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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2] 선거의 회고성과 정권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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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2] 선거의 회고성과 정권 심판

익명 (미확인) | 목, 2016/03/10- 17:21

선거의 회고성과 정권 심판

 

남기철 ㅣ 동덕여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들어가며

몇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복지에서도 여러 외양은 커졌는데 정부가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내어놓는 화두는 몇 십 년 전의 인식을 복사해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위안부 문제 등 정부가 형편없는 능력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 궁지에 몰릴 때마다 안보이슈가 불거지는 모습에서는 쓴 웃음을 자아낼 만큼 예전  ‘새마을 시대’와 닮았다.

 

그간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이 지적될 때마다 친 정부의 인사들은 정부의 정책이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정부’가 온전히 실패하기를 바랄 수만은 없다. 정부의 실패는 기본적으로 너무나 많은 국민의 고통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이 그런 말에 딱 어울리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실패하고 있는 정책, 그리고 정부에 대해 묵과하는 것은 더 좋지 않다. 선거의 국면에서는 적극적인 문제의 제기와 심판이 특히 중요할 것이다.

 

사실 선거는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 국민 참여의 모든 것은 아니다. 선거라는 시스템이 국민의 참여와 의사를 대변하는 방법으로서 완벽한 것이라면 시민운동, 시민의 직접 참여, 그리고 지방자치라는 것도 의미가 약해진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보와 소통 자체가 극히 불완전하다보니 선거와 그 결과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대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료라는 재화가 완전경쟁의 시장상황에서 적절하게 생산소비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양상을 선거 상황에서 재현하기도 한다. 물론 당선 가능성 등 현실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대안의 부재 때문에 ‘덜 나쁜’ 투표에 매달리게 되기도 한다. 반(反) 여당의 표심이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정당에 투표하려는 움직임으로 불거지기도 하고, 비교적 규모가 큰 야당으로 몰아주자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서울지역에서의 무상급식 투표와 같이 투표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행위가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가장 나쁘게는 무관심이나 냉소에 의한 선거불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번 총선은 어떤 표심이 어떤 방식으로 불거질 것일까? 또 그 결과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 될까?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선거직전까지도 어떤 변수가 부각되는가에 따라 결과가 요동치는 역동성이 부각되기에 사실 아직도 그 결과를 짐작하기 힘들다.

 

선거는 지금부터 일정 기간 동안 정치에서 활동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고 현재와 미래 상황에 대한 공약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판단의 근거에서 우리는 최근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에 대한 회고성을 지닐 수밖에 없고 또 그러해야 한다. 선거에 출마하는 개인의 됨됨이나 역량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정권 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나 당연히 정당 등 집단의 성격에 대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출범 이래의 상황을 반추해보자.

세월호와 메르스, 보육대란, 그리고 냉전적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사회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양극화 심화와 가계부채의 증가 등 경제의 피폐와 위기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국민은 이 과정에서 어떤 사고나 문제가 발생한 것 자체보다도 그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력함 혹은 잘못된 대응에 분노하게 된다. 있을 수 있는(?) 사고 자체보다도 그 사고를 거대한 재앙으로 만들어버린 정부의 잘못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부는 출범한지 3년만에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정책들이나 발언들로 보아 현 정부가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미래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불행히도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 21세기 한국에서 사는 국민이 적절한 삶의 수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보장받도록 주장하는 것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된다. 현 정부가 생각하는 사회상은 아마도 기득권이나 거대한 자원을 소유한 집단이 보다 효율적으로 자본을 형성할 수 있도록 모든 영역에서 지원하고 축적하려는 것에 초점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 간 그나마 형성되어 온 공공성에 의한 복지나 사회권은 비효율과 규제로 보아 해체하고 있다. 경제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다수 국민들을 광범위한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로 전락시켜 기득권 집단의 효율적인 수단이 되게끔 하고 있다. 양극화 속에서 국민이 느끼는 박탈감은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입을 막아버린다. 현 정권의 집권에 주효한 수단이 되기도 하였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의 공약은 권리성을 해체하고 자선의 수혜자로 만들어 프로그램을 개악하는 것으로 둔갑하였다. 얼마 전부터 회자되는 헬조선, 흙수저 신드롬은 현 국민의 팍팍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보다는 미래세대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지 못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현 정권에 대해 성토해야 할 대표적인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연금과 건강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어렵게 마련된 사회보장정책의 연대성에 대한 침해, 권리에 대한 해체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를 복지국가의 초입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토대인 사회보장제도들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 비교적 적극적인 기초연금안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부이지만, 집권 후 박근혜 정부는 연금에 대해 미래의 재정 적자에 대해서만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연금이 의도하는 수준의 생활보장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는 국민의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의 인정과 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프로그램이지, 제도 자체가 적자나 추가적 투자 없이 무한정 진행되는 영구동력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최저생계도 보장하지 못하는 연금이라면 재정부담이 없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초연금은 지방정부에게 본질적 부담을 떠넘겨버렸다. 건강보험도 큰 금액의 흑자가 누적되고 있지만 보장성 강화는 전혀 기약이 없다. 의료비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고 있는 비율은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의 의미를 형해화시켰다. 현 정부들어 ‘세모녀법’이라며 시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편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개별급여제로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시민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형태적 변화가 아니다. 국민들의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준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국민의 권리, 국가의 책임성에 대한 규정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부분이다. 현 정권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이러한 권리는 매우 불손하게 여겨진 것이리라.

 

지방자치의 핵심내용이라 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전면적 부정에 대한 사안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자치제가 어느 정도의 연륜이 쌓이면서 미력하나마 생활정치와 관련된 이슈들이 조금씩 정착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상당부분은 지역의 사회복지와 관련된 내용들이 지방자치의 특징적 모습으로 지역마다 만들어져 가고 있다. 지역별 복지기준선, 공공복지전달체계의 자체적 보강,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장애인에 대한 추가적 보장, 노인수당과 같이 지역별로 독특한 보충적 성격의 복지급여 설정이 만들어져 왔다. 혹은 청년수당과 같이 과거에는 복지급여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프로그램 신설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2년 전부터 중앙정부(청와대)가 인정하지 못하는 모든 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와 협박성 조치를 통해 지방정부를 옥죄고 있다. 소위 사회보장 유사중복사업 정비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장제도에 대한 협의는, 예를 들어 중앙정부가 갑작스러운 제도 신설 등으로 지방정부의 전달체계나 상응하는 조치가 따라오지 못할 경우 적절한 방법을 찾기 위해 필요한 협의를 수행하는 것이 본질이다. 현 정부는 이를 중앙정부의 뜻에 반하는 복지 프로그램 설치를 방지할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궤를 같이 하며 최근의 보육대란과 같이 지방정부에 재정적 책임을 과도하게 떠넘기는 것 역시 국민의 복지수준을 결정적으로 후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와 선친 때부터 꿈꾸어 왔다는 ‘복지국가’를 동시에 나열할 때부터 예견된 문제들일 수 있다.

 

복지국가 운동의 관점에서 현 정권은 복지국가라는 미래상을 혼탁하게 만든 것에 권력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심각한 부분이다. 사회복지의 확대 혹은 보편적 복지국가에 대한 호도와 사회적 갈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이들은 사회복지 대신 사회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이 자체는 본질이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안들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사실상 복지에 대한 축소와 함께 구시대적·잔여적 정책의 관점으로 회귀시키고 있다. 21세기 중반 우리나라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이미(!) 복지제도가 충분하다는 궤변을 보수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삼아 미래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권리적 사회복지의 해체를 지금 시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도 총선의 결과와 관련하여 의료 등 공공휴먼서비스 분야에 대한 영리화, 노동개악의 문제 등 현안들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사회복지의 미래에 대해서는 소통이나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소통의 부재는 현 정권 모든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정권에 불리한 논의의 국면은 안보라는 문제로 문이 닫혀버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평화’는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특징적 토대가 된다. 복지는 평화, 민주주의라는 요소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현 정권은 평화나 민주주의라는 복지의 기초전제에 대해 줄타기하듯 위험한 상황을 조장하고 즐기면서 국민의 권리나 특히 복지, 삶의 질에 대한 이슈를 희석시키고 있다.

 

우리는 세월호. 메르스, 평화정착의 사안들에서 현 정권의 대응력에 대해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양극화라는 당면한 과제에 대응할 사회복지의 중요한 역할과 관련하여 박근혜 정부의 태도와 능력 역시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지난 3년의 경험에 비추어 미래세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대한민국의 사회복지를 현 정권이 후퇴시키는 것을 용납해서는 곤란하다. 현 정부는 복지의 논의를 포퓰리즘이나 도덕적 해이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빈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부 개입 이전과 이후에 상대빈곤율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서구국가들은 정부개입 이전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높은 빈곤율을 나타내지만 국가의 정책적 개입 후에는 모두 우리나라보다 빈곤율이 크게 낮아진다. 정부의 빈곤완화를 위한 역할정도가 극히 미미하다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OECD등 보수적인 국제기구마저도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우리나라의 복지병을 지나치게 걱정 혹은 홍보하고 있다.

 

얼마 전 사회복지사 1급 국가고시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예찬하는 뜬금없는 문제가 출제되어 구설수에 올랐다. ‘충성경쟁(?)’이 상식을 뛰어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분야의 상식을 지키는 것보다 충성을 과시하는 것이 유리해진 정권의 분위기 탓이리라. 선거에서 이번 정권을 심판하는 것은 합리성, 상식을 되찾는 것에서도 중요하다.

 

마치며

사실 이번 총선을 둘러싼 현재까지의 분위기는 암울하다. 북한의 핵개발이나 사드의 배치와 관련하여 소위 안보정국이 조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야당은 분열과 그 과정에서의 잡음으로 인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그러나 정치공학적인 측면들은 잠시 제쳐두고라도 현 정권이 사회복지 영역에서 보이는 움직임들은 분명한 심판이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지난 3년에 대해 ‘회고적’ 성격의 선거와 투표를 필요로 한다. 지난 3년 간 사회복지 분야에서 벌어진 일들은 현 정권과 같은 세력이 어떤 공약이나 미래 전망을 내어놓더라도 저출산, 양극화. 헬조선의 문제로부터 우리국민을 보호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가 대부분 복지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선도성이나 혁신성을 지향해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히 현 정권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형성과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들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향후 보편적 복지국가의 전망은 없다. 우리 국민 다수에게 복지권이 확장되어가는 미래는 없다. 21세기에 어울리는 대한민국의 전망은 없다. 산업화 시대 이데올로기로의 복귀이다. 현 정권에게 대기업, 토지재벌, 수구세력의 독점적 이익은 국민 다수의 삶의 질, 인권, 평화보다 중요하다. 심판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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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오세훈 후보를
친환경무상급식 파탄 책임을 물어
친환경무상급식 시민단체 낙선대상 후보로 정하고
사퇴를 촉구하며 낙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밝힌다.

 

  우리는 오세훈 새누리당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의 2011년 반복지, 반시민적 행동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오세훈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 당시 시민의 동의를 받아 잘 진행되고 있던 친환경무상급식을 되돌리고 반복지 담론을 형성하기 위하여 무모한 주민투표를 강행하여 전국을 혼란케 했었다. 당시 서울 시민들은 ‘가난한 집 아이와 부자 집 아이’를 구별하고 보편 복지 확대를 후퇴시키려는 오세훈 시장 주도의  주민투표를 나쁜 투표로 규정하고, 주민투표 자체를 무산시켰다. 서울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전국적인 여론이 오세훈 전 시장의 대권놀음 수단이었던 나쁜 투표를 막아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세훈 전 시장은 막대한 세금만 탕진시킨 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까지 오세훈 전 시장으로부터 자신의 과오와 책임에 대해 어떠한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런 오세훈 전 시장은 아무런 결자해지의 노력없이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종로구에 출마했고, 새누리당의 공천을 거머쥐었다. 천연덕스럽게 슬그머니 정치의 무대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이 정치이고, 정의인가? 

 

  2014년에는 또 경남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후퇴에 대해 1년 넘게 투쟁하여 도민의 힘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려냈다. 오세훈 후보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라면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절절한 요구는 아랑곳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정치인이 아니던가? 우리는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지난 2011년 막대한 세금을 탕진시키며 전국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과오에 대해 어떠한 반성과 사과도 없이 국민의 대표로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 

 

  오세훈 후보는 스스로 책임지고 후보에서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친환경무상급식 파탄 책임을 물어 친환경무상급식 시민단체 낙선대상 1호 후보로 정하고, 법이 허용하는 모든 방법으로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오세훈 후보 낙선을 위하여 노력할 것을 밝힌다.

 

  우리는 더 이상 오세훈, 홍준표와 같은 정치인에 의해서 친환경무상급식 정책이 후퇴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밥상과 보편적인 복지 확대를 위하여 더욱 노력할 것이다. 또한 20대 국회가 개원되면 더 이상 홍준표, 오세훈과 같은 정치인에 의해 친환경무상급식 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홍준표-오세훈방지법’을 민생 제 1호 법안으로 통과시킬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다.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상임대표: 박인숙, 진헌극)

화, 2016/03/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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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통치의 시간’, 준비돼 있습니까?

정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거 시기가 되면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로부터 종종 안부 확인을 겸한 선거의 전망을 묻는 전화를 받곤 한다. 며칠 전에도 친구로부터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전화를 받았다. 긴 수다 끝에 친구가 물었다. “근데 왜 이번 대선은 12월이 아니라 5월에 하지?”,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중년의 건망증이라고 서로 웃어넘기긴 했지만, 통화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질문이 영 생뚱맞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잊은 채, 선거판의 정글에 빠져들어 길을 잃고 있는 것이 단순한 건망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선의 열기 속에 어느새 까마득한 일이 된 듯하다. 간간이 언론을 통해 양념처럼 등장했다 사라지는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사건 연루자들의 사법처리과정과 수감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만이 우리가 왜 12월이 아니라 5월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지를 문득 상기시킬 뿐이다.
이번 대선은 87년 민주화 이래 최대 사건, 헌정 중단에 준하는 정치적 대위기가 초래한 선거이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을 폭군을 내쫓은 일종의 명예혁명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는 명예혁명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주조해야 하는 비상한 책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그러한 비상함은 찾기 어렵다. 선거 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잊게 할 만큼, 이전의 여느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문제를 두고 냉전적 시각으로 상대를 적대하는 것도, 심판론의 연장인 적폐청산론으로 피아를 구별해 적대하는 것도 그렇다. 이놈 저놈 하는 격한 정치적 언사도 모두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틈을 타 탄핵당한 헌법 밖의 정치세력이 슬슬 다시 몸을 풀고, 또 그만큼 적대와 증오는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거라는 자족적 기대도 상당히 커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탄핵정국 통해 표출된 사회적 에너지의 규모에 비춰, 그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의 다양함에 비춰,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복합적인 성격에 비춰 지극히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번 대선이 12월이 아니라 5월에 치러지게 된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결과다 
보수-진보, 여-야를 떠나 절대 다수 시민들이 유사 사회적 합의를 통해 최고 통치자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 과정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넘어,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 시장을 지배하는 권력과 재벌 간의 오래된 담합구조, 대통령과 청와대로 초 집중화된 권력체계, 자율성과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을 비롯한 사회 각 부분, 예스맨들의 집합체가 된 집권당과 책임성 없는 내각, 외교안보적 무능력과 리스크 증대 등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의 누적된 위기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일거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조기 대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보인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함성은 더 나은 통치에 대한 시민들의 집약적 요구라고 할 수 있고, 이번 선거는 그것을 묻고 있다.
선거는 정치가 가진 여러 얼굴 가운데, 가장 경쟁적이며 대립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선거가 정치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누가 집권하든 통치의 시간이 온다. 통치(government)는 원래 배의 키를 잡는 행위에서 유래한 말이다. 키를 잡고 거대한 함선을 이끌 듯이 최선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나라의 전반을 조정하고, 조율하고, 운행하는 정치적 실천이 통치다. 따라서 선거하듯 통치할 수 없다. 민주적 통치는 경쟁보다는 건설적 협력을, 대립보다는 상호 존중과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더 좋은 통치의 비전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핍박과 조롱을 통해 이기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이번 대선의 의미를 정확히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 과정에서 과도하게 동원된 적대와 상대에 대한 모욕은 비단, 후보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그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 역시 그러한 적대와 모욕으로 고통받는다. 우리가 협력할 수 있고, 또 서로 존중받고 있다는 시민적 공감대가 없다면, 선거의 뒤끝은 격렬한 분열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의 분권정부, 즉 소수파 정부일 수밖에 없다. 지금 유력한 대선후보가 상대하는 후보와 정당은 선거가 끝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 촛불을 거치면서 높아진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수준 속에서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집권한 정당, 후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첩첩산중이다. 아무리 승부가 중요하다 해도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신뢰의 근거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것이 통치의 시간을 준비하는 ‘통치자의 태도’이다.
선거는 이제 종반전이다. 비상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평범한 선거를 보며,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단 며칠이라도 적대와 증오, 서로에 대한 모욕이 커지는 선거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이해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그 맨 가장자리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발견했듯 말이다.
[email protected]
월, 2017/05/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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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이다.jpg

3번째 주제 [숨은 '민주주의' 찾기] - 1회. 승자독식, 한방 민주주의?


소수가 다수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어야 참된 민주주의다 - 존 스튜어트 밀

 

'승자독식, 한방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선거'는 다수결을 통해 이긴 쪽도 중요하지만 소수자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의 51:48의 결과 이후 박근혜 정부의 정책 집행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50%에 가까운 소수자의 목소리는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습니다. 토크빌(프랑스 정치학자)과 존 스튜어트 밀(정치철학자)는 다수자의 횡포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선거'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선거 만능주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공천 과정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 로마 카이사르의 독재에 맞서 지키기 위해 생겨났던 필리버스터의 기원, 97년 IMF로 인한 한국의 87년 민주주주의 체제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사유하고 이야기하는 다정한 민주주의자들의 팟캐스트 <톡톡!철학사이다> 지금 들어보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927147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kgR0kZ

 

같이보기

 

목, 2016/03/1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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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해결은 간단...전면 철회 선언하면 된다

개혁의 폭과 속도​가 중요하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촛불 대선'이라고 불린 19대 대통령 선거가 적폐 청산을 약속한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시대를 압도할 것 같던 촛불시민 혁명의 열기가 이어진 선거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4​1​%를 간신히 넘은 지지율로 당선된 점은 ​새 정부가 가야 할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50% 이상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호소는 엄살만은 아니었다. 국회 의석이 여러 정당들이 나누어가지고 있는 상황, 게다가 여당이 된 민주당의 의석은 겨우 120석, 그러니까 국회 과반은커녕 40%에 딱 턱걸이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에 동의하면서도 ​문재인​ 후보를 찍지 않은 ​진보 및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협치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국민의 당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새 정부가 과연 적폐 청산이나 사회 대개혁에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임 정부와 달리 언론장악은 엄두 낼 수도 없는 정부이다. 언론의 비판과 감시 앞에 하루도 발 뻗고 잠자지 못할 정부이기도 하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청와대 권력 외에는 사회 권력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 대개혁은 그만큼 더 어려운 과제다.

 

게다가 이번에 권력에 접근하지 못한 이들은 더더욱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에 더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공언했던 바다. 개헌하자는 주장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헌 논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다른 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것이 쉬울까 싶다. 그야말로 믿을 구석은 정권교체와 사회 대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일 테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 ​이 새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역할만을 할 수는 없다.

 

고고한 척하면 되기 때문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과 감시, 더 개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과정에서도 해야 할 일은 많다. 북핵 위기, 사드 위기, 경제 위기 등 헤쳐가야 할 위기도 많다. 이럴 때일수록 우선순위를 잘 잡고 가야 할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이고, 시민사회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둘 사이에는 우선순위 설정이 다를 수 있고, 또 다른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갈등을 고조하고 정쟁을 가중시키는 정책부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삶을 보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국민들을 위한 따뜻한 돌봄의 실현과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국공립어린이집, 국공립요양시설, 공공병원 등 공공인프라의 확대는 국민들의 삶의 안정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 줄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계소득이 두터워지게 하는 것도 새 정부의 중요하면서도 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땀 흘려 일하면 먹고는 살 수 있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고, 미래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사회로 가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기관이나 공직자들의 불법 부당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잘못에 대해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국가정보원이 벌인 정치공작,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한 대통령이 책임지고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쟁이나 사회 갈등이 적으면서도 시민들의 기대와 열망이 쌓여있는 과제들은 또 많다. 물론 국회의 협력을 얻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18세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도록 추진하는 것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률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정보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근절하도록 국정원법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면 국회의 협력을 기다릴 필요 없이 대통령과 행정부 스스로 결단하면 될 일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전면 철회를 선언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 스스로 독립적 기구로 꾸리는 것도 그러하다. 그 위원회의 조사 활동에 모든 정부기관이 적극 협력하도록 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러저러한 개혁 과제들을 열거하자면 10가지도 100가지도 더 늘어날 것이다. 많은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몇 가지라도 분명하게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독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개혁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힘이 있을 때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국민적 동의와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개혁은 금방 벽에 부딪힌다. 그 좌절의 후유증은 다른 개혁의 추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적 동의, 그리고 다른 정치세력의 동의와 기반이 넓은 것부터, 그리고 기반을 넓혀가면서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체 정부인만큼, 국회 내에서도 40%의 의석만 확보하고 있는 여당인 만큼 개혁의 지지 세력과 동의 기반의 확인을 거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진보적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처한 환경도 이제 달라졌다. 지난 9년 ​동안은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는 청와대, 행정부와 집권 여당에 맞서 싸우는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 이제는 퇴행의 저지가 아니라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두고 싸우는 시대​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냐 일부 개정이냐를 두고 갈등을 빚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경우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7/05/1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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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당선인 300명의 평균 재산은 21억 8천만 원으로 집계됐다. 국민 평균 재산 2억 8천만 원 보다 8배 가량 많은 것이다. 평균 예금액은 7억 8천만 원 가량, 소유 부동산의 평균 가액은 17억 원 상당이었다.

뉴스타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20대 총선 후보들의 재산 내역을 바탕으로, 총선에서 당선인 300명(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 포함)의 재산 세부 내역을 분석했다. 재산 평균값의 왜곡을 피하기 위해 1천억 원 이상의 재산을 신고한 당선인 3명(새누리당 김세연,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국민의당 안철수)을 집계에서 제외한 결과, 당선인 한사람 평균 재산은 21억 8천만 원으로 나타났다.

1천억 원 이상의 재산을 신고한 당선인 3명의 재산은 김병관 당선인 2,637억 원, 안철수 당선인 1,629억 원, 김세연 당선인 1,551억 원이다. 4번째로 재산이 많은 새누리당 박덕흠 당선인(550억 원)과는 천억 원 이상의 차이가 났다. 이들 3명을 포함한 당선인 300명 전원의 평균 재산은 41억 원이 넘는다.

▲ 20대 총선 당선인의 정당별 평균 재산 (중앙선관위 총선 후보 재산신고 내역)

▲ 20대 총선 당선인의 정당별 평균 재산 (중앙선관위 총선 후보 재산신고 내역)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당선인의 평균 재산(상위 3인 재산 제외)은 29억 5천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의당 17억 6천만 원, 더불어민주당 15억 2천만 원이었다. 정의당은 평균 3억 7천만 원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가구주 전체 재산 평균 2억 8천만 원을 훌쩍 넘는 액수다. (출처: 2015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재산 세부 내역을 보면, 당선인 297명(상위 3인 재산 제외)의 평균 예금은 7억 8천만 원이었다. 채권과 증권까지 현금화가 손쉬운 재산을 합하면 한 사람에 9억 7천만 원 꼴이었다. 또 토지와 상가, 아파트 등 부동산의 소유 가액은 평균 17억 원에 이르렀다.

학력에서는 석사와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당선인의 비율이 58%으로 나타났다. 대졸이 121명으로 가장 많았고, 석사 96명, 박사 79명 순이다. 고졸은 4명에 불과했다. 국민 평균이 고졸에서 대졸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20대 총선 당선인 정당별 평균 재산(당선인 수 기준. 297명 대상, 1000억 이상 재산 보유 김병관, 김세연, 안철수 제외)

▲20대 총선 당선인 정당별 평균 재산(당선인 수 기준. 297명 대상, 1000억 이상 재산 보유 김병관, 김세연, 안철수 제외)

 

▲ 정당별 학력

▲ 정당별 학력


정리 : 오대양, 박중석
데이터 : 최문호, 김강민
그래픽 : 정동우

 

목, 2016/04/1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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