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청년 1인 소상공인·농어업인 출산급여 확대 - 부안군 권익현 님의 공약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공약 이행 여부를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에 36점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남북관계, 표현의 자유, 정치 선진화 관련 공약은 제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때 공약을 남발하고 그 뒤엔 책임지지 않는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약 이행을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기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뉴스타파-참여연대 공동 기획, 19대 총선 공약 평가
20대 총선을 맞아 뉴스타파와 참여연대는 공동으로 지난 19대 총선 공약을 평가했다. 평가 대상은 제1당인 새누리당의 중앙 공약이다. 19대 총선공약 가운데 이후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구체화됐고, 20대 총선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는 공약들을 선별했다. 남북관계, 경제민주화, 복지 등 총 10개 분야, 110개 공약이 평가 대상이다. 세부적인 공약 내용과 평가 근거는 뉴스타파 공약 점검 특별 페이지 <2016 총선 기획, 공약 점검 프로젝트 약속> (링크)에서 볼 수 있다.
| 분야 | 평가대상 공약 |
| 검찰 개혁 | 7 |
| 경제민주화 | 19 |
| 남북관계 | 7 |
| 노동 | 16 |
| 민생 | 21 |
| 복지 | 14 |
| 일자리 | 9 |
| 정치 선진화 | 3 |
| 조세 | 9 |
| 표현의 자유 | 4 |
| 합계 | 110 |
| 점수 | 평가 기준 |
| 빨간등 | 이행 완료, 이행 전망 등 |
| 노란등 | 공약 폐기 및 변질, 진행 사항 없음 등 |
| 파란등 | 공약 축소, 평가 유보 등 |
새누리당 19대 총선 공약 이행 평가 점수는 36점
평가 대상 110개 공약 가운데 ‘빨간불’은 50개, ‘노란불’은 27개, ‘초록불’은 33개였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36점이다. 2014년 뉴스타파가 진행한 1차 대선공약 점검(링크)에서는 33점, 2차 대선공약 점검(링크)에서는 43점이었다.

남북관계, 표현의 자유 빵점…공약 자체의 한계에 갇힌 경제민주화
특히 남북관계와 표현의 자유, 정치 선진화 부문 15개 공약 가운데 제대로 지킨 공약이 하나도 없었다. 검찰개혁부문에서도 7개 공약 가운데 2개만 지켰을 뿐이다. 공약 점검 작업을 진행한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애초에 공약 이행 의지가 없었던 부분”이라며, “검찰개혁이라든가, 남북관계, 표현의 자유 이런 부분은 유권자들을 현혹할만한 ‘막공약, 헛공약’ 이렇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부문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았다. 모두 19개 공약 가운데 42%인 8개를 이행했다. 공약 평가 자문위원 중 한 명인 이찬진 변호사는 “경제민주화나 민생 공약들 중 공약대로 이행된 항목이 많아 보인다”면서도, “이행된 공약이 주로 대출 등 금융을 매개로 한 공약들이 많고, 공약 자체가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서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 정당, 정부가 참여하는 공약 평가 사회적 기구 필요”
선거 때 공약을 쏟아내고 이후 책임을 지지 않는 정당들의 행태는 이번 공약 평가에서도 확인됐다.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정부 스스로, 정치권에서 스스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서 공약을 정말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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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핀란드의 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토가 사망했다. 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복지국가, 개헌, 중립평화외교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100년 만에 이뤄낸 핀란드의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재임 중 성과를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싣는다. 1. 국내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1), 어떻게 복지국가와 개헌을 이뤄냈나 |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최근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독일 방문 기간 동안 문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 중국 시진핑 주석, 일본 아베 총리,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등과 연속 회담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핵 등 한반도 위기를 해결할 방법으로 ‘단계적, 포괄적 접근’과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의 필요성을 강조해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도 한중관계의 회복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협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사회적 시장경제의 진전, 그리고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피력했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베를린 평화구상’(2017.7.6.)을 발표해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추진,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등 핵심 정책방향과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비상한 과정을 거쳐 집권한 뒤 신속하고 광범위한 개혁 의제 선점을 통해 초기 높은 국민적 지지와 기대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로써 복잡하고 어려운 위기 상황의 한반도 국제정세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보편적, 민주적 가치에 기반한 ‘유능한 협상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따른 긴장 고조는 물론 의회 내 다수의석을 점하지 못한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개혁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발 등 새 정부가 당면한 과제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쉽지 않은 국제, 국내 정치의 조건 속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체제 수립과 합의적 민주주의 구현 등 핵심 개혁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

20세기 동안 내전과 대외적 전쟁, 극심한 정치적 갈등과 분열 등을 지혜롭게 극복한 핀란드의 역사적 경험은 하나의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한 전직 핀란드 대통령의 삶과 행동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를 보여준다.
독립 100주년, 핀란드인들이 사랑한 노동자–철학자 대통령의 죽음
2017년 5월 12일(금) 21시 15분, 핀란드 제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또(Mauno Koivisto)가 향년 93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다음날 핀란드 전역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기가 게양되었다.

현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뙤(Sauli Niinistö)는 추모 성명을 발표했고, 공영방송 YLE는 하루 종일 추모 방송을 특집으로 편성해 내보냈다.
핀란드인들이 가장 사랑한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꼬이비스또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2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했다(2회 연임). 전후 25년간 장기 집권했던 중앙당(Keskusta, The Centre Party)의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Urho Kekkonen, 1956-1981년 재임)이 기력이 쇠해 사임할 당시 그는 사민당(SDP)-중앙당 연합정부의 총리를 맡고 있었다.
1982년 대통령 선거에서 폭넓은 지지로 당선되며 향후 30년간의 사민당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소련 붕괴, 경제위기, 유럽통합 등 대전환기에 핀란드를 이끈 그는 지혜롭고 합리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1994년 퇴임한 뒤 부인 뗄레르보 꼬이비스또(Telervo Koivisto) 여사와 함께 시골집에서 숲과 정원을 가꾸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한편, 후임 아흐띠사리(Martti Ahtisaari, 1994-2000 재임), 할로넨 (Tarja Halonen, 2000-2012 재임) 대통령과 정부에 국제관계와 외교정책 등에 관해 조언하며 전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과 시민들은 한결같이 그가 실용적 리더이자 독립적 지성인이면서 매우 소탈하고 겸손했던 정치인으로 진실로 ‘전 국민의 대통령’(koko kansan presidentti)이자 ‘나의 대통령’(minun presidentti)이었다며 슬픔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노동계급 출신인 그는 평생 손으로 하는 노동과 작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 국제관계 분야에 두루 정통하여 깊이 숙고하고 사유하는 것이 몸에 밴 사상가이자 저술가로 ‘철인왕’(philosophy king)에 종종 비유될 정도였다.
평생 배구를 즐겨한 그의 두 손은 노동과 사유 둘 다 위한 것이었다고 이야기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꼬이비스또는 핀란드가 내전과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2차 세계대전 및 전후 냉전 질서가 부과한 국제정치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성숙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평화적 국제관계를 달성하는데 기여한 탁월한 정치가였다.
20세기 핀란드의 현대사 굽이굽이를 지나온 뒤 독립 100주년인 2017년에 삶을 마감한 그의 인생 역정은 그 자체로 신생 민주공화국 핀란드의 첫 세기를 증언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어린 목수, 참전군인, 철학박사,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총리, 그리고 대통령의 삶
마우노 꼬이비스또는 1923년 핀란드 남서부 항구도시 뚜르꾸(Turku)의 한 가난한 조선 노동자(배 목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황제 치하의 대공국(Grand Duchy of Finland) 지위에서 갓 벗어난 신생 독립국이었다. 독립 직후인 1918년에는 좌우 내전이 발발해 약 4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정치적 분열과 적대의 상처는 핀란드 사회를 깊이 갈라놓았다.
열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죽고, 초등학교를 마친 뒤부터 항만에서 여러 일을 익히느라 꼬이비스또의 유년기는 짧게 끝났다.
16세이던 1939년에는 소련의 침공으로 이른바 ‘겨울 전쟁’(Talvisota, 1939-1940)이 시작됐다. 어린 꼬이비스또는 소방의용군에 편입된 뒤 전방 부대에 배치돼 ‘계속전쟁’(Jatkosota, 1941-44)이 끝날 때까지 싸웠다. 생사가 엇갈리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그는 정신적(종교적) 전환을 경험한다. 전쟁은 또 그가 세계정세에 눈뜨도록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유공자로 전역한 꼬이비스또 앞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그는 1947년에 핀란드 사민당에 가입했고, 항만 노동조합에서도 중요한 직책들을 맡아 수행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사민당과 공산당 활동가들로 진영이 갈려 파업 전략 등을 두고 노선 투쟁이 치열했다. 사민주의 노선을 추구한 꼬이비스또는 공산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편, 꼬이비스또는 1947년부터 야간 학교를 다니며 중등 교육 과정을 이수했고, 이후 대학에도 입학했다. 교직 활동을 병행하며 학업을 계속한 끝에 1956년 ‘뚜르꾸 항만의 사회적 관계들’을 주제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2년에는 향후 65년 간 평생을 함께 하며 가장 중요한 조언자가 되어준 부인 뗄레르보(Telervo Koivisto)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학위 취득 후 꼬이비스또는 1957년 헬싱키노동자저축은행(Helsingin Työväensäästöpankki)의 대표 자리를 제안받고 헬싱키로 이주한다.
이후 12년간 저축은행 대표 역할을 맡은 그는 경제 전문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사민당이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둔 1966년에는 재무장관에 발탁됐다.
1968년 핀란드 중앙은행장에 임명된 직후에는 총리로 다시 임명됐다.
께꼬넨 대통령 집권 시기에 성립된 사민당-중앙당 연합정부에서 총리(1968-1970, 1979-1982)와 재무장관(1966-67, 1972)직을 두 차례씩 역임한 그는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유일한 인물이다.
독립적 사유와 숙고된 판단을 중시하는 그는 강한 카리스마로 정치적 도전자를 잘 용납하지 않는 께꼬넨 대통령과 오래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내각에서 물러나 있는 사이에도 핀란드 중앙은행장으로 계속 활동했고, 이 시기 그가 획득한 경제와 재정 정책의 전문성은 경기 과열과 대소 무역의 붕괴 등으로 인해 그의 대통령 재임 후반기에 발생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경제 전문가였던 그의 재임 시기에 경제위기가 발생, 심화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소련 붕괴가 가져온 경제적 충격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환율 정책에 신중한 나머지 1980년대 후반의 인플레 현상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놓친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핀란드 복지국가의 팽창과 완성을 이끌다
그가 처음 총리로 임명된 1968년, 은 20세기 후반 핀란드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핀란드 역사상 최초로 노사정 대표가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전국적인 임금 인상률과 주요 경제, 사회정책의 방향을 결정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임 빠시오(Rafael Paasio) 총리 때부터 추진된 협상은 꼬이비스또가 총리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결실을 맺었다.
1930년대부터 3자 합의에 바탕해 보편적 복지국가로 이행한 스웨덴, 덴마크와 달리 핀란드는 북유럽 국가이면서도 내전과 대소 전쟁 등의 여파로 같은 경로의 발전이 한 세대 동안 지연되었다.
사용자들은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자주 총파업 등 물리적 투쟁으로 맞섰다. 내전 뒤에도 좌우 대립은 계속됐다. 나아가, 각 진영 안에서도 온건파와 급진파들 간에 치열한 논쟁과 대결이 벌어졌고, 정국은 자주 소용돌이쳤다.
대소 전쟁 등 국가적 위기를 거치면서 민족적 단합의 기운이 고조되고 사용자단체와 노조 간의 단체 협상이 개시되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께꼬넨 대통령이 첫 취임한 1956년에도 대규모 총파업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갈등이 지속됐다.

그렇다면 1968년의 제도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중도우파로서 안정된 대러시아 관계 구축과 국내 사회통합에 역점을 둔 께꼬넨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정치적 뒷받침, 경기 인플레 등에 기인한 환율 재정위기라는 외부요인이 부과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 1966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사민당의 주도적 역할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가능했다.
이를 계기로 이른바 신조합주의(neo-corporatism)적 3자 이익 협상 체계가 제도화되었다. 일시적 중단 사례가 있지만 큰 틀의 변화 없이 현재까지 제도가 지속되면서 핀란드 노동시장 및 관련 사회⦁경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기제가 되고 있다.
노사관계의 안정과 고속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핀란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고용, 주거, 교육, 의료, 사회보장 등의 영역에서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복지국가 관련 법제와 정책들을 완비할 수 있었다.
꼬이비스또가 각료와 총리로서, 나아가 대통령으로서 재임한 시기에 핀란드 사회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팽창과 완성을 목도했던 것이다.
의회주의와 현대 인권국가를 향한 단계적 헌법 개혁
핀란드가 또 하나의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실현해가는 과정은 분열과 대결을 특징으로 하던 ‘캠프 정치’(camp politics)의 시스템과 문화가 ‘합의 정치’(consensus politics)로 전환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역사적, 지정학적 여건과 선거제도의 영향 등으로 핀란드의 정치 체제는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정당 시스템과 ‘진영 정치’의 양상을 보였다. 준(準)대통령제 시스템 속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때때로 내각과 의회를 해산했고, 정치적 교착으로 인해 관료 내각이 들어서는 경우들도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시도된 적록연정(punamultahallitus, 사민당-중앙당 연정)과 중앙 노동조합 조직들의 통합, 그리고 노사정 3자 협상의 제도화 등에 힘입어 핀란드 정치 시스템은 점차 안정돼 갔다.
특히 1982년 마우노 꼬이비스또의 대통령 취임 이후 중요한 정치적, 입헌적 개혁들이 시행됐다.
전임자 께꼬넨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줄이고 의회와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987년부터는 소련의 반대 등으로 27년간 내각에 참여하지 못했던 보수당(Kokoomus)이 사민당과 ‘블루-레드 연정’(sinipunahallitus)을 통해 집권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는 이른바 ‘무지개정부’로 불리는 초다수적 연합정부 (super-majority seeking coalition government) 수립이 일반화되었다.
꼬이비스또의 재임 시기에 헌법개혁위원회가 출범해 바람직한 헌법 개혁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제안했고,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점진적 개혁들이 이루어졌다.
우선, 그동안 300명의 선거인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던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전환돼 시민 참여가 대폭 확대됐다.
둘째, 대통령의 임기 제한 규정을 마련해 6년씩 2회(최대 12년)만 역임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1995년 핀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에 맞추어 헌법의 기본권 조항들을 전면 개정해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에 부합되도록 개편했다.
개정 헌법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근대적 주권 원칙에 기반한 시민권 모델을 뛰어넘어 보편적 인권 원칙을 헌법과 기본권 보장의 기본 원리로 수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기존의 부분적 개정 내용들을 집대성하고, 나아가 권력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전면적 헌법 개혁이 단행됐다. 회기를 달리한 두 차례의 의회 동의를 거쳐 2000년부터 발효된 신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대신 의회와 총리의 권한을 강화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총리 인선과 내각 구성의 권한이 대통령으로부터 의회로 이양된 것이다. 총리와 내각은 대통령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의회에서 선출, 구성되고, 총선 결과를 반영해 원내 정당들 간의 협상을 거쳐 다수결로 선출되는 총리는 내각과 행정부의 운영에 대해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책임지도록 했다.
아울러 대통령의 의회 해산권과 법안 거부권에도 중요한 제약이 가해졌다. 대통령은 여전히 총리와 장관을 임명하고, 의회 해산권과 법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 기능은 형식적 절차의 차원으로 국한됐다.
대통령의 정부 정책에 대한 통제, 특히 께꼬넨 이래 대통령의 배타적 권한 영역으로 인식되던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중요한 개혁 조치가 취해졌다. 외교 정책에서도 정책 주도권이 총리와 내각으로 넘어간 것이다.
2000년 헌법 개정 이후 핀란드의 헌정 체제는 형식적으로는 준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이지만 실질적 측면에서 표준적 형태의 의회주의(parliamentarism)로 전환되었다고 정치학자들은 평가한다.
최근 2012년의 헌법 개정은 의회주의적 권력 구조 개편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유권자 5만 명 이상이 서명한 경우 의회가 그 입법 정책안을 심의하도록 하는 시민발의제도(citizens’ initiatives)를 도입해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했다.
그 자신 한 번도 국회의원이었던 적이 없었던 꼬이비스또가 의회중심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일견 역설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당 내부에서 커리어를 쌓아간 기성 정치지도자들과 다른 경로를 통해 장관과 총리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전임 대통령과 달리 소수의 측근들로 구성된 권력의 요새를 구축하지 않았고, ‘올드보이들’ 간에 벌어지는 폐쇄적 권력 투쟁 성격의 정치행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의회와 제 정당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께꼬넨의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퍼져있었고, 이는 의회주의적 헌법 개혁을 위한 중요한 정치적 합의와 추동력을 제공했다.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대외정책 편은 다음에 계속)
(이 글의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지난 5월 핀란드 땀뻬레대학에서 핀란드의 의회정치와 시민참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여기(☞Reaching Out to the People)를 클릭해 다운받을 수 있다).
2017년 새해,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2개년 정책 실험(2017-2018)이 시작되면서 국내외에서 높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왜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의 도입을 검토하는 정책 실험 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
제도의 설계, 실행, 효과의 측면에서 핀란드 정부가 실험하는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내용과 성격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주요 정당 및 노조, 경영자조직 등 핵심 이해관계자들은 정부의 실험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프로젝트가 검토하게 될 기본소득의 모형과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에 기초한 현 사회보장 시스템의 차이는 무엇이며, 양자 간의 이질성과 차이가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가?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본소득 논의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지면의 제약과 이제 막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임을 고려할 때 여기서 위 질문들에 상세한 답변을 제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개괄적 묘사에 머물고 있는 미디어들의 보도 수준을 넘어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정책 연구와 사회적 토론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 글은 그 물꼬를 트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공상’에서 ‘구체적 정책’으로 – 최근 유럽의 기본소득 운동들
2015년 총선을 통해 집권한 유하 시삘라(Juha Sipilä) 총리가 이끄는 보수 우파 연합정부 – 중도우파인 중앙당(Centre Pary), 보수 국민연합당(National Coalition Party), 민족주의 포퓰리스트 핀란드인당(Finns Party) 연립정부 – 는 2015년 8월 기본소득 실험을 4년의 정부 임기동안 추진할 공식 정책 프로그램의 하나로 채택했다.
당시 스위스에서 매월 성인 한 명당 2,500프랑 (한화 약 300만원)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시민 발의(citizens’ initiative)가 국민투표에 부쳐진 직후였다. 발의안은 경제와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우려한 스위스 의회 상하원의 기각 권고 결정에 이어 국민투표의 결과도 찬성 23.1%, 반대 76.9%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적 삶을 영위하고 공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 (unconditional basic income)을 도입하자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적 캠페인은 뜨거운 공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상당한 시민적 지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 스위스 시민발의에 영향을 받아 진행된 ‘무조건적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유럽 시민발의’(European Citizens’ Initiative for an Unconditional Basic Income)도 285,041 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7개국 이상에서 1백만 명 이상의 서명을 요구하는 유럽연합의 절차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EU 집행위원회의 공식 심의 자격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또한 괄목할 성과를 낳은 캠페인으로 평가받았다.
2012년부터 시민 5만 명 (핀란드 인구의 약 0.9%) 이상이 서명한 법안이 의회에 제출, 심의될 수 있게 허용하는 시민 발의제도가 입법, 시행된 핀란드에서도 2013년 기본소득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 발의안이 제기돼 21,634명의 서명을 모은 바 있다.
이들 일련의 흐름은, 토마스 모어(1478~1535년)와 토마스 페인(1737~1809년) 등이 기본 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래 수 세기 동안 근대 산업사회적 복지 민주주의의 외곽에 유토피아적 관념으로 머물던 보편적 기본소득 혹은 시민 임금(citizen income)의 아이디어가 실천적 잠재력을 지닌 구체적 사회정책 의제로 인식되는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핀란드는 네덜란드와 더불어 현재 유럽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흐름에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나라이다. 네덜란드는 19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 제도를 실험할 의사가 있음을 천명한 상태이며, 2017년부터 우트레흐트 등 일부 지자체가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반면, 2017년부터 실시되는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는 국민국가 수준에서 정부 주도하에 시행되는 최초의 기본소득 관련 정책 실험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미디어와 정책 결정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기본소득 논의가 지자체와 지역 정당 및 시민사회 등 아래로부터(bottom-up) 주도되는 특징을 보이는데 반해, 핀란드는 총리와 행정부의 이니셔티브로 공적 논의가 급진전된 위로부터의(top-down) 혁신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핀란드의 기본소득 논의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의제인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2013년 시민발의 캠페인을 비롯해 이미 1980년대부터 13차례에 걸쳐 학자들, 시민사회 단체와 활동가들, 사민당, 녹색당(Green League), 좌파동맹(Left Alliance), 중앙당 등 주요 정당들의 다양한 기본소득 도입 제안들이 있었다 (Koistinen, P., & Perkiö, J. 2014. Good and Bad Times of Social Innovations: The Case of Universal Basic Income in Finland. Basic Income Studies, 9(1-2): 25-57 참조.).
이 제안들은 당시에는 현실적 정책 대안들로 주목받거나 크게 공론화되지 못했지만, 최근 스위스 국민투표 등 계기를 만나면서 핀란드 정부가 정책 실험을 감행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모델: 주요 내용과 비판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된 핀란드 사회보험청(Kela)는 2015년부터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실험 설계를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보고서에서 제안된 내용을 바탕으로 주요 정책 이해관계 집단의 의견을 수렴한 뒤, 핀란드 사회보건부(STM, Sosiaali- ja terveys ministeri)는 기본소득 실험 법안(HE 215/2016 vp)을 기초해 2016년 8월 의회에 제출했다.
2016년 12월 의회에서 승인된 이 법안에 따르면, 이번 실험의 기본 목표는 실효성있는 기본소득 모델의 설계도를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1) 기존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노동 형태의 변화에 더 잘 조응하도록 개선하는 것,
2) 실업수당에 의존하도록 하는 유인 요소를 줄임으로써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 그리고
3) 관료주의를 줄이고 지나치게 복잡한 사회보장 수당 체계를 단순화하는 것 등이 핵심 목표로 제시된다.
이를 위해 핀란드 정부는 2016년 11월 기준 사회보험청(Kela)으로부터 기본 실업수당(basic unemployment allowance) 또는 노동시장 보조금(labour market subsidy)을 받고 있는 만 25~58세의 사람들 중 2,000명을 무작위 선발해 2017년부터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2년 간 매월 560유로(약 70만원)의 기본소득을 별도의 자산 조사 없이 지급한다.
곧, 기본소득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발된 2,000명에게 자동적으로 매월 560유로가 2년 간 지급되며, 이 금액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지급된 기본소득은 기존의 실업수당을 대체하지만, 그 외에 참가자가 받는 다른 사회보장 급여나 수당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울러, 실험 참가자가 프로젝트 기간 중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에도 기본소득은 계속 지급된다.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들의 실험 참가 여부는 선택적이지 않으며, 지역적 수준의 실험은 따로 시행되지 않는다. 표집 집단 2,000명에 대한 실험 결과는 전체 모집단 173,000명과 비교 조사되며, 2019년에 연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 1월 9일 첫 개월분 급여가 이루어졌고, 다음 달부터는 매월 2일에 지급될 예정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에게는 많은 질문들이 떠오를 것이다. 왜 560유로인가? 이 액수가 핀란드 사회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왜 사회보험청으로부터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가? 왜 2,000명인가?
우선 560유로라는 숫자는 사회보험청(Kela)에서 기본 실업수당 또는 노동시장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매월 정액 지급되는 금액 약 700유로에서 20%의 세금을 제외한 금액과 동일한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선발된 참가자 개인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고 의무적(compulsory)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받던 기존의 소득 지원금보다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핀란드의 사회 상황을 고려할 때 이 금액만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액수는 아니며, 따라서 이번 기본소득 실험 모델은 전면적(full)이 아닌 부분적(partial) 기본소득 실험으로 분류된다.
Kela와 연구진들은 기본소득 실험 대상 그룹과 급여 액수를 다양하게 설정하여 참가자들의 행동 유형과 결과를 실험해보려 했으나 이는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의 침해의 우려가 있고, 촉박한 일정의 압력 속에 실험 설계가 더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조정되었다.
프로젝트에 책정된 정부 예산의 규모(2년 간 총 2천만 유로)도 실험 설계에 중요한 제약을 가했다 (사회보험청이 의뢰한 연구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10,000명의 샘플 집단 규모를 권고했다.).
이로 인해 일반 직장인들은 물론 월 300 유로 내외의 학생 수당(student allowance)을 받는 학생과 25세 이하의 청소년, 그리고 실험보험기금으로부터 임금 연계 실업수당(Earning-related income allowance, 실직 전 임금의 60~80%에 해당하는 액수를 500일 (100주) 간 받을 수 있음)을 받는 초기 실업자 등 다양한 사회 집단이 실험에서 제외되었고, 이는 여러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정부 법안에 대한 주요 단체들의 비판을 짧게 소개하면, 핀란드 기본소득네트워크 (BIEN Finland)는 정부 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기본소득이 단지 변형된 실업보조금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청소년 단체인 Allianssi는 독립 생활하는 15~24세의 청소년과 학생 등 교육제도와 노동시장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중요한 사회 그룹에 대한 기본소득의 영향을 실험하지 못하게 된 점을 비판했다.
핀란드 산업연맹 EK는 세금 조정 없이 부분적 수준의 기본소득을 제한된 그룹의 참가자에게 제공하는 이번 실험이 제대로 된 기본소득 모델이 아니며, 실업수당 외에 주거수당 등 다른 사회적 수당을 함께 다루지 않아 관료주의를 줄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반면, 핀란드 노조를 대표하는 SAK, AKAVA 등은 개인의 사회보장 수준을 심각하게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기본소득으로 소득연계 사회보장이나 기타 지원 수당들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비판하면서, 기본소득의 도입보다 현 사회보험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복지전달체계의 관료주의 철폐가 핵심 목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가 복잡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관료주의를 줄이면서 장기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변화된 노동 형태를 받아들이게 해 고용률을 제고하려는 중도 우파 정부의 보수적 정책 지향에 부응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의 역사적 굴곡을 거치면서 완성된 핀란드 복지국가 모델은 매우 포괄적이면서 복잡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조세 체계에 기반해 교육, 의료, 주거, 환경, 복지 등의 제 영역에서 수준 높고 평등한 사회보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아동수당, 모성/부성/부모수당, 학생수당, 실업수당, 징병수당, 주거수당, 질병수당, 산재수당, 장애수당, 재활수당, 생존자수당, 국민(노인)연금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개인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 지원을 보편적으로 혹은 소득 수준 등에 비례해 현금(또는 현물) 지원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각종 수당 신청의 자격 여부를 심사할 중간 행정 조직과 절차가 불가피하게 팽창되었고,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과 관료적 절차의 틈바구니에서 자칫 장기실업으로 이어지는 물적, 심리적 유인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2008년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 핀란드 경제를 선도해온 노키아의 부침,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 안보 위기로 인한 대러시아 무역의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10년 가까이 핀란드 경제가 사실상 제로 성장 상태에 머물러 있어 실업을 줄이고 고용률을 제고하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정책 목표가 되고 있다.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 동맹 등 진보 정당들이 신자유주의적 긴축 재정과 복지 축소 정책의 폐해를 비판하는 반면, 중앙당과 보수당 등 우파정당들은 공공섹터의 비효율성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줄이는 방향의 복지, 행정 개혁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기본소득 정책 실험을 주도한 중앙당의 유하 시삘라 총리는 그 자신 성공한 IT 벤처 기업가 출신으로 시장주의적 정책 대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야당 대표이던 시절 향후 10년 간 생산성 향상을 통해 공무원 수를 2만 명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호언해 진보정당들과 노조의 강한 반발을 샀던 일도 있다. 관료주의를 줄이는 것이 왜 이번 기본소득 실험의 주요 목표로 설정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단서다.
사실 현 총리와 내각의 신자유주의적 성향과는 별개로, 구 농민당(Agrarian Party)의 뒤를 이은 중앙당(Centre Party)은 전통적으로 도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 국민연합당(NCP)이나 도시 산업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민당(SDP)과 달리 중소자영농과 산림업 종사자, 그리고 북동부 시골 지역 주민들을 핵심 지지층으로 해 왔다.
전간기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민당과 자주 연합정권을 이끌며 핀란드 복지국가 모델을 완성시킨 주요 정치세력으로 21세기인 오늘날까지 북유럽의 농민당 계열 정당들 중 가장 높은 영향력을 자랑하는 독특한 사례이다.
사민당+농민당(중앙당)에 의한 복지정치
농민당(중앙당)의 영향력과 연정 참여의 역사는 강한 사민주의의 영향력과 더불어 북유럽, 특히 핀란드에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이 발전되는 것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열쇠가 된다.
노동운동에 기반한 사민당이 주로 고용과 연계된 사회보장 시스템을 선호한 반면, 자영농과 농촌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한 농민당(중앙당)은 보편적 사회보험 정책을 추진했다. 보편성(universality)과 무조건성(unconditionality)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중앙당의 정책 의제가 될 수 있었던 근원적 까닭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핀란드 사회보험청 Kela(Kansaneläkelaitos)도 원어로 국민연금기관이라는 뜻으로, 1920년대 사민당이 추진한 노동자 대상 건강보험 도입안을 당시 농민당이 의회에서 저지하고 1937년 연정을 통해 국민연금법을 제정한 뒤 설치한 기구이다. (사민당이 선호한 고용 기반 소득연계 연금 제도는 1960년대에 국민연금 제도와 병행하여 도입되었다.)
1954년부터 사회보험청장은 지금까지 모두 중앙당 출신의 인사가 역임해오고 있을 정도로, 중앙당의 이념과 가치, 정책 지향이 Kela의 운영 과정에 깊이 배태돼 있다.
핀란드 복지국가 형성과 발전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맥락과 과정을 고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왜 지금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왜 지금과 같은 정책 추진 목표와 방식의 실험 모델이 채택되었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1917년 독립 이후 내전과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 그리고 냉전 질서의 제약을 이겨내고 노사정+농민의 독특한 4자 협상 기반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제도화하며 합의적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한 20세기 핀란드의 정치경제사적 여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 기능을 수행한 주요 정당 및 사회단체들의 정치적, 정책적 상호작용이 이번 기본소득 실험을 둘러싼 논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험이 중앙당과 유하 시삘라 내각의 정치적 지향을 중심으로 기존의 제안들 및 주요 정책 이해관계자 집단들의 의견을 타협, 절충한 한계적 모델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의 제도화를 향한 긴 여정에서 중요한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을 연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 기본소득 가능할까?
한국에서도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녹색당 등 소수정당, 진보적 언론 매체 등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한국은 매우 잔여적인(residual) 수준의 사회보장을 특징으로 하는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 머물러 있으며, 1990년대 이래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심화된 고용 불안과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총체적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노인과 아동, 청소년 등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긴급한 소득 지원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청년수당 등 유사 기본소득 논의가 가지는 개혁적 함의를 긍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핀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등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된 복지국가와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나라들이며, 이들 사회에서 기본소득 담론이 생산, 유통되는 정치사회적 컨텍스트는 한국의 그것과 매우 상이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번 광장의 촛불 민주주의가 보여준 역동적 에너지는 총체적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를 전면 개혁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이 아직 존재함을 역설한다.
21세기 후기 근대의 탈산업사회적 현실을 첨예하게 경험하는 동시에 내전적 심리 구조와 피난민적 사회 불안이 일상화, 내면화된 한국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사회적 권리를 누리고 공동체에 참여할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치경제 모델을 마련하는 일은 지난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결정론과 미래주의적 언설에 기댄 이데올로기적, 총론적 주장들을 넘어 비판적 정책 연구와 심층 분석에 기반한 공적 토론이 절실히 요청된다.
[시민정치시평 314]
복지에 돈 쓰면 그리스처럼 망한다?
그리스 사태가 주는 교훈
조흥식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그리스 사태가 그나마 협상이 타결돼 다행이다. 유로존 19개국 정상들은 20시간 가까운 마라톤 협상 끝에 그리스에 추가 개혁안 이행을 조건으로 3차 구제 금융 제공에 합의했다. 그리스 사태는 일단 타결됐지만, 그동안 터져 나온 그리스 문제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와 전 세계 국민들이 겪는 불안은 차치하고라도 당사국인 그리스 국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이번 그리스 사태는 유럽연합(EU)과 전 세계 금융 시장에 또다시 많은 문제점을 던져 주었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재정 정책 없이 화폐 통합만을 추구하는 유로존의 본질적 한계를 한 번 더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리스식 금융 위기는 유로존 내 재정이 취약한 빈국에서 언제든 터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것은 그나마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걷어낸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리스 사태 타결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다행이지만, 전 지구적 금융 시장의 특성상 그리스 사태와 같은 혼란은 우리에게도 언제든 생길 수 있음에 대비책을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는 유럽 19개국의 단일 화폐인 유로화를 사용하는 등 환율 조정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해온 한국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유사점도 꽤 많다. 그리스 국민들의 도덕성을 이야기하지만 한국인의 근로 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멕시코 다음인 2위, 그리스인은 3위일 정도로 양국 일반 국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반면에 국제투명성기구의 2014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그리스는 69위, 한국은 43위일 정도로 정도 차이는 있지만 부정부패 문제를 안고 있음도 유사하다. 그리고 그리스 재정만큼 취약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한국인의 가계 부채도 급격히 늘고 있어 재정 문제를 얕볼 것은 아니다.
이번 그리스 사태가 한국에 주는 교훈을 몇 가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사태의 원인 진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 자기 논에 물 대기 식으로 이해관계에 따른 이념적인 잣대로 봐서는 절대 안 된다. 그리스 사태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대체로 국가 차원의 정부 재정 적자 문제, 유로 단일 통화권 편입에 따란 경쟁력 약화, 관광업 중심의 그리스 특유의 산업 구조, 유로화 강세 현상으로 인한 수출 경쟁력의 약화, 부정부패 문제, 서민의 삶과 유리된 복지 포퓰리즘, 부실한 국가 제도 개혁 문제, 지나치게 즐기는 문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그리스 사태의 근본 원인을 '공짜 좋아하다간 한국 또 당한다'는 제목을 내걸고 과도한 복지에서 찾으려는 보수 언론 등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왜곡의 여지가 있다. 그리스의 재정 적자가 심각한 건 맞지만 재정 적자가 과도한 복지 지출 때문이라기보다는 상류층의 만성적인 탈세와 조세 체계 부실에 따른 세수 부족에서 찾는 게 온당하다.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의 2010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을 보면 EU 전체 평균은 29.4%이고 그리스는 29.1% 수준으로서 실제 크지 않은데, 그리스 GDP가 쪼그라들면서 GDP 대비 복지 지출을 많이 하고 있는 듯한 착시 현상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를 보면 프랑스 11%, 독일 13.7%, 이탈리아 21.2%에 비해 그리스는 24.3%로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다. 독일 세무 공무원을 그리스에 파견하여 세무 행정을 혁신하면 그리스 재정 위기는 해결될 것이라는 농담이 유럽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복지 국가로 성장하다가 그리스처럼 망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복지 포퓰리즘도 여전히 들먹인다. 그러나 실제 그리스는 복지 국가였던 적도 없고, 오히려 빈부 격차가 심한 국가였다. 25% 세금으로 80% 수준의 연금을 지원하는 엄청난 복지 국가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복지는 상위층에게만 주어졌다. 오히려 상위층은 빈부 격차 속에서 탈세를 계속하니, 세금이 제대로 걷힐 리가 없어 복지국가로 성장하는 것은 애당초 바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리스는 대중 영합적인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먼 상위층만을 위한 복지를 했고, 실제로 상위층은 부패를 저질렀으며 이를 잡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사태를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방만한 재정 운용을 경계하해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바꿔야 한다. 특히 국가 채무를 조심하되, 특단의 저출산․고령 문제,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참에 저부담․저복지 구조를 적어도 중부담․중복지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스의 국가 부채 규모는 총 3240억 유로로 GDP의 1.7배에 달하며, 국채 금리는 연 15%에 달해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부담이 되고 있다. 그리스에서 손쉽게 실업률을 줄이는 방법으로 공무원 수를 대폭 늘려 이들이 퇴직 후에도 보수의 95% 이상을 연금으로 지급받도록 하는 등 일부 포퓰리즘 복지 정책이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된 것은 확실하지만 일반 서민들에 대한 복지 정책 지출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한국은 재정 건전성이 아직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경직성 예산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최근 3년 연속으로 세금이 적게 걷히는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세수는 부족한데 재정 지출은 늘어나면서 국가 부채 규모는 2013년 480조3000억 원에서 2017년 610조 원으로 늘어날 예측에 대해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의 하나인 가계 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 가계 부채액은 빠르게 늘고 있으며 이미 1100조 원을 넘었고, 또 부채 비율 등을 따져봤을 때 약 112만 가구가 채무를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한국은행의 진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저금리와 집세 인상,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덕분에 가계 부채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고 있지만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는 이미 위험 수준에 와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마치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처럼 어불성설이지만 한국에서는 통하고 있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지만, 건설 사업과 부동산 부양책 지출은 계속하거나 늘리면서 왜 복지 지출 중단에만 급급한지 알 수가 없다. 복지 지출의 구조 조정을 시행해 지출의 중복과 비효율을 없애야하는 것은 맞지만 저부담․저복지 구조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소득세, 법인세 감세와 종합부가세 축소, 비과세 감면 확대 등 세칭 부자 감세만 종전대로 돌려놓아도 부채 증가를 상당히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국가 재정 지출이 양극화 완화나 국민의 행복한 혹은 안전한 삶을 위해, 그리고 사회 양극화나 저출산․고령,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사용된다면 '복지 있는 증세'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복지 없는 증세에 국민 대다수는 분노하는 것이다. 연말 정산 논란과 담뱃값 인상 사태를 상고해 보시라. 서민 증세의 뒤틀린 모습 아니었던가.
올해 초에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41%가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작년에 발표된 한국복지패널 부가 조사를 보면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응답이 2007년에는 37.9%였지만 2010년 52.5%, 2013년 54.7%로 점차 증가해 가고 있는 점을 보면 증세 있는 복지가 충분히 가능하며, 이제부터 성장 있는 복지, 복지 있는 성장이 가능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라도 저부담․저복지 구조를 중부담․중복지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구조 전환을 위해, '복지 있는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의 몫이다.
셋째,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산업 자본주의의 꽃인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 그리스에서 GDP의 제조업 비중은 5.7%에 불과하며, 관광과 해운업 등 서비스업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업의 과잉 발달은 내수 시장에서의 제조업 발달을 더디게 하고, 해외 의존도를 높인다. 그리스가 제조업 관련 수입 의존도가 점점 높아갈 동안 제조업 강국인 독일 등은 단일 유로화의 수혜를 톡톡히 보았다. 금융 자본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환율 조정을 통한 해법을 모색할 수 없었던 그리스로서는 물가와 임금 하락만이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제조업 기반이 취약함으로써 이러한 조치의 효과는 나타날 수가 없었다. 환율 약세로 인한 기업 수출 증대야말로 'IMF 위기' 극복의 핵심 요인이었음은 과거 한국과 아일랜드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경우도 제조업이 갈수록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고 경제 성장률도 낮아지고 있어 환율 평가 절하에 따른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돼 가고 있음을 고민해야 한다.
넷째,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 그리스에서 부정부패는 상류층에서만 있는 게 아니고 이를 통제해야 할 공무원 사회까지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도 국제투명성기구는 "그리스의 일부 공무원 사회에서는 수십 년간 투명성과 효율성이 결여됐고 그 결과, 뇌물을 요구하여 받는 관행이 생겼으며, 불법 행위를 한 공무원 중 2%만 징계절차를 밟았을 정도로 처벌이 부실함"을 지적했다. 이러한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탈세를 부추겼고, 결국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고 눈먼 돈은 계속 나가니 재정 적자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한국에서 고소득 전문직 등이 국세청 사후검증으로 440억 원의 부가가치세를 추징당하는 등 추징 규모와 정치권의 뇌물수수 등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부정부패의 척결은 시급한 과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더 열악해진 초단시간 근로자 (한국일보)
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초단시간 근로자 인권실태 조사’ 결과, 초단시간 근로자는 10여년 새 3배 급증했지만 임금과 복지 등 처우는 계속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단시간 근로자는 통상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거나 한달 동안 근로 시간이 60시간 미만인 사람을 뜻한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활성화하겠다고 공언하지만 단기 근로자의 처우 개선 방안은 모든 정책에서 빠져 있다”며 “4대보험 등 노동자의 권리를 사용자가 부담할 수 있게끔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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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hankookilbo.com/v/ca0285fe6884453d9cd6c0b4f0b767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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