한 뒤 이란 테헤란 대학에서 페르시아어를 공부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 페르시아어권 나라에 대한 뉴스를 홍콩 유력 일간지인 명보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로도 일했다.
본격적으로 환경 보호와 문화 보존 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6년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퀸스피어와 스타페리 부두가 매립 사업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면서부터다.
2009년에는 광저우-선전-홍콩을 잇는 고속철도 건설로 원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그는 토지정의연맹(Land Justice League)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추는 홍콩의 독립은 홍콩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의 활동은 홍콩의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현장을 누빈 그이지만, 현재 그와 가족에게는 더한 위협도 가해지고 있다. 추의 행보가 지역구인 신계서 지역의 원주민들의 이권을 대변하는 향의국의 큰 반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에서는 심각한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계 지역에 1만7000호의 공공주택을 더 지으려고 했다가 4000호 수준으로 멈추고 말았는데, 추는 이것이 정부와 향의국, 신계 지역 삼합회 등이 결탁한 결과가 아니었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다 그는 선거 기간 중 향의국 유관 폭력 조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경찰로부터 신변 보호까지 받게 됐다.
그런데도 그는 당당히 소신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신계 지역으로부터 오는 정치적 긴장과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입법회의 첫 번째 의제로 올릴 것이다.”
“자치가 아니라 독립”
데모시스토보다 더 급진적으로 평가되는 ‘청년신정(靑年新政·Youngspiration)’을 결성한 렁충항(30·梁頌恒·Sixtus “Baggio” Leung) 위원장과 야우와이칭(25·游蕙禎) 후보도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다.
청년신정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물과 식량의 중국 본토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렁충항(Sixtus “Baggio” Leung)
렁충항은 홍콩시립대 총학생회장으로 우산혁명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진압되고 한 달 뒤 그는 청년신정을 만들었다. 그는 선거 종료 뒤 이렇게 말했다.
“우산혁명의 실패는 나와 다른 참여자들에게 한 가지 확신을 심어줬다. 베이징과의 급진적 결별이야말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국양제는 이미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야우와이칭은 청년신정의 렁충항과 함께 청년신정의 주요 멤버다. 그녀는 이번 선거에서 홍콩 입법회의 최연소 여성 의원이 됐다.
야우와이칭(Yau Wai-ching)
링난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했고 중국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던 그 역시 우산혁명 참여를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지방의회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아쉽게 친중파 후보에게 패배했던 그녀는 이번에 범민주파 거물 의원을 제치고 당선됐다.
야우와이칭은 “나 홀로 있을 때 내 힘은 적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청년신정이라는 팀이 될 때, 나아가 홍콩 인민이라는 팀이 될 때 우리의 힘은 매우 커질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우리가 오늘 흘린 땀과 피가 열매를 맺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폭력투쟁도 불사하는 가장 급진적인 독립파로 꼽히는 열혈공민(熱血公民·Civic Passion)의 웡잉탓(黃洋達·37)도 의원에 당선됐다. 열혈공민은 중국 정부가 홍콩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관련 조항을 홍콩기본법(홍콩의 헌법에 해당)에서 삭제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웡잉탓(Cheng Chung-tai)(오른쪽)과 라우시우라이(Lau Siu-lai)
홍콩이공대 강사인 그는 우산혁명 참가 뒤 중국 본토인의 ‘병행수입’ 반대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병행수입이란 중국인들이 홍콩에 들어와 분유, 기저귀, 화장품 등의 물건을 사재기 한 뒤 중국에 되팔라 차익을 얻는 행위다.
웡잉탓은 가르치는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학생들을 선동했다며 고소당하기도 할 정도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논쟁을 피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선거 전 라디오 토론에 나와 “홍콩 정부에 대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여전히 그는 홍콩 사람들이 적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역시 홍콩이공대 강사인 라우시우라이(40·劉小麗)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범민주파 진영 중에서는 가장 많은 득표를 하며 당선됐다. 그녀는 라디오와 TV 토론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입지를 굳혔다.
성향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쪽인데 홍콩의 완전한 독립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보고 지금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의회 활약 기대…중국 압력 큰 변수
장외 투쟁의 열기가 현실 정치로 수렴되는 일이 드문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홍콩의 이런 분위기는 부럽기만 하다. 각 선거구에서 득표순으로 정해진 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도 하다. 물론 새롭게 입법회에 입성한 젊은 얼굴들이 얼마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홍콩의 젊은 세대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산혁명의 배경에는 날이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있는 젊은층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 자칫 홍콩이 중국 내의 이름 없는 삼류도시로 몰락해버릴 것이라는 절박감 등이 내재해 있다.
대다수의 홍콩 젊은이들은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국양제라지만, 홍콩은 중국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산혁명의 ‘센트럴을 점령하라’ 구호는 겉으론 실패로 보였지만 홍콩 사람들의 마음을 이미 상당부분 점령하고 말았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중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선거 결과를 보고 홍콩을 더욱 옥죌 가능성도 있다. 중국 국무원 홍콩 마카오 사무판공실은 선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선거 무대를 이용해 ‘홍콩 독립’을 선전하는 것은 중국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이번에 당선된 입법회 의원들이 중국 법률과 홍콩 법률에 맞게 직무를 수행해주기를 바란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홍콩의 열기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고 지난달 28일 저녁에는 우산혁명 2주년 맞이 집회가 열었다. 참가자들은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 도입 등을 또 다시 요구했다.
에디 추는 당선 직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콩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믿어야 한다.”
정치인·지식인 사이에서 헌법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의 개헌 찬성률도 높다. 개헌에 관한 한 여당과 야당의 차이, 진보와 보수의 대립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헌법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왜 그런가?
먼저 우리는 개헌에 합의할 수 없다. 의견은 제각각이고, 어떤 의견이든 무시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론자 사이에서도 정부형태만 고칠지, 전면 개정할지 통일된 견해가 없다. 전면 개정하면 너무 많은 쟁점 때문에 갈등하다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정부형태만 바꾸면 기본권 확대와 같이 중요한 문제를 반영할 수 있는 30년 만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문제를 곧바로 개헌의 문제로 등치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막으려면 정당체제를 손봐야 한다. 복지를 확대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경제, 사회 정책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헌법이 잘못돼서 민주화 이후 30년이 궤도 이탈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민주화의 성과를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의지와 역량에 부족함이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형태만 바꾸기로 의견이 일치해도 마찬가지다. 이견은 여전하다.
새누리당의 이정현·유승민은 4년 중임제를 주장한다. 김무성은 이원집정부제, 남경필·원희룡은 분권형 대통령제, 정병국은 내각제를 지지한다. 야당의 문재인은 4년 중임제, 박지원은 분권형 대통령제, 김부겸은 이원집정부제, 김종인·천정배는 내각제를 선호하고, 안철수·박원순은 특별한 의견이 없다.
이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정부형태에 합의해도 문제는 남는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중임제를 제안했다. 당시 정가는 개헌에는 부정적이었지만 4년 중임제는 선호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국회의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중임제,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3개의 대안을, 국회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복수안을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때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분권형 대통령제 단일안을 마련했다.
요즘 추세는 중임제보다 분권형 대통령제다. 노무현 정부 때 중임제로 개헌했다면, 다시 개정하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동안 별로 조명받지 못했던 내각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선호도는 세월 따라 변하고, 우리는 무엇이 최선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개헌의 목적도 분명하지 않다. 권력분산 역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동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분산이 정국 교착, 국정 마비를 초래한다. 권력집중, 필요할 때가 있다. 분산과 집중은 선악 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성공적 국정을 위해 어떻게 조화시키고 균형을 이루느냐의 문제다.
권력 집중과 분산은 정부형태가 아니라 정당체제의 종속변수다.
본래 권력집중형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국회의 다수파가 정부를 장악하는 내각제다. 내각제가 권력분산형으로 보이는 이유는 내각제 채택 국가들이 대체로 다당제 효과가 있는 비례대표제를 도입, 여러 정당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분산을 원하면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말까지 선거구를 조정하라고 판결했을 때가 기회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양당제를 강화했다.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편만 해도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정치개혁에는 소홀한 정치인들이 새 헌법 이야기만 하고 있다.
새 헌법을 만들면 좋은 세상이 올까? 그게 궁금하면 세계 최고의 바이마르 헌법을 따랐다는 제헌 헌법의 노동자 이익 균점권이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1987년 경제민주화에 복지 조항까지 명시했지만 30년간 어떠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현 대통령제가 미국식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장점만 살렸다는데도 왜 불만인지 돌아봐야 한다.
흔히 87년 체제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극복 대상으로 헌법을 지목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87년 헌법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낡은 사회·경제 체제, 왜곡된 정치구조를 깨려는 의지와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을, 신성한 언어가 넘치는 헌법에 전부 물을 수는 없다. 우리 삶이 나아졌다면 그것 역시 헌법 속 우아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열정과 현실을 개선하고자 했던 피나는 노력 때문이다. 삶은 헌법보다 크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복지를 확대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고 싶으면 헌법이 아니라 사회·경제 정책을 바꾸고, 그게 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 검찰을 바로잡고 싶으면 검찰개혁을, 재벌체제를 고치려면 재벌개혁을 해야 한다.
헌법 개정은 아니다. 헌법에는 해결책이 쓰여 있지 않다. 불립문자(不立文字). 헌법에 쓰이지 않은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87년 체제는 우리가 스스로 가둔 공간이다. 헌법이 우리를 가둔 적이 없다. 방문은 잠겨 있지 않다. 방 안에 갇혀 있다는 공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다. 왜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가?
박근혜 정권은 ‘성장과 안보’ 두 신화로 포장된 한국 보수우익의 실체를 드러낸 점에서 큰 역사적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오히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속살을 백일하에 들추어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최고 권력의 요구로 미르 재단, 케이(K)스포츠 재단을 설립했다가 강제 모금 의혹이 일자 갑자기 해산 결정을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백남기씨 사망, 사인 진단, 부검 시비에 연루된 경찰, 검찰과 서울대병원의 대응들에 그것이 집약되어 있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의 ‘근대 국가’의 세 기둥, 즉 근대 관료조직, 시장경제, 그리고 시민사회가 뼈대 없는 껍데기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청와대의 요구에 재벌은 일사분란하게 돈을 모았고, 최고의 전문가라는 대통령의 주치의는 명백한 사망원인을 바꿔치기 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비민주적 행태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 집단의 자율 규범과 전문가의 직업 윤리를 쉽게 내뺑겨치는 모습이다. 그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5시간 만에 작전하듯이 재단 설립을 인가한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이사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수십억원의 회삿돈을 한날한시에 입금한 재벌들, 그리고 문제가 되니 모든 자료를 파기해버리는 전경련의 모습은 거의 범죄집단을 연상케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조직인 정부, 가장 막강한 사조직인 전경련과 재벌 기업이 권력자의 요구에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거의 왕조국가이거나 전체주의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그들 간의 은밀한 먹이사슬이 얼마나 강고한지도 짐작하게 해준다.
한편 경찰이 시위 농민에게 물대포 ‘직사살수’를 해서 식물인간 상태를 만들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 사망하니 검찰은 그가 ‘외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려 하고, 한국 최고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은 그가 ‘병사’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는 경·검과 더불어 전문가의 직업윤리도 일거에 무너진 어이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변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권력의 요구 앞에 한국에서 가장 힘 있는 공조직과 사조직이 도구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정말 허탈하고 할 말을 잊는다.
과거 독재권력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검찰, 보수언론을 사유물로 생각하면서 범죄를 종용했고, 그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뭉갰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역대 어떤 대통령이나 정부기관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규정과 절차를 어기지는 않았고, 이렇게 사건을 은폐하고 손바닥으로 달을 가리는 식으로 둘러대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권 덕분(?)에 우리는 한국이 아직 근대 국민국가의 초입에도 제대로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일본에서 전쟁범죄의 기둥인 재벌을 해체하였으며, 독일에서는 나치 학살 범죄자들을 처벌했다. 그래서 독일과 일본은 민주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나라의 살아남은 극우세력과 대기업이 아무리 노골적인 권력욕과 이윤추구 욕망을 드러내더라도, 정당, 관료, 법, 시민사회가 그것을 저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의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의 정치도 엉망이다. 그래도 국익을 위해 일하고 법을 존중하는 엘리트 집단과 공조직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독재 시절의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한 한국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에는 애국심과 직업적 자존심을 갖는 우익 정치세력, 고위 관료, 기업가, 전문가가 거의 없다. 이게 진정한 국가 위기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서재필은 “나라가 망하려면 애국자들을 먼저 죽인다”고 말했지만, 박근혜 정권과 친박세력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여당, 사법부, 관료집단, 공기업 등에서 소신과 양심을 가진 사람을 모두 내쫓았고, 출세욕이나 자신의 약점 때문에 권력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할 사람들만 골라서 기용했는데, 그들의 생존 본능으로 국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모든 일이 대통령과 청와대로 통하면 관료, 시장, 시민사회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이들 기관의 자체 매뉴얼이나 규정은 권력의 요구 앞에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오늘의 한국인은 썩은 세 기둥으로 지은 집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한국이 왜 40년 전 유신시대, 아니 120년 전의 왕조시대로 후퇴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대선과 정권교체에 답이 있지 않다. 국가의 세 썩은 기둥을 다시 세워야 한다.
“내년은, 정치권에서 맘대로 만든 객관식 답안 중에서 국민들이 욕을 하며 차악을 고르는 기성정치 관행이 철퇴를 맞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든 국민들이 서로 소통 연대하며 공통의 주장과 요구를 만들어 관철해낼 것입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혁명적 변화’의 시작이고 중심입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내년 대선에서 야권의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최근 그의 지지율도 가파르고 오르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로 향하는 이재명 성남 시장의 기세가 무섭다.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집단의 이합집산이 아닌 국민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이 시장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최근 석 달 사이 지지율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야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한국갤럽의 10월 정기조사에서 처음으로 5%대의 벽을 넘어섰다. (자료: 한국갤럽)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3일 내놓은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지지율 5.2%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5.1%)을 따돌리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5위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10월 정기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지지율 5%의 벽을 넘어서며 전체 5위를 기록했다. 이 시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2위 군을 형성하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는 아직 격차가 적지 않지만,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나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 여야의 거물 정치인은 모두 따돌렸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 6년 만이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가 예산삭감이라는 칼날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 차별화된 복지정책을 관철시켜 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 시장에게 다윗의 다섯 물맷돌이 돼 주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 속에 대선 흥행의 불쏘시개 역할로 그칠지, 뒤집기 한판을 펼치며 반전 드라마를 써낼지 이 시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붉은 진달래에 가슴 시렸던 ‘공돌이’
이 시장은 초등학교 끝으로 공장 노동자가 됐다. 가난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가 삶을 끌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했다.
1964년 경북 안동의 한 산골에서 산전(山田)을 일구며 생활하는 빈농의 집에서 태어난 이 시장을, 지독한 가난은 내내 따라다녔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부모님이 7남매를 데리고 경기 성남의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으로 옮겨온 뒤 이 시장은 목걸이 공장, 고무 공장을 거쳐 상대원공단의 냉장고 공장 ‘공돌이’가 됐다.
1970년대 성남1공단의 모습. 1970년 광주대단지 항쟁을 겪었던 정부는 성남 이주 철거민 고용을 위해 1974년에 제1, 2공단, 1976년에 제3공단을 준공됐다. 이 공단은 성남지역에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재명도 어릴 시절, 이곳 공장에서 일했다. (자료: 성남시)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이 시장은 “식어버린 밥과 딱딱하게 굳은 오뎅조림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일했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공장 앞산에서 온 산을 뒤덮은 채 무더기로 붉게 피어난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눈앞에 펼쳐진 붉은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여느 공돌이처럼 시커먼 공장철문을 넘을 용기는 내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리는 사고로 평생 왼팔이 구부러지는 장애까지 안았다. 열일곱 사춘기에 접어들자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희망 없는 현실을 탓하며 두 번이나 스스로 삶을 등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그는 죽을 힘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공부했고, 중ㆍ고교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며 받았던 월급 8만원보다 많은 매달 20만원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공장에 다니던 다른 형제들의 공부도 도울 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맛본 ‘성공’이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시장은 “판•검사가 돼 이제 정말 잘 먹고 잘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출세길 버리고 인권변호사 투신
잘 먹고 잘살겠다던 다짐은 198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 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가입한 노동법학회에서 변호사이던 노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저렇게도 살 수 있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한다.
88년 연수원에서 잘릴 각오로 ‘정기승 대법원장 인준 반대 성명서’를 쓰게 되면서 평생의 힘이 되는 동지들도 생겨났다. ‘87년 체제’가 만들어지던 격변기이던 당시 연수원 동기이던 문병호 국민의당 전 의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뜻을 같이 했다.
연수원을 마친 1989년 이 시장은 판ㆍ검사 임관이라는 미래가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사실상의 고향인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문 전 의원과 정 의원도 각각 인천 부평, 경기 의정부로 갔다.
이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혼자였다면 두렵고 불안했을 텐데, 동료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연수원 시절을 회고했다.
이재명은 변호사시절이던 2002년 1월, 이른바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대책위를 이끌면서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과 파크뷰 아파트 건설 시행사 에이치원개발 홍원표 회장, 고위공직자, 검찰 간부간에 ‘친분관계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녹음테이프를 폭로했고, 이 일로 고초를 겪었다.
이 시장은 서민을 위한 무료변론, 양심수와 시국사건 변론 등에 나서는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에서 힘을 쏟는다. 1995년 훗날 성남참여연대로 이름을 바꾼 성남시민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시민운동에도 투신했다.
2002년 분당 파크뷰 개발 특혜 비리를 언론에 폭로했다 구속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이 시장은 “소년노동자의 기억은 저의 근육에 박히고 힘줄에 스미고 핏줄로 흘러 오늘날 저를 밀어가는 힘이 됐다. 공장 프레스에 눌려 더는 펴지지 않는 굽은 팔을 펴보려던 그 상처 가득한 소년노동자의 마음이 노동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대우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에 저를 서게 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정치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는 2004년 성남 시립의료원 건립 운동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국 최초로 주민이 발의한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되는 것에 항의하다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배된 적이 있다”며 “(숨어 있던)교회 지하에서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시장이 2014년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공사 기공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 시장은 10년 전,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된 것을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직접 시장이 돼 10년 전의 꿈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 시장은 2010년 당선된 뒤 다짐대로 성남 시립의료원 건설을 시작했다.
중앙정부에 맞서는 복지 지자체장
이 시장은 재선을 하는 동안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을 내놓으며 복지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잇단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거는 중앙정부와 맞서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대중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청년배당 등에 대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맹공을 퍼부을수록 정치인으로서의 이 시장의 주가는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재명 시장은 2016년 1월,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년배당’을 성남지역 각 동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 시장이 손에 쥔 무기는 SNS다. SNS는 보수언론의 허위보도, 왜곡조작에 해명하고 싸울 유일한 보호수단이라는 게 이 시장의 생각이다. 여느 자치단체장과 달리 SNS를 통해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20여만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정책 논란이 한창이던 때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한다고 전 국민에 사기 쳐서 대통령이 되고는 국가 빚은 사상최대로 늘리고 꼼수 서민증세에 애들 분유값 지원까지 줄이고 있다. 시기질투심으로 유치한 ‘증세 없는 복지 금지법’ 만들 생각은 버리고 ‘공약 이행 강제법’이나 만드는 게 어떤가”라고 일갈했다.
SNS상에서는 이 시장의 발언을 속 시원하다는 뜻의 ‘사이다’로 추켜세우며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시장은 SNS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았지만, 그 보다 영리하고 치밀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재명 시장만큼 찬사와 비판을한 몸에 받는 정치인도 드물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기대를 받고 있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내년 대선 레이스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사진은 2015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정부 복지후퇴 저지 토크콘서트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왼쪽부터) 박원순, 문재인, 이재명. (사진 출처: 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71791)
하지만 내년 대선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당장은 정권 교체를 위해, 축구로 치면 야권 핵심 지지층의 욕구를 대변하는 중앙수비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는 일인경기가 아닌 집단경기”라며 “팀원으로서 팀 안에서 각자 역량과 소질에 맞는 역할을 나누어 맡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다. 팀이 이겨야 MVP도 있다”고 적었다. 중앙수비수로서 차기 대선이라는 큰 경기를 대비한 조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이 당장은 중앙수비수로 시작하지만 장기간 이어질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길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장은 “지는 것도 습관이다. 철저하게 준비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일단 준비를 잘해야 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 뭘 하더라도 대충하지는 않을 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대법원, 고등법원, 판사 등 우리들은 사법부를 상당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법 행정을 관할하는 대법원 산하 기관인 법원행정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그리하여 잘 보이지 않는 법원행정처는 사실 권력기관 중의 권력기관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전형이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시, 감독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체 법관과 전체 재판을 획일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사법 관료화의 핵심으로 부상한 법원행정처는 매두 독특하고도 기이한 기구이다. 법원행정처는 대법관으로 상징되는 사법부 수뇌부를 충원하기 위한 인력풀이라는 의미를 넘어, 대법관으로서의 ‘승진’을 기회로 구래로부터 형성되어온 내부적 불문율이 세습되는 통로로 작용하기도 한다. 즉 사법부의 엘리트를 집합시키고 그 능력을 활용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 수행과 더불어 그들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제2의 사관학교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결국 법원행정처는 인사관리실이나 기획조정실이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법원 전체를 통제하는 강력한 중앙을 구축시키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법부란 조직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곧 심판기관이요 사법부이다. 따라서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곧 사법권의 독립이다. 특히 법관의 ‘승진’이라는 개념은 법관의 직무와 기본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법부는 군사 독재시대의 사법부의 틀을 유지하면서 상급자에 의한 주관적 근무평정을 전제로 한 피라미드식 다단계 승진구조로 인하여 법원 내부에 관료주의의 폐단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관료주의는 독립적인 법관의 판단에 장애를 일으킬 위험 내지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과 양립할 수 없다.
소수 사법 엘리트에 의한 시민의 통치는 민주주의의 틀에 명백하게 위배된다. 법치란 결코 법치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민주주의 실현의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법치여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법원행정처는 보이지 않는 사법 권력으로서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 다른백년연구원은 <정책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개혁해야 할 정책 과제를 산업, 금융, 고용/노동, 외교/안보, 안전, 관료제/선거제도 등 분야별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 글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다른백년연구원은 열린 공간, 열띤 토론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백년, 새로운 사회를 위한 담론을 기획해나갈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11일, 갤럭시노트7의 생산 중단을 공시했다. 갤럭시노트7은 8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후에 홍채인식 등 최신기술을 장착한 스마트폰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이른바 대박을 터트릴 조짐도 보였었다.
갤럭시노트7은 하이엔드 시장에서 아이폰을 견제할 신제품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잇단 발화 사건으로 출시된 지 2달 만에 단종되고 말았다. 사진은 지난 8월,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새로 출시된 갤럭시노트7을 설명하는 모습.
그러나 화려한 출시는 두 달만에 ‘단종(斷種)’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갤럭시노트7의 참담한 실패…삼성 리스크 대비해야
출시 직후부터 갤럭시노트7의 발화 사례들이 국내외에서 보고되었는데, 급기야 9월 2일에 삼성전자는 배터리 결합을 공식 확인하고 전량 교환을 발표했다. 이어서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공식 리콜을 발표했고, 다른 세계 각국의 규제당국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결함이 있다던 삼성SDI의 배터리를 교체한 새 기기를 9월 19일부터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 배터리를 장착한 갤럭시노트7이 또 다시 발화하는 사건이 국내외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10월 9일에 버라이존, AT&T, T-모바일 등 주요 미국 이동통신사들이 갤럭시노트7의 판매 및 교환 중단을 발표하였고, 발화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기도 전인 11일에 삼성전자는 단종 조치라는 극약 처방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초 발화 사건 이후 밧데리 문제라며 전량 리콜을 실시했다. 그러나 밧데리 문제를 개선한 제품에서도 다시 발화사건이 발생하자 결국 단종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첫 발화 사건이 있었을 때,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었지만, 성급한 결정으로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http://macguyver.kr/1525)
갤럭시노트7의 단종으로 삼성전자는 약 7조원의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 7조원은 판매된 갤럭시노트7의 교환이나 환불 그리고 단종 결정으로 인한 미판매 손실 등 갤럭시노트7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손실일 뿐이다.
즉, 갤럭시노트7 사태로 인한 삼성전자에 대한 소비자 신뢰의 저하와 이에 따른 향후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 감소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1년에 20조~30조원의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7조원의 손실은 감당하지 못 할 수준의 타격은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이 삼성전자의 후속 스마트폰 모델의 판매에 미칠 영향이다.
결국 갤럭시S8이 언제, 어떤 사양으로 출시되고 이 새로운 제품에 대한 소비자와 시장의 반응이 어떠할 지가 관건인 것이다. 만약 갤럭시S8이 또 다시 결함을 보이거나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의 모바일 부문의 미래는 매우 암울해진다.
갤럭시노트7 사태는 삼성전자의 몰락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삼성 리스크(risk)를 정부가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노키아의 몰락’ 전철 밟을까
삼성전자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다. 시가총액이 2016년 4월 8일 종가기준으로 약 203조원으로, 2위와 3위 기업인 한국전력과 현대자동차보다 6배 이상 많다.
삼성전자는 또한 삼성그룹이라는 국내 최대 재벌의 핵심 계열사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약 303조 원이고 자산총액은 약 623조 원인데, 이는 GDP 대비 20.4%와 42.0%에 각각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60여개의 계열사로 구성된 삼성그룹 매출액의 약 46%, 당기순이익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부문 덕분에 세계적 기업이 된 삼성전자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에서의 성공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2012년 휴대폰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는데, 2012년과 2013년에 휴대폰 부문은 삼성전자 매출의 50% 전후 그리고 영업이익의 70%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휴대폰 부문의 영업이익이 급감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도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까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절적 혁신’의 세계…어떤 기업도 망할 수 있어
노키아는 1990년대 초에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들어, 1998년에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0년까지 세계 1위였던 노키아는 불과 3년 만인 2013년 11월 19일에 휴대폰 사업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13년간 세계 정상에 있던 노키아가 왜 이처럼 몰락한 것일까? 1위 사업자로 자만하고 안주했던 것인가? 아니다!
노키아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였다. 그랬던 노키아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몰락하고 말았다. 휴대폰같은 최첨단 산업일수록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뒤엎는 ‘창조적 파괴’, ‘단절적 변화’가 발생하며, 이전의 환경에서 성공한 기업일수록 단절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역설이 생겨난다. (이미지 출처: http://m.blog.naver.com/dexterlee/220426483749)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이라는 신기술의 파고를 타고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가 된 노키아는 자금력이 충분한 선도 기업이 그 지위를 유지하려면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복잡하고 광범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R&D) 투자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과감한 혁신을 선도할 별도 조직을 만들었다. 또 신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거나 다른 기업들과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그 결과, 노키아는 스마트폰의 도래와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스마트폰을 가장 먼저 만들었으며, 휴대폰 시장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콘텐츠·서비스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앱스토어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키아는 결국 몰락했다. 노키아의 몰락은 한마디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과정이었다.
노키아의 마지막 CEO 스테판 엘롭(Stephen Elop). 그는 2010년 노키아의 CEO가 된 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합병을 성사시킨 뒤 2014년 물러났다. CEO에서 물러나는 마지막 연설에서 그는 “우리는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망했다(we didn’t do anything wrong, but somehow, we lost)라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일어나는 단절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 출처: http://theusbport.com/nokia-ceo-stephen-elop-leave-microsoft/573)
노키아는 스마트폰의 도래를 예측했고, 무선 인터넷이나 콘텐츠·서비스에 대한 잠재적 수요를 자신들의 기존 휴대폰의 틀 안에서 ‘점진적’ 혁신으로 수용하고자 했다.
이에 반해 애플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으로 기존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단절적’ 혁신을 꾀했다.
사실 애플의 아이폰이 도입된 직후에도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이 판을 뒤집는 혁신이라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도 인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기존 휴대폰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올리고 있던 노키아가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단절적 혁신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합리적 선택이었다.
도전 기업에 의한 단절적 혁신이 선도기업을 도태시키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산업과 국가를 불문하고 IT 분야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비즈니스 컴퓨터의 개척자고 지배적 기업이었던 IBM은 PC혁명이라는 단절적 혁신으로 몰락했으며, PC 시대의 절대강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쇠퇴했다.
컬러 TV의 최강자였던 소니는 디지털 TV라는 단절적 혁신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아날로그 휴대폰 1위 사업자였던 모토롤라도 2세대 디지털 휴대폰의 선도기업이었던 노키아도 몰락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주자인 애플과 삼성전자도 예기치 못한 단절적 혁신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경직된 조직문화가 몰락 앞당겨
그런데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는 이런 단절적 혁신이 일어나기 이전 삼성전자가 몰락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사실 갤럭시노트7의 단종 사태는 2008-2009년 사이에 노키아에서 일어난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고 구글을 중심으로한 안드로이드 연합이 결성되면서,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강한 압력을 받았다.
또한 중국, 인도 등의 기업들의 추격으로 이 당시 노키아가 가장 높은 이윤을 내고 있던 신생국가 시장에서 중간 가격대의 피처폰 수요도 급감하고 있었다.
피처폰의 실적 부진과 스마트폰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한 노키아의 최고경영진은 노키아 중간관리자들에게 아이폰의 앱스토어에 필적할 수 있는 노키아 앱스토어인 오비를 빨리 개장하라고 지시했는데, 중간관리자들은 지시받은 날짜를 맞추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도 할 수 있다고 보고했었다.
노키아의 중간관리자들 역시 성공한 기업의 자기 영역에서 작은 왕국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지시한 날짜를 지키기 어렵다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앱스토어 오비는 두 번의 연기 끝에 21개월만에 늦장 개장되고, 노키아는 소비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 이 사건은 노키아의 몰락을 재촉한 계기가 되었다.
삼성전자 역시 최근 중국 제조사들에게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잠식당하고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의 아이폰과 힘겨운 경쟁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경영진이 새로운 기능을 가진 새 모형을 경쟁사인 애플보다 빨리 출시하라고 중간경영진에게 독촉했을 개연성이 높다.
또 중간경영진은 충분한 품질 검사를 마치지 않은 제품을 제시된 날짜에 맞춰 무리하게 출시했을 것이다. 그 결과 전대미문의 스마트폰 발화 사건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더 심각한 것은 발화 원인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 삼성SDI의 배터리 문제로 신속히 결론내리고 새 기기를 곧장 시장에 내놓았던 데 있다.
최소한 노키아의 기술진과 중간관리자들은 준비가 되지 않은 제품을 출시하도록 거짓보고를 하지는 않았음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진과 기술진 및 중간관리자 사이에는 노키아가 몰락할 당시보다도 더 심각한 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의심하게 만든다. 만약 삼성전자가 몰락하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삼성전자가 망해도 한국이 사는 길
노키아의 전성기 때 핀란드를 ‘단일 기업 경제(one-firm economy)’라고 부를 만큼, 노키아가 차지하는 핀란드 경제에서의 비중은 매우 컸다. 그러나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았다. 오히려 벤처 창업 열기로 이어지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노키아의 몰락이 새로운 성장 동력의 등장으로 이어진 것은 퇴직자에게 벤처교육과 자본금을 지원한 노키아의 브리짓 프로그램과 실업보험제도를 포함한 핀란드의 사회안전망 덕분이었다.
삼성그룹의 수직적 계열화와 금산복합 순환출자구조, 그리고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삼성전자의 몰락이 삼성그룹의 몰락, 그리고 국가 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개연성이 높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삼성전자 주식 가치의 폭락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의 동반 파산으로 이어진다. 삼성그룹 계열사들과 하청기업들이 줄도산할 경우 실업률이 약 7.1%p 상승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한국의 실업률이 3.5% 정도이므로, 이는 실업률이 3배로 증가함을 의미한다.
삼성그룹의 붕괴는 국민연금에 약 19조원의 투자손실을 야기하며, 2014년 기준으로 4조3천5백억원의 법인세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도산은 국내 보험업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고, 삼성그룹과 하청기업들의 도산은 국내 은행들의 부실화로 연결될 것이다. 이런 예상을 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이탈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몰락은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혹독한 경제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삼성그룹의 매출은 한국 GDP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또 삼성그룹 매출의 절반은 삼성전자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까 삼성의 위기가 한국경제의 위기로 전이되는 ‘시스템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삼성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 출처: http://m.it.chosun.com/m/m_article.html?no=2824275)
물론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이 건재해 휴대폰 사업이 망해도 기업 자체가 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도체 부문의 기술혁신 속도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고 반도체 가격이 경기변동에 민감함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 휴대폰 부문의 몰락과 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개 기업의 몰락이 경제위기로 전이되는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가 존재할 때,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2015년 5월 메르스 발병 초기에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최선의 시나리오에 집착해 재난을 자초했던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동일한 논리이다.
삼성전자의 몰락이 국가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삼성그룹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해소하고 금산분리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2013년 이스라엘이 단행한 개혁조치는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 이와 함께 재도전의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확충도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초청받은 외국인 전문가는 빅터 차(Victor Cha),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부르스 베넷(Bruce Bennett)처럼 매번 보던 얼굴들이었다. 이들은 남북한과 미국의 일반 국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군사동맹과 자유무역협정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아시아 전문가 중에서 그 지역 언어에 능숙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개는 정부와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불려온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지난 20년동안 곧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반복하던 사람이었다. 그들의 분석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북한을 마치 소외되고 적의를 가진 국가로 묘사하곤 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정부와 민간 싱크탱크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조 속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북문제 전문가로 소개되는 대개의 외국인 전문가들은 특정 입장과 정책만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전문가라는 후광을 업고, 국내 정책을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또 그들은 뻔뻔하게도 비싸고, 효용이 의심되는 사드와 같은 무기체계를 선전하는 글을 쓰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전하는 무기만 사용하면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그냥 집에 머물거나, 자신들의 부패를 깨닫고 조용히 물러났으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진짜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 기후변화와 드론 활성화 같이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순위에 목매는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싱크탱크를 대표하는 곳이다. 이 연구소는 서울에서 많은 돈이 드는 회의를 열고, 전세계에서 전문가와 고위직 관료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을 통해 아산정책연구원이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릴 수는 있지만, 실제 그 활동을 통해 얻는 것은 거의 없다.
한국 언론은 한국의 싱크탱크가 낙후됐으며, 선진국 진입에 필요한 정책 혁신을 위해 싱크탱크가 필수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많은 인턴학생들은 정치학이나 국제관계학과 관련된 그럴듯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싱크탱크에서 일한다. 어떤 사람은 싱크탱크 경력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싱크탱크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컨대 제임스 매건 펜실베니아대학 교수가 만든 세계 싱크탱크 순위가 나올 때마다 한국에서는 안달복달하는 분위기가 있다. 2015년에는 KDI(33위), 대외경제정책연구원(48위), 동아시아연구원, 아산정책연구원, 국방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세종연구소 등이 포함됐다.
이 순위는 재정, 인력규모, 유수저널 게재논문 수 등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이런 지표를 통해 과연 국가정책에 대한 싱크탱크의 영향력을 평가할 수 있을까.
또 이 순위는 연구의 정확성과 적절성은 반영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과 부유한 후원자로부터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는지는 후한 평가를 받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돈은 부패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비전을 가진 후원자가 의미있는 후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규모의 기업 후원은 종종 싱크탱크가 당면 문제에 대해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너무 적나라한 분석은 후원자를 불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규모의 기업 후원은 싱크탱크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같은 저명한 잡지도 누구의 글을 실을지에 대해 협소한 관점으로 판단하고, 가끔 대기업이 추구할 만한 아젠다를 제시하기도 한다.
국가정책 도둑질하는 그들만의 리그
더욱 문제는 한국의 민간 싱크탱크가 갖고 있는 폐쇄성이다. 순위를 매기는 직원이 오면 한국 정부는 그들을 비공개로 열리는 싱크탱크의 세미나에 보낸다. 이런 세미나에서는 후원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만 나온다.
세미나는 공개 토론을 통해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서 초청받은 행사는 매우 폐쇄적이었다. 최악의 경우는 아산정책연구원과 동아시아연구원이었다. 이들 싱크탱크는 자신들을 마치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비밀클럽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러한 싱크탱크들이 정책영역에서 하는 역할은 교육에서 학원이 하는 역할과 점점 닮아간다. 학원은 시험을 취업을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만들고, 교사들의 역할을 주변화함으로써 교육과 시험제도를 왜곡하고, 결국 교육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비영리기관이지만, 최고의 관심사는 돈을 모으거나, 또는 후원자의 생각을 널리 선전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후원자들을 위해 공공 정책과정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정부 관리, 국책연구소 연구자, 대학교수들에 의해 이뤄져야 할 (공적인) 업무를 사익화한다. 그들은 그럴싸한 이벤트, 멋진 브로셔와 광고 등으로 자신들의 무책임과 협소한 이해관계를 은폐한다.
한국의 민간 싱크탱크가 정부보다 공공업무를 더 잘 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한국정부를 현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활동의 가장 중요한 과정, 즉 장기 국가 아젠더 설정을 사익화하기 위해서이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는 민간 싱크탱크가 향후 20년간 한국이 해야 할 일을 제안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위험성은 실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본 것과 같은 재앙을 모든 한국인이 향후 몇 백년동안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채 수없이 많은 무모한 대북대책을 부추기는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은 새로운 생각과 접근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여기서 정부 기관끼리 논쟁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각성된 정부 관료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작지만 활기찬 정책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학자, NGO, 정부 관료, 대중들이 모두 참여하는 숙의가 이뤄져야 한다. 민간 싱크탱크처럼 불투명한 엘리트조직을 정책중개자인 양 격려하고 지원하는 현재의 상황은 결코 한국의 미래에 이롭지 않다.
그런데 대선과정에서 한국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두 개의 주제에 대한 상호간에 역할과 관계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공유가 부재하여 효과적인 전략적 배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두가지 주제가 어울려 상승작용을 하며 서로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혼선을 일으키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면서 각자가 지닌 중요한 함의를 한껏 부각시킨데 실패했다고 본다.
2012년 대선에서는 양 진영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으로 수렴됐다. 그러나 승리한 박근혜는 그 모든 공약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물론 당신도 속았다.
물론 필자의 앞선 칼럼(제2의 박근혜’에게 두 번 속지 않는 방법)에서 언급하였듯이, 선거과정에서 박근혜후보와 새누리당이 경쟁하는 민주당의 동일한 주제들을 가로챈 뒤 실천할 자질도 부족하고 의지도 없는데도 오로지 득표를 위해 공약을 과대포장하고 사기적 수준에서 남발하면서 실천에 대한 기대가 추락하고 공약 자체의 유효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남기게 된 점도 큰 원인이 되었다.
우리 시대의 양대 화두,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론은 국민들 삶에 있어서 존엄을 유지할 기초재를 제공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만들어 주며, 일생 동안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가능한 자원과 요소들을 복지 중심으로 구성하여 운용하는 복지레짐 중심의 철학이다.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운영의 전략적 기초와 실천적 정책의 내용을 포괄한다.
반면 경제민주화는 아직 정확한 개념이 자리잡지 못하고, 한국경제 현실을 해석하는 관점과 격변하는 상황에 대한 인식에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편차가 있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의 성과물인 공정과 참여의 개념을 통해 특혜와 독과점이 일상을 점하고 있는 경제의 영역을 혁파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방향과 실천적 노력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복지라는 주제는 대체로 경제활동이 이루진 이후 성과라는 결과물을 두고 이차(二次)적으로 재분배하고 순환하는 과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
반면 경제민주화는 경제활동이 이루지는 과정 속에서 위에 말한 참여와 공정 그리고 일차(一次)적 배분을 주요 내용으로 삼아 이를 실천하는 정책 영역에서 다루어 왔다. 자연스레 과거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분절되어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이르러 복지국가론이 등장하면서 인간존엄의 실현과 행복추구권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분배와 순환의 개념을 경제활동의 핵심적 영역으로 편입하고,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산업경제활동 속의 일차적 분배기능과 복지정책의 이차적 재분배기능을 하나의 순환고리로 연결하여 자원 투입과 생산과정과 배분순환 및 소비과정을 온전히 일관된 총체적 시스템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복지국가론을 통하여 비로소 복지와 경제가 하나로 만나게 된 것이다.
종합하여 정리하면, 복지국가론은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철학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총론적인 전략적 구상과 이를 실천하기위한 개별적 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
경제민주화는 복지국가론의 정책적 수단과 실천과정으로서 현실의 경제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현안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이를 혁파하고 재구성하는 정치적 실천과제를 다루게 된다.
따라서 복지국가론과 경제민주화는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같이 공유하면서 서로 상보적이고 시너지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난 대선에서는 이러한 성찰과 토론이 너무 부족했다. 다가오는 19대 대선에서 확고한 실천의지를 담은 공약으로서 복지국가론과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이 다시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하면서 두 개의 주제를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김종인 박사의 경제민주화
우선 경제민주화하면 상징처럼 떠오르는 인물은 김종인 박사이다. 그는 전두환 군사정권시절, 비합법적인 국보위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위한 제119조 2항을 헌법에 삽입했다고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김박사는 분명히 탁월한 능력을 지닌 전문가이자 고수임에 분명하며, 그간에 보여준 노력과 공헌에 박수를 보낼 만 하다.
헌법 119조 2항으로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돼 버린 김종인 박사.
그러나 그는 화려한 경력과 정치적 노회함 못지않게, 역사적 소명과 시대 흐름을 무시한 채 굴곡된 출세의 길을 달렸다. 군사정권 하의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과는 거리를 둔 기회주의적 관료와 정치인으로서 삶을 살아온 궤적도 갖고 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사이에서 출세와 처신에 능한 엘리트 관료의 모습이였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려고 박근혜 진영에 가담했다는 그를 신뢰하기에는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사실 경제민주화의 토대를 광범하게 제공한 것은 헌법119조 2항이 아니라 해방 이후 정부수립과정에서 기초된 제헌헌법의 내용과 정신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2012년 12월 프레시안에 기고한 덕성여대의 한상권교수가 쓴 시론(경제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 제헌헌법에 다 나와 있었다!)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
1948년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제헌헌법 초안.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 자료: 연합뉴스)
조소앙 선생이 주창한 삼균주의와 독일 바이마르 헌법정신에 기초한 제헌헌법은 ‘경제민주화’를 넘어서서 가히 ‘경제헌법’이라 칭할 만하다.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그리고 군사정권들에 의해 끊임없이 내용이 삭제, 축소, 변절되어 왔을 뿐이다. 내용과 범위에 있어서 국보위에서 삽입한 119조 2항은 제헌헌법이 제시한 경제민주화의 내용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협소하고 말단적인 해프닝이다.
또한 18대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 위원장이었던 김종인 박사가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총론적 구호에는 실천적 정책구상이 미진해 매우 공허한 느낌을 준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힘있게 추진하지 못한 배경에는 박근혜 후보의 교활함도 있었지만, 김종인 박사의 애매모호함도 일조했다고 본다.
더구나 더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에 보여준 수구적이고 퇴행적이며 안하무인적인 태도에서 시대의 흐름을 역주행하는 박근혜식 잔영(殘影)을 엿보게 된다. 필자는 김종인 박사에게 경제민주화의 중심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썩은 나무로 새 집의 기둥을 삼는 것처럼 어리석고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굳이 본인이 원한다면 원로 전문가 자문역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유종일 교수의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라는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또 다른 인물은 몰락하는 한국경제의 긴급 소방수를 자처하는 유종일 교수이다.
그는 매우 특이한 이력을 지닌 학자로, 김대중 노무현 양대 민주개혁정부에 대하여 애증이 교차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본인의 표현대로 김대중의 당선에 열띠게 환호했다가 국민의 정부 정책이 신자유주의 기조로 바뀌면서 아연실색했다.
또 노무현 후보시절 경제참모 역할을 했다가 참여정부가 친재벌정책으로 돌아서고 한미 FTA를 체결하자 이를 격렬히 비판했다. 이를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교수로서의 대외활동을 규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자신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유종일 교수가 경제민주화 논쟁에서 보여준 주요한 공헌은 김종인 박사의 모호한 구호를 넘어서 그 개념을 분명히 하고 실천적 정책의 항목을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유종일 KDI 교수.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기본축을 공정경쟁과 참여경제 그리고 분배의 정의 실현으로 봤다. 이 세가지 축이 상호 보완과 균형을 이루면서, 한편에서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개입과 통제라는 정치적 참여과정이 요구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정성을 담보하는 사회적 관계와 교육 시스템, 그리고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복지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유 교수가 실천적 정책으로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대부분 진보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봉건영주로 군림하는 재벌에 관한 것이다.
재벌이 저지른 경제 범죄에 대한 가중 처벌, 순환출자 금지와 지주회사 전환 및 규제 강화,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 대기업 참여 제한 업종 지정, 하도급거래의 공정성 확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지원 정책 등이다.
참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회균등 선발제도의 도입, 정리해고 제도 개혁, 비정규직 제도 재정비, 금융과 산업의 철저한 분리, 노조 조직율 제고, 단체협약 적용률 제고, 종업원대표의 경영참여 등의 전향적 검토를 주장한다.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재원 마련의 수단으로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 신설을 통한 재정 확충 등을 주장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이상 12가지 주요 키워드를 현안과제로 받아들이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겠지만, 그래도 제헌헌법의 경제조항들에 비하면 긴 호흡을 가진 역사적 관점이 부족하다.
또한 구체적 내용과 실천 방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격론이 예상된다. 더구나 나열된 모든 사항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보다 사인의 비중과 시급함 그리고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행 순서, 정도와 절차에 대한 치밀한 준비과정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으로 시행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재벌 등의 반발과 일시적인 경제 혼란과 후퇴가 일어날 경우 이를 확실히 제어하고 돌파해 낼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종인 박사가 경제민주화의 성공여부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한 것은 백 번 옳은 말이다.
재산권과 상속
경제민주화가 부딪치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적 주권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와 자본의 자기증식 및 개인의 이기적 탐욕을 동력(driving force)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길항하면서 ‘현실’이라는 이름의 수레의 양쪽 바퀴를 각자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탐욕에 방점을 두면 현실은 쉽게 금권에 의한 과두정치로 변질될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적 평등을 강조하면 경제시스템의 동력이 약화된다. 이러한 교착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재산권과 상속에 대한 입장이다.
하버드 법대의 전설적 인물인 로베르또 웅거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근세 이후 성립된 개인의 소유와 재산권에 대한 법적 권리는 단지 역사적 과정에서 우연히 형성된 산물로 이를 무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신성시해야 할 필연적인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 소유와 재산권의 법적 보호는 그가 귀속된 사회 또는 세계에서 긍정적이고 합리적으로 기능할 경우에는 강력히 적용되고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회와 세계에 부정적이고 파괴적으로 작동할 경우 당연히 법적 제한을 가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상속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개인이 형성한 부의 원천으로 본인의 열정적 노력과 탁월한 재능과 좋은 운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재능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또 좋은 운 역시 특정 시점에 특정 장소에 있었다는 우연에 의한 것인 만큼 이를 개인이 독차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최근 세간을 떠들석하게 만든 누군가는 “부자 부모를 둔 것도 능력”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주어진 운에 의해 기본가치의 분배가 이뤄지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이미지 출처: http://koreantoday.com.au/)
그럼에도 개인의 사적 소유와 재산권을 평생 보호해주는 것은 경제운영의 효율성과 동기 부여라는 대승적 관점에서 인정할 수 있다. 이는 서구적 근대의 산업화과정에서 대체로 입증되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재산권이 혈연 및 개인적 관계를 통해 다음세대로 계승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비합리적이고, 정치적으로도 비민주적이다. 자식에게 조건없이 사적인 상속이 이루어지면 효율성과 동기 부여 모두 부정되고 반감되는 효과가 나온다.
상속권의 법적 구성에 대한 보다 깊은 역사적, 사회적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특히 이는 재벌 족벌경영체계라는 현실 앞에서는 반드시 되집어 보아야 할 주제이다. 참고로 미국의 황금기 때, 누진 상속세의 최고세율이 90% 였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복지국가의 역사와 철학
복지의 역사에는 세가지의 성격이 혼재되여 있다.
첫째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역할이다. 한국 역사에서도 대부분 왕조를 통해 이러한 선혜적 구휼제도를 찾아볼 수 있으며, 중세의 유럽 교회에서도 빈자에 대한 구제기능을 기본적인 역할로 삼고 있었다. 심지여 수도원 수입의 절반 정도를 지역사회의 빈자들에게 베푼 기록도 있다 한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빈민구제를 제도화한 것은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시절부터인데, 사실인즉 영국의 빈민구제법은 빈자들을 범죄와 전염병의 원인으로 판단하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한다.
두 번째 성격은 기여에 기초한 사회보험의 역할이다. 19세기중반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산업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노동자계급이 급속히 팽창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하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을 혁명적 사상으로부터 차단시키고 국가에 충성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사회보험제도를 입법한 것이 시발점이다.
이후 건강보험, 산업재해보험, 실업부조, 국민연금 등을 중심으로 사회보험이 복지제도의 주요정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회보험에는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상호부조적 보편성과 가입자를 한정해 기여금에 연동하여 혜택을 주는 조건적 선택성이 병존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 제도 밖 외부자에 대해 취약하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포용성(inclusion)논쟁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민족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으로 북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복지국가 개념이다. 개인적 존엄에 기초하여 시민권적 권리, 즉 정치적 참여에 상응한 사회경제적 권리로서 복지권을 인정하고, 이를 국가운용의 핵심정책으로 삼는 것이다.
북유럽의 복지체계는 국가의 기본적 역할을 모두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인민의 집’으로 선언하며, 기초생계보장과 사회보험제도를 넘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생동안 다양한 사회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1930년대 사민당 지도자들이 만든 ‘인민의 집’이라는 개념은 스웨덴 사민당의 정치철학과 스웨덴 복지국가의 역사를 상징하는 개념이다.
복지국가론의 밑바탕에는 북유럽의 경험에 바탕한 복지레짐이라는 정책용어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는 생산 또는 성장레짐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생산레짐은 국가운용의 목적을 생산의 확장과 성장으로 설정하고 가용한 자원을 이러한 목표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구성, 배열, 조작하는 체제를 말한다.
복지레짐은 당연히 국민행복과 복지를 최상의 목표로 두고, 이를 위해 국가 자원을 재구성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이다.
복지국가론을 한국에 소개하고 확산시키는데 2007년 가을에 출범한 복지국가 소사이어티(WSS)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특히 경기도를 시작으로 초중고교에 의무(무상)급식을 도입하고, 안착시킨 시킨 사례는 한국에서도 보편적 복지정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복지국가론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서유럽 역사의 절정인 사민주의의 철학적 기초인 인간의 보편적 존엄, 공정으로서의 정의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를 토대로 한다.
국가운용의 정책적 과제로 일차적 영역인 산업경제부분에서 1) 일상적이며 혁신적인 역동성 2) 원칙있는 경쟁과 퇴출이 가능한 공정성을 부여한다. 이차적 영역인 정치사회분야에서는 3) 누진적 조세정의와 참여민주제의 실현을 통하여 복지재원을 확보하고 4) 중산층이 함께하는 보편적 복지를 시행한다.
이를 통해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아갈 기초를 구축하고, 개개인의 행복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형성할 수 있다.
국가운용의 요체로서 복지국가론이 기존 복지정책과 다른 점은, 복지국가론의 경우 경제 활동 속에 혁신적인 역동성과 균형적 순환을 형성하고 원활한 재생산과정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경제활동의 성과에 대한 확실한 동기와 명분을 부여하고 분배 공정성을 담지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 단위의 적극적 참여와 보편적 시민권에 기초한 정치적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복지국가의 난관, 그리고 과제
복지라는 주제를 다루다 보면 항상 마주치는 두 개의 장벽이 존재한다.
첫 번째 어려움은 경로의존성으로 한 번 방향과 경로를 정하면 다른 방향으로 전환이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 한국의 복지 현실은 가장 수준 낮은 영미형의 선별적 사회안전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아직 본격적인 궤도 진입도 못한 상태에서 한국형 복지체계라는 경로를 선택해야하는 형국이다.
중간 수준인 보수적 유럽대륙 모델은 사회보험정책을 중심으로 부족한 부분을 가족과 국가가 보조하는 형태이며, 가장 높은 수준인 노르딕 모형은 개인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면서 복지를 시민권적 권리로 인정하여 국가가 주요한 역할을 맡고 시장과 가족들이 이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모델에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의해 여러 사회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이에 기초한 정치세력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모델 사이에는 깊은 계곡(system valley)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어떤 경로로 진입할 것인지는 결국 환경적 조건과 주권자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과정이 마주치면서 사회개혁의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다.
두 번째 만나는 장벽은 한 번 복지정책을 시행하면 이해관계가 강력하게 형성되여 수정이 매우 어려운 현상고착의 관성력(embedding effect)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경로의존성과 더불어 복지체계를 유지하도록 보호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는 반면에 끊임없이 변해가는 현실과의 괴리가 커져 한계점에 이르게 되면 파국적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각자의 이해에만 집착했던 남유럽과 남미의 경우에 유념해야 한다.
미래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역동적이며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복지정책을 설계할 때는 현재 진행중인 기본소득논쟁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단순한 직선방식(single layer)보다는 다층적 복선(multiple layers)과 유연성을 갖고 격변하는 현실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복지국가는 그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경제적 환경에 영향받으면서 독특한 형성경로를 밟는다. 유승민 의원은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로 ‘중부담 중복지’모델을 제안했었다. 그러나 이는 당장의 조세 저항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과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http://www.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1146)
염려하건데, 한국의 정치권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중부담 중복지’ 방식은 참으로 혀를 차게 만드는 유치한 수준이다.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고 당장 눈 앞의 세금을 싫어하는 시민들을 현혹하는 인기영합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필요기본조건으로서 복지는 부담이 아니라 반드시 돌파해야 하는 미래지향적 국가과제로 설정돼야 한다. ‘중부담 중복지’ 제안은 당장 재원충당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편의적으로 야합하고 적당히 처리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철학 부재의 무책임한 태도다.
단편적인 제안을 넘어서서 역사적 소명과 시대적 흐름 위에서 한국사회가 나가야 할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결집시키면서 긴 호흡를 가진 다양한 정책 구상과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재앙적인 박근혜 정권에서 실현하지 못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주제는 시류에 편승한, 한 때의 소모품이나 구호가 아니다. 다음 정권이 기필코 실현해야하는 역사적 과제들이다.
그에게 상을 쥐여준 사라 나디우스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밥 딜런의 노래는 귀를 위한 시’라고 극찬하며 고대 그리스 시인인 호머와 사포에 견줬다. 대중음악계는 음악의 위대함이 증명됐다고 열광했고, 그가 한때 상징했던 반전과 평화, 저항정신을 칭송했다.
특히 60~70년대 대학에서 군부독재에 맞섰던 국내의 50대는 그를 ‘저항의 아이콘’으로 불러내며 향수에 젖었다. 하지만 이후 사회 참여에 거리를 둔 그의 행보에 ‘변절’이라는 비판이 따라붙기도 한다. 또 그는 ‘작가’가 아니라 ‘음악가’일 뿐이라는 냉소도 터져 나왔다. 그는 지난 며칠간 사람들이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이는 그의 삶과 음악이 대중음악은 물론 사회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다채로운 반응이 터져 나오는데는 저항의 아이콘에서 은둔자, 가스펠 가수 등으로 끊임없이 변모한 그의 이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영화 ‘아임낫데어’에 등장하는6명의 배우는 모두 밥 딜런 한 사람이다. 그만큼 밥 딜런의 모습이 변화무쌍하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밥 딜런은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서전 제목도 ‘아임낫데어’다.
그를 다룬 영화 <아임 낫 데어>(2008년, 토드 헤인즈 감독)는 아예 6명의 캐릭터와 배우를 통해 밥 딜런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기도 했다.
#Blowin’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
그는 1941년 미국 미네소타의 시골 마을에서 로버트 앨런 지머맨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 등 로큰롤 스타에 열광했던 그는 동시에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읽고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경험을 한 문학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가 성인이 돼서 새로운 이름으로 삼은 밥 딜런도 웨일스 출신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따왔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포크 뮤지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미네소타 대학을 중퇴하고 1961년 뉴욕으로 올라왔다.
클럽 등을 떠돌며 기타를 연주하던 그는 1963년 발표한 ‘The Freewheelin’ Bob Dylan’이라는 앨범으로 단번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명곡으로 꼽히는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가 수록된 앨범이다.
Yes,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바람만이 아는 대답)
특히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시적인 노랫말에 평화와 반전 자유라는 가치를 담아 당시 미국사회를 휩쓴 베트남 반전 운동과 화학적 결합을 한다.
한때 연인 사이였던 Joan Baez (조앤 바에즈), Peter, Paul and Mary (피터 폴 앤드 메리) 등 수많은 뮤지션이 부르기도 한 이 노래로 그는 반전과 저항의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다.
읊조리듯 부르는 창법과 특유의 반골 이미지도 청년들을 열광케 했다. `밥 딜런 열풍’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군부독재에 신음하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 줄기 빛으로 비추기도 했다.
트윈폴리오,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등은 포크 음악을 통해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다. 트윈폴리오의 멤버였던 윤형주씨는 “그의 저항정신이 한국 포크 1세대와 잘 맞았다”(조선일보 10월 14일 치 2면)고 말했다. 그의 수상 소식이 국내 주요 일간지의 1면 톱기사로 오른 것은 밥 딜런이 1960년대 한국 사회에 남긴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Mr. Tambourine Man”(미스터 탬버린맨)
Hey! Mr. Tambourine Man, Play a song for me(미스터 탬버린맨, 나를 위해 노래해줘)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저항의 기수가 되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또 다소 단조로운 포크 음악에 지루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스터 탬버린만>이라는 노래를 작곡한 1965년은 그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충격의 해였다. 밥 딜런은 1965년 여름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전자기타를 들고 나왔다.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던 포크 음악에 전자기타를 드는 것은 ‘배신’으로 간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공연에서 수많은 팬들이 그를 향해 야유했고 쓰레기를 던졌다. 그는 1966년 순회공연 중 갑자기 공연장을 떠나며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군중들 앞에서 저항 노래인 <We shall overcome>을 부르던 그는 이후 ‘우리’보다 ‘나’를 더 노래했다.
<밥 딜런 평전>(실천문학사)을 쓴 마이크 마퀴스는 이에 대해 “아마도 딜런은 자신이 저항 가수의 상징으로 정형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바로 그의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예술에 대한 야심이 그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딜런의 운동 거부는 그래서 자기 해방을 위한 행동으로 비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2005년 출간된 밥 딜런의 자서전 <크로니클스: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서 그는 “나는 세상에 대해 느낀 것을 정의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시대의 양심으로서 의무를 회피하지 말고 밖으로 나와 그들을 어디론가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내가 대변하고 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영혼은 ‘운동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예술가로서의 욕망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끊임 없이 표출한다.
1965년 발표한 <구르는 돌처럼>으로 밥 딜런은 위대한 뮤지션으로 도약한다. 이 노래는 영국 잡지가 2005년 조사한 유명 가수와 영화배우 등 대중문화 스타들을 대상으로 ‘100년간 세상을 바꾼 음악, 영화, 책, TV프로그램’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래 제목대로 그는 구르는 돌처럼 자유분방한 행보를 이어갔다. 1966년 오토바이 사고 부상을 이유로 은둔한 그는 히피 운동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 말에 백인 음악의 전유물인 음악 장르 컨트리에 심취했다.
저항의 아이콘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나아가 1970년대에는 기독교 원리주의에 심취해 ‘Slow Train Coming’이라는 가스펠 음반을 발표하고 종교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자선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사회 참여를 이어온 영국 밴드 U2의 보컬 보노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부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I’m not there(나는 거기에 없다)
10월18일 현재까지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전 세계의 주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이 발표된 10월13일 저녁 진행한 콘서트에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단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불렀고, 청중들이 “노벨상 수상자”라고 연호했지만 모른척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I’m not there>은 그를 다룬 영화이자 그가 발표한 노래의 제목이다. 예술가로서의 욕망을 끊임없이 보여온 그는 어쩌면 1960년대 반전과 흑인민권운동의 흐름에도, 1970년대 개인의 고독과 종교에 심취한 시기에도, 노벨상을 수상한 지금도 “나는 거기에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965년 그는 한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가수라고 생각하나 시인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전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침묵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씁쓸한 건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파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척박한 현실이다.
세계가 ‘귀로 듣는 시’에 대한 찬사와 비판을 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적 가치를 고민해야 하는 퇴행적 시간을 보내고 있다.
1800년 지구의 인구가 10억 명에 도달하는데 수천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 두 배인 20억이 되는 데 120년(1920)이 걸렸고, 40억이 되는데 겨우 50년이 걸렸다.
1970년 40억이던 인구가 80억이 되는 데는 훨씬 더 짧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약 70년 동안 인구의 수가 세 배나 등장한 것이다.
맬서스가 쓴 <인구론>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는 것이다. 즉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증가가 따라잡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 고전적 이론이 댄 브라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인페르노>에서는 조금 다르게 인용된다.
영화는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에서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트(벤 포스터 역)가 지구의 인구 과잉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오른쪽 사진)
인류는 하나의 커다란 오염체로 하나의 개체가 늘어갈수록 지구는 병들어 간다. 가령, 쓰레기를 버리고, 자원을 남용하며 지구를 온난화시킬 뿐만 아니라 개체 자체로서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 그래서 소설 속의 조브리스트라는 급진적 과학자는 인류는 인류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급진적 이론의 바탕에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하는 대멸종의 기록이 있다. 천적이 없는 종은 결국 종적으로 멸하게 된다. 개체의 크기로 보나 힘으로 볼 때 대적할 종이 없었던 공룡의 멸종이 그 예시가 될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야말로 현재 천적이 없는, 우세종이다. 호포 사피엔스로서 인류는 작은 몸의 한계를 생각하는 능력과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극복하며 이제 지구상 거의 모든 종을 정복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도라면 인류가 지구상에 너무 큰 부담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때엔 언제나 마치 약속된 듯 대 유행병이 돌았다.
중세 유럽사를 뒤바꾼 흑사병이나 20세기 초 전 세계를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었던 콜레라 등이 바로 그런 질병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소설과 영화 속의 급진주의자들은 지나친 백신과 예방의학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재난을 막기 때문에 인류라는 해악이 점점 더 커 나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조브리스트는 인구의 3분의 1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살포하고자 한다. 작은 희생이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브리스트 같은 인물은 바로 광신도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 인구문제는 조브리스트처럼 선동적 광신도가 아니라 합리적 정치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는 인구문제가 포함된 환경문제 역시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조브리스트가 대중 강연에서 보여주는 인구증가 속도 그래프는 미국의 부통령 앨 고어의 대중 연설에서도 고스란히 등장한다.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지구의 시간을 자정 일분 전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유사하다.
다르다면, 앨 고어는 인간이 지혜와 겸양을 모아 환경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나가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정치적 해결 중 하나에 탄소세가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 환경을 더 나쁘게 만든다면, 그래서 이 지구가 숨쉬기 힘들게 만든다면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뺏는 것이다. 바로 돈,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덜 쓰게 하고, 더 보호하게 하자는 게 바로 앨 고어의 주장이다.
엘 고어가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키노트 연설을 하는 모습. 정치는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끌어모아, 집단 행동을 일으킨다. 이런 정치적 행위를 통해 인간은 인간의 세상을 지옥으로부터 구출한다.
사실, 정치란 바로 급진주의자와 회의주의자가 각자의 극단적 방법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로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방식이다.
동물이 집단 내 급속한 개체 증가의 위기를 자살이나 타살로 모면하려 한다면 인류는 생각하고, 합의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기에 정치적으로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무조건 없애고, 무조건 줄이는 식의 방법은 말하자면 인류답지 못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영화 <인페르노> 속의 조브리스트나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이론만이 옳고 타인은 그르다고 말한다. 아니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인류의 죄를 처단하는 자로 자임함으로써 인간이 아닌 신으로 스스로 승격시키는 모양새이다.
어떤 주장이든 과격한 것에는 거짓과 모순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적 해결이란 결국 더 작은 손해를 보는 쪽으로 더 많은 혜택을 찾아가는 인간의 지혜이다. <인페르노>, 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곳은 오히려 정치가 없는 곳일테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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