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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귀향 1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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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귀향 1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익명 (미확인) | 금, 2016/03/04- 19:17

사람이 갖고 있는 잔악함의 끝은 어디일까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99년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제작진에게는 이같은 물음이 생겼습니다.

이토 씨는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20년 넘게 취재해왔습니다. 한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도 취재했습니다. 특히 99년에 이토 씨가 영상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일본군의 잔악함이 여과 없이 담겨있었습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는 2000년 10월 기준, 218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다 더 자세히 알리기 위해 이토 씨가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2주에 걸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지역에도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하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92년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의 공개 증언을 통해서였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일제 순사에게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됐습니다.

“도교상이라는 놈이 “여기서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에게 몸 바쳐 말 잘 들으면 너를 잘 돌봐주겠다”고 말하고 그 장교 놈이 한 며칠 와서 그렇게 성노예 생활을 시작하더구먼. 이제 12살 난 게 어머니 품에서 어린양 노릇하던 아이가 성노예 생활이 뭔지 아나? 그놈이 들이대니까 아이 아래가 다 파괴돼요. 온통 구들바닥에 피가 쏟아지고 이래도 군인들이 쭉 들어와서 성노예 생활을 하다가…”
– 리경생 할머니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했던 고문과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반인륜적이었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자신이 열여섯 살에 임신이 되자 일본군은 그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낸 뒤 자궁을 들어냈다는 만행을 자행했다고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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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배에 아이 있다고. 임신했다고 ‘저년을 써먹어야겠는데 나이도 어리고 인물도 곱고 써먹어야겠으니 저년 자궁을 들어내 파라'”
– 리경생 할머니

리경생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북한 지역 곳곳에서 자신도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2000년 북한 단체인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은 70%나 됐습니다. 강제 연행된 경우가 96명으로 44%, 일자리를 미끼로 유인당한 경우가 74명으로 34%, 나머지는 빚에 팔리거나 근로정신대에 모집됐다가 위안부가 됐습니다. 이 가운데 43명이 공개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철부지 13살이 뭘 압니까. 하나도 모릅니다. 그 성기가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주머니에 있던 칼을 꺼내더니 잡아 둘러 매쳐놓고 그 칼로 쭉 잡아 찢습니다. 그렇게 하곤 자기 할 노릇을 했는지 까무러쳐서 나는 모릅니다. 벗지 않곤 말이 되지 않아.”
–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위안소’ 끌려감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일본군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고문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였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성고문을 당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옥순 할머니(1920~1998)의 가슴과 아랫배에는 당시에 겪었던 고문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이 고문을 받을 때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어요. 문신을 독약으로 하는데 어떻게 정신을 안 잃어. 살이 다 헐었어요. 바늘 쏙쏙 들어간 자리죠. 이거 봐. 그 자리에서 열두 명이 죽었는데…”
– 정옥순 할머니

‘위안부’가 되기를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돌아오는 것은 일본군의 가차 없는 학살이었습니다.

“한 처녀가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너희 개 같은 놈들한테 이렇게 맨날 이 단련을 받겠나?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니까 일본군이 “어 좋다.” 그 다음에는 가마니를 하나 끌어다 놓고 졸병을 시켜서 “모가지 잘라라.” 모가지 잘라 가마니에 넣고 “팔 잘라라.” 팔 잘라서 가마니에 넣고. “다리 잘라라.” 다리 다 잘라 담고 몸뚱이도 그저 몇 토막을 쳐서 가마니에 다 주워 담는 것을 보고 그걸 보고는 처녀들이 다 악악 소리치고 그 자리에서 다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리경생 할머니

이런 광기 어린 일본군의 학살에 죽어 나간 ‘위안부’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한 400명 데려다 놓고 하룻밤에 40명씩 타면서 아이들이 아래 하초가 깨져서 피를 쏟다가 죽은 아이들이 수백 명 됐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까 팬티만 입혀서 이 하초를 쇠막대기로 다 지졌다. 왜 말 안듣냐고 지지고… 말 듣겠느냔 하고 또 지지고. 그렇게 아래 하초가 다 데여서 번직번직하니 거기 껍데기가 쭉 벗겨졌는데 군인들이 40명씩 또 달라붙더라.”
-정옥순 할머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가며 저지른 학살은 ‘엽기’ 그 자체였습니다.

“계집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못판에 못을 300개를 심었어요. 그게 못판에 팬티가 다 찢기고 하초에 닿으니까 살에 구멍이 뚫려서 국숫발 같이 피가 팍팍 뿜어요. 그렇게 15명을 죽여 놓고서는 “너희 계집 애들도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말 안 듣는 계집애들 죽이는 건 개 죽이는 것보다 아깝지 않다” 그렇게 말했다. 내가 피 눈물이 나와.”
-정옥순 할머니

리상옥 할머니(1926~2005)는 ‘위안소’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성고문과 함께 끌려간 동네 친구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랑 같이 온 탄실이, 영순이. 하루는 신음소리가 나길래 보니까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내 방이 아니고 남의 방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죽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이렇게 죽는 거다’하고 몇 달 지나갔어요.
리상옥 할머니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리상옥 할머니는 그 당시 후유증으로 임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평생을 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60년동안 홀로 떠안고 온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2005년 숨졌습니다.

어느 누가 자식도 하나 없고 그런 삶을 살 수가 있나요? 당신네도 아들딸 있겠지요. 나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살았어요. 나는 이제 다른 것 바랄 거 없어요. 당신네가 준 모욕 보상하라요. 왜 못하나요. 60년이 됐어요. 60년. 생각해보세요. 나도 남들이 잘사는 거 보면 부럽고 얼마나 가슴이 터져오는지 알아요?
리상옥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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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할머니들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지 남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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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4일, 이른바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이 일어났다. 전날 비공개로 열린 민주당 내부 회의를 누군가 몰래 녹취해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한선교 의원은 도청 의혹을 부인했다. 민주당은 KBS 기자가 비공개 회의를 도청해 한선교 의원에게 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KBS는 자사 기자가 도청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한선교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KBS 장 모 기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한선교 의원은 경찰에 출석하지 않았고 서면조사로 마무리됐다. 또 경찰이 조사할 당시 장 모 기자는 이미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바꾼 뒤였다. 장 기자는 6월 23일 사용했던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수사는 종결됐다.

▲ 도청 의혹 사건이 발생할 당시 KBS 정치부 기자들은 대부분 영전을 거듭했다.

▲ 도청 의혹 사건이 발생할 당시 KBS 정치부 기자들은 대부분 영전을 거듭했다.

야당의 비공개 회의록을 입수해 여당에 갖다 준 의혹은 KBS 기자들의 취재윤리에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KBS 간부들의 반성은 없었다.

진짜 문제 되는 건 그런 거죠 일단 회사의 민원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자가 동원됐다는 것도 잘못됐지만 부정확한 방법으로, 정확하지 않은 방법으로 뭐라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민주당의) 정보를 취득했고 그리고 그것을 상대 당에게 넘겼잖아요. 이건 당사자가 된 거고 일종의 공작을 한 거죠. 정치공작을 그 행위자가 된 거잖아요. 기자가 기자는 관찰자잖아요.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서 취재하고 보도하는 사람이지 정치 공작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 역할도 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저널리즘에 심대한 위기가, 윤리위반이 된 거죠.

김현석 기자 / 2012년 KBS 새노조 위원장

도청 의혹 사건이 일어난 지 6년이 흘렀다.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문건이 공개됐다.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으로 KBS 김인규 사장과 고대영 본부장이 궁지에 몰렸던 2011년 9월 27일 작성된 문건이다. ‘도청 의혹사건은 경찰의 무혐의 처리 수사발표를 통해 부담 경감’ 이라고 적혀있다. 실제 문건이 나온 지 석 달 뒤 2011년 12월, 검찰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처분했다.

KBS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요직을 독점해 온 한 무리의 기자들이 있다. 이들이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당시 KBS 사내 게시판에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 김인규 씨를 사장으로 옹립하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기수별 모임을 갖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의 명칭은 2012년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건에 자세히 나온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건 중 라는 문건이다. 이 문건을 보면 김인규 사장을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이 모임을 ‘수요회’라고 적시하고 있다. 수요회 회장은 이정봉 씨, 수요회를 이끄는 인물은 고대영 보도총괄팀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고대영 씨는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KBS 자회사 사장을 거쳐 현재 KBS사장까지 올랐다.

▲ KBS 고대영 사장

▲ KBS 고대영 사장

고대영 사장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KBS 뉴스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고대영 씨는 보도본부장 시절 사원투표에서 2/3의 불신임을 받기도 했다. 고대영 보도국장 시절 대표적인 편파방송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도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국정원장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 개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고대영 사장,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200만 원 받았다는 진술 나와

이 사건과 관련해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TF가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KBS담당 국정원 직원은 고대영 보도국장에게 국정원장의 수사개입 뉴스를 보도하지 않는데 협조하는 조건으로 현금 200만 원을 집행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KBS는 국정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수사에 개입한 사실을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 국정원 적폐청산TF 보도자료

▲ 국정원 적폐청산TF 보도자료

고대영 사장은 자신을 임명해 준 박근혜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기록한 문건이 공개됐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주요 국정 현안에 관한 언론대응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고대영 사장 체제의 KBS는 청와대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반영한 뉴스를 보도했다. 공영방송 KBS가 청와대의 나팔수로 전락한 것이다.

▲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 지시 사항 문건

▲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 지시 사항 문건

지난 10월 26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고대영 사장은 국정원으로부터의 200만 원 수수 의혹 등에 대해 수많은 기자와 KBS 노조원들이 해명을 요구했지만 그는 부인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 국회 앞에서 KBS 노조원들의 해명요청에 침묵하고 있는 고대영 사장

▲ 국회 앞에서 KBS 노조원들의 해명요청에 침묵하고 있는 고대영 사장

고대영 사장은 지난 9월 민주당 도청의혹사건 진상규명에 앞장 서 온 정필모, 이영섭, 박종훈 기자를 상대로 각각 9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자신과 KBS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도청 의혹 사건의 주역들이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KBS.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길이 아직 멀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정재홍
촬영 권오정
취재 연출 이우리

토, 2017/10/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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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추진해야 할 입법·정책 개혁과제

외교 ·통일·국방 분야 

평화인권과 외교안보권력의 민주화를 위한 입법·정책과제

 

과제1. 사드(THAAD) 한국 배치 철회    
과제2. 남북 대화 재개와 교류협력 복원    
과제3.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병행 추진    
과제4.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과 무장 갈등 예방     
과제5.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및 불평등한 한미 SOFA 개정    
과제6. 한일 일본군‘위안부’합의 무효화    
과제7. 제주 강정마을에 대한 구상권 청구 철회    
과제8.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 개정    
과제9. 병력 감축과 군 복무기간 단축 위한 「병역법」개정    
과제10. 군 인권 보호를 위한「군인권보호관설치법」제정    
과제11. 위헌적 파병 철군 및 해외파병 최소화하는 제도 마련    
과제12. 국방획득과정의 국방부 독점 해체 및 주요무기도입 타당성 재검토    
과제13. 조약체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조약 체결‧비준 절차법」제정    
과제14. 천안함 침몰 진상 규명    
과제15. 안보교육 전면 철폐와 평화·인권교육 확산    
과제16. 원조의 투명성, 효과성 제고 위한「국제개발협력법」개정    
과제17. 국제 인권기준의 국내 주류화를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 설치 
  

 

 

과제6. 한일 일본군‘위안부’합의 무효화

 

1) 현황과 문제점 

  •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정부는 외교장관 회담의 결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합의사항을 발표했음. 피해자들이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사항들이 합의문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이번 합의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규정함. 합의내용이 발표되자마자 피해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일합의 전면 무효’를 외치며 합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음.
  • 합의 이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의 ‘위안부’ 관련 망언은 계속되고 있음. ‘위안부’는 ‘직업 매춘부’라는 자민당 의원의 망언에 이어, 2016년 1월 18일 아베 총리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전쟁범죄를 부정함. 2016년 2월 16일 제 63차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심의에서도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고,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은 잘못된 개념이라고 주장함.
  • 그러나 유엔의 여러 인권기구들은 그동안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반인륜적 범죄’라 규정하고, 일본 정부에 대해 ‘법적책임 수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자 기소’ 등을 권고해왔음.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 열린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6년 3월 7일 지난 25년간 유엔 인권기구가 일본정부에 내린 권고 중 가장 높은 수위의 내용을 발표함. 철폐위원회는 한일합의가 “피해자 중심의 접근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다”라고 지적하며 “위안부 문제는 한일 합의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라고 밝힘. 또한, 2017년 5월 12일 유엔고문방지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 CAT)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 등과 관련해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며 사실상 재협상할 것을 권고함. 
  •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는 민간단체들이 추진하던 위안부 관련 기록의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 지원사업도 철회함. 2016년 7월 28일에는 화해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의 거출금을 지급받음. 화해치유재단은 피해자들의 반발이 여전한 상황임에도 생존 피해자 46명에게 1억 원, 사망피해자 유족 등에게는 2천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피해 당사자가 위로금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통장에 입금하는 등 집행을 강행해왔음. 한일간 합의에 따라 소녀상이 적절히 이전될 것이라는 일본 측의 주장과 소녀상 관련된 합의는 없었다는 한국 측 주장이 엇갈리는 등 한일 간 이면 합의가 존재하는지도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임. 
  • 한일 간의 오랜 쟁점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졸속적이고 급작스럽게 한일간 합의로 귀결된 것은 한미일 군사협력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것과 연관되어 있음.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를 봉합하지 않고서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협력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임. 실제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2016년 3월 한미 당국의 사드 한국 배치 협상 개시, 7월 배치 결정 발표,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음. 

 

2) 정책과제

①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 피해 당사자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엔의 권고사항이나 국제사회의 규범과도 배치되는 해당 합의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며, 피해 당사자의 요구에 근거하여 재협상에 나서야 함. 
  • 한일 합의 폐기의 실질적 조치로써 한일 합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은 해체하고, 일본 정부가 재단에 출연한 10억 엔을 즉각 반환해야 함. 피해자들로부터 명백한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대리 동의와 수령을 강요해 가족 간의 갈등마저 야기하고 있음. 

 

②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와 배상 요구

  •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많은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 ‘성노예’를 강요한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법적 책임을 지는 데 있음. 피해 당사자들이 지난 25년 동안 일관되게 요구한 것은 일본정부의 국가적 책임 인정과 공식사죄, 법적배상, 재발방지조치 이행임. 최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2015년 한일 합의의 수정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함. 보고서의 권고를 수용토록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것과 함께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것. 

 

 (*)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야 할 90개 개혁과제 제안 전체 보기 

수, 2017/06/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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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부에 비리를 알게 됐다. 몇 달을 고민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밝히기로 결심했다. 그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너 밥 혼자 먹었냐? 오늘도?’
밥 때가 되면 걱정이에요
혼자 먹어야 하니까 구내식당에서
나하고 인사하기 전에 뒤를 살펴보더라고
나하고 인사하는 것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걸 보고 나니까 내가 괜히 미안한 거야
그 사람을 괜히 어렵게 하는 것 같아서

김용환 (2003년 대한적십자사 오염 혈액유통 공익제보자)

징계는 그래도 견딜만했다. 친했던 동료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게 힘들었다. 철저히 혼자였다.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고, 밥 같이 먹자는 이도 없었다.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했다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하지만 십여년의 세월, 가슴깊이 맺힌 멍울은 그대로다.

▲동료가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단 속에 나를 숨기고 조직에서 살아남는 것, 그 것이 처세술이라 믿으며 살아온지도 모른다.

▲동료가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단 속에 나를 숨기고 조직에서 살아남는 것, 그 것이 처세술이라 믿으며 살아온지도 모른다.

김용환 씨는 공익신고를 하라는 광고를 보면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김 씨는 2003년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가 에이즈, 간염, 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유통했다는 사실을 내부 고발했다.

1990년 이문옥 감사원 감사관의 내부 고발 이후 공익 제보는 꾸준히 이어졌다. 그 기간 한국사회는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주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공익 제보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 2014년 회사의 산재은폐 사실을 공익제보했던 이종헌씨, 그는 입사 이후 주로 인사, 노무관리를 맡았지만, 제보 이후 화단 정리와 배수로 청소 업무를 해야했다.

▲ 2014년 회사의 산재은폐 사실을 공익제보했던 이종헌씨, 그는 입사 이후 주로 인사, 노무관리를 맡았지만, 제보 이후 화단 정리와 배수로 청소 업무를 해야했다.

이번주 목격자들은 공익제보자들을 취재했다. 그들이 내부 고발의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내부고발 이후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들을 진짜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인지, 공익제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시선은 어떤지 등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고희갑
연출 박정대

수, 2017/11/0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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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기록하며 차별에 저항해 온 고 박종필 감독의 영결식이 오늘(7월 31일) 오전 10시 광화문광장에서 ‘인권사회장’으로 엄수됐다. 빗속에서도 수 백여 명의 시민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박종필 감독의 마지막 길을 뉴스타파 카메라에 담았다.

고 박종필 감독(1968~2017)은 1998년에 ‘독립다큐멘터리제작 다큐인’ 대표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미디어 활동을 시작했다. 박 감독의 카메라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기록했다. 제1회 장애인 영화제에서 ‘끝없는 싸움 – 에바다(1999)’로 우수상을 수상했고, 제2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2002)’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장’을 맡으며 세월호를 기록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선체 조사 작업을 기록했다.

고 박종필 감독은 2015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부당함을 다룬 뉴스타파 <목격자들> ‘우리는 홀로 설 수 없나요’을 연출했다. 같은 해 서울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목격자들> ‘사람이 산다’를 프로듀싱했다.


촬영 : 오준식
편집 : 박서영

월, 2017/07/3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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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tophobia’ 치과 공포증을 뜻한다. 치과를 찾는 환자들이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인데, 최근에는 치과 치료 공포증보다는 오히려 치료비에 혼란을 느끼는 환자들이 더 많은 듯 하다.

진단부터 치료비까지 ‘고무줄’ 진료비

최근 대학생 임 모 씨는 사랑니 발치를 위해 한 치과의원을 찾았다. 치아가 많이 손상되었다며 치료비 250만 원을 진단받았다. 치료비가 만만치 않아 또 다른 치과 의원 2곳을 더 들렀는데, 여기서는 각각 280만 원, 100만 원 가량의 치료비를 진단받았다. 치료해야 할 충치의 개수도 모두 달랐다.

목격자들 제작진이 서울 시내 10개 치과 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더니…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직접 서울 내 10곳의 치과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봤다. 제작진은 이미 3년 전 치아 4개의 충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치과의원별 진료 결과는 어땠을까? 10곳 모두 치료해야 할 충치 진단은 물론 치료 비용도 달랐다.

1개의 충치 치료만으로 충분한다고 진단한 곳도 있었고 최대 4개의 치아 치료가 필요하다는 곳도 있었다. 치료비 역시 최소 8만 원에서 최대 90만 원까지 제각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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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제작진이 서울시내 치과의원 10곳에서 받은 진단 내용

▲ 뉴스타파 제작진이 서울시내 치과의원 10곳에서 받은 진단 내용

최근 몇년 사이 과잉 치과 진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35년 동안 치과를 운영해온 한 치과의원 원장은 과잉 진료의 원인으로 치열한 경쟁 상황을 지적했다. 우후죽순 생겨난 치과의원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료비 단가를 낮추게 되고, 수익을 위해 불필요한 치료를 권유한다는 것이다. 2017년 현재 전국의 치과 의료기관은 17,463개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과잉진료는 일부 치과의 일탈행위이고 오해라고 설명했다. 초기에 진행되는 충치에 대해 설명하는 의사와 설명하지 않는 의사가 있기 때문에 충치 개수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재윤 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실제 충치가 없는데도 있다며 치료를 하게끔 하는 치과의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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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 담합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 8월부터 충주시 치과의사회가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를 받고 있다. 충주 치과의원들끼리 임플란트 수가 등 진료비를 담합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치과 의원에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과 2008년 각각 부산시치과의사회와 광주전남지역 치과의사회가 진료비 가격 등을 담합했다가 적발돼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번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치과 의원들의 과잉 진료 논란과 담합 행위 의혹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정재홍
촬영, 연출:김한구

월, 2017/09/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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